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2-24 10:04:19
영화 속 '편지' 이야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편지 쓰는 걸 좋아하시나요?
디지털 기기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은 많지 않지만,
화면 너머의 정갈한 글씨보다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더 진심이 느껴질 때가 있죠.
그래서일까요? 여전히 많은 영화에서 '편지'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 쓰이곤 한답니다.
오늘은 가슴 절절한 연애편지부터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는 따뜻한 편지까지!
다양한 편지가 등장하는 아름다운 영화 5편을 소개해 드릴게요.
시월애(2000)
A Love Story
우편물을 부탁하는 편지로부터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까지
감독: 이현승
출연: 이정재, 전지현 등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판타지
러닝타임: 94분
단역 전문 성우 은주(전지현)는 1년간 살던 바닷가의 집 '일마레'를 떠나며 우편함 안에 다음 주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긴다. 그러나 그 편지는 시간을 거슬러 은주보다 먼저 '일마레'에 살았던 건축가 성현(이정재)에게 전달되고,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사이가 된 두 사람. 급기야 성현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은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의 은주는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고 과거의 성현에게 자신과 그가 헤어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은주를 사랑하게 된 성현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하게 되고, 성현이 자신의 부탁 때문에 사고를 당함을 알게 된 은주는 사고를 막기 위해 성현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가 늦지 않게 그 편지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영화의 제목 '시월애'는 한자로 썼을 때 '時越愛'로, 직역하면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비주얼로 호평을 받은 동시에 영화제, DVD 등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 초에 한국영화 팬덤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손꼽히며, 2006년 할리우드에서 <레이크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성현에게 보내는 은주의 편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들이 가까워지면
점점 더 기대를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들 너무 멀리 있어요.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나요?
그냥 약속을 잊으신 거면 좋겠어요.
84번가의 연인(1987)
84 Charing Cross Road
도서주문 편지에서 시작된 20년의 우정
감독: 데이비드 휴 존스
출연: 앤 밴크로프트, 안소니 홉킨스, 주디 덴치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0분
가난한 작가인 헬레인 헨프는 대단한 독서광으로 읽고 싶은 고전들을 싸게 사 보기 위해 영국 런던 84번지에 있는 중고책방에 편지로 책을 주문한다. 이를 계기로 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과 평생을 정신적 교류를 나누는 정신적 연인이 되어 편지로만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때론 귀한 책 한 권에 함께 감동하고 때론 분노하면서 사소한 주변 얘기도 곁들며 가며 인생을 논할 수 있었던 건 프랭크, 헬레인 두 사람 다 따뜻한 인간애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정신, 여유롭고 유머가 풍부한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프랭크가 죽기까지 영국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헬레인은 프랭크가 죽고 난 후 어느 날 문득 그녀가 그토록 동경했던 그 서점에 가서 감상에 젖는다.
뉴욕의 무명작가와 런던의 고서점 관리인이 실제로 1949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의 대부분이 두 사람 간에 오간 편지글로 채워져 있으며, 긴 세월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영화 속 사건들에 당대의 역사 또한 고스란히 녹아 있어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랭크에게 보내는 헬레인의 편지
전 고전 작품을 즐겨 읽는 가난한 작가인데
이곳엔 제가 원하는 책이 없어요.
있어도 가격이 비싸죠.
찾고 있는 책의 목록을 동봉합니다.
목록 중 5달러 이하의 책이 있다면
이 편지를 주문서로 여기시고
그 책들을 제게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헬레인 헨프 드림.
윤희에게(2019)
Moonlit Winter
오랫동안 하지 못한 말, 나도 네 꿈을 꿔.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나카무라 유코 등
장르: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05분
"윤희에게, 잘 지내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여러 단편영화들을 통해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임대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두 번째 장편영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굵직한 내공을 보이고 있는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가 주연으로 함께했으며, 개봉 이래로 팬덤 '만월단'까지 만들어내며 호평일색을 받았다. 국내의 여러 퀴어 영화들 중에서도 젊은 세대가 아닌 부모 세대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장점이다.
윤희에게 보내는 쥰의 편지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등
장르: 판타지, 멜로/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166분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스,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부모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는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12살이 되어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된 그는 어느 날 6살 소녀 데이지를 만난 후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된다. 청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은 숙녀가 된 데이지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비로소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집필한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을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아름다운 영상미와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작품이다.
딸에게 보내는 벤자민의 편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너무 늦은 건 없단다.
내 경우엔, 너무 이른 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꿈을 이루는 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원한다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해도 돼.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혹시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기 바라마.
캐롤(2016)
Carol
단 한번, 겨우 전한 진심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등
장르: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18분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재능 있는 리플리>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범죄 소설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며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영화의 계절적 배경인 겨울만 되면 재상영을 할 정도로 국내 팬층이 두텁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테레즈에게 보내는 캐롤의 편지
우연이란 건 세상에 없어요.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차라리 일찍 이렇게 된 걸 감사히 여겨요.
당신도 언젠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날이 오면, 그곳에서 당신을 반겨줄 나를 떠올려 줘요.
영원한 일출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 삶과 함께.
하지만 그때까지는 만나지 않기로 해요.
난 할 일이 많아요. 당신은 훨씬 많겠죠.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네요.
당신을 놓아줄게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헤어져야만 했던 캐롤과 테레즈.
