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1-22 23:40:08
쾌감은 그대로, 사담은 최대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국내로 수입해 상영을 하려면, 모든 이름들을 한글로 바꿨어야만 했다.
<슬램덩크>도 이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정론으로 먹혔다! - 그리고, 국내 한정으로 "박상민"이 부른 '너에게 가는 길'은 여전히 회자되는 명곡이다.
무엇보다 농구 만화를 떠나 "농구"만으로 첫 번째로 연상되는 <슬램덩크>가 새로운 극장판으로 나왔는데, 이는 26년(애니메이션) 혹은 극장판 <포효하라 바스켓 맨 영혼!! 강백호와 서태웅의 뜨거운 여름> 이후 27년 만이다!
영화는 원작에서도 마지막 이야기로 언급되는 최고의 호적수 "산왕공고"를 맞이한 "북산고교"의 경기를 다루었다.
다만, 차이라면 "송태섭"이라는 인물의 초점에 맞춰 똑같은 이야기가 아님을 밝혔다!
1. 공을 달리 잡는다.
보통 만화는 "TV"에서 보는 것이 통상적이나 "극장판"은 말 그대로, "극장"으로 상영한다.
그리고, 이에 맞춰 기존 에피소드를 재편집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기존 에피소드 "산왕공고 대결"을 재편집한 선택을 했다.
물론, 주인공 "강백호 - 서태웅"의 시점이 아닌 또 다른 팀원 "송태섭"의 시점으로 똑같은 이야기 변화를 주었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로 말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해당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있다.
그렇기에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초점을 맞춘 건 "이야기"에 있는데, 그 중심이 "송태섭"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극 중. 과거 아버지와 형을 연달아 잃은 가정사에 어머니와 불화, 그리고 '꼭, 산왕공고였어야만 했다'라는 동기를 납득하게 만든다.
2. 사담이 재밌긴 하나...
이런 부분에서 기존 장점을 계승하되 부족했던 이야기 "프로모"에 대한 단점을 개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흥미진진한 경기의 발목을 부여잡는다.
이런 이유에는 "송태섭"외에도 "정대만"과 "채치수", 상대팀의 "정우성" 등. 많은 캐릭터들의 관계와 이야기들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모"가 기억되기 위해선 경기와 병행하기보단 설명이 완료된 상황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야만 한다.
그러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이가 관객들이 되어야지, 절대로 창작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 과한 친절은 넣어주세요!
무엇보다 원작과 애니메이션에서도 공개된 "산왕공고 대결"의 결과는 알고 있지만, 보여주는 액션들과 과정은 흥미진진했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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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
2009, 미국/영국, 87min,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 스포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으니, 영화 감상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골적이지 않은, 설득적이지 않은 영화였고, 그래서 좋았다. 보통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할때, 의식하지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가 전달할 수 있는, 품고있는 교훈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된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고, 일면 긍정적인 효과도 물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구성해가는 작가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것들에, 즉 교훈과 의미들에 대해 과도히 집착하게 되고, 그들을 뒷바침하기위한, 또 그들에 적합한 구성들로만 서사를 채워나가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된 이야기들은 때때로 너무나 폭력적이다. 실제로 피가 난무하거나, 격한 말투를 사용해서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이야기 이면의 작가가 하나의 생각, 하나의 아이디어를 너무나 일방적이고, 단편적으로, 계속해서 피력하기 때문에 폭력적이다. 관객은 이러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자신 나름의 여러 생각들을 전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잃게된다. 왜냐면 작가가 감독이, 그들에게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해볼 수 있는 틈을 전혀 내주지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 점에 있어선 매우 타영화들과 비교해보았을때, 독보적으로 자유롭다. 하나의 메세지, 주장, 교훈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모든 런닝타임과 인물, 소재, 상황과 사건들을 소비하지 않는다. 이 깨달음은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졸업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성과정에서도 스스로 간과하였고, 또 매몰되었던 오류를 재발견해볼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하여서 크게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판타스틱 Mr. 폭스>에서 이 폭스는 마치 웨스 앤더슨 같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왜냐면 그의 영화 속 이미지들과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는 방식들이 정말 폭스가 말한 판타스틱, 즉 특별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 시각적인 효과와 구성이며, 그와 더불어 카메라의 움직임도 너무나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다.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이 영화에선 매우 신중한 프레임과 화면 구성이 인상깊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미지의 향연’, ‘컬러의 향연’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정도로, 예술적인, 감각적인 다양성을 80분 내내 자극한다. 어떤 프레임에 영상을 멈춰세워도, 모든 장면들이 예술적이다. 이 사실은 조금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마주하게된다. 특히 나에게 인생영화라 할 수 있는 영화는 무엇보다도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와 같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 또한 어떤 프레임에서 화면을 멈춰세워도 모두 예술작품과 같은 견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시각적 효과를 줄곧 보여주는 영화는 사실 조금은 드물다고 생각되고, 그런 면에서 이 <판타스틱 Mr. 