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3-06-26 00:43:43
어쩌면 슈퍼 히어로 3부작의 또 다른 정점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포일러 없는 후기
내 사랑은 일단 이 지구에 없어
얼핏 들어보면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리는 듯 한 소리가 난다. 드러머는 그웬이다. 펑펑펑펑..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드럼에는 한탄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은 마일즈다. 스파이더우먼이 된 그웬. 그웬은 거미에게 물린 후로, 정확히 슈퍼히어로가 된 후에 스스로를 혼자라고 생각했다. 차원문이 열린 후에 만난 마일즈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마음이 잘 맞았던 두 사람. 사실 그웬에겐 첫사랑이 있었다. 이름은 피터 파커.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웬은 피터의 편이었다.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그웬과 피터. 그렇다고 해서 피터가 엇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피터.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아픔을 잊을 채도 없이 경찰인 아버지에게 살인범 누명이 써진다.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차라리 거미한테 물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 아버지도 속여야 한다. 여전히 외로운 그웬. 이런 입장에서 마일즈가 그웬 삶에 등장했다는 건 선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소극적이었던 그웬. 별다른 인사도 못한 채로 마일즈를 다른 차원으로 떠나보냈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었나? 갑자기 그웬의 지구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르네상스 벌처'가 이쪽 세상에 침입한 것이다. 출동하는 스파이더우먼. 분전을 펼치지만 쉽지 않다. 이때 낯익지만 어딘가 신선한 얼굴이 들어온다. 파마머리에다 임산부인데, 분명히 스파이더우먼이다.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인가? 그웬의 호기심은 곧 사실이 된다. 안녕! 그웬? 난 제시카 드루! 다른 차원에서 왔어. 또 다른 멀티버스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멀티버스에서 그웬이 생각지도 못했던 대환장파티가 열린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모험이 벌어질까?
숫자로는 4년 차
4년여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4년이면 뭔가 좀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멀티버스'와 '스파이더맨'이 익숙하다. 왜 익숙한지 따지기 전에 우선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시리즈의 1편이었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이 작품이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과 차별점을 가져 호평을 들었던 이유는 클리셰 뒤집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스파이더맨 시리즈 굉장히 익숙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코믹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사영화 시리즈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호러 장인 샘 레이미가 연출했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글쓴이 같은 90년대 후반생의 관객이라면 다들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기차를 멈춰서는 장면은 히어로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또 앤드류 가필드가 피터 파커를 맡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엠마 스톤의 추락신이 역시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톰 홀랜드가 주인공을 맡은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가장 최근작인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전 세계 히어로 무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스파이더맨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영화이기 때문에 시리즈의 필수요소 같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뿐일까?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근 몇 년간 영화판에서 핫했던 소재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준으로 2주 전에 개봉한 <플래시>, 올해 아카데미 7관왕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로키>가 그렇다.
전작 1편과 이 2편은 이 앞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특징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1편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의 캐릭터를 을 아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의 네 번째 리부트? 또 벤 삼촌 나오겠지? 빌런 벌처/닥터 옥토퍼스/일렉트로/미스테리오/그린 고블린/샌드맨/베놈같이 기존에 나왔던 캐릭터들 아니야? 보나 마나 히로인 또 죽겠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무조건 나올 거 같은데? 삼촌 어떻게 죽을까? 스파이더맨을 또 온 세계가 괴롭히겠지? 이거 전부 다 빗겨나갔다. 우선 1편의 메인빌런은 킹핀이다. 이 킹핀이 원래 북미에서 스파이더맨의 안티테제 중 하나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 대신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판에선 '데어데블' 시리즈의 빌런으로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바 있지만 그거 드라마 일일이 다 본 분들이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킹핀을 빌런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코믹스 바탕이었던 영화 전개의 디테일도 살리고 신선함까지 갖추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빌런 캐릭터를 변주하는 방식은 프라울러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라울러와 마일즈와의 관계, 그러면서도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어떤 공통점을 갖는 좋은 연출이 있었다. 이 외에도 멀티버스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선했다. 닥터 옥터퍼스가 누구야? 에 대한 부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서 튀어나온 스파이더맨의 세팅이 그렇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세명의 스파이더맨을 봤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도 스파이더맨이 인간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영화는 이것마저 깼다. 스파이더맨 누아르나 피터 포커 같은 캐릭터는 그냥 만화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색할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 장르니까. 이런 화술을 가진 1편은 가히 사람들에게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 충분했다.
