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1-31 23:54:14
재능의 우월함은 사회 속 열등함 속에서도 빛난다
히든 피겨스
이 영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황인종도 나름 인종차별을 당해서 억울하다고들 하지만 흑인종만큼 억울한 인종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가고, 하대받던 것이 당연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그렇게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한창 우주 산업에 박차를 가하던 그 때, 우리는 그 시절을 고대도 아니고, 중세도 아니고, 현대에 가까운 과거로 보고 있지 않나. 흑인들을 향한 차별은 아직도 완벽히 근절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는 그 차별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 엘리트 집단은 또 얼마나 폐쇄적인 집단인가. 태생적으로 흑인들에게 부여된 폐쇄성을 딛고, 사회적으로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에 들어가 살아남으려는 세 여자,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1. 흑인은 백인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할 것이라는 오만
능력을 인종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잣대인지 지금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만 과거를 사시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은 아직도 그 잣대가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를 본 적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도 아직 백인에 대한 우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오만이 되어버린 인종차별은 이 영화 전체를 좌우하는 키워드다. 백인들은 관리자이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지휘를 받는 사람이라는 설정 부터가 보는 내내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 여자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극복해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장면이지만 캐서린이 백인들과는 다른 화장실을 써야해서 건물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그 모습을 한탄하며 화내는 장면이 정말 명장면이다. 그렇게 서럽게 말하는 캐서린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그 말을 듣고, 당장 백인과 유색인종 화장실의 경계를 없애버린 상사도 참 예민하긴 해도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예민함은 직업적인 데서 오는 모습이겠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하지만 그렇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그 사소해 보이는 화장실 문제 하나 이해를 못 하다니 싶다가도,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공감도 지능'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는 유색인종을 이해하는 공감적 지능이 양성된 적이 없는 것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내 안의 세계를 뚫고 나온 경험이 많을수록 증폭되는데, NASA의 엘리트들은 공부머리들은 좋은데, NASA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공부만 하다보니, 그런 공감적 능력까지 키울 여력은 없었던 거겠지. 그리고 또,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유색인종이 받는 차별을 자신이 겪을 일이 없었을 테니, 화장실 하나 가는 것 조차 불편을 감수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면서 불편함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서, 소위 쿨하지 못한 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편함을 느꼈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겠구나 싶어서 조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불편한 경험은 누군가의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기도 하는데, 백인들의 삶에서 불편함이래봐야 얄팍했을 테니, 흑인들이 느꼈을 깊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불편함에 대한 호소가 대단히 신선하지만 또한 낯설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권이었을 것이기에.
2.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자리이자 누군가의 인정
결론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글렌 파월이 연기한 조종사 역할을 참 인상깊게 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흑인이고 뭐고 그런 편견이 없어보이는 인물로 나온다. 그저 멋있는 군인 역할이었다. 캐서린에게 보이는 친절함과 그녀를 향한 굳은 믿음이 참 내가 받는 친절도 아니면서 괜히 고마웠다. 마치 그 시절 백인들도 다 그랬던 건 아니었겠구나 싶어서 괜히 안심되고 그랬다. 다행히 세 여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성공했지만 이 세상에 성공까지는 하지 못하고 도전까지만 해본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해 본다면, 그들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조종사처럼 그저 편견없이 바라봐주는 친절함 만이라도 있었다면 더 대우받는 흑인들이 더 많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언급하지만 캐서린의 상사도 참 좋은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흑인이라 탐탁지 않아 했어도 능력을 입증하니 신봉하는 모습에서 그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능력차별 주의자 겠거니 싶었다.
이들은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영화화까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 속에 그들처럼 성공까지는 못했지만 도전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한 사람, 아예 도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인종차별에 의한 소수자들은 많았을 것이다. 이 세 여자들을 보면서 인종차별을 타파한 사이다 3인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들 말고도 조명받지 못한 소수 인종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며 괜히 센치해졌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밝히듯, 빛나는 보석은 어디에 둬도 튀는 것처럼 그들의 재능과 패기는 그 답답한 NASA의 엘리트 집단의 콧대를 지그시 눌러버릴 만큼 강력했던 것 같다. 흑인들이 보여준 재능과 패기는 백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흑인들의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우월함이었을 것이다. 그 우월함을 무기로 우월한 정신으로 무장한 백인들을 무찔렀던 것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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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이유가 있진 않지만 일단 다 준비했어
<범죄도시 4>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다. 수사 중인 마석도. 마약 유통업자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팀과 노력하고 있다. 딱 봐도 이상해보이는 남자를 쫓는 마석도. 열심히 달리니 도착한 곳은 어떤 건물의 옥상이다. 문을 열고 유통업자들의 본거지에 도착한다. 문이 철창으로 되어 있었다. 철창을 부수는 마석도. 악한들을 때려눕히고 나서 범죄자들이 쓰던 휴대전화를 관찰했다. 그 휴대전화에는 범죄자들이 마약을 유통하는 방식에 대한 힌트가 있었다. 어플을 개발해서 마약을 판매하던 업자들을 잡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다. 동시에 마석도에겐 과제가 있었다. 어느 날 발견된 시체가 있는데 그 피해자의 어머니와 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석도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마석도가 나쁜 놈들을 싹 쓸어버린다!
가장 처음으로 써볼 수 있는 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경찰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다. 고된 노고로 치안에 힘쓰는 경찰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좀 생뚱맞게 보일 수 있다. 아니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냥 마동석이 나쁜 놈 때려잡는 게 전부 아니었어? 물론 맞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첫 번째 영화 <범죄도시> 1편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다 끝나고 나서 올라오는 자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의 기억 상으로는 ‘모든 한국 경찰들을 응원합니다’였다. 실제로 <범죄도시> 1편은 경찰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전일만(최귀화)나 강홍석(하준)의 서사를 이야기 전면에 배치시켜서 캐릭터 무비로서 장점을 추가했다. 경찰이 우리 일상에서 푸근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편 <범죄도시 4>는 이 1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 이 영화의 기본, 그러니까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시리즈 1편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의 계승과 그 변주를 통한 쾌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글쓴이는 이 부분, 그러니까 ‘계승과 변주’에 대해 써볼 것이다.
