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4-18 15:22:08
거북이처럼 느린형사, 토끼처럼 빠른 도둑 | 영화 거북이달린다
추억의 영화
오늘은 정말 오래된 작품을 가지고 왔는데.
혹시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아시나요?!
지금은 OCN 어디선가 느지막하게 할 것 같은 영화인데,
이 영화 참 매력적이고 순박하며 재미있는 작품이라 가지고 왔어요~
이 작품을 모르신다고요!? 괜찮아요~
나중에 티비 돌리다가 푸릇푸릇 한 정경호와 김윤석이 나온다?!
그럼 스톱하고 슬그머니 한번 보세요! 재미있거든요~
다시 보는 영화 거북이 달린다!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액션, 어드벤처, 수사
감독 / 각본 : 이연우
출연진 : 김윤석, 정경호
개봉일 : 2009년 06월 11일
평점 : 8.43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쿠팡, 왓챠
기획 의도
"또 너냐? 다음엔 죽는다!"
"지발 잡히지 마라! 너는 내가 잡을 거야!"
대한민국을 농락한 신출귀몰 탈주범이 예산에 나타났다.
하는 일이라곤 지역 발전을 위해 소싸움 대회 준비뿐인 시골마을 예산의 형사 조필성.
다섯 살 연상의 마누라 앞에서는 기 한번 못 펴는 한심한 남편이지만,
딸내미의 학교 일일교사 1순위로 꼽힐 정도로 마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형사다.
소싸움 대회를 준비하던 필성은 강력한 우승후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훔쳐 나온 마누라의 쌈짓돈으로 결국 큰 돈을 따게 된다.
난생처음 마누라 앞에서 큰소리 칠 생각에 목이 메이는 조필성.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갑자기 나타난 어린 놈에게 순식간에 돈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놈은 바로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탈주범 송기태.
여담
드라마 거북이 달린다 작품은 지금은 흔하디 흔한 차량과 전투 액션신이 하나도 없는
순박 그 자체의 시골에서 인심을 더 넣은 유머를 통하여 내 돈을 찾고야 말겠다는
형사의 집념 하나로 범인을 잡는데 성공하는 순박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보는 묘미 중 하나는 김윤석과 정경호의 생생하고 순박하고 파릇파릇함이
절로 느껴지며 볼 수 있는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인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 결말을 살펴보자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골에서 순박함으로 똘똘 뭉친 형사 조필성(김윤석)은
악바리 같은 근성 하나로 탈옥수 송기태(정경호)를 잡는데 성공하며
돈도 찾고 행복도 찾고 명예도 찾으며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지금은 익숙한 액션과 총! 비행기 등이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느긋함과 정겨운 시골의 풍경 속에 악바리 경찰을 원한다면 영화 거북이 달린다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한줄평 : 집념의 형사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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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규정될 때
‘나’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규정될 때
<톰보이>에는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들어진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영화는 '로레'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로레는 차 위로 상반신을 내밀고 팔을 뻗어 바람을 느낀다. 영화의 초반부까지 영화가 로레의 성별에 대해서 관객에게 알려주는 단서는 없다. 관객은 그저 파란색 벽지를 좋아하고, 런닝티와 반바지를 좋아하는 짧은 머리의 아이와 마주할 뿐이다. 로레는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한다. 친구들은 그의 성별을 묻지 않을뿐더러 그의 외형과 이름을 통해 그가 남자라 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로레가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했지만, 자기 자신이 남자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로레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백히 말하자면 로레는 그들을 의도적으로 속인 것이 아니다. 로레는 단지 남자아이처럼 하고 다녔으며,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했을 뿐이다.
