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6-07 22:00:22
[극장에서 본] 분업화와 전문화
범죄도시3, 2023
작년 22년에 개봉해 1,269만명을 기록한 <범죄도시 2>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넘겼다.
이에 해당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 "마동석"은 "7편까지 예정되었다"라는 말과 함께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리즈를 예고했다.
하지만, 시리즈에서 3편은 가장 어려운 숫자이다. - 2편이 전작에서 가져온 장점만 확대한다고 해도 3편부터는 정체성이 진부함으로 바뀔 테니까!
일단, 이번 <범죄도시3>는 개봉 일주일 만에 600만명을 넘기는 데에 성공했다. - 이미, 4편의 촬영은 끝났고 5·6편의 각본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1. 잘 짜인 공식대로 움직이는 깔끔함
앞서 말했듯이 시리즈에 있어 가장 어려운 숫자는 '2'가 아니라 '3'으로 신선하게 여겼던 요소들이 속편으로 갈수록 진부하게 느껴짐을 말한다.
물론, 장점 혹은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에 대한 인내심은 2편까지가 한계이다.
그래서, 많은 시리즈들이 3편에서 변화를 시도하는데 <범죄도시3>도 "석도"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의 교체와 세부적인 설정들에 변화들이 엿보인다.
그중에서 액션에서 이런 모습들이 엿보이는데, 영화에서 "석도"의 출신에 "20살까지 복싱을 했다"라는 설정을 부여한다.
이외에도 빌런으로 등장하는 "리키"는 "일본도"를 가져오는 등. 액션 스타일을 고정시킨다.
이는 전작들에서 선보인 처절한 느낌의 "브롤러(Brawler)"스타일 일명, 막싸움과는 다른 깔끔한 액션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캐릭터들에서도 "초롱이"처럼 웃음만을 주는 캐릭터들의 활약까지 <범죄도시3>는 군더더기가 없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해주니 영화는 재밌게 돌아가지만 전작들만큼의 인상을 주진 못하는 이유는 뭘까?
흔히, '누가 누가 더 잘하나?'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고민은 많은 스포츠 팬들이라면 해봤을 생각거리다.
하지만, 야구를 비롯해 초창기 프로 스포츠의 분위기는 "나오는 선수만 나온다"라는 분업화가 되지 않았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짧은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은퇴를 선언했지만, 스타성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야구만 하더라도, 한 명의 투수가 경기를 끝내는 "완투"를 기록한 선수들의 대부분 상위권들은 80·90년대에 한정되었다. - 최근 162승으로 단독 2위가 된 "양현종"은 13번으로 77위에 이름을 올렸다.
2. 낭만을 위하여...
실력에서는 편차가 있을지는 몰라도, 공식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실례로, 1편에서의 "장이수"는 "장첸"에게 희생당하는 빌런으로 소비되나 퇴장하기 전까지 "마석도"와 함께 보여준 티키타카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가능성은 2편에서의 코믹스러운 조연으로 포지션 변경까지 소화하며 시리즈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되었다.
앞서 말한 군더더기 없이 잘 짜인 공식은 깔끔하나 캐릭터의 한계를 명확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를 택한 이유에는 시리즈가 더해갈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쌓여가는 주인공 캐릭터의 서사에 맞추기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설명이 길어지고 지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초롱이"와 같이 역할이 한정된 분량에만 그칠뿐더러 무엇보다 포스터에 쓰여있는 "주성철"의 능력에 "지능"을 언급하는 데에 긴 서사를 부여하지를 않았다.
이런 기조에서 '메인 빌런'의 자리를 2명으로 나뉘었고,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마석도"의 금고 장면까지 '매력을 뽐낼 수 있을지?'부터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 tmi. 1 - 쿠키 영상은 1개로 마스코트의 등장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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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셰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이 글은 영화 [비상선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선생님은 내가 본 영화에 10점을 준 사람의 평가를 보고 에이 그건 아니지. 라며 1점을 주는 행동 또한 남의 의견을 신경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영화 [포제서;Posessor] GV)
취향이란 것에는 옳고 그름도, 급의 차이도 없다고는 하지만 영화 티켓 값이 만 오천 원에 육박하는 데다 이례 없는 대작 파티가 펼쳐지고 있는 현재.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원하는 관객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 가능하다.
2022년 여름 4 대작 중 세 번째 영화인 [비상선언]은 이미 시사회를 통해 후반부의 진행이 다소 아쉽다는 평이 돌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예비 관객들 조차 소문을 통해 자신들의 선택을 조금은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압도한다는 말로도 부족하다는 전반부를 깎아먹을 정도로 후반부가 그렇게 나쁜지. 그리고 나쁘다면 얼마나, 어떤 점이 나쁜지.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고 온 관객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그 의견이 전문가의 의견이건 한 개인의 의견이건, 혹은 천만 관객 이상의 생각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보고 싶었던 영화는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작품을 놓친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 한 번을 잃는 것과 같으므로.
전반전;클리셰를 영리하게 피하며 선제골을 넣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박해일 배우의 모습이 보였음.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단지 한국 영화계에서만 낯설었을 뿐.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이미 익숙한 항공 테러, 혹은 재난 영화를 만들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뻔한 것"들을 쳐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비상선언]은 이런 장르물에서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을 아주 조금씩 비틀어 기시감을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다.
악역인 진석에게는 서사보다는 순도 높은 사이코패스 설정을 꼭 쥐어주었고. 이 테러의 목적이 돈도 인질도 누군가의 석방도 아닌 그저 모두의 죽음임을 암시하며, 타협점이 전혀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높였다.
