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0-06 11:48:16
[BIFF 데일리] 노동계급 소시민에게 구원의 모습은 어떠한가
영화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리뷰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Kike Will Hit a Home Run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Korea/2024/97min
*시놉시스
영태와 미주는 작지만 아담한 월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식당을 같이 운영하기로 했던 영태의 동업자 선배가 갑자기 약속을 깨뜨린다. 영태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고 미주가 혼자 남는다. 미주는 영태를 기다리며 자신도 열심히 살아간다.
박송열 감독의 전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엔딩신에서 받은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노동계급 소시민 남자는 응당 분노해야 할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가지만, 화를 표출하는 대신 분을 삭인 후 돌아선다. 이 장면의 정서는 패배감, 울분이라기보다는 구원이다.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을 지속 가능케 하는, 기묘한 낙관의 느낌을 전하는 체념으로서의 구원 말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거창하고 영웅적인 행위로서의 구원과는 거리가 먼 박송열표 구원론의 인상적인 각인이었다.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다음 이야기라 할 만하다. 등장인물이 같은 것뿐 아니라 주제 의식과 메시지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영태, 미주 부부는 여전히 퍽퍽한 생활을 하는 중이지만 이전보다 아주 조금 상황이 나아진 듯도 하다. 새로 들어간 월세집은 이전에 살던 집보다 더 나아 보이는, 임신을 계획 중인 두 사람이 터전을 닦기에 퍽 적절한 공간이다.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나갈 미래의 가능성에 들뜬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한 기대조차 늘 배반당하는 것이야말로 노동계급 소시민 삶의 특징이다. 영태는 동업을 하자는 선배와의 일이 틀어진 후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더는 수업을 할 수 없게 된 미주 역시 여러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으기 위해 분투한다. 전작에 이어 소시민적 고난과 애환이 펼쳐진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들이 마주한 고난의 스케일의 크기를 ‘축소’한다. 몇 년 전에 빌려준 50만 원, 300만 원이 필요한 동생, 미주에게 3만 원을 요구하는 영태……. 연일 부동산 가격을 두고 쏟아지는 뉴스에 비하면 주인공들이 울고 웃는 화폐의 단위는 지극히 ‘초라’하다. 이렇게 적은 금액에도 삶이 흔들리는 사람들의 영화적 환기는 모두가 공유하는 경제적 상승 욕망이 비가시화한 실재하는 삶의 양태를 드러내며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힌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비연속적인 장면, 독특한 리듬의 대사와 연출이 연달아 이어지는데도 박송열의 영화가 지독히 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이유다.
노동계급 소시민은 작디작은 체념을 체화하는 일상을 산다. 영화는 그 원인이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적대적 계급 현실이 영태와 미주가 겪는 고난의 원인이라는 점이 전작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동계급 소시민을 위한 정치적 요구가 직접 드러나는 장면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영태와 미주가 겪어야 할 고난이 커진 만큼 영화의 유머도 더한층 능청스러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박송열 감독 영화의 특이점이다. 일상적 고난은 이어지고 영태와 미주의 현실은 점점 꼬여만 가지만 두 사람은 결코 비통함, 원통함, 격렬한 울분을 표하지 않는다. 언제나 있어온 일이라는 듯 가벼이 체념한 후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며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노동계급 소시민이 격렬한 감정으로 적극적으로 모색할 변혁은 도래할 국면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 상태로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체념하고 포기하고 한숨 쉬면서도 일상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양식(樣式)이 필요하다. 박송열이 자기만의 개성으로 포착하고 벼려낸 영화 속 이미지는 모두 이곳을 향한다.
