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2-03 12:20:20
정월대보름에 보기 좋은 '달' 관련 영화 추천
<달세계 여행>부터 <더 배트맨>까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바쁘게 달려온 한 주를 뒤로하고, 어느새 기다리던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번주 일요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셨나요?
저는 깜박 잊고 있었는데, 이번주 일요일은 바로 한국의 전통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이에요!
음력 1월 15일을 의미하는 정월대보름은 오늘날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지만,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명절이라고 해요.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운수를 점쳤던 것도 설이 아닌 정월 대보름이었다고 하네요.
오늘은 그래서 정월대보름에 보기 좋은 '달'과 관련된 영화들을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달을 배경으로 했거나 달을 소재로 한 영화들, 지금 바로 만나 보실게요~!
1. 달세계 여행(1902)
감독 | 조르주 멜리에스
출연 | 조르주 멜리에스, 빅토르 안드레, 블로에 베논 등

시놉시스
바르방퓨이 교수는 어느날 과학의회를 통해 대포를 타고 달 탐사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설득 끝에 다함께 달 탐사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달에 착륙하게 된다. 그러나 달에는 셀레나이트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교수와 일행은 그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는데...
CINE PICK!
인간이 달에 최초로 착륙하기 무려 60년 전에 제작된 <달세계 여행>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원작으로 하여,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조르주 멜리에스가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맡아 만든 영화입니다. 마술사였던 멜리에스는 뛰어난 상상력과 손재주를 바탕으로 합성화면이나 디졸브와 같이 후에 널리 사용하게 되는 편집방법들을 컴퓨터 작업 없이 연극 장치만으로 만들어 냈는데요, 그 결과 영화는 최초의 낭만주의 영화, 최초의 SF 영화, 방향의 일치를 통한 연속 컷팅을 최초로 사용한 영화 등 각종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며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2분 정도의 단편영화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14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또한 매우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2. E.T.(1984)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헨리 토마스, 드류 베리모어, 로버트 맥노튼 등

시놉시스
식물학자 외계인들이 평화적인 연구 목적으로 지구를 방문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지구를 떠나게 되고, 뒤쳐진 한 외계인이 홀로 남는다. 방황하던 외계인은 엘리엇이라는 이름의 꼬마와 만나게 되고, 엘리엇은 외계인에게 E.T.(Extra-Terrestrial)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E.T.는 엘리엇과 함께 지내며 끈끈한 우정을 쌓아 나가지만, 길어지는 지구에서의 생활로 인해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CINE PICK!
<E.T.>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2년 SF 영화입니다. 홀로 지구에 남게 된 외계인 E.T.와 미국 소년, 소녀들과의 우정어린 교류를 감동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는데요, 자전거를 타고 만월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나는 장면은 두고 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지요. 개봉한 지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친근한 이미지의 외계인, 혹은 인간과 교류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바로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잘 맞춘 OST 또한 <E.T>의 큰 매력이랍니다.
3. 문라이트(2017)
감독 | 베리 젠킨스
출연 | 알렉스 R. 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마허샬라 알리 등

시놉시스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달빛 아래 검은 소년들은 푸르게 보인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CINE PICK!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문라이트>는 베리 젠킨스 감독이 전작 <멜랑콜리의 묘약> 이후 8년만에 연출한 작품으로,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원작으로 했다고 합니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80년대에 태어난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샤이론의 생애를 어린 시절, 청소년기, 성인기 세 부분으로 나눠 묘사했으며,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감각적인 연출과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4. 퍼스트맨(2018)
감독 | 데이미언 셔젤
출연 |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등

시놉시스
이제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도전한 우주비행사 닐(라이언 고슬링)은, 거대한 위험 속에서 극한의 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전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새로운 세상을 열 첫 발걸음을 내딛는데… 이제,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CINE PICK!
