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2023-03-01 16:37:59
장황한 스케일 그리고 그것조차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
영화 살수(2023)
조선 팔도 제일의 살수 '이난'(신현준) 병마가 그를 위협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에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한 마을에 의탁한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울부짖는 백성들의 비명으로 점철된 살아있는 지옥…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 마침내 그가 깨어난다!
<살수> 줄거리
줄거리만 봤을 때 좀 진지한 사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 나니 이 영화, 유머도 있고 조금은 가볍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니 그도 못하다.
되지도 않는 유머는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만들 뿐이고, 말투는 자꾸만 과거와 현대를 왔다 갔다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연기 또한 어색해져버린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개연성이다. 자꾸 말 한마디로 퉁치려고 한다. 갑자기 등장한 살수 이난은 밑도 끝도 없이 최고의 살수라고 말해주는 걸로 그의 실력 증명을 끝낸다. 그리고 이에 적응할 틈도 없이 이난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버린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설정값들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그런데 이 영화, 더 나간다. 이난이 조선 최고의 살수인데 무공을 쓰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 바보가 되어버리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선 최고’의 살수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던 무게감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동네 바보 하나만큼의 가벼운 사람 하나만 남는다. 그런데 이게 웃기지도 않다.
후반으로 갈수록 어쩔 수 없이 이난이 악당들과 부딪히면서 액션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미 깎여버린 이난의 이미지는 너무 많이 가벼워져 긴장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장면이 뚝뚝 잘린다. 칠복이와 선홍이네와 이난이 그렇게 정을 쌓았는지 몰랐는데 우리도 모르는 새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싸울 정도로 친해져있다. 또한 갑자기 산적들은 멋대로 민가를 침입한다. 그러고는 그 이유가 자신이 두목인 걸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몇몇 장면들이 지나갔나? 이런 급전개가 너무 당황스럽다.
그리고 왜 이난을 쫓는 여자 살수는 눈이 붉어지고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걸까. 이난을 압박하는 뒷세력은 누구인가. 이렇게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 이야기까지 후편을 기약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기에는 <살수> 자체가 너무 허술한 영화였다. 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이렇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살수>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아프니까 청춘 아니고, 청춘시련
영화 <청춘시련> 포스터
청춘시련 (Terrorizers, 2022)
장르 : 대만, 멜로·로맨스 │ 감독 : 호위딩
출연 : 이목(유팡), 임백굉(밍량), 진정니(모니카), 임철희(장둥링)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타임 : 127분아프니까 청춘 아니고, 청.춘.시.련
청춘이라는 단어는 왜 그리 힘든 단어랑 잘 어울릴까. 아프니까 청춘이었는데, 이번엔 ‘청춘시련’이다. 청춘들의 편린을 그려낸 대만의 한 영화 제목이다. 사실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는 그저 그런 로맨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영화 <청춘시련> 스틸컷
영화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나온다.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되지만, 주인공의 시점에 따라 옴니버스처럼 펼쳐지는 구성이다. 맨 처음 그려지는 이야기는 귀여운 외모의 여성 ‘유팡’과, 누가 봐도 착하고 건실하게 생긴 남성 ‘장둥링’의 로맨스다. 남자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여성은 이에 넘어가고, 비 내리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로맨틱하게 키스하고, 미래를 도모하고..., 여기까지만 해도 이 영화는 그냥 일반적인 로맨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기차역에서 칼을 든 채 유팡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로 인해 영화의 장르는 바뀌어버린다.
그 남자는 왜 칼을 들었을까
유팡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든 남자는 ‘밍량’. 유팡과 함께 살던 동거인 남성이다. (동거‘남’이 아닌 정말 공간만 셰어 하는 동거‘인’이다) 영화 초반, 소극적이고 과묵하게 그려지는 밍량을 보고 “아, 유팡을 사랑했던 거구나. 그런데 장둥링한테 뺏겨서 화가 났구나. 그래서 칼을 들었구나”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칼을 들어도 분명 미친놈이다.
영화 <청춘시련> 스틸컷
하지만 영화는 시점을 꼬아, 이번엔 ‘모니카’라는 여성을 비춘다. 모니카는 진정한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무명배우다. 하지만 배우로 먹고사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현실과 타협해 한 포르노 사이트에 배우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운명은 장난과도 같았고, 그렇게나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은 포르노에 나왔던 그녀를 무척이나 특별하게 기억한다. 야릇한 표정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듯한 모니카의 연기에 압도당한 팬들 중에는, 유팡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들던 ‘밍량’도 있었다.
밍량은 포르노 사이트에서 보게 된 모니카에게 정말이지 홀딱 반했다. 그 이후 그녀를 마치 자신의 실제 여자 친구처럼 여기며 몰래 집에도 드나들고 온갖 비밀스러운 스토커 행세를 하고 다닌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밍량은 왜 모니카가 아닌 유팡에게 칼을 휘두른 걸까.