박송열의 영화에는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이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고, 근근이 이어지는 그들의 삶이 대체로 비관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결코 그에 완전히 잠식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낙관이 깃들어 있다. 부동산 투자업에 실패한 영태와 유산한 미주에게 홈런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심지어 섹스 시도에서조차 격렬함을 소거한 채 느긋이 서로의 몸을 포개는 엔딩 장면은 두 사람에게 홈런이 ‘대박’이나 ‘인생 역전’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 자체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우리는 이를 구원에 대한 소시민적 감각이라 부를 수 있을 터다. 모두가 고개를 꺾어 ‘위’만 바라보며 자기가 발 디딘 ‘아래’를 보지 못하는 지금, 박송열이 견지하는 노동계급 소시민의 일상적 구원의 태도는 무척이나 귀하다. 그리고 긴요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동계급 소시민의 삶을 다루는 박송열의 작업이 계속 이어지기를, 그가 아키 카우리스카미의 스타일과 주제를 한국에서 계속 펼쳐내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 상영시간
10-05/20: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06/20:00/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09/16:3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Relative contents
-
- 따뜻함 뒤의 악의, 두 소녀가 갇힌 집
할리우드 제작사 A24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회사다. <유전>, <미드소마>, <펄>처럼 감각적인 공포 영화를 선보이는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언컷 젬스>, <더 웨일> 같은 드라마 장르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오락성과 작품성 중 하나만을 골라 집중하기보다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점이 A24의 강점이다. 그래서 A24의 로고가 뜨는 순간,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는 4월 2일 한국에 개봉 예정인 <헤레틱>도 그런 A24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나 피 튀기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A24가 제작한 영화 중 7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나, 정작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틱>은 두 명의 소녀 선교사가 외딴 지역에 사는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늘 그렇듯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 애쓰지만, 비오는 날 만나게 된 리드의 집은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거실의 불이 마음대로 꺼졌다 켜지고, 문이 잠기거나 창문이 어딘지 모르게 작고 답답해 보이며, 집주인 리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쩐지 기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첫번째 감정] 미스터 리드의 따뜻함
첫인상에서 리드는 순수하고 인자한 노인처럼 보인다. 팩스턴(클로이 이스트)과 반스(소피 대처)가 노크를 하자마자 그는 문을 활짝 열고, “얼마나 날씨가 험악하냐”며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감미로운 차와 파이를 내오며, 별안간 찾아온 두 선교사를 흔쾌히 환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누군가가 방문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소녀들은 ‘이 집에서 포교 활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나 리드의 친절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숨어 있다. 처음에는 소녀들의 종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질문이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교리나 신앙에 대해 묻는 것 같지만, 문득문득 끼어드는 리드의 말에는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이때 팩스턴과 반스는 말은 이어가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관객 역시 리드의 웃음 뒤편에 감춰진 음산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리드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처음엔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해석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마치 미로 같다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미소와 구불구불한 주름 사이 어디선가 악의가 비죽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이처럼 리드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라는 첫 이미지를 무기로, 두 소녀를 천천히 자기 세계로 끌어들인다. 관객에게도 그 과정이 기이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이는 휴 그랜트의 섬세한 연기가 만들어낸 섬뜩한 온기 덕분이다.
[두번째 감정] 반스의 의심
두 사람 중 먼저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쪽은 반스다. 팩스턴보다 한결 냉철하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스는, 리드가 내놓는 말들에 무언가 꼬투리가 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다. 영화는 반스가 아주 독실한지, 혹은 단지 친구를 돕기 위해 전도 활동을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상대적으로 세속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의심부터 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리드의 대화가 알쏭달쏭해질수록, 반스는 하나씩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조도가 계속 바뀌는 집 안에서 ‘혹시 우리가 갇힌 건 아닐까’라는 경계심을 키워나간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온 신앙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괴상한 현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이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이 단순한 신앙적 호기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인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의심이 모든 문제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이상한 낌새를 잡아도, 함정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반스는 분명히 “이 집은 위험해”라고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탈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리드가 던지는 미끼에 말려들면서, 불신이 불신을 낳고 갈수록 꼬여만 간다. 그렇다고 반스가 완전히 패닉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은 바로 반스이며, 관객은 그녀의 시선에 의지해 이 집의 이면을 함께 탐사하게 된다.
