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11-22 15:26:07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
영화 <존 덴버 죽이기> 리뷰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존 덴버 죽이기'(아덴 로즈 콘 데즈 감독)는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온라인 마녀사냥, 사이버 불링, 디지털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제를 담아 더욱 주목을 받고 있고 국내에는 11월 23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친구와 싸운다. 그 과정이 편집된 채, SNS에 동영상이 올라가며 존 덴버 사건이 알려진다. 앞 뒤가 잘린 동영상은 존 덴버가 아이패드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 친구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되어 '악마'가 된다.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일이 기정사실화 되어 존 덴버는 사이버 불링의 피해자가 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완벽한 '악마'가 되어갈 뿐이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관에 봉착한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지 영화에서 확인해보면 좋을 듯하다. 설령 당신이 기대했던 결말과 조금 다를지라도.
사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누가 범인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존 덴버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훔치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믿었을까? 그런 내 모습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물론 범인이 밝혀져야 존 덴버의 무고함에 힘을 보태어줄 수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불특정 다수에 의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추측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고려하지 않는 현 세태의 문제를 이리도 꼬집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서 과도한 비이성적인 비난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은 폭력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따지기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정보 공유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SNS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우리나라 과거의 문제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실에 의거한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다가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으로 옮겨간다. 사실이 아닌 내용과 짜깁기 한 영상들은 검색과 클릭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 사라지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의 가벼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름만 바뀐 채 ㅇㅇㅇ죽이기는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혐오에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여전히 # 해시태그는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어딜 향해 날아들지 모를 수많은 말의 화살이 내일은 당신을 향할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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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라이트만 담백하고 나머지는 어수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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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 서윤복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부분이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하지만 우승의 기쁨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상식에 올라가는 손기정. 입고 있던 옷에 그려있는 일본 국기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다. 뒤집힌 조선 총독부. 손기정을 겁박한다.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닌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는 말을 마지못해 기록한다. 손기정의 육상선수 커리어는 그때 끝났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1947년에서 시작된다. 냉면집에서 서빙 일을 하는 서윤복은 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기정은 나라가 일제에게 벗어났다 하더라도 영 즐거운 일이 없다. 아들과 떨어진 일상. 매일을 술로 보낸다. 국민적인 영웅이라 ‘손기정 상’ 같은 시상식에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친한 동료 남승룡, 냉면집 아르바이트생 서윤복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3년 후의 <쉬리>로 당시 한국영화 관객 신기록을 경신한다. <쉬리> 이후 4년이 지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일이라 당시의 충무로도 반향이 컸다. 이렇게 강제규 감독이 상업영화라는 분야에 있어 두각을 드러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적으로 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큰 규모의 신을 찍을 때 인물들을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하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영화의 후반부를 위해 필수적이다. 격렬하고 광폭한 전쟁이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전쟁의 광기에 혹해버렸다. 광기에 취한 인물들이 전투 도중이나 군 막사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을 시각화하는 방식에도 감독의 장기가 들어가 있다. 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장면은 좋은 의미에서 너절하다. 후반부 진태(장동건)가 피 흘리며 전투를 벌이고 난 후 다음 장면은 깔끔하게 씻은 진석(원빈)이다. 심지어 진태가 처절하게 싸우는 반면 진석은 누군가와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한다. 당연히 진태의 상황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 두 인물 간의 시각적인 대비로 전쟁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칙칙한 색감, 깔끔한 인물 동선, 처절한 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로 담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지옥도를 구현한다. 이 지옥도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후반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신이 감동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번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는 강제규 감독의 장기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신은 당연히 마라톤 장면이다. 이 장면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핵심이 되어 한국사회의 강인함과 서윤복의 단단한 내면을 상징한다. 인물이 뛰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방식이 영화의 몇 사건을 비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을 보스턴에 곱게 보내지 않는다. 몇 가지 위기를 만드는데, 그 위기 이면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47년은 미군정이 한반도를 통치하는 시기였다. 한국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회 참여의 금전적, 행정적 부분에서 지원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대응하는 과정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마라톤과 유사하다. 사실상 1부의 초중반부와 2부의 후반부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암시하는 서윤복의 마라톤은 영화의 웅장함에 안성맞춤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글쓴이를 포함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또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요소 넣었겠네' 우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우려를 무색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인간의 결기와 의지를 영화 후반부에 방점 찍어 마무리했다. 이 장중한 하이라이트를 위해 강제규 감독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보스턴의 날씨를 구현하기 위해 호주에서 촬영한다거나, 임시완, 배성우 배우가 러닝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나 400여 명의 외국 배우와 함께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화라는 양날의 검
