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03-17 00:00:00
우먼 인 할리우드
한줄평 아닌 한줄평
한명만 움직여서는 바뀌지 않을 변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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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이미지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미디어는 사람의 생각을 형성하고 좌지우지하게 해 미디어가 주입하는 성차별은 많은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여성의 이미지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고정적으로 같은 이미지를 찍어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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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여성감독과 여성배우들은 할리우드의 장애물을 아무리 뛰어넘어도 그 자리에 있음을 느껴야했다.
다양한 이미지 뒤의 여성들은 가슴과 엉덩이에 초점이 맞춰져야했고 자신을 잃어버린듯 했다.
"그때 깨달았어요. 난 그냥 배우가 아니구나. 난 '여배우'구나"
변화를 위한 걸음은 혼자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같이 나아가야할 길이 되어야 한다.
한걸음 나아갔다고 두걸음 뒤로 물러나서도 안된다.
이것을 찍은 감독조차 남자이지만, 남자의 목소리를 빌려서라도 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두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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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비할수록 채워지는 이상한 마법을 손끝으로 느껴본다면
※영화 〈시티 라이트〉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한 남자가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낡고 펑퍼짐한 양복과 맞지 않는 모자, 지팡이뿐인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길모퉁이에서 꽃을 팔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에게 부토니에를 사려했을 때 남자는 알게 되었다. 소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깐의 만남 이후 그는 길 위의 삶을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한 사람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20세기 문화예술을 말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최고의 예술가이자 감독, 제작자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는 사랑에 빠진 눈먼 소녀를 지키기 위해 가난한 남자가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로맨스 장르에는 언제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는 중세 기사도 문학인 ‘로망스’부터 시작되었다. 기사와 귀부인이라는 계급과 신분의 차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플라토닉 사랑을 자아낸다. 닿지 못하는 사랑의 결실은 곧 귀족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수호하는 매뉴얼이 된다. 명예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고 금욕적인 기사도의 원형은 당대의 사회 질서를 지배했다. 이후 로망스가 로맨스 소설로 변화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서사가 등장하고, 현대에 와서는 사라진 신분과 계급 대신 다양한 심리적, 물질적 장애물로 세분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은 집안과 신분을 지난 현대의 작가는 사장과 평직원, 북한의 장교와 남한의 유명 배우, 심지어는 도깨비와 인간 사이의 장애물까지 만들어낸다. 독자, 시청자, 또는 관객은 이 미끄러지는 위치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로 발생하는 오해와 편견, 이별과 재회에 이목을 집중한다. 하지만 로맨스 장르의 또 다른 특징은 독자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랑과 이별에 갈등하고 위기를 맞는 이들은 결국 절대적인 사랑의 힘이라는 우연 혹은 필연으로 재회하고, 행복한 결말을 이룬다. 롤러코스터처럼 종잡을 수 없는 갈등의 연속에도 이미 독자는 이 바람 잘 날 없는 사랑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품는다. 독자는 로맨스 안에서 현실과 다른 환상적 사랑의 결실을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의 로맨스는 주로 우월적 지위의 완벽한 남성이, 그보다 낮은 지위의 선량하지만 수동적인 여자 주인공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드라마였다. 이는 현대의 로맨스 장르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이다. 다만 그 안에서 여러 설정과 관계성의 변주를 준다. 앞서 언급했던 도깨비와 인간의 사랑처럼 믿을 수 없는 능력의 탈인간을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하거나,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근대의 조선 양반집 여성과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한국계 미국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로맨스 장르에서 특징 중 하나는 한쪽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핍이 서로 마주하며 성장해 동등한 지위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여성 캐릭터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이제 로맨스의 여성은 과거의 인습에 따라 ‘도덕적 미덕’을 구현하는 존재로 남아있지 않다.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주체적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무조건 선량하거나 씩씩한 캐릭터도 아니다. 좌절과 절망, 탐욕과 부정을 숨기지 않기도 하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거침없이 행동한다. 과거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전복되기도 하며 미스터리, 공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확장된 장르의 변용과 해체도 이루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현실적 인식과 다양성의 확장이 맞물린 로맨스의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연대와 성장의 길로 함께 들어서는 관계가 된다.
