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5-29 10:14:44
[극장에서 본] H&M이었다가 발렌시아가
<슬픔의 삼각형,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모든 상들을 싹쓸어 갔지만, 후보군에 있었던 이름들도 쟁쟁했던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 감독 - 각본" 등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던 영화 <슬픔의 삼각형>.
굿즈의 출시 유무로 해당 영화의 기대치를 반영할 수는 없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으로 나오기도 했다. - 무려, 경쟁작은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였다.
영화는 "칼 - 야야"모델 커플을 비롯해 사회 주요 각개 인사들이 승선한 호화 크루즈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하면서 상황 또한 예상한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는데...
1. 팔은 휘는데, 공은 뻗어나간다.
제목만 보더라도,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2022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 부문의 수상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으니 어려움을 나타내는 척도 "예술성"이 한없이 높아만 보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본 작품 <슬픔의 삼각형>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테에 큰 어려움이 있는 영화가 아니지만, 직관적인 방향성은 도리어,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영화는 총 3개의 챕터로 구분 짓는데, 첫 번째부터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의 임금 차이와 남성 모델들이 성범죄에 노출된 환경을 언급하며 우리의 통상적인 인식을 뒤엎는다.
그런 점에서 "칼 - 야야"의 식당 말다툼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다.
가볍게 본다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싸움으로 볼 수 있겠지만 "돈 - 평등"이라는 바라보는 입장 차이는 뒤바뀐 성 역할을 넌지시 제시한다.
결국, 이런 관계는 2번째 챕터에서 한껏 더 노골적으로 비치지만 단연 재밌는 이야기는 마지막 3번째이다.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보면, 가장 아래에 있는 "생리적인 욕구"를 시작해 가장 맨 위에 있는 "자아실현"까지 피라미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 학자에 따라 순서대로 실현해야만 하는 것과 꼭 이루지 않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음으로 나눠져 있다.
그런 점에서 앞선 1, 2번째 이야기는 "자아실현"과 같은 높은 욕구의 이야기였다면, 마지막 3번째는 가장 아래에 깔려있는 "안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2.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이렇게만 본다면, "안전"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갖춰야만 '계급'이 발생하는 이론에만 기댄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영화는 좀 더 깊이 파고든다.
역사에서 "계급"이 발생한 것에는 농업이 발전하며, "잉여 생산물"의 발생으로 생겨난 규율 중 하나이다.
앞서 1번째와 2번째에선 "여성 - 남성 모델", 그리고 승선한 이들의 돈이 "잉여 생산물"이었듯이 마지막 3번째에서의 "잉여 생산물"은 어디에 해당될까?
앞서 말한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에서 "안전"을 포함한 생리적 욕구는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데, 이는 "피라미드"로 표현되는 계급도에서 "노동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위로 갈수록 권력자들은 소수로 나타나는데 3번째 이야기는 당연하게 이를 역전시켜 전개한다.
이처럼 영화는 "잉여 생산물"의 발생으로 계급이 만들어졌다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상황을 봐야 한다.
마치, 선거기간에만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의원들의 상황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 봉착하고 있을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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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섹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리뷰
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시놉시스]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견습 수녀 마리아는 원장 수녀의 권유로 해군 명문 집안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된다. 마리아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폰 트랩가의 일곱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점차 교감하게 되고, 엄격한 폰 트랩 대령 역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는 자신이 폰 트랩 대령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아이들의 곁을 떠나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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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e- a deer, a female deer, Ray- a drop of golden sun, Me- a name I call myself, Far- a long, long way to run …. 음악 시간에 모두가 한 번쯤 블러봤을 노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대령의 자식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며 부른 곡이다. 음악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 외에는 큰 줄거리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서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만나보았다.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뒤 폰 트랩 대령은 자식들은 군인들을 통솔하듯이 아이들을 양육한다. 마리아가 처음 가정교사로 폰 트랩 가에 방문을 한 날 건네는 인사만 봐도 굉장히 훈련이 잘된 군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본 마리아는 이러한 교육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며 폰 트랩 대령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빈으로 가 있었던 기간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7명의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어린아이들답게 자유롭게 뛰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양한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감성을 깨우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막무가내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가정교사라고 생각하며 마리아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폰 트랩 대령은 연인인 남작 부인에게 아이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로 안겨주고, 꼭 통제라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부드러움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마리아에게서 배워나간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외부 출장이 잦은 본인에게 최선은 아이들을 그저 통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폰 트랩 대령은 자신의 서툰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자신 역시 노래를 부르며 새롭게 다가가고, 마리아에게 무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이처럼 처음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극에 다양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첫째 딸 리즐과 랄프의 첫사랑 이야기, 마리아가 폰 트랩 대령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 등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은 ‘처음’과 처음이기에 겪는 혼란 속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었고, 문제 상황에 똑바로 직면하고 맞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전쟁 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견습 수녀 마리아가 해군 대령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결국 폰 트랩 대령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터라 그 시기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어서 놀랐고, 이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넘버들에서 찬란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나치 독일의 해군 장교로 재부임을 하게 되는데, 폰 트랩 대령은 이에 반발하고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치 독일의 군사들은 폰 트랩 저택에 매복해 있었고, 야반도주를 들키자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은 가족합창대회에 나가려고 길을 나서는 중이라는 변명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합창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았던 아름다운 선율을 오스트리아 국민과 나치 독일 군인 앞에서 선보인다. 이때 폰 트랩 일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칫 잘못하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참담하면서도 굉장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합창 점수 발표 집계를 위해 폰 트랩 일가는 마지막 인사라는 컨셉으로 모두에게 굿바이 송을 부른다. 집에서 있었던 파티 현장에서 불렀던 굿바이 송은 정말 즐거웠고, 이제 자러 간다는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곡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나의 땅이었고, 나의 조국이었던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로 변하면서 폰 트랩 일가의 생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같은 곡을 다른 상황에 넣어 그 감정의 간극을 크게 준 것이 시대의 아픔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그저 재밌고 귀여운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제천에서 다시 만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도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찬란한 노래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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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2 19:30
메가박스 제천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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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 우리가 스쳐간다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터에 현미경을 갖다대면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뭐가 될까? 이 영화가 된다.
