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0-06 11:48:16
[BIFF 데일리] 노동계급 소시민에게 구원의 모습은 어떠한가
영화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리뷰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Kike Will Hit a Home Run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Korea/2024/97min
*시놉시스
영태와 미주는 작지만 아담한 월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식당을 같이 운영하기로 했던 영태의 동업자 선배가 갑자기 약속을 깨뜨린다. 영태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고 미주가 혼자 남는다. 미주는 영태를 기다리며 자신도 열심히 살아간다.
박송열 감독의 전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엔딩신에서 받은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노동계급 소시민 남자는 응당 분노해야 할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가지만, 화를 표출하는 대신 분을 삭인 후 돌아선다. 이 장면의 정서는 패배감, 울분이라기보다는 구원이다.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을 지속 가능케 하는, 기묘한 낙관의 느낌을 전하는 체념으로서의 구원 말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거창하고 영웅적인 행위로서의 구원과는 거리가 먼 박송열표 구원론의 인상적인 각인이었다.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다음 이야기라 할 만하다. 등장인물이 같은 것뿐 아니라 주제 의식과 메시지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영태, 미주 부부는 여전히 퍽퍽한 생활을 하는 중이지만 이전보다 아주 조금 상황이 나아진 듯도 하다. 새로 들어간 월세집은 이전에 살던 집보다 더 나아 보이는, 임신을 계획 중인 두 사람이 터전을 닦기에 퍽 적절한 공간이다.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나갈 미래의 가능성에 들뜬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한 기대조차 늘 배반당하는 것이야말로 노동계급 소시민 삶의 특징이다. 영태는 동업을 하자는 선배와의 일이 틀어진 후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더는 수업을 할 수 없게 된 미주 역시 여러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으기 위해 분투한다. 전작에 이어 소시민적 고난과 애환이 펼쳐진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들이 마주한 고난의 스케일의 크기를 ‘축소’한다. 몇 년 전에 빌려준 50만 원, 300만 원이 필요한 동생, 미주에게 3만 원을 요구하는 영태……. 연일 부동산 가격을 두고 쏟아지는 뉴스에 비하면 주인공들이 울고 웃는 화폐의 단위는 지극히 ‘초라’하다. 이렇게 적은 금액에도 삶이 흔들리는 사람들의 영화적 환기는 모두가 공유하는 경제적 상승 욕망이 비가시화한 실재하는 삶의 양태를 드러내며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힌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비연속적인 장면, 독특한 리듬의 대사와 연출이 연달아 이어지는데도 박송열의 영화가 지독히 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이유다.
노동계급 소시민은 작디작은 체념을 체화하는 일상을 산다. 영화는 그 원인이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적대적 계급 현실이 영태와 미주가 겪는 고난의 원인이라는 점이 전작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동계급 소시민을 위한 정치적 요구가 직접 드러나는 장면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영태와 미주가 겪어야 할 고난이 커진 만큼 영화의 유머도 더한층 능청스러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박송열 감독 영화의 특이점이다. 일상적 고난은 이어지고 영태와 미주의 현실은 점점 꼬여만 가지만 두 사람은 결코 비통함, 원통함, 격렬한 울분을 표하지 않는다. 언제나 있어온 일이라는 듯 가벼이 체념한 후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며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노동계급 소시민이 격렬한 감정으로 적극적으로 모색할 변혁은 도래할 국면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 상태로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체념하고 포기하고 한숨 쉬면서도 일상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양식(樣式)이 필요하다. 박송열이 자기만의 개성으로 포착하고 벼려낸 영화 속 이미지는 모두 이곳을 향한다.
박송열의 영화에는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이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고, 근근이 이어지는 그들의 삶이 대체로 비관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결코 그에 완전히 잠식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낙관이 깃들어 있다. 부동산 투자업에 실패한 영태와 유산한 미주에게 홈런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심지어 섹스 시도에서조차 격렬함을 소거한 채 느긋이 서로의 몸을 포개는 엔딩 장면은 두 사람에게 홈런이 ‘대박’이나 ‘인생 역전’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 자체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우리는 이를 구원에 대한 소시민적 감각이라 부를 수 있을 터다. 모두가 고개를 꺾어 ‘위’만 바라보며 자기가 발 디딘 ‘아래’를 보지 못하는 지금, 박송열이 견지하는 노동계급 소시민의 일상적 구원의 태도는 무척이나 귀하다. 그리고 긴요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을 다루는 박송열의 작업이 계속 이어지기를, 그가 아키 카우리스카미의 스타일과 주제를 한국에서 계속 펼쳐내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 상영시간
10-05/20: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06/20:00/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09/16:3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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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콘 계산이 서는 액션 오락 블록버스터
<모럴 센스>와 <더 버블>, 국가는 달라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묶이는 두 작품은 결과물마저 실망스럽다는 것으로도 묶이는데요. 그런 점에서 이번 <야차>는 이를 한시름 덜어놓을 수 있는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긴 하나 만든 작품은 아닙니다.