우선 가장 첫 번째로 써볼 것. 이 영화의 사실상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장이수(박지환)의 존재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획의도와 닿아있는 인물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적인 특색과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캐릭터가 장이수다. 그 과제가 뭘까? 바로 관객의 관점에서 경찰의 노고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아예 낯선 캐릭터들이 많았던 <범죄도시 3>의 쿠키영상에 등장한 장이수. 이 장이수는 1편과 2편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4편에 다시 나타났다. 이 시리즈 중 4편 중 3편에 등장한 캐릭터는 마석도 제외 장이수가 유일하다. 이 특징은 곧 장이수가 우리들에게 친근한 캐릭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친근함을 바탕으로 영화는 인물의 시점에서 여러 장면들을 비춘다. 이 연출의 의도는 중후반부에서 더 두드러진다. 왜? 마석도가 장이수를 데려온 것 치고 둘은 따로 논다. 오롯이 장이수만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근거는 장이수가 플롯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글쓴이는 장이수가 이야기 내적으로 이 역할에 100% 걸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장이수의 설정이 본작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원래 경찰이 꿈'이나 '도박업체를 운영한 적 있다'라는 점을 4편이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제시한다. 심지어 이 인물의 행보를 보면 마석도가 데려온 것 치고 주인공과 따로 논다. 하지만 이 장이수는 명예경찰이 되어 악당들을 소통하는데 기여하는 행보를 보여준다. 마석도와의 캐미보다 이 검거 과정을 감독이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의 화룡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이수의 대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들 목숨 내놓고 사네!”다. 이 대사는 일반인이 경찰이 되어 겪은 경찰들의 노고를 관객에게 떠먹여 준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기획의도를 드러내는 문장이었다.
이 장이수가 등장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 변주를 둔 캐릭터에 속하는데, 바로 서울지방경찰청(권일융)의 등장이다. 이 캐릭터가 등장한 배경이 아주 흥미롭다. 마석도와 장태수(이범수)가 둘의 상사(정인기)를 만나 설득한다. 이번엔 1,2,3편과는 다르게 실패한다. 일단 이 상황 자체가 변주인데 그것이 한번 더 일어난다. 우리가 아는 실제 경찰이 영화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 자체도(권일융 교수의 발연기 때문이 아니라;) 변주지만 이 인물의 입에 나오는 대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이 범인을 잡는 시기가 예상보다 늦을 수 있다”는 말과 “경찰은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경찰청장. 글쓴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이 경찰청장의 캐스팅이다. 그냥 모르는 아저씨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런 대사를 해도 이야기의 흐름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굳이 권일융이라는 프로파일러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영화 밖에서 찾을 수 있다. 권일융 프로파일러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다. 이 인물이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됐기 때문에 이 사람의 권위를 우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인물이 굳이 영화에 들어와 경찰청장을 연기한다. 그럼 당연히 경찰로서의 권위가 영화 안에서 맥락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현실과 영화 밖을 흐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방식은 이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느냐에도 근거가 있다. 마석도 역할을 맡은 마동석 배우는 현재 명예경찰 경위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에 힘입어 경찰청에서 명예직을 수여한 것이다. 이 마동석 배우가 ‘범죄도시’ 시리즈를 찍을 때 마석도를 연기하지 않나? 그럼 명예경찰인 배우가 경찰을 연기한다는 삼중 구조의 상황이 연출된다. 글쓴이는 이것을 경찰과 배우의 중간단계라고 생각한다. 이 마동석 배우를 기준으로 실제 경찰인 사람(권일융 교수)과 직업이 배우인 사람(정인기 배우)이 한 컷에 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경찰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연출은 곧 “영화라는 틀(배우)을 넘어 경찰 베테랑이 영화와 현실 한가운데에 있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문단을 종합하면 ‘경찰 베테랑의 입을 통해 영화와 현실 한가운데에 있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윗문단에 쓴 장이수의 활용법과 겹쳐지는 점이 있다. 인물의 활용이 현실의 관객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다.
다음은 이 영화의 어떻게? 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에 있어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한지수(이주빈)다. 이 ‘범죄도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어렵다. 이 시리즈는 마석도의 핵펀치로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 아닌가? 하지만 이 장점은 반대측면에서 단점으로 돌아온다. 여성 캐릭터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마 마석도와 여성 캐릭터가 맞대결을 펼치기엔 블랙 위도우정도는 돼야 싸움이 가능하다.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 특징은 치명적이라 영화가 다른 노선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단점과도 이어진다. 성별이 영화 밖의 맥락에서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자그마한 요소 하나로 이야기의 결은 아예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시리즈 중 하나의 배경에 여성 경찰이 등장할만한 일을 깔면 되지 않을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이 과제에 대한 답으로 사이버 범죄를 선택했다고 본다. 사이버 범죄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내지는 면대면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물리력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다. 그럼 한지수가 등장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한지수는 강남수(김신비)라는 부사수와 함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서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이 필연에 근거한 캐릭터 한지수는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초반부에 마석도가 한지수에게 “방검복 입혀!”라고 말하자 그녀가 이 제안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을 필두로 인물이 마냥 끌려가지는 않는 연출인 것과 동시에 직접적인 액션은 없이 인물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 영화의 악당들에 대한 부분도 영리하게 변화구를 둔 지점이 있다. 여러분은 권사장(현봉식) 캐릭터를 어떻게 봤는가? 글쓴이는 이 영화가 기존의 시리즈와 다르게 1대 다수의 구도를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선택의 일환이 권사장이라고 느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유지했던 1대 1 혹은 1대 2의 구도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 1대 3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권 사장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것의 첫 번째 근거로 물리적 비중을 이야기할 수 있다. 