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02-01 11:24:59
아빠와 소피와의 추억은 캠코더 그 이상의 추억이 담겨있다. 그런데...
<애프터썬> 영화 시사회 후기
소피는 자신의 엄마하고 이혼한 아빠와 며칠간 튀르키예여행을 한다. 엄마와 사이가 좋냐는 아빠의 질문에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답을 하는소피가 캠코더로 여행의 일상을 찍는다. 튀르키예의 호텔에서 아빠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자신과 똑같은 또래 남자애와 오락실에서 오토바이 게임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싶어 하던 성인들의 사랑 이야기도 화장실에서 들으며 아무리 어린애지만 성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다분하다. 11살의 나이의 소피는아빠와 장난을 치며 아빠는 131살이라는 농담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아빠에게는 남모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아빠에게 무슨 과거가 있길래 딸에게는 다정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숨겨진 이면은 무엇이 있었을까?
아빠는 소피가 모르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소피가 아빠에게 11살의 나이에 무엇을 했냐고 하니까아빠는 그때 생일이었는데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고 출생지인 스코틀랜드에서도 소속감이 없었다. 그래서 소피의 엄마와 이혼했지만 다시 잘 살아나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소피가 아빠와 장기 자랑에 나가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런 자신감조차 아빠에겐 없었다. 한마디로 무언가 수치심을 깊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소피도 튀르키예의 호텔에서 성인 남녀들이 키스하는 모습과 성적인 행위에 대한 동경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과 오토바이 게임을 하던 또래 남자애와 키스를 할 수 있었다(그런데 또래 남자애가 먼저 덮치려고 장난침 그걸 저항하는 모습도 아버지한테 배웠음)
아빠는 자신도 공허하며 딸인 소피에게 잘해주려고 하지만 무언가 마음속에 남아있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이혼하면서부터 딸인 소피를 다시 보게 되고 즐거운 추억도 함께 공유하려 했던 그런 아빠가 소피와 마지막 휴가를 보낸 후에 딸이 떠나는 모습을 캠코더로 찍으며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한다. 20년이 지난 후에 소피는 캠코더에 담긴 아빠와의 추억을 보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올라가며 영화 애프터썬은 끝이 난다. 사실 소피와 아빠와의 추억은 사실 감독이 경험했던 실화라고 한다. 아마도
아빠와 함께했던 소피의 추억은 캠코더에 담겨있으며 다시 볼수록 눈물 나는 추억들이 많이 있기에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라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파격 노출 뒤 드러난 세 남녀의 숨겨진 욕망
밀실을 소재로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치정극.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히든 페이스>는 에로틱 스릴러로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원작만 봐도 수위 높은 노출과 파격적 설정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는 리메이크 버전의 기대 요소 중 하나. 에로틱 장인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인지 극장에서 마주한 영화는 그 기대감을 충족할 만하다. 아름답고도 수위 높은 베드신의 완성도 뿐만은 아니다. 그 장면에 숨겨진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뜨거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좀 일찍 찾아오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지휘자 성진(송승헌)은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이자 약혼녀인 수연(조여정)의 영상 편지를 확인한다. 결혼 스트레스 때문에 해외로 떠난다는 내용을 본 그는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녀의 부재를 대신해 첼리스트 미주(박지현)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온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상류층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과 흙수저라는 공통점을 가진 미주에게 매력을 느끼고, 술을 건하게 마신 비 오는 밤, 자기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중요한 건 이 모습을 수연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 집 안에 있었던 밀실 공간에 갇힌 그녀는 이후 성진과 미주의 불륜을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작품을 제안받고 영화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와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와 DNA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발현되지 못한 욕망의 뿌리들이 저 먼 아래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한 지점에 가장 이끌렸다.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우 감독은 <히든 페이스> 리메이크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기존 원작은 개연성과 디테일보다는 밀실 콘셉트를 밀어붙이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욕망에 집중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도가 결여되어 위험한 사랑의 테스트로만 비쳤던 게 사실이다.
김대우 감독은 원작의 단점을 메우고 자신만의 결로 다잡기 위해 계급 갈등을 집어넣는다. 성진은 개천에서 용 난 흙수저 케이스다. 그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 건 단장인 엄마의 소중한 딸 수연의 힘이 크다. 자기 손을 일궈낸 결과물이 아닌 수연의 힘으로 엉겁결에 상류층이 된 그는 내색하지 않지만 수연의 꼭두각시처럼 생활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하소연할 때 없는 성진에게 슈베르트를 좋아하고 소주를 즐겨 마시는 흙수저 미주는 공감 대상이 되고, 서로 통한 마음을 바탕으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욕정으로 분출된 것.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성진과 미주, 그리고 이를 밀실에서 본 수연의 관계는 더 복잡미묘하게 엮인다.