당초, 극장 개봉을 염두 했으나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코로나19"로 개봉이 연기되었고 결국 "넷플릭스 공개"로 선회했습니다. 하나, 그 사이에 "박해수"분이 <오징어 게임>으로 인지도가 확 상승했으니 "넷플릭스"로서도 꽤나 흥미로웠을 작품이었을 겁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야차>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업의 비리 조사 과정에서 어그러진 검사 "지훈"은 징계성으로 "국정원 파견 검사"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 선양에서 "지강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블랙 팀의 보고가 허위였다는 것을 알게 된 본부는 진상 조사를 위해 "지훈"을 보내는데요. 하지만, "지훈"은 블랙 팀이 진행하고 있는 진짜 작전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는데...
계산이 되는 영화
1. 개명 부탁드립니다.
영화를 떠나 '제목'은 관객 혹은 독자들에게 해당 글과 작품이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보여주겠다는 출사표입니다.그런 점에서 <야차>의 원제 'Yaksha: Ruthless Operations'를 직역하면, "무자비한 작전"쯤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해당 작품이 어떤 장르이며, 무엇을 보여주겠구나!'라는 저의를 알 것이고, <야차>는 125분 동안 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갑니다. 손해 보는 느낌은 아니지만, '왜, "야차"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에는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이름의 의미를 알까?
실명을 말할 수는 없지만, 저의 이름에도 뜻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부모님께서 '그렇게 되었으면 혹은 살았으면'하는 바람과 같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야차>의 "무자비한 작전"은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분명히, 화려한 액션이 등장하지만 총알은 팔과 다리에 착지하며 머리들은 다 피해 가는 기적의 회피술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마무리에는 애써 눈(카메라)을 감거나 하늘 위로 올려버리니 "15세 이용가"임을 재확인하게 만듭니다.
2. 악당들도 세요?
이야기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야차"의 매력은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시원시원하게 밀어붙이는 것일 겁니다. 뻔히, 예상되지만 아는 맛이 무섭다고 그렇게, 주인공 "야차"는 이를 보여주지만 어째 캐릭터가 모호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미, <존 윅, 2014-19>시리즈와 <노바디, 2021>외에도 여러 작품들에서도 다뤄진 진부함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와 필적하는 악당이 없다는 것입니다.상생하시죠.
<존 윅, 2014-19>시리즈와 <노바디, 2021>의 주인공들이 압도적으로 그려지긴 하나, 이를 상대하는 악역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게 그려집니다. 레슬링 팬이 아니더라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의 주인공,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도 이런 캐릭터로 한 획을 그은 선수입니다. 선역과 악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피니시 "스터너"를 갈겨버리는 것이 그의 매력인데 이 중 가장 맛깔나는 상대는 자신의 회사 회장인 "빈스 맥맨"입니다. '회사의 대표'라는 타이틀도 있지만, 직원들에게 해고를 비롯한 폭언을 일삼는 그의 악독함 "스터너"를 맛깔나게 그려주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야차>에선 "설경구"분에 필적할 악당이 있었을까요?
3. 경쟁보단 나만 할 수 있는 거!
사실, 이를 말하기엔 <야차>의 모든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지강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검사 "지훈"은 수사를 하는 과정부터 모든 것들이 그와 반대점에 서있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까지 내미지만, 열띤 토론 대신 일방적인 설득으로 이를 성급하게 마무리 짓는데요. 이런 이유에는 영화 <야차>에는 이 2명 만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까라면 까야죠?
