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W2023-05-20 18:44:52
잿빛과 푸름 사이에 존재하는 고독한 우리들.
성난 사람들(2023)
첫 에피소드부터 곧 사라질 것처럼 연소하는 에너지가 압도적이다.
'성난 사람들'은 제목과 같이 현대인들의 초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흔히 ‘현생에 치여산다’라는 표현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일상생활을 하다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욱한 감정들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 참아가며 쌓였던 묵은 감정들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들. 그 엇나간 찰나를 시작으로 대니와 에이미의 인연이 시작된다. 단지 길을 막았다는 이유에서 서로를 향한 원색적이고 유치하다 싶은 행동들은 점점 도를 넘게 되고, 주변 인물들까지 얽히게 되며 상황은 점점 뒤엉켜간다.
#또 다른 만남과 다시 찾아온 잿빛
둘을 마주하고 있는 환경들은 사뭇 다르다. 대니는 부모님을 미국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전전긍긍하며 돈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아 사촌 아이작과 교묘한 범법행위들로 큰 한방을 노리고 있다. 에이미는 고요하우스의 대표로, 본인 사업을 회사로 인수하는 큰 거래를 앞두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던 감정들 사이에 의외의 요소들이 채워지기도 한다. 처음엔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지만, 에이미는 대니의 동생 폴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대니는 에이미의 남편 조지와 깊은 유대감을 쌓으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 갑작스러운 잿빛이 찾아온다. 나를 위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이루고자 한 것들이 있었는데, 세상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나 싶을 정도로 방해를 한다. 이제야 조금 안정을 찾고 잘 풀리나 싶던 하루에 또다시 폭풍이 몰아치면서 다시 찾아온 무력감과 절망. 그들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보고 있던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매일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순간과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이들에게 더 공감하고, 행동들과 감정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의 교집합에서 찾게 된 희망
이 시리즈를 보면서 가장 많이 와닿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댓글이나 멘션 하나로도 사람들과 쉽게 연결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살을 맞대며 가장 가까이 있지만 나를 좀 봐달라고 말하고, 우연히 하게 된 가벼운 DM에서 나를 인정하며 위로해 주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쏟는 행동들은 우리 내면에 있는 공허함과 외로움의 민낯을 보여준다. 짙은 고독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줄 누군가를 절실하게 원하는 그 마음들, 하나하나가 헤아릴 수 없이 애틋하다. 결국 서로에게서 가장 최악의 모습을 이끌어내지만, 그만큼 닮은 조각들이 많은 에이미와 대니는 애증을 넘어선 연대로 나아간다. 분노를 쏟아내며 퍼붓던 말들을 잠시 내려놓고 한 심도 있는 대화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 자신의 가장 아픈 조각들까지 꺼내면서 그들은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된 에이미가 대니를 끌어안는 모습은 곧,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마주하고 사랑하려는 시작점으로 보인다. 어쩌면 둘은 자신이 마주하기 싫었던 본인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여유를 챙기면서 그들의 하루가 조금 더 무탈하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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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가 유령이 된다면 어떨까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작년 말 개봉한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랙 주연의 '고스트 스토리' 보셨나요?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딘의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기형도의 '빈집'을 연관시켜 소개해드립니다.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는 모두 유령입니다.
// 왓챠에서 '진상명' 팔로우 하시면 빠른 평 업데이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고스트스토리 #니체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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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넥스트 도어> 2차 예고편
제8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튼 X 줄리안 무어 황홀한 미장센으로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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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2차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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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
어릴 때부터 야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주수인. 그는 청소년이 되면 야구를 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을 깨고 고등학교 야구부까지 진학했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신체 조건에서 남성 선수들에게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주수인에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이라는 감독의 말은 칭찬이 아니다. 그는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은 것이기에.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과 함께 야구를 시작한 이정호. 그는 프로팀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었다. 같은 곳에 있었던 두 친구 사이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상심한 주수인에게 이정호가 구속 130이면 대단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주수인이 응수한다.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이 화가 난 건 이정호의 말에 ‘여자 선수 치고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주수인은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다.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주수인의 야구팀에 새로 코치로 온 최진태. 그 역시 프로 야구선수를 꿈꿨으나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는 주수인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주수인이 왜 코치님도 프로에 도전했으면서 나는 못 하게 하냐고 따지자 최진태가 말한다. “네가 여자라서 내가 이러는 거 같아?",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라는 건 있다. 최진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주수인은 야구를 향한 진심과 집념으로 최진태를 감동시키고, 최진태는 주수인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다. 최진태는 주수인에게 남자 선수를 따라 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코칭한다. 투수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기준인 강속구가 아닌, 볼 회전이 좋은 주수인의 강점을 살린 너클볼로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결국 주수인은 한 프로팀 2군에서 선수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단장은 꿈에 그리던 프로선수가 되어 기뻐하는 주수인의 어머니에게 말한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결국 우리 삶을 빛내는 것은…
영화는 주수인이 2군 팀과 계약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주수인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진 않다. 여자인 주수인이 마초적 남성성이 헤게모니를 쥔 곳에서, 신체적 ‘한계’를 딛고 장밋빛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다. 하지만 합리성 너머의 무언가에 도전하는 주수인은 큰 울림을 준다. 주수인의 ‘비합리적’ 열정을 내내 조명하는 영화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삶을 빛내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인다. 결과와 숫자 너머에, 우리 삶을 빛내는 무언가가 있다.
덧. 네이버 영화 평점을 보면, 이 영화가 '현실'도 모르면서 여성 서사를 억지로 야구에 끼워 맞췄다는 이유로 혹평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아래 기사에서 보듯, 현실을 모르는 건 〈야구소녀〉가 아닌 영화에 혹평을 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변화를 마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090128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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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DIRECTOR.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CAST. 케일럽 랜드리 존스, 해리 멜링 외
PROGRAM NOTE.
