CINELAB2022-09-16 03:02:34
[#톺아보기] 이진욱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로맨스가 필요해2> <삼총사>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최근 카카오TV 웹드라마 <결혼백서>에 출연했으며,
오늘이 바로 생일인 배우인데요. 바로 배우 '이진욱'입니다!!
그럼, 바로 이진욱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배우 '이진욱' 프로필
ⓒ BH엔터테인먼트
이름 | 이진욱
출생 | 1981년 9월 16일
소속사 | BH엔터테인먼트
데뷔 | 2003년 '파나소닉' 모델
배우 '이진욱' 데뷔 과정
ⓒ BH엔터테인먼트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했고, 연기에 흥미를 느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한다. 그 후, 혼자 프로필을 만들어 잡지사와 에이전시를 찾아 돌리다
203년 파나소닉 광고로 데뷔하게 되었다.
배우 '이진욱' 활동
ⓒ BH엔터테인먼트
파나소닉 광고로 데뷔 후, 여러 광고에 출연하였고 대학로 연극, 단편영화, 단만극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작품은 2006년에 방영한 연애시대이다. 이후 tvN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이진욱 배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배우 '이진욱' 대표작
로맨스가 필요해 2012 - 윤석현
ⓒ Tving
이진욱 배우는 승부욕이 강하고, 까탈스럽고, 섬세하며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격을 가진
시나리오 작가 '윤석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 박선우
ⓒ Tving
거침없는 판단력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CBM 보도국 12년차 기자이자,
매일 밤 12시에 뉴스 투나잇을 진행하는 최고의 앵커 '박선우'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디즈니+
삼총사 - 소현세자
ⓒ Tving
이진욱 배우는 늘 여유 있고 농담을 즐기며 친절하고 다정한 것처럼 보이나,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속내를 가진 '소현세자'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표적 - 이태준
ⓒ 네이버영화
이진욱 배우는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진 서울백운병원 레지던트 3년차 의사인 '이태준'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뷰티 인사이드 - 우진084
ⓒ 네이버 영화
이진욱 배우는 일어날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우진의 84번째 모습인 '우진084'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왓챠
시간이탈자 - 김건우
ⓒ 네이버 영화
이진욱 배우는 2015년을 살고 있는 강력계 형사로,
우연한 사고를 겪게 되며 꿈속에서 다른 이의 일상을 보기 시작한 '김건우'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스위트홈 - 편상욱
ⓒ 넷플릭스
이진욱 배우는 무뚝뚝한 말투와 엄청난 근련과 맷집의 소유자인
악을 악으로 벌하는 전직 살인청부업자 '편상욱'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불가살 - 단활
ⓒ Tving
이진욱 배우는 600년 전 인간이었으나 불가살이 된 '단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
- [JIMFF 데일리]모토에 충실한 JIMFF의 엔딩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렸던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16일 19시 의림지 야외 무대에서 강준규, 오하늬 배우의 사회로 진행된 폐막식을 끝으로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앞선 5일 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영상으로 시작된 폐막식은 김창규 제천 시장 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의 인삿말 이후 2022 음악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 지원작 발표, 한국 경쟁 부문 수상작 및 국제 경쟁 부문 수상자가 발표, 폐막선언과 축하 공연, 그리고 대망의 폐막작 상영으로 이어졌죠.
'E.T.' 필름 콘서트가 취소되는 등 이번 영화제는 개막식부터 유독 우천으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인 폐막식 만큼은 아름다운 노을이 한 눈에 보이는 쾌적한 날씨에서 무난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마치 영화제의 모토를 온몸으로 느끼라는 자연의 의도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슬로건인 ‘a tempo’는 ‘본래의 빠르기로’라는 뜻으로, 일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화제가 짖궂은 날씨라는 장애물을 만났지만 무사히 진행되었듯이, 작년과 달리 온전히 오프라인으로 열린 영화제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말하는 듯 하죠.
폐막식에서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역시나 수상작 발표였습니다. 신나게 무대를 즐기고,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들을 감상하는 사이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치열한 경쟁의 끝은 언제나 관심을 되찾기 마련이죠. 우선 2022 음악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 지원작은 두 작품, 김태희 감독의 '룩킹 포'와 엄하늘 감독의 '너와 나의 5분'에게 돌아갔습니다.
사실 수상작을 발표하는 심사위원의 평가는 미묘했는데요. 개성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불안정한 소절들이 제작 지원을 거쳐 멋진 화음과 리듬으로 바뀌길 바란다는 희망과 격려가 공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감독의 상이한 수상 소감에 담긴 절실함은 그 미묘함마저도 잊게 만들었습니다. 부친상에도 불구하고 지키기 위해 돈이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김태희 감독은 내년 제천에서 멋진 작품으로 만나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엄하늘 감독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른 채 진심이 담긴 "감사합니다" 단 한 마디로 모든 소감을 대신했죠. 두 감독의 작품은 23년 19회 영화제에서 만나게 될 예정입니다.
