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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2021-03-18 00:00:00

<차일드 인 타임> - ‘사랑으로 물든 시간, 그 어딘가에서 살아갈 너에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새로운 얼굴

차일드 인 타임

개봉일 : 2020.01.09 (한국 기준)

감독 : 줄리언 파리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켈리 맥도날드, 스티븐 캠벨 무어, 사스키아 리브스, 베아트리체 화이트

 

사랑으로 물든 시간, 그 어딘가에서 살아갈 너에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신작 <모리타니안>의 개봉을 앞두고, 계속 그의 모습이 맴돌아서 오랜만에 이 영화를 꺼내봤다. <차일드 인 타임> 직역하자면 시간 속의 아이다. <차일드 인 타임>은 동명 소설 <차일드 인 타임>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로, 소중한 아이들의 유년기에 대한 통찰과 부모가 최대로 품을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상처와 그 위로 솟아난 새로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 어쩌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동화 작가인 주인공 ‘스티븐’이 하나뿐인 딸 ‘케이트’를 잃어버리는 날부터 시작된다. 계산을 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딸의 손을 잠시 놓은 순간, 아이는 순식간에 스티븐의 시선 밖으로 사라진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노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를 찾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스티븐은 끝내 케이트를 찾지 못한다. 스티븐의 아내 줄리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함께 살던 집을 떠나고 스티븐은 홀로 남겨진다. 줄리는 케이트를 찾을 수 없을 거라 절망하고, 스티븐은 아직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뜨겁던 부성애는 스티븐의 가슴에 화상 자국을 남길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모성애’를 그린 영화는 많지만 ‘부성애’를 그린 영화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아버지도 어머니만큼이나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말이다. <차일드 인 타임>은 그 흔치않은 부성애를 중심으로 스티븐의 시간을 그려낸다. 더불어 아직 유년기의 부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스티븐의 출판인 ‘찰스’라는 인물을 통해 ‘유년기가 아이와 어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사이에 인물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데, 이야기를 다소 애매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던지라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난 아이를 잃은 부모야. 여러분 같이 울어요.” 하며 슬픔의 카펫을 무작정 깔아대는 것이 아닌,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새로운 음계를 하나하나 알아가듯, 슬픔의 무게를 천천히 더듬어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븐은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이 한마디를 보낸다. 사랑한다고. 곧 만나자고. 이 일상적인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예상보다 거대했다.

 


 

차일드 인 타임 시놉시스

유명한 동화 작가 ‘스티븐’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 ‘케이트’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딸의 부재는 행복한 부부였던 ‘스티븐’과 ‘줄리’의 사이까지 멀어지게 만들고, 상실감 속에서 매일을 견뎌나가던 두 사람은 일상 속에서 소중한 흔적들을 조금씩 발견하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부재중인 걸 왜 굳이 알려요?"


스티븐은 외출할 때마다 곧 돌아온다는 말과 번호를 적은 쪽지를 현관문에 붙인다. 그를 본 이웃은 “부재중인 걸 왜 굳이 알려요?”라고 말하며 스티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티븐은 왜 자신의 부재중을 알리는 걸까. 그 이유는 잃어버린 딸 케이트 때문이다. 이미 잃어버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스티븐은 케이트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과연 어떤 부모가 어린 자식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스티븐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딸이 집에 돌아온다면, 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언제든 나를 부를 수 있도록 매일같이 쪽지를 붙인다. 스티븐에게 케이트는 세상의 전부였고, 여전히 스티븐의 세상엔 케이트가 가득 차있다.

 

 

케이트가 실종된 후 줄리는 모든 걸 포기하고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다며 스티븐과의 별거를 결심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스티븐은 1년 만에 줄리를 만나기위해 시골집으로 향한다. 스티븐은 집으로 가는 길에 운명처럼 노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의 환영을 따라가게 되고, 그곳엔 ‘더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이 있었다. 술집 안엔 한 여자가 앉아있었고, 스티븐은 뭔가에 이끌리듯 여자를 쳐다본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 스티븐은 어머니를 통해 그 술집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 벨’은 스티븐의 어머니가 스티븐의 아버지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던 술집이었고, 그 시절 어머니는 아름다운 아이 한 명이, 태어나기 전 스티븐이 창밖에서 자신을 바라봤다고 말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스티븐의 어머니는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 스티븐이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줄리와 스티븐도 어머니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줄리는 창문 너머에 서있는 스티븐의 머리색을 꼭 닮은 남자아이를, 스티븐은 줄리의 소식을 듣고 급하게 탄 지하철에서 같은 남자아이를 마주치게 된다. 남자아이는 줄리와 스티브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 아이는 곧 태어날 두 사람의 아들을 의미한다.

