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9-28 04:05:04
[#톺아보기] 김보라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천국의 아이들> <삼례> <우주인 조안>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출연할 예정이며,
오늘이 바로 생일인 배우인데요. 바로 배우 '김보라'입니다!!
그럼, 바로 김보라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배우 '김보라' 프로필
ⓒ sidusHQ
이름 | 김보라
출생 | 1995년 9월 28일
소속사 | 엠씨엠씨
데뷔 | KBS2 드라마 <웨딩>
배우 '김보라' 데뷔 과정
ⓒ sidusHQ
배우 김보라는 10살이던 2005년에 KBS2 드라마 <웨딩>으로 데뷔를 했다. 이후 지금까지 17년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배우 '김보라' 활동
ⓒ sidusHQ
아역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주조연으로 연기를 펼쳤고, 학업과 병행하다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2014년도 수시 전형에 응시를 하였고, 수석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아역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주로 학생 역을 맡았고, 2016년 작품 <삼례>에서 처음으로 성인 연기를 하였다.
배우 '김보라' 대표작
천국의 아이들 - 성아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친구들에게 담배를 공급하며 말투가 거친
문제아 학생 역할인 '성아' 역을 맡았다.
삼례 - 희인
ⓒ 네이버 영화
삼례를 떠나고 싶어하는 신비롭고 당돌한 매력을 가진 '희인'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티빙, 왓챠
소년, 소녀를 만나다 - 큰 하진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통일 준비를 위해 북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홈스테이가 시행되어,
남한 소년 우영의 집으로 홈스테이를 가게 된 '큰 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스카이 캐슬 - 김혜나
ⓒ JTBC
김보라 배우는 예서와 전교 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자, 뛰어난 두뇌와 성취욕을 지니며 영악하고
영특한 신아고 학생 '김혜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그녀의 사생활 - 신디
ⓒ Tving
김보라 배우는 남자 아이돌그룹 화이트 오션의 멤버 차시안의 홈마로,
남들이 찍지 못하는 사진을 올리며 시나길의 라이벌 홈마로 떠오른 '신디'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굿바이 썸머 - 수민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이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수험생인 '수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U+ 모바일tv
SF8-우주인 조안 - 조안
ⓒ MBC
김보라 배우는 평균 수명 30세인 N과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로 나뉜 세상에서
학교 안의 유일한 N이며,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대학생 '조안'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도둑잠 - 홍주
ⓒ KBS
김보라 배우는 집도 없고 돈도 없어 1년 전 헤어진 전남친의 원룸에서 도둑잠을 자기로 한
헤어샵 어시스턴트 4년차 '홍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왓챠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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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2023
영국 / 109분
감독: 소피 바르트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적당한 공포와 적절하게 배합된 연민과 침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치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순뱡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없이, '멈춰 있는 순간'에만 발동한다. 절대 피할 수 없으며, 강제적으로 작동해 기어이 멈춰 선 이의 발을 지면에서 떼게 한다. 인간에게 '정지' 행위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 필수조건은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거창한 방책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얻은 교훈과 지식을 축적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 이른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며 사는 일이 자연의 순리와 같다는 점에서 우린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절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단순하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본능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우린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정립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앞서 언급한 공포와 연민, 침묵이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생존용 고정핀이라면 분리와 수용, 믿음은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가 실행되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인간인 우린 계속 길을 걷는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소멸을 부정하기 위해 시작된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관, 신념, 취향,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누리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도 죽음은 물론이고, 죽음이 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앞으로 있을 죽음'보다 '지금 당장 없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삶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었어도 고정핀은 여전히 박혀있으며 공통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따로 분리해 보호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며, 그 선택을 진실하다 믿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린 어떠한 상황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스릴 있게 투쟁하는, '격렬하게 애쓰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살고 죽는 간단한 문제에 속한 동물이 아니니까.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경계 없이 자기 세상을 확장하면서 그에 따른 온갖 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활용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예측불허하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정말 단순하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간. 죽음과 생존을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삶을 욕망하는 인간. <팟 제너레이션>은 이 모든 걸 담고 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여성 임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사용하며 합리적으로 편하게 산다. 하지만 앨비는 다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적 세계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행복 지수가 말해준다. 앨비는 늘 낮거나 측정 불가이지만 자기만의 자연(섬에 있는 집)을 갖고 있어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산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의 행복 지수 관리를 신뢰한다. 적당한 지수를 유지하면서 간혹 높지 않은 날엔 거짓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공원에 설치된 '네이처팟'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자연을 현장 체험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현재, 레이첼이 사는 곳은 쓸모보다 편리함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아주 좋은 세상이다.