영화 <히어>다.
들어가며 : 먼저 남기는 총평
제리 맥과이어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히어>는 포레스트검프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와 각본가인 에릭 로스가 협업을 했고 톰행크스도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래저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식상함과 실험의 밸런스에서 개인적으로는 호의 영역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덕후의 개취로는 메인메뉴보다 가니쉬가 맛있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드라마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그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적 실험기법들이 새로워서 스토리 외적으로 상상력이 구동되는 영화랄까. 특히, AI와 CG 기술로 구현한 젊은 톰행크스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관객인 나와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도 했으므로 이제는 영화의 주제가 AI기술을 통해서 와닿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자. 일단 줄거리부터다.
<히어>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 : 주인공은 집입니다만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이 주인공이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장소’다. 그 위로 백악기 시절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한 현재까지 한 공간에 살았던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그러니까 <히어>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자신의 초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을 일직선으로 전진시키는’ 법칙을 따르는 대신 자연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는 탄생과 소멸, 그 사이의 길흉화복을 기승전결로 따른다. 굳이 말하자면 옴니버스적 구성에 가깝달까. 그렇다보니 이야기 자체는 서스펜스도 없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을 ‘집(공간)’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은 어느 시대이건 반복된다는 전제 하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역사성(시간)’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 그 곳에 인물들이 생기는 느낌. 이런 이야기에서 인물들에게 캐릭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메인스토리라인에 등장하는 리차드의 인생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풍부하게 그려진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차드는 로즈와 알의 첫째 아들로, 화가를 꿈 꾸는 소년이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버지 밑에서 대공황을 겪으며 어른이 된 그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마가렛과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마가렛은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식으로 시부모의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시작한다. 그녀는 분가를 희망하지만 경기는 계속 나쁘다. 리차드는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노력하고 마가렛도 비서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장성한 그녀의 딸은 로펌에 들어가고 그 사이 로즈와 알은 쇠약해진다. 부모들이 캘리포니아의 요양원으로 떠난 뒤에야 비로소 마가렛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 사는 집’을 갖게 되지만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말이다. 잠시나마 리차드의 인생에 몰입했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원하는 걸 갖는 순간은 왜 이토록 찰나인가?
이 필연적인 질문 위로 리차드 이전에 이 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인생들이 겹쳐진다. 만나고 꿈꾸고 떠난다.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 같던 인물들의 삶은 사실 하나의 질문을 위한 반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나니 이 영화에 한 명의 주인공이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만 특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 집이 역사적으로 남은 유명 정치인(아마도 프랭클린)의 저택이 아니라 그의 앞집에 사는 평범한 가정집으로 설정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모두 꿈이 있다.
<히어>는 결국 심심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죽는 이야기다.
허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따뜻할까?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시간 내내 정박되어있던 카메라를 객석으로 돌려보자. 주인공이 된 우리의 인생은 카메라 너머 캐릭터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또 얼마나 같은가? 아무리 특별한 사건도 둘러보면 나만의 사건이 아니게 되는 보편의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인들의 삶이 평범하고 심심하기만 할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에 짧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희망과 좌절 그리고 꿈이 있었다. 각자의 객석의 앉은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마가렛의 50살 생일파티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 동안 미뤄왔던 꿈들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그것들을 이루는 것을 담아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결국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마세요.”
집은 언젠가 빈집이 되고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남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쯤은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맛있는 가니쉬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 :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없다.
