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6-14 21:27:53
[극장에서 본] 여전히, 로망은 꿈틀거린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2023>
<트랜스포머, 2007-17>시리즈로 기억되지만, 그 이전의 연출작들을 살펴보면 <나쁜 녀석들, 1995-2003>시리즈나 <더 록, 1996>, <아마겟돈, 1998> 등 수많은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온 "마이클 베이"의 하차는 지난 <범블비, 2018>로 시작되었다.
흥행은 아쉬웠지만, 평가 면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이를 기점으로 "리부트"를 결정한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어땠을까?
지구에 불시착한 "오토봇"군단은 우연치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나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인간 "노아"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거래하나 "지구"를 노리는 악당 '스커지'가 나타나 도리어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는데...
1. 분위기에 취해 너무 나갔다.
제목에서 보듯이 <트랜스포머>의 주된 볼거리는 "변신"에 있다.
'로우(Low)판타지'에 속하는 작품으로 자동차를 비롯해 '일상 속 물건들이 변신 로봇이었다?'라는 판타지를 녹여낸 시각적인 부분은 여전히,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이번 영화는 부제에서도 보듯이 "동물"까지 합세했으며, 이들의 특징을 살린 액션들은 <트랜스포머>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 주장은 곧장 힘을 잃고 만다.
이번 <비스트의 서막>의 주인공을 맡은 "노아"를 제외하더라도 이전 시리즈들의 주인공들이 "오토봇"을 만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역시 로망이 가득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가운데, 뜻하지 않게 만나는 과정은 해당 시리즈를 제외하더라도 여타 작품들에서도 쓰이는 클리셰이다.
이를 똑같이 답습하는 점도 문제이나 정작, 큰 문제는 마지막 장면에서 발발한다.
그럼에도, 이질감이 드는 이유는 이들의 서사가 전혀 쌓여있지 않다는 점이다.
2007년에 개봉한 1편만 보더라도, '옵티머스 프라임'의 모습은 완벽한 대장의 모습이지만, 이번 <비스트의 서막>에서는 조급하고 부족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각자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 "노아"와 "옵티머스 프라임"의 동반 성장까지 인상적인 스폿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보여주는 이들의 협업은 "디즈니"에게 넘겨준 "마블"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아닐 정도로 선을 넘어선다. - 물론, 외계 기술을 차용하거나 외계에서 가져온 무기로 어설프게나마 조력하는 모습들로 없던 것들은 아니지만...
· tmi. 1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 tmi. 2 - 후반부에 나오는 이들의 등장은 같은 계열사의 "하스브로"소속이기에 가능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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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객이 전도된 마블의 쿠키 인질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혼자서도 거뜬히 은하계를 수호하는 히어로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어느 날, 우주선에서 이상한 신호를 감지한 후 정찰을 떠난 그녀는 평소와 달리 계속해서 열려 있는 '점프 포인트'를 발견한다.
그런데 점프 포인트에 손을 댄 바로 그 순간부터 캐럴에게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캡틴 마블의 광팬이자 고등학생 히어로인 '미즈 마블/카말라 칸'(이만 벨라)과 빛의 파장을 조작하는 히어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위치가 바뀌기 시작한 것.
'닉 퓨리'(새뮤얼 L. 잭슨)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크리족 리더 '다르-베'(자웨 애쉬튼)의 음모로 인해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셋. 그렇게 팀 '마블스'는 캡틴 마블에게 복수하고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을 파괴하려는 다르-벤을 저지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똑 닮은 자매, <캡틴 마블>과 <더 마블스>
2019년에 개봉한 <캡틴 마블>은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고, 전 세계에서 1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다만 비평적으로 호평받지는 못했다. 히어로 영화 1편의 기본 소양이 부족했기 때문. 슈퍼히어로는 자기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뇌한다.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토르도 예외는 없었다. 반면에 <캡틴 마블>은 캐럴 댄버스의 책임감을 어필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서사가 빈약하니 보조 플롯도 조명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캡틴 마블>에서는 여성 서사 못지않게 의외로 강조된 이야기가 있었다. 난민이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우주 난민 스크럴 종족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통해 <캡틴 마블>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지중해 난민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의 틀을 깔 수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캡틴 마블>의 속편이자 캡틴 마블, 미즈 마블, 모니카 램보의 팀업 무비인 <더 마블스>는 1편의 행보를 따라간다. 의외의 선택은 있다. 굵직하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린다. 세 히어로의 능력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캡틴 마블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성은 여전히 완성도가 높지 않다. 결국 차기작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만 뇌리에 남는다. 이조차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기대감만 키운 전편 행보를 따른다.
캡틴 마블의 성장기
물론 1편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곳곳에 있다. 특히 캡틴 마블의 내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캡틴 마블>과 <엔드게임>에 이어 이번 영화 초반부까지 캐럴 댄버스는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누구보다도 강력하기에 그녀는 옳다고 믿는 일을 저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크리의 모성인 '할라'를 급습해 행성을 관리하는 A.I.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파괴했다. 관리 체계가 없어진 할라는 내전에 휩싸이고, 대기, 물, 태양광 같은 자원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캐럴에게는 '말살자'라는 이명이 붙었다. 또 이 오명을 혼자 힘으로 씻어내기로 결심하고 지구로의 귀환도 차일피일 미룬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캐럴을 가족처럼 따르던 모니카와의 관계도 엉망이 된다.
