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3-03-15 11:57:51
첫사랑 이야기는 거들 뿐
리코리쉬 피자 리뷰
경고: 스포일러 주의!
폴 토머스 앤더슨이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했을 때 들었던 걱정.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로맨스 영화처럼 추억팔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첫사랑에 대한 풋풋함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껍질을 벗겨보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과 남녀끼리 벌이는 처절한 투쟁들로 가득하다.
두 주인공 알라나(알라나 하임)와 개리(쿠퍼 호프먼)의 사이는 키싱구라미 같다. 영화 쉬리에서 암수가 서로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사랑의 상징이 된 물고기다. 그러나 이 두 마리는 키스가 아니라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 물고기가 죽으면 잡아먹는다고 한다. 사랑이라곤 1도 없는 모습이다.
리코피쉬 피자는 표면적으로는 개리와 알라나의 서툴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내세운다. 그러나 추억팔이를 핑계 삼아 문제 있는 남자들을 닮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 개리, 그리고 당시 사회의 한계 때문에 선택지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능력 있는 여자 알라나를 통해 그 속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영화는 그녀가 만나는 문제적인 3명의 남자를 통해 그 한계를 보여준다. 술을 먹고 다른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영화 제작자, 알라나가 다침에도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늙은이 등. 문제적인 남자들 뿐이다. 그 탓에 개리가 정말 착한 남자로 보일 지경이다. 개리도 알라나와 의견이 안 맞았던 탓에 계속 다퉜음에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결국 개리가 지닌 야망은 성취된다. 알라나는 개리의 부인이 되고, 그들은 함께 거리를 달려나가며 그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개리의 뒤에는 여전히 3명의 문제적인 남자들이 남아 있다. 개리가 변하지 않는 한 알라나는 이후 개리의 꼭두각시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씁쓸함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그 씁쓸함은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 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결론을 전달한다. 그러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한계와 씁쓸한 현실도 같이 드러낸다. 마치 감초(licorice)와도 같은 달콤씁쓸함이다. 그 감초 껍질 뒤의 달콤씁쓸함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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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앰뷸런스 (Ambulance , 2022)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범죄
러닝타임 : 136분
감독 : 마이클 베이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잘레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저에겐 4점짜린데 취향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앰뷸런스 줄거리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두 형제는 구급 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되는데....
영화 <나쁜 녀석들>로 데뷔해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 그라운드>등, 거침없는 액션 영화들을 남긴 ‘마이클 베이’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개봉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매 작품마다 특유의 쫀득하고 타격감 있는 액션을 보여주며 “제대로 폭파하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무려 5편이나 끌고 가며 일각에선 ‘개연성도 폭파시킨 영화’라는 아쉬운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앰뷸런스>에 우당탕탕 때려 부수는 액션을 제외하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내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비하면 확실히 개연성과 폭발. 두 가지를 모두 잡은 느낌이랄까. CG는 S**t이라며 어지간한 건 직접 다 폭발시키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뚝심과 최근 그의 작품에서 찾기 힘들었던 감정선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차기작 촬영이 미뤄지자 소소하게 찍어보자(폭파시켜보자)는 느낌으로 유니버셜 픽처스의 회장에게 새로운 영화 제작에 대해 어필을 했고, <앰뷸런스>의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트랜스포머에 비해선 약간 힘을 덜 주고 찍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액션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드론이 추가되며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게 된 키메리의 움직임과 제이크 질렌할의 아슬아슬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빛, “언제 터지나” 기다릴 것 없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전개와 약간의 서사까지 더해지니 콕 집을 큰 단점이 없다.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
그냥 하는 말, 농담이 아니라 <앰뷸런스>는 영화관에서 만나봐야 할 영화다. 시원하게 터져나가는 액션을 극장의 화면과 스피커로 만나보는 것만큼 스트레스 풀기에 좋은 것이 또 없다. 개봉 전에는 IMAX와 돌비 외 특별 포맷 상영이 없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왜 이 영화가 4DX 포맷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사족 전부 제외하고 최소한의 설명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이기에 거의 2시간 내내 카 체이싱 장면이 이어지는데, 2시간 내내 모션 체어에 앉아 이리저리 후두려 맞을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4DX가 아니더라도 화면 자체가 입체적이고 어질어질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딱 ‘마이클 베이’다운 액션신들이 가득하기에 이건 기회가 될 때,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막힘없이, 멈추지 않는 질주
이야기의 구조는 보통 기승전결로 나뉜다. 2시간 정도 되는 영화라면 30분 정도는 배경 설명을 하고, 30분이 넘어갈 때쯤에 제대로 된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근데 <앰뷸런스>는 바로 은행 털기! 카 체이싱!!을 외치며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누가 은행을 털어요?”라며 영화의 소재가 식상하다고 툴툴댈 틈도 없이 일단 냅다 달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몇 번이고 대사로 강조한다. “멈추지 않아.”라고. 정말 이 영화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긴 추격전 중간에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넣어뒀으니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어깨가 뻐근했을지도.
