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09 13:57:28
경력자의 오지랖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 리뷰-1편
이 글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맥스무비
분명 처음에는 괜찮았다.
한국의 조커 탄생이라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딱지맨(공유)의 탄생을 지켜보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는 팔을 쓸어내릴 때까지는. 비장하면서도 패배감에 물들어 어딘가 입꼬리가 축 내려간 채 죽지 못해 사는 것만 같은 기훈(이정재)을 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시즌1에서 그다지 이 시리즈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 시청자였기에. 이번 시즌에선 오히려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 글로벌 오징어의(?) 오프닝은 장대하면서도 짜릿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시즌 2는 가장 큰 패착을 오프닝부터 모조리 보여주고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주인공인 기훈의 존재 자체라는 것과. 그가 아예 시즌 1과는 완전히 다른, 철이 든 데다 돈까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는데 있다.
사진출처:한겨레
오징어 게임의 본질(?)은 몸뚱이 밖에는 담보 잡을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것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성과 상품성의 대립. 드러나는 인간들의 욕망과 도덕사이에서의 혼돈. 그리고 과연 누가 진짜 나쁜 놈일까. 나는 저 상황에서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훈의 환골탈태(?)로 인해 이 모든 갈등은, 혹은 갈등에서 오는 재미는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기훈이 아무리 봐도 주인공 버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첫 게임(지가 제일 많이 움직임. 차라리 뒤돌아 있었으면 이 정도의 짜증은 안 났을 것.)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생존케 함으로 인해. 주최 측은 다음단계로 갈수록 좀 더 어렵거나. 팀으로 사살이 가능한 게임을 고안해 내야만 한다.
이제 시즌제 드라마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듣자마자 지긋지긋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계관 확장에 따라. 이번 시리즈에서는 당연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기 바쁘다. 이로 인해 갈등이 쌓이기보다 각자의 말을 들어주느라 혼돈의 시간들을 보내느라 회차를 낭비한다.
등장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미 갈등 자체가 줄어들어버린 데다 갈등 자체가 크게 두 팀으로 나뉘어 버린다는 데 있다.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살아 나갈 것이냐.라는 이분법적인 투표가 매 라운드마다 존재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저 일확천금 외엔 별 목적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더 가벼워져 보인다. 그러니 매번 투표마다 다들 내뱉는 이번 라운드 뒤에 나가자.라는 말이 밥 한번 먹자는 말보다 더 비어보일 수밖에.
사진출처:조선일보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두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경력직의 활약으로 인해 시즌1에서 느꼈던 종잡을 수 없는 충격들을 느끼기 힘들어진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킹함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투입한 빌런인 타로.. 아.. 아니 아니 타노스의 존재를 견뎌야만 한다는 점이다.
오춘기가 지나버린 기훈덕에 기울어져버린 운동장 위에서(?) 타노스는 말 그대로 정의로움이 어색해 보이는 기훈 마냥 한껏 high 한 상태로 방방 뛰어다닌다. 완벽하게 악한 캐릭터냐 묻는다면 이런 류의 작품에선 언제나 눈만 맑은 광인이 한 다발로 등장하기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건방지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타노스를 믿고 깝죽거리는 남규(노재원)에도 못 미치며, 또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 자체가 가진 매력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요"인데 뭘 물어.
타노스는 미쳤다기보다 그냥 동네에 하나쯤은 있다는 덜떨어진 사람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고. 그 역할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자기에게 딱 맞는 어수선한 최후를 맞이하며 다행히 퇴장한다.
사진출처:경향신문
타노스의 경우 개인 연기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더 크게 보았을 때 황동혁 감독의 캐릭터 고용이 좀 납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캐릭터가 1편에서의 파생이며. 아예 극에서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특히 용식(양동근) 모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눈물을 뽑겠다는 작정을 하고 투입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더 최악인 것은 시즌1에서부터 지적된 여성 캐릭터의 쓰임이다.
애초에 목적이 너무 뚜렷한 데다 심지어 외모적인 특징마저도 아예 빼다 박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이다 못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조차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히 시즌2에서 새로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낯섦은커녕 어디선가 시즌1 때 사망한 새벽이가 등장한다 해도 그러려니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하던 대로 비슷하게 하면 본전은 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최선을 다해 생각해 낸 캐릭터의 결과였을지. 나 같은 인간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고뇌의 방향이 어쨌든 간에. 감독의 선택은 얄팍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치면서
2024년의 끝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기 때문에 다들 "호상"이라며 격려 같은 말을 조용히 말을 건넸지만.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온기라는 게 참으로 힘이 세서 나는 그 온기가 날아갈까 두려워 애써 품에 안고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꼭 쥔 채 새해를 맞이했다.