<히어>에서 작품의 의미와 개성을 만드는 포인트는 역시 포인트다.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공룡이 등장했다 퇴장했던 것처럼 인류도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인물도 등장했다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메타포를 가장 잘 활용한 매체는 사실 연극이다. 전통적인 연극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무대 위에서 사건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은 매우 영화적이지만 프레임인-아웃이 마치 연극의 등퇴장처럼 느껴지는 효과도 백분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대는 정박되어 있고 객석도 고정되어 있으니 궁금하다고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럴거면 영화일 이유가 없다. 감정을 전달받아야 하는 씬은 어떻게 하지?
정답! 배우들이 다가온다.
<히어>의 싱글 카메라의 위치는 집안의 중심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거실과 부엌 사이의 어느 벽 또는 경계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의 외곽이다. 연극에선 인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수든 하수든 사이드로 내려오면 관객에게는 가까워지고 무대의 균형은 깨트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튀어나온 것에 눈과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그렇게 전달받는 정보는 자연히 귀기울이게 된다. <히어>는 클로즈업이 필요한 씬에서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 가까이로 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카메라 거치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감정 전달을 해냈다.
예컨대 로즈와 집주인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씬, 성장한 리차드(=젊은 톰행크스)가 등장하는 첫 씬, 원주민족의 여성(태초의 여성)의 시체를 운반하는 씬, 가족들의 추수감사절 식사씬, 분가를 원하는 싸움신 등에서 배우들의 동선은 무대의 외곽이자 카메라 가까이로 조정된다. 기발했다. 위치를 정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히어>에는 정말 카메라 무빙이 없나요?
사실 있다. 딱 한 번. 영화의 엔딩에 단 한번 카메라의 무빙이 있다. 치매로 기억을 잊어가는 로즈를 위해 리차드는 빈집에 그녀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는 집을 둘러보고 문득 기억을 찾는다. 집을 둘러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제껏 벽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의 시점은 마치 새의 시점처럼 집의 반대편을 처음으로 보게 되고 그녀의 회한에 젖은 표정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이 곳을 좋아했다’는 마가렛의 대사를 끝으로 창밖으로 빠져나간 카메라는 관객들 역시 이 영화라는 공간에서 퇴거시킨다. 시간이 되었다는 듯. 그리고 평범한 집들이 보이는 풍경에 고대의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담이지만 : 다 좋았냐?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가장 현재의 집주인이었던 아프리카계 가족들의 삶의 쓰임이 현대적 인물로서의 특성이 있기보다 오직 앞서 보여준 에피소드와 대응하는 위치에서 식민지 시대와 달리 개선된 인권, 달라진 생일파티 풍경, 코로나,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회적 차별 같은 걸 보여주는 기능으로만 쓰였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연의 공간이었던 곳에 원주민이 살게 되고 그곳이 어는 미국인 가정의 자산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역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이었다.
사실 영화예술이 모든 면에서 육각형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침략을 당해온 민족의 입장에선 침략을 해온 민족들의 영화는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점이 9개가 있는 영화에도 이 부분에선 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게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고도의 문화통치인가. 이거 뭐 답이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2 : 어떻게 찍은걸까?
<히어>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집 자체가 변화무쌍한 캐릭터 같다. 초기의 빈집부터 맥시멀리시트의 집까지 그 사이 가족구성원들의 변화와 크리스마스처럼 특수한 날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한 소품과 미술이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시간대 내에서도 밤과 낮에 따라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미묘한 변화들이 굉장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한 대를 어떻게 단일 장소, 단일 지점에 고정해서 찍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튜디오 집 내부에 두 개의 세트를 만들어서 한 세트에서 촬영하는 동안 다른 세트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식으로 찍었다고 한다. 방의 창문 뒤에 위치한 LED 벽은 배경이자 방의 조명기이기도 했다고.
총 촬영기간은 33일에 불과했지만 첫 촬영 몇 달전부터 블로킹을 해서 완벽한 타임라인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컷이나 다른 각도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모두 카메라 뒤로 돌아가서 테이크를 확인했다는 것도 대단하다. 알면알수록 어마어마한 제작진에 어마어마한 작업물이다.
여담이지만3 : 영화의 미래
<히어>의 장르는 휴먼드라마지만 여느 SF장르 영화와 견주어도 될만큼 화려한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나 CG야! 느낌은 전혀 없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동일 배우가 20대부터 80대까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이었을텐데 다운에이징 스킬,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 등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들도 20대였던 시절의 신체반응이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러프버전이나마 현장에서 바로 AI기술로 20대의 얼굴로 바뀐 자신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스토리에 완벽히 스며드는 기술이라니, 앞으로 펼쳐질 영화스토리텔링의 변화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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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부탁해 / 2001
나는 연말이 되면, 자꾸만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한 해의 마무리에는 꼭 당신들의 올해 끝얼굴을 함께 마주봐야 편안해지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가족이 아닌 오랜 친구들에게 무언가 복고하는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우리가 놓고 온 중요한 것이 자꾸만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걸 당신들의 얼굴을 통해 알고 싶어하지만, 몇 해를 보고 또 보아도 공허한 마음은 계속 커져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언지는 아무도 알려 하지도, 알 수도 없다. 정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인지, 나 혼자 길을 헤매는 건지도 영문 모를 일이다.
