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7:31:48
인간 본연의 과감한 변화, 괴이한 진화
영화 <미래의 범죄들> 리뷰
비디오드롬, 플라이, 크래쉬와 같이 독창적이고 과감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신작 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이는 스타일리스트 감독 중 한 명이다.
8년만의 신작인데다가, 바디 호러 장르로서는 1999년 <엑시스텐즈> 이후로 무려 23년만에 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첫 공개인 칸 영화제 뿐만 아니라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무려 야외극장(!)에서 상영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필자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작품을 관람하였다.
신체가 스스로 변화하고 사람들은 인체를 개조하는 미래,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퍼포먼스이자 행위 예술을 펼치는 사울과 카프리스와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다룬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답게 이번 영화도 기괴하고 과격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상상력을 주로 보여주면 좋았겠지만, 배경 설명에 너무 많은 표현을 쓴데다가 고유 명사가 많이 나와 늘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만 수술과 신체 훼손이 일종의 섹스이자 애무로 다뤄지는 것을 섹슈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 같이, 매력넘치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다.
아직까지도 한국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지만, 언젠가 한국에서 소개가 되었으면 좋을 정도로 상당히 주목할 부분이 많은 작품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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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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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선악과를 손에 쥐고 소설 밖으로 뛰쳐나간 창조물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2023)
"스스로 선악과를 손에 쥐고 소설 밖으로 뛰쳐나간 창조물"
개봉일 : 2024.03.06.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로맨스, SF, 모험
러닝타임 : 141분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 라마 유세프, 제러드 카마이클, 크리스토퍼 애벗
이 영화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가여운 것들>은 지금껏 봐온 그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영화였다.
나는 <더 랍스터>를 통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더 랍스터>를 봤을 땐 이 영화가 주는 새로운 기묘함에 정수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고 그 후 <킬링 디어>를 봤을 땐 제대로 취향을 저격 당해 심장에 스트레이트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봤을 땐 정말 만족스러운 괴식을 먹은 느낌이었고.. 지금 <가여운 것들>을 본 후의 느낌은.. 맛있어 보여서 허겁지겁 흡입한 아이스크림 안에서 머리카락 뭉치가 발견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보기 전 고려해야 할 점
영화의 수위와 소재
<가여운 것들>? 일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이라 봐야겠고, 예고편을 보니 때깔 좋고, 소재 자체도 완전 취향 저격이다! 게다가 영화 개봉 전에 원작 소설에 도전했다가 독서력 부족으로 장렬하게 실패했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이 이야기를 소화하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군침을 참으며 기다린 시간이 지나가고 영화가 개봉했다. 다른 관객들의 반응은 신경도 안 쓰고 일단 허겁지겁 먹었다. 처음엔 "아~ 역시 이 맛이지~”싶어서 행복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소화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차올랐다. <가여운 것들>이 안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주인공 벨라가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며 그녀가 겪는 경험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영화 자체의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가슴이 열린 시체, 장기가 나오는 장면도 있고 선정성 짙은 장면도 길게 나온다. 그리고 시선에 따라 크게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도 있다. 스포지만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부분이기에 미리 이야기하고 가겠다. 이 영화엔 벨라가 매음굴에서 몸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꽤 긴 시간 동안,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된다. 개인적으론 해부 장면보다 이 장면들이 굉장히 힘들게 다가왔다. 벨라가 선택한 성적인 행위들이 그녀의 성장, 해방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이것을 이야기하는 실질적 주체가 남성(남성 감독, 각본가 토니 맥나마라도 남성)이다 보니 약간의 찝찝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보기엔 힘들었지만 매력적이었던 <가여운 것들>
엠마 스톤의 연기 / 시각적인 자극과 흥미로움
힘들었던 것과 반대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부분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부분은 엠마 스톤의 연기다. 엠마 스톤은 <가여운 것들>로 올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 왜 그녀가 이 상을 받았는지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가여운 것들>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정말 괄목할 만하다. 엠마 스톤은 유아기 수준에 머물러 있던 벨라가 세상을 마주하며 성장하고 마침내 완전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정말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절뚝거리던 걸음은 딱딱하고 어색한 걸음을 지나 유연한 발걸음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말투, 눈빛 또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또한 나는 이 섬세한 연기를 해내고, 수많은 노출과 격렬한 관계 장면 또한 ‘벨라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받아들인 그녀의 담대한 마음가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시각적 아름다움이다. 갓윈의 집안에 있는 빈티지한 가구와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흥미로운 기계,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정원, 꿈에 가깝게 느껴질 만큼 환상적이면서 기괴한 도시의 모습, 화려한 벨라의 의상 등.. 시선을 끄는 요소들이 참 많다. 이 외에도 귀를 살살 긁어대는 음악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 특유의 기묘함과 불쾌함, ‘어른 몸과 아이의 뇌’라는 소재가 주는 흥미로움과 자극까지, <가여운 것들>은 소화하긴 힘들지언정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영화였다.
어른의 몸을 가진 어린아이
<가여운 것들>은 타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랑과 억압을 동시에 받으며 살아온 여성 벨라가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벨라를 만든 사람은 괴짜 과학자 갓윈 백스터다. 우연한 기회에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임산부 시체를 건진 갓윈은 미약한 신체 전류만 남아있는 임산부의 시체를 보며 고민한다. ‘생이 버거워 자살한 사람을 내 맘대로 살리는 게 맞는 일인가?’. 어차피 기독교 국가에선 자살을 정신병이나 죄로 보니 그녀가 살아난들 정신병원 또는 감옥행일 텐데..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녀가 고깃덩어리로 변하기 전에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이 임산부의 생을 함부로 결정하는 것은 좀 그러니까, 아예 살아갈 기회조차 없었던 임산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새로운 생을 주기로. 갓윈은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뇌를 꺼내 임산부의 머리에 이식한다. 그는 벨라는 그렇게 갓윈에 의해 창조된다. 벨라의 일상은 창조주 갓윈이 만든 세계 안에서, 탄생과 성장의 과정은 모두 갓윈의 손안에서 진행된다.
