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5-20 22:20:13
뚜렷한 선과 악 그리고 수퍼 히어로 마동석
-<범죄도시2>(2022)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악구도로 나뉘지 않는다. 물론 각자 가지고 있는 경계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나누어지지는 않기에 판사의 심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나 살인자는 물론 악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보단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고 사회적으로 동일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악인을 없애는 방법일 것이다. 그 모든 것 이전에 수많은 악인들을 잡아내는 형사들이 있다. 형사들은 판사의 판단을 받기 전에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를 가려내고 잡아낸다. 어찌 보면 악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범죄가 그들을 거쳐간다. 희미한 선악구도 속에서도 형사들은 최대한 그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 <범죄도시>는 마석도 형사(마동석)와 그 팀의 이야기를 담았던 범죄 영화였다. 선악구도가 꽤 분명하게 나뉘어진 이 영화는 약간은 때가 묻은 마형사를 등장시켜 최악의 악인을 쫓게 만든다. 깡패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마형사가 완전히 깨끗한 형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악인들이 더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정리했다. 여기에 아주 악독한 악인이 등장하면서 그는 모두의 영웅이 된다. 엄청난 덩치와 파워는 달려드는 악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악인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한 팀으로 만들었다. 결국에 가장 나쁜 악인 중의 악인인 장첸(윤계상)을 잡아냈을 때 관객들이 느낀 건, 악인을 처벌했다는 통쾌함이었다. 그게 후속 영화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편의 이야기를 변주해 만든 두 번째 시리즈
<범죄도시2>는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번에도 영화의 악인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이 그랬단 악인을 먼저 보여주며 영화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 영화의 악인 강해상(손석구)은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그 사람을 죽여 실종 상태를 만든다. 우연히 베트남 출장에 간 마형사가 강해상이라는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특히나 이번 영화는 선악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1편에서 약간은 때가 묻은 듯했던 마형사는 이번 2편에서는 좀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전편의 마형사가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마형사는 좀 더 수퍼영웅에 가까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전편과는 다르게 마형사가 크고 작은 범죄자들과 대결을 벌일 때 마형사가 상대를 가격하면 큰 음향효과가 추가되어있다. 그래서 마형사가 타격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면 느껴지는 관객들의 통쾌함도 극대화되어있다. 그러니까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고 마형사를 좀 더 선한 인물로 조정하여 선이 악을 물리칠 때의 쾌감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할 때 관객은 든든함을 느끼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악인들을 물리칠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타격감은 앞으로 이어질 <범죄도시>라는 시리즈가 좀 더 수퍼영웅 장르로 뻗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이야기적으로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베트남 로케이션을 활용하고 영화의 빌런을 바꾸었지만 악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한정된 공간에서 마형사와 빌런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도 1편과 거의 흡사하다. 그런 점을 본다면 이 영화는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전편의 구조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전편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의 빌런인 강해상은 전편의 장첸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만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첸보다 더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다. 강해상은 장첸보다는 좀 더 순하게 보이지만 한 번 돌진하면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빌런의 느낌은 장첸보다는 덜 인상적이지만 무섭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만이 가진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위해 몸을 키우고 서늘한 눈빛을 보여주는 배우 손석구의 연기가 강해상이라는 악인을 좀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인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빌런 강해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형사와 대적하게 되는 인물이다.
수퍼히어로 마형사가 주는 통쾌함
영화 <범죄도시2>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선이 악을 물리치는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성은 전편에 비해 조악해졌지만 선과 악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잔인함은 조금 덜어내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형사는 한국의 수퍼영웅으로 탈바꿈하였고 그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정의가 실현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에게는 꽤 위로가 되는 영화다. 현실에서는 애매한 선과 악의 구분이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명확하다. 이야기 구성 자체도 복잡하지 않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래서 더욱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마형사 역할의 배우 마동석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무서운 주먹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그가 맡은 한국영화의 배역 중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도시>의 마형사는 그가 맡은 여느 영화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캐릭터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상용 감독은 이번 영화가 연출 데뷔작이다. 과거 <범죄도시> 1편에서 조연출, <롱 리브 더 킹:목표 영웅>에서 조감독을 맡았었다.