로레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로레는 단순히 남자아이들과 놀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리사의 말처럼 남자아이들은 여자라고 껴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길 바라는 마음에서 순간적으로 남자 이름을 말한 것일 뿐인데 일이 예상과 다르게 커졌는지도 모른다. 혹은 로레는 정말 남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생 '잔'과 목욕한 후, 로레는 그만 씻고 나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욕조에 앉아 잠시 동안 나가기를 주저한다. 욕조에서 일어나서 몸을 타올로 닦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핀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등과 팔의 근육을 살피고 침을 뱉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웃통을 까고 침을 뱉으며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똑같이 행동하기도 하고, 자신의 수영복을 잘라 남자 팬티 수영복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 로레가 남자아이처럼 보이도록 행동한 이유는 뭘까. 남자아이들과 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남자가 되고 싶어서였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점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한다. 로레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이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그런 로레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에 더 관심을 보이며 그 본질에 대해 묻는 것처럼 보인다. 로레는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해 남자아이가 된다. 그가 자신의 성별이 무엇이라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외형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된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그를 남성이라 여겼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 영화를 카메라의 초점이 두드러지게 찍었다. 카메라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출 때 배경은 흐리게 처리되며, 카메라의 초점 이동이 분명하게 드러나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을 명확히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은 더욱 인물과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감독은 이런 촬영 방식과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모범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지양했다. 그래서 주인공 로레를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다소 서툴다. 로레의 엄마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는 아마 로레에게 이전보다 덜 신경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이를 때린 '미카엘'을 찾기 위해 한 아이와 그 엄마가 집으로 찾아온 것으로 모자라,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동네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아이가 남자아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엄마는 순간적으로 로레의 뺨을 때리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로레의 엄마는 로레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으라 건네고, 로레가 여자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로레를 억지로 끌고 가던 중에 멈춰 로레에게 이렇게 말한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본인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로레 엄마의 결정은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로레는 로레가 때렸던 아이의 집을 들러 로레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린 후, 곧장 리사의 집으로 향한다. 리사는 모든 사실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로레는 리사의 집에서 뛰쳐나가 숲을 향해 달린다. 숲은 리사와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레는 입고 있던 파란 원피스를 벗어던진다. 로레가 나무 위에 올려둔 파란 원피스가 카메라에 비춰지고, 로레는 그 자리를 떠난다. 로레는 친구들에게로 간다. 자신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겁이 나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으며 접근한다. 친구들은 로레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로레를 쫓아가 붙잡는다. 남자아이들은 로레가 여자인지 사실 유무를 확인하려 하고, 리사가 그들을 제지하자 여자인 리사가 직접 그것을 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 로레는 그 자리를 뛰쳐나간다. 그리고 리사는 로레를 찾아온다. 창밖을 보고 있는 로레의 눈에 나무 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리사가 보인다. 둘은 다시금 서로를 마주한다. 마치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같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자못 다르다. "넌 이름이 뭐야?"라는 리사의 물음에 로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한다. "로레"라고. 그러고는 살짝 웃는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로레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 스스로가 규정한다.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이들의 관계가 바로 그곳에서부터 비로소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이들이 함께 춤출 때 들렸던 곡 "널 사랑해, 언제나(I Love You Always)"가 들려온다. 로레와 리사는 춤을 춘 후 서로를 꼭 붙잡던 두 손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정을 계속 키워가지 않을까.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로레는 더이상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로레를 사랑해줄 리사와 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있기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영시코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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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하지 않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기적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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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랬다. 스무살 남짓하던 시절, 나도 체리필터의 'Happy day'라는 노래처럼 내가 요절할 천재가 아닐까 의심했다. 이상, 랭보, 모짜르트, 에곤 쉴레처럼. 어쩌면 나도,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나도 사실 세상이 몰라주는 천재일지 모르는 일 아니겠나.
하지만 이제 요절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젊지도 않고, 나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기가 막히게 똑똑하지도,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라는 걸 안다. 내가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참 쉽게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듣고 자란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반드시 어른이 되면 무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남들 만큼 해서는 남들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지겨운 레토릭이 아직까지도 반복되므로 우리 삶의 목표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내가 실망스럽다가, 때로는 남들보다 못한 내가 서러워 남들만큼이라도 살았으면 싶다.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럴까 싶을 때, 우리가 찾는 건 바로 기적.
나 빼고 다 특별한 세상
엔칸토는 이민자 가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 평화로운 마을의 중심에는 마드리갈 가족이 있는데, 마드리갈 가족은 모두 한 가지씩 특별한 마법을 쓸 줄 안다. 딱 한 사람, 미라벨만 빼고.
미라벨은 힘이 세서 무엇이든 들 수 있는 루이자, 꽃을 피워내는 이사벨라, 무엇이든 들을 수 있는 돌로레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카밀로,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 페파 이모, 음식으로 모든 병을 낫게 해주는 엄마, 그리고 마법은 못 쓰지만 마드리갈 가족과 결혼한 친인척들과 함께 산다. 마법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문이 열리고 방이 생기는데, 왠일인지 미라벨에게는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
미라벨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평화로운 이 가족에게 새로 마법을 받게 될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라벨과 아기방에서 같이 지내던 안토니오다. 안토니오가 문을 열자 넓고 넓은 자연이 펼쳐진다.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생긴 것. 미라벨은 침울해진다.
그때 미라벨은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집(까시타)이 갈라지며 흔들린다.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만, 할머니 알마는 미라벨이 마법을 받은 안토니오를 시샘한다고만 생각한다. 그렇게 미라벨은 모두가 특별한 세상에서 소외된다.
