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09 13:57:28
경력자의 오지랖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 리뷰-1편
이 글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맥스무비
분명 처음에는 괜찮았다.
한국의 조커 탄생이라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딱지맨(공유)의 탄생을 지켜보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는 팔을 쓸어내릴 때까지는. 비장하면서도 패배감에 물들어 어딘가 입꼬리가 축 내려간 채 죽지 못해 사는 것만 같은 기훈(이정재)을 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시즌1에서 그다지 이 시리즈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 시청자였기에. 이번 시즌에선 오히려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 글로벌 오징어의(?) 오프닝은 장대하면서도 짜릿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시즌 2는 가장 큰 패착을 오프닝부터 모조리 보여주고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주인공인 기훈의 존재 자체라는 것과. 그가 아예 시즌 1과는 완전히 다른, 철이 든 데다 돈까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는데 있다.
사진출처:한겨레
오징어 게임의 본질(?)은 몸뚱이 밖에는 담보 잡을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것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성과 상품성의 대립. 드러나는 인간들의 욕망과 도덕사이에서의 혼돈. 그리고 과연 누가 진짜 나쁜 놈일까. 나는 저 상황에서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훈의 환골탈태(?)로 인해 이 모든 갈등은, 혹은 갈등에서 오는 재미는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기훈이 아무리 봐도 주인공 버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첫 게임(지가 제일 많이 움직임. 차라리 뒤돌아 있었으면 이 정도의 짜증은 안 났을 것.)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생존케 함으로 인해. 주최 측은 다음단계로 갈수록 좀 더 어렵거나. 팀으로 사살이 가능한 게임을 고안해 내야만 한다.
이제 시즌제 드라마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듣자마자 지긋지긋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계관 확장에 따라. 이번 시리즈에서는 당연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기 바쁘다. 이로 인해 갈등이 쌓이기보다 각자의 말을 들어주느라 혼돈의 시간들을 보내느라 회차를 낭비한다.
등장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미 갈등 자체가 줄어들어버린 데다 갈등 자체가 크게 두 팀으로 나뉘어 버린다는 데 있다.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살아 나갈 것이냐.라는 이분법적인 투표가 매 라운드마다 존재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저 일확천금 외엔 별 목적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더 가벼워져 보인다. 그러니 매번 투표마다 다들 내뱉는 이번 라운드 뒤에 나가자.라는 말이 밥 한번 먹자는 말보다 더 비어보일 수밖에.
사진출처:조선일보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두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경력직의 활약으로 인해 시즌1에서 느꼈던 종잡을 수 없는 충격들을 느끼기 힘들어진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킹함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투입한 빌런인 타로.. 아.. 아니 아니 타노스의 존재를 견뎌야만 한다는 점이다.
오춘기가 지나버린 기훈덕에 기울어져버린 운동장 위에서(?) 타노스는 말 그대로 정의로움이 어색해 보이는 기훈 마냥 한껏 high 한 상태로 방방 뛰어다닌다. 완벽하게 악한 캐릭터냐 묻는다면 이런 류의 작품에선 언제나 눈만 맑은 광인이 한 다발로 등장하기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건방지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타노스를 믿고 깝죽거리는 남규(노재원)에도 못 미치며, 또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 자체가 가진 매력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요"인데 뭘 물어.
타노스는 미쳤다기보다 그냥 동네에 하나쯤은 있다는 덜떨어진 사람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고. 그 역할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자기에게 딱 맞는 어수선한 최후를 맞이하며 다행히 퇴장한다.
사진출처:경향신문
타노스의 경우 개인 연기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더 크게 보았을 때 황동혁 감독의 캐릭터 고용이 좀 납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캐릭터가 1편에서의 파생이며. 아예 극에서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특히 용식(양동근) 모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눈물을 뽑겠다는 작정을 하고 투입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더 최악인 것은 시즌1에서부터 지적된 여성 캐릭터의 쓰임이다.
