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댕이2023-12-20 23:56:51
자선이 아닌 연대
영화 <나의 올드 오크 리뷰>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4), <미안해요, 리키>(2019)에 이은 영국 북동부 배경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기존 무대였던 뉴캐슬에서 더럼의 어느 폐광촌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지역으로 옮겨간 영화는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난민 이주자들 간의 갈등을 다룬다. 켄 로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한 만큼 빠른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들보다도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화법이 두드러지며 그와 대조되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주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소란스러운 다툼 소리를 배경으로 흑백 사진이 연속되는 오프닝부터 영화에서 카메라의 존재감이 종종 눈에 띈다. 시리아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와 마을에 내리고 마을 주민들은 이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을 찍던 야라를 발견하고, 그녀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몰래 꺼내 마음대로 사진을 찍다가 떨어뜨리면서 카메라는 망가트리고야 만다. 꽤나 강렬한 이 오프닝 씬은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 상기시키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격과 기록의 카메라. 피사체는 촬영자의 시선에서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담긴다. 오프닝에서 연속된 사진과 다투는 소리를 통해 우리는 야라의 눈에 비치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야라의 시선에 좀 더 기울어 영화를 보게 된다.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마을 사람 중에서도 난민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펍에 손님으로 와 그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말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나서지는 않는다. 단지 작은 단체 안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같은 것을 챙겨주고 관심 가질 뿐이다. 선한 소시민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일부를 제외하곤 그들 대부분은 난민들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적대시하지만 특별히 그들을 괴롭히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막거나 크게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랬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난민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공적 대화의 공간이자 쉼터였던 올드 오크가 난민들에게도 열리게 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TJ를 비롯해 난민들을 챙겨주는 이들이 탐탁지 않던 이들이었으나 그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TJ가 자신들에게는 빌려주지 않던 펍의 내부 공간을 난민들과 함께하는 행사의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이에 반기를 들고, '올드 오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것이 마을의 뜨거운 화두가 된다. 노동자의 입장에 대해 주로 찍던 사회주의 감독이 난민과의 갈등 속에서 또 다른 약자를 차별하는 노동자의 양상을 그려낸 것은 다소 이례적인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난민 집단 간의 이분법 갈등 구조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켄 로치 감독은 비록 차별하고 적대하는 이들일지라도 결국 잘못된 선택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들의 모습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정부의 난민 수용지는 왜 하필 우리 마을이어야 하며, 우리도 살기 힘든데 당장 나와 관련도 없는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지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난민 수용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갈려 토론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에는 결국 이들의 입장과 사정까지도 이해하도록 만든다. 보통의 사람이 문제에 부딪힐 때, 그 구조를 따라가며 전체를 파악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내 삶조차 여유가 없어 타인에게 눈 돌리기란 어렵기 때문에 구조의 모순을 바라보기보다 당장 눈앞의 걸림돌을 비난하는 게 쉽다.
이런 모순은 TJ의 개 마라와 관련된 일화와도 상통한다.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심지어 TJ까지도 그런 결말이 벌어질 걸 과연 한순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흥분했을 때는 주인조차 통제 불가능한 대형견을 불완전한 목줄 하나 채워 돌아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 이를 보며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더 안전한 방식으로 개를 기르는 것이 견주의 의무는 아니다. 국가의 권력과 체제 아래에서 국민은 상대적 약자로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승하는 물가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최저임금, 고용난 등의 최악의 환경에서 약자들은 그들 간 우위를 겨루며 자신보다 취약한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분풀이를 한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는, 어느새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방치하다시피 한 그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화해의 방법은 '연대'다.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연대와 공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선한 인간성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용기를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저항하기.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들도 사회상을 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사회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오면서도 소위 말하는 치트키 장면은 적은 감이 있다. 당장 앞선 두 영화의 가슴을 울리던 장면들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이 영화를 충분히 밋밋하게 느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회 영화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를 지킨 켄 로치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가 마지막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여전히 남아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금 되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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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테스와 보낸 여름> 눈부신 싱그러움과 흐뭇한 성장기
테스와 보낸 여름 (My Extraordinary Summer with Tess , 2019)
<테스와 보낸 여름>은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떠난 바닷가 근처의 휴가지 여행을 떠오르게 합니다. 휴가지의 낯선 풍경과 함께 여름을 간 다양한 사람들,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이 주는 낯선 느낌은 이제껏 겪어왔던 세상과는 달랐던지라 신비스럽기도 하고, 다양한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휴양지 테르스헬링에서 펼쳐지는 조금 엉뚱한 소년 샘과 그보다 더 엉뚱한 미지의 소녀 테스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함과 동시에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고, 코로나로 집에 발이 묶여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을 환기 시켜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영화일 것입니다.