배척의 기억
까시타가 흔들린 뒤 미라벨은 루이자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캐치한다. 사실 루이자는 사실 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할까봐, 실수할까봐 언제나 불안하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자의 능력은 은유적이며 수많은 K-장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사벨라도 마찬가지이다. 예쁜 꽃을 피워내며 뭇 마을 남성들의 이상형, '완벽한 여성' 이미지에 갇혀 살아야 하는 이사벨라도 루이자와 마찬가지로 '할머니가 실망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원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까지 해야 할 판이다.
알마가 처음 엔칸토에 들어와 살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알마와 남편 페드로는 전쟁 때문에 세쌍둥이 아기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선다. 어쩌면 첫 번째 배척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은 이민자이고, 본토에서 쫓겨나는 신세이니 이미 수차례 배척받은 역사가 있을 것이다. 적군에게 쫓기는 이들은 가시적이고 확실한 배척을 경험한다.
남편을 잃고 오열하는 알마에게 마법의 힘이 생긴 것은 힘이 있는 자를 쉽게 쫓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터. 알마는 이 힘을 마을(이민자들이 모여 사는)에 써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 마음도 처음에는 선의였으나 점차 강박적으로 바뀐다. 안토니오가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얻게 되자 '이 능력을 어떻게 쓸지'부터 생각하니 말이다.
마을의 운명이 마드리갈 가족의 손에 달렸다는 것은 너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배척받음'이라는 트라우마는 가족과 마을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가족을 위하여'라는 알마의 집착은 능력을 가진 자식들에게 대대손손 내려온다.
거시적으로는 국가적인 배척에 대한 공포이지만 미시적으로는 가족 내 배척에 대한 공포이다. 힘들어도 마을의 궂은 일을 다 해내는 루이자, 언제나 웃으며 꽃을 피워주어야 하는 이사벨라, 맑은 날을 유지하기 위해 기분을 통제해야 하는 페파 등 모두가 그렇다. 마법 능력이 없는 미라벨은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배척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기 딱 좋은, 약간 정신이 나간 모양새의 브루노.
브루노에 대해 말하면 안 돼
브루노는 마드리갈 가족의 유일한 우환이다.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는데도 마드리갈 가족은 쾌활해 보인다. 비결은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것. 프로이트 식으로 보면 '억압'한다. 아예 모르는 척 해버리면 편하다.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그렇게 브루노는 가족 내에서 잊힌(이라고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미래를 볼 줄 아는 브루노의 능력은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신내림 같다. 신내림이 과학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병을 앓을 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기도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회통념적으로는 약간 정신 나간 사람 같다는 의미이다. 엔칸토의 배경이 남미의 어느 지역이니 카톨릭 문화에서는 악마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미친 사람이 있는 가정은 배척당하기 쉽다.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은 가족 내에서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장애인 시위의 정당성이 도마에 올랐다. 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느냐는 비난이 난무했다. 그동안 장애인 집회는 꾸준히 있어 왔다. 그렇게들 원하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격한 시위는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우리나라는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브루노는 자발적으로 사라진다. 그 누구도 브루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거의 볼드모트 같은 존재로, 이름조차 언급할 수 없다.
마법은 못 써도 궁금한 건 많은 미라벨은 가족들 몰래 브루노의 방에 간다. 수많은 계단과 무시무시한 동굴을 헤쳐 나간 뒤 발견한 환영 속에서는 무너져내리는 까시타와 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브루노 역시 까시따가 무너지는 환영을 봤다. 미라벨의 말이 묵살당하듯 그 누구도 브루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정신 나간 형제이고 미라벨은 재능 없는 자식이다.
우리가 찾았던 기적
미라벨은 까시타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혼자 동분서주한다. 완전히 혼자는 아니고, 브루노와 함께. 공동체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두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이 마법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질수록, 자아를 깨달아갈수록 까시타는 위태로워진다.
결국 브루노의 예언은 이루어진다. 까시타는 무너지고, 가족들은 마법의 힘을 잃는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 여긴 미라벨은 집을 나간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못나고 부족한, 가족들에게 피해만 입히는 자신 때문에.
마드리갈 가족은 엔칸토를 이끌어갔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마법이 그들의 모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동안 마드리갈 가족의 신세를 져 왔던 엔칸토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합심하여 마드리갈 가족의 집을 짓는다. 루이자의 괴력을 쓰지도, 이사벨라가 예쁜 꽃으로 집을 꾸미지도 않고 그저 서로의 힘으로. 더 이상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 집이 다 지어지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문이 열린다. 문을 연 사람은 바로 미라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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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많은 실패들을 해 왔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때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실패 그 자체이기 보다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싶은,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눈 앞에서 문이 닫히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거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가 기다렸던 기적이 무엇이었을까. 로또 당첨이었나.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지금 무사히 살아있고 내일도 기적적으로 살아있어 밥을 먹고 일을 한다는 사실이 기적인가 싶다. 순순히 열려 주지 않았던 문을 미라벨이 스스로 여는 것이 기적이고, 특별한 능력이 있든 없든 환대하는 마음이 기적을 만든다.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그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아서, 차라리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모든 보통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다.