〈시티 라이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마법에 빠진 것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무조건적 선의와 환대의 가치는 유성 영화의 시대에 들어선 1930년대를 마주 선 찰리 채플린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결된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는 남자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단벌 신사다. 평소처럼 길을 걷다 첫눈에 반한 소녀는 소리만 듣고 우연히도 고급 자동차에서 나오는 부유한 남자와 그를 착각한다. 남자는 당황하지만 소녀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사정은 본인도 마찬가지기에 여느 때처럼 방황하며 고민을 하던 중 강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한 남성을 구한다. 그는 이 도시의 백만장자였고, 목숨을 살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찰리 채플린을 금세 친구로 사귀고 집으로 초대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술을 즐기는 이 백만장자는 찰리의 여러 사정을 묻지 않고 통 크게 그를 환대한다. 소녀를 돕기 위해 돈을 건네주기도 하고, 잠자리도 제공해 주는 등 선의를 베풀어 준다. 불의의 사고로 그와의 기억을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30년대 음향 기술의 도입에 반기를 들었던 그는 사회의 부조리에도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부의 불평등과 인간의 가치 하락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로써 영화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닿을 수 없는 도시의 불빛에 휘청거리는 소시민을 연기한다. 소녀의 집세와 개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얻으려 했던 그의 노력은 안타까움 속에 담긴 익살스러운 슬랩스틱에 담겨 웃음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 보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 신세가 되어서야 소녀에게 돈을 쥐여줄 수 있던 그의 마음은 오로지 한 곳으로 향한다. 자신도 변변치 않은 현실에도 소녀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일대기는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의 무성영화가 주는 그 울림과 가치를 고집스럽게 지켜내려는 감독 찰리 채플린의 심정과 닮았다.
이 영화를 말할 때 헬렌 켈러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찰리 채플린과 그의 짧은 만남은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찰리 채플린과 헬렌 켈러는 국가의 억압과 독선에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대중과 미디어에 비치는 헬렌 켈러는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딛고 삶을 이어 온 투혼의 인물’ 정도였다. 모두가 행복한 동화 속 헬렌 켈러의 삶은 그의 스승 설리번 선생님과의 유대관계와 우정, 박애와 사랑의 성녀, 그 정도뿐이다. 정말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철저히 가려지고 윤색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헬렌 켈러는 서른 살까지의 인생까지다. 알려지지 않은 그는 공산주의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고,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당에 입당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싸웠다. 여러 신문의 칼럼과 저서로 부정의한 사회로부터 투쟁해 온 헬렌을 보며 사람들은 그가 장애인과 사회복지 운동 외의 다른 운동에 투신하는 것을 싫어했다. 대중이 정해놓은 성스러운 이미지로 ‘숭배’ 해야 하는 ‘천사’가 정치 세력에 옮아 ‘불순한’ 사회운동을 하다니. 견디지 못한 언론은 그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렸다. 장애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과거에는 ‘삼중 장애의 역경을 딛고 세상에 나온 영웅’으로 추앙했지만 비난의 대상이 된 이후 ‘세상 물정 모르는 장애 여성의 치기’로 격하한 언론의 이중성은 극에 달했다. 장애를 단지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 양태로 바라본 편협한 시각은 등을 돌렸을 때 더욱 모진 차별과 비난의 무기로 활용되었다.
찰리 채플린도 같은 곤경에 처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과 빈곤의 굴레를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그의 영화는 냉전 시대의 광풍 앞에 ‘공산주의적 선동’으로 몰린다. 소아성애자라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그는 결국 미국을 떠나 이민을 간다. 여성이자 장애인으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투신했던 헬렌의 삶에 감명을 받은 찰리는 〈시티 라이트〉에서 도시의 불빛을 볼 수 없던, 아니 도시의 따가운 시선에 가려진 한 소녀가 선한 의지와 노력으로 결국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사적으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영화 줄곧 원경에서 시민들의 군상, 그 안의 찰리 채플린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던 카메라는 눈을 뜬 소녀가 그의 얼굴이 아닌 손끝으로 남자를 알아보는 장면에서 또렷이 서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관객은 무조건적 희생과 사랑의 연대라는,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가치를 묵묵히 이어나간 끝에 마침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는 두 사람의 표정을 만난다. 고난 끝에 찾아온 행복이 현실이 되기 바라는 감독의 간절함은 참고 참다 마지막에 드디어 시선을 가까이 두는 탁월한 완급조절로 드러난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도 없는 ‘평화와 번영’ 동상 위에서 대범하게 잠을 청하는 유쾌하고 날카로운 찰리 채플린의 시선은 이렇듯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마음을 울리는 직접적인 메시지로 표출한다.