많은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영화 <범죄도시2>는 절대 선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담는다. 마형사가 등장할 때 느껴지는 든든함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찰에게 느끼고 싶은 감정일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만은 선이 악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그 희열을 즐길 수 있다. 앞으로 꽤 많은 관객들이 마형사의 타격감을 즐기려 극장을 찾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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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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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켜 주고 싶은 마음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본 영화는 얼마 없어서 이 참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정주행 하여 글을 남기고 싶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짧은 장면들만 기억나는 영화였고 어떤 주제를 가진 영화인지는 잘 몰랐던 영화였다. 솔직히 지브리가 특유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보는 재미이고, 특별한 주제를 찾으려고 보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왜 그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전쟁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기는 전쟁이 진행 중인 시대이다. 분위기를 보면 제1차 세계대전 시기와 비슷한 건축양식과 고풍이 느껴지지만, 그들의 무기는 현대 무기보다 발달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각종 무기들과 하울과 같은 마법사들까지 전쟁에 참전하여 화려해 보이는 도시들 사이로 하루하루 폭발 소리와 거친 잔해들이 난무한다. 영화 제목에서 알다시피 하울의 심장으로 만든 악마 켈시퍼가 조종하는 움직이는 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성은 고철들과 잡동사니 물건들로 덕지덕지 붙여 만든 성의 모습이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전쟁으로 피난을 떠나는 피난민, 이재민을 의미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전투 비행정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는 성의 장면, 특정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장면은 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성에 붙어있는 고철은 전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철이다. 이런 철로 성을 만들었다는 점은 그만큼 전쟁의 참담으로 곳곳에 철이 쉽게 볼 수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사랑과 심장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하울과 소피, 황야의 마녀의 삼각관계가 이루어진다. 황야의 마녀는 하울의 심장을 얻으려고 하울을 찾는다. 이는 하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그녀의 행동이다. 하지만 하울은 소피를 좋아하고 소피 역시 하울을 좋아한다. 하울이 소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녀가 성 안에 들어온 뒤부터일 것이다. 하울의 성을 고철과 잡동사니로 뭉쳐진 외관처럼 내부도 먼지투성이와 잡동사니로 더러운 환경이었다. 그리고 소피는 그 내부를 청소하고 관리하며 성 내부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하울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켈시퍼가 성을 만든 것이니 즉, 하울의 마음을 소피가 치유해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황야의 마녀가 켈시퍼을 갖고 있다가 소피한테 뺏겼을 때 황야의 마녀는 울면서 "소피가 또 마음을 뺏으려 해"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하울의 마음과 하울의 마음으로 만든 켈시퍼까지 소피가 가져갔다는 사실에 질투의 눈물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감정을 심장이나 성 내부 등으로 물체화로 표현한다.