애초에 목적이 너무 뚜렷한 데다 심지어 외모적인 특징마저도 아예 빼다 박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이다 못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조차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히 시즌2에서 새로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낯섦은커녕 어디선가 시즌1 때 사망한 새벽이가 등장한다 해도 그러려니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하던 대로 비슷하게 하면 본전은 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최선을 다해 생각해 낸 캐릭터의 결과였을지. 나 같은 인간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고뇌의 방향이 어쨌든 간에. 감독의 선택은 얄팍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치면서
2024년의 끝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기 때문에 다들 "호상"이라며 격려 같은 말을 조용히 말을 건넸지만.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온기라는 게 참으로 힘이 세서 나는 그 온기가 날아갈까 두려워 애써 품에 안고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꼭 쥔 채 새해를 맞이했다.
나는 할머니의 맏아들의 장녀였고. 딸이 귀했던 집안(6남 1녀)의 특성 덕에 며느리는 자신의 딸을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서 컸던 큰 손녀였다. 나의 식성도. 나의 취향도. 나의 생김새마저도. 할머니를 닮은 모습에 농담처럼 마을 사람들은 나를 할머니의 숨겨놓은 막내딸이라 부르기도 했었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큰손녀의 이름만 부르면 눈동자가 다시 사람의 것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말에. 내 마음속 상실의 구멍에 또다시 세차게 찬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바람이 이제는 내가 약해져 있을 때는 더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상실을 겪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아픔은. 내가 온전히 사라져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것만 같다가도. 그 경험들 뒤에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지나가겠지.라는 체념 같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날들인 것 같다.
무뎌진 기억을 더듬으며 더 이상의 눈물을 삼키지 않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이 글의 TMI]
1. 너무 아파서 병원 갔는데 독감이 아니라니. 병가 쓰게 해 줘요(?)
2. 인간적으로 영하 10도 이하면 재택근무 하자 진짜.
3. 오늘 감자탕 먹을 거다 캬캬햐햐햐햐햐햐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OTT #영화리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이정재 #황동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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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함께 읽으면 좋을까?
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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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발견한 단일한 결핍의 조각
<헤어질 결심>은 사랑과 추적, 그 사이를 위태로이 오가는 수사극이다. 영화는 숨기는 것 없이 오히려 투명히 사건들을 조망한다. 관객은 해준의 시선이 되어 서래를 미행하고, 함께 쫓는다. 그렇기에 해준이 서래를 의심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채로 그저 서래를 따라가게 된다.
누군가 내게 ‘그래서 해준은 서래를 사랑한 게 맞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당연하게도 서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질문에 당황했다. 처음에 서래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맞으나,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후 배신감을 느끼며 그녀를 떠났으므로 ‘사랑까지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 해당 질문의 의도였다. 나는 왜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었나.
해준은 서래의 곁에서만 잘 잔다.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코로 숨 쉬는 기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서래가 남편(기도수)을 살해했음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건으로 그녀를 의심할 때조차도 해준은 서래와 함께여야만 잘 잔다. 서래의 존재만이 해준을 편안하게 한다.
해준은 이과 여자와 결혼했다. 계산적인 아내와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겠으나, 당돌하고 마음 가는 대로 뛰어드는 서래의 행동들은 해준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16년 8개월’을 세고 있는 아내에게 ‘그걸 세고 있냐’며 대꾸하던 해준은 서래의 공백 ‘402’일은 애쓰지 않아도 쉽게 뱉어 낸다. 초밥을 먹자는 아내에게 ‘아무 초밥이나 먹기 싫다’고 답하던 해준은 고급 초밥을 주문해 서래와 함께 먹는다.
해준은 붕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서래를 체포하고, 미결 사건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품위보다 서래가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해준의 감정은 명백히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해준은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잘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해준은 계속해서 사랑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 서래를 붙들고, 그는 ‘당신이 꼿꼿해서 좋다’며 고백한다. 서래가 꼿꼿한 사람이라서, 바다를 좋아해서, 죽은 남편의 사진을 보여달라 청해서. 여러 이유들이 존재했으나, 꼿꼿하지 않은 서래의 모습이 등장하자 혼란에 빠진다. 그는 서래를 사랑하는 이유를 잃었고, 그렇기에 이유 없는 본인의 감정을 깨달을 수 없다.