“인간은 포장이야” 오케스트라 단장이자 수연의 엄마 혜연(박지영)이 내뱉은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실력이 있든 없든 간에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 알맹이가 어떻든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이 말을 역행하듯 감독은 성진과 미주의 베드신을 그저 아름답게만, 그리고 단순히 그들만의 복잡미묘한 사랑으로 그리지 않는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이 관계는 어떤 의도를 담고 시작된 위험한 불장난이다. 마치 <인간중독>의 진평(송승헌)과 가흔(임지연)과는 다른 결의 주인공들과 이야기로서 발전한다는 걸 내비치는 듯 말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밀실에 갇힌 건 수연이 자초한 일. 그 안에서 이들의 불륜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설정 또한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밀실에 갇히게 된 원작과 달리 수연이 스스로 들어가 갇히게 된 이유를 집어넣는다. 수연과 미주가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새로운 설정을 가미한 영화는 더 나아가 호의를 무기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수연의 전사를 보여주며, 밀실에 갇힌 것 자체가 과거의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계급 갈등이란 무거운 주제 의식을 삽입, 밀실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에로틱 스릴러라는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 감독은 꾸준히 계급 갈등을 소재로 포장지에 감싸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런 점에서 <히든 페이스>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에서 느껴진 애틋한 사랑과 연민은 이번엔 없다. 대신 정해진 계급 사회 안에서의 차가운 욕망을 발현하고 그에 따른 비틀어진 행복에 취하는 인물들과 결말을 보여준다.
<히든 페이스>는 김대우 감독의 진일보한 연출력을 보여준 건 맡지만,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달린다. 계급 갈등을 조장하는 부유층의 이미지는 피상적일뿐더러, 후반부 반전에 따른 관계 역전이 파격적인 놀라움을 주지만, 이를 도달까지의 속도감이 더디다. 결말에 따른 공허함도 크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이유로 보인다. <주홍글씨> <상류사회> 등 소재와 이야기 흐름이 비슷한 영화의 기시감도 걸림돌이다.
이런 단점을 메우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송승헌은 꼭두각시로 살아갈 것인지,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갈등을, 조여정은 겉으로는 호의를 내비치지만, 그 자체를 족쇄로 삼아 사람들을 부리는 상류층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대우 감독과 첫 협업인 박지현은 두 인물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반전을 꾀하는 모습을 잘 그린다. 특히 과감한 노출 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한다.
영화 제목처럼 세 인물은 숨겨진 자신들의 얼굴을 내보이고,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취한다.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본연의 얼굴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잔혹한 사회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더 가져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게 공허함 뿐일지라도.덧붙이는 말: 극 중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4개의 즉흥곡 D.899 중 제3번, 그리고 교향곡 8번 ‘미완성’이 삽입되었는데, 각 곡마다 성진의 마음과 각 장면의 의미를 더 아로새긴다. 특히 초반 성진의 마음을 빼앗는 미주의 첼로 연주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후반부 이 영화엔 얄팍한 서정성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역설적으로 내보이는 듯한 교향곡 8번 ‘미완성’은 주의 깊게 들어보길 바란다.
평점: 3.0 / 5.0
한줄평: 원작보다 높은 수위, 원작보다 좋은 짜임새, 원작보다 아쉬운 속도감
-
- 영화 <불한당>,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불한당>과 <무뢰한>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품격(?) 막장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두고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불륜이 선빵이면 그 정도는 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농담조로 말하자 상대방은 부부, 아니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냐고 진지한 답을 내어놓았다. 동감하며 답했다. 맞다. 그런 메세지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믿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인지를. 안 믿고 있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걸 확인하는 게, 믿었다가 못 믿을 놈이란 걸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그런 인생의 교훈을 일찍 깨달아서 도움이 되었겠다는 말에 웃으며 답했다. 아뇨, 알면서도 당했다고. 이번은 다르겠지. 이 사람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결과가 똑같았다고. 알면서 당하면 진짜 바보인데. 안 그런가?
현수 曰 "(어휴) 촌스러워요"
<불한당>은 촌스러운 듯하면서 까리하다.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빨간 스포츠카 같은 영화다. 맛깔나는 대사나 장면도 많다. 다년간의 드라마와 영화 학습으로 쌓인 우리의 기대와 예지력을 조금씩 벗어난다. 처음부터 생선 눈이 무서워서 회를 못 먹는다는 둥, 사람 눈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최후의 만찬처럼 회를 사주고 머리에 총알을 박질 않나, 사람 죽이는 건 안 무서운데 여전히 생선 눈은 무섭다고 깻잎을 덮질 않나. 그러다간 또 푼수 떼기처럼 허세를 부리다가 삼촌에게 얻어맞고 차에 가서 훌쩍거린다. 그 눈물이 어찌나 새롭게 느껴지던지. 덩치가 작은 현수가 덩치 큰 수감자와 뺨 때리기를 하면서 주먹을 쓰는 반칙을 하면서도 당당하고, 재호는 그걸 보며 '혁신적인 또라이'라며 마음에 들어하기도 한다. 그런 현수에게 열광하는 당신도 두말할 것 없이 압도적인 또라이 아니겠어.