포스터의 색감만 봐도, 눈이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온 샘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공룡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궁금해하는 조금 엉뚱한 소년입니다. 자연의 시간 순리 상 부모님과 형이 먼저 떠나게 될 것이므로 나중에 자신이 홀로 남겨졌을 때를 대비하여 휴가지에서 휴가보다는 외로움 적응 훈련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만난 소녀 테스!
만나자마자 샘에게 살사를 추자고 권하는 샘보다 조금 더 엉뚱하고 발랄한 이 소녀는 무언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스의 엄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어른 남자인 휘호를 숙박 이벤트 당첨자로 초대하고, 어쩐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테스가 야속한 샘. 그런 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 비밀로 새로운 일들을 맞이하게 되는 두 사람. 생각지 못했던 테스의 비밀은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 아래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언젠가 혼자 남겨질 것을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걱정일까?
아쉽게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세상에 혼자 남겨질 운명입니다. 아마 샘처럼 가족 중 막내인 경우라면, 그럴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제 기억으로, 저도 이런 두려움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엄마에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만큼은 무조건 나보다 하루 더 살아야 돼!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 샘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는지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느라 하루의 정해진 시간만큼 혼자 바닷가에서 놀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홀로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던 도중, 밀물이 들어오는 갯벌에 발이 빠져 그의 노력과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모두를 두고 가장 먼저 떠날 뻔하게 되죠. 그때 만난 바닷가 근처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로부터 혼자이지만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많아 괜찮으니, 더 늦기 전에 많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죠.
외로움 적응 훈련중이랍니다.
아이가 하는 걱정이나 어른이 하는 걱정이나 맥락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세상에 혼자 남겨질 걱정을 하며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진 않지만, 그와 비슷한 부류인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매우 기우 스러운 걱정을 하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을 방해 받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면 이런 부류의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에 노출되지만, 선택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 것들을 걱정하며 지금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 걱정을 지속할 것인지 벗어날 것인지를요. 영화는 매일에 충실하고 순간의 추억을 만들며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을 쌓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샘을 통해 묻고 있는 듯합니다.
▶ 사랑스러운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름도 어려운 두 배우, 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 조세핀 아렌센은 영화 내내 사랑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이전 연기 경력이 없는 배우로 캐스팅했다더군요! 그래서인지 연기를 꽤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서툴고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들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와 잘 어울립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춘기 소년소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또 또래이더라 하더라도,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키가 더 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영화에서도 테스 역의 조세핀 아렌센이 키가 조금 더 큽니다. 감독의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네덜란드 아동 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9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 국제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영화제 통산 16개의 수상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은 어린이 영화 대상으로,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심사위원들이 선정하는 상이라고 합니다.)
또 영화를 보는 내내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게 하는 영화의 배경지, 테르스헬링 섬(Terschelling)도 분명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전체 매력 포인트에서 약 1/3가량은 차지할 듯 ㅎ ) 네덜란드의 서 프리지아제도에 딸린 섬이라고 해요. 가져올 수 있는 이미지가 없는 게 아쉬운데, 그쪽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의 블로그에서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멋져요!
▶ 한 줄기 영화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입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소년단에 입단한 소년 조조와 그의 집에 몰래 숨어있던 소녀 엘사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입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과 나치 통치하의 세상, 히틀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종일관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으나, 찬찬히 관찰해보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극과 참상은 더 슬프고 잔인한 것 같습니다. 조조의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를 연기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유쾌한 연기가 더해져 제 기준 작년 최고의 영화로서 매우 강력히 추천해드리고자 합니다. ?
