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3-03-15 11:57:51
첫사랑 이야기는 거들 뿐
리코리쉬 피자 리뷰
경고: 스포일러 주의!
폴 토머스 앤더슨이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했을 때 들었던 걱정.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로맨스 영화처럼 추억팔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첫사랑에 대한 풋풋함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껍질을 벗겨보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과 남녀끼리 벌이는 처절한 투쟁들로 가득하다.
두 주인공 알라나(알라나 하임)와 개리(쿠퍼 호프먼)의 사이는 키싱구라미 같다. 영화 쉬리에서 암수가 서로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사랑의 상징이 된 물고기다. 그러나 이 두 마리는 키스가 아니라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 물고기가 죽으면 잡아먹는다고 한다. 사랑이라곤 1도 없는 모습이다.
리코피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개리와 알라나의 서툴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내세운다. 그러나 추억팔이를 핑계 삼아 문제 있는 남자들을 닮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 개리, 그리고 당시 사회의 한계 때문에 선택지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능력 있는 여자 알라나를 통해 그 속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영화는 그녀가 만나는 문제적인 3명의 남자를 통해 그 한계를 보여준다. 술을 먹고 다른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영화 제작자, 알라나가 다침에도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늙은이 등. 문제적인 남자들 뿐이다. 그 탓에 개리가 정말 착한 남자로 보일 지경이다. 개리도 알라나와 의견이 안 맞았던 탓에 계속 다퉜음에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결국 개리가 지닌 야망은 성취된다. 알라나는 개리의 부인이 되고, 그들은 함께 거리를 달려나가며 그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개리의 뒤에는 여전히 3명의 문제적인 남자들이 남아 있다. 개리가 변하지 않는 한 알라나는 이후 개리의 꼭두각시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씁쓸함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그 씁쓸함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 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결론을 전달한다. 그러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한계와 씁쓸한 현실도 같이 드러낸다. 마치 감초(licorice)와도 같은 달콤씁쓸함이다. 그 감초 껍질 뒤의 달콤씁쓸함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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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부끼는 번민의 돌파구
SYNOPSIS.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하얼빈을 향한 단 하나의 목표, 늙은 늑대를 처단하라
POINT.
✔️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역사적 순간을 담아낸 영화 타율이 좋은 우민호 감독의 작품
✔️ <기생충>으로도 잘 알려진 홍경표 촬영감독의 미학이 빛나는 작품
✔️ 이미 여러 차례 다루어진 만큼, 안중근의 거사 자체를 조망하기보다 안중근의 내면에 집중했으며, 어마어마한 로케이션과 어우러지는 비장미가 있는 작품
✔️ 많은 배우들의 합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 아른거리는 회화 속에서
영화는 초장부터 기존의 안중근 서사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명확히 한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독립 운동가들의 회동 모습은 마치 바로크 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안중근 서사 하면 기대하는 역동적인 스펙타클 대신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한 의심의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 무드야말로 실제 독립운동의 무드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독립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아는 미래가 아닌,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지, 미래가 있다 한들 거기에 내 자리는 있을지 회의감과 번민 속 현재에서 걸어간 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밀정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으며, 안중근이 나타난다. 흔히 결의에 찬 장면으로 묘사되는 단지(斷指)의 순간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의 순간조차 안중근이라는 인물 한 사람에게 확신에 찬 핀 조명을 쏘는 대신, 유령 혹은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를 그 주변에 둘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방점을 찍은 일제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던 1908년에서 1909년이었으니까. 의구심과 자괴감,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정서는 빛 아래 있어도 그림자였다. 극중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조차 승리 혹은 패배를 강조하기보다 처절한 아비규환을 그리고 있다.
그 지옥도에서 안중근이 택하는 길은 만민공법을 지키고 스스로가 대한의 참모중장임을 잊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그의 내면과 신념을 지키는 길이었다. 탄환을 명중시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로 극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대신,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고뇌가 때로는 고꾸라지고 때로는 맞아떨어지는 길을 담는다. 주변 인물들과 때로는 합심하고 때로는 불화하면서, 안중근은 (실제 역사에서는 '동양평화론'이 될) 그의 길을 간다.
각지고 막힌 상자 속에서
반면 확신에 찬 인물이 있다. 릴리 프랭키가 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종 확신에 차 있다. 실제 역사에서 1-2년 후에 이루어질 경술국치(1910.08.29)를 앞두고, 단상에 서서 담담한 말투로 한일 병합을 말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에서 은혜 입은 것도 없는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조차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의 공간은 하나 같이 각지고 막혀 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네모 반듯한 귀족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똑같은 뒤통수는 똑같이 수그려지고, 이동할 때에도 그의 자리는 사방이 틀어막힌 기차 칸이다. 러시아 공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차 칸도 바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의심과 번민으로 흔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기차와 달리, 확신으로 감싸인 공간에서 그는 남의 인생을 손발 삼아 움직이며 덤덤히 침탈의 길을 간다.