그런데 이런 영화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편지지 세트가 있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지금 바로 텀블벅에서 진행되고 있답니다.
바로 영화 취향 커머스 플랫폼 [클로저]에서 기획한 [클로저 투 캐롤] 프로젝트!
잠깐! [클로저]는 또 뭐고, [클로저 투 캐롤]은 또 뭐냐구요?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클로저]는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만지고, 향을 맡고, 맛을 보기도 하며,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나누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더 가까이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영화로 발견하는 취향 커머스 플랫폼'이에요.
[클로저] 팀에게 <캐롤>은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해요.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 갖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클로저 투 캐롤]은 클로저 팀의 이러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구성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하답니다. 영화 <캐롤>의 팬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을 상품들을 지금 바로 소개해 드릴게요.
https://tumblbug.com/closertocarol
오늘도 유용한 정보가 되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따뜻하고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
Relative contents
-
- 영화 교섭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영화 교섭 결말 후기 줄거리 쿠키 | 실화를 담아보았지만? | 황정민 X 현빈 주연
요즘 극장에 교섭 VS 유령 VS 아바타 VS 슬램덩크 치열한 대결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 중에서 교섭을! 선택해서 봤는데... 아?... 내 실수 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램덩크를 봤어야 했지!! 하면서 리뷰 써봅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액션, 스릴러, 시대극, 버디, 모험
감독 : 임순례
출연진 : 황정민, 현빈, 강기영
개봉일 : 2023년 01월 18일
평점 : 6.32
기획 의도
중동에서 납치된 한국인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이야기 "어떤 경우라도 희생자를 안 만드는 게 이 협상의 기조 아닙니까?" 세계 공인 여행금지 국가 중 최악으로 악명 높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피랍되는 사건이 터졌다.
교섭 전문이지만 이번에 처음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외교관 재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 사정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 대식과 함께 인질을 구하기 위해 작전을 세운다.
여담
영화 교섭은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로써, 억울하게 탈레반에게 잡힌 것이 아닌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알려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린다. 개봉 당시 유령과 큰 기대를 모았으니, 두 영화다 관람객 평점이 좋지 못하여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교섭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교섭 전문가인 황정민이 직접 탈레반 소굴 안으로 들어가 협상을 진행하며 한치에 물러섬 없는 정직한 수 싸움을 이겨 피랍되어 있는 한국인들을 구출해 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다 끝난 후 예전에 이 사건이 엄청 큰 이슈화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집중 됬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재각색하여 만들다 보니 호불호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무엇보다 교섭을 한다는 주제로 교섭 -> 실패 -> 교섭 -> 실패 무한 반복을 2시간을 늘려서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영화 교섭은 쿠키영상은 없지만, 시즌 2를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 있었다. 과연 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속에서 교섭 2가 나올까?! 극장가에 재미있는 영화가 안 나와 박스오피스 1위 하고 있긴 한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 영화 '애프터썬' 리뷰
어린 시절의 질문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때의 나는 아빠한테 무슨 질문을 하던 아이였을까? 하늘은 왜 파랗냐, 롤러코스터는 언제부터 탈 수 있냐 내지는 이런 질문도 해본 적 있겠지. 아이는 어떻게 생겨요? 같은 짓궂은 질문들. 나는 어른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알아서 자제하던 눈치 빠른 아이였을까? 아니면 그런 질문들만 골라서 물어보는 개구쟁이였을까? 아이와 어른의 관계는 무엇하나 선명하지가 않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질 때도 있고, 질문이 없는데 정답이 나올 때도 있는 법이다. 완성하지 못한 문답들이 넘쳐나는 관계는 명확할 수가 없다. 흐린 눈으로 봐야만 한다. 빠르게 철들어 시간을 건너뛴 아이에게서는 애잔함이 남아있다. 일찍 크면 그때의 질문들이 몸과 마음속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흐린 눈으로 보아왔던 시간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진짜로 눈이 흐렸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땐 일부러 안경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뿌옇게 하고 지냈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항상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뿌옇게 있으면 앞이 보이느냐고. '보이니까 이러고 다니지.' 대충 이런 대답을 했다. 한숨을 쉬면서도 엄마는 꼬박꼬박 주방세제로 안경을 닦아줬다. 그러면 안경이 좀 더 오래 선명했다. 수경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은 그렇게 닦는 게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수경은 세제로 하는 게 좋았다. 물속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을 싫어했다. 바닷가를 가서 바다수영을 할 때도 수경은 꼭 챙겨서 갔다. 언제부턴가 안경은 잔기스도 덜 났다. 긁히거나 상하는 일 없이 점점 두꺼워져 갔다. 그러면서 일부러 안경알을 문지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안경이 선명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충 그때부터 무릎도 덜 까지기 시작했다.
딸 소피와 아빠 캘럼은 튀르키예로 여행을 왔다. 캘럼은 소피와 함께 이곳저곳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방학에 잠깐 시간을 낸 여행인지라 마냥 자유스럽지는 않다. 패키지 여행이기도 하고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돈을 쓰는 데 눈치도 보인다. 캘럼이 애써 감추려는 모습들은 티가 난다. 애써 '감추려'해서가 아니라 '애써' 감추려 해서 티가 난다. 행동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노력하고 있어서 보인다. 사춘기 소녀는 그 짧은 여행 기간 동안에도 자라난다. 의도치 않은 무심함과 조숙한 배려심이 부딪힌다. 두 세계는 충돌하면서 부서지고 충돌의 여파로 기억은 흐릿해진다. 단편적인 사실들은 먼지 구름이 되어 주관을 뒤덮는다.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리는 것들은 이제야 보이는 아빠의 이야기다.