두 소년소녀의 싱그러움에 흐뭇하고, 그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테스와 보낸 여름>, 코로나로 따로 멋진 휴가지를 가지 못하셨다면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예쁜 이야기들과 경치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처럼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주관 가득 별점 : ★★★★
- 여름 휴양지, 못 다녀오셨다면 꼭 보세요!
- 음악, 색감, 연기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눈도 마음도 즐겁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그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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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전락하더라도 놓을 수 없는 것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박쥐를 다시 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봤는지 셀 수도 없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는 아니지만 내용과 대사를 다 알아도 항상 소름이 돋은 상태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이다 보니 소모임 멤버들에게 하도 호들갑을 떨어 놔서 다들 많은 기대를 하고 봤을 것 같은데, 개봉 당시에도 평가가 엇갈렸듯이 보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불쾌하고 찝찝하다는 평은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외모라고 했다.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가 1순위라는 감독의 말을 증명하듯이, 이 영화는 송강호 김옥빈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인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본작의 주인공인 현상현은 정말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신부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없음에 허무함을 느끼고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신부로서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직접적인 구원자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결국 불치병 바이러스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게 된다.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를 몸에 집어넣은 뒤 행하는 그의 기도문 독백은 이 신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람인지를 초반에 확실히 설명해주는 역할과 이후의 장면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떠한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결국 현상현 신부는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어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후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사망 판정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해 한국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혼자 살아 돌아온 현상현 신부의 앞에는 그를 메시아로 칭하며 치유받기를 원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아버지와도 같은 신부님에게 '치유되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자신이 약간이라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 부산에서 친구로 지냈던 강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머니인 라 여사에게 듣게 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서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태주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렸을 때 강우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던 상현은 '집에 놀러 가면 여동생이 부끄럽다고 숨고 그랬었는데..'라고 회상한다. 이 말을 들은 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이는 태주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첫 장면임과 동시에 이후 어떤 장면에서 태주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때의 인연으로 현상현은 라 여사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마작 모임에 초대받게 되고, 태주와는 두 번째로 대면하게 된다.
해당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현실에서 흔하게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소품과 장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벽지가 그러했고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 벽지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 속 중심이 되는 장소인 한복집 건물 역시 여러 나라의 특징이 결합된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마작을 하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게 보이는 1층에는 한복집이 위치하고 있으나, 그 위 층에서 다양한 인물이 모여 도박인 마작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반복적인 삶 속에 갇혀 있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고자 하는 태주의 심리 상태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 있는 소재들이 충돌하고 있는 이 공간은 편안한 집이 아니라 음침한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는 팜므파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등장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 태주는 그러한 면모를 극한까지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주는 자신이 원치 않는 반복적인 삶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물이며 이를 약간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몽유병을 핑계로 밤마다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인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억압받은 그녀는 집에서 완전히 도망치지는 못하고 동네 골목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태주의 가족은 라 여사의 집 작은 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태주가 어렸을 때 그녀를 두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서 혼자 남겨진 태주를 라 여사가 거두어 딸처럼, 강아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 대사를 딱 들으면 때 단순히 태주를 아끼고 귀여워하며 키웠다는 말인 듯싶지만, 이 집안 속에서 태주의 취급을 보았을 때 '개처럼 키웠다'라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중반에 밤마다 달리러 나가는 태주를 막기 위해 라여사가 문에 자물쇠를 거는 것만 봐도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라 여사는 태주를 강우의 간병인처럼 기능적으로 대하고 있는 인물이며, 다른 마작 멤버들 역시 외국인인 이블린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물들로 묘사가 되고 있다. 태주는 원래 이 마작 멤버에 포함될 수가 없는, 즉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가 없는 인물이지만 현상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녀를 묶고 있던 속박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한편 현상현 신부는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를 갈구하게 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고자 했던 현 신부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흡혈귀가 되어 육체적 쾌락에까지 이끌리게 된다.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려고 했던 상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태주에게 끌리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태주 역시 상현에게 호감을 느끼고 상현을 통해 한복집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상현이 맨발로 뛰고 있는 태주를 번쩍 들어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설렘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멜로 연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국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가지게 되고, 태주를 사랑하게 된 현 신부는 자신의 몸 상태를 태주에게 고백한다. 남의 피를 마시는 현 신부의 모습을 본 태주는 경악하며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현 신부는 태주를 쫓아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며 자신이 마신 피의 주인은 원래 다른 사람들 먹이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라 이해해주실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뱀파이어가 되어 타인의 피를 마시게 된 1차 전락, 신부로서 금기인 육체관계를 가지게 된 2차 전락을 겪은 상현은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신부로서의 자신과 흡혈귀로서의 욕망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던 태주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과 정 반대에 있다고 느끼며, 밤의 골목을 뛰어다니는 행위를 중단함과 동시에 밤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자신의 삶 속에 집어넣게 된다.