진짜 로맨스는 여기에 있었다
다시 영화의 시점은 바뀌고, 이번엔 모니카와 유팡이 함께 등장한다. 모니카와 유팡은 극단에서 만난 사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응원하는 동성친구라고 생각했으나, 둘은 연인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배우로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고, 여차저차 상황에 쫓겨 호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비극적으로 헤어져야만 했던 여성 커플의 로맨스 뒤로, 건실한 청년 장둥링이 등장한 거였다.
영화 <청춘시련> 스틸컷
그제야 퍼즐이 후드득 맞춰진다. 영화 초반에는 조명되지 않아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고 나자, 같은 사건인데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유팡을 향해 칼을 휘두른 밍량은, 유팡을 사랑한 게 아니라 질투한 것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 가상 여자 친구 ‘모니카’와 사랑을 나누고 몸을 섞는 유팡이 증오스러웠던 것.
그래서 이 영화 뭔 내용인데? 누가 악역인데?
하나의 완벽한 서서를 알고 나자 영화는 괴기스럽기도 하고, 많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이야기’라는 것의 본질적인 특성이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란 화자에 의해 조각나고 편집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살면서, 한 사건이 당사자들에 의해 다르게 엇갈리는 것을 마주하곤 한다. 같은 사건인데도 A가 기억하는 것과 B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자신의 주관에 의해 어떤 부분은 거세되고, 어떤 부분은 과장된다.
영화 <청춘시련> 스틸컷
결국 누구의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색깔은 달라질 수밖에. 갱생이 불가한 미친 스토커로만 생각했던 ‘밍량’도 순수한 여고생 ‘키키’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구원해준 고마운 사람이 되고 만다. 이렇게 주관에 따라 극명하게 갈려버리는 서사를 보며 관객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 누가 나쁘고 누가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그 시절은 그 자체로 혼란이고 시련이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조금 불투명했으나,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대만의 청춘들이 한국의 청춘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 시절은 누구나 뜨겁고 혼란스럽고 세상에서 제일 소란스러운 세계라는 것만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청춘은 시련 그 자체다. 연인은 떠나가거나 배신하고, 정립되지 않은 자아는 불안으로 요동친다. 그 시기를 지나,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언제 처리할 것이냐가 제일 큰 소란이 된, 30대의 내 고요한 삶이 조금은 고맙게 느껴졌다.
영화 <청춘시련> 스틸컷
가끔 뜨거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프냐고 묻는다면 아니. 이렇게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
- <낙원의 밤> 잔인하지만 서정적이고 낯선 누아르
1. '양도수(박호산)' 사장의 명령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북성파를 제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보던 '박태구(엄태구)'는 돌연 비보를 접한다. 누나와 조카가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북성파가 작업에 들어온 것으로 의심한 태구는 즉시 그들의 보스를 공격하고, 북성파의 2인자인 '마상길(차승원)' 이사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도망가기로 결정한다. 러시아로 가기 전 잠시 들린 제주도에서 태구는 묘한 분위기의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사격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는 등 걷잡을 수 없는 그녀로부터 그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씩 편안함을 되찾지만, 태구를 향한 복수의 칼날은 이내 제주도로 들이닥친다.
영화학자 토마스 슈츠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에서 영화 장르의 변화를 네 단계로 나눴다. 실험 단계에서는 특정한 장르로 부를 수 있을 공통된 움직임이 포착된다. 고전 단계에서 공통의 움직임은 제작자와 관객 모두가 공유며 하나의 장르를 규정하는 특정한 이야기 전개의 공식과 도상(볼거리) 같은 관습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장르 영화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더해지는 세련화 단계를 지나 기존에 확립된 장르의 전통을 파괴하는 마지막 바로크 단계에 다다른다. 비록 모든 영화 장르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장르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준으로서 위의 과정은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2. 이러한 장르의 변화라는 맥락 안에서 볼 때 박정훈 감독의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은 분명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준 <신세계>(고전)를 거쳐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마녀>(세련화)로 이어진 박훈정 표 누아르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낙원의 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외피와 이야기의 발단이 한국형 누아르의 도상과 관습을 충실히 따르는 것에 비해, 중반부에 숨겨둔 진짜 이야기는 장르의 관습에서 탈피하고 있다.
실제로 <낙원의 밤>의 연출, 도입부, 스타일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태구가 북성파 두목을 죽이거나 조폭들이 회동을 하는 장소로 한국의 누아르, 범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우나와 중국집이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액션씬 역시 감독의 전작에서 여러 차례 명장면을 남긴 바 있다. <신세계>에서는 엘리베이터 안, <브이아이피>에서는 중국의 한 아파트 복도와 방이 그 장소였다면 이번에는 차 안, 차와 차가 맞붙은 좁은 공간, 문이 잠긴 식당에서 액션이 펼쳐진다.
