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2023-05-17 23:27:21
"우리는 늘 삼각형 안에."
개봉 영화 <슬픔의 삼각형> 리뷰
*본 게시물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월부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영화 <슬픔의 삼각형> ?
안그래도 높은 기대, 더욱 더 재밌게 보고 싶은 마음에 예고편과 줄거리도 모른 채 씨네랩 시사회에 갔다. 첫 시작부터 강렬했으며 결말을 보고선 이마 짚으면서 상영관을 나왔다는,, 이 영화를 개인적인 감상평과 함께 한 줄로 남기자면 "새롭진 않았지만 새롭다"!!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
영화에서 "슬픔의 삼각형"이란 단어는 한 번밖에 안 나온다. 그러나 제목으로 대두되었을 만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30여분으로 1부~3부를 포함하므로 개인에 따라 '길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영화는 관객에게 늘 외치고 있다, "우리의 삼각형은 여전히 그대로야."라고. 여성과 남성 / 부와 가난 그리고 끊임없이 딸려오는 '신분'이라는 고정된 꼬리표. 2023년이 된 지금, 피상적으론 '평등'을 표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의 삼각형은 불변한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1부부터 3부까지 우스꽝스럽고도 잔인하게 표현한 이야기 아닐까 싶다.
우리는 슬픔의 삼각형 안에서 살고 있다. 위로 가든, 밑으로 가든 어쨌든 삼각형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대체 무엇을 바라고 평등함을 표하는 동시에 서로를 이렇게 미워할까. 특정 인물들에 공감을 하기도, 혐오감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새로운 익숙함
사실 드라마 <석세션>부터 시작해서 부와 가난 등의 차별 등을 비꼬는 미디어 콘텐츠들을 수없이도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새로웠다. 이목을 집중시켰던 1부, 보는 내가 아찔했던 2부 그리고 무한한 불안감으로 끝내었던 3부. 개인적으로 3부 결말로 본 영화를 n차 돌 생각이 충분하지만...! 영화가 다소 길었다. '그들만의' 다큐멘터리를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기분. 한 마디로, 무서사가 만들어낸 서사였다. 피식거리던 웃음은 곧 슬픔으로 바뀌었던 그 마지막 10분의 아찔함을 잊지 못 한다.
눈 앞에선 형체 모를 불꽃들이 남발했던 영화였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내가 그걸 즐기고 있었다. 익숙한 새로움에 빠지고 싶은가?
당신 안의 슬픔의 삼각형을 다시금 지각하고 싶은가? 지금 당장 <슬픔의 삼각형>을 보러가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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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따뜻하고 애틋한 애니메이션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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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줘
8살 소년 아웬은 얼룩진 멍투성이 얼굴로 법정에 앉아있다. 아웬의 아버지 에릭 발로는 사실 아동학대 가해자이다. 그리고 발로 부인도 그런 아웬을 방치시켰다. 그래서 혐의를 받은 에릭 발로와 발로 부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나온 것이다. 아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부모가 괴롭히고 방치시켰어도 말이다. 그러나 아웬이 할 수 있는 건 법정에서 난동을 피우는 거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밖에 없기에...
2. 달과 천국
마오마오는 올챙이를 키웠는데 하루가 지나자 죽어버린다. 그 올챙이를 계속 기억하는 마오마오에게는 오직 죽은 올챙이 생각뿐이다. 올챙이의 죽음에 슬퍼한 마오마오가 할머니에게 올챙이는 죽으면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올챙이가 죽으면 달에 간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마오마오는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지만 할머니가 들려준 노래를 생각하며 모든 생명체는 윤회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후에 올챙이를 키웠는데 그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고(사실 두꺼비지만) 창문 밖으로 나간다. 그 광경을 본 마오마오는 할머니가 개구리로 환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3. 사진이 살아있다
피터는 가족과 함께 할머니가 있는 시골로 내려간다. 시골 풍경이 낯설고 불편한 게 많지만 재미있는 일들도 많다. 피터는 시골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같이 놀면서 친해진다. 하지만 피터에게 큰 숙제가 있으니 바로 다락방에서 혼자 자는 것이다. 혼자 자는 게 무섭지 않지만 사진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걸 보고서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사진과 맞서 싸우기로 한다. 알고 보니 그 사진은 전쟁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사진이었고 그 할아버지의 원혼은 사실 오줌이 마려워서 참아왔던 것이다. 그걸 안 피터와 친구들은 할아버지 사진을 화장실에 둔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 사진은 원한이 풀리게 된다.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어린이에게는 처음 보는 시골 풍경이 무섭고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4. 성인식
진정한 성인이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무엇일까? 어른들은 성인이 되려고 하는 어린 사람들에게 기준을 맞춰 세운다. 박재민 감독은 성인식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사회가 정한 성인식의 기준에 맞서고 싶어 했다고 한다. 과연 일찍 철든다는 게 진정한 성인을 말하는 걸까? 또한 이 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5. 별을 담은 소년
조선시대에 상민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어린 결이 할 수 있는 일은 물을 퍼다 나르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결에게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는 부모가 없는 고아인 반아를 데리고 온다. 결은 그런 반야를 싫어하고 내쫓으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불만이 많은 결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당시 조선시대에서 양반에게 상민이 상놈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는데 모진 괴롭힘도 많이 받았다. 결이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2023.09.17 (일) 13:0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4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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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케이팝시대!