상현은 사랑하는 태주를 안고 마치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것처럼 높은 건물 위에서 쉽게 뛰어내리지만 건물을 다시 올라갈 때는 태주를 안고 계단을 오른다. 이 장면을 건물을 뛰어내리는 태주의 표정과 연결 지어 생각해봤을 때 뛰어내리는 것, 즉 전락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쉬운 일이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헤어질 결심 속 해준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아 자신의 직업윤리와 가치관 버리게 된 상현은 결국 물에 가라앉은 집 속 옷장에 강우를 가둬 살해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던 상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3차 전락에까지 이르게 되며, 인간도 짐승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신부까지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목격한 상현은 더 이상 신부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게 되고, 더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내 얼굴은 비록 냉담하고 둔감할 것이나 내 심장은 항상 당신을, 오직 당신만을 위해 뛰겠나이다.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끝없는 전락의 과정 속에서 태주 한 사람만을 구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태주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이 말하는 위 대사를 영화 초반부의 기도문과 비교해봤을 때 상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강우를 제거하면 거칠 것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된다. 태주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강우의 환영이 자신의 입에 쪽가위를 집어넣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고 몸이 물속에 잠기는 체험을 하기도 하며 육체관계 중 두 사람 사이에 강우가 끼어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져 다른 마작 멤버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는 등 강우를 죽이기 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영화의 내용을 사랑의 과정으로만 생각했을 때, 상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여러 긴장과 제약이 많았던 연애 시작의 설렘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태주의 욕망에 의해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게 된 상현은 태주를 다그치지만, 태주는 오히려 '내가 아니었어도 당신은 강우를 죽였을 것'이라며 상현의 합리화를 비웃고 그를 병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강우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태주의 말에 이성을 잃은 상현은 결국 그녀까지 살해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4차 전락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의 구도와 음악이 모두 압도적이라 가장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여 놓고도 슬퍼하기 이전에 흡혈 본능에 이끌려 그녀의 피를 마시는 상현의 모습은 소름 끼치기 가지 한다.
정신없이 피를 마시던 상현은 라 여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에 놀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게 된다. 영화 최후 반부까지 태주와 상현이 라 여사만은 죽이지 않는다는 점과 두 사람의 모든 죄를 지켜보거나 폭로하는 사람이 라 여사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라 여사는 태주와 상현의 최후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현은 태주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피를 먹이고,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 태주에게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라고 말한다. 이 대사 역시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해 놓고, 마치 그녀에게 뱀파이어로서의 새 삶을 선물하려고 의도했던 것처럼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상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흡혈을 하고 다닌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며 자신이 도와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죽는 것 같다고 또다시 합리화하는 상현에게 태주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생각하지 마라',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냐?'라는 대사를 통해 상현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폭주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며 상현은 자신의 선택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더 이상 태주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태주는 '당신을 살린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줘'라는 상현에게 '당신은 나를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라며 일갈한다.