캘럼은 잘 들어가지 않는 잠수복을 억지로 입기 위해서 몸을 구겨 넣는다. 요령이 없던 그는 청년의 도움을 받고 옷을 입는다. 계절마다 여행을 떠나던 청년은 아기와 함께 고향에 머무르게 되었다. 40살의 자신이 상상하기 어렵다는 청년을 보면서 캘럼은 몸을 구기느라 가쁜 숨을 몰아 내쉰다. 기나긴 한숨을 푸른 바다에 흘러 보낸다. 아빠는 차분하게 가라앉고 딸은 솟아오른다. 푸르른 대자연 속에서 캘럼은 꾸준하게 운동을 한다. 수련보다는 수양의 형태이다. 호텔방 TV 옆에는 태극권 비디오가 놓여있다. 명상과 태극권, 어린 소피는 아빠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영상을 본다. 녹화하지 않은 채로 아빠에게 묻는다. '11살 때 아빠는 뭘 했나요.' 그리고, 이윽고 아빠의 대답이 이어진다.
다 큰 소피는 기억을 되짚어 아빠를 상상한다. 이제는 아빠의 상태를 대신 답할 수 있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비슷한 상황이었겠거니 넘겨짚으면서 답을 고민한다.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있던 감상을 끄집어 올린다. 추억하는 일이 어려운 건 묵혀두었던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주로 좋은 감정보다는 싫고 슬펐던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추억은 언제나 즐거운 행위이기 마련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과거의 특정 시점과 사건들에 고정되어 있는 걸 떠올리면 명확하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상황을 판단하기엔 지나치게 함축적이거나 암시적이다. 상상과 추리의 영역에서 해석하면 영화는 더없이 무거워진다. 나풀나풀한 한여름에도 세계는 절망스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마는 여름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공평하니까. 추울 때는 껴입어야 하는데 더울 때는 벗으면 되니까. 여름은 돈이 많건 적건 티가 덜 난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니 그나마 여름이 낫다. 공평하게 견디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건 마음으로 족하다. 캘럼은 열심히 소피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준다. 소피도 아빠에게 선크림을 발라준다. 소피는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소피는 의젓한 아이다. 아니, 세상에 선크림 바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나. 끈적끈적한 피부는 다들 싫어한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건 소피가 충분히 아빠의 처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이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게 아니다. 선크림처럼 그냥 스며들기를 바라는 거다. 덜 따갑고 덜 아프게끔. 두 사람은 서로를 정성껏 발라준다. 그저 여름을 견뎌내기 위한 손길이다. 그러니 이미 탄 피부에도 발라야 한다.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과 대답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는 시점이 온다. 명확하지 않은 문답 속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다 이해하진 못해도 사랑의 흔적이었다는 건 알 수 있다. 사랑은 정확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흐린 눈으로도 볼 수 있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어릴 때의 질문은 잃어버렸는데, 어렴풋하게나마 답은 구한 것 같다.
-
- 시선을 바꾼 그 날의 기억 저 끝에 매듭진 모두의 역사
어떤 기억으로부터 멈춰버리는 시간이 있다. 누군가와 행복한 한때였거나, 숨어버리고 싶었던 부끄러운 감정, 슬프지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다짐의 의지,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우리는 지워버릴 수 없을 감정과 경험을 모조리 쓸어 담아, 일 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숫자에 모아두었다.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두 개의 시간 사이 새롭게 만들어진 일들을 차곡히 보관해 둔 상자만이 이정표처럼 멈추어 서 있다. 그곳을 출발점 삼아 우리는 다시 숫자를 세고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모두가 하나의 배만을 바라보던 그 날 우리는 또 하나의 상자를 만들었다. 4월에 멈춘 채 많은 일이 담기었던 기억의 날로부터 어느덧 7년이 지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세월호의 가족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이제 모두의 세월호가 된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픔의 역사를 가장 개인적인 일상에서 끌어올린 영화는 모두가 경험한 서사의 얼개로 관객의 지난 7년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 또한 누구도 피할 수 없던 7년 전 그날에 서 있던 자신을 다시 떠올려 보기로 했다.