기대 1도 안했다. 제목부터 언밸런스한 이 작품을 보게 된 건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무리 케이팝이 흥하지만 여기에 퇴마라는 소재를 합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너무 뻔한 기획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에 도가 튼 넷플릭스가 이 작품을 전 세계에 공개한다고 하니 선입견이 더 들 수밖에. 하지만 오산이었다.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보고 있으면 국뽕이 차오르고, 김밥과 라면이 당기며, 그 즉시 헌트릭스의 팬클럽 회원이 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케이팝 슈퍼스타 아이돌 헌트릭스! 이들은 언제나 바쁘다. 공연은 물론, 악귀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악령들로부터 인간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의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이유도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 지하 세계에 있는 마귀가 나오지 못하도록 결계인 혼문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헌트릭스의 대항마 사자 보이즈가 나타난다. 헌데, 자세히 보니 사자 보이즈가 아니라 저승사자? 마귀? 이 정체를 알게된 헌트릭스는 노래와 인기로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자 보이즈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다. 한편, 헌트릭스의 리더이자 메보 루미(아덴 조)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힘들어하고, 이를 알게 된 사자 보이즈의 리더 진우(안효섭)는 루미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지하에서 이를 지켜보는 저승의 지배자 귀마(이병헌)는 인간세계를 호시탐탐 노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후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31개국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1위를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 이 정도로 화제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작품이 가진 무기가 적중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리얼리티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9년 동안 공을 들였다. 한국 역사는 물론, 무당, 저승사자, 당산나무, 도깨비 등 무속 신앙의 소재들이 극에 등장하면서 걸그룹 멤버들이 퇴마라는 허무맹랑한 설정을 비주얼로 설득시켰다. 여기에 남산타워, 한옥마을, 경복궁 등 한국의 건축물들이 등장하고, 민화 ‘작호도’에서 가져온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며, 김밥, 냉면, 순대, 라면 등 우리나라 음식이 자주 나오는 등 과거와 현대의 한국을 작품에 잘 녹여냈다. 여기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소니 제작진이 구현한 한국 스타일의 무기(사인검, 곡도, 신칼)로 퇴마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화려하고 퀄리티 자체가 좋다.