태주는 라 여사의 폭로로 인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마작 멤버들을 죽이고,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를 돕는다. 마작을 하지 않았던 이블린만이 상현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마작이 인간의 욕망이나 악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작중 유일하게 도덕적 해이를 보이지 않는 인물인 이블린만이 살아남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선한 인물들이 이유 없이 죽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감독의 뚜렷한 가치관이 보이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죽을 필요 없는 인물이 죽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 소모를 자신도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악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상현은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 신도들의 캠프에 찾아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일부러 들킴으로써 그들을 헛된 희망으로부터 구원한다. 이후 상현은 새벽이 되기 직전 시간에 태주와 라 여사를 데리고 허허벌판 끝의 절벽에 도달한다. 처음에는 죽기를 거부하고 그늘 속에 숨던 태주였으나, 상현의 진심을 깨닫고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이 장면에서 태주가 상현이 신겨줬던 구두를 신는 것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살면서 느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서야 관객들은 태주도 상현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상현은 전락의 끝에 도달해서야 자기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합리화가 아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상현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태주, 앞으로 희생될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라 여사가 웃으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극단적인 이야기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통했던 것 같다. 자의와 타의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그 극한까지 달려간 뒤 허무하게 재가 되는 것은 굳이 뱀파이어나 재와 같은 소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상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전락의 끝에 가서야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는 결말 역시 흥미롭다. 결국 현상현은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 먹는 짐승'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인간으로서 죽기를 선택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다시 보며 느꼈던 것은 박찬욱 감독 영화 속에서는 역시 여성 캐릭터들이 빛나 보인다는 것이다. 박쥐의 태주와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비교해 보면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팜므파탈처럼 보이는 공통점이 있으나, 감독 자신의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테주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 된 서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의식을 무시하고서 보더라도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장면들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장면마다의 의미를 곱씹으며 보면 두 배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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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산업에 진출 예정인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최근 게임회사인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임원과 페이스북 부사장을 지냈던 마이클 버듀를 영입하며 게임 산업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버듀의 채용 소식을 처음 접한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내년 안에 비디오게임을 서비스 목록에 추가시키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넷플릭스는 이러한 새 시스템에 대한 추가 요금을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적 있죠.
마이클 버듀는 넷플릭스 입사 전, 페이스북 리얼리티 랩스(Facebook Reality Labs)에서 근무하며 오큘러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이용한 게임 콘텐츠 개발을 진행한 적 있습니다. 또한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임원으로 지내며 ‘심시티(SimCity)’와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 등을 운영하는 모바일 스튜디오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그레그 피터스 최고집행책임자(COO)의 직속으로 일할 예정입니다. 블룸버그는 또 넷플릭스가 이미 게임 개발 관련 직원 모집을 진행하고 있어 수개월 안에 비디오게임 전담팀을 꾸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게임 진출을 통해 춘추전국시대에 이른 OTT 시장에서 새로운 가입자 확보의 기회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국내의 쿠팡 플레이, 왓챠, 티빙, 웨이브의 성장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유입될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의 존재까지 감안하면, 이는 좋은 시도라고 볼 수 있겠죠.
현재 넷플릭스의 경쟁사인 디즈니 플러스는 자체 콘텐츠를 지닌 기업들을 인수하는 전략을 나서고 있으며, 아마존도 최근 영화 제작사 MGM을 인수했죠. 그러나 게임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OTT 플랫폼은 없기에, 넷플릭스의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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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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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적인 카체이싱을 담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신청 받은 주제는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베이비 드라이버
ⓒ 네이버 영화
synopsis
귀신 같은 운전 실력, 완벽한 플레이리스트를 갖춘 탈출 전문 드라이버 베이비.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그에게 음악은 필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같은 그녀 데보라를 만나게 되면서 베이비는 새로운 인생으로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같은 팀인 박사, 달링, 버디, 배츠는 그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는데...cine pick!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신선한 액션과 음악이 만나 색다른 카체이싱 영화를 선보인 <베이비 드라이버>. 현지 개봉 당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는 1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모가디슈
ⓒ 네이버 영화
synopsis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cine pick!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CG 없이 실제로 배우들이 운전하며 촬영해 리얼리티를 더했다. 모로코 올로케이션으로 진행해 영화의 스케일과 웅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포드 V 페라리
ⓒ 네이버 영화
synopsis
1960년대, 매출 감소에 빠진 ‘포드’는 판매 활로를 찾기 위해
스포츠카 레이스를 장악한 절대적 1위 ‘페라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한다.
막대한 자금력에도 불구, 계약에 실패하고 엔초 페라리로부터 모욕까지 당한 헨리 포드 2세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박살 낼 차를 만들 것을 지시한다.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싱 대회이자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
출전 경험조차 없는 ‘포드’는 대회 6연패를 차지한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고용하고,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지만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인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자신의 파트너로 영입한다.