권사장이 사전에 광고된 바와는 다르게 물리적 비중도 크고 장동철(이동휘) 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영화가 중간에 광고된 것 그 자체라면 장동철이 판을 이끄는 흑막으로서 극을 이끌 것 같지만 백창기(김무열)의 곁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일은 권사장이 맡았다. 이 단적인 사실만 놓고 봐도 이 영화의 빌런은 2명이 아니라 3명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 안에서 이 빌런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도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전작 <범죄도시 3>을 생각해 보자. 리키(아오이 무네타카)와 주성철(이준혁)은 시시건건 대립한다. 그러다가 플롯이 하나로 정돈되며 마석도와 리키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데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액션 신을 통해 ‘외국인’과 ‘검객’ 빌런의 개성을 나름대로 살리려고 노력했다. 권사장 역시 본작 <범죄도시 4>에서 3편에서 리키가 받은 대우를 오마주 하는 듯한 장면이 있다. 바로 마석도와의 대결 장면이 있는 것이다. 이 대결이 주먹 세 방에서 끝나서 그렇지 이 영화의 핵심인 ‘마석도와의 맞대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빌런으로 둔 변화구는 후반부 마석도와 백창기의 맞대결에서도 볼 수 있는 변주다. 백창기의 옆에 조력자로 나오는 캐릭터가 마석도와의 대결에 참여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빌런의 물리적인 수를 통해서도 변화를 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윗문단에 적은 걸 보충하고 싶다. 이 영화는 현재 경찰들의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가 변주하고 또 계승한 것이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가장 첫 번째 계승과 변주는 하이라이트 액션이다. 원래 범죄도시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액션은 합을 길게 주고받는다. <범죄도시 3>에서 주성철과 마석도는 넓은 경찰청 안의 방과 방을 움직이며 온갖 구조물을 부수고 다닌다. 본작에서도 비행기 안에서 공간을 바꾸는 액션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글쓴이는 마석도가 1,2,3편처럼 종합기술로 백창기를 제압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몇 대 더 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왜? 연속기로 백창기를 두들겨 패면 그 전의 상황을 보여줄 수 없다. 그전 상황이 뭐게? 바로 백창기가 뛰어난 무력으로 마석도의 몸에 칼을 꽂는 장면이다. 또 2대 1의 구도를 맷집으로 버티는 상황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또 여기에 대사 한 줄을 더 추가한다. "외롭지"라는 대사다. 액션 신의 두 상황과 대사 한 줄을 덧붙이면 경찰 마석도가 직업인으로서 겪는 애환을 보여주는 셈이다. 혼자라서 알아주지도 않지만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경찰로서의 삶을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 것이다. 이 단면을 보고 느끼는 것. 혹시 이 전 장면에 마석도의 헌신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없을까? 조성재와 관련한 감정선이 영화에서 중요하기는 하다. 인물의 동기가 되니까. 하지만 전작처럼 그냥 나쁜 놈이니까 두들겨 패고 잡아넣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부상당하고 노력하는 마석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납작하다 못해 평평한 마석도라는 캐릭터에 입체성에 부여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 선택이 됐다.
물론 영화는 이 '경찰의 헌신'이라는 소재를 마석도에만 국한 짓지는 않았다. 김만재(김민재)가 백창기와 대결을 펼치는 장면, 양종수(이지훈)의 팀이 필리핀에서 악당들을 체포하는 장면은 경찰들이 직업인으로서 '열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엔딩도 이 직업인으로서의 경찰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마석도와 한태수가 팀을 이끌고 조성재 모녀를 추모한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교통경찰이고, 그 인물은 장이수에게 "Police 지 Folice가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영화의 마무리를 경찰로 끝내고 그 마저도 영단어의 스펠링을 보여주고 끝낸다는 건 분명히 이 장면을 강세를 두고 말하고 싶다는 의미겠지? 심지어 오프닝에서 경찰이 습격당해 죽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통일성까지 생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의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자체를 강조했다는 것이 이 <범죄도시 4>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역설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따라오는 수많은 단점들은 이 선택에 따라 딸려오는 것들이었다. 글쓴이는 장이수의 등장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장점으로 언급한 부분은 반대로 돌아와 이 영화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씬, 그러니까 필리핀 경찰이 "넌 왜 머리가 길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굳이 필요했을까? 더 나아가 FDA를 보고 장이수는 왜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던 걸까? "마 형사"라고 대놓고 언급하는 장면을 겪고 나서도 마석도는 왜 장이수와 협업하지? 갑자기 틈입하는 '원래 꿈이 경찰'이라는 설정이 굳이 필요했을까? 이 설정이 인물의 동기에 있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마석도가 다른 말로 설득했다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권일융 프로파일러가 경찰청장으로 나온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오지 않은 관객을 세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서 그 장면은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어떤 장면은 특정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헤치기도 한다.
사이버 범죄라는 선택지를 골라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도 약간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글쓴이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본 장면은 장이수와 합심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한지수는 이주빈 배우의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하나 더 덧붙인다. 한지수가 액션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마석도가 "뻥이야"라면서 불필요한 대사를 친다. 이 두 장면은 여성 캐릭터를 고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한지수가 액션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나라는 점에서 연출 의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전자가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하더라도 한지수가 주체적인 모습이 없으니 여성 캐릭터가 그냥 존재만 하고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 캐릭터가 사이버 범죄 전문가라는 설정이 빛을 발하지도 않는다. 한지수가 뭔가를 하는 건 그 하는 것 자체만 보여주지 그 디테일은 장이수가 채우니 내실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이 단점의 표면, 그러니까 '사이버 범죄'라는 기본적인 배경은 영화의 핵심과는 멀어 보인다. 물리적인 범죄가 아니다 보니 치밀한 수싸움을 기대하는 관객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우리가 아는 범죄도시 시리즈 그 맛이다. 이 무의미한 설정은 본 작의 코미디 요소와도 이어지는 단점인데 글쓴이는 '클라우드 동기화'같은 이상한 개그를 왜 들어야 하나 싶었다.