LA 곳곳을 터트리는 마이클 베이
은행 강도는 빌드업이었을 뿐, 이 영화에서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LA 곳곳을 훑는 앰뷸런스의 모습이다. 처음엔 추격전에 최적화되었다고 보긴 어려운 커다랗고 눈에 띄는 앰뷸런스를 추격전에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 외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앰뷸런스 안에 탄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간단하게 끝낼 수 없는 긴 추격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혈관처럼 뻗어있는 LA의 도로, 골목을 달리며 온갖 것들을 터트리고 부수고 밀어버린다. 이 정도면 마이클 베이 감독이 LA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LA를 싫어해서 폭파시키고 싶어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제이크 질렌할의 두 가지 눈빛
<앰뷸런스>를 무조건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제이크 질렌할’때문에.
이 영화의 주연은 세명이다. 형 대니를 맡은 제이크 질렌할, 동생 윌을 맡은 아히아 압둘 마틴 2세, 구급 대원 캠 역할을 맡은 에이사 곤잘레스. 제이크 질렌할을 제외한 두 배우 역시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극의 전체적인 텐션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게도 ‘제이크 질렌할’과 그의 캐릭터 대니다.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형 대니와 마지막으로 큰 한탕을 노리는 미친 은행 강도, 두 정체성 사이를 재빠르게 넘나드는 그의 연기에 이번에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큰 눈은 멜로나 서정적인 연기에도 잘 맞지만 광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갑작스레 폭발해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일 때면 자연스레 “이 캐릭터 정말 미친놈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제대로된 잔잔한 미친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언젠가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진짜 본격적이고 폭발적인 광인 연기를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은근 괜찮게 다가오는 서사
앞에도 언급했듯 <앰뷸런스>는 개연성까지 부숴버린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는 대니와 윌 형제의 뜨끈한 형제애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위선과 갈등, 진심이 뒤섞이며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게 맞을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누군가의 선택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본론부터 / 이야기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인 동생 윌은 해병대에 지원해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남은 건 공로 훈장뿐이고 연금도, 제대로 된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윌은 아내 에이미의 수술을 위해 보험금을 받으려 하지만 임상 수술이란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고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자 그는 마지막 보루로 형 대니에게 찾아간다. 윌은 백인인 대니의 집안에서 입양아로 자랐다. 대니는 윌을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둘은 끈끈한 우애를 유지해왔지만 아버지와 얽힌 상황 때문에 갈라져 살게 된다.
윌은 돈이 필요했고, 대니는 때마침 큰돈을 벌 마지막 은행 강도를 계획한다. 계획 시작까지 단 5분 만이 남은 상황,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니의 말들이 몰아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커다란 이유에 윌은 차에 함께 올라탄다. 이런 상황에서 휩쓸리지 않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앰뷸런스>는 시작부터 강하고 빠르게 보는 이들을 휘어잡으며 시원하게 전개된다. 가장 거침없다고 느꼈던 건 여러 명으로 시작했던 강도 동료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갈 때였다. 버켄스탁을 신은 동료와 차를 잘못 댄 동료, 윌을 배척한 동료 등등… 이름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주변인들을 밀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딱 추격전에 필요한 인물만 남게 되고, 가벼워진 몸체로 거침없는 액션이 시작된다.
추격전 중간에 삽입되는 잠깐의 쉬는 시간
은행을 벗어난 순간부터 이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숨차게 달리는 와중에도 대니의 입과 주변 경찰들을 통해 아주 잠깐의 쉬는 시간을 선사한다. “진정하고 냉정을 찾아”, “아타리 게임기처럼 생겨서 헷갈린단 말이야!”, “이거 캐시미어라고!”라고 윽박지르는 대니의 대사와 플라밍고, 반장의 커다란 개 나이트로, 80년대 음악으로 찾는 잠깐의 힐링 등등… 옅은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순간들이 꽤 많다. 여기서 더 재밌었던 건 영화에 나온 그 커다란 개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반려견이라는 사실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해가 질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반려견이 차에 타주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마치 반려견의 눈이 “나보고 이 작은 차에 타라는 거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근데 나였어도 그 몸으로 좁은 차에는… 타기 싫었을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갈등이 교차하는 앰뷸런스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앰뷸런스 안에선 별일이 다 펼쳐진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구급 대원 캠, 형과 예전 같은 삶의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있는 윌, 동생의 탈출과 돈을 모두 챙기고 싶었던 대니. 윌과 대니는 함께 멈추지 않는 질주를 하기도 하고, 인질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반쪽자리 선의 앞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대니는 끝까지 형으로서 동생을 감싸고, 윌은 끝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추격전의 끝에서 되새기는 과거의 마음가짐 / 결말 해석
형으로서 보여준 모습과 엔딩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대니가 ‘미친 은행 강도’라기보단 왠지 윌과 캠의 초심 찾기를 위한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윌은 오늘 아침 은행 강도가 됐고, 캠은 오랜 구급 대원 생활에 지친 것인지 사건 현장을 떠나자마자 환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는 ‘가장 같이 일하기 싫은’ 구급 대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추격전의 끝자락에서 다시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따뜻한 구급 대원의 시선을 되찾게 된다. 잔인한 은행 강도였던 양아버지를 떠나 자원입대를 결정한 정의로운 과거의 윌과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의 손을 잡는 구급 대원 캠의 모습을 말이다. 윌은 대니에게 총을 겨누면서 은행 강도의 피를 이어받은 형으로부터 인질 두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 되었고 아내를 위한 돈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캠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병실을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는다.