폭스>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만큼이나 끈질길만큼 정교한 화면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즉 수많은 화면들이 크고 작은 소재들과 다양한 컬러감들의 조합으로 굉장히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철저한 균형을 보여주고 있었고, 수평과 수직으로 거의 대부분 화면이 구성되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계속 다양한 깊이감을 매우 정면인 방향에서 드러냄으로서 단순히 지루한 평면으로 느껴지지 않고 확실한 직선적 공간감이 느껴진다. 물론 사건의 진행상황을 풀어내고 조망하는데 있어서, 인물들을 따라가는 단 하나의 방식만이 아니라, 아이콘적인 시각효과를 활용하거나, 미세즈 폭스가 그리는 그림을 이용하거나, 또 완전한 단면을 드러내면서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들을 활용함으로서 관객이 진행되는 사건들을 좀 더 다른 시각적 소재들을 통해 재조명,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 및 환기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으로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역시 화면 구성과 비슷하게 매우 수직, 수평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특히 완전한 수평으로 인물들 혹은 사건의 발생 등을 트랙킹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이런 움직임은 물론 장단점을 지닌다. 강렬한 역동성을 강조해내기는 다소 부족함이 있을 것이고, 안정적으로 영화 속 세계를 조망하기에는 상당히 적합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 생각되고, 이런 조금은 차분한 카메라 무빙이 앞서 말한 아름답고 구성적인 프레이밍을 시각적으로 확실히 전달하는데 있어서, 난 매우 적합했다고 생각하며, 또 전에 언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이런 수직, 수평이 강조된 픽스된 화면과 차분한 카메라 움직임을 선택함으로서, 이 영화와 같은 아름답고 견고한 화면구성을 매우 잘 강조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구체적인 효과들도 물론 배울만한 점이지만,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은 사실 움직임의 이유에 대해 진심어리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즉 사실 영화를 보면서, 때때론 카메라의 움직임, 화면의 전환 등에 대해 이유를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스톱모션 영화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매우 이유있는 방식으로 카메라 움직임을 드러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정 인물에게 클로즈업을 하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화면을 보여주는 순간, 또 비슷한 상황이나 인물들이 내뱉는 동일한 키워드들을 통해 장면을 연결 및 전환하는 순간 등 카메라의 움직임과 누구를 어떻게 화면에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모든 타이밍과 방법들이 매우 타당하게 느껴지고, 이유없는 영화 속 순간들이 거의 부재한 듯이 느껴졌다. 이 점 역시 앞으로 어떠한 종류의 영상을 제작한다하더라도 매우 크게 배움을 얻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처음 문단에서 말했었듯, 이 영화는 특정한 메세지나 교훈을 단정적으로 강요하지 않고있고, 그에 따라 나 역시 많은 가능성과 호기심을 가지고 각 영화 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언행, 취향 등을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맹목적인 하나의 메세지를 향해 모든 요소들이 질주하고 있지않는 이 영화에선,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각 소재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재밌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이유 덕분에 이 영화의 서사를 한 갈래로 설명해 풀어내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의 서사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각 개인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이는 물론 미세즈 폭스가 아들인 애쉬에게 말하는 “그래도 다르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잖니”라는 대사와도 매우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개성은 사실 이 영화 속에서 난 인물들의 두려움을 통해서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았었다. 대표적으로 폭스는 늑대를, 미세즈 폭스와 카일리는 천둥을 두려워한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은 처음 보기스, 번스, 빈이 폭스의 집을 파기 시작할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폭스와 미세즈 폭스의 안방 안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인데, 이 때 몇번의 컷들을 통해 여러번씩 드러나는 그 방의 벽면을 보면 천둥이 그려진 그림들이 가득한 게 강조되고 있다. 결국 미세즈 폭스의 두려움이 현실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천둥은 결국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인간들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잘 인식하기 어렵지만, 이 세 농부 사업가들의 공장을 견고히 지키는 매우 폭력적인 장치인 전기 울타리의 안내판이 나타나고나서는 분명하게 알 수 있게된다. 실제로도 미세즈 폭스는 폭스가 인간을 상대하는 위험한 행동을 두려워하며 그만두길 바란다는 점에서 이 천둥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하게 그녀의 본성,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폭스가 두려워하는 것은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알 수 있게되고, 그에 따하 앞서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늑대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폭스는 굉장한 절망적 상황을 마주하며, 하수구에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미세즈 폭스에게 자신의 솔직한 진심을 토로하는데, 이때 그는 영화의 제목과 같이 자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특별하게 환호받는 ‘판타스틱 Mr. 폭스’가 되기를 너무 바랬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고 이 말에 따라, 당연 늑대는 ‘판타스틱’하지않은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소재라 볼 수 있다. 