왜 난 이제 네 얼굴을 깜박깜박 들여다보면 더 슬퍼지는 걸까? 지금의 나는 몹시 충분한 사람인데도 당신들과 마주하고 나면 반토막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걸까? 즐겁고 공허한 양가적인 마음이 스무살 때부턴 계속 이어져왔다. 더 알고 싶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그리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꼭 손을 쥐고만 서 있었던.
“스물셋.. 아니 늦어도 스물 넷에는 꼭 이 영화를 봐야 해. 더 늦으면, 이 영화는 볼 수 없거든. 아무리 봐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걸?”
먼저 이 영화를 본 H언니가 내게 당부하며 말해주었다. 참. 세상에 그런 영화가 어디있어? 라는 생각과 호기심으로 가볍게 보았다. 언니의 말은 정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서른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후회했을거야, 언니. 해주와 지영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안간힘을 썼을거야.
<고양이를 부탁해>.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다섯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스물이 되어버린그녀들. 각자의 삶이 지고 있는 각기 다른 무게를 감당해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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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는 증권사의 계약직 직원이다. 이른 나이에 일찍이 좋은 직장에 취업한 해주는 자신의 직장을 자랑스러워 하며, 더욱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열심히 일한다. 상사의 무시, 성희롱 등을 견디면서도
해주는 꿋꿋이 해낸다.
해주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직장, 자신의 외모, 또 자신의 가정사 등. 어른이 된 해주는 더이상 친구들에게 예전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열심히 나아가기에 급급하다. 우리의 사회초년생들의모습과 다를 바 없는 해주. 너무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해주의 방식만이 이 사회에선 어린 우리가 살아남는방법일지도 모른다.
해주와 가장 친했던 지영. 지영은 집이 가난하다. 부모는 일찍이 여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여러 종이를 겹쳐 대충지은 듯한 집에서 사는 지영은 직장에서 잘린 후, 매일을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지영에게는 삶이 지옥이다. 자신의 가난이 끔찍히 싫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자꾸만 그녀를 단념시킨다.
그럼에도 꿈을 갖고 있는 그녀. 지영은 텍스타일 아트에 관심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 지영. 매일 같이한 칸씩 색을 칠해나간다.
또 다른 친구인 태희. 태희의 집은 큰 찜질방을 운영한다. 부유한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태희는 자신보다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매일 같이 장애인 봉사활동을 나가고, 그 봉사활동에서 만난 지체장애인의 시를 대신 써주며 사랑하기도 한다. 지나치는 작은 것에도 동정을 갖는 태희. 그런 그녀는 자신에게 올곧은 길만 요구하는 집안이 힘들다. 자꾸만 멀리 떠나고 싶어하는 태희.
그런 태희는 다섯 친구의 관계가 소중하다. 고등학생 때 친구였던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일하게 노력하는 인물이다. 자신만 이 관계에 항상 노력하고, 마음을 쏟는 게 서운하지만 결국 또 모든 걸 도맡아하고 있는 그녀. 그녀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어슬퍼진다.
해주: 미안하다. 이거 오늘까지 꼭 해야한다는데. 낸들 어쩌냐? 야. 내 생일이라서 안된다고 그럴 순 없잖아.
태희: 왜 맨날 내가 전해야 하는건데? 일일히 연락해서 약속 잡는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지 알아? 결국 나만 연락하잖아 매일.
해주의 생일로 오랜만에 모이게 된 다섯 친구들. 하나씩 해주에게 선물을 건넨다. 비류,온조는 뽕브라를. 태희는 립스틱. 세 친구들은 스무살에 걸맞는 선물을 준다. 지영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해주에게 준다. 자신이 열심히 손수 그린 텍스타일 포장지로감싼 상자에 담아.
선물이야. 이름은 티티야. 예쁘게 키워.
이 장면이 결국 친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장면이란 생각이 든다. 해주는 지영의 선물을 받고는 당장 포장지를 찢어버린다. 지영의 정성과 꿈이 담긴 텍스타일 그림은 해주에겐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짓. 돈도 안 되는 쓸모 없는 낙서에 불과하다. 그 찢어진 그림을 들어 지영에게 말을 거는 태희.
태희: 이거 네가 그린 그림 맞지? 야. 멋있는데? 근데 이거 하나하나 다 그리려면 조금 지루하겠다.
태희는 항상 버려지고 찢긴 것을 주워 다시 봐준다. 정확히는 봐주려고 노력하지만, 하지만 그 공감은 전적으로 상대를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저 씁쓸히 웃어보이는 지영. 친구들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다섯 중에서도 해주와 지영은 더욱 친했다. 같은 무리에서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듯, 두 사람은 그런 특별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후,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너무도 달라져버린 둘. 지영은 고등학생 때와 다를 것 없이 해주에게 진심이지만, 해주는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벌써 어른이 된걸까. 자꾸만 지영의 마음에 흠집을 내는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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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야 서지영. 진짜 놀랬다? 난 네가 나한테 고양이 선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영: 예쁘게 키워.