벨라는 아름다운 성인 여성의 몸과 어린아이의 뇌를 가진 존재다. 벨라가 창조된 후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행동을 보면 대략 3~6세(남근기)쯤 되는 것 같다. 이때의 아이들은 성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특히 강해지고 아들은 엄마를, 딸은 아빠를 특히 애정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침 이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가득 찬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불완전한 생명 앞에 흥미로운 인물이 둘이나 나타난다. 맥스와 덩컨. 특히 적극적으로 벨라를 꼬신 덩컨의 영향으로 벨라는 세상을 향한 모험심을 키우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세계를 여행하기로 맘먹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브
스스로 선악과를 손에 쥐고 완벽한 세상을 벗어난 벨라
벨라가 사과를 자위에 사용한 이유
벨라는 갓윈이 자칭 ‘완벽하다’고 표현하는 세계를 떠나 온갖 추악하고 슬픈 현실 세계를 마주하며 성장과 변화를 겪는다. 벨라의 여정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 일부 닮아있다.
에덴동산에 머물고 있던 아담과 이브는 뱀의 속삭임에 속아 선악과(사과)를 따먹고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벨라는 갓윈의 보호 아래 아무런 차별도 위험도 없는 그의 집안에서 살아왔다. 벨라가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갓윈은 “바깥에 위험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화내며 벨라를 말린다. 하지만 벨라는 갓윈의 걱정을 뒤로한 채 스스로 당대 사회의 금기로 여겨졌던 ‘여성의 성적 욕망’에 눈을 뜨고 여러 위험과 지저분한 것들이 가득한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쫓겨난 것인지 자의로 나간 것인지의 차이를 제외하면 이 두 이야기는 상당히 비슷하다.
어느 날 아침, 홀로 식탁에 앉아있던 벨라는 사과를 손에 쥐고 자신의 몸에 갖다댄다. 벨라를 관찰하기 위해 뒤따라온 갓윈의 제자 맥스는 자위를 하는 벨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자위를 ‘상류사회에선 하면 안 될 행위’라고 말한다. 여성이 스스로 느끼는 성적 쾌락은 하나의 죄악이며 벨라는 선악과인 사과를 통해 그 죄악으로 취급받는 감정을 느낀다.
이후 벨라가 성장했음을 느낀 갓윈은 벨라를 위해 믿을만한 남자인 맥스와의 결혼을 추진하는데, 그 결혼 계약을 보증하기 위해 집에 방문한 덩컨이 벨라를 적극적으로 꼬드긴다. 덩컨은 얌전히 옷장에 들어가 비눗방울을 불고 있던 벨라의 몸을 만지고 자유와 육체적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녀를 꼬드긴다. 안 그래도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에 차있던 벨라는 모든 걸 지원해 주겠다는 덩컨 덕분에 추진력을 얻는다. 그렇게 벨라는 안전한 갓윈의 세계를 벗어나 온갖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로 떠난다.
금기를 깨고 성장하는 여성 벨라,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그녀의 외모
여성의 성적 해방
벨라는 여행을 하며 그 당시 사회에서 여성에게 금기로 지정된 것들을 깨나간다. 이는 사회 통념상 ‘여성이 해선 안될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원래 몸의 주인인 엄마 빅토리아의 삶을 옭아맸던 것을 깨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벨라는 상류사회에선 금지된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육체적 쾌락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남성 중심으로 쓰인 책을 읽으며 그들 말고 그녀의 이야기는 왜 없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벨라는 스와이니 부인의 매음굴에 들어가는 자신의 행동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것이라 이야기한다. 물론 금기에 대항하는 방법치고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벨라 나름의 싸움이었던 거다.
벨라의 이러한 거침없는 성격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녀의 외모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빅토리아(엄마)와 배에서 만난 미스 프림 등 대부분 상류층 여인들이 머리를 깔끔히 틀어올리는데 반해 벨라의 긴 머리는 자유롭게 풀어헤쳐져 있다. 의상 다른 여인들이 입는 고풍스럽고 긴 드레스와는 다르게 화려하고 다리와 팔이 자유롭게 노출된 형태다. 미스 프림은 긴 벨라의 머리를 만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칭찬하며 부러워한다. 이는 벨라의 까맣고 긴 머리카락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겠지만, 자유롭게 쾌락을 즐기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자유롭고 맑은 여인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된 아이, 가여운 존재를 대신해 싸우다.
죽음을 선택한 빅토리아를 위해, 가여운 그녀들을 위해.
갓윈의 집을 나온 후 벨라의 세상은 여러 의미의 색(color, 색정) 가득 차고, 벨라는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벨라는 리스본에서 폭력과 달콤함을 맛보았고 해리와 식사를 하며 충격적인 빈민가의 모습도 보았고 온갖 책들을 읽었다. 아테네로 가는 배 위에선 별거 아닌 이유로 기러기를 죽이는 선원의 잔인함도 보았다. 그리고 매음굴에서 온갖 남자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추함과 외로움, 치욕을 모두 느낀다. 스와이니 부인은 “치욕, 공포를 모두 경험해야 완전한 어른이 된다.”라고 말한다. 벨라는 그렇게 다양한 것들을 느끼며 어른이 된다.
어린아이 같았던 벨라의 말투는 여느 지식인 못지않게 단단해졌고 비틀거리던 발걸음은 올바르고 거침없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창조자 갓윈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갓윈이 위독하다는 소식까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매음굴을 떠나 런던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갓윈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듣게 된다. 아이가 없는데 왜 배를 가른 흔적이 있는지, 나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여행을 갔다 죽었다던 내 진짜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갓윈이 지금껏 숨겼던 진실은 너무도 잔인하고 역겨운 것이다. 하지만 벨라는 그에 굴하거나 자신의 삶을 혐오하지 않는다. 벨라는 벨라로서 살아온 삶이 즐거웠다고 말하며 스스로 맥스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벨라가 스스로 만든 삶은 퍽 단단하고 강인하다.
