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14 18:54:19
전복된 세상에 어서 오세요
영화 <슬픔의 삼각형> 리뷰

<슬픔의 삼각형>이 시작되면 관객은 처음부터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다. 한가득 모여 있는 남자 모델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가 우리를 어떤 롤러코스터에 태울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요” 식으로 상큼한 미소를 환하게 짓는 H&M 모델 표정과, “너희는 모두 내 발아래 있어” 식으로 얼굴을 굳히고 사람을 내려다보는 발렌시아가 모델 표정을 번갈아 짓게 시키면서 사회자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다 현대 패션계와 인스타그램 광고들을 얼마나 잘 요약해 주는지, 헛웃음이 나온다. 몸을 걸치는 수단이었던 옷과 장신구가 이제 사람의 내면까지 절여 버리려고 드는 게, 재미있긴 하지만 징그러울 때가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뒤이어 모델들을 인터뷰하면서, “수입이 여자 모델의 1/3밖에 안 되고 작업 거는 게이들도 상대해야 하는” 남자 모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뭐냐고 자조적으로 물을 때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2022년 기준으로 여성은 동일 직군에서도 남성보다 31.5% 임금을 덜 받고 있으며, 서비스직으로서 인간 대 인간의 기본적인 친절을 베풀다가 별의별 수작질과 심지어 “꼬리 쳐 놓고 이제 와서 모르는 체를 한다”는 의문의 분노까지 받았다는 사람 이야기가 수두룩한 세상을 살고 있기에.

그리고 나면 이 영화는 마치 3개의 꼭짓점처럼 3개의 파트를 톡, 톡, 톡 찍고 엔딩까지 쉼 없이 달린다. 참고로 이 영화에 대한 모든 마케팅 문구는 진실이었다. 아, 참고로 문구는 아니지만 마케팅에 가히가 붙은 것도 나를 미치게 웃기는 요소이다. 게다가 (밈 아니고 진짜로) 포브스 선정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말이 진짜였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의 “이 우스꽝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영화”라는 말도. 더불어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도 믿어주기를 바란다.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이자 “끝나고 나서 할 얘기가 있는 영화”는 모든 영화의 주장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가급적 영화관에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시길. 다만 구토와 오물이 적나라하게 나오니 비위가 약한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마음의 준비 하셨다면, 그럼, 전복된 세상에 어서 오세요.

#1.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영화의 1부는 인플루언서 모델 야야와 그 남자친구 칼의 이야기다. 칼도 모델이지만 쇼의 중심에는 야야가 있고, 칼은 관객석에서도 VIP 등장으로 밀려나 뒷줄에 적당히 끼어 앉는 신세이다. 마치 제니 홀저의 작업물 같은 느낌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글씨가 번쩍거리는 쇼의 관객석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조지 오웰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아직 자본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자산”을 자본보다 더 많이 가진 상태이다. 다시 말해 페이보다 #협찬 이 더 많다는 것. 그렇기에 돈 문제로 얼마든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수 있지만 그러는 순간 “섹시하지 않”아진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같은 상황은 다른 단어로 풀어진다. 야야에게는 “섹시하지 않”은 돈 이야기가 칼에게는 “그저 관찰한 것”, “돈 문제가 아닌 것”으로 계속해서 풀어진다. 칼은 “성별 고정관념”에 휩싸이지 말자고 이야기하며 돈 내는 문제를 가지고 따지지만,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손으로 막아서고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것에 어떤 젠더 권력이 작용하고 있는지, 가슴팍에 돈을 끼워준 야야의 행위가 왜 그토록 기분이 나빴는지. 돈 얘기가 아니라지만 이야기는 돌고 돌아 돈으로 간다.

자본주의 사회의 수사학은 현란한 언어로,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여 정신을 꼬드긴다. 칼과 야야의 관계에서도 그 양상이 재연되지만, 2부 ‘요트’에서 만나는 부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양상을 들어 보면 헛웃음이 자꾸 나온다.
요트에서 승무원을 쥐락펴락하는 러시아 부호 여성은 “우리는 모두 평등 We are all equal” 하다는 말과 “삶은 불공평한 것 Life is unfair” 이라는 말을 한 입에서 낸다. 바로 뒤이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명령”한다는 말까지 육성으로 내뱉는다. 그런데도 승무원은 핀으로 고정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다가 결국 Yes와 No의 간단한 대답조차 헝클어지고 만다.
재차 강조되는 평등은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현대에는 더 이상 계급이 없다고 교과서에 나오지만, 동시에 우리는 너의 노력으로 어디론가 올라가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근로 소득의 힘을 점점 얕보는 사회를 살고 있다. 계급이 없다면 <기생충>이 계급 우화였을 리가. <기생충>에서는 계단으로, <행복한 라짜로>에서는 농민들의 마을로 표현되었던 계급이 이 영화에서는 요트 속 사람들의 옷차림과 그들이 머무는 자리로 표현된다. 일하는 위치에 따라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지고 음악 취향조차 달라진다. 노력으로 얼마든지 자본을 얻을 수 있는 무한의 자유가 주어진 척하지만, 자유롭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무엇이, 우리와 함께, 있다.

#2. 전복의 맛, 통쾌한가요?
그러나 이 세계는 폭풍우 속에서 기울고, 이내 전복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부유층은 자기의 스타일대로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설명하지만, 그 일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 생각해 보면 이들이 아무리 우아하고 고상하게 앉아 있어도 징그럽게 보인다. 극단으로 가는 천민자본주의, 사유가 부재한 사회에서 마케팅에만 절여진 뇌들이 모이면 얼마나 징그러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서비스직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그냥 바보들에게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제일 빠르지…’ 하고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할, 영 바보 같은 이미지도 이들 중에 덧씌워진다.