숨겨둔 카드를 빨리 보여준다. 아니, 벌써? 살짝 당황스럽지만 별로 걱정되진 않았다. 재호는 현수가 위장 경찰인 걸 일찌감치 알고 있고, 현수는 심지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형, 나 경찰이야"라고 자백을 한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아차리게 된다. 무간도 같은 언더커버 전개가 아닐 거라는 것. 실제로 영화는 나쁜 놈인 건 둘째치고 등장인물들이 어지간히 또라이들이다. 이상하게 순정파 같은 또라이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재밌어서 도와준 거 같기도 하고
재호와 현수의 영화이다. 좀 더 치자면 재호와 현수, 병갑과 천 팀장이 남는다. 현수의 행동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재호는 잘해야 미끼 혹은 돌다리다. 검거해야 할 타켓 중 일부에 불과했다. 어지간해선 칼을 가지고 재호를 얼마나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기를 쓰고 그렇게 말리고선 대신 다친다. 재호를 구하지 않았어도, 다치지 않았어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진 않았을까. 목숨은 어머니 말씀처럼 박애주의적인 입장에서 구할 수도 있다 쳐도 교도소에서 남은 기간 동안 모든 힘을 다시 찾을 수 있게까지 해준 게 제법 과하게 느껴졌다. 목적을 위해 마음을 얻는 일이 이렇게 정성이 가득한 일이었나 싶었다. 재호에게 든든한 믿음을 얻으려는 전략이었을까, 그 사이에 진심이 있었던 걸까.
게임 끝나버렸는데요
재호가 왜 현수를 아까워하고 아꼈는지는 분명하다. 고아원부터 함께한 병갑과는 다르다. 병갑은 무조건적으로 재호를 좋아하고 무해하다. 하지만 그라고 뒤통수를 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재호는 늘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뒤를 돌아보며 살라 하지 않았나. 병갑이 현수를 꼬마 새끼, 짭새 새끼라며 부르며 질투하고, 회장 자리에 앉아보면서 히히덕거리는 순진한 힘에 대한 로망은 빤히 보이니까 괜찮다. 병갑이 정말 재호를 아끼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건 삼촌이 재호를 죽이려고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놀라지 않았을 때였다. 별스럽지 않게 면회를 와선 뒤늦게 삼촌이 널 죽이려고 했다며 재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장면. 아, 이래서 병갑이와는 안 되겠구나 했다. 만약 재호가 잘못됐어도 지금처럼 침착할 수 있었을까. 훌쩍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현수가 재호의 뒤통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병갑은 늘 한 박자 늦고 어딘가 빈틈이 있다. 재호는 병갑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야속하게도 마음이 수평을 이루는 사이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병갑의 마음이 재호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나 상황이냐, 앞통수냐 뒤통수냐
<불한당>은 내게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안에 사랑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뢰한> 이후에 믿음의 씁쓸한 얼굴이 떠오르는 영화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누구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역으로 현재 세상의 기본값이 거짓말과 뒤통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뢰한>은 <불한당>과 비교하면 그나마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재곤과 해경은 살아있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서로를 완전히 믿진 못했다. 재곤은 해경을 속일 힘과 집요함이 있었고 혜경은 속일 수는 있지만 끝까지 모질지 못했다. 그에게 칼을 꽂아도 치명상에 이르지 못한다. 재곤은 혜경을 찾아가 변명도 하고 믿음을 저버린 걸 나름의 방식대로 속죄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해경의 복수는 바들바들 떨면서 그에게 칼을 꽂는 것이고, 재곤의 속죄는 그 칼을 그대로 맞고서도 그녀의 새해 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불한당>은 다르다. 현수와 재호는 둘 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 인정사정없이 칼을 꽂고 목을 조르고, 얼굴을 뭉개고 총을 쏜다. 재호의 배신은 순순히 넘어가기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않나. 재호가 현수를 감는 방법을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아끼는 현수를 알고도 완전히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면 어머니의 죽음쯤은 감수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열하는 현수를 보던 재호의 얼떨떨한 표정이 인상 깊다. 마치 "그렇게까지 괴롭고 슬퍼할 일인가" 싶으면서 약간은 잘못했나 싶은 표정.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현수가 심지어 신분을 드러내는, 평생 재호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믿음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비밀과 속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가족을 그렇게 아낄 수 있다는 게 재호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재호의 마음도, 어깨도 무거워진다. 우리만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그 생각.
이렇게 어려운 건 현수 네가 처음이야
재호는 착실히 판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서 원하는 것들을 이뤘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왔다 가면서 세워놓은 방법이었다. 이제 현수도 곁에 있고 고병철 회장도 사라졌다. 살기 위한 일이었을 뿐 지겹고 피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수에게는 마지막까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수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른 게 분명한데도, 주변의 공기도 날씨도 다른데도 함정에 걸어 들어갔다. 병갑을 직접 명패로 때려죽이면서도 현수가 복수를 하고 있구나,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게 하는구나 했을 것이다.
묘하게 밉고 묘하게 미워할 수 없다
재호의 병 주고 약 주고(어머니는 돌아가시게 하곤 장례식 비용과 마무리는 도와주는) 식의 행동을 알게 된 후, 현수는 재호를 이상하게도 많이 배려해 준다. 일찌감치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얘기해서 자신을 죽일 기회도 주고, 경찰들로부터 피할 수 있게 작전을 모조리 바꿔버린다. 재호 역시 자기 한 몸 지키기 바쁜 와중에도 현수가 곤경에 처하자 다가와서 도와주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재호를 천 팀장이 차로 받아버릴 때는 순간 이 영화의 악역이 천 팀장이었나 싶게 느껴질 정도다. 하긴, 천 팀장이 제일 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야멸찬 사람이긴 하다. 모든 걸 알고도 원하는 걸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 죄책감 같은 건 스스로 괴롭기만 하고 당하는 놈이 바보라고 하더니 그럼 이제 누가 바보인가. 얼마나 악역인지는 재호의 웃음소리 뒤에 현수가 천 팀장에게 박아 넣은 총알 소리를 세어보자.