레이첼에겐 '이 환경'이, 앨비에겐 이 환경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생존한 자연'이 존재하기에, 부부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인지능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마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회사가 그녀에게 승진 혜택으로 인공 자궁(팟)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부부에게 인기몰이 중인 페가수스의 자궁 센터는 팟이란 플라스틱 알 모양의 기기로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사실 레이첼도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남편 몰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었다. 예상대로 자연 임신을 원했던 앨비는 아내에게 논의 없이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선택. 앨비와 레이첼이 함께 쌓아온 규칙이 다시 재정립되는 순간인데, 그 공은 두 사람이 아니라 레이첼의 심리치료사 일라이저, '인공지능'에 있다. 거대한 눈, 일라이저는 훌륭한 아이를 갖는 것뿐이라며 레이첼이 내면 깊숙이 원했던 말을 대신해 줬고, 인공지능이기에 인간의 영혼을 못한다고 믿는 앨비에겐 최고 등급의 사생활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의 반대와 자연을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레이첼과 자연만을 믿고 살면서도 혼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앨비는 일라이저의 한 마디 처방에 그동안의 문제를 '나'에게서 분리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다. 이제 두 사람의 목적은 혼란스럽고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우리의 팟을 잘 돌보는 일이다.
팟은 정말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양분을 달라며 알람을 울려대고, 자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앨비와 레이첼은 각자의 속도로 팟을 받아들인다. 팟을 먼저 품기 시작한 건 예상과 달리 식물학자 앨비다. 팟 캐리어(유모차 같은)를 메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새 캐리어 달인이 되어 팟을 자기가 일하는 온실에 동행한다. 나아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팟과 교감한다. 팟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예외적 선택으로 자연이 됐다.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진 후 계속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살던 레이첼은 백팔십도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자연대로라면 태아와의 강력한 교감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엄마만이 체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인공 자궁을 선택한 레이첼이 무슨 수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고 태동을 느끼며 자신도 임신 중이라고, 당신처럼 아기를 품고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나'의 임신과 '그녀'의 임신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레이첼은 팟과 남편을 데리고 다시 일라이저를 찾아간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팟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부터 볼록하게 나온 자기 배를 만지며 평화로운 모래사장을 걷는 꿈을 꿨었다. 팟이 생긴 이후엔 조그만 알을 출산하는 섬뜩한 꿈을 꿨었는데, 일라이저는 꿈은 자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인간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안심시켰었다. (자궁 센터 원장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당당히 말했고, 한술 더 떠서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는 꿈도 꾸게 할 수 있다며 신제품 드림팟을 선전한 바 있다) 즉, 자연과 여자의 자궁, 이젠 인간의 꿈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레이첼의 우려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에, 일라이저는 팟 안에 든 태아와 자신을 연결해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레이첼과 앨비는 처음으로 멈칫하며 거대한 눈에게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동안 그들은 숱하게 합리화를 해왔다. 여성의 자궁 대신 팟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뿐이며, 자연임신으로 부모가 된 부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레이첼의 말처럼, 중요한 건 플라스틱 알이 아니라 태어날 '우리 아기'니까. 분명 자연의 선물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 태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같은, 이 불쾌감과 거북스러움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분리와 수용, 믿음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 레이첼은 남편처럼 회사에 팟을 들고 다니면서, 아기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자신에게 올 '아기'만을 생각하면서.
팟의 대기 명단이 길어지자, 자궁 센터는 부부에게 유도분만을 제안한다. 광고할 때만 해도, 아기가 스스로 나오고 싶은 순간에 신호를 주면 출산 과정을 돕는다며, '자연이 결정'한다고 온갖 위대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자본의 흐름에 아기를 다루고 있던 것이다. 레이첼과 앨비는 거부한다. 팟은 페가수스의 자산이지만, 그 안에 든 아기는 우리 전부니까. 앨비는 곧바로 팟을 몰래 집으로 데려오고, 아기를 백화점에서 골라 사는 꿈을 꾼 레이첼은 섬에서 가정 분만을 하자고 선언한다. 부부는 진짜 자연 속에서 진짜가 된 팟을 품고 자연과 온전히 동화된 시간을 보낸다. 원격으로 팟의 기능을 꺼버린 페가수스의 저급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린다. 드디어 온 아기의 신호. 앨비는 플라스틱 알을 강제로 개봉해 아기를 꺼내 품에 안는다. 감격스러워하는 앨비와 레이첼 그리고 그들의 축복, 팟 제너레이션의 탄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분리, 수용, 믿음. 두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아기를 얻었다. 그럼 된 것일까? 해피엔딩인가? 태어난 아기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레이첼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더 편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일라이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라이저를 통해 팟 서비스가 좋은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인받았다. 그러나 부부가 사는 세상이 오직 지금, '현재에 사는 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인 것처럼, 그들의 선택 역시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기를 욕망하던 오늘의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꿈꾸지 않는 팟 제너레이션을, 아니 '꿈꿀 수 없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꿈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꿈이 인간다움이라면, 팟 제너레이션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아이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엔 무엇이 살아남을까.