거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풍자의 오물에 넘어뜨린다. 불안하게 떨리던 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기 우는 소리와 풍랑 소리에 정신이 없는데 피아노 음악은 계속 흐른다. 결국 비싼 술도, 비싼 식재료로 만든 음식도, 심지어는 스스로가 가치 있는 다시 말해 “비싼” 사람이라 믿었을 사람들까지 바닥에 토사물과 함께 구른다. 이 영화는 그렇게 자본주의를 오물과 함께 바닥에 굴린다. 풍랑 속에서 사람들은 구르고 있는데 조타실은 비어 있고, 선장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다. 대처와 레이건과 케네디를 인용하는 러시아 출신의 자본주의자 비료상, 마크 트웨인과 마르크스와 레닌을 인용하는 미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선장의 술 냄새 나는 대화도 재미있다. “당신들이 풍요 속에 헤엄칠 때 세계는 빈곤에 허우적거린다”고 선장이 일침을 놓을 때는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 말을 듣는 부자들은 현재 토사물과 오물 사이를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부자들은 어둠과 오물 속에서, 미국이 자본으로 아작 내고 망친 나라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타인이 자기 얼굴에 전조등을 비추는 경험을 한다. 살기 위해 국경선을 넘는 사람들, 예컨대 베네수엘라에서 국경선을 넘어 미국을 향하던 사람들이 했을 경험이었다. 이 배는 자본주의 전복의 배다. 아무 사정도 봐주지 않고 가차없이 전복은 계속되다가 끝내, 배까지 전복되고 8명만이 살아 남아 무인도에 다다른다. 자본과 능력주의와 성별과 우리 사회를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뒤집은 끝에, 마침내 세계의 전복이 일단락된다. (거기에서의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아껴둔다.)
그러나 이 전복, 통쾌하기만 한가? 미친 듯이 웃다가, 가감 없는 토사물에 ‘으…’ 하다가, 모처럼 영화관에서 사람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있다 보니 정말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통쾌하게 웃다 보면…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니다. 제가 바로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마케팅에 절여져 사는 사람이랍니다? 영화를 보고 그나마 웃을 수 있는 건 단지 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 사람들처럼 자본을 많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왜 저들이 가진 역겨운 면면은 저에게 다 있는 걸까요?

#3. 삼각형과 원
삼각형과 원은, 전혀 닮아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수학적으로는 제법 비슷하게 묶일 만한 성질이 많이 있다…고 언젠가 들은 것 같은데, 학교 졸업한 지 너무 오래라 구체적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검색을 해 보니 삼각형 하면 외접원과 내접원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고, 관련 공식 유도에서도 서로를 많이 써먹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삼각형과 원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거다.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나는 원을 떠올렸다. 삼각형은 어떻게 굴려도 다시 삼각형이다. 정삼각형인지 이등변삼각형인지 그 모양조차도 변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위치에 따라 어디가 밑변인지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 봤자 넓이는 똑같이 구해진다. 또 다른 교착 상태에 머무를 뿐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똑 같은 얼굴로 금방 잘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해서 괴로워지는 사람이 누구냐가 달라질 뿐이다.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을 생각한다. 요트에서의 삼각형과 무인도에서의 삼각형을 놓고 보면 비슷한 위치에 놓인 사람도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인 사람도 있다. 처한 자리가 달라지면, 똑같은 재능 똑같은 노력을 갖고도 전혀 다른 성과를 내게 된다. 어제까지 비웃음을 사던 사람이 뭐 하나로 빵 뜨면 칭송을 받는 세상, 그러다가도 또 금방 비난을 받는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삼각형 위를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미끄러지는 우리를, 나를 이 영화에서 본다.
볼 때는 미친 듯이 즐거운데 보고 나서는 할 얘기가 자꾸 생각나는 영화라면,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좋다.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모든 대화가 쫀득쫀득하게 구성된 이 영화의 롤러코스터에서 정신을 놓은 다음, 나와서는 삼각형과 원,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공리주의, 서비스직의 애환, <기생충>과 <행복한 라짜로>, 트로이의 목마… 등등 매우 ‘있어 보이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다가 그조차 나의 위선 같다는 찝찝함을 안고 집에 돌아오면 된다. 그러고도 며칠 정도 이상하게 이 영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포브스가 옳았다. 볼 때는 “올해 가장 웃긴 영화”였는데, 보고 나니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삼각형과 원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실 분을 찾습니다.
*영화는 5월 17일 극장에서 개봉합니다. 꼭 사람 많은 상영관에서 보세요.
**이 글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한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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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파리' 이후 15년, 그리고 '화란'
7★/10★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한 고등학교의 운동장. 한 학생이 제 손에 주먹만 한 돌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그러고는 동급생의 머리에 그 돌을 냅다 내리꽂는다. 가격당한 학생은 쓰러진 후 소리를 지르고, 저 멀리서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달려온다. 연규의 손에 들려 있던 돌은 운동장의 조그만 물웅덩이에 떨어진다. 돌에는 피가 묻어 있다. 물웅덩이의 흙탕물 사이로 붉은 색 피가 조금씩 퍼져나간다. 영화 〈화란〉의 시작이다.
〈화란〉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출구 없는 폭력의 연쇄를 다룰 것임을 암시한다. 연규는 가난한 재혼 가정의 고등학생 아이로, 새아빠의 딸이자 이복 여동생 하얀을 괴롭히는 동급생을 응징하기 위해 돌을 손에 들었다. 연규가 하얀을 특별히 아껴서는 아니다. 연규는 엄마에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며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인데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작 연규가 ‘같이 사는’ 새아빠에게 수도 없이 구타당한다는 점이다. 새아빠는 발소리, 숨소리만으로 연규를 얼어붙게 만든다.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진 폭력은 그렇게 작동한다.