동심(童心)
영화를 보면 동심을 지켜주고 싶고, 기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성숙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피는 장녀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이으려고 하는 듬직함과 성숙함이 느껴지지만 그녀도 눈물이 많고 내면에 순수함이 있다. 하울은 전쟁도구의 수단으로 지쳐 보이고, 항상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설리번을 만나기 두려워하는 장면이나 그가 노랑머리를 고집하며 외모에 신경 쓰는 장면은 사춘기 시절 소년의 모습이 보이는 어리숙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겉으로 나이 들어 보이고 성숙해 보이기 때문에 마음까지 그렇게 변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고 우리를 다독인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을 한 번쯤 보고 하울의 더러운 내부를 소피가 청소하여 말끔하게 차려놓은 듯 우리의 마음도 이 영화를 보며 마음의 청소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쩌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아이들한테 순수한 동심(童心)을 보여주고 어른들한테는 동심(童心)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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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착오적인 스타워즈의 현주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다이들이 몰살당하고 은하 제국이 설립되자 타투인 행성의 외딴 동굴에 잠적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 제자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악의 세력인 시스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새로운 희망이 될 '루크 스카이워커(그랜트 필리)'를 남몰래 보호하며 숨죽여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비완은 생존한 제다이들을 사냥하는 빌런 '세 번째 자매(모제스 잉그램)'를 대면하고, 그녀가 루크의 쌍둥이 남매인 '레아 오르가나(비비안 리라 블레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레아를 구출하러 간 오비완의 앞에는 다스 베이더가 되어버린 옛 제자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등장하고, 오비완은 오래전 펼쳤던 다스 베이더와의 운명적인 대결의 순간이 다시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디즈니+에서 공개된 <스타워즈> 시리즈의 실사 드라마인 <오비완 케노비>는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로부터 10년 후 시점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는 악의 세력인 시스를 막지 못한 채 은둔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가 1977년도 작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에서 알렉 기네스 경이 연기한 현자 오비완 케노비로 거듭나는 계기를 보여준다.
<오비완 케노비>를 향한 기대는 상당했다. 오비완 케노비라는 캐릭터도 인기가 적지 않은 데다가 애증의 제자인 아나킨 스카이워커도 20여 년만에 같이 실사 시리즈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실사영화였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혹평과 흥행 실패를 맛본 이후, 근래 <스타워즈> 시리즈가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기대감을 증폭했다. 디즈니+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이 흥행과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고, 이후 <더 북 오브 보바 펫>도 소기의 성과를 이룬 만큼 <오비완 케노비>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6부작으로 구성된 <오비완 케노비>는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고, 작금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친다.
물론 프리퀄이자 스핀오프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기에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없지는 않다. 우선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주인공인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그의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의 애증이 뒤섞인 관계가 위치한다. 특히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시스의 복수>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로 자신을 배신, 포기한 오비완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아나킨은 두 손으로 직접 오비완을 제거하고자 하며, 타락한 제자를 직접 베어야 했던 오비완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이러한 아나킨의 집착과 오비완의 회한을 과거 스승과 제자로서 광선검 대련을 하던 오비완과 아나킨의 모습과 대조한다. 이러한 연출은 두 인물의 감정선을 절정으로 고조시킴과 동시에 한 편의 에피소드 내에서는 짜릿한 반전까지 이끌어낸다.
또 여섯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오비완과 아나킨이 쌓아 올린 서사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운명적인 재대결이 등장하고, 이는 <스타워즈> 1, 2, 3편인 프리퀄 시리즈와 4, 5, 6편인 오리지널 시리즈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 중심에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정체성이 소멸되고, 그 유명한 다스 베이더로 완전히 각성하는 장면이 있다. 제다이였지만 악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여 다스 베이더가 된 아나킨. 드라마는 결투 도중 다스 베이더의 헬멧 안에 여전히 아나킨의 얼굴과 음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며 다스 베이더라는 악인의 내면에 제다이인 아나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또 정확히 어느 시점을 계기로 아나킨의 정체성이 사라졌는지를 짚어주면서 프리퀄에서 묘사된 아나킨과 오리지널 삼부작에 등장한 다스 베이더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고 그의 서사를 보충한다. 