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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2-12-25 15:21:45

우리 마음속 우주, 그 황홀한 다채로움의 단면

〈가가린〉 리뷰

7★/10★

 

 

 

  러시아 출신의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파리 외곽의 허름한 가가린 아파트. 이곳에 흑인 청년 ‘유리’가 산다. 어릴 때부터 가가린 아파트에서 살아온 유리는 자연스레 우주 비행사를 꿈꾸었고, 아파트는 유리의 꿈과 현실을 동시에 지탱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런 아파트가 안전 점검에서 기준에 미달해 철거가 결정된다. 사실 유리는 이전부터 친구와 함께 아파트를 수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안전 점검 평가 점수를 높여 가가린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유리가 아무리 또래 청년들을 훌쩍 앞지르는 기술과 재능, 열정을 가졌더라도 가난한 흑인 청년이 아파트 철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리의 절친한 친구를 비롯하여 주민들은 하나둘씩 가가린 아파트를 떠난다. 유리도 어릴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그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해, 슬픔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유리는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그러나 유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텅 빈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우주선을 꾸민다. 철거를 결정한 사람들보다 가가린 아파트를 훨씬 더 잘 아는 유리가 만든 아지트는 비밀스럽고도 안락하게 유리의 삶과 꿈을 보듬는다.

 

 

 

  유리가 구축한 자신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우주선’은 유리뿐 아니라 다른 소외된 자들이 연결되는 장소로도 기능한다. 마약 판매상, 이주자 2세 여성 등 파리가 품지 못해 떠도는 자들이 유리의 우주선에서 관계 맺으며 국가와 사회 바깥의 삶의 가능성을 잠시나마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취약한 토대로 인해 늘 불안정하다. 결국 유리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끝내 허물어지고야 마는 아파트에서 유리가 그토록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가린 아파트에 살면서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키운 가난한 흑인 청년 유리는 그 추운 곳에서 홀로 남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유리가 창조한 세계를 영화로나마 엿본 자들은 어떻게 해야 또 다른 ‘유리의 우주선’이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파니 라에타르와 제레미 트로윌은 굉장히 영리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유리의 세계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음악과 장엄한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허름한 가가린 아파트와 유리가 만든 우주선을 배경으로 말이다. 철거를 앞둔 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가난한 청년, 그리고 우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가가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유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에 진지했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라는 뜻의 우주는 저 먼 하늘에만 있지 않다. 유리가 그러하듯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있다. 〈가가린〉은 그 황홀한 다채로움의 단면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유리의 우주선이 보낸 SOS 신호가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란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233/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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