현수가 될 수도 있었지
재호와 현수를 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안타까워진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아니 현수가 원하는 대로 감방으로 입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다면, 재호가 오세안 무역 사람이 아니고 현수가 경찰이 아니었다면, 재호가 가족애라는 걸 공감하거나 현수가 좀 더 솔직하지 않았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현수가 바라던 대로 취직을 했다면 회를 먹으면서 영화 시작과 동시에 머리에 총알이 박혔을 것이고 오열하면서 홀로 남은 쪽은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알뜰히 챙겨줬다면 어머니를 핑계로 현수를 움직이게 했던 천 팀장이 무슨 짓을 했을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뭔가 달라졌다고 해도 결과가 과연 안타깝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처음에는 현수 입장에서 재호를 원망했다. 하고많은 방법 중에 꼭 어머니를 죽이는 방법이었어야 했을까. 좀 더 솔직할 순 없었을까.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으면 너를 죽였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 번도 누굴 믿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말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를 믿는다고 말할 때마다 괴로웠다고도. 천 팀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을 입도 이해는 간다. 경찰인 걸 속이는 것과 어머니를 죽였다는 점을 속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말했다 하더라도 현수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재호가 밝히는 순간 현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지게 된다.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선, 현수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과연 현수가 재호의 숨을 끊었을까 싶었다. 총도 맞고 차에도 치어 치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재호의 고통을 줄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는 끈질기니까 살아남을 순 있겠지만 어차피 이젠 함께할 수가 없다. 현수와 재호는 정말 모든 걸 그만두고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었다. 재호가 다시 감방에 잡아넣는다고 치면 지난날처럼 감방을 주무르며 지낼 수 있을까. 또 나온다 한들 다시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현수는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을 그만둘 수 있을까. 현수는 모든 것을 재호에게로 돌린다. 이 모든 상황도, 사람들도, 시간도. 사람들도 역시 상황을 믿을 테니까. 재호의 손에 쥐여준 그 총을 믿을 테니까.
마지막 장면의 현수의 표정은 춥다. 늦은 후회와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허여멀건 하게 질려있다. 굳이 손으로 재호의 숨통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까. 여태까지 잠입을 위해 때리고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과 재호는 다르다. 의미가 생기고 믿어버리게 됐다. 차라리 그가 알아서 고통받도록 그대로 두었다면 적어도 죽음은 현수의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이고 믿음을 저버린 복수는 현수를 스스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현수가 재호를 덮었던 손을 늦지 않게 놓아버리고 뒤도 돌아버리지 않고 걸어갔으면 어땠을까. 그 빨간 스포츠카가 비어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들이마시는 재호의 숨은 인셉션의 팽이처럼 마지막 숨인지 계속되는 숨인지 알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영화는 불한당이고,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현수는 재호를 죽게 함으로써 불한당이 되고, 재호의 마음을 이해한 채로 살아가게 됐다.
여담이지만 <무뢰한>에서 목적을 위해 믿음을 뒤로했던 형사 재곤은 <열혈 사제>에 가서는 신부가 되어 "너에게 말한다. 77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역대급으로 성장한 인내심과 믿음을 보여주었다. <불한당>의 피와 눈물, 배신감과 불안, 슬픔과 두려움에 젖은 경찰 현수는 재호와의 사이에서 용서가 물 건너가 버린 게 마음 아프기도 하다. 인생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 안에 살아있던 그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언제 봤다고 대뜸 자기라고 부를 때였는지, 처진 어깨로 등 뒤에 칼이 있는지도 모르고 감방 복도를 걸어갈 때였는지, 출세하기 한참 전에 낡아빠진 사무실에 데려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인지, 알면서도 자기가 불러들인 죽을 자리로 들어오는 초연함 때문인지, 혹은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던 사람이 자신 앞에서는 결국 총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인지. 다만 현수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손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에 여실히. 그 마음이 미안함 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어둠 속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날이 밝아오면서 밀려올 때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
- 영화 <쑤저우강> 리뷰 -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지독한 사랑 이야기
어릴 적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세차게 흐르는 흙탕물에 발을 담가 본 적이 있다. 사전에 수심이 얕은 곳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탁류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혹시나 물살에 휩쓸려 자빠지면 현세의 흙탕물이 순식간에 황천길로 바뀔 판이니 당연했다. 양발을 하상(河床)에 안정적으로 고정했다는 안도감이 들고 나서야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응시할 수 있었다. 흐르는 시간의 힘을 시각적으로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10대 중반이었지만 모든 것은 변화하고 종내 사라진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을까?