<더 마블스>는 캐럴 댄버스가 자기 독선과 오만으로 인한 과오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빌런 ‘다르-벤’과의 대결을 통해서는 본인이 초래한 참극을 직시하고 자기 힘으로 할라의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자기 광팬인 고등학생 히어로 미즈 마블, 절친의 딸 모니카와 팀으로 활동한 대목이 주효했다. 부끄러운 과거와 고민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고, 독선적인 면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므로.
우주 경찰 캡틴 마블, 지구 경찰 미국
MCU 속 캡틴 마블의 독특한 위상을 고려하면 그녀의 변화는 꽤 흥미로운 은유이기도 하다. 캡틴 마블은 압도적인 히어로다. 광속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고, 크리 족이나 타노스의 함선을 단신으로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타노스와 일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를 현실의 지구에 대입하면 꽤 의미심장한 비유가 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여주기 때문. 캡틴 마블이 우주를 마음껏 넘나들듯이 미국은 지구의 바다와 공중을 넘나드는 유일한 국가다.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풍비백산할 수 있는 군사력을 투영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도 캡틴 마블의 존재감과 유사하다.
그런데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의 힘을 부정한다. 간신히 보금자리를 만든 후 크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스크럴. 그러나 그들은 협정 체결 직전에 캡틴 마블 때문에 다시금 행성을 잃는다. 그들은 캡틴 마블을 비난한다. 힘이 얼마나 강한 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설사 크리가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 게 아니라 해도, 그녀 때문에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다면서.
이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비롯해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국제분쟁을 연상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그간 MCU 속 영웅들의 서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군수산업의 모순을 지적한 아이언맨,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 캡틴 아메리카와 유사한 국제관계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건만 남고 주인공은 사라지는 마법
문제는 1편처럼 엉성한 플롯이다. 부실한 완성도 때문에 영웅의 성장담도, 비유도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배경을 쌓아 올릴 충분한 분량이 쌓이기도 전에 일단 사건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 놓는다. 실제로 <더 마블스>는 시작과 동시에 점프 포인트 때문에 파괴된 행성과 세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후 해결법을 찾고,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좋게 보면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은 시원한 전개다. 하지만 <더 마블스>의 핵심이 캡틴 마블의 성장과 팀업이라는 걸 고려하면 적절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없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관객은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주인들의 갈등도 날림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그들이 한 팀을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캐럴과 모니카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캐럴의 절친이자 모니카의 어머니인 '마리아'(러샤나 린치)의 부고를 지키지 못한 일을 포함해 수십 년의 앙금이 쌓인 문제니까.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에 활달한 제삼자 카말라를 완충지대로 투입해 10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모든 감정의 골을 메워 버린다. 캐럴이 자기 독선과 과오를 깨닫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변화를 체감할 수가 없다.
즉, 영웅이 성장할 방향은 알려주지만, 사건에 캐릭터가 묻혀 버린 형국이다. 현란한 CG, 더 귀여워진 구스와 다른 아기 플러큰의 활약이 지나가고 나면 정작 주인공이 뭘 했고,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성장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는 <토르: 러브 앤 썬더>,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목도한 문제와 똑같다.
조연도, 빌런도 함께 실종된다
다른 캐릭터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가 없다.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바쁜데 다른 조연들의 서사에 투자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자연히 <더 마블스>는 불친절해진다. 일단 모니카와 미스 마블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없다. 디즈니+에서 <완다비전>과 <미스 마블>을 보지 않으면 두 히어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스쳐 지나가는 플래시백 외에 전무하다.
그러니 '마블스'라는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세 여성 히어로의 연대를 그려낸 여성 영화라지만, 정작 셋의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여성 서사 관련 논쟁도 무의미하다. 그나마 능력을 쓸 때마다 서로 위치가 바뀐다는 점을 살려낸 초반부 액션씬이 눈을 사로잡지만, 그조차 점점 매력을 잃는다. 액션의 절대적인 양도, 스턴트 액션의 박력도 부족하기 때문. 관객이 MCU에 기대하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빌런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르-벤은 꽤 입체적인 인물이다. 캡틴 마블이 미국에 대한 은유라면, 그녀는 개발도상국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르-벤은 캡틴 마블 때문에 파괴된 할라를 복구하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 즉, 그녀의 행적은 환경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개발도상국도 희생을 감내하라는 선진국 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크리 제국이 빌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맥락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더 마블스>는 다르-벤에게 뱅글과 코스미 로드(망치)로 점프 포인트를 열어 위기를 조성하는 역할 그 이상을 맡기지 않는다. 그녀가 캡틴 마블과 적대하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설명도 딱 한 장면뿐이다. 그녀의 최후 역시 히어로와 대립한 결과보다는 자멸에 가깝기 때문에 임팩트가 크지 않다. 타노스, 로키, 제모 남작, 웬우 등 과거 MCU의 빌런을 돌이켜보면 MCU가 빌런 레시피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쿠키 영상을 보기 위한 100분
결국 남는 것은 쿠키 영상뿐이다. 본편 끝에는 카말라가 드라마 <호크아이>의 주인공 케이트 비숍을 만나며
'영 어벤저스(Young Avengers)'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엔딩 크레디트 후에는 멀티버스를 매개로 MCU와 기존 20세기 폭의 엑스맨 시리즈의 만남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있다.