2편인 본 작은 1편이 갖고 있던 장점을 그대로 승계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도입부쯤에 등장하는 벌처와 한 빌런이 그렇다. 벌처가 '르네상스 시대'에 그게 있었다는 상상부터가 신선하다. 이는 초반부 그웬 지구의 피터가 어떤 인물이었는가? 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빌런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확 뒤집은 셈이다. 이 두 세팅은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반복되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딜레마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빌런은 인지도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글쓴이도 이 영화에서 감독들이 가상으로 창조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빌런의 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기존 멀티버스 소재 영화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이 자체가 영화의 시각화와 분명하게 시너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이 빌런뿐만 아니라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 / 제시카 드루 스파이더 우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우먼은 각자의 명분이 확실하다. 이 덕에 인물의 개성이 죽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이 영화를 직접 보시길 바란다.
멀티버스 뒤집기
지난 아카데미에서 7관왕을 기록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는 멀티버스 상상력의 극한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핫도그가 손가락인 세상 묘사다. 또 뭐 모녀가 돌인 세상도 있고 나무인 세상도 있고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묘사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이야기의 구성이다. '에에올'의 핵심이 뭐냐? 그 모든 가능성을 감수하고 현재를 선택하겠다는 로맨틱함이다. 이는 곧 '내가 성공하더라도 현재가 소중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조부 투파키의 내적 세팅이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흑화 한 조부 투파키. 모든 가능성을 경험했다는 것은 시각적인 소재 '멀티버스'와도 이어진다. 이는 곧 혹시나 만약같이 '과거에 이렇게 되면 어땠을까?'를 붙여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모든 멀티버스에 모녀의 관계를 넣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비단 '에에올' 뿐만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플래시>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는 슈퍼히어로 완다가 다크 홀드에 의해 주화입마에 빠져 자기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고, 후자는 배리가 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에에올'과 유사하게 정해진 운명을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멀티버스를 풀고 있다.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멀티버스를 활용하는 방식에 감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왜 이 영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성립한다. 또 슈퍼히어로라는 장르 특성에도 충족한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생기는 철학적인 대립도 흥미롭다. 마이클 샌델이 공리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기차에 대한 비유를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이 비유를 어떻게 치환시켰는지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통통 튀는 전개
멀티버스를 영화에서 어떻게 풀었는지와는 별개로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는 아주 흥미롭다. 우선 이를 위해 미겔 오하라와 스팟,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어떤 스파이더맨'에 대해 쓸 수 있다. 3번째 인물은 등장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영화가 품고 있는 힙한 감성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스팟은 기존 마블 영화 다 합쳐서 가장 위협적인 빌런처럼 등장한다. 갖고 있는 능력은 다르지만 '정복자 캉'과 궤를 같이 하는 감이 있다. 이를 위해 시각적으로 스팟의 능력 묘사를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영화에서 굉장히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통통 튀고 힙한 시각화 방식에 기괴함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주는 좋은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추후에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만큼이나 강력한 빌런으로 언급될 만하다.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은 굉장히 그럴듯한 인물로 보인다. 아니 사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동기부여는 옳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인물이 갖고 있는 당위성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포스가 있다면 설득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5대 5로 대립할 수 있던 이유는 기존 영화들이 심리적으로 그 둘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게끔 잘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스파이더맨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했다는 점은 영화에서 핵심 딜레마를 묘사하는 데 있어 엄청난 강점으로 뽑힌다. 오스카 아이작의 목소리 열연이 이를 덧붙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두 번째 강점이다.
눈호강의 최고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의 최고 가치 중 하나는 시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눈호강은 <아바타> 1편과 맞먹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시각화 중에서도 훌륭한 두 지점은 예고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바로 마일즈와 그웬이 서로 만나는 모든 신이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글쓴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그웬이 쌓아 올린 인물 서사와 감정선 또 마일즈가 쌓아 올린 감정선이 이 장면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아주 흥미롭다.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등장에 임팩트를 주는 방식도 쾌감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스팟과 어떤 나라에서 벌어지는 장면 모두 다 바스키아를 연상케하는 시각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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