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6-28 08:37:58
영화 과속스캔들 결말 줄거리 살펴보기
박보영, 차태현 주연
여기 정말 재미있는 코디 영화가 있어요! 박보영의 리즈시절과 차태현의 조합으로 코미디 가족 드라마로 만든 영화 과속스캔들. 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 자동으로 BGM이 깔리는 마법 같은 영화, 보면서 배 아플 수 있는 영화가 여기 있어요~ 잘나가는 연예인에서 갑작스러운 딸이 생겼다?!
영화 과속스캔들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가족
감독 : 강형철
각본 : 강형철, 이병원
출연진 :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개봉일 : 2008년 12월 03일
평점 : 9.20
스트리밍 : tvN , 웨이브, 쿠팡 플레이, 왓챠
기획 의도
한때 아이돌스타로 10대 소녀 팬들의 영원한 우상이었던 남현수(차태현). 지금은 36살 나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잘나가는 연예인이자, 청취율 1위의 인기 라디오 DJ. 어느 날 애청자를 자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박보영)이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이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바득바득 우겨대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애까지 달고 나타나서...
집은 물론 현수의 나와바리인 방송국까지. 어디든 물불 안 가리고 쫓아다니는 스토커 정남으로 인해 완벽했던 인생에 태클 한방 제대로 걸린 현수. 설상가상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 그에게 정남과 스캔들까지 휩싸이게 되는데...
나 이제 이거 한방 터지면 정말 끝이다 끝!
여담
영화 과속스캔들은 2008년 개봉 당시 초 대박을 터트리며 2008년 흥행 성적 1위를 달성했다.
원래 영화 제목은 '과속 삼대'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과속 스캔들'로 바꿔서 흥행에 성공했다.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이후에 오랫동안 히트작이 없었고, 박보영 역시 무명 신인에서 벗어나 어엿한 배우로 성공하였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과속스캔들 결말을 살펴보자면...
현수(차태현)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봉필구 연예부 기자로 다른 사건을 통해 한 명의 연예인을 나락 가게 만든 그 연예인이 현수의 기자회견으로 들어와 봉필구를 마구 두들겨 패면서 현수의 기자회견은 난장판이 난다. 결국 한때 잘 나갔던 연예인이지만, 연예인이 인기가 없어서 아저씨 콘셉트로 바꾸면서 인기 없던 연예인에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영화 과속스캔들은 결말까지 진짜 완벽하게 웃기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봤었고, 아역 배우였던 왕석현이 어엿한 어른이라니..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 영화랄까?..
한줄평 : "아마도~ 이건 사랑이었을 거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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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키'가 바라왔던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
<로키 2>의 주인공은 ‘장난의 신’ 로키다. 실비가 로키(톰 히들스턴)의 눈앞에서 ‘계속 존재하는 자’를 살해하고 난 후의 이야기가 드라마 1화 시작으로 이어진다. TVA 안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돈다. 갑작스럽게 침입한 로키를 제지하기 위해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도망치는 로키. 카트 위로 떨어진다. 카트를 운전하던 여자가 깜짝 놀라 앞의 흉상에 부딪혔다. ‘계속 남아있는 자’의 흉상과 부딪힌 카트. 흉상이 깨지고 케이시가 등장한다. 사실 로키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무엇인지 전부 판단하지 못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려고 할 즈음에 케이시와 만났다. “너 누구야?”반문하는 케이시. 방금까지 대화했던 케이시가 나를 모른다니,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 당황한다. 로키가 도착한 곳은 과거의 TVA였다. 새삼 시간선을 넘나들며 이동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적으로 이 현재만 봐도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하지만 그거보다 더 큰 것은 ‘계속 존재하는 자’라는 인간이 여러 세계선을 관리하며 우주의 대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신이야. 그리고 나에겐 영광스러운 목적이 있다고. 로키는 ‘정복자 캉’이 만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로키 2>는 우리가 좋아하던 마블의 상상력이 그대로 구현된 드라마다. 마블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를 상징하는 영화는 세 편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모두 살리면서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챙긴 경우, 역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극강의 액션을 보여주던 작품도 있었고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눈이 호강하는 시각화와 상상력이 영화의 무기인 때도 있었다. 이 <로키 2>는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상상력의 힘이 드라마의 동력이 되는 경우다. 이 드라마가 이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인물의 내면이다. 여러 우주를 오가며 인물의 절박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명한다. 대표적으로 이야기 중후반부로 흘러갈 때 모비우스(오언 윌슨)와 로키가 보여준 감정연기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선은 엔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복잡한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또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영화를 논할 때 항상 이야기하는 ‘기존 MCU와의 연계성’의 측면에서도 <로키 2>가 구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하지만 드라마의 그 어떤 장점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정서적인 여운이다.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하던 모든 순간에 로키가 있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엔딩을 더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최근 마블의 아쉬운 타율에 가려지기는 속상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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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PFF] 세바스티앙 (2024)