빌런으로 1 vs 다수의 구도를 설정한 것도 깊게 파면 단점이 많다. 가령 김무열 배우가 맡은 백창기만 봐도 그렇다. 김무열 배우가 굉장히 뛰어난 배우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백창기 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잘 안다. 특히 하이라이트 신에서 허허허허허 웃는 장면은 굉장했다. 하지만 이 연기력에 비해 물리적인 비중이 부족했다. 단지 돈 받고 말고 가 인물의 동기다. 1편의 장첸, 2편의 강해상과는 다른 행보다. 1편의 장첸은 동기를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운 놈이었고 2편의 강해상은 동기 같은 게 없어서 악함이 드러나는 빌런이었다. 그런데 본 작의 백창기는 그냥 사람 죽이고 건물 부수는 게 전부다. 심지어 중간에 굉장히 의아한 선택을 보여준다. 청소부 아주머니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글쓴이는 당연히 아주머니와 김만재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는 대중성을 선택하며 두 사람이 죽지 않는 선택지를 고른다. 이 사건이 빌런의 악함을 대놓고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두 사람을 공격해야 후반부에 카타르시스를 더하는 것 아닐까? 단지 허허허허 웃는 게 빌런의 악함을 드러내는 방식인 걸까?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갈까 생각해 봤다. 왜?를 거세하고 그냥 현상 그 자체만 담기 위해 이런 각본이 들어간 게 아닐까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빌런으로 권사장을 등장시키는 선택지엔 사실 큰 위험부담이 있다. 장동철 캐릭터가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인물이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고 퇴장한 다음 후반부에 권사장이 이끄는 플롯에 쾌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장동철의 역할을 있는 최소화 시킨다. 이 최소화는 이야기의 흐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이 장동철이 백창기가 사람을 언제든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대비를 부실하게 한다는 점이나 권사장과 백창기의 내통 가능성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리고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의 얄팍함이다. 이 얄팍함이 단지 시리즈의 전통만 계승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인 '경찰의 헌신'을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다. 이 영화의 흐름은 전부 다 말이 된다. '왜?'를 철저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플롯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기획의도가 '실제의 경찰'에게 바친다는 점에서 두 특성은 상호 충돌한다. 대표적으로 경찰서에 구금해 있는 범죄자를 수많은 배달원에 가려 죽게 놔둔다는 설정은 명백한 무리수다. 이것만 있을까? 갑자기 업체를 순식간에 후다닥 만들어진다는 설정, 특수경찰이라는 소재까지 영화는 생경한 것들로 가득 차 내내 삐끄덕거린다. 이런 설정들이 말이 아예 안되게 연출되는 것은 아니라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건 그냥 단지 이야기만의 문제지 현실로 끌고 오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지엽적인 이야기 흐름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삐걱거린다는 점에 있어 치명적이다. 영화가 지나치게 대중성만 고려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의 메시지의 측면을 쭉 썼지만 사실 이 영화의 액션은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석도의 액션이 아니라 백창기의 것이다. 이야기 중반에 건물 하나를 철거하며 보여주는 나이프 파이팅, 김만재와의 대결 같은 것들은 <아저씨>의 차태식(원빈)이 연상되는 부분이었다. 이 액션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몸값을 톡톡하게 해낸다.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사운드와 촬영을 잡은 영화의 내실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액션이 아닌 나머지 부분에서 영화는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중 최고는 편집이다. 이 편집은 영화의 두 번째 단점으로서 허명행 감독의 경험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령 "뻥이야"같은 장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길게 뺄 필요가 있을까? 어디 장면에서 어느 게 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하지 못한 채로 그냥 무작정 이야기만 전개하려니까 완급조절에 실패한 것 아닐까?
글쓴이는 이 <범죄도시 4>가 이번에도 천만 관객을 넘길거라 생각한다. 단점을 적긴 했지만 나의 총평은 '재밌었다'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시리즈의 경고음을 울리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리즈의 매력을 재가공하는 것이 아닌 표면적인 것만 좇는, 지엽적인 영화의 태도가 아쉬움처럼 느껴진다. 글쓴이는 이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단점 때문에 5편에서 더 본질적인 변화를 두지 않는다면 지겹다고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시리즈의 최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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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DIRECTOR.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CAST. 케일럽 랜드리 존스, 해리 멜링 외
PROGRAM NOTE.
짐 크레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하베스트>는 폐쇄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월터는 그의 젖 동무이자 마을 지주인 마스터 켄트와 함께 이 외딴 마을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미신에 집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분별을 지닌 인물이다. 7일간에 걸쳐 마을은 화재를 겪고, 추수 잔치를 벌이며, 외지인들을 핍박하고, 새로운 지주를 맞이하더니 결국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하나의 마을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과 한 시대의 고통스러운 종말, 그리고 삶의 방식이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35mm 필름에 담아낸다. 신(新)국수주의가 떠오르는 가운데, <하베스트>는 추방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불관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우화이다. (박가언)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지만, 필름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하베스트>가 그렇다. 테두리가 거뭇거뭇하거나 불그스름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올린 이 영화는, 필름을 통해 다소 중세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우화를 참 우화로 만드는 건 이런 검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올라온다. 이제 막 날개를 펴는 나비에게 후 숨을 불고, 까만 흙이 낀 손톱으로 이끼를 만지다 못해, 이끼를 베어 물고 나무 옹이에 혀를 넣기도 하다가 급기야 알몸으로 물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 거하는, ‘인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흙 낀 손톱처럼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은 화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들판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나무와 풀들, 거기서 양털을 꺾고 노동요 부르며 농사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얼핏 옛 유럽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사건들은 등락(登落)의 폭이 매우 크고, 그 낙차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외지인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는 여러 차례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중 절대다수가 트레일러에 등장하는데, 형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믿지 않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합리적 판단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두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남자이자 중간중간 서술자로서 내레이션을 하는 월터는 한편으로 주민들의 삶이 배부르고 취한 짐승들 같다고 자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에 비해 외지인에 열려 있는 사람이 그다.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싶어하고, 이름을 묻고 싶어한다. 이 마음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belong”은 주요하게 반복되는 단어다. 마을의 아이들은 동네의 경계를 따라 걷다가 경계를 알리는 돌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똑똑히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외지인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소속감은 기반 논리가 깊지 않다. 외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들의 계급이나 상황이 계속해서 다양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자반 뒤집기 하듯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외지인의 말 또한 정답은 아니다. 