4월 16일 인천항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포털의 메인 뉴스가 나의 첫 기억이었다. 강의 내내 뉴스 페이지를 몇 번이고 새로 고치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동아리방의 친구들은 대부분 우려와 안타까움, 그리고 약간의 무관심을 첨가한 자신만의 기분을 안고 분 단위로 변하는 상황에 관해 몇 마디씩 거들었다. 방송사마다 특보를 내보냈고 같은 구도의 항공 사진과 실시간 영상을 틀어주었다. 한결같은 화면에도 은근히 달랐던 목소리 안에는 재난상황의 정확한 전달 대신 피해자의 보험료와 자극적인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생긴 지 불과 3년밖에 안 된 종합편성채널의 존재는 여전히 적응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던 건 전원 구조 자막을 띄운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그와 정반대의 소식을 접하고, 탑승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그 어처구니없던 무지의 혼란, 그리고 점점 해가 지는데도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뉴스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SNS에서는 실시간 피드로 현 상황을 평가했고,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로 타임라인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배는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골든 타임, 민간 잠수부, 컨트롤 타워, 팽목항, 에어포켓. 낯선 단어들이 종일 눈과 귀를 맴돌았다. 누군가의 절규와 분노, 죽음의 절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비현실적인 일상에 야속한 숫자 카운트만 늘어갔다. 악화일로에 치달은 현장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슬픔과 두려움은 어느새 분노와 무력감이 되었다. 국가와 정부는 신뢰를 잃었고 의심은 쌓여갔다.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애써 상황을 축소하고 몰아가려는 노골적인 행태에 평정심을 잃은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언론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갔고, ‘피해자다움’이라는 가이드라인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언제든지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가가 손을 놓아버린 현실에 절박한 연대의 외침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이들을 반정부 종북 세력으로 몰아갔다. 이념적 갈등을 부추긴 이들은 세월호라는 단어에 수십 겹의 프레임을 덧씌웠고, 생존과 진실을 향한 필사적인 투쟁은 격화되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불의한 사회에 저항하는 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그 악순환의 끝에는 곡기를 끊은 광화문광장의 부모를 향한 증오의 말과 폭식 투쟁. 정치적 공방에 휩쓸려 분열된 피해자들에 가해진 또 다른 상처가 있었다. 그때는 지겹다는 말이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터져 나온 혐오와 광기의 시대였다. 나는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일상이 바뀌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삶의 이정표가 바뀌는 순간을 단지 우연과 운명으로 넘어가기에는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도 크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과 전진은 너무도 자연스레 수레바퀴의 빗살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과 공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세월호 피해자의 공허한 외침을 들은 이 모두에게 앙금이 되었다. 시간은 지났고 누군가는 처벌을 받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치유가 아니란 사실은 자명했다. 분노는 곧 죄책감과 미안함이 되었고,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국정농단 행위는 국가적 참사에서도 예외가 없었고 부당한 권력과 죽음을 끝내기 위해 시민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았을 세월호 가족들은 시민들에게 도시락과 촛불을 건네며 감사와 응원을 보냈다. 비극으로 송두리째 바뀐 누군가의 삶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이들은 함께 기억하고 싸우기로 했다. 100만 명이 모이고, 청와대가 움직였다. 거대하게 보였던 국가권력이 시민의 힘으로 끌려 내려진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며 2018년 추웠던 겨울 광장 앞을 다시 떠올렸다. 모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그 공간에는 시민들의 열기와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존재했다. 다 함께 같은 목소리를 냈던 그 연대를 떠올리면 외롭고 그리워졌다. 각자의 목소리가 얽혀 하나로 이어졌던 시간이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감정에서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오늘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강력한 명령처럼 우리를 붙잡는다.
출처 | 다음 영화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진상규명은 진행 중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자신의 반대편에서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같은 쪽 사람들에게 듣고 있었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이후, 세월호 가족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공수가 바뀐 시민단체가 모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내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힘을 쥐여준다. 그렇기에 타협과 관철의 시간은 길고 느리게 흘러간다.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현실을 직면한 그들에게 지난 4년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아직 기억의 상자는 채워지고 있고, 그들의 삶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물었다. 때로는 뒤로 후퇴하고, 때로는 멈춰있는 진실과 시간 앞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사회적 참사로 평범한 시민이 투사가 되었다.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모두의 마음에 깊이 들어온 아픈 사월은 자연스럽게 잊히고 있다. 고통을 망각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이기는 해답은 끊임없이 기억하고 버티는 것이다.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선생님은 매년 학교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사를 주최한다. 통인동이 열렸던 그 전율의 순간을 체감했던 카페 사장님은 손님에게 세월호 리본을 건네준다. 진도의 참극을 목전에서 바라본 어부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텐트를 옮겨 놓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끈질기게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아픔에 온전히 다다를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누구도 아닌 당신의 기억 속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모두의 기억이 된 사월의 세월호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 속 매듭지어 놓은 세월호의 리본은 여전히 단단하게 묶여있을 것이다.
【7주기 기억추모행사】
* 온라인 행사 *
<4월의 기억마스크> 펀딩 : ~4/16
<사이버 추모관> 운영 : 4/5~4/30 (416remember.net)
<기억의 물결> SNS 프로필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 : 4/1~4/30
* 오프라인 행사 *
<기억식> 안산+온라인 : 4/16
<세월호 기억관> 개관(광화문 광장) : 4/1
-
- 인테리어 영감을 주는 영화 BEST9
-
다가오는 봄, 참고하기 좋은 인테리어 영감을 주는 영화 9편을 소개합니다.
인류에게 문명의 지혜를 가르쳐 준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 안에는 선장 ‘보우만’과 승무원 ‘풀’, 전반적인 시스템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이 타고 있다. 평화롭던 우주선은 ‘할’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위기를 맞는다. 특히나 이 영화는 60년대 작품으로 인간이 아직 달에 가기 전에 만들어진, 올해 개봉 51주년을 맞이한 기념비적인 SF 우주 영화.
세 딸을 둔 이브는 남편 아서가 새로운 애인 펄이 생기자 이혼을 요구하자 자살을 기도한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요양소에 입원하게 되지만, 세 딸중 어느 누구도 아서의 외도에 대해 관심이 없자 이브의 절망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결국 아서는 떠나고 이브와 세 자매만 남게 되자, 서로에게 화를 내고 비난하던 네 여자는 그동안 쌓여 있던 앙금을 털어 버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한다.