하얀을 위하는 연규의 마음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것과 현실의 합의금은 별개의 문제다. 연규는 당장 300만 원을 마련해야만 한다. 엄마는 돈이 없다. 새아빠에게 말했다가는 또다시 죽을 듯 맞을 것이 뻔하다. 300만 원은 아르바이트 비용을 가불해 지급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다. 궁지에 몰린 연규에게 구원자가 나타난다. 연규의 사정을 알게 된 동네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인 치건이 부하를 시켜 돈을 전달한 것이다. 연규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치건은 연규에게서 자신을 보았고, 그래서 연규를 도왔다. 그러나 치건의 호의가 마냥 선의의 발현인 것만은 아니다. 치건이 연규에게 건넨 ‘구원’은 그의 세계에 들어오라는 암묵적 초대이기도 하다. 합의금을 손쉽게 마련한 것으로 끝낼지, 아니면 치건의 초대에 응할지는 연규의 몫이다.
짐작 가능하듯, 연규는 치건의 길을 따른다. 치건은 연규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연규가 결코 갖지 못할 힘과 돈을 가졌다. 연규는 빠르게 치건의 조직에 적응하고, 그들과 ‘같이 살며’ 가족이 된다. 처음부터 글러먹은 도시, 탈출할 수 없는 절망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자란 치건과 연규는 빠르게 유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연규는 하얀을 지켜주고자 한 선한 마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는다. 조직의 냉혹한 문법과 기존 마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연규는 기지와 수완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연규가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한 그 무엇이 그가 영화의 마지막에 하얀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도시 밖으로 나가는 밑절미가 되어준다.
치건을 연기한 송중기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화란〉 시나리오를 보고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떠올랐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력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엉켜 영속되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질식되어가는 사람들. 그 적나라한 폭력의 현시에서 우리는 눈을 질끔 감고 고개를 돌리고만 싶다. 그러나 연규를 연기한 홍사빈 배우의 얼굴이 우리의 고개를 다시 스크린으로 돌린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비천한 희망을 담아내는 그의 연기가 주는 흡인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괴로울지라도 영화(그리고 영화가 그려내는 현실)를 응시하도록 붙잡아둔다. 나아가 그가 겪어내는 폭력의 파편을 관객의 몸과 마음에도 새겨 넣는다. 송중기 역시 기존 출연작이 잘 떠오르지 않는 묵직한 연기로 연규가 마주한 구원과 고난의 엄숙함을 증폭시킨다.
〈화란〉은 영화 말미에 아주 자그마한 숨구멍을 뚫어 놓는다. 희망이라고 말하기에는 터무니없고, 연규와 하얀이 그럴싸한 미래를 마주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둘은 폐쇄적 폭력의 연쇄의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결말은 연규의 ‘선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연규가 마냥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건과 오해가 생겨 갈등이 극에 달한 장면에서, 두려움에 질린 연규는 하얀을 담보로 치건과 협상을 벌인다. 즉, 연규는 ‘같이 사는 사람’인 하얀을 하나의 화폐로써 치건에게 지급한다. 연규가 적당한 선함을 가진 건 맞지만, 그가 절대적 선함의 담지자는 아니란 소리다. 사람을 화폐로 제시하는 연규의 이 비겁함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를 재현할 때 종종 발생하는 ‘약자는 완벽히 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비틀며 그의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똥파리〉 이후 15년, 〈화란〉은 사회와 폭력에 대한 영화적 재현은 얼마나 다르고 같은지를 질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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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이야기는 거들 뿐
경고: 스포일러 주의!
폴 토머스 앤더슨이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했을 때 들었던 걱정.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로맨스 영화처럼 추억팔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첫사랑에 대한 풋풋함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껍질을 벗겨보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과 남녀끼리 벌이는 처절한 투쟁들로 가득하다.
두 주인공 알라나(알라나 하임)와 개리(쿠퍼 호프먼)의 사이는 키싱구라미 같다. 영화 쉬리에서 암수가 서로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사랑의 상징이 된 물고기다. 그러나 이 두 마리는 키스가 아니라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 물고기가 죽으면 잡아먹는다고 한다. 사랑이라곤 1도 없는 모습이다.
리코피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개리와 알라나의 서툴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내세운다. 그러나 추억팔이를 핑계 삼아 문제 있는 남자들을 닮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 개리, 그리고 당시 사회의 한계 때문에 선택지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능력 있는 여자 알라나를 통해 그 속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영화는 그녀가 만나는 문제적인 3명의 남자를 통해 그 한계를 보여준다. 술을 먹고 다른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영화 제작자, 알라나가 다침에도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늙은이 등. 문제적인 남자들 뿐이다. 그 탓에 개리가 정말 착한 남자로 보일 지경이다. 개리도 알라나와 의견이 안 맞았던 탓에 계속 다퉜음에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결국 개리가 지닌 야망은 성취된다. 알라나는 개리의 부인이 되고, 그들은 함께 거리를 달려나가며 그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개리의 뒤에는 여전히 3명의 문제적인 남자들이 남아 있다. 개리가 변하지 않는 한 알라나는 이후 개리의 꼭두각시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씁쓸함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그 씁쓸함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 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결론을 전달한다. 그러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한계와 씁쓸한 현실도 같이 드러낸다. 마치 감초(licorice)와도 같은 달콤씁쓸함이다. 그 감초 껍질 뒤의 달콤씁쓸함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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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 맛보기
호주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드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감추고 온전히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가뭄이라는 뜻의 제목 <드라이>에 맞게 영화는 오랜 기간 가뭄이 이어진 마을 키와라를 배경으로 해들러 일가족 사망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가물어져 바닥이 갈라지고 땅의 맨바닥이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지만 진실은 갈라진 바닥에 숨어 도통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애런 포크(에릭 바나 분)는 그 진실을 찾아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년 전에 벌어진 엘리 디컨의 죽음에 사사건건 부딪히고 해들러 가족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지만 갈라진 키와라의 땅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엘리 디컨은 죽었을 때 바지 주머니에 애런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넣은 채 발견되었는데 이로 인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물어질수록 작물은 말라가고 사람들도 함께 죽어가지만 애런은 도저히 진실을 찾을 수가 없다. 왜 <드라이>는 하필 가뭄이 든 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일까?