* 세바스티앙 (2024)
감독: 미코 마켈라
출연: 루아리드 몰리카, 조나단 하이드 외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10분
국가: 영국
매거진 회사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 맥스는 본인의 이름으로 장편 소설을 출판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세바스티앙'은 바로 그가 집필 중인 장편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 맥스는 디지털 시대 속 성 노동자들의 삶을 소재로 한 '세바스티앙'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많은 남성과 잠자리를 갖는 주인공의 삶을 깊이 탐구하려 한다. 첫 장편 소설에 사활을 내건 그는 세바스티앙의 심리를 생생히 묘사하고, 행동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직접 '세바스티앙'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성 노동자로 이중생활을 시작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세바스티앙이 된 그는 작가 '맥스'가 아닌 성 노동자로서 유명 작가, 노년의 남성, 부유한 변호사 그룹 등을 상대하게 되고, 경험이 쌓여갈수록 글에 가속도가 붙어 편집자로부터 곧 소설을 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까지 듣게 된다. 하지만 맥스는 자신과 '세바스티앙'의 삶을 분리한 채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세바스티앙으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의 삶에 점차 균열이 일었기 때문이다. 섹스 도중 마약에 취해 잠들어 미팅에 불참하는 바람에 중요한 일거리를 빼앗기기도 하고, 친한 동료를 실망시키거나 인터뷰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는 등 온전했던 맥스의 세계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맥스가 성 노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얻겠다는 단일한 목적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바스티앙'을 연기하는 자신과 '맥스'라는 실제 자아를 분리해 놓고, 섹스 경험을 글로 옮기면서도 자신을 한 발 떨어진 채 타자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 목적으로 시작한 성 노동은 점차 그의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하는데, 초반의 맥스는 섹스 그 자체, 그리고 섹스와 소설을 연결 짓는 행위에서 적잖은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남성들과의 잠자리만으로 육체적인 쾌락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데다 이를 토대로 글까지 술술 잘 써지기까지 하니 그가 느끼는 감정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인터뷰 자리를 박차고 나가 고객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그가 점차 이러한 행위에 '중독'되어 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성 노동자로 생활하며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다른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 자체를 즐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매혹적인 행위에 빠져드는 동시에 수치심 또한 함께 경험한다. 편집자의 1인칭 서술 제안을 망설이거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물의 심리를 실컷 묘사하다 '인터뷰를 참고했다'는 말을 꼭 덧붙인 것은 소설의 완성을 위해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스스로가 당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 세바스티앙의 경험으로 분리하여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를 자신의 실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순간 픽션이라는 방어막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을 느꼈던 것이다. 특히 맥스로 참석한 일정에서 자신을 세바스티앙으로 알고 있는 상대와 우연히 마주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고, 어플에 올려둔 사진과 정보를 모두 삭제한 것은 성 노동자로서 느낀 수치심은 물론 물론 이중생활로 지켜온 자신의 일상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극심한 불안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이중생활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킨 건 니콜라스와의 만남이다. 그 역시 맥스를 성 노동자 세바스티앙으로 알고 만남을 자처한 인물이지만, 지금껏 만난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대부분의 고객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의 육체부터 탐하려 했지만, 니콜라스는 진솔한 대화와 함께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길 원하는 젠틀한 노신사에 가까웠다. 돈을 지불한 쪽은 니콜라스 쪽이었지만, 안달이 나게 된 쪽은 오히려 맥스였다. 야릇한 눈빛과 능숙한 손짓으로 노골적인 유혹의 신호를 보내도, 니콜라스는 급속도로 치러지는 몸의 대화에 거부감을 보인다. 기껏 인터뷰 자리를 망치고,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 간 자리였지만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맥스는 처음으로 섹스 없이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우연을 계기로 맥스와 니콜라스는 재회하고, 이 만남은 맥스의 소설과 삶 모두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맥스는 다시 그를 찾아준 니콜라스와 매주 시간을 보내고, 데이트를 하거나 예술을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며 다른 이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환상과 로맨틱한 감정을 모두 느낀다. 니콜라스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평가를 받았던 맥스의 소설에 신선한 영감이 되어주고, '디지털 성 노동의 현실'만을 다루고자 했던 소설에는 '로맨스'가 더해짐으로써 초반의 방향성을 벗어나게 된다.