[세번째 감정] 팩스턴의 믿음
팩스턴은 두 소녀 중 좀 더 신앙심이 깊은 캐릭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진심으로 종교에 귀의했고, 그 믿음으로 포교 활동을 해내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리드의 호의에 별다른 의심 없이 순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반스가 불안감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팩스턴 역시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팩스턴은 가장 마지막까지 신앙적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려 든다. 반스가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면, 팩스턴은 종교적 신념을 통해 “끝까지 견디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이런 상반된 접근 덕분에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팩스턴이 보여주는 호기심과 집착은 더욱 흥미롭게 부각된다.
결국 팩스턴이 맞닥뜨리는 마지막 시점에서는, 리드가 유도해온 괴이한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차분하고 약해 보이던 팩스턴이 어떻게 반격에 나서는지를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과연 어떤 국면을 열어줄지, 그리고 그 믿음이 리드의 끊임없는 조작과 통제를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관객은 팩스턴의 시선에 몰입하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하게 되는 새로운 호러영화
<헤레틱>은 겉으로 보면 “종교와 신앙의 충돌”을 다룬 호러 영화로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리지널과 표절’에 대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소재—모노폴리와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의 역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립(Creep) 노래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설정—는 마치 하나의 ‘보드게임’을 펼쳐두고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집 안 곳곳에 배치된 기묘한 창문, 눈부실 만큼 화려한 벽지 등은 관객에게 소름 돋을 만큼 치밀한 미술 설계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 밀실 안에서 “이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질문이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예술, 창작, 인간관계 전반에 해당하는 주제로 확장된다.
특히 휴 그랜트가 맡은 리드 캐릭터는 이전에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영화 속에서 보여준 “스윗한 남자”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노팅힐>의 사랑스러운 남주인공, <웡카>에서 보여준 유쾌한 움파룸파의 일면이 여기서는 광기 어린 악역으로 돌변한다. 그의 많은 주름살이 처음엔 인자해 보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미로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 이중성에 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괴이한 플레이를 하는가”라는 의문이, 극의 긴장도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동력이다.
함께 출연하는 소피 대처는 <컴패니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이번에도 반스 역으로서 차분하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주며, 팩스턴 역의 클로이 이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두 소녀의 미묘한 대비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견인하는 만큼,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매끄럽게 형성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헤레틱>의 완성도에는 쟁쟁한 제작진도 한몫한다. 먼저 감독 스콧 벡 & 브라이언 우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각본을 맡아 호러 장르에 확실한 흥행력을 입증한 듀오다. 밀실 구조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연출, 사소한 디테일을 공포의 장치로 변환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촬영감독 정정훈은 <올드보이>, <웡카> 등을 통해 독특한 화면 미학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밀폐된 공간과 화려한 미장센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미술감독 필립 메시나는 <오션스> 시리즈의 세련된 스타일에 더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집을 지옥의 한 단면처럼 형상화했다. 이처럼 현장감 넘치는 세트 디자인과 공포를 야금야금 스며들게 하는 촬영 기법이 결합돼, 관객은 마치 보드게임 속 말을 움직이듯 기괴한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종합해보면 <헤레틱>은 단순한 호러영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종교와 믿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창작과 표절의 문제, 두 소녀의 우정과 의심, 그리고 휴 그랜트가 선사하는 서늘한 이중성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뒤섞여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A24 특유의 심리적 공포가 흐르니 “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꼭 챙겨볼 만하다.
4월 2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평소 A24가 만든 영화들을 좋아했다면 <헤레틱>도 분명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만약 기존 점프 스케어 위주의 공포영화가 식상해졌다면, 이 밀실 스릴러의 서늘한 재미를 통해 새로운 공포의 영역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집 안 가득 퍼지는 의심과 믿음의 대립, 그 끝에서 기다리는 무언가는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 묵직하다. 영화를 본 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신념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본 포스팅은 마케팅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 돌고 돌아 마음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행복과 마주한다.