어쩌면 내게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은 정확히 해준의 시점에서 영화를 감상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서래에게 해준은 어떤 존재일까. 해준은 서래에게 상흔을 남기지도, 어긋난 소유욕을 보이지도, 실내흡연에 불쾌해하지도 않으며, 고급 초밥을 사주고 칫솔과 방수 밴드를 쥐여 주는 사람이다. 비록 엉터리일지라도 중국식 요리를 만들고, 중국어를 공부하고, 코트가 흠뻑 젖도록 우산을 기울여 주는 사람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저녁은 아이스크림으로 때우던 서래의 모든 결핍은 해준으로 인해 채워진다. 해준이 서래로 인해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면, 서래는 해준으로 인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새로운 남자와 결혼했지만, 되레 덧난 결핍은 되찾고 싶은 마음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친절했던 그 남자를 단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는 살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래는 새로운 사랑을 통한 ‘헤어질 결심’에 실패했다.
서래는 두 번째 ‘헤어질 결심’을 행한다. ‘내가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며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해준을 보고 그녀는 차라리 재난이 되기를 택한다. 슬픔이 잉크처럼 번지는 듯 했던 여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랑에 빠져 죽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해준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해준에게 서래는 영원한 미결로 남을 것이다.
서래는 해준이 밤에 잠도 못 자고 본인의 사건에만 매달리기를 원했으나, 미결이 되어버린 서래를 떠올리며 해준은 오히려 잘 잘지도 모르겠다. 비록 상상 속일지라도 그녀와 함께이니.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틀림없이 서럽지만 울음보다는 쓸쓸함이 어울린다. 심란하고도 아리송하고 아득히 아름다우며 애달프다. 영화가 감추고 있는 대상은 어디에도 없지만, 무수한 감정들을 관통하는 지각은 거듭 떠올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영원히 미결로 남을 서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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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줄거리
패션 학교에 합격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런던 '소호'로 온 엘리.
시끄러운 기숙사 분위기와 친구들의 텃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조용하고 작은방을 얻게 된다.
빨간 네온사인에 휩싸인 방에서 잠이 든 엘리는 꿈에서 60년대의 가수 지망생 샌디로 변하게 된다.
엘리는 매혹적이고 당당한 샌디의 모습에 반해 금발로 염색하고 구제 스타일을 입는 등 샌디처럼 자신을 꾸민다.
화려한 가수의 삶이 펼쳐질 거란 생각과는 달리 샌디는 헐벗은 옷을 입은 채 스트립쇼에서 춤을 추거나, 돈과 권력을 쥔 남성들에 의해 침대에 내던져진다. 엘리가 누워있는 바로 그 방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당하는 샌디.
화려한 꿈이 점점 지독한 악몽으로 변해가는 그때, 엘리는 빨간 네온사인이 비치는 침대에서 난도질당해 피를 흘리는 샌디를 보게 된다. 살인 사건을 뒤져 보아도 샌디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찾을 수 없고. 결국 유일한 목격자가 된 엘리는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감상 포인트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한순간 전환되면서 엘리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꿈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로 만들면서 안정적으로 반전 요소를 숨겼다.
다소 뻔할 순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억지 결말보다는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다루는 것에 승산을 건 영화다.
감상평꿈은 매혹적인 소재다. 꿈에서는 현실성 없는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꿈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면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들을 광범위하게 표현하고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꿈이라는 소재에 접근해 본 창작자라면, 그것이 주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간혹가다가 인기를 끌던 작품들이 마지막에 '아신발꿈' 결말을 내어 분노를 사는 경우가 있다. 꿈이라고 해서 개연성을 박살 내버리면 안 된다. 그것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다. 꿈을 꾸더라도, 이 꿈을 꾸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더불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갈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계획도 필요하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런 점에서 철저히 방해가 되는 요소는 배제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굉장한 모범생이라고나 할까. 정확한 틀 안에서만 이야기를 유지하고, 그 바깥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안 나가려는 노력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조금은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난 오히려 그렇기에 더 손뼉을 보낸다. 이런 결정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말에 대해 예측 아닌 예측을 하게 된다. 사실 저 할아버지가 범인이 아닌 거 아니야? 사실 저 할머니가 샌디 아니야? 이 영화는 관객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쉽게 간파당하는 직선적인 작품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 결말만을 위해 달리는 영화이기 때문에 딱히 실망할 이유도 없다.
다만 '라스트 나잇'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밤. 샌디의 마지막 밤은 과연 언제일까?
"그 방에서 죽은 여자가 있기는 했어."
샌디는 불구덩이 속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택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이 샌디의 '소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평생 자신을 옥죄어오던 기억에서, 지옥 같은 소호에서 해방되어 죽음으로 가는 밤인 것.