열세 편의 단편과 네 편의 장편 영화가 출품된 한국 경쟁 부문은 작품상도 단편과 장편 영화로 나뉘어서 발표되었습니다. 단편 부문에서는 어두운 주제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역사적 의미를 뮤지컬에 담아낸 조하영 감독 '언니를 위하여'가 선정되었습니다. 가능성이 엿보이며 장편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들뜬 목소리로 쉽사리 소감을 잊지 못한 조하영 감독은 20년도에 제작 지원을 받은 후 지금까지 힘써준 배우와 스태프, 제천 프로그래머와 모든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장편부문에서는 권철 감독의 '버텨내도 존재하기'가 작품상을 가져갔습니다. 극장의 존재를 버팀목으로 삼아 영화의 존재를 보여주듯이 음악의 의미를 보여주었고, 음악과 영화와 삶, 그리고 오랫동안 존재하는 것들과의 관계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권철 감독은 언질을 주는 줄 알았는데 주지 않아서 놀랐다며, 초청만으로도 좋았는데 수상하게 되어 더 기쁘고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해외 경쟁 부문 작품상은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사위원장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음악이라는 공통점 하에 다양성, 젠더, 민족성, 영화 기술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장편 영화들을 즐길 수 있었고, 그래서 수상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는데요. 특히 두 작품이 박빙이었다며 2등을 차지한 작품도 얼마나 놀라운 영화였는지를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두 영화가 아주 달랐지만 이들이 보여준 새 감수성과 시네마와 내러티브에 접근하는 협업 방식은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는 것이었죠.
이에 특별상을 받은 '포저' 팀이 무대에 올라 소감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리 세게프, 노아 딕슨 감독은 친구들과 저예산으로 제작한 작품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면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작품상은 리타 바그다디 감독의 '사이렌'에게 돌아갔습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한 작품 안에 모두 녹여낸 놀라운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는데요. 미국에 있어서 폐막식에 참석하지 못한 바그다디 감독은 영상을 통해 수상소감을 전해왔습니다. 아랍 여성들이 항상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바그다디 감독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게 해준 메탈 밴드 '슬레이브 투 사이렌'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 진실과 꿈을 위해서는 항상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는 뜻깊은 메시지도 남겼습니다.
치열했던 경쟁의 끝은 영화 음악과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의 폐막사 이후 무대에 오른 박동준 밴드는 멋진 색소폰 공연을 선보였는데요. 영화 '대부'의 ost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엔딩 타이틀 곡인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가필드' 속 'I got you(I feel good)'까지 총 세 곡을 연주하며 별빛이 반짝이는 달콤한 여름밤을 더 아름답게 꾸며주었습니다.
제천 메가박스와 제천 CGV,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 레스트리 리솜은 물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제천 비행장과 제천의 대표 명소인 의림지에서 진행되어 더 뜻깊었던 제 18회 제천국제영화제는 이렇게 내년을 기약합니다.
-
- [BIFAN 데일리] 영화적 상상력에 담긴 한국 사회의 못난 민낯
Summary
예진은 20대의 외모를 지녔지만 실제 나이는 70대 중반이다. 원폭 피해를 당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후유증으로 ‘늙지 않는 병’을 앓고 있는 예진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영생인’으로 불리며, 사회적 차별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예진은 모델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사회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고자 하고 가상의 일본 방송국 ‘메이지TV’는 그런 예진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Cast
감독: 김상훈
출연: 강서하, 안주영
유한한 인생을 타고난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 영생과 불멸, 전생과 환생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저를 한 방에 녹 다운시키는 필살기 소재입니다. 인간의 유한함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영화적 상상력이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생인>이라는 제목에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거겠지요. '영생과 관련된 영화' 하면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열연한 <인 타임>이라는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인 타임>에서는 부자일수록 영생을 누리는 세상을 그렸는데, 한국 감독은 '영생'을 소재로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 <영생인>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 ⊙ ⊙
<영생인>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입니다. 일본 방송의 한 다큐멘터리 팀이 한국에서 모델로 일하고 있는 '예진' 씨를 취재하러 한국에 찾아왔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죠. 영화는 정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일본 방송의 양식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일본어 자막도 달려있고, 내레이션도 모두 일본어입니다. 처음엔 놀랍도록 진지한 이 고증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그것이 알고 싶다' 에피소드 한 편을 볼 때처럼, 이야기에 푹 빠져든 저 자신을 발견했죠.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는 '예진'은 사실 '영생인'입니다. 얼굴은 20대지만, 실제로는 1945년에 태어나 나이가 70세를 훌쩍 넘었습니다. 영생인은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한국인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간접피폭자, 즉 돌연변이였습니다. '예진'과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일반 사람보다 성장 및 노화 속도가 지극히 느리다는 것. 아직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영생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영생인들은 '비정상적인' 자신들을 향한 눈초리를 견디며, 괴물, 흡혈귀라고 혐오 당하는 일상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일본 다큐멘터리 팀이 취재하는 '예진'은 차별과 핍박에 맞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영생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취재하면 할수록 '예진'은 동정과 연민을 일부러 자아내는 듯한데요.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는 그녀의 동생이 등장하며 절정에 치닫습니다.
⊙ ⊙ ⊙
(※스포일러 주의) 극의 후반부에서 '예진'은 사실 불쌍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영생인이 아니라 영생인 집단의 꼭대기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가로채고 다른 영생인들을 억압해 온 악독한 리더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예진'은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다큐멘터리 팀을 향해 모두가 편견인 줄 알았던 영생인의 진실, 흡혈귀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영생인들을 폭력과 억압으로 제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속사정을 토해냅니다.
이 지점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는 <영생인>은 객관적 진실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극 중 다큐멘터리 PD는 사회에서 배척되어 공동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예진'과 영생인 집단을 좌지우지하는 악독한 리더로서의 '예진', 그리고 그것이 흡혈귀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 '예진'을 모두 편집 없이 방송에 담기로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객관적 진실인지 감히 단정할 수 없다면서 말이죠.