이런 탄탄한 고증을 바탕으로 케이팝 아이돌 산업의 특징도 잘 녹여낸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은 가까워질 수 없다는 불문율은 물론, SNS를 통해 아이돌 인기를 가늠하는 모습, 응원봉을 흔들며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아니 케이팝을 사랑하는 해외 팬들이라면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세계적인 아이돌 멤버이지만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루미를 통해 사랑받는 아이돌의 모습과 실제 모습의 간극을 성장 서사로 옮긴 부분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진정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개인이 성장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진정한 음악이 탄생한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 작품의 스토리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클리셰 바운더리에 안착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흘러가지만 특색은 실종됐다. 특히 공통적으로 결핍과 두려움을 가진 루미나 진우의 전사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행하는 동기가 다층적이지 못하기에 캐릭터의 매력이 잘 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건 음악이다. 감독은 테디가 이끄는 더블랙레이블과 협업을 했고 안무는 리정이 참여했다. 여기에 트와이스 나연, 정연, 채영이 참여해 타이틀 곡인 ‘TAKEDOWN’을 불렀다. 또한 트와이스 '스트래티지'를 비롯해 듀스의 '나를 돌아봐', 엑소의 '러브 미 라이트',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 등 한국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 같은 음악의 힘은 결과적으로 케이팝 음악으로 구성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이 가진 의의 중 하나인 이 가능성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같은 작품을 우리의 문화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벌써부터 속편 제작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만큼 이번 작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속편이 제작된다면 음악은 또 어떨까? 여러모로 기대된다. 이 기대감을 안고 오늘도 헌트릭스 노래를 play~
덧붙이는 말: 영화는 영어 원어 버전과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 서비스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어 더빙을 추천한다. 그게 뭔가 더 잘 어울린다. 참고로 영어 버전에서는 진우 역에 안효섭, 루미의 스승인 셀린 역에 김윤진, 헌트릭스 매니저 바비 역에 켄 정, 돌팔이 한의사 역에 다니엘 대 킴 등이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초호화 배역진이다. 귀마 역에 이병헌은 두 버전 모두 연기를 펼친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평점: 3.5 / 5.0
관람평: 이게 바로 케이팝 파워! 국뽕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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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기 혼란을 담은 아름다운 영화
개봉 전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어떤 소녀가 자신의 친구가 좋아하는 소년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의 친구와 만나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거리낌 없이 소년에게 다가간 소녀는 자신의 친구를 불러보지만 친구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그런 소녀의 행동이 귀엽다. 그리고 소녀의 친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이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싶어서 핑곗거리로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녀는 정말 자신의 친구가 그 소년을 좋아한다며 다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은 소녀를 쫓아가며 계속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영화 <남색대문>의 한 장면이다.
영화 <남색대문>은 고등학생 멍커로우(계륜미)와 장시하오(진백림) 그리고 멍커로우의 친구 린위에전(양우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소녀와 소년은 멍커로우와 장시하오다.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하지만 미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친구인 멍커로우에게 대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서도 린위에전은 차마 장시하오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심지어 연애편지를 쓴 후 보내는 사람의 이름에 멍커로우를 쓰고 그 편지의 전달까지 부탁한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로 인해 장시하오는 멍커로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멍커로우는 그가 불편하다.
청소년기의 첫사랑,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는 영화 <남색대문>
청소년 시기인 그들은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모두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큰 확신이 없는 상태다. 그저 기분 좋은 상상처럼 미래의 모습을 생각한다. 영화 초반 린위에전이 눈을 감고 미래의 자신과 남편을 상상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그리는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지는 못한다. 장시하오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만이 그리는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멍커로우는 아예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눈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청소년들은 그 시기가 되면 자신을 알아가기보다 좋아하는 상대방을 더 집중해서 본다. 친구들을 보고, 좋아하는 이성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집중하며 그들에게 맞추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한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다. 이 시기에 자신이 가진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성인기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마음이 수시로 변하고 감정적인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상대방에 대한 원망을 같이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피하고 부정하려 애쓰기도 한다.
<남색대문>의 멍커로우는 사실 가장 친한 친구인 린위에전을 좋아한다. 하지만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를 돕기 위해 장시하오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멍커로우는 영화 속에서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억누르려고 노력한다. 어딘가에 자신은 남자를 좋아해야 한다고 쓰거나 장시하오와 진지하게 만나보려고 시도를 해본다. 사실 그의 정체성이 정말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좋아하지만 그럴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멍커로우가 택하는 것은 실제로 해당되는 대상과 행동을 해보는 것이다. 그 실행 이후 멍커로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온전히 앞으로 삶을 걸어 올라가야 할 그 자신의 몫이다.
멍커로우의 고민이 표출되는 순간
맨 처음 이야기했던 소녀와 소년, 즉 멍커로우와 장시하오의 대화를 보면 멍커로우는 계속 자신의 친구인 린위에전을 만나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실체는 그들 앞에 보이지 않는다. 멍커로우는 단지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때 린웨이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의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멍커로우는 현재의 자신도 잘 보이지 않고 미래의 자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한다고 믿는 대상을 위해 대신 사랑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받아주는 장시하오는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인물이다. 몇 번의 만남에도 린위에전을 실제로 보지 못한 그는 그것이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는 눈앞에 실재하는 멍커로우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멍커로우와 장시하오의 첫 만남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꼬여버린 첫 장면이기도 하지만 멍커로우의 보이지 않는 정체성과 고민이 처음 표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의 질문에 대부분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장시하오의 모습은 마치 멍커로우의 내면이 던지는 질문처럼 그의 마음속에 계속 메아리친다. 그 물음은 결국 멍커로우의 대답을 이끌어내지만 그걸 말하고 있는 멍커로우 자신도 혼란스럽고, 그걸 듣고 있는 장시하오도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이 실제로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 시기에서 만큼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존재였다.