이는 얼어 붙은 두만강이나 숲이나 너른 사막으로 표상되는 안중근의 공간, 그림자와 연기가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 같은 공간과 대조적이다. 이 공간적인 대비는 마치 확신이 꼭 옳은가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는 침탈의 길에 확신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와, 끝없는 번민으로 내면의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안중근, 그리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 안중근이 내면으로 던져 올린 두레박은 영화 마지막에 기어코 마중물을 길어 올렸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인물들은 죽음 이후에도 유령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를 남겼다. 하지만 확신은 총탄에 스러진다.
푸른 꿈과 시린 번민으로 열린 공간에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이 시국'에 잘 어우러진다며 여러 차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언제나 절망의 뒤편에 희망이 있다는 것, 이제는 진부한 문장이지만 빛은 그림자와 함께 도드라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미래를 알 수 없는 채로, 독립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괴롭고 지난한 길.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품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즉각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그 길을 걷는 한 인간의 고뇌. 영화는 안중근의 거사까지 직진하여 가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회전하며 주변 인물들을 에두르는 고뇌의 그림자를 품는다. 총알이 날아가는 모양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난한 길을 갔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가늠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보편적이다. 희망을 길어 올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두 다리를 걷어붙이고 진창에 서야 하기에. 푸른 꿈은 언제나 곱고 예쁜 자리에만 있지 않다. 그 색깔은 시린 번민의 색깔과 맞붙어 있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등을 붙이고 있듯이. 그 자리는 안중근의 공간들처럼 탁 트여 있다.
희망에 꽉 막힌 확신 같은 건 없지만, 가능성은 사방으로 트여 있지만, 그림자처럼 담배 연기처럼 나부끼지만, 이 번민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광장 또한, 탁 트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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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주차, 최신 씨네뉴스
파타야 공대생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각색한 <범죄도시4>
본작의 최종 보스인 백창기는 역대빌런 장첸, 강해상, 주성철,리키보다더 강력한 빌런인 '백창기'역을 김무열 배우가 맡으며 기대를모으고 있습니다.
<파묘> 660만명 돌파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 고지를 밟았습니다. 개봉 3일째에 100만, 4일째 200만, 10일째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며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보입니다. <파묘>가 천만 영화가 된다면,최민식은 <명량>에 이어 두번째 천만을 기록하게 됩니다.
송중기 주연 <로기완>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비영어 영화 3위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이 공개 3일만에 글로벌 TOP10 영화 비영어 부문 3위를 기록했습니다.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삶의 끝에 선 이방인에게 전하는 위로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따듯한 이야기 입니다.
<범죄도시4> 4월 24일 공개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4>가 다음 달 24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영화는 형사 마석도가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움직이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 백창기와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김무열이 백창기를, 이동휘가 장동철을 맡으며 새로운 빌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3월 27일 공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새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이달 국내 공개됩니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업이 마을 주변을 글램핑 장소로 개발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작품으로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방탄소년단 슈가 삼자대면 콘서트, 영화관에서 만난다.
슈가의 앙코르 콘서트 실황 영화가 4월 10일 국내 CGV에서 개봉합니다. 이번 실황 영화는 슈가의 월드투어 피날레를 장식한 앙코르 콘서트 현장을 담으며 IMAX 특별관에서 상영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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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진실은 사실과 맥락의 만남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유럽을 탈환하려는 영국군은 시칠리아 상륙을 앞두고 마치 그리스가 작전 목표인 것처럼 히틀러를 기만할 작전을 궁리한다. 이미 독일군의 방어선이 시칠리아 배치된 가운데, 그들을 꾀어내려는 영국군의 수많은 작전들은 모두 실패로 귀결된다. 그러던 중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태규(콜린 퍼스)’와 ‘찰스 첨리(매튜 맥퍼딘)’는 부관인 '이언 플레밍(자니 플린)'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른바 ‘민스미트 작전’을 계획한다. 익사한 해군 장교로 위장한 시체에 가짜 작전 계획을 흘려서 독일군이 자연스럽게 영국군의 기만책에 속도로 만들자는 것. '고드프리(제이슨 아이삭스)' 제독의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처칠(사이먼 러셀 빌)'은 민스미트 작전의 시행을 지시한다. 이에 몬태규와 첨리는 '진(켈리 맥도널드)'과 '헤스터(페넬로페 윌턴)'의 도움을 받아 런던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노숙자의 시체를 영국의 해군 장교 ‘윌리엄 마틴’ 소령으로 위장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었던 듯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사진과 공연 티켓도 준비하며 빈틈없는 첩보 작전을 준비한다.
'민스미트 작전'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지중해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서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시칠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낸 작전이다. 흔히 민스 파이로도 알려진 영국의 전통 음식인 '민스미트(Mincemeat)'라는 이름에서 이 작전은 그 목적이 드러난다. 고기(meat)라는 이름과 달리 말린 과일과 스파이스, 으깬 사과, 시트러스, 견과, 그리고 (때때로) 약간의 브랜디로 속을 채운 음식처럼, 연합군의 공격을 예측해 시칠리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독일군을 유인하기는 미끼를 던지는 작전인 것이다.