벨라는 많은 것을 이겨냈다. 하지만 벨라가 갖고 있는 몸의 원래 주인이자 엄마인 빅토리아는 자신의 삶을 혐오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했다. 빅토리아의 선택은 배와 목덜미의 수술 흉터가 되어 여전히 벨라에게 남아있다. 맥스와 결혼식을 올리던 중 벨라의 아빠이자 빅토리아의 남편인 블레싱턴 경이 찾아온다. 벨라는 별다른 말없이 그를 따라 빅토리아가 살았던 집으로 간다. 집 밖에선 그래도 멀쩡해보 였던 블레싱턴 경은 집에 오자마자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갈등이 생길 만큼 하인들을 잔인하게 괴롭히는 주인이고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남자였다.
빅토리아가 살던 집으로 간 날 밤, 블레싱턴 경이 주문한 저녁 식탁엔 벨라가 맛이 없다며 뱉어냈던 훈제 청어와 거위 요리가 잔뜩 올라와 있다. 블레싱턴 경은 “네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다.”라며 음식을 권한다. 빅토리아와 벨라는 같은 신체를 가졌으니 두 사람이 비슷한 입맛을 가졌을 확률이 높을 텐데, 이는 블레싱턴 경이 아내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던걸 넘어서 어쩌면 아내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음식을 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벨라는 빅토리아를 대신해 이 몹쓸 남자에게 복수한다. 벨라는 그의 발에 총을 쏘고 그의 뇌를 염소의 몸에 이식한다. 창조자의 딸로서 의술을 가진 의사로서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을 내린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와 벨라의 연결점
각기 다른 인간의 신체와 뇌가 합쳐진 존재. 벨라를 보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생물체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여운 것들>과 [프랑켄슈타인] 사이엔 크게 두 가지 연결점이 있다. 작품 내적 연결점은 신에게 도전한 과학자가 만든 생명체가 나온다는 점, 작품 외적 연결점은 메리 셸리와 셸리의 어머니, 그리고 벨라 모두 당대 여성으로서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행했다는 점이다.
벨라는 위에서도 반복해 얘기했듯이 사회적 억압을 이겨낸 여성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도 벨라와 같다. 1818년, 메리 셸리가 처음으로 [프랑켄슈타인]을 냈던 당시 사회에서 여성 작가들은 유령 같은 존재였다.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편과 같은 남성의 이름을 빌리거나 남성적인 필명으로 본인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1831년, [프랑켄슈타인]의 개정판을 내며 자신이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혔다. 그리고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한 현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다.
메리 셸리가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 시대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는 영국이 큰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지만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갈등도 많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때를 여성의 인권이 바닥을 쳤던 시기라 말하기도 한다. 메리 셸리가 처음 익명으로 책을 출판한 것만 봐도 여성에게 사회적 억압, 차별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벨라의 엄마 빅토리아의 이름도 ‘빅토리아 시대’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처럼 남편의 손안에 잡혀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왔을 빅토리아, 벨라는 가여운 빅토리아를 대신해 싸우고 승리한다.
가여운 창조물이 아닌 가여움을 느끼는 인간이 되다.
소설 속 괴생물체와 닮았던 벨라, 성장을 거쳐 소설 밖으로 나오다.
“나는 가엾은 놈을 바라보았다. 내가 만들어낸 비참한 모습의 괴물이었다.” -[프랑켄슈타인]
영화의 초반, 벨라는 갓윈의 창조물이었다. 벨라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가엾은 괴생물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을 반복한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고, 가여운 여성(빅토리아)을 대신해 싸우는 인간이 되었다. 벨라의 성장은 마치 [프랑켄슈타인] 소설 속 가여운 괴생물체가 소설의 저자인 당당한 여성 메리 셸리로 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벨라는 작가(창조주 갓윈)의 뜻대로 써내려가는 소설 속 괴생물체 역할을 벗어나 스스로 소설을 써 내려가는 여성 작가가 된 것이다.
고깃덩어리가 아닌 인간
갓윈은 뇌의 신호가 없는 인간의 몸은 고깃덩어리라고 말한다. 의학적으로 살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가여운 것들>을 보고 이 말을 다시 떠올렸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뇌의 신호, 즉 뇌가 담당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인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 사람은 죽어있는 고깃덩어리와 다르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벨라가 막 새로운 몸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전류로 되살려낸 괴생물체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여행을 하며 분노, 슬픔, 사랑, 행복, 치욕, 정신적 고통 등을 느끼며 정신적 성장을 이뤄냈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다.
<가여운 것들>은 극 중에 나오는 개+거위, 개+닭, 오리+염소, 말머리가 달린 증기 자동차처럼 기괴하고 이상하고 불쾌한, 혼종 같은 영화다. 누군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상스럽다고 욕을 한다 해도 이해할 만큼 나 또한 이 영화가 상당히 이상한 영화임은 인정한다. 솔직히 빠른 시일 내에 <가여운 것들>을 다시 볼 것 같진 않지만 이 영화가 남긴 충격은 꽤 오래갈 것 같다. 그리고 그 충격이 다 가실 때쯤 벨라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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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와 돌아온 씨네픽입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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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2023년 들어 최장의 기록인데요, 누적 관객수 290만 관객을 돌파하고 300만을 앞두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록적인 흥행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주는 마블 신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주말 개봉을 앞두고 있어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상황인데요, 현재 예매율 1위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3배 앞선 수치를 기록 중입니다. 이로써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개봉 첫 날 박스오피스 1위를 할 것이 확실시 된 상황이지만, 첫 주말을 기점으로 실관람객의 평에 따라 앞으로의 순위 여부가 정해질 전망입니다.