이 영화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 안에서 한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1,2부의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시한폭탄임과 동시에 강제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국민성을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이 정직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초반부 주인공 3인방은 선수 엔트리 등록을 위해 관련 부처를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담당 공무원이 손기정 일행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사실적이다. 영화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손기정 선수와 관련한 부분이 몇 등장하는데, 이 문제와 1947년의 보스턴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 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만 봐도 비슷한 예시가 몇 있다. 또한 궁핍한 한반도를 보여주는 방식도 극 중 등장인물들이 마라토너라는 점에 잘 어울린다. 신발은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영화는 신발을 수급하는 문제를 무작정 으쌰 으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길 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이 현실성과 관련한 부분은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부에는 역사의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꼼꼼함이 느껴진다. 영화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후일담을 찾아보면 이 인물들을 꽤나 잘 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마라톤 장면에서 특정 사건이 약간 영화적인 왜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1947년의 보스턴에서 실제로 이뤄졌던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잘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실화라는 틀에 안주한 흔적이 아쉽다. 어쭙잖은 신파극을 가볍게 벗어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더라도 플롯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상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인물들이 납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은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이야기에서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단지 서윤복에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박은빈 배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전의 작품이 아니었어도 이 인물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어렵게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받았어. 그럼 곱고 순한 여성 캐릭터는 영화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가? 이 문제의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또 영화 1, 2부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례하다. 구체적으로 2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두 미국인이 갖고 있는 비중이 크다. 이 두 인물은 관객들에게 '빨리 화 내!' 겁박하는 느낌마저 든다.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1947년이라지만 현실감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2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더 차갑고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서윤복이 어떤 모습으로 달리기를 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라리 이 부분을 구현하는 게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희생된 인물들이 아쉬웠다.
슬렁슬렁 넘어가다
영화는 인물들의 욕망과 관련한 문제를 손쉽고 전형적으로 해결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주인공 서윤복이다. 서윤복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다. 서윤복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초반부에서 영화는 서윤복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서윤복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 서윤복이 초반부에 달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번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마냥 이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영화의 1부가 가진 큰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한다. 물론 그 사건이 이 인물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건 인물의 동기부여에 대한 문제인거지 실제 이 인물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사실 이 문제는 2부에서 원인만 달라진 채로 반복된다. 영화 2부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1부의 어설픈 마무리가 더 아쉽게 느껴진다. 남승룡의 경우에도 문제를 맺고 끝는것이 불확실하다. 이 인물은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욕망을 가진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남승룡은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단 조금의 과정도 없이.
영화가 가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통일성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이물감 두 개는 배성우와 하정우 배우다. 우선 배성우 배우와 하정우 배우는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손기정 역은 <수리남>의 강인구와 별 차이가 없다(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손기정과 남승룡이 아니라 하정우와 배성우 배우 각자가 대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임시완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달리는 신이 아닌 선에서, 이 영화에서 본 임시완 배우는 어쩐지 <미생>과 <불한당>에서 본 기시감이다. 김상호 배우도 이 배우가 등장했던 사극의 어느 장면처럼 연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들이 2부에서 밥을 먹는 신이 있다. 배우들의 일상연기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강제규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비단 연기 말고도 편집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신파극에 대한 반발심리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이야기는 생략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특히 남승룡의 서사에서 더 느껴진다. 아마 배성우 배우의 개인적 에피소드 때문인 듯). 이것 덕분에 뚝뚝 끊긴다. 심지어 인물이 오롯이 대사를 칠 때에도 컷전환이 캐릭터를 방해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이 남승룡, 서윤복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서로 대화하는 신인데 말 중간에 시점이 바뀐다. 