포드의 경영진은 제 멋대로인 ‘켄 마일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레이스를 펼치기를 강요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불가능을 뛰어넘기 위한 질주를 시작하는데…cine pick!
토론토 국제 영화제, 런던 국제 영화제,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음향편집상과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많이 알수록 더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미리 관련 이야기를 본 후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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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 조가 살아남은 인류를 지배한다.
한편, 아내와 딸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사막을 떠돌던 맥스(톰 하디)는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가고, 폭정에 반발한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쥔 임모탄의 여인들을 탈취해 분노의 도로로 폭주한다.
이에 임모탄의 전사들과 신인류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맥스를 이끌고 퓨리오사의 뒤를 쫓는데...cine pick!
2015년에 개봉해 3번이나 재개봉을 한 많은 이들이 꼽는 최고의 카체이싱 영화이다.
미국의 유명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와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에서 2015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섬세한 미술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도미닉(빈 디젤)은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형제 제이콥(존 시나)이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와 연합해
전 세계를 위기로 빠트릴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패밀리들을 소환한다.
가장 가까운 자가 한순간, 가장 위험한 적이 된 상황
도미닉과 패밀리들은 이에 반격할 놀라운 컴백과 작전을 세우고
지상도, 상공도, 국경도 경계가 없는 불가능한 대결이 시작되는데…cine pick!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9번째 작품이자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다.
화려한 액션과 카체이싱 그리고 스펙타클한 스토리와 전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대작전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올림픽을 앞둔 1988년 서울.
패션은 올드 스쿨! 음악은 감성 충만! 레이싱은 월드 최강!
상계동 슈프림팀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된다.cine pick!
1980년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올드카부터 패션 그리고 음악까지!
스피드 있는 전개와 코믹 요소가 가득한 영화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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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2021)
* 이 리뷰는 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6개 부문 노미네이션, <미나리>
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미나리>는 오늘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외국어영화상과 아역배우상 총 2관왕을 차지하며 오스카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리고 마침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공개날 여우조연상,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하여 6개 부문에 노미네이션 되며 오스카 수상이 허황된 꿈이 아니었음을 보란듯이 증명해주었다. 연초부터 각종 비평가상과 영화제 수상을 휩쓸고 있는 화제작 <미나리>는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이와 같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일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한인 가정
1980년대, 미국 아칸소 농장의 트레일러로 이사를 온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부부의 자녀 '앤(노엘 케이트 조)'과 '데이빗(앨런 킴)' 가족은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낡은 트레일러 집 대신 농사 지을 땅을 산 제이콥은 가장으로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있지만, 안정적인 주거생활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 탓에 모니카는 앞으로의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하루는 집이 토네이도의 위협을 받아 모니카가 큰 불안을 느끼게 되고, 제이콥과 크게 부부싸움을 벌인 끝에 손자들을 돌봐주고 모니카에게 안정을 가져다줄 외할머니 '순자(윤여정)'을 아칸소로 모셔오기로 결정한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의 삶이 더 익숙한 데이빗은 할머니와 잦은 갈등을 빗게 되고, 이웃 '폴'과 단둘이 농사를 짓는 제이콥의 수확도 녹록지 않다. 데이빗과 순자의 관계가 좋아질 무렵, 순자는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고 모니카가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제이콥은 끝내 수확에 성공하지만, 제이콥의 농사, 데이빗의 심장병, 아이들의 양육, 어머니의 부양에 완전히 지쳐버린 모니카는 현실의 한계를 느끼고 제이콥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족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게 되는데...