두 장면 모두 마블 팬의 심장을 뛰게 하기는 충분하다. 특히 엑스맨과 MCU의 만남은 디즈니가 20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인수한 이후로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이벤트다. MCU의 다음 작품이 <데드풀 3>인 점도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기대감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훌륭한 전략일지 몰라도, 본편 완성도를 고려하면 MCU 영화가 일종의 '쿠키 영상 인질극'으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더 커진다. 특히 한국 관객은 기대보다 실망이 커도 놀랍지 않다. 마블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홍보한 '얀 왕자', 박서준의 출연 분량이 카말라의 가족이나 구스보다도 적기 때문.
Dreadful 끔찍한
멀티버스와 팀업이라는 강박. MCU의 엑스맨마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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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당신을 채울 수 없다는 것, 영화 <님포매니악 1,2>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뭐 이런 영화를 다 만들었네 싶을 수도 있다. 또 영화의 결말을 보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다. (결말 밖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러나 두가지 '뭐 이런게 다 있다'는 평을 하는 느낌은 영 다르다. 포스터는 마치 이런 영화를 보면 내가 '님포매니악'이 된 것처럼 볼까봐 걱정이 들 수도 있겠다. 예전보다야 나아졌지만 성에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건 여전히 어색함이 더 크다. 그러나 주의할 건 포스터가 보여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초적 본능>과 그런 면에선 맥락이 같다. 화끈하고 질펀한 걸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허전하고 쓰라리다.
제목은 아무 잘못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영화를 못살게 군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바닥에 널부러진 조와 우연찮게 길바닥에서 만난 샐리그먼이 밤새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님포매니악(여성 색정증 환자)라고 불렀고 그는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칭한다는 것. 섹스 중독자와 섹스가 1도 동하지 않는 두 사람의 섹스에 대한 대화.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이렇게 차분한 대화가 가능하다니 신기하다. 조의 일대기는 꽤 길고 복잡하다. 그녀의 생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그녀는 차를 마시며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샐리그먼은 그녀의 '경험'을 그래서 자신의 '지식'으로 공감하고 이해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낚시, 음악 등 각종 지식으로 맞장구를 친다. 때때로 이야기가 끊어지면 그들을 둘러싼 방의 인테리어, 벽에 남아있는 자국, 방의 구조, 조명 등으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만담이라기엔 잔잔하고 대담이라기엔 독백이 길고, 독백이라기엔 응하는 사람이 있는 독특한 밤이었다. 샐리그먼의 뜬금없고 박학다식한 지적 공감은 자칫 19금썰 혹은 사랑과 전쟁이 될 뻔한 한 이야기를 꽤 담백하고 흥미롭게 탈바꿈해준다. 다른 남자였다면 이렇게 클래식 평론하듯이 말하진 못했겠지. 그는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만드는 존재인데 그건 차차 얘기하는 것으로.
영화의 부제를 짓는다면 <님포매니악: 어느 고독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붙이고 싶다. 주인공 조는 성보다는 사람을 탐닉하고, 쾌락보다는 외로움을 채우려 애썼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부제를 지어본 건 갑자기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가 떠올랐기 때문.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 심지어 관객들마저 주인공과 자기 자신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암만, 우리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처럼 살인자도 아니고, 조처럼 님포매니악도, 섹스중독자도 아니니까. 그러나 정말 전혀 다른가. 외로움과 공허함이 비슷해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면 이상한걸까. 조는 유일하게 사랑했던 제롬에게 속마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자신의 모든 구멍을 채워달라고 하면서. 애틋한 말이었다. 늘 내 빈 곳을 누군가 채워줄 수 없다고 수없이 회의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더 슬펐다. 정말 섹스로, 혹은 제롬같은 누군가가 내 안의 모든 빈 곳들이 채워진다면 같은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걸 걸고서.
조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시작하는 바보가 어딨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욕구란 끝이 없고 만족을 느끼는 만큼 허전함 역시 크다. 맛있는 음식들, 아는 맛이지만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사람들. 바깥에서 사먹는 음식 중에서 나에겐 떡볶이가 늘 그렇다. 치킨도, 피자도, 그 무엇 보다도. 정말 아는 맛이지만 집집마다, 가게마다 다르다. 내 입맛에 찰떡인 떡볶이를 찾아 헤매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떡볶이 비유는 너무 가볍나.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사랑에 대한 욕구도 있겠다. 외로워서, 궁금해서, 이유가 뭐든간 다신 사랑하지 않겠다면서 그 달달하고 몽글거리던 날이 그리워 다시 찾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사랑에 함몰되어 있는 동안 조에겐 섹스가 그랬을 것이다. 아는 즐거움이었지만 즐거웠고 쉼없이 필요했다. 하루에 7-8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만나 늘 그 사람들에게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그건 분명 본인도 많이 노력해야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아는 맛의 끝을 보고 싶었던 것, 그게 조와 우리의 작은 차이점일 것이다.
