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1-31 23:54:14
재능의 우월함은 사회 속 열등함 속에서도 빛난다
히든 피겨스
이 영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황인종도 나름 인종차별을 당해서 억울하다고들 하지만 흑인종만큼 억울한 인종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가고, 하대받던 것이 당연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그렇게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한창 우주 산업에 박차를 가하던 그 때, 우리는 그 시절을 고대도 아니고, 중세도 아니고, 현대에 가까운 과거로 보고 있지 않나. 흑인들을 향한 차별은 아직도 완벽히 근절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는 그 차별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 엘리트 집단은 또 얼마나 폐쇄적인 집단인가. 태생적으로 흑인들에게 부여된 폐쇄성을 딛고, 사회적으로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에 들어가 살아남으려는 세 여자,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1. 흑인은 백인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할 것이라는 오만
능력을 인종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잣대인지 지금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만 과거를 사시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은 아직도 그 잣대가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를 본 적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도 아직 백인에 대한 우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오만이 되어버린 인종차별은 이 영화 전체를 좌우하는 키워드다. 백인들은 관리자이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지휘를 받는 사람이라는 설정 부터가 보는 내내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 여자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극복해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장면이지만 캐서린이 백인들과는 다른 화장실을 써야해서 건물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그 모습을 한탄하며 화내는 장면이 정말 명장면이다. 그렇게 서럽게 말하는 캐서린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그 말을 듣고, 당장 백인과 유색인종 화장실의 경계를 없애버린 상사도 참 예민하긴 해도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예민함은 직업적인 데서 오는 모습이겠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하지만 그렇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그 사소해 보이는 화장실 문제 하나 이해를 못 하다니 싶다가도,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공감도 지능'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는 유색인종을 이해하는 공감적 지능이 양성된 적이 없는 것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내 안의 세계를 뚫고 나온 경험이 많을수록 증폭되는데, NASA의 엘리트들은 공부머리들은 좋은데, NASA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공부만 하다보니, 그런 공감적 능력까지 키울 여력은 없었던 거겠지. 그리고 또,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유색인종이 받는 차별을 자신이 겪을 일이 없었을 테니, 화장실 하나 가는 것 조차 불편을 감수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면서 불편함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서, 소위 쿨하지 못한 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편함을 느꼈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겠구나 싶어서 조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불편한 경험은 누군가의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기도 하는데, 백인들의 삶에서 불편함이래봐야 얄팍했을 테니, 흑인들이 느꼈을 깊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불편함에 대한 호소가 대단히 신선하지만 또한 낯설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권이었을 것이기에.
2.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자리이자 누군가의 인정
결론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글렌 파월이 연기한 조종사 역할을 참 인상깊게 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흑인이고 뭐고 그런 편견이 없어보이는 인물로 나온다. 그저 멋있는 군인 역할이었다. 캐서린에게 보이는 친절함과 그녀를 향한 굳은 믿음이 참 내가 받는 친절도 아니면서 괜히 고마웠다. 마치 그 시절 백인들도 다 그랬던 건 아니었겠구나 싶어서 괜히 안심되고 그랬다. 다행히 세 여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성공했지만 이 세상에 성공까지는 하지 못하고 도전까지만 해본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해 본다면, 그들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조종사처럼 그저 편견없이 바라봐주는 친절함 만이라도 있었다면 더 대우받는 흑인들이 더 많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언급하지만 캐서린의 상사도 참 좋은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흑인이라 탐탁지 않아 했어도 능력을 입증하니 신봉하는 모습에서 그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능력차별 주의자 겠거니 싶었다.