이런저런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때로 저게 과연 진짜 진실일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픽션 영화와 달리 현실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리얼리즘 장르입니다. 그렇기에 관객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전적으로 사실이라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야말로 사람들의 믿음을 발판 삼아 진실을 교묘하게 조작하기 용이한 장르입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사실을 포착해 종합했다고 해서 그게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을 종합한 사람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진실을 완전히 알고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요? 과연, 진실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 ⊙ ⊙
<영생인>은 '영생'을 소재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고질병들을 꼬집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상성, 정상성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 같은 것들이죠. 자신과 다르다면 아예 부정해 버리는 것이 속 편하다는 듯, 괜히 지지했다가 사회적 고립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듯, 사람들은 영생인을 모질게 괴롭힙니다. 하물며 영생인이 괴물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정부는 영생인을 40년이 넘도록 산속 어귀 수용소에 가둬둡니다.
평범하더라도 다수는 힘을 갖고, 부러워할 법한 능력(영생)을 갖추고 있더라도 소수는 쉽게 배척당합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연한 존재하는 사람들을 쉽게 지워버리는 다수의 횡포는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년 퀴어 축제가 개최될 때마다 바로 앞에 서있는 성소수자의 얼굴에 대고 혐오 발언을 퍼붓는 우리 사회의 모습처럼요.
그 밖에도 <영생인>에는 한국의 사회 문제들이 속속 숨어있습니다. 공론화는 되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각종 인권 문제, 저임금 일자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조선족의 노동 실태, 고작 1.5평 남짓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한국만의 주거 형태인 고시원의 빈곤 문제까지. 또 일본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인 피폭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뿌리 깊은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절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영생인>은 이러한 사회 문제들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창조한 '영생인'이라는 집단과 엮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끄집어냅니다.
⊙ ⊙ ⊙
역시 '이상해도 괜찮'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걸맞은 영화입니다. 만화 작가 출신 감독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매 장면이 더 흥미로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영생'을 소재로 하는 색다른 시선을 담아낸 이 작품에 관해 더 많은 분과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Schedule in BIFAN2023.06.30(금) CGV소풍 4관 16:302023.07.04(화) CGV소풍 11관 17:002023.07.06(목) CGV소풍 5관 13:30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 06월 29일 - 07월 09일
-
- <상티넬> 아픔이 단지 수단으로 소비된 결과물
<상티넬> 아픔이 단지 수단으로 소비된 결과물
넷플릭스 <상티넬> 리뷰
1. 중동에서 특수 부대 '상티넬'의 일원으로 군사 작전에 나선 '클라라(올가 쿠릴렌코)'.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고 판단한 찰나에, 그녀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다.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 동료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집과 가족의 품도 그녀를 예전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어느 날 불안 속에서 상티넬의 임무를 지속하던 클라라는 동생 '타니아(마릴린 리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은 그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중동에서처럼 평화에 균열이 생겼음을 깨달은 그녀. 그렇게 그녀는 다시금 총을 든다.
영화 속 액션씬은 두 개의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하나는 액션씬 그 자체의 완성도다. 맨손 격투, 카 레이싱, 추격전과 같은 액션이 얼마나 정교하고 연출되었는지, 촬영 방식은 액션의 질감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액션의 구성은 얼마나 독창적인지 등을 따질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액션 연출이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그것보다 발전했다는 평가나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 속 슈퍼맨과 조드의 싸움이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극찬은 이 관점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액션씬의 전후 맥락에서 느껴지는 상황과 감정적 측면이다. 아무리 액션씬이 화려해도 등장인물들이 왜 싸우는지, 그들에게 이 장면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그 장면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외계인이 지구로 침공한 상황도 같고, 전투 시퀀스의 스케일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어벤져스> 시리즈와 달리 전투에 임하는 비장함과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상티넬>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액션 영화다.
2. <상티넬>은 분명 짧은 러닝타임과 액션 영화의 조화에서 기대할 법한, 끊임없고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합이 잘 짜인 현란함보다는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싸우는 처절함에 중점을 둔 맨손 격투는 복수심에 불타는 클라라의 심경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중동에서의 작전 수행 시퀀스처럼 총의 조준경이나 망원경의 화면을 그대로 활용해 전투나 액션이 시작되기 직전의 사실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몰입도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액션 영화로서 좋은 장면을 보여주는 것과 별개로 <상티넬>의 뒷맛은 결코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찜찜하다. 영화의 주제와 소재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소비될 뿐, 그 도구가 갖는 무게감에 대한 고찰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클라라와 타니아 자매의 트라우마 극복으로,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펼쳐진다. 우선 영화는 언니인 클라라의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중동에서 대테러 작전팀인 상티넬 소속으로 일하던 그녀는 현지인의 자살 폭탄 테러 징후를 미리 눈치채지 못해 동료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로 인해 귀국한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는 여전히 근무 중 평범한 가방을 폭탄물로, 후드를 쓴 행인을 테러리스트로, 부모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자살 테러를 시도하는 아이로 오해하며 힘겨워한다.
다른 한편에는 동생의 트라우마가 있다. 클럽에서 만난 한 남성으로 말미암아 성폭력을 당한 타니아는 가해자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소송이나 수사로 인해 자신의 개인사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적극적인 저항을 거부한다. 이러한 동생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 통제력을 잃어가던 클라라가 개인적인 복수에 나서게 되는 촉매제로 작용하며 서로 다른 두 플롯을 하나로 묶는다.
3. 문제는 자매의 트라우마를 연관시켜 복수극을 풀어나가는 시도가 클라라의 행적에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둘 간의 직접적인 관련성이 보이지 않아서 직관적인 이해를 돕지 못한다. 타니아가 성폭행을 당한 것에 클라라는 책임이 없으며, 자신이 마주했던 테러 집단이 동생을 공격한 것도 아니고, 순찰 근무 중 불안 증세가 범죄의 원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나마 PTSD로 인한 불안정성이 무모한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짧은 러닝 타임에 슬로 모션이 빈번하게 등장하다 보니 이러한 심경의 흐름을 전달할 기회도 잡지 못한다. 그 결과 영화의 서사는 클라라의 내적 고통과 동생의 복수, 둘로 나뉜 듯 느껴지며 어느 것도 제대로 완결 내지 못한 찜찜함을 떨치지 못한다.
