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22 15:55:25
실제 알콜, 약물중독에서 벗어난 배우들, 추천영화 3편
"이 끔찍해 보이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어려운 것은 결정하는 것이다."
감옥에 갈 정도로 구제 불능의 중독자였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린 시절 아버지인 배우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가 마리화나를 피워보라고 권하면서 처음 마약을 접했다고 합니다.
중독되는건 순식간이지만 벗어나는건 오랜 시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약물, 알콜중독에서 벗어난 배우들의 말과 함께 알콜중독을 다루고 있는 영화 세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알콜중독을 다룬 영화 3]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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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PICK!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
오늘은 네 명의 에디터가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를 각각 2편씩 뽑아보았습니다.
4인 4색! 여러분의 취향과 가장 가까운 에디터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최대 기대작도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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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해 꿈꾼 적은 없다. 굳이 따지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평생 흔들리지 않고 혼자 살 때보다 둘 이상일 때 조금 더 든든하지 않을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눠먹고 대화를 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찌감치 행복한 가족이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믿지 않았다. 결혼식이 해피엔딩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둘이서 여행만 가도 한 번은 싸우는데 결혼이 그렇게 좋기만 할리가. 결혼을 계약처럼 연장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가족과 결혼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슬픈 사실을 한 가지씩 깨달았다. 가족은 생각보다 그렇게 화목하고 평화롭지 않다. 잘 사는 집이든 못 사는 집이든 어느 집에나 속 썩이는 사람이 있고, 콩가루가 솔솔 날리는 듯한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다. 결혼에 대해 놀랐던 점은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생각하는 그때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결혼에 수많은 조건이 있다면 사랑 역시 그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좋고, 사랑이 없으면 정으로 산다고 하더라. 그래도 반평생을 함께 할 텐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해버리냐고? 막상 결혼의 압박이 들어오는 나이가 되니 이해는 된다.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눈초리나 말소리는 지겹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니 혼자만 사는 삶은 자신이 없다. 해치워버리듯 해도 비난하지 못하겠다.
과거와 확연한 차이점은 요즘 결혼은 과거만큼의 인내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 헤어져도 된다. 이혼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의무감으로만 지속했던 결혼이야말로 나쁘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혼하는 시기는 인내심이 어디까지 발현되었느냐 정도의 차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자리를 잡고 나서 황혼에 이혼하거나 졸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헤어질 수 있다. 나조차도 정말 밥맛 떨어질 때면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게 말이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의외로 그래도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을 내릴 때는 아빠와 가치관이 비슷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인가. 정말 중요한 50%만 맞으면 나머지는 맞추면서(혹은 어차피 맞추지 못할 테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라던 말씀이. 그게 엄마의 결혼 철학이었는지도.
<결혼 이야기> 속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 없이, 소송 없이 '둘만의 원만한 합의'로 이혼하기를 꿈꿨다. 바람대로 되면 좋았겠으나 애초부터 둘의 입장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고 공감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둘의 감정이 극도에 치달았을 때 말다툼을 보고 확실해졌다. 찰리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희생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니콜은 찰리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았다. 찰리의 말에 말문을 잃은 건 니콜만이 아니었다. 헨리만 괜찮다면 병에 걸리거나 차에 치여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니. 내가 당신을 더 사랑했다는 니콜의 말에 그게 LA에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반응은 맥빠졌고, 같은 극단 메리 앤과의 외도에도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졌다. 결혼 생각도 없고,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은 당신 때문에 내가 수많은 유혹을 젊은 나이부터 얼마나 피하느라 힘들었는지, 당신이 나를 먼저 거부했으니 바람이 아니란다. 유혹에 관해서라면 니콜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찰리는 이기적이다. 본인이 아프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버린다. 총알이 살을 뚫고 나서도 회전을 하면서 몸속에 파편을 남기듯이. 후벼파는 것 이상의 말을 쉽게 하더라. 그가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지 않았다면 고개를 저으면서 그를 선택했던 니콜을 처량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상처받은 눈이면서 미안하다며 찰리를 꼭 안아주는 그녀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게 사랑인 걸까. 내가 상처받아도 그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걸, 그 말을 하면서 본인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안아줄 수 있는 게. 사랑을 하기엔 나 역시 너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영화를 봤다. 찰리를 정말 이해할 수 없을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은 없다. 찰리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 다시 보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왜 뉴욕을 놓을 수 없었을까? 뉴욕이 집이고 자신의 가족은 '뉴욕'의 가족이라고 무척 강조한다. LA는 왜 안 되는 걸까. LA의 변호사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도 넓고 살기 좋다는데도, 니콜의 가족을 좋아하면서도, LA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심지어 그가 사랑하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았던 니콜이 원하는데도. 뉴욕이 대체 그에게 뭐길래. 'LA'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뭐길래.