그동안 강제규 감독이 규모가 큰 신을 깔끔하게 연출했다는 점과 반대로, 소수의 인원이 대화하는 신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밑반찬이 아쉽네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기획의도에 충실하다. 스포츠 신파극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관객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장면은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등장인물을 콘셉트 아래에 가둬놓은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큰 덩어리들은 있는데 중간단계들이 좁고 얕다. 이 얕은 깊이 덕에 영화 자체가 올드하게 느껴진다. 정작 영화가 우려하는 점은 다 보완했지만 이를 덮기 위한 수가 반대로 단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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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알 수 있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이라는 영화는 스페인에서 농업을 하는 솔레 가문이 나온다. 복숭아를 재배해서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가족들은 3대째를 거쳐 농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토끼들이 농사를 방해하자 사냥용 총으로 쏴 죽이는데 이 영화 곳곳에서 토끼들의 사체가 나온다. 그 토끼들의 명복을 비는 흑인 노동자의 모습을 본 솔레 가문의 손녀는 그 모습을 따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온다. 바로 누군가가 태양 전지판을 자신들의 땅 근처에서 심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솔레 가족은 거칠게 항의하지만 더 이상 막지 못한다. 자신의 땅에서 대를 이어온 농사를 망치고 싶지 않은 솔레 가족을 보여주면서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농업이라는 게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있는 직업이다 보니 스페인에서도 농업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농업인들은 토지를 헐값에 팔기도 하는데 점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느낌이다 보니 자신들이 피 땀 흘려 만든 과일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반밖에 안되는 걸로 생활할 수밖에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과일을 납품받던 대기업에 시위를 하게 된다. 또한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농부라는 직업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학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와 비슷해서 안타깝게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레 가족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대기업의 횡포로 인해 자신들의 밥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두운 이면에 있는 농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토끼들을 죽여야만 했던 것 때문일까? 토끼들의 죽음이 솔레 가족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자신들이 농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방해되는 토끼들을 제거했듯이 자신들의 물건을 납품받던 대기업도 솔레 가족에게는 큰 타격을 준 것이다. 어쩌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둘 다 불쌍한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 게 꼭 쉬운 것만이 아닌 것 같다. 그게 농업이든 학업이든...
스페인에서 농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 저의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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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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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 본 콘텐츠는 블로거 Rigo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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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트 어웨이
캐스트 어웨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흔히 말하듯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정 시간 잃어버린 남자가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덱스(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추락하면서 무인도에 떠밀려 살아난다. 그는 생존을 위해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활동하며 무인도에서 약 4년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뗏목을 묶어 섬을 탈출해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온다.
모두 척 놀랜드가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정작 척 놀랜드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좋아하는 한편, 죽은 사람이 살아온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한다. 척 놀랜드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여기서, 척 놀랜드가 홀로 무인도에서 살았던 4년의 시간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척 놀랜드가 깊은 우울증 또는 정신적 문제로 병원에 입원해 지냈다고 그려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인도의 생활은 척 놀랜드의 상상이거나 비유일 수 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상황은 보통의 사람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하지만 척 놀랜드는 무려 4년을 혼자 살아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척 놀랜드는 바다에 떠내려온 화물에서 배구공을 발견하고,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인격화한다. 배구공의 이름은 '윌슨'이다. 배구공을 만든 제조 회사의 이름이거나, 배구공 브랜드겠지만, 여기서 '윌슨'은 척 놀랜드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척 놀랜드는 항상 '윌슨'을 가까이 두고 생활한다. 그는 윌슨에게 다정하게 말하지만, 어느 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윌슨'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자신을 투사해 감정을 발산하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일 수 있거나 이미 정신병 상태에 있는 척 놀랜드가 '윌슨'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현상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뇌 활동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면, 척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매우 단순하면서 황량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척 놀랜드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서, 아침에 일어나 물을 찾아 마시고, 하루 두 끼 또는 세 끼를 위해 채집, 사냥하는 활동을 한다. 그에게는 '문명'에서 비롯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나 대상이 없는데, 그건 그의 뇌 활동 즉 정신의 상태가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암시 또는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4년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외부의 충격에 척 놀랜드는 깨어난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은 문명이 만든 흔적이었고, 그것은 무인도에 갇혀 있던 척 놀랜드에게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가한다. 섬에 갇힌 채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척 놀랜드는 문명의 조각을 보면서 탈출의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탈출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한다.