두 사람에겐 이 추격전이 각성의 계기이자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멀리서 지켜본 이의 시선으로는 대니만 애잔하게 되었다. 대니가 죽는 순간에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보안관 놀이 장면도 어째 아련함보단 약간의 어이없음을 불러온다. 그럴 거면 쏘지 말든가…!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을 통해 대니를 나쁘기만 한건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무조건적으로 져주던 멋진 형이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행 강도를 하다가 죽은 게 아닌 끝까지 동생을 도와주려다 유명을 달리한 형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한걸 지도.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기 어려운 시작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이 형제를 응원하고 있었기에 꽉 닫힌 해피엔딩이 되길 바랐다. 엔딩이 조금 아쉬운 반쪽짜리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이만하면 마무리까지 괜찮게 맺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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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값하는 재난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잠에서 깬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에게 '아만다'(줄리아 로버츠)는 선언한다. 빌라를 빌렸으니 당장 그곳에서 휴가를 보낼 거라고. 그렇게 클레이와 아만다, 아들 '아치'(찰리 에반스)와 작은 딸 '로즈'(파라 매캔지)는 여행길에 오른다. 기대 이상으로 호화로운 빌라 덕분에 갑작스러운 휴가는 꽤 즐거워 보인다. 자녀는 수영장을 즐기고, 부부는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해변에서부터 휴가가 꼬인다.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던 도중 거대한 유조선이 해수욕장을 덮친 것. 급히 빌라로 되돌아 오지만, 와이파이와 핸드폰 데이터, 심지어 TV까지 먹통이 되면서 아만다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을 빌라 주인이라고 소개한 'G.H.'(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딸이 불쑥 찾아오기까지 한다. 그렇게 아만다의 휴가는 재난이 되기 시작한다.
재난 영화의 클리셰에 도전장을 던지다
건물과 다리가 무너진다. 검은 연기가 치솟고, 차들은 물에 잠기며,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군인과 경찰의 무의미한 고함이 사이렌과 헬기 소리 사이에 갇힌다. 자유의 여신상도, 타워 브리지도, 에펠 탑도 논외는 아니다. 성 베드로 성당이 갈라지면 확실해진다. 신조차 사람을 외면했다고.
재난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2012년처럼. 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영화는 없다. 이야기 구조도 공식화되어 있다. 재난을 예측한 인물은 정부나 기관에서 외면받는다. 일부 음모론자만 위기를 눈치챈다. 동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일 때는 이미 늦었다. 이처럼 클리셰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뻔하다고 비판받을지언정 실패하지 않으니까. <2012>가 그랬고, <투모로우>가 그랬다. <해운대>나 <타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강력한 권위는 도전을 유발하는 법. 클리셰에 도전하는 영화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도 그중 하나다. 샘 에스마일 감독은 미국 정부가 붕괴하고 뉴욕이 파괴되는 재난을 그려냈다. 하지만 자극만을 위한 이미지 전시는 찾을 수 없다. '세상을 등진다'는 제목대로다. 대신 사람을 비춘다.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을.
현실로 튀어나온 재난 영화
물론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가 재난을 아예 안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재난을 다룬다. 판에 박힌 재난 영화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를 표한다. 극 중 재난은 디지털 재난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네트워크가 차단되면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상황을 하나씩 선보인다. 특히 매 순간마다 익숙함을 거부하는 전복적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다.
유조선 장면이 대표적이다. 자동 항법 시스템이 고장 난 유조선이 해수욕장을 들이받는다. 이 장면에서는 영상과 음성의 불일치가 돋보인다. 영상은 평화로운 휴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아만다와 클레이는 일광욕을 즐기고, 아치는 썸녀랑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로즈의 시점에서 유조선이 점점 커지자, 음산한 배경 음악이 서서히 존재감을 내뿜는다. 충격적인 이미지 없이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일깨워진다.
비슷한 아이디어는 다른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뉴욕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차들로 막혀 있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라면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는 다르다. 막 출고된 테슬라 전기차들이 자율 주행 중에 통제권을 잃고 충돌한 결과 길이 막혔기 때문. 이 발상의 전환 덕분에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재난은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이러한 장면은 관객의 태도를 바꾼다. 많은 재난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서 관객과 영화의 거리는 멀어지고, 관객은 영화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므로. 재난은 그저 눈요깃거리인 셈이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다르다. 부조화와 발상의 전환으로써 거리감을 좁힌다. 넷플릭스 작품임을 고려하면 특히 인상적이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재난을 맛볼 수 있으니까.