또한 대머리에 하얀 민소매를 즐겨 입고 군번줄을 걸치고 있을 것만 같은 퇴역한 특수부대 출신, 혹은 무엇이든 다 아는 방법이 있는 진실의 방으로 테러범을 데려갈 것만 같은 게임 체인저도 애초에 이 비행에 합류시키지도 않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비행기 안의 나머지 탑승객들이다.
그들은 이 참담한 와중에도 누구 하나 남 탓을 하지 않으며.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치다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참고 1). 영화 안에서 성가진 긴장감을 유발하는 파워 게임이나 자원 쟁탈전도 벌이지 않는다.
배정받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간이 테이블까지 착실하게 내려놓은 채 입도 뻥끗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승객들 덕분에. 영화는 삶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버린 테러범이 총 한 자루, 큰 고함 한 번 없이 비행기를 탈취한 그 상황에 모든 포커스를 둘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마련된 소중한 찬스는 영화 전반부 내내 유효 골을 터뜨린다. 눈에 날아와 박히는 모든 장면들이 주는 압도감은 탄탄한 압박이 되어 그 어떤 잡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시간으로 관객들을 꽁꽁 묶어둔다.
후반전;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클리셰에게 동점골 허용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후반부의 "신파"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의 슬픔의 강도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어느 정도 있을 법한 정도이고, 또 가족과의 마지막을 고하는 장면이니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상 그 모든 부분들이 기괴하다, 혹은 느닷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과연 이 껄끄러움의 원천이 무엇인지 조용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영화의 원만한 흐름과 긴장감을 위해 서사는커녕 자신의 입을 기꺼이 다물었던 다수인 탑승객들에게 너무 급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줘 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당신들의 차례입니다.라는 의도가 아닌, 시간이 좀 남았는데 어떻게라도 좀 해봐요.라는 투의 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은 영화의 후반부를 매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그 산만함은 머릿속에서 지금 이거 날 울리려는 거지?라는 반감이 고개를 불쑥 들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과격하다 못해 무자비하게 느껴질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던 상대방에게서 아주 조금씩 허점이 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조금씩 무너지는 수비 진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했다고 자부했고. 따돌렸다고 믿었던 클리셰는 결국 외통수처럼 좋은 결말로 가는 길목을 막아 선 최후의 수비수가 되어있었고. 이 명성도, 실력도, 소문도 자자한 선수는 결국 이번 경기에서도 보기 좋게 한 골을 넣고야 말았다.
모든 장르적 규칙을 파괴했다고 자부하는 전반부의 위엄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치욕적인 골로 기록될 것이다.
인저리 타임;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인한 어이없는 실축.
사진 출처:다음 영화
과연 이 영화가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다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 전술의 기본은 책임감이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아예 장관 숙희(전도연)의 입을 빌어 책임을 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공무원이라는 대사까지 내뱉는다. 또한 인호(송강호)는 직업적인, 그리고 가장으로의 책임감을 둘 다 내버리지 않고 허리춤에 찬 채 죽어라 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자신의 전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재혁(이병헌)의 만회 비행이 성공해 안착하는 장면으로 비유하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10분에 한 번씩 바람 방향이 바뀌어 안전한 착륙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두 명의 사상자를 내는 바람에 조종간을 놓게 만들었던 그때를 완벽하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책임감을 통해 놓치지 않았다고. 그러니 이 플레이는 꽤나 일관되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혹은 결과는 옳았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에 있다. 영화가 신파를 선택한 것이 문제가 아닌, 신파를 선택하는 과정이 잘못되었음이 결말에 절실히 드러난다. 재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이 경기의 설계자는 재혁에게는 잊고 싶었을 그때의 결정보다 더 형편없는 결정을 내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치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처럼.
과연 이 선택이 KI501 항공편이 전반부에 겪은 생화학 테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영화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법한 항공 재난 영화의 앞부분을 만들어 낸 비행기의 탑승객들은.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선택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들에게 그런 선택지를 들이밀지 않았다. 우리는 책임졌다.라는 결말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했다.
마치면서
세 사람이 도둑질을 했다.
한 사람은 도둑질이 나쁜 것인지 모르고 했고
한 사람은 도둑질이 나쁜지 알면서도 했으며
한 사람은 도둑질이 궁금해서 했다고 했다.
이 중 가장 나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도둑질이 나쁜 것인지 모르고 한 사람이라 했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조차 없는 무지함 만큼 나쁜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 그럴 의도로 만든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비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나쁜 결말이 되어버렸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부가 주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또한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박해일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한 임시완의 연기는 매서움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두 번 다시 이런 캐스팅을 볼 수 없을 것처럼 호화로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많은 것을 관객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1
물론 빌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른 재난 영화들에 나오는 인물들에 비하면 귀여울 지경이며, 오히려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정상 범위의 반응 중 하나 정도로 보인다. 솔직히 저 정도면 나도 이길 수 있다. 정도?
[이 글의 TMI]
1. 오래간만에 야식 먹고 글 쓰고 자려고 했는데 왜 벌써 새벽 다섯 시지.
2. 하지만 후회는 없다.
3. 다다음주 휴가다!!!!!