러우예(로예) 감독의 영화 <쑤저우강>은 흙탕물이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쑤저우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과감한 1인칭 시점 숏,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필수적인 주인공의 내레이션 등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왕가위(왕자웨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영화의 핵심적 이야기 줄기를 바탕으로 영화의 내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쑤저우강>은 인어공주 동화를 변주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만 해석하기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마련해 준 해석의 공간이 너무 드넓다. 기묘한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레이션만 하고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남자 비디오 촬영기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배우 저우쉰이 1인 2역으로 연기한 여자 주인공 메이메이와 무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마다와 무단의 전설적인 사랑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관객은 의심과 혼란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게 된다. 러우예 감독은 <쑤저우강>을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쑤저우강>은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영화'라는 생각을 하며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라이브러리 톡에 참가했다. 장장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라이브러리 톡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의 내적 구성 요소만으로는 <쑤저우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러우예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현대 중국의 비극적 역사를 <쑤저우강>에 겹쳐 놓고 보아야 흙탕물처럼 속이 보이지 않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영화의 안과 밖을 두루 살펴야 영화의 진짜 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에 대한 열정, 고민의 폭과 깊이가 정말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자리를 지킨 관객들에게 따듯한 유대감을 느끼면서 집으로 향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10월 16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쑤저우강> 상영회와 라이브러리 톡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안전하고 깔끔한 거장의 쇼쇼쇼
아뿔싸.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왔다. 노트북은 챙겼어서 충전기는 무조건 있을 줄 알았다. 오랜만에 들어간 맥주집을 들어간다. 새로운 장소를 들어가도 '큰일 났다'는 생각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터리를 미리 충전시켜 놓을 걸. 20 퍼. 21 퍼. 왔다 갔다 하는 배터리에 내 마음도 초조해진다. 빨리 쓰고 끝내야 하는데. 집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기에 나 자신을 믿기 어렵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키보드를 연다. 가게의 음악 볼륨은 너무나도 컸다. 난 맥주집 아래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서 급하게 이 글은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 메모를 쓰고 있다.
누가 이런 나의 일상을 영화로 만들어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칠칠치 못함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으니 이는 충분히 코미디 영화로도 나올만하다. 또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니 뮤지컬 영화로도 각본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서스펜스도 있다. 왜냐면 맥주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탄산음료를 마실까? 무알콜 맥주를 마실까?'였으니 인생의 딜레마를 묘사하기도 탁월하다. 영화가 좋은 이유가 뭘까? 그건 모두의 인생사 한 구석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인 것 같다. 이런 나의 일면도 영화화시킨다면 사람들이 공감할 구석이 많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소설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뭐든 다 똑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8퍼센트, 17퍼센트, 그렇게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을 구경하자니 속상하기도 하다. 그레도 매 주말마다 꾸준히 해왔던 것을 안 하기엔 이게 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과거에 있던 일이라도 충분한 메시지와 함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글을 쓰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원작이 뮤지컬인 이야기를 상영관으로 가지고 왔다. 거장이 다시 만든 고전의 뮤지컬을 디즈니 플러스에서 재생해보도록 하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다
주인공 토니는 근본 없는 양아치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의 무근본을 자랑하듯 패싸움을 하는 토니의 모습이 보인다. 틈만 나면 벌어지는 패싸움에 묘수를 던지는 경찰. 그것은 무도회장에 두 패를 불러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토니는 이 패싸움 일당 중 하나였던 제트파의 일원이었다. 제트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무도회장에 출석한 토니. 그의 마음속에는 맨날 두드려 패고 때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꾸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반대 샤크파에서도 참석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샤크파 두목의 여동생 마리아다. 마리아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살던 사람이다. 불쌍하게 살던 과거에서 벗어나 뉴욕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이 둘은 파티에 참석한다. 그리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맘에 드는 사랑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싶지만 삶의 장난질이 그렇듯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즐겁게 노는 것도 잠시, 두 갱단의 패싸움으로 무도회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는 이 아수라장이 된 무도회장의 다음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았다. 토니와 마리아는 두 집단의 갈등 한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존재가 되는데, 이 분노와 혐오가 점철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고르는 선택지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장이기 때문에 가지고 온 소재와 이야기
사랑이라는 소재는 초콜릿 같은 느낌이다. 이 사랑이 소재로서 접근하기 쉽지만 다양하게 해석하면 깊은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기억과 사랑 사이의 불가분적인 속성, <노트북>에서의 운명론적인 사랑이야기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다루는 사랑은 사실 살짝 뻔한 감이 있다.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치가 아니다. 열등감도, 분노와 혐오도 사랑 덕에 이겨낼 수 있는 거 아닌가. 영화는 이때 사용되는 '사랑'의 가치를 키워드로 삼았다. 또 이를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도 있다. 거장은 두 집단 사이의 혐오와 두 주인공의 사랑을 동시에 제시하며 둘의 쉬운 비교를 돕는다. 뭐. 이건 사실 내가 글을 쓰다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해도 전개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역시 거장의 클래스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자기만 할 수 있는 탄탄한 뮤지컬 연출로 사람들에게 능력을 선보였다.