우리는 사랑과 연대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저 큰 도시 한 구석에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동상 하나 세운다고 그 가치는 실현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몸부림이겠지만, 자신의 곤궁함을 받아들이면서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몸이 오히려 가장 시대의 변화를 추동하는 상징으로 내세울 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상이 아닌 행동이다. 우리의 진가는 사회에 겉돌고 외면받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난달부터 우리는 서아시아의 한 나라가 무너지는 장면을 바라봤다. 한순간에 억압의 과거로 퇴보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타인을 포용할 만큼 충분히 밝은 도시의 불빛에 비해 비좁은 시민들의 인식은 여러 이유를 들어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만다. 사회에 내 집 하나 없이 무시당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해학을 담아 웃음과 눈물을 만든 찰리 채플린은 영화 내내 웃지도 않고 전 세계의 관객을 웃겼다. 어쩌면 우리는 난민과 이주민을 카메라 뒤편에서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닫힌 우리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꺼이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줌을 당겨 그들을 만나고 손을 잡는 것이다. 다정함은 세상을 구한다. 그래야 절망 앞에 웃을 수 있고, 선의지를 담은 표정으로 타인을 반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마침내 행복을 찾은 남자의 이름은 리틀 트램프, 작은 방랑자이다.
※ 이 글은 파랑달의 브런치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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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2021)
개봉일 : 2021.12.15.(한국 기준)
감독 : 존 왓츠
출연 : 톰 홀랜드, 젠데이아 콜먼,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파브로, 제이콥 배덜런, 마리사 토메이, 알프리드 몰리나
쿠키 영상 : 2개
가장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처음 등장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개봉 2년이 지난 2021년 12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돌아왔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과연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래 기다린 만큼 팬들의 기대감도 컸기에 항간에 떠도는 소문도 참 많았다. 그 소문들을 믿거나 너무 기대하진 않으려고 했다. 기대하면 그만큼 실망할 이유들이 많아지니까.
처음 마블에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릴 때쯤, 나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푹 담가져 있었다. 큰 눈을 가진 앤드류 가필드의 인간미 넘치는 스파이더맨이 좋았고, 비록 악역이었지만 치명적이었던 데인 드한의 연기가 좋았다. 거기에 삼부작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픈 손가락처럼 더 애착이 갔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류를 뒤로하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등장이라니. 기대도 됐지만 살짝 못 미덥기도 했다. “과연 어떤 스파이더맨이 나오는지 보자-”싶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톰 홀랜드는 자신이 가진 힘을 힘껏 뿜어내며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만들어갔고, 관객들은 자연히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3대 스파이더맨이 된 톰은 ‘아기 거미’와 ‘톰스파’라는 애칭까지 꿰차며 당당히 어벤져스에 합류했다. 특히 인피니티 워에서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눈물 줄줄 흘리던 관객들도 꽤 많았으니.. 스파이더맨으로서 그의 존재감이 꽤나 톡톡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성장
토니 스타크가 떠나기 전까지 어벤져스에서 스파이더맨의 이미지는 완전한 히어로라기보단 막내와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토니에게 수트를 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거나, 토니와의 만남에 신나 셀프 카메라를 찍는다거나, 짝사랑하는 MJ 앞에서 어버버 말을 흐린다거나.. 등등. 히어로 캐릭터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어렸던 스파이더맨은 항상 조금씩 어설펐다. 나쁜 뜻은 아니라 딱 그 나이대의 감성이 풍부한, 서툰 소년 같았다는 말이다. (역대 스파이더맨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대인 것도 한몫했다.)
<엔드게임>이후 개봉한 <파 프롬 홈>에서는 멘토였던 토니를 잃은 피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토니의 뜻을 이을 수 있는 ‘히어로’로서의 길을 선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 개봉한 <노웨이 홈>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눈앞에 닥친 위협 속에서,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라는 두 개의 인생을 두고 갈등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모두를 돕는 일이다.” 사실 이 두 마디 말이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살짝 잊어가던 참이었다.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비해 어벤져스 시리즈의 스케일이 범우주적으로 넓어지기도 했고, 상대하는 악당들과 스파이더맨의 슈트 능력치 또한 크게 상승했기에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내가 처음 접했던 스파이더맨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또한 매력적이었고, 가끔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느낌보다는 ‘우주를 구한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느낌이 강했다.
서서히 새로운 스파이더맨에 익숙해지고 있던 찰나, <노 웨이홈>은 피터 파커를 다시 피터 파커답게 돌려놓는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던 그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사람의 선함을 믿고, 이웃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소박하고 친절한 옆집 청년 같은 그 스파이더맨처럼 말이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
<노 웨이 홈>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의 마무리로서 완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시간 만나온 친구, 스파이더맨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했던 시절부터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와 오랜 시간을 쌓아왔기에 세 번째 마무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꾸준히 이야기를 진행해온 프랜차이즈 영화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준 캐릭터가 가진 가장 큰 메리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시간과 정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하다.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을 이렇게 한 번에 다시 선물 받다니. 이 영화를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을까?