영화 <퍼스트맨>은 <위플래쉬>, <라라랜드>,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바빌론>의 감독 데미언 샤젤이 연출한 닐 암스트롱의 전기 드라마 영화입니다. 제임스 R. 한센의 전기 소설 《First Man: The Life of Neil A. Armstrong》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다녀왔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의 1961년~1969년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거머쥐기도 했는데요, 과학영화라기보다는 인간 암스트롱의 이야기와 심리가 샤젤 감독 특유의 뛰어난 연출력과 각본을 통해 탄생한 완성도 높은 드라마 영화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라라랜드>의 음악을 감독했던 저스틴 허위츠와 다시 한 번 협업하여 OST 또한 큰 호평을 받았으며, 주연 배우인 라이언 고슬링이 그리는 섬세한 감정선이 돋보이니 잔잔하지만 울림 있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5. 더 배트맨(2022)
감독 | 맷 리브스
출연 | 로버트 패틴슨, 폴 다노, 조 크라비츠, 앤디 서키스 등

시놉시스
고담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담의 엘리트 집단을 목표로 잔악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가 나타나자, 최고의 탐정 배트맨이 수사에 나서고 남겨진 단서를 풀어가며 캣우먼, 펭귄, 카마인 팔코네, 리들러를 차례대로 만난다. 사이코 범인의 미스터리를 수사하면서 그 모든 증거가 자신을 향한 의도적인 메시지였음을 깨닫고, 리들러에게 농락 당한 배트맨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영웅과 악당, 정의와 복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CINE PICK!
어두운 밤에 활동하는 히어로 배트맨! 달과 관련된 영화를 떠올렸을 때 빼놓을 수 없죠. 배트맨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 작품인 <더 배트맨>은 <렛 미 인>,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을 감독한 맷 리브스가 연출하였으며, 각종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를 넘나들며 필모를 쌓고 있는 로버트 패틴슨이 브루스 웨인을 맡은 <더 배트맨 시리즈>의 첫번째 영화입니다. <더 배트맨>은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전개와 차별되는 느긋하고 묵직한 누아르식 전개가 특징인데요, 배트맨 원작이 갖고 있는 추리물로써의 정체성, 배트맨 캐릭터에 대한 미숙하면서도 희망을 지키려는 인물로써의 재해석이 호평을 얻었습니다.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와 꼭 맞아떨어지는 OST 또한 인기였습니다. 시작과 끝에 흘러나오는 미국의 전설적인 락밴드 너바나의 <Something in the Way>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것!
정월대보름을 맞아 달과 관련된 영화를 여러 편 소개해 드렸습니다!
마침 이번주 일요일은 하늘도 무척 맑다고 하니 소중한 사람과 달구경도 하고,
정월대보름이니 만큼 팝콘 대신 부럼을 까먹으며 화면 가득 둥근 달을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랄게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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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시간을 담아서 학교 배경 영화 -9-
❣️ [Cinelab Curation] ❣️
이번 주에는 새 학기를 맞아 학교 배경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보려고 해요!
새 학기는 언제나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하죠.
어쩌면 익숙해진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놓이는 일이 쉽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새로움에서 여러분만의 길을 찾기를, 즐겁고 빛나는 시간을 많이 쌓기를 바랍니다.
그럼, 씨네랩 큐레이션과 함게 첫 주 무사히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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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 2016)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16분
감독 : 톰 포드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에이미 아담스, 마이클 섀넌, 애런 존슨, 아일라 피셔
개인적인 평점 : 4/5
사랑을 유지하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눈물 날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놓쳐 버리고 나서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모든 것들을 쏟아 쟁취해낸 사랑과 권태, 이별과 배신. 그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중에서도 꽤 독보적으로 우아하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명예와 부, 잘 나가는 남편까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 것들을 모두 가졌지만 행복보단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주인공 ‘수잔’이 한 택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손가락을 베이면서 겨우 뜯은 소포엔 오래전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가 들어있다. 출판하기 전, 꼭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바쁜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차차 사랑이 시들시들해지던 찰나, 남편과 정반대였던 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은 수잔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왠지 그때가 생각나 설레기도 하고 말이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은 부부와 딸로 구성된 토니의 가족이 텍사스 서부를 여행하다 휘말리게 된 끔찍한 사건을 그린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황량한 사막을 헤맨다. 소설 속 사건과 소설을 읽고 있는 수잔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나열되고, 수잔은 소설과 겹쳐지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가고 마지막에 닿아서는 꾹 눌러놨던 본심을 소리 없이 터트린다. 그리고 무기 하나 없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겨진 이를 사정없이 찌른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수잔은 에이미 아담스가, 에드워드와 토니는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했고, 에드워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비, 레이 역은 마이클 섀넌과 애런 존슨이 맡았다. 작은 구멍 하나 없는 탄탄한 출연진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건 제이크 질렌할이었다. 에드워드와 토니, 1인 2역을 연기하며 각자 다른 상실의 아픔을 연기하는 그의 괴물 같은 모습에 나는 마음을 탈탈 털려버리고 말았다.