[수다쟁이의 또 다른 TMI]
여담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생화학 테러(바이러스)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두 배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과연 저 영화 속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인지.(혹은 어떤 바이러스에 가까울지) 그리고 묘사하고 있는 증상이나 전염되는 방법 등의 고증이 얼마나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느라 박진감을 넘어서 피부로 와닿다 못해, 영화 내내 머리에서 김이 슉슉 뽑아져 나오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아 물론 이 영화를 보신 우리 연구실 리더분에 의해 다음 주 저널 클럽에서 영화에 대한 토론을 (공부해와서) 하기로 했다.
....?? 왜 나만 새드 엔딩인데. 나도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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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으로 살아나는 부녀의 시간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배리 젠킨스 감독이 제작에 나서고 샬롯 웰스 감독이 본인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으로, 2022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전 세계 유수 영화제 56개 부문 수상, 154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애프터썬입니다. 성인이 된 주인공 소피가 낡은 캠코더에 담긴 2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한 빛바랜 튀르키예 여행 영상들을 보며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부녀간의 추억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억을 곱씹어 그리워하는 통속적인 구조를 그리기보다 그때 여행에서 자신이 못 보았던 모습을 돌이켜보며 묘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여기서 비롯된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이 깃든 미묘함은 극 후반부까지 이어지며 관객에게 평범하지만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주죠. 그렇기에 지루할지도, 특별할지도 모르는 추억 여행은 아마 보는 분들마다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맞지?”
어느 날, 소피는 꿈속에서 아빠를 만나고 다음날 아침에 자신이 11살 때 아빠와 함께 떠난 튀르키예 여행지에서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꺼냅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떠난 부녀의 여행, 버스를 타고 어느 휴양지 리조트로 향해 일주일간 함께한 여정. 밥을 먹고, 수영도 하며, 포켓볼을 치거나 오토바이 게임도 했던 여름날의 행복해했던 추억을 천천히 돌이켜봅니다.
예고편│Trailer
원제: Aftersun│감독·각본: 샬롯 웰스
출연진: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실리아 롤슨-홀 외 多
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101분
국가: 영국, 미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왓챠피디아 예상 3.4, 로튼토마토 신선도 96% 팝콘 82%, IMDB 7.8, 메타 스코어 95점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상영 일정: 개봉일 2023년 2월 1일
수상 내역: 48회 LA 비평가 협회상(편집상), 8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신인작품상), 57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감독상), 48회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그랑프리, 국제 비평가 상), 39회 뮌헨 국제영화제(시네비전상) 등 유수 영화제 56개 부문 수상, 154개 부문 후보
“가장 사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의 특별함”
성인이 된 한 여성이 20여 년 전 아빠와 함께 떠났던 여행의 추억을 꺼내보는 내용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에 두고 있어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합니다. 시간이 지나 사회의 경험을 쌓은 지금에 다시 떠올려보려 보니 각별한 의미를 가진 추억이 되었다는 전개는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그림자를 알아간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 봤을 삶의 이야기지요. 그렇게 일주일 간의 튀르키예의 한 리조트에서 지내며 보낸 아주 사사로울 수 있는 순간이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확장됩니다. 소피의 기억과 상상한 장면들은 일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른,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어린 소녀는 훨씬 더 성숙했었기에 그때 느낀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행복을 그리워하거나 지금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아 어떤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클럽 조명 사이로 어른이 된 딸과 과거 아버지 모습이 몇 번 교차할 뿐 오롯이 어린 11살의 모습만이 스크린에 전달되죠.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에 잠시쯤 쉬어갈 수 있는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혼재된 시간의 기억에서 잠시나마 자신에게 빛이 되어준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임을 상징하는 것인 굉장히 모호한 부분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상상 속 시끄러운 클럽을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찾아오는 여백은 그저 진실한 마음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이해하려 했던 부녀의 이야기, 그렇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영화 애프터썬은 가타부타 할 자초지종은 생략하고 오로지 어린 시절 여름날의 애틋하고 따뜻한 기억을 담는데 집중합니다. ‘노멀 피플’로 멋진 모습을 선보인 폴 메스칼은 캘럼 역으로, 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프랭키 코리오는 소피 역으로 그러한 부녀의 온기를 세세한 표현으로 전합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받았던 사랑의 소중함을 헤아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빛바랜 영상을 보며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그녀의 추억처럼 뒤늦은 깨달음을 함께하는 묘한 분위기를 말입니다. 감춰진 불안감이 무엇인지 느끼고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며 더 깊어지는 애틋함일지도 모르는 그러한 평범한 기분, 감독이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잔잔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한 그때의 감정, 그러나 일반적으로 관객에게 어디까지 전해질지는 의문이 드네요. :)
한 줄 평 : 빛바랜 영상, 되살아나는 기억, 스며드는 애틋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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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스 어픈 어 타임 타미 페이 인 아메리카
착하게 사는게 맞나? 아니면 그냥 나쁜 놈으로 죽는게 맞나? 인생에 정답은 없는거 나도 알지. 그런데 사실 살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진짜 100:0의 과실이 나에게 벌어졌다고 치자. 그럼 상대에게 욕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멀쩡히 걸어가는데 갑자기 누가 주먹질을 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다. 그럴 때 참으면 그게 더 신기하다. 이런거 생각하면 적당히 나쁜 놈이 좋은게 아닐까 싶다. 이 검은 머리 짐승을 다 참고 이해해주면 내 속만 열불난다. 근데 또 악하게 사는건 별로인 것 같다. 어제 엄마랑 TV보다 오은영 박사가 '남을 지적하는 것은 우월감, 그러니까 열등감에 의한 것'이란 말을 하시는 걸 봤다. 내가 열등감에 찌든 놈이라는 걸 드러내기는 당연히 싫으니 그냥 좋은게 좋은거다~ 식으로 넘기는게 생을 사는 현명한 방식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삶은 A거나 B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그게 방법이 다 있으면 다 그쪽만 따라 갔을 것이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역시 내가 힘들 때 기댈 사람만 있으면 이 세상은 내가 나쁘건 좋건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에 사람들 등쳐먹으며 사는건 좀 아니다. 사람 신뢰라는 것이 정말 큰 의미일 때가 있다. 그 신뢰는 힘들 때 기댈 존재가 되서 보내는 것도 있다. 근데 그걸 이용해서 착한 척을 하며 남 등골 뽑아먹으면 그게 뭔 의미가 있어?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들통날 일일텐데. 금새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어떤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모두가 아는 결말을 혼자서만 누리고 사는 그 아저씨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구 반대편에 이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있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타미 페이의 눈>이 그 사람에 대한 영화다.