1983년 이탈리아, 열 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오후, 스물 넷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모든 날들이 특별해지는데... 엘리오의 처음이자 올리버의 전부가 된 그 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사랑이 펼쳐진다.
집에서 매춘하는 젊은 가정주부의 일상을 건조하게 담은 영화, 성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의 공간 가정에 대한 고찰. 잔느는 어린 아들을 키우며 집에서 매춘하는 젊은 가정주부이다. 그러나 한 손님의 방문과 함께 잔느의 일상은 기이하게 무너지고, 그녀는 실수를 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녀는 손님을 찔러 죽이고 거실 탁자로 쉬러 간다.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동맹을 위해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고 베르사유에 입궐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 그녀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설레지만, 무관심한 남편과 프랑스 귀족들의 시기심으로 점차 프랑스에서의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지쳐만 간다.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녀, 마리 앙투아네트! 사치와 허영이라는 타이틀, 다른 남자들과의 스캔들, 굶주려가는 국민들에게 케이크를 먹으라고 외쳤다는 루머, 진실은 무엇일까? 세상이 궁금해 한 그녀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모로코 탕헤르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지내는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 수세기에 걸쳐 사랑을 이어온 이들이지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아담은 인간 세상에 대한 염증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 이브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디트로이트행 밤비행기에 몸을 싣고 마침내 두 사람은 재회한다. 그러나 만남의 기쁨도 잠시, 이브의 통제불능 여동생 애바의 갑작스런 방문은 숨겨두었던 뱀파이어의 본능을 일깨우기 시작하는데… 21세기 현대사회, 아담과 이브는 과연 영원한 삶과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1922년 뉴욕 외곽에서 살고 있는 닉은 호화로운 별장에 살고 있는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옥스포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개츠비는 어딘가 비밀이 가득한 의문의 사나이. 이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는 토요일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파티에 초대 받아 참석한 후 개츠비와 우정을 쌓게 된 닉은 자신의 사촌 데이지와 개츠비가 옛 연인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다. 데이지는 가난한데다 전쟁터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개츠비를 잊은 채 부유한 톰과 결혼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톰은 정비공의 아내와 은밀한 사이였고, 때마침 개츠비와 재회하게 된 데이지는 잊혀졌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는데…
뉴요커 레이첼은 남자친구 닉의 절친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한다. 처음으로 아시아를 방문한다는 설렘도 잠시, 닉의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이 걱정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닉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결혼 후보 1순위 신랑감이었던 것. 레이첼은 사교계 명사들의 질투와 더불어 본인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닉의 어머니의 타겟이 되는데… 남친의 재력을 알게 된 순간, 시월드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영화 데이지즈는 마리라는 동명을 가진 두 명의 장난기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 주위의 삶을 교란시키고 파괴한다.
-
- <팔콘과 윈터 솔져>방패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일신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노스와의 결전 이후 친구이자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물려받은 '샘 윌슨/팔콘(앤서니 매키)'. 차마 캡틴 아메리카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그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방패를 기증하고, 미 공군과 협업해 세계 각지의 빌런들을 처리하며 지낸다. 한편 샘이 스티브의 후계자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실망한 '버키(세바스찬 스탠)'는 그와의 연락을 끊은 채 자신의 윈터 솔져 시절을 속죄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미 정부는 그간 뛰어난 공적을 세운 군인 '존 워커(와이엇 러셀)'를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임명하고, 전 세계적인 테러 조직 '플래그 스매셔'와 리더인 '칼리(에린 켈리먼)'의 처리를 그에게 맡긴다. 이에 당황한 팔콘은 분노한 윈터 솔져와 함께 방패를 되찾고 진정한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의 이름에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름부터 '아메리카'가 들어간 히어로가 정작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권력기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포로들을 구출하더니, 2편에서는 소속된 첩보 기관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3편에서는 UN의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가장 미국적인 영웅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로 매우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해 놓을 만큼 개개인의 신념과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국가다. 따라서 그 어떤 권력과 사상이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굳건함은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방어용 무기인 방패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령 잘못되거나 소수의 의견으로 보이더라도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을 인도한다는 믿음은 그에게 있어서 70여 년 간 나치, 하이드라, 타노스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패였던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스티브 로저스가 대변하는 미국적 가치의 효용성과 정당성에 금이 갔다는 점이다. 끝내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루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스티브는 본질적으로 1940년대에 묶여있는 캐릭터다. 이는 지난날 자신의 악행과 과오를 되돌려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버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와 공적과 별개로, 과거에 속한 이들은 나날이 변화하는 2021년에 지켜야 할 가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를 스스로 무너뜨릴 뻔하고, 흑인과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터져 나오는 등 자유가 방종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인 스티브 로저스가 상징하는 가치는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팔콘과 윈터 솔져>는 MCU의 두 번째 캡틴 아메리카로 스티브 로저스의 친우인 버키가 아니라 팔콘을 선택하고, 그가 방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두 측면에서 조명한다. 우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보이지 않았던 인종차별을 드라마 전면에 부각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이제아다. 스티브 로저스와 동일한 혈청을 맞고 한국 전쟁에서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아이제아는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방패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방패는 흑인들이 흘린 땀과 피로 만들어졌으며 빛에 가려진 그림자로 존재하는 또 다른 미국의 역사, 어벤져스의 일원인 팔콘마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낮의 길거리에서 체포당하는 현실까지 보호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미국 정부에서 임명한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가 끝내 U.S. 