톰포드 감독은 전작 <싱글맨>에서도 그러했듯, 이번에도 역시 색이 가진 고유의 느낌과 옷감의 텍스쳐를 이용해 이야기를 막힘없이 끌어간다. <싱글맨>이 무채색과 유채색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녹색과 빨강. 보색의 경계. 부드러운 드레스, 고급스러운 코트와 거친 워크 셔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가 활용한 색 중에서도 가장 집중할만한 건 바로 파란색이다. 녹색과 파란색, 그 중간에 있는 영롱한 색. 톰포드 감독은 (위에 나열한) 네 주연 배우들의 눈이 가진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화면에 담아낸다. 마치 이 푸른빛을 아름답게 담아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녹터널 애니멀스>가 가진 색의 절반은 이 배우들의 눈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정말 지나치게 아름답다.
녹터널 애니멀스 줄거리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수잔’ 어느 날, 소설가를 꿈꾸던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는다
그의 이야기 속 슬프고 폭력적인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수잔’은 잊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변해버린 사랑과 상처
에드워드는 말한다. “누굴 사랑하면 노력하라.”고. <녹터널 애니멀스>는 사랑을 위해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하는 소설이자 사랑을 잃은 남자, 사랑을 버렸던 여자에 대한 영화다. 수잔은 에드워드를 두고 바람을 핀 결과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걸 갖고도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는 여자다.
수잔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모진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인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가 지망생 에드워드를 선택한다. 수잔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수잔을 말리지만, 수잔은 엄마와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기다려보렴. 우린 모두 자기 엄마처럼 변하게 돼.”라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잔과 에드워드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지만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수잔의 눈빛은 예전과 같지 않다. 새로 쓴 글의 피드백을 부탁하는 에드워드에게 수잔은 첫 부분부터 읽기 싫어진다며 너의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질책한다. 창의성을 내려놓고 안정을 택한 수잔과 여전히 창의성을 중시하는 에드워드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틀어진다. 수잔은 진심을 가진 에드워드를 두고 허영으로 가득한 허튼에게 마음을 뺏기고 에드워드와 함께 가진 아이를 지운다. 에드워드는 모든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소설에 담은 죽어가던 순간
어쩔 수 없이 깨져버린 사랑이 아닌 지켜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잔인한 사랑의 배신. 에드워드는 그 배신감과 슬픔을 녹여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수잔에게 보낸 ‘녹터널 애니멀스’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쓰지 못하겠다던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이 죽어가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겪은 상실의 아픔을 토니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토니는 상실의 원인을 찾아 삭막한 사막을 헤맨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상처를 준 사람, 수잔은 이 잔인하게 끝난 사랑의 아픔을 모른다. 수잔은 자신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마음 편히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에드워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revenge’라고 적힌 작품을 사놓고 구매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고통을 모르기에 그가 복수를 꿈꿀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잘못과 에드워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에드워드가 보낸 자신의 별명을 제목으로 사용한 소설을 선뜻 받아 들지 못했을것이다. 심지어 수잔은 에드워드의 메시지를 보고 마치 첫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처럼 신경 써 치장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준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에드워드를 그저 옛 연인, 함께 꿈을 꿨던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웃으며 약속 장소에 나온다. 그리고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바라는 건 재회가 아닌 복수. 똑같은 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는 걸. 수잔은 그걸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젠 에드워드와 토니가 삭막한 사막을 헤맬동안, 행복한 도시를 누볐던 수잔이 아플 차례다.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후회, 자신이 한 잘못(바람)을 그대로(허튼의 바람) 돌려받을 타이밍이다.
에드워드는 나약해서 사랑을 잃은 걸까?
수잔의 주변인들은 말한다.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남편 허튼은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설 속 인물들은 말한다. 토니가 나약해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과연 나약함은 사랑의 적인 걸까,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던 걸까?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누군가의 방해, 상대방의 이기심으로 사랑을 잃었다. 결코 나약한 모습 따위는 보인적이 없었다. 그저 지켜내는 방식과 행동 타이밍이 달랐을 뿐, 에드워드는 강한 사람이다. 긴 고민의 시간을 이겨내고 우아한 복수를 성공했으니까.