사적인 감정을 모두 제외하고 본다면 영화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너무 많아 일회성으로 소모된듯한 빌런의 존재와 가장 임팩트 있어야 할 장면이 다소 심심하게 그려졌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의 포지션이 살짝 아쉬웠다는 것.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그게 대수인가! 스파이더맨이 이렇게 돌아왔는데. 실망할 시간 같은 것은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글의 상단에선 참겠다. 영화를 보기 전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라면 “그 어떤 스포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감상하라.”정도가 있겠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시놉시스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세상에 정체가 탄로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하루 아침에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각기 다른 차원의 불청객들이 나타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드디어 열린 멀티버스
앞선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어벤져스 시리즈>를 거치며 꾸준히 언급됐던 ‘멀티버스’. 그 멀티버스가 드디어 <노 웨이 홈>에서 열렸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포탈을 통해서 말이다.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란 사실이 온 세상에 퍼지고 피터는 스파이더맨인 자신이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다며 자책한다.
MJ와 네드의 대학 입시가 좌절되고 사람들은 피터의 집에 벽돌을 던진다. 죄책감에 마음 아파하던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기억을 지우는 주문을 부탁한다. 하지만 피터의 의도치 않은 방해로 인해 주문이 흩어지고 그 결과 평행 우주에서 ‘피터 파커’를 아는 온갖 인물들이 몰려오게 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타비우스, 샌드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 일렉트로와 리자드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대 스파이더맨 두 명까지. 빌런들이 우르르 등장할 때부터 이 둘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긴 했지만, 실제로 앤드류 가필드가 등장하는 순간 “내가 이걸 보려고 이 시간들을 견뎠나 보다..”싶으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끝나버린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걸 보려고 버텼나 보다.
삼 스파이더맨의 등장
(이하 톰 홀랜드 = 톰스파, 토비 맥과이어 = 샘스파, 앤드류 가필드 = 어스파로 표기)
메타버스를 통해 만난 스파이더맨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심장이 하늘로 솟았다 곤두박질치듯 강하게 뛰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 걸까. 벅차오른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 영화에 가득한 이전작들의 오마쥬 장면들과 고민하고 있는 톰스파에게 건네는 선배 스파이더맨들의 위로까지.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같은 고민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결국엔 성장하는 스파이더맨들
‘두 개의 삶’은 역대 스파이더맨 모두가 공통으로 고민했던 문제다. 히어로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삶 or 평범한 피터 파커로서의 삶. 스파이더맨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없고 피터 파커로 산다면 내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세상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거기에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험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선한 히어로이기 전에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의 본성까지 끄집어내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들 속에서 흔들리는 피터와 끝까지 피터를 잡아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가장 큰 감동 포인트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한 사람만 노력해도 세상은 달라진다.” 그리고 피터는 누구보다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응원까지. 피터는 사랑하는 이들의 말을 양분 삼아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과 선한 본성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샘스파는 벤 삼촌과 친구 해리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어스파는 아버지와 거미에 대해 얽힌 비밀과 두 개의 삶 중에서 고민을 반복하다 선택을 하는 순간에 사랑하는 그웬을 잃게 된다. 포탈을 타고 다시 등장한 그는 여전히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듯한 모습을 보인다. MJ와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톰스파를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한 장면처럼 먼 바닥으로 추락하는 MJ를 구해낸 어스파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온 죄책감에서 한걸음 벗어난다.
톰스파는 빌런들을 고칠 수 있다며, 인간의 선함을 믿다 메이 큰엄마를 잃는다. 선함을 믿고 모두를 도와야 한다던 메이의 말을 따르며 많은 이들을 도와온 피터의 믿음이 깨지고 그는 폭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앞서 같은 아픔을 겪어본 선배 스파이더맨들은 톰스파의 분노를 막고, 마음을 되돌려놓는다.
도덕성과 선함은 약점이 아니다
피터가 여러 평행 우주에서 온 빌런들을 되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사람의 본성과 운명은 바꿀 수 없다며 주문을 강행하려 하지만 피터는 달랐다. 피터는 메이 큰엄마의 말을 따라 빌런들을 고쳐놓기로 결심한다.
피터는 모두가 믿지 않고, 모두가 안될 거라 말한 일을 해낸다. 정확히 말하면 세 명의 피터 파커가. “너의 약점은 도덕성”이라고 비웃던 빌런을 고치고, 미스테리우스가 옳았다며 스파이더맨을 비난하는 세상을 한 번 더 구한다. 스파이더맨은 남들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선함’을 가슴 중심에 품고 오늘도 묵묵히 누군가를 구한다.