2. <타이타닉: 25주년> (NEW)
개봉 25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타이타닉>은 지난 주말 15만명이 넘은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자리했습니다. 이는 역대 국내에서 재개봉된 외화 가운데 역대 최고 기록인데요, 대한민국에서의 기록이 해외 개봉 국가 중 흥행 성적 중 1위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25주년>을 팬들이 찾는 이유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바타: 물의 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감독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3. <아바타: 물의 길> (▼1)
<아바타: 물의 길>은 재개봉한 <타이타닉>에 밀려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내려갔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누적 관객을 1067만명까지 끌어모으며 매출액은 역대 2위인 1361억 5565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357억 7483만원을 기록했던 한국 영화 <명량>을 제친 기록으로,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는 <극한직업>의 매출액과 약 30억원 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1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마찬가지로 개봉을 앞둔 마블의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관람객 평가에 따라 앞으로의 지표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39회 예측 이벤트는 2월 2주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한 주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실제 1위를 차지했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1위를 예측한 유저는 63%로 높은 확률을 기록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질주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이 정답을 맞히신 것으로 보입니다. <타이타닉: 25주년>이 예상 밖으로 매우 좋은 성적을 내 2위, 3위의 정답 비율은 19%, 11%에 머무른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40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4. <교섭> (▼1)
<교섭>은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5위 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타이타닉: 25주년>, <아바타: 물의 길>이 압도적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 영화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양상입니다. 이번 주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어 <교섭> 역시 지난 주보다 낮은 관객 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5. <바빌론> (▼1)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역시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입니다. 3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과 대중을 사로잡기에는 조금 마이너틱한 소재로 인해 개봉 전에도 우려의 대상이었는데요, 주말 관객 수는 34,069명으로 누적 관객 수 역시 161,622명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애호가들의 평은 좋은 편이니, <바빌론>을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얼마 간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실제 스트리퍼였던 배우 채닝 테이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매직 마이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가 지난 주말 1위를 차지하며 막을 올렸습니다.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는 미국 최고의 남성 스트리퍼 '마이크'(채닝 테이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1편을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2위는 <아바타: 물의 길>이, 3위는 <타이타닉: 25주년>이 각각 차지해 제임스 카메론의 두 작품이 나란히 북미 박스오피스 2위, 3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난 주 2위를 달성했던 <80 포 브래디>가 4위를 기록하였으며, 1위를 달성했던 <똑똑똑>은 개봉 2주차 6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5위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했던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차지하여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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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더 다양한 컨텐츠로 찾아뵙기를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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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한국영화 개봉 예정 라인업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국내의 영화 배급사별로 2022년 개봉예정 영화의
라인업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라는 배급사의 작품 라인업을 알아볼텐데요!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는 국내 굴지의 대형 배급사들보다는 다소 출발을 늦게 한 편이지만,
신생 배급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탄탄한 라인업과 퀄리티를 보장하는 배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2022년 올해도 역시, 국내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영화 라인업들이 대거 포진해있는데요.
그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2022년 국내영화 라인업(예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Dirty Money)
장르 : 범죄
감독 : 김민수
출연 : 정우, 김대명, 박병은, 조현철, 유태오 등
작품소개 : 수사도 뒷돈 챙기는 부업도 같이 하는 친형제 같은 두 형사가 더 크고 위험한 돈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
*씨네랩 코멘트 : 엄청난 티켓 파워 배우는 출연하지 않지만,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앙상블로 꽤나 기대되는 작품.
2. 앵커
장르 : 스릴러
감독 : 정지연
출연 :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작품소개 :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에게 의문의 제보자가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2021년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됐던 작품이나, 개봉이 연기가 된 작품으로 2022년 올해에는 개봉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3. 리멤버(REMEMBER)
장르 : 드라마
감독 : 이일형
출연 : 이성민, 남주혁
작품소개 :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80대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가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 평생을 준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소재가 주는 참신성으로 흥미를 끌며, 신구 배우의 조합이 기대. 즉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의 연기 호흡이 기대되는 작품
4. 소방관
장르 : 드라마
감독 : 곽경택
출연 : 곽도원,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작품소개 : 2001년 홍제동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용감했던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실화극
*씨네랩 코멘트 : 실화 소재의 작품. 곽경택 감독의 오랜만의 연출 복귀작이면서 휴먼실화극을 내세운만큼 대중성이 있는 영화로 예상되는 작품
5. 출장수사
장르 : 액션
감독 : 박철환
출연 : 배성우, 정가람
작품소개 : 사고뭉치 베테랑 형사 ‘재혁’과 금수저 신참 형사 ‘중호’가 의문의 살인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해 서울로 출장을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주연배우인 배성우 배우의 스캔들로 개봉이 연기됐던 영화. 여론에 따라서 2022년 개봉여부가 정해질 것으로 판단되는 작품이지만,
2022년에는 개봉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
6. 바이러스
장르 : 드라마
감독 : 강이관
출연 : 김윤석, 배두나
작품소개 :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수일 내에 사망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연구원 이균(김윤석)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옥택선(배두나)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김윤석 배우와 배두나 배우의 만남으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면서 밝혀진 시놉시스 또한 영화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작품
7. 보호자
장르 : 액션
감독 : 정우성
출연 : 정우성,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
작품소개 : 자신에게 남은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배우 정우성의 감독작이면서 동시에 주연작품.
8. 승부(The Match)
장르 : 드라마
감독 : 김형주
출연 : 이병헌, 유아인
작품소개 : 스승과 제자이자, 라이벌이었던 한국 바둑의 두 전설인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피할 수 없는 승부를 그린 영화
*씨네랩 코멘트 : 2022년 최대의 화제작이면서 기대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영화. 연기의 신으로 평가받는 이병헌 배우와
그 못지않은 연기력과 매력의 유아인 배우의 만남.