그를 돕는 "련희(북한)"를 비롯하여,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쥔 "수연", 그리고 악당 "오자와(일본)"까지 다양한 국가와 요원들은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워나갑니다. 무엇보다 해당 캐릭터들은 각자 분담한 영역들이 확실하여 출연 당위성을 내세우나 "야차"의 블랙팀은 '공기'에 가까울 만큼의 비중과 매력을 보여줍니다. 으레, 이런 멀티캐스팅 영화에선 해당 캐릭터들의 매력들을 나눠가며 이들의 출연 당위성을 정립시키는데요. 이들의 역할 자체가 겹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야차"도 보여줄 수 있으니 있어도 없는 캐릭터들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영화 <야차>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징크스를 끊어내지 못했네요.
※ 엔딩 크레딧에 후속편을 예고한 쿠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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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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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출변형에 당한 답정너
이 글은 영화 [헤레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거짓말 같은 변신이 아닐 수가 없다.
한때 멜로영화의 남주(남자 주인공) 역을 휩쓸던 남자가 헤레틱(heretic, 이단)이 되어버렸다니.
만우절 이벤트라며 로맨틱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이른 개봉을 할 때만 해도. 더 솔직히 얘기해서 여전히 뭔가 내게 해 줄 말이 있을 것만 같은 저 광고 속에서 촉촉하게 빛나는 눈을 볼 때만 해도. 뭐 끽해봐야 이번 주 주말에 시간 있니? 정도의 대사를 내뱉는 정도일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관에 들어가서 지켜본 그의 모습은 광고에서 보던 스윗함(?)은 온데간데없고, 그가 만들어 낸 미궁의 집처럼 앞뒤 꽉꽉 막힌 답정너가 되어 숨통마저 막을 듯한 기세로 영화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물론 각본을 먼저 쓴 뒤였겠지만, 두 소녀와 한 중년남자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제작하려면 제약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대립의 과정에서 액션적인 요소가 많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슬래셔 무비로 가자니 아직도 멜로 눈알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 이 남자는, 안쓰럽게도 간식 트레이 하나 드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역으로 캐스팅되어 버렸다.
덕분에 영화는 넓은 무대를 바탕으로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지도 않고, 점프 스퀘어가 난무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이 꼬리를 물지도 않는다. 러닝타임의 절반은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거실에서, 나머지는 골방(?)에서 진행될 정도로 세트 자체의 변경도 매우 단조로우며. 몸싸움이 아닌 말싸움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 모든 숨 막히고 답답한 제약들은 어쩌면 공포영화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단점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 하는 본질을 관통하는 가장 큰,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장치가 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끝없는 통제 속에서 살고 있는 구) 로맨틱 (서브) 남주가 믿음 하나만으로 뭉친 두 전도사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방법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긁기"이다.
리드는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에 이스트)에게 시종일관 불쾌함을 유발하는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그저 타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소통방식에서 오는 의아함에서 시작하더니 점점 그 강도를 높여 나중에는 대답조차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질문들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게다가 분명히 처음에는 궁금함을 가장한 순수한 질문에서부터 나중에는 강압적으로 진술을 요하는 태도로 두 수녀들을 압박한다. 그것도 여전히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유들유들한 말투로 빙긋 미소 지으면서.
불쾌함은 처음엔 향수처럼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나중엔 점점 쌓이더니 두터운 연기처럼 몸을 휘감는다. 어느새 주변에 가득한 연기에 당황하며 입을 틀어막는 순간부터는 이 모든 질문들이 쌓여 있는 공간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수녀는 안타깝게도 하나하나 설계된 이 공포 속에서 간신히 숨만 얕게 몰아 쉰 채 비상구를 향해 전진해야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계시록]의 민찬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인 신에게 우연의 당위성을 책임전가 한다면. 마이크로 컨트롤을 사랑하는 이 남자는 그 믿음 자체가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주장하기에 민찬 보다는 나아 보이다가도. 신의 존재 자체를 현미경 위에 올려 부관참시를 해놓고는 결국 그 빈자리에 자신이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는 외친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 스스로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리드는 두 수녀가 완벽하게 길을 잃은 순진한 양이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미로에 집어넣으면. 반드시 그 통로로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 자신은 또 한 번 신이 되어 우월감과 동시에 두 수녀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수녀는 기출변형에 가까웠고. 통제를 벗어난 뿔난 두 염소는 기세 좋게 그가 만든 세계를 박살 내며 리드에게 돌진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밑에 무릎 꿇고 고개를 떨어뜨릴 거라 생각했던 팩스턴 수녀는 스스로를 믿기로 마음먹은 채 그의 신념과 목에 배신을 찔러 넣었다. 게다가 거짓의 결정체라 생각했던 반스 수녀는. 거봐 네가 틀렸잖아.라는 듯 그에게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최후를 선물했다.
