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Choice Movie2022-10-26 11:41:11
10월 4주 최신 개봉영화
10월 4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0월 4주 개봉영화!
리벰버 REMEMBER , 2020
60년을 계획한 복수
영화 "리멤버"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를 그린영화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성민과 남주혁 만났는데요
80대 필주와 20대 인규를 절친으로 설정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케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영화 "리멤버"가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 다른 가장 큰 지점은 이 이야기가 가족을 죽인 자들을 대상으로 한 필주의 개인적인 복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요
역사책 속에 박제된 과거의 사실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개인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역동적인 스토리 속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 넷플릭스 '수리남'의 윤종빈 감독 기획!
추천영화 "리벰버" 입니다.
자백 Confession , 2020
소지섭X김윤진X나나X최광일
영화 "자백"은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누명을 벗기 위해 호텔 룸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기 시작하는 유민호와 그의 진술에서 발견되는 허점을 메꿔가며 사건을 재구성해가는 양신애의
날 선 대화가 시종일관 날카로운 긴장감을 형성하는데요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전과 숨 막히는 대화의 줄다리기는 영화 "자백"의 결정적 관전 포인트입니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재미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관객들을 스크린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소지섭, 김윤진, 나나, 최광일까지 독보적인 존재감과 카리스마의 네 배우가 펼치는 추리소설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
추천영화 "자백" 입니다.
죽어도 자이언츠 Giants 'Til I Die , 2022
자이언츠의 40년 역사가 펼쳐진다.
영화 "죽어도 자이언츠"는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역사를 함께했으나 1992년 이후 30년째 우승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와
'구도'(球道)라 불리는 부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입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무쇠팔' 고(故) 최동원과 지난 8일 LG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그리고 이대호를 닮은 개성고의 배광률 선수를 통해 부산 야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점이 관점포인트 입니다.
30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팬들의 이야기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40년 역사와 부산의 근현대사!
추천영화 "죽어도 자이언츠" 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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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HD의 미학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포함한다는 것을, 친구들끼리 단편영화를 찍으면서야 실감했다. 한 장소, 한 가지의 소품, 한 명의 배우를 화면에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주말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평일에 회사에 가서 하는 일들, 그러니까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회의를 하고 영수증을 모으는 일을 수십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현장에서는 온갖 장비를 이고 지고 촬영 내용을 기록한다. 필요하다면 이것도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러면 비로소 어떠한 자국도 없이 매끈한 작품이 완성되는 멋진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스타 배우들과 일하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영화를 작업해온 미셸 공드리가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영화를 내놓았다.<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감독인 주인공 ‘마크’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직접 적어 내려가는, 말 그대로 해결책 목록이다. 그는 이제 막 촬영을 마친 영화의 제작을 거절당했다. 자신과 일하던 파트너마저 회사의 편을 들자 그는 제작과 편집 담당인 동료 둘과 필름을 전부 챙겨 시골의 고모 집으로 도망친다. 의욕을 잃은 그는 복용하던 약을 단숨에 끊는다. 그러자 그가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서 아이디어가 끝없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빈 공책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솔루션들을 적기 시작한다.
마크는 관객조차 진력나게 할 정도로 제멋대로이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는 분노하고, 회사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 직원과는 어떻게든 잘 되고 싶어 하며, 영화 음악을 작업하면서 동시에 다음 작품도 찍고 싶어 한다. 완성 전에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면서도 편집에 관여해야 하는 고집도 부린다. 이 와중에 동네 대표도 하고 싶고, 고모의 질병을 돌보고 생일 파티도 열고 싶어 한다. 생각과 계획은 너무 많고 그것을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공드리는 마치 ADHD를 앓는 사람들의 행동처럼 연출했다. 예컨대 마크는 옛날 물건들 중 솔루션 북을 발견하고, 거기에 쓸 테이프를 찾으러 다른 방에 들어 갔다가 솔루션 북은 까맣게 잊고는 종이를 오려 스톱 모션 장면을 찍기 시작한다. ‘증상’에 가까운 이 행동은 미셸 공드리 특유의 꿈 같은 연출, 즉 개연성이 없어 보여도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의 특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유의 연출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또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이 영화는 ADHD 증상을 미학으로 바꾸어 놓는, 베테랑 감독의 영화 언어를 보여 준다.