소설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에드워드도 이 복수에 대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걸로 보인다. 복수를 위해 총을 손에 쥔 토니는 매번 망설임을 반복하고, 그를 돕던 보비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에드워드는 그렇게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게 위로를 받으며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복수에 죄책감을 느끼던 에드워드의 마음은 복수를 마치고 끝내 자신에게도 총을 겨눈 토니의 모습을 통해 투영된다.
지나간 상처를 기록하고, 그 상처를 준 인물에게 마음을 내보인다는 건 엄청난 고민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에드워드를 어떻게 나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처절한 감정들을 모두 절제한 깔끔하고 완벽한 마무리까지. 이 복수를 준비하며 에드워드도 꽤 오랜 기간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수의 끝에서 맞이한 토니의 죽음과 함께 아팠던 과거의 에드워드도 사라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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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게 살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머릿속이 시끄럽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학업부터 직장, 돈,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대인에게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의 주인공 '마르타'가 말한다. 그렇게 많은 것을 고민하며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Out of My League, Sul più bello>는 희귀 유전병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마르타(루도비카 프란체스코니)'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배경으로 지역 랜드마크인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와 포 강(povor)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유럽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개봉 당시 이탈리아에서 우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며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넷플릭스가 판권을 구매하며 유럽 전 지역에 공개되었고 세 번째 시리즈가 제작될 예정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부스> 등 인기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한 넷플릭스의 선택이니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할 만하다.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를 1분 30초 만에 확인하기▼
영화의 구성은 주인공 '마르타'를 둘러싼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그녀의 소꿉친구 '페데리카(가야 마시알레)', '야코프(요체프 기우라)'와의 우정이다. 세 사람은 한 집에 살며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심지어 3살 때 부모님을 잃은 '마르타'의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페데리카'와 '야코프'는 아이를 낳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는 '아르투로(주세페 마조)'와의 사랑 이야기다. 집안과 학벌, 외모 등 빠지는 부분 없이 완벽한 그는 마르타를 까칠하게 대하지만, 곧 그녀에게 빠져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꾼이 된다.
익숙한 로맨스 클리셰는 요즘 감성에 알맞은 연출과 영화 미술이 합쳐져서 톡톡 튀는 개성을 지닌다. 다채로운 카메라 구도와 편집으로 인물의 시선과 행동을 지루하지 않게 담아낸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세련된 영상미와 음악으로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몬스 침대의 광고와 비슷하다. 인물의 의상이나 소품은 강렬한 원색 계열이되 빈티지한 색감을 사용해서 감각적이다. '페데리카'가 화려한 빨간 머리에 대비된 초록색 재킷을 입어도 주변의 색감과 어우러져 홀로 튀거나 어색하지 않다.
또한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는 일상과 밀접하면서 로맨스 코미디에서 흔하게 등장하지 않은 장소인 마트를 활용한다. 마트는 '마르타'가 할인 상품 안내 방송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로 그녀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장소이다. 첫 데이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마트를 헤매는 '아르투로'의 모습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Q.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가요?
'아르투로'를 만난 순간부터 '마르타'의 행동은 거침없다.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학교와 조정 클럽을 따라다닌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아르투로'의 질문에 당당하게 '저녁 식사'를 외치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녀의 직진 본능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한 적 없던 '아르투로'의 사랑을 얻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안타깝게도 '마르타'의 병세는 악화되고 그녀는 '아르투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별을 고민한다. 연애를 통해 달라진 '아르투로'는 사랑은 원래 수많은 헤어질 이유가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만 신경 쓰자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결국 그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서로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한한 사랑을 약속한다.
단순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행동할 용기를 준다. 그러니 영화가 끝난 후엔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단순하게 행동해보자. 영화 속 '마르타'와 '아르투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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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토피아, 우정, 사랑, 구원 그리고 희망의 영화
9★/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일까 아니면 지극한 순애보를 그려낸 영화일까. 근미래의 일본. 유타와 코우는 늘 육교 위에서 헤어진다. 육교를 쭉 같이 걷다 보면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말한다. “넌 저쪽이야. … 난 너무 외로워.” 내일이면 또 볼 친구를 향한 장난스러운 인사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같이 걷다 갈라설 수밖에 없는 매일의 작별은 두 사람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근미래의 일본은 지금보다 조금 더 음울하고 긴장감이 높은 사회다. 나라엔 외국인이 너무 많고, 지진 경보/오보는 수도 없이 울린다. 이 모든 건 안전을 명분으로 하는 권위적 통치의 근거가 된다. 일본 총리와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모두 안전을 이유로 각각 일본 국민과 학생들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감시에 기반해 직접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간다.