이들은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영화화까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 속에 그들처럼 성공까지는 못했지만 도전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한 사람, 아예 도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인종차별에 의한 소수자들은 많았을 것이다. 이 세 여자들을 보면서 인종차별을 타파한 사이다 3인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들 말고도 조명받지 못한 소수 인종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며 괜히 센치해졌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밝히듯, 빛나는 보석은 어디에 둬도 튀는 것처럼 그들의 재능과 패기는 그 답답한 NASA의 엘리트 집단의 콧대를 지그시 눌러버릴 만큼 강력했던 것 같다. 흑인들이 보여준 재능과 패기는 백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흑인들의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우월함이었을 것이다. 그 우월함을 무기로 우월한 정신으로 무장한 백인들을 무찔렀던 것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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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사람> 포스터 (사진출처 : JTBC)
너를 닮은 사람 (2021)
편성 : JTBC, 16화 완결 │ 장르 : 한국, 드라마·멜로
연출 임현욱 │ 극본 : 유보라 │ 출연 : 고현정(희주), 신현빈(해원), 김재영(우재) 외
등급 : 19세 이상 관람가 │ 원작소설 : 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매혹적이고 특별한 무드의 드라마
길고 풍성한 머리에 창백한 화장의 고현정 배우를 보고 처음 이 드라마의 특별한 무드를 느꼈다. 왜 창백한 것일까. 울적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색감은 또 뭐지. 마찬가지로 울적한 음악까지 맞물리면서 나는 깊게 드라마에 빨려들었다. 음울하고 슬픈데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드라마의 원작은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의 수상 작가인 ‘정소현’의 첫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이다. 8가지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에서 한 편의 짤막한 단편소설이었던 이 이야기는, 드라마 작가 ‘유보라’에 의해 각색되어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유보라 또한 이 소설에서 어떤 치명적인 흡입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라고 말한다. 궁금했던 나는 드라마에 이어 원작 소설까지 섭렵했다. 두 이야기를 모두 읽어본 결과, 소설과 드라마는 어느 하나가 덜하고 못하고 없이 공통의 무서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건, 짧은 소설에 비해 드라마는 16화라는 긴 호흡이었으나, 원작의 그 음울하고도 파괴적인 분위기를 손색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어느 날, 과거가 나를 찾아왔다
주인공 ‘희주(고현정 분)’는 재력이 든든한 남편을 만나 물질적 안정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여자다. 그녀는 유년시절 몹시도 가난했기 때문에 인과적으로 물질적 안정을 추구했던 것 같다. 좋은 집, 화가라는 멋진 직업,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남편, 바르고 예쁜 두 아이들. 그녀의 인생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 날 ‘해원(신현빈 분)’이 희주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희주의 오래전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한때 희주는 그녀에게 그림을 배웠고, 자신과 달리 가난함에도 위축되지 않고 밝고 씩씩했던 그녀를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해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희주가 사 준 10년도 더 된 낡은 코트를 떨쳐 입고 ‘과거에 붙들린 망령’처럼 서있는 그 장면은, 소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원이 희주를 망치러 왔다는 걸.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내 이야기의 시작은 역시 너다
희주는 해원에게 죄를 지었다. 해원에게 전부였던 그녀의 연인 ‘우재(김재영 분)’와 과거 밀회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주에겐 지나가는 사랑이었다. 불안정하고 동화 같은 사랑보단 물질과 풍요가 중요했던 희주는 결국 우재를 떠났고, 두고두고 그 일을 후회했다. 해원만 몰라준다면 영원히 묻고 싶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러나 희주에게 스치는 바람에 불과했던 그 일이 해원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건강하게 빛나던 해원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 희주를 겁박한다. 나도 망했으니 너도 망해보라고. <너를 닮은 사람>의 긴장감은 바로 그 두 여자의 숨 막히는 심리전과 비밀스러운 과거에 포진되어 있다.
클라인, 그건 분명 너였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먼지 쌓인 박제 같은 외양 때문이었는지 불쾌하고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정소현의 중반부, 유보라의 중후반부
소설과 드라마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과거에 머물렀던 우재가 드라마에서는 현재의 희주 앞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거기서부터 드라마는 소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중후반부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숨 막히고 아름다웠다. 희주의 안정을 위협하는 해원과 우재, 과거에 붙들린 두 망령들로부터 벗어나려는 희주.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파국으로 치닫는 걸 보고있자면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너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이 지나쳤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지나치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모순적인 감정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름다웠다. …
그는 너 몰래 찾아와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하며 나를 그리곤 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나는 당신을 경멸합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해원보다는 희주에 가깝다. 친구랑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과거에 붙들려 현재의 나를 돌보지 않는 일은 너무 미련한 것이라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집착하고,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느라 현재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희주의 잘못이 가벼웠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빛을 잃고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해원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긴 세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며 살아온 희주 또한 안타깝고 불행해 보인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파괴했던 게 아닐지.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드라마의 후반부, 희주는 점점 옥죄어오는 과거의 위협이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던 자신의 욕망, 한 사람에겐 전부였던 사랑을 가볍게 탐한 죄, 그 모든 것들의 무게가 희주의 가족을 망치려 할 때 희주는 결심한다. 그 과거를 끌어안고 자신이 사라져야겠다고. 그러나 왜인지, 자신의 뜻대로 희주가 파멸하자 해원은 행복해하는 대신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게 끝나고서야 해원은 깨달은 걸까. 비이성적인 앙갚음이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는 걸.