또한 하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써만 다른 쪽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것도 문제다. 클라라는 가해자를 쫓아 사적 복수를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난다. 이때 그녀는 피해자의 심경과는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책임이라는 스스로의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범인을 쫓고, 직접 사살을 시도한다. 타이나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동생을 대신해 일방적으로 실천에 옮긴다. 그렇게 피해자는 자신의 능동성과 의지가 모두 제거된 채 주인공의 행적에 어떻게든 정당성을 보여하려는 도구에 불과해진다. 그 결과 피해자의 아픔과 선택에 대한 고찰이 결여된 상태에서 맞이한 주인공의 해피 엔딩은 마치 향이 나지 않는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같다.
4.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발단이자 주된 플롯을 책임져야 할 클라라의 트라우마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전쟁 트라우마를 지닌 군인, PTSD로 괴로워하는 군인은 더 이상 새로운 영화적 장치가 아니다. 전쟁 영화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은 물론, 액션 블록버스터인 <6 언더그라운드>를 포함한 수많은 창작물에서 전쟁의 고통, 살인에 대한 죄책감, 전우를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 등에 휩싸여 있는 군인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상티넬>처럼 중동 현지에서 대테러 작전 시행 도중 혹은 전투 중에 상해를 입은 군인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필두로 문화적 이해 없이 중동 문제에 개입했던 서양 국가들의 행태에 대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참전한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개봉한 <고스트 오브 워>는 SF적인 상상력과 호러 영화의 문법을 동원해 미군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을 그려낸 바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버지 아들 군인>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부자의 모습을 다루며 그 트라우마가 대를 이어 유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한다.
5. 하지만 <상티넬>은 전쟁 당시의 상황을 거듭 떠올리며 약물 중독에 가깝게 고통받는다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묘사 외에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묘사함에 있어 그 어떤 도전적인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영화가 제각기의 방식으로 참전 군인과 그 비판 의식을 다양한 캐리터와 장르 안에 풀어냈는데도 그저 관성적인 묘사를 보여주는 데 머무른다. 얼마나 개성 있게,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빚어내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와중에도 악수를 둔다. 그렇게 넷플릭스 <상티넬>은 보기에는 좋지만 알맹이가 없는 평범한 액션 영화로 남는다.
D(Dreadful, 끔찍한)
총격전과 맨몸 격투 사이로 휘발되어 사라진 두 피해자의 고통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디아스포라들의 뿌리 내리기, <미나리>
※ 이 글은 영화 <미나리>의 내용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1. 국경을 넘어 씨를 뿌리는 자들
디아스포라(diaspora)란 '~넘어', '경유'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전치사 'dia'와 '씨를 뿌리다'라는 의미의 동사 'spora'가 합쳐져 생긴 말이다. 다시 말해, '국경을 넘어 씨를 뿌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본래 이스라엘 밖을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태생지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주민, 난민,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공동체 등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디아스포라들이 만든 작품들을 두고 디아스포라 문학, 디아스포라 영화 등이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작 정 리의 영화, <미나리>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이민 1세대들의 이야기를 그렸으니 디아스포라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재미 디아스포라'들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과 '한국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전하는 많은 메시지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이 영화는 곳곳에서 한국적인 요소들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적인 공감을,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어서는 '보기 드문' 독자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면 <미나리>가 이토록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영화는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나리>는 누구의 공감을 받았을까? 다름 아니라,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렇다. 디아스포라들의 땅인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각광받는 것은 이상할 일이 없다. 시기는 다르지만 그들은 저마다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에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다. 그 과정은 때론 희망적이고, 때론 처절하다. <미나리>의 가족들의 모습은 재미 동포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미국 시민적인 모습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2021년. 고향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혹독한 타향살이를 경험했고, <미나리>는 그때의 뼈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보편적이다.
<미나리>가 '제이콥'이 낯선 아칸소에 한국 작물의 '씨를 뿌리는'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 디아스포라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기
자, 이제 본격적으로 <미나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영화는 디아스포라들이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고자' 분투하는 이야기이자, 이성과 감성, 현대적 사고와 전통적 사고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화분을 분갈이해 본 적이 있는가? 아주 건강한 식물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옮겨도 식물은 본래 있던 화분에서 뿌리째 뽑혀 낯선 흙에 심기는 것을 버거워한다. 그들의 뿌리는 이질적인 흙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한다. 잔뜩 움츠러든다. 어떨 때는 잎이 죄 시들기도 한다. 새로운 흙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고달프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이고,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콥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바퀴 달린 집이다!"
그들의 바퀴 달린 집은 언제든지 토네이도에 휩쓸려갈지 모른다. 낯선 아칸소 땅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제이콥 가족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제이콥 가족은 이미 미국에 이민 온 지 10년이 지났다. 그들은 저마다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제이콥은 그들의 '에덴 정원'을 일구어 성공을 이루어내야 한다. 10년 동안 유능한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으나 뾰족하게 가계를 성장시키지 못한 그에게 농장은 마지막 보루이다. 모니카는 심장이 약한 데이빗이 늘 걱정이다. 아칸소의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리 있고, 그것은 언제 닥칠지 모를 아이의 위험에 대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이의 안전과 가정의 안정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자 목표다. 앤은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과 아픈 남동생을 둔 장녀이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또래보다 먼저 성숙해야 한다는 마음의 굴레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데이빗은 심장에 구멍이 나 있다. 그는 언제나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아이답게 한창 뛰어 놀 나이지만 그러지 못한다. 아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연약한 아이'라는 말을 멍에처럼 쓰고서.