해주: 근데 너 요새 뭐해?
지영: 뭐 좀 생각하느라고. 그냥 있어.
해주: 생각? 무슨 생각?
지영: 유학 가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요즘 텍스타일 공부하는 사람들 외국으로 다들 나가잖아.
해주: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그러지말고, 이 언니가 알바 자리 소개해줄테니까 용돈이나 벌어서 학원이나다녀보던지 해. 어때?
(지영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해주: 야.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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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의 회사에 찾아온 지영. 자신이 준 고양이를 버려버린 해주이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믿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흘리듯 한말을 기억할리 없는 해주. 지영은 몇시간을 지하철 역에 앉아 기다린다. 너무도 달라진 둘의 관계.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이 똑같은 경험을 하며 같이 울고 웃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제는 서로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된 둘. 각자가 처한 환경은 이제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멀어져버리는 옛 친구들.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는 다르고, 서운함은 쌓여만 가고 편한 존재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주게 된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우리가, 사회의 발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등 뒤로 보이는 “좋은 여행, 영원한 추억”이라는 문구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 영화가 하는 말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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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래된 집이 가라앉기 시작한 지영. 지영이 처한 현실처럼 그녀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점점 좁아지고 설 곳이 없어지는 지영. 여기저기 일을 구해보다 태희에게 결국 돈을 빌리게 된다.
그런 지영의 부탁에 자신의 전단지 알바를 반 나눠주곤
돈까지 빌려주는 태희.
태희: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아 맞다. 까먹기 전에. 여기 돈.
지영: 고마워. 언제까지 주면 돼?
태희: 그냥. 돈 생기면 갚아.
근데 어디에 쓰려 그래?
지영: 그냥 좀 필요해서.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좀 마.
태희: 네가 전화해서.. 의외였다?
지영: 그래? 내가 그렇게 전화를 안했나?
태희: 우리 모일 때는 맨날 내가 먼저 연락하지. 네가 먼저 연락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졸업하니까 애들이랑 멀어지는거. 그게 젤로 섭섭하다?
학교 다닐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매일 만나다가 떨어져 지내니까 이젠 만나도 별로 할 얘기도 없고.
개인적으로 태희의 이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매일 보던 사이가, 단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우리들은 이렇게 변해버리는 건가? 라는 서운함을 스무살 때 너무 큰 혼란으로 겪었다. 서로를 낱낱이 알던 때와는 달리, 몇 달만에 만나 간간히 그동안의 일상을 전하는 것은 꽤 우리의 졸업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반갑고 자꾸만 텅 비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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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 길에서 노숙자를 만난 지영과 태희.
지영: 아까 그 거지 말이야. 난 솔직히 그렇게 될까봐 좀 무섭다?
태희: 글쎄, 난 무섭단 생각은 안 해봤고. 가끔 그런 사람들 보면 궁금해서 따라가보고 싶기는 하다? 매일 뭐하면서 지내는지. 아무런 미련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지낼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지영: 그걸 자유라 그러니? 난 그렇게 생각 안해. 그렇게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태희는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선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입장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건그녀가 그런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부족함 없이 자란 태희는 거지, 외국인 노동자들, 고기잡이 배를 보며 “자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영은 가난을 안다. 그것이 자유가 아닌 보이지 않는 감옥이라는 현실의 쓴 맛을 직접 겪어본 인물이다. 지영에게 그것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 그 자체이기에, 자꾸만 지영은 걱정한다. 당장 집이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저러다무슨 일을 당하면 어떡하지? 하고서 말이다.
결국 마음뿐인 연민을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 가지고 남은 여유로 남들을 돌보는이들과, 진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을 아는 이의 차이가 무언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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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또 다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이번에도 역시 태희의 제안으로 약속은 진행된다. 지영은 해주와의 저번 일로 아직마음이 상해 더이상 해주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건 상관 없이, 그저 지기와 가까운 곳에서 효율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해주. 각 인물들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지영: 꼭 그래야해?
태희: 한 달에 한번씩은 꼭 만나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우정에 금이 안가지.
해주: 우정? 참.
비류, 온조: 아. 그럼 말이 또 달라지지.
해주: 근데 언제 인천까지 가니. 니네가 서울로 오면 안돼?
비류, 온조: 하여튼 얘는 꼭 지 생각만 한다니까.
지영: 난 해주한테 가는 거면 안 가.
태희: 우리 넷이 서울을 가는게 낫니. 너 하나가 인천을 오는 게 낫니?
해주: 너희 넷이 서울로 오는거 !