동네를 “개선”하겠다며 소득 증대의 꿈을 꾸는 새로운 주인, 조단의 말은 아마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모든 게 좋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조단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토박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혁신으로 깨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걸고 타인을 거부한다고 순수하게 계승할 수도 없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으로 넉넉한 사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계속되는 외지인들의 등장 앞에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식민지로 물들었던 20세기 어떤 국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식한다. 지도 제작자 얼이 개인적으로 작업한 동심원형 지도를 보여주었을 때 “최고의 지도”라고 반가워한 것도 그래서다. 둥근 동심원형은 사방으로 잔잔한 파동을 퍼뜨리며, 설령 영역이 조금 겹쳐도 서로에게 뾰족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동심원형 제도는 얼의 개인 작업일 뿐, 그에게 의뢰되는 작업은 격자 무늬형 지도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자른 그 지도상에는 사람이나 나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 지도에서 중요한 건 대략의 위치와 구획당 키울 수 있는 양의 수 정도일 것이다. 월터가 반박하듯 그 땅의 물과 흙, 심지어 땅을 돌아다니는 소의 특성까지도 확실히 알고서 그리는 동심원형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월터는 단박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그건 우리를 납작하게(flatten) 만든다고. 동심원형을 강제로 격자 모양에 쑤셔 넣으려면, 원의 가장자리는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여백으로 밀려나는(marginalized)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다. 항해용으로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프리카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과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데, 실제로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활용한 도법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 같은 국가들이 좀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많이 사용한 측면도 있다.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외지인을 받아들인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들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격자식으로 잘려 나가는 세계에서 한 줌 흙을 놓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 손가락질이 심긴 곳에서 비극이 피어난 곳을 보고도 흙에 씨앗을 심는 마음. 격자식 지도에 너무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두 시간씩 앉아 영화를 본다. 씨앗을 심고 거두듯이.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나그네는 영원히 나그네이고, 토박이는 영원히 토박이인가.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쩌면 저기 저 사람의 어제는 나의 오늘과 비슷했을 수 있다. 나의 내일이 저 사람의 오늘이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격자식으로 횡과 종을 마구잡이로 갈라 서열화하는 지도를 떠나, 둥근 원형의 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월터가 그 동심원을 실행한 방법이 (이 또한 정말 너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 같은) 무위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걸음의 방향에만큼은 고개를 끄덕여 본다.
10/03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상영코드 066)
10/08 20: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코드 395)
10/09 14: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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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과 사회적 메시지, 이도저도 아닌 밋밋함
오락과 사회적 메시지, 이도저도 아닌 밋밋함
영화 <협상> 리뷰
감독] 이종석
출연] 손예진, 현빈
시놉시스]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던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은 긴급 투입된 현장에서 인질과 인질범 모두 사망하는 사건을 겪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로부터 10일 후,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가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그녀를 협상 대상으로 지목한다.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없이 사상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는 민태구와 그를 멈추기 위해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협상가 하채윤. 남은 시간 12시간,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이 시작된다.
명당, 협상, 안시성 이 세 작품이 모두 2018년 추석에 맞춰 개봉한 작품이다. 클래식의 세 주인공이 다른 영화로 이렇게 맞붙는다며 홍보팀이 열일했던 해였다. 현빈이 악역으로 나온다 해서 굉장히 기대가 많았던 작품이었지만 큰 흥행을 하지 못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미는 있으나 긴장감은 없는 작품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집에서 맥주와 소시지와 함께 영화를 보기에 적합한 킬링타임용 재밌는 영화다. 범인과 경찰 간의 대립이 그렇게 긴장감 있게 조성되고 있지 않았다. 영화에 몰입을 할 수 있다기 보다는 멋지고 예쁜 배우가 나와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재밌어 하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딱히 작품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창출하고, 문제를 인식한다기 보다 지친 일상 적당한 스펙타클적인 요소로 약간의 쾌감과 재미를 전달하는 영화랄까? 분명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이 꽤 있었는데도 그 요소가 부각된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냥저냥 재밌는 작품이었다.
캐릭터의 진부함
하채윤과 민태구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평면적이다. 자기 동생을 죽인 사람들인 아주 최고위층의 내부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을 꾸민 민태구.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사명감 투철한 경찰 협상가 하채윤. 중반부터 동생에 대한 복수라는 복선이 아주 이곳저곳 나타나 있어서 반전의 요소가 그렇게 부각되지도 않았을 뿐더라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민태구가 사실 피해자라는 점과 마음은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는 점. 그래서 결국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고 혼자 죽을 결심을 한 아주 미련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 굉장히 클리셰가 범벅이 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민태구가 지목한 협상가 하채윤의 캐릭터는 선하디 선하고 위어질 줄 모르는 꼿꼿함을 바탕으로 경찰의 느낌을 아주 다분히 잘 전달하고 있었지만 과연 그녀가 협상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강인하다거나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민태구와 하채윤이 동등한 기세가 아니라 하채윤이 현격하게 밀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영화 자체의 밸런스가 맞춰지지 않고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오락과 메세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못하다
소재가 협상과 인질이고 이 내막이 정, 재계의 고위층들이 지시한 것이라는 점을 봤을 때 아예 이 작품이 오락이나 사회적메시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흥행을 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베테랑 혹은 내부자들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베테랑처럼 현실 가능성은 없지만 막가는 경찰들이 재벌을 때려잡으면서 오락성과 통쾌함을 아예 잡아버리든지, 아니면 내부자들처럼 완전한 사회적 메시지로 노선을 타서 하나만 선택했다면 참 좋았을텐데 영화 협상은 이 두 갈래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두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그저 밋밋한 영화로 남았다. 과유불급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영화 제목처럼 전문적인 협상을 잘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락성과 통쾌함을 줬다기엔 결말이 매우 찝찝하고, 메시지를 줬다기엔 처벌 받는이가 없으니 더욱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집에서 킬링타임용으로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 협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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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댕겨진 불씨는 반드시 타오른다
DIRECTOR. 모함마드 라술로프
CAST.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소헤일라 고레스타니, 미삭 자레
SYNOPSIS.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
POINT.