에이전트에 만족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는 또 다른 스티브 로저스가 되고자 노력한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이자,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질 정도의 정의감을 지닌 그는 스티브의 유니폼을 입고, 그의 방패를 들고, 그처럼 혈청을 맞아 신체적으로도 강해진다. 그러나 이미 변화한 세상과 현재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명확한 과거의 상징을 쫓아기에 그의 노력은 헛되고, 그는 방패의 무게감에 짓눌려 자신을 망칠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등장인물의 서사를 통해 드라마는 방패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일상과 경험, 역사까지도 공유하는 히어로만이 새로운 시대에 진정으로 그 방패를 들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팔콘의 ost 제목이 'Lousiana Hero'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팔콘이 억압받는 개인들을 어떻게 감싸 안는지를 면밀하게 제시하며 그가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주목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마치 팬데믹 때문에 현실에서도 개인들이 그러했듯이 하나같이 타노스가 남긴 혼란의 여파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당한다. 쉴드와 CIA를 거치며 국익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모두에게 잊히고 버려진 샤론 카터, 3개의 명예훈장을 받고도 군에 의해 장기짝처럼 조종당하고 소모품처럼 쫓겨나는 존 워커, 국제송환협의회(Global Repatriation Council)로부터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기는 난민들이 반발해 만든 빌런 집단 플래그 스매셔까지. 비록 타노스의 등장 그 이전에 겪은 일이지만 여전히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사야와 세뇌당한 상태에서 죽인 이들을 기억하며 악몽으로 밤을 지새우는 버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을 샘은 스티브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호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퇴역군인 심리상담사로 처음 등장했었던 샘은 좀처럼 현재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스티브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듯이 다른 이들도 지켜준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의 그림자에 짓눌리던 존 워커로 하여금 자신을 옥죄는 방패를 버리고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범죄의 온상인 도시 마드리푸어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샤론의 사면을 정부와 거래하며, 비록 방법은 정당하지 않았더라도 플래그 스매셔가 왜 폭력으로나마 자신들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준다. 더 나아가 버키가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도록 용기를 불어넣고, 스티브의 전시관 옆에 아이제아에 대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오래된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팔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질들을 120%로 활용해 2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다.
사실 <팔콘과 윈터 솔져>의 짜임새는 결코 뛰어나지 않다. 지난 시리즈에 비해 박진감이 덜한 액션씬, 일관성을 잃은 슈퍼 솔져 혈정의 설정, 카리스마가 다소 부족해진 듯한 윈터 솔져의 묘사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무엇보다도 빌런인 플래시 스매셔에 대한 묘사나 전개가 유난히 허술하다. 루머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래 플롯에 포함되었던 바이러스 공격이 삭제되었다고도 하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조차 빌런들의 목적에 어떤 당위성이 있는지, 어떻게 국제적인 테러 조직이 되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플래그 스매셔의 서사가 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당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플래그 스매셔의 목적과 당위성, 역사가 잘 드러날수록 샘이 플래그 스매셔의 취지를 옹호하는 선택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노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질서와 체제는 붕괴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샘 역시 5년간 먼지가 되었다가 돌아왔고, 그간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다른 인물들보다 플래그 스매셔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어떻게든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가 정의와 선함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데 큰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였으며, 드라마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팔콘과 윈터 솔져>라는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로 바뀌는 순간 벅차오르는 가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팔콘과 윈터 솔져>는 이미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그려낸다는 본래의 취지를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완벽히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종영 후 들려온 <캡틴 아메리카 4>의 제작 소식은 그 어떤 속편보다도 마블 팬들의 기대감을 키워 버린다.
A(Acceptable, 무난함)
과거와 현재의 무게가 깃든 방패를 들고 진중히 날아오르다
-
- 어떤 사랑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뻔해진다
어떤 이야기를 단지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지.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는 대만계 미국인 감독 앨리스 우(Alice Wu)의 작품이다. 동양인 여성 감독인 그는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세이빙 페이스>(2004)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감독으로 전업하나 싶었는데, 지금 소개할 <반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앨리스 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감독의 트위터에는 어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다는 “Drawing is my favorite enem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감독은 이 말이 영화 만드는 일에 관해 자신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즐겁지 않은 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할 수밖에 없는 일.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사이의 16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겠지.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엘리’(리아 루이스)가 같은 학교 남학생 ‘폴’(대니얼 디머)로부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하이틴 로맨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감독의 전기적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과 전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이런 종류의 10대들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다.
‘폴’이 부탁한 연애편지라는 건, ‘폴’이 좋아하는 동급 여학생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쓰는 것이다. ‘엘리’는 평소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학우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고는 했다. 대필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는 “세 페이지 이하는 10달러, 열 페이지까지는 20달러, 그 이상은 안 해.”라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견적을 말한다.