짐 크레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하베스트>는 폐쇄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월터는 그의 젖 동무이자 마을 지주인 마스터 켄트와 함께 이 외딴 마을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미신에 집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분별을 지닌 인물이다. 7일간에 걸쳐 마을은 화재를 겪고, 추수 잔치를 벌이며, 외지인들을 핍박하고, 새로운 지주를 맞이하더니 결국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하나의 마을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과 한 시대의 고통스러운 종말, 그리고 삶의 방식이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35mm 필름에 담아낸다. 신(新)국수주의가 떠오르는 가운데, <하베스트>는 추방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불관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우화이다. (박가언)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지만, 필름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하베스트>가 그렇다. 테두리가 거뭇거뭇하거나 불그스름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올린 이 영화는, 필름을 통해 다소 중세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우화를 참 우화로 만드는 건 이런 검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올라온다. 이제 막 날개를 펴는 나비에게 후 숨을 불고, 까만 흙이 낀 손톱으로 이끼를 만지다 못해, 이끼를 베어 물고 나무 옹이에 혀를 넣기도 하다가 급기야 알몸으로 물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 거하는, ‘인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흙 낀 손톱처럼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은 화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들판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나무와 풀들, 거기서 양털을 꺾고 노동요 부르며 농사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얼핏 옛 유럽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사건들은 등락(登落)의 폭이 매우 크고, 그 낙차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외지인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는 여러 차례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중 절대다수가 트레일러에 등장하는데, 형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믿지 않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합리적 판단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두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남자이자 중간중간 서술자로서 내레이션을 하는 월터는 한편으로 주민들의 삶이 배부르고 취한 짐승들 같다고 자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에 비해 외지인에 열려 있는 사람이 그다.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싶어하고, 이름을 묻고 싶어한다. 이 마음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belong”은 주요하게 반복되는 단어다. 마을의 아이들은 동네의 경계를 따라 걷다가 경계를 알리는 돌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똑똑히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외지인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소속감은 기반 논리가 깊지 않다. 외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들의 계급이나 상황이 계속해서 다양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자반 뒤집기 하듯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외지인의 말 또한 정답은 아니다. 동네를 “개선”하겠다며 소득 증대의 꿈을 꾸는 새로운 주인, 조단의 말은 아마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모든 게 좋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조단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토박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혁신으로 깨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걸고 타인을 거부한다고 순수하게 계승할 수도 없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으로 넉넉한 사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계속되는 외지인들의 등장 앞에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식민지로 물들었던 20세기 어떤 국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식한다. 지도 제작자 얼이 개인적으로 작업한 동심원형 지도를 보여주었을 때 “최고의 지도”라고 반가워한 것도 그래서다. 둥근 동심원형은 사방으로 잔잔한 파동을 퍼뜨리며, 설령 영역이 조금 겹쳐도 서로에게 뾰족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동심원형 제도는 얼의 개인 작업일 뿐, 그에게 의뢰되는 작업은 격자 무늬형 지도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자른 그 지도상에는 사람이나 나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 지도에서 중요한 건 대략의 위치와 구획당 키울 수 있는 양의 수 정도일 것이다. 월터가 반박하듯 그 땅의 물과 흙, 심지어 땅을 돌아다니는 소의 특성까지도 확실히 알고서 그리는 동심원형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월터는 단박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그건 우리를 납작하게(flatten) 만든다고. 동심원형을 강제로 격자 모양에 쑤셔 넣으려면, 원의 가장자리는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여백으로 밀려나는(marginalized)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다. 항해용으로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프리카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과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데, 실제로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활용한 도법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 같은 국가들이 좀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많이 사용한 측면도 있다.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외지인을 받아들인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들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격자식으로 잘려 나가는 세계에서 한 줌 흙을 놓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 손가락질이 심긴 곳에서 비극이 피어난 곳을 보고도 흙에 씨앗을 심는 마음. 격자식 지도에 너무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두 시간씩 앉아 영화를 본다. 씨앗을 심고 거두듯이.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나그네는 영원히 나그네이고, 토박이는 영원히 토박이인가.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쩌면 저기 저 사람의 어제는 나의 오늘과 비슷했을 수 있다. 나의 내일이 저 사람의 오늘이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격자식으로 횡과 종을 마구잡이로 갈라 서열화하는 지도를 떠나, 둥근 원형의 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월터가 그 동심원을 실행한 방법이 (이 또한 정말 너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 같은) 무위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걸음의 방향에만큼은 고개를 끄덕여 본다.
10/03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상영코드 066)
10/08 20: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코드 395)
10/09 14: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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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주저앉은 진심 사이 찾아온 죄책감의 그림자.
매그너스 본 혼 감독이 연출한 <바늘을 든 소녀>는 제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월드 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된 영화이다. 연쇄살인마 다그마르 오베르뷔의 실제 사건을 각색한 작품으로 전쟁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통과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군수 물품을 생산하는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카롤리네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아침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뒤 그의 소식은커녕 생사도 알 수 없었던 터라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남편의 죽음을 짐작했던 카롤리네는 공장 사장이 관심을 가지는 마음에 이끌려 사랑을 나눈다. 그 후 임신을 하게 된 카롤리네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그녀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 카롤리네는 다그마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희망을 다시 찾아가는데...
자신이 겪은 것이 쾌락에 가까운지 고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단의 순간, 비로소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그 과정을 그리는 방식이 극단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비로소 상처를 공유하게 된 이들은 온전한 사랑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거듭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꿈꾸지만 그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으며 세상은 그녀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진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죄책감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직 이 위기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그녀의 선택을 감히 비난할 수 없다.