철드는 건 나쁘거나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자에게 들리는 종소리
푸른 파다, 푸른 초원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아일랜드의 모허(Moher) 절벽. 희주와 우재가 서로의 가족과 연인을 속인 채 밀회를 나눴던 그곳에서, 우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수도원에 있던 한 은종이 호수에 빠졌는데, 맑은 영혼한테는 그 종소리가 들린대” 희주는 자신이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라는 걸 알았기에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결국 죽게 된 우재의 시신을 유기할 때까지도 당연히.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우재를 없애고 현실로 돌아가고자 했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적했을 때. 희주의 귓가에 별안간 희미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물질, 탐욕,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은 그 끝에였다. 그 장면은 너무도 인상 깊은 장면이자, 소설에는 없지만 소설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짚은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희주가 결국 그 종소리를 듣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이 구원이라면 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선악을 모두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너를 닮은 사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나뉘어있지 않다. 희주와 해원과 우재 모두가 서로에게 죄를 짓고 죄를 당하며 얼기설기 얽혀있을 뿐이다. 내 안에도 해원과 우재와 희주가 있다. 시기와 질투, 물질과 안정에 대한 욕망, 잘못된 징벌의 심리까지도. 모두 서늘하게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그 선과 악에 대해, 그것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써낸 정소현 작가와 유보라 작가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정말이지 열렬히 바라게 됐다. 파멸과 자멸의 끝에, 희주와 해원 그리고 우재가 자신들을 옥죄던 그 무엇들로부터 해방되었기를.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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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난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은 사실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조건이 좋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움의 삶을 천천히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나은 일을 찾고 가족들과 삶을 이어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 힘든 이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어떤 나라에서든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에 이사 가게 되어 살게 되거나 다른 환경으로 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때, 그 쉽지 않은 현실을 앞에 두고 가족들은 때론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바로 옆에 있는 가족뿐이다.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다시 새로운 지역 알칸소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하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뿌리내려 사는데 도움이 된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것은 생활의 불편함 뿐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도 포함된다. 그들이 목이 타는 것과 같이 마음속도 타들어가고 부부는 의견 대립으로 충돌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이콥은 농장의 성공이 가족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매달린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리는 안정적인 상황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농장의 성공이 바로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모니카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바로 지금 안정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당장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농장일에 매달리는 제이콥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은연중에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올 음식이 되어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하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놀이가 가진 재미를 알려준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해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 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금방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에 산책을 나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모든 가족의 마음속에 익숙함이 자리해나갈 때 비로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운이 만들어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티격태격 장난치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도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순자는 데이빗이 눈에 보이는 위험을 보이는 곳에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심장병이 있어 늘 뛰기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그 위험을 직면하며 관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빗은 마음도 몸도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면 외할머니와 손주가 만들어낸 이런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족에게 물만 있으면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큰 문제없이 정착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 명의 가족이 결코 떨어질 수는 없고 앞으로도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타오르는 농장에 뛰어든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싸운 직후였고, 이별의 결심까지 한 후였다. 하지만 남편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 타오르자 그것의 일부라도 구하고자 이리저리 물건을 불 밖으로 빼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남편의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그들이 결국 같이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친해지려 다가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악의 없이 이 가족이 그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잘할 수 있었고, 집안에 나쁜 일들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폴이 이민자인 그들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도 폴을 하나의 이웃으로 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어 널리 공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미나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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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별빛 아래>, <가버나움>의 울림 이을까? 2월 개봉 확정!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제작진이 내놓은 새로운 감동 드라마 <파리의 별빛 아래>가 2월 개봉을 확정하며 영화 <가버나움>의 울림을 이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 <파리의 별빛 아래>는 파리의 홈리스 '크리스틴'과 아프리카 난민 소년 '술리'가 출신, 국경, 언어의 벽을 넘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가는 감동 드라마로,'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유명한 세자르 시상식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석권한 프랑스의 국민 배우 카트린 프로가 마음 둘 곳을 잃은 파리의 홈리스 ‘크리스틴’ 역을 맡아 진정성 있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크리스틴’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프리카 출신 난민 소년 ‘술리’ 역에는 <가버나움>의 ‘자인’을 이을 보석같은 아역 배우 마하마두 야파가 캐스팅되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파리의 별빛 아래>는 국경과 출신, 언어의 벽을 넘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두 사람을 통해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함께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관객들을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리의 별빛 아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언노운 걸>, <미안해요 리키>처럼 사회에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준 웰메이드 영화들을 탄생시킨 프로듀서 필립 로기가 참여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아비뇽 영화제의 최고 유럽영화상부터 시카고 국제 영화제의 골드 휴고상, 데살로니키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국제 비평가협회상을 휩쓴 차세대 거장 클로스 드렉셀이 연출을 맡아 영화에 깊이를 더했다. 여기에 <카페 벨에포크> 촬영팀과 <미라클 벨리에>, <걸> 음악팀까지 합류해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에게 슬픔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희망을 심어줄 영화가 될 것으로 보여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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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하고 터져도 깊은 맛이 나는 만둣국처럼!