통상적인 첩보영화와는 다른 <민스미트 작전>
그래서인지 <미스 슬로운>으로 이름 알린 존 매든 감독과 <1917>, <이미테이션 게임>의 제작진이 만난 <민스미트 작전>은 전쟁에는 보이는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이 있다는 독백을 통해 첫 장면부터 서로 속고 속이는 첩보작전의 내막, 그 회색 지대의 전쟁을 펼쳐 보일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민스미트'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민스미트는 바로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윌리엄 소령의 스토리다. 문제는 스토리라는 민스미트가 누군가에게는 예상과 달리 달고 맛난 반면에,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실망만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민스미트는 단지 독일군만 속일 뿐만 아니라, 작중 주인공들도 낚고, 심지어는 관객들까지도 낚아채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스미트 작전>에서는 흔히 첩보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공식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거대한 전투씬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스파이 간의 치열한 정보전이나 속고 속이는 간계나 음모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작전을 세우고, 상대가 속아 넘어오도록 기다림을 가지고 미끼를 흔드는 과정보다는 윌리엄 소령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 더 주목한다.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군인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그의 가짜 신분을 만들고, 닮은 사람을 골라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그의 성향과 성격도 가정하고, 있을법한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만드는 세세한 과정이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민스미트 작전>에는 소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를 만드는 고충으로 가득하며, 이는 통상적인 첩보영화에 가득한 팽팽한 긴장감과는 다른 결의 긴장감이 러닝타임 내내 감도는 이유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사실과 맥락
흥미로운 것은 몬태규와 첨리가 독일군을 속일 진실을 만드는 방식이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이 지적한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리프먼은 그의 저서 <여론>에서 "진실의 기능은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내 그 사실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개별적인 사실을 파악하는 것과 그것들의 조합을 찾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사실이 눈에 보이는 텍스트(text)라면 그 텍스트들이 모인(con) 연관성, 곧 맥락((context)을 파악해야만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민스미트 작전' 역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건이나 사안은 윌리엄 소령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 사건들이 위치한 맥락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물에 빠져 익사한 시체와 작전 계획, 연애편지가 텍스트라면, 그것들의 조합은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생긴다. 이 작전의 본질은 각각의 사실이 갖는 취약성과 위험성을 간파해 역이용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사실과 맥락의 관계성을 그저 독일군을 상대할 작전의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는 대신, 독일군을 낚을 미끼를 만드는 주인공들의 삶으로 확장시킨다. 그렇기에 영화의 진면목은 그저 독일군을 속일 진실을 만들어 내는 과정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사실을 어떠한 맥락 안에서 풀어낼 것인지 고뇌하는 대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인물들의 고충은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우선 하나는 첩보영화에 걸맞은 몬태규와 첨리의 갈등이다. 직속상관인 고드프리 제독으로부터 몬태규의 동생이 소련의 첩자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듣고 몬태규를 감시하게 된 첨리. 이제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실과 사건은 몬태규도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해 지배된다. 반대로 동생이 그저 한량이라고 생각하는 몬태규는 첨리가 증거로 내세운 동생의 각종 활동 사항이 그저 유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첨리에게 날을 세운다.
다른 하나는 로맨스다. 윌리엄 소령을 창조해야 하는 몬태규는 직원인 진의 사진과 실제 사연을 빌리고, 그녀가 직접 쓴 연애편지를 이용해 윌리엄의 가짜 연인을 만든다. 이 로맨스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해 몬태규는 그의 약혼반지를 구매한 후 약혼녀의 모델인 진의 손가락에 끼워보기도 하고, 그녀와 함께 클럽에 드나들면서 생생한 연애 감정을 만든다. 문제는 몬태규와 진의 업무라는 단편적 사실이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세 개의 이야기와 삼각관계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진을 짝사랑하는 첨리는 상관과 부하 직원의 관계 이상으로 보이는 둘을 보면서 질투에 사로잡힌다. 첨리에게 몬태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진은 그간 봐온 몬태규의 모습과 그로부터 로맨틱한 감정도 가짜라고 단정 짓는다. 자신이 그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몬태규는 뒤늦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영화는 독일군이 볼 사실과 맥락의 관계를 왜곡시켜야 할 이들이 정작 눈앞에 놓인 퍼즐 조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사실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감동
<민스미트 작전>은 사실과 맥락의 관계 앞에서 눈물 흘려야 했던 이들의 개인적 고뇌와 실패를 다시금 군사 작전을 둘러싼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윌리엄 소령의 시체를 스페인 해안가에 보냄으로써 입안한 작전을 모두 실행에 옮긴 몬태규와 첨리. 이제 본인들도 독일군이 보여주는 파편적인 사실만을 통해 나치의 계획을 간파해야 하는 만큼, 그들은 제한된 사실만 볼 수 있는 독일군이 의도한 대로 잘못된 맥락을 추론하기만을 기도한다. 이때 그들이 독일군의 반응과 시칠리아 상륙 작전의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그들의 개인적 경험을 맛 본 이상 그들이 완전히 잘못된 판단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나치의 스파이를 모두 파악하여 감시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차에 난데없이 등장한 새로운 스파이의 존재가 몬태규와 첨리의 갈등과 삼각 로맨스, 그리고 그들의 작전 계획에 종지부를 찍는 이유다.