영화는 시대적 고통 속에서 개인이 내리는 선택과 그로 인한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다. 또, 전쟁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이 영화는 전쟁이 남긴 상흔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그 상흔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넘나들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 남성에게는 얼굴에 남은 상처를, 여성에게는 몸에 남은 상처를 보여주는 식이다. 용기와 결단,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비극이라는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공통점은 그 누구에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고통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여성으로서 느끼는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이 드러나는 부분이 명확히 그려져 좋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죄책감을 딛고 용기를 내는 부분이 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돌아온 남편의 이야기와 그의 상처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하게 다뤘다면 영화의 깊이가 더욱 풍부해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남편이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겪는 내적 갈등과 외적 상처는 단순히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넘어 전후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연결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영화가 전개되며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초반부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부분은 후반부에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온전히 들여다보기엔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다. 마치 똑바로 현실을 바라보라며 바늘로 관객을 콕콕 찌르는 듯한 연출이 인상 깊었다. 잔잔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초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반전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그만큼 에너지가 폭발적이지만 관객도 따라서 진이 빠지는 빠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믿음은 양면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전쟁의 시작처럼, 모든 관계의 시작은 믿음과 신뢰지만 한 번에 무너지는 잔혹함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다. 거듭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은 마치 결말이 정해진 것처럼 당연하게 시작됐다. 그 이름을 미리 알려줘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참혹한 시대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소 잔잔한 흐름이다. 오히려 우울하기까지 하다. 초반에 기대했던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지만 충격적인 장면이 잔잔하게 가슴을 후벼 판다. 시대가,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분열되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작품이다.
영화 상영 정보
10월 3일 16:30 CGV 센텀시티 5관
10월 6일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10월 10일 20:00 CGV 센텀시티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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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달러를 향한 질주
5월 19일 국내 개봉 이후 6주간 총 2,275,323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 매출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긴 기다림 끝에 찾은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개봉 3일 동안 7000만 달러 (한화 약 791억 원)을 모으며 팬데믹 이후 최고 수익 경신은 물론, 2019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래 최고 수익을 기록하였습니다.
개봉일이었던 6월 25일 당일에만 4,179개의 극장에서 3,000만 달러를 끌어모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 9편은 이전까지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 1위를 달리던 공포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기록을 큰 격차로 따돌리게 되었는데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북미 오프닝 스코어 : $47,547,231)
이 기록에 대해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역인 빈 디젤은 CTAOP(Charlize Theron’s Africa Outreach Project) 행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극장이 돌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그는 극장 단독 개봉을 택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결정을 높이 샀는데요.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택한 다른 스튜디오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유니버설은 매우 대담했으며, 이러한 극장 개봉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본 작품으로 시리즈에 귀환한 프로젝트 설립자 '샤를리즈 테론' 또한 분노의 질주의 '대박' 오프닝 기록에 대해 “엄청나다. 이번 작품이 시리즈 제 9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현재 약 80%의 극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캐나다’ 극장이 아직까지도 대부분 닫혀있기에 회복되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시리즈 제 9편이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이전작인 스핀오프 작품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오프닝 스코어였던 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북미 최종 수익 1억 7300만 달러, 전 세계 수익 7억 5900만 달러를 기록하였기에, 제 9편이 이를 뛰어넘는 기록을 달성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 가정이 사실이 된다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총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한 팬데믹 이후 첫 영화가 탄생하게 됩니다.팬데믹 이후 15개월 동안 42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말 그대로 "닫혀있던"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이 즉시 회복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많은 작품들이 개봉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개봉해주었던 고마운 영화들로 인하여 관객들의 꺼지지 않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다림’이 막연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회복될 극장을 기다리며,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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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에야 제자리를 찾은 DCEU의 사모곡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스티스 리그 막내로 궂은일을 도맡은 히어로 '플래시/배리 앨런'(에즈라 밀러). 플래시가 아닌 배리로 살아갈 때 그의 삶은 고달프다.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 중인 아버지의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 하지만 배리는 '브루스 웨인/배트맨'(벤 애플랙)의 도움을 받고도 쉽사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시간 여행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불행한 가족사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을 역행한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멀티버스에 불시착한 배리는 '조드'(마이클 섀넌)의 침공 때문에 위기에 처한 지구를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이에 배리는 멀티버스의 배리, 나이 들고 은퇴한 ‘배트맨’(마이클 키튼), 크립톤에서 온 '슈퍼걸'(사샤 카예)과 팀을 이뤄 시간과 공간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우주를 구하려 한다.
뻔한 재료로 색다른 맛을 내다
또 하나의 멀티버스, 시간여행 영화가 도착했다. 2013년 <맨 오브 스틸>로 시작을 알린 DCEU(DC Extenede Universe, DC 확장 유니버스)의 14번째이자 마지막 영화 <플래시>다. <플래시>는 DCEU를 마무리하고 제임스 건 주도로 리부트된 DCU(DC Universe, DC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중간 다리다.
근래 들어 멀티버스나 시간여행 영화는 슬슬 지겹다. 단순히 작품 수가 많기 때문은 아니다. 주제나 교훈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일생일대의 회한이 남는 순간을 되돌려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려 한다. 그 과정에서 멀티버스의 '나'를 만나고 깨달음을 얻는다. 후회하고 가슴 아픈 매 순간이 모여 비로소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따라서 과거를 바꾸는 대신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픽사의 <버즈 라이트이어>, 심지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까지. 위의 운명론적인 주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플래시>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려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플래시>는 익숙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연출은 플래시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수많은 카메오는 DCEU, 더 나아가서 DC라는 거대한 세계관의 매력을 스크린에 가득 채웠다. 덕분에 러닝타임 144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설령 개봉 전 평가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히어로 영화로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멀티버스로 써 내려간 사모곡
<플래시>는 가족 영화다. 배리의 활약상을 한바탕 보여준 후, 영화는 곧장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조명한다. 배리는 어릴 때 엄마를 잃었다. 아빠가 스파게티에 쓸 토마토 캔을 사러 나간 사이 엄마가 살해당했다. 이후 아빠는 아내를 죽인 혐의로 수감됐고, 배리는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범죄수사 연구소에 취업하기도 했고, 브루스 웨인의 도움을 받아 아빠의 알리바이가 담긴 CCTV 영상도 복원했다.