여러모로 하느님이 점지해준 운명
타미 페이는 미국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그녀. 대학도 종교 관련한 학교에 갔다. 어느 날 한 목사가 설교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그 목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남자의 이름은 짐 베이커다. 내면의 깊은 이야기도 할 정도로 친구가 된 짐과 타미 페이. 같은 학교에서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룰을 어기고 연애에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개신교 신자인 둘은 그동안의 행보를 살려 목사로 일하게 된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자 팀인 두 사람. 짐 베이커는 훤칠한 외모와 청산유수 화술로, 아내 타미 페이는 인형극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선풍적인 지지를 받았던 둘. 당시에는 작은 방송국이었던 CBN이지만 어쨌든 CEO 패트 로버트슨에게 '자니 카슨 쇼'와 비슷한 프로그램의 호스트 제의를 받게 된다. 이때 CBN에서 만든 프로그램 이름은 <700 클럽>. 이 TV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짐과 타미 페이 부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며 종교적으로 성공한 전도사가 되는데, 이 둘의 흥망성쇠를 다룬 것이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추천을 못할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짐 베이커와 타미 페이의 설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사건들을 영화로 삼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구석구석 보인다. 이런 디테일의 승리는 분명히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타미 페이와 짐 베이커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 신이 있다. 이때 만났던 장소가 아마 개신교 대학으로 보이는데, 이때 폰트를 60~80년대 미국 TV에서 볼 법한 걸 사용했다. 또 이 영화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상의 가치가 충분했다. 당시에 유행했을 법한 화장법과 원래 타미 페이가 갖고 있었던 과한 비주얼까지 매일 4~7시간 분장한 보람이 있다. 그 이외에도 PTL에서 방영됐던 광교의 묘사나 카메라 워킹까지 섬세한 장면 구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동화처럼
영화를 보고 먼저 떠올랐던 것은 <흥부전>이었다. 흥부전과 이야기가 유사하다는 뜻이 아니다. 흥부전의 이야기는 평이하다. 착한 흥부는 제비를 도와줘서 부자가 되고, 나쁜 놀부는 제비를 이용해서 망한다. 지금 2022년에 보면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전 세계에 한 5억 개쯤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타미 페이의 눈> 역시 그런 느낌으로 안정적이기만 하다. 인물의 내면을 깊게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쉽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의 엔딩을 아마 재생 누르기도 전에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타미 페이와 짐 베이커라는 이름이 현재까지 유명한 게 아니므로 이 사람들이 어떤 선택지를 골라 전락했는지는 그렇게 유추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좀 예상이 가는 엔딩을 가진 영화라면 '어떻게 전락하나'와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나'를 자세하게 묘사해야 극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무슨 중요한 행동을 할 때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거의 대부분 각자의 생활환경과 성장과정을 반영하게 되지 않나. 영화는 그런 묘사가 좀 부족하다. 이러다 보니 그냥 평범하게만 극이 진행된다. <서프라이즈>에서 볼 수 있는 자료화면 같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영화화시켜 이야기로 만들 것이면, 더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최적화된 게 아닌가 싶다.
가령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후반부 주인공이 '제발 날 떠나지 마'라는 말을 아내에게 전한다. 매번 떠나기만 했던 그의 내면의 공허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대사였다. 이런 공허함의 모티브는 영화 내내 이어진다. 항상 사람들에게 관심받아야 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반복하기 싫고. 그런 '밑바닥에서 왔다'는 절실함이 극 전체를 이끄는 것이다. 반면 이 작품은 '독실한 개신교인 타미 페이'로 시작해서 실화에 기반한 엔딩으로 끝난다. 기껏해야 어머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유년시절만 제시될 뿐, '왜 타미 페이가 그런 선택을 하는가' '짐 베이커는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극 중 동성애에 대한 대립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흥미롭게 팠다면 더 깊게 느껴질 이야기를 그냥 '그땐 그랬다' 식으로 쓱 넘겨버린다. 이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이야기들을 생략하니 짐 베이커와 제리가 '굳이?'싶은 구석이 생기는 것이다. 뭐 나름 연출 의도라고 볼 수는 있겠으나 좀 뜬금없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타미 페이의 눈>이라고 제목을 지을 거면 타미 페이가 포착한 삶의 굴곡을 묘사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극에서 '타미 페이가 보는 눈'이 극에서 주요하게 작용한 지점이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독특한 화장법만 눈에 띄었지 극의 차별점이나 개성이 도드라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원작 다큐멘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무조건 <타미 페이의 눈>이 제목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극 전체의 플롯이 제목을 받쳐주질 못하니 각자가 따로 노는 느낌이 짙다.