이 외의 소재를 다룬 부분도 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내지는 세계)에 있는 갈등은 필연적으로 2022년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영화 안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도시 문제가 제시된다. 또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클래스가 있는 감독답게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는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수많은 원작들
맞다. 이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변조한 서사다. 두 집단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나 첫인상에 반한 남녀 주인공이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따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영화 자체가 1961년대의 영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또 원작 영화 자체가 뮤지컬을 기반으로 갖고 왔다. 이 수많은 원작들을 다 볼 필요가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2022년의 영화를 한국인이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미국을 공부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작품의 매력이 복고 구현이 아니라고 보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느껴지는 단점이 있어 원작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는데 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재를 갖고 와 리메이크를 할 것이면 그것까지 다 고려해야 했던 것 아니겠어? 무슨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논외로 친다)
가슴이 웅장 해지는 뮤지컬 연출
뮤지컬 영화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이 영화 역시 춤추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춤추는 인물들이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 뮤지컬 신에서 감독은 그동안의 연출 노하우를 보여주는 듯했다. 첫 장면에서 두 패거리의 싸움 연출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다음 무도회장 신에서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춤추는 동선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상의 색감, 음악의 멜로디 라인, 주인공의 동선 배치까지 탁월한 부분이 많았다. 이 부분이 이런 영화가 비슷하게 많이 나왔음에도 작품의 고유한 개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롯이 스티븐 스필버그이기에 갖고 있는 장점과 특징이 반영된 셈이다.
좋은 구석만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음. 이 영화의 단점도 충분히 존재한다. 바로 인물들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것이다. 스필버그가 혐오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요소들을 장치로만 쓴 감이 좀 있다. 물론 메시지 좋다. 지금의 2022년은 혐오가 판치는 사회다. 이런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맞는 말인데. 그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쪽이 좋을 텐데,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인물이 메세지에 알맞게만 기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줄거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별 무리 없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분명하다. 더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만들었으면 극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좋은 영화. 깔끔한 영화인 건 맞는데 너무 안정적인 선택지만 고른 느낌? 딱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느낌이 강하다.
아카데미의 선택?
다음 주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촬영상, 음향,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이 부분 중 큰 부문은 당연히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일 것이다. 난 여우조연상은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한다. 아리아나 드보스의 카리스마는 뛰어났다. 이 배우는 나올 때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굉장한 매력을 보여줬다. (솔직히 주인공 둘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더 눈에 갔던 것 같다)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SAG-BAFTA-골든 글로브-크리틱스 초이스에서 4관왕을 차지했기 때문에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무관할 듯. 큰 적수는 <파워 오브 도그>의 커스틴 더스트와 <벨파스트>의 주디 덴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작품상과 감독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의 단점 때문에도 있지만 다른 작품이 솔직히 더 좋기도 했다. 혐오와 자격지심에 관한 <파워 오브 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갖고 있는 영화 내적인 논리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어 이 작품보다 더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감독상이다. 감독상 역시 제인 캠피온이 받을 것 같다. BAFTA와 골든 글로브에서 이미 감독상을 받아 유력하기도 하지만, 서서히 밧줄로 조여 오는 연출 방식이 기억에 남기 때문에 제인 캠피온이 유력하다고 예상하고 싶다. 아마 이변이 일어난다고 해도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플러스영화추천
-
- 공감이라는 무기가 세상을 바꾸는 순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세상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꾸만 정해진 방식대로만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회사에서는 매뉴얼대로, 학교에서는 성적대로, 사회에서는 통념대로 살아가는 것을 은근히 강요받는다. 그런 길이 틀리다고 할수 없다. 그 통념은 역사와 경험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것일 테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유일한 길일까. 몇 가지의 통념만이 옳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한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 통념에서 벗어난 소년 히컵(메이슨 테임즈)의 이야기다. 모두가 드래곤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마을에서, 히컵은 싸우지 않고 드래곤과 친구가 된다. 다리를 다쳐 더는 날 수 없게 된 드래곤 투슬리스를 도우며, 히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영화는 히컵과 투슬리스를 통해 묻는다.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살수 있는 길은 정말 있는 것인지, 만약 있다면 그걸 이끌 수있는 리더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하는지.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히컵의 감정 변화를 이용해 그 답을 하고 있다.
[첫번째 감정] 히컵의 무기력
히컵은 바이킹 마을의 족장인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의 아들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도,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전투 실력은 없고, 무기를 다루는 능력도 부족하다. 겁이 많고, 엉뚱한 발상만 내세우니 마을 사람들은 히컵을 골칫덩이 취급한다. 아버지는 그를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고, 대장장이 보조로만 남겨둔다. 마치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거기만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스토이크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과 같이 전투적인 리더가 되었으면 하지만, 매번 사고만 치는 모습에 실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히컵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 같고, 도움이 되기보단 민폐만 끼치는 사람 같다고 느낀다. 그는 외롭고 작아지고 점점 말이 없어지고, 심지어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영화 초반, 드래곤과의 전투 장면에서 히컵은 자신이 개발한 신무기를 들고 나가지만 다른 사람의 전투에 피해를 주고, 드래곤 사냥에도 실패한다. 이는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주게 된다. 그 순간 관객은 히컵의 무기력과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히컵 역시 힘없는 모습으로 구석으로 향할 뿐이다.