이야기의 발단도 마찬가지다. 양 사장의 행동대장인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나와 조카가 살해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북성파가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고 판단한 그는 복수를 위해 북성파 두목을 살해하고, 필연적으로 뒤따를 복수의 굴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이러한 태구의 이야기는 냉혹하고 음울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박훈정 감독의 특유의 연출과 스타일을 만나 또 한 번 사나이들의 의리와 배신,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펼쳐 보이려는 듯 보인다.
3. 그러나 제주도로 장소를 옮긴 후 <낙원의 밤>은 예상된 경로를 벗어난다. 당장 결말부터 각 인물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않는다. 발단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태구, 양 사장, 마상길은 모두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태구는 완전히 도망치지도 못하고, 가족들의 원한을 진짜 범인에게 갚아주지도 못한다. 마상길과 양 사장은 그들의 거래와 계획을 깔끔히 끝맺는데 실패한다. 대신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충격적이고 하드코어한 결말을 통해 오직 재연만 복수에 성공한다. 이는 마치 <마녀>에서 누아르 영화의 남성 주인공의 자리가 여성에게 넘어간 것을 연상시키는 마무리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방향성이 기존의 장르 관습적 선로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은 공항에서 태구와 재연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그저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새로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목할 뿐이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굳건한 관계가 형성되어 유지될지 혹은 파괴될지가 관건이었던 것과는 다르다. 의리와 정, 피의 복수를 되새기는 사나이들을 강조하는 누아르의 관습을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복수의 칼날을 가는 마상길이 가끔씩 얼굴을 비추는 것을 빼면 영화는 중반부부터 누아르라는 사실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일반적인 누아르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태구와 재연의 드라마를 유려한 앙상블에 담아낸 두 주연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의 퍼포먼스가 유달리 인상 깊은 이유기도 하다.
4. 이때 두 주인공의 관계 맺기의 중심에는 각자의 트라우마가 위치한다. 마치 거울 치료를 하듯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로부터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 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재연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죽을 날이 정해진 누나를 떠올리고,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자신과 그녀가 동병상련임을 깨닫는다. 재연의 삼촌이 총을 밀수하면서 마련한 선물을 끝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볼 때는 끝내 생일 선물을 열지 못한 본인의 조카와 재연을 겹쳐 본다.
한편 재연은 온 가족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삼촌의 모습을 제주도로 도망쳐온 태구에게서 본다. 또 가족이 죽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고, 그래서 복수심을 버릴 수 없는 그녀는 가족의 복수를 한(혹은 했다고 생각한) 태구의 심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이처럼 회한과 트라우마가 뒤섞이면서 물회를 사이에 두고 애틋해지는 둘의 관계는 묘한 동질감으로 인해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 간의 정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성 간의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굳이 이들의 관계를 정의 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구체적인 설명 대신 아름다운 영상 안에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태구와 재연은 차가운 필터에 포착된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함께 담배를 피운다. 둘이 서로를 온전히 알아가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불운했던 그들의 삶에 마침내 치유와 평화를 얻고 오래간만에 행복해지는 순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마침내 낙원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담배 연기처럼 금세 사라진다. 아름다운 낙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듯이 그들은 이내 마상길의 모습으로 자신들을 매섭게 쫓아오는 섬뜩한 복수의 굴레에 다시 빠져든다. 이처럼 태구와 재연의 관계성을 불명확한 경계 안에 담아낸 결과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완성한다.
5. 다만 <낙원의 밤>이 거둔 독특한 성과는 결코 매끄럽지 않은 완성도로 인해 빛이 바랜다. 우선 플롯의 치밀함보다는 감정선과 정서를 담아내는 미장센에 힘을 준 결과물은 좋게 말하면 영화를 곱씹어 볼 기회를 주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하다. 명확하지 않은 두 인물의 관계성, 그로 인한 예상외의 전개는 창고와 식당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에 처연함과 잔인함이 맞부딪히는 충격을 가득 불어넣거나 그저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만을 남기면서 명확한 호불호를 유발한다.
또한 몇몇 한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설픈 유머, 임팩트를 주기 위해 잔뜩 힘을 준 인위적인 명대사들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무자비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자신의 말과 약속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마상길, 소시민적인 듯하면서도 비열함을 숨기지 못하는 박 과장과 양 사장처럼 극에 강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들도 끝내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원의 밤>은 새로운 시도의 성취에 온전히 만족할 수는 없는, 끝내 낯섦을 새로움으로 바꾸지는 못한 한국형 누아르 영화에 머문다.
A(Acceptable, 무난함)
불완전한 영화적 시도가 담은 서늘하게 슬픈 청춘들의 낙원
-
- 배트맨 3년차, MBTI가 바뀌었다.