배우들의 변신은 찐이야
다 따로 노는 듯한 영화여도 배우들은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일단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위너가 된 제시카 차스테인은 어마어마했다. 난 오리지널 한국인이라 타미 페이가 뭐하는 인간인지 모른다. 그래서 억양을 사전에 듣고 간 게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배우가 인터뷰같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직접 들은 건 이번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가 처음이었다. 이 수상소감의 제시카 차스테인과 <타미 페이의 눈>에서의 배우는 그냥 다른 사람이다. 또 분장도 있으니 '이 사람 제시카 차 스테 인임'이란 생각이 단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극 자체의 무난함과 평이함을 차스테인의 감정연기 하나만으로 이끌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파트너 앤드류 가필드 역시 좋았다. 좀 비실비실한 비주얼이나 당시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에 나올 법한 화술까지 아마 이 작품으로서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가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업이 특성상 매일 방긋방긋 웃어야 하는 첫인상의 선함을 후반부까지 잘 이끈다. 다른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 아저씨는 뭘 하든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으로 보인다. 머리를 기른 채로 출연했지만 말하는 억양이나 눈빛이 난데없이 옆의 사람 두들겨 팰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아마 나만 그럴 테니 난 빨리 <데어데블> 시리즈를 지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 영화를 보시고 난 다음 포털 사이트에 '타미 페이'라고 검색하면 뭐 안 나온다!
'짐 베이커'로 검색하시길 바란다!
이왕에 보신다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후자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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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의 존재 이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오늘도 비행기를 정비하는 한 조종사가 있다. 무인기의 등장으로 유인 조종사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도 우리의 '매버릭'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타이틀을 놓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이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탑건에 복귀한다. 하지만 탑건의 조종사가 아닌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배치되는데, 과연 조종사의 피가 흐르는 이 남자는 후배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들이 당면한 작전은 한 사람 이상은 죽어나가야 하는, 이른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매버릭은 이런 하드코어 훈련 작전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구스의 아들, 루스터까지 참여시켜야 한다. 매버릭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 루스터와의 관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의 임무 사이에서 그는 갈등한다.
1. 멋있는 어른의 모습
최근 유튜브 콘텐츠이든 드라마 콘텐츠이든 각광받는 테마가 있다. 바로 "멋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유튜브의 "밀라논나'도 그렇고, 드라마 컨텐츠 속에서 인기를 얻는 캐릭터들도 모두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멋있고 쿨한 어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도 매버릭은 멋있는 어른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처음에 매버릭은 후배들의 원망을 산다. 불가능의 영역인 고도를 계속 침범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는 군인들의 비행 서적의 내용과도 반하는 내용이고, 이런 제멋대로의 가르침은 매버릭의 상관들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해고 당할 상황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르침의 필요성을 자신의 비행 능력으로 입증한다. 불가능의 영역도 그라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비행 능력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그 이후로 후배들은 그의 말이라면 뭐든 신뢰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세상에는 세대 갈등이라는 개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기성 세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것에 화를 낸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젊은 사람들이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화를 낸다. 물론, 매버릭과 같이,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몸소 증명해내는 상사들은 없다. 그것은 단연코 판타지이다.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게 왜 이런 매버릭 같이 몸소 귀감이 되어 주질 않는지 따지는 것은 결국 그들의 판타지가 빚어낸 욕심이 원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어른들이 그처럼 멋있는 증명을 해내지는 못하시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문제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란 과도한 기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기성세대도 자신의 과거의 찬란함에 매료되어 젊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수준의 패기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그것 또한, 기성 세대가 젊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각 세대들은 자신들이 당면해 본적 없는 감정들을 이해해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각자 만의 판타지를 실현시켜 주기를 다른 세대들에게 요구하면서 의미없는 불만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영화관의 존재 이유
이 영화는 굉장히 돈을 많이 들인 전투기 액션 영화이다. 내용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내용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투기 조종 액션의 박진감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기에.
처음에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은 '예상 외로'인기가 많다기에 선택했었다. 탑건 1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탑건 2가 이전의 미국 군인에 대한 멋있는 이미지와 톰 크루즈에 멋있는 비주얼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탑건 1의 영광을 과연 21세기에 굳이 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마블 액션 등등 박진감 넘치는 소재는 차고 넘치고, 요새는 프리가이 처럼 게임을 소재로 하는 영화도 많아져 전투기 조종 액션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영화 머리를 잘 썼다. 전투기 조종하는 장면들이 마치 전투기 조종 게임에 관객들을 참여시켜 동일시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박진감을 몸소 느끼게 했다. 그 실감나는 박진감이 이 영화의 성공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조종은 매버릭이 하지만 우리 모두 그의 전투기에 타고 있는 듯한 환상을 심어준 것이다. 전투기 액션을 하고 있는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도 참여시킴으로써 공감 지수를 올린 것, 머리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들이 결국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킨다. 최근 '영화관의 위기'다 뭐다 하는데, 영화관은 세계관이 거대한 '듄'이나 '마블 유니버스' 영화 뿐만 아니라 스피디한 액션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소규모 독립 영화 그리고 상업 영화이지만 이 정도의 거대한 제작비가 필요하진 않은 영화들이 이런 영화들 때문에 영화관에서는 기를 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런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거대 제작사의 영화만이 영화관에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작은 영화들은 그만큼 대비를 해야 할텐데, 새로운 수익 구조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보인다. 아니, 이미 업계 분들은 실감하고 계실 테지만 말이다.