결국 인천에서 만난 다섯 친구들. 시작부터 지영은 해주와 말도 섞지 않으며 둘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태희: 야. 너 지영이한테 왜 그래 자꾸. 학교 다닐 땐 너네 둘이 제일 친한 사이였잖아.
해주: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현재가 중요하지.
태희: 현재? 그래서, 현재 너한테 중요한 게 뭐야?
해주: 옷이다. 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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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로가 소중하지만, 서로가 가장 중요하진 않게 되어버린 우리들. 이건 결국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스물을 겪은 청춘들이 알게 된 씁쓸함일 것이다. 다섯 친구들이 인천에서 쇼핑을 하며 각자 둘러보는 장면은 결국 아무리 친구여도, 자신의 인생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뜻인 것처럼 느껴져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해주와 지영이, 태희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꿈으로 가득차 멀리 떠나버리기도, 현실에 안주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안에 종종 만나 서로를 바라봐주는 따듯함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내 나이는 어쩌면 가장 혼란스럽고, 바쁘며 치열한 나이인지도 모른다. 졸업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 속에 걸쳐있는 우리들. 앞으로도 우리가 더 멀어진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겠지만, 문득 생각나면 서슴없이 연락하고 언제나열여덟처럼 깔깔대며 철없는 소리만 하는 우리이길 바란다. 다들 나와의 여행을 영원한 추억처럼 계속한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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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가 지영에게 한 말이 자꾸만 남는다.
태희: 지영아. 나는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 그래도 니편이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해. 나 너 믿어.
가끔은 해주였고, 또 가끔은 지영이었으며 종종 태희였던 모든 방황하는 스물에게 보내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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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 우먼>의 갤 가돗,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성명으로 논란!
이스라엘 출생으로, 이스라엘 방위군 의무병으로 2년간 복무한 <원더 우먼>의 주인공 갤 가돗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폭력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해
일부 팬들의 반발을 샀다고 해외 매체 버라이어티(Variety)가 전했다.
갤 가돗은 5월 12일 트위터를 통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제 조국은 전쟁 중입니다.”라고 밝혔다.
“저는 제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악순환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유롭고 안전한 국가로 살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이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상상할 수 없는 적대감이 종식되기를 기도하며,
우리 지도자들이 해결책을 찾아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더 좋은 날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갤 가돗의 성명은 즉시 화제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팔레스타인을 이름으로 지칭하는 대신 ‘이웃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지지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은 원더 우먼 역할을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원더 우먼은 작년 말 <원더 우먼 1984>에서 등장했다.
버라이어티 매체는 갤 가돗이 이스라엘 방위군으로 함께 한 이력과 함께,
워너브라더스와 DC코믹스 프랜차이즈의 핵심 주인공이자 <저스티스 리그>의 핵심 주연 중 한 명인 원더우먼 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A급 위상을 고려할 때 많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레바논 정부는 갤 가돗의 개입과 이스라엘과의 전쟁 등을 이유로 <원더 우먼>의 개봉을 금지한 바 있다.
현재 갤 가돗과 워너 브라더스 측은 버라이어티의 코멘트 요청에 답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사흘째 무력충돌이 일어난 상태이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여러 차례 공습을 감행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폭력사태가 더욱 고조되었다.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경찰 충돌로 촉발한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자 국제사회는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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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2월의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넷플릭스 <지금 학교 우리는> 박스오피스 예측(결과)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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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해적: 도깨비 깃발>(-)
▶<해적: 도깨비 깃발>이 설 연휴에 이어 계속해서 2주 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말동안 (2월 4일~6일) 관객 수 16만 482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0만명을 돌파, 현재 108만 6274명입니다.
지난 주에는 박스오피스에 진입한 신작 없이 설 연휴 순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할리우드 대작
<나일 강의 죽음>, <355>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박스오피스 1위를 계속 차지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2위. <킹메이커>(-)
▶이번 주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킹메이커>입니다.
주말동안 (4일~6일) 주말 관객 수 10만 8906명을 동원했고, 총 누적 관객 수는 61만 6497명입니다.
<해적: 도깨빗 깃발>과 같은 날 개봉한 국내 기대작이었는데 다소 아쉬운 스코어를 보이고 있습니다.
<킹메이커> 역시 이번 주는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함에 따라 다소 순위 유지는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3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입니다.
같은 기간(4~6일)동안 주말 관객 수 4만 5304명을 동원했으며, 충 누적 관객 수는 744만 9338명입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정말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어느 덧 누적 관객 수 75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요.
지금처럼 꾸준히 관객 동원을 한다면 750만명 돌파도 가능하리라 짐작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86회 예측 이벤트는 화제의 작품인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입니다.
<지금 학교 우리는> 1월 28일 공개 차주 후에 과연 총 몇 개 국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예측해보는 이벤트인데요.
그럼 제86회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지금 우리 학교는> 이벤트에"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위의 표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씨네픽 제 86회 <지금 우리 학교는> 이벤트에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
과연 몇 개국에서 1위를 할지 예측해주셨습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의 평균 수치는 총 28개국 1위였습니다. 과연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요?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 87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위. <씽2게더>(-)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씽2게더>입니다.