여기에 아나킨에게 용서를 구하던 오비완이 다스 베이더가 된 그를 완전히 포기하는 장면까지 더해지면 기존 시리즈에 비해 이들의 비극적인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이처럼 과거의 전설들을 재소환하고, 그들의 서사에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는 선택의 효과는 수많은 오마주들 덕분에 극대화된다. 자신이 아나킨을 죽였다는 다스 베이더에게 오비완은 "그럼 내 친구는 정말 죽어버렸군"이라고 일갈하는데, 이는 시리즈 6편인 <제다이의 귀환>에서 "그렇다면 제 아버지는 정말 죽었군요"라고 말하는 루크의 대사와 판박이다. 또한 제다이 마스터로 다시금 거듭난 후 수련을 떠나는 오비완이 어린 루크에게 "안녕(hello there)?"이라고 인사를 건네는데, 이 대사는 <새로운 희망>에서 오비완이 루크에게 건넨 첫 대사 이기도 하다. 오비완에게 포스의 영이 되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의 스승 '콰이곤 진(리암 니슨)'과 시스 군주인 팰퍼틴 황제의 재등장 역시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쉬이 흘려보낼 수 없는 순간들이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드라마의 방향성 때문에 위의 장점이 퇴색된다는 점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오비완 케노비의 드라마여야 했다. 젊고 이상주의적이었던 제다이 오비완 케노비 대신 아끼던 제자의 배신, 동료들의 죽음과 수호하던 국가의 파멸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오비완을 묘사해야 했다. 이와 동시에 미처 끝나지 않은 아나킨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오리지널 삼부작에 등장했던 현자 오비완 케노비로의 변화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드라마의 초점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오비완에 대적하는 새로운 빌런인 세 번째 자매의 서사가 겉돌기 때문이다. 사실 세 번째 자매는 드라마의 진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다스 베이더에게 복수심과 혐오감을 품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조금씩 다스 베이더를 닮아간다. 오비완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다스 베이더처럼 그녀도 복수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며 타락한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의 악행을 반성하고 갱생하는 전개는 완전히 악에 물드는 다스 베이더와 제다이의 정체성을 되찾는 오비완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중 그녀와 오비완의 접점이 거의 묘사되지 않다 보니, 두 주인공은 각자의 성장과 변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세 번째 자매는 좀처럼 오비완과 다스 베이더 사이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캐릭터의 분량을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에 더해 전반적인 구성이나 연출이 세밀하지 않다 보니 방향성을 잃은 드라마의 표류도 끝나지 않는다. 6부작으로 구성된 분량 내에서 다루기에는 전체 내용이 과한 것인지 몰라도, 등장인물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식의 작위적인 전개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불완전한 액션씬 역시 아쉬움을 키운다. 세 명의 성인이 어린 레아를 눈앞에서 놓치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스톰트루퍼들은 이번에도 주인공들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한 밋밋한 뒷배경으로 소비된다. <스타워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광선검 대결도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완전하지 않은 CG로 인해 어색한 문제를 노출한다. 이는 시리즈의 중추적 인물인 오비완과 아나킨이 복귀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큰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새로운 이야기와 앞으로의 비전을 보여주기보다는 인기 있는 캐릭터들의 이름값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본 작의 장점마저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화라고도 불리는 <스타워즈>는 본질적으로 선과 악의 운명적인 대결을 그려낸 거대한 서사시였고, 신화 속 영웅들의 초인적인 활약을 즐기는 시리즈였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등장한 <스타워즈> 속 이야기는 현시점에서 사실 더 이상 소구력이 없다. 선악의 구분이 확실했던 냉전 시기와 달리 현대 사회의 많은 주체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손쉽게 나뉘지 않으며, 현대인들은 거대한 악보다도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예상할 수 없는 테러와 같은 악을 더 위협적으로 여긴다. 그래서 악을 처단하는 선한 영웅보다는, 쉽사리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정글과도 같은 현실에서 영웅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공감을 자아내기에 더 용이하다.
이는 21세기의 <스타워즈>라 불리는 MCU의 '인피니티 사가'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엔드게임>도 비극적 서사시로 보이는 측면이 있으며, 선악의 장엄한 대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스 베이더에 비하면 타노스는 현대적 테러리스트에 더 가까운 빌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통해 전략적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후 손 쓸 틈 없이 달아난다. 기습을 당한 어벤져스도 제다이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시스를 완전히 제거하여 우주의 균형을 되찾고 평화를 수복하는 제다이와 달리,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면 결코 완전하다고 볼 수 없는 복수를 하는 데 그친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복수를 꿈꾼 미국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복수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과 오버랩된다.