✔️ 2022년 히잡 시위를 둘러싸고, 이란의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감독과 두 딸 역할의 배우는 이 영화 이후로 망명했고, 함께 나오지 못한 엄마/아빠 역할의 두 배우 사진을 높이 올려든 채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고레스타니는 2022년 당시 시위에 연대하여 수감되었고, 현재 자택 연금 상태라고 합니다. (해당 내용을 비롯, 영화 외부적 이야기는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 SNS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미 있는 영화인 동시에,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데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집안에서 없어진 총을 둘러싼 가족 간의 이야기가 아주 잘 짜여 있는 구조라서, 다음을 궁금해하면서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6월 3일 개봉합니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개념이 있다. 1장에서 총이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며, 쏘지 않을 총이라면 이야기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를 역이용해 신경 쓰이는 위치에 놓여 있던 아이템이 별 의미 없는 맥거핀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에서 총이 사라진 이 영화에서 총은 맥거핀일 리 없어 보였다. 총을 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관객은 총의 행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겠지.
이 영화에서 총이 맥거핀일 리 없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맥거핀으로 장난을 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절박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고 있었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체제 비판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시와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감옥이냐 망명이냐, 다소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있던 상황에서 감독은 망명을 택한다. 칸영화제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기존에 없던 상을 만들어 수여했다. 한 해가 지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란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돌아갔다. 심사평에는 "저항과 생존"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도 함께 떠오른다. 무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수년간 이어진 노력, 인내, 그리고 저항 끝에 이슬람 공화국 체제 아래에서 썩고 텅 빈 검열의 체계는 마침내 밀려나기 시작"했다며 '검열을 거부하는 영화'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섰"다는 내용이 담긴 축사를 보냈다. 히잡에 대한 검열은 2022년 이전의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영화에 대한 검열 또한 2025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1.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의 여대생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끌려가 구금 끝에 의문사한 사건, 그리고 거기서 촉발된 대규모 히잡 시위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수만 명이 구금되었고 사망자도 (사망 사유와 숫자는 제각각 다르게 밝히고 있지만) 수백 명에 달한다. 의문사에서 시작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개 처형까지 불사하면서, 이란은 '신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를 접붙인 시스템을 공고히 하려 애썼다.
이 '신정일치'의 나라는 1979년 혁명으로 들어섰다. 이란의 마지막 왕조였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시위였는데, 당시 왕조의 급격한 서구화 정책과 경제적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군주제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비밀경찰이 돌아다니고 반대파가 '정치범'으로 탄압받는 사회를 끝내고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시민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당시 혼란과 의견 차이의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국가가 이슬람 교리와 정치를 내세우면서 도덕 경찰이 돌아다니고 정치적 탄압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인권은 그야말로 추락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누렸고 이란혁명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여성들이 해냈는데, 혁명 끝에 여성들에게 남은 것은 히잡을 뒤집어쓰고 다니라는 강요, 히잡을 쓰지 않고 운전하다가 벌금을 물거나 차량을 압수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 시위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는 시민 불복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히잡은 여전히 법령으로 강제되고 있고, 공개 처형과 구금은 셀 수 없으며, 심지어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던 남자 축구 선수들에게까지, 선발 제외 소문부터 사형 선고까지 다양한 탄압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외치고 버티고 항의하는 목소리는 죽지 않는다.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도달한다. 검열과 탄압이 아무리 이어져도 이 목소리는 제 갈 길을 간다. "1명을 죽이면 1,000명이 일어난다!" 하고 분연히 일어났던 이란의 여자들처럼. 검열 시스템은 "공포와 위협으로 마치 모든 걸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섬광탄 같은 효과"일 뿐 "실질적으로 모든 걸 볼 수는 없다"는 무함마드 모술라프 감독의 말처럼.
#2. 우회하여도 반드시 길은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른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불안한 시위의 소식 앞에서 엄마는 텔레비전을 켜 보지만, 텔레비전은 엄마에게 아주 간단하고 정제된 뉴스 이상의 정보를 주지 못한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텔레비전을 끄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체제의 수호자인 동시에 체제의 피해자인 기성세대 여성은 가장 혼란스러운 자리에 놓여 있다.
딸들은 SNS로 다양한 소식을 접한다. 온라인에 게재된 영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매는 방 한구석에 앉아서도 거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마치 히잡이나 부르카처럼, 두껍고 검은 커튼으로 자신을 가린 채 창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자체 검열'의 집안에서도, 자매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통제 안에서 우회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빨간 하트로 이름을 저장해 두면 남자친구인 걸 들킬 테니까 하얀 하트를 쓴다든지. 이들에게 미디어는 양방향이고, '모바일'하다.
반면 아버지는 그 어떤 미디어도 접하고 있지 않다. 그에게 그나마 미디어라고 부를 법한 것은 직장 동료와의 대화가 전부이며, 그 또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대화는 아니다. 그의 공간은 눈도 귀도 막혀 있다. 복도 가득 '굳은 믿음'을 보여주는 손동작을 한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등신대이며,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인 채 고요하게 끌려 다니는 이들의 존재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갖고 움직이는 이들이다. 죽은 공간에서 이들은 자신의 폭력이 자승자박의 미련 일로를 걷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심지어 총이 사라진 후로 "내 집인데도 안심이 안된다"며 불안과 혼란을 체험하고도,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와중에 자신의 혐오와 억측만큼은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다.
