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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Ha2023-05-16 22:41:45

그냥 미간 펴고 웃을 순 없을까

영화 <슬픔의 삼각형> 리뷰

영화 관람 전 봉투를 하나 받았고

적혀 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주의※ 이 봉투는 구토용이 아닙니다. 웃음만 담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봉투 속에 웃음을 담아야 할 지 구토를 담아야 할지 헷갈렸고

동시에 저 봉투는 완벽하도록 재치있게, 그 어떤 포스터보다 영화를 더 잘 설명하고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초반부터, 우리는 영화 제목으로 쓰이는 ' triangle of sadness' , 즉 슬픔의 삼각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얼굴을 찌푸리면 생기는 미간의 주름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이다. 주인공 칼은 슬픔의 삼각형을 핀 채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 받는 모델이고, 시키는 대로 걷고, 또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또한 그는 잘 나가는 모델인 야야의 연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요트에서 만나게 되는 애비게일이라는 존재와 함께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게 된다.

야야에게 주어진 협찬으로 요트에 타게 된 두 사람은, 그 속에서 많은 부자들을 만난다. 비료 사업을 하는 남자, 무기사업을 하는 부부, 사진 속의 모습으로 돈을 버는 인플루언서 야야와 칼 커플까지,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상관없이 결국엔 돈이 많은 부자들이 요트 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료 사업을 하는 부자 부부의 아내는, 샴페인을 따라주던 여자 직원과 역할 놀이를 하자며 요구를 한다. 그리고 이 막무가내의 요구는 요트 안의 모든 직원들이 모두 수영을 해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명령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자의 선한 의도이건 말도 안되는 억지이건 상관없이, 요트 속 본래의 규칙과 벗어나는 상황이 이어질수록 요트는 더욱 심하게 흔들린다.

 

 

요트의 흔들림은, 수 많은 승객들의 구토 증상으로 이어지고, 곧 요트는 아비규환 그 자체가 된다.

수많은 토사물과 배설물로 인해 전복되어버린 승객들의 위엄과 우아함은 곧, 요트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요트가 전복되는 순간, 모든 것은 함께 전복된다.

요트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은 무인도라는 새로운 요트의 선장이 되고,

태초의 원시시대로 돌아가듯 모계사회가 형성된다.

초호화 요트의 승객이었던 사람들은 애비게일의 명령 아래 몸을 움직이고, 애비게일만이 그들의 추위와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또한

칼과 야야, 애비게일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완벽한 삼각형 모양을 이루며

그들의 관계적 우위는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는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마냥 미간펴고 웃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우리는 슬픔의 삼각형이

과연 어떤 모양으로 남을지 고민해 보게 된다.

결국 슬프게도,

한번 생겨버린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는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며.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작성자 . aloHa

출처 . https://blog.naver.com/aloha_day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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