이때까지도 맥스와 세바스티앙으로 분리된 그의 이중생활은 유효했다. 하지만, 그의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유명 작가 다니엘에게 소설을 들키게 되면서 두 자아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엉망이 되어버린 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의 손길을 건넨 니콜라스로 인해 진실을 모두 털어놓게 된다. 니콜라스는 맥스가 신분을 속인 채 자신과의 관계를 대상화하여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됐음에도 그를 혐오하거나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소설을 궁금해하며 자신이 그의 뮤즈가 되었다는 것에 기뻐한다. 맥스는 자신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니콜라스에 힘입어 다시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소설 속의 세바스티앙과 자신을 서로 다른 인물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을 내비쳤던 초반과 달리 마침내 3인칭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기 시작한다.
맥스는 마침내 자신의 작품인 '세바스티앙'을 출판하고, 작가로서 인터뷰 행사에 참석한다.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인 만큼 행사 담당자가 '질문이 너무 사적이지 않냐'는 우려를 표하지만, 맥스는 담담하게 '무엇이든 물어봐도 좋다'고 응수하며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한다. 비록 픽션이지만, 가상의 인물 '세바스티앙'의 이야기는 곧 그 자신이 겪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떠한 질문에도 거리낌 없이 응하는 태도는 그가 세바스티앙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의 결말부로 보아 그는 작가가 된 후에도 성 노동자로서의 삶을 완전히 놓지 않고 있다. 다만, 더 이상 '세바스티앙'이라는 가명이 아닌 본명 '맥스'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극중 내내 성 노동자와 장가의 삶이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거듭된 혼란 끝에 니콜라스와의 관계 속에서 안정을 경험하며, 비로소 자신을 성 노동자이자 동시에 작가인 인물로 정의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바스티앙'의 리서치가 끝났음에도 성 노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낯선 남성과의 섹스에서 비롯된 쾌감,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한 신선한 영감, 그리고 자신을 상대하는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을 모두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극중 소설의 내용이 '디지털 시대 속 성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려다 세바스티앙과 조너선의 관계로 빠진 것처럼, 영화 역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성 노동을 사회적으로 접근하기보단 '맥스'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미시적으로 풀어낸 점이 꽤나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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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의 추락과 캔슬 컬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 클래식계의 스타답게 그녀는 인터뷰와 줄리어드 특강, 새 음반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젊은 지휘자 '크리스타(실비아 플로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타르. 그녀는 크리스타의 구직을 방해하는 메일을 보냈던 자기 행적을 떠올리며 메일을 지우는 등 증거를 없애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 번 불붙은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고, 가족으로서도 지휘자로서도 타르의 커리어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TAR 타르>,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겨냥하다
관객은 여러 관점에서 예술을 즐긴다. 보이고 들리는 작품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현실의 맥락 안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방법이다. 한 작품으로부터 작가의 경험이나 사상, 의도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정신과 의사였던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첫 교향곡이 실패한 후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라흐마니노프를 그가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사는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평온해졌다가 이내 벅차오르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처럼 예술 작품을 작가와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려다 보면 한 가지 딜레마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바로 작가의 도덕성이다. '예술 작품이 작가의 세계관을 표현한다면,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작가의 도덕성과 예술의 가치를 별개로 볼 수는 없는 걸까?'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작가와 작품은 자유로울 수 없다. 아동 성범죄자인 로만 폴란스키가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성매수 전과가 있는 한 중년 배우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할 때, 마약 범죄 전과가 있는 가수가 음원을 휩쓸었을 때. 그때마다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소비할지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TAR 타르>는 이 논쟁의 한복판을 겨냥하는 영화다. 토드 필드 감독은 사생활이 폭로된 여성 마에스트로, 리디아 타르의 추락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음악가로서 타르의 성취와, 지위, 예술적 견해를 차분히 보여준 후 그녀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추악한 모습을 하나씩 들춰 보인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캔슬 컬처(cancel culture)'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명인 혹은 공인이 논쟁이 될 만한 언행을 했을 때, 그의 지위나 직업을 박탈하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할 기회를 준다.
당당한 마에스트로, 리디아 타르(TAR)의 예술
우선 <TAR 타르>는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의 인물을 가능한 세밀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정보량이 굉장히 많은 초반부의 대담 장면은 그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5번째로 EGOT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설명, 레너드 번스타인의 제자라던가 하는 등 실존하는 인물, 시상식, 사건 등이 난무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타르의 예술관이다. 그녀는 확고하다. 그녀에게 음악은 단지 악보에 적힌 기호를 살려내는 방식의 문제다. 그렇기에 무대 위의 시간이 시작될 때, 시간을 어떻게 통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어지는 대담도 다르지 않다. 여성으로서 일궈낸 업적이 대단하다며 '마에스트라'라고 불려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자기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서도 청중을 웃길 수 있는 위트도 잃지 않는다. 그 덕분에 타르는 강단 있는 예술가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셀럽처럼 보인다.