하지만 샌디는 존을 살해하던 그날, 이미 자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그 괴물들을 죽이는 순간부터 이미 당차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소녀 샌디는 더 이상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더 이전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 스트립쇼 무대에 오른 날에? 아니면 존에게 이끌려 억지로 춤을 추던 도중에? 술에 찌들어 남자들을 대해야 했던 그 무수히 많은 밤에?
샌디는 꾸준히 죽임당했다.
'라스트 나잇'이 언제인지 이미 알아볼 수조차 없다.
그리고 아마 엘리의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비슷하게 절망적인 일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꼭 샌디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하거나 삶을 배척당하는 일들이 빈번했을 것이다.
"저만 위해서 가려는 게 아니에요.
엄마를 위해서도 꼭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엘리에게 그날 밤은 '마지막 밤'이 아니었다. 붕괴되고 무너지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도 엘리는 소호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패션쇼를 열어 당차게 자신의 꿈에 첫 발을 내딛는다. 사실 이 점은 영화 초반에서 이미 드러냈다. 엘리는 좌절하고 절망했던 자신의 엄마를 대신해서라도 꼭 멋지게 성공할 거란 의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엘리는 새로운 희망과도 같다.
이 시나리오를 처음 상상할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아이디어가 감독의 뇌리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불가능한 것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배낭을 잘 꾸렸다. 그래서 러닝타임 내내 적재적소에서 에너지바를 먹고 이온음료를 마시면서 무사히 등산을 마칠 수 있었다. 조금 더 욕심내서 이만큼 더, 저만큼 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역량 안에서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게 그 사람의 한계겠네?"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역량만큼 표현을 해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은, 그다음엔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었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이전에 내가 리뷰했던 [황당한 새벽의 저주]로 데뷔했다는 사실은 조금 쇼킹하다. 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성실한 사람이란 것만큼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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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 혐오자의 로맨스 추천
우선 나란 사람의 성격을 1인칭 시점에서 묘사하자면, 본인은 로맨스가 스토리의 주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굳이 찾아서 보진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 오글거리는 설정, 대사를 웬만하면 내 시간과 돈을 쓰면서 보진 않는다. 담백한 러브스토리는 가끔 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드문 케이스다. 그런데 간만에 굳이 찾아서 볼만한 로맨스 드라마를 찾은 것 같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후로 굳이 시간 내서 본 건 가히 오랜만이긴 하다. 그래서 써본다. 나같이 로맨스 문외한이 추천한다니 읽는 사람도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굉장히 신기하지만 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우선 써본다.
1. 은근히 골때리는 캐릭터의 향연
우선 남자주인공.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은 그렇게 대화가 물흐르듯이 진행되는 상대는 아니다. 보통 처음에 로맨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다가도 중간에 보다가 포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선 플롯과 캐릭터가 예상 가능한데, 거기다가 오글거리는 대사까지 곁들여지면 갑자기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갑자기 잃어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선 1화를 꽤 문제없이 보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봤더니 남자주인공이 모든 대화를 상황에 맞추어 융통성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텍스트 그대로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원칙주의적인 것 같다가도 어떤 상황에서는 눈치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눈치 없는 척하는 건지 사람 놀리는 건지 알수 없는 화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주인공이 맞닥뜨리는 모든 인물들과 하고 있는 어이없는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주인공과 말을 나누는 상대들이 이 남자의 목석같은 반응에 미쳐버리려고 하는 모습도 꽤나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이 남자주인공 실제로 만나면 진짜 답답해 죽을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사람을 은근히 대놓고 놀리면서 말하는 사람으로도 보였다가, 아닌 것도 같았다가, 참 요주의 인물이다. 하지만 2화까지 보다보니, 그저 모든 일에 크게 놀라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에 반해 여자주인공은 꽤나 클리셰스러운가 했는데, 보다보니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주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모습이 그렇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싫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여주, 아주 호감이었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의 직업이 영화번역가여서 더 호기심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내가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직업을 가진 여자주인공인데, 거기다가 살짝 지랄맞은 여자주인공이라니. 여자주인공의 파이터기질, 꽤 마음에 들었다.