유부남이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feat. 질척거림)
그녀를 철면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에 갈수록 그런 생각은 잦아든다. 죄의식이나 자책감 따위는 저버린 듯이 말했지만 그녀는 아주 오래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을 '죄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와 '미끼'가 되어 누가 더 기차에서 많은 사람과 잤나 내기하느라 유부남을 유혹할 때도,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이 자신 때문에 20년지기 아내와 아들 셋을 버리고 왔을 때도, 음성사서함에 올라온 수많은 남자들과 만날지 말지를 주사위를 굴려 결정할 때도, 그녀에게 닥친 불감증이라는 위기에 다시 쾌락을 되찾기 위해 폭력적인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아이와 남편을 버릴 때도. 그녀가 사랑한 제롬이 자신과 함께하는 여자아이와 엮이게 되어서 질투심에 총으로 쏘려고 했을 떄도. 그게 다 죄라면서.
그녀가 여러 사람을 만났던 것은 그녀가 사랑한 대상이 섹스가 주는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흥분은 섹스에 필요한 기본적 요소였고 사랑마저도 그녀에게 섹스를 완성해주는 비밀의 레시피였다. 그럼에도 샐리그먼에게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배수진을 친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들릴 이야기는 부도덕하고, 저는 나 좋자고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못돼 처먹은 사람이에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도 아닌데. 죄라고, 부도덕하다고, 못된 사람이라는 인식은 전부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정말 못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인간의 본성을 위선이라고 말하는 건 그런 그녀가 위선적이라는 것에부터 출발 한 것은 아닐까.
젊은 여자 둘이 기차에 타면
모르는 사람에게 한두번 해본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샐리그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는 자신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샐리그먼은 그녀에게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라며 여성으로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서 조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었다. 조가 남자였다면 이 모든 건 지금보다 큰 문제가 아니었을거라면서. 젊은 여자 둘이 기차에 타면 눈을 맞추고 웃기만 해도 남자와 잘 수 있지만 젊은 남자 둘이 그러면 똑같이 가능하겠냐면서. 아이를 버리고 자신을 택한 건 그녀의 남편 제롬도 마찬가지였다고 말이다. 하다 못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제롬에게 총을 쏘려다 실패한 것 역시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죽일 생각이 없어서 총을 제대로 장전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해준다. 그러니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한마디 더해 '혼자 박수칠 수 있던가'라고 곁들여주고 싶었다. 그녀를 함부로 말할 수 있겠나.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이건 단독범행은 아니다. 그리고 그녀의 착각아닌가. 자기 자신 좋자고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했다는 말. 그녀만 좋자고 했나, 상대방도 좋자고 했지. 그 사이에 상처가 있었다면 그건 둘의 책임이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그녀가 추구하는 섹스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데 그 섹스가 그녀 말대로 쉬웠다. 그건 그녀가 사람 환장하게 하는 팜므파탈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늘 응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상해하는 사람들보다 그녀에게 이끌리듯 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 이유가 신기했다. 자기 남자들을 건드릴까봐. 그녀를 거절하려던 철벽 같던 유부남도 있었다. 똑같이 신기했다. 그녀를 피하려던 이유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끊으려고도 해볼만큼 해봤거든요
조가 변하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청춘을 다바쳐 쾌락을 좇아 해볼 만큼 해보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누가 섹스 중독을 고쳐보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르다. 몸이 아프게 되어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섹스 때문에 사랑하던 제롬과 극단으로 치닫고 상처를 받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고 올 땐 보이지 않던 게, 눈 앞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여자와 그가 자는 걸 보면서 제대로 상처받았을 것이다. 제롬은 그녀의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F, G, K, B 같은 이니셜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처음 만난 샐리그먼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않았나. 자신이 그렇게 견딜 수 없었던 욕구 없이도 사는 사람이 있고, 자신을 편견 없이 보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녀 역시 사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그러나 그 스펙타클한 조의 연대기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서 볼 수 있다. 샐리그먼은 아주 대단한 역할을 맡게 된다.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 외로움과 중독을 벗어나보겠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고 다짐하는 조를 짓밟아 버린다. 역설적이게도 님포매니악이던 조가 섹스 없이 있는 힘껏 살아보겠다고 말한 그 직후, 평생 섹스와 담 쌓고 살아온 무성애자 샐리그먼이 그녀와 섹스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걸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욕망의 전이?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가 정말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건 수많은 남자들이랑 자지 않았냐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그녀 앞에서 '남자'가 되었다. 과거 그녀가 자동문처럼 가리지 않고 남자들과 잤다고 해서 지금 이순간, 그와 거리낌없이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와 그녀는 방금 전 이야기 하듯이 '인생 최초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는 믿을 수 있는 친구 대신 욕망에 가득한 어느 남자가 된 것이다. 방금까지 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사랑하던 제롬을 죽이지 않아서, 안도하던 조는 망가졌다. 총은 제대로 작동했고, 친구라 부르던 셀리그먼이 그 총을 맞았다. 어쩌면 그녀는 살인자가 되었겠다. 혹은 급소가 아닌 곳에 총알이 박힌 채 그가 신음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총소리에 가장 많이 아파할 사람은 조일 것이다. 동이 텄고 문이 닫혔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녀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 있을까.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녀의 평생을 바친 단 하나의 실험, 단 하나의 목표가 얼마나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그녀의 구멍을 채워 줄 수 없었다. 채우려 애쓸수록, 기대하면 할 수록, 그녀에겐 짙은 외로움이 피어나는 구멍들이 커질 뿐이었다.