다시 처음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몰려오는 평행 우주의 존재들을 보며 피터는 큰 결심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멋진 슈트와 비록 익명이지만 우주를 구한 스파이더맨이라는 명성, 집과 친구들. 모든 걸 포기한 피터는 소중한 친구들이 남긴 흔적을 들고 작은 방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네드와 조립했던 레고 캐릭터와 MJ가 건넨 커피. 그리고 책상에 널브러진 천 조각들과 새로운 스파이더맨 슈트.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스파이더맨이 해야 할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보인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렇게 자연스레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의 세계관에서 퇴장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발로 뛰고 구르며 다시 어벤져스의 스파이더맨이 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3편을 추가 계약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 톰 홀랜드의 말을 보다 보면 그의 피터 파커를 보내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또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노웨이홈>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적절한 쉼표로 기억될 것이고, 이렇게 끝나게 된다면 아름다운 마침표로 기억될 것이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는 어째 항상 짠하고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초월적 힘을 가진 히어로라기보단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인간적이고 친절한 이웃의 느낌이 더 강해서 그런 걸까? 처음으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접한 지 10년이 더 지났다. 나의 첫 번째 히어로 스파이더맨, 그와 쌓아온 시간이 내 마음속에 이렇게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어떻게 될진 몰라도, 난 이 영화를 끊임없이 찾고, 또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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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할 수 없을 만큼, 머물 수 없는 마음들.
- 존스 레이먼의 The Half Life 원작 소설인 영화 퍼스트 카우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첫 장을 여는데,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만큼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곱씹어볼 수 있다. 이토록 낯선 곳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이들의 짧지만 긴 여정이 시작된다. 서부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말, 카우 보이, 거친 모습들이 생각나지만 이 영화는 어딘가 좀 다른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낯선 단어에서 오는 생생한 낯섦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다소 좁은 화면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평온함으로 뒤덮인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때의 흔적이 현재에 의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킹 루에게 옷과 술을 비롯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쿠키와 킹 루는 시간이 지나 어느 마을에서 만나고 킹 루는 쿠키에게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술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진지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세운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어느새 명확한 구상으로 이루어져 빵을 만들어 팔게 된다. 쿠키가 만든 빵은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설 만큼 굉장한 인기를 누리게 되어 팩터 대령도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면서 그들이 몰래 행했던 일들도 조금씩 불안해진다. 바로 이 마을의 최초이자 유일한 젖소에게서 몰래 짠 우유로 만든 것도 모자라 팩터 대령의 암소였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은 끊임없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지만 이 이야기의 화자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고 반문하듯 자연을 제외하곤 누구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어떠한 결말을 쥐어준다.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명확하지는 않다.백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비주류인 데다가 소외된 두 사람이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우정을 유지하리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다시 만나 그 자리에 계속 머문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 중에서 가장 낯설지 않은 두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은 참 짧고도 길었다. 앞과 뒤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이 영화도 그러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과 정착할 수 없을 만큼이나 머물 수 없는 마음들이 마주하여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 귀결되게 한다. 처음에는 오해했고 두 번째는 진지했으며 세 번째는 들킬 위기에 처하면서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그 우정이 참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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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게 온 DCEU의 마지막 편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의 야욕을 꺾고 아틀란티스 왕국의 왕좌를 차지한 '아쿠아맨/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 왕비 '메라'(엠버 허드)와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아들을 키우며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그에게 과거의 악연이 다시 찾아온다. 아쿠아맨에게 아버지를 잃은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마틴 2세)가 지구를 파괴할 무기인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고 아틀란티스를 공격한 것.
예기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아서는 과거 블랙 만타와 손을 잡은 바 있는 옴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 사막 감옥에 갇힌 옴을 찾아가고, 그를 감옥에서 꺼내준 아서. 의심과 불신 속에 한 팀을 이룬 아서와 옴은 이제 남태평양의 한 섬으로 향한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켜 지구를 파괴하려는 블랙 만타와 그를 조종하는 사라진 왕국의 '코닥스 왕'을 무찌르기 위해서.
<아쿠아맨 2>를 보는 두 시선
2018년에 개봉한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아쿠아맨>은 시리즈 초석 역할에 충실한 영화였다. 전작 <저스티스 리그>에서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해 그저 '물고기랑 대화하는 애'였던 아쿠아맨. 그의 이미지는 '호쾌하고 상남자스러운 바다의 지배자'로 180도 달라졌다. <컨저링>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메가폰을 잡았던 제임스 완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흥행 성적도 훌륭했다.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에 개봉한 DC 원작 영화 중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조커>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물맨(아쿠아맨) 봄은 온다"는 밈이 유행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1편의 평가와 성적만 놓고 보면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을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DCEU의 현황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출한 제임스 건이 총괄 기획을 맡은 DC 유니버스가 새 출발을 알리면서 세계관 자체가 취소됐기 때문. 그 결과 DC 유니버스로 편입되지 못한 <아쿠아맨 2>은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숱한 재촬영과 재편집 뉴스도, 조니 뎁과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한 엠버 허드의 출연도 희소식은 아니었다.