한편, 역사가 스포일러인 영화의 끝은 사실과 맥락의 관계를 비틀어 뭉클한 감동을 안기기도 한다. 성공적인 기만 작전 덕분에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 연합군. 경미한 희생이 있었을 뿐이라는 처칠의 전보는 이를 두고 기뻐하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러나 전보의 글자 사이사이에는 검은 연기로 가득한 가운데 사망자와 부상자를 수송하는 시칠리아 해변의 풍경이 숨어있다. 몬태규와 첨리도 긴 시간 매달린 작전이 성공했는데도 소소하게 자축한다. 이렇게 영화는 동일한 사실도 다른 맥락 사이에 놓인다면 기쁨과 슬픔, 또 허망함이라는 상이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짜 윌리엄 소령의 무덤을 비추는 엔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국가적 시점에서는 영웅이지만, 가족에게는 그저 실종된 남매이자 아들이다. 사회 공동체 입장에서는 희생정신의 상징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전쟁의 희생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묘비를 비추는 장면에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정반대로 갈릴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민스미트 작전>은 적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운다는 절박함 만큼이나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해군 정보국장 부관이자 <007> 시리즈의 작가인 ‘이안 플레밍’이 있다. 영화는 ‘민스미트 작전’의 초안이 된 ‘송어 메모’를 작성한 바 있는 그가 마치 007 시리즈의 일부 구절을 집필하는 듯 독백하는 장면으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룬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어떠한 맥락 안에 사실의 조각들을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번민을 전쟁영화의 틀을 빌려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전부 작가라고 외치는 첨리의 대사나, 'M'과 MI6의 존재를 비롯해 해군 장교 출신인 제임스 본드의 유래를 암시하는 대목들도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문제는 이처럼 사실과 사실을 엮는 맥락, 그리고 사실을 통해 진실을 유추하는 이야기가 일관된 주제를 전달하는 것과는 별개로, <민스미트 작전>이라는 제목을 보고 관객들이 기대할 장르적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해 독자들이 납득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듯한 주인공들의 행보에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의 고뇌를 다루는 영화의 감동은 첩보 영화 특유의 긴장감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첩보 장르 치고는 쫄깃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많다. 즉, <민스미트 작전>은 예고편과 포스터, 공개 전 정보라는 사실을 통해 관객들이 만들어낸 첩보 영화 내지는 전쟁영화라는 콘텍스트와는 다른 진실을 선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독일군을 속이려는 영국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연적을 속이는 주인공, 그리고 전쟁영화와 첩보영화의 탈을 썼지만 실제로는 로맨스와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민스미트는 상반된 반응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간파한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탄탄하고 깊은 메시지로 가득한 파이를, 기대와 다른 내용에 속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실망 가득한 파이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꽤나 시원시원한 전개와 템포가 상당히 빠른 편집 덕분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전자의 재미만으로도 러닝타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사실, 맥락, 진실의 관계로 속을 가득 채운 민스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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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세대의 과오를 거침없이 꼬집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45년 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무렵. 독일 탈영병 ‘하인리히(로베르트 마저)’는 '폰 스탄펠드 중령'(알렉산더 셰어)이 이끄는 나치 친위대(SS)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엘자(마리 하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난 그.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엘자의 동생이 SS에 붙잡히고 만다. 이에 하인리히는 엘자와 함께 SS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그들은 유대인이 숨긴 금괴를 찾아 헤매는 SS와 지독한 혈전에 휘말린다.
뼈아픈 반성을 비틀어 담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가 생길 때마다 소환되는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특히 1970년에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사건은 늘 모범예시로 거론된다. 이처럼 일본도 독일처럼 반성하고 사죄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현재 독일 내에서는 나치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우호 발언도 법적으로 금지됐다. 나치 휘장이나 하켄크로이츠를 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 사례도 한계가 있다. 엄밀히 말해서 독일은 전쟁 범죄를 사죄했을 뿐, 식민 지배를 사죄한 적은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례로 약 7만 5천 명이 죽은 나미비아 학살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배상도 하지 않았다. 지원금을 줬을 뿐이다.