가족의 해체이자 가족의 탄생이다. <대가족>은 제목 그대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혈연으로 묶인 관계이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가 가족이라는 말이 있듯 양우석 감독이 가져온 이 이야기는 가족 해체 시대에 던지는 그만의 답인 듯하다. 2000년대를 배경을 했듯이 영화 스타일은 올드하고, 이야기는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지만, 오히려 정겹고 따뜻함이 베어 있다. 물론, 너무 많은 재료를 담아 터져버린 만두처럼 과하거나 수습이 어려운 부분도 더러 보인다.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 함무옥(김윤석)은 열심히 일한 덕에 돈도 많이 벌고 건물주까지 되었지만, 언제나 근심이 가득하다. 이유는 단 하나. 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문석(이승기)이 출가해 스님이 된 이후, 무옥은 제사 때마다 조상들을 볼 낯짝이 없다. 하지만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 그에게 문석을 찾는 한 어린 남매가 찾아온다. 문석이 자신의 아빠라 알고 이곳을 찾아온 남매의 이야기에 무옥은 평생 없을 줄 알았던 손주가 생겨 뛸 듯이 기뻐한다. 반대로 헐레벌떡 집으로 온 문석은 잠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업보라 말한다.
“가족 화두를 꺼내든 건 지난 세월과 비교했을 때 그때보다 풍족해졌는데 왜 가족 만들기는 더 힘들어졌느냐는 것이었다. 나름 생각한 결과의 답은 ‘욕망’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만들 게 된 계기를 말한 양우석 감독의 말처럼, 휴먼 가족 드라마처럼 보이는 <대가족>의 주재료는 바로 가족, 즉 자식으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부모 세대의 그릇된 욕망이다. 무옥이 그렇게 대를 잇고 싶어하 는 건 문석의 바람이 아닌 본인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감독은 과거 한국전쟁을 관통하며 타향에서 홀로 살아온 세월, 하루라도 쉬지 않고 일해야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책임감, 부모님은 물론, 여동생, 그리고 조상들을 챙겨야 한다는 K 장남 콤플렉스를 무옥에게 입힌다. 이로 인해 가족 관계가 소원해지고, 특히 아들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상은 했겠지만 문석이 출가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이런 고지식한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준 손자들이 오면서 점점 변한다.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이 하자는데로 모든 걸 해주려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손자 바보처럼 보인다. 마치 스크루지 영감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녀온 후 개과천선한 것처럼, 무옥 또한 그렇게 변한다. 이 과정을 겪은 그는 아들에게 소홀히 했던 자신을 책망하고 진실한 화해도 이룬다.
문석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의대 재학 시절 불임부부를 위해 타의로 자신의 정자를 기증했다. 500번 넘게 기증한 결과, 생물학적 아버지로 400여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자신을 찾아온 남매와의 일화를 통해 문석은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것은 물론, 비로소 부모의 입장이 되어본다. 그리고 그 비통한 슬픔과 힘겨운 인생을 살아온 아비를 그때서야 이해한다.