정신 없는 편집 과정에서 마크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할 수도 있는 것을, 괜히 일을 키우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아이디어를 들이미는 마크와 당장은 안 된다는 동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충동을 참지 못해 물건을 내던지거나 소리치고는 뒤늦게 사과를 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그럼에도 모두들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외딴 시골 동네에서 음악 스튜디오를 찾아 내고 오케스트라를 구하고, 심지어 영사를 척척 준비해 마을에서 상영회를 여는 것은 마크 옆에 있는 샤를로트와 실비아다. 그들은 버겁지만 이 모든 노동과 황당한 아이디어를 감당한다. 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각자 다소 달라 보이지만 이들 모두의 목표는 단 하나, 영화를 끝까지 마치는 것이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무드 인디고>를 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전적인 영화이자 자아성찰이 담긴 코미디이다. 주인공 마크가 제멋대로 굴고 끝내는 옆에 머물던 사람들마저 떠나가게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직하고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사랑을 발산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한계는 바로 선의와 신뢰에 의한 관계들이 없다면 마크는 예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예술로서 영화를 보아주는 동료들과 자신의 엉뚱한 면을 이해해주는 고모 드니즈가 없다면 그는 수많은 아이디어에 짓눌리다가 영영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들은 작은 마을이 계속 굴러가듯이, 여러 사람의 노동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멋진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런 조건 없이 마크를 사랑해 주는 여자들, 특히 조용히 아파트에 들어와 엉망이 된 집을 손수 치워 주고 끝내는 가정이라는 새로운 ‘모험’으로 마크를 끌고 가는 가브리엘은 공드리가 연출하는 초현실적인 비주얼 만큼이나 꿈 같은 캐릭터이다. 마법 같이 이루어진 조건 없는 사랑, 아이를 낳는 것을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실은 권력이라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소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쇼트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도라는 것이다. 수없이 집적된 아이디어가 성가시게 느껴지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반짝이는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공드리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이 작품은 사랑과 관계를 가꾸는 것에 관한 작품이며, 동시에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어지럽고 추상적인 계획과 수백 번의 노동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관객 앞에 선을 보이는 순간 영화는 만든 이들의 손을 떠나게 되고 감상과 해석과 왜곡은 전부 관객의 몫이 된다고 말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심지어 마침내 관객의 반응을 조우하는 마크의 기분을 보여 주는 듯한 마지막 장면이 수줍음인지 수치인지 판단하는 것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다. 이렇게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고 결국 관객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영화로 마무리된다. <무드 인디고>를 보고 마음껏 슬퍼해도 되듯이,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비극인지 희극인지 논하지 않아도 됨을 깨달았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영화 만들기를 말하는 공드리의 언어를 재미있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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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의 기준은 흐릿하고 희망은 또렷하다
도대체 그 '성공'이 뭔가요?
흔히 ‘성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반짝이는 야경을 가진 도시 대게 이런 ‘세련’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이런 성공 판타지에 취해 언어 공부, 스펙 쌓기, 자격증, 대외 활동 등등 바쁘게 살다보면 정작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거였나 하는 소위 말하는 현타,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성공, 꼭 해야할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한다.
아니, 성공의 모습이 꼭 이래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 <김씨표류기>는 이런 질문을 품고있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낸다.
사회적 낙오자가 되고 외딴 섬에 표류된 김씨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김씨의 모습 속에서 누구나 자신의 고민과 방황의 경험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에서 ‘심심함’을 거쳐 ‘몰입’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step 1. 무기력
무기력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연애, 회사, 일, 돈… 모든 방면에서 ‘미달’인 남자 김씨는 무능하고 무력하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리고, 2억의 빚을 지닌채 재취업에 도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들 다 하는데 넌 안되냐"라는 비난을 헤집으며 말 그대로 발버둥 치는데, 정작 돌아오는 건 기계적인 대출 광고 뿐이다.
"희망을 갖자. 대출을 받자"라며 희망을 속삭이지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이 사회에서 남자 김씨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step 2. 심심함
더 이상 빚과 취직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무인도의 김씨는 이제 심심함이라는 사치를 누린다.