나는 할머니의 맏아들의 장녀였고. 딸이 귀했던 집안(6남 1녀)의 특성 덕에 며느리는 자신의 딸을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서 컸던 큰 손녀였다. 나의 식성도. 나의 취향도. 나의 생김새마저도. 할머니를 닮은 모습에 농담처럼 마을 사람들은 나를 할머니의 숨겨놓은 막내딸이라 부르기도 했었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큰손녀의 이름만 부르면 눈동자가 다시 사람의 것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말에. 내 마음속 상실의 구멍에 또다시 세차게 찬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바람이 이제는 내가 약해져 있을 때는 더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상실을 겪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아픔은. 내가 온전히 사라져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것만 같다가도. 그 경험들 뒤에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지나가겠지.라는 체념 같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날들인 것 같다.
무뎌진 기억을 더듬으며 더 이상의 눈물을 삼키지 않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이 글의 TMI]
1. 너무 아파서 병원 갔는데 독감이 아니라니. 병가 쓰게 해 줘요(?)
2. 인간적으로 영하 10도 이하면 재택근무 하자 진짜.
3. 오늘 감자탕 먹을 거다 캬캬햐햐햐햐햐햐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OTT #영화리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이정재 #황동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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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익숙한데, 걔네들에겐 낯선가 보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성적을 살펴보자!
$411,331,607의 북미 수익과 해외 수익까지 합친 총 수익 $955,775,804은 현재(22년 9월 7일 기준), 전 세계 박스오피스 3위이다. - 북미 수익은 2위이다!
그렇다면, 영화 <블랙폰>은 어떨까?
$89,610,100의 북미 수익과 합친 총 수익 $158,206,100으로 현재(22년 9월 7일 기준), 전 세계 박스오피스 21위이다.
근데, 이 두 영화를 왜, 연결 지었을까? - 그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감독에서 하차하고서 만든 작품이 <블랙폰>이기 때문이다.흥행만 본다면, 진한 아쉬움이 남겠지만 반응은 오히려, <블랙폰>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 더 좋았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전문가 74%와 관객 86%, <블랙폰>은 전문가 84%와 관객 90%로 더 높다.
영화는 "그래버"에게 납치된 "피니"가 방 안에 전화기를 통해, 희생당한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탈출하는 내용이다.1. 우리에겐 익숙한데, 걔네들에겐 낯선가 보네
근데, 북미 호평과 다르게 국내에서 관람하는 <블랙폰>은 김이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작품에서 보여주는 "피니"의 조력자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국내 귀신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컨저링 시리즈, 2013-21>만 보더라도, "귀신"은 대상자들을 정하는 데에는 불특정 대다수로 원인 없이 결정되어 "악(惡)"으로만 바라본다.
그에 비해서, 국내 귀신은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원인 - 결과"로 이야기를 만든다.어찌 보면, 지난 북미에서 <블랙폰>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에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했다는 것이 클 것이다! - 퇴마(退魔)와 성불(成佛)의 차이?
그렇기에 더더욱 "스티븐 킹"의 <그것, 2017-19>시리즈와 겹치기까지 한다.
아이들의 두려움으로 탄생한 "페니 와이즈"로부터 성장담을 보여줬던 양화 <그것>처럼 해당 작품 <블랙폰> 역시,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귀신을 보지만 자신과 달리 적극적인 여동생 "그웬" 등을 배치하며, 궤를 같이 가려 한다.2. 마동석이라면, 달랐을까?
그렇기에 악당을 맡은 "그래버"의 "에단 호크"는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선보이나 단순한 "싸이코"에 그친다.
이런 이유에는 "페니 와이즈"가 각 아이들의 두려움으로 변했던 설정과 서사에서 나왔던 것과 달리, 이야기가 없다.
앞서 "하우스 호러의 클리셰를 깨부쉈다"라는 말이 머쓱할 정도로 "그래버"는 지고지순하게 "정도(正度)"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외에도 영화 <블랙폰>의 이야기 전개에 아쉬움이 생긴다.이야기에서도 말했듯이 귀신을 볼 수 있는 "그웬"과 죽은 아이들과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는 극의 긴장감을 현저하게 줄인다.