이 글은 영화 [더 배트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난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007이 되었을 때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여태까지 이런 007은 본 적이 없다며 비난과 험담의 벽을 쌓아 올렸으니까.
그러나 첫 작품이었던 [카지노 로열]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미움의 벽을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덕분에 다니엘은 시리즈 사상 가장 마초적이면서 인간적인 요원으로 자리 잡았고. 15년 동안의 임무를 완수하고 기꺼이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참고 1) DC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 배트맨 시리즈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기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손에서 가장 완벽한 3부작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희대의 악역인 조커를 낳았다.
이런 시리즈에 아직 물음표가 가득한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을 앞세운 새 배트맨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영화 [더 배트맨]의 시작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고. 덕분에 그림자인 비난 역시 짙게 깔려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더 배트맨]은 이런 비난의 색을 가득 담았다. 어둡고 또 무겁다. 로버트 패틴슨은 우울하고도 생각으로 가득한 배트맨 역할을 여태 해 온 역할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풀어내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제작진이 비난에 대처한 방식은 영화의 색깔과 같았고. 비난은 슬그머니 배트맨이 가진 고뇌의 무게에 합쳐져 긴 러닝타임 내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9회 말 2아웃 상황의 DC가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가벼운 마음만큼이나 영화 속 배트맨의 마음도 조금은 밝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3,6,9는 진리다.;배트맨도 피할 수 없는 3년 차 성적표
사진 출처:다음 영화
3년 차. 일반 회사로 친다면 이제 슬슬 대리 달아야지?라는 덕담 같은 압박이 귓가에 쌓이기 시작할 때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업무 짬도 차기 시작하고 전체적인 일의 그림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익숙해져 버린 자리 덕에 슬슬 회사 전체에 대한 불만도, 그리고 이직을 했을 경우의 "조건"들에 대해 점치기도 시작한다. 또한 근원적으로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의심과 물음도 하나둘씩 마음을 채운다.
올해 3년 차에 들어선 고담 시 (명예) 공무원인 배트맨의 위치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이제 고담 시 전체도 제법 눈에 익었고. 모든 범죄에 출동할 수 없으니 Priority를 세워 선택적으로 야근할(?) 줄도 안다. 그럼에도 고담 시의 경찰들에게는 가면을 쓴 자경단들 중 하나 정도라는 생각에 그칠 뿐이지만.
그럼에도 경찰들이 이 혼돈의 배트맨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게 기대하는 "능력"이 (연차 대비) 출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뛰지 않는다. 날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현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배트맨은 자신의 정체가 그들의 코앞에 다가갈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밤이 만들어 낸 안개가 걷히면서 배트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범죄자들은 그제서야 허공을 향해 빛나고 있는 박쥐 모양의 경광등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어진다. 물론 그 마른침이 다 넘어가기도 전에 얻어맞고 바닥에 뻗어 있겠지만. 영화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위압감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분명 다른 히어로들보다 휘황 찬란하다거나, 빠르지도 않지만. 배트맨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오는 압박감만은 매우 대단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그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집념을 느낀 악당들에게 배트맨은 훌륭하고도 끔찍한 악몽이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만나보고 싶기도 한 빌런이다.
세례 받은 배트맨;자신 스스로도 구원해 내기.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배트맨은. 마치 자신의 진정한 MBTI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질문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행하던 것이 복수였는지. 혹은 정의였는지에 대해 생각하듯이.(참고 2)
리들러의 공격은 너무도 현실에 착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외면하고 싶은 연좌제에 대한 이슈를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또한 뒷골목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만 같아서.
셀리나는 자신이 드러낼 수 없는 마음속 분노의 모습과 닮아있어 더 이상의 고아가 탄생하는 것도. 고아가 저지르는 잘못도 없기를 바라는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막아야 했다.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삶은 일찌감치 박살 난 지 오래라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엉망인데. 배트맨은 자신의 앞에 놓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고 정확하게. 게다가 늦지 않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담 시 사람들이 사상을 입을 수도 있는 그 순간에. 배트맨은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기꺼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마치 영화의 진행 내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복수와 정의 중 후자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임과 동시에. 여태까지 지니고 있던 모든 고뇌를 세례를 통해 씻어내린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MBTI는 결정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배트맨이 되었다. 그리고 배트맨은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직접 돕는 것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그는 이 역할에 당위성을 고쳐 붙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가 건져올린 것들에 자신도 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기를 빈다.
과연 이직에 성공할 수 있을까?;일단 야근부터 좀 어떻게 해보자.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말미에. 배트맨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지독한 어둠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도우는 일에 합류한다. 마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 모습마저도 먼지 구덩이에서 한 번은 구르고 나온 것 같은 모습이지만. 배트맨의 눈길과 몸짓은 경직되어 있던 영화의 초반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그전까지 자신에게는 어둠만 허락된다고 생각했다.