실제로 늑대와 여우는 같은 개과이기도 하며, 둘 다 가족단위로 공동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설정에 따르면, 폭스는 많은 다른 종의 동물들과 함께 마치 인간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늑대는 홀로 추운 산위에 우뚝 선채, 어떠한 옷차림도 갖추지 않은, 또 말이라는 타인과의 소통 수단도 익히지않은 매우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즉 영화 후반부에서 폭스가 늑대를 실제로 마주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면은, 폭스가 막연하게 ‘판타스틱’한 존재, 즉 타인들에게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로 갈채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그러한 자신의 분신같은 존재, 늑대를 실제로 마주하자 생각과 달리 그러한 모습도, ‘판타스틱’하지 않은 모습도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이렇게 늑대를 만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이 영화를 각 개인의 개성을 중요한 핵심으로 보았던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에 있다. 결국 미세즈 폭스의 그림에선 천둥은 사라지지만, 허리케인이라는 새로운 견제와 위협의 대상이 등장하고, 나무 위에서 살다가 결국 하수구에서의 배고픈 삶으로 폭스의 행동들은 조금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세 농부 사업가들의 슈퍼마켓을 약탈하는 위험한 행동을 개시한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이 장면들은 그들의 타고난 본성이자, 성격들이 결국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반복적으로 발현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뜻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Aya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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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성공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레오 카락스의 독창적 뮤지컬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2년 만에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등장해 심사위원들은 물론, 해외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에게서 “2021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감독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 〈아네트〉 리뷰입니다. 그 시작점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것에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미 다수의 마니아 층을 확보한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첫 음악 장르에 그것도 대사 없이 전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오로지 영어만 사용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르적 규칙과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자신의 틀 조차 바꾼 파격적 형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시사회라는 좋은 기회를 맞아 먼저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및 기본 정보
관객의 환호 속 사랑과 기쁨, 그 어두운 이면
신의 유인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인기 절정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안과 LA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며 귀여운 딸 Annette를 낳게 됩니다. 이후 점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안과 달리 육아에 전념하면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헨리, 그의 좌절은 두 사람 사이를 삐걱대게 만들죠. 그리고 관계 회복을 위해 떠난 보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기는데...
영제 : ANNETTE│감독 : 레오 카락스│각본 : 론 마엘, 러셀 마엘│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몬 헬버그 외 多│장르 : 뮤지컬,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 141분│개봉일 : 2021년 10월 27일│국가 : 프랑스, 벨기에, 독일, 미국, 일본, 멕시코, 스위스│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17, 왓챠피디아 예상 4.1, 로톤 토마토 신선도 71% 팝콘 76%, IMDB 6.4, 메타 스코어 67점
We love each other so much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두 주연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노래입니다. 특히, '모든 것은 현장에서!'라는 원칙을 내세운 감독의 고집에 따라 오페라 아리아 장면에서의 전문 가수 목소리를 얹거나 사전 녹음을 한 노래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브로 소화하며 연기를 펼쳐냅니다. 두 인물 모두 공연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에서 미디어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모양새는 또 다른 그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죠. 유명인이 만나, 파국을 맞고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불행은 그저 볼거리로 변질되며 밑바닥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불행의 이유, 매일 밤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한 여자의 행복,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내막은 뒤로 한 채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비춥니다. 그 얄팍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그저 돈의 가치에 움직이는 오락적인 소재로 치부되는 두 인물의 불안은 어쩌면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노래와 연기로 보여준 두 배우의 깊이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더불어 두 주연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두 인물의 딸을 일반 배우가 아닌 목각 인형 마리오네트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목각 인형의 등장은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인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인 쓸쓸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작품 특유의 기괴함을 배가 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나오는 마리오네트는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은 딸이 아빠의 강압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인 채 입을 벙긋거리며 아빠와 딸의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주죠. 초반 놀라움과 이질감을 주었던 요소에서 어느새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로 전환돼 동정과 연민을 자극시킴으로서 마지막 엔딩에 힘을 실어줍니다.
So, may we start?