어쩌면 영화 속 세 인물이 모두 좋아한다는 그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는 순간이 많지 않다. 고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저 짧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아주 짧은 순간에 전달하지만 여기서 성공하는 고백은 없다. 오히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특히 멍커로우의 1년 후, 3년 후, 5년 후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게 된다.
영화 <남색대문>은 여름을 지나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장시하오는 여름이 다 지났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는 남는다.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고민하는 동안 그 고민을 한 이들은 모두 한 걸음 성장해 있다. 멍커로우와 장시하오도 그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상처 받으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당장 그들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영화에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건 그런 확신이 따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의 여름 풍경이 가득한 영화
2002년에 만들어진 <남색대문>은 대만의 여름 풍경이 가득 담겼다. 조금은 바래 보이는 화면과 그때의 물건들과 도시의 모습은 아련한 느낌을 주어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두 남녀 주인공이 대만의 거리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들은 더욱 대만이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느끼게 한다. 여기에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나오는 배경음악은 더욱 영화를 감성적으로 만든다.
멍커로우 역을 맡은 배우 계륜미는 이 영화로 첫 데뷔를 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데뷔작 <남색대문>에서의 연기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이후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사랑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척척 해나가려 하는 멍커로우의 모습을 복합적인 감정으로 잘 담아냈다. 장시하오 역의 배우 진백림은 <티이페이에 눈이 내리면>, <기약 없는 만남>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2016년에는 한중 합작 영화 <나쁜 놈은 죽는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멍커로우를 좋아해 자신 만의 노력을 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따뜻한 장시하오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남색대문>은 영화 속 장시하오가 남색대문 앞에 서있는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멍커로우가 생각했던 그 모습은 어쩌면 영화 속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라는 문을 열기 직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미래, 즉 그 남색대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그들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여러모로 따뜻함과 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여름 영화로 유명한 이 영화는 19년이 지난 이제서야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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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라는 지위에 불이 붙었을 때
<마더> 네이버 스틸컷
-봉준호 감독 영화에 공통점은 빈부격차나 정부의 잘못된 태도 등 사회적 문제들을 그만의 유머러스가 섞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하지만 <마더>는 이런 사회적 문제들도 역시 선보였지만, 엄마의 모성애를 기름 속 불씨처럼 강력하게 표현해내어 어머니라는 지위에 불이 붙었을 때 얼마나 처절하도록 몸부림치는지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불편하고 애잔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연기에 놀라고 스토리에 더 놀란 영화. 영화 장면에는 버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일명 떡밥을 떨구고 치우는 마지막이 되면 먼지 하나없이 김혜자 선생님의 붉은 노을에 맞춘 모든 어머니를 향한 춤을 보며 깔끔하고 애잔한 영화로 남는다.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많지만 처량하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모성애를 제외하고 본다면 영화가 말하고픈 주제는 경찰 공무원의 안일한 조치와 무능한 능력, 사회적 약자에 대한 미숙한 대처를 비판한다. 그들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했다면 어머니의 불도 이렇게 큰 화마로 번지지 않았을 텐데 어리석은 대처들이 필자의 마음에도 불을 붙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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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과 긍정 사이, 작별과 만남 사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유난을 떨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반문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찬란했던 순간, 나 역시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글을 옮기고 싶었다는 메일을 봤을 때나 선거에 참여했던 기억은 그 누구의 것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것이다. 또 있다. 정신병에 신음하던 순간. 이걸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들. 그것도 나의 기억 속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무와도 맺지 않은 약속에 관한 것이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르는 대로. <시네마 천국>을 쓰려고 했던 본래의 계획을 부숴 새롭게 다른 걸 쓰고자 한다. 난 21살이 돼도, 22살이 돼도, 23살이 되고 만남은 쉬운데 이별은 너무나도 어렵다. 떠나보낸다는 건 필연적으로 많은 후회를 풀게 되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니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난 그래서 약속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걸로. 그게 어떤 방식이든, 또 무엇이든.