또한 실제 바둑의 전설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피할 수 없는 승부를 그린 영화만큼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9. 원더랜드
장르 : SF, 드라마
감독 : 김태용
출연 : 박보검, 수지, 정유미, 최우식, 탕웨이
작품소개 :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승부> 못지않은 올해 최대의 기대작.
올해 성수기 시즌, 텐트폴 영화로 개봉 시기를 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
국내의 인기 많은 배우들이 모두 총출동하는 작품으로 화제가 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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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2022년 개봉예정 한국영화 라인업 중에서
어느 작품이 가장 기대되고 기다려지나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국 속에서 물론 개봉이 확실치는 않겠지만.
부디 상황이 하루 빨리 나아져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또 다른 배급사의 2022년 영화 라인업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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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사랑하고 계신가요?
사랑을 하고 계시다면 행복하신가요?
혹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혼자인 시간들을 보내고 계실 수도 있겠네요.
요즘 예술 영화 보는 취미에 빠졌는데, 사랑을 하고 싶은 혹은 요즘의 사랑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후기를 남겨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개봉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그때도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에겐 극호였고, 인생 영화로 등극해 버렸다. 어제 영화를 보고 아직까지 영화 리뷰를 찾아보고,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질문들을 되새기고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주가 내 또래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잠깐 봤던 예고는 내용도 그렇고 배경도 프랑스 영화 느낌이 강했는데 노르웨이 영화라고 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배우의 당시 감정과 상황에 적합한 배경과 구도를 영상에 담아내는데, 영상미가 꽤나 뛰어나다. 뻔하지 않은 연출 또한 영화가 유명해진 데에 한 몫한 것 같은데, 2시간 정도의 영화가 12 part로 나누어져 흘러간다. 그 안에서 배우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두드러진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다른 작품 델마와 오슬로, 8월 31일 도 좋다고 하는데 좋으면 리뷰해 봐야겠다.
억압된 감정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율리에
우린 인생의 단계가 달라
주체적이고, 똑똑한 주인공 율리에는 본인이 뛰어난 분야, 공부의 정점인 의사를 꿈꾸고, 그중에서도 목공을 하는 느낌일 것 같은 외과 의사를 진로로 정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본인과 맞지 않는 걸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과 의사를 꿈꾸지만 거식증에 걸린 동기들과 함께해야 된다는 것에 다른 진로를 찾는다. 그렇게 본인은 시각에 예민하다며 사진가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이 부분은 나를 포함한 요즘 세대라면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 이걸 하면 좋다더라, 이걸 하면 성공한다라는 것들은 내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해 보면 나와 맞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번 선택한 직업을 쭉 유지하며 그 과정에서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난 율리에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서일까 그녀의 선택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율리에는 사진 일을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당시 모델 남자친구와 간 파티에서 평생 잊지 못할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둘은 첫 만남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관계를 맺지만 율리에보다 15살이 많은 악셀은 서로의 인생 단계가 너무 다르다고 한다. 율리에는 아직 본인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이라며 만남을 이어가자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율리에는 그 말을 듣고, 악셀과 사랑에 빠지며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율리에가 사랑에 빠진 순간에 공감한다. 불완전한 나를 알아주고, 불안한 미래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때, 사랑에 빠지지 않긴 힘들지 않을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그렇게 둘은 각자의 세계를 합치며, 행복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악셀은 본인의 가족의 휴가에 율리에를 초대하며, 가족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악셀과의 가족과 어울리는 것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율리에는 그 이후 이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악셀이 좋았지만, 그에게 맞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의 삶에서 그저 관중이 된 느낌이었다.
악셀의 행사가 끝난 후 공허함을 느끼는 율리에
악셀의 파티에서 나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무작정 들어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파티. 그 안에서 율리에는 의사 행세를 하며 공허함을 채운다. 그러다가 이성적으로 강하게 끌리는 에이빈드를 만나게 되는데, 둘 다 연인이 있었기에 바람은 안된다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스킨십만 없을 뿐 누가 봐도 바람인 행동을 하며 밤을 새운다.
에이빈드와 헤어지고, 그와 보낸 하룻밤이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 악셀과는 다르게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고, 또래에 말이 잘 통한다 느꼈던 에이빈드. 그가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는 결국 악셀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를 떠난다.
예전에 우리처럼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
그렇게 에이빈드와 열렬한 연애를 하던 율리에는 임신을 하고 마는데, 그 사실을 에이빈드에게는 말하지 않고, 악셀에게 찾아가서 고민 상담을 한다. 악셀은 심지어 얼마 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사실 영화에 표현된 주인공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면 율리에는 최악의 사람이 맞긴 하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랑할 땐 최악이 된다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악셀은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율리에는 본인이 이별을 고해놓고, 악셀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없다며 후회 가득한 말을 한다. 미숙한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율리에와 또래이고,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에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다. 최악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도 말이다. 나 또한 미숙한 사랑을 했었고, 앞으로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그녀의 선택들을 보며 깨달은 건 오래된 인연과 권태가 오더라도 그 와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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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없는 존재들의 콘크리트
SYNOPSIS.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미국 이민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어느 날.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 대담하고 혁신적인 그의 건축 설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후원자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자신의 설계에 집착하던 ‘라즐로’. 혁신적인 브루탈리즘 건축에 자신을 투영하던 ‘라즐로’는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데...
발 디딜 곳 없는, 소속이 불분명한 삶의 연대기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다!
POINT.
✔️ 영화의 배경이 된 1950년대 영화처럼 비스타비전 화면비를 자랑하고, 오프닝과 엔딩에서 평소와 다른 결로 흐르는 크레디트를 볼 수 있습니다.
✔️ 서막-1막-인터미션-2막-에필로그의 구성. 215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인터미션까지 찬찬히 바라보게 합니다.
✔️ 거기에는 이 영화의 걸출한 음악이 일조합니다.
✔️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납득이 가는 수상입니다. 비록 발음이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말이에요.