<씽2게더>는 주말 관객 수 3만명을 기록, 총 누적 관객 수는 82만 8908명을 기록했습니다.
<씽2게더>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같이 꾸준한 관객 동원을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상위권의 작품들보다는 오히려 좌석 판매율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것은 아직도 <씽2게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위. <극장판 안녕 자두야: 제주도의 비밀>(-)
▶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극장판 안녕 자두야: 제주도의 비밀>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1만 8426여명의 관객 수, 총 누적 관객 수는 8만 9109명을 기록했습니다.
<씽2게더>와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인데요.
<씽2게더>와 약간 작품의 결은 달리 하지만 국내 어린이들의 취향에는 오히려 더 잘맞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 연휴, 어린이를 동반한 꾸준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새롭게 진입한 작품 <Jackass Forever> 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4~6일) 북미기준 $23,500,000 (한화 약 281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Jackass Forever>는 북미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전설적인 TV쇼인데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심지어 영화마저도 대히트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액션 코미디 다큐멘터리라는 2000년 10월 1일 MTV에서 시작한 리얼리티 쇼부터 출발했으며,
기상천외한 리얼리티 쇼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국내에서도 3월 개봉 예정인 <Moonfall>입니다.
영화 <Moonfall>은 '롤랜드 에머리히' 연출, '할리 베리', '패트릭 윌슨' 주연의 지구에 달이 추락한다는 소재로 한 영화로
달이 궤도를 벗어나 지구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재난 속 인류의 마지막 생존기를 다룬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2월 4일 ~ 2022년 2월 6일)
1. <Jackass Forever> 2350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2. <문폴> 1000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3.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960만 달러 (누적 7억 4895만 달러)
4. <스크림> 473만 달러 (누적 6894만 달러)
5. <씽2게더> 417만 달러 (누적 1억 3957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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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씨네픽은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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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개봉일 : 2009.03.26 (한국 기준)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데이빗 크로스, 제넷 하인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한다. 그리고 1958년의 비 내리던 어느 날, 서독 노이슈타드에서 한 소년과 여성의 운명이 시작된다. 강렬한 첫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쉼 없이 서로를 탐하고, 갈망했다. 하지만 오래갈 순 없는 운명이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이며, 사회화의 부재로 나치 시절 실수를 저지른 한 여성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실망감에 흠뻑 젖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 찬 시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 사람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지워낼 수 없는 죄와 그에 대한 실망감. 허공에 붕 뜬 채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구겨진 백지 같은 한나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를 저 먼 곳으로 밀어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는 한나,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며 사랑을 갈망했던 소년 마이클. 두 사람은 서로의 대각선에 서서 상대의 마음을 훔쳐보기 위해 소리 없이 시선을 돌리지만 그 사이엔 거의 다 닫혀버린 문이, 실루엣만 간신히 비치는 커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말할 수 없던 격동적인 사랑은 시간과 무지 속에 묻혀버린다. 무조건 안타깝다고 이야기할 수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한나의 시간과 오래도록 그것을 앓아온 소년의 마음속에서 풍기는 복잡한 묵은 내에 마음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필 또 어두침침한 비 오는 날에 보는 바람에 더욱 침침한 기분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맑은 날 보단 어둡거나 비 오는 날에 보는 걸 추천한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시놉시스
10대 소년 마이클은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던 한나는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한나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던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어 8년 후 우연히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보게 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나와 또다시 20년의 이별을 맞아야만 한다. 그 후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내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랑은 너무나 큰 비밀을 감추고 있었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비가 내리던 날, 갑작스러운 구토감과 통증이 쫄딱 젖은 소년을 덮친다. 어쩔 줄 모르는 소년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소년과 달리 충분히 농익어 보이는 여성은 침착하게 소년을 도와준다. 소년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성에게 빠지게 되고, ‘감사의 표시’라는 핑계를 들고 여성의 집으로 향한다. 여성은 아주 여리고 어린 소년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속옷을 다리고 있다.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무심한 행동을 통해 소년의 마음속에서 끓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려 유도하고 있는 건지.. 소년은 쉽게 감을 잡지 못한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여성은 소년의 마음이 벅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소년의 뒤로 다가간다. 그렇게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사랑의 감정은 한도 없이 타오른다.
소년의 이름은 마이클, 여성의 이름은 한나. 두 사람은 몇 번 더 만남을 가지고 나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새롭게 인지하는 순간, 두 사람의 사이는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 정신적인 사랑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네가 읽어줘. 잘 하더라. 책 읽는 거.”