엇갈린 시선 속에 도착한 <아쿠아맨 2>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전편에서 스쳐 지나간 환경 문제를 주요 소재로 삼아 예상 못한 큰 그림을 보여줬고, 아쿠아맨의 서사도 한층 풍성해졌다. 근래 히어로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액션의 쾌감도 강렬하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미처 못 지운 재촬영의 흔적 때문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특히 존재 의의가 없다는 한계를 뒤엎을 한 방은 끝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다급한 현실을 직시한 큰 그림
MCU의 전성기였던 2010년대 후반만 해도 MCU의 장점은 현실성이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호크아이 등은 당장 지구에서 활동해도 위화감이 없어 보이는 영웅이었다. 그랬기에 관객들도 그들의 서사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반면에 DCEU의 다소 비현실적인 히어로들은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솔로 영화가 나온 슈퍼맨과 원더우먼만 해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외계인과 신화 속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MCU와 DCEU에 대한 평가가 마침내 뒤바뀐 듯 보인다. 멀티버스 사가에 힘을 쏟은 마블은 점점 공허해졌다. 다중 우주와 양자 영역, 시간여행이 중심 소재가 되면서 MCU 영화들은 관객들이 발 딛고 있는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반면에 DCEU는 오히려 지구에 가까워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환경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아쿠아맨 2>의 메시지는 그 어떤 히어로 영화보다도 현실적인 위협과 맞닿아 있으니까.
물론 전편에서도 환경 문제는 중요한 소재였다. 해양 오염 문제 때문에 옴이 이끄는 아틀란티스 군대가 육지 침공을 계획했을 정도였다. 단지 1편이라는 특성상 부각되지 못했을 뿐이다. 거시적인 문제를 화두로 던지기 전에 아쿠아맨 캐릭터 소개, 아서와 옴의 왕위 싸움, 아서와 메라의 로맨스만 다뤄도 러닝타임이 부족했으니.
<아쿠아맨 2>는 다르다. 빌런의 동기, 행적, 계획 모두 지구 온난화와 맞닿아 있다. 당장 극지방이 녹지 않았다면 블랙 만타는 블랙 트라이던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더해 블랙 만타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켜 남극 빙하에 갇힌 사라진 왕국 '네크루스'를 부활시키려는 코닥스 왕의 음모도 이뤄질 수 없다. 이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영구 동토층에 얼어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환기시킨다.
야심 찬 그림 위에서 뛰어놀다
이처럼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야심 찬 큰 그림은 아쿠아맨이라는 영웅의 서사를 풀어내는 데 최적화된 도구이기도 하다. 여러 능력이 있지만, 아쿠아맨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소통'이기 때문. 특히 기껏해야 물고기와 대화한다고 놀림거리가 되는 이 능력이 의외로 가장 영웅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적 관점에서 볼 때, 영웅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인물이다. 영웅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예언을 실천하는 이다. 동시에 인간 중 가장 뛰어난 자로서 신이 정한 운명에 도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간극은 그리스 비극의 원천이었다. 오이디푸스도, 아킬레우스도, 테세우스도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세계에 도전하다 파멸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아서 커리의 서사도 다르지 않다. 그는 아틀란티스의 왕이자 육지와 바다의 전쟁을 막은 영웅 아쿠아맨이다. 육지와 바다를 자유로이 오가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두 세계의 공존을 가능케 한 셈이다. <아쿠아맨 2>는 이제 그의 영웅성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킨다. 두 세계의 가교 역할을 넘어서서 두 세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업을 아서에게 부여한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인간과 아틀란티스인 모두의 생존을 위한 일이니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블랙 만타는 아버지를 죽인 아쿠아맨을 증오하고, 인간은 미지의 국가인 아틀란티스를 막연히 두려워한다. 옴을 비롯한 아틀란티스인들은 바다를 파괴하는 육지에 세계에 분노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아서는 블랙만타와 그를 조종하는 코닥스 왕과 대적하고, 자기와 반목했던 이부동생의 마음을 되돌려 협력해야 한다. 모든 적개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바다와 육지가 협력하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점을 계승하는 중입니다
더 나아가 <아쿠아맨 2>는 슈퍼 히어로 영화다운 방식으로 아쿠아맨의 과업을 보여준다. 바로 액션이다. <아쿠아맨 2>의 액션은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도착해 블랙 만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대표적이다.