이 미련의 핵심에는 언어의 혼탁이 있다. "여성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히잡을 써야 한다고 하는 이들의 언어 논리 그대로다. "가족의 믿음을 회복"하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가족에게 가하는 행동은 이 나라의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폭력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보호라는 귀한 단어가, 명예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이토록 해악밖에 남지 않은 방향으로 혼탁해지고 무너졌다. 이렇게 깨지고 더럽혀진 언어로 짜인 지배구조는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을 옭아매는 폭력밖에 되지 못한다.
#3. 반쪽은 피와 어둠 아래 있어도, 나머지 반쪽은 빛 아래 있기에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것은 단연 여성들의 얼굴이다. 과연 셋 중에 누가 총을 가져갔을까 궁금해지는, 어머니와 두 딸뿐 아니라 잠깐 등장하는 큰딸의 친구까지 이들 모두 폭력적인 구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솔직히 영화 보기 전부터) 관객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은 이따금 절반씩 나뉘어 다른 빛 아래 놓인다. 친구의 다친 얼굴은 처참한 피범벅이 되어 있는데, 코를 기점으로 반대쪽에서 보면 그 상처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끔하다. 그 얼굴을 영화는 햇빛 아래 공들여 오래 보여준다. 마치 보라는 듯이. 현실의 참혹한 이 상처를, 보라는 듯이. 이 느낌은 이후 캠코더 앞에 선 큰딸과 엄마의 얼굴에서 재현된다. 캠코더 화면 안에서 이들의 얼굴 절반은 어둠 속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반쪽 얼굴은 빛을 받아 새하얗게 드러난다.
이는 살뜰한 시중 손길을 받던 아버지의 얼굴과 매우 대조적인데, 그의 얼굴은 아내의 세심한 손길을 받지만, 물로 씻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잔털 관리까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만, 역실 불빛 아래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은 분명 밝은 빛 아래 있음에도 살아있는 신체보다는, 마치 명화 속에 이미 베어버린 목처럼 보인다. 이는 어둠과 피에 절반이 묻히고, 눈물 혹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로도 생명력이 하얗게 빛나던 여자들의 얼굴과 대조적이다.
어쩌면 이 얼굴이 이란이라는 나라의, 그리고 기본권 수준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모든 국가 폭력과 싸우는 나라들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어버린 목처럼 보이는 얼굴들이 지배구조를 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어둠과 피에 짓밟혀도 빛 아래 생명력이 형형한 얼굴들이 일어나고 있다. 권위적인 반지를 낀 손은 그 빛나는 얼굴들을 결코 파괴할 수 없다.
체호프의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듯이, 불씨가 댕겨진 혁명은 반드시 타올라야 한다. 이란의 여자들도 영화들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주요한 분기점을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어떻게 피어나 무엇을 뒤덮고 자라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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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몰랐던, 그래서 우리 모두 영원히 모르는 괴상함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극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 하는 비슷한 신음을 내뱉었다. 나도 물론 그중에 한 명이었다. 좀 더러운 표현일 수도 있지만, '뭐 누다가 끊긴 느낌'이랄까. 뭔가가 시작될 것 같은 때에 허무하게 끝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괴인]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영화보다 호흡이 길었다. 가장 길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계단에 가는 씬을 찍는다고 가정하면, 침대에서 주인공이 일어난 후 계단을 모두 오르는 소리를 다 들려준 후에 장면이 전환되는 식이다. 그런데 심지어 계단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앵글이 주인공이 모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내려갈 때까지 다시 기다린다.
이건 아마 화려한 액션이나 판타지에 익숙한 사람, 혹은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부 담아냈기에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감독이 필름을 거의 안 버리고 다 썼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홍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졌다.
친구들 앞에서는 브랜드 옷을 걸치고 '네가 무슨 고생을 아냐', '언제까지 월급 받으며 살 거냐', '나는 하루 일당이 40만 원이다' 등등, 과도하게 자신을 뽐내고 잔소리를 줄기차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마트에서는 뒤에 줄 선 임산부에게 순서를 양보하기도 하고, 집주인과 있을 때는 조금 주눅 든 모습이기도 하며, 가족 앞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등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문득 INFJ가 생각났다. 인프제는 흔히 '가면'으로 대표되는 MBTI이다.
인프제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러 개의 가면을 마음속에 걸어두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바꿔 낀다. 그래서 종종 인프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누군가는 가면을 바꿔끼는 것이 음험하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관찰해서 맞춤형 태도를 갖춘다는 것에 굉장히 감동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고? 내가 바로 그 인프제 되시겠다.
인프제를 대표하는 말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을 뽑으라면, '인프제는 히틀러이면서 동시에 예수이기도 하다'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문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으냐고. 우리 내면에는 천사와 악마가 늘 공존하지 않던가. 당장 눈앞에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이나 좁은 골목에 떨어진 만원 지폐가 보인다면 내면의 소리가 부딪히며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우린 그중 한 가지를 선택할 뿐이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기홍은 '괴인'이라는 제목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괴인이다. 괴이하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찾게 되는 그런 생명체. 그런 생명체들이 부딪히고 접촉하면서 세상에는 독특하고 별난 사건들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 영화처럼.
기홍은 자신의 차 위로 떨어진 범인을 우연히 찾아낸다. 범인은 집이 없어 길을 떠도는 소녀, 하나. 성인이라곤 하지만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까, 기홍은 안타까운 마음에 수리비를 사양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집주인 정환의 부추김으로 그녀를 집에 초대해 밥을 먹게 된다.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으로 하나를 돌려보내는데, 기홍은 밥값을 쥐여주며 택시를 태운다. 그렇게 모든 사건이 끝난 듯싶었다.
술 한 잔 더 하자고 정환에게 권유했지만 퇴짜를 맞은 아내 현정. 그녀는 별안간 남은 술을 들고 기홍을 찾아와 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아쉬운 마음에 밖으로 나선다. 하필 그때, 돈을 돌려주러 온 하나가 집 문을 두드려 잠에서 깬 정환.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 두 사람. 그렇게 영화는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을 향해 흘러가며 끝이 난다.