그러다 보니 배리의 시간 여행은 구슬픈 사모곡이다. 엄마를 살려내서 세 가족이 함께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회한으로 가득하다. 그가 마냥 철없는 멀티버스의 배리에게 화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간절한 일분일초라는 걸 알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만난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는 십수 년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특히 상상을 실현할 능력이 있지만, 그럴 수 없기에 더 가슴 아프다.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살려냈지만, 자기 때문에 엉망이 된 멀티버스를 마주한 배리. 그는 과거의 필연적인 지점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달라진 과거 때문에 스파게티처럼 엉켜버린 멀티버스를 정리할 방법은 없으니까. "모든 문제에 답이 있지는 않다"던 엄마의 말처럼. 그의 사모곡은 엄마가 죽어야만 하는 역설인 셈이다.
에즈라 밀러를 포기 못한 이유
하지만 배리는 이 역설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멀티버스에서 두 인물을 만난 후에야 가슴 아픈 현실을 인정한다. 우선 그는 능력을 얻기 직전인 18살 배리를 만난다. 두 배리는 함께 다니면서 여러 일을 겪는다. 배리는 플래시의 능력을 잃고, 멀티버스의 배리는 플래시로 각성한다. 히어로 경험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플래시와 능력은 있지만 지식은 전무한 플래시는 그렇게 일종의 버디 무비를 찍는다.
그 과정에서 배리는 한층 성숙해진다. 멀티버스 속 배리는 거울과도 같다. 거울 속 '나'는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와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다. 좌우가 바뀌어 있고, 거울 표면에 의해 형태가 왜곡될 수도 있다. 이처럼 거울에 비친 남 같은 내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던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우주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나고 달라진 것처럼.
배리도 마찬가지다. 멀티버스에서 지구의 멸망을 지켜본 배리는 과거를 바꾸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깨닫는다. 반면에 멀티버스의 배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배리는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미련 때문에 과거를 놓아주지 못한 자기 모습을 반성한다.
에즈라 밀러의 1인 2역 덕분에 배리의 성장기는 더 설득력 있다. 상대적으로 진중한 배리와 마냥 까불거리는 멀티버스의 배리. 정신적 성장을 이룬 플래시와 아직 미숙한 멀티버스의 플래시. 이 차이를 표정과 눈빛으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루밍 범죄 혐의를 비롯해 폭행, 협박 등 여러 혐의를 받아 논란이 되었는데도 워너와 DC가 에즈라 밀러를 포기하지 못한 사정이 이해될 정도다.
플래시와 함께 성장한 DC
배리는 멀티버스에서 또 다른 인물을 만난다.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이다. 그는 배리의 아픔을 이해한다. 흡사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도 어린 시절 엄마를 잃었다. 죽은 엄마가 되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범죄자를 때려잡았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엄마를 살려내려는 배리의 용기와 결단력에 감탄하고, 그에게 인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배트맨은 배리에게 충고한다. 조드와의 전투 중 부상당해 죽어갈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사건이 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고. 트라우마와 평생 싸웠던 배트맨이기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다. 이처럼 <플래시>는 키튼의 배트맨을 활용해 배리의 성장기를 색다르게 포장하는 데 성공한다.
흥미롭게도 배트맨의 조언은 DCEU, 더 나아가 DC 스스로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DC는 본래 히어로 영화의 명가였다. 1978년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과 1989년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은 히어로 영화의 첫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물론 그만큼 실패도 많았다. 슈퍼맨과 배트맨 시리즈는 배우 교체와 리부트를 거듭했다. DCEU도 <저스티스 리그>가 실패한 후 표류했다. 결국 반등하지 못하고 10년 만에 문을 닫았다.
<플래시>는 이 모든 성공과 실패, 숱하게 취소된 계획과 기획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수십 년 간 난잡했던 DC의 역사를 화려한 팬서비스로 승화한다. 실제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처럼 취소됐던 시리즈나 흑역사로 기억되던 조지 클루니의 배트맨이 모습을 비춘다. 플래시의 기원을 보여주듯이 DCEU의 첫 작품으로 되돌아가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플래시>는 DCEU는 물론 DC의 모든 유니버스를 아우르며 DCU의 시작을 준비한다.
훌륭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플래시>는 개봉 전 평가만큼 압도적인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DC 작품 중에서는 <다크 나이트>에 버금간다거나, 시간 여행이나 멀티버스를 다룬 히어로 영화 중에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만큼 뛰어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있다. 성급하게 결말로 나아가는 전개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단 배리의 서사에 일관성이 없다. 배리는 다크 플래시를 만났고, 조드 장군 때문에 지구가 멸망할 위기도 한 번 더 겪었으며, 멀티버스 배트맨의 조언도 들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배리는 어머니를 살리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등 한층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배리의 마지막 모습은 다르다. 그는 아버지를 구하려고 과거를 다시 한번 건드렸다. 과거는 과거로 둬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했다. 그 결과 또 다른 멀티버스가 생겼고, 배트맨도 바뀌어 버렸다. DCU가 이 결말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 내적으로만 보면 캐릭터의 서사가 무너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플래시>의 해피 엔딩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새드 엔딩과 대비를 이룬다.