마이클과 한나는 하루의 끝에서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는다. 한나는 마이클의 품에 안겨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며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한나를 안고 있는 마이클은 첫사랑이란 감정과 잘하는 것 하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하나씩 알아간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흘낏 훔쳐보는 것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얽을 일만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대부분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마이클은 15살 소년, 한나는 30대 여성이다. 마이클은 한나가 사랑을 표현해 주길 바라고, 한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어느 날 한나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고, 마이클은 배신감과 슬픔을 마음에 품은 채 어른이 된다. 법대생이 된 마이클 앞에 첫사랑 그녀가 다시 나타난다. 저 멀리 울타리 너머에 앉아있는 피의자로.
한나는 20여 년 전 수감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법정에 앉게 된다. 수감소에서 수감자를 관리하고, 그들을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일을 했던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아우슈비츠로 가게 된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마이클은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죠?”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한나는 “그건 내 업무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한나는 다른 피의자들의 모략과 책임 전가로 인해 구석으로 몰린다. 하지만 변명할 증거가 딱히 없기도 했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장 큰 살인죄를 홀로 뒤집어쓰게 된다. 마이클은 여러 상황을 조합해 한나가 문맹인 걸 눈치챘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진실을 밝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첫사랑과 또다시 이별하게 된 마이클은 한나를 잊고 자신의 삶을 산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한나와 이별한 이후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이클은 아내와 이혼을 선택하게 되고, 하나뿐인 딸과도 어색한 사이를 유지한다. 그는 짐을 정리하던 중 한나에게 읽어줬던 오디세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녹음해 한나에게 보내준다.
숫자와 점이 찍힌 여러 개의 테이프가 담긴 박스가 한나에게 도착하고, 한나는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공부한다. 한나는 글씨를 익혀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마이클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어른이 된 마이클과 중장년층에 접어든 한나. 한나는 여전히 마이클을 Kid라고 부르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 한나의 가석방이 결정됐을 때쯤이었다. 교도소 내 식당에 앉아있는 한나의 앞에 마이클이 앉는다. 한나는 반가움에 손을 내밀지만 마이클은 한나의 손을 잡지 않는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무언가 배웠느냐고 묻는다. 한나는 글을 배웠다고 답한다.
마이클은 법정에 앉아있는 한나를 보고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수감자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보낸 감시원이라니. 거기에 부끄럼 하나 없이 당당하게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은 마이클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마이클의 순수한 첫사랑은 그쯤에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마이클은 과거를 회상하고 책을 읽어 보내며 한나가 자신의 죄를 깨닫길 바랐고, 한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한나는 뒤늦게 배우게 된 글들이 가득 적혀있는 책들을 밟고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는 글을 배우며 자신이 행한 행동의 그릇됨을 깨닫게 되었고, 교도소를 떠나 새로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가석방을 앞두고 있었지만 짐을 하나도 챙기지 않은 그녀의 방안엔 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근데 이젠 끝이겠지.” 마이클이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쯤, 한나도 마이클의 마음을 눈치챈 듯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과 한나는 더 이상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한다.
“감시원에 지원한 게 죄인가요?”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는 완전한 악인인 걸까? 그녀는 악인이자 필요 이상으로 순수했던, 사회에 휩쓸린 어른이었다. 마이클이 성인이 되어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 강단에 선 교수님이 “법이란 편협한 거야”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법과 법조인들은 한나를 악인으로 지목한다. 그녀가 감시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지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어떤 일에 지원했고,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다.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나는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에도 별다른 뜻과 생각 없이 전차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일만 하는, 겉모습만 커버린 어른이었다. 글씨도 깨우치지 못했으며 그릇됨의 정의조차 몰랐던 사람. 그게 바로 한나였다.
한나가 죽고 난 후, 마이클은 한나가 모아둔 돈과 틴케이스를 들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피해자는 한나의 틴케이스를 보며 수용소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나에게도 보물을 담아둔 틴케이스가 있었다고 말하던 그녀는 케이스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틴케이스는 한 소녀의 어린 시절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한나는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틴케이스에 소중한 것들을 모아 간직하고 있었다. 이 행동은 그녀가 어른으로서 필요 이상의 순수함을 갖고 있었음을, 그녀가 백치에 가까운 상태였음을 의미한다. 한나는 정말 그냥 시켜서 했다- 그뿐이었다.
마이클은 한나를 용서하는 것 같아 돈은 받을 수 없다는 피해자의 말에 돈을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한나가 글을 공부하고 후회하며 모아온 작은 돈이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된다면 누군가가 글을 깨우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한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뜻과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마이클은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도 괜찮겠냐며 피해자의 뜻을 묻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한나의 순수함과 소녀 시절의 시간을 담은 틴케이스는 피해자의 가족사진 옆에 놓인다.
나는 한나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녀 또한 백치와 무지함이 만든 비극의 피해자였음을 인정한다. 한나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 목숨을 끊고, 마이클의 첫사랑은 완전히 막을 내린다. 마이클은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딸에게 한나를 소개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소년의 삶의 한순간을 뒤흔들었던 첫사랑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과 함께 땅에 묻힌다. 이 영화를 보며 한숨을 몇 번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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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