✔️ 영화 바깥 작금의 미국과 유대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더욱 공허하게 아름다운 영화로 느껴집니다.
소설 <GV 빌런 고태경>에는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8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기적이 아닐 리 없는 이 영화를 보며 건축업자의 딸은 생각했다. "모든 (미)완성된 건축도 기적이구나..." 라즐로 토스 같은 예술적인 건축가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가능했던) 그간 그가 지어올린 모든 건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로 갖게 됐다. 영화도 건축도, 누군가의 설계도에서 시작하지만 그 설계도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작업이고, 중간에 좌초되기도 쉬운 만큼 어렵사리 완성된다. 그렇다면 대놓고 건축의 도식에 맞추어 쌓아 올린 이 영화는, 어쩌면 이중의 기적이 아닐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분한 한 남자가 배에서 내린다. 바우하우스 출신에, 내로라 하는 프로젝트를 몇 개나 진행한 걸출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 그가 미국에 당도하는 순간은 어둡고 축축하고 어지럽다. 웅장한 관악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서곡'을 따라,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그리고 편지 속 에르제벳의 목소리가 해설처럼 덧붙인다. "None are more hopelessly enslaved than those who falsely believe they are free."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라는. 그렇다면 이 "자유의 나라"는 정말 자유의 나라인가.
뿌리 없는 존재들은 자유로운가
이내 그는 흩날린다. 뿌리 없는 이름과 있지도 않은 아들과 (그들 입장에서) 이교의 아내까지 맞아들여 '미국식' 가족을 꾸린 사촌의 가게 구석 창고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려다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말만 듣고 쫓겨난 일터에서... 자유의 나라는 라즐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라즐로의 작업물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명성을 얻게 된 서재 주인 밴 뷰런이 라즐로를 찾아오고, 객관적인 그의 상황은 상승세를 탄다. 그러나 라즐로를 잘 아는 에르제벳이 금방 간파하듯, 그는 일 안에서 미쳐가고 있다. 더 정확히는 일 때문이라기보다 일을 수단 삼아 "그를 벌레 보듯 하는" 나라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미국에 갓 도착했을 때보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지금 더더욱. 뒤집힌 땅에서 뿌리가 자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뿌리가 없다는 건 뭘까. 영화에서 공교롭게도 엄마 잃은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것과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는 대놓고 엄마 잃은 존재 셋이 나온다. 어머니와의 일화를 라즐로에게 이야기하는 밴 뷰런, 어머니 없이 숙모 에르제벳과 함께 여기까지 온 조피아, 그리고 고든의 어린 아들. 이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뿌리 없는 삶에 응전한다.
#1. 밴 뷰런: 뿌리 대신 이파리로
밴 뷰런은 부실한 뿌리를 풍성한 이파리로 승부 보려는 존재다. 이파리처럼 돈을 뿌려대며 자본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다만 그는 돈 외의 다른 수단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가 라즐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뒤에 나올 장면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스스로가 여성 혐오자임을 알지 못하는 여성 혐오자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 아주 미쳐 있네 저러다 잘하면 키스하겠네... 싶을 만큼 라즐로를 가까이하고 애정을 퍼붓는 듯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라즐로와 작업물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엉킨 자기애에 가까운 마음으로 보여서였다.
라즐로에게 찬사를 늘어놓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쉽게 탓하는, 투박하고 (부정적 의미로) 감정적인 반응. 라즐로에게 범죄를 저지를 때 내뱉는 문장을 보면 라즐로라는 개인보다 상대를 집단화해 기괴한 일반화하는 비약. 여성과 깊은 관계이고 싶은 마음과, 그 깊이까지 차곡차곡 도달하기에는 게으른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개인 혹은 집단으로서의) 여성 탓이라고 손쉽게 문제를 전가하는 일부 남성들과 같은 태도다. 생각해 보면 (상처가 있다는 점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조부모를 대한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건축을 향한 태도는 최악이다. 애당초 기획을 해놓고 중간에 돈 때문에 엎을 거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요 이 양반아. 마구 이파리를처럼 돈을 날리지만 잘 날리는 것 같지도 않다.
#2. 조피아: 뿌리 끝까지 어떻게든
반면 조피아는 그 없는 뿌리에 천착하며, 뿌리 끝을 찾아 어떻게든 떠나는 존재이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조피아의 첫 대사는 이스라엘로 가겠다는 선언이며, 반신불수의 몸이 된 라즐로를 대신해 그의 건축물을 해설하는 엔딩에서의 확신에 찬 대사들 또한 라즐로의 건축을 유대인의 정체성 안에 꽁꽁 묶어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실제 라즐로의 삶은 아주 경건한 유대인의 삶도 아니었으며 (그는 유대인 예배당에 계속 나가기는 하지만 그의 삶이 신앙에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번 창부를 찾고, 의료적 도움 이상으로 약물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완으로 남은 콘크리트 건축물 또한 밴 뷰런의 자본과 라즐로의 실력 그리고 뿌리 없이 흩날린 시절의 상처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공허하게 지어진 건축물은 조피아의 해설 속에서 유대인의 정체성 하나만으로 뭉뚱그려져 거의 황금 궁전처럼 힘차게 묘사된다.
#이파리와 뿌리 끝의 우로보로스
이런 둘의 태도는 얼핏 반대처럼 보이지만, 뿌리 끝과 이파리는 의외로 마치 우로보로스의 머리와 꼬리처럼 결착된다. 마치 자본 만능주의가 팽배한 미국 그리고 시오니즘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의 결착처럼. 이는 영화 바깥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며, 가자지구를 장악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킨 다음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네타냐후는 웃고 있었다. 이 발언으로 인해 사람들은 가자지구의 (가뜩이나 불안했던) 휴전 가능성을 더욱 낮게 점치기 시작했고, 실제로 휴전 두 달 남짓 만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4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역시나 "트럼프가 여지를 주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교로운 지점은 이곳이다. 영화는 한 사회의 토착민 사이에서 벌레 취급을 받은 이민자가 또 우뚝 서서 체제를 찬양하는 모습을 이어 붙임으로써 결착된 폭력의 고리를 포착하고자 한다. 미국 사회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고 폭력을 경험한 (듯한) 조피아가 시오니즘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밴 뷰런'이라는 이름도 네덜란드계 이름 즉 이민자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의 이름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존재들이 있다. 역시나 엄마 없는 존재들이다.