이 감정은 단지 캐릭터의 문제만이 아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하니'라는 실망을 느끼고,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며 위축된다. 히컵의 모습은 그런 아이들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히컵의 눈빛은, 우리가 청소년 시절에 느꼈던 외로움과 무기력의 흔적과 닮아 있다. 영화는 많은 기대를 받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을 히컵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 감정] 히컵의 공감력
히컵은 사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드래곤 한 마리를 잡아냈다. 뒤늦게 뒷산에서 한 마리의 부상을 입은 드래곤을 발견했고 그게 바로 전설의 드래곤 투슬리스였다. 마을 사람들처럼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 입은 투슬리스를 도와주고, 스스로 만든 꼬리지느러미 장치를 달아준다. 히컵이 드래곤에게 드러내는 감정은 공감이다. 적이라 여겨지던 존재에게도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공감력은 관찰력과 만나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는 투슬리스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다른 드래곤들의 특성을 알아가고, 드래곤들이 단순히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적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알아채고, 배척당한 존재와 함께하는 능력이 바로 히컵이 가진 잠재력이었다. 히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공감까지 확장시킨다. 그가 만든 변화는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히컵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고민한다. 전면전에 나서는 대신, 대화하고 이해하며 협력의 가능성을 본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지만, 히컵의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영화는 말한다. 진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이 공감력이라고.
[세번째 감정] 히컵의 지도력
히컵은 카리스마 넘치는 전형적인 리더는 아니다. 호통을 치거나 강하게 끌고 가는 리더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자신감 없이 보이기도 하고, 강력해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주변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드래곤들과의 공존을 통해, 마을은 더 이상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더 강한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혼자만이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그 방법을 공유함으로서 평화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게 된다.
히컵의 지도력은 현대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의 리더십이다. 현실에서 말하자면, 누구보다 강하게 지시하는 정치인보다, 의견을 듣고 조율하고 이해하며 함께 가려는 사람과 더 가깝다. 히컵은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오히려 그 약함을 통해 모두를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다. 강한 리더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히컵은 마을의 새로운 리더가 된다. 그는 전쟁 대신 공존을 택했고, 그 선택은 모두를 지켜낸다. 지도자의 힘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는 걸 히컵은 보여준다. 그건 오늘날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리더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나 엄청난 위기가 다가왔을 때, 절대 악처럼 보이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 인간과 드래곤의 장점을 합쳐서 이겨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히컵의 지도력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실사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2010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으로 첫 선을 보였던 이야기를, 원작 감독 딘 데블로이스가 그대로 실사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감성과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과 생동감을 더했다. 특히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장면의 입체감은 4DX나 IMAX로 볼 때 훨씬 더 극대화된다. 투슬리스의 생생한 표정과 움직임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특성을 결합해 구현됐는데,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히컵과 투슬리스의 관계를 통해 말하는 메시지인 '낯선 존재를 향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 실사화의 함정인 어색한 연기나 어설픈 CG를 완벽히 비켜간 작품이다. 디즈니식 PC주의가 살짝 묻어나긴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자세히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게 설정되어 있다. 여러 인종이 공존하는 이유를 설정상 설득력 있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디즈니의 실사화는 원작의 정서를 훼손하거나,서사 구조를 무리하게 바꾸면서 팬들의 비판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외모를 과하게 변경하면서 이야기의 감정선이 무너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 길들이기>는 다르다. 원작의 구조와 감정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실사화로 옮길 때 필요한 감각적인 변화는 세심하게 조율했다. 그래서 실사화라는 형식이 기존 애니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밀도를 좀 더 증폭시킨다는 느낌이다. 어색한 변형 없이도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디즈니 실사화보다 더 균형감 있고, 감정적으로도 더 진실한 작품이다.
결국 <드래곤 길들이기>는 ‘실사화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게 답하는 영화다. 이야기의 본질은 그대로 두되, 감각은 훨씬 확장시키고, 감정은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좋고, 어른들이 혼자 보기에도 충분히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꼭 특별관에서, 바람이 불고 소리가 터지는 그 감각으로, 히컵과 투슬리스의 비행을 함께하길 바란다.
-
- <웬디>,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씨네랩으로부터 언론배급시사회를 초청받아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개봉 전 <웬디>를 관람하였다.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6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인 '피터'가 아닌 '웬디'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터팬'을 그려낸 작품이다.
<웬디>의 감독 벤 자이틀린은 어린 시절부터 재미와 자유를 추구하는 피터팬을 꿈꿨지만, 영화 <비스트>를 연출한 후 삶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여 이를 계기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바로 '피터팬'을 각색한 <웬디>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든 싫든 성장하고 변화하게 되며,
이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어린 시절 품었던 확신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 벤 자이틀린 감독
기찻길 옆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살고 있는 웬디에게는 쌍둥이 남자 형제인 더글라스와 제임스가 있다. 이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의 마음 속에는 호기심과 모험심, 수갈래로 뻗어나가는 꿈들이 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모험에 대한 꿈을 꾸던 날 밤, 웬디는 기차를 타고 있는 소년 '피터'를 발견한다.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기차에 탄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웬디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낯설다'였다.
내가 어렸을 때 관람하고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는 영화 <피터팬>의 분위기는 동화같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웬디>는 동화라기보다는 '야생', '거칠다', '생생하다', '스릴 넘친다'라는 단어들이 더 어울리는 영화이다.