타르의 예술관은 줄리어드 음대 특강 장면에서 더 자세히 드러난다. 타르는 한 학생을 타깃으로 여러 질문을 하며 작곡가의 개인적인 성향과 음악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퀴어 학생이 바흐의 성적 지향이나 여러 논란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듣지도 않고 연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소 거친 말을 섞어 가며 자기 예술관을 설파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그리고 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음악은 지휘자나 작곡가, 연주가의 사상, 성 정체성이나 인종과는 관계가 없다. 악보에는 작가가 의도한 음악적 성취만이 적혀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정해진 시간 안에 온전히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앞선 인터뷰 장면과 함께 놓고 보면 타르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나 정치적 견해에 예술이 영향받을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타르는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강의실을 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녀의 예술관에 고의적으로 도전하며, 그녀의 몰락을 유도한다.
쥐(RAT)처럼 숨어 있던 그녀의 이중성
타르의 몰락은 대외적인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이중성이 드러나며 시작된다. 깨어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악몽처럼 숨어 있던 타르의 오점은 가족, 직장인, 스승, 세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선 타르는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저버린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인 바이올리니스트 '샤론(니나 호스)'과 함께 딸을 양육하는 타르. 초반부만 해도 타르는 가족을 아끼는 부모이자 배우자였다. 학교가 끝난 딸을 데리러 가고, 학교에서 딸을 괴롭히는 학생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섬뜩한 경고를 남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에 새롭게 합류한 '올가(소피 카우어)'를 만나고, 연심을 품으면서 타르는 점차 가족으로부터 멀어진다. 배우자이자, 조력자이고, 동승자인 샤론을 존중하지 않는 일도 잦아진다. 그녀는 오케스트라 운영에 대한 샤론의 조언을 무시한다. 자기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샤론이 제지하는데도 난폭 운전을 한다. 심지어 샤론 몰래 올가와 시간을 보내기까지 한다.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서 타르는 독선적이다. 팬데믹 이후 필하모닉의 새로운 음반 녹음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타인의, 다른 의견을 수용할 줄 모른다. 부지휘자를 마음대로 해고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부지휘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타르는 자기 비서이자 젊은 지휘자인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에게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희망을 흘린다. 하지만 정작 프란체스카가 지원서를 내자 타르는 주변의 추천도 무시한 채 그녀를 뽑지 않았다. 이에 프란체스카는 사표를 낸 뒤 잠적해 버린다. 또 스승으로서도 타르는 낙제다. 재능 있는 지휘자로 일전에 타르 밑에서 일했던 크리스타. 타르는 크리스타가 자기를 떠나자,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메일을 다른 오케스트라 관계자에게 보내 그녀의 취업을 막는다. 계속되는 방해 공작에 지친 크리스타가 자살을 택하자 불똥이 튈까 우려해 증거물인 메일을 급하게 삭제하는 비겁한 모습까지도 보인다.
타르의 이중성은 크리스타의 부모가 딸의 죽음이 그녀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줄리어드 특강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유색인종 퀴어 학생에게 폭언을 하였으며 그 학생이 분노하여 수업 중간에 퇴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영상으로 인해 크리스타의 자살과 연계된 타르의 혐의가 더욱 크게 공론화된다. 그녀의 뉴욕 북토크 현장에서 규탄 시위가 열릴 정도로. 결국 그녀는 필하모닉 지휘자 자리에서 쫓겨나다. 현재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지속되는 과거 때문에 그녀는 순식간에 몰락해 버린다. 마치 마치 음악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한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만날 수 있다는 타르의 인터뷰처럼.
예술(ART)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가
흥미롭게도 <TAR 타르>는 권위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착취자이면서도 트라우마와 나약함을 숨기고 있는 타르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도, 그녀를 단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타르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거나, 추상적인 꿈 장면으로 대신해 버리면서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회색지대를 펼쳐 놓는다. 영화의 모든 사건을 오직 타르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도 그녀의 눈을 통하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 사건의 더 내밀한 맥락과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줄리어드 강의 동영상이 유포된 게 대표적이다. 강의 중 타르의 언행은 분명 권위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폭로 영상 자체는 편집되고 조작된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이러한 회색지대 속에서 관객에게 타르를 판단해 보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TAR 타르>의 태도는 주인공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르를 소개하고, 개인적인 추문으로 인해 그녀의 경력이 무너지는 과정은 근래 뜨거운 이슈인 '캔슬 컬처'의 딜레마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캔슬 컬처가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인식하려는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영화가 비행기에서 반쯤 엎드려 있는 타르를 직접 비추는 대신, 타르를 찍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비추면서 시작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일관된 질서로 손쉽게 인식하려는 편향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작가나 제작자가 물의를 일으키면, 그들의 작품을 부정해 버리는 게 가장 간단한 판결이므로.