“심심하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심심함입니다”
무기력과 심심함은 언뜻 보기엔 비슷할 수 있으나 엄연히 다르다. 둘 다 활기 없이 축 처진 느낌을 연상케하지만, 무기력은 그런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심심함은 현재의 지루함을 바꾸고자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는 상태이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생 버섯 등 아무거나 입에 넣는 김씨. 이런 심심함이 주는 잔잔함과 평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step 3. 공허한 ‘몰입’
공허한 ‘몰입’으로 심심함을 회피하는 둘. 남자 김씨는 처음에는 단순 생존에 몰입한다. 새를 잡고, 고기를 굽고, 오리배로 집을 만들고. 물론 생존에 필요한 일들이지만 이러한 단순 생존 수칙들은 남은 인생을 보낼 동력이 되지 못한다.
여자 김씨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제자리에서 만보를 걷는다. 온라인에서 남을 도용하며 거짓으로 사는 삶.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나름 ‘바쁘게’ 살고 있지만 너무나 공허하고 의미없는, 허상된 생산성과 몰입에 충실한 삶에 그친다.
step 4. 마침내 도달한 진짜 ‘몰입’
이 둘은 각자의, 또 맞닿은 희망을 동력으로 마침내 진실된 ‘몰입’의 상태에 이른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밀 재배를 하는 남자 김씨. 언제 죽어도 좋다던 그가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지으려면 건강해져야 한다며 운동까지 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인터넷 상에서만 생활하던 여자 김씨도 비로소 현실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남자 김씨에 대한 호기심과 그와 소통하겠다는 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마침내 바깥에 있는 김씨의 사진을 찍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인터넷 속 그녀가 아닌 현실의 ‘김정연’이 깨어난 것이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화장실 가는 타이밍도 눈치보더니 그녀가 무려 집 밖을 나서서 남자 김씨가 있는 섬 쪽으로 편지까지 던진다.
이처럼 자신의 진실된 목표와 희망에 ‘몰입’하는 삶은 활기 넘치고 의미있는 변화를 촉구한다.
Hello
How are you
Fine thank you
기어코 둘은 서로를 발견한다.
여자 김씨의 일방적인 호기심을 넘어 이제 둘은 소통하며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다.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던 밤섬은 사라졌고,
인터넷 속 여자 김씨의 삶은 청산되었지만
둘은 서로가 있기에 괜찮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희망을 위해 살아본 뜨거운 마음이 둘에게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씨들을 향해 보낸 응원들이 자신에게도 닿길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고립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
이 둘에게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목표의식이다.
제대로 된 재료 하나 찾기 어려운 밤섬에서 짜장면을 먹겠노라 다짐한 남자 김씨.
직접 면을 뽑기 위해 농사를 짓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추진력을 선보인다. 작지만 원대한 그의 꿈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는 순간순간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된다. 신용불량카드로 오리배에 붙은 새똥을 긁어 발견한 씨앗, 허수아비 머리 깡통 밑 자라난 옥수수, 짜파게티 속 짜장스프…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짜장면을 진심으로 바라는 김씨와 함께 관객은 자연스레 짜장면 영접의 순간을 간절히 소망하게된다.
배달로 뚝딱 얻게되는 짜장면이 아닌 면발 가락 하나하나 직접 만든 수제 짜장면은 더욱 달콤하리라.
여자 김씨를 응원하는 마음도 점차 커진다. 남자 김씨에게 전달할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던지기 위해 한강으로 향하는 그녀. 3년째 은둔 생활을 하는 그녀가, 내 집 화장실 하나 가는 것도 계산하는 그녀가 무려 집 밖으로 나가 한강 다리 위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결심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영화 속 김씨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끝끝내 희망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던 것 처럼
현실 속 우리도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서로 응원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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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 피부, 돼지로 그려낸 일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이자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썬다운>의 첫인상은 여유롭고 느긋하다. 동생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조카들과 함께 멕시코 해안 리조트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닐(팀 로스)'은 문자 그대로 평화롭다. 그가 칵테일에 위스키를 추가로 넣어 마시는 조카와 장난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 가족의 휴가에 함께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도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 삽입된 죽어가는 물고기의 눈빛, 뭐가 보이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스크린에 비치는 닐의 피부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활달한 조카들과는 대조적으로 묘하게 무기력한 닐의 모습은 그 불안감에 물음표를 더한다.