척 놀랜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섬을 탈출하는 과정은, 척 놀랜드의 정신이 놓인 상태 즉 우울증이나 정신병 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정상의 현실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도 바다 위에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바다는 인간의 의식, 무의식을 상징한다-극적으로 구출된다. 척 놀랜드는 다시 문명사회이자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척 놀랜드와 지금의 척 놀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애인, 친구, 동료들은 돌아온 그를 반겨주지만, 한편으로 그가 사라졌던 시간만큼 낯설고 당혹스러워한다. 깊이 사랑하던 애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동료들은 친절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멀게만 느껴진다. 척 놀랜드가 그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과 공간이 그들과의 유대를 낯설게 하고, 어색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척 놀랜드라는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척 놀랜드는 자신이 떠났던 '문명사회'로 다시 돌아왔지만, 스스로도 그 환경이 어색하고 낯설다. 불과 4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이전과 앞으로도 결코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청년 남성이 군대, 특히 미국에서는 실제 전투에 참가하는 분쟁지역의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낯섦'에 대해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불과 2-3년의 짧은 군복무를 하지만, 그때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는 평생 남게 된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군복무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척 놀랜드는 아마 정신적인 문제로 독방에 갇혀 있었을 수 있고, 그가 겪었던 4년의 시간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걸 바라보는 애인, 동료들의 시선을 척 놀랜드가 모를 수 없고, 그로 인해 감정적 단절과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척 놀랜드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알던 모든 사람과 그가 살던 곳에서 멀리, 아무도 알지 못하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것은 척 놀랜드가 자신의 삶이 바뀐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깊은 고통과 슬픔을 내재한 채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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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마냥 웃을수는 없었던 홍상수의 하루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홍상수
출연진 : 김민희,기주봉,김승윤,하성국,송선미
동상이몽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시점을 연이어 보여준다. 첫 번째 주인공은 상원이다. 상원은 여배우다. 상원은 친한 언니 정수의 집을 찾아간다. 상원은 잠을 많이 잔 것 같다. "언니. 왜 나 안 깨웠어?" "너 잘 자더라." "언니. 이런 일 있으면 다음에 좀 깨워." 영혼이 없어 보이는 투정 몇 마디를 나눈다.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둘. 하지만 서로가 이 대화는 껍데기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난데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강아지. 강아지의 이름은 '우리'다. 우리야 안녕! 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먹이를 주는 상원. 정수는 상원에게 "먹이를 많이 주진 마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상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주고 싶은 만큼 먹이를 주는 상원. 그 순간 두 사람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두 번째 주인공은 시인 홍의주다. 홍의주는 유명한 시인이다. 폭넓은 인지도 덕에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최근 급증했다. 하지만 홍의주가 원하는 건 넓은 인지도가 아니다. 바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삶이다. 사실 의주는 얼마 전에 '이제 술, 담배를 하다간 정말 위험하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력을 다해 금연에 절주 중인 의주. 이런 의주를 찍기 위해 영화과 학생 기주가 의주의 곁에 있다. 하하 호호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기주와 의주. 이 두 사람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물안에서
글쓴이가 생각하는 홍상수의 최고 강점은 신선함이다. 홍상수는 매번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작 3편 <소설가의 영화> <탑> <물안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가의 영화>는 흑백과 컬러의 대비로 홍상수의 창작론과 동기부여에 다룬 영화였다. 홍상수 영화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쿠키영상에 들어갔다. 이 쿠키영상에 담긴 짧은 엔딩에 미적 아름다움을 눌러 담았다. 보통 무심하게 현상을 담았던 홍상수의 카메라가, 예전과는 다르게 극적인 연출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탑>은 홍상수의 멀티버스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건물이 단순히 주거공간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각기 다른 세계관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러 여러 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변하지 않은 존재'가 진주인공인 영화가 <탑>이었다. <물안에서>는 영화 전부를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했다는 점이 알려져 있다. 이 아웃포커싱은 아무 이유없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생과 사의 갈림길을 흐려놓는다는 점에서 ‘물 안’이라는 콘셉트와 어울린다. 홍상수가 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촬영으로 구현한 것이다.