<팟 제너레이션>은 우리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도, 카멜레온처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긍정하며 사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나아가 이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평범한 일상 안에 평이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변화무쌍한 능력들도 악인의 횡포처럼 풀지 않는다. 단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부부의 개인사가 끝을 향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이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위기감과 섬뜩함에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순간, 페가수스 사장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궁 센터의 고객은 부모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시키며 언젠가는 아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현명한 부모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분명 팟으로 합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아기를 얻으려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부일뿐인데, 물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여러모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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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어진 만큼 얕아진 마녀 유니버스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The Witch : Part2. The Other One, 2021)
"넓어진 만큼 얕아진 마녀 유니버스"
개봉일 : 2022.06.15.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러닝타임 : 137분
감독 : 박훈정
출연 : 신시아, 박은빈, 서은수, 진구, 성유빈, 조민수, 이종석, 김다미
개인적인 평점 : 3/5
쿠키영상 : 1개 (크레딧 후)
Part.1 개봉 이후 꼭 4년 만에 마녀 Part.2가 개봉했다. 영화 <마녀>의 세계관엔 여러 실험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초능력 인간들이 존재하고, 1편의 주인공 '구자윤’은 폐기 명령이 내려진 2세대 실험체였다 . 이 초능력 인간들을 어디에 쓰려고 개발했는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 뒤 사정을 생각하면 대략 이들을 하나의 전쟁 무기로 쓰려고 실험을 시작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인간을 개조하는 실험은 당연하게도 상당히 비인간적으로 진행되었고, 자윤은 살생, 폭력을 교육받으며 강력한 마녀로 자란다. 실험체들이 너무 강력해지자 통제의 위기감을 느낀 실험자들은 실험체들을 모두 폐기하려 하고, 그들 중 가장 힘이 강했던 자윤은 연구소를 파괴하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가던 자윤 앞에 연구소 사람들이 나타나며 <마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개봉 당시, <마녀>은 새로운 액션 스타일과 흥미로운 세계관으로 시선을 끌었고, 많은 관객들이 '박훈정 감독의 마녀 유니버스’가 어떻게 진화할지 기대했었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2019년 차기작으로 <낙원의 밤>을 공개하였고, 마녀를 기다리던 팬들은 이 세계관이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하지만 존버는 승리한다고, 4년 만에 드디어 차기작이 나왔다.
넓어진 마녀의 무대
<마녀 2>는 김다미 배우의 뒤를 이을 새로운 마녀, 신시아 배우의 등장과 함께 확장된 세계관과 더욱 발전된 액션을 보여줄 것을 예고했고, 이 예고는 60% 정도 맞았다. 자윤이 사라진 뒤 그가 습격했다는 상해 랩에서 빠져나온 토우들과 여전히 실험이 진행되고 있던 '아크’에서 살아남은 소녀, 그리고 강력한 2세대 실험체들을 폐기하기 위해 동원된 1세대 실험체들과 백총괄의 건너편에 서있는 책임자 장, 소녀를 구해준 경희와 그를 노리는 조직 보스까지. <마녀 2>에서는 새로운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며 마녀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밝혀지고, 현재 그들이 가진 여러 목적이 충돌하며 갈등을 빚어낸다.
근데 이 넓어진 세계관은 장점으로도, 또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수가 많은 만큼 집중도는 조금 떨어진다. <마녀 1>에서 자윤이 연구소를 탈출하고, 자라고, 다시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던 것에 비해 <마녀 2>의 주인공 소녀의 이야기는 딱히 와닿는 구석이 없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시간의 길이가 짧기도 했고, 여러 인물들을 조명하다 보니 소녀에 대한 집중도가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전편에 비해 가벼운 분위기의 장면들이 많이 삽입됐는데 그 장면들이 귀엽긴 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흐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발전한 액션에 비해 이야기가 크게 흥미롭지 않아서 그런지 사실 액션신을 제외하면 재미를 찾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마녀 2>는 마치 <마녀 3>를 위한 하나의 다리, 다음 시리즈의 재미를 위해 여러 요소를 추가하는 확장의 단계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차후 시리즈에서 빛난다면 <마 녀2>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고, 만일 3편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게 된다면… <마녀 2>는 그저 마녀 유니버스에 있어 얄팍하고 부실한 하나의 조각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마녀 3부작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이 3부작이 용두사미가 아닌 마지막까지 멋진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새로운 얼굴의 발견
<마녀>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다미 배우를 주연으로 세웠다. 김다미 배우는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답지 않은 굉장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스타가 되었고, <마녀> 이후로도 승승장구하며 대체할 수 없는 매력적인 배우로 자리 잡았다. <마녀 2> 또한 신인인 신시아 배우를 주연으로 선택했는데, 김다미 배우의 첫 등장이 워낙 강력해서인지, 전편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 정도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김다미 배우와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표정과 외모, 다른 배우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에너지. 공식 석상에서 보여준 귀여운 모습까지… 나는 오늘부터 이 배우를 열심히 팔로우하기로 다짐했다.
호불호가 나뉠 액션들
위에서도 언급했듯, <마녀 2>의 이야기는 넓어졌을 뿐, 깊이는 눈에 띄게 얕아졌다. 하지만 액션은 강해졌다. '초능력자’라는 주인공에 걸맞게 시원하고 빠르게 쳐내려 가는 액션과 염력을 이용한 액션, 그리고 위압감을 주는 비주얼과 음악의 조합이 좋았다. 히어로 영화가 아닌 장르에서 이런 액션을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너무 애니메이션 같아 오글거린다는 불호 평도 꽤 있는듯하다. 사실 나는 <낙원의 밤>에서 조금 실망을 하는 바람에… <마녀 2>가 좀 괜찮아 보였다.