물음표에서 태어난 모호함은 닐이 겪는 일련의 사건, 그리고 그의 선택 때문에 더욱 커져 간다. 갑작스레 전해진 어머니의 임종 소식에 공황에 휩싸인 앨리스와 조카들을 데리고 급히 공항으로 향한 닐. 그런데 그는 갑자기 여권이 없다면서 호텔에 돌아가 여권을 찾은 뒤 다음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공항을 빠져나온 닐은 가족과 머물던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로 향하며, 호텔방에서 짐을 푸는 그의 캐리어에는 여권이 보인다. 이후 핸드폰을 아예 끈 다음 유유자적하는 닐은 해변가 상점 주인인 '베리디세(이아주아 라리오스)'와 함께 밤을 보내고, 해변에서 난데없이 총살이 발생했음에도 닐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휴식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닐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비윤리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잔혹하기에 충격적이다.
이때 영화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닐의 동기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힌트를 제시한다. 바로 태양이다. 작중 닐의 시점에서 태양을 보는 숏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태양을 대하는 닐의 태도가 미묘하다. 일반적으로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이들에게 태양은 반가운 존재다. 반면에 닐은 시종일관 태양빛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태양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부자연스럽다. 예로부터 인간에게 태양은 언제나 가장 긍정적인 요소들의 집합이었다. 어둠을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의 창조와 생명의 시작, 그리고 희망을 뜻했다. 또한 태양에서 나와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비추어주는 햇빛은 정의였다.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 아몬, 프타 등이 창조신이고, 그리스의 태양신인 아폴론이 광명의 신이었던 이유다.
따라서 닐은 태양을 거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신경 쓰지 않고,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무기력하고, 아들과 가족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의무를 외면하며 정의와 질서를 무시한다. 그저 자신만의 휴가와 안식만을 지키고자 한다. 닐은 늘 사회적 통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처럼 닐의 기이하고 이해 불가능한 행동이 서스펜스의 주재료다. 장례식과 뒷수습을 홀로 마친 앨리스가 잠적한 채 자신 만의 루틴으로 휴가를 즐기는 닐의 앞에 나타났을 때 닐이 보여준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자신의 거짓말을 전부 인정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월급만 받으면 된다며 손쉽게 계약서에 서명한다. 앨리스가 그들의 재산을 노린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용의자로 지명되어 교도소에 갇힌 후에야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지만, 이마저도 여동생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베레디세의 안위만 걱정하고,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를 만나 섹스를 하는 모습이 그 증거다.
평화로운 휴가 이면에 깃든 불안함과 모호함을 잔뜩 끌어올린 후에 비로소 영화는 닐이 태양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답은 그의 피부에 있다. 교도소에서 나와 베리디세와 함께 장을 보고 그녀의 집에 방문한 닐은 갑작스레 계단에서 굴러 기억을 잃는다. 베리디세 덕분에 무사히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이송된 닐. 그러나 의사는 피부에 생긴 악성 종양이 이미 온몸으로 전이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닐도 본인의 남은 삶이 시한부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제야 영화 초반부터 등장했던 태양과 클로즈업된 피부 간의 관계에는 의미가 생긴다. 남은 삶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닐의 입장에서 밝은 태양은 자신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태워버릴 듯한 태양과 햇빛에 의해 타오를 듯한 피부 이미지의 유사성은 남은 삶에 대한 닐의 집착을 암시한다.