그러나 늘 그렇듯이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만 봐도 그렇다. 안길호 피디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드라마는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캔슬 컬처의 주장과 달리, 현실에서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관계가 무 자르듯 잘리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는 <TAR 타르>가 의도적으로 회색지대를 만들어 낸 이유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려 한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그간 너무 쉽게 단정 지었던 것은 아닌지. 편견과 흑백 세계관 속에서, 예술 작품의 의미와 메시지를 가볍게 취소해 버린 것은 아닌지. <TAR 타르>는 타르의 음악이, 그녀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여전히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닐지 고민하게 만든다.
질문을 질문으로만 남겨두었더라면
하지만 마지막 장면 때문에 <TAR 타르>의 의도는 퇴색된다. 자기가 공연과 연주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타르. 그녀는 이제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서 영화 장면이 나오는 스크린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자기 예술관과는 정반대인, 비루한 오케스트라를 맡아서. 그런데 타르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생기 넘친다. 그 모든 사건과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저 음악을 느끼고 음악에 동화되면 그만이라는 듯 보인다.
이 결말은 마치 <TAR 타르>가 캔슬컬처에 대해 토론하기보다는 성급히 답을 내놓는 것처럼 느껴진다. 타르가 몰락한 여러 이유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예술에 대한 작가의 순수성만이 중요하고, 타르의 몰락은 그녀의 예술이 침해받은 결과라고 영화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타르 본인의 악행, 오케스트라와 재단을 둘러싼 권력 다툼, 놀라울 만큼 빠른 캔슬 컬처 등의 다양한 이슈가 제대로 조명될 기회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 손님들의 지명을 받기 위해 부동자세로 대기하는 여성 마사지사를 보면서 자기 행동이 추악했다는 사실을 타르가 깨닫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의 결론에 힘을 보태기 위한 편의적인 전개라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화의 끝에는 케이트 블란쳇만 남는다. 자신감 넘치는 마에스트로가 추락하면서 내적으로 붕괴되는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자기중심을 잃은 상황에서도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를 더 뜨거운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인물상을 놀라울 정도로 잘 표현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자경 대신 여우주연상을 받았더라도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을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TAR 타르>의 성급한 선택이 끝내 아쉬운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한)
메시지가 해석을 침해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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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스 갬빗>에서 제일 좋았던 건,
<퀸스 갬빗>에서 제일 좋았던 건,
체스신동,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
보름 정도에 걸쳐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을 보았다. 너무 재밌어서 쏙쏙 빨려 들어갔던 드라마. 배경은 1960년대고(나는 시대극이 좋다), 소재는 체스이고(생소한 분야를 엿보는 건 더 좋다), 커다란 눈의 여주인공은 너무 매력적이다.
체스가 이렇게나 어렵고 복잡한 게임인 줄은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았다. 모든 공격에 각각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 제목도 체스 오프닝 기술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때 사람들이 체스에 그렇게나 열광했는 지도 처음 알았다. 드라마의 배경인 1960년대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체스에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챔피언십도 중계하고, 신문 1면에도 실리고, 챔피언의 우승자는 거의 연예인의 인기더라. (이세돌 같은 느낌일까?)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이 드라마는 주인공 '하먼'이 체스에 소질을 보이면서 결국 체스 최강자가 되는 이야기다. 체스 얘기니만큼, 여러 사람들과 체스경기를 두며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장면들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치만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했던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양어머니 '엘마'와의 관계다.
하먼은 어릴 때 친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크다가 13살에 엘마에게 입양됐다.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타고난 기질인지, 하먼은 시종일관 굉장히 무뚝뚝한 성격으로 나온다. 입양이 되고도 웃는 모습을 여간해선 볼 수 없는 데다, 그런 성격 탓에 사람들과 가까워지지도 못하고 늘 외톨이처럼 지낸다. 그런 하먼을 보듬어준 게 바로 양어머니 엘마였다. 보듬었다고 해서, 하먼을 엄청 옆구리에 끼고 사랑 표현을 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둘은 엄마와 딸의 관계라기 보단 뭔가 친구 같은 관계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겉으로 나도는 남편 때문에 외로웠던 양어머니와, 고아로 크면서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딸이, 서로 친구처럼 의지하는 모습. 낯간지럽게 껴안고 뽀뽀하는 장면 하나 없이도, 둘의 관계는 묘하게 뭉클하고 훈훈한 구석이 있었다.
엘마는 딸이 체스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는 적극 뒷바라지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남편이 떠난 후 수입이 없어서, 딸이 챔피언십에서 따온 상금으로 먹고살려고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먼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드러났다. 잡지에 나온 딸의 기사를 딸보다 더 자세히 찾아 읽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고, 그녀의 체스 친구들을 알고 싶어 하고, 체스에 대해 모르면서도 딸의 경기를 지켜보려 한다. 그게 애정이 아니면 뭘까.