물론 그간 <스타워즈>도 시대상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왔다. 당장 프리퀄 삼부작은 은하 의회의 의장이었던 팰퍼틴이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수단을 활용해 은하 제국의 황제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테러와 같은 위협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던 21세기 초반의 세태를 꼬집었다. 근래 스타워즈 시리즈 중 성공을 맛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만달로리안>의 주인공인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다. 항상 기습과 배신을 경계하면서도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나름의 사랑과 믿음이 있는 그는 보다 현대적인 영웅상에 가깝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역시 제다이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을 그려내어 호평받았다. 하지만 <오비완 케노비>는 수십 년 전의 인물들을 재소환하여 오래전에 끝맺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회귀한다. 그 결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오비완 케노비가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알렉 기네스 경이 연기한 현자 오비완이 되어갈수록 그는 더 평면적인 캐릭터로 변하고, 그와 아나킨의 대립은 흥미가 덜해진다.
<오비완 케노비>를 포함해 현재 디즈니+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작품을 유독 한국에서만 늦게 공개하는 일련의 상황도 결코 작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이는 한국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가 적다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결정이겠지만, 동시에 디즈니가 스타워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긴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자신만의 낭만이 있었기에 지난 수십 년간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절대다수가 악의 세력인 시스와 제국의 편으로 넘어갔고, 몇몇 되지 않는 소수이자 약자인 제다이와 저항군만이 악에 대항하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이들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대세를 거스르는 용기와 낭만이 숨 쉬는 이야기. 이것이 스타워즈의 매력이었다. 그렇기에 시대의 흐름인 자본주의적 분석을 차별적 대우의 이유로 대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는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디즈니+는 끊임없이 스타워즈 드라마들을 준비 중이다. 이미 계획 중인 것만 해도 <만달로리안> 시즌 3, <아소카>, <안도르>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이 전부 과거의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다. <만달로리안>과 <아소카>는 프리퀄과 오리지널 시리즈 사이의 시간대를 다루는 작품이고, <안도르>는 2017년에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외전 겸 프리퀄이다. 즉, 이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이미 정해진 결말로 귀결되는 작품들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또 <오비완 케노비>의 완성도를 보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전한 부활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P(Poor, 형편없음)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남은 이름값까지 고갈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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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벨바그 캐다 보면 결국 바르다!
오늘은 사진, 영화, 설치 미술 등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우리를 사로잡았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6주기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선뜻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분들을 위해 씨네픽지기가 필모그래피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첫 만남은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한번 만나게 되면 바르다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실 거에요.혹, 작품이 많아 무엇부터 볼 지 고민이 된다면 <방랑자>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우선적으로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감상해 볼까요?*인터뷰 발췌: 「아녜스 바르다의 말」, 아녜스 바르다&제퍼슨 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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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경찰을 감시하다 |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은 작품이었던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다소 아쉬운 평점을 가지고 있는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참신한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영화 경관의 피를 살펴볼까 합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액션
감독 : 이규만
각본 : 배영익
출연진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개봉일 : 2022년 01월 05일
평점 : 6.87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왓챠, 웨이브
기획 의도
경찰의 기준이 뒤집어진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슈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 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이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총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담
영화는 일본 원작소설 경관의 피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원래는 2020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영화의 전반적으로 음향 문제가 발생하면서 영화를 보면서도
이게 무슨 대사인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아주 많았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경관의 피 결말을 살펴보자면
과거 경찰들이 수사비가 없어 수사비를 스폰 받아 왔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연남회였다.
연남회에서는 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은 박강윤을
쳐내기 위해 범죄를 뒤집어 씌우고 박강윤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최민재는 연남회를 찾아가 그동안의 벌인 일들과 아버지 살인사건의 진실을
조건으로 협상하여 박강윤이 모든 혐의를 벗어던지며 교도소에 나오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서 시즌 2를 그려볼 수 있을 여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보통 언더커버는 경찰이 깡패에 속에 들어가 언더커버 활동을 한다!