메인 빌런인 다크 플래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다크 플래시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와 플래시의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은 지나치게 간략하다. 다크 플래시는 한순간의 실수로 퇴장한다. 이렇다 할 액션씬이나 설득, 대화 장면도 없다. 굳이 영화 초반부터 복선을 던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체를 숨기면서 아껴둘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는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러닝타임이 결코 짧지 않은데도 영화 템포는 점점 빨라진다. 배트맨, 슈퍼걸, 두 플래시로 시점이 나뉘면서 짜임새가 느슨해진다. 멀티버스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와 예전 캐릭터를 모두 한 데 모으는 과정에서 그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실제로 다른 몇몇 캐릭터도 다크 플래시와 마찬가지로 도구적으로 활용된다. 일례로 조드나 슈퍼걸은 배우의 연기력이나 캐릭터의 임팩트와는 별개로 기계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퇴장한다. 그들은 필연적인 시점이 있으며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규칙을 보여주는 각본의 도구로 소모된다.
깔끔한 마무리와 기대되는 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래시>는 여전히 잘 만든 히어로 영화다. 특히 히어로 영화로서 본분을 다해낸다. 언제나 DCEU의 장점이었던 액션이 어색한 CG도 뚫고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플래시의 속도와 능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엑스맨> 시리즈가 퀵실버를 활용한 듯한 슬로모션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플래시의 빠른 속도를 활용한 액션을 중간에 삽입해 단조롭지 않도록 리듬을 살렸다.
배트맨도 인상적이다.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은 활강 장면에서 진가를 보여준다.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주는 육탄전도 늙은 영웅의 복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벤 애플랙의 배트맨도 DCEU에서 처음 등장한 배트포드를 타고 강렬한 추격전을 선보인다. 이에 더해 속도감과 파괴력이 돋보이는 슈퍼걸의 액션도 인상적이다. <맨 오브 스틸> 속 슈퍼맨을 다시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플래시>는 기대 이상의 방식으로 DCEU를 마무리했다. 복잡했던 DC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토양을 마련했다.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사로잡을 수 있는 볼거리도 아낌없이 펼쳐냈다. 비록 결말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것> 시리즈를 연출한 안드레스 무시에티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공은 제임스 건에게 넘어갔다. 과연 그가 만들 DCU는 어떨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Acceptable 무난함
시작으로 되돌아가 가슴 벅차게 마무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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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에놀라는 성격도 좋고 똑똑하고 씩씩해
친오빠는 셜록 홈즈
태어났는데 아빠가 원빈. 아빠가 유재석. 엄마가 탕웨이. 비슷한 맥락에서 친오빠가 셜록 홈즈라는 점은 참으로 신기하다. 오빠 셜록은 정말 똑똑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목소리도 섹시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빠 셜록의 직업은 탐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에놀라의 직업도 탐정이다.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에놀라. 나도 오빠만큼 멋진 탐정이 될래! 꿈은 쉽지만 현실은 그만큼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파리만 휘날리는 에놀라 탐정 사무소. 사건 하나라도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 오빠는 나라 돈을 훔쳐간 사람의 행방을 찾은 일을 하는데 여동생인 에놀라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녀 한 명이 에놀라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사건의 경위를 묻는 에놀라. 의뢰인은 금세 사정을 전한다. 의뢰인의 사건은 친언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의 영국은 노동환경이 열악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여동생의 입장에선 언니가 걱정이 된 것이다. 좋았어! 첫 번째 사건이야!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처음 일거리가 들어왔다. 우리의 에놀라 홈즈는 혈혈단신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협동과 신뢰, 연대의 의미를 깨우치면서.
이걸 기다렸지
<셜록> 시리즈 중 최신판이 나온 지 좀 됐다. 이 후더닛 장르 맛집이있던 미드 <셜록> 이후로 뭔가 그럴듯한 추리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나이브스 아웃> 정도? 이 영화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을 맡았던 드라마가 워낙 이런 특성을 잘 살려서인지 글쓴이 같은 후더닛 팬들에게는 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전작 드라마 <셜록>의 설정 일부를 따 온 영화다. 헨리 카빌이 컴버배치가 맡았던’ 셜록’으로 나오고, 소설의 흑막과 가장 주요한 조력자가 후반부에 나온다. 비단 인물관계뿐만 아니라 서스펜스적인 측면을 잘 살렸다는 점이 영화의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그래서 의뢰인의 언니는 어디로 갔는가?’이다. 이를 추적하는 이야기의 구성이 좋았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이 증거가 왜 중요한지도 다 알려주고. 에놀라의 추론에 카메라가 동행하며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 영화에서 최종 보스까진 아니더라도 중소형 보스(?)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 보스의 계급 설정도 에놀라가 맞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설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치한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스릴러만 강조된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썼듯 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의 가능성이다. 여자 탐정 캐릭터가 그동안 영화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의 기억 속에는 아마 없던 것 같다. 심지어 ‘명탐정 코난’의 코난도 남자 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유럽의 시대 특성상 여성이 주목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무작정 여성 혼자서만 원톱으로 끌고 가는 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핍진성이 성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오빠 셜록, 어머니, 어머니의 조력자 이디스의 존재를 배치해서 에놀라가 주체적으로 서기 위해서 타인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부각했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 당장 구글에 ‘밀리 바비 브라운’이라고 검색하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이 나온다. 순간 보고 내가 아는 얼굴 아닌 줄 알았다. 분명 뭔가 수수한 이미지인데 케이트 블란쳇이 연상되는 화장법이 느껴졌다. 단순히 화장법뿐만 아니라 배우는 이 캐릭터에 빙의한 듯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똑 부러지는 똑순이 캐릭터는 좀 식상하다. 그리고 제4의 벽 부수는 것도 어디선가 많이 봤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적지 않은 곳에서 봤던 캐릭터 세팅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이 캐릭터 해석에는 기존에 많이 봐왔던 ‘셜록’ 드라마와 영화판에서 볼 수 있던 해석이 돋보인다. 이는 영화 연출에서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에놀라의 조력자로 나오는 헨리 카빌의 연기와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도 좋았다. 전자 헨리 카빌은 로다주의 셜록, 컴버배치의 셜록과는 다른 느낌의 연기를 했다. 선배 셜록 둘 보다 보다 더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셜록은 과제가 있다. 로다주와 컴버배치가 보여준 것처럼 고지능의 뇌를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에놀라의 조력자로서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버텨주며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활약한다. 후술 하겠지만 영화에서 셜록의 지나치게 비중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헨리 카빌이 맡은 역할은 이를 뒷받침하듯 내적으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인물은 후반부에서 기존의 셜록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게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영화는 꼼꼼한 설명을 놓지 않았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맡은 어머니 홈즈 역시 이중적이다. 사회운동가인 어머니 홈즈. 여기서 이 어머니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에놀라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연대의 대상이 되어 엔딩의 디딤돌이 되어준다. 이 배우가 연기를 통해 극에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체형,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와 제스처로 주는 신뢰감이 필수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를 이해하고 있는 듯이 극에서 등장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빨아들이며 따뜻한 어머니 연기를 보여준다. 이 사람은 장난기도 있고 성격이 깊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딸 에놀라에게 ‘난 가끔 너를 독립적으로 키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여기서 이 인물이 대사 하는 문장 내용부터 억양까지 어머니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을 잘 강조했다. 베테랑의 클래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새로운 해석