피터 쏘워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러드 앤 골드>는 이 간극을 담아낸다. 일단 독일인의 죄책감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2차 대전 당시의 만행을 잊고 싶어 하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뼈를 때리는 지점도 있다. 과연 참회와 반성이 순수한 이유로 이루어졌는지 곱씹어 보게 한다. 그 간극을 풀어내는 방식은 이 액션 코미디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림자가 눈과 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탈영병이 되고픈 독일인
<블러드 앤 골드>는 시작과 동시에 하고픈 말을 쏟아낸다.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땅까지 밟아본 독일 군인 하인리히는 탈영했다. 아내와 아들은 죽었고, 하나 남은 딸을 만나기 위해서 부대를 떠났다. 폰 스탄펠드 중령은 이 탈영병을 뒤쫓는다. 그를 붙잡아 반역죄 혐의로 교수형에 처한다.
이때 하인리히의 대사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을 원한 적이 없다." "억지로 군복을 입혔고 그저 싸웠을 뿐이다." "6년이나 무의미하게 싸웠다." 그는 자유를 쫓는다. 민족을 위해 개인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나치즘에 반기를 든다.
탈영병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나치와 히틀러를 뽑았다. 나치는 자국민을 수탈하고 강제로 동원하고, 폭압을 일삼았다. 그들은 나치 때문에 그들은 가족과 재산, 그리고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당시에 독일 사람들은 나치에 저항하지 못했다.
하인리히는 다르다. 그는 탈영을 선택했다. 독일 사람들 대다수가 가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그의 대사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영화는 탈영병 입을 빌려 수치스러운 역사를 꺼내 들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치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독일이라는 공동체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영화로써 극복하는 셈이다. 근래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이 많은 표를 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의적절한 메시지 같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
솔직함이라는 미덕도 하인리히의 대사에 힘을 실어준다. 카메라가 나치 치하 독일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기 때문이다. 폰 스탄펠드 중령이 금을 찾아 도착한 독일 마을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은 작은 독일 같다. 마을 사람들은 나치와 전쟁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이기적인 욕망에 굴복하고, 또 누군가는 소시민적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독일인 모두가 나치에 부역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폰 스탄펠드 중령은 악한 독일인을 대표한다. 특히 자기모순과 잘못된 신념에 휩싸인 광기를 잘 그려냈다. 그는 엘자를 보면서 이미 죽은 약혼녀를 떠올린다. 둘이 너무 닮았기 때문에. 엘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는 약혼녀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유대인이라서 결혼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를 직접 죽였다. 그가 기괴하게 간직한 반지를 엘자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잘못된 신념이 괴물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리차드 시장'(슈테판 그로스만)과 '소냐'(외르디스 트리베)처럼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매몰된 사람도 있다. 시장은 나치 정권에 동조해 유대인들을 내쫓는다. 소냐는 유대인들이 남긴 재산인 황금을 몰래 빼돌려 한몫 챙긴다.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잘 보여준다. 전체주의 체제 밑에서 선악의 경계가 흐려진 사람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체제에 순응하고 인종학살 같은 범죄에 참가하거나 무감각했던 독일인의 잘못을 과감히 풍자한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에 같은 마을에서 선한 이들은 실제 역사와 다른 일을 이뤄내기도 한다. 성당과 사제가 대표적이다. 2020년에 독일 주교회의는 과거 독일 가톨릭교회가 나치에 협력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당시 교회 자산과 성당은 군사병원으로 활용됐고, 수녀들은 간호사로 파견됐으며, 사제들은 전선에서 독일군의 영적 지도를 맡았다.
하지만 영화 속 사제는 다르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치에 맞선다. 유대인의 금을 탈취하려는 소냐의 음모를 미연에 차단하는가 하면, 금을 찾아낸 나치 친위대에게 역습을 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블러드 앤 골드>는 역사의 가정법을 통해 역사적 과오를 지워내고, 역사를 영화로써 치유하려 노력한다.
피 묻은 금은 어디로 가는가
<블러드 앤 골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반추할 기회를 마련한다. 그 중심에는 금이 있다. 결말에서 유대인의 금은 미군 손에 들어간다. 미군은 몰래 금을 빼돌린 소냐의 차를 폭파하고 그녀가 흘린 금괴를 가져간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역사를 반영한 유머 같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탄압했다. 이에 많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발전과 진보를 도왔다. 아인슈타인처럼.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작중 금은 유대인의 유산이다. 독일인은 그 금을 탐내다가 자멸했다. 소냐는 자기도 모르게 미군에게 금을 가져다 바쳤다. 그러면 미국은 금의 온당한 주인인가? 아니다. 미군이 금괴를 가로채는 대신, 유대인에게 제대로 돌려주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피 묻은 금이 진짜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한 사죄와 배상은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중 금의 행방은 독일의 사죄와 배상에 숨은 국제 역학 관계를 암시한다. 독일은 힘 있는 유대계와 이웃 서방 국가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사과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러시아)처럼 독일 재통일을 위하여 자세를 낮춰야 하는 대상에게만. 또 폴란드처럼 청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국에게만. 나미비아 같은 다른 피해자는 잊혔다.