가짜 고립과 진짜 고립
스크린으로부터 일상으로 디지털 재난을 옮겨온 덕분에,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높아진다. 영화는 재난이 초래한 고립을 미시적 관점에서 파고들며 진짜 재난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 질문은 오프닝에서부터 암시된다. 아만다는 가족 휴가를 선언한다. 사람들이 싫어졌으니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가득한 도시에 지쳤다면서.
이 장면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연출이 돋보인다. 아만다는 제4의 벽을 넘듯이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본다. 자기가 얼마나 도시에서 지쳤는지, 사람들이 싫어졌는지 제발 알아달라고. 제목대로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결심이 결코 허황되거나 과장되지 않았다고. 그런데 카메라도 지지 않고 아만다의 얼굴, 그리고 눈을 연이어 클로즈업한다. 마치 "진짜로 세상을 등진 채 고립되고 싶어?"라고 되묻는 듯이.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녀의 결심이 얼마나 미약했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고립을 자처했지만, 아만다는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진정한 고립의 실체를 마주한 후에야 꿈꾸던 휴가가 가짜 고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와이파이와 데이터가 먹통이 돼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그녀는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빌라 주인인 G.H.가 딸과 함께 찾아왔을 때 그녀의 무력함은 극대화된다. 메일도 볼 수 없어서 그들의 신분을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자, 그녀는 극도의 불신을 숨기지 못한다. 도시가 이미 정전됐고 마비되었다는 G.H.의 증언을 무시하고, 그토록 싫어했던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정할 정도로.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던 사람이 누구보다도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어 한다.
진정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법
따라서 남은 이야기가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보여준다고 해도 놀랍지는 않다. 특히 아만다와 가장 반대되는 캐릭터가 가장 세상과 적극적으로 연결된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바로 로즈다. 그녀는 일견 젊은 세대의 단점만 보여주는 인물 같다. <프렌즈>를 보지 못해 불안해하고, 태블릿과 TV가 안된다고 보채는 모습은 과장 보태 중독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극 중 유일하게 뭔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조선도 가장 먼저 발견했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니 그들을 추적하자는 것도 그녀만의 발상이다. 다들 집에서 상황을 기다려 보자고 할 때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기도 한다. 그 결과 그녀는 지하 벙커를 찾아내고, DVD로 그토록 염원한 <프렌즈> 마지막 회를 보는 데도 성공한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가 진정으로 보여주려는 재난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로즈의 행적은 꽤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연결이 끊긴 상황 그 자체를 재난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유조선 오작동, 자율 주행차 충돌, 비행기 추락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클레이, G.H., '대니'(케빈 베이컨)의 삼자대면에서 볼 수 있는 양극화가 그 재난이다. 정보의 바다에서는 정보를 갖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로 수동적인 가족과 이웃은 재난을 악화한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겠다는 아만다의 결정이 시작이다.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까지, 세상과 연결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집에서 기다리자"는 대사는 스스로 괴사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무력하게 정보를 기다릴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일 테니. 로즈가 벙커를 찾아내듯이.
마지막 단추만 잘 뀄더라면
이처럼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형식도 내용도 신선한 재난 영화임이 확실하다. 다만 마무리가 아쉽다. 우선 미스터리를 클리셰로 채우는 선택이 문제다. 영화는 중국이나 이라크가 배후에 있는 테러로 인해 미국 사회가 정지되었음을 암시한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우주에서 지구를, 달에서 지구를 비추며 극도로 끌어올린 긴장감을 재난의 정체나 뒷배가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듯싶다.