엘리 디컨이 죽었을 때의 정황 중 특이점은 엘리가 강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사건이 말라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정 반대다. 또한 애런의 회상 신은 대부분이 강가를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친구인 루크, 그레첸, 엘리와 강가에서 놀곤 했던 애런은 엘리에게 짖궂은 장난
이라기엔 엘리가 죽을 뻔했지만을 치던 루크 해들러를 떠올리며 루크가 정말로 자신의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루크의 부모님은 그럴 리 없다며 애런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확실히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이상한 점이 많다. 막내딸인 갓난 아이만이 살아남았다는 점이나 사살에 사용된 탄약이 평소 루크가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는 것 등이다. 강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던 엘리와는 달리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진 마을 한복판인 집에서 벌어진다. 물을 배경으로 죽음을 맞이한 엘리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 진실을 알려주지만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질수록 증거가 하나씩 드러난다. <드라이>의 배경이 가물어진 마을을 배경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건조한 날씨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가는 긴장감을 상징하는 동시에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배경으로서도 가뭄이 유용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한편 가뭄 이외에 영화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만 어느것 하나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는 데 머문다. 엘리가 죽었을 때 애런은 루크와 사건 정황에 대해 입을 맞추는데 같이 다른 곳에서 토끼 사냥을 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회상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성인이 된 그레첸(제네비브 오라일리 분)이 실제로 토끼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죄없는 토끼가 날조에 이용되거나 마당에 숨어든다는 이유로 사살당해도 되는지 관객에게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고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토끼가 사살 대상이 된 이유는 작고 연약한 동물인 동시에 빠르지 않아 쉽게 사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20년 전 죽은 엘리 디컨에 대한 비유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의 죽음은 엘리에 대한 애도보다 애런과 루크에 대한 혐오 면에서 더 크게 작동한다. 평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녀임에도 엘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고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다.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알리바이가 딱히 있지도 않았던 애런과 루크는 엘리의 죽음에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애런은 아버지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이 부분 또한 서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진실 그 자체를 찾기보다는 그저 비난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현상을 가볍게 보여주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영화는 현상을 바라볼 뿐이다.
엘리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인 동시에 관객은 애런이 20년 전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혼란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애런은 20년 전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애런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거짓말은 용인되는 것인지, 혹은 애런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지 은연중에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도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지 궁금해하지만 수많은 질문 가운데 초점이 맞춰지는 질문은 없다. 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20년 후 일가족의 몰살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엘리 디컨의 죽음과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독립적인 사건임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영화가 무심코 던져주는 질문들은 영화 진행을 위한 맥거핀으로 기능하며, 애런은 이 맥거핀을 충실히 따라가며 관객의 혼란을 유도하는 동시에 본인도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애런이 이 혼란을 벗어나는 것은 결국 윤리적인 질문을 피해 객관적인 증거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순간이다. 사건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걷어내고 객관적인 실체를 마주한 애런은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물어진 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숲에 불이 질러질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내고 숲 또한 보전된다.
숲이 보전되었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낸 애런은 다시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며 엘리를 기리는 마음으로 숲을 향한다.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반대로 애런의 감정이 촉발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엘리와 시간을 보내곤 했던 장소에서 엘리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던 애런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결국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된다. 엘리의 죽음에 진정으로 책임이 있는 자가 밝혀질 때 또다시 영화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가볍게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역시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기만 함으로써 관객은 다시금 어리둥절해진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문제들을 단순히 몰입감을 위한 장치로서 소비할 뿐인가. <드라이>는 밀도 높은 서사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영화지만 사회적 문제들을 맥거핀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면 이제 관객은 현실로 돌아와 영화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한다. 영화가 묘사한 다양한 종류의 혐오들은 정당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거짓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몰입도 높은 수사 서사를 가진 <드라이>가 모든 진실을 알려준 후에도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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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동기부여 영화 추천, 내게 힘을 주는 영화 10편
내게 힘을 주는 영화 10
저마다 힘들고 의지가 떨어질 때 동기를 부여받을 만한 친구, 영상, 영화, 취미와 같은 것들을 여러 번 꺼내 볼 것이다.
종종 자극이 된다거나 힘을 주는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저장하고 다시 꺼내보기도 하는데,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언제나 힘을 준다.
요즘 상황도 상황인지라 상반기 취업문도 줄어들고, 여행도 못 가고, 경제도 좋지 않은 지금 모두가 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화들을 가져와보았다. 영화의 순서는 국내 개봉일 순으로 작성했다!