코우는 자이니치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교장이 장학금 추천서를 써주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반면 ‘순혈’인 유타의 부모님은 돈이 많다. 그러나 유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은 음악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를 통해 점점 옥죄어 오는 것들로부터 자신들만의 영토를 구획하며, 그 안에서 제한된 자유나마 만끽한다.
그러나 안전 경보는 날로 요란해진다. 두 사람과 친구들이 만든 자유의 공간, 숨 쉴 곳은 점차 위협당한다. 무엇보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 후미가 끼어든다. 자이니치로서 많은 설움을 겪은 코우는 저항 정신이 투철하고 변혁 운동에 적극적인 후미와 친해진다. 이후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던 유타가 알지 못하는 코우만의 세계가 생긴다. 코우는 유타와 음악 말고도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뜬다. 그러자 점차 유타와 거리가 멀어진다. 코우는 또 다른 친구에게 만약 자신이 지금의 상태로 유타를 처음 만난다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코우는 음악과 유치한 장난에만 매달리는 유타가 답답하다. 그러나 유타는 과거에 머무르며 성장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코우를, 그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코우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코우가 계속 음악을 매개로 자신과 함께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다. 유타는 코우와 함께 친 장난의 죄과를 혼자 뒤집어쓰고 퇴학당한다. 유타의 희생으로 코우는 장학금 추천서를 받고 대학에 진학한다. 혁명을 모색한 일본 사회의 ‘외부자’ 코우는 대학을 매개로 체제에 진입할 계기를 마련한다. 반면 안락한 곳에서 출발한 유타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딱딱한 체제의 외부로 밀려난다. 유타는 자신만의 방식(음악)으로 코우와는 다른 미래를 도모해야만 한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은 육교를 함께 걷는다.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코우에게 손을 뻗어 그를 붙잡는다. 잠깐 화면이 멈춘다. 영화가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정지 화면이 끝나면 유타와 코우는 각자의 길을 간다. 그 몇 초간의 정지에는 코우를 붙잡고 싶은 혹은 마지막으로 코우와 연결되고 싶은 유타의 소망이 담겨 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횡행하는 근미래의 일본에서, 유타는 자신을 희생하고, 우정으로(아니, 사랑으로) 코우를 구원한다. 코우는 유타에게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철부지로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타 덕분에 ‘외부자’의 설움을 조금은 덜고, 자기 자신을 비롯한 또 다른 ‘외부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이것이 ‘철부지’ 유타가 피워낸, 지극한 사랑의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해피엔드〉는 디스토피아 영화이자, 우정과 사랑의 영화이자, 구원의 영화이자, 희망의 영화다. 코우를 바라보는 유타의 표정과 눈빛이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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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 <비상선언>, 그래도 좋았던 건...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린 현실에서 수많은 재난을 봐왔다. 그 재난을 경험하고 살아난 생존자들도 있고, 반대로 희생당한 사람들도 무척 많다. 그것을 화면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우연히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악몽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함께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재난상황은 사람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본능을 끌어올린다.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생존에 대한 본능은 사회에 보여주는 가면을 치워버리고 진짜 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따뜻한 얼굴, 차가운 얼굴, 무심한 얼굴 등 다양한 얼굴은 진정한 세상의 모습을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드러난 얼굴은 생존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안전을 좀 더 바라보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 보다 나은 안전을 위해 시위를 하기도 한다. 반면에 정치인들은 그 재난의 상황을 이용해 정치적인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공무원인 정부 고위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인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고위 관계자들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치인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보다는 일단 자신의 조직 내에서 안정적인 결정에 따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재난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생존할 기회를 찾게 만든다. 이 가혹한 상황은 모두를 몰아붙인다.