예상 가능한 플롯, 큰 재미는 없다
개인적으로 <미나리>라는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실적이 워낙 좋기도 했고, 극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감상한 결과 생각만큼 인상이 진한 영화는 아니었다. 1980년대 미국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갈등, 낯선 곳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불안 등을 표현한 여타 비슷한 스토리 구조를 가진 작품들과 뚜렷한 차별점이 없었다. 드라이하게 가슴을 울린 좋은 영화임은 인정하지만, 이렇게까지 극찬을 받을만한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미나리>에게 이어진 극찬들은 주로 해외 시상식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한인 이민자 가정을 바라보는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의 관점 차이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움의 미학, 클리셰 탈피
<미나리>는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하고, 한국어로 대사를 치지만 엄연히 미국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굉장히 한국적이지만, 그 스토리의 구조와 촬영 기법, 연출 방식은 상당히 미국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나리>는 굉장히 기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인 내용을 갖고도 영화가 진부하지 않게 보일 수 있던 이유는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이 절제와 비움이었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한국 가족영화 특유의 전형적인 전개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데, 이 부분이 바로 영화가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미나리>가 한국감독이 연출한 국내 영화였더라면, 뇌졸증에 걸린 '순자'의 죽음과 같은 신파적인 소재로 가족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성장을 이끌어내는 플롯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이 만든 <미나리>는 할머니 캐릭터를 억지 눈물 짜내기 포지션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감동을 강제하지 않는데도, 드라이한 여운을 이끌어내고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물 간의 갈등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나리>의 극중 배경인 1980년대는 동양인에 대한 백인들의 원색적인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다. 따라서 극에 제이콥의 가족을 괴롭히거나 인종차별적 행동을 가감없이 펼쳐줄 인물이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렇지만, <미나리>는 그러한 진부한 설정을 따르지 않는다. 교회에서 만난 백인들은 낯선 분위기 속에서 적응을 못하는 모니카에게 친절을 베풀고, 데이빗이 새로 사귄 백인 친구 역시 처음에 호기심 때문에 차별적인 언행을 했을 뿐 후에 친구로 함께 잘 지낸다. 즉, 제이콥의 가족을 제외한 인물 중 악인이라 칭할 법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서 쓸데없는 갈등 비중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 속 이방인들이 겪는 내적 갈등에만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굉장히 사소한 설정 차이일 수 있지만, 이러한 미세한 부분에서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윤여정의 순자,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
<미나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존재는 감독도, 영화도, 젊은 배우들도 아닌 배우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주인공들의 어머니이자 외할머니 '순자'를 연기하며 미국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K-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캐릭터가 해외에서는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사실 한국 드라마를 수백 편 봐 오고, 윤여정 배우가 등장한 수십 편의 작품들을 봐 온 시청자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순자' 캐릭터에 왜 이렇게 이목이 쏠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미나리>가 제작된 미국이라는 국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분명 우리가 보는 시선과 달리 보게 될 지점들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순자'는 전형적인 할머니상에서 탈피한 인물이다. 데이빗이 불평하는 것처럼 손자들에게 맛있는 쿠키를 구워주고, 공부를 가르쳐주거나 책을 읽어주고, 다정하게 보살펴주는 일반적인 할머니들의 모습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순자는 요리도 못하고, 손자들과 함께 화투를 즐기고, 교회에서 십일조를 훔치는 등 일명 날라리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자가 나쁜 할머니일까? 순자는 자신의 성격과 방식대로 힘든 처지에 있는 모니카의 가족을 위로하고, 자신과 끊임없이 갈등을 벌이는 손자 데이빗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이러한 뻔하지 않은 할머니의 캐릭터가 '윤여정'이라는 개성적인 연기파 배우와 만나게 되면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순자'라는 인물을 그려낼 수 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수의 해외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극의 중심이 되어주는 할머니
극의 중후반부까지 활약을 하다가 뇌졸증을 앓게 된다는 설정으로 비중이 작아지긴 하지만, 순자라는 인물은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캐릭터다. 죽음으로서 가족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신파적 장치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차별화가 되기는 했지만, 순자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순자는 우선적으로 모니카와 제이콥의 관계를 원만하게 중재해주는 인물이다. 토네이도가 들이닥쳤을 때, 부부싸움의 언성이 최고조에 달하며 관계가 험악해졌지만 순자가 등장하면서 부부관계는 차츰 완화된다. 순자는 모니카 부부뿐 아니라 손주인 앤과 데이빗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창고에 화재를 일으키고 망연자실한 채 허허벌판으로 걸어가던 순자를 잡기 위해 아픈 심장을 뒤로 하고 용기를 내어 뛰는 데이빗은 극 초반의 말 안 듣는 철부지 손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아픈 심장 때문에 일찍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데이빗에게 따스한 품을 빌려주며 희망을 불어넣어준 할머니로 인해 그가 조금은 변화하고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순자의 영향력은 극의 결말부까지도 발휘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탓에 쓰레기를 태우다 화재를 일으킨 사건은 제이콥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농작물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대형사고였다. 하지만, 결별을 이야기할 정도로 파국의 단계에 들어섰던 제이콥과 모니카는 오히려 이 대형사고를 계기로 다시 뭉친다. 농사로 꿈을 이루겠다는 제이콥의 막연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 가족을 안정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모니카의 마음은 더욱 커지고 이는 곧 가족이 흩어지지 않는 계기로 작용한다. 즉, 가족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준 셈이다.