결국,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해답 또한 준비되었으니 문밖에 무서운 "그래버"가 있다 한들, 극의 서스펜스를 느끼기에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도움을 주는 아이의 모습은 <샤먼킹, 1998-2004>과 <블리치, 2001-16>같이 "혼령"이 나오는 만화도 연상시켜 "공포 영화"가 아니라 "엔터테이닝 영화"로 봐야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tmi. 1 - 원작자 "조 힐"은 가능한다면, 실사화를 "스콧 데릭슨"을 선택했지만 당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촬영으로 무산될 뻔했으나, 하차함과 동시에 "러브콜"을 보냈다고 합니다.
· tmi. 2 - 이후 "스콧 데릭슨"이 승낙하자 제작사 "블룸 하우스"는 그의 자택 지하실에 똑같이 전화기를 설치해 캐스팅 소식을 알려줬다고 한다. (감독님, 정말 무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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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된 아이, 사라진 기록
해당 콘텐츠는 씨네랩 초청으로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해외 입양인들의 귀환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의 개봉이 다가온다. 오는 14일에 개봉 예정인 해당 다큐멘터리의 시사회에 씨네랩의 초청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시사회 참석이 처음이라 설레던 마음도 잠시, 다큐멘터리 속 해외 입양의 실태와 그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점등을 맞이했다.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 포스터
<케이 넘버>는 조세영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장장 6~7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상영관을 찾아온 작품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하고,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70년의 해외 입양 역사에서 나아진 것이 없음을 냉철히 지적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차례로 노혜련 숭실대 명예교수(전 홀트 직원), 조세영 감독, 김유경 배냇 대표의 모습
영화의 제목이 되는 K-NUMBER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낼 때 입양기관이 아이를 분류하기 위해 붙인 표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70,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자그마치 20만명에 달한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성인이 되어 돌아온 입양인들의 귀환과, 이들의 뿌리찾기를 돕는 한국인여성모임 ‘배냇'의 추적에서 드러나는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을 영화는 조명한다. 감독의 집요한 질문과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며 해외 입양인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타국으로 떠나 보낸 우리 아이들의 귀환이 될 수 있음을 느껴보자.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시놉시스, 출처 씨네 21
영화는 2004년, 관에서 본인의 입양서류 기록을 받지 못해 화를 내는 한 해외 입양인 여성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카 밀러, 한국 이름은 김미옥으로 ‘추정된다’. 한국 이름이 정확한지 확인 할 수 없는 것 또한 입양서류의 불분명성과 위조 가능성 때문이다. 이후 20년간 미오카는 5번의 한국 방문을 이어가며 본인의 뿌리와 가족의 기억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해메왔고, 그 여정에 사회봉사단체 ‘배냇’이 동참했다.
2004년에서 2024년.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기간동안, 미오카와 배냇은 불분명한 서류와 감춰진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사투하며 ‘뿌리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입양 이후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앞에서 자국민의 도움없이 대여섯살때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가족을 찾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배냇 김유경 대표의 물음에는, 입양민 ‘뿌리찾기’의 실태와 그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공개되지 않는 기록에 대한 분노. 미국을 떠나 한국까지 와서도 미오카씨를 반기는 것은 사실확인조차 되지 않고, 본인의 정보조차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반의 반쪽짜리 서류다. ‘이 서류를 기반으로 가족을 찾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겠냐‘는 무력함의 끝에서 나온 질문에도 미오카 씨는 ‘지금 가지고 있는 패는 어쨌든 전부 뒤집어 보아야 한다‘고 답한다. 새로운 서류가 나오고, 정보가 나오고, 거짓이거나 조작되었음이, 혹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진실의 테두리임이 드러날 때 마다 그렇게 밝고 힘이 넘치던 미오카 씨의 얼굴이 조금씩 피로와 절망, 무력과 분노로 물들어간다.