2. 어이없는 대사의 흐름과 티키타카 잼
그 외, 다른 조연 인물들을 그리는 건조하고, 위트있는 드라마 속의 톤 앤 매너 아주 인상적이었다. 남녀주인공과 조연들의 시크한 듯하면서 자조적이기도 하면서 은근히 웃기는 유머 코드도 취향에 잘 맞았다. 약간 개그 코드가 덜한 멜로가 체질을 보는 느낌이었다. 결이 다르다면 다를 수도 있지만 약간 건조하고, 시크하고, 인물들 간의 티키타카가 아주 적절한 것이 이런 대사가 잘 맞아떨어질 때의 통쾌함을 어디에서 느꼈는지 생각해보니, 멜로가 체질을 볼 때였던 것 같다. 멜로가 체질은 작정하고 연극적인 요소도 있는 개그 드라마로 만든 것 같았다면, 이 드라마는 개그 코드가 주가 아니고, 조금 더 흔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대사 합이 찰떡같이 잘 맞는다. 마치, 멜로가 체질을 볼 때, 대사의 신박함에 놀라던 그 때의 통쾌함을 느낀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꼰대 교수에게 사과의 의미로 홍삼 세트를 가져가면서 교수의 집문을 두드리는 여주와 집 안의 교수 와이프의 대화 중에서
"(애교 가득한 표정으로)문 좀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까칠하게)바쁘다고 전해달래요!"
"홍삼으로라도 어떻게 안될까요?"
"(냉큼 이거다 라는 듯이) 들어오라네요!!!"
"(어이없어하며)좀팽이, 홍삼은 좋은가 보지?"
라는 대화가 있었는데, 이 대화 속 마지막 대사, 좀팽이, 홍삼은 좋은가 보지? 라는 대사가 너무 적절하고 웃겨서 푸핫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Naver 사진출처그리고 남주와 여주의 대화 중에서도
"덕분에 제 총도 찾았네요."
"그 총 가짜인 건 맞아요?"
"아유, 진짜면 안되죠, 한국에서 총기소지 불법이잖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변태들도 많아서요."
"저 변태아닌데"
"(덤덤하게)그 쪽이라고는 안했는데"
"그럼 가짜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달린 거예요?"
"지금 저를 심문하시는 걸까요? 그리고 왜 변태예요?"
"제가요?"
"(아오 말 좀 알아듣자 하는 표정으로) 제가요."
"변태에요?"
"(답답하다는 듯이)아니, 아까 불법 그거 있잖아요.... 아 됐어요."
하는 부분에서도 나도 여주처럼 남주를 한없이 답답해 하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남주 캐릭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전개야 하면서 인물들을 티키타카를 바라만 보다가 계속 끄지도 못하고 어이없게 2화를 다 보게 되었다. 기묘하게도.
3. 이 드라마를 완주할 가능성?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가 시청자가 이탈하게 되는 경우는 남주와 여주가 외부적 상황 때문에 이어지지 못하고 갈등 상황에 처해 있는 고구마 상황을 견디다 못해서 스토리 감상을 하다가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고구마 상황이 아주 길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전개가 로맨스 드라마 치고 빠르게 이어진다면, 아마 꾸준히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초반 이야기는 꽤나 만족스럽게 봤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봄직한 드라마를 찾은 것 같아서 현재로서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우선, 신세경, 임시완 배우에 대해서 호감이 있으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다. 배우들 연기가 연기 1도 모르는 일반인이 봐도 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선정할 때, 대사를 중요시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꽤 잔잔하게 티키타카가 찰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오글거리지 않으면서 잔잔한 드라마, 추리물처럼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감성적인 드라마 찾고 계신 분들이라면 정주행을 시도해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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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상탈 에커만
출연진 : 델핀 세리그
잔느 딜망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70년대의 벨기에 어느 동네에 사는 주부 잔느 딜망이다. 가정주부인 잔느. 하는 일이라곤 정해져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아이들 챙기고. 딱히 치열하거나 게으를 것도 없이 하루가 간다. 밖으로는 잘 안 나가는 것 같은 잔느.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잔느의 관심사는 집이다. 아들 아들도 딱히 지루해하는 구석이 없는 것 보니 엄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평화로운 일상. 겉보기에 잔느의 안분지족 하는 일상은 그녀에게 안성맞춤이다.