수평아리는 쓸모가 없어. 그래서 폐기되는 거야.
그러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병아리 감별소에서 제이콥은 데이빗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처지는 병아리 감별소의 병아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 쓸모가 있으면 살아남지만, 쓸모가 없으면 '폐기된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절실해진다. 살아남고 싶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3. 우물 찾기의 여정
"나는 여기에 가든을 하나 만들 거야"
제이콥은 절실한 만큼 자수성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이렇다 할 밑천도 없이 빛으로 시작한 농사일이었지만 그는 이 일에 꽤 자신이 있었다. 해마다 한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만 3만여 명이라고 하니, 한국 농작물을 파는 일은 썩 전망이 좋은 일이었다. 그는 '멍청한 미국 놈들'이나 '약삭빠르고 제 잇속만 챙기는 도시에 사는 한인들'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것도 없는 들을 일구고 우물을 판다.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한국 사람은 말야,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야.
그의 이런 생각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이웃의 폴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독교에 심취해 있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는 무지가 낳은 인종차별 발언을 쉽사리 내뱉는다. 우물을 찾아달라고 사람을 불렀더니 나뭇가지로 물을 찾겠단다. 명석한 제이콥으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그러나 삶은 뛰어난 머리 계산만으로 꾸려 나가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뿌리 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제이콥의 가정에는 혼란과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물고 날아올 사람이 필요했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다.
4.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순자
어린 데이빗이 보기에 순자는 할머니답지 않은 할머니다. 맛있는 쿠키를 굽기는커녕, 요리는 통 할 줄 모르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화투 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남자아이인 자기를 '프리티 보이'라고 하질 않나, 밤새 오줌을 좀 쌌기로서니 고추가 망가졌다고 '딩동 브로큰'이라고 하질 않나. 그녀가 그에게 건네는 것은 달콤한 케이크가 아니라 쓰고 고약하기 짝이 없는 한약이다.
데이빗은 생각한다. 이런 할머니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정도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그 사정은 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자란 두 아이에게 지극히 한국적인 '순자'는 너무나 낯설다. 이 할머니라는 존재는 당최 납득이 안 간다. 그래서 처절하게 저항한다. 나는 할머니가 싫어요!
"아팠을 텐데도 잘 참아냈구나. 스트롱 보이네, 스트롱 보이!"
앤과 데이빗에게 순자는 '틀'을 깨는 사람이다. 미국 할머니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스스럼없이 하고, 엄마(모니카)라면 하지 말라고 했을 일을 해도 좋다고 한다. 합리적이지 않다. 전통적이며 감성적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한 그들에게 순자의 모든 행각은 낯설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순자에게 물들어 간다.
순자는 '아이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라며 심장이 아픈 데이빗에게 뛰어도 좋다고 말한다. 만약 뛰기 힘들다면 걸어가자고 한다. 다친 아이에게 너는 연약하고 아픈 아이라고 하지 않고, 그 아픔을 이겨냈으니 강한 아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데이빗은 언제든 죽을지 모르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더없이 착하고 강한 아이다.
그녀가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는 이성과 합리로는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데이빗은 그녀의 비합리적인 믿음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견고해진다. '스트롱 보이'이라는 순자의 말은 주술처럼 힘을 입어 데이빗을 강하게 만든다.
제이콥 가족은 순자의 등장을 시작으로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현대적인/도시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그들의 견고한 믿음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땅에든 사람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광신도처럼 보이는 폴에게서 숭고한 지지를 얻고, 안 맞는 옷 같던 교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제이콥은 농작물 판매처를 찾았고, 데이빗은 심장 건강이 더 좋아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들의 삶은 좋을 것만 같다.
4. 인생은 새옹지마라
운명의 장난일까. 제이콥 가족이 꿈에 그리던 '온전한 자립'에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운명의 주사위는 그들을 두 발짝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나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은 야속하기만 하다. 데이빗의 몸이 좋아졌는데 순자는 뇌졸중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한다. 농작물이 훌륭히 자랐으나 부부간의 감정의 골도 자라났다. 기껏 한국 농작물을 팔 거래처를 찾았는데, 바로 그날, 자식같이 기른 농작물들은 한 번의 화재로 불 타 사라진다.
영화는 단순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으면 그 너머에는 다시 좋은 일이 있다. 흔히 아메리칸드림하면 떠올리는 성공 신화와는 썩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파도치는 삶의 곡선 속에서 관객들은 제이콥 가족의 삶이 마냥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불행의 순간은 언제나 닥쳐오지만 그 너머에는 다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므로.
뱀이 나온다는 수풀 사이에 발견한 샘에서는 순자가 한국 땅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밭을 이루었다. 제이콥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미나리. 그토록 근사하게 자란 농작물들이 불타 사라진 후 남은 것도 바로 그 미나리였다. 제이콥이 데이빗과 미나리를 캐러 가며 '할머니가 참 좋은 자리를 찾으셨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그간 품고 있던 고집을 버리고 그가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한 세계를 수용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한 발짝 더 성장할 것임을 알게 해 준다.