니콜이 변호사 노라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찰리는 이혼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니콜의 의사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말이다. 니콜은 LA에서 살고 싶었고 다양한 장르에 참여하는 배우이자 감독이 되고 싶었다. 지금처럼 '찰리의 극단'에서 '찰리가 가장 아끼는 배우'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 종횡무진하고 싶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사이 마침 LA에서 하는 드라마가 기회처럼 찾아왔다. 찰리의 응원을 기대했건만 그는 쓴소리만 뱉었다. 그가 LA에 잠시라도 살려고 시도했다면, 그가 함께 극단에서 공동 감독을 맡아 공연을 준비했다면, 니콜에게 네 생각은 어떤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을 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법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니콜은 결혼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은 찰리와의 이혼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니콜이 '찰리의 아내'로 살기로 체념하는 것 말고, 찰리가 막무가내로 뉴욕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그를 설득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살펴봐도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의 이야기만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찰리도, 그의 변호사도 그런 이야기를 터놓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추측할 뿐이다. 니콜이 찰리에 대한 장점에 썼던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했다. 누구보다 뉴요커 같다. 직업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집이 생겼다. 뉴욕은 그의 마음의 고향이다.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좋은 기억이 없는 어머니와 태어난 고향은 뒤로했다. 그는 소중한 니콜과 아들 헨리, 인턴마저 가족 같은 극단 사람들을 만났다. 좁고 경적소리가 넘치는 뉴욕에 스스로 가족을 만들었다.
찰리 입장에서 LA는 어디까지나 니콜의 고향일 수밖에 없다. 찰리의 뉴욕은 흔들려도 이상할 것 없이 뿌리가 얕다. 10년을 넘게 산 니콜은 뉴욕보다 LA를 그리워하지만 찰리에겐 10여 년 된 뉴욕이 전부다. 그 뉴욕엔 편히 볼 수 있는 부모님, 형제 같은 혈연이 찰리에겐 없다. 은연중에 니콜과 그녀의 가족을 보면서 LA의 넓은 공간만큼이나 휑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LA에 있는 니콜과 헨리는 찰리가 없어도 자연스럽다. 헨리를 너무나 쉽게 LA에, 니콜의 손에 맡긴다면 그는 그의 부모님과 그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가 힘들게 만든 가족이 무너졌을 때조차 그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한 뉴요커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채 마음에 담아둔다. 대체로 진심과 좋은 말은 담아두었을 것이다. 니콜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뉴욕을 떠나면 이 가족이 부서질 것 같은 걱정도, 그녀의 연기를 비평하지만 감동받았던 마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자신을 떠나 LA로 난생처음 활동을 하러 간다니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 가 버려. 갈 테면 가. 그러고도 당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누굴 만나도 불행할 거야. 그녀가 떠나가 버리기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하진 않았을까? 둘 중에 이혼을 먼저 이야기한 건 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도록 니콜을 몰아붙였든지. 초반에 이혼 준비로 성질을 내고 눈물을 보이는 니콜의 모습에 비해 침착한 찰리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이혼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좋은 사람, 좋은 부모인지 시험받았다. 추억은 무능과 부도덕의 증거가 되었다. 찰리는 조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니콜이 늘 잘라주던 머리는 이발소에 가서잘라야 하고, 빨래방에서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3800km를 날아 뉴욕에서 LA로 와야 헨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양육권도 45:55의 비율로 손해를 봤다. 영화의 끝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살아있는 것(Being Alive)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나를 필요로 하고, 상처 주고,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이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니콜이 이긴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솔직했고 더 많이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니콜의 눈빛 역시 종종 촉촉해진다. 니콜이 읽지 못했던 편지를 찰리가 읽었을 때, 'I'll never stop loving him, even though it doesn't make any sense now'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서로를 축하하고 싶지만 예전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을 때. 