<졸업>은 이별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22분 정도인 짧은 단편영화다. 또, 제주대학교 영화동아리 <시네필>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멀쩡히 돌아가는 메가박스도 영업 종료시킬 정도로 제주는 영화를 제작하기에 그렇게 원활한 곳이 아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거 그나마 <낙원의 밤> 정도? 근데 그것도 올해 나와서 그렇지 대부분 해녀에 횟집에 썼던 소재만 써서 영화 소개에 '제주'만 들어가도 접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같이 스무스하게 녹아들게 만들 순 없는 걸까?
이 작품 <졸업>은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제주라는 장소가 영화와 찰떡이다. 뭐 이건 필연적으로 이 사람들이 제주대학교 재학생들이니까 제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겠지? 그리고 텀블벅으로 150만 원인가 받고 제작한 작품인데 비행기 타고 장소 섭외하고 그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것이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자는 이런 장소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십분 잘 활용한다. (물론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상실의 이미지'가 제주의 바닷소리, 풍광과 함께 시너지가 잘 나는 편이다. 혼자서 바다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는 넓고 행복한 사람들은 주위에 한가득인데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으면 외로움이 심해진다. 이렇게 낯이 애매하게 진 바닷가에서 두 친구가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있다. 그 대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그렇게 행동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일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인 예원이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대화는 현실성이 없다. 대사만 봐도 현실의 허전함을 강조할 수 있는데, 바다는 보여주고 배경은 페이드 아웃하는 연출법으로 통해 인물들이 상실로 인해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출이다. 이렇게 이런 처연함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바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결합해 영화의 무거운 정서를 이끌어나간다.
또 이 영화는 성숙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별. 어렵다. 이 '이별, 어렵다.'라는 말을 쓰자마자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었다. 근데 진짜 그 사람들이랑 이별한다고 하면 인생이 어려워질 것 같다. 이 이별이라고 하면 사별도 있고 결별도 있고 뭐 가지각색으로 있겠지. 근데 이별이 정말 아픈 이유는 행복했던 추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잊어. 난 그것들을 잊으라고 한다면 격하게 싫다고 반응할 자신 있다. 가슴에 품어라. 마음으로 잊어라. 말은 쉽지. 근데 그게 쉽게 되면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잘라낼 수 있으면 기계지 그게. 내 주치의 선생님도 '생각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 정신건강의학적으로도 보장된 사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잊으라'라고 독려하는 이별에 관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잊으라는 뭐 그런 거.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와 같이 '이젠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 거 어때?'라는 말은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되었다. 반대의 맥락에서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매그놀리아>인데, 이 작품은 인물이 완벽하게 잊어서 성장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엔딩신에 여자 주인공이 빙긋이 웃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낸다. 이 <졸업>은 후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었니? 그게 됐다면 넌 내 옆에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리움이 심해져 사람을 더 아프게 할 것이다. 그 상처들을 무조건 잊는다는 게 과연 능사일까. 아닐 것이다. 돌아본다는 건 완벽하게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매일이 고통스러운 인물에게 어려운 문제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으니까 그렇게 자주 뒤를 돌아볼 것일 테니까. 아쉬우니까 미련이 생기는 것이니까. 이 영화는 삶에서 계속되는 난제에 대해 '니 잘못 아니야. 고마웠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단적으로 딱 잘라서 잊으라는 말보다 더 사람 냄새가 나는 화법을 쓰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아픔을 잊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아주 소중한 원동력이 되는 것인데, 그걸 다 잊기에는 나는 여전한 애새끼다. 이런 나 자신을 긍정해줘서 좋았다.
물론 아쉬운 지점이 있다. 중반부 와랑와랑에서 두 주인공이 술 마시는 장면에서 남자가 '너 그거 정신병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근데 내가 아는 정신질환 중에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며 힘들어하는 병 같은 건 없다. 각본의 사려 깊음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디테일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사항이나 호흡이 느리다는 호불호 갈림의 요소도 영화의 진정성을 살린다는 점에서 왜 단점으로 지적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강점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좋은 예술이 뭘까? 나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것에는 재주가 없다. 그냥 좋으면 좋다고 감상을 풀어쓰는 사람이다. 이 <졸업>은 풀어서 쓰기 좋은 작품이다. 사람의 마음도 분석적으로 다 보기엔 어렵지 않나.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디테일한걸 굳이 풀지 않는다. 애초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이별, 작별. 뭐 그런 순간들을 풀어쓰기에는 다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날 것의 대사들과 이미지들로 인물들의 내면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우리가 뭘 보고 좋다!라고 느끼는 이유 아닌가? 이런 연출법은 <메기>나 <꿈의 제인>에서 봤던 방식이다. 따라서 한국 독립영화들을 많이 봐 자연스레 배운 연출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잊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에 비해 사소한 것들을 놓쳤다는 회한에 사실 일상이 많이 아쉬운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몇 가지를 이별하지 못했다. 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불안한 게 많은 내 성격이라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점점 예감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은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는 '그냥 그것들 다 잊지 말아라'라고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단적으로 잊고 산다는 것은 더 비현실적인 것 같다. 그러니까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 정말 그 회한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쓰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아픔이겠지. 난 근데 그것 때문에 내 즐거운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잊고 싶지 않다. 정해종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엑스트라>에서 이 시인은 '더 이상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라고 썼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 그 대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라. 그게 우리를 만드는 모든 것이겠지. 난 정말 멀어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 분명해서, 아직도 여기서 살고 이곳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별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싶다. 그게 만남과 이별을 긍정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 될거라고 믿으니까. 뭐 확신할 순 없지만 각본가가 이 극을 썼던 방식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고 이 뭐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바탕이다.