관객들이 마주하는 첫 장면부터 사뭇 다르게 '노래하고 웃고 박수치고 우는 일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쇼가 벌어지는 동안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며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연주가 흘러나오고, 주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해 '그럼, 시작할까요?'(So, may we start?)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모든 이들이 모여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롱테이크로 마무리되고 두 주연이 자신의 역할로 떠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감독이 꿈꾸는 가상 세계에 대한 설정을 스팍스의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을 받게 해 극의 시작을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특이점들이 현재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극장가에서 그 기초가 되는 음향과 시각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에 더욱 집중해달라는 그의 부탁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전에 보여준 작품에서의 나쁜 남자의 모습,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극적 제스처, 무대 위의 화려함과 그 어두운 이면의 음울함을 오가는 색채, 전체적으로 흐르는 환희와 비극이 어우러지는 오페라 같은 느낌은 분명 호불호를 일으키기에 분명하지만, 그 기괴함이 묘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시작부터 기쁨, 결실, 그리고 적대감으로 변화해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 관객들은 141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스팍스의 몽환적 노래와 함께 그만의 기이하고 독특한 뮤지컬 판타지로 빠져들게 됩니다. 언뜻 사랑스럽고 따뜻한 스토리를 생각했겠지만, 전개는 성공의 격차로 점차 폭력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치닫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폭력적 충동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까지 파멸로 이끄는 비극, 그 상황 속 헨리의 어두운 심연을 이미지화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녹여 아리아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죠.
스크린을 통해 사랑이 주는 기쁨부터 그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까지 잔잔한 파도가 풍랑으로 변해 몰아치는 광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꼭두각시였던 마리오네트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인격화됨으로써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나쁜 아빠는 만감이 교차하며 한 남자로서 자신의 속죄를 하게 됩니다. 결국 감독이 인터뷰에도 밝혔듯 함께 출연한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사랑과 가족, 죄와 벌 등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기존에 생각한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스타일의 뮤지컬과는 다르고 상업적으로만 접근을 한다면 실망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 무성영화와 같은 고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측면에서 강렬한 배우의 연기나 감독에서 대한 애정으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s. We love each other so much 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겁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사랑과 예술이 빚어낸 성공의 이면, 파국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 속 레오 카락스의 기이한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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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학생 부모, 그들의 비열한 본능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한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아이를 챙기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자식과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기본적으로는 자식에게 문제가 가해자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부모의 보호와 챙김 아래서 아이는 큰 걱정 없이 자신이 해야 할 공부와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나간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관계를 맺어간다. 그 관계는 대부분 크게 문제가 없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왕따나 학교 폭력 같은 시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나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더 나아가 삶의 의지마저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학교 폭력에 희생당하는 아이가 있다는 건, 반대로 가해자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해자의 위치에 가게 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맺는 관계는 실패한 관계이고, 그 실패를 메꾸는 것 역시 부모의 몫이 되어버린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건 본인들의 고통뿐 아니라 부모의 고통이 된다.
가해 학생의 부모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
우리는 과거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피해자의 위치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접해왔다. 하지만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가해자, 특히 그 부모들의 위치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한음 국제중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의 이야기인데 그중에서도 한결(성유빈)이 그 중심에 있다. 영화 초반에 건우라는 학생이 호숫가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는 임시 담임 선생님인 정욱(천우희)에게 죽기 전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에는 병원 이사장 아들 윤재, 전 경찰청장 손자 규범, 학교 중학교 교사 아들 이든, 그리고 변호사 아들 한결의 이름이 적혀있다. 시체가 발견된 이후 영화가 집중하는 건 학생 당사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 소식을 접한 부모들의 얼굴이다.
병원 이사장 지열(오달수), 전 경찰청장 무택(김홍파), 한음 국제 중학교 교사 정선생(고창석) 그리고 변호사 호창(설경구)가 맨 처음 학교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인 이들은 피해자가 자살 시도를 했고, 미리 쓴 편지에서 가해자로 지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부인한다. 가해자의 부모로서 그들이 가장 먼저 택한 행동이 바로 그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믿어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본능적인 반응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 중반 이후 이 가해 학생들이 피해자에게 행했던 가혹행위와 폭력이 동영상의 모습으로 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때 가해 학생 부모들이 선택한 건, 증거인멸 시도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방법으로 외부에 그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기보다 그들의 자식에게 올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할 뿐이다. 그들에게 피해자의 안위나 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가해 부모들의 모습은 왜 그들이 반성이나 사과를 먼저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성을 하지 않는 가해 학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
영화에는 피해 학생의 시선은 최소화되어있다. 피해 학생인 건우의 엄마(문소리)가 진실을 접하는 모습은 우리가 이미 일반적으로 많이 보아온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피해 학생의 편에서 있는 인물은 임시 담임 정욱뿐이다. 그만큼 현실에서 그들의 편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매스컴이 피해자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진실은 왜곡되어 버리고 결국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있다.