이처럼 <대가족>은 무옥과 문석을 통해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합을 보여준다. 비로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각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깨닫게 되는 이 부자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가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감독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임 있음에도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여기에 또 하나의 재료를 첨가하는 건 가족의 의미다. 무조건 혈연으로 이어져야 가족이라는 건 옛말. 21세기를 알리는 2000년이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서 혈연이 아닌 정으로 이뤄진 이들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감독은 무옥을 찾아온 남매, 평만옥에서 무옥을 항상 보살펴주는 방여사(김성령), 그리고 후반부 등장하는 수많은 가족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영화는 전반부에는 코믹한 설정에 따른 무해한 웃음을, 후반부에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문제는 다루려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너무 많고, 이질적인 것들이 많음에도 이를 한꺼번에 담으려다 넘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흐름이 자주 끊기는 전개 방식과 편집에서 단점이 드러나는데, 이는 마치 좋은 재료를 너무 많이 넣어 터진 만두를 연상시킨다. 세 나라의 정상이 한데 모여 각각의 정치적 의견 대립을 그린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던 양우석 감독의 단점이 이번에도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문현답 스타일의 불교적 가르침도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맛을 살린다. 중심에는 김윤석이 있다. 진짜 만둣국집 사장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은 물론, 남매를 본 순간 그동안 고수했던 걸 본인 스스로 무너뜨리며 기분 좋은 웃음을 전한다. 방여사 역의 김성령 또한 그와 티키타카를 맞추며 코믹함은 물론, 중년의 로맨스도 펼친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며 업보라 말하는 이승기와 극 중 과거 연인 사이였던 강한나, 그리고 두 팔을 다치면서도 이승기를 보좌하는 박수영의 맛깔난 양념 연기는 빛을 발한다.
“자식에게 부모는 우주이고, 부모에게 자식은 무능한 신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상대를 여기는 시선은 아래가 아닌 위로 향해 있다. 우러러보는 마음, 곁에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고마움. 이 작품이 연말 시즌에 잘 어울리는 건 너무나 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함을 알지 못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뻔하고 터져도 깊은 맛이 나는 만둣국과 같은 <대가족>의 온기를 많은 이들과 나눠 보기 바란다.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0 / 5.0
한줄평: 속 터져도 맛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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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친밀한 존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야기한다. 부모만큼은 자식을 믿어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그걸 알게 된 부모는 속상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온전히 아이를 믿는다는 건,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까지 아이를 믿어야 할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 잘못을 추궁하고 훈계해야 할까? 부모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어려운 문제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제목에 '보통'이 들어가지만, 사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사회적 지위와 좋은 직업을 가진 상류층이다. 이들의 자녀는 좋은 교육을 받고 최고의 환경에서 학창 생활을 보내고 있다. 영화의 원작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더 디너”로, 원작과는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상류층 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을 했다. 이들의 지위는 자녀들의 법적 문제조차 덮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부모로서의 역할과 자녀의 미래에 관한 고민이 복잡하게 얽힌다.
[첫 번째 감정] 형 재완의 안정감
변호사로서 성공한 재완(설경구)은 법적 문제가 생긴 상류층 자녀를 변호하며 형량을 최소화하려 애쓴다. 그가 변호사로서 내리는 판단에는 상대방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 방향으로 일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재완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냉정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태도는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그에게 안정감을 부여하며, 그 안정감은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마련해 준다.
딸이 노숙자 살인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재완은 평소 자신이 사건을 대하던 방식 그대로 상황을 처리하려 한다. 즉, 법적인 문제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딸이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수십 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재완에게 이러한 방향성은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이미 그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사건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굳이 밝히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영화의 중반까지 재완은 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동생 재규(장동건)와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과 계속해서 충돌한다. 재완에게는 도덕적인 판단보다는 안정적인 판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두 번째 감정] 재규의 도덕성
재규는 종합병원의 유명한 의사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환자를 돕고, 그 환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병원비를 내지 못할지라도 일단 치료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인물로, 도덕성과 책임감을 가진 따뜻한 성격을 지녔다. 그의 아내 연경 또한 여러 봉사 활동을 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이 부부는 기본적으로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아들이 노숙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재규와 연경의 의견은 갈라진다. 재규는 아들을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연경은 아무도 모르니 묻어버리자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단단한 도덕성은 균열을 일으킨다. 연경은 그 도덕성을 계속 깨뜨리려 하고, 재규는 이를 붙잡고자 애쓰지만 아들의 눈물을 보며 결국 무너지고 만다.