‘엘리’는 저 말을 다른 학우들이 숱하게 부탁했을 과제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낸 건데 ‘폴’이 원하는 게 학교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는 걸 알게 되자 그걸 단호하게 거절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편지의 명목상의 발신인과 그 수신인을 아주 잘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꾸며낸다는 건 아주 천재적인 작가에게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그녀>(2013)에서 ‘테오도르’(와킨 피닉스)가 쓰는 종류의 조금 간단한 대필 편지 정도면 모르겠지만. ‘엘리’가 편지 대필을 해주기로 하는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장 50달러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폴’이 그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직접 써도 그게 전해질까 말까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편지.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폴’이 자기가 일단 써봤다며 내민 편지를 읽더니 ‘엘리’는 거의 다 고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흔하디 흔하지만 ‘진심’이 되었다. 사랑 이야기에 진심이라니.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지순한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해지고 둘의 관계가 ‘결실’을 맺는 정도의 구조일까.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은 이미 <반쪽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장르의 흔한 공식을 따르기를 애초부터 거부하는 이 영화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발단은 따로 있다. ‘폴’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엘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스터’로부터 답장이 오면서 계속 이어지는 편지 속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애스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기왕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 ‘폴’과 계속해서 ‘애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애스터’의 일상을 몰래 관찰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지만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흔한' 퀴어 영화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랑 영화도 아니고 퀴어 영화도 아닌데 하이틴 로맨스 영화이고 흔한 이야기는 아니라니. 정말 제목처럼 이야기의 반만 꺼낸 셈인데, 글 제목의 뜻에 대해서도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은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게 사랑이라면서.
“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그러니까, ‘엘리’는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폴’이 편지 대필을 부탁했을 때 처음 써준 편지에 의도치 않게 ‘애스터’의 답장이 오고 나서, ‘폴’과 ‘엘리’는 이제 정말 작정을 해야만 했다. ‘폴’은 이제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엘리’는 “다른 남자애들과 똑같아지고 싶냐”라며 편지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엘리’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애스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애스터’는 ‘엘리’가 들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자기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서 그의 이야길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핑계로 빔 벤더스 영화 속 대사 언급을 했더니 ‘애스터’가 자신 역시 빔 벤더스를 좋아한다고 답장을 한다든가... 이제 ‘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편지를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 이상 그건 자연스럽게 떠안아야만 했을 문제일지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엘리’와 ‘폴’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스터’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데이트 약속을 잡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애는 구상화보다 추상화를 더 좋아해. ‘남아있는 나날’ 얘길 꺼내면 영화가 나치 얘기를 줄이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 말해.” ‘엘리’가 ‘폴’에게 해주는 조언은 대략 이런 것이었는데, 이런 건 ‘애스터’의 취향에 대해 ‘폴’이 학습하도록 하는 정보들이었다.
당연히 첫 데이트는 ‘엘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폴’은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아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며 밀크셰이크에 든 빨대를 쪽쪽거리는 ‘폴’이 ‘애스터’에게는 나름대로 귀여워 보였던 모양. 실제로 ‘애스터’는 “넌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귀여워”라고 언급한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은 이런 것에 있다. 이 일련의 데이트는 ‘폴’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고 ‘엘리’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는다. 가령 ‘엘리’는 ‘폴’ 대신 직접 ‘애스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이런저런 조력을 하지만 이건 마치 ‘글로만 배운 연애’ 같아서 가끔은 그것보다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폴’의 것이 통하기도 한다.
일단 제목의 의미 하나가 여기 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그리고 많이 영향 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반쪽’이라는 건 ‘폴’과 ‘애스터’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애스터’와 ‘엘리’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폴’과 ‘엘리’ 아빠 ‘에드윈’(예성)의 관계도, ‘엘리’와 ‘에드윈’의 관계도 모두 포함한다. 반쪽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것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앞에서 ‘사랑이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것’이라는 인용을 했는데 ‘엘리’의 말이다. 관찰하고 계산한 대로, 정해진 공식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과 의외성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가 만나 각자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관계를 다져가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 <반쪽의 이야기>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주 똑똑한 영화다.
‘애스터’는 원래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포기한 인물이다. 그래서 ‘폴’의 이름으로 ‘엘리’는 ‘애스터’와 그림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화 내용에는 어쩌면 <반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애스터’는 미술 시간에 들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길 꺼내고 그림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선을 그려 넣는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사랑으로 한정해 볼까.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은 본래 서로가 만나기 전부터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것이다. 굳이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을 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러나 한 사람은 용기를 낸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한 사람이 거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어떤 흐름을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 그건 훗날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으리라 믿을 만큼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운명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하자면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건 ‘괜찮은 그림’에 대담하게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선 하나를 그려 넣는 행위일 거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억지로 읽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폴’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누가 정해놓거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치 대단히 중요한 내용처럼 플라톤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같은 이야기. 보통 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이런 식으로 뭔가가 적혀 있으면 그건 거의 반드시 중요하거나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에선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영리하게 그걸 비트는 영화라고 해야할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는 조용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뻔한 하이틴 로맨스처럼 인물 관계를 구성해놓고 <반쪽의 이야기>는 ‘애스터’를 중심으로 ‘엘리’와 ‘폴’ 각자의 내면을 꽤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0대니까, 이들은 얼마든지 삶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다. ‘엘리’는 ‘폴’이 불쑥 내뱉는 “그게 사랑 아냐? 상대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쏟는 거.” 같은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걸 예상치 못한 채 쉽사리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일 말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10대 중반쯤 되면 보통 사랑에 관해 나름의 기준 내지는 목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령 ‘폴’에게 사랑은 “치즈프라이를 하나 더 시키는 것”이다. ‘애스터’와 무슨 대화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지부터 쓰는 것이고, 편지에 대뜸 “맛있는 곳 아는 데 같이 먹으러 가자”거나 “나 트럭도 있고 풋볼 선수야” 같은 이야기나 꺼내보는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읽는 것도 물론이고.