아서와 옴은 정글에서 거대해진 메뚜기와 식충식물에게 불시에 기습당한다. 블랙 만타가 가공할 만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안 섬의 생태계가 불안정해졌고, 그 결과 돌연변이 동식물이 등장한 것. 지구의 이상 징후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액션 시퀀스의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셈이다. 그렇기에 괴물이 된 동식물과 아서 형제의 추격전은 마냥 유머스럽지 않다. 꽤 징그럽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물론 메시지, 서사와의 연결성을 빼고 보더라도 <아쿠아맨 2>의 액션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비록 스케일이 전편보다 줄어들었고 CG 티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아틀란티스에서 펼쳐지는 수중전이나 네크루스 전투는 여전히 화려하다. 다양한 색상의 광원을 활용한 덕분에 액션의 움직임과 흐름을 따라가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는 너무 어둡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탈로칸 연출과 대비를 이룬다.
초기 DCEU 영화의 느낌이 되살아난 장면도 눈에 띈다. 히어로와 빌런이 일 대 일로 맞붙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경쾌한 리듬감과 명확한 카메라워크의 조합 덕분에 아쿠아맨과 블랙 만타가 각자 삼지창을 들고 일기토를 펼치는 장면은 문자 그대로 눈이 호강한다. 잭 스나이더가 제작에 참여한 <맨 오브 스틸>, <원더우먼> 등이 빠른 템포의 액션씬을 통해 히어로의 초인적인 힘을 강조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부실할 수밖에 없는 기초 공사
하지만 야심 찬 소재와 메시지, 히어로 영화로서 부족함 없는 액션의 완성도는 온전히 빛나지 못한다. 영화의 기본 토대인 각본과 편집이 상당히 불안정하기 때문. <아쿠아맨 2>의 플롯은 크게 세 개다. 1) 숙적이었던 아서와 옴이 함께 모험을 떠나는 버디 무비. 2) 복수심으로 가득 찬 블랙 만타와 그 배후인 코닥스 왕의 계략. 3) 왕이기 이전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아서의 가족 이야기.
그런데 <아쿠아맨 2>는 플롯 간의 연관성을 제때 못 보여준다. 1번과 2번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블랙 만타를 막기 위해 전편에서 그와 관련이 있는 옴을 활용한다는 내용이므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반면에 세 번째 플롯은 코닥스 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나머지 플롯과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세 플롯 중 등장은 가장 빠르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또 각 플롯은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아서의 가족 이야기에서는 아버지로서 아서 커리의 정체성을 강조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엠버 허드의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내용이 대폭 삭제된 흔적이 역력하다. 할머니가 된 '아틀라나'(니콜 키드먼)의 등장 타이밍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가족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반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틀란티스가 습격당할 때 갑자기 등장해 존재감을 뽐낸다.
아서와 옴의 버디 무비는 진부하다. 특히 <토르: 다크월드> 속 토르와 로키의 이야기를 답습한다. 선조가 패퇴시킨 고대의 적과 맞서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도, 감옥에 갇힌 동생을 형이 몰래 구해 모험에 참여시킨다는 전개도 빼닮았다. 그나마 옴이 로키보다 콤플렉스가 덜하고 진중한 게 차이점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장점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서 형제의 서사가 토르와 로키의 갈등보다 덜 극적이라는 뜻이니까.
근본적인 한계는 못 넘은 마지막 인사
그뿐만이 아니다. 디테일의 부족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퀀스 간의 전환은 종종 부자연스럽고, 음악도 전편에 비해 활용법이 어색하다. 전편이 분위기를 환기시킬 때마다 음악을 적재적소에 삽입한 반면, 이번에 활용된 음악은 분위기를 자꾸 끊는다. 개그씬도 맥락이 어색한 경우가 잦다. 그 결과 <아쿠아맨 2>는 전반적으로 마치 밀린 과제를 해치우는 듯하다.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기 바쁘다는 인상이 진하게 남는다.
인상적인 큰 그림과 확실한 장점을 갖추고도 세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결국 불안정한 제작 환경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임스 완이 주연 배우 사망으로 인해 각본을 수정하고 숱한 재촬영을 진행하면서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는 전례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그에게도 DCEU와 DC 유니버스 사이에서 표류 중이던 <아쿠아맨 2> 구조작업이 얼마나 난관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재미를 갖췄지만 <아쿠아맨 2>의 끝은 공허하다. <아쿠아맨 2>의 결말은 <블랙팬서>와 유사하다. 아서의 결단 덕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틀란티스는 육지와의 협력을 약속한다. 만약 DCEU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이는 세계관의 일대 변화를 기대케 하는 가슴 뛰는 마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그렇게 <아쿠아맨 2>는 무의미한 자기소개를 마지막으로 DCEU의 문을 닫는다.