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있다면, 이번 영화 경관의 피의 경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신선한 소재로 접근하였으나
다소 아쉬운 스토리로 우리 기억 속 저기 어딘가에 묻혀있다.
한줄평 :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따라가지 못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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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보이스 피싱, 당신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감독 : 라우 첸 Law CHEN출연 : Jerry HSU시놉시스 : 대만에서 온 이민자 제리는 은퇴 후 미국 휴양도시 올랜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어느 날 중국 본토에 있는 비밀경찰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제리가 대규모 돈세탁 사건의 용의선상에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으로 송환되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리.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의 사진을 몰래 찍어 보내는 등 전화상으로 중국 비밀경찰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는데…이 작품은 주인공이자 프로듀서인 제리가 실제로 겪은 사건을 토대로 다큐와 픽션, 과거(의 재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기에 첩보와 스릴러, 휴먼드라마 등의 장르적 외피를 바꿔가는 구성을 더해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할 틈 없는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을 이끌어 낸다. 자칫 무겁고 어두워질 수 있는 비극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연출적 고민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영화는 물론 이번 영화제 GV를 통해 영화를 ‘함께’ 만들며 ‘함께’ 성장한 그들의 끈끈한 우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은 GV에 앞서 이 영화의 장르가 완전한 실화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극의 재미를 위해 다큐와 픽션(재연)을 오가고 첩보나 스릴러, 휴먼드라마’처럼’ 장르의 옷을 갈아입지만 궁극적으로 제리가 실제로 겪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한 재연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관객에게 직시했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관객 너머의 모든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제리가 겪은 비극적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마음을 전했다.개인적으로는 ‘전 재산을 잃고 3일만 슬퍼했다, 아들의 커리어를 위해 작품에 임했고 촬영하는 3일 동안은 음식 배달을 할 수 없었다’는 제리의 소회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고 그가 건강하기를, 더욱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마 GV 현장에 있던 다른 이들 또한 같은 마음, 바람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당신! 당신은 물론 당신의 부모님 또한 보이스피싱에서 예외일 수 없으니 자주 연락하시라.상영 일정 : 10-05 14: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 10-06 16:30 CGV 센텀시티 5관 / 10-11 13:30 영화의전당 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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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스탑 메이킹 센스 Stop Making Sense, 1984
미국 다큐멘터리 88분
감독: 조나단 드미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되뇌는 질문이 있다. ‘이 영화는 기록뿐인가, 아닌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과정이 아니다. 나만의 ‘의미 있는 작품 목록’을 채우는 지극히 사적인 감상법 중 하나로, 사회적‧역사적 소재 혹은 특정 이슈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신중한 물음표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는 극의 무게 중심이 시작이 아닌 끝에 있기에, 결말은 주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절대 잊지 말자는 호소나, 일반적이지 않은 메시지의 질주, 숨겨놓은 사건의 탈주, 인물들의 날 선 고백 등, 본 작품만이 가진 특징을 빼고 오직 정보만 나열하는 기록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열심히 달려온 목적까지 앗아가기 일쑤다. 속 빈 강정뿐인 결말을 오래 곱씹는 일은 드물고, 설령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의미한 과정이란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탑 메이킹 센스>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아직 다 준비되지 않은 무대 위에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다. 짧은 인사 후 테이프를 틀고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 ‘사이코 킬러’를 열창하는데, 새하얀 신발이 존재감을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자리에서 오른 다리로 연신 바닥을 힘주어 차며 리듬을 타더니, 곧이어 온몸을 흔들며 무대를 휘젓는다.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대를 세팅하는 데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코 킬러’ 가사 속 ‘대체 이건 뭐야? 차-차-차- 차라리, 도-도-도- 도망쳐-’가 튀어나올 때마다 더 격정적인 막춤을 선보인다.
첫 곡이 끝나자, 멤버 티나 웨이마우스가 기타를 메고 등장한다. 곧바로 두 번째 곡이 시작되고. 그녀를 기점으로 코러스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새 곡이 시작될 때마다 차례로 등장한다. 완전히 노출됐던 무대 뒤에 벽(대형 스크린)이 내려오고 핀 조명이 주인공들을 향하는 등, 미완성이었던 무대도 곡과 함께 호흡하듯 차근차근 완성된다.