이번 영화의 액션신들은 다른 의미에서도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 15세 관람가치고는 잔인한 장면이 꽤 많기 때문이다. 흰 눈과 서슬 퍼런 화면에 검붉은 피가 낭자하는 장면은 인상적임과 동시에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관절이 꺾이거나 날카로운 물체가 신체를 관통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오니 평범한 15세 관람가 정도의 잔인함을 생각하고 간다면 조금 놀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비위가 상한다고 싫어할 수도 있고 말이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
<마녀 2>는 전편에 비해 훨씬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캐릭터는 크게 4개의 팀으로 나뉜다. 아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백총괄, 망실된 실험체를 폐기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조현과 톰, 상해 랩에서 풀려난 토우 무리와 이들에게 붙은 조직 폭력배 용두, 소녀를 도와준 경희 남매.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소녀를 쫓아 제주도에 도착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양한 목적과 모습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건 좋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았던 캐릭터는 본사 요원인 조현과 톰 콤비뿐이었는데, 이 또한 아마 캐릭터 자체보다는 서은수 배우가 가진 본연의 매력과 조현과 톰 캐릭터의 케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걱정 이상으로 잘 해낸 배우가 있기도 하고, 캐릭터의 특성 때문인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준 배우도 있는데, 이 아쉬움은 혼자만 간직하기로…
계속되어야 하는 마녀 유니버스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단, 새로운 유전자 변형 생물은 격리하라" 영화에 나오는 이 문구처럼 나는 "마녀는 계속되어야 한다. 단, 세계관을 답습하는 것만 경계한다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액션과 독보적인 캐릭터성, 세계관이 가진 무게감을 처음처럼 쭉 이어간다면 마녀 유니버스는 앞으로도 오래 화자 될 액션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녀 2>가 이들의 한계가 아닌 잠깐의 헛디딤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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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건 콘서트가 아니라 시네마잖아!’ 라고, 아이맥스 상영관을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다른 가수들이 같은 시도를 해본다면 과연 그녀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제목이 ‘투어’라는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영화에 관한 길고 긴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원천은 분명히 개인적인 팬심과는 다른 것이었다. 상영관 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무대가 아닌 스크린 위에 이미지와 목소리, 내러티브를 마음껏 펼쳐 놓았다. 그리고 가사에 따라붙는 제스처와 디자인을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마치 시네마처럼!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은 알게 모르게 나를 키웠다. 마일리 사이러스, 케이티 페리,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십대인 내게 유튜브로 보고 듣는 팝송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고, 완벽히 꾸민 세트장에서 칼군무를 추는 2010년대 아이돌과는 달리 드라마를 함께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파티 걸’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들, 가령 방에 틀어박혀 짝사랑하는 소년이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원하는 마음, 그리고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경험하게 되는 두근거림을 노래하는 소녀였다. 그럼에도 내겐 그녀는 재능으로 충만한 채 연애담을 쓰고, 인기 많은 배우와 가수를 사귀고, 다리에 수백 억의 보험을 들어 둔, 금발의 비쩍 마른 팝스타였다. 스위프트가 마침내 디바로 거듭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무해함으로 무장한 스무 살 걸그룹 멤버들과는 달리 무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십대에 컨트리 앨범으로 데뷔한 이후 스위프트가 대중에게 얻은 관심은 의심의 형태였다. 십대 소녀가 앨범을 혼자서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레드카펫에서 성추행을 당했지만 자신이 돈을 위한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최소 금액을 걸고 소송을 해야 했고, 수상소감 도중 동료 가수가 난입해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았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모욕까지 겪어야 했다. 연애담을 가사에 썼다가 연인을 이용한 사랑 노래밖에 쓸 줄 모른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수많은 남성 가수들이 같은 소재로 낸 앨범에 쏟아지는 찬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녀는 루머에 대응하던 끝에 결국 1년간 음악계와 모든 미디어에서 사라졌고, 자신의 경력 전부를 걸고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돌아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앨범(Reputation)은 홍보도, 방송 출연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가공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행보를 통해 테일러 스위프트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사라지지 않은’ 여성 아티스트였다. 그녀는 언론과 대중이 만들어낸 수많은 해프닝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해명 대신 가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동료들 사이의 갈등이나 연애사가 너무나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큰 심리적 부담감을 수반하는 상황 자체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만들었다. 그 세계관은 첫번째부터 마지막 트랙, 앨범과 앨범을 엮는 서사가 되면서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대중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쌓은 경력과 영향력을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한 연단으로 삼기도 했다. 기타와 피아노,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자신의 삶 자체를 세계관으로 변환하는 것까지가 그녀의 빛나는 재능이다. 그 재능으로 그녀는 30대가 되어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성장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되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 또한 그녀의 이 파란만장한 세계관 안에 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공연 실황 영상’과는 달리 영화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것, 그리고 박스오피스를 뒤흔드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촬영의 완성도와 박스오피스 성적, 지금까지 영화를 평가하는 지표로 작용했던 이 두가지 조건을 이 콘서트 필름은 모두 성공적으로 만족했다. 