영화의 중반까지 재규는 도덕적인 것을 지키자는 입장이었으나,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흔들리게 된다. 중반 이후에는 재완이 도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재규는 안정적인 방향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아이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세 번째 감정] 아이들의 도덕 불감증
범죄를 저지른 혜윤(홍예지)과 시호(김정철)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다. 혜윤은 부모 몰래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하고, 시호는 소심하게 억눌린 생활을 이어가지만 결국 그 억눌림이 폭발하게 된다. 이들이 노숙자를 공격한 사건은 흐릿한 CCTV에 담겨 뉴스에 보도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들이 알아보고 추궁하는 상황이 된다.
영화 전반에 걸쳐 혜윤과 시호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재규와 연경은 시호에게서 반성의 기미를 보았다고 느낀다. 이는 관객들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으로, 혜윤은 전혀 반성하지 않으며 완전한 도덕 불감증을 보인다. 그 영향으로 시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상류층 부모의 힘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들은 정말 반성을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에게 도덕적인 성향이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바라보지만, 적어도 관객들에게 그들은 그저 범죄를 저지른 철없는 10대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들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들이 태어난 이후의 모든 것들을 판단해서 그걸 상황속에 녹여내 바라본다. 그러니까 전혀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아이들의 도덕불감증이 부모의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도덕은 마비된다.
영화가 제시하는 아이러니
<보통의 가족>은 후반부로 갈수록 두 형제의 태도 변화가 폭발력을 발휘하는 영화다. 도덕적인 재규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안정적인 재완이 그 안정을 깨려는 행동을 한다. 두 사람의 모든 선택은 자녀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관객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만약 우리도 이들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재완처럼 자녀를 위해 범죄를 덮어줄 수 있을까?
영화는 지금 이 시대에 충분히 벌어질 법한 사회적, 가족적 딜레마를 던진다. 자녀가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점점 쪼개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굴레가 얼마나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 속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선택들은 때로는 가족의 결속을 위태롭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중시하게 되면서, 과거처럼 절대적인 신뢰와 희생을 기반으로 한 가족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이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가족이란 굴레가 무너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2019년 <천문: 하늘에 묻다> 이후의 작품이다. 장동건과 설경구가 연기한 두 형제의 변화는 영화의 중후반부를 강하게 이끌며, 그들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색감의 대비와 캐릭터 간의 대립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도 훌륭하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최근의 사회적 문제를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우리에게 도덕과 안정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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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변화시키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세상!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사람은 변화시킬 수 있다” <디베르티멘토>는 알제리 태생 이민자 여성, 프랑스 교외 지역 출신, 여성혐오라는 편견을 깨고 지휘자라는 꿈을 이룬 마에스트라 자히아 지우아니의 이야기이다. 여성으로서 마에스트라가 되는 힘겨운 과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음악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영향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들이 사는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클래식이 가진 격식,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편견 등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디베르티멘토 선율은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 디베르티멘토: 기악 모음곡의 일종. 악장의 개수가 다양하고, 악기 편성의 형태가 각양각색이다. 디베르티멘토를 남긴 가장 유명한 인물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이다.
1995년 파리 교외 도시인 팡탱에 사는 알제리 이민자 출신 자히아(울라야 아마라)는 지휘자의 꿈을 꾸는 17세 소녀다. 어렸을 적 우연히 TV에서 본 라벨의 ‘볼레로’ 연주 공연을 보고 클래식에 발을 들여놓은 것. 쌍둥이 동생과 함께 파리 시내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그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동급생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출신과 배경,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세르주 첼리비다케(닐스 아르스트럽)의 눈에 들어 그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디베르티멘토라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시작한다.
<디베르티멘토>는 알제리 국립 오케스트라 시작으로 유수의 오케스트라 객원 및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자히아 지우아니가 그 꿈을 시작한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여성 지휘자는 전 세계적으로 6%, 프랑스에서는 4%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으로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난관이 많다. 영화의 배경이 1995년에는 그 강도가 더 심한데, 감독은 초반, 이 꿈 많은 소녀가 출신, 지역, 성의 장벽에 부딪혀 나가는 모습을 진득하게 보여준다.