■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
감독: 피터 위어
출연: 로빈 윌리엄스(존 키팅 역), 로버트 숀 레오나드(닐 페리), 에단 호크(토드 앤더슨), 조쉬 찰스(녹스 오버스트리트)
개요: 드라마 | 미국 | 128분 | 12세 관람가
줄거리: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의 새 학기 개강식. 이 학교 출신인 존 키팅 선생은 새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첫 시간부터 선생은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파격적인 수업방식으로 진행하는데. 닐은 키팅 선생을 캡틴이라 부르며 따르게 되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닐과 그 친구들은 굉장히 엄격한 학교의 규율을 어기고 서클에 참여하면서부터 키팅 선생을 통해서 참된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첫 번째 영화는 1989년도에 제작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언급되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다. 아마 보지 않았을지라도 제목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카르페디엠'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며 가르침을 주는 키팅 선생의 대사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며 배우게 되는 인생을 느낄 수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명작이다.
■ 가타카 Gattaca, 1997
감독: 앤드류 니콜
출연: 에단 호크(빈센트 프리맨 역), 우마 서먼(아이린 카시니), 알란 아킨(Det.휴고), 주드 로(제롬 유진 모로우), 로렌 딘(안톤 프리맨), 고어 비달(조셉), 어네스트 보그나인(카사르)
개요: SF, 드라마, 스릴러 | 미국 | 106분 | 15세 관람가
줄거리: 근 미래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시험관 수정으로 우성 인자만을 보유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시대에 조작을 받지 않고 태어난 빈센트. 그는 심장 질환 확률이 99%에 예상 수명이 31살 밖에 되지 않는다. 우성인자만을 보유하고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가 꿈인 빈센트는 모두의 만류에도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꿈을 대신할 우성인자인 유진 모로우와 만나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우주 항공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두 번째 영화는 이 추천 목록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정말 많이 보아왔던 <가타카>다. 정말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노력하는 빈센트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영화지만 저런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자극을 받아왔었다. "모든 게 가능해"라며 자신의 의지와 행동력을 보여준 빈센트와 "넌 내게 꿈을 빌려줬어"라고 말하는 유진 모로우(주드 로)의 모습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블로그에 리뷰를 쓴 적도 있는데, 나의 인생 영화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 록키 발보아 Rocky Balboa, 2006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
출연: 실베스터 스탤론(록키 발보아 역), 버트 영(폴리), 마일로 벤티밀리아(록키 발보아 주니어)
개요: 액션, 드라마 | 미국 | 102분 | 12세 관람가
줄거리: 최고의 헤비급 챔피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록키. 록키의 즐거움은 화려했던 자신의 복싱 경기 얘기를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 어느 날, TV에서 현재 헤비급 챔피언인 매이슨 딕슨과의 가상 경기를 중계한다. 상상 이외의 인기를 끈 이 경기는 실제로 록키에게 경기를 제안하고, 록키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일생일대의 대결을 앞두고 오랜 친구이자 트레이너인 듀크와 아들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시작한 록키. 젊은 챔피언 복서 메이슨에 맞서 마지막 경기를 펼치는데.
세 번째 영화는 정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OST 'eye of the tiger'가 나오는 영화 <록키 발보아>다. 아마 이 영화를 몰라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듯하다. 이 영화는 록키의 마지막 시리즈 작이기도 하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다시 한번 영화 속의 록키 발보아처럼 일으켜 세운 영화다. 이미 은퇴한 선수였던 만큼 나이가 들었고 젊은 시절처럼 멋진 몸은 아니지만 은퇴하거나 혹은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스포츠 영화만의 땀과 열정, 승부를 통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2006
감독: 가브레일 무치노
출연: 윌 스미스(크리스 가드너 역), 제이든 스미스(크리스토퍼), 탠디 뉴튼(린다), 브라이언 호우(제이 트위스틀)
개요: 드라마 | 미국 | 117분 | 전체 관람가
줄거리: 한물 간 의료기기를 팔며 돌아다니는 세일즈맨 크리스 가드너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며 돌아다니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결국 아내까지 집을 떠나고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에게 인생 마지막 기회가 다가온다.
네 번째는 이 주제나 행복에 관한 주제라면 빠지지 않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행복을 찾아서>다. 지금은 훌쩍 자라버린 제이든 스미스의 역인 크리스토퍼와 크리스 가드너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자는 장면이 정말로 안쓰럽고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못할 거야라는 말을 믿지 마"라며 아들에게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다짐을 하는 크리스 가드너. 인생 기회인 인턴을 위해서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동기를 부여해 줄 충분한 영화다.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Lazy hitchhikers' tour de europe, 2013
감독: 이호재
출연: 이호재, 이현학, 하승엽, 김휘
개요: 다큐멘터리 | 한국 | 105분 | 12세 관람가
줄거리: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네 명이 잉여로운 20대를 보내기 위해 단돈 80만 원과 카메라 한 대만 들고 유럽행 비행기를 탄다. 잉여 넷은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무료 숙식을 하면서 1년간 유럽을 일주하겠다는 야망과 동시에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파리에 첫발을 내딛는데. 처음 계획과 달리 이들을 찾아주는 곳은 없고 아무런 소득 없이 이탈리아 로마까지 히치하이킹을 떠나고, 계속 이어가던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오는데.
다섯 번째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다. 같은 이름과 컨셉인 예능 프로도 나왔던 이 영화는 정말로 네 명이 여행을 떠나고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 한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단돈 80만 원을 들고 그들이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하나하나 목표들을 달성해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당장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동기부여를 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20대에 이 영화를 본다면 무엇이든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감독: 벤 스틸러
출연: 벤 스틸러(월터 미티 역), 크리스틴 위그(셰릴 멜호프), 숀 펜(숀 오코넬), 셜리 맥클레인(에드나 미티)
개요: 모험, 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14분 | 12세 관람가
줄거리: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서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여섯 번째 영화는 정말로 동기부여 영화에 절대 빠지지 않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저 국내에서 상상으로만 해왔던 일들을 용기를 내서 헬기에 뛰어들며 현실로 받아들이는 월터.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라는 대사와 같이 월터가 경험하는 인생의 전환점을 보며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 위플래쉬 Whiplash, 2014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앤드류 역), J.K. 시몬스(플렛처)
개요: 드라마 | 미국 | 106분 | 15세 관람가
줄거리: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인 음대 신입생 앤드류는 우연한 기회로 누구든지 성공으로 이끄는 최고 실력자지만, 또한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되어 그의 밴드에 들어간다. 폭언과 학대 속에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안겨주는 지독한 교육방식은 천재가 되길 갈망하는 앤드류의 집착을 끌어내며 그를 광기로 몰아넣는데...