통제를 벗어나고 교리조차 소용없어지는 순간에. 리드는 자신이 그렇게도 우습게 보던 것들에 의해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았다. 참으로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마치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 어떤 A24의 영화보다도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영화는 다소 설명적이며 수많은 개념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설명하는 장면들에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들여다보는 데 있어 부담감은 없지만. 마치 이제 중학교 수준 영어 듣기를 마친 사람에게 아이엘츠 시험 리스닝을 들이미는 것 같은 속도감의 설명은 자칫 관객들을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가 땀 흘리게 쫓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좌식 생활에 익숙해져서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것 같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도 영화 중간중간에는 공포를 압도하는 밋밋함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채 버리지 못한 멜로 눈알을 굴리며 수녀들에게 서서히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휴그랜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화에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3회 성공
2. 너무 피곤해서 영화 보고 오는 길에 종점까지 갈 뻔함.
3.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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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붙잡을 지푸라기는
<머터리얼리스트(Materialists)>(2025, 셀린 송)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24년 만에 재회한 노라와 해성이 결혼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해성은 현재 연인과 조건이 맞지 않아 결혼하기 어렵고, 때문에 잠깐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노라와 아서의 결혼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노라의 그린카드를 위해 예정보다 이르게 결혼했다. 아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평했지만, 현실에서 노라와 아서의 서사는 가장 낭만적인 축에 속하지 않을까. 노라에게 있어 해성이 한국, 과거의 추억을 대표하는 존재였다면 해성에게 있어 노라는 환경과 조건을 따질 필요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만이 중요했던 시절의 상징이었는지 모른다. 물리적 거리라는 환경이 그들을 멀어지게 했음에도 말이다.
<머터리얼리스트>, 커플매니저 루시의 고객들 중 노라나 아서처럼 가난한 작가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결혼을 위해 누군갈 고용할 만한 형편이 되는, ‘내세울 만한’ 직업과 연봉, ‘봐 줄 만한’ 외모를 지녔고, 적당히 화목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이 매치컴퍼니의 주 고객층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에서 루시는 각자 내건 조건들을 바탕으로 ‘박스 체킹’을 하고 ‘리스크’를 고려해 두 사람을 엮는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삼각형이 노라와 과거-서울, 현재-뉴욕의 관계가 이루는 것이었다면, <머터리얼리스트>의 삼각형은 루시와 물질 기반 연애, 그리고 사랑을 잇는다. 영화가 블랙코미디의 톤으로 훑어내리는 ‘결혼 전제 연애’들을 살피다 보면, 단 하나의 공감대로 데이트가 가능한 <더 랍스터>(2015) 속 암울한 호텔이 오히려 낭만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농담이다). 셀린 송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언급하기도 했듯[Indiewire], 이같은 ‘결혼 시장’은 현대에 더 상업화/조직화 되긴 했으나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때문에 영화는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던 것일 테다. 오로지 ‘너’와 ‘나’, 꽃다발만이 함께하는 결혼을 묘사하는-아마 루시의 상상일- 오프닝 시퀀스는 다소 순진해 보이긴 해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짚는다.
여기에 이질적인 뉴욕의 풍경과 출근 전 공들여 스타일링하는 루시의 모습이 뒤따른다. 잠재적 연애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단 무의식적 환상을 심어 고객을 늘리기 위해서로 보인다. (실제로 루시가 자신을 대놓고 훑어보는, 정장을 빼입은 키 큰 남자에게 매치컴퍼니 명함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그는 후에 ‘20대 초반 여성과는 세대 차이가 나고 30대는 부담스러우니 27세의 여성과 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고객으로 재등장한다.) 연인들을 이어주는 게 일이면서 정작 자신은 연애에 회의적이다. 누군가의 결혼이 성사될 때마다 환호하며 파티하는 매치컴퍼니 직원들, 화면 한켠에는 정서적으로 동떨어진 루시가 있다.