#3. 라즐로 토스: 사라진 뿌리
약간의 비약을 가하자면,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결혼식 사진에는 엄마로 추정할 수 있는 나이대의 여성이 전혀 없다. 라즐로는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정도가 아니라, 그 고리에 납작하게 깔린다. 그가 밴 뷰런에게 폭력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경로로 반신불수가 되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로 그는 조피아의 해석에 꽁꽁 묶이고 있다. 한번은 예술가라고 치켜세우다 유대인/이민자라고 후려치는 폭력에, 또 한번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유대인의 정체성 아래 종속시키는 폭력에.
내게 이 지점은 단순히 예술과 자본의 역학 관계에서 예술이 자본의 질투를 받아 꺾였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자본과 시오니즘에 결탁된 폭력의 고리가 사람을 얼마나 잔혹하게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건축물이 사라지지 않아 좋다던 그는 정작 콘크리트 덩어리만 공허하게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부재를 바라보는 존재는 어디에
영화의 주요 인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은 고든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에 안겨 거리의 음식을 먹거나 때론 그마저 먹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아빠의 추측과 달리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빠가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다지 내색하지 않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음에도 돈과 산업재해 사이 휘청거리던 밴 뷰런의 건축지, 건축가의 자부심과 계산에 번번이 부딪히는 '벌레' 대우에 날카로워진 라즐로의 건축지와 달리, 고든의 아들에게 건축지는 이따금 아빠가 건축용 차를 태워주기도 한 즐거운 곳이었다.
고든의 아들은 아주 작게 지나가는 인물이다. 라즐로와 에르제벳, 밴 뷰런 같은 인물들마저 결말을 앞두고 제각각 황급히 사라져 버린 이 영화의 결말부에 고든의 아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상상하게 된다. 그는 영화 바깥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사라진 뿌리의 자리를 기억하며 고요하게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 만큼 운이 좋다면.
다시 영화 바깥을 보자. 미국의 자본 만능주의와 시오니즘이 선으로 연결된 자리, 가자지구를 보자. 그곳에 있으나 영화 속에는 부재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그들 또한 뿌리를 빼앗겨 흩날리고 있으나, 고든의 아들처럼 미약한 존재감으로 보도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 세상이 투명하게 여기는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계속 뿌리를 고요하게 지켜보며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까. 이번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한 400여 명의 사망자 중 170여 명이 어린이라고 한다.
감독은 시오니즘과 미국 자본주의를 묶어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 그런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비판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충분히 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부재로 도형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지점 또한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자꾸 공교롭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미국과 유대인을 묶는 것은 서막-1장-인터미션-2막-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도식만큼이나 과하게 심플한 것이 아닌지. 뿌리 없는 존재들의 공허한 콘크리트 같은, 아름답지만 공허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2천여 년 전, 사람들 앞에서 콧대를 높이고 있던 고위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던진 일갈을 떠올린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이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웅장한 콘크리트 회벽에는 너무 많은 뼈가 투영되어 보인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이자, 어쩐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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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막달라|Magdala
다미앙 매니블|Damien MANIVEL
France | 2022|78 min|DCP|Color|Fiction|15|Asian Premiere
시놉시스
예수의 죽음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마리아는 머리가 허옇게 센다. 열매를 따 먹고, 빗물을 마시고, 나무 사이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린다. 마리아는 그를 찾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마리아 막달라는 예수의 죽음 후 동굴과 숲 속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은둔한 막달라의 마지막 순간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연했다. 연기자의 움직임을 담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미앙 매니블 감독은 전작에서도 협업했던 배우이자 댄서인 엘사(Elsa Wolliaston)에게 인간 사회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홀로 된 막달라의 마음을 따라가게 했다. 영화는 어떤 극적인 이야기나 절망을 나타내기보다 매우 단순하게 막달라의 걸음을 함께하며 연기자가 진실되게 느끼는 공간의 에너지와 자연의 반응을 충실히 묘사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빚는 젊은 작가 감독 다미앙 매니블은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재능을 입증한다. (문성경)
성녀(聖女) 막달라 이야기
마리아 막달라(막달레나). 그녀는 호칭이 많다. 예수의 제자. 기독교의 성인(聖人). 예수가 부활했을 때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다른 제자에게 알린 인물. 오해도 많다.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인. 회개한 창녀. 47년 간 광야에서 지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와 혼동되기도 했다. 필립보, 토마스, 마리아 복음서 등 몇몇 위경 내용에 근거해 그녀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널리 퍼졌다.
다미앙 매니블 감독의 <막달라>도 비슷하다. 위의 이미지가 전부 혼재한다. 막달라는 숲에서 고행 생활을 이어간다. 직접 만든 십자가를 놓지 않는 그녀는 환상 속에서 예수를 만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발밑에서 우는 막달라. 예수와 몸을 섞는 막달라. 비가 오는 날 예수의 얼굴을 그리며 그리워하는 막달라. 스크린에 비친 그녀는 예수의 제자이자 연인이고 성녀(聖女)다.
인간 막달라의 죽음을 체험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막달라의 외관이다. 일반적으로 막달라는 어리고, 환희에 찬 백인 여성이다. 교회가 만든 그림이나 조각 속 그녀는 같은 이미지에 갇혀 있다. 영화 속 막달라는 다르다. 그녀는 노년의 흑인 여성이다. 죽음이 임박한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통념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 든 막달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전달한다.