한국 전쟁 이후, 국가 재정난을 겪던 대한민국은 국책 사업으로 ‘해외 입양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하게 '대리 입양' 제도가 가능했던 나라로, 입양 부모는 한국에 방문하지 않고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기에 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대리 입양제도에 대해 당시 미국 입양 전문가들의 반대가 극심했으나, 대표적인 해외 아동 입양 기관이었던 홀트의 로비로 무마되었다는 노혜련 교수(홀트 전 직원, 숭실대 명예교수)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마치 품종묘를 샵에서 고르듯이, 서구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의 성별, 인종적 특징을 바탕으로 원하는 아기를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동을 일종의 상품처럼 여기며 타국의 양부모에게 배달하는 이러한 '우편 입양' 서비스는 그 대가로 입양기관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국가와 사기업이 주도하는 일종의 인신매매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국가와 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입양 대상 아동을 확보하고 아동의 출신 서류 위조까지 감행한 범죄이자 불법행위”라는 김영우 2024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의 분석은 정확하다. 해외 아동입양은 단순히 고아 아동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취지의 해외 입양이 아니었다. 입양 이후의 아동의 안전과 생활과 관련된 어떠한 보고와 의무도 없이, 아동을 판매하면 그것으로 끝인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기본권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아동의 입양 과정이 강제적이냐 자발적이냐와는 관계없이, 아동의 재화화와 이로 인한 이익의 수취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것도 국가와 사기업의 주도하에 20만명의 아동이 해외로 이주되었고, 이들의 성장과 안전이 한국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아픈 단편으로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
20만명의 아동을 해외로 수출한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국외 시선을 고려해 해외 아동 입양이 중단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동 수출 과정에서 조작된 서류로 뿌리를 찾지 못하고 배신감과 무력감을 경험하는 해외 입양민들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명은 저출생 국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끊임없는 재생산을 거듭한다. 가장 해외 아동 입양이 많았던 1985년, 한국은 이미 출생률 1.7%를 기록하며 저출생 국가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동을 재화화 하고 떠나보낸 책임을 지고, 해외 입양인의 귀환과 ‘뿌리찾기’를 돕는 일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던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역사 외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으로서 ‘여성’이 존재한다. 해외 아동 입양의 과정은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또 다른 면모를 담고 있다. 북유럽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민 여성들의 인터뷰에서, 한 인터뷰이는 ‘20만명의 아이들이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인신매매 정책으로 해외로 보내졌다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원 미상의 미혼모와 여성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망상적 서사를 너무나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더 나아가 그러한 믿음이 그녀들의 딸, 아들인 해외 입양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거대 권력의 국가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는 익숙한 그림이다. “적어도 제가 만나본 한국 여자들은 아이를 쉽게 버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입양민 여성의 평가는, ‘설령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있었더라도, 그곳에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있으며, 남아선호사상 아래에서 셋째 딸의 낙태와 입양을 권유하는 가정과 사회는 어디에 있으며, 아이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주고 키울 여건을 마련해주는 대신 길고양이를 잡아 가두듯 모아와 두 당 얼마를 받고 팔아넘긴 기업과 국가는 어디에 있으며,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는 추진한 대통령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는 무거운 질문을 불러온다.
주제가 아닌 구성의 차원에서도,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여성 감독, 배냇의 여성 회원들, 뿌리를 찾는 해외 입양민 여성들과 이들의 어머니-언니, 그리고 탐문을 돕는 시장의 할머니들. 출산과 아동의 양육이라는 테마 때문만이 아니다. 연대와 공감, 실행과 보호라는 테마에서 비로소 여성은 끈끈하게 뭉친다.
‘좋은 일’과 ‘더 좋은 환경’으로 포장된 해외 아동 입양 사업의 실태를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한국인들은 입양인의 귀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입양인의 질문 앞에,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던 대다수의 관객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의 끈질기고 따듯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시점에서, <케이 넘버>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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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재킹 | 역사와 상상 사이에서 항로를 지켜내는 뚝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동해 상공을 비행하던 공군 파일럿 '태인'(하정우)은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남파 간첩이 납치한 한국 민항기가 휴전선을 넘기 직전이 되자 민항기를 사격해 엔진을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는 전역한 자기 사수가 파일럿임을 확인한 후,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을 우려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비행기는 그대로 북한에 억류되고, 태인은 군복을 벗는다.