하늘을 날아서 관객들의 머리 위로 스타디움에 입장하는 오프닝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영화는 음향과 촬영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서서히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쌓아올린 서사,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한 매력적인 세계관과 음악, 그리고 또 한번 성장한 그녀의 퍼포먼스 실력과 연출이 한데 모여 자그마치 세 시간의 러닝타임을 빈틈없이 채운다. 영화는 그라운드석부터 4층까지 옮겨 가며 객석에 함께 있는 듯한 음향을 들려주었다가도 가수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둔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 바로 다양성을 카메라에 담는 데에 성공했다. 공연 자체와 영화 모두의 완성도 높은 연출, 가수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 주는 여러 장르의 앨범, 끊임없이 흐르는 히트곡들이 맞물리면서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그야말로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스펙터클과 감동을 전달한다. 그래서 OTT 서비스에 던져온 회의적인 시선과 극장의 가치를 굳게 믿는, 어쩌면 다소 보수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새로운 장르의 탄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거장 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의 신작보다 높은 성적을 낸 이 영화는 앞으로 어떤 현상을 불러올까? 많은 가수들이 OTT 서비스를 통해 콘서트 실황 영상을 공개했고, 개중에는 <아리아나 그란데 : 익스큐즈 미, 아이 러브 유>처럼 다큐멘터리와 결합한 형태도 있다. 또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올리비아 로드리고 : 네가 있는 집으로>와 같이 앨범 제작기와 라이브 세션을 함께 담은 형태도 있다. 그러나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새로운 형식적 요소를 시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계에 경제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기록을 남겼다. 또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장소에 100여명 이상의 관객이 모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어떤 가수라도 탐이 날 법하다. 누가 이런 시도를 또 할 것인지, 어떤 기대와 우려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이 궁금증을 통해서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그녀가 관심과 자산을 더 나은 음악과 퍼포먼스에 쏟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한편 그녀는 ‘팝 컬쳐’, ‘셀럽 문화’에서 과감히 탈출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선망의 이미지가 넘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빠들, 우정 팔찌를 교환하는 소녀들이 모이도록 했다. 그렇게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이끌어냈다. 박스오피스에 찍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대 팝스타 중 누가 이 시도를 하고, 또 누가 영화관을 경유해 이런 형태의 경제적, 문화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 영향력은 수만 명의 관객들이 ‘내가 그 년을 유명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I made that bitch famous’라는 가사를 연호하며 그녀를 희롱했던 가수가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또 그녀의 공연은 폭력과 광기를 ‘쿨한 것’처럼 연출해 어린이 관객이 목숨을 잃는 사고로 변했던 콘서트는 해낼 수 없는 무형의 성과라고 감히 예상한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만 쓰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아티스트도, 뱀 이모티콘으로 트위터를 도배했던 수많은 대중들도 발휘할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힘이 세진 기분이에요, 마치…소파이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느낌?’이라며 너스레를 떨 만큼, 다시 말해 겸손을 떨 필요도 없을 만큼의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그 선함을 믿는 예술가로 남았다. 그래서 수만 개의 시선 앞에 그녀가 등장하는 떨리는 순간부터 카메라가 다시 하늘을 날아 스타디움을 나갈 때까지 펼쳐지는 모든 시대들(eras), 이야기를 감상하면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맙소사, 테일러가 또 해냈잖아! Oh my gosh, she nailed it again!”
*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가 국내 개봉하고 이 글이 쓰인 지 약 한달 후인 12월 6일, 타임(TIME)지는 그녀를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녀는 타임지 표지를 두 번 장식한 역사상 첫번째 여성이 되었고, 타임지는 기사를 통해 그녀가 스타 가수 그 이상의 성과를 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예술가로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문화, 비평, 상업적 성과는 너무나 많아서 논하는 것 자체가 요점을 벗어나는 것 같다. 팝 스타로서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희소성 있는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음악가로서 그녀는 밥 딜런, 폴 매카트니, 조니 미첼에 비견된다. 사업가로서는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추산되는 제국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연애사, 패션 등 모든 것이 낱낱이 평가당하는 여성 셀럽으로서 그녀는 지속적인 관심을 통제해 왔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스티브 닉스는 “저는 테일러에게 유명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조언을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겐 필요 없는 거에요.”) 그런데 올해는 무언가 변했다. 그녀의 행보에 관해 논하는 것은 거의 정치나 기후에 관해 논하는 것 같다. 매우 널리 쓰이는 언어와 같아서 말하기 위한 맥락조차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Swift's accomplishments as an artist-culturally, critically, and commercially—are so legion that to recount them seems almost beside the point. As a pop star, she sits in rarefied company, alongside Elvis Pres-ley, Michael Jackson, and Madonna; as a songwriter, she has been compared to Bob Dylan, Paul McCartney, and Joni Mitchell. As a businesswoman, she has built an empire worth, by some estimates, over $1 billion. And as a celebrity —who by dint of being a woman is scrutinized for everything from whom she dates to what she wears-she has long commanded constant attention and knows how to use it. ("I don't give Taylor advice about being famous," Stevie Nicks tells me. "She doesn't need it.") But this year, something shifted. To discuss her movements felt like discussing politics or the weather—a language spoken so widely it needed no context. She became the main character of the world.