숨은 정보를 안일하게 알려주는 방식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애널리스트인 G.H.의 입을 빌려 시청자가 궁금해할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말만 있을 뿐, 믿을만한 추가 정보나 증거는 없다 보니 착실히 쌓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무너진다. 차라리 세 번째 인물인 대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 어떤 확답을 내놓지 않았으면 마지막까지 재난의 실체를 감추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연결성도 떨어진다. 영화 중간에는 의문스러운 장치가 많다. 빌라와 헛간을 둘러싸고 바라보는 사슴 떼, 수영장을 점령한 홍학이 대표적이다. 중간중간 귀를 찢는 듯한 굉음, 아들의 병을 유발한 벌레도 있다. 이들의 등장은 작위적이다. 필요한 순간에 등장해 분위기를 환기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큰 그림은 끝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두 마디 단편적인 대사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몰입도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대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드러난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그렇지 않다. 독특한 장치로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 간의 그물을 만드는 데는 끝내 실패했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그랜드슬램으로 시작해 블론세이브로 끝난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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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등을 밀며 성장하는 우리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홋카이도를 누비는 빨간 차. 그 안은 어쩐지 수상한 한 남자와 젊은 남녀의 조합으로 심상치 않은 여정임을 예고한다. 낯선 이의 차에 올라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야말로 과거의 소재이기에 낭만이 확보된다. 어쩐지 어색함 만이 감돌 것 같은 이 조합은 예상외로 시끌벅적하고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여정으로 향한다. 고전 로드 무비의 정석과도 형태를 보여주며 영화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홋카이도 길 위를 누비는 빨간 차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빨간 차가 나오는 일본 영화는 그닥 낯설지 않다. 여러 화제를 모았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 역시 차는 중요한 소재다. 내가 오롯이 소유하는 재산이자 동시에 날 어디론가 이끌어 줄 수 있는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목적지는 내가 정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주는 것은 차이나 결국 조종간은 내가 잡고 있기에 차에 탄 나는 매 순간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그것에 대한 부담감도 자유도 여정도 영화는 이야기한다. 4월 2일자로 개봉을 앞둔 <행복의 노란 손수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껄렁대는 청년 긴야가 모든 것을 털어 산 이 빨간 차는 뜻밖의 사람들을 태우고 홋카이도를 누비며 갖가지 사건들을 겪게된다. 그 무엇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젊은이의 차답게 목적지도 없이 그저 기분에 따라, 도로를 따라 달릴 뿐이다. 하지만 그런 차엔 갖가지 이야기를 담은 세 사람이 타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하나 씩 잃은 상태로 이 차에 오르게 됐다. 그렇기에 당장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과연 나는 하룻밤 상대만을 원하나? 그저 기분전환 만을 원하나? 일자리만을 원하나? 이 빨간 차도 그 답을 알려주진 못한다. 다만 장시간 달려야 하는 좁은 평수의 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점점 차가 밟는 도로의 색이 짙어질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다양한 구도로 인물과 차, 도로를 번갈아 조명하며 한치 앞도 모르겠는 여정에 메세지를 뚜렷이 한다.
물론 과거의 작품임을 감안해야 하는 장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면 긴야와 아케미가 각각 어떤 성장을 겪게 되는지 이미 성장을 마친 어른인 유사쿠가 무엇을 되찾는지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첫 등장부터 실연의 아픔을 겪은 긴야는 그야말로 날라리, 양아치란 말이 어울리는 청년이다. 모든 것을 털어 '마쓰다 파밀리아'를 살 때마저 문에 걸려 넘어지는 젊은 긴야는 매 순간 가볍게 몸을 던지며 넘어지기 일쑤다. 이러한 긴야의 모습은 영화 러닝 타임 동안 확실히 관람객의 웃음을 책임지지만 어쩐지 덜 자란 아이처럼 그 무엇에도 조심성 있게 해내지 못하는 모습으로도 역시 그려진다. 이런 미성숙의 모습은 아케미를 대할 때도 드러난다. 아케미와의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는 중반부까지도 아케미를 그저 하룻밤 잠자리 상대로 생각한다. 그녀가 보이는 거부 표시를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며 그저 관계에 있어 우격다짐으로 나올 뿐이다. 두 번째 숙소에 들어갈 때 역시 유사쿠의 훈계를 어리둥절하게 이해했던 그는 자꾸만 여정에 유사쿠를 끼워넣으려는 아케미의 행동에 삐치기도 한다. 하지만 유사쿠의 이야기에 점점 가까워질 수록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유사쿠의 여정을 응원하고 그의 선택에 눈물 흘린다. 아케미가 재차 유사쿠와 여정을 이어나가자는 긴야의 선택에 정말이냐 되묻는 대사가 있는 만큼 영화도 역시 그의 변화를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 영화가 후반부로 나아갈 수록, 긴야가 사람이 되어갈수록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게 된 청년의 의미를 그 차에 오른 관객 역시 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케미에게 역시 나타난다.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도쿄에서 실연을 겪은 아케미는 숫기 많은 청년으로 자신에게 돌진하는 긴야에 부담스러움을 표하지만 그와 내내 여정을 함께 할 정도로 호감이 있음을 보인다. 긴야의 성장 포인트가 미성숙함에 있다면 아케미의 경우 자신감이 없다는 것에 있다. 다른 여자를 찾아보라는 대사나 기껏 용기를 내 차를 몰았을 때도 긴야의 마쓰다를 건초더미에 처박아 혼나는 등 성장에 기회에 있어 여러 차례 좌절의 순간이 찾아오나 그는 어쩌면 유사쿠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집으로 돌아가보자 외치는 인물로써 성장한다. 러닝타임 중 유사쿠가 물리친 깡패에 행태에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것 역시 아케미이다. 숫기가 없어서 긴야의 질문에 대답조차 제대로 못하던 아케미는 그렇게 점점 밝은 목소리를 되찾아가고, 긴야가 눈물 흘리는 순간에 기꺼이 달래주는 인물이 되어간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조차 몰랐던 스스로를 발견하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유사쿠의 어쩌면 가장 익숙하고도 뻔한 이별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출소 한 낯선 아저씨와의 여정 그리고 순탄치 않은 홋카이도 길은 그들에게 확실한 시간을 제공해 준 셈이다.