현재 '시네필'의 유투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EWNJ4JOK5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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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에 귀천 없듯 액션 연기에도 마찬가지
연애도 스턴트맨처럼 하면 어떡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 콜트. 콜트는 좀 특별하다. 바로 스턴트맨이다. 몸값이 비싼 할리우드 배우들의 대역으로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콜트. 하지만 이런 콜트도 사람이다. 옆구리가 시린 콜트. 마땅히 기회(?)가 없으니 그냥 소같이 일만 한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조디(에밀리 블런트)다. 영화 제작 스태프의 일원이었던 조디. 조디와 콜트는 서로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끝나고 뭐 해요?" 작업 거는 콜트. 조디와 콜트, 서로 사랑하기 5분 전이다. 마지막 액션 신만 찍고 나면 1일 시작이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다. 허리를 크게 다친 콜트. 위축된 자신의 처지에 자존감이 급락한 콜트는 이내 잠수이별을 고한다. 화가 난 조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콜트가 잘 아는 제작자(해나 매딩엄)가 콜트에게 전화를 건다. "일자리가 들어왔는데. 조디가 감독인 영화야. 팀에 들어올래?"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뛰어나갈 기세다. 신난 콜트. 하지만 콜트에겐 문제가 생겼다. X를 구하려다 X 되게 생겼다. 영화 하나 찍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고추장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이 영화를 장르적으로 구분한다면 액션/로맨스물이지만 내실을 따져보면 다양한 재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택은 영화의 이야기 줄거리 외/내적으로 좋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피로 두르고 있는 로맨스/액션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의 흐름 상 콜트와 조디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사건의 배경이 두 남녀의 첫 만남이 있었고 콜트가 어떤 사건을 겪고 느닷없이 잠수를 탄다. 이후 ‘잠수를 탔기 때문’에 쌓여있는 인물 간의 오해가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이 오해를 풀고 싶은 것이 콜트의 핵심이다. 그냥 단지 ‘직업이 스턴트맨이니까’라고 보기엔 중반부 찍고 넓어지는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하니 영화가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심지어 중후반부를 보면 영화의 로맨스적인 특성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는데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지는 플롯을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특성으로 연결했다. 쉽게 말해서 '그래!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있으니까!'로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야기 상에서 액션이 등장하는 이유도 필연적이다. 직업이 스턴트맨이니까 액션을 보여주는 과정이 당연하다? 물론 제목과 직업에 대한 부분도 크게 작동하지만 중구난방으로 튈법한 영화 속 사건을 잇는 장치가 액션이 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이 <스턴트맨>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다. 이런 플롯을 설정한 이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보여주면 당연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지?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의 노고도 나오고 영화감독과 제작자 사이의 관계도 재미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그중에 더 중요한 것. 이 영화의 제목은 ‘스턴트맨’이다. 스턴트맨은 일종의 대역으로서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존재다. 그러면 영화 안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연기를 하든 뭘 하든 이 직업군들에겐 중요한 제약이 있다. 이 배우들의 목숨은 하나고 역시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 점을 보여주려면 ‘목숨이 하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지? 그러려면 액션이 들어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연기로 몇 겹을 쳐도 목숨이 하나인 걸 두각한 연출을 보여줬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장르를 소비한 것이 아닌 셈이다.