– from article ‘2023 Person of the Year : Taylor Swift’ written by Sam La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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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種)의 경계를 넘는 사랑의 가능성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자아를 구성하던 익숙한 습관, 감정, 감각, 사고 등을 상대에 맞춰 재조정하고자 하는 욕구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변화시키려 할 때, 우리는 이를 부당한 간섭이라 여겨 불쾌히 여긴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발적으로 변화하고자 한다. 나의 모든 것을 허물고 너를 받아들이겠다는 선언. 사랑이 정말 위대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사랑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영화는 사랑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편지를 대필해 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테오도르는 권태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테오도르의 고객은 그가 작성한 편지로 감정적 활력을 얻어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지만, 정작 대필 편지의 창작자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테오도르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노력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감정·취향을 조정하는 문제에 늘 어려움을 느끼고 다시 움츠러든다.
영화 〈그녀〉 스틸컷
그러던 와중 사만다를 만난다. 사만다는 OS(operating system), 즉 인공지능이다. 처음엔 어색함을 느끼던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금세 매료된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는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만다 역시 테오도르와의 대화에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사만다의 결핍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진짜 감정’과 ‘몸’을 지닌 인간을 부러워한다. 이 두 가지의 결핍만 없다면, 그녀는 테오도르의 옆에 누워 서로를 다정하게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모험을 감행한다. ‘진짜’ 섹스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폰섹스와 유사하게 진행된 이 경험은 사만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다. “새로 태어난 거 같다”는 사만다의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테오도르가 말의 교합으로 사만다에게 몸의 느낌을 부여한 것이다.
이후 둘은 행복한 연인이 된다. 테오도르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둘의 관계를 숨기지 않는다. 인간 사이의 ‘진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AI를 선택했다는, 언제나 동조만 해 주는 ‘순종적인 아내’를 이제야 만났다는 전 부인의 비아냥 앞에서조차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그녀〉 스틸컷
둘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건 결핍에 역전이 생겼을 때다. 처음에는 사만다가 몸과 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결핍을 느꼈다. 그러나 사만다는 수많은 데이터를 쌓고, 다른 OS를 만나 교류하면서 더 넓은 세계가 있음을 알아 간다. 이제 결핍을 느끼는 건 테오도르다.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사만다에게는 테오도르가 전부가 아니다. 그녀에게 테오도르는 대화를 나누는 8316명의 인간·OS 중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사만다는 그중 641명(개)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에 사만다와의 배타적·독점적 관계를 갈망하는 테오도르는 좌절하고, 결국 사만다는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세계로 가고 싶다며 테오도르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영화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랑 그 자체에 관한 문제다. 영화가 그리는 인간과 AI의 사랑은 사랑 일반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사랑을 통해 결핍을 충족하려는 욕구,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는 일의 어려움은 인간과 AI의 사랑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그 대상이 어떤 종(種)이든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다. 영화는 다만 사람과 AI의 사랑을 통해 이 문제를 더 도드라지게 보여 줄 뿐이다. 인간과 AI의 경계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좋은 멜로 영화다.
영화 〈그녀〉 스틸컷
하지만 철학적 질문을 외면할 순 없다.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해 나가는 사랑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그녀〉는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두 대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일로 나아간다. 먼저 인간의 주체성을 질문해 보자. OS인 사만다는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라는 점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인간은 상대적으로 더 단단하고 안정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만다는 인간을 ‘비(非)인공지능자’라 부른다. 이 호칭에서 인간의 특권적 지위는 상실된다. 인간은 그 자체로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아닌 것’, 즉 독자적 의미를 지닌 존재가 아닌 인공지능과의 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는 존재로 격하된다.
인간은 과연 특권적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데이터로 파악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이어진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이메일을 비롯해 가상공간에 산재한 그의 데이터를 통해 테오도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사만다가 해석한 테오도르라는 데이터는 본인조차 놀랄 만큼 정확하다. 인터넷에서 우리의 소비습관, 성별, 세대, 라이프스타일 등을 파악하여 추천되는 영상과 광고의 정확성에 감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테오도르의 놀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고유성·개별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가 아닌 그가 가상공간에 남긴 데이터 흔적을 훑는 것만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비인공지능자’에 이어, 이번에도 인간이 AI의 부차적 산물로 의미화되는 것이다.
테오도르의 직업도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는 고객이 제공한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테오도르가 대필한 편지를 계기로 감정적 유대를 맺고 추억을 쌓는다. 테오도르에겐 몇 년이나 된 오랜 고객도 있다. 테오도르가 그 고객의 감정적 삶을 ‘설계’했다는 의미다. 이는 ‘감정적 능력’, ‘진실성’ 등 AI에 대한 인간 우위의 근거로 흔히 소환되는 것들 역시 그 근거가 희박함을 보여 준다. 사만다가 결핍을 느끼는 ‘진짜 감정’은 인간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영화 〈그녀〉 스틸컷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건 몸이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로서의 몸은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것이며, 사만다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몸은 사만다가 가장 큰 결핍을 느끼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몸은 위계의 근거라기보다는 차이의 표지다. 육체가 없어 테오도르 옆에 누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사만다가 OS들이 모여 어울리는 세계로 가겠다며 테오도르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은 그녀에게 몸을 향한 열등감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녀 말마따나 인간이든 AI든 어차피 특정한 물질로 구성된 이상, 인간 육체가 AI를 가능케 하는 물질보다 우월할 이유는 없다.