관람 포인트
스토리나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OST가 당신의 마음을 훔칠 것이다. 루이자가 힙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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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의 그라운드 룰
요즘 복싱의 길을 걷고 있다. 엉겁결에 시작했는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신나게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아주 뜻밖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사람 얼굴을 때릴 수가 없는 거다.
처음엔 링에 올라가서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하다가 “사람 얼굴을 어떻게 때려요…”로 바뀌었으니 나름대로 성장했다 할 수 있지만, 신나게 날리던 주먹이 사람 얼굴 근처에 가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멈추곤 했다. 복싱은 격투에 속한다는, 근본적인 지점에 걸려버린 내가 복싱을 계속할 수 있을까? 관장님께 “사람 얼굴을 못 때리는데 어떡하죠?” 여쭤보았다. 그럴 수 있다는, 하다 보면 나아진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문득 한 마디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복싱은 스포츠니까요. 정한 룰 안에서 하는 거고… 기권이라든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하면 돼요.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해요.”
세상에. 나는 복싱이 격투인 것만 모르는 게 아니라 복싱이 스포츠인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길 가다 괴한을 만나면 뚝배기를 깨서라도 이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정정당당한 룰이 있는 스포츠임을 잊고 있었던 거다. 거한 깨달음으로 그 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그라운드 룰’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거, 그건 뭘까.
영화 <킹메이커>를 보고 돌아오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라운드 룰’은 무엇일까. 현대사의 실존 인물들을 모티프로 한 영화이고 정치인과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아무리 상상력을 얹은 픽션이라 한들 현실 재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킹메이커>는 실화를 모티프로 활용하면서도 실화에 갇히지 않는 영리한 길을 갔다. 동시에 이는 ‘정치’ 영화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영화다. 사람의 뚝심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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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동의 시작점부터 궁극적 지향점까지를 한 수직선 상에 놓는다면, ‘선거의 승리’는 그 어디 쯤에 도시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제각각 답은 다르겠지만, 그 답을 어디쯤 내려놓는 지가 정치인 인생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분명 끼칠 것이다. 영화 <킹메이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인물을 내세운다. 이상을 품고 험난한 길도 우직하게 나아가는 정치인 ‘김운범’과, 정치판에 발을 들일 때에는 발을 진흙탕에 담글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꾀를 가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이야기다. 여당의 눈엣가시였던 야당 국회의원 김운범은 때로는 서릿발 같이, 때로는 인간미 있게 연설을 하며 자신의 이상을 그려 나가고, 서창대는 상식을 비집고 허를 찌르는 전략을 세워 그 뒤를 보좌한다. 내 편일 때는 든든하지만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울 만큼, 정도(正道)가 아닌 길이라도 가리지 않겠다는 서창대의 전략은 자극적인 만큼 잘 먹혀 들었다.
그러나 정도를 우직하게 걷는 사람과 길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나란히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동경하는 지점이 같기에 어딘가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두 사람은, 동경하는 지점까지 가는 다른 길을 생각하기에 다른 어딘가에서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다 동의할 수 없지만 서로를 영 저버릴 수도 없는 이들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철저한 이상주의자와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정 반대의 길을 갈 것 같지만, 현실주의자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주의자는 현실 감각을 필요로 한다. 거기서 내리는 이들의 선택이 다소 드라이하게 그려졌다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서로를 바라보았다면 이 영화도 그저 그런 정치 영화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이 얽히는데 어떻게 아무 감정이 엮이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복잡한 마음, 자기 자신의 선 자리와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마음들은, 관객이 영화로 들어가게 문을 열어준다.
일단 이 영화는 재미있다. 정치와 선거라는 소재, 짧지 않은 러닝타임… 얼핏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관객을 끌고 가면서도 딱 알맞은 정도로 친절하다. 정치를 소재로 쓴다고 해서 복잡한 대사로 사람 마음 어지럽게 하지 않고,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화면이 전환되는 잠깐조차 다채롭게 눈길을 끈다. 전작 <불한당>처럼 <킹메이커> 또한 사람을 홀리는 미장센의 힘을 한껏 발휘했다. 보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김운범과 서창대를 상징하는, (그리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것도 상징할 수 있는)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도 친절하고 흥미롭다.
오래 지나지 않은 현대사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고 있음에도, 그 실존 인물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놀랍다. <불한당>의 감옥은 실사 고증과 무관한 판타지의 공간이었는데, (한국 영화보다는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감옥이었는데 그 점이 좋았다.) <킹메이커>는 그보다는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현실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데 성공한 듯싶다.