어둠을 먹고 사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이 자신의 복수이자 고담 시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밤의 지배자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뿌려댈 수 있지만. 낮의 주인들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낮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희망이 전염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제 배트맨은 고담 시를 떠날 수 없다. 3년 차가 갖고 있던 고민도 사라졌고, 자신의 MBTI도 명확해졌다. 그리고 야근만 하던 삶을 주간 근무로 바꿀 수 있는 희망도 이젠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런 각오가 무색하게 6년 차의 헛바람은 찾아올 것이고. 이 도시는 여전히 자신을 배신하겠지만. 게다가 잊고 있었던 야근도 종종 하게 될 테지만. 이제 배트맨의 눈은 바뀌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는 매일 다른 것을 하며 자극을 찾는 것이 아닌. 똑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힘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으로.
이 초보 공무원이 고담에서 보낼 영원한 시간들 중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디 평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야근도 안 하면 더 좋고.
마치면서
호불호가 매우 강할 영화다. 액션이나 최첨단 무기, 혹은 브루스 웨인의 어마 무시한 부(Richness)를 기대한다면 한없이 지루할 것이고. 지울 수 없는 이름인 히스 레저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실망할 영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을 지우고 새로운 배트맨에 집중한 것이 좋았다. 배트맨의 탄생이나 고담 시 7급 공무원 정도의 짬을 가진 타이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겨우 병아리 티를 벗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의욕은 많지만 처음 접해보는 문제들에 부딪쳐 시무룩해지기 쉬운 딱 3년 차의 모습이라서. 그냥 응원해 주고 싶었다.
최근 영화가 길어지는 추세에 대한 큰 반감이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같은 쓸데없는 잡생각 없이 그저 이 야근만 하는 공무원의 고군분투 일처리를 보다 영화관을 나왔다. 그가 아주 조금은 행복.. 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진 게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좋아한 장면]
중간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과 천장을 박살 내면서 떨어져내리는 장면은 뭐 말할 것도 없지만. 글에도 쓴 홍수 난 광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그냥 자꾸 눈물이 났음. 기꺼이 고난으로 뛰어드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재탄생을 잘 살린 것 같았음.
참고 1
007시리즈 말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에 대해 쓰다가 저장해둔 글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금 갖고 옴. 개인적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에 로버트 패틴슨이 배트맨을 한다고 했을 때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던 사람이었으나. 이 영화 보고 나서 영원히 입다물기로 함.
참고 2
내 MBTI도 제대로 못 외우는 주제에 리뷰 쓰겠다고 찾아봄. 실제로 배트맨의 MBTI는 INTJ이며. 나는 INFJ임. 문제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아직도 잘 모름.
[이 글의 TMI]
1. 영화는 (너무 무거워서) 내 취향이지만. 리뷰는 좀 가볍게 쓰고 싶었음.
2. 어두운 영화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내 OTT 서비스 보고 싶어요 한 목록 보니까 이건 뭐. 아포칼립스던데.
3. 샐러드 먹고 16시간 금식은 내가 봐도 너무 힘들다. 근데 그걸 두 달째 하고 있지.
#더배트맨 #맷리브스 #로버트패틴슨 #앤디서키스 #조크라비츠 #폴다노 #DC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인플루언서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내일은파란안경
-
-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춘희는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외가 식구가 사는 외삼촌 집 다락방에 얹혀살고 있다. 외삼촌네 가족이 그 집을 떠나고 한참 지난 후까지도 그 집의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삼촌 내외, 사촌이 생색내듯 베푸는 선의에 기 한 번 제대로 못펴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간 춘희는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과거의 춘희가 현재의 춘희를 신경쓰이게 한다. 과거의 춘희는 왜 계속 등장해 현재의 춘희를 흠칫거리게 하는 걸까?
1.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망각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춘희에게는 다락방의 존재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
춘희는 자신의 엄마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그 집은 삼촌 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엄마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가족들은 춘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식구, 눈치를 봐야만 하는 아이로 몰아간다. 딸에게 집을 주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그 딸이 낳은 춘희는 이 가족이 사는 집에 지분을 행사할 자격은 없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들의 논리가 무엇이든 춘희는 상처를 받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에게 그 집을 잘 지키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다른 집으로 이사갔어도 춘희는 여전히 그 집의 객식구처럼 행동한다. 눈치주는 외삼촌네 가족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다락방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춘희의 영혼은 십 몇 년동안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표출되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방치되어 곪아 터질 뿐이다. 춘희도 그렇다. 외삼촌 내외에게서 짐짝 취급받던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춘희는 그저 애써 묻은 것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외면했던 상처는 잊혀진 것은 아니기에 춘희의 앞날에 꾸준히 걸림돌이 된다. 춘희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상처를 마주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정당한 사유없이 핍박하는 외삼촌 가족들에게 한 번은 소리쳤어야 했다.