5. 시련의 극복을 통한 성장 서사
다시 말하자면 이 한 편의 영화는 지독한 시련을 통해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구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련은 뼈 아프나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혹은, 성장을 확인하게 한다. 제이콥은 애지중지 기른 작물들이 모두 불타는 그 헛간에서 비로소 모니카를 구한다. 자식 부부의 한 해 수확을 모두 불타게 한 자신을 자책하여 물가로 향하는 순자를 불러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앤과 데이빗이다.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에 가요.'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하던 데이빗은 할머니를 향해 달려간다. 손을 내민다.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한다던 자신에게 할머니 순자가 기꺼이 손을 내밀어줬던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서사들을 통해 '쓸모를 증명하고자' 했던 제이콥 가족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쓸모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의 뿌리내리기는 여전히 때론 즐겁고, 때론 고달플 것이다. 그러나 예전만큼 처절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으리라.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처럼 그들의 삶 속에는 푸른 미나리가 밭을 이루고 있을 것이므로.
+) 알면 재미있는 기독교적 관람 포인트
1. 제이콥은 히브리어로는 '야곱'이다. 약삭빠른 야곱은 신의 사자와 씨름을 하여 신의 인도와 번영된 삶(땅)을 약속받았다.
2. 데이빗은 히브리어로 '다윗'이다. 소년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인과 싸워 이겼고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SYNOPSIS.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POINT.
✔ 통찰력 있는 작가 장강명의 동명 소설 원작이자,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등 결이 뚜렷한 감성을 가진 장건재 감독 작품
✔ 믿고 보는 배우 고아성을 비롯해, 하나하나 빛나는 배우들이 현실감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영화
✔ 한국 사회에서 입시와 취업 준비를 차곡차곡 거쳐 직장인이 된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작품, 누군가와 같이 보고 나와서 함께 대화하면서 더욱 풍성해질 영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남들이 다 이렇게 살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 정말이지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
출퇴근 시간 9호선에 오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9호선을 타면 좀더 빨라도 다른 노선을 이용하던 시절을 지나, 이사 갈 동네를 고를 때 9호선 라인을 피해 이사를 했음에도, 어쩌다 출퇴근 시간에 9호선을 이용해야 하는 날은 마음의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내가 사방이 탁 트이고 초록빛인 시골에서 자라서 더 그런 건가? 남들은 정말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살아지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누구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힘들기야 하지만, 그걸 그냥 일시적인 몸의 힘듦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 영혼 어딘가가 덜그럭거리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뉜다는 걸. 그리고 이런 기준선이 9호선 말고도 너무 많다. 계나가 코트 안에 꼬박꼬박 받쳐 입는 경량 패딩이 한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이자 원작에서 "농담이 아니라 매일 동상의 위기를 겪었다"고 언급되는 이 극단적 날씨, 과장님이 마음대로 골라버린 동태찌개가 자연스럽게 4인분 주문되어도 따라야만 하는 것, 매뉴얼에 따라 업체를 선정할 것이냐 작년 업체를 무조건 고르라는 상사의 말을 들어야만 하나 싶은 순간...
이 모든 기준선에서 우리는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그럭저럭 눈 딱 감고 넘길 만한 것이, 누군가에겐 도저히 넘길 수 없는 것이 된다. 후자의 사람들은 한번쯤 눈을 돌린다. 트랙에서 벗어난 삶을 그려본다. 결국 수많은 기준선들은 하나로 귀결된다. 제때 입시를 치르고 제때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제때 결혼을 하는 삶, 거기서 어긋나면 나이에 따라 결이 다른 말을 듣게 되는 삶, 그 정해진 트랙 밖의 삶을 상상하고 실현에 옮긴 적이 있는지 아닌지.
<한국이 싫어서>는 얼핏 한국에서의 삶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 계나(고아성 분)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겪는 실낱 같은 기준선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그는 떠난다. 뉴질랜드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사실 계나가 한국을 떠나게 만든 이유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계나와 같은 선택은 한국에서 크게 지지받지 못한다. 계나 어머니의 말마따나 그만하면 책임감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 계나의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 또한, 한국에서 정해진 트랙을 차곡차곡 쌓아 왔고 앞으로도 쌓아갈 시간의 안정감을 이야기하며 계나를 말리려 한다. 계나는 자신을 무슨 외국 병 걸린 취급하냐며, 자신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명과 같은 사람의 시각에서 계나의 선택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계나가 내린 선택의 시간을, 몇 개 장면만으로도 손쉽게 관객에게 다가오게 만든다. 하필 추운 날씨, 겨울이라 해도 뜨기 전부터 달려야만 하는 출근길 장면 하나만 보아도. 길지 않은 사무실 장면,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의 몇몇 장면만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물 위의 오리인지 백조인지처럼 발을 버둥거려야 하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뿌듯한 노력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맞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원작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계나의 선택은 더욱 더 드세고 유난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기억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실제로 그 시절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친구들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낙원을 꿈 꾸며 도망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튼 지금 있는 곳을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일단 벗어나 보겠다고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도망이다. 배가 불러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그게 뭐요. 새로운 시작점은 있을 수 있다. 영화는 그 지점을 콕 짚지 않음으로써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쉽게만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영화의 빼어난 점 중 하나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계나뿐 아니라 다소 수상쩍고 가까이 해도 될지 의심스러운 몰골로 등장하는 재인(주종혁 분), 뉴질랜드 정착 지원으로 먹고 사는 태은(김지영 분)과 상우(박성일 분) 부부, 계나와 가치관의 차이가 분명한 지명이나 엄마(오민애 분), 성실하게 사는 계나와 다소 대비되는 삶으로 영화에 들어오는 미나(김뜻돌 분) 등... 어느 인물을 보아도 다정하고 섬세한 시선이 얹혀 있다. 위치의 차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만으로 남을 빌런 취급하기 너무 쉬운 시대의 현실에서, 이런 시선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엄마가 계나에게 원하는 행복과 계나가 생각한 행복은 다르고, 지명이 계나와 그리고 싶었던 삶과 계나가 추구하는 삶은 분명 다르지만, 엄마나 지명의 방식을 영화는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성실한 직장인 계나와 집에서 노는 미나 느낌으로 보여지지 않게, 미나와 계나가 함께하는 시간이나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이 미나를 알아가게 한다. 혹시나 유려한 말 솜씨로 계나를 등쳐먹을까봐 불안한 눈으로 지켜본 태은과 상우 부부는 그냥 계나와 좋은 파트너였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 계나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각자의 고민이 있다는 것을, 교차 편집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서 펼쳐 보여준다.