무뚝뚝함의 극치였던 하먼 역시, 서서히 양어머니에게 의지하게 되고 사랑하는 게 보인다. 나름의 애정표현이랍시고 '툭'하며 양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 수입이 없던 양어머니가 "나에게 상금 10%씩만 띄어주겠니?"하고 소심하게 묻자 "15%로 해요"하고 말했을 때. 왠지 모를 흐뭇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둘 사이의 애정은, 매번 그 서툰 표현들에서 여지없이 묻어 나왔다. 그 은은히 물드는 관계를 지켜보는 게, 바로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양어머니 엘마는 건강이 나빠 일찍 죽는다. 모나고 차가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먼을 사랑해주었던 엘마. 그녀의 죽음에도 대성통곡은커녕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냉랭한 하먼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참았던 눈물 한 줄기를 쏟는다. 생전 양어머니가 좋아했던 위스키를 마시면서. 더도 말고 딱 한 줄기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 절제된 모습의 바닥에, 엘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과 연민이 꽉 차 있다는 건, 차고 넘치도록 알 수 있었다는 거.
양어머니 엘마와의 뭉클했던 관계.
드라마는 하먼이 체스 최강자였던 소련선수 '보르고프'를 누르고 우승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난 이 드라마가 결코 체스대회에서 우승하는 여자아이 얘기라고만 느끼지는 않았다. 고아였고 외톨이었던 하먼이, 양어머니를 만나고,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들 베니와 해리, 타운스를 만나면서 마음을 여는 성장드라마로 보였다.
마지막에 그녀는 별로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잘 웃고, 표현도 할 줄 알게 되며, 특유의 무뚝뚝함에서 해제되어 길거리의 노인들과 인사하고 체스도 둔다. 나는 그게 보르고프를 꺾고 우승한 것보다도 더 흐뭇했다. 하먼이 엇나가지 않고 클 수 있었던 자양분은, 체스이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이지 않았을까.
체스 최강자 고르고프와의 시합.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구글에서는 '체스 두는 법'이 9년 만에 검색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음, 난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오히려 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싫어지던데. 왠지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만 드러날 것 같아서 말이다. 그저 좋은 드라마, 웰메이드 드라마로 깊이 간직해야지. 간만에 훌륭한 드라마를 보고 나니 갈비탕 한 그릇을 비운 것 마냥 속이 뜨끈하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우두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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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이지즈는 마리라는 동명을 가진 두 명의 장난기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 주위의 삶을 교란시키고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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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와 광기가 만든 지옥에서, 진짜 죄를 묻다.
지옥 (Hell Bound, 2021)
개봉일 : 2021.11.19. (넷플릭스 공개)
감독 : 연상호
출연 :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김도윤, 김신록, 류경수, 이레
공포와 광기가 만든 지옥에서, 진짜 죄를 묻다.
인간들이 풀지 못한 미스터리한 존재들을 초월적인 존재 또는 인간 사회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인간 세계를 초월한 어딘가에 있을 존재와 우리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반복해서 묻는다. 과연 인간을 초월한 존재, 신은 존재하는지,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보고 있다면 어떤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맹목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만일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궁금할 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신에 대한 궁금증 또는 불신을 품고 있는 인간들이 초자연적 현상을 마주하게 된 후 나타나는, 지독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들은 신의 심판이란 행위를 보며 고뇌한다. 신이 바라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신이 내린 심판이 맞는 건가. 신은 과연 옳은 심판자인가. 우리는 이 심판을 피해 가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지옥>의 세계관 속 인간들은 맞설 수 없는 공포 아래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하며 분해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중심을 지키는 인물들을 무너트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공개된 시즌 1, 더 넓어진 연상호 유니버스
시즌 1은 화당 50분대의 러닝타임, 총 6화로 이루어져 있어 주말 하루를 투자한다면 무리 없이 정주행 가능할 만큼의 분량이다. 주제 특성상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반복되는 폭력과 이해할 수 없는 범위로 튀어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쾌감이 쭉쭉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주제에 맞는, 당연한 연출들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절대 정주행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론 1부에 해당하는 1-3화가 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지옥>의 제작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원작을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충격을 영상을 통해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다니, 거기에 박정민 배우님이 캐스팅되다니! 말 그대로 ‘지옥 공개까지 존버 모드’였다.