가해 학생 중 하나인 한 결과 그의 아빠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가해자로 보이는 한결의 특성 때문에 아빠 호창은 최대한 그의 죄를 덜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결이 정말 가해자인지 아니면 건우와 같은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건 영화의 극적 긴장을 높이는 요소로 활용되지만 현실에서도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간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가해자가 똑같은 비중으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이 영화가 말하고 있기도 하다.
가해 학생들의 영화답게,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도 가해의 위치에 선다. 교장 선생님(강신일)은 이 일을 무마하기 바쁘고, 피해 학생의 편에 서있는 교사 정욱을 회유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또한 피해 학생 부모의 학교 방문을 막아서는 학교 관리자와 경비들 모두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그러니까 피해 학생을 대변해주고 편들어줘야 할 시스템도 자신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 학생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힘을 더해주는 건 자신의 지위를 활용할 수 있는 부모의 존재들이다. 큰 병원 이사장, 전 경찰청장 등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피해 학생을 두 번 짓밟는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제시하는 영화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또 눈에 띄는 건, 가해 학생들의 부모는 무척 이성적이고 침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정에 흔들리기보다 이성적으로 자신의 자식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한다. 하지만 피해 학생의 부모는 감정적이다. 울음을 터뜨리고 화를 낸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호창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다가도 감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영화의 훌륭한 점은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특성을 훌륭하게 구분 짓기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의 반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위치와 행동에 더욱 씁쓸함이 느껴진다.
호창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는 이 영화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아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기 어려워하고 진짜 일어났던 일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잘 표현해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임시 교사 정욱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도 정규직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을 고민하고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해내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나머지 가해 학생의 부모로 등장하는 배우 오달수, 고창성, 김홍파 등도 아주 이성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모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은 과거 <싱크홀>이나 <타워>, <7광구> 같은 오락영화를 많이 연출했던 감독이다. 하지만 그런 오락영화 이외에도 <화려한 휴가>나 <코리아>같이 탄탄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사실 이번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미 5년 전에 촬영과 편집을 마친 작품이다. 출연 배우의 안 좋은 일 때문에 개봉일을 잡지 못해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봉을 하게 되었다. 5년이 지나 개봉하게 되었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 시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은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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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스러운 이미지만 나열되는 공포영화
과연 신이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 신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초월된 어떤 존재를 믿는다. 하느님, 부처, 알라 등 다양한 종교 집단의 믿음을 받는 존재들은 이미 인류의 마음속에 선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런 비 과학적인 존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각 종교에 헌신하고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매주 기도를 하고 자신과 가족의 평안을 위해 종교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큰 종교들에서 조금 시선을 돌리면 더 다양한 종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분파들을 비롯해 특정 지역에서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오는 토속 신앙들도 있다. 모두 사람들의 신뢰를 받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다양한 신은 그 믿음이 대를 이어 계속 전해 내려오고 해당 신의 믿음을 일반 대중에게 연결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스님, 목사, 신부 등이 대표적이며 지방 신들과 이어주는 무당도 그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모두 공통적으로 종교의 가르침이나 선한 존재에 대한 것들을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일련의 종교들을 현재까지 존재하게 하는 건 바로 믿음이다.
지방 신을 믿는 무당과 그 가족의 이야기
영화 <랑종>은 무당인 님(싸와니 우톰마)과 그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이야기를 다루는 페이크 다큐영화다. 태국어로 랑종은 무당이라는 의미로 이 영화가 주인공인 님과 그가 모시는 반야 신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 속 님은 젊은 시절 반야 신에게 신내림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과거 신내림을 받기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몸이 아팠다. 얼마 정도 저항을 했지만 결국 반야 신을 받아들인 그는 대를 이어 반야 신을 섬기는 무당이 되었다.
님은 반야 신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영화 내내 그는 반야 신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행동한다. 신내림 직전 님과 그의 언니가 경험했던 신체의 이상한 아픔이 조카 밍에게도 벌어지자 님은 그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이 진짜 신내림인지를 판단하려 한다. 영화는 전형적인 다큐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님이 가진 시각이나 생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는다. 그의 인터뷰에는 반야 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깔려있는데 그것은 결국 반야 신이 선한 신이라는 판단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영화 속 마을의 사람들은 동물, 집, 산, 나무 등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애니미즘(animism)의 시각이 영화에 담겨있는 것인데, 이 애니미즘은 살아있는 생물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물에 정령이나 혼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주로 원시 문화에서 많이 믿었던 이 개념은 현대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는 문화의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그런 다양한 혼령이 주변에 있다고 믿는데 특히나 반야 신은 그 모든 것의 균형을 맞추는 존재로 특별히 그를 받아들인 무당 님 또한 특별한 존재로 묘사한다.
