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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AB2023-06-22 14:05:55

인생은 짧지만 깁니다

인생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짧은 러닝타임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혹여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몇 곡을 듣고 나면 아, 이 곡이 그 사람이 쓴 거였어? 라는 반응을 들을 수 있다. 영화나 음악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 유명한 '넬라 판타지아'를 작곡하고도 오스카를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기도 하다. 본인조차 평생 작곡한 곡의 수를 알지 못했을 만큼 수많은 곡을 작곡한 모리꼬네는 그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영화음악계의 대부였으며, 그런 만큼 모리꼬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모리꼬네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모리꼬네의 생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덕분에 관객은 그의 사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임에도 모리꼬네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모리꼬네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도 모리꼬네를 알았던 이들과 모리꼬네에 대해 잘 알았던 주변인 혹은 영화음악 후배들의 인터뷰로 가득 차 있다. 90세가 넘도록 장수했음에도 죽는 순간까지 영화음악을 놓지 않았던 모리꼬네의 음악은 2시간 3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장대했다. 영화는 빠른 속도로 모리꼬네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숨가쁘게 모리꼬네의 인생을 소개한다. 모리꼬네와 동시대를 살아왔던 토르나토레 감독에게는 모리꼬네의 초창기 작품들이 익숙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평균 나이대가 낮을 수밖에 없는 관객에게 영화 초반은 신선한 동시에 지루할 수밖에 없다. 서부영화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와 모리꼬네가 협업을 했다는 사실에(정확히는 그만큼 모리꼬네가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는 관객도 많지만 그만큼 레오네의 이름 자체가 생소한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모리꼬네의 인생 초반 업적도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다양한 관객을 배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던 히스 레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이 앰 히스 레저>에는 히스 레저의 인터뷰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았고, 짧았던 생애를 강렬한 불꽃처럼 살아냈던 그를 자세히 소개할 시간이 있었다. 히스 레저가 배우 이외에도 뮤지션으로도 활동했다는 것과 그가 연출했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고 무엇보다도 사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을 연기했을 때의 히스 레저를 파헤치며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조커 연기가 사인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요절한데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히스 레저의 필모그래피는 모리꼬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짧기에 영화는 여유를 두고 히스 레저라는 인물 자체에 깊이 다가간다. 반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모리꼬네 자체보다는 모리꼬네가 헌신했던 영화음악에 더 치중하며, 어느 한 곳에 방점을 찍는 대신 수많은 영화음악을 조금씩 맛보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관객은 모리꼬네의 수많은 음악 가운데 더 친숙한 음악을 한번 더 만나거나 미처 몰랐던 모리꼬네의 일면을 만나보는 경험은 하지 못한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다른 곳도 아닌 돌비관에서 시사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아마도 영화를 통해 '넬라 판타지아'를 위시한 아름다운 모리꼬네의 음악을 다시 한번 웅장한 사운드로 들을 수 있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영화는 모리꼬네의 기나긴 삶과 수많은 업적을 담아내느라 정작 그의 음악을 한 곡이라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한다. 비록 <미션> 속 '넬라 판타지아'가 달성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리꼬네가 오스카를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과 당시 모리꼬네가 느꼈던 심정, 그리고 오스카 회원들이 느꼈던 미안함이 담겼으나 이는 모리꼬네가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다. 모리꼬네가 순수음악 대신 영화음악을 택하는 바람에 음악계에서 인정받는 데 지난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 모리꼬네의 일생에 걸친 업적을 소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을까. 이후 영화는 결국 오스카가 모리꼬네에게 공로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그가 <헤이트풀8>를 통해 늦은 나이에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음을 소개하면서 모리꼬네에게 오스카란 무엇이었을까를 관객에게 의문으로 남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2시간 36분을 꽉 채운 인터뷰와 자료들로 인해 러닝타임은 숨가쁘게 지나간다. 또한 모리꼬네의 초창기 음악에는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평생에 걸쳐 영화음악에 헌신했던 그의 삶에 몰랐던 면이 있었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서부영화에 모리꼬네가 끼친 영향을 영화를 통해 접하고 나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게끔 만든다. 어찌 보면 그가 작곡했던 서부영화 음악들을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현시대의 감독들이 성장할 수 있었고, 결국엔 <미션>이 아닌 서부영화의 계보를 이은 타란티노의 영화를 통해 모리꼬네가 오스카를 수상했다는 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헐리웃뿐만 아니라 본국인 이탈리아 영화계, 때로는 왕가위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포함한 아시아 영화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리꼬네의 종착점이 시작점과도 같은 서부영화였다는 점은 다소 두서없어 보이는 이 영화 속에서 모리꼬네의 삶에 대한 힌트로 작동한다.


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모리꼬네처럼 평생에 걸쳐 한 분야의 업적을 수도 없이 쌓고, 또 장수했던 이는 많지 않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한 발짝 떨어져 모리꼬네의 삶을 관망하기보다는 친구로서 모든 면을 조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관객은 조금은 두서없지만 모리꼬네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찬사를 긴 러닝타임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CINELAB

출처 . https://brunch.co.kr/@screenholic/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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