이런 그녀에게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사실 잔느의 집은 집안일과 매춘이 동시에 벌어지는 장소였다. 별다르게 일을 하지 않는 잔느.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같은 일만 계속 반복하려니 지겹다. 갑자기 잘 깎이지 않는 감자. 신경질적으로 감자를 깎는다. 또 아들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너지는 일상. 잔느는 더 끔찍한 비극을 받아들여야 한다.
No.1
이 영화는 작년 2022년에 발표한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가 고전 영화 중 하나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합리적으로 보인다. 사실 영화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주인공 잔느가 집안일하거나 밖에 잠깐 외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이야기가 잔느의 집안일에 기반한 탓에 일반적인 극영화랑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비롯한 모든 창작물)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작품의 정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카메라의 구도부터 이 영화는 특별하다. 영화는 지겨울 정도로 특정 구도를 반복한다. 눈높이는 잔느와 비슷하다. 인물 양옆에 물건들이 있다. 영화의 위-아래도 잔느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다. 영화는 이 구도를 20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전부 적용한다. 심지어 이 구도는 잔느가 외출하는 장면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화면에 비해 인물이 작아 보인다. 외출을 끝내고 잔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엘리베이터를 탄다. 다시 잔느의 부피가 커진다. 다시 답답해진다. 이 구도는 잔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더 의미가 명확해진다. 잔느는 마치 철문을 열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실내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이 영화의 촬영구도는 집 안 / 집 밖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집 밖에선 고립감을, 안에선 폐쇄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영화가 여성들에게 있어 ‘집안일=감옥’과 유사하다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듯
잔느가 집안일이라는 감옥에 있기 때문에 서서히 미쳐가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주인공 잔느가 감자를 깎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잔느는 손목이 다쳐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이 감자를 깎는다.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한 번 마시고 그냥 다 버린다. 후반부에 아이를 돌보는 장면이 있다. 얼굴에 단 조금의 미소도 품지 않고 정색한 채로 아이를 달랜다. 달래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크게 운다. 이젠 아예 아기가 울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잔느. 인물에게 누적된 스트레스를 체감하게 한다. 이 감옥은 다른 의미로 치환되기도 한다. 우선 집안일과 성노동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가사노동의 본질적인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성노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는지를 극후반부에서야 그나마 보여주는 편이다. 이 말은 즉슨 성노동이 인물의 생계와도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뜻이다. 이는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피폐한가를 묘사하는 것과 대치되기 때문에 감독이 고의적으로 분량을 없애버린 것이다. 일상에서 서서히 벌어지는 균열이 후반부의 선택과 이어진다는 것이 플롯의 핵심이다. 그런데 (충분히 자극적인) 잔느가 누구와 잤는지가 영화에서 중요할까? 오히려 잔느의 일상에 더 개입한 변태적인 카메라가 되는 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물건이 등장하는 방식도 미묘하다. 이 영화는 물건을 일상으로 비유하고 있다. 잔느의 첫째 날은 평화롭다. 두 번째 날부터 이야기에 광기가 서려있다. 아들이 ‘엄마 단추 떨어졌어요!’라고 말한 후부터 잔느가 온 동네를 뒤져 단추를 찾는다. 사건의 선후관계를 생각해 보면 ‘잔느가 집안일하다 밖으로 나오는 것 마저 가사노동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영화에서 누군가가 선물을 보낸다. 집안일과는 다른 무언가가 나올 법도 한데 잠옷이 나온다. 잠옷은 집에서 입는 옷이라는 점에서 ‘일상의 마무리’를 의미하고 있다. 잔느가 구두를 수선하려고 어딘가로 들어간다. 주인장인 남자는 잔느에게 ‘아들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구두가 잔느 본인 것이 아닐뿐더러 주인장이 하는 말까지 아들에 대한 것이다. 영화가 느릿느릿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단지 지루하게 하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연출한 것이 아니다. 느릿느릿해야, 더 상황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섬세한 부분까지 캐치해야 이 영화 이면의 깔려있는 어마무시한 광기를 이해할 수 있다.