3. 총평
이 영화는 살짝 주춤하는 마블의 빈자리를 잘 채워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탑건 1을 보셨던 분들이 어떤 점에서 미국 군인의 멋있는 모습에 경도되셨는지를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빠른 전개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고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블이 개봉할 때마다 반응이 이전보다는 미적지근하기에 사람들이 액션 장르에 많이 질렸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흥행으로 이제는 마블에 대한 충성도 때문에 본다기 보다는 이제까지 봐온 가락이 있으니,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액션 장르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으나, 그냥 마블 유니버스에 더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 뿐이라는 추론을 하게 한 영화였다. 이 의견에 피드백 해주실 분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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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영웅>의 질문 '누가 죄인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나 이번에도 가" 안중근은 쉽지 않은 말을 가족에게 전했다. 왠지 모르게 무덤덤한 어머니. 그와 반대로 안중근의 아내는 슬퍼하고 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어렵나? 아내 김아려는 울며 사정하고 있다. "집도 팔고, 예물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았소.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라고!" 금방 온다는 약속도 무색하게 될 것 같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을 보내는 가족들. 대의명분을 위해서 아들과 남편을 희생해야 할 때가 여지없이 온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마음 안에서 울었다.
시간이 지났다. 독립군 부대에 도착한 안중근. 때는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몇 전투에서 이긴 안중근. 전쟁 포로로서 일본군 몇을 잡아놨다. 독립군은 이 일본군 몇몇을 처형하려고 한다. 총을 발포하기 직전이다. 겁에 질린 일본군. 그러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처형하는 독립군을 멈춰 세우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하나하나 비틀어 죽여야 할 놈들이지만 인도주의로, 대의명분을 위해 일본군을 풀어주기로 한다. 청산유수의 화법으로 다른 독립군을 설득한 것이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독립군 소대에 폭탄이 날아든다. 일본군의 급습이었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이 독립군 소대를 습격했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독립군. 동지들의 시체 속에서 안중근은 일본군의 가슴속에 흉터를 내려 총구를 겨눈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감탄한 것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때깔이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어느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 밑의 일본군 졸개는 얼굴 정면으로 밝게 보여준다. 반대로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흰 화장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얼굴 톤 대비로 인물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뮤지컬 신에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굉장히 어둡다가 빛을 활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방식은 영화를 뮤지컬처럼 표현한 좋은 연출이었다. 또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빛을 이용한 주인공을 조명시키는 방법은 영화 화법을 좀 더 간편하게 만드는 나름의 해결방안 중 하나였다.
또 정성화, 김고은, 나문의 배우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사실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설희가 직면한 문제가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김고은 배우는 이를 전혀 싱겁지 않게 연기한다. 사랑하는 주변인을 잃고 분노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매번 다른 눈물연기로 소화하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설희라는 인물의 눈물이 조선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설희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를 보여주듯 김고은 배우는 강강강의 빠른 템포 연기를 잘 소화한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 배우의 연기도 영화의 강점으로 돋보일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영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아니라 아들을 숭고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살린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전형적이고 상투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있다. 이런 식의 신파 연출은 우리가 자주 봐왔다. <부산행>에서 봤었고 <비상선언>에서도 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투적인 연출을 뚫고 보여주는 나문희 배우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그림자 진 얼굴과 함께 보여주는 슬픈 표정연기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정서를 내포하는 엄청난 연기다. 작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양조위 배우가 맡은 만다린의 연기처럼 극을 이해한 배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화 배우가 맡은 안중근 역은 이 사람이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배역에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목소리 톤과 눈빛연기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조악한 캐릭터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강박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 봤던 캐릭터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박진주-이현우 배우가 맡은 마진주-유동하는 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제시되는 캐릭터들이었다. 찾아보니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영화를 위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각색을 하나? 각색을 한 보람도 없이 이 두 인물은 안중근의 곁에서 단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우와 대단해요'만 할 뿐이다. 극후반부쯤에 영화에서 동귀어진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동귀어진이 안중근 의사랑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물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는 지점 덕에 조악하게만 느껴지면 다행이다. 이 박진주-이현우 두 배우는 한 영화를 기점으로 이미지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박진주 배우는 오래전 <써니>에서, 또 올해 <정직한 후보 2>에서 봤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연인 박진주의 <놀면 뭐 하니?>의 출연 행보도 겹쳐 보인다. 그냥 가창력이 좋고 코미디 잘할 것 같으니까 섭외한 게 너무 티가 나서 거의 모든 것이 다 예상이 된다. 이현우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이현우라는 배우는 머지않아 커리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봤던 이미지가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왔고, 역시 <영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다.