본작 <우리의 하루>역시 신선하다. <낮과 밤> 이후에 오랜만에 자막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막이 들어가는 방식도 이후의 장면과 아이러니하다. 가령 두 번째 장면에서 시인 의주에게 손님이 인생, 사랑,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 장면을 보면 의주는 거침없이 술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장면 첫 자막에서는 ’의주의 마음이 복잡하다 ‘는 식의 대사가 적혀있다. 자막과 작중 실내 상황이 대치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정수가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정수는 고양이를 잃고 잃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라는 대사가 시퀀스의 시작이다. 영화에서 관객이 유추할 수 없는 것들을 일부러 자막으로 보여준 셈인데, 이는 홍상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었던 경향이다(대신 어떻게의 관점에서 이 연출법은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미부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비단 자막뿐만 아니라 고양이 ‘우리’와 ‘고추장 풀어 먹는 라면’ ‘미안합니다’ 라는 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둘이 영향을 받았다면 영화에서 의미부여를 인정한 셈이 된다. 하지만 홍상수는 이를 뒤엎는다. 작중에서 의주가 하는 말처럼 ‘네가 아는 답은 전부 오답‘이라고 영화가 연출 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영화는 코미디로서도 탁월하다. 이 영화를 보고 2010년대 초반의 홍상수가 떠올랐다. 홍상수 특유의 19금 코미디는 물론이고 어색한 상황으로 웃기는 장면도 몇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최고 웃긴 장면은 가위바위보 신이다. 기주봉 배우가 능청스러운 연기에 탁월한 것도 물론이지만 그 상황 자체가 워낙 재미있다. 김승윤 배우는 술자리 많이 불려 다녔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밀도의 유머 밑에 깔려있는 그림자는 무시할 수 없다. 이전에 죽음에 대해 다룬 <강변호텔> <물안에서>는 아예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등장한다. 각각 두 영화의 엔딩이 그 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다. 바로 홍의주라는 인물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욕망에 솔직하다. 딸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가족들과 별거 중이고, 술, 담배 하지 말란 말이 무색하게 엔딩에서 치킨과 양주를 마신다. 또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요청한다.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이 모든 것의 결과물처럼 보인다.홍의주는 영화의 모든 선택의 주체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인물들을 이끌고 있다 혼자가 된 것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영화에 내내 웃기다가도 엔딩의 홀로 있는 홍의주를 보면 그 웃은 만큼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홍상수의 하루
이 영화가 끝나고 난 후의 gv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래에서 진행됐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은 영화가 다루는 몇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고추장 라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박미소 배우는 이 장면에서 ”‘지수가 라면을 먹고 상당히 매워한다’는 부분이 그냥 각본에 있다“고 밝혔다. 극 중에 등장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기주봉 배우는 “홍상수 감독이 실제로 술 마시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홍상수 감독의 연기 디렉팅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하성국 배우는 “홍상수 감독님이 정확히 원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라고 하신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하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월 11일 오후 15시 30분에 상영된다. 장소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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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필드>가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을 극복한 방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큘라’(니콜라스 케이지) 성을 방문했다가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직속비서가 되기로 결심한 ‘렌필드’(니콜라스 홀트). 인간을 뛰어넘는 괴력과 반사신경을 갖게 된 것도 잠시, 그는 밤낮없이 찾아오는 흡혈귀 사냥꾼을 격퇴하고, 드라큘라 입맛에 맞는 순결한 제물을 찾으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드라큘라는 사냥꾼과 싸우다가 햇빛에 쬐여 큰 부상을 입고, 렌필드는 그를 미국으로 옮겨 간호한다. 여느 때처럼 술집에서 제물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던 렌필드는 마피아의 협박에 주눅 들지 않는 경찰 ‘레베카’(아쾨피나)를 만나고, 한 가지를 결심한다. 자기도 레베카처럼 당당하게 살겠다고.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마침내 끊겠다고.
드라큘라가 주인공 아닌 드라큘라 이야기
흡혈귀 중 가장 유명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큘라 백작. 그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고, 100개가 넘는 영화로 재해석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1931년 영화 <드라큘라>다. 이 작품에서 그는 '깃을 세운 망토를 입은 채 여자를 꼬시는 흡혈귀'와 같은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많았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처럼 진중한 다크 판타지 장르로 각색하거나, 넷플릭스와 BBC가 협업한 시리즈 <드라큘라>처럼 그를 현대로 불러왔다.