1977년, 일본의 야마다 요지 감독은 홋카이도를 풍경으로 한 로드무비, <행복의 노란 손수건>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지와의 조우>로 우주를 떠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우주선이 날아다닐 때, 한적한 홋카이도에서는 빨간 차 한 대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던 것이다. 그 시대의 고뇌와 청춘의 방황을 담은 이 영화가 자그마치 50년의 세월을 건너 2025년 한국의 극장에 걸렸다. 그렇다면 50년이 지난 지금, 현시대의 관객은 <행복의 노란 손수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은 21세기의 시점으로 바라보기에 불편한 요소들이 많다. 일단 주연 중 한 명인 킨야의 캐릭터성 자체가 ‘변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 그러하다. 킨야는 영화의 시작부터 직장에서 쫓겨나 무능력한 상태로 차를 한 대 뽑는다. 차를 뽑은 이유는 단순히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다. 이런 목표 의식에 알맞게도 킨야는 홋카이도에 가는 길, 그리고 홋카이도에 도착한 이후 마주한 모든 여성에게 작업을 건다. 그때 넘어온 아케미는 킨야와 여행하는 과정 속 몇 번이나 성추행을 당하고, 심지어 성폭행 직전까지 다다른다. 분명한 거절에도 계속 들이대는 킨야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유머를 형성했다는 점, 유사쿠를 영원히 기다리는 미츠에의 수동적인 여성성 등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불편한 요소들이 이 영화에는 분명 존재한다.
또한 미츠에의 남편인 유사쿠는 영화의 진짜 주연이라고 볼 수 있는 역할인데 범죄자다. 유사쿠에게는 정당 방위적인 사유가 있지도 않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 생활을 하지도 않는다. 물론 기다리던 아이의 유산이라는 촉발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술에 취한 채 취객과 시비가 붙어 취객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인 무뢰한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언뜻 유사쿠는 호전적이고 마초적인 성격으로 킨야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선지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못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부인에게도 돌아갈 자신이 없는 겁쟁이다. 영화는 그런 유사쿠에게 멋대로 면죄부를 선사한다. 이로써 범죄자 미화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적 차이를 인지하되, 그것에 매몰되진 말아야 한다. 영화의 한 가지 요소일 뿐인 스토리에 묶여 영화의 진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야마다 요지는 킨야를 결코 미화하지는 않는다. 킨야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해야겠지만, 영화 속 킨야는 항상 벌을 받는다. 불순한 의도를 품을 때마다 킨야는 넘어진다. 나막신이 벗겨지고, 턱에 걸려 넘어지고, 게에 찔리기도 하고, 차에 끼어 자빠지기도 한다. 유사쿠도 그러하다. 유사쿠에게 행복은 불확실하고도 먼 이야기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이고 고사한다. 죄책감과 후회스러운 그의 마음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관객에게 지겨울 정도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가진 진가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진가를 관객이 함께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여정이라고 보았다. 삶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관객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갑작스럽게 마주한다. 그들의 일평생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행복만 담겨있지는 않다. 차가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 좋은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따뜻한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기도 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끈끈해지기도 한다. 길을 떠날 적 홀로 자리하던 외딴 벚나무는 어느새 무리를 지어 일행을 반긴다. 오직 마지막 엔딩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볼 수 있을만큼 아름답게 펄럭이는 장대한 노란 물결은 이들을 섬세하게 위로한다. 그제야 우리는 방황해도 괜찮다고 말하게 된다. 돌고 돌아 마음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행복을 마주하게 된다.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행복의 노란 손수건> 시사회에 참석한 뒤 작성하게 된 리뷰임을 밝힙니다.
-
- 투명한 물방울로 그린 세월의 흔적들
이 모든 게 끝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다. 끝이 있다는 말.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는 막연함은 참 답답하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데 명확한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끝이 있다는 것.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삶이란 게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 봐'라고 썼던 글 한 편이 생각난다. 좋은 것 맞나? 그렇게 마지막 날이 오면 세상을 이해할 날이 올까? 일단 내가 '작가님' 소리 듣고 싶어 벌였던 오만 짓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 생활 동안 왜 키보드를 놓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 것들은 이해하고 말고 가 없다. 그냥 내가 그런 삶을 사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 벌이는 일이다.