사실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특별하지 않다. 님의 인터뷰와 생활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님이 형부의 장례식장에서 밍을 만나 관찰하는 시선으로 전환된다. 밍이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 신체의 아픔 등은 그것이 일종의 신내림이라는 것을 모두가 부인하지 않는다. 밍의 엄마가 자신의 딸이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만 영화 내의 다른 등장인물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 결국 밍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반야 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 흔들릴 때 찾아오는 공포
모든 등장인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반야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불신하지 않는다. 그 믿음과 신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안정감을 주는데 밍의 이상한 행동들에 불안감이 있지만 무당인 님의 말을 따르면 그런 것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믿음이 곧 사람들을 안심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 믿음이 흔들리는 시점부터 영화는 공포의 강도를 높이게 되고 후반부에는 거의 직접적인 이미지로 그 공포를 보여주게 된다.
사실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는 나홍진 감독의 영향이 많이 들어갔다고 보여진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그 점에서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곡성>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두 영화 모두 무당이나 퇴마 의식이 진행되기도 하고, 지역의 신인 바얀 신을 향한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지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홍진 감독의 색깔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나홍진의 색이 입혀진 것까지는 괜찮지만 영화가 나홍진 영화가 가지고 있는 깊이 까지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랑종> 이 <곡성>처럼 보다 근원적인 공포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무당인 님의 시각과 설명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에 몰입하여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예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후반부의 전개와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화의 중반이 넘어가면 영화는 밍에게 나타나는 이상한 증상들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공포의 수위를 높인다. 그런데 한 번에 수위를 높인 영화는 그 이후 아주 원초적이고 혐오스러운 공포 이미지를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다.
일종의 푸티지 영화인 이 영화는 캠코더로 귀신이나 초자연 현상을 찍은 여러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블레어 위치>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한국영화인 <곤지암>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처음 몇 장면들은 꽤나 공포스럽지만 영화의 공포스러운 존재의 모습이 계속 반복해서 보여지게 되면서 오히려 무서움이 줄어든다. 아주 직접적으로 공포스러운 장면을 드러내는 후반부는 주인공들의 처절함과 공포심이 화면으로 전달되지만 혐오스럽고 역겨운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가 만들고자 하는 공포심이 극대화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가 여러 번 비슷하게 반복되는 이미지에 완전히 파묻혔기 때문이다. 영화가 던진 주제의 힘은 약하지만 그를 뒷받침해주는 이미지들은 너무 강렬해서 주제가 가져오는 공포는 휘발되버리고 만다.
혐오스러운 이미지만 나열되어 아쉬운 영화
영화가 포함하고 있는 특정한 종교나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핵심적인 질문은 후반부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후반부 하이라이트 장면인 퇴마 의식 장면은 바얀 신에 대한 믿음이나 무당에 대한 믿음 같은, 영화의 초반부터 던지고 있는 질문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혐오스러운 공포의 장면들이고 그 이면에 있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나 주제는 완전히 가려져 버린다. 그래서 영화의 맨 마지막 보여주는 메시지도 큰 울림을 가지기 어렵게 된다.
그만큼 영화는 자신이 가진 메시지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그저 참혹한 영상만을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신이 파놓은 깊은 우물 밑만 보여줄 뿐 그것을 밖으로 내뿜지 못하고 있다. 나홍진이 제작한 영화이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들의 깊이보다는 그가 가진 테크닉과 분위기만 가지고 온 영화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영화는 대부분 신인이나 무명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데 특히 님의 조카 밍 역을 연기한 나릴야 군몽콘켓의 연기가 훌륭하다. 그는 아주 발랄한 젊은 여성의 연기로 시작해 여러 령에 의해 빙의된 괴이한 존재를 그의 얼굴과 몸짓으로 표현해내 영화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연기는 <부산행>, <곡성>에 참여한 박재인 안무가에게 연기지도를 받아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가 가진 분위기 자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주제와 공포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이 아쉬운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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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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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하게 빠져드네… 134개국에 판권 선판매한 K-좀비물
6★/10★
한국에서 나온 것이 세계적 관심을 끌 때 우리는 그 앞에 ‘K’자를 붙인다. K팝, K콘텐츠, K방역, K뷰티, K콘텐츠 등등. 그중 ‘K좀비’라는 표현도 있다. 탄탄한 각본,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자본을 곁들인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국제적 성공을 거둔 후 등장한 말이다. 그리고 여기, ‘K좀비’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선 영화가 있다. ‘B급 코믹 좀비 액션’을 표방하는 〈강남좀비〉다.