물론 <막달라>는 자기 의도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느리다. 그녀가 이슬 한 방울을 마시는 순간을 10초가 넘도록 보여준다. 클로즈업도 극단적이다. 러닝타임 절반은 그녀 얼굴로 가득하다. 움직임도 거의 없다. 막달라가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막달라>는 전통적인 성녀 막달라의 이미지를 깰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정적인 영화는 관음적이다. 주인공 삶의 단편을 훔쳐본다는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실제로 관객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막달라의 삶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얼마나 예수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막달라는 성녀가 아니다. 마지막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막달라는 동굴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천사는 촛불을 든 채 그녀가 죽기를 기다린다. 카메라는 막달라, 천사, 촛불을 천천히 오간다. 초가 녹을수록 막달라의 숨은 약해진다. 긴 시간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며 고행을 이어간 한 여성의 삶을 요약하듯이. 마지막 숨을 뱉은 그녀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있다. 막달라는 사랑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 인간일 뿐이다.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그래서 <막달라>는 이율배반적이다. 몇몇 요소는 '이 영화에 새로운 게 있나?' 싶은 의문을 자아낸다. 환상 속에 나타난 예수는 익숙하다. 다른 영화, 드라마, 그림 등에서 재현한 유대인 남성 그대로다. 임종을 지켜보는 천사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다. 순진한 얼굴을 가진 백인 소년. 성경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모습대로다.
하지만 종교적인 인물을 묘사하되 결코 종교적이지 않다. 가톨릭 교회가 숨기려 하는 대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비주의적 묘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젊은 막달라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녀 얼굴은 희열로 가득하다. 그런데 신실한 성녀보다는 성적으로 흥분한 여성에 가깝다.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 "성녀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t. Teresa)"처럼. 성적 오르가슴을 통해 종교적 신비경을 표현한다. 우연이 아니다. 신비주의적 전통에 따르면 신과 하나 되는 기쁨은 성적인 황홀경을 맛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선 막달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 심장을 도려내 하늘에 바치는 막달라. 예수가 죽은 뒤 한때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숲 속을 헤매던 여성은 심장을 도려내는 고행 끝에 옛 연인을 만난다. 실제로 막달라는 죽은 뒤에야 예수를 만나러 승천할 수 있다. 즉, 영화는 한 번의 황홀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과 하나 되는 '합일' 경험을 다시 경험하려면 고통으로 가득한 수행을 견뎌야 하니까. 틀에서 벗어난 막달라의 죽음이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이유다.
영화 <막달라>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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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pictureskr 장르: 액션-코미디 출연: 스티브 카렐, 크리스틴 위그, 윌 페럴, 피에르 꼬팽, 조이 킹, 소피아 베르가라, 스티븐 콜베어 미란다 코스그로브, 클로이 파인먼, 스티브 쿠건, 크리스 리노드, 다나 가이어, 매디슨 폴란 각본: 마이크 화이트, 켄 다우리오 감독: 크리스 리노드 공동연출: 패트릭 드라게 프로듀서: 크리스 멜라단드리, 브렛 호프만 7년 만에 돌아온 슈퍼배드 시리즈! 세계 최강의 악당에서 AVL(안티 빌런 리그) 요원이 된 그루가 미니언들과 함께 신나고 흥미넘치는 새 챕터를 열 일루미네이션의 ‘슈퍼배드4’로 돌아왔습니다. 2022년 여름, 블록버스터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서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일루미네이션의 ‘미니언즈2’에 이어, 역사상 가장 큰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의 그루(오스카 후보 스티브 카렐)와 루시(오스카 후보 크리스틴 위그)와 딸들인 마고(미란다 코스그로브), 에디스(다나 가이어), 아그네스(매디슨 폴란)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아빠가 된 그루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새로운 가족 그루 주니어도 함께 찾아옵니다! 그루는 막심 르 말(에미상 수상자 윌 페럴)과 그의 팜므파탈 여자친구 발렌티나(에미상 후보 소피아 베르가라)라는 새로운 적과 마주하게 되고, 그루의 가족은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영화는 조이 킹(불릿 트레인), 에미상 수상자 스티븐 콜베어(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그리고 클로이 파인먼(SNL)이 새로운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합니다. 피에르 꼬팽이 미니언즈의 상징적인 목로리로 돌아오며, 오스카 후보에 오른 스티븐 쿠건이 사일러스 램스바텀으로 돌아옵니다. 논스톱 액션과 일루미네이션 특유의 반항적인 유머로 가득한 ‘슈퍼배드 4’는 미니언즈의 공동 제작자이자 오스카 후보에 오른 크리스 리노드(슈퍼배드, 마이펫의 이중생활)가 감독을 맡았고, 일루미네이션의 선구적인 설립자이자 CEO인 크리스 멜라단드리와 브렛 호프만(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미니언즈 2)이 제작했습니다. 패트릭 드라게(씽2게더, 마이펫의 이중생활 2 애니메이션 감독)가 공동 연출을 맡았으며,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화이트 로터스의 마이크 화이트와 슈퍼배드 시리즈의 베테랑 작가 켄 다우리오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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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컴백? 왕년에 잘나가던 슈퍼스타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빚쟁이 신세가 된 ‘닉 케이지’ 그런 그에게 생일 파티 참석을 조건으로 기꺼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슈퍼팬 ‘하비’(페드로 파스칼)가 등장한다. 스타로서의 자존심과 어마어마한 제안 사이에서 갈등하던 ‘닉 케이지’는 결국 생일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한다. 도착과 동시에 초호화 환대를 받고 행복한 휴양을 보내던 그는 의문의 CIA로부터 납치되고, ‘하비’가 악명 높은 수배범인 사실을 듣게 된다. CIA로부터 가족을 빌미로 위험한 미션을 강요 받은 ‘닉 케이지’는 설상가상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데… 감당 불가! 방심 금물! 참을 수 없는 초대형 코믹 액션이 온다! 레디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