실화를 모티프로 가지고 왔고, 소품 하나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시대를 고증하고자 했는지 눈에 보임에도, 정작 실존 인물들의 존재감은 덜어낸 점이 좋았다. 70년대 정치사에서 아는 이름이 단 하나도 없는 관객이라 해도 영화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알고 보면 더 재미있긴 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형형한 존재감이 한 몫 했다. 모든 배우들이 동일한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다. 모티프가 된 인물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자리에 서 있고, 캐릭터가 취하는 스탠스는 대사로도 드러나지만 많은 순간 눈빛에서 발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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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싱 얘기를 좀 얹어 보자면, 나는 아직도 사람 얼굴을 못 때리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몸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하고 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최선”이라는 말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각자의 최선은 다른 거니까. 그럴 때는 그라운드 룰을 보아야 한다. 폭력은 나쁜 거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는 타격이 필요하므로 사람 얼굴을 때리는 일도 필요하다.
<킹메이커> 속 인물들도 저마다의 최선을 향해 달린다. 그들이 사는 정치 판은, 그라운드 룰조차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곳이니까. 다만 거기서 명확한 건 하나다. 뚝심. 명암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명암의 경계에서, 결국 피어오르는 건 각자의 뚝심이다. <킹메이커>는 그 뚝심 끝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말을 약탈하지 않고 정치는 가능한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그 어떤 것이어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목적을 공유하지만 수단을 공유하지 못하는 두 인간은 어떻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가? 그렇게 손잡고 걸은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영화 <킹메이커>는 사람의 마음에 이런 질문들을 풀어놓는,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생긴 물음표였다.
? 영화 킹메이커 메인 예고편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LWMUUYk5MfE&feature=youtu.be*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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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반쪽의 이야기>, 닫힌 방을 연 멍청이들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넷플릭스보다 왓챠를 더 많이 보고 있다. 간이 콩알만 한 탓에 제목은 알면서도 차마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수두룩하다.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호기심이 쫄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게 <반쪽의 이야기>. 플라톤의 향연을 인용하면서 시작된 영화에서, 약간은 낮고 덤덤하게 나오는 주인공 엘리의 목소리가 좋았다. 다른 톤의 목소리였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와 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큰 틀에서는 익히 봤던 전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한 편지를 대필해 주는 것도, 마음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것도, 그러다 이상하게 정드는 것도. 아,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는 건 반전이 아니다. 처음부터 애스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엘리의 목소리처럼 묘하게 다른 이야기가 있다. 목소리만큼이나 덤덤하고 시니컬한 엘리가 과제 대행 '거래'를 하는 점. 분량마다 금액도 정해져 있고, 과제 성적도 꽤 좋게 받을 수 있다. 돈독 올랐다고 하면 서럽다. 용돈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 전기 요금 등 생활비를 벌고 있다. 엘리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과제 대행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동급생들. 대부분은 무관심하고, 일부는 기차소리와 엘리 추라는 이름을 섞어 '처기처기 추추'라면서 기차소리로 놀려댄다. 플라톤의 사랑이란 주제로 대행 과제를 포함해 총 6개 과제를 내고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선생님. 엔지니어링 박사학위 등 전문성을 갖추고도 영어실력이 부족해 커리어의 시작인 줄 알았던 스쿼헤이미쉬에 주저앉은 아버지. 유쾌하고 재밌는 성격이었을 것 같은 사진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 스쿼헤이미쉬 반은 갖고 있다는 지역 유지의 아들 트리그에게서 보이는 여유와 자신감, 트리그에게 열광하고 동경하는 수많은 학생들. 평생 이곳을 떠난 적 없는 사람들. 사람이 사는 곳엔 늘 문제와 상황이 난무하지만, 겉으로 평화로워 보인다고 해서 괜찮은 상태는 아니다.
누가 그랬나. 삼각형은 완전하고, 삼각관계도 완전하다. 엘리와 폴 모두 애스터를 좋아한다. 엘리는 교회를 가지도 않는데도 4년간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애스터 아버지가 목사인 교회에서 과제 대행으로 바쁜 엘리가 황금 같은 주말을 두고 반주를 한다면?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애스터 때문일 거라는데 손모가지도 걸 수 있다. 매주 만났을 텐데도 애스터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다. 우연히 마주쳐서 한 첫마디가 '난 엘리 추야' 하는 자기소개인 걸 보니 알만하다. 이름은 알지만 가까워지지 못했다. 엘리와 애스터 중 누구 하나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폴의 이름 뒤에서 편지로, 고스트 메신저로 애스터를 만나게 된 후로 엘리는 정말 이해받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둘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추상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것도, 제법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눈빛 교환만 의미심장
왜 엘리와 애스터는 진작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애스터가 학교의 "그 트리그가 좋아하는 예쁜 애"고, 엘리는 "과제 대행하는 중국애"라서? 트리그와 트리그 팬클럽에는 끌려다니면서 마음 맞는 아싸 친구와는 다닐 수가 없어서? 애스터를 좋아하지만 애스터는 엘리 같은 애는 모를 테니 멀리서 지켜보는 게 나아서? 학교에서의 이미지와 인간관계가 아니라면 종교 때문일까. 목사인 아버지가 엘리는 종교가 없어서 친하게 지냈다면 혹시 말리셨을까.
