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5-03 08:32:16
[JIFF 데일리] 당신의 가족에게 ‘티끌만 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영화 〈엄마의 모든〉
엄마의 왕국/한국경쟁
시놉시스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자기계발서 『진실의 힘』 작가 도지욱과 이웃에게 정을 주는 '왕국 미용실' 미용사 주경희는 모자(母子)지간이다. 어느 날, 평화로운 왕국에 침입자들이 쳐들어온다. 갑작스러운 주경희의 치매. 비밀을 파헤치려는 목사 도중명. 엄마와 아들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가족이 품은 모순, 기괴함을 다루는 영화는 거칠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파하는 영화. 그리고 온갖 난리법석 후에도 모든 가족이 으레 그렇다는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영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 〈엄마의 왕국〉은 후자에 가깝다.
한 가족의 비밀을 하나둘씩 파헤치는 이 스릴러 영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헤쳐야만 했던 아이러니를 좇는다. 엄마 주경희는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아들 도지욱은 자기계발서 몇 권을 출간한 작가다. 그러던 어느 날 경희에게 치매가 찾아온다. 지욱은 치매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해낸다. 심지어 이를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 듯하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문득 던진 말에는 아찔해진다. 바로 “내가 네 아빠를 죽였다”는 말이다.
경희의 남편이자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어렸을 때 ‘실종’되었다. 이후 모자는 둘이서 생활을 꾸려왔다. 그런데 지욱의 아버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살해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욱의 삼촌이자 목사인 도중명이다.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명은 떠나기 전에 진실을 알고 싶다며 형수인 경희에게 진실을 캐묻는다.
극이 전개되며 경희, 지욱, 중명 모두에게 ‘실종’ 혹은 ‘살해’된 남자를 해칠 동기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경희는 자신과 지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미웠고, 지욱 역시 어려서부터 자신을 미워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지욱의 머리에는 지금까지도 큰 땜빵이 있는데 이는 울며 보채는 지욱을 아버지가 던져서 생긴 상처다. 한편 한때 형수인 경희에게 감정을 품었던 중명 역시 자기 사랑을 가로막는 형의 존재를 마뜩치 않아 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결국 진실은 뭘까? 범인은 도지욱이다. 어린 지욱이 아버지를 죽였다.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동생인 중명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았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욱을 지독히 미워했다. 어린 지욱은 영문 모를 미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끝내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살해했다. 경희는 죄 많은 사랑의 결과물인 지욱을 지켜야만 했기에 이 사건을 자신이 벌인 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중명 몰래 남편의 시신을 벽 안에 은폐하고 지욱에게도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나’라고 내내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욱은 결코 이 문제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엄마가 아빠를 죽인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엄마의 규칙’이었다. 지욱이 장성한 후에도 결코 어길 수 없는, 지금의 가족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규칙 말이다.
엄마가 만든 강력한 금기를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한 채 억눌려 있던 지욱은 경희의 치매 이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거짓의 힘’을 확인한다. 이전에 지욱이 쓴 《진실의 힘》이란 책은 그저 그런 뻔한 책으로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금기를 정면으로 다시 마주한 지욱이 새로이 쓴 책 《거짓의 힘》은 수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는다. 그렇다. 적어도 경희와 지욱 모자에게 가족을 지키는 힘은 진실이 아닌 거짓에서 나왔다. 거짓을 걷어내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중명)는 죽음으로 응징당한다.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는 ‘실종’과 ‘살인’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마다의 비밀이 있는 법이다. 티끌만 한 잘못도 없이 그저 번듯하게만 사는 가족?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에서 ‘실종’과 ‘살인’은 모든 가족이 가족의 테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감춰야하는 진실의 가장 극단적 형태일 뿐이다. 모든 가족은 크고 작은 거짓을 토대로 현재를 영위한다. ‘티끌만 한’ 가족의 잘못이라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감상해보자.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영화를 넘어 우리 가족의 테두리에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엄마의 왕국〉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111)
-5월 4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312)
-5월 8일 10:30 CGV전주고사 6관(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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