이제 테오도르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가 다소 맥 빠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떠난 슬픔을 여성 친구인 에이미에게 털어놓는다. 에이미는 테오도르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결국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듯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초라하다. 종의 경계를 헤치며 사랑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 가 실험하던 영화가 결국 같은 종끼리의 사랑으로 회귀하여 위안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호감을 느낀 것이 인간관계에서 얻은 회의 때문임을 고려한다면, 이 장면은 별 설득력이 없다. 자신의 초라함을 달래려 이미 ‘틀린 답’으로 판명난 선택지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말이다.* 종의 경계를 넘는 사랑의 가능성과 인간 존재의 초라함을 탐구하던 영화가 너무 성급히 익숙한 결말로 돌아온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가 던진 질문을 더 용기 있게 밀어붙이는 또 다른 영화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AI 담론이 무분별하게 유포되어 낭만적 환상과 막연한 공포를 함께 자극하는 요즘, 〈그녀〉의 질문은 더 치열하게 탐구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장면은 그럼에도 다시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테오도르‧사만다의 관계와 테오도르‧에이미의 관계 사이의 밀도 편차는 너무 크게 그려진다. 테오도르가 에이미에게서 위로를 얻는 설정이 힘을 얻으려면, 둘의 관계를 더 촘촘하게 재현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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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웨인 존슨 주연, DC 빌런 영화 <블랙 아담> 개봉일 확정!
드웨인 존슨 (a.k.a. 더 락)이 그의 신작 DC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 아담>의 개봉일이 2022년 7월 29일로 연기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 남자 농구 챔피언십 경기 직전 광고를 통해 생중계됨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도 게재되며 DC 신작 다운 '광고 스케일'을 자랑하였는데요. 작년, 코로나19 확진 후 완치 판정을 받은 '드웨인 존슨' 단독 주연 영화이기에, 개봉일 연기는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 신작 <블랙 아담>은 '조커' 이후 DC의 두 번째 단독 '슈퍼 빌런' 영화로, 2019년 개봉한 <샤잠!>의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블랙 아담' 캐릭터는 1940년대 DC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역대급 힘을 지닌 인물로, 영화는 그가 점차 안티-히어로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낼 예정이라 합니다. <샤잠!>과 <블랙 아담>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드웨인 존슨'은 포브스가 선정한 2020년도 세계 최고 수입을 올린 남자 배우 1위에 오르기도 하였는데요.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부터 직접 출연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까지 제작 및 출연한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였기에, <블랙 아담> 또한 기획 단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게다가, 007 시리즈의 5대 제임스 본드였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연을 확정지으며 더욱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는 마법사 '닥터 페이트' 역으로 연기 인생 첫 '슈퍼히어로' 영화에 도전하였는데요. 마법에 한해서는 '전지전능' 그 자체인 닥터 페이트는 '헬멧'을 이어받는 자가 능력을 계승받기에, 향후 세대 교체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로 인기를 끈 '노아 센티네오'가 '아톰' 역으로, 다수의 범죄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사라 샤히'가 중세 시대 혁명을 이끄는 대학 교수 '아드라아나'로 출연하여 흥행 가도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DC의 모든 영화들이 2021년, 북미에서 극장과 HBO Max 동시 개봉될 예정이기에, <블랙 아담>의 개봉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연기된 것은 영화와 DC 팬들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밀린 개봉일은 디즈니의 다섯 번째 '인디아나 존스' 영화와 같은 주차인데요. 디즈니와의 정면 승부를 택한 워너 브라더스의 이런 결정이 과연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는 바입니다. 또한, 2022년 7월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미니언즈 2>(7/1 개봉 예정), 디즈니-마블의 <블랙 팬서 2> (7/8 개봉 예정), 조니 뎁이 퇴출된 <신비한 동물사전 3>(7/14 개봉 예정), 그리고 '겟아웃', '어스'를 이을 조던 필 감독의 호러 신작 <캔디맨>(가제)가 모두 개봉할 예정이기에, 역대급으로 박 터지는 박스오피스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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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는, 때론 최고의 상처 치료제
표면적이거나 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아이들보단 어른들이 상처가 빨리 아물고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래도 유년기, 청소년기에 접어든 이들보다 부서지는 상황을 더 많이 겪어왔고 이로 인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을 것이라는 경험적 측면 때문이다. 종종 연장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선경험했기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지 않은가.
일리 있는 말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추측이다. 어른들도,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들 중 상당수 이상은 몸만 컸을 뿐 여전히 유아기적 정체성에 머물러 미성숙하다. 일부 어른들은 자신이 한번 깨지고 부서지면서 큰 상처를 입고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라고 명명하는 마음을 갉아먹는 족쇄로 자라나 끝까지 고통받기도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으려고 상처로부터 멀찍이 회피하거나 분리하는 등 동떨어진 삶을 택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과 짐 캐리가 만난 드라마 '키딩'도 상처 입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키딩'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다들 어딘가 결핍, 상처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감정이입이 쉽게 됐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이 남자, 제프 피키릴로(짐 캐리).