문득 이런 나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띠리리링. "이 작가의 이상향은 이동진 평론가지만 현실은 그냥 한국의 씨네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라는 문장을 내 마음 안에서 짓는다. 아니거든! 나 그래도 원고료도 받아보고 방송도 나와보고 조회수도 잘 나오거든! 시나리오 봐달라는 메일 온 적도 있거든! 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나는 이미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어차피 남의 시선(들)중 하나 아닌가? 뭔가를 써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결국 중요했던 건 '나 자신이 왜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나'에 대한 문제였다. 그렇게 나도 모를 동기부여에 탐구하는 것이 예술하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두 예술가가 영화로, 각자의 마음 안에 들어온 구멍 하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와 지난한 세월이라는 구멍이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다.
전설적인 아티스트
1929년. 김창열 화백은 그 해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치하. 어린 시절 서예를 비롯한 미술을 배우며 보냈던 유년기. 화백이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만 보고 자랐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벗어났던 일제의 수탈을 뒤로하고, 한국전쟁까지 겪었다. 곯고 곯은 김 화백. 그렇게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겪으며 방황하던 화백은 서울과 제주,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한다. 동료 예술가 백남준과 시간을 보내다 캔버스 뒤편에 맺힌 물방울을 보게 된다.
그렇게 50여 년의 화가 인생을 물방울에 투영하는 김창열 화백. 1970년대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데 도화선이 됐다. 백남준과 함께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끄는 트렌드세터가 된 김창열 화백. 예술가로서 입지전적인 명성을 얻은 그지만 그의 내면은 복잡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왜 물방울을 고집했는지, 노자를 신봉하면서도 예술가적인 명성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좋고 밝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아버지가 아닌 달마대사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인물이었는지 등등. 아들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가 견뎌내야만 했던 삶의 지난함 들을 탐구해보고자 했다.
재미있는 영화
난 다큐멘터리를 별로 안 좋아했다. 어렸을 때 투니버스 볼 시간도 없는데 다큐멘터리 볼 시간이 어디 있어? 그런데 엄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종종 보곤 했었다. "엄마~ 돌리면 안 돼요?" 징징댔던 나. 그리고 거의 20여 년이 지난다. 20대 중반이 된 나. 역시 나이가 들면 취향은 바뀌는 것일까? 이제는 다큐멘터리에 무덤덤해졌다. 잔잔한 것들도 곧잘 봐서 그런가 싶었다. 나에게 여전히 다큐멘터리는 그냥 잔잔한 영화 장르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잔잔하지 않다. 잔잔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시각효과 구성이 좋았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돌이켜보는 아들의 시각이다. 당연히 부친 김창열 화백이 화가니까 그의 작품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 장르마다 변환에 효과를 부여한 시각적 쾌감이 대단하다. 어떤 시퀀스에 그림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굉장하다. 영화에서 제시된 그의 삶을 스르륵 돌아보면서, 굉장히 많은 물방울의 수가 지나간다. 그럼 아련해진다. 아버지가 지나왔던 삶에 아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느껴진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 물방울 그림을 다시 구조화시키는 방식은 굉장히 탁월한 리메이크 노래를 듣는 느낌이다. 한 장르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이와 살짝 다른 지점이지만 '왜 아버지(김창열 화백)는 물방울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을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히 김 화백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과거를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거랑 관련이 있으니까. 감독은 어떤 장면과 나레이션으로 이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에세이를 읽으면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이 시퀀스는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까지 다 계산한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이유를 듣고 나면 김 화백의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전적으로 아버지를 소재로 했지만 왜 김오안 감독의 작품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시퀀스였다. 이는 김창열 화백의 자의식 탐구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영상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장르에서 가져올 수 있는 특징을 잘 뽑아낸 셈이다.