2. 다한증, 춘희의 지문
춘희는 자신의 다한증을 컴플렉스 쯤으로 여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손의 땀을 더러워하던 선생님의 반응, 그리고 땀 때문에 못마땅해하던 외삼촌의 짜증 섞인 표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겨버리는 이 땀 때문에 더 구박받는 것 같아 춘희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살거라면, 난 왜 태어난 걸까, 내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객식구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걸까 싶은 자기비하적 생각이 춘희의 머리를 지배한다. 그 자기비하는 춘희의 삶의 디폴트값이 되어 춘희는 그 어디에도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장점인 손재주를 특화시킬 생각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없앨 생각부터 한다.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단점을 가리기 급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손재주로 마늘 까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재능을 펼칠 만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마늘 까는 이유도 사실 다한증 수술 받고 싶어서였기에
춘희의 이런 단점 지양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날렸던 그들만의 상식이 불러온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춘희가 객식구라는 것은 당연한 취급이었을지 몰라도 춘희는 평생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다락방에 영혼을 가둬버린다.
3. 상처받았다는 사람들에 관한 이중적 시선
영화를 보면서 가해와 피해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춘희인지 외삼촌네 가족인지. 나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었는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했다. 외삼촌네 가족의 매정함이 그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춘희의 순함은 그들이 춘희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허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를 두고 보여준 위선은 우리네의 삶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위선이었다. 위선은 종이 단면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팍팍했던 그들에게 춘희의 존재는 짐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매정함에 박수쳐주고 싶진 않지만 무자비하게 욕만 하기에 나도 저런 위선적인 모습이 있을 것 같아 찔린다.
상처란 주관적이라서 시각을 바꾸면 극복할 수 있다. 춘희는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 자신의 단점인 다한증에 집착하는 바람에 자신의 손재주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촌에 매정한 말에 매몰되어 숙모의 츤데레를 주목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릴 시간에 자기자신부터 사랑하자. 남을 위해 날 가꾸지 말고, 내가 즐겁고자 나를 가꾸자. 춘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총평
영화가 자칫 루즈하고 뻔할 수 있는데 춘희의 썸남이 있어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춘희의 썸남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귀엽다. 오글거리는 건 관객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조금만 참으시라. 광명과도 같이 개그가 찾아올 것이다.
※해당 영화 시사회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
- 쿨하고 바르게 산화하는 혁명가의 찬란한 해방이라는 착각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취한 한 여성이 클럽 의자에 쓰러질 듯 앉아 있다. 제대로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 한 남성이 그에게 다가간다. 택시를 부를 휴대전화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여성에게 착한 사람이라 자부한 그는 집에 가는 길에 그를 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여성은 차에 탔고, 남성은 자연스레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저항할 힘도 없어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여성을 침대에 눕혀 놓고 일을 벌이려는 순간,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었던 여성은 그를 똑똑히 밑에서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카산드라 토마스(캐리 멀리건)는 대학 시절 절친 니나 피셔의 성폭행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 파악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사건은 흐지부지 묻히고 만다. 그의 이름처럼 ‘카산드라’는 현명한 여성의 예언을 믿어주지 않아 이후 닥친 불행을 막을 수 없는 카산드라 증후군에 빠진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명백한 진실을 간직한 채 니나와 캐시는 자퇴를 했고, 니나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의대에 입학할 만큼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두 사람의 삶은 폐허가 되었고, 캐시는 니나의 안타까운 삶을 대신 갚아 줄 비밀스러운 일을 꾸민다. 그는 동네 카페에서 일하며 밤이면 취한 척 연극을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시도할 때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들을 놀라게 한다. 이는 니나의 강간 피해를 곁에서 지켜본 친구로서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분노가 폭발한 계기는 가해자인 알렉산더 먼로(크리스 로웰)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나서다. 피해자는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가해자는 유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꾸리기까지 한다는 전언에 캐시는 7년 전 자신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를 결심한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은 7년 전 절친의 성폭행 사건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주인공 캐시의 복수극이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90년대 팝송의 재해석과 힙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영화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고, 이는 영화가 위태롭게 유지한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캐시의 복수의 방법론에 드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반추하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 관객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되며, 굳이 내보이지 않아야 할 영화의 교묘한 속임수를 발견한다.