이런 루시에게 영화같은(영화가 맞다) 우연이 찾아온다. 그는 짝지어준 커플의 결혼식에서 두 남자와 조우한다. 신랑의 형제 해리와 전 연인 존. 해리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큰 키에 준수한 외모,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 상속받은 경제적/심리적 여유. 웨이터로 일하던 중인 존의 조건은 루시가 익히 아는 그대로다. 좁은 아파트에 룸메이트와 살며 연기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생계를 유지하기 바쁘다. 다른 영화였다면 루시는 마법처럼 해리에게 이끌리고 존은 이들을 방해하는 찌질한 전남친 포지션으로 강등됐을수도 있다. 허나 주인공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편리하게도 부유한 ‘유니콘’인 로맨틱코미디의 법칙을 <머터리얼리스트>는 거부한다. 영화가 그리려는 건 짜릿한 삼각관계의 긴장이나 만족스러운 판타지가 아니다. 루시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혼을 ‘비즈니스’로 여기는 관점에서는 해리가 ‘객관적으로 좋은 옵션’이다.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조건을 따져 평가하곤 하는 루시가 해리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 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루시의 잣대는 본인에게 더 엄격하다. 해리와 데이트하며 끊임없이 ‘당신은 나보다 더 어리고 잘난 여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존과 대화하는 와중엔 속물적이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루시가 망설이는 이유는 아니다. 여기 통제되지 않는 변수가 있다. 루시와 존이 아직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해리는 돈 많은 나쁜 남자가 아니다. 존이 마냥 상냥하고 착한 남자인 것도 아니고. 해리는 자상하다. 도덕적 결함도 없다. 자기 소유 고급 맨션에서 혼자 사는 그는 대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그 여유는 곁에 있는 루시에게로 흘러넘친다. 낡은 아파트를 룸메이트와 공유하는 존의 아침은 매번 다급하고 신경질적이다. 루시와 존은 과거에 25달러 때문에 꽉 막힌 도로에서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해리가 ‘길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루시가 ‘나는 길에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대화는 상징적이다. 루시의 말대로 우리는 자주, ‘부모가 싸우는 방식을 물려받는다’. 경제적/문화적 자본이 넉넉하다 해서 꼭 해리처럼 우아한 남자로 성장하리란 법도 없다. 나이, 신장, 연봉, 직업 따위 물질적 조건은 마크가 범죄자라는 걸 말해주지 않았다. 소피가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된 루시는 수첩에 적어둔 고객 정보 리스트를 읽으며, 그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고 언급하며 보기보다 순진하지 않은 태도로, <머터리얼리스트>는 결국 붙잡을 만한 지푸라기는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루시가 청혼을 받아들이는 까닭은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가 존이라서다. 그가 ‘낡은 차가 고장날 때까지 너와 함께 드라이브해도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 거기에 영화는 희망을 심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얼마나 운좋은 일인가. 왜 선뜻 사랑을 택하면 안되나, 왜 스스로를 경멸하면서까지 물질적인 조건을 따져야 하나. 이를 뒤집어, 사랑하지 않는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꿔 볼 수도 있다. 영화는 (다분히 이성애 규범적인) ‘성공적인’ 결혼이 오랫동안 행복 서사의 필수 요소였던 세상에서, 인간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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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오-에루입니다.
공사가 다망하여 한동안 삐빼에 들르지 못하였다. 서랍 속에 들어있는 브런치 한 토막의 무게가 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생업의 굴레에 갇혀 정신이 피폐해질 때, 옆에 있는 사람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업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인지부조화의 순간을 이루어질 수 없는 폭력 장면으로 덧씌워 버리면 진정제 같은 효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화 <지옥의 화원, 2021>은 스스로를 만화 같다고 정의하는 액션 코미디 장르다. 제목에서 언급한 오-에루는 Office Lady의 일본식 줄임말로 직장 여성을 뜻한다. 사무 보조의 일을 하는 여성 사원들이 무림의 고수처럼 파벌을 만들고, 피 튀기는 대결을 마치 격투 게임처럼 펼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서사다.
영화 <지옥의 화원, 2021> 포스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영화 <지옥의 화원>은 2022년 7월에 개최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비경쟁부문 넷팩상(NETPAC AWARD,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하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한국만화박물관이 있는 부천에서 열리며, 두터운 관객층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장르영화를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올해도 49개국의 268편의 작품을 상영하며 영화를 보는 신선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였다.