그 순간 태양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작가노트에 "태양은 태곳적 공간을 지배한다. 햇빛은 항상 무자비하고 직접적으로 사물을 때린다. 태양의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를 반영한다. 인물들의 정서적 상태, 그리고 그 주위의 만연한 폭력"이라고 적었다. 마치 이집트 사람들이 태양의 호의적인 측면과 포악한 측면을 각기 암소의 모습을 가진 하토르 여신과 암사자의 모습을 한 세트메트 여신으로 생각한 것처럼, 영화 속 태양 역시 양가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햇빛이 유달리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밝은 태양은 아름다운 휴가를 빛내지만,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따갑고 강렬하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접했던 태양이 삶을 의미했다면, 이제 태양은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닐은 남은 삶에 집착하면서도 그 삶을 무기력하게 소비하는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한다. 죽어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태양은 물론, 죽어가는 자신과 유사한 햇빛마저도 밀어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양가적인 닐의 태도는 마지막 힌트, 난데없는 돼지의 등장에 집약되어 제시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하고, 여동생의 슬픔을 짓밟으며, 조카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파괴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채 그저 자신만의 시간과 쾌락에만 몰두하는 그. 그런데 교도소에서 닐은 영국 축사에서 키우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이는 환시를 겪더니 작중 처음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심지어 장을 보고 베리디세의 집 계단을 오르던 중 피투성이가 된 돼지 사체 환시를 보더니 기겁하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부의 그 어떤 사건과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던 닐이기에 그의 리액션은 더 의미심장하다. 축사에 갇힌 돼지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죽음' 밖에 없다는 걸 고려하면, 죽어가거나 죽은 돼지를 본 닐은 그 역시 돼지처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격렬한 반응은 자신의 쾌락만을 생각하며 지냈지만 결국은 죽음을 외면할 수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숙명을 마주한 좌절과 절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썬다운>의 끝을 장식하는 간접적인 일몰의 이미지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고요함으로 가득하고, 자조적이고 체념적이다.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바다를 배경으로 테라스에 놓인 의자를 비춘다. 이 장면 속에서는 어떠한 생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햇빛은 가득하지만 정작 화면에는 죽음의 이미지만이 가득하다. 태양의 따뜻함을 담당하는 하토르 여신이 역설적으로 죽음과 망자를 돌보는 '아름다운 서방의 여신'으로도 여겨졌듯이, 마지막 장면에는 일몰이 없어도 일몰이 느껴지는 태양의 양가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는 평화와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던 초반부를 환기하는 서늘한 수미상관과도 같다.
더 나아가 <썬다운>이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 너머를 말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태양, 피부, 그리고 돼지라는 부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모호하고 상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에는 더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셸 프랑코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을 다루었던 디스토피아 스릴러 <뉴 오더>로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던 바 있음을 고려하면, 닐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닐의 집안이 축산업으로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가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맥없는 그의 모습은 돈에 신물이 난 사람처럼 보인다. 또 축산업처럼 다른 대상을 수단적으로 이용하는 돈벌이에 실망하고,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 혹은 죄의식에 빠진 사람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그의 발악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의 표출로 느껴진다. 하지만 여동생과 조카들이 끝내 그를 찾아내고, 그들 간의 대화가 결국 돈과 계약서로 귀결되는 것은 닐이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듯이, 계속해서 죽은 돼지를 보듯이 시스템 밖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닐이 영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영국에서 최초로 탄생했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를 말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일몰을 기다리는 닐의 모습은 해답을 찾지 못한 이들의 자조이자 한탄에 가깝다. 달리 말해 <썬다운>은 현대 사회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위한 시인 셈이다. 이렇게 <썬다운>은 평화로운 해변의 일몰에 담긴 죽음이 과연 누구의 죽음 일지 거듭 고민할 공간을 열어 놓은 채 싸늘하게 마무리된다.
E(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죽어가는 것들을 위한 시. 죽지 않을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
- 뛰기만큼 아름다운 쓰러지기.
이형기의 낙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은퇴를 선언한 순간
그의 과거를 톺아보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발레의 이단아라 불리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서사를 생각하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시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댄서>는 젊은 무용수가 발레를 그만두는 시점에서 자신의 역사를 톺아보는 영화다.
그가 발레를 시작한 순간부터 그가 자신의 은퇴 무대를 준비하고 끝내기까지의 과정.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가난했지만 발레를 사랑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봄 한철'을 추억한다. 그러곤 과감히 이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자 선언한다.
그의 선언은 발레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저물고 있음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라고 이어지는 구절처럼, 발레를 그만두기로 한 그의 선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미 허공으로 뛰어버린 그의 발끝은 다시 바닥에 다을 수 없는 거시앋.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꽅답게 죽는다."
라고 선언하 듯,
무성한 녹음 속에서 춤추는 그의 마지막 춤
Take me to church는
자신의 청춘(발레)에 대한
애달픈 연서이면서도
가차 없는 이별 통보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을 추억하듯,
그의 뛰기는 섬세하고
그보다 인상적인 넘어지기와 구르기가
이 댄스비디오를 지배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이형기가 낙화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듯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처럼 슬프지만 성숙한
때론 담담하고 의지에 불타있는
그의 들숨과 눈빛이 아닐까.