영화에서 나를 무너뜨린 대사는 이해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아냐(You know what it's like to finally meet someone in your age who gets you?)는 엘리의 말 때문이었다. 세상에 누군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내 또래고 내 근처에 있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그 순간만큼은 눈물 날 정도로 부러웠다.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은 늘 내게 모자라거나 비어 있는 것들이다. 대사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놀라울 정도였다. 어쩌면 평생 이해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그래도 엘리 너는 행복하면 됐다 싶다가도, 그 대상이 끝내 나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버려서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반쪽에 진심이었던 건 아니었나 싶게.
4년 만에 처음 대화인 건지
하지만 그런 엘리와 애스터 사이에도 장벽은 있다. 애스터가 "상황이 다르고, 내가 달랐다면.."이라고 말하는 그 이유 때문이다. 엘리가 폴인 척하고 애스터와 연락을 했던 건 애스터에겐 분명 당황스럽고 배신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도 별로 화가 안 나는 게, 폴과 엘리의 결이 너무나 달라서 짐작을 못했을 리 없는 정도다. 글로는 멋진 말을 던질 줄 알고 관심사도 똑같은 사람이, 만나면 긴장했다고 얼어붙어서 대화가 몇 단어 이어지지도 않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글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고, 말은 침묵이 반이지만 어딘가 든든한 느낌이었던 것도.
애스터에게 약간은 실망했다면 미술 전공을 선택한 것 이외에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엘리 말대로 상황이 다르고, 내가 다를 일은 없다. 엘리가 트리그의 프로포즈에 안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애스터는 못 이기는 척 트리그와 결혼했을 것이다. 엘리를 엘리라고 불러주지 않고, 농담이긴 하지만 heathen (이교도= 비종교인)이라고 불렀다. 엘리는 저 멀리 아이오와로 떠나갈 예정인데도. 다만 그녀가 보여준 대담한 선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천온천에 데려간 점. 그곳에서 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적극적이고, 자신도 얼마나 이해받는 기분이었는지 표현했다. 그렇게 이해받는 느낌을 주는 사이더라도, 완전히 이해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완전히 이해받는 건 완전한 반쪽을 찾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무너질 필요는 없다. 이해받았던 순간과 그때의 마음만 잘 간직하더라도, 그 순간을 되감아 보는 것만으로도 버틸 만하다. 엘리가 대학 가서 보자고 하지 않나. 이 둘 사이는 두고 볼 만하다.
요즘도 편지 쓴다
엘리는 폴에게 여러 번 놀라곤 한다. 고민이 많은 엘리에 비해 폴은 그 고민을 말도 안 되게 쉽게 풀어버린다. 말도 나눠보지 않은 애스터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선 엘리에겐 사랑에 빠져 본 적 없는 것 같다며 정곡을 찌른다. 엘리가 뒤통수에서 따갑게 듣던 '처기처기 추추' 놀리는 소리에 맞서 소리쳐 준다, 사랑하는 건 노력하는 게 아니냐는 명언도 남기고,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영화를 보면 폴이 점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하고 말 주변 없는 빙구라 생각하면 오산. 뭣도 모르고 짓는 미소도 약간 어설프게 뛰는 달리기 폼도 귀엽다. 이거 참 큰일이다. 귀여워 보이면 답이 없는데. 무엇보다 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스터랑 말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편지를 써보자. 누가 요즘 편지를 쓰냐고? 로맨틱하잖아. 말을 잘 못하니 엘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도 가고. 폴이 처음에 애스터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살펴보자. 애스터 너는 똑똑하고, 착하고, 예뻐. 그중 2개만 해당되어도 너를 좋아했을 거란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근데 정말 그럴까? 사실 저 조건이 맞추기 더 힘든 게 필요한 건 어지간히 다 들어있다. 실제로 호감을 갖는데 저보다 더 남다른 이유가 넘쳐날까? 단순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답일 수도 있다. 폴이 글 솜씨나 말솜씨가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이 얕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말은 잘 못해도 타이밍은 놓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애스터에게 타이밍 좋게 고백도 하고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할 건 다 한다. 애스터가 폴과 함께 있으면 안전한 느낌이 든다는 건, 그런 든든함일 것이다. 실패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게 할지를 고민하니까.