Acceptable 무난함
조금만 빨리 왔다면 DCEU의 미래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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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면을 알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가족’
주인공처럼 공부와 연애가 전부이던 10대 시절, 따로 사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학교가 끝나면 유치원에 있는 동생을 데리러 가야 했다. 다행히인지 공부에는 별 욕심이 없었지만 친구들이랑 놀 때면 집에 혼자 있는 동생이 마음에 걸려 뭔지 모를 죄책감을 가진 채 핸드폰의 진동모드를 벨소리로 바꾸고 손이 닿는 곳에 둬야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다. 가족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상황이었기에 반자발적으로 동생을 돌보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만 힘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굳이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급하게 연락을 받고 조금 늦게 동생을 데리러 가는 날엔, 텅 빈 놀이방에서 혼자 색종이를 오리고 있던 동생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다. 10대면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연애에도 관심을 가지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했다. 실상은 매일 가족과, 나의 미래와, 나의 오늘과 균형을 맞추며 고군분투해야 했다. 한 감독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어쩐지 마음이 좀 놓였다.’ 가끔은 명확하고 현실적인 대안보다도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잊고 있었던, 잊으려 노력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위로가 되었던 영화 <코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영화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작은 어선에서 시작한다. 농인 아빠 프랭크 로시(트로이 코처)와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 그리고 청인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무도 없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바다는, 육지로 돌아와 루시를 통해 청인들과 소통하는 프랭크와 레오에게는 육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바다로 가는 가족을 두고 노래 연습을 하러 가는 루비의 내적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농인 가족의 사이에서 자라고, 수어를 가장 먼저 배웠을 루비는 새로운 언어이자 가족과 소통이 불가한 ‘노래'를 하게 된다. 영화의 기본 로그라인이 되는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오던 패턴을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주제가 ‘CODA(Children Of Deaf Adult)’인 만큼 영화에서 ‘언어'란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이자 중요한 요소이다. ‘가족과 소통해오던 언어를 바꾼다(새로 설정한다)’는 말은 가족과의 갈등을 통한 루비의 성장기임을 보여준다. 노래는 수화와 음성어를 쓰던 루비의 새로운 언어이다.
여기에는 음악 선생님 ‘미스터 V’의 역할이 크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스터 V의 주된 교육 방식은, 음악적 기교들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 내고 호흡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발성을 찾는 것이었다. 미스터 V는 ‘새로운’ 언어가 아닌 루비가 익힌, 사용하던 언어를 통해 루비만의 언어를 확장시켜준 셈이다. 따라서 노래는 루비에게 단순히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온 과거의 언어인 수어와 소리의 혼합형 언어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는 루비와 가족을 분리시키는 수단이기에 루비의 자아를 찾는 양면적인 도구가 된다. 덕분에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구사하고 가족 외의 사회와 소통하는 음성어,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며 루비의 성장기를 마친다.
‘구름의 양면을 봤지만 구름의 실체를 모르겠어.’ 루비가 영화 후반부, 시험장에서 부르는 노래 <Both Sides Now>의 가사다. 노래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구름을 보며 아이스크림 성, 계곡을 상상했지만 어느새 구름은 태양을 가리고 비를 내려 앞길을 막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모두 구름의 환상일뿐, 여전히 구름을 모르겠다. 동일한 패턴으로 사랑과 인생까지 이어진다. 노래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가족'도 넣어볼 수 있겠다. 노래를 듣고 나면 이 영화 한 편을 압축한 것 같았다. 루비 로시의 시선을 통해 가족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가족이란 실체는 모르겠다. 성장 중인 루비에게 가족의 존재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계속해서 ‘그래도 우린 하나 된 가족'의 뉘앙스만 풍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갈등들을 아낌없이 보여줬기에, 그저 그 과정에서 루비의 성장을 보여주었기에 단순한 우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가지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과 나의 삶의 저울 위에 서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췄던 것 같다. 어느 쪽도 답은 없었고 그 균형을 맞추는 자체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성장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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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에서 만난 가수의 삶 -7-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아카데미 후보작 중 하나인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과 같이
음악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 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사랑한 가수들의 삶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배우들이 완벽히 재현해낸 그들의 모습을 만나러 가보실까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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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4? ?외국 배우 내한이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4? ⠀ ?네 번째 주제? ⠀ ?외국 배우 내한이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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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 걸> 공식 예고편
아내를 죽게 한 놈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리라.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남편(제이슨 모모아)이 복수를 다짐한다.
유일한 피붙이인 딸(이사벨라 메르세드)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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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65> 메인 예고편
6,500만 년 전, 지구로의 불시착 4월 20일, 지구 역사상 가장 극한의 사투가 시작된다! 서바이벌 액션 블록버스터 [65]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