정기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클럽에서 늦은 밤 만취 상태를 연기하는 캐시는 언제나 다음 날 아침 가족과의 식사에 참여한다. 불특정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기에 필연적인 위험을 느낄 법도 한 캐시는 그에 개의치 않고 늘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물론 영화 중반을 지나면 절친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분노를 동력 삼아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채우고 싶은 그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캐시의 협박에 나가떨어지는 남성들에 비해 캐시의 ‘복수’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유부남이나 명망 있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영화 속 ‘사냥감’은 하나같이 유약하고 머뭇거리며 한심하며, 지질하고도 ‘무해하다’. 접근한 남자들은 언제나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속인 것을 알아차린 후에는 그에게 분노의 욕설 정도를 날리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그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남성의 아둔함을 강조하지만, 노트 한 권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많은 남자를 겁박한 그가 물리적 협박과 위해나 남성 커뮤니티의 가십거리 혹은 ‘복수’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게 오직 그 이유일 수는 없어 보인다. 아무리 캐시의 서늘한 아우라에 기가 눌린 남성들만 만났다 하더라도 수많은 남성과의 위험한 만남을 이어간다는 설정은 그에게 보호막이 드리워져 있지 않은 이상 우연을 넘어선 작위적 연출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영화 전체에서 피해자의 복수를 이끄는 사회적 여성성의 전형이라면 관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 입만 산 남성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복수 활극으로 영화가 전개되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캐시의 복수는 당한 대로 갚아주는, 폭력의 피로 흥건한 과거 마초적인 복수극의 패턴과 다르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 가해자에게 죄책감과 두려움을 심어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은 전형성을 탈피한다.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장면을 삽입하여 불쾌감을 주는 비슷한 영화들에 비해 이 여성 복수극은 자극적인 앙갚음의 과정이 아닌 대사를 통해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켜 가해자를 고통받게 한다. 가해자의 변명은 한결같다. 촉망받는 한 청년의 삶을 지켜줘야 했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에 입증할 증거는 부족했고, 술을 먹고 같이 놀러 간 피해자의 탓이 컸다는 말의 향연은 이들의 한심한 작태를 정면으로 비춘다. 대상화된 굴레를 퍼뜨려 입을 막고 주홍글씨를 남겼던 가해자에게 행하는 복수가 아쉬울 수 있겠으나 여성의 시각에서 이룩한 이 성과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는 쪽보다는 훨씬 이성적이며 윤리적인 방법으로도 보인다.
응징은 세련되고 복수는 쿨한 캐시의 방법론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내내 그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는 무해한 남성들을 응징하며 때로는 아파하고 혼란을 느끼는 현실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친구의 죽음 이후 자신을 가둔 죄책감과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성장일기로 끝나는가 싶던 영화는 후반부에서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다. 그리고 앞서 영화적 설정으로 넘어갈 수 있던 모든 것들은 한 방에 무너진다. 강간의 장본인인 알 먼로의 총각파티에 스트리퍼로 찾아간 캐시는 그에게 마지막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캐시는 니나를 죽였던 바로 그에게 똑같이 죽임을 당한다. 그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상을 포기하며 캐시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캐시의 죽음으로 이 복수의 끝은 혼돈으로 가득 찼다. 클럽에서의 남자 사냥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행했던 가해자를 향한 복수의 과정에서도 불안하지만 꽤 깔끔하게 해결하던 주인공은 이 계산된 복수의 방법론을 불쾌하고 황망하게 마무리한다. 3분이 넘는 롱테이크 신으로 강간 가해자로부터 죽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관객에게 들이미는 이 잔인한 마무리는 그간 영화가 지켜 온 톤과 매너를 붕괴하고 과거 남성들이 자행한 폭력을 대물림한다.
캐시는 자기 죽음을 예상한 듯 속죄한 변호사에게 모든 증거를 남겼고, 알 먼로의 결혼식 날 마지막 복수가 이뤄진다. 그 과정을 목격한 방관자인 라이언에게 예약 문자로 ‘쿨하게’ 알리는 엔딩은 기괴하고 잔혹하다. 완벽히 통쾌한 복수는 없다는 사실은 10여 년 전 이금자의 처절한 속죄를 지켜보며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프라미싱 영 우먼〉이 죽음으로 모든 복수가 완성되는 결말을 의도했다면, 이제 관객은 캐시가 영화 전반에서 자초한 과거의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가 아닌, ‘왜’ 살아남았는가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감독은 영화의 절정, 그러니까 깔끔하고 힙한 복수의 자기만족적인 완성을 위해 아껴놓고 캐시를 살려놓은 것이다. 영화는 피해자의 입장과 여성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차치한 채, 피해자의 복수를 위해 제 몸을 바치는 소꿉친구라는 진부한 설정을 두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파스텔 톤 색상과 펑키한 분위기의 영화적 오락성을 강조하는 패착을 저지른다. 우정을 위해 열렬히 복수하고 산화하는 삶을 애초에 블랙코미디로 상상했다면 피상적인 인식의 발로이자 얕은 위로에 불과하다. 이는 여성 혐오를 대처하는 캐시의 대사만큼이나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캐시라는 캐릭터는 하나의 인물로 기능한다기보다는 감독이 원했던 극의 주제의식을 의인화한 전형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의 비극과 복수를 연출하는 에머랄드 펜넬 감독의 스타일은 그가 참여했던 전작 드라마처럼 펑키하고 화려하다. 그 안에서 캐시의 장렬한 희생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니나에서 캐시로, 다시 점장 게일에게 전달되는 목걸이는 죽음으로 대물림하는 고통의 악순환이다. 고통받는 이들은 잊지 않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시의 이름은 다르게 들린다. 여성의 이야기가 부정되고 사회로부터 침묵당하는 모습이 트로이 전쟁을 예측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못한 카산드라의 비극과 겹쳐 보였던 잠깐의 순간은 사라진다. 대신 윤리적이고 세련된 여성영화라는 외면에 이용당한 희생양인 캐시라는 인물이 '기꺼이' 적진으로 뛰어드는 트로이 목마로 전용되는 장면만 남을 뿐이다.