-
-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당신은 매일 40개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마치 모국어인 것처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외워야겠지. 시험공부하듯 어디에 적을 순 없고, 머리에 담아 조그맣게 읊조리는 정도만 가능하다. 종일 외우는 데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설거지나 재료 준비 등 주방 일을 하며, 당신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잠들기 전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기도문을 외듯 나지막이 웅얼거리는 당신을 핀잔할, 당신과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수백 명의 질타를 견디면서.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수용소, 그리고 페르시안으로 위장한 유대인. 세 가지 키워드로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영화 초반부의 방점은 '페르시안'에 찍혔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상황은 나치 수용소로 잡혀간 한 유대인이 페르시아인인 척하며 독일군 장교에게 알려줄 페르시아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정확히는 '만드는' 과정. 그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모르지만, 순간적인 기지는 뛰어났다. 거대한 거짓에 그럴싸한 작은 사실 몇 개를 섞으면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인다던가. 앞으로 그가 겪을 일과 딱 맞는 말이다.
자, 어떻게 매일 40개의 단어를 만들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도망가는 건 방법이 아니다. 지뢰밭에 발을 디디거나 독일군의 총을 맞거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살고자 하는 당신이 택할 게 못된다.
다행히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실화를 기반에 둔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 불길에 그을리는 종이. 종이 위 까만 글자들이 사그라진다. 그 위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과 역할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한다. 암전. 이윽고 숲처럼 보이는 탁 트인 공간. 꼭 맞는 나무의 대칭 가운데,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절뚝이는 것도 같고, 무언가 위태로운 느낌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코트를 짊어지고서. 걸음은 투박할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 영화가 끝나고, 본 것을 되새기면서 깨닫겠지. 복선 그득한 장면들이었단 걸.
'페르시아어 수업' 타이틀이 뜨고,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맺힌다. 덜컹대는 트럭 안,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다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눈빛들. 키 큰 남자가 옆 사람과 작게 조잘거린다. 남자의 무미건조한 눈빛은 옆 사람이 샌드위치가 있다는 말에 마구 반짝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유서 깊은 책을 줄 테니, 이거랑 교환하자고.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을 얻는 거라며. 눈망울이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키 큰 남자는 제 몫을 제외한 남은 샌드위치를 책과 함께 넘긴다.
페르시아어로 된 책. 키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욱여넣으며 말한다. 훔친 거라고. 그건 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도적질 하지 말라
지적하자, 대수가 아니라는 듯이 남자는 마저 씹어댄다. 눈망울이 큰 남자,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질'은 뒤이어 딴지를 걸지 않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 수 없다고 받아들였을까. 훗날 자신도 율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도적질 하지 말라의 다음 37, 거짓증거 하지 말라.
트럭이 멈추고 독일군의 명령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소지품을 한 곳에 내려놔. 가방이 툭툭 바닥에 떨어지고 총살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가 아는 액션 영화 같은 드라마틱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 즉 우리 관객들이 보는 화면은 고정되었다. 정적인 프레임. 비명이나 절규가 나올 새도 없이 모든 일은 끝난다. 단 한 사람, 질을 제외하고.
그는 품에 있던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내밀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이 믿을 리 없는 소리다. 그러나 많고 많은 언어 중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그들은 혹한다. 페르시안이라니. 장교 '코흐'에게 데려가면 포상으로 통조림 열 개를 받을 것이다. 아니면, 죽이면 되고.
불신, 권위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 똑똑하다는 자만심. 이 모든 성질을 뭉쳐 사람으로 빚으면 코흐가 만들어지려나. 아니다. 이건 독일군 사령관도, 다른 장교들도, 다른 군인들도 충분히 될 수 있다. 다만 코흐만 가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간절함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이 있는 이란으로 넘어가 식당을 열 생각으로 그득하다. 독일을 벗어날 생각을 한다는 건 그가 당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패배를 예상하는 것이다.
질이 자신을 책의 주인인 '레자'라고 거짓말했듯 코흐 또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당에 충성하는 척 해왔다.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큰 틀에선 그들은 차이점이 없는 듯했다. 코흐도 결국 전쟁 통에서 살고자 했을 뿐 아닌가? 각자의 배경과 상황은 제각각이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무언가를 어기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매일 이어지는 교습. 하루에 4개로 시작했던 수업은 갑자기 하루 40개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질은 패닉 한다. 끝이라는 생각에 도망치려 든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기에 제 발로 돌아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며, 최선을 다한 거짓말로.