찰리가 UCLA 전임으로 오게 되어 한동안 여기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쓸쓸했다. 이혼하기 전엔 왜 그럴 수 없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변호사나 판사에게는 지지부진한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결혼 이야기든 당사자에게는 며칠 밤낮을 해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헨리라는 아들을 둔 찰리와 니콜 커플의 이야기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결혼이었다. 보기 좋았다. 서로의 장점을 읊는 장면으로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이 반대라서 보완해주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진흙탕 싸움을 하지 말자던 사람들이 진흙탕에 빠져들어 이혼을 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진흙탕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서로 약점을 아는 사람들끼리 일부러 급소를 건드리면서 상처를 내는 다툼. 그 말이, 그 행동이 이렇게도 쓰인단 말인가? 놀라진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은 칼질하듯 날카로운 단면으로 잘리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이, 사랑이 남아있다. 다만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도 남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단 한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누구와도 헤어질 수 있다. 당신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엉켜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부른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결혼은 이래서 해볼 만하고, 이래서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혼 역시 그래서 희망찬 행동이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결혼은 사랑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절절한 둘의 눈빛과 별개로 그들은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그들이 수많은 결혼의 위기를 넘겼음에도 이번에 정말 이혼을 했다는 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풀린 신발 끈은 묶어주지만 같은 방향을 볼 수 없고 나란히 걸을 수 없다. 잔잔한 오보에 소리에 서로에게 등진 채 자신이 갈 곳으로 걸어가는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떠올랐다. 둘에게 들려준다면 아마 눈이 빨개진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찾을 때의 마음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김광석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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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만 되면 생각날, 이터널 션샤인.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사랑과 추억을 지울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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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달링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어떻게든 지우려고 했던 기억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사랑으로 그들을 더 꽁꽁 묶어 놓는다.
괴로웠든 행복했든 그것마저 사랑이 였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그런 행동을 지켜본 조엘은 지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죠.
클레멘타인도 조엘처럼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지도를 벗어나려 했을까요?
클레멘타인이 머리색을 여러번 바꾸고 마침내 파란머리로 물들었을때조차 사랑에 다시 빠지게 된 건 여전히 그들이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뜨악스러웠던 장면은 기억을 지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타나는 비윤리적인 행태 였습니다.
의뢰인의 속옷을 훔치고 그 물건으로 그와 가까워져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행동들은 '세상에 믿을사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요. 과연 온전한 기억삭제는 가능한걸까 하는 의문이 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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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간 청춘의 얼굴들
2010년 극장에서 원작을 봤던 기억을 더듬었다. 더운 여름날, 수영장, 수화, 풋풋한 청춘의 사랑.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은 대만 로맨스 영화 <청설>(2010)은 그 자체로 맑은 느낌의 러브 스토리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담백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국내 리메이크 작품 <청설>은 변화보단 원작의 장점을 오롯이 가져오는 걸 택했다.