2년 후 민항기 부기장이 된 태인'(하정우)은 기장 '규식'(성동일)과 함께 속초 공항에서 김포행 비행에 나선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이 탑승한 후 이륙한 비행기. 그러나 '용대'(여진구)가 사제폭탄을 터뜨리자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용대는 조종실을 장악한 후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마저 한쪽 시력을 잃은 가운데, 태인은 비행기와 승객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과거의 힘을 살린 항공영화
하이재킹. 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미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하이재킹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5년간 325건에 달할 정도. <1987>의 김경찬 작가가 각본을 맡고,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성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하이재킹>은 바로 그 시기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1년 1월, 속초공항발 김포공항행 여객기가 이륙 30분 만에 홍천 상공에서 납치범 김상태에게 납치당했고, 이강흔 기장과 전명세 조종사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비행기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무사히 비상착륙했고, 승객도 전원 생존했다. 이강흔 기장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를 북한의 미그기라고 속이는 기지를 발휘하고, 전명세 조종사가 폭탄을 몸으로 덮는 희생정신을 보여준 결과였다.
<하이재킹>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1987> 느낌이 물씬 나는 역사적 상상력이다. 사람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던 시대의 그림자와 과거라서 오히려 신선한 당시 시대상을 버무려 기존 항공 영화의 한계를 피하려 했다. 과하지 않게 감정선을 살짝 '넛지(Nudge)'하는 화법도 관객을 승객 중 하나로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난기류를 만나고도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의 것은 역사에게, 상상의 것은 상상에게
실화 사건을 다룬 작품의 관건은 각색의 정도와 방향성이다. 상상과 왜곡은 한 끗 차이니까. 그런데 <하이재킹>은 그 어려운 일을 비교적 잘 해냈다.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는 대목과 상상력을 발휘할 대목을 철저히 분리한 선택이 장르적인 측면과 스토리텔링 양쪽에서 득이 됐다.
사실 항공 영화는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시간대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숱한 사고를 겪으면서 보안 규정이 나날이 철저해졌기 때문.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만 해도 '류진석'(임시완)이 비행기 표를 사는 첫 장면부터 기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전개가 어색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하이재킹>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함정을 피했다. 항공 보안 관련 규정이 미비했던 70년대를 배경 삼아 자칫 억지스러울 상황을 납득시켰다. 선착순으로 비행기 자리를 고르거나 용대가 보안 검사를 뚫고 폭탄을 반입하는 장면은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빈틈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실제로는 없었던 민항기 격추 명령, 알려진 바 없는 범인의 범행 동기 등을 잘 짜 맞춰서 태인과 용대 사이에 진한 감정선을 불어넣었다.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는 '이한열'(강동원) 열사와 '이연희'(김태리) 사이의 가상 로맨스를 활용해 6월 민주 항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 <1987>의 장점과도 유사하다.
피해자 VS 피해자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단순한 항공기 납치 스릴러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전혀 접점이 없는 태인과 용대의 이야기는 대조될 때 함의가 드러나기 때문. 용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전형이다.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반공분자로 몰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사이에 어머니까지 죽은 그는 2년 전 납북 사건 주동자가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에 착안해 하이재킹 범죄를 저질렀다.
반면에 태인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는 되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휴전선을 넘어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쏴서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군에서 사수였던 파일럿과 승무원, 승객 모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대가로 강제전역 당한 후에도 그는 군복을 벗긴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 사격을 피하고, 한쪽 손만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면서 2년 전과는 달리 승객도, 승무원도, 자기 부사수도 지켜냈다.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됐지만 전혀 다른 답을 볼 수 있으니까. 용대는 피해의식과 정부를 향한 불신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은 물론 무고한 이들의 인생까지 파괴하려 든다. 반면에 태인은 그 불이익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자기 신념을 증명해 보인다. 북한에서 송환을 거부한 파일럿 사수의 가족을 자기 자족처럼 돌보고, 부기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그래서일까? 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순간은 <하이재킹>에서 볼 거라 예상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처럼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이를 마주한 후에야 가해자가 된 피해자는 마침내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용대는 자기처럼 무고한 피해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태인의 설득에 비로소 흔들린다. 여기에 다소 잔인한 과감한 연출이 더해지면 둘의 관계는 의외로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압축과 절제의 미학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구성도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담긴 감흥을 극대화한다. <하이재킹>은 압축과 절제의 미학을 살려 이야기를 러닝타임 100분 안에 눌러 담고, 빠른 템포로 전개하면서 사건과 주인공 둘에게만 시선이 쏠리게 한다.