유사쿠와 아케미 일행은 분명하게도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로 나뉜다. 서서히 밝혀지는 유사쿠의 과거는 일본의 종전 시절과도 맞닿아있으나 아케미 일행의 삶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의 삶을 보다 멋대로 결정할 수 있으나 무엇에 가로 막힌 젊은 세대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 그런 유사쿠의 등을 젊음의 패기로 힘껏 밀어주는 연대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그야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 이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침 홋카이도로 모이게 된 두 젊은 남녀는 도쿄에서 각각 실연을 겪고 떠나온 여행이라는 것에서 타인의 사랑을 위한 여정에 기꺼이 참여하며 자신들에게 결여되어있던 부분들을 성장시키고 끝내 사랑이라는 것을 찾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사쿠의 재회를 보기도 전에 출발하는 차는 완전한 재회를 위해 빠져주는 것일 수 있으나 그 나름대로의 결말을 지어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유사쿠의 사랑을 보고 성장한 두 젊은이가 나름대로의 사랑을 또 해나간다고 역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차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 어쩌면 홋카이도를 누비던 빨간 차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영화와 관람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전히 유바리 어느 집에는 노란 손수건이 펄럭인다. 바람 따라 누군가의 목적지임을 보여주는 이 손수건은 한 연인에게는 이정표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집이 되어주기도 한다. 타인의 이야기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관객의 차례이다. 우린 어떤 손수건을 매달 것이며 어떤 이정표를 지나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을 것인가. 은은하게 번지는 주인공들의 웃음 위로 나 역시 웃음 지으며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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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펜서(2021)> 리뷰
- 현대 영국 왕실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으니, 바로 다이애나 왕세자비다. 그는 귀족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유치원 보모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랬기에 다이애나에겐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따라다녔고, 자연스레 가십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답게 들리거나, 부러운가? 다이애나는 전 세계가 내연녀의 존재를 아는 왕세자의 부인으로 살았다. 제 마음을 추스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봉사를 지속하며 영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 어떠한가, 왕세자가 내연녀를 결국 정리하고 다이애나에게 돌아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가? 안타깝지만 20세기 후반의 영국은 낭만으로 가득한 동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공간이었다. 그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 대신,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라는 마지막을 맞이한다.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비운의 왕세자비'라는 별칭까지 획득한 다이애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어 창작물 속에서 영생을 획득했다.*스포일러주의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그렇다면 다이애나를 기억하는 창작물이 그토록 많은데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어째서 <스펜서>를 2020년대에 꺼냈을까. 감독의 전작 중 하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를 주인공으로 삼은 <재키(2016)>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가 다이애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 아니 어떻게 복원하고 싶은 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관객에게 재클린 케네디가 '재키'라는 별칭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끔 해준 전적이 있는 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이애나에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왕실의 이름 대신 '스펜서'라는 가문의 이름을 돌려준다. 그가 조명하는 시점은 운명의 물살이 급격히 빨라졌던 결혼의 시작, 혹은 결혼의 끝이 아니다. 왕세자와의 별거가 시작되기 1년 전, 1991년의 12월 24일~26일, 단 사흘에 집중하며, 다이애나와 찰스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대신 다이애나가 겪었을 심리적 아픔을 세밀하게 묘사한다(그렇기에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전기적 영화라기보다는,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한 창작 심리극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코 가볍지 않지만 끝내 다이애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영화는 원거리에서 출발한다. 밝지 않은 하늘 아래서 군용 수송 차량이 식재료를 옮기고, 요리사들조차 군인과 다를 바 없이 걷는다. 우울한 색감으로 가득 채우기까지 하여 심리적으로 관객과 영화의 차이를 급격하게 벌린 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화면에 잡힌다. 그는 경호원 없이 홀로 운전하고 길을 잃은 상태다. 지도를 꺼내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샌드링엄 별장에 도착한 후에도 다이애나는 시종일관 지각하고, 지정된 옷을 잘못 입으며, 복도와 정원을 방황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이애나가 향하는/도착한 곳은 미래가 없는, '잘못된' 시공간이므로.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다이애나는 극 중에서 왕실에서의 삶은 '미래 시제'가 없는 삶이며, 과거와 현재엔 시제 상의 차이가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곧 현재가 과거에 먹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현재 없는 현재가 빚어내는 마찰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어린아이들이 춥다고 불평한들 난방을 허락하지 않는 전통은 개선이라는 이름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고집스럽다. 