일곱 번째 영화는 악마와 같은 스승과 광기에 휩싸이게 된 제자의 <위플래쉬>다. 폭군 교수인 플렛처는 자신들의 제자들을 정말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붙이며 재능을 터트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만의 성공 비법이라고 할까. 물론 그 노력에 폭언과 학대는 덤이다. 하지만 이런 극도의 자극을 버텨내며 끝까지 살아남은 자는 광기와 함께 성공만이 남는다. 자칫하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엄청난 자극으로 터져버린 광기의 드럼 소리와 미친듯한 몰입력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다.
■ 주토피아 Zootopia, 2016
감독: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출연: 지니퍼 굿윈(주디 홉스 목소리 역), 제이슨 베이트먼(닉 와일드), 샤키라(가젤), 이드리스 엘바(보고), 알란 터딕(듀크 웨셀턴), J.K. 시몬스(시장 라이언하트)
개요: 애니메이션, 액션, 모험, 코미디, 가족 | 미국 | 108분 | 전체 관람가
줄거리: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1위, 주토피아에서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관 주디 홉스는 48시간 안에 사건 해결을 지시받자 뻔뻔한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에게 협동 수사를 제안하는데.
여덟 번째 영화는 너무나 귀엽고 매력 있는 캐릭터 투성이인 <주토피아>다. 애니메이션 영화지만 단 한 번도 없었던 토끼 경찰이 되기 위해서 "내가 최초가 되겠네!"라고 말하며 노력하는 주디. 작고 힘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디는 당당히 노력하여 경찰이 되고 실종 사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활약한다. 주디의 행동이 주는 동기부여도 물론이고 여러 캐릭터들의 매력과 OST를 통해서 힐링도 받을 수 있는 영화다.
■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감독: 존 카니
출연: 페리다 월시-필로(코너 역), 루시 보인턴(라피나), 잭 레이너(브렌든), 마크 맥케나(에먼)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 아일랜드, 미국, 영국 | 106분 | 15세 관람가
줄거리: 코너는 전학을 가게 된 학교에서 라피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라피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밴드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 코너는 급기야 뮤직비디오 출연까지 제안하고 승낙을 얻는다. 행복한 기분도 잠시 코너는 어설픈 멤버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급 결성하고 집에 있는 음반들을 찾아가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첫 노래로 라피나의 마음을 움직인 코너는 그녀를 위해 최고의 노래를 만들고 인생 첫 번째 콘서트를 준비하는데...
아홉 번째 영화는 향수를 자극하는 영상미와 좋은 노래들이 정말 많은 <싱 스트리트>다. 지난 음악 영화에서도 추천을 했었는데, "적당히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하며 제대로 노래를 만들게 되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코너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ビリギャル, Biri Gal, Flying Colors, 2015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아리무라 카스미(쿠도 사야카 역), 이토 아츠시(츠보타 선생님)
개요: 드라마 | 일본 | 117분 | 12세 관람가
줄거리: 친구들과 재밌게 노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사야카는 공부와 담을 쌓은 문제아로 학교에서 낙인찍힌다. 하지만 그녀를 절대적으로 응원해 주는 엄마와 초긍정 츠보타 선생을 만나 우등생도 가기 힘들다는 명문대 진학을 도전하기로 하는데. 동서남북이 뭔가요?라며 질문을 하던 사야카의 최고 반전! 아직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야카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열 번째 영화는 일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여서 더욱 신기한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다. 이 영화는 아마 수험생들에게 조금 더 힘이 되고 자극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긴 수험 시간 동안 온전히 자신 혼자서 의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주변에 응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힘을 줄 것이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며 응원해 주는 츠토야의 응원을 바탕으로 자극을 받아 노력하는 사야카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인스타를 시작한 이유 중에 하나가 좋은 장면이나 대사들을 저장해두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는데, 종종 다시 보면 힘이 나는 장면들이 있다. 이 10개의 영화가 아마 그런 영화들 중에 더 동기부여가 되는 영화들이었다.
왓챠 - <가타카>, <위플래쉬>,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싱 스트리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넷플릭스 - <행복을 찾아서>
두 곳 모두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주토피아>
둘 다 없는 - <록키 발보아>
이 목록 외에도 동기부여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영화들이 있다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저의 리뷰나 원하시는 작품이나 추천 주제가 있다면 이 또한 댓글로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담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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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세에 기대려고 한 결과
미시간의 한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일개 대학원생 케이트는 세상을 뒤집을 새로운 발견을 한다. 그 발견으로 세상은 뒤집히다 못해 파괴될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저 멀리에서 날아오고 있는, 보이지도 않는 혜성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관심만 없으면 괜찮은데, 케이트와 그녀의 발견을 지지하는 랜들까지 사이코로 몰아가고, 성적으로 희화화하기도 한다. 세상이 멸망할만큼의 강력한 혜성이 날아오고 있다는데,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그저 지식인의 유난으로 치부하고, 가십으로 소비할 뿐더러 다음 대선 뉴스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심지어 현 대통령인 올리언까지 이 뉴스를 자신의 지지율에 이용할 생각만 한다. 세상이 멸망한다는데, 이 과학적 팩트를 정치선전에 사용하겠다는 윗대가리들이나 그 선전에 이용당하고 있는 국민들이나 참 여러모로 가관이다. 과연 케이트와 랜들은 이 역경을 뚫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아니 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듣게 만들 수나 있을까?