영화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사건 해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코난의 사건이 있다. <바스커빌 가의 개>나 <주홍색 연구>가 그렇다. 만약 이런 사건의 재해석이 궁금했던 팬 분들이라면 살짝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여성 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 그래서 셜록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소시오패스적인 측면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장르적인 재미를 중점으로 전개했던 소설, 드라마와는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 구성이 되어있다. 이를 위해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을, 영화의 주제와도 맞게 살짝씩 변형한 점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에서 최종 흑막이 드러나는 부분은 이 이름을 말하는 배우의 연기가 좋기도 했지만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적인 측면이 중반을 넘어서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한번 더 꺾었기 때문이다. 이 흑막의 동기 때문에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 드라마의 팬들은 ‘원작 파괴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불호 여론에 대해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흑막 캐릭터 묘사의 역사를 보면 사이코패스적인 측면만 강조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빌런 유형은 우리가 많이 봐왔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은 이런 빌런으로 갖고 왔으면서 동시에 그런 맥락을 부여했다. 글쓴이는 감독이 의도한 것 같지만 이런 디테일이 다른 영화들의 흑막들과는 좀 다른 점처럼 느껴진다.
아쉬운 것이 드문드문
영화는 유쾌하고 재밌게 달린다. 제4의 벽을 넘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유쾌한 입담도 재미있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상큼 발랄한 로맨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단점은 또렷하다. 우선 첫 번째. 셜록의 비중이 너무 많은 듯하다. 물론 어머니 홈즈가 말한 대로 이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극에서 혼자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셜록의 도움을 받는 부분은 아쉽다. 후반부 주제적인 측면에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똑똑한 소시오패스인 셜록이 극후 반부 의외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헨리 카빌의 카리스마로도 인물의 기능적인 활용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또 구체적으로 초반에 셜록이 어떤 사건을 승계받는다. 이때 이 인물이 사건을 승계받은 것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맥거핀이라기엔 인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마냥 그렇지많은 않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군데군데 살짝 헐겁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느껴진다. 아무리 당시 시대상이 여성 혐오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좀 지나칠 정도로 에놀라를 애 취급하는 것은 아쉽다. 몇몇 장면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뭐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었고, 현대에 반복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발상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나쁜 게 아니니까. 그런데 꼭 나이 든 중년의 남자가 에놀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인 ‘여성들과의 연대’를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한 부분도 몇몇 보인다. 가령 경찰이 살짝 무기력하게 묘사된다던지 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를 셜록 홈즈의 조력자 포지션이나 튜르스페리의 존재감으로 메꾸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메시지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엔딩을 보여주려고 준비물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아주 칭찬해
그래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단 재밌다. 스릴러로서 뛰어나다. 또 증거를 모아 모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일단 이런 인물 원톱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추후 행보가 궁금해진다’인 것 같다. 글쓴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에놀라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러닝타임을 이끄는 영화를 보는데 안성맞춤이다. 1편보다 훨씬 더 성장한 영화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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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가 유령이 된다면 어떨까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작년 말 개봉한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랙 주연의 '고스트 스토리' 보셨나요?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딘의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기형도의 '빈집'을 연관시켜 소개해드립니다.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는 모두 유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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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스토리 #니체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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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넥스트 도어> 2차 예고편
제8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튼 X 줄리안 무어 황홀한 미장센으로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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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2차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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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
어릴 때부터 야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주수인. 그는 청소년이 되면 야구를 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을 깨고 고등학교 야구부까지 진학했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신체 조건에서 남성 선수들에게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주수인에게 “여자 중에 그렇게 던지는 선수 전 세계에 몇 명 안 될걸?”이라는 감독의 말은 칭찬이 아니다. 그는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은 것이기에.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과 함께 야구를 시작한 이정호. 그는 프로팀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었다. 같은 곳에 있었던 두 친구 사이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상심한 주수인에게 이정호가 구속 130이면 대단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주수인이 응수한다.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이 화가 난 건 이정호의 말에 ‘여자 선수 치고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주수인은 ‘여자 야구’가 아닌 그냥 야구가 하고 싶다.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주수인의 야구팀에 새로 코치로 온 최진태. 그 역시 프로 야구선수를 꿈꿨으나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는 주수인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주수인이 왜 코치님도 프로에 도전했으면서 나는 못 하게 하냐고 따지자 최진태가 말한다. “네가 여자라서 내가 이러는 거 같아?", "나처럼 못 가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걸 수도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라는 건 있다. 최진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주수인은 야구를 향한 진심과 집념으로 최진태를 감동시키고, 최진태는 주수인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다. 최진태는 주수인에게 남자 선수를 따라 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코칭한다. 투수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기준인 강속구가 아닌, 볼 회전이 좋은 주수인의 강점을 살린 너클볼로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결국 주수인은 한 프로팀 2군에서 선수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단장은 꿈에 그리던 프로선수가 되어 기뻐하는 주수인의 어머니에게 말한다. “수인인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겁니다.”