-
- 결국에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친구의 우정
결국에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친구의 우정
영화 <해피엔드> 리뷰
감독] 네오 소라
출연]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도, 히야시 유타, 시나 펭, 아라지, 아니로 키라라, 나카지마 아유무
시놉시스] 점멸등이 일렁이는 근미래의 도쿄. 음악에 빠진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아리방을 찾아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교장 나가이의 고급 차량에 발칙한 장난을 치고, 분노한 학교는 AI 감시 체제를 도입한다. 그날 이후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스포일러 유의#
기술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변형된다
영화 해피엔드는 시놉시스에도 나와있듯이 일본 도쿄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기술이 꽤나 발전해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으면 이 사람의 신원이 바로 파악이 되고, 학교에서 AI카메라를 통해 선생님들이 감시를 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벌점이 메겨진다. 하지만 그 기술의 발전 방향은 한 나라의 문화와 맞물려서 변형된다. 그저 사람들의 얼굴만으로 신원이 확인된다는 그 기술은 이 사람의 출신과 뿌리까지 보여주면서 차별의 도구로 이용된다. 주인공 유타는 일본인이지만 코우는 재일동포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걸리면 신분증을 내놓으라며 검문이 시작된다. 코우는 신분증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며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경찰들은 그럼 집에가서 그 신분을 확인하자며 집으로 데리고 간다. 더불어 같은 학교 수업이더라도 자위대 특강은 일본인이 아니면 들을 필요가 없다며 교실에서 내쫓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AI카메라는 수업시간에 외부로 나왔다는 이유로 벌점을 메기지만 이에 대해 학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기술은 결국 이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변형되어 사회 속에서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 집단의 대다수가 편리한 방향으로 기술은 자리잡기에 소외되는 계층은 더더욱 이 기술에서 더욱 도태되어 극단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영화 해피엔드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에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방향
영화 속 유타와 코우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오며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코우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마냥 음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유타에게서 벽을 느끼기 시작한다. 유타는 어느정도 경제적 지위를 갖춘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부모는 각자의 일로 바빠 외롭게 혼자자랐다. 그렇기에 친구들에게 더욱 애정을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그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재외국민인 코우는 그런 유타에게 언제까지 음악을 할거나며 이렇게 계속 살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라고 강하게 쏘아붙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코우는 재외국민으로서 일본의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에 잡혀들어오기도 한다. 자신이 사회에 나가야 하는 그 시점에 점점 현실에 눈을 뜨면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과 그 차별의 당사자가 아닌 친구 유타 사이에서 코우는 계속해서 갈등한다. 결국 유타는 그런 코우를 위해서 코우와 함께 교장선생님의 차에 장난을 쳤지만 혼자서 다 한 일이라며 혼자서 퇴학을 당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유타는 자신이 좋아하는 레코드가게에서 계속에서 일을 해 나간다. 반면 코우는 음악이 아닌 대학은 선택하며 장학금을 받으면서 집안의 자랑이 되지만 막상 그리 행복해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졸업식이 끝나고 유타와 코우는 육고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끝이난다. 유타와 코우는 오랜시간 함께 친구로서 지냈지만 현실과 자신에게 놓인 환경 속에서 결국 각자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찾아간다. 차갑긴 하지만 그것이 각자의 인생을 위한 해피엔드가 아닐까 싶다. 한 때 걱정 없이 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친구가 존재했다는 그 기억이 상처받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영화 해피엔드>
-개봉 : 2025. 4. 30. (수)
-한줄평 : 일본 특유의 잔잔함 속에서 미래의 기술과 차별을 그리다
-
-
- [5.18 광주 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와 화려한휴가/5.18 영화이야기/ 5.18 40주년
#화려한휴가#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
본 영상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
- 영화 <경아의 딸> 메인 예고편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는데..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
- 영화 <침묵의 숲> 리뷰 예고편
청각 장애가 있는 소년 ‘창청’은
특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푼 ‘창청’은
‘베이베이’라는 소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통학 버스 뒷자리에서 ‘베이베이’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창청’은 ‘베이베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