총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이가 총을 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냥을 할 나이가 됐다는 말만 반복하는 찰스 왕세자(잭 파딩)의 교육 방침이나, 정부/내연녀가 있는 남성 왕족의 사생활을 모른 척 견뎌야 하는 귀부인으로서의 삶은 현대와 맞지 않는다.유령 같은 과거/전통에 대한 숭배는 개인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된다. 정해진 옷을 입지 않으면 보고가 올라가고, 휴가 기간 개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은 정해진 스케줄 하에서만 허락된다. 크리스마스 담화를 통해 여왕은 영국은 자유주의 국가라고 연설하지만 정작 왕실 내부는 온갖 규율로 가득하다. 외부의 파파라치를 차단했다 한들 작은 속삭임조차 모두가 아는 소문으로 변질되고, 밤늦게 디저트를 먹는 것조차 감시당하는 등 숨 쉴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찰스 왕세자는 이러한 일상에 대해 최소한 두 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명의 인생을 무수한 방향으로 조각내어 거부하고 싶은 시스템조차 몸이 기억하게끔 해야 하는 삶은, 진정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남편을 잃은 슬픔에 40여 년간 검은 상복만을 입었다는 빅토리아 여왕의 방을 사용하는 다이애나는, 커튼을 닫지 않고 옷을 갈아이은 다음 날 모든 커튼이 꿰매져 창 밖을 내다볼 수 없게 된 다이애나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낀다. 그러하므로 다이애나에겐 가족과 함께하는 현재 이 순간의 별장보다 썩은 계단의 생가가 더욱 생생하다. 생쥐가 오가고 자칫하면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위험한 공간임에도 그곳엔 삶이, 삶이 존재했었던 흔적이 있으므로.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잘못된 시공간에 도착한 다이애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 홍보를 위해 사용된 문구인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라는 말은 다이애나가 본 매기(샐리 호킨스)의 환상이 전한 말이다. 기실, 이 말은 다이애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미래 없는 거대한 과거를 상대하기에 한 개인은 너무도 작고 연약하다. 그저 아름답게 외면을 유지하며 인내하기만 하는 것이 과연 한 인간을 샬레 위에 올려두고 찢어발기는 세상에 대해 진정 올바른 대항법일지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 뿐이라는 말은 다이애나의 외로운 처지를 부각하기만 한다. 거대한 세상에 편입되었음에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자신 뿐인, 왕족임에도 자신을 섬기는 드레서 한 명을 자유로이 부를 수 없어 허상에 매달려야만 하는 다이애나의 고립을.과거와 현재가 동일한 공간에 고여 있음으로써 그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앤 불린(에이미 맨슨)의 환영은 마치 다이애나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다. 온갖 죄목을 뒤집어쓰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 다이애나는 품위 있게 목숨을 내어놓을 수도 없는 운명이기에 계단 위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깨닫는다. 그를 둘러싼 시제는 과거일지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16세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계단을 내려온다. 그리고 매기에게서 사랑스러운 고백을, 치유의 말을 듣는다. "전하께 필요한 건 사랑이에요."다이애나 스펜서가 도달했어야 하는 시공간은 아마 허상이 존재하지 않는 실재의 세계였을 것이다.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으로 남아야 한다는 의무감 없는 세계. 자신이 개척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자유가 존재하는 장소. 인간이 한 명의 독단자로서 숨 쉴 수 있는 곳. 사랑에 단서를 붙이는 결혼식이 없는, 그런 곳.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두 시간이 끝나갈 즈음, 다이애나는 자신의 옷을 허수아비에게 입히고 이름을 묻는 익명의 직원에게 스펜서라고 답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그곳에서조차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은 10년 전 왕실에 편입된 이의 아름다움만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이애나' 대신 '스펜서'를 입에 담는 다이애나가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결혼으로 잃었던 성/가문/시간을 깨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 우리가 가십으로 소비하는 환상 이면엔 조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성한 진주조차 부수고 삼키려는 개인 또한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며, 복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파블로 라라인은 영화를 통해 답한다.* 참고: 네이버 캐스트 '다이애나 스펜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9014&docId=3567750&categoryId=59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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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정식보단 시끌시끌 투게더지
쓸쓸한 고독정식을 먹는 것보단 시끌시끌하지만 투게더가 더 보기 좋다는 걸까. 솔로보다 팀이 낫다고 '더 마블스'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너무 재미없고 유치하게 풀어낸다는 게 아쉽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5의 3번째 영화이자 캡틴 마블의 두 번째 실사영화인 '더 마블스'는 우주를 지키는 최강 히어로 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가 초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모니카 램보(티요나 팰리스), 미즈 마블 카말라 칸(이만 벨라니)과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팀플레이를 펼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캡틴 마블 캐릭터 설정이 다른 캐릭터들보다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먼치킨'에 가깝기 때문에 재밌게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리족 리더이자 빌런인 다르-벤(자웨 애쉬튼)이 자신의 나라 할라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템 퀀텀 뱅글과 그로 파생된 점프 포인트 여파로 캡틴 마블, 모니카 램보, 그리고 미즈 마블이 서로 엮이게 되는 스토리로 밸런스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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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하지만 계속 응원하게 되는 힘!