두 번째. 장면마다 촬영을 잘했다. 김창열 화백 얼굴 나타나는 클로즈업. 눈 오는 설산. 화백이 자 그리고 선 찍 긋는 장면. 이런 장면 하나하나 구도도 잘 잡았고 색감도 예뻤다. 이 영화가 눈이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영상미의 아름다움도 한몫했다. 이 영상미는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심오하게 들릴 수 있는 한 인물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딱딱 이해가게 배치한 좋은 연출 방식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했던 것이, 과거의 뉴스 자료를 갖고 온 방식이었다. 아니 2022년에 보는 데도 어제 찍은 것 같은 동영상들이었다. 이런 거 어떻게 가져왔대? 또 앞 두 가지와는 좀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스릴러, 코미디 장르가 연상되는 장면도 영화 곳곳에 있으니 감독님이 영화를 많이 보신 것 같은 느낌이다.
깊은 자의식을 들여보다
뭔가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두우면 작품이 쉽게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일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며 느낀 건 '생각 많아서 짜증 나겠다'였다. 이렇게 복잡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자기의 혼을 드러내는 거겠지. 비단 라스 폰 트리에뿐만 아니라 박찬욱, 봉준호 감독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속할 수도 있다. 첫사랑이라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것(<박쥐>), 모성애의 방향에 대한 탐구(<마더>) 둘 다 어두운 감정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 역시 어두운 내면을 소재로 삼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
예술가에게 있어 소재란 무궁무진하다. 온갖 것을 가지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 예술가다. 영화는 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징을 다뤘다. 아버지가 겪어온 어둠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버지가 추구했던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그 삶이 남기고 간 건 무엇인지 등등을 탐구하며 아버지가 예술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하며 제시한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앞에서도 썼듯 이것은 아들 김오안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에는 김오안이라는 예술가가 생각하는 영화란 무엇인가? 도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인 메타 영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영화가 전해주는 시각적 재미 중 하나가 여기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엥? 이게 영화가 되네? 그리고 꽤 잘 만들었네?' 싶은 것이다. 이런 예술가적 창의성은 관객에게 영향을 주기 충분하다. 비단 내가 지금 쓰는 글도 한 종류의 예술이다. 이런 걸 좋아하고 한 30대가 되고 나서도 하고 싶은 나의 입장으로서도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방법론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그래서 다른 분들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상영관에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다음 주 금요일 14일에 VOD로 출시된다고 하는 것 같다. 뭔가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의 방법론이 재미있을 것 같다.
-
- [넷플릭스] D.P (2021)
* 본 리뷰는 <D.P.>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P. (2021)
연출: 한준희
출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등
장르: 드라마
원작: 레진코믹스 웹툰 <D.P 개의 날> (김보통)
공개일: 2021.08.27
방송 횟수: 6부작
탈영병 잡는 D.P조의 스펙터클 활극
제 103보병사단 헌병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된 '안준호 이병(정해인)'.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살았기에 시종일관 표정에 그늘이 진 상태며 선임이나 상사를 상대로도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는 불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성격 탓에 자대 배치를 받는 순간부터 짬질로 악명 높은 '황장수 병장(신승호)'의 타깃이 되고 선임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이렇게 악몽 같은 군생활이 시작되려던 찰나 준호의 예리한 관찰력이 현병대 수사과의 '박범구 중사(김성균)'의 눈에 띄게 되면서 탈영병을 잡는 'D.P'조로 발탁된다. 특유의 예리한 촉과 복싱으로 다져진 전투력으로 'D.P'조원으로 최적화된 활약을 펼치고, 퇴원 후 'D.P'조에 재합류하게 된 '한호열 상병(구교환)'과 티격태격 하면서도 환상의 호흡으로 탈영병들을 잡는다.