한예리의 돋보이는 존재감
순자가 극 안에서 내용의 중심을 잡아준 캐릭터였다면,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는 극중 미국인에도, 한국인에도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섞여들지 못한 인물을 연기하며 극의 경계선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준다. 즉, <미나리>는 엄연한 미국영화이지만, 한예리가 등장함으로써 이 작품이 완전히 미국영화로 보이지 않게끔 만들어준다. 미국인 감독이 만든 미국영화이지만, 한국인 배우가 등장하고, 한국인 가정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미국의 가족영화가 되는 것을 한예리가 끊임없이 경계해주는 셈이다.
적당한 만족감, 어쩔 수 없는 아쉬움
<미나리>는 그 어떠한 갈등이나 주된 사건전개보다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이 가져다주는 큰 불안과 이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방인들의 내적 갈등이 가장 큰 중심 소재다. 이러한 감정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모니카다. 극 후반부 제이콥에게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한계와 울분을 표출하는 한예리의 연기는 모니카라는 인물이 견뎠을 인고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겨웠을지를 충분히 드러낸다. 많은 이들이 윤여정이나 아역배우에 연기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예리의 존재감이 가장 빛났다고 느낀다.
<미나리>는 한 이민자 가정의 삶이라는 굉장히 사소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영화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면 분명 잘 만든 영화다. 비슷한 플롯의 작품들을 답습하지도 않았고,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오묘한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담아냈으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현재 <미나리>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극찬들에 진정으로 부합되는지는 영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 감상을 마쳤을 때, '정말 잘 만든 영화다'라는 생각보다 '이렇게까지 극찬 받을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앞섰다는 것은, <미나리>가 준수한 작품 이상의 무언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부한 노선을 탈피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신선함을 더하지는 못했다. 인물들의 행동이나 성격, 이민자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모든 게 예상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이하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과연 <미나리>에게 걸었던 기대가 드라이한 만족 정도였을까. 호평일색인 평가들이 왠지 조금은 과하게 느껴진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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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감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영화! 스펜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에 대한 영화 스펜서가 개봉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라기보다는 실제 그녀가 이혼 전 느꼈을 감정을 압축해서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고독과 외로움이 영화 전반에 강하게 묻어나고 있죠.
그 외로움이 이렇게 제대로 표현된 건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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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구름 #MBTI #마블MBTI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영상 타임라인*
0:00 인트로
0:50 이기적 통솔자, 아이언맨
2:55 융통성 제로 선비, 캡틴 아메리카
5:35 역시 어벤져스 외교관, 토르
6:28 조용하다 화내면 무서운 사람, 헐크
7:57 엘리트 공무원, 호크아이
9:08 아웃트로2020. 08. 26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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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피츠> 메인 예고편
이것이 ‘미스피츠’가 보여줄 참/교/육 이다!
절도는 물론, 탈옥에도 일가견이 있는 범죄자 ‘페이스’.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변장에 능한 ‘링고’, 폭탄전문가 ‘윅’, 암살자 ‘바이올렛’, 물주 ‘프린스’, 그리고 ‘페이스’의 딸이자 이번 작전의 기획자 ‘호프’까지, 그들과 함께 테러 자금을 대는 교도소장 ‘슐츠’의 아부다비 교도소에 숨겨진 금을 털자는 것이다.
스스로 사회 부적응자, 즉 ‘미스피츠’라 이름 지은 그들은 세상 나쁜 놈들에게 사이다 한 방을 날리기 위해 아부다비로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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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적> 추석 예고편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른 보낸 '준경'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 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