* 섹스 중독자와 님포매니악이 무엇이 그렇기 다르기에 조는 거듭 강조를 했나. 의미상 여성이란 점을 부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성 색정증은 사티리어시스라는 다른 표현을 쓰고 있으니까. 단어 중 님프는 영화에서 유충이란 뜻으로도 설명되었다. 실제로 낚시를 할 때 이 님프를 본따 님프 낚시를 하기도 한다고. 미끼가 되어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섹스중독자라고 칭하며 중독을 끊으려 할 때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을 바꾸는데 그 때 그런 생각이 스쳐가지 않았나 한다. 자신이 여성으로서, 섹스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과 다르다고. 그게 그녀를 흔하고 광범위한 섹스중독자가 아니라 '님포매니악'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라고.
* 조의 아버지의 '소울 트리'. 내 나무 찾기 이야기가 은근히 흥미롭다. 조도 절벽 위에서 그 나무를 찾게 된다. 아직 그런 느낌이 드는 나무를 찾지는 못했는데 나무를 찾았을 때 기분이 기대된다. 꽃을 들자면 제비꽃은 가능할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매년 반갑고 애틋하다.
*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욕망과 외로움을 어떻게 대할지가 아닌가 싶다. 욕망과 외로움의 방법론. 욕망의 끝을 알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확실한 건 몸을 직접 내던지는 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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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라는 자리에 대하여
김남길과 손예진 주연의 해적을 정말 재밌게 봤던 터라 이번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역시 괜찮겠거니 했는데 잘못된 기대였다. 영상미와 영화음악은 박진감 넘치고 압도적이었으나 다른 부수적인 것들이 그 재미를 깎아내린 작품이었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시놉시스
가자, 보물 찾으러!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 한 배에서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 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의 분위기 다 살린 bgm과 영상미
음향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이 작품은 음향이 반을 먹고 들어간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bgm을 잘 쓴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안타까운 연기력을 보면서 산만해질 때마다 긴박함, 웅장함, 서늘함 등 다양한 영화 속 분위기를 자아내고 국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영화 속에서 즐길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더불어 한국의 CG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는 사실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해저 지진으로 인해서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갈뻔한 마지막 장면을 보면 손에 땀이 다 날정도로 엄청난 생생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바다라는 특성상 CG작업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텐데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웅장한 바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점은 칭찬할만했다.
왜 그랬을까,,, 대사 톤이 왜 그럴까
하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한효주와 권상우. 한효주의 삑사리 나는 듯한 대사톤과 권상우의 혀짧은 발음이 유독 거슬리는 작품이었다. 정말 차리리 표정 연기와 bgm만 남기고 대사를 다 없애버렸을면 참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효주와 권상우가 입을 열 때마다 몰입이 방해가 돼서 왜 감독을 오케이컷을 했는지 보는 내내 궁금하고 답답했다. 권상우의 발음 문제는 그동안 많이 지적되어 왔던 문제기에 어느정도 감안은 했지만 사실 한효주가 이렇게 대사톤이 어색했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어서 그동안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 작품에서 유독 튄다는 느낌을 받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영화를 보며 의도치 않은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고심을 했던 순간이었다.