영화 속 '오-에루'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차별화되었고, 생동감이 넘친다. 과장된 표정 연기와 정신없는 자막, 어설픈 동작 연결은 서브 컬처의 매력을 발산한다. 심지어 남자들이 등장해 자신들이 '오-에루'라고 우기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오-에루'들의 결투 장면
<광견, 악마, 괴수>
광견, 악마, 괴수는 미쓰후지 상사 '오-에루'의 이름 앞에 붙는 호다. 먼저, 광견은 영업부 소속으로 아담한 신체에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싸움에서 인정사정없이 덤빈다. 악마는 개발부 소속으로 과거에 폭주족 생활을 했고, 야쿠자의 영입 제안을 받은 적도 있는 실력자다. 제조부 소속의 괴수는 폭력 전과로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들은 사내에서 자웅을 겨루고, 타 회사에서 결투 신청이 들어오면 이에 응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실력을 뽐낸다. 물론 '오-에루'의 무협에서도 우물 안 개구리들이 강자를 만나 좌절하는 내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악마와 괴수
<병풍은 싫어, 주인공이 될래>
란과 나오코는 미쓰후지 상사의 동료로 성격이 잘 맞아 단짝처럼 지낸다. 업무를 하다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서로 상의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러 같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묘한 경쟁 기류가 포착된다. 친절한 전화 응대, 신속한 문서 복사, 핸드백 조절 등 '오-에루'의 업무 스킬을 향상하면서 싸움 실력에 기품까지 겸비하기 위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본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타고 태어난 사람을 이기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에 병풍으로 전락함을 수용하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싸움을 잘하면 정말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오코와 란
일본 특유의 회사 문화와 '오-에루'가 아닌 다른 동료들의 모습에서 간혹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묵직한 타격 사운드로 스트레스를 날릴 수도 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취향이 갈릴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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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사분면 위의 점으로서
DIRECTOR. 산드라 코구트
CAST. 아드닐슨 페레이라, 에스텔라 마리아 드 올리비에라, 넬리 벨렘, 후테 사르디냐
SYNOPSIS. 2023년 1월 8일 의회·대법원 점거 사건과 대선을 앞둔 브라질의 격변의 몇 달을 담은 이 영화는 그 과정에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두 개의 평행 세계를 탐구한다.
국제무대에서 신흥 세력으로 평가받았던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 현장이 있다. 결과는 49.1%와 50.9%. 낙선된 후보는 현직 당선된 몸이었지만 "부정 선거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선거 전부터 끈덕지게 폈다. 당선된 후보는 국기를 뒤집어쓰고 나온 반대파들에게서 "저 도둑놈 구속해라!" 소리를 들었다. 그가 되면 "우리 나라 베네수엘라 된다"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복지만 바라고 그를 뽑는다며 "포퓰리즘"이라고 욕을 먹었다. 그 후보의 지지자들은 "도둑놈" 소리가 나올 때마다 그 뒤에 "내 마음을 훔쳤다!"라는 멘트를 붙였고,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독재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낙선 후보의 지지자들은 "부정 투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주요 국가 기관을 습격하며 난동을 벌였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지만 우리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우리 나라 베네수엘라 된다" 같은 대사까지 겹쳤을 때는 실소가 조금 나왔지만.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왜 밑도 끝도 없이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조건적으로도 비슷한 게 없는 베네수엘라를 들먹이나 했는데 저기서 배웠던 것일까 의문을 잠시 품었지만... 아무튼 정말 우리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브라질 대선의 기록>이다. 영어 원제는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의 하늘에는(At this moment, in this nation's sky)"이다. 이 두 제목은 둘 다 탁월한데, 대선 캠페인에서 시작해서 실제 선거가 완료되는 시점까지를 담고, 선거 불과 몇 달 후 낙선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법원과 국회를 습격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준다. 당선된 룰라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 보우소나루의 당선을 위해 기도하던 지지자까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1인칭 의견이 펼쳐지는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 속 보우소나루 지지자 페레이라의 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 서로 너무 달라서, 같은 나라에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역시나 익숙한 이야기다.
브라질 정치의 지형도를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위험해 보이는 순간들이 여러 번 포착된다. 반대파가 "폭죽을 쏘는 척 총을 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고 긴장하고, 또 다른 이들은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 손을 맞잡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를 굳건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더니 정작 결과가 나오니 "군부가 쿠데타라도 벌여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육군 본부 앞을 찾아가 조국의 운명이 당신들에게 달렸다며 쿠데타를 벌이라고 농성 비슷한 것을 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으며, 우리 나라부터 남미까지 군부 쿠데타로 흘린 피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할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알고 보니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가 군부의 쿠데타를 옹호한 이력이 있었다.