사실 <하이재킹>의 구성은 자칫 익숙한 신파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갑작스레 납치된 승객 하나하나의 사연을 풀어놓으면 눈물을 짜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혼여행 가는 부부, 아픈 딸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할머니 등. 하지만 영화는 승객에게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타이밍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한다.
감정을 강요하는 대신, 관객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하고 뒤로 물러나는 셈이다. 사법고시 붙은 아들과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검사가 된 아들이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수화 쓰는 어머니를 창피해하는 아들. 납북을 대비해 신분증을 파괴해야 상황에서 아들은 차마 검사 신분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히려 신분증을 찢으려 하고, 잘 찢어지지 않자 아예 삼켜 버린다.
부메랑이 된 상상력
다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상상력은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과욕처럼 보이는 볼거리가 적지 않다. 물론 인상적인 대목도 있다. 용대가 폭탄을 터뜨려 조종실을 장악하는 장면은 마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속 뉴욕 타임스 스퀘어 장면을 연상시키는 슬로 모션 효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같은 퀄리티는 아닐지언정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 자체는 놀랍다.
하지만 비행 시퀀스로 서스펜스를 쌓는 장면은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체에 구멍이 나서 비행기가 급낙하 할 때나, 한국 공군이 민항기를 사격하고 이를 피하는 장면이나, 여객기가 배면비행을 보여주는 것까지.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지만, 잠깐이라도 현실성을 따지는 순간에는 맥이 뚝 끊길 수 있는 상황이다. 마치 <비상선언>에서 항공자위대가 민항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순간처럼.
또 비행기 내부 전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승객들이 용대를 덮치고, 부기장이 휴전선을 넘은 척 용대를 속이고, 어떻게든 난기류를 이용해 보려는 식으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겁에 질린 승객과 난폭한 납치범이라는 구도를 벗어날 변곡점이나 제3의 인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중반부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서 비교적 지루할 수 있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하정우와 성동일만이 이름값을 해냈다. 배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극본의 한계가 드러난 지점에 가깝다. 여진구가 맡은 용대의 경우 태인과 대조되는 사연만 돋보일 뿐,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나 매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채수빈이 연기한 옥순은 단순히 시나리오의 도구에 불과하다. 없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이에 더해 <하이재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술적인 아쉬움도 크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비행기 외부 소음과 대사가 섞이거나 파일럿끼리 무전을 할 때는 OTT 자막 기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배급사가 아닌 컬럼비아 픽처스가 직접 배급하는 작품인데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라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실화에 상상을 더해 어찌어찌 목적지에는 착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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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라는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8★/10★
〈올파의 딸들〉은 재현과 정치적 호명의 문제에 관한 놀랍고 적확한 통찰과 질문을 남긴다. 튀니지에 사는 올파에게는 네 딸이 있다. 그중 두 딸이 IS에 가담했다. 자발적으로. 첫째는 IS의 수장과 결혼해 딸을 낳았고, 미군의 공습으로 남편이 죽은 후에는 15년 형을 받고 동생과 함께 수감 중이다. 모든 게 실화다. 도대체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영화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까.
〈올파의 딸들〉의 카메라는 두 가지 일을 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극영화다. 감독은 올파와 남은 두 딸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기로 한다. 그들은 직접 배우가 되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연기한다. IS로 떠난 두 딸 역에는 배우를 섭외한다. 올파가 감정이 너무 격해져 촬영이 어려울 때는 그를 대신하는 배우가 연기한다. 올파와 남은 두 딸은 진짜 가족과 배우가 연기하는 가족 사이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대면하고, 상처를 마주한다. 세 가족과 세 배우는 수시로 모여 대화하며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그 결과물을 재현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 사용법은 그 자체로 영화적 효과를 낸다. 올파와 남은 두 딸은 영화 촬영 과정을 통해 자기 객관화의 계기를 마주한다. 과거를 복기하고, 연기를 통해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혼자 삭히고 슬퍼할 때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성찰이 샘솟는다. 이 성찰은 집단적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올파와 네 딸이 겪은 고난은 개별 고통이 아닌 집단적 기억으로 재탄생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을 몰아붙인 권력관계의 구체적 양상이 드러난다. 부당한 권력의 희생자인데도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한 가족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층위 역시 조금씩 구체화된다. 올파와 두 딸, 그리고 세 명의 배우는 여성으로서, 가족으로서, 동료 시민으로서 관계를 다지고 개별성을 말살하지 않는 집단으로 도드라진다. 눈부신 유대, 연대가 피어오른다.