또 우덕순, 조도선 캐릭터 역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구멍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이 두 사람이 영화 전개에 구멍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어떻게 퇴장하는가? 에 대한 근거가 더 묘사돼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조재윤, 배정남 배우는 낡은 연출의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잠깐 나왔던 일본 장수는 어디 가고 좀 실없고 유치한 아저씨만 영화에 나온다. 배정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역시 이상한 연출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온다. 여기서 이 인물이 상의를 탈의할 이유가 단 1가지도 없다. 그냥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싶어서 넣은 것이다. 심지어 그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 자체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신분 숨기는 거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짧은 장면, 대사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또 이 배정남 배우의 조도선 캐릭터 역시 구석구석 보이는 '윤제균스러운 캐릭터 특징'이 보인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싫어할 법한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이는 조연캐릭터들과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김고은 배우가 맡는 설희 역시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있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이걸 설희의 서사를 깊게 다 보여줄 이유는 없다. 위에서 '조선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의 돌림노래처럼 '나라의' '꿈' '조선'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민족주의적인 소재가 이 인물로 표현되지 않아도 안중근 자체가 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극후반부에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내포되고 있다. 이 덕에 설희가 갖고 있는 모든 인물 서사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 불필요함은 설희의 퇴장 신 덕택에 더 두드러진다. 이 설희의 공간적 배경은 너무 대놓고 그린스크린 티가 난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윤제균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국제시장>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영화적 소재를 만들어냈으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아무나의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작품 하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제균은 이 선을 잘 타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차곡차곡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어떤 평론가들과 소수 관객들은 싫어할지 몰라도 쌍천만이라는 스코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K-상업영화의 시발점 같은 느낌? 이는 윤제균 감독이 자기화에 능한 예술가라는 말과도 닿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오마주와 변용은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에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신이 있다. 어떤 장면은 롱테이크로 묘사된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난다. 뭐 이건 <1917>도 시도한 바 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장면전환과 색감, 조명, 상하 움직이는 카메라의 공간이동이 박찬욱의 영화들 특히 <박쥐>가 생각난다. 군중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구도는 <레 미제라블>(2014), 설희의 특정 뮤지컬 신은 <알라딘>의 'speechless'가 연상된다. 어떤 구도는 김지운의 <밀정>을 갖고 온 듯하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창작자 윤제균의 작품들을 동의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스노비즘이라? 아니다. 윤제균이 상업적으로 감각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감각으로 이렇게 소심한 연출을 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개인적인 안중근과 독립운동 서사가 나오길 바랐다. 이거 오마주 한 것 굳이 볼 바에 그냥 역사책 한 권과 <알라딘>을 한번 더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지 않은 구멍들
영화에서 느껴지는 큰 구멍은 두 개였다. 우선 영화에서 하이라이트에 매가리가 없다는 점이다. 윤제균 감독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사 내내 쌓다가 터트리는 극후반부의 감정전달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2시간 전부 과한 연출만 반복되다 보니 이 후반부가 좀 얕게 느껴진다. 극에서 삽입되는 노래들 가사 거의 대부분이 '장부' '조국' '꿈'이 반복된다. 또 노래마다 고음역대를 지르는 하이노트가 하나씩은 있다. 웅장한 편곡이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영화 내내 산만한 기운이 후반부 힘을 줘야 할 때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1절을 못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 또 나오면 그게 왜 하이라이트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이고 주인공이 안중근 의사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연출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뭐 윤제균 감독 본인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후반부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대화만큼이나 영화 내적으로 물리적인 분량, 밀도가 얕은 영화 연출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이렇게 분량이 부족하다보니 스릴러로서 과정이 주는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정 묘사도 과한 연출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게 어려워야 암살 당시의 쾌감과 모자의 이별에 감동이 느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필요한 쪽에 이야기가 없는 것들은 안중근 가족의 서사에도 마찬가지다. 조마리아와 김아려의 서사에 몰입할 만큼의 양이 없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게 전부다. 오히려 이 가족애를 강조한 연출보다 만두가, 또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길었던 폭력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동귀어진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귀어진이다. 뜻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서 뜻을 다한다'라는 의미다. 설희도, 안중근도 동귀어진을 목표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뤘다면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으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너네 이거 좋아하지'식의 몇몇 연출 때문에 감독의 진정성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아바타 : 물의 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는 동귀어진의 이미지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사건으로 희생된 건 아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봤던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연한 감정전달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내 감정적인 이 영화.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뭔가 설득력이 없다. 아픈 역사를 아는 우리 모두 다 누가 죄인인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도 있고, '누가 죄인인지' 동시에 물을 시대가 된 지금 윤제균 감독의 질문은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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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아이 - 모성애, 성장 그리고 정체성
줄거리
대학교에서 늘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공부하는 그를 만난 '하나'
둘의 만남은 우연이였으나 둘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았다.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그
그는 늑대였지만, 하나는 그런 그의 모습도 사랑했고 둘은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룻밤에 나은 두 아이.
눈 오는 날 낳은 '유키'와 비 오는 날 낳은 '아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죽게된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하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인간이 섞인 늑대인간이였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크게 접하지 않으며 지낸다.
하지만, 유키는 성장하며 학교에 가고싶어하게 되고
하나는 그런 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그런 유키와 달리, 어릴 때 부터 유키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메는 학교보단 집에 엄마인 하나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하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슬슬 선택하게 된다.
감독
이름 : 호소다 마모루
필모그래피 :
늑대아이, 썸머 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원피스 극장판 6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감독 중 한명으로,
신카이 마코토 보다 작화는 좀 떨어질지언정(좀더 부드럽고 가벼운 듯한 작화) 스토리에선 밀리지 않는다.
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갈리는데,
2012년 늑대아이 시기에 늦은 나이에 득남을 해서, 그 시기부터는 영화가 대체로 가족간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 이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같은 경우는 청춘에 포커스를 두어,
그만의 여름세계를 창조해냈다.