〈강남좀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대형 건물에 좀비가 등장하며 생기는 일을 담은 영화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나 지금은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조차 밀리는 조그만 영상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일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민정은 제법 능력 있는 영상 편집자지만 아직 별다른 경력이 없어 경험을 쌓고자 한다. 남몰래 민정을 좋아하는 현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민정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해 조금은 침울한 상태다. 그 와중에 회사 사장이 민정에게 은근슬쩍 성추행을 일삼아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했으니 줄거리를 예측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답게 고군분투하면서도 좀비 떼들로부터 회사 직원, 특히 민정을 멋지게 구하고 민정 역시 그런 현석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마음을 연다.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좀비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저예산으로 만든 좀비 영화이 액션과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좀비 드라마의 액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초의 좀비 감염자를 연기한 조경훈 배우의 열연, 흰자를 보이지 않게 한 좀비 분장, 배우들의 노력으로 채운 좀비 액션은 분명 적당히 즐길 만한 정도다.
영화가 표방하는 B급 정서도 포인트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웃음을 주고자 의도한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고, 영화가 진지해지고자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난다는 점이다. 즉 〈강남좀비〉가 의식적으로 표방한 B급 연출은 다 빗나간다. 그러나 진지한 감정선을 만들려 할 때는 오히려 B급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세태를 욱여넣은 장면과 장르 영화의 클리셰가 뒤섞인 장면을 보기가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저예산 영화의 공백을 기묘한 방식으로 채워내 의도치 않은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데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오프닝 액션을 보며 나온 ‘아……’ 하는 탄식이 ‘이 영화, 왜 재밌지…?’라는 당혹스러운 물음으로 전환될 때쯤부터, 나는 〈강남좀비〉를 기꺼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134개국 판권 선판매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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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멜릭 감독은 데뷔작 '황무지'를 연출하고 3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보여준 황량하고 메마른 장면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주이공들 역시 '황무지'에서의 연인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이 영화에서도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번째 봤을 때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쓴 글이 아래에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분석을 떠나, 이 영화는 처연하고 슬픔이 너무 깊어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리차드 기어)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다. 그는 시카고에 살며 영세한 제철소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1916년 무렵이니까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의 배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빌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관리자와 마찰을 빚고, 의도하지 않게 관리자를 살해한다. 이 앞부분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므로 관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공장 내부의 소음이 너무 커서 빌과 관리자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마치 쏘련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빌은 애인 애비(브룩 아담스)와 여동생 린다(린다 만츠)를 데리고 시카고를 떠나 남쪽 텍사스까지 내려와 떠돌이 노동자들이 넓은 밀밭을 수확하려 모여 드는 곳에 주인공들도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애비를 애인이나 아내가 아닌, 여동생으로 소개하는데, 부부라고 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빌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려면 부부라고 말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빌은 애인 애비를 여동생이라고 말한 이유는, 언젠가 애비와 헤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즉 빌은 자신이 공장관리자를 실수로 살해하고 도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애인 애비의 삶을 위해 자기와 묶어두기 보다는 조금 느슨하고 자유롭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밀 수확을 하는 농장의 농장주는 젊은 백인으로, 그는 돈이 많았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고, 가족도 없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수확철이 되면 기차를 타고 몰려왔다가 수확이 모두 끝나면 임금을 받고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오똑한 집 한 채에 머무는 농장주는 부유해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농장주가 우연히 애비를 발견하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 빌은 우연히 농장주가 시한부 삶이라는 걸 엿들었고,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빌의 생각은 애비가 농장주와 결혼하고, 농장주가 곧 죽으면, 농장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으리라.
밀 수확이 끝나 떠돌이 노동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 남아 허드렛일을 하며 농장주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곧 농장주와 애비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게 농장주와 애비는 공식 부부가 되었고, 빌은 농장주의 처남이 된다.
네 사람은 밀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지낸다. 이 영화에서도 데뷔작 '황무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빌의 여동생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서의 삶이 마치 천국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풍족한 생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아름다운 자연,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온전한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처음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주는 아내 애비와 처남 빌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낌새를 챈 빌은 농장을 떠나고, 세 사람은 다시 밀을 심고, 수확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애비는 처음에 농장주와의 결혼이 정략결혼이었고, 애정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정한 농장주의 태도에 자신도 남편(농장주)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느낀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밀 수확철이 되었을 때, 떠났던 빌이 멋진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다. 농장주는 다시 빌과 애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결정적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밀밭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메뚜기를 없애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농장주는 빌에 대한 분노와 배신의 감정으로 가득 찼고, 우연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는 불씨를 밀밭에 던지며 밀밭이 모두 불에 타버리도록 방치한다.