우리 삶을 영화로 옮기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결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으로, 시선을 바꿔가며 새로운 사건은 계속 이어지니까. 그 순간에는 엔딩 크레딧의 존재가 의뭉스럽지만, 막상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결말이었다.
기홍과 정환, 현정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우리의 삶을 단면적으로 잘 보여준다.
양쪽에 현관문이 두 개인 전원주택이지만, 실질적으로 안에 들어서면 2층 계단을 통해 서로 집을 오갈 수가 있다. 정환은 거리낌 없이 계단으로 기홍의 방을 들락날락하지만, 기홍은 좀처럼 계단을 이용하지 않는다. 정환이 괜찮다고 해도 현관문을 이용한다.
이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이어져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궤변은 하나라는 인물로 하여금 완성된다.
돈을 돌려주러 다시 찾아왔던 하나는 정환에게 부탁해 2층에서 머물게 된다. 아침이 되어 집에 돌아온 기홍이 본 것은 2층에서 자고 있는 하나의 모습이었다. 기홍이 그토록 끝끝내 잇고 싶지 않았던, 멀리하고 싶었던 집주인 부부와의 인연은 하나를 통해 억세게 매듭짓게 된다. 우리네 삶은 종종 이토록 허무하게, 부정해왔던 것을 마주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사람이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이벤트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금방 떠나가 버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초연해지려고 애쓰지만 그런 순간마다 예측할 수 없는 반전에 놀라움을 머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영화 [괴인]은 단순히 단어나 문장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쓴다. 비록 보는 순간에는 황당하지만, 다 보고 나면 계속 곱씹게 되는, 묘하게 빠져드는 영화였다.
* 이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고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여 작성된 주관적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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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다면 지르자, 다만 현실은 잊지 말고
1957년 런던, 전쟁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살고 있는 ‘해리스’는 청소부로 일하던 가정집 부인의 값비싼 디올 드레스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에 빠진다. 이후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 ‘해리스’는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벌어온 돈을 모아 막연히 꿈만 꾸었던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 파리 여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파리의 디올 매장에서 무시를 당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1. 흔한 듯 흔하지 않은 판타지
처음엔 이 영화가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뭐가 다른 걸까 생각했었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흔하디흔한 영화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 이를테면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였달까.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가 들대로 든 중년과 노년 그 어딘가에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여성이 젊은시절 누리지 못한 외적 허영을 충족하는 과정을 응원하게 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연륜의 짬바가 참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역시 인간은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살아야 이후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해리스 부인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은 어른의 말씀 중 좋은 말이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는 게 늦바람 불어 주변인에게 민폐끼치는 것보단 낫다."였는데 해리스 부인을 보면서 남편이 죽고 나서야 자아를 찾아나선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그 모습이 별거아닌 거 같아도 멋있어 보였다.
2. 겉모습과 속사정은 누구나 다르다
다분히 영화적 설정으로 배치된 러브라인이 보이지만 그 러브라인을 이어주기 위한 미시즈 해리스의 오지랖도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두 남녀는 누구보다 철학을 사랑하는 반전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허영과 사치의 상징과도 같은 패션계에 종사하면서도 직업과 당신의 삶을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함으로써 인생의 동력을 잃지 않는 점이 그들의 멋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설정이 참 새로웠던 것이, 겉모습이란 참 얄팍한 것이라서 해리스 부인같은 청소부도 디올 드레스를 살 수 있다는 생각들을 못하고, 모델이 철학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잘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당신의 얄팍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는 달리 파리에 대한 판타지 충족만 하지 않는 나름 알맹이가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3. 판타지를 쫓되, 현실도 잊지 말 것
세상엔 당신이 현실은 무시한 채 갖지 못한 것에만 몰두하며 남에 대한 부러움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리스 부인도 당신이 누리지 못한 화려함을 쫓아 파리에 오지만 곧 이 세계에서 당신은 청소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잠시 낙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갖지 못한 화려함의 환상에 젖어 허우적대지만은 않고 다시 노동자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어른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약간은 오지랖이지만) 모습은 그녀가 환상에 젖어 당신의 위치를 버리는 무모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꿈을 이루려는 행위는 고귀하지만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지르는 행위는 무모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특히 결혼한 사람이라면 더하다. 현실의 상황을 유념하고 지를 것. 내 현실을 잊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의 무모함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취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꿈을 이룬다는 명분 하에 현실을 때려치우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인도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청소부로 돌아오지만 그녀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있다. 부당함에 조금 더 소리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자신감을 찾았기 때문인데, 이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판타지에 젖어 현실을 대단히 뒤바꾸지 않아도 내가 조금만 바뀌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내가 판타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판타지를 이룰 기회는 금방 사그라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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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볼버 - 전도연, 임지연 배우 두 명 빼고 모두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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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리볼버 #전도연 #지창욱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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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예고편 1초 단위 분석과 충격적인 가설 최초공개ㅣ매트릭스4 리저렉션 예고편 해설 설명 리뷰ㅣ매트릭스 결말포함 영화리뷰ㅣ매트릭스 해석ㅣ매트릭스 해설ㅣ매트릭스 분석
? "매트릭스4(2021)" 예고편 분석 리뷰 프리뷰 영상
- 18년 만에 속편이 나오는 이유? 재미로 보는, 뇌피셜 가득한 프리뷰 및 영화리뷰 영상
- 시리즈 전체요약 영상:
- 시리즈 12분 핵심요약 영상:
- 스토리 설명 영상:
- 철학분석영상 :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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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데드 보이 탐정단> 공식 예고편
데드 보이 탐정단을 소개한다. 절친이자 귀신인 에드윈과 찰스는 인간 세계 최고의 탐정이다. 사악한 마녀, 지옥, 죽음의 신 데스로부터 탈출하는 등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두 사람. 영매 크리스털과 그녀의 친구 니코의 도움을 받아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장 미스터리한 초자연적 사건들을 해결한다. 《데드 보이 탐정단》의 원작은 닐 게이먼의 인기 코믹 시리즈로, 이번 작품은 넷플릭스의 샌드맨 세계관을 새롭게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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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상> 30초 예고편
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