이 모든 것들을 매개로, 영화는 올파 가족 상처의 근원에 다다른다. 원치 않는 결혼 이후 폭력적으로 굴던 남편과 힘겨운 결혼 생활을 하던 올파는 자신의 네 딸에게 엄격하게 군다. 지배적 규범하에서 고초를 겪은 사람이 되레 이를 사랑하는 주변인에게 강요하는 건 흔한 일이다. 상처 많은 과거에 근거해,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파의 훈육은 딸들의 거센 저항을 받고, 갈등은 점차 깊어져 폭발 직전에 이른다.
가족 내에는 좆을 만한 규범이 부재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이 소란과 혼란 속에서, IS의 영향력이 올파네 집에 스며든다. IS는 니캅(눈을 빼고 모든 곳을 가리는 종교 복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머리를 파랗게 염색해 올파에게 두드려 맞은 첫째 딸이 엄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IS에 호응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규범을 상실한 채 보잘것없는 현실에 방황하던 그녀는 IS의 부름에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되찾는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꿈꿀 만한 미래도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IS의 극단적 이념은 아주 간단한 실천만으로 네가 다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위무를 건넨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애정을 갖고 호명하지 않았을 때, 극우의 이념만이 네가 전사가 될 수 있다고 북돋는다. 올파의 두 딸은 그렇게 IS로 건너가 범죄자가 되었다.
아랍권 국가에서 정치적 주체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올파의 딸들〉은 몇몇 다른 아랍 영화의 문제의식과 공명한다.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모하메드 코르도파니의 영화 〈굿바이 줄리아〉에서, 부유한 북부인에게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남수단 청년은 더 ‘우월’한 사회문화적 조건을 갖춘 북부인에게 대항하는 군사 조직에 묘한 동경심을 품는다. 세계적 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알리 아바시는 〈성스러운 거미〉에서 성노동자 연쇄 살인범 아버지 재판 과정에서 안티페미니즘에 기반한 극단적 세력이 자기 아버지를 추앙하는 걸 보며 정치적 흥분에 젖는다. 무엇보다 〈올파의 딸들〉을 연출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전작 〈피부를 판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 된 남자가 상품 논리를 거슬러 자유를 찾는 과정을 남성성 회복의 서사와 연계해 펼쳐낸다. 이들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특정한 결핍을 겪다 특정 담론과 만나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다. 〈올파의 딸들〉은 극우 정치가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는 과정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지닌다.
길잃은 자들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아랍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동시대적 현상이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 한국이 그렇다. 지금처럼 정치적 주체화의 방향성이 극단적으로 치우친다면, 올파네의 비극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될 것이다. 올파 가족의 이야기는 가장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개인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혼란스러운 시대, 정치적 주체를 주조하는 대안적 호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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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셋 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씨네픽과 함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와 관객 스코어를 알아보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10월 15일, 16일, 17일의 주말 박스오피스 관객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10월 셋 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관객 스코어 분석 시작하겠습니다!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10월 13일 개봉 첫 날부터 2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최고 흥행 외화영화인 '블랙 위도우' 오프닝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주말 동안에는 77만 명의 관객이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관람했으며, 개봉 5일만에 100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돌파했는데요.
코로나19 속 국내 극장가에 새로운 활기를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소식과 앞으로 10월 20일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대작 <듄>과의 박스오피스 경쟁이 예상됩니다.
2위.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에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가 개봉함과 동시에 2위로 떨어졌는데요. 15일~17일 주말 관객 수 또한 전주대비 69.3%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115만 명을 돌파했지만 앞으로 할리우드 대작 <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등이 개봉함에 따라 박스오피스 순위의 하락이 예상됩니다.
3위. <보이스>
▶박스오피스 3위는 <보이스>가 차지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13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개봉 5주 차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과연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박스오피스를 예측하고 상금도 받아가는 씨네픽의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맞혀라!' 이벤트에 참여한 씨네픽 참가자들이 예측한 스코어를 확인해볼까요?
[네이버 실제 관람추이 통계 참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 나이별 관람추이를 보면 여성 57%, 남자 43%으로 여성 관객들이 더 많은 비율로 관람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관객 중에서도 20대 비율이 47%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와 비교하여,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 참가한 사용자들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자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씨네픽 사용자 박스오피스 예측 분석※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주말 박스오피스(10월 15일~17일) 실제 스코어는 777,775명입니다.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씨네픽 사용자들이 예상한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치에 따르면,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는 21세~25세 여성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은 440,323명, 26세~30세 여성은 309,003명으로 예측했습니다.