크리스 맥케이 감독은 <렌필드>로 더 과감하게 드라큘라를 재해석했다. 드라큘라를 현재 시간대로 불러왔고, 배경도 루마니아(왈라키아)나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주인공은 드라큘라가 아니다. 원작 소설 속 정신병자, 렌필드가 주인공이다. 그는 다른 생명을 먹으면 장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레를 잡아먹는 기괴한 인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드라큘라를 돕는 부하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는 아랫사람인 그의 시점에서 드라큘라를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큘라의 면모가 드러난다. 아랫사람을 교묘히 조종하는 악덕 상사의 모습이다. <렌필드>는 이 기괴한 갑을관계에 주목해 고전을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
영화는 드라큘라에게 붙잡힌 채 그의 뒤치다꺼리를 맡은 렌필드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고성(古城)을 파는 부동산 거래로 큰돈을 벌기 위해 드라큘라에게 접근한 렌필드. 그는 큰 힘을 주겠다는 드라큘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의 비서가 됐다. 벌레를 먹으면 괴력이 생기는 능력을 얻은 후, 렌필드는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허드렛일을 맡았다. 뱀파이어 사냥꾼으로부터 드라큘라를 지키는 건 기본이다. 드라큘라가 햇빛 때문에 크게 다친 후로는 깨끗한 피를 가진 사람을 제물로 바쳐 회복을 도왔다.
물론 렌필드도 고민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 건지. 드라큘라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을지. 하지만 그의 고민은 항상 같은 곳으로 귀결한다. 그는 드라큘라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에게서 능력을 얻었기 때문은 아니다. 렌필드에게 드라큘라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렌필드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제물을 데려오면 그를 일부러 공격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렌필드가 용서를 구하면 그제야 자기 피로 치료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렌필드는 드라큘라의 요구나 명령을 거절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처럼 의존적이고, 또 자기 파괴적인 인간관계는 사실 낯설지 않다. 데이트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사례에서 '가스라이팅'이 활개 치는 뉴스는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 <렌필드> 속 드라큘라와 렌필드의 관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어딘가 씁쓸한 갑을관계 탈출기
그런데 <렌필드> 속 피해자 모습은 단순하지 않다. 렌필드는 단순히 조종당하는 게 아니다. 자기 처지가 당연하다고 자조하며 동조한다. 드라큘라에게 의존하는 악순환을 렌필드 본인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저버린 채 드라큘라를 만나러 떠났다. 부와 권력을 원했기 때문에. 드라큘라의 제안도 받아들였다. 더 강한 힘과 능력을 탐냈기 때문에. 이 찰나의 선택 때문에 그는 스스로 퇴락했다. 즉, 자발적인 굴종이 렌필드와 드라큘라의 진짜 관계인 셈이다. 이는 렌필드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화에는 다른 악역도 있다. 마피아가 활개를 치고, 경찰은 그들로부터 돈을 받고 눈감아준다. 그런데 이들과 렌필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을 쫓아 권력자에게 스스로 굴복하고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굴복이 드라큘라보다 더 위험한 악인 셈이다.
실제로 영화가 자기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자기가 시작한 악순환과 인간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니까. 렌필드에게 레베카와의 만남이 전환점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중 레베카는 마피아의 외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경관이다. 그녀는 마피아에게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버지처럼 마피아와 싸우겠다는 경찰다운 소신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렌필드는 큰 충격에 빠지고, 자기 합리화를 그만두고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다시 맺으려 한다.
드라큘라에게 데려갈 제물을 물색하려고 나가던 집단 심리 치료 모임이 기회다. 렌필드를 비롯한 참석자는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한다.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 집 인테리어처럼 세세한 것까지 직접 바꿔주며 서로 자존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렌필드의 탈출기는 어딘가 씁쓸하다. 그 안에도 갑과 을이 있기 때문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강사는 피해자에게 자기 책을 판다. 그 책이 마치 성경 마냥 구원을 약속한 것처럼. 이 또한 낯설지 않다. 피해자를 이용하는 두 번째 가해자도 손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이처럼 <렌필드>는 인간관계로 인한 현대인의 고민을 정확히 지적한다. 주인공을 바꾼 고전의 재해석이 인상적인 이유다.