합리적인 엔딩
이 영화의 엔딩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전 세계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잔느는 엔딩에서 흰 옷을 입고 있다. 러닝타임 내내 색이 흐린 옷만 입었던 잔느. 잔느는 일상 속에서 깔끔함을 추구한다. 이렇게 강박적인 성격이 강한 잔느이지만 성노동과 가사노동을 거부하듯 살인을 저질렀고 흰 옷에 피가 묻었다. 금기를 어긴 잔느. 표정이 명확하지 않았던 잔느는 200여 분동 안 처음으로 혼자 웃는다. 하지만 이 모습을 찍는 구도가 흥미롭다. 집 안이다. 사실 혼자 멍하니 웃는 장면을 실외에서 찍어도 이야기의 논리관계에는 어떤 악영향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을 굳이 실내에서 찍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또 옆에 있는 주전자 던져버릴 수도 있는 건데 그대로 놔뒀다. 이는 잔느가, 그러니까 여성이 스스로 주체성 있게 우뚝 섰다 하더라도 가부장제라는 감옥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감독의 탄식처럼 보인다. 실제로 엔딩 후반부에 러닝타임 중반부쯤에 등장했던 생활소음이 삽입된다. 또 심지어 조명까지 어둡다. 이 두 요소를 굳이 넣었다는 점 역시 촬영 구도와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1970년대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사실 2023년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가부장제의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13일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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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 -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고는'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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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A 기반의 애니메이션은 사실 대부분 그 작품의 팬들이 본다. 왜냐하면 애초에 제작의도 자체가 팬층만을 위한 팬서비스에 가깝고, 그렇기에 작품의 독립성도 낮기에 아예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에 리뷰하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TVA의 연장선상에 놓여진 작품이다. 필자는 이 원작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인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아버리가 만점(!)을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이 씨네필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이 사건(?)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펄프 픽션을 굉장히 재밌고 봤고 고평가하는 작품인데, 그 영화의 각본가가 무려 만점을 줬다니! 필자가 아는 원작은 '그 쪽 계열', 오타쿠 타겟층의 애니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필자는 과거에 장르는 다르지만 TVA 기반 극장판 중 "주문은 토끼입니까?? ~디어 마이 시스터~"를 보고 정말 심각하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졸작의 반열이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평작이라 부를만한 영화. 원래 원작이 있는, 그것도 오타쿠 타겟층이라면 한계가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그 한계를 잘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애쓴 영화이다. 애초에 이 영화의 감독을 전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영화 역사상 거장 감독을 앉혀둔다고 해서 걸작이 탄생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TVA라는 발목을 잡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진지해지다가 유쾌하게 풀어내는 점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필자는 이 영화 기반의 TVA를 1기를 초반만 보다 말았는데, 그 정도만 알아도 영화 이해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대다수의 애니에서 악평의 요소로 작용하는 '작붕'을 호평 받을 수 있게 일종의 유머 포인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이 훌륭하고 경이로운 작화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 위주로 보다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니 신선했다. 솔직히 이것도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여러 장점들을 말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 영화의 독립성은 낮게 평할 수 밖에 없고, 필자가 오타쿠 계열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원작을 알고 좋아한다면 추천. 애초에 이 쪽 계열 애니가 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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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바이킹족을 모두 몰살시켜 버리는 전사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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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헤어져본 사람...? 연애할 때 찌질해지는 순간들 (500일의 썸머, 연애의 온도) 연애 영화 현실 리뷰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비주얼 특집!?
YG 케이플러스의 비주얼 모델들이 떴다!
모델돌 ATO6의 현우와 용국, 모델 출신 배우 고이진 그리고 여연희 까지~
훈훈한 남녀들을 모아놓고 달달한 연애영화를 주물러 봤습니다
#500일의썸머 #건축학개론 #연애의온도 #에이투식스 #ATO6 #현우 #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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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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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메인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이 ‘세익’(이효제)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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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담> 메인 예고편
혼전 임신 사실을 숨겨야만 해서 고향은 떠난 여인 ‘사미아’는
일자리와 숙박시설을 찾아 카사블랑카를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남편과 사별 후 홀로 8살 딸 ‘와르다’를 키우며
빵집을 운영하는 무뚝뚝한 여인 ‘아블라’를 만난다.
처음에 ‘아블라’는 ‘사미아’를 냉정히 돌려보내지만,
위험한 길가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미아’가 신경 쓰여
결국 자기 집에 며칠 간 머물며 함께 빵 만들기를 허락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점차 열며,
생애 잊지 못할 치유의 경험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