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2-11-04 01:29:42
뜨겁고도 먹먹했던 우리의 여름을 추억하며
<알카라스의 여름> 리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알카라스의 여름>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달콤하지만 쓰디 쓴 계절이 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지만 아프게 느껴지는 계절이 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여름을, 그리고 유난히 더 뜨겁고 먹먹한 여름을 보내게 된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농사 뿐이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따사로운 해가 내리쬐는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 사는 솔레 가족은 3대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매 여름마다 이들은 복숭아 농장에 모인다. 어른들은 복숭아를 수확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어린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을 돕거나 자신들만의 놀이를 찾아 신나게 즐기곤 한다. 하지만 마냥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도 그늘은 존재하는 법. 이 대가족은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을 계속 겪고, 또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농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농사를 계속 이어간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농사뿐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꿋꿋이 복숭아를 기르고 수확하며 그들의 여름을 이어나간다.
영화를 보며 '공감'을 참 많이 했다.
특히 친척들이 모이면 흔히 보이는 모습들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해서 참 반가웠다.
친척들이 모이면 항상 어린 아이들은 허공을 향해 총을 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게 공격 받지 않기 위해 냅다 몸을 피하거나 하는 등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곤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함께 대화하거나 일을 하곤 한다.
그러다 어른들은 의견 충돌로 인해 다툴 때도 있다. 이 일로 인해 먼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이 생길 때도 있는데, 이때 잘 놀고 있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더 같이 놀지 못하고 빠르게 이별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내가 어릴 때 지켜보고, 또 직접 겪었던 일이어서 새삼스레 반가웠다.
이 영화는 꾸준히 복숭아 농장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려준다.
예전부터 복숭아 농장을 지켜온 할아버지는 주변 농부들이 모두 헐값에 농장을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점차 사라져가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농장에 관한 이야기를 할아버지 앞에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남몰래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한다.
가족 모두 이 농장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농사 뿐'이라고 말하며 유난히 더 이 농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더욱 열심히 지키려고 했던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이 집안의 장남인 '키메트'는 영화의 끝부분에 결국 눈물을 보인다.
키메트는 복숭아를 옮기다가 한 박스를 실수로 쏟았는데, 마구잡이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복숭아를 줍다가 펑펑 울어버린다.
딸과 아들은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마도 이 눈물은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이 복숭아 농장을 지키고 싶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과 슬픔, 버티고 버텨봤지만 이겨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힘듦 등의 복잡한 마음이 엉켜 있는 상태에서 터져 나온 아우성일 것이다.
대형유통업체의 부당한 가격 제시에도 농부들이 모두 다같이 분노하고 시위에 참여하며 외부의 위협에 항상 용감하게 맞서왔지만, 결국 복숭아 농장은 철거된다.
영화의 마지막, 하나둘씩 쓰러지는 복숭아 나무들을 어른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옆쪽에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싱그럽고 열정 가득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고 위태로웠던 여름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한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은 슬프지만 마냥 비극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이, 매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복숭아 농장과 그곳에 담긴 소중한 기억들이 모두 과거의 일이 된 것이, 고군분투해서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한 우리 가족의 여름이 참 슬프지만 그 다음을 향해 새로 또 도약하면 된다.
이 대가족의 여름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짙고 뜨거웠지만, 늘 그랬듯이 또 다른 여름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또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난 내 땅을 위해 노력해요
단단한 땅,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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