<지옥>의 원작자(스토리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님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 영화와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통해 ‘연상호 유니버스’를 차근차근 쌓아왔다. 조금 슬프게도 최근에 발표한 <염력>, <반도> 같은 경우엔 호불호가 꽤 강하게 나뉘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옥>은 그 호불호를 절반 이상 뒤집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배우 등 탄탄한 필모를 쌓아온 배우들과 원진아, 김신록, 류경수, 이레 배우 등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배우들로 구성된 라인업과 지옥의 사자들을 구현한 묵직한 CG, 그리고 신선한 스토리라인까지. 딱, 연상호 감독님이 담아내고 싶었던 것들을 욕심껏 밀어 넣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시즌의 엔딩을 보면서 웹툰의 스토리를 넘어 이 세계관을 더욱 크게 펼쳐나갈 시즌 2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지금 작품에 대한 반응도 뜨거우니 감독님이 더 욕심내서 시 즌2를.. 꼬옥 제작해서 ‘연상호 유니버스’를 더 넓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포를 마주한 인간들의 군상과 믿음의 충돌
<지옥>은 신에 대한 궁금증을 따져 묻는 작품이라기보단 신이 행했을 거라 추정되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만들어지는 인간들의 여러 모습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이 행하는 심판의 기준, 공포 앞에서 가진 믿음의 무의미함, 집단이 만들어낸 그릇되고 폭력적인 믿음에 대해 반복해 질문하고 이야기한다.
이 반복되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과 폭력적인 믿음을 가진 인물들이 충돌하며 여러 군상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지나 <지옥>속 세상은 인간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지옥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몇몇 인물들은 신이 만든 세상이 아닌 이전과 같은 인간들의 세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아주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희망, 누군가에게는 단단히 쌓아올린 믿음을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걸림돌. 지켜보는 입장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하지만 문득, 내가 <지옥>의 세계관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방향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공포에 둘러싸인 채, 어딘지 그럴싸한 그들의 교리를 들으면서, “난 어찌됐든 속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당장 내가 시연을 당할지도 모르는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신의 교리를 외치는 사이비에게 홀리지 않을 자신이라... 그래서 이 작품이 이토록 찝찝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말하는 죄와 우리가 만든 심판 방식이 무조건 올바르다고,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인간의 법 아래서 교묘하게 이득을 보는 나쁜 인간도 있고,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있고, 그에 도움을 받은 인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주 혹여라도, 아주 적은 확률로라도 완전한 존재인 ‘신’이 질서를 잡는데 개입한다면 인간 세계에 무조건적인 선과 질서가 찾아올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선과 악,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한 100% 올바른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각자의 삶이 다할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한다. 어느 날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나타날 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선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지옥 시놉시스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지옥> 1부, 지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다.
지옥은 크게 1-3화에 해당하는 1부, 4-6화에 해당하는 2부로 나뉜다. 1부에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첫 시연이 일어나고, 새진리회의 1대 의장인 정진수가 세상을 향한 경고장을 날리며 시작된다. 20년 전에 받았던 고지를 숨기고, 마치 지옥에 떨어진 듯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정진수는 세상을 뒤집고 시연을 통해 죽음을 맞이한다.
1부의 주요 인물들은 정진수 의장, 이동욱(화살촉), 민혜진 변호사, 진경훈 형사와 그의 딸 희정, 박정자로 구성된다. 정진수 의장은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의 시연을 받는다’,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 신이 나섰다.’는 교리를 펼치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그에 대립하는 인물은 민혜진이며 정진수의 교리에 아이러니를 더하는 인물이 진희정과 박정자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과연 공정한가, 죄에 대한 심판은 누가 내릴 수 있는가
진경훈은 몇 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만의 지옥에서 살아왔다. 진경훈과 그의 딸이 다스리기 힘들 만큼 큰 고통과 분노에 쌓여있을 동안,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은 심신미약 판정을 받고 6년을 복역해 사회로 돌아온다. 범인은 모든 걸 잊고, 속 편하게 소주 한 병을 비우면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인간들이 만든 법으로, 인간들이 내린 심판으로 그의 죗값을 치르기엔 턱없이 모자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순간, 정진수는 그의 죄를 심판하는 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정진수는 희정의 범인을 잡아 불에 태워 사자들의 시연과 비슷한 모습의 시체를 만든다. <지옥>속 세계에선 새진리회의 말이 법이고, 그 집단을 이끄는 정진수는 신과 같은 존재다.
새진리회가 말하는 교리의 아이러니
정진수는 죄를 지은 사람들만 받는다는 시연의 순간을 맞이한다. 신과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가장 순결한 존재로 비치는 정진수 또한 새진리회의 믿음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로 퍼져나갔다면 새진리회의 교리는 순식간에 무너졌을 텐데, 다음 의장 정칠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 사실을 꽁꽁 숨긴다.
새진리회는 ‘죄를 지은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 신이 개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보면 그들은 맞는 말을 하는 게 아닌, 자신들의 말을 믿도록 상황을 꾸며내고 있을 뿐이다.