하긴 그렇다. 누구도 쉽게 사는 사람은 없고, 각자 몫의 고민이 있지. 산다는 건 나와 다른, 그렇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닌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고 어우러지고 그렇게 만나고 또 헤어지는 것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이 더없이 자연스러워 마음에 들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고아성이 연기하는 계나의 모습은 점차로 변해간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내려 묶고 적당한 오피스룩에 코트 차림으로 추워 보였던 한국에서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화장이나 태닝, 입은 옷으로 계나의 적응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계나의 삶은 점차로 달라져 가고, 교차 편집 속에서도 계나의 시간을 가늠해볼 수 있어, 마치 계나의 여정을 함께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 순간의 온도가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 부당한 일에 맞서 주는 친구도 생기고 함께 달려간 바다에서 모래에 꼼질꼼질 발가락을 묻는 순간은 분명 따끈따끈하다. 뉴질랜드에 막 도착한 계나가 야자나무를 바라볼 때, 낯선 나무를 낯선 바람이 스치는 낯선 소리가 날 때는 조금 스산하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찾아오거나 가족과 영상 통화가 갑자기 끊긴 후 뺨에 흐르는 눈물은 분명 차가운 쪽일 것이다. 더 차갑고 안타까운 눈물 또한 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그러나 계나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 지금 선 곳의 지축이 뒤흔들려도 또 나아갈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흔들려도 자신의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를 알고 또 일어날 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끝나고 나서 다시 시작되는 영화였다. 보고 나오자마자 친구에게 물었다. 계나가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면서, 떠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러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도 꽤나 트랙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데, 이제 이렇게 짚어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는 걸. 모든 선택이 그렇듯 득과 실이 있지만, 지금 삶에서 주어지는 선택들이 좋아서 트랙 속의 안온한 행복이 크게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계나와 꽤나 닮은 인생들 같았다. 우리는 이제 트랙에서 이렇게나 멀어졌는데, 계나는 지금쯤 어디쯤에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더 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들이키는 기쁨만큼은 분명히 계나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토록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영화는, 영화로만 볼 수가 없다. <한국이 싫어서>를 본 후에 옆 사람과 꼭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들을 되짚어보기 대국민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각자의 행복을 조금씩 더 찾아가길, 너무 춥지 않길 바라게 된다. 따뜻한 영화였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
- 어떤 의미에서든 절반의 성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무기 ‘텐 링즈’의 힘을 이용해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더 강한 권력을 쫓아온 '웬 우(양자 위)'.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버지 웬 우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을 받아온 '샹치(시무 리우)'는 어느 날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도망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도 없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버지의 테러 조직 텐 링즈의 습격을 받은 후 그의 야욕이 자신은 물론 동생 '샹리(장멍얼)'에게까지 미친 것을 눈치챈 샹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머니 '장 리(진법랍)'의 고향이자 신비의 마을인 탈로로 향한다.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힘과 관련해 이모 '장 난(양자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샹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거이자 두려움인 아버지 웬 우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에서 <블랙 위도우> 다음으로 개봉한 두 번째 영화다.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 중인 드라마를 포함하면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다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페이즈 4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나온 영화와 드라마들이 어디까지나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의 부록이었던 것에 비해, <샹치>는 <캡틴 마블> 이후 2년 만에 마블이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인 만큼 페이즈 4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선을 보인 샹치라는 캐릭터는 물론 그와 텐 링즈를 중심으로 암시되는 MCU의 미래 모두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샹치라는 새로운 히어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액션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전반에는 <와호장룡>이나 <살파랑>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국 무협 영화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합을 맞춰서 마치 하나의 춤을 추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액션을 원테이크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 안에서 웬 우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장 난 혹은 장 리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이 이루는 대조, 즉 상이한 액션 스타일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일례로 웬우와 장 리의 대련은 사랑의 시작을, 웬우와 샹치의 대결은 부자의 갈등과 화합 등을 격한 춤에 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단지 중국의 전통을 오마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재해석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대마무 숲에서 펼쳐지는 웬 우와 장 리의 맞대결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마카오 고층 빌딩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가건물에서 샹치와 샤링이 텐 링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는 것은 대나무 숲이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동양인 히어로를 21세기에 소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간 마블 영화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스펙터클로 무장한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무기인 텐 링즈의 활용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 존재감은 토르의 묠니르 혹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비견될만하다. 이에 더해 동양 판타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과 그에 맞대응하는 존재인 서양의 악마적 존재가 펼치는 대결은 같은 디즈니 작품이자 동양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연상시키면서 마치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문제는 영화가 새로운 히어로를 소개하는 두 번째 방식에 있다. 영웅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샹치라는 캐릭터는 결코 MCU에 안착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샹치는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 죽이기 신화의 전형을 따른다.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의 뜻과 철학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를 꺾어야 한다. 실제로 샹치에게 웬 우는 그의 모든 기술, 힘과 뜻을 전수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아들에게 강제하는 두려운 존재다. 이때 샹치는 아버지를 꺾는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도 알려주었지만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르침으로 그를 설득하려 한다. 그래서 텐 링즈를 이용해 파괴적인 전투를 벌이는 웬 우 앞에서 샹치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대방까지 포용하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이 부자 관계는 사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아이언 맨> 속 토니 스타크와 하워드 스타크, <토르> 시리즈 속 오딘과 로키의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익숙하다. 그래서 영화는 샹치-웬 우의 관계에 역사, 사회적 맥락을 덧붙이며 단순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한다. 그 중심에는 샹치의 조력자인 샹리와 케이티가 있다. 예를 들어 샹치의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거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오빠가 받는 교육도 공식적으로 허락받지 못했던 샹리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웬 우-샹치의 부자 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버지 죽이기 신화를 변주하는 셈이다. 이 상징성은 마카오에서 거대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그녀가 아버지의 제국을 차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것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으며, 두 번째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면 더욱 확실해진다.