어디선가 본듯하다. 지방 학교에서 치어리딩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삼삼오오모여 오합지졸 팀을 만들고, 여러 부침을 겪은 후 멋진 한 팀이 되어가는 성장 드라마. <빅토리>는 여타 비슷한 청춘 성장 영화의 길을 무던히 걸어간다. 댄스는 ‘삘’일지 몰라도 치어리딩은 ‘삘’이 아니라 약속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듯, 영화는 신선한 느낌을 쫓아가지 않는 대신 진부하지만 익숙한 재미를 전한다. 뻔하다. 하지만 영화가 가진 응원의 힘을 간과하기는 힘들다. 놀라지 마라. 영화를 보다 보면 밀레니엄 걸즈를 포함해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세기말을 앞두고 거제에서는 춤에 흠뻑 빠진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가 있다.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춤만 추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댄스 연습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서 치어리더를 했던 세현(조아람)이 전학을 오고, 둘은 전학생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이유는 단 하나. 댄스 연습실을 얻기 위해서다. 계획은 대 성공. 하지만 자나깨나 축구 사랑인 교장의 바람에 맞춰 치어링딩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인원을 뽑는다. 그리고 ‘밀레니엄 걸즈’라는 팀명 아래 연습에 돌입한다.
치어리딩이라는 소재로 인해 <브링잇온>이 생각날 수도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스윙걸즈>나 <치어 댄스> <훌라걸스>에 더 가깝다.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외형이 비슷한 것 뿐이다. <빅토리>는 치어리더 팀의 성장은 물론, 1990년대를 담은 향수와 스포츠의 재미, 여성들의 우정, 가족의 화해 등이 주로 다뤄진다. 앞서 소개한 일본 영화와 달리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조선소가 많은 거제도라는 지역적 배경을 통해 척박한 노동 현장의 단면도 비추며 응원이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극 중 밀레니엄 걸즈는 첫 축구부 응원에 앞서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운동장이 아닌, 시장, 경로당, 그리고 조선소 현장 등에서 치어리딩을 펼친다. 이들의 응원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영화가 가진 선의는 관객에게까지 확장된다. 물론, 조선소 상황 등 무거운 현실 이야기가 치어리더 팀의 성장 이야기에 착 달라붙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안무가 틀려도 계속 나아가는 극 중 인물처럼 영화 또한 이같은 단점이 있음에도 밀고 나아가 기여코 응원을 통한 울림을 전한다.
이처럼 끝내 관객이 이 영화를 응원하게 되는 건 소녀들의 에너지다. 후반부로 갈수록 멋진 치어리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밀레니엄 걸즈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큰 재미를 전한다. 정말 많은 연습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후반부 축구 3, 4위전 경기에 펼치는 이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과하지 않은 소녀들의 유쾌함, 그리고 켜켜이 쌓아나간 각자의 전사들이 없었다면 감흥은 죽었을 터. 중간 중간 덜컹거리기는 하지만 크고 작은 소녀들의 이야기가 결국 한 몫 단단히 한다.
그 중심에는 역시나 혜리가 있다. 덕선이의 아우라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이름도 필선이다.) 이 역은 혜리에게 착붙이다. 사투리는 물론, 춤, 연기 등 혜리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옷인데, 자신이 이를 아는 듯 그 옷을 입고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여기에 엄마처럼 느껴지는 미나 역에 박세완, 서울 깍쟁이처럼 보이면서도 치어리딩에 진심인 세현 역에 조아람 등 소녀들의 캐스팅은 적중한 듯 보인다.
빼놓을 수 없는 거 하나. 1990년대 메가 히트곡 메들리다. 필선과 미나가 ‘펌프’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 나오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시작으로 ‘왜 불러’, ‘쇼’, ‘트위스트 킹’, ‘할 수 있어’ 등 선곡이 미쳤다. 그 시절을 관통했던이들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그 곡에 맞춰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흥분의 도가니탕~~
<응답하라> 시리즈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빅토리>는 작품 자체의 주요한 주제가 있다. 뭐든 간에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말이다. 복잡한 생각과 계산없이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고, 또 상대방에게 응원했던 그 시절을 돌아가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큰 의미가 있다. 좀 틀려도 어떻고, 부족해도 어떤가! 그 마음만 전해지면 된거지. 고개 들고! 가슴 펴고~ 응원하자. 내를, 그리고 느그들을~~
사진제공: 마인드 마크
평점: 3.0 /5.0
한줄평: 아쉬움을 뒤로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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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여자가 예쁘고 야한 장면이 나오는 과학적 이유ㅣ스포없음ㅣ영화보는건데ㅣ공포영화 여자ㅣ
? "랑종" 으로 알아보는 공포영화의 과학원리(*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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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 시사회 후기 - 메마른 관계일수록 불은 빨리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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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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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돈 룩 업> 티저 예고편
혜성 충돌이 임박했다. 《돈 룩 업》의 주인공은 무명의 두 천문학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란 사실을 발견한 두 사람은 언론사를 있는 대로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앙을 온 인류에 경고하기 위해. 애덤 매케이 각본과 연출. 《돈 룩 업》, 올겨울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