한국 군대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
어제 공개된 "D.P."가 공개와 동시에 호평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한국 군대의 부조리와 악폐습, 그리고 조직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 때문이다. 애초에 군대를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D.P"는 군대를 미화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그리지 않고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 고증에 신경을 기울이며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적당한 공감을 넘어서서 PTSD를 일으켰다고 보는 것에 좀 더 가깝다.
극은 2014년의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필자 본인은 2018년 군번이기에 완벽한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극에서 그려진 장면들보다는 제법 생활할 만한 공간에서 군생활을 보냈기 때문. 하지만, 융통성 없고 앞뒤 꽉 막힌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특성, 병사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실적과 부대의 평판만을 중시하는 간부, 그리고 후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며 괴롭히는 선임병들의 모습은 내게 남아있는 군에서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D.P"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극단적인 편이라 현실에서 이 정도 수위의 사건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절대 과장한 스토리가 아니라는데 확신할 수 있다.
무거운 스토리 속 돋보인 구교환
한국 군대, 그 중에서도 탈영병을 소재로 한 작품인만큼 전반적인 스토리가 무거운 편이고 인물들의 감정도 격하고 어둡다. 주인공 '안준호 이병'마저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기 때문에 자칫 작품이 심각한 방향으로만 흐를 가능성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유일하게 깨발랄한 모습으로 부드러운 윤활제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 준 '한호열 상병'역의 '구교환'이 등장하면서부터 작품의 재미는 한층 더 올라가고, 속도감과 가벼운 템포까지 얻게 된다. 실제로 한호열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는 3회에서부터 극의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능글 맞고 유쾌한 한호열 상병과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안준호 이병의 대비되는 성격이 밸런스를 이루며 버디물로서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짤막한 에피소드 내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분업하여 이뤄지는 추격전은 꽤나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소재 자체만으로도 신선해서 충분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구교환'의 연기가 극이 호평을 받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불과 1년 반 전에 군생활을 마친 입장으로서 군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들이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6화에서 '조석봉 일병(조현철)'의 마지막 대사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군대가 바뀔 수도 있지 않냐는 한호열과 안준호의 회유에 수통에 적힌 날짜마저 1953년에 머물러 있는데 조직이라는 큰 단위가 바뀔 리가 있겠냐는 석봉의 대답. 현실적인 군 세태를 너무도 신랄하게 반영한 대사였다. 실제로 군대에서 병사들이 사용하는 군수용품은 최소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들부터 2000년대 이전 제품들까지 노후한 상태의 물품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사용했던 수통 또한 제조연도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라는 조직은 덮을 수 없을 정도의 수위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바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내 경험을 예로 들자면, 여름철 에어컨이 없는 초소에서 한 병사가 더위를 먹고 기절한 이후에야 비로소 에어컨을 설치해주었다. 결국 이러한 조직상의 특징 때문에 '석봉'과 같은 비극에 놓인 병사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되었고, '뭐라도 해야지...'라는 위험한 결심 하에 더욱 끔찍한 사고(e.x. 생활관 총기 난사)를 저지르는 참상이 발생한 것이다. 부디 군 고위 관계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병사들도 있겠지만,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톰 크루즈, 이 구역 낭만의 최종 수호자
6★/10★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만큼 세밀하면서도 정교한 미시 액션의 타격감을 가졌는가? 아니다. ‘007 시리즈’처럼 메인 캐릭터가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미션 임파서블’이 첩보 액션 시리즈로서 갖는 특장점은 뭘까? 바로, 그린 스크린 밖의 톰 크루즈다.