한편 샹치의 절친인 케이티는 중국계 미국인(넓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초반부에 카메라는 중국말을 쓰고 중국 전통대로 생활하는 할머니, 미국인이고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고방식은 중국인인 어머니, 그리고 외관만 동양인일 뿐 보통의 미국 사람인 케이티 간의 갈등을 비춘다. 웬 우 - 샹치의 부자 관계를 성공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 부모 세대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자녀 세대의 대립, 가정과 사회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의 이야기로 간략하게나마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 배경인 샌프란시스코가 골드러시와 미국 대륙 횡단 철도 공사의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첫 번째 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샹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아픔을 다룬 <블랙 팬서>와 궤를 같이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샹치, 샹리, 케이티가 각각 뜻하는 아버지 죽이기 이야기가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케이티의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들과 하나로 연결시키기에는 감정적 유대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인공 일행의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서사를 굳이 함께 붙여 놓을 공통분모가 부족하고, 케이티의 이야기는 중반부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겉도는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웬 우의 가족사나 텐 링즈의 역사에 관한 정보가 굉장히 단편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플래시 백의 형태로 이들의 과거사가 등장하다 보니 샹치나 샹리가 아버지를 기필코 막아 세우려고 하는 동기나 각오는 머리로 이해되는 선에서만 머무를 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는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 차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만다린의 존재와 텐 링즈라는 테러집단은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암시가 되었던 존재이기에 이처럼 빈약한 묘사는 팬들의 호기심과 갈증을 모두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곧 양조위의 웬 우, 만다린이라는 빌런의 존재감이 히어로인 샹치를 넘어설 정도로 뛰어나게 느껴지는 이유로 이어진다. 부족한 감정적 유대와 가족사를 대신해 배우의 존재, 그의 카리스마와 여유로운 분위기만이 영화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샹치에게 향해야 할 삼중의 서사로 쌓아 올린 스포트라이트마저 자연히 빌런에게 쏠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샹치의 데뷔전은 데뷔 자체로만 만족해야 하는 애매한 성공에 머무른다.
이에 더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확장되는 MCU의 세계관 역시 절반만 성공적이다. 물론 MCU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아이언맨 3>에서 가짜 만다린으로 등장했던 '트레버 슬래터리(벤 킹슬리)'의 재등장이 대표적이다. 반쯤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이미 각인된 이 캐릭터는 전개 상의 구멍을 피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곤경에 처한 샹치 일행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적재적소에 제공한다거나, 자칫 작위적이나 편의적인 전개로 보일 수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모든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MCU 특유의 유머 역시 예상외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일부 캐릭터들의 변심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 4의 기반을 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텐 링즈라는 무기가 수천 년 간 존재했고 만다린이 천 년간 늙지 않았다는 점, 또 만다린의 존재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본작의 의문점들을 일부러 해결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마블의 다음 영화인 <이터널스>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 문명의 숨은 전파자이자 수호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복선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후반부에 장르가 히어로 영화에서 괴수물로 급격히 변하면서 히어로와 빌런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괴리감을 안기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급전개는 최근에 큰 화제를 모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멀티버스와 우주로의 세계관 확장을 염두에 둔 전개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여 년 전 복선 뿌리기에 급급하던 마블처럼 텐 링즈를 인피니티 스톤처럼 활용한 결과 이번에도 단독 영화의 완성도에 큰 부담을 안기는 셈이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로서도, 시리즈의 한 부속으로서도 뚜렷한 명암을 보여준 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데뷔전을 마무리한다.
A(Acceptable, 무난함)
아직은 안갯속에 쌓여 있는 샹치와 마블의 미래
-
- 블랙팬서의 죽음 이후 과연 매력적인 영웅이 탄생했을까
?Rabbitgumi 입니다!
채드윅 보스만의 죽음으로 영화 블랙팬서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1편에서 겨우 세팅이 되었는데, 다시 2편에서 재세팅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번에 2편이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영화가 마블 페이즈4의 마지막 영화에요.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던 영화였죠.
마블 페이즈4가 스파이더맨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고만고만 했거든요.
이번에 개봉한 블랙팬서도 아주 좋다고 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나쁘지 않은 영화인건 분명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체 리뷰를 참고해주세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영상에서 알려드릴게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사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아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링크를 통해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브런치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
-
- 영화 <베네데타> 리뷰 예고편
성혼과 그리스도의 심장 교환,신과의 결혼 등 종교적이고 에로틱한 무아경으로 신비주의로 추앙 받으며 수녀원장에 오른 베네데타. 수녀원에 들어온 바톨로메아라는 처녀와의 사랑이 교회에 적발되면서 한 순간에 불경한 창녀로 매도되는데..
-
- 왓챠 <시바 베이비> 메인 예고편
유대인 전통 장례식 '시바'에 강제로 끌려온 대니얼. 친척들에게 남친 유무, 취엽 여부 등 질문 폭격을 당하는 와중에, 평생의 비대상 마야, 스폰남 맥스, 그리고 그의 아내까지 마주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