죄가 없는 박정자가 시연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시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온갖 추측을 내놓으며 그것을 기정사실화 시켜버린다. 모든 방송매체가 죄 없는 죄인을 화면 가득 담아낸다. 진짜 죄를 저지른 살인범의 모습은 피해자의 가족인 희정도 모를 만큼 꽁꽁 숨겨놓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로 죄 없는 박정자의 얼굴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큼 널리 퍼져나간다. 진짜 죄인은 정진수의 손에 죽고, 죄를 저지른 적 없는 박정자는 시연을 받는다. 그리고 2부에 들어선 영재와 소현의 죄 없는 아기마저 고지를 받는다. 새진리회가 말하는 신의 심판이란, 정말 타당한 심판이 맞는 것일까.
공포 앞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간들. 그들이 만든 지옥
새진리회는 시연이 시작되고 겁에 질린 대중들이 약해진 틈을 타 말도 안 되는 교리를 퍼트린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처음 겪는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중심 없이 팔랑팔랑 흔들리게 된다. 그로 인해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인간들이 앞서 정해둔 법의 선마저 가뿐하게 침범하지만 아무도 새진리회와 화살촉을 말리지 못한다. 그들이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들이고, 그와 동시에 미쳐버린 존재들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 존재들이 아닌 사자들에 대한 공포와 시연 대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인간들을 ‘인간답게,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끄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억울하게 일어난 사고처럼, 이유도 모르고 고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들을 욕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배척시킨다. 정진수가 휩쓸고 간 세상은 어느새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의 심판이 어그러지는 순간
이 공포의 시연과 새진리회의 교리에 반하는 인물은 민혜진 변호사와 배영재 PD, 그리고 그의 아내 소현이다. 화살촉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민혜진은 소도의 일원이 되어 새진리회의 교리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1부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확 바뀐 모습으로 등장한 2부에선 이 영화의 액션과 흐름을 책임지는 큰 역할을 해낸다.
애초에 새진리회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배영재 PD는 선배의 죽음을 목격함과 동시에 자신의 아이가 고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소도와 민혜진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은 대체 무슨 이유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 걸까. 원망과 분노에서 시작된 이들의 물음은 결국 지옥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을 틔우는 커다란 빛이 된다.
영재와 소현은 서로를 껴안고 아이를 시연으로부터 지켜낸다. 시연을 고지 받은 아이는 살아남고, 고지를 받지 않은 부모가 지옥으로 갔다. 이쯤 되면 신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과연 시연이란 것이 ‘죄인을 골라내기 위한’ 심판의 순간이 맞는 걸까? 심판이라기보단 랜덤하게, 아무에게나 들이닥친 초자연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절대성과 믿음이 깨져버리는 순간이다.
공포로 만들어낸 선
우리는 모두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들 나름대로의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닌 악인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새진리회의 1대 의장 정진수는 20년 전 받은 고지를 통해 공포를 느꼈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공포가 있어야만 사람들이 선을 행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의 심판인 시연이 시작된 인간들의 세상은 전보다 더한 지옥이 되어있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폭행하는 화살촉, 사람의 죽음을 생중계하는 방송과 그 앞에서 시청률을 챙기며 웃고 있는 새진리회 사람들. 시연자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사고사와 자살을 선택하는 피해자들.
이것이 과연 정진수가 말하던 ‘선으로 가득 찬 세상’이란 말인가. 아니 이게 선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이라니. 말도 안 된다.
결국 심판을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새진리회는 자신들이 신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라 말하며 사람들을 홀린다. 실상은 있지도 않은 권한을 부여한다며 정수리를 연속으로 쳐대고, 말의 앞뒤조차 맞추지 못하는 집단이지만 인간들은 처음 겪는 공포 앞에서 이성을 잃는다.
자신들이 말하는 신의 의도와 전혀 관련 없는 시연은 숨기고, 또 사람들을 탄압하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던 그들은 ‘신의 심판’을 증거 삼아 부정한 짓을 저지른다. 내가 만든 원칙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간다고, 마치 자신들이 신인 것처럼 우기던 정칠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정칠과 새진리회가 주장하던 교리들은 결국 언젠간 탄로날 거짓말이었다. 사자들의 등장이 없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하찮은 거짓말. 새진리회는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 또, 시연을 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조차 인간에게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연자가 지옥에 가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으니까.
민혜진이 아이를 안고 올라탄 택시 기사의 한마디가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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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1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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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이번엔 그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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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옷코츠와 친구들 앞에 과거에 일반인을 대량으로 학살해서 고전에서 추방된 최악의 주저사인 게토 스구루가 나타난다.
“12월 24일, 우리는 백귀야행을 결행한다”
주술사만의 낙원을 만들려는 게토는 비술사를 섬멸하겠다면서, 신주쿠와 교토에 천의 저주를 내리는데…과연 옷코츠는 게토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리카의 저주를 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