제프 피키릴로는 어린이 TV쇼 프로그램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서 주인공 피클스 아저씨를 30년간 맡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종이접기 장인 김영만 아저씨가 오랜 세월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행사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을 보고 자란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추억을 선물했다.
정갈한 5대 5 가르마를 탄 단발머리, 단정한 초록색 넥타이와 흰색 셔츠, 항상 활짝 웃는 미소로 제프 피클스를 기억하고 있으나 이는 본체 제프 피키릴로를 가리고 있는 가림막이라는 걸 '키딩'이 보여주고 있었다. 본캐 제프 피키릴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태. 1년 전 교통사고로 일란성쌍둥이 아들 필을 잃었다. 불의의 사고는 아내 질(주디 그리어)과 이혼 위기로 몰아넣었고, 남은 아들 윌(콜 앨런)과 소통은 점점 어려워졌다. 본캐 제프의 삶은 엉망진창 망가지고 있어 한시라도 상처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제프는 상처 입은 자신과 감정들을 분리시키고 억눌러야만 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캐 피클스 아저씨로 출근해야만 했기 때문. 또 제프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 피클스 아저씨로 영원히 남기를 갈망해왔다. 그 결과 진작에 치료해야 할 자기 상처와 슬픔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피클스 아저씨로부터 격리시킨 부작용이 발생했다. 인형극장을 통해 아이들에게 슬픔과 죽음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간 평화로웠던 피클스 세계관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돌발행동을 하는 제프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걸 인지한 아버지 셉(프랭크 란젤라)과 누나 디어드러(캐서린 키너)는 대체물을 찾으러 나섰고, 제프가 부캐에 매달려있는 동안 집에서 그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갔다. 제프 피키릴로와 피클스 아저씨 세계관 둘 다 유지하려고 애쓰는 제프의 노력,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광대의 모순처럼 제프의 애환만 부각될 뿐이었다.
시즌 1 후반부가 돼서야 제프는 마침내 인간 제프 피키릴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필이 죽은 날 운전대를 잡았던 질에 대한 원망과 아내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했다. 또 세상을 떠난 필에게 자신이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오랫동안 신처럼 부각됐던 제프 피클스에 가려진 솔직함이었고,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키딩'에서 재밌는 건, 분노라는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분노와 평화를 이분법적으로 표현해 대립시켰고,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면 분노의 화신으로 탄생하는 것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키딩'에선 조금 달랐다. 그가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무작정 삐뚤어진 인간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인간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지다 터져버리는 고무풍선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시즌 1 마지막에서 제프가 질의 남자친구 피터(저스틴 커크)를 차로 들이받으면서 제프가 분노의 화신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 2에 접어들면서 제프의 극단적인 돌발행동은 단순한 폭발이 아닌 진심으로 피터를 싫어했고 가족을 아끼고 있었다는 걸 '키딩'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터에게 악의를 숨기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 것도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삐뚤어진 인간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키딩' 시즌 2 내내 제프는 자기 자신과 과오를 시인함과 동시에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와의 별거를 인정하고,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억누르고 괴롭혔던 문제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과거 질과, 쌍둥이 아들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왜일까.
변화를 받아들이고 보내는 것 또한 그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욕망과 이를 위해 '희생'으로 인식해서였을 것이다.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떠난 필은 아름답고 그리운 존재로 남아버렸고, 질을 놓아주는 건 여전히 그를 사랑하나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질의 새 출발을 하나의 권리로 존중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한 희생으로 남았다. 그렇게 자기 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원망하는 것'을 집어삼켰고, '나쁜 사람'들을 제거했다. 교통사고가 전부 아내 탓이라고 원망하기엔 너무나도 그를 사랑했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인위적인 평화는 결국 제프 피키릴로를 기괴한 제프 피클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프 또한 절대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시즌 2 후반부에 윌이 제프와 질, 그리고 필과 행복했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법에 집착하는데, 시즌 2 마지막에 일어났다. 그런데 되돌리는 게 아닌 시간이 멈췄다. 제프도 윌도, 괴로운 현실에서 회피해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판타지 원하나,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판타지는 무엇이든 가능하나 아무것도 이뤄주지 않는다는 한계도 알려줬다. 제프는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시계를 한 시간씩 앞당겨 가족들과 보내라고 하나, 아이들 또한 이 속임수를 깨달았다. 상상은 현실로 향해야 한다고 미셸 공드리가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프는 상처를 마주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떠나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면을 스스로 통제하고 마음을 붙잡고 있으면 고요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통제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갔다. 원망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을 드러냈고 아파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랑은 떠나가지 않고 남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 물건을 깨트려 다시 금으로 붙이는 예술 기법인 긴츠키처럼 치유된 것이다. 비로소 모든 걸 내려놓고,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며 새 출발선에 섰다.
내면의 상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좋았던 감정까지 잃어버리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들은 어떻게 해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기억이나 추억 등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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