폴에게 유일하게 뜨악한 건 풋볼 경기에서 득점한 후에 엘리에게 키스를 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꼭 저러다가 정든다고. 누구 이어주려고 도와주다가 둘이 좋아진다고. 저번 주까지 폴이 애스터랑 사귀게 됐다고 들떠하면서 키스하던 사이인 걸 떠올리면 '저놈이!' 하고 등짝을 때리고 싶은 건 사실이다. 엘리가 키스를 받아들였어도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바로 뒤에 애스터가 나타나 버렸으니까. 조금만 잘못 나갔으면 장르가 치정물이 될 뻔한 순간. 폴을 지켜보다 보니 마음이 넘쳐서 키스로 확인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먼저 하려던 말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좀 궁금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의 묘미가 대화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폴이 애스터에게 했던 고백과 어떻게 달랐을까는 상상에 맡기게 되었다.
타코 소시지, 그 맛이 궁금하다
폴이 왜 엘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다. 엘리는 폴을 성장하게 해 준 사람이다. 엘리는 폴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저 세 가지 조건(똑똑하고, 착하고, 예뻐) 중 두 가지 이상 혹은 전부를 충족한다. 폴이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애스터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비록 시작은 편지 한 통에 50달러인 비즈니스였지만, 엘리가 각종 분야 선생님처럼 트레이닝해 주는 걸 보면 열정 페이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 터. 타코 소시지를 응원하고 유명해질 수 있도록 음식 비평가에게 몰래 편지도 보내주었다. 맛있는 거 더하기 맛있는 거는 그냥 맛있는 거라며 영화 내내 밀어붙이던 타코 소시지. 그쯤 되니까 한 번 먹어보고 싶더라.
대화가 핑퐁 같다고 핑퐁 치면서 대화한다
그뿐인가. 엘리는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알려주고, 포기하고 싶거나 멍청하다고 느껴질 때 진심으로 응원했다. 15년 만에 풋볼 팀이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 준 것도 엘리다. 애스터를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엘리와 있을 때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엘리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짚어보라면, 엘리를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때다. 애스터를 더 잘 알기 위해 잠입 수사를 하던 중 엘리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본 차 안. 엘리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물어보기 시작했을 때. 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엘리의 기타 소리를 길 건너편에서 들었을 때 보이던 그 표정부터였다. 피아노 조율을 망쳐서 졸업생 공연을 망칠 뻔한 엘리에게 네 곡을 연주하라며 도와주었을 때도, 뒤풀이에 가서 술에 취한 엘리를 챙기며 자신의 집에 데려왔을 때도. 애스터를 좋아하는 걸 알고 무너졌을 때도. 있는 그대로의 엘리를 응원하며 기차역에서 헤어지던 때에도. 엘리로 인해 폴의 눈빛은 참 많이도 변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많은 눈빛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에 간단히 나온 '닫힌 방'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엘리의 아버지, 엘리, 폴, 애스터, 모두 각자 닫힌 방에 있었다. 엘리의 아버지는 과거에 갇혀 있었다. 항상 모든 영화에는 최고의 순간이 있다던 아내를 떠올리면서 그 장면을 보았고, 엔지니어로서 시작점이 되었어야 할 스쿼헤이미쉬에선 기차역에서 기계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는 스쿼헤이미쉬에 주저앉은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떠나지도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과제를 했고,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가려고 했다. 폴은 스스로 말했듯 소시지 레시피를 바꾸고 싶지만, 넷째 아들이라 운영할 순서도 아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를 바꾸면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표현하지 못했다. 애스터는 트리그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아버지가 트리그네 집과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결혼하게 된다 해도 받아들일 모양새였다. 이들이 있는 스쿼헤이미쉬는 닫힌 방의 온상이다.
하지만 도로의 표지판에 쓰여있었던 것처럼, 뭔가가 스쿼헤이미쉬에 일어나고 있다. 모두들 조금씩 달라졌다. 엘리는 그리넬 대학으로 가는 길에 질색팔색하던 파인애플, 부엉이, 안경 쓴 애벌레 이모지를 쓸 수 있게 됐고, 폴은 음식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자신만의 소시지 연구에 한창이다. 애스터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미술을 공부할 예정이다. 엘리의 아버지는 자신을 걱정해서 떠나지 못하는 딸을 대신해 그리넬 대학에 원서를 넣고, 가는 길에 든든히 먹으라고 만두도 빚어 넣었다. 이제는 멀끔하게 차려입고 기차역에서 쓰지 않던 기계를 작동하고 있다. 닫힌 방과 열린 문은 한 끗 차이다.