결국 우리 삶을 빛내는 것은…
영화는 주수인이 2군 팀과 계약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주수인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진 않다. 여자인 주수인이 마초적 남성성이 헤게모니를 쥔 곳에서, 신체적 ‘한계’를 딛고 장밋빛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다. 하지만 합리성 너머의 무언가에 도전하는 주수인은 큰 울림을 준다. 주수인의 ‘비합리적’ 열정을 내내 조명하는 영화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삶을 빛내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인다. 결과와 숫자 너머에, 우리 삶을 빛내는 무언가가 있다.
덧. 네이버 영화 평점을 보면, 이 영화가 '현실'도 모르면서 여성 서사를 억지로 야구에 끼워 맞췄다는 이유로 혹평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아래 기사에서 보듯, 현실을 모르는 건 〈야구소녀〉가 아닌 영화에 혹평을 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변화를 마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090128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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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DIRECTOR.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CAST. 케일럽 랜드리 존스, 해리 멜링 외
PROGRAM NOTE.
짐 크레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하베스트>는 폐쇄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월터는 그의 젖 동무이자 마을 지주인 마스터 켄트와 함께 이 외딴 마을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미신에 집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분별을 지닌 인물이다. 7일간에 걸쳐 마을은 화재를 겪고, 추수 잔치를 벌이며, 외지인들을 핍박하고, 새로운 지주를 맞이하더니 결국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하나의 마을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과 한 시대의 고통스러운 종말, 그리고 삶의 방식이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35mm 필름에 담아낸다. 신(新)국수주의가 떠오르는 가운데, <하베스트>는 추방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불관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우화이다. (박가언)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지만, 필름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하베스트>가 그렇다. 테두리가 거뭇거뭇하거나 불그스름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올린 이 영화는, 필름을 통해 다소 중세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우화를 참 우화로 만드는 건 이런 검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올라온다. 이제 막 날개를 펴는 나비에게 후 숨을 불고, 까만 흙이 낀 손톱으로 이끼를 만지다 못해, 이끼를 베어 물고 나무 옹이에 혀를 넣기도 하다가 급기야 알몸으로 물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 거하는, ‘인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흙 낀 손톱처럼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은 화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들판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나무와 풀들, 거기서 양털을 꺾고 노동요 부르며 농사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얼핏 옛 유럽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사건들은 등락(登落)의 폭이 매우 크고, 그 낙차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외지인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는 여러 차례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중 절대다수가 트레일러에 등장하는데, 형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믿지 않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합리적 판단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두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남자이자 중간중간 서술자로서 내레이션을 하는 월터는 한편으로 주민들의 삶이 배부르고 취한 짐승들 같다고 자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에 비해 외지인에 열려 있는 사람이 그다.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싶어하고, 이름을 묻고 싶어한다. 이 마음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belong”은 주요하게 반복되는 단어다. 마을의 아이들은 동네의 경계를 따라 걷다가 경계를 알리는 돌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똑똑히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외지인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소속감은 기반 논리가 깊지 않다. 외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들의 계급이나 상황이 계속해서 다양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자반 뒤집기 하듯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외지인의 말 또한 정답은 아니다. 동네를 “개선”하겠다며 소득 증대의 꿈을 꾸는 새로운 주인, 조단의 말은 아마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모든 게 좋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조단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토박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혁신으로 깨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걸고 타인을 거부한다고 순수하게 계승할 수도 없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으로 넉넉한 사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계속되는 외지인들의 등장 앞에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식민지로 물들었던 20세기 어떤 국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식한다. 지도 제작자 얼이 개인적으로 작업한 동심원형 지도를 보여주었을 때 “최고의 지도”라고 반가워한 것도 그래서다. 둥근 동심원형은 사방으로 잔잔한 파동을 퍼뜨리며, 설령 영역이 조금 겹쳐도 서로에게 뾰족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동심원형 제도는 얼의 개인 작업일 뿐, 그에게 의뢰되는 작업은 격자 무늬형 지도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자른 그 지도상에는 사람이나 나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 지도에서 중요한 건 대략의 위치와 구획당 키울 수 있는 양의 수 정도일 것이다. 월터가 반박하듯 그 땅의 물과 흙, 심지어 땅을 돌아다니는 소의 특성까지도 확실히 알고서 그리는 동심원형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월터는 단박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그건 우리를 납작하게(flatten) 만든다고. 동심원형을 강제로 격자 모양에 쑤셔 넣으려면, 원의 가장자리는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여백으로 밀려나는(marginalized)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다. 항해용으로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프리카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과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데, 실제로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활용한 도법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 같은 국가들이 좀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많이 사용한 측면도 있다.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외지인을 받아들인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들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격자식으로 잘려 나가는 세계에서 한 줌 흙을 놓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 손가락질이 심긴 곳에서 비극이 피어난 곳을 보고도 흙에 씨앗을 심는 마음. 격자식 지도에 너무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두 시간씩 앉아 영화를 본다. 씨앗을 심고 거두듯이.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나그네는 영원히 나그네이고, 토박이는 영원히 토박이인가.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쩌면 저기 저 사람의 어제는 나의 오늘과 비슷했을 수 있다. 나의 내일이 저 사람의 오늘이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격자식으로 횡과 종을 마구잡이로 갈라 서열화하는 지도를 떠나, 둥근 원형의 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월터가 그 동심원을 실행한 방법이 (이 또한 정말 너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 같은) 무위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걸음의 방향에만큼은 고개를 끄덕여 본다.