1.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곱씹게 하는 신랄한 블랙코미디
나는 제작자가 아니지만 감독, 제작자는 혜성이라는 소재는 그저 거들 뿐이고, 이면적으로는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코미디의 대상이 되었던 소재는 정치, 언론이었다. 감독은 미국의 토크쇼의 앵커들이 케이트의 발견에 대해 보도할 때, 보였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는 집단이 아니라 사실을 "시선을 사로잡도록 편집"을 한 후에 내보내는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결국 언론은 가치중립적인 사실, 팩트를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서 내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수 지지층인지, 진보 지지층인지에 따라서, 또는 젊은 사람인지 노년층인지에 따라 다르게 가공한다. 예상컨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언론은 뉴스를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채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섹시한 여성 아나운서 그리고 유머러스한 남자 아나운서의 티키타카를 주 무기였던 프로그램에 케이트와 랜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위기 경보는 프로그램 특성상 맞지 않았다. 재밌으려고 본 프로그램에서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식을 듣는데, 누가 진지하게 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슬픈 아이러니 상황에서 다시 곱씹게 되는 건 언론은 더이상 엔터테인먼트가 가미되지 않으면, 주목받을 수 없는, 그저 가벼운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청률이 중요한 언론사는 사람들의 주목을 살 수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지만 진실을 알리려고 동동대는 케이트와 랜들을 보고 있자니, 참 야속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의 옐로우 저널리즘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통감하며, 동질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올리언의 역할이 참 얄미웠다. 트럼프가 모티프라던데, 정치 선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치인 캐릭터를 보고 있자니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져갈 메시지적 포인트는 결국 두 과학자의 확신의 찬 외침은 정치인들의 확신의 찬 연설 듣는 것과 다르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선동으로만 보였다는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지을 수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만이 명확했을 뿐이었다.
2. 배우들의 유명세에 너무 의지해 버린 나머지 개연성을 챙기지 못한 플롯
보고 있자니, 이 영화는 혜성으로 인해 세상이 종말하는 플롯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감독은 하나의 이슈가 터졌을 때, 세상이 종말하든 말든 그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며, 소통이 불가한 현 상황을 풍자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그런 화두를 던지고 싶었던 거라면, 왜 굳이 혜성이라는 소재를 사용했어야 하는 걸까. 영화를 보면서도 개연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혜성이 날라온다고 하면, 응당 기대되는 인물들의 반응, 예를 들어, 분위기가 심각해지며,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드림팀을 꾸린다든지 하는 플롯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보를 믿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 두 과학자들이 조롱을 당한다. 이런 내용은 새롭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보면 볼수록 읭?스러운 부분도 넘쳐났다. 감독은 상식을 뛰어넘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하고 싶었던 것인지,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고 싶었던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실패한 느낌이었다. 비판도 하고 싶고, 웃음도 주고 싶은 감독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둘 다 잡으려다 개연성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캐스팅 하나는 정말 기깔나게 잘 했다. 주연급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카메오로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가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유명 배우들이 역할과 상황에 모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느냐라고 한다면, 단연코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들의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아무래도 블랙코미디인만큼 그들의 연기가 오버스러웠기 때문인지 그들의 정극 연기가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정극 연기자들의 코미디 연기가 어색했기 때문인지,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문제였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3. 총평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팬이라면, 한 번 정도는 킬링타임용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삶의 활력을 더해줄 가벼운 코미디 장르를 찾고 계신다면, 이거 말고, 차라리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추천한다.
돈룩업에 대한 리뷰를 쓰다가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추천하는 꼴이라니,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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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사람> 포스터 (사진출처 : JTBC)
너를 닮은 사람 (2021)
편성 : JTBC, 16화 완결 │ 장르 : 한국, 드라마·멜로
연출 임현욱 │ 극본 : 유보라 │ 출연 : 고현정(희주), 신현빈(해원), 김재영(우재) 외
등급 : 19세 이상 관람가 │ 원작소설 : 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매혹적이고 특별한 무드의 드라마
길고 풍성한 머리에 창백한 화장의 고현정 배우를 보고 처음 이 드라마의 특별한 무드를 느꼈다. 왜 창백한 것일까. 울적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색감은 또 뭐지. 마찬가지로 울적한 음악까지 맞물리면서 나는 깊게 드라마에 빨려들었다. 음울하고 슬픈데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드라마의 원작은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의 수상 작가인 ‘정소현’의 첫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이다. 8가지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에서 한 편의 짤막한 단편소설이었던 이 이야기는, 드라마 작가 ‘유보라’에 의해 각색되어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유보라 또한 이 소설에서 어떤 치명적인 흡입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라고 말한다. 궁금했던 나는 드라마에 이어 원작 소설까지 섭렵했다. 두 이야기를 모두 읽어본 결과, 소설과 드라마는 어느 하나가 덜하고 못하고 없이 공통의 무서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건, 짧은 소설에 비해 드라마는 16화라는 긴 호흡이었으나, 원작의 그 음울하고도 파괴적인 분위기를 손색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어느 날, 과거가 나를 찾아왔다
주인공 ‘희주(고현정 분)’는 재력이 든든한 남편을 만나 물질적 안정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여자다. 그녀는 유년시절 몹시도 가난했기 때문에 인과적으로 물질적 안정을 추구했던 것 같다. 좋은 집, 화가라는 멋진 직업,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남편, 바르고 예쁜 두 아이들. 그녀의 인생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 날 ‘해원(신현빈 분)’이 희주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희주의 오래전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한때 희주는 그녀에게 그림을 배웠고, 자신과 달리 가난함에도 위축되지 않고 밝고 씩씩했던 그녀를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해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희주가 사 준 10년도 더 된 낡은 코트를 떨쳐 입고 ‘과거에 붙들린 망령’처럼 서있는 그 장면은, 소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원이 희주를 망치러 왔다는 걸.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내 이야기의 시작은 역시 너다
희주는 해원에게 죄를 지었다. 해원에게 전부였던 그녀의 연인 ‘우재(김재영 분)’와 과거 밀회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주에겐 지나가는 사랑이었다. 불안정하고 동화 같은 사랑보단 물질과 풍요가 중요했던 희주는 결국 우재를 떠났고, 두고두고 그 일을 후회했다. 해원만 몰라준다면 영원히 묻고 싶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러나 희주에게 스치는 바람에 불과했던 그 일이 해원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건강하게 빛나던 해원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 희주를 겁박한다. 나도 망했으니 너도 망해보라고. <너를 닮은 사람>의 긴장감은 바로 그 두 여자의 숨 막히는 심리전과 비밀스러운 과거에 포진되어 있다.