엘리와 폴이 영화를 본 어느 날, 엘리는 떠나는 기차를 쫓아오는 사람을 멍청이라고 말했다. 멍청하다고. 기차를 앞지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 장면은 진부하다고. 하지만 그래서 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건 맞지만, 겪어보면 멍청하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지. 엘리와 폴이 보던 영화에서는 모두 슬프게 울고 마는 이별이었지만 엘리의 이별은 슬프지 않았다. 엘리의 눈물은 슬프지 않았고 아버지, 애스터, 폴 역시 울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우리는 외로워하며,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놀랄 것도 없다. 외로움이 중력에 대한 물질의 반응이라면, 외로움은 이 지구 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는 걸 입증할 뿐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건 인류 역사를 관통한 영원한 숙제이니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겠나. 안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몸소 멍청이가 되는 것. 망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은 그림에 대범한 선을 그려 넣는 것. 언제든지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도 당신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힘껏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반쪽은 채워질 조짐이 보인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아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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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또 어떤 영화를 추천드릴까 하다가
최근에 봤던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가 있어,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영화를 추천드려볼까 합니다!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한번 살펴볼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쟁 중에 결성된 외딴 섬의 북클럽. 런던의 작가가 그들을 찾아 떠난다.
유쾌하고 용감하게 나치의 점령을 견딘 사람들. 그들을 통해, 그녀의 삶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cine pick!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영 인디아나 존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연출한 마이크 뉴웰이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원작보다 로맨스에 조금 더 중점을 뒀으며,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이 매우 매력적이다.
런던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Man Up,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매번 실패하는 연애에 어느덧 연애지수 제로가 되어버린 ‘낸시’는
부모님 결혼기념일 파티에 가던 중 우연히 만난 ‘잭’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낸시는 얼떨결에 잭의 가짜 소개팅녀 행세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런던에서 생애 최고의 유쾌한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낸시 앞에 나타난 옛 친구덕분에
거짓말로 시작된 데이트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cine pick!
판타지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고, 사운드트랙이 무척 매력적인 영화이다.
대사 보는 재미가 있으며, 뻔하지만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When I Get Home, My Wife Always Pretends to be Dead,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어느 날부턴가 ‘준’이 집에 돌아오면 항상 ‘치에’가 죽어 있다.
어제는 악어에게 잡아먹혔고, 오늘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했고,
내일은 공동묘지를 떠도는 귀신이 될 예정이다.
도대체 왜! 치에는 매일 죽어 있는 걸까?cine pick!
조금은 당황스러운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매일 죽은 척을 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굉장히 신선한 소재의 영화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cine pick!
원제와 번역된 제목 모두 굉장히 흥미를 자아내는 제목이다.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성장에 조금 더 초점을 둔 영화이다.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Let Me Eat Your Pancreas ,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드는 ‘나’, 학교 최고의 인기인 ‘그녀’
어느 날, 우연히 주운 [공병문고]를 통해 나는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너 말이야, 정말 죽어?” “...응, 죽어”
그날 이후, 너의 무언가가 조금씩 내게로 옮겨오고 있다.cine pick!
2016년 일본 서점에서 2위를 하고, 연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당시에도 파격적인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제목과 상반된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
진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cine pick!
원작은 시집으로, 시의 내용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 전문 잡지인 키네마 준보에서
선정한 2017년 일본 영화 1위이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2005
ⓒ 네이버 영화
synopsis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스즈메는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한다. 무심코 전화를 해버린 그녀는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cine pick!
일본 특유의 감성과 개그 코드가 가득 담긴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평범했던 일상을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게 될지도...?!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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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기울어진 세상을 헤엄쳐
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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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알라딘 총정리 #9
환몽씨네 디즈니 특집 1편!
영화 알라딘 (Aladdin, 1992) 분석**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내년도 디즈니꺼!
환몽씨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특집!'알라딘'과 '라이온 킹'에 대해 재밌게 떠들어 봤어요 :)
1편에서는 알라딘 실사화를 기념해,
환몽씨네가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이야기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디즈니
-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
- 알라딘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알라딘이 중국인이라고?
- 디즈니의 캐릭터 설정
- 영화주제 : Be Yourself
- 실사화에서 기대되는 장면!영화 '알라딘'을 보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2편 '라이온킹'도 많은 기대해주세요!
#알라딘 #aladin #영화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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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티저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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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묘> 1차 예고편
"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겁나 험한 게" 모두가 기다린 오컬트 미스터리 [사바하][검은사제들] 장재현 감독 신작 최민식X김고은X유해진X이도현 [파묘] 1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