누구도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다음 곡이 어떤 노래인지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긴 채 공연을 이어가는 토킹 헤즈. 관객은 그들에게서 뭘 느꼈을까. 무엇이 가슴을 뛰게 했을까. 자유? 해방? 공동체 의식? 그들만의 독특한 공연 방식? 거기서 느낀 주체할 수 없는 날 것의 감정들? 그때, 그 순간, 공연장에 있던 이들에겐 뭐든 자연스럽고 당연했을 거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하지 않지만, 함께 한다고 믿으며 공연을 즐기고 있는, 스크린 앞 좌석에 앉은 우리에겐 무엇이 전달되었을까.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스탑 메이킹 센스>가 토킹 헤즈의 콘서트를 기록한 게 아니라 관객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담아낸 ‘영화’라는 걸 전제로, ‘Stop Making Sense!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란 메시지는 이미 첫 곡에 울려 퍼졌다. 중요한 건 이다음에 오는 무엇, 조나단 드미 감독은 카메라의 꾸밈없는 시각 안에 토킹 헤즈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답한다. 그들만의 독특한 공연 방식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열정적인 밴드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곡에서 곡을 연결되는 찰나의 틈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절제하면서도, 휘발되고 마는 잠깐의 희열과 즐거움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나아가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길 원하는 듯, 공연하는 이들을 수시로 클로즈업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현란한 손과 발, 이와 함께 반응하는 몸, 관객보다 더 곡에 빠진 표정까지, 전체와 일부를 넘나들며 밴드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공연장이란 무대는 ‘이야기 배경’으로, 이어지는 곡 연주는 ‘사건 전개’, 화면 전환은 ‘사건을 겪는 인물의 감정선’, 노래 가사는 ‘인물의 대사’로 표현된다. 특히 제 몸보다 두 배 이상 큰 의상을 입은 데이비드 번의 계산되지 않은 몸짓이 격렬해질수록 극은 더 극적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토킹 헤즈의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물론 그들의 언어는 대부분 음울하고 착잡하다. 그러나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 광기에 휩싸인 노래가 뒤로 갈수록 그들이 오랜 투쟁 끝에 찾은 한없이 따뜻한 가사로 흘러나오고 있음을 말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삼켜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니, 어느 누가 토킹 헤즈의 서사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스탑 메이킹 센스>는 ‘모두’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밴드와 관객, 무대, 그리고 스크린 밖 우리까지 하나가 되어, 견고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고, 단숨에 끝냈다. 여기서 끝은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옷자락을 펄럭이는 데이비드 번의 상징적인 춤이 계속 떠오르고, 파격적인 밴드의 무대 연출이 잊히지 않는 건, 단순히 기억되어서가 아니다. 영화는 모두의 몸과 마음을 날뛰게 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현실엔 없는 특별한 도피처로 우릴 안내했다. 그리곤 보고 직접 느끼게 했다. 어떤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이곳, 안전지대에선 누구나 자유롭고, 언제든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으며, 또 얼마든지 서로에게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말이다. 덕분에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에서 펼쳐졌던 토킹 헤즈의 콘서트가 왜 전설이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토킹 헤즈와 <스탑 메이킹 센스>가 만든 파동이 얼마나 많은 이의 파동과 연결되어, 새롭게 탄생했는지도 궁금하게 했고.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데이비드 번이 밴드 멤버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소개하더니, 스태프 전원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다. 그리곤 첫 등장 때처럼,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과 우릴 향해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곤 홀연히 사라진다. 분명 토킹 헤즈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스탑 메이킹 센스>는 퇴장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공연장을 나가지 않았다. 나갈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할 권한은 오롯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냅다 즐기자. 거리낌 없이 함께, 그때 그 순간 모두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공연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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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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