50달러를 받기 위해 편지를 정성들여 써주긴 했지만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서로 전혀 공통점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엘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엘리’의 생각과 달리 ‘폴’과 ‘애스터’의 두 번째 데이트가 성사되고 둘은 키스까지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 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둘이 하나여서 머리도 몸통도 둘 팔 다리도 넷이었는데 신이 하나된 둘의 완전함을 시기하여 둘을 갈라놓았고 평생 동안 서로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영화 제목도 사실 거기서 따온 것인데, 아주 진지한 이야기인 양 플라톤도 인용되고 사르트르도 인용되는데, 아무리 이 영화의 ‘엘리’라는 캐릭터가 다른 학우들의 과제를 대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사랑에 관한 각종 문학적 인용에 통달한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거나 그가 깨달음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로 서사를 맺을 생각이 없다.
영하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그 근거 중 하나는 저 인용들의 대상이 후반에 가면 ‘엘리 추’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엘리’에게 어떤 좌절의 상황이 찾아오자 영화가 띄우는 인용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며,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던 ‘엘리’의 어떤 진심이 발언되는 장면 직후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가 자막으로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해서 고쳐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반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이며, 그 점은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반쪽의 이야기>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 모두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뭉클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갈등이나 오해는 대체로 해소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현으로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엘리’는 물론이고 ‘폴’에게도 ‘애스터’에게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 상처들이 분명 찾아오고 어떤 것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앞에서 제목에 관하여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내레이션까지 하며 ‘폴’의 행동을 이끌고 자신도 움직이지만 전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전기 요금을 3개월 체납한 것에 대해 ‘엘리’는 아빠에게 전력 회사에 전화해봤는지 묻고 아빠는 동양인인 자기 억양을 못 알아들을 거라며 (통화) 안 해봤다고 한다. 이에 ‘엘리’는 시도는 해보았는지 되묻지만 다음날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할 뿐 아빠를 나무라지 않는다.
‘폴’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를 통해 ‘엘리’는 ‘애스터’와 꽤 여러 주제에 걸쳐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을 보면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무엇보다 ‘애스터’에게는 사실 이미 공인된 (약혼 직전의) 남자친구쯤 되는 ‘트리그’(볼프강 노보그라츠)가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는 당연히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로 쓰였겠지만 여기선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빚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애스터’와 ‘폴/엘리’의 관계를 모르기까지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갈등 요소로 쓰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스쿼하미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보수적인 동네지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일이 살짝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당사자만의 문제일 뿐 공동체의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동양인 여성 캐릭터,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백인 남성 캐릭터, 무엇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기 많고 예쁘기까지 한 또 다른 여성 캐릭터라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전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가지고도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활용과 변주, 시도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영화라고 <반쪽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라는 ‘폴’의 말처럼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은 특정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평등하고도 특별하게 보여준다.
괜찮기만 한 그림과 훌륭한 그림 사이에는 아름다운 실패가 있다. 어떤 그림은 잊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 번 그린 그림의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 그림을 또 그릴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 번 더 되풀이해서 보는 며칠 동안 사랑에 관한 시나 산문을 여럿 읽었다.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 선을 그려 넣는 일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끌어안으면서, 낙관하지 않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떠오른 대목이 있어 여기에 덧붙일까 한다.
“두근거리다가 터지는 풍선이 되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해요.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 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언니들의 그림자에서 마블 최강의 마녀까지 간 소녀
#산돌구름 #엘리자베스올슨 #완다비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04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어바웃올슨?!
01:03 슈퍼스타 언니들의 그림자
03:58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배우
06:35 Road to 스칼렛 위치
08:42 마블의 중심?
-
- 난 두렵지 않아요 테레즈 / 캐롤 명대사 모음 ?????
- BGM Day 7 - Sweet Sorrow
Day 7:
https://soundcloud.com/day7official
https://twitter.com/Day7Chill
-
- 영화 <스네이크 아이즈: 지.아이.조> 공식 예고편
<지.아이.조> 시리즈 스핀오프
스네이크 아이즈 VS 스톰 쉐도우
친구였던 그들이 적이 된 이유는 있다
마스크 뒤 그들의 이야기
-
- 넷플릭스 <레오> 공식 예고편
배우 겸 코미디언 애덤 샌들러(《몬스터 호텔》 《웨딩 싱어》)가 전매특허의 웃음을 선사하는 애니메이션 뮤지컬 코미디. 초등학교 마지막 해를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성장 스토리. 교실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려동물 생활에 질릴 대로 질린 74세의 도마뱀(샌들러). 테라리엄을 공유하는 거북이(빌 버)와 함께 수십 년을 플로리다의 같은 교실에서 갇혀 지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쩌다가 이제 살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도마뱀은 바깥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탈출을 계획한다. 그런데 탈출은커녕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여러 문제에 휘말리고 만다. 말도 안 되게 심술궂은 임시 교사도 그중 하나! 이 일은 결국 가장 이상하지만 또한 가장 보람찬 버킷 리스트가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