비행기 속 테러와 재난을 함께 다루는 영화 <비상선언>
영화 <비상선언>은 테러와 재난 상황 속 인물들과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외부의 인물들의 얼굴을 담는다. 이 상황을 시작한 건, 테러범인 진석(임시완)이다. 그는 미리 SNS에 비행기 테러를 하겠다는 영상을 올리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의 표를 구매해 탑승한다. 그의 목적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남대문을 불태운 테러나 대구 지하철 참사의 테러범이 했던 것처럼 사회를 향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정작 테러를 한 진석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즐기려는 목적이 아니다. 단순히 비행기를 탄 모두를 죽이는 것이 그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다. 영화 속 어디에도 그가 다른 사람이 차례로 죽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단지 그는 치사량 높은 바이러스 하나로 자신이 가진 분노를 표출하고 그 자신도 그 분노에 의해 먼저 현장을 떠난다.
비행기 내부에서는 벌어진 테러의 중심에 다양한 인물이 포진된다. 부기장 현수(김남길), 스튜어디스 희진(김소진)과 과거 비행기 조종사였던 재혁(이병헌)이 진석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테러범인 진석을 막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그가 이미 퍼뜨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승객들은 하나둘씩 감염되기 시작하고 어떤 해결책도 가지고 있지 못한 그들에겐 불안이라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진다. 그와 중에 스튜어디스들과 조종사들은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쓴다. 비행기 내부의 사람들은 대부분은 지시에 따라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구분 짓기를 원한다. 영화 중반 이후엔 바이러스 증상 발현자들과 무증상자를 따로 나누게 되고 이는 그 안에서 작은 계급을 만든다. 짧은 시간에 형성된 작은 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화는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외부에서는 형사 인호(송강호)가 테러리스트인 진석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도 상황실을 만들어 이 상황에 대처하려고 한다. 가장 열심히 뛰는 건 아내가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인호다. 그는 필사적으로 진석의 행적을 수사해 그 상황을 해결할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반면에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와 청와대 관계자 태수(박해준)는 관련 관리자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하고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의견 충돌이 있고, 대통령을 비롯한 윗선의 결정을 기다리는 측면에서 그들의 논의와 결정은 무척 늦은 감이 있다. 피해자 가족이기도 한 개인은 필사적으로 그 상황을 타계하려 노력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 관계자들은 늘 한 발 느리게 다음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떤 경우엔 다음 결정을 못하고 지지부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테러 장르로 시작해 중반까지 이어지는 압도적인 긴장감
지난 수요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은 관객 사이에서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고 있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이렇게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테러 장르라고 볼 수 있다. 테러리스트가 등장하고 그가 하와이행 비행기에 생화학 테러를 벌인다. 그리고 그가 퍼트린 바이러스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한 명으로 시작했던 감염자는 금방 그 숫자를 늘려간다. 그렇게 비행기 안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과정이 영화 중반까지 담긴다. 중반까지 진행되는 테러 장르는 꽤 훌륭하게 영상에 담겼다. 실제와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비행기 세트를 실제로 돌리면서 촬영된 비행 시퀀스는 굉장한 현실감을 주고 긴박감을 더해준다. 여기에 동기를 드러내지 않고 테러를 벌이는 빌런 진석은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한다. 또한 지상에서 진석의 뒤를 쫓는 인호의 추적극도 굉장히 빠르고 박진감 있게 담겨있다.