이 영화의 장르적인 내실을 까보면 온갖 것이 섞여있는 영화 전주비빔밥이라고 볼 수 있다. 글쓴이가 각본을 잘 썼다고 느끼는 지점 중 하나인데 이 영화의 핵심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할리우드의 역사를 영리하게 훑으며 긴 시간 동안 있어왔던 ‘스턴트맨’의 존재를 비추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핵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왜? 할리우드가 어떤 장르를 만들든 간에 스턴트맨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이 부분을 강조하듯이 호러, sf, 코미디, 미스터리, 애니메이션, 판타지 등등 여러 장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포용한다. 그리고 스턴트맨 콜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결하니 안 본 분들 입장에서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거친 부분이 있다.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온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2시간으로 압축시킨다? 당연히 매끄럽지 못하다. 이 부분은 영화의 호불호가 될 수 있다. 가령 주인공의 중요한 과제 톰 라이더를 찾는 부분에서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만한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소재는 영화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어떻게’에 대해 생각해 보시라고 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그 이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콜트가 직접 겪는 개고생이 영화의 역사가 앞으로 계속 진보되어도 잊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참기름도 있다구
이 영화는 또 오마주로 가득 찬 영화이기도 하다. 왜 오마주가 필요했을까?를 써보자면, (위에도 쓴 내용이지만) 현재를 넘어 과거의 스턴트맨에 바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야 충분히 좋다. 하지만 스턴트맨’만’ 중요하다고 하면 그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 우선순위가 부여된다면 영화감독이 직업인의 윤리에 있어 어긋나는 행동일 수도 있다. <스턴트맨>은 예전 영화들을 끊임없이 호명함으로써 연출가로서의 윤리를 살렸다. 스턴트맨의 헌신도 물론이지만 그만큼 노력했던 선배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턴트맨 출신이었다가 영화감독이 된 감독의 당사자성을 살려 이야기를 만든다면 "왜 내가 스턴트맨에서 영화감독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갈 만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오마주 했으니 만드는 사람의 진정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런 특징을 살려 영화에는 한 페이지로 적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오마주들이 들어가 있다. 어느 단계에서 어느 장면이 오마주다!라고 쓰면 영화의 재미가 급감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만 서술해 본다. 영화 첫 번째 장면이 콜트가 스턴트맨 일을 하다가 사고를 겪는 장면이다. 이 장면 보면 <미션 임파서블> 1편이 연상된다. 그리고 영화 안 극중극은 콜트 역의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던 영화 중 어느 작품을 연상되게 한다. 시각적인 부분도 이 장르의 역사에서 이것저것 가져온 듯한 걸로 이루어져 있다. 또 조디라는 인물 역시 할리우드의 누군가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연출로 중요하게 강조시키는데 오마주한 인물이 할리우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영화가 할리우드의 현재를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가 보인다.
<거미집>과의 공통점, 차이점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작품은 작년에 개봉한 <거미집>이다. <거미집>의 서양판이 이 <스턴트맨> 같을 정도로 공통점이 있다. 우선 주인공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김열/조디)이라 그 내용이 전적으로 들어갔다는 점, 시대적인 맥락(1970년대/2024년 현대의 할리우드)이 들어간다는 점이 그렇다.