대가리라는 자리가 원래 그래
“단주라고 챙겨주는 거 하나 없잖아! 고생만 다하고!” 번개섬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아는 막이가 사람들을 향해 단주가 되어서 부려먹기만 하는 선원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단주 해랑이 막이에게 임시적으로 단주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권력욕과 감투욕이 있었던 막이는 세상 행복해한다. 하지만 단주라는 자리는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단주에 올랐다고 해서 사람드리 무조건 따르고 위신을 세워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잘난 맛에, 그리고 자신의 이득만 취해서도 안되고, 선원들의 가족까지 생각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단주라는 자리만 가지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막이는 생각보다 넘쳐나는 책임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단주자리를 내려놓으려 한다. 그와 반대로 의적대장과 단주였던 무치ㅘ 해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부하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는 그 방법이 다를지라도 마음만큼은 자신의 부하들의 안전과 행복을 지극히 바라고 노력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리더라는 자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타임킬링용으로 그리고 영화음악을 즐기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을 작품 <해적: 도깨비 깃발>. 하지만 개연성이나 연기력이 중요한 분들에게는 딱히 추천하지는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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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손으로 파괴되는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한국. 어느 날 불가사의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이를 시연이라고 부르며, 죄를 지어도 제대로 벌주지 않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형사 '진경훈(양익준)'과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처럼 새진리회의 해석과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고, 정진수는 자신의 교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옥행을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실제로 시연이 고지된 시간에 이루어지자 새진리회가 새롭게 정의한 죄와 그 해석은 새로운 사회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은 민혜진과 '배영재(박정민)'로부터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구축한 진리, 정의, 질서에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감독의 전작인 <반도>와 유사한 작품이다. 좀비 영화의 외관을 한 <반도>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이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한 인간 군상이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 역시 신과 천사, 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판타지 영화의 외관을 갖추지만,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비현실적 존재를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정진수와 민혜진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신의 존재, 더 나아가 종교가 대체 무슨 효용이 있냐는 민혜진의 비판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이잖아요"라고 응수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신을 내세워 만들어진 종교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옥>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며, 또 사람들은 그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염세주의적이면서도 도발적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옥>의 내용은 크게 1-3부와 4-6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전반부의 내용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연'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수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경고해온 정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기제가 있다. 바로 죄와 죄책감이다. 그는 시연이 스스로를 엄격히 정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신이 직접 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죄책감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는 그가 고지를 받은 박정자와 시연을 중계하는 것을 두고 협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며 그녀가 불륜 내지는 성매매를 저질렀을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는 이유다. 또 자신의 해석과 사람들의 죄책감에 힘을 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시연당한 것으로 가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진수의 일련의 행동과 발언, 고지와 시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인 <문명 속의 불만>에서 분석한 종교의 구조 및 작동 양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에로스(사랑과 성욕)와 타나토스(죽음과 파괴)의 욕동이 있으며, 종교는 이 욕동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적 욕동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고, 타나토스적 욕동 역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기에 문명을 위협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두 욕동의 발현과 실천을 죄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제사장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는 정진수의 대사, 그리고 그가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암시되거나 가장 파괴적인 욕동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자신의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생자로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곧 정진수에게 신의 존재와 시연의 대상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와 죄책감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회를 유지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다.
이 대목은 사실 <지옥>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억압한다고 비판한 종교의 모델이 기독교인데다가 작중 정진수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진수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향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연을 목격하고 깨달음은 얻은 후 새진리회를 만든 것은 예수가 광야로 나가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활을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진수가 사이비로 취급받는 것, 그가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온 것, 심지어 그가 일찍이 자신의 운명과 최후를 알고 있던 것 모두 예수의 공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다 보니 종교는 그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제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인간을 죄책감으로 억누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다분히 도발적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후반부에서 <지옥>은 사회의 유일한 질서로 거듭난 종교와 그로 인해 강림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진리회가 만든 질서와 진리에 순응한다. 또한 종교가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동을 통제한 나머지 심리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고지를 받은 이는 곧장 범죄자로 몰리고, 자신의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죄를 대신 자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한다는 종교가 역으로 만든 지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중 묘사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인간상과 유사한 배영재를 등장시키면서 지옥을 비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할 때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는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확신이나 진리, 믿음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PD인 배영재는 새진리회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새진리회 덕분에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사제의 주장을 화살촉 범죄를 포함하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박하기도 한다.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조직 '소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더 나아가 소도의 도움을 받아 시연이 인간의 죄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간파하는 등 '의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심으로 가득한 배영재라는 인물의 존재는 획일화된 정의와 진리로서 종교의 구조를 만드는 정진수와 대립항을 이루고, 전혀 다른 전후반부의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작중 죄와 죄책감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가 자율성인데, 배영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면서 정진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더해 드라마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배영재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새진리회의 폭거에 온몸을 던져 싸운 민혜진에게 한 택시기사가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하며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옥>의 주제의식이 단지 종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했던 연상호 감독답게 <지옥> 역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의 믿음과 진리, 확신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관하고 언제나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특정 정치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정치 현상이나 특정 담론의 논리에만 의지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작중 언론은 그저 받아쓸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이지선다를 강요받으며, 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다. 정진수가 박정자의 시연이 중계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로 등장해 자신의 교리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뉴스 앵커가 압도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새진리회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새진리회 측의 요구를 방송국이 그저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이 마주하는 병폐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을 지적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의 직업이 PD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진리회가 강조해온 죄와 죄책감, 처벌의 교리가 부정되는 현상은 개개인, 평범한 시민의 핸드폰과 sns를 통해서 중계된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정보를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서 어젠다를 세팅할 힘이 개인에게 넘어간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낸다. 아무리 강력한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의심할 때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지옥이다.
사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지옥>이 마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자를 묘사하고 시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CG의 퀄리티는 부족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연기력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인상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목도 찾을 수 있는데, 신파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 곧 사랑의 힘이 한 생명을 구하는 내용이 결말을 이룬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해당 장면이 상당히 담백하게 연출된 결과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염세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작품 분위기를 뚝심 있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에로스가 자신처럼 불멸하는 맞수와의 투쟁에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억압적 기제로서의 종교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눈물은 서사와 메시지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과 종교를 빌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비극과 일말의 희망을 속삭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인상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신과 종교라는 거울에 비춰 보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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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측'과는 달랐던 제 78회 골든글로브 수상 결과
'예측'과는 달랐던 제 78회 골든글로브 수상 결과
지난 2월 28일 (북미 기준), 제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오스카'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정이삭 감독은 영상을 통해 모든 미나리 패밀리와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어를 '진심이 담긴 언어(Language of Heart)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미나리'의 의의이자 골든글로브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후보 선정 당시, 미국 영화인 <미나리>가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것에 '골든글로브' 측은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인 영화만 작품상에 오를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한국어가 그 이상 나오는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으로 출품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는 '인종차별'이라며 분노하였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오스카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가장 이름 있는 시상식 중 하나이기에 이 '논란'은 시상식까지 이어졌다.