클라인, 그건 분명 너였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먼지 쌓인 박제 같은 외양 때문이었는지 불쾌하고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정소현의 중반부, 유보라의 중후반부
소설과 드라마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과거에 머물렀던 우재가 드라마에서는 현재의 희주 앞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거기서부터 드라마는 소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중후반부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숨 막히고 아름다웠다. 희주의 안정을 위협하는 해원과 우재, 과거에 붙들린 두 망령들로부터 벗어나려는 희주.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파국으로 치닫는 걸 보고있자면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너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이 지나쳤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지나치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모순적인 감정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름다웠다. …
그는 너 몰래 찾아와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하며 나를 그리곤 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나는 당신을 경멸합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해원보다는 희주에 가깝다. 친구랑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과거에 붙들려 현재의 나를 돌보지 않는 일은 너무 미련한 것이라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집착하고,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느라 현재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희주의 잘못이 가벼웠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빛을 잃고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해원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긴 세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며 살아온 희주 또한 안타깝고 불행해 보인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파괴했던 게 아닐지.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드라마의 후반부, 희주는 점점 옥죄어오는 과거의 위협이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던 자신의 욕망, 한 사람에겐 전부였던 사랑을 가볍게 탐한 죄, 그 모든 것들의 무게가 희주의 가족을 망치려 할 때 희주는 결심한다. 그 과거를 끌어안고 자신이 사라져야겠다고. 그러나 왜인지, 자신의 뜻대로 희주가 파멸하자 해원은 행복해하는 대신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게 끝나고서야 해원은 깨달은 걸까. 비이성적인 앙갚음이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는 걸.
철드는 건 나쁘거나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자에게 들리는 종소리
푸른 파다, 푸른 초원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아일랜드의 모허(Moher) 절벽. 희주와 우재가 서로의 가족과 연인을 속인 채 밀회를 나눴던 그곳에서, 우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수도원에 있던 한 은종이 호수에 빠졌는데, 맑은 영혼한테는 그 종소리가 들린대” 희주는 자신이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라는 걸 알았기에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결국 죽게 된 우재의 시신을 유기할 때까지도 당연히.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우재를 없애고 현실로 돌아가고자 했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적했을 때. 희주의 귓가에 별안간 희미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물질, 탐욕,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은 그 끝에였다. 그 장면은 너무도 인상 깊은 장면이자, 소설에는 없지만 소설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짚은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희주가 결국 그 종소리를 듣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이 구원이라면 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선악을 모두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너를 닮은 사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나뉘어있지 않다. 희주와 해원과 우재 모두가 서로에게 죄를 짓고 죄를 당하며 얼기설기 얽혀있을 뿐이다. 내 안에도 해원과 우재와 희주가 있다. 시기와 질투, 물질과 안정에 대한 욕망, 잘못된 징벌의 심리까지도. 모두 서늘하게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그 선과 악에 대해, 그것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써낸 정소현 작가와 유보라 작가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정말이지 열렬히 바라게 됐다. 파멸과 자멸의 끝에, 희주와 해원 그리고 우재가 자신들을 옥죄던 그 무엇들로부터 해방되었기를.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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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영화리뷰들을 한꺼번에 듣자!
최근 업데이트 된 영화리뷰들을 한 영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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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5] 순수와 희망에 관하여 (with. 김시진 감독)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00:00 인트로 01:12 [대부]이야기 04:12 작가로서의 삶 05:53 [바다 저 편에] 이야기 14:59 아역배우 연출에 대하여 17:29 희망에 대한 이야기 21:29 순수함에 대하여 28:47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43:29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46:16 앞으로 이야기 47:42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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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라이밍> 런칭 예고편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세 달 전 교통사고를 겪은 세현은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과 경쟁에 대한 압박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고 당시 고장 났던 세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다름 아닌, 바로 '나'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을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두 사람.
급기야 세현은 또 다른 세현의 임신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 악몽처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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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티저 예고편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자 애나(크리스틴 벨). 애나에겐 매일이 똑같다. 와인에 취해 하릴없이 창문 밖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 그런 그녀의 삶에도 드디어 볕 들 날이 찾아오는 걸까? 길 건너편에 핫한 남자(톰 라일리)가 귀여운 딸과 함께 이사를 왔다. 그러나 애나의 희망은 잔혹한 살인 사건을 목격하면서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마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살인 사건. 애나는 과연 무엇을 목격한 걸까?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