이 공통점의 내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거미집>의 김열(송강호)과 <스턴트맨>의 조디가 만드는 창작의 의미가 각각의 영화 안에서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가령 <거미집>에서 김열이 방구석에서 보여주는 모든 장면은 이상의 ‘날개’가 연상될 정도로 개개인의 욕망을 더 깊숙하게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안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김열이 촬영장의 리더로서 겪는 온갖 개고생이 핵심이다. 웃음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전미도(전여빈)이다. 전미도는 김열의 창작을 지원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미도가 풍기는 광인의 포스는 이야기가 미진하다고 느낄 즈음에 등장해서 영화를 이끈다. 반대로 <스턴트맨>의 조디가 만드는 영화는 후반부의 장면이 인물들의 상황과 겹치는 되는 지점이 있다. 심지어 기존 영화들의 오마주를 그대로 활용해서 인물의 내면과 감정적인 하이라이트가 겹쳐지게 하는 장면까지 있다(심지어 제목으로도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 안의 로맨스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와도 닿아있다. 어느 장면을 넘어서 영화와 현실이 무너지는 분기점이 있는데 이 부분은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 영화는 현실의 업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둘째로 시대적인 맥락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다. 전자 <거미집>에선 1970년대의 맥락이 등장한다. 당시 김열이 직면한 여러 애로사항 중 하나는 당시 행정부가 예술가들에게 제약을 둔다는 것이다. 이 장애물은 스트레스 한가득이었던 김열의 창작물에 장애물이 되며 인물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거미집>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기억할 카메오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보면 그 모든 속박보다 창작자에게 깊고 크게 다가오는 장애물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왜? 이 장면이 일어나는 전후맥락에는 문공부라는 시대적인 맥락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장면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카메오가 김열에게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시대적인 맥락이 없다면 이 장면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에 대한 문제를 시대적인 맥락도 가져와 보충한 것이다. 하지만 <스턴트맨>은 이것과는 살짝 다르다. 이 영화에는 2020년대 할리우드에 있던 사건 중 가장 인상 깊은 스캔들이 등장한다. 또 특정 소재는 2024년의 현대사회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 두 요소가 왜 굳이 등장했을까? 바로 2024년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 너희들 봐라!라는 의미다. 영화 외적인 요소를 굳이 안으로 가져와서 이야기의 구분선을 흐린 것이다. 이런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타겟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높인다. 사실 이렇게 영화가 외적인 맥락과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병치시켜서 우리에게 와닿게 설정했다는 것 자체는 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왜 스턴트맨일까? 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영화배우의 노고에만 감탄하며 액션영화를 보곤 하지만 이들 아래에 수많은 스턴트맨이 있었다. 스턴트맨에서 스턴트 하다 다치면 영화 내적인 사건이 외적으로 향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얼버무리고 넘어가
이 영화의 단점은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도 보여줘야 하고. 성공한 덕후가 된 감독의 덕질 역사도 보여줘야 하고. 주인공과 관련한 메인 플롯도 보여줘야 하고. 조디가 영화 만드는 이야기도 보여줘야 하고. 현재의 할리우드도 묘사해야 한다. 적어도 이 모든 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려면 희생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어떤 조건 몇 개는 생략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초반 조디와 콜트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이 부분을 느꼈다. 단지 그럴 수도 있다고 느끼면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을 더 길게 늘여도 이야기 흐름에는 큰 문제없지 않았을까? 투박한 이야기 이음새가 인물의 동기를 더 공고히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졌다.
또 어떤 두 캐릭터는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의해 희생됐다고 생각한다. 아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캐릭터들은 아니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배경은 나름 합리적이고 꼼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 인물이 엄청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냥 영화의 핵심만을 전달해 주는 분량만 있었다. 이 부분은 <스턴트맨>의 뒷맛을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 장면에서 그게 꼭 들어가야 했을까? 사실 그게 굳이 아니더라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다 전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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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즘 시대의 자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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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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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피릿> 메인 예고편
어릴 적 엄마를 잃고 ‘코라’ 고모와 할아버지 손에 자란 호기심 많은 소녀 ‘럭키’는
방학동안 ‘코라’ 고모와 함께 아빠가 홀로 살고 있는 미라데로에 머물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의 서먹한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던 ‘럭키’는
우연히 에너지 넘치는 야생마 ‘스피릿’을 만나 특별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새로 사귄 친구 ‘아비게일’, ‘프루’와 함께하며 두근거림과 자유로움을 경험한다.
어느 날, ‘스피릿’과 그의 야생마 가족이 악당들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되고
‘럭키’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두려움을 무릅쓴 모험에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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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일 발표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오징어 게임》 시즌2, 12월 26일 공개 그리고 마지막 시즌 2025년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황동혁 감독의 편지 : "진짜 게임이 시작됩니다. 시즌 1으로 큰 사랑을 받고 믿기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벌어진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 시즌 2의 공개 일정과 시즌 3 제작 소식까지 알리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설렙니다. 시즌 2 첫 촬영 날, '와, 내가 다시 오징어 게임의 세계로 들어와 이걸 찍고 있다니' 하는 생각에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3년 만에 다시 만나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가 여러분께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시즌 1 엔딩에서 복수를 예고했던 성기훈은 다시 돌아와 게임에 참가합니다. 과연 그는 자신의 말대로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를 맞이하는 프론트맨 역시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이들이 보여줄 치열한 대결은 내년 공개될 시즌 3, 그 대망의 피날레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새로운 오징어 게임의 여정을 구상하며 싹 틔웠던 아이디어의 씨앗을 시즌 3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펼치고 비로소 완결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남은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곧 만나요 여러분" ‘오징어 게임'의 제작자, 작가, 감독 황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