대체로 작화가 신카이 마코토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 휘날리는 이런 디테일 함이 아닌 밸런스 있는 작화를 선호해서
뭔가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의 작화를 선호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들은 배경 작화나 명암 효과는 균형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총 평
★★★★☆ 9.0/10.0
-짧은 평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애니라고 하는 것이 있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작품성을 가지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가치를 가지며, 애니메이션이란 선입견을 그냥 깨부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득남을 한 시기인 2012년 늑대아이를 분기점으로 작품세계가 갈려나갑니다.
과거는 청춘과 그 시절의 여름을 예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지만,
2012년 이후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가족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와 모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큰 틀로는 주인공과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심도있게 잘 다루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다르지만, 늑대아이만을 보면은 왜 이 감독이 포스트(차기) 하야오 라는 평가를 받는지는 충분히 이 작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여운이 적절히 남는 결말-
결말을 보면은 오묘합니다.
따뜻하며, 춥고, 달달하며, 쓴 맛이 올라옵니다.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서로 떠납니다.
유키는 인간에게 섞여 지내는 것을 선택하며 떠나고, 아메는 자신의 본질적인 거주환경인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이유가,
다른 가족영화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외적 모습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의 모습이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내적 모습의 성장과 이상적 어머니상을 그리며, 영화를 전개합니다.
도시로 떠난 유키와 야생으로 떠난 아메, 그 뒤에는 홀로 남은 하나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며, 영화는 아메가 다 자란 늑대가 된 모습과
하나의 모습, 유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하나는 혼자 시골에 남게 되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게 되며,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그저 행복한 결말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닌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 다르게 느껴지게
장치를 설정한 것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에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품을 떠나며, 엄마가 할 역할을 다 했고, 이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라고 하며,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희망찰 수도 있고, 부모인 하나의 관점에선 자식을 놓아주는 심정이다 보니,
아쉽거나 씁쓸한 느낌이 잘 남게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고통-
영화를 보면, 유키와 아메의 엄마인 하나는 영화 내내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으며 두 아이를 키웁니다.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따듯하기만 했으면, 이정도 고평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들어나며, 아이들의 갈등과 서로 성장함에 따라 갖는
서로 다른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선택하며, 부모를 떠나는 이야기까지 그려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는 진짜 헌신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부모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참고 버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영화에선 이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보는 우리에게 잘 전달합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유키는 자신이 늑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사람인척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려 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동생 아메와 갈등이 생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갈등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깔끔한 연기, 적당한 음악, 절제된 연출 =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절제된 연출을 보이며,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잘 보여준 작품을 뽑으라 묻는다면,
단연코 바로 이 작품을 말할 것 입니다.
너무 과하다하게 생각하지 않게 딱 끊은 절제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게 상당히 힘든게, 이런 가족영화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며 극대화하기 쉽상인데,
이 작품은 그 극대화를 최소화하며, 더욱 인간적이게 그리려 애썼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 곳곳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적당히 절제된 듯 하며 극의 분위기를 끓어올리는 음악은 최고였다가 아닌
딱 좋았다. 수준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작품을 뛰어넘는게 아닌 같이 잘 화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아메의 연기력은 준수했으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하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제작진과 성우를 한 사람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야 말로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절제된 연출을 하며, 성우 기용을 하지 않고, 배우를 섭외하여 주연급 캐릭터 연기를 해서
성우들의 오버하는 톤이 아닌 현실적인 톤을 더욱 잘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장-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 인물들의 성장에 초점이 잘 맞춰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싱글맘, 성장, 늑대, 등 많겠지만 가장 큰 주제를 내포한 단어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느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내고 싶어하는 유키와
자신은 늑대라며, 늑대를 위험한 짐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야생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의 삶을 추구하는 아메
둘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며, 활기찼던 유키. 내향적이며, 늘 엄마의 그늘에서 지내던 아메.
서로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재자의 역할로 엄마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늑대지만,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거 없이 갈등과 행복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걸 잘 보여주며
인간과 똑같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커피처럼 향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마실 때는 처음에는 쓴맛과 신맛이 느껴지지만,
혀에 닿았을 때는 씁쓸함을 느끼고, 목에 닿았을 땐 커피 향과 따뜻함에 내려가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이상적과 현실적 두가지를 잘 늑대아이인 아메와 유키, 엄마인 하나에 잘 대입하여
성장이란 이야기를 심도있으며, 가족들이 쉽게 접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합니다.
-관람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초반의 전개와 설정-
이 영화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입니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하나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늑대의 죽음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어머니.
우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극의 분위기를 정 반대로 뒤집으며, 큰 서사적 흐름의 장치로 이용되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급하게, 그냥 어영부영 매꾸는 듯 합니다.
그리고 너무 헌신적이기만 한 하나의 모습은 작품 이입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기도 합니다.
하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몇가지 점을 제외하곤 현 시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퇴보하는 요즘시기,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제대로 영화라고 불러볼 법한 작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거니?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行くの?私はまだあなたに何もしてあげたことがない。)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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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폭력의 그림자> 메인 예고편
황홀한 아일랜드 배경에 스며드는 액션
전직 복서이면서 자폐증을 앓는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청부 살인 일을 맡게 되면서 그의 삶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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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옥풍운> 메인 예고편
제한 시간 단 10분, 완벽한 계획
두 명의 보스 세력이 지배하는 극악무도한 교도소에
억울한 누명을 쓴 건축사가 신참으로 입소한다
양쪽 보스의 표적이 되어 매일 구타를 당하는 신참에게
아픈 엄마를 둔 고참이 탈옥을 제안한다
제한 시간은 10분, 빈틈없는 감시망을 돌파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과 도구를 하나씩 준비하는데…
목숨을 건 탈옥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