여기, 또 변수가 생긴다. 코흐가 명부 작성을 담당했던 '엘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질을 앉힌 것. 엘사와 달리 질의 글씨체는 명필이기도 하다. 그의 일터는 이제 주방이 아니라 명부가 펼쳐진 책상 앞이다. 질에게 주어진 건 45분의 시간, 명부, 만년필과 잉크, 그리고 독일어 40개가 적힌 종이 한 장. 질의 머릿속은 온통 단어 만들 생각뿐이긴 하나, 코흐가 시킨 일부터 하는 게 순서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꾹꾹 종이에 눌러 적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건 글자들. 독일군의 철저한 관리 하에 수감번호로 불리는 이름들. 이름은 곧 단어다. 그 이름들을 조금만 변형하면 금세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 이거면 살 수 있다. 질은 들뜬 마음으로 '페르시아어'를 조합해간다.
시간이 쌓일수록 몇몇 군인들은 질이 불만스럽다. 특히 주방을 감독하는 일로 쫓겨난 엘사와 그리고 처음부터 질이 유대인이라고 확신한 '맥스'가 보기에. 위계가 엄격하기에 그들의 농간에도 질은 레자로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교묘한 줄타기가 잘해가던 레자. 실수로 페르시아어 수업 첫날에 말했던 '빵'을 '나무'와 똑같은 단어로 발음한다. 그리고 끝난 줄만 알았던 레자는 사경을 헤매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건 코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레자가 만들어 낸 페르시아어였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자 더할 나위 없는 견고한 진실로 변모한다.
코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레자를 변호하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고 명한다. 내키지 않아도 그를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던 질, 아니 이제 레자라는 명명이 우리의 눈과 귀엔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이 엇비슷하게 뒤섞이던 순간, 전환점을 맞이한다.
독일군은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단체로 이송하고, 그럴 때마다 레자는 코흐의 보살핌으로 농장에 피신한다. 그는 마치 독일군의 아군 같다. 텅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코흐의 맞은편 침대는 이탈리아 형제가 차지했고, 저도 모르게 레자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형제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레자를 지켜낸다. 그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레자는 목숨 하나를 직접적으로 빚진 느낌이다.
레자는 그 죽음들을 지켜보며 가라앉는다. 진짜 페르시안이라서 죽임을 당한 사람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죽은 남자.
이 대목이 코흐와 그의 차이를 보여준다. 레자는 자신의 생존으로 직간접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 또한 죽음으로써 모든 잘못을 짊어지려 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애석하게도, 코흐는 제 부하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를 끄집어내어 곁에 둔다. 그에겐 아직 레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다. 코흐가 그토록 바라던 독일에서의 탈출 시기다. 처음 수용소에 왔을 무렵 질이 꿈꿨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 잡혀온 초반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는 홀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도망갈 기회가 생기자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듯이.
수용소 내 모든 문서들은 활활 타오른다. 레자의 손으로 적힌 무수한 이름들도. 이름의 주인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글자가 사라지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피해가 없어지면 가해 또한 잿더미가 된다.
코흐는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레자를 빼낸다. 자신은 공항에 가서 테헤란으로 넘어갈 거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자를 등진다. 레자는 뒤돌아 자신 앞에 놓인 광경을 본다. 눈으로 뒤덮인 곳.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만들 모든 발걸음이 곧 길이 될 테다.
당연히 코흐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벨기에인 행세를 하려 들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린다. 하지만 꿋꿋하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익숙하게 말한다. 그는 알 수 없었을 테지.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그가 말한 것들은 모조리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마지막.
질은 영국군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수용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수천 명이라는 답. 살아남은 다른 생존자들 또한 쉬이 답할 질문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이름이 있냐고. 기대가 담기지 않은 물음이다. 살아있는 게 기적인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있다. 2,840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2,840개의 이름들. 2,840명의 사람들이. 그는 머릿속에 빼곡한 명부를 읊는다. 천막 안이 점점 고요해지며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공간은 그의 목소리와 빠르게 놀리는 펜촉 소리만 들린다.
죄책감, 고통, 미안함, 고마움, 공포, 안도. 뒤섞인 감정은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진다. 그래도 그의 입은 계속 단어들을 뱉는다. 살기 위해 빌렸던 단어들에게 진실을, 원래의 이름을 돌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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