독일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가 과거 식민지 국가에게 배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강대국들은 아직 피 묻은 금을 돌려주지 않고 챙기기 바쁘다. 국제 사회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열강이 짜 놓은 판 안에서 돌아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치의 잘못을 반성하는 독일의 참회는 순수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군이 최종 승자인 <블러드 앤 골드>의 결말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란티노 향기가 난다
<블러드 앤 골드>의 메시지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보는 듯한 길티 플레져 덕분에 강렬해진다. 타란티노 영화는 폭력적이고, 피를 많이 쏟기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잔인하지는 않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희화화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잔인한 와중에도 관객들이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히 벌 받아야 할 대상을 정확히 지정하면서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최소화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히틀러와 나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악덕 노예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찰스 맨슨 일당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은 두말할 여지없는 악인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그들이 잔인한 대우를 받을수록 쾌감도 커진다. <블러드 앤 골드>도 마찬가지다. 엘자의 농장에서 성당 종탑에 이르기까지 나치와 기회주의자들이 처절하게 죽을수록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된다.
예상을 벗어나는 장르의 변주 덕분에 피 튀기는 액션은 더 짜릿하다. 엘자의 농장을 배경으로 한 초반부는 서부극 같아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평범한 전쟁 영화 같다. 폰 스탄펠드 중령이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은 좀비 영화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로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은 인상을 준다.
장르가 계속해서 변주되다 보니 분명한 선악구도도 뻔하게 흐르지는 않는다. 덕분에 긴장을 놓을 수 없기도 하다. 거칠 것 없는 액션과 코미디의 향연 덕분에 무거운 역사적 배경과 주제를 떼 놓고 봐도 매력이 넘친다. 종합하면 <블러드 앤 골드>는 철저히 독일의 시각에서 작은 규모로 그려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같아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일관된 재미와 교훈으로 무장한 채 시작부터 끝까지 내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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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표류기
그림자꽃
줄거리
평범한 평양 시민 김련희 씨는 2011년, 간 치료 차 중국에 방문한다.
병원비는 예상보다 비쌌고, 그녀는 브로커에게 ‘한국에선 금방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 속아 북한 여권을 뺏기고 한국에 들어온 김련희 씨.
그로부터 11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남한 표류기
숨은 의미 찾기
영화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김련희 씨가 한국을 떠나 북한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인권보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간첩은 돌려보내서는 안 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를 돕거나, 상처 준다.
김련희 씨는 대놓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에는 익숙한 듯했다. 물론 댓글을 읽는 그녀의 표정은 서글펐지만. 들리지 않는 척 무시하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한다. 사실 그보다 그녀를 더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위로하는 척,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그녀를 상처 주는 사람들이었다.
"북한 여자들은 왜 다 획일화되었느냔 말이야."
그저 분위기를 띄우자고 노래를 한 구절 불렀을 뿐이다. 그랬더니 북한 노래는 하나같이 똑같다며 체제를 들먹이는 사람들. 다 같이 즐기자고 노래해 보라며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노래가 끝나니 체제가 문제라며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김련희 씨의 표정은, 대놓고 욕지거리를 날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보다 몇 배는 더 씁쓸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하고, 예술로 하나가 될 거라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한 배신의 몫은 훨씬 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때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마주할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
이승준 감독은 멀게만 느껴지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비슷한 점을 찾아보자고 생각해서 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노라 고백했다. 그 의도에 충실하게, 영화는 체제에 대한 토론이나 정치적 싸움을 담기보단 우리네 모두가 살아가는 영상을 담아내려 애썼다.
그들 역시 사람 가득한 출근길을 지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며 회포를 푼다. 특히 김련희 씨와 그의 딸인 리련금 씨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이 겹쳐 보이는 장면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토록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다를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이 왜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더불어 주인공인 김련희 씨는 가지 못하는 평양의 모습을 영화에서 담아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김련희 씨의 가족인 리금룡 씨의 리련금 씨가 생활하는 모습은 이승준 감독과 친분이 있는 핀란드 영화감독이 찍어온 것이라고 한다. 같은 나라 사람인 이승준 감독도, 평양이 고향인 김련희 씨도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다른 나라 사람이 대신 만나고 온다는 것이 어딘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김련희 씨가, 또한 우리가 그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건 오직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영화 내에서 김련희 씨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던 장면은 예정에 없던 장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반갑고 아쉽게 느껴졌을 통화가, 분단된 쓰라린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켜준다.
"너가 북한에 돌아가는 것은, 그거는 이제 안 되는 거야."