장르를 넘나드는 피 칠갑 코미디
이러한 메시지와 주제 의식은 영화 전반에 넘쳐흐르는 B급 정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영화 속 액션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다. 원래 렌필드는 드라큘라를 보호할 때만 자기 능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는 다른 목적을 위해 자기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액션이 과격하고 피가 많이 튈수록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의지는 더 잘 전달된다. 만화처럼 뻔뻔하게 피를 튀기다 보니 오히려 거부감이 덜한 셈이다. 실제로 절단된 팔과 다리를 무기처럼 활용하거나, 시체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잔인하거나 기괴하지 않다. 그저 유쾌하다.
액션 외의 대목도 다르지 않다. 사실 <렌필드>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불편한 점이 있다. 과거 이야기가 현대 배경으로 옮겨오면서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라큘라가 렌필드에게 '순수한 여성의 피'가 필요하다고 닦달하는 장면은 지금의 젠더 관점에서는 이상한 뉘앙스로 전달될 수 있다. 드라큘라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도 어색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와 달리 추적이 용이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여러 의문점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렌필드>는 B급 감성을 한껏 활용하면서 위와 같은 의문점이 뇌리조차 스치지 못하게 한다. 노예 계약과 싸우는 렌필드의 모습을 제4의 벽을 깨는 연출을 통해 보여주며 B급 코미디를 선사한다. 마피아와 부패된 경찰조직을 등장하면서 누아르처럼 보일 때는 돌연 분위기를 바꾼다. 망상에 빠진 드라큘라를 활용해 호러와 스릴러적 요소는 코미디로 전환하는 게 대표적이다. 드라큘라의 설정을 역이용한 장면도 웃음을 자아낸다. 기독교적 요소가 가미된 퇴마의식을 정작 마약 가루를 이용해 치르거나, 치유력이 있는 드라큘라 피를 이용해 드라큘라가 죽인 사람을 되살리는 식이다.
물론 <렌필드>에도 여러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마무리가 성급하다는 인상이 짙다. 호러, 코미디, 액션, 누아르 등 워낙 많은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데 러닝 타임은 93분으로 꽤 짧다. 달리 말해 레베카 가족과 마피아 간의 악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생략하거나 일부러 지나칠 수밖에 없다. 결말로 갈수록 캐릭터가 편의적으로 퇴장하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속도감은 빠르되, 다소 급하게 전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더해 호불호도 극명히 나뉠 수밖에 없다. <데드풀>과 같은 작품처럼 미국식 유머가 워낙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적인 한국 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나 톤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익숙한 소재를 설득력 있게 재해석한 <렌필드>의 매력도 장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Acceptable 무난함
가장 세련된 형태의 재해석 중 하나. 취향만 맞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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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아이스라떼극장] 집이 제일 무서워요 '장화홍련'
영화 흥신소 -(아이스)라떼극장 EP.06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공포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날려버리자
요양후 집에 내려온 자매에게 이상한 형체가 보이고 새엄마는 자매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문희X 귀신과 싱크대귀신으로 그 시절 평범한 집을 무서운 공간으로 탈바꿈 시켜준 영화 "장화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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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봄날> 메인 예고편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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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일 발표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오징어 게임》 시즌2, 12월 26일 공개 그리고 마지막 시즌 2025년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황동혁 감독의 편지 : "진짜 게임이 시작됩니다. 시즌 1으로 큰 사랑을 받고 믿기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벌어진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 시즌 2의 공개 일정과 시즌 3 제작 소식까지 알리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설렙니다. 시즌 2 첫 촬영 날, '와, 내가 다시 오징어 게임의 세계로 들어와 이걸 찍고 있다니' 하는 생각에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3년 만에 다시 만나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가 여러분께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시즌 1 엔딩에서 복수를 예고했던 성기훈은 다시 돌아와 게임에 참가합니다. 과연 그는 자신의 말대로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를 맞이하는 프론트맨 역시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이들이 보여줄 치열한 대결은 내년 공개될 시즌 3, 그 대망의 피날레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새로운 오징어 게임의 여정을 구상하며 싹 틔웠던 아이디어의 씨앗을 시즌 3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펼치고 비로소 완결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남은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곧 만나요 여러분" ‘오징어 게임'의 제작자, 작가, 감독 황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