어른들이 없는 세상 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모험한다. 동시에 방황한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는 아이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서툴다. 불안정하다.
마치 알게 모르게 점점 몸과 마음은 자라지만, 아직 내면에 '아이로 남고 싶다'라는 생각이 존재하여 생기는 불협화음같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음은 웬디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잘 전달된다.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고, 감탄한 점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였다.
'웬디' 역할의 데빈 프랑스, '피터' 역할의 야슈아 막, '더글라스' 역할의 게이지 나퀸, '제임스' 역할의 개빈 나퀸 등 모든 아역배우들이 영화와 하나가 되는 연기를 선보였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섬이 주요 배경이기에 아역배우들이 영화를 이끌었는데, 이질적인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이 섬에서는 희망을 잃으면 늙게 된다. 더 이상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섬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모두 희망과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이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쌍둥이 형제 중 제임스는 항상 함께 하던 더글라스가 섬에서 없어지자, 깊이 절망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돼. 그게 널 늙게 하는 거야."
웬디는 제임스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제임스는 결국 희망을 잃고 점점 노화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 나는 수없이 많은 꿈과 희망을 가졌다가 시간이 흘러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꿈을 하나둘씩 포기한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 동안 나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오곤 했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나 스스로 나의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웬디는 용맹하게 모험을 주도한다. 노화가 시작된 제임스를 회복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이어나간다. 희망을 잃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 대항하고, 바닷 속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기까지의 모든 여정의 주체는 '웬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웬디는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늙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웬디는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간 웬디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늙어가며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피터는 섬에 계속 남아 있는다. 피터는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란 것이다.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은 웬디와 상반되는 결정을 하였다.
"마법은 피터의 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이제부터 피터의 이야기는 잠자리 이야기에 그쳐 있다."
웬디가 겪은 '피터가 사는 섬'에서의 이야기는 모험 이야기가 되어 웬디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희망과 꿈이 가득한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모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는 '잠자리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또다시 피터가 탄 기차가 찾아온다. 어린 웬디를 닮아 강한 모험심과 호기심을 간직한 웬디의 딸은 이 기차를 탄다.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웬디의 딸이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과연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지, 아니면 영원히 어린 아이가 되어 그곳에서 살아갈지.
'잃어버린 꿈과 희망, 그리고 동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영화였다.
어린 시절 나는 정말 무수한 꿈을 가진 아이였으며, 항상 희망찬 아이였다. 하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레 이 꿈과 희망들은 사라졌다. 포기했다기보다는 '사라졌다'라고 표현해야 적절한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점점 현실을 깨닫고 이에 적응해가며 자연스레 내가 가진 (조금 무모하다고도 생각되는) 꿈은 사라져갔다.
이런 꿈들은 이제 막 어른이 되어 현실에 치여 힘들게 살아갈 때 문득 떠오르곤 한다. '아 그땐 이런 꿈을 가졌었지', '그땐 참 순수했지', '어릴 땐 겁도 없었다' 등의 생각처럼 말이다. '어렸던 나 자신'이 그립다기보다는 '어릴 때 내가 가졌던 순수한 꿈'이 그리운 것 같다. 순수했던만큼 많은 열정을 가졌고,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종종 그립다.
하지만 '피터'가 나타나서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섬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면 거절할 것 같다.
현실세계에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많이 힘들고 버티기 어렵다. 언제 진짜 어른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마냥 불안정한 시기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또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마냥 순수하기만 하던 꿈이 아닌, 앞으로 살아가며 '진짜 이루고자 하는', '진짜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 꿈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 속의 '웬디'처럼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지혜만큼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터의 섬'에서 겪는 일들이 아무리 재미있고 뜻깊다 해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보다는 다소 지친 현실을 살고 있거나 때때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혹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를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다.
이 모험을 하며 우리는 여러 감정을 겪고 이를 통해 또다른 교훈을 배우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또다른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
피터의 섬 안에 줄곧 있으면서 이런 흥미진진한 모험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을까?
-
- 집착병 환자들의 이선생 찾기는 계속된다
?Rabbitgumi 입니다!
지난 주 영화 독전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1편의 하이라이트와 결말부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어요.
감독이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은 그대로 입니다.
형사 원호와 락 그리고 브라이언이 극을 이끌죠.
큰칼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도 있죠.
그런데 영화가 많이 느슨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업데이트하고 있는 영화 에세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아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링크를 통해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브런치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runch.co.kr/@moviehouse
-
- 순한 맛이지만 강렬한 "에이리언: 로물루스" /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 / 새로운 젊은 캐릭터들 / 강렬한 긴장감과 몰입감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에이리언: 로물루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
- 영화 <아워 미드나잇> 30초 예고편
학교 연습실과 옥탑방을 오가며 반 백수처럼 지내는 무명배우 지훈.
사내연애를 하던 중 말 못할 사건을 겪고 속앓이 하는 직장인 은영.
지훈이 한강 비밀 순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날, 두 사람은 우연히 처음 만난다.
한가로운 밤 산책이 위로가 되는 시간, 같이 걸을래요?
-
-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티저 예고편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 12월 20일 큰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라! 올겨울 최후의 승리를 함께하라! ?개봉일 확정 기념? #노량죽음의바다 티저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