농장주는 빌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다가서지만 빌의 공격으로 살해당하고, 빌은 다시 애비와 린다를 데리고 도망한다. 보안관들이 빌의 뒤를 추적하고, 마침내 빌은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애비와 린다는 빌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지만, 살인자 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애비와 린다는 서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애비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사라지고, 린다 역시 무용학원에서 친구와 함께 도망쳐 철길을 따라 사라진다.
결말은 세 명의 주인공이 죽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운명이 가난에서 시작했고,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에 관한 인식은 아래,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썼던 글로 대신한다.
천국의 나날들. 1978년 테렌스 멜릭 감독 작품. 젊은 나이의 리차드 기어와 샘 쉐퍼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영화임에 틀림 없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하겠다.
스토리만 보면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비교적 평면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미국의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성, 역사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의 미국 즉 1900년에서 1930년대까지의 미국 사회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정글'부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국 현대 소설들은 당대의 현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기에 이미 놀라운 판매와 함께 여론을 집중한 베스트셀러였다.
'정글'과 '분노의 포도' 사이에 이 영화의 시대가 있다. '정글'은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는 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다. 그는 도살장에서 일하는데, 그가 일하는 도축장의 현실은 생지옥이 따로 없는, 참혹한 환경이다. 그가 받는 임금은 집세를 내기에도 버겁고,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참혹한 공장 환경을 비롯해 그가 살아가는 환경은 최악이다.
'정글'은 이 시기의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유르기스가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이는 평범한 노동자에서 각성하는 사회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3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조드 일가가 겪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 영화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또한 '분노의 포도'에서도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무대는 텍사스의 농장이다.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빌은 공장장과 말다툼을 하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되고, 그의 애인과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한 곳이 텍사스의 농장이다. 광활한 농장은 밀을 키우는데, 수확철이 되면 떠돌이 노동자들을 불러 들여 그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밀 수확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왜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들여다 봐야 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이름들-J.P 모건, 록펠러, 카네기, 제이 굴드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명한 자본가들의 이름이며, 지금까지도 미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는 지배집단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계급의 대립이 매우 격렬하게 맞붙게 되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이후출판사)'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사회는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세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치되어 있는 반면,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도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으로 미국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미국의 자본가들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으로 전이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박살내고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을 향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결국 모든 노동쟁의와 반자본투쟁의 원인은 바로 자본(가)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고,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역시 이러한 내적 모순에 의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고 말살시킨 이후, 미국은 제3세계를 통해 착취한 이윤의 일부를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을 완화했고, 미국의 노동자들은 순치되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미국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빌과 그의 애인 애비, 여동생은 텍사스의 농장에서 밀 수확을 하게 되는데, 그 농장의 주인은 미혼의 젊은 남성으로, 애비를 눈여겨 보게 된다. 빌은 자신의 애인을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들이 애인 사이인 것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싸움은 빌이 애인인 애비를 설득해 농장주와 결혼하라고 권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빌은 농장주가 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빌과 애비의 관계를 눈치 챈 농장주(샘 셰퍼드)는 빌과 다투는 와중에 빌에게 살해당한다. 두 번씩이나 사람을 죽인 빌은 도망자가 되어 쫓기다가 결국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겉으로 드러난 빌의 범죄-살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몰린 노동자가 두려움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던 20세기 초는 특히 노동자의 생존 조건이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소모품에 불과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때였다. 지금의 미국은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도 발달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까지 오는 동안 미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탄압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거의 유일하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탁월한 작품이다. 멜릭 감독은 이 영화로 음악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가 영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상, 뉴욕비평사협회 감독상, 로스엔젤레스비평가협회 쵤영상,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장면 한컷 한컷이 마치 회화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내용이 매우 처연하고 슬픈 것과 대비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희생되는 떠돌이 노동자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극적으로 대비하고 있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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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감 최고! 다시 돌아온 마형사, 범죄도시2
?Rabbitgumi 입니다!
마형사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범죄인도 때문에 베트남에 가면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거기서 장첸보다 더한 악당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영화는 마형사의 액션감을 극대화하고 유머도 레벨업을 했는데요.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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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시티> 버라이어티 모험 예고편
놀라지 마요! 뒤에....! ? #로스트시티 급 스릴러 모먼트? 보물 찾는 소설을 썼을 뿐인데... 거머리 무서워하는 허당 근육맨과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드벤처라니? 로스트 시티 보물을 향해 쫓고 쫓기는 대유잼 어드벤처에 함께할 여러분(N명) 4월 20일, 극장에서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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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왓챠 독점 공개]
올 여름, 살인의 꽃이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