파리 시내 명문 음악 고등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클래식 가문의 자재들. 이들은 교내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지휘자로 선 자히아의 말에 비아냥거리고, 연습에도 빠진다. 게다가 학교 초청 강연을 온 세르주 첼리비다케 또한 자히아가 지휘를 한다고 했을 때 여성은 지휘봉을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히아는 이런 편견에 하나씩 맞서 나가면서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그 방법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7살 때 우연히 TV를 통해 본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공연, 그때 마주했던 ‘볼레로’의 향연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밤낮없이 연습한다. 단순히 악보를 외우고, 음악을 듣고, 지휘를 시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곡가의 의도를 고민하고 단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등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이런 노력으로 인해 최고의 마에스트라가 탄생했다는 여성 성장 서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이 가진 선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자히아는 클래식 음악과 지휘를 공부하면서 과연 자신이 하는 음악은 누구를 위한 음악이며, 나만의 개성이 투영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다. 그리고 그 음악이 자신처럼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에 잠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디베르티멘토’라는 특별한 오케스트라다. 바쁜 와중에도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음악 봉사를 한 그녀는 음악이 전하는 행복을 더 널리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후, 특별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명곡을 즐길 자격이 있다는 신념으로 출신, 성별, 인종을 불문한 친구들을 모아 만든 이 오케스트라는 편견이란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의 뜻을 모아 만든 오케스트라 운영에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팡탱 시의 도움을 받아야 유지되는 상황에서 시장과 독대한 자히아는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사람은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 결국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진리를 얘기한 것. 이후 실제로 팡탱 시는 디베르티멘토에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결은 다르지만 <나의 올드 오크>처럼 이 작품 또한 이민자와 난민 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세우는 현 유럽 사회에 따뜻한 경종을 울린다. 이런 주제의식을 강조하듯 영화에서는 라벨의 ‘볼레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생상스의 ‘바카날레 춤’ 등 타 문화의 개성과 장점을 가져와 멋진 클래식을 탄생시킨 작곡가들의 음악이 수를 놓는다.
<디베르티멘토>는 여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성 성장 영화와 그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심하게 변주를 가하거나 편곡하지 않고 정석대로 서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진 개성이나 특별함이 묻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와닿는 건 실제 이야기가 허구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믿은 감독과 음악을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음악을 하려는 한 자히아의 뚝심이다. 자신이 음악으로 소중한 꿈을 꾸고 희망을 염원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똑같은 감정을 전하고자 노력한 자히아의 모습은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박수를 보낼 정도. 인생의 나락에 빠졌을 때 음악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10분동안 이어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꼭 마주하길 바란다. 앵콜을 부르는 박수를 저절로 치는 자신을 만날 것이다.
덧붙이는 말
- 자히아 지우아니는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를 만든 이후, 디베르티멘토 아카데미를 설립해 매년 2만 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 아래 영상은 지난 2019년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자히아 지우아니와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타라의 연주 장면. 라벨의 '볼레로'가 연주된다. 즐감하시길! (05:20 부터 연주 시작!)
사진 제공: 찬란
평점: 3.0 /5.0
한줄평: 알고도 감동하는 클래식 음악처럼!
*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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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저에 탄 소녀 리뷰 - 무엇이 그녀를 불도저에 태웠는가 (스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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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현실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다.
드라마 ‘SKY캐슬’,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강단과 순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혜윤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한다. 실제로 김혜윤은 직접 불도저를 다루며 혜영 역할을 위해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인물의 들끓는 내면을 온몸으로 표출해 열정을 불태웠다.
개성파 연기자 배우 박혁권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경찰수업’, ‘쌍갑포차’ 등의 오만석 배우, 또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예성이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사회를 향한 관점과 인물에 대한 시선으로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성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현재를 가리키는 시의성을 더해 공감을 이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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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7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카바티 : 극락축구단]의 개봉전 시사회를 참여한 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다” 잃어버린 팀을 되찾기 위한
FC안양 서포터즈 RED의 네버 엔딩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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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이레귤러스>
[2021년 3월 26일 넷플릭스 공개]
- 셜록홈즈와 왓슨을 대신해서 초자연적인 사건을 해결하는 10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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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큘라 2021> 예고편
세실리아와 마르틴 모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발생 사흘째, 그녀는 혼자 아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실마리조차 없다. 그러던 중 최근 3일간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들에 자신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연관된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살육의 주범을 찾던 그녀 앞에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태초의 악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