출처 : NBC
매년 뼈 때리는 말들로 그 해 시상식의 '쟁점'들이 무엇인지 확인 사살 시켜주곤 했던 만담 콤비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한 입담으로 시상식의 포문을 열었다. 올해의 가장 큰 '논란'은 역시 인종 차별이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기관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일명 HFPA 인데, 올해 기자단의 구성원들이 모두(ALL) 백인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특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사샤 바론 코헨'은 수상 소금을 통해 "다 백인으로 구성된 HFPA에 감사 드린다"며 이 논란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 결과, 많은 대중들과 영화인들의 '예측'과는 다른 수상 결과를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어떤 작품들이 깜짝 수상을 하였고, 어떤 작품들이 상을 빼앗겼는지 할리우드 대중 매체 'The Wrap'과 'Variety'지의 의견을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깜짝 여우주연상 : 로자먼드 파이크(뮤지컬/코미디), <퍼펙트 케어>
출처 : 네이버 영화
2월 19일 국내 개봉하여, 네이버 관람객 평점 9.14를 기록 중인 넷플릭스 영화 <퍼펙트 케어>에서 '말라'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로자먼드 파이크'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를 통해 이미 한 번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스틸 앨리스>의 줄리안 무어에게 수상의 영광을 빼앗긴 그녀는 올해도 그 영광을 차지하긴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빼앗긴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 마리아 바카로바,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출처 : 아마존 프라임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마리아 바카로바'는 전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첫 번째 '불가리아인'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첫 번째 수상의 영광까지 차지하지는 못하며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샀다.
깜짝 여우조연상 : 조디 포스터, <모리타니안>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3월 17일 개봉 예정인 <모리타니안>은 9.11 테러 당시 재판에 대한 실화 기반 영화로, '조디 포스터'는 변호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수상을 예상하진 못하였는지, 조디 포스터는 2013년 세실 B. 데밀 상을 수상한 이후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될 줄 몰랐다."는 수상 소감을 밝히며,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음을 드러내었다.
빼앗긴 여우조연상 : 글렌 클로즈, <힐빌리의 노래>
출처 : 네이버 영화
2017년, <문라이트>의 마허샬라 알리가 <녹터널 애니멀스>의 애런 존슨에게 상을 빼앗긴 것처럼, 매년 '조연상'은 가장 예견하기 힘든 부문이기도 하다. 올해도,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와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이 각축전을 벌일 것이라 예상되며, 과연 누구에게 상이 갈 것인지 관심이 쏠리던 부문이었지만, 그 상이 전혀 다른 이에게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깜짝 여우주연상(드라마) : 안드라 데이,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vs.빌리 홀리데이>
출처 : Hulu
빌리 홀리데이 자전 영화에서 그녀로 분한 '안드라 데이'는 '비올라 데이비스'를 포함하여, 작품상 수상작인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 4개 부문 노미네이트작 <프라미싱 영 우먼>의 캐리 멀리건,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그녀의 조각들>의 바네사 커비를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정말 그 누구도, 물론 본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빼앗긴 여우주연상(드라마) : 비올라 데이비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출처 : Netflix
미국의 1세대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를 주제로 쓴 동명의 희곡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주요 인물들의 '방백'과 같은 발화가 극을 끌어가는 영화이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이 영화는 그만큼 주연 배우들의 힘이 중요했고, 성공적인 연출과 훌륭한 연기로 영화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를 증명해내듯 故'채드윅 보즈먼'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지만, 진정한 주인공 '마 레이니' 역의 비올라 데이비스는 빈 손으로 돌아갔다.