대학 생활을 뒤로 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용준(홍경).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이 철없는 철학과 졸업생은 그냥 놀고 싶어 한다. 그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엄마는 용준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일을 시킨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던 그날, 용준은 자신의 이상형 여름(노윤서)을 만난다. 이후 농인 수영선수인 여름의 동생 가을(김민주)에게 다가가 언니의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당연히 실패!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오토바이가 고장이나 어쩔 줄 모르는 여름을 만난 용준은 도움을 주고 이후 더 가까워진다.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가 사랑받는 건 특유의 청량한 그 느낌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선호 감독이 리메이크한 <청설>에도 청량한 에너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치 청춘의 온도처럼 그 시절, 여름의 온도가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 오토바이, 정겨운 골목길, 살랑거리는 바람, 풋풋한 감정 등 어쩌면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청춘의 시간을 느끼게 하는 향수가 듬뿍 들어있다. 취업 고민 등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 아직도 남아있는 장애인 차별 등 원작과 다르게 좀 더 한국 상황을 반영하는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영화 내 스며든 청량한 느낌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청설>의 매력은 수어에 있다. 대사 보다 수어의 비중이 큰 이 작품은 손짓이나 눈빛, 다양한 제스처에 눈길이 간다. 대사가 아닌 앞서 소개한 동작이나 표정으로 대화하고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이를 기민하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 초반 여름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장면에서 가을이가 “지금 꼬시는 거예요”라는 뜻의 수어와 표정을 지을 때 피식 웃게 되고, 셋이 함께 클럽에 가서 스피커에 손을 대고 울림을 함께 느끼는 표정에 감동이 느껴지며, 서로 조금씩 다가가는 용준과 여름의 모습에 저절로 집중해서 보게 된다. 이런 수어의 쓰임새를 통해 잠시 농인들의 삶이 우리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엮어나가는 사랑의 과정과 꿈을 이루려는 노력은 다소 느리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점점 가까워진 용준과 여름의 사이가 벌어진 계기도 진부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동생의 국가대표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뒷바라지하는 언니가 심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역시 K 장녀 답다!) 가장 아쉬운 건 이 같은 원작의 단점도 오롯이 다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맑디 맑은 윤슬처럼 빛나는 세 배우에게 있다. 홍경, 노윤서, 김민주의 얼굴은 이 영화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춘의 빛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색함 없이 구현한 수어는 물론, 디테일한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도 능숙하게 보여준다. 세 배우의 모습은 곧 영화를 봐야 하는 목적이 될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만큼 최적의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용준과 여름 사이에 놓은 장애물은 언어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상황을 잘 몰라 생긴 오해였다. <청설>의 미덕은 결국 사랑은 말이 아닌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데에 있다. 제목인 청설(聽說)의 의미는 ‘듣고 말한다’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주의 깊게 보고 듣는 게 우선이라는 말. 잘 모르겠다고? 사랑하면 다 안다!
사진 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평점: 3.0 / 5.0
한줄평: 말간 얼굴로 데려가는 청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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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겁고도 먹먹했던 우리의 여름을 추억하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알카라스의 여름>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달콤하지만 쓰디 쓴 계절이 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지만 아프게 느껴지는 계절이 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여름을, 그리고 유난히 더 뜨겁고 먹먹한 여름을 보내게 된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농사 뿐이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따사로운 해가 내리쬐는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 사는 솔레 가족은 3대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매 여름마다 이들은 복숭아 농장에 모인다. 어른들은 복숭아를 수확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어린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을 돕거나 자신들만의 놀이를 찾아 신나게 즐기곤 한다. 하지만 마냥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도 그늘은 존재하는 법. 이 대가족은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을 계속 겪고, 또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농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농사를 계속 이어간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농사뿐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꿋꿋이 복숭아를 기르고 수확하며 그들의 여름을 이어나간다.
영화를 보며 '공감'을 참 많이 했다.
특히 친척들이 모이면 흔히 보이는 모습들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해서 참 반가웠다.
친척들이 모이면 항상 어린 아이들은 허공을 향해 총을 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게 공격 받지 않기 위해 냅다 몸을 피하거나 하는 등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곤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함께 대화하거나 일을 하곤 한다.