고된 타향살이에 지친 김련희 씨는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을 당시 함께 건너온 동지들을 만났다. 그동안 못 나눈 안부와 한국에 건너올 때의 급박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던 동지들은 김련희 씨에게 북한은 더 이상 갈 수 없노라고 못을 박았다. 그 말은 앞서 자신을 상처 주던 남한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묵직하고 날카로웠다. 한때는 목숨을 의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앞장서 그녀더러 포기하라는 가혹한 현실을, 그녀는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평양 시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남한의 체제가 잘못되었고 이념과 사상이 달라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평양시민이라는 단어는 '어디의 누구'가 아닌 '누군가의 누구'로 살고 싶은 그녀의 소망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뿐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자신을 '서울시민'으로 칭하는 것을 두고 우린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에겐 서울에 마음을 뉠 집이 있고, 의지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스스로를 '서울'이라는 공동체에 속해있음을 약속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김련희 씨는 서울 어딘가에 누워 있어도,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어도 진정 쉬지는 못한다. 그녀가 속해있는 공동체는 평양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는 '평양시민'이란 평양에 있는 나의 집, 나의 가족들의 김련희로 살고 싶노라고 말하는 것임을, 왜 우리는 또렷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기 직전, 스크린에는 탑골공원 근처를 배회하는 김련희 씨의 뒷모습으로 가득 찼다. 문득 해외여행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나와 다른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 속에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나. 그 순간의 나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어지러운 거리를 방황하는 김련희 씨의 뒷모습에 담긴 것은 설렘이나 기대가 아닌, 혼란과 당혹스러움이었다.
나는 내가 원해서 그 거리로 나섰다. 거리를 가득 매운 인파 속에서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그 사실에 짜릿함을 느꼈다. 하지만 김련희 씨는 자신의 의지로 한국에 온 게 아니다. 원치 않았던 여행, 길을 잃었지만 아무에게도 길을 물을 수 없는 게 그녀의 처지다. 내겐 너무나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들의 스침이 그녀에게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이 되어 지나갔을 일이다.
"길어야 1년, 2년일 거야."
종각 거리를 배회하는 뒷모습에는 김련희 씨가 딸과 통화하는 음성이 겹쳐서 흘러나왔다. 언제쯤 오냐는 딸의 물음에 김련희 씨는 길어야 1, 2년이라며 딸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11년째 남한 땅에 표류 중이다.
'북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닌, '가족에게 가는' 길
감상평
“안녕하세요. 저는 평양 아줌마 김련희입니다.”
영화를 보기 앞서 이승준 감독님과 김련희 씨 두 사람이 함께 올라 짤막한 무대인사를 남겼다. 그때 김련희 씨는 자신을 ‘평양 아줌마’라고 소개하며 수줍은 듯 웃었다. 그 짧은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가슴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울림이 가득 퍼져나갔다. 맹숭맹숭한 그런 기분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15년도부터 찍기 시작해 19년도에야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김련희 씨는 혼란스러운 한국 역사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겪고 느끼며 살아왔다. 간간이 느꼈던 절망과 희망들의 폭이 너무나도 커서,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았다. 북한과 멀어지는 것 같아 초조하다가도 다시 가까워지는듯해 안심하고. 이제 곧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 설레다가도, 계속해서 출국금지명령을 받아 절망하는 과정이, 비단 김련희 씨 개인의 것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가족이 있잖아요. 그 누구도 가족을 뺏겨선 안 돼요."
김련희 씨의 말마따나, 인간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살았든 죽었든, 좋든 싫든 누구나 가족이란 것이 있다. 이념과 체제 너머, 그녀는 인류가 기본으로 누려야 할 '행복'이라는 권리를 빼앗겼다고 호소한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의 북행을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족이 북에 머물러 있어도, 지금은 대립 상태이니 평생 거기에서 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우린 그녀의 문제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그만이다. 가족하고 살고 싶다는 말,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잘못된 게 아니지 않은가.
기막힌 우연처럼, 영화관을 나서며 이어폰을 꽂았더니 투애니원의 '컴백홈'이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그저 흥얼거리며 들었을 그 노래를 가사 한 자, 한 자 곱씹어가며 들었다. 나는 김련희 씨가 '북한으로 돌아가길' 바라진 않는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길',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이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으나, 솔직하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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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West Side Story, 2021
으레,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본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코로나19"로 개봉일을 1년이나 연기했습니다.
먼저 본 사람들의 입에선 "아카데미 수상"을 높게 점할 만큼 평했으니 재수를 택한 게 아쉬웠는데요.
그렇게, 개봉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번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와 함께 "여우조연상"까지 총 3개의 상을 수상하며 앞으로 다가올 "아카데미"의 전망을 밝혔습니다.
다만, 이런 호평과 달리 벌어들인 총 수익은 $88,285,000로 제작비 1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보통 5대 5로 극장과 분배되는 구조를 생각하면, 최소 2억 달러는 벌어야 영화의 제작비가 충당되거든요.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고 추운 극장에는 캐럴 대신에 퍼질 노래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대로 보낼 수는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한창 개발 중인 "뉴욕"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샤크파(푸에리코토리코 갱단)"과 "제트파(백인 갱단)"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집단과 관련된 "토니"와 "마리아"는 한눈에 반하는데요.