빼앗긴 작품상 : 모든 '흑인' 영화
영화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사진 출처 : Variety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화(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는 <더 파더>, <맹크>, <노매드랜드>, <프라미싱 영 우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올라 <노매드랜드>가 최종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는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해밀턴>, <뮤직>, <팜 스프링스>, <더 프롬>이 올라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여기서 문제는, 이 중 흑인 감독이 연출하고 흑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었다.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올해 최고 기대작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를 포함하여,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콤 X'를 필두로 1960-70년대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영화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블랙 팬서 파티의 의장이었던 '프래드 햄턴'과 FBI 사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 <유다와 블랙 메시아>, 대표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 감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참전 용사와 베트남 전쟁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다 5 블러드>와 같이 이미 각종 비평가 시상식을 휩쓴 '올해의 작품'들이 후보에조차 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굉장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 국가인 '미국', 그리고 영화 산업을 이끌어가는 할리우드에서의 시상식이기에 단순히 한 나라에서의 조촐한 축제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고, 상당한 공신력을 띄는 시상식이기도 하기에 약 80년의 역사가 있는 '유서 깊은' 시상식으로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수상의 영광을 누린 뛰어난 배우들은 당연히 그 영예를 안을 자격이 있고, 절대 화살이 그들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 매년 이런 논란이 있어 왔고,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콕 집어 불공정함을 드러냄에도 바뀌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에 언젠가 파울이 아닌 홈런으로 받아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수상의 영광을 누린 모든 배우를 비롯한 영화인들에게, 훌륭한 영화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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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태도
감독: 미아 한센 로브출연진: 레아 세두, 파스칼 그레고리, 멜빌 푸포시놉시스: 8살 딸을 키우고 있는 산드라(레아 세두)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돌본다.아버지의 병이 점차 악화되면서 그녀는 아버지를 어디서 모시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한편, 친구 사이였던 클레망(멜빌 푸포)과의 관계가 발전된다.아버지의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위기는 본격화된다. 단순히 요양원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아버지의 기억에 가족의 추억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산드라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돌보는 건 버겁다. 다행히도 점점 지쳐가는 그녀의 곁에는 8살 난 딸과 친구 클레망이 있어 이들에게 기대 잠시 숨통을 틀 수 있다. 산드라의 아버지는 그녀와 다른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병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가끔 머릿속에서 영화가 나온다면서 뭔가 없어진 기분, 그 비일관성에 대해 토로하는 장면은 그가 겪을 혼란스러운 상황을 잠시나마 상상하게 만든다. 동정을 결코 바라지 않던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을 위해 뭔갈 계속해서 해주는 것 즉, 같이 있어주는 것이지만 지쳐가는 산드라에게 이는 어쩌면 무리한 요구처럼 비친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칠 “할 수 있을 때(후회하기 전에) 최선을 다하세요”라는 말은 진리처럼도 들리지만 지친 그를 무겁게 옥죄는 말이기도 하다.미아 한센 로브 감독 자신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 영화는 비슷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련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을 ‘산드라’라는 인물에 바로 투영해 보는 것은 물론 무리가 있겠지만, 바로 이전작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떨어뜨려놓고 볼 수도 없다. 특히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는 그의 말은 영화보다도 급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던 감독이 아버지를 다시금 잘 떠나보내는 계기로써의 측면에서 이 영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이것을 달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감독이 언제나 우선시하는 삶에의 가장 진실된 시선에서의 포착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아버지를 대하는 산드라의 선택이 바로 이것의 응축에 가깝다 볼 수 있는데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책임보다도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따르는 그녀의 선택은 보편적 심리에 반대돼 양가감정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산드라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버지를 보며 절망에 빠지면서도 많은 시간을 아버지에게 할애하려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신의 삶까지 전복되고 말 상황에 처했을 때, 산드라에게 우선시되는 것은 결국 아버지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이다. 어쩌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택이다.그러나 영화는 산드라를 단순히 이기적 선택을 내리고 아버지를 떠나는 '나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는 아버지의 노트를 우연히 보고 그 안에 아버지가 끄적여둔 자서전의 초고 내용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산드라의 모습은 그녀가 아버지를 떠난 것이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를 배제한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산드라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행복을 위해 아버지를 떠나게 되는데 최종적으로 그녀의 이 선택은 불확실한 삶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로도 읽힌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불확실한 미래와 클레망과의 또 다른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선 산드라는 자신의 삶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 무엇이 옳은지는 닥치지 전에 알 수 없지만 당장 내린 최선의 선택이다. 제목 "어느 멋진 아침(One Fine Morning)"이 가지는 미래와 희망의 의미 때문에라도 이 영화의 엔딩은 슬프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각자의 삶은 그것이 언젠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그들 안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상영 일정-10/06 16:30 CGV센텀시티 2관-10/07 1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10/09 10:30 CGV센텀시티 4관부산국제영화제 5-14.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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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 ; 바다를 부른 여인 - 욕망과 갈등에 휩쓸리는 네 남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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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은 연극의 영화화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공연들의 영상화하는 작업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공연 풀샷 혹은 일부의 클로즈업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작품은 연극의 영화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각 장을 원테이크로 찍으면서 연극적 요소를 살린 촬영을 했고 헨드헬드 기법으로 인물들을 따라가며 촬영을 하여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연극 무대와 같은 무대미술을 활용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
는 영화의 톤에 맞게 진행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연극’의 ‘영화화’라는 작품의 목적에 충실했습니다. 이렇게 영화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은 연극계는 물론 영화계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
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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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당신이 여름에 보면 좋을 영화
** 영화 우리집의 스포일러가 담긴 콘텐츠입니다.
대사로 알아보는 영화 두 번째 이야기는, 작년 여름에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입니다.
영화 우리집은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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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공삼칠> 메인 예고편
모두 놓치지 않을거에요! [7번방의 선물]을 잇는 웃음과 감동! [이공삼칠]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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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마운트+ X 티빙 <스타트렉 : 스트레인지 뉴 월드> 공식 예고편
또다른 가능성을 위한 엔터프라이즈호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