‘제발 그가 자연사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실제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첫 촬영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신이었다. 만약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다 사망할 경우, 바로 촬영을 멈춰 다른 장면에 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단다. 그리고 이 촬영 장면은 영화 홍보에 대대적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특이점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주인공 에단 헌트가 또다시 불가능한 임무를 맡았다. 물론, 여기서 ‘불가능’은 에단 헌트가 그 임무를 맡기 전까지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어떻게든 그는 자신이 맡은 바를 해낼 것이기에. 새로 만난 적은 실체가 없다. 그러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에단이 마주한 적은 ‘엔티티’라는 이름의 AI다. 에단의 싸움터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초 단위의 정보 싸움이 일상인 첩보 현장이다. 그런데 엔티티는 첨단 기술과 정보의 집약체 혹은 그 자체다. 에단과 동료들이 사용해왔던 기술과 통신망은 수시로 망가진다. 그들이 획득한 정보 역시 엔티티가 조작한 거짓일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스카이넷’은 인간을 통제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미래의 막연한 공포에 관한 장르적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카이넷이라는 상상력은 ‘현실’이 되었다. 온갖 AI가 쏟아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힘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액션이다. 이를테면, ‘본 시리즈’는 9‧11 이후 현실에서 발생한 ‘영화적 스펙터클’로 인해 충격을 받아 세계관이 흔들린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이슨 본의 물음에 기꺼이 동참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본 시리즈’의 정체성과도 같은 미시 액션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있다. 기존 블록버스트의 액션 스펙터클과 비슷한 시각성을 지닌 테러 장면과 대비되는 미시 액션은 테러에 대한 동시대 관객의 무의식적 공포를 달래주었고, 관객이 테러의 트라우마를 잊고 영화를 ‘편안하게’ 감상하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미션 임파서블’ 톰 크루즈의 CG 없는 고난도 액션은? 톰 크루즈의 액션은 영화에 어떤 장면이 나와도 그저 그린 스크린에서 찍었거니 하며 무심한 듯 반응하는 관객에게 새로운 긴장을 안긴다. 그가 고난도 액션을 소화할 때마다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경외 섞인 물음이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 AI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한 시대에, 톰 크루즈의 뚝심이 의도치 않게 동시대인의 불안을 달래주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 역시 아직은 ‘진짜’가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완성도 높은 CG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든 영화가 여럿이다. 때문에 어떤 장면을 CG 없이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영화를 고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어쨌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도 높은 장면을 선보여 관객에게 평가받으면 그뿐이다. 톰 크루즈가 배우로서 가진 태도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마케팅, 관람평이 온통 CG 없는 액션에만 집중된 현 상황이 의아한 건 이 때문이다.
영화가 그 자체의 매력이 아닌 출연 배우의 열의나 헌신에 기대 평가받고자 한다는 건, 영화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걸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꽤 긴 러닝타임 동안 내내 적당한 긴장감을 선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한 신선함이나 완성도를 갖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지금껏 우리가 봐 왔던 할리우드 첩보물의 전개와 장면이 익숙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린 스크린에서 편하게(?) 연기하는 배우와 대비되는 톰 크루즈의 장인정신(그리고 그가 위축된 인간에게 전하는 위로)과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별개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톰 크루즈가 이 구역 낭만의 최종 수호자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와 배우 톰 크루즈에 대한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 그의 장인정신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싶을 뿐.
-
- 당신이 놓쳤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7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어디까지 보셨나요?
여러분이 놓쳤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7편을 준비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넷플릭스와 함께 해보아요!
-
- 영화 노매드랜드 후기 / 제92회 아카데미 3관왕 /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 미국 중서부의 자연경관 / home이 아닌 house가 없는 노매드의 삶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노매드랜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
-
- 영화 <1승> 1차 예고편
감독 송강호X구단주 박정민X팀 핑크스톰 딱 '한번'만 이기자! [1승] 1차 예고편 공개‼️
-
- 영화 <플립> 재개봉 예고편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만난다는 무지개빛 첫사랑!
옆집 소년소녀의 귀엽고 설레는 반전 로맨스!새로 이사 온 미소년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직감한 7살 소녀 줄리.
솔직하고 용감한 줄리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마냥 부담스럽다.
줄리의 러브빔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를 6년!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받은 달걀을 쓰레기통에 버리다 들키고,
화가 난 줄리는 그날부터 브라이스를 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가신 그녀가 사라지자 브라이스는 오히려 전 같지 않게 줄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