10/03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상영코드 066)
10/08 20: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코드 395)
10/09 14: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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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주저앉은 진심 사이 찾아온 죄책감의 그림자.
매그너스 본 혼 감독이 연출한 <바늘을 든 소녀>는 제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월드 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된 영화이다. 연쇄살인마 다그마르 오베르뷔의 실제 사건을 각색한 작품으로 전쟁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통과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군수 물품을 생산하는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카롤리네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아침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뒤 그의 소식은커녕 생사도 알 수 없었던 터라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남편의 죽음을 짐작했던 카롤리네는 공장 사장이 관심을 가지는 마음에 이끌려 사랑을 나눈다. 그 후 임신을 하게 된 카롤리네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그녀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 카롤리네는 다그마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희망을 다시 찾아가는데...
자신이 겪은 것이 쾌락에 가까운지 고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단의 순간, 비로소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그 과정을 그리는 방식이 극단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비로소 상처를 공유하게 된 이들은 온전한 사랑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거듭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꿈꾸지만 그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으며 세상은 그녀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진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죄책감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직 이 위기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그녀의 선택을 감히 비난할 수 없다.
영화는 시대적 고통 속에서 개인이 내리는 선택과 그로 인한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다. 또, 전쟁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이 영화는 전쟁이 남긴 상흔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그 상흔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넘나들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 남성에게는 얼굴에 남은 상처를, 여성에게는 몸에 남은 상처를 보여주는 식이다. 용기와 결단,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비극이라는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공통점은 그 누구에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고통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여성으로서 느끼는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이 드러나는 부분이 명확히 그려져 좋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죄책감을 딛고 용기를 내는 부분이 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돌아온 남편의 이야기와 그의 상처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하게 다뤘다면 영화의 깊이가 더욱 풍부해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남편이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겪는 내적 갈등과 외적 상처는 단순히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넘어 전후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연결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영화가 전개되며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초반부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부분은 후반부에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온전히 들여다보기엔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다. 마치 똑바로 현실을 바라보라며 바늘로 관객을 콕콕 찌르는 듯한 연출이 인상 깊었다. 잔잔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초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반전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그만큼 에너지가 폭발적이지만 관객도 따라서 진이 빠지는 빠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믿음은 양면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전쟁의 시작처럼, 모든 관계의 시작은 믿음과 신뢰지만 한 번에 무너지는 잔혹함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다. 거듭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은 마치 결말이 정해진 것처럼 당연하게 시작됐다. 그 이름을 미리 알려줘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참혹한 시대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소 잔잔한 흐름이다. 오히려 우울하기까지 하다. 초반에 기대했던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지만 충격적인 장면이 잔잔하게 가슴을 후벼 판다. 시대가,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분열되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작품이다.
영화 상영 정보
10월 3일 16:30 CGV 센텀시티 5관
10월 6일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10월 10일 20:00 CGV 센텀시티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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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달러를 향한 질주
5월 19일 국내 개봉 이후 6주간 총 2,275,323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 매출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긴 기다림 끝에 찾은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개봉 3일 동안 7000만 달러 (한화 약 791억 원)을 모으며 팬데믹 이후 최고 수익 경신은 물론, 2019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래 최고 수익을 기록하였습니다.
개봉일이었던 6월 25일 당일에만 4,179개의 극장에서 3,000만 달러를 끌어모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 9편은 이전까지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 1위를 달리던 공포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기록을 큰 격차로 따돌리게 되었는데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북미 오프닝 스코어 : $47,547,231)
이 기록에 대해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역인 빈 디젤은 CTAOP(Charlize Theron’s Africa Outreach Project) 행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극장이 돌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그는 극장 단독 개봉을 택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결정을 높이 샀는데요.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택한 다른 스튜디오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유니버설은 매우 대담했으며, 이러한 극장 개봉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본 작품으로 시리즈에 귀환한 프로젝트 설립자 '샤를리즈 테론' 또한 분노의 질주의 '대박' 오프닝 기록에 대해 “엄청나다. 이번 작품이 시리즈 제 9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현재 약 80%의 극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캐나다’ 극장이 아직까지도 대부분 닫혀있기에 회복되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시리즈 제 9편이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이전작인 스핀오프 작품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오프닝 스코어였던 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북미 최종 수익 1억 7300만 달러, 전 세계 수익 7억 5900만 달러를 기록하였기에, 제 9편이 이를 뛰어넘는 기록을 달성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 가정이 사실이 된다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총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한 팬데믹 이후 첫 영화가 탄생하게 됩니다.팬데믹 이후 15개월 동안 42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말 그대로 "닫혀있던"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이 즉시 회복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많은 작품들이 개봉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개봉해주었던 고마운 영화들로 인하여 관객들의 꺼지지 않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다림’이 막연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회복될 극장을 기다리며,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