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1-03-27 21:20:30
작은 개인의 투쟁기를 담다
<그리고 방행자>(2021)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부당하게 자신의 것을 빼았겼거나, 불이익을 받을 때 그리고 자신의 친한 지인이나 가족이 어떤 피해를 당할 때면 그것에 대항하여 투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법적인 투쟁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시위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그 투쟁의 경중은 있겠지만 누구나 어떤 기관이나 개인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논쟁을 하는 것도 개개인의 작은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권리나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투쟁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되고 그 상황에 적응해서 살아가게 된다. 그 영향은 그대로 자녀에게도 전달되어 어떤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 자녀도 작은 투쟁을 해나가며 삶을 이어간다. 어쩌면 이런 작은 싸움들은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이렇게 아주 작은 투쟁들을 이어나간다. 무엇보다 모든 투쟁의 과정에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길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기회가 오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방행자>는 방행자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손원경의 삶도 비춘다. 손원경은 장난감 수집광으로 장난감 박물관을 운영하며 지내왔던 인물이다. 그가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어머니의 발자취를 알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어머니 방행자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은 투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의 죽음에 대한 부당함을 같이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의 투쟁은 아주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에게서 온 이혼 통보 서류를 받은 그는 곧 이혼 취소 소송을 진행한다. 그 당시에 전례가 없었던 법적 투쟁으로 방행자는 그 일에 자신의 노력을 다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지냈던 그에게 그것은 어쩌면 그가 느낀 부당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사라지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영어로 된 메모와 그가 그 당시 테이프에 녹음했던 통화 기록들에서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그 일에 매달렸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두 번째로 투쟁하게 된 것은 조금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가 과거에 오랜 기간 살았던 대원군의 별장에 대한 것이다.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가 나타나며 법적 투쟁에 나선다. 몇십 년의 법적 싸움 끝에 결국 집을 잃게 되는데 그 이후 그는 에너지를 잃은 듯 보이지만 그는 그 싸움의 에너지를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배우면서 소모해 나간다.
아들과 손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의 마지막 투쟁은 아들의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경향신문 본사 건물에서 장난감 박물관을 하던 아들 손원경은 매장과 관련하여 신문사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매장을 철수하게 되는데 그 싸움을 그 당시 아팠던 아들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여러 매장과 관련이 있었고 신문사와의 투쟁이었기에 어쩌면 가장 사회적인 투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그는 어느 순간 그 신문사 건물에서 목을 메어 자살한다.
영화 <그리고 방행자>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방행자라는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이겨냈고, 또 어떤 인물인지를 조금씩 보여준다. 해당 인물의 아들이 연출하고 있는 다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사심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는 영화다. 영화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 일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행자라는 인물의 투쟁이다. 방행자의 투쟁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개인에게는 좀 크게 느껴지고, 사회에서는 그렇게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실 목소리를 외부에 알릴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소 객관성이 떨어져 보이고 영화적 완성도가 조금 부족해 보여도 이런 개인적인 노력과 삶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영화 <그리고 방행자>는 그런 점에서는 의미 있는 다큐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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