그러다 어른들은 의견 충돌로 인해 다툴 때도 있다. 이 일로 인해 먼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이 생길 때도 있는데, 이때 잘 놀고 있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더 같이 놀지 못하고 빠르게 이별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내가 어릴 때 지켜보고, 또 직접 겪었던 일이어서 새삼스레 반가웠다.
이 영화는 꾸준히 복숭아 농장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려준다.
예전부터 복숭아 농장을 지켜온 할아버지는 주변 농부들이 모두 헐값에 농장을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점차 사라져가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농장에 관한 이야기를 할아버지 앞에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남몰래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한다.
가족 모두 이 농장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농사 뿐'이라고 말하며 유난히 더 이 농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더욱 열심히 지키려고 했던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이 집안의 장남인 '키메트'는 영화의 끝부분에 결국 눈물을 보인다.
키메트는 복숭아를 옮기다가 한 박스를 실수로 쏟았는데, 마구잡이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복숭아를 줍다가 펑펑 울어버린다.
딸과 아들은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마도 이 눈물은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이 복숭아 농장을 지키고 싶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과 슬픔, 버티고 버텨봤지만 이겨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힘듦 등의 복잡한 마음이 엉켜 있는 상태에서 터져 나온 아우성일 것이다.
대형유통업체의 부당한 가격 제시에도 농부들이 모두 다같이 분노하고 시위에 참여하며 외부의 위협에 항상 용감하게 맞서왔지만, 결국 복숭아 농장은 철거된다.
영화의 마지막, 하나둘씩 쓰러지는 복숭아 나무들을 어른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옆쪽에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싱그럽고 열정 가득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고 위태로웠던 여름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한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은 슬프지만 마냥 비극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이, 매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복숭아 농장과 그곳에 담긴 소중한 기억들이 모두 과거의 일이 된 것이, 고군분투해서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한 우리 가족의 여름이 참 슬프지만 그 다음을 향해 새로 또 도약하면 된다.
이 대가족의 여름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짙고 뜨거웠지만, 늘 그랬듯이 또 다른 여름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또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난 내 땅을 위해 노력해요
단단한 땅,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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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보다 더 한국적인 영화
낯선 미국 땅 중 한국인이라고는 절대 살 것 같지 않은 허허벌판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지루한 병아리감별사 일에서 벗어나 미국 땅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병아리 감별사로 일을 다시 시작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보육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지만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미국에서 볼 법한 할머니 상과는 영 딴판인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이라는 키워드로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1. 가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 여자 vs 성공에 눈 먼 한탕주의 남자
가부장적인 남자는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위신을 세워주는 요소들을 정해놓고 산다. 예를 들면, 좋은 집, 좋은 차로 대표되는 돈, 즉, 가정에서 남자가 해야할 일이란 그저 돈을 잘 벌어다주는 것, 그래서 가족들이 풍족하게 살게 해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들로 지배적인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가족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면, 그리고 그 희생에도 불구하고, 풍족한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남자들의 위신은 설 데가 없게 된다.
제이콥은 한국의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표본이다.
"아이들이 내가 성공하는 건 보여줘야 할 것 아니야"
"나만 믿어, 조금만 있으면 우리 다 잘 살 수 있어"
등의 대사를 보면, "가족을 위한"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본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남자이다. 물론, 제이콥이 성공한다면 가족들은 행복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의 이상에 대한 결과이지, 그의 이상의 목적이 아닌데, 성공하지도 못했으면서 가부장적인 가장들은 가족을 자신의 무모한 도전의 이유, 목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마치, 진짜 가족을 위해서 한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가족은 그들의 이상의 부가적인 이유이지, 그들은 가족을 담보 잡아 도박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빛좋은 개살구 같은 그들의 포장이 얼마나 비겁한지 왜 그들만 모르는 것인가.