▶▶한편 씨네픽 스코어 예측 통계에 따르면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 참가한 20대 여성 사용자는 총 여성 참가자수의 40%를 차지, 총 참가자 수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씨네픽은 이벤트 참가자 중 박스오피스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을 한 유저분에게 우승 상금 포인트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 참가자 중에 우승 상금 포인트를 받으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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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0월 셋 째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Halloween Kills>가 차지했는데요.
북미 기준으로 10월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주말동안 $50,350,000(한화 약 596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Halloween Kills>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공포 장르물로 할로윈 밤의 살아있는 공포 '마이클 마이어스'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 받아온 '로리 스트로드'의 이야기로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 제이미 리 커티스의 주연의 영화입니다.
국내 개봉일은 10월 27일이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그럼 이번 주도 힘차고 건강하게 시작하시고,
저는 다음 주 월요일 1시에 더 쉽고, 유익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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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확인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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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숲 속에 고립된 G7, 현대 정치의 초현실적 우화
감독 에번 존슨( Evan JOHNSON ) /게일런 존슨 (Galen JOHNSON)/ 가이 매딘(Guy MADDIN)
Canada, Germany, Hungary,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2024/104min /DCP /Color/B&W /Fiction/15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뜬소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일곱 명이 G7 연례 정상회의에서 겪는 일을 그린다. 글로벌 위기에 대한 임시 성명서를 작성하려던 국가 정상들은 숲에서 길을 잃고 점점 커지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리뷰
캐나다 영화계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에반 존슨, 게일런 존슨)가 공동 연출한 영화 <뜬소문>(원제: Rumours)은 G7 정상회담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비틀어낸 블랙 코미디이자 정치 풍자극이다.
영화는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정체불명의 세계적 위기에 대한 공동 성명을 작성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정상들은 짙은 안개와 함께 숲 속에 고립되고, 설상가상으로 정체불명의 위협(죽지 않는 늪지의 시체들, 거대한 뇌 등)과 마주하며 혼돈에 빠진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도자들의 허영심,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이들은 길을 잃은 채 서로를 의심하고 기이한 상황에 휘말린다.
<뜬소문>은 가이 매딘의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고전 영화의 양식을 차용한 듯한 독특한 촬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들은 정치인들의 공허한 수사와 위선적인 몸짓을 과장되고 희화화된 방식으로 포착하며, 현대 국제 정치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숲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현실 정치의 밀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지도자들의 내면 풍경을 시각화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독일 총리 역을 맡아 카리스마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으며, 캐나다 배우 로이 뒤피는 자국의 총리 역으로 등장해 미묘한 캐나다적 유머와 풍자를 더한다. 찰스 댄스는 미국 대통령으로 분해 강대국 지도자의 오만함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섬뜩한 상황 속에서 각 캐릭터의 불안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력함과 소통 불능을 코미디와 호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실험을 통해 효과적으로 폭로한다. <뜬소문>이 보여주는 대담한 상상력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뜬소문>은 현시대 정치의 단면을 기괴하고도 유쾌하게 해부하는 문제작이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현실에 대한 서늘한 성찰을 유도한다.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뜬소문'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상영 스케줄
2025. 05. 02 CGV 전주고사 3관 14:00 (상영코드 225)
2025. 05. 04 CGV 전주고사 3관 17:00 (상영코드 440)
2025. 05. 06 CGV 전주고사 3관 21:00 (상영코드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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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인터내셔널 예고편
스파이더맨 vs 스파이더맨?! ? 세상 모든 스파이더맨이 모였다! 초대형 멀티버스 감당 가능하시겠어요?!?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인터내셔널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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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마스터링> 메인 예고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 커피머신은 고장난지 오래고, 먼지투성이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 뿐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온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한 낯선 동거. 그러나 곧 야스민의 작은 마법으로 그녀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꾸밈없는 미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해가는 소중한 시간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바그다드 카페'도 두 사람의 마법으로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이 깃들게 되는데...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기적!
당신의 삶을 위로할 가장 아름다운 뮤직바이블이 찾아옵니다! Call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