그리고 이들도 이런 서로의 상황을 알기에 싸움을 말리고자 나서지만, 갈등은 점점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데...삼천포로 빠지는 건 뭘까?
1.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다.
아시다시피,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거며 쥐고 나타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여타 감독들에게 느껴본 능수능란한 솜씨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다수의 오락 영화와 드라마들을 연출해온 필모를 보듯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야기를 읽는데 좋은 작품입니다.
물론, 그의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라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나 보여주는 이야기가 놀랍게도 현재와 비슷하거든요.세기의 명작이라는 이유는 있다.
앞에서 말한 "샤크파(푸에르토리코)"와 "제트파(백인)"는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면적으로 쓰지 않고 보다 복잡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지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며 행한 정책을 살펴보면, "반이민 정책"이 있습니다. -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이민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비자 발급의 제한을 걸었죠.
근데, 재밌는 건 "트럼프" 자신도 이민자의 후손일 만큼 미국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입니다. (어찌 보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죠)
그 시작으로 돌아가면, 엄연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했을 때도 그들은 엄연히 외국인의 위치였으니까요.2. 작금을 관통하는 공감대
그런 점에서 이들을 중재하는 장면은 흥미롭습니다.
경찰들이 "제트파"에게 "너희들이 감옥에 가있는 동안 여기 비싼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고, 너희는 푸에르토리코 경비원들에게 쫓겨나겠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특히, 본 작품에서 "샤크파"는 집과 가족, 그리고 학교까지 다니는 것과 다르게 "제트파"는 직장과 집이 없는데 역사적인 배경에 빗대어 보면, 역전된 이들의 위치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들에게 "연대"라는 메시지를 꺼냅니다.얼른 사과해!
해당 작품에서 "도시 개발"로 인해 모두가 쫓겨나는 상황은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분위기를 제시합니다.
임대료가 높아져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현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떠오르게 만드는데, 이로써 싸우기보다는 뭉쳐야 함을 저들뿐만 아니라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까지 끌어들이는데요.
영화가 제시한 갈등의 문제 말고도 "젠더 이슈"와 같이 많은 대립들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원론적이나 가장 확실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3. 느껴보지 못했던 뮤지컬의 전성기가!
이외에도 해당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손꼽자면, "의도적으로 스페인어 자막은 해석하지 않았습니다"라는 텍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번역가의 의도가 아닌 감독 본인의 의도로 '이들의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미번역'은 해당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선 "뮤지컬" 그 자체의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뮤지컬"은 "무성영화"고 "유성영화"의 과도기에 서있는 장르이거든요.모든 뮤지컬에 보내는 찬사 어린 표현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에서 관객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과장스럽게 느껴질 만큼의 행동과 얼굴 표정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에서 보여주는 군무와 "클로즈업"과 같은 촬영기법은 관객들이 해당 캐릭터들의 감정들을 읽어야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유성영화"로 와서 그 역할들이 유치하게 보이게 변했지만 이를 "미번역"함으로 접해본 적 없는 그때 그 시절의 뮤지컬을 경험케 하는데요.
'과연, 이게 처음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맞는 건지?'를 의심할 정도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받는 감동은 끊이지가 않습니다.4. 히트곡이 이렇게나 어렵다!
이렇게, 자막을 읽을 수 없기에 이들이 보여주는 '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가야겠죠? - 아니면, '몸으로 말해요'밖에 더 안되니까...
극 중 "샤크파(푸에리코토리코 갱단)"과 "제트파(백인 갱단)"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두고서 경쟁하는 조직들인데, 춤으로 이를 보여주니 우습기도 할 겁니다.
근데, "춤"은 인간에게 있어 생존을 이어나가게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역사적으로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의 상대적으로 많았던 일본군을 대항해 보이는 군사보다 많고 크게 보이려 했던 전략이었고, "탱고"와 같은 춤은 "같이 춘 사람과의 사랑에 빠진다"라는 속설처럼 세대 간의 이어짐으로 연결됩니다.이야기가 술술 읽혔다면, 듣는 건 어땠을까?
쓰다 보니 많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이야기는 앞선 수상을 납득하게 만들고 이후 "아카데미"에서의 활약을 기대케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본연의 매력을 뽐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안셀 엘고트"의 비중은 너무나도 적으며 귀에 쏙쏙 박힐 넘버의 부재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서 말한 '과연, 이게 처음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맞는 건지?'라는 의심은 여기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외에도 동물들도 어떤 자세에 따라서 구애와 경계로 감정을 보여주니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보여준 춤이 그토록 격렬했던 건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개봉 연기에는 주연 배우 "안셀 엘고트"의 "미성년자 성폭행"도 있었다.
※ 극 중 "마리아"의 하얀 드레스와 빨간색 허리띠의 옷차림은 "백설공주"를 연상케하는데요. 공교롭게도 그녀의 차기작은 "디즈니"에서 제작되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백설공주"에 캐스팅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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