이렇게 무사히 전반부를 마친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재난 장르로 방향을 튼다. 재난 장르에는 빌런이 사라지고 피해자들과 지상의 가족 그리고 공무원들이 화면을 채운다. 그러니까 목적 자체가 테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비행기 안의 사람들이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중점적으로 비추기 시작한다. 피해자 중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재혁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그의 과거 이야기도 덧붙여진다. 그렇게 신파 코드를 덧붙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인 메시지도 포함되면서 중반까지 응축해왔던 긴장감을 풀리게 만든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시간과 사람들의 행동들도 조금은 인위적으로 압축해놓았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 점에서 영화 <비상선언>의 후반부는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후반부에 던지는 사회적인 메시지 자체는 명확하다. 우리가 지금도 겪고 있는 바이러스라는 특수한 상황 앞에서 여론은 급격하게 갈라진다. 그 안에서 여러 의견들을 보고 자신이 어떤 것을 따를지 결정하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단번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 속에 피해자들이 탄 비행기의 착륙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그 두 가지 의견 중 어떤 것이 더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피해자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한 편으로는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반인의 의견이 갈리더라도 정부는 피해자를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정치적인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결정을 한다. 그들의 비겁한 모습 또한 영화 후반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쉽지만 평가절하되서는 안 될 이야기
영화 <비상선언>은 동일한 재난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무척 잘 캐치하여 담았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통해 겪어온 일이다. 더 과거로 가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다양한 한국 내 재난을 떠올릴 수도 있다. 특별한 테러 동기도 찾기 어려운 테러범 진석도 우리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대구 지하철 테러 같은 끔찍한 범죄를 일으켰도 남대문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뿐이다. 그런 점들이 바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는 테러 장르로 시작해 재난 장르로 마무리가 된다. 비록 후반부 아쉬운 점들은 있지만 이 영화가 평가절하될 만큼 엉망은 아니다. 하이재킹 테러 장르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긴장감을 영화에 담았고 후반부에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 신파적인 장면들 역시 포함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그 강도가 세지는 않다. 비록 압축적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비약과 너무 딱 맞게 떨어지는 설정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영화에는 피해자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고, 무책임한 정부 관계자도 있기만 그 상황과 결정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관료도 있다. 거기에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도 같이 보여주면서 다각도로 영화의 상황을 볼 수 있게 구성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임시완이다. 테러범 진석 역할을 맡고 있는데 평범하지만 분노를 깊숙이 숨기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척 좋은 인상을 가진 그가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내뱉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송강호나 전도연, 이병헌 같은 탑 배우들도 이 영화 안에서 혼자 따로 놀지 않고 적절하게 잘 맞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은 과거 <연애의 목적>, <연애의 온도> 같은 관계에 대한 영화를 탁월하게 연출했었고, <관상>, <더킹>, 같은 사회고발과 관련한 영화도 완성도 있게 연출한 경험이 있다. 이번 <비상선언>에는 실감 나는 비행기 테러 이야기와 함께 현실에서 실제로 겪고 있는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을 적절하게 이야기에 녹여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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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2023>
<더 스퀘어>에 이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신작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왔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포스터처럼 이런저런 괴소문이 자자한 영화 중 하나인데, 오늘 리뷰에서는 영화는 어떤지부터 시작해서 영화가 담고 있는 것들과, 또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볼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다뤄볼 예정입니다.
우선 전작인 <더 스퀘어>가 예술가의 위선과 특권의식을 다뤘다면 <슬픔의 삼각형>은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젠더와 계층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의 삼각형은 마치 계급을 나타날 때 삼각형을 떠올리게 하는데, 영화는 내내 이것을 전복시키면서 대담하고 강렬한 풍자를 이어갑니다. '온갖 위선과 무지로 뒤덮인 상류층이 계급이 전복된 사회가 찾아온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독특하고도 과감하게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더불어서 영화는 마르크스 등의 어록을 언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직접적으로 이용해서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탁월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매우 심오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려워서 재미없지 않습니다. 저도 영화 내내 몇 번이나 웃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러닝타임이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2시간 반으로 꽤나 긴 편인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시사회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웃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영화 중반부에 그 유명한 구토 장면이 나옵니다. 이 구토는 상류층의 위선을 가장 강렬하게 풍자하는 요소로 영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하지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라면 보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반쯤 스크린을 바라보지 못한 것 같은데, 빈속에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 장면만 주의하신다면 영화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보실 수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훌륭합니다. 우디 해럴슨부터 시작해 해리스 디킨슨, 샬비 딘 모두 훌륭하지만 영화 3장부터 등장하는 돌리 데 레온의 연기가 특히나 인상 깊습니다. 스포일러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영화가 어떠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말로는 형용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 장면에서 이어지는 엔딩은 강렬합니다.
영화가 함유하고 있는 주제가 최근 많은 영화들에서 다뤄지고 있기도 하고, 본 영화에서 어떠한 독특한 지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리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많이 다뤄진 것뿐이지 여전히 유효한 주제기 때문에 독창적인 변주만 있다면 저는 만족이네요. 감독의 전작인 <더 스퀘어>를 보고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특유의 유머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알고 보면 더 재밌어요.
이 영화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작인 <더 스퀘어>보다 좋았네요. 시사회에서 나눠준 굿즈도 전부 마음에 들었고요. ㅎ
+) 샬비 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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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옥수역귀신> 런칭 예고편
당신이 알고 있던 괴담? 그것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