 

 

"케이트를 계속 사랑해 주렴. 사랑하는 것과 그리워하는 건 달라."


부모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든 시간 동안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은 그 모든 시간 안에 존재한다. 스티븐은 3년이란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케이트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면 케이트를 위한 선물과 트리를 준비하고, 케이트의 방을 항상 깨끗하게 정돈해둔다. 아이가 당장 뛰어들어와도 바로 누워 한숨 잘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이제 7살이 되었겠지만 케이트는 여전히 내 어린 딸이고, 10년이 지나 만난다 해도 스티븐에겐 여전히 내 어린 딸이다. 그리고 곧 생길 사랑하는 아들은 어릴 적 스티븐이 그랬듯,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부모님 앞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 순간마저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어딘가에 있어"


스티븐은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바친다. 이러한 이유로 케이트의 환영이 계속해서 스티븐의 주변을 맴돌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에 대한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싶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던 어린 딸, 카트에 앉아 빠르게 달려달라며 부탁하던 어린 딸, 작은 손가락으로 힘 있게 내 손을 잡아오던 어린 딸. 스티븐은 케이트를 잃고 오래도록 동화를 쓰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새로운 소년에 대한 동화를 쓰기 시작한 스티븐은 욕조 안에서 숨을 참는 시간을 늘려간다. 그리고 그의 상처도 아주 조금씩, 옅은 흉터를 남기며 회복되고 있었다. 스티븐은 케이트를 잃어버리고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스티븐은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기보단 ‘어딘가에 있어. 곧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사실 스티븐은 케이트가 돌아올 확률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었겠지만.. 그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스티븐과 줄리의 상처는 새로 찾아온 사랑스러운 아들의 존재로 인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할 것이다. 스티븐은 케이트의 손을 잡고 줄리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케이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줄리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것을 ‘스티븐과 줄리가 케이트를 잊어가고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순 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케이트를 사랑하기에 어린 딸은 그들의 사랑과 기억, 그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엄마 아빠는 케이트를 사랑하니까.

 

 

"아이를 찾고 있어. 금지된 아이를. 그 아이를 찾아야 돼."


끝없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와 더불어 이 영화가 건네고 있는 두 번째 메시지는 ‘유년기의 중요성’이다. 이건 스티븐의 출판인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찰스의 이야기다. 스티븐의 동화 출판을 돕고, 동시에 정치계에서 일하고 있는 찰스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일을 관두겠다고 선언한다. 정치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육아 교육서를 제작하고 있었고, 총리는 스티븐에게 찰스를 감시(?) 해달라고 부탁한다.

 

 

찰스는 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찰스는 비 오는 날 숲을 가로지르고, 숲 한복판에 곧 쓰러질듯한 아지트를 만들고, 이상한 음료수를 마시며 자신의 음모를 가위로 자른다. 그는 마치 다여섯살 난 남자아이와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찰스는 마음속에 있는 ‘금지된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금지된 아이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뜻한다. 찰스가 모든 일을 관둔 이유는 ‘책임지는 삶’에 지쳤음과 동시에 사회에서 통하는 ‘찰스’라는 존재에 대한 모든 걸 내려놓고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며, 누구도 나의 이름에 말도 안 되는 추측과 커다란 기대를 걸지 않는 ‘유년시절’. 그는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그에 대한 결핍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많은 종류의 글 중 ‘동화’를 출판하는 출판인이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찰스는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이 싫었던 걸까.

 

 

일부 정치인들은 말도 안 되는 육아교육 제도를 내놓고 있고, 진짜 아이를 키워본 스티븐은 그에 반대한다. 그리고 찰스는 그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표하듯 나무에 목을 매단다. 스티븐은 찰스의 장례식에서 그를 ‘유년기의 소중함을 알던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빗속에서 뛰노는 찰스의 모습과 맑은 웃음을 흘리며 아빠를 돌아보는 케이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 나는 유년기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꼈다. 찰스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찰스는 구두와 반바지, 셔츠와 니트를 입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통상적으로 구두와 셔츠, 니트는 어른의 옷, 편안한 반바지는 어린 남자아이의 옷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되는데 찰스는 어른과 아이의 옷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착장으로 발견된다. 땅에 떨어진 채 발견된 구두 한짝은 그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며 벗겨진 것이리라. 찰스는 어른 찰스를 벗어던지기 위해 몇 번의 발버둥을 쳐야 했을까. 결국 죽기 전까지도 그것을 완벽하게 벗어던지지 못한 찰스가 가엾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슬픔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끝없는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보내는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시간들엔 아마 유효기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차일드 인 타임>을 보며 생각했다.

 

작성자 . 혜경

출처 . https://blog.naver.com/hkyung769/22227879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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