이들이 지지한 후보 보우소나루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고, 현직 대통령이 1회 연임할 수 있는 브라질 선거법 특성상 상당히 유리한 자리에 있었다. 다만 상대 후보가 전설적인 사람, 바로 그 룰라였다. 지식채널e 같은 곳에서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 하는가"라는 명대사와 함께 성공적인 정책들로 놀라운 지지를 얻었던 그의 이야기를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고, 후임자와 관련해 여러 사법 스캔들에 얽매이긴 했으나 그 또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위법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면서, '사법 쿠데타'의 피해였다는 평가가 더 앞서는 상황이다.
군을 투입해서라도 룰라를 구속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라는 그 지지자들의 요구는 의아한 구석이 있다. 비슷한 생각을 우리 나라 네이버 댓글들을 볼 때마다 했다. 구속은 헌법이 규정한 권리의 제한이므로, 헌법 37조 2항에 따라 법률 요건에 의해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 경우에도 본질적인 부분은 제한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70조는 구속의 사유를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 인멸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분 상해죄로 "구속하라!"를 외친다. 하도 구속 당한 사람이 많아서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묻고 싶었다. 구속하라고, 군을 투입해서라도 사회 질서를 유지하라고, 외치는 그 소리들이 무엇을 제한하라는 뜻인지를 생각해 보았나요. 그 제한이 과연 본인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 자리에, 당신들이 원하는 가치들은 과연 당연히 지켜질 거라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도 안타까움이 인다. 그들 또한 혼란스럽다. 그들은 진심으로 부정 투표를 우려하고 있고, 이 문제가 '블랙박스'를 공개하면 해소될 일인데 왜 공개하지 않아서 의심을 사냐고 묻는다. 전자 투표기 안에 '블랙박스' 같은 건 없다는 말 앞에, "대체 우리가 같은 나라에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누구 당선되면 우리 나라 망한다'고 걱정하며 태극기 뒤집어쓰고 집회에 나가시는 어르신들 또한, 진심으로 나라를 우려하고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이 망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두 집단 간의 대화가 너무 요원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같은 상황을 두고 해석이나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랐다면, 그래서 성장 중시vs분배 중시, 자유 중시vs복지 중시 등 교과서적으로 요약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냥 상황을 팩트로 인식하는 내용 자체가 달라져 버리니 합리적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 상대방의 말이 날조로 보이니까. 실제로 양쪽에서 하는 문장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졌나.
굳이 올해 전주에서 본 영화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정치 지형도를 봐도 이미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나라가 많아 보인다. 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갈라치기로 손쉽게 표를 거두려던 정치인들과 이들의 나팔수가 되어 버린 언론의 탓을 하고 싶은 동시에,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짓는 마음, 벽을 세우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은 아닌지. 해결책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경청은 불가능해 보이긴 한다.
이 영화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이라는 가로 축으로, 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세로 축으로 담아 좋은 사분면이 되어 준다. 도저히 남 일처럼 보이지만은 않는 브라질의 사분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마음들에 더 공감이 가는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이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사분면 위에 어떤 점으로 위치하고 있는가. 다른 지점의 점으로 이어지려면 우리에게선 어떤 선이 뻗어 나가야 하는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4 13:0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423)
2025.05.06 14:00 CGV전주고사 1관 (상영코드 621)
2025.05.08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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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인질, 올드, 언더그라운드, 팜스프링스, 남색대문)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3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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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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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타이거 우즈> 공식 예고편
타이거 우즈의 흥망성쇠와 함께 장대한 컴백을 공개한다. 미국 문화, 인종문제, 인간의 본성, 아버지와 아들, 대중이 명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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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이프라인> 2차 예고편
목표는 하나, 목적은 여섯!
화끈하게 뚫고, 완벽하게 빼돌려라!손만 대면 대박을 터트리는 도유 업계 최고 천공기술자 ‘핀돌이’는
수천억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거대한 판을 짠 대기업 후계자 ‘건우’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빠져 위험천만한 도유 작전에 합류한다.
프로 용접공 '접새', 땅 속을 장기판처럼 꿰고 있는 '나과장',
괴력의 인간 굴착기 '큰삽', 이 모든 이들을 감시하는 '카운터'까지!
그러나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들
그들의 막장 팀플레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