그에 반해, 부인은 아무래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생활비에 쪼들리는 삶이기 때문에 남자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서 마냥 박수를 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상의도 없이, 트레일러 집에 살게 한 이 남자에 대해서 간헐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이 남자의 도전이 성공만 한다면 정말 가족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테니, 이 남자를 믿어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칸소를 떠나자는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어야 하는건지 우왕좌왕하는 이 여자를 보자니,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슬로건으로 밀어붙이는 이 남자의 결과와 목적이 뒤바뀐 주객전도식 설득에 매번 지고야 마는 이 여자도 결국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자라온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도 남편 없이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실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만, 직감적으로 이 남자의 농사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그저 불안할 뿐이고, 돈이 벌리기 보다는 돈이 나가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이 이 여자를 반 미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 이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그녀와 그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사회성이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고, 시대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렇게 갈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충돌
부부 간의 갈등과는 별개로, 미국 태생 자식 세대와 오리지널 한국 할머니의 문화적, 세대적 충돌도 이 영화의 중요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특히, 아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맛있는 쿠키를 구울 줄도 모르고, 싫어하는 음식만 잔뜩 해서 먹이는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 영어도 못하면서 이상한 영어로 사람 당황시키기나 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사 예절에서 개인의 그릇이 중요한 미국에서 그릇을 공유하고, 컵도 공유하는 할머니의 행동에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자식 세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내 가족이니까 네가 쓰고 있는 물건도 내가 그냥 허락 구하지 않고 쓸 권리가 있다'는 식의 접근이 영화의 배경 기준에서 자식 세대보다 더 어린 세대인 내가 우리 할머니의 그런 태도에 기분이 나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영화의 배경 시대에 비하면, 참 많이 서구적으로 바뀌었구나, 많이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때나 지금이나 세대 간의 충돌의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 상에서 개인주의 문화를 정없는 문화로 간주해버리고, 정이라는 애매한 말로 무례함을 덮어버리는 집단주의가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와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이 이기는가 하면, 집단주의가 이기고야 만다. 집단주의 문화 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의 존재가 아주 중요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하는 희생이 당연시된다. 희생의 힘이란 아주 강력해서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미국 아이들은 처음 집단주의에 노출되면, 처음엔 그 집단주의의 일종의 무례함이 오지랖으로 보일 수 밖에 없지만 집단주의에서 필수 요소인 희생에 노출되면, 무례함에 대한 불쾌함이 사그라들고, 고마움으로 바뀌게 된다. 그 고마움이 결국 집단주의에서 형성되는 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도 앨런은 할머니에 대한 불쾌함을 느꼈던 과거는 잊고, 할머니에게 의지하게 된다.
3. 미나리의 의미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아야 했지만 아메리칸 드림 하나 바라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땅에서의 현실도 한국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가난을 타파하고자 하는 가장의 마지막 승부처로 잡은 넓은 대지에서 말라가는 작물과는 달리, 미나리는 특별히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너무 잘 자라버린다. 아등바등하면서 되도 않는 농사를 하는 제이콥과는 대비되는 할머니의 미나리는 결국 이 가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작물로서, 미국 땅에서 기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한국인 이민 가족들의 집념을 상징하는 듯 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서도 여전히 미국에서 자리잡고 살고 계신 이민 가족, 교포 분들이 어디에서 자라도 극강의 생명력을 보이는 미나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총평
이 영화는 제 2의 기생충이다 뭐다, 말들이 참 많던데, 기생충과는 참 분위기도 다르고, 더 한국적인 영화다. 기생충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입장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람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미나리의 경우, 한국 사회의 특징적인 점들을 잘 집어내어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내용이고, 해외 영화 팬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스테레오타입적인 특징을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의 경우, 한국 태생 감독이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목표로 만든 영화 같았다면, 미나리의 경우, 한국 교포인 감독이 '한국인에 대한 이해'라는 과목을 세계인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듯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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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사랑과 함께한 예능형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학교를 떠나기 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겨 주신 중앙사랑 27기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본 영상은 지난 2월에 촬영한 콘텐츠입니다.)
#중앙대학교 #중앙대 #중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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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가 훨씬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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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겨울왕국 2'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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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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