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7-26 11:30:08
우아한 올드머니 패션 착용한 주인공 영화 8선
지금 떠오르고 있는 올드머니룩 ! 올드 머니(oldmoney)의 뜻은 말 그대로 오래된 돈, 유산, 상속받은 돈으로 오랜기간동안 부를 축적한 상류층을 뜻한다고 합니다. 브랜드 로고 대신 부유층만 알 수 있는 브랜드, 혹은 고급스러운 소재로 실루엣만으로 부유함을 표현하는 룩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는데요.
켄달제너, 기네스팰트로, 다이애나비가 올드머니룩의 유명인들이라고 하죠. 한국에서는 드라마 안나에서수지와 정은채 배우가 올드머니룩을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올드머니룩은 부유층을 다룬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패션인데요. 부유층을 다룬 영화들 속 올드머니룩을 착장한 주연 배우들 같이 한번 만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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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는 미국의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가 집필한 소설이 원작인데요. 직장에 실제로 있을것 같은 캐릭터들로 개봉 20주년이 다가가는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재밌고 여성팬층이 매우 두터운 작품입니다. 실제로 원작 소설보다 나은 이야기 전개로 호평을 받고 미란다 역의 메릴 스트립 연기는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패션잡지회사에 관련된 영화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뉴요커들에 대한 환상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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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대표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며 2014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2014 골든글로브상 외국어 영화상 수상 2014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비영어 영화상 수상작으로 세계 3대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트리플 크라운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중장년층의 부유한 세계를 그린 <그레이트 뷰티>는 주인공이 로마의 사교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면서 점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의 공허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칩니다. 위의 주인공의 감정과 대비되는 화려한 세계는 풍자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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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소재의 영화이며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전세계 27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스펜서>는 영화계 동료, 언론, 평단, 관객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의상이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데 <작은 아씨들> <안나 카레니나>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재클린 듀런이 맡았고 그시절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던 다이애나비의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수년간 다이애나의 패션을 수집하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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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연속으로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으로 가족들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의 제목인 <해피엔드>는 해피 엔딩의 의미가 아닌 행복이 끝난다는 의미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속 '로랑'가는 프랑스에서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이지만 자살을 몇 번이고 시도하다 실패한 조르주, 아들 피에르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앤, 바람을 계속 해서 피는 토마스 등 고상한 줄만 알았던 가족들의 이중성이 점점 표면우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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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따라 평이 갈리는 우디앨런 작품 중 수작이라고 뽑히는 영화로 특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신경쇠약의 여성을 잘 연기해낸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로 큰 호평을 받으며 86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르메스, 루이비통, 펜디, 샤넬, 로저 비비에 등 다양한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케이트 블란쳇의 이름값을 이용해 간신히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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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귀적적인 삶이지만 알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끼는 엠마의 공허감과, 매력적인 쉐프인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에게 감춰져 있던 열정으 른끼며 사랑에 빠져드는 상류층 여성의 은밀한 욕막을 표현해낸 영화로 미술, 의상 뿐만아니라 틸다 스윈튼의 우아한 몸짓과 카리스마를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아이 엠 러브>의 스태프들이 이탈리아 상류층 재벌가문의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깊은 고심을 했고, 각 캐릭터에 맞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을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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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뉴욕의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적 서정을 느끼면서도 부와 상류층의 상징인 보석상 '티파니'를 동경하기 때문에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피할 수 없는데요. 또 가난한 작가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부자를 찾아 헤메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빈부격차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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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이자 할리우드 영화의 패러디이며 1973년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감독상, 1973년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부뉴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미란다 공화국의 대사 돈 라파엘이 6명의 부르주아들과 함께 근사한 만찬을 가지려 하지만 그때마다 기이한 상황에 처하며 좌절을 겪는 과정을 부뉴엘 특유의 통렬한 유머감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올드머니패션' 주제로 영화를 다루어보았는데요 앞서 추천드린 영화는 패션뿐만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수작들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영화 즐겨주시길 바라며 저는 다음주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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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 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와 화려한휴가/5.18 영화이야기/ 5.18 40주년
#화려한휴가#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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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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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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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이 비밀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엑스맨의 빌런 (feat. 소드, 완다비전)
#완다비전 #엑스맨 #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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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s://nordvpn.com/marveler 로 가셔서 이용하시거나 쿠폰코드 "MARVELER" 를 이용해주세요!2021. 02. 09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What is 소드?!
00:55 원작 속 S.W.O.R.D.
01:42 MCU 속 소드, 쉴드?
03:43 슈퍼히어로를 무기로 보는 단체
05:35 노드VPN 사용하고 완다비전 보자! (광고스킵은 6:55)
06:55 미래가 창창한 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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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고결진> 예고편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나만 이 세상에 남겨둔 거야!” ⟨천고결진⟩ 9월 15일(수) 밤 9시, 10시 왓챠 독점공개! 월/화/수/목 같은 시간 각각 2개의 에피소드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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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법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늘 시사회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다룬 작품이니, 오셔서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쓰려면, 12월 4일 오전 9시 49분에 발송된 문자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초현실적인 내란 획책이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지금 ‘영화 따위’가 문제냐며 퇴근 후 곧바로 어느 집회 현장이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문자를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가 떠올랐다. 참사 후 가수들이 예정대로 콘서트를 진행하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때, 한 음악 평론가가 말했다. ‘그럴 거면 앞으로 음악으로 위로받았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우리는 지금 예술이 ‘하찮아지는’ 시국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실이 예술을 초월하는 기막힌 상황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술에서 이 시국을 헤쳐 나갈 용기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며, 나는 내란범과 그에게 동조하는 세력에 맞설 ‘사소한’ 방법 중 하나를 떠올렸고, 되새겼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펄롱의 걷는 장면이다. 그의 걷는 모습을 비추거나, 그가 걸으면서 마주했을 법한 풍경을 비추는 장면 말이다. 펄롱이 일상적으로 걸으며 마주하는 그 모든 사람과 풍경에서, 그는 정동 소외자다. 펄롱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지 못한다. 펄롱은 학대당한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동전을 건넨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그들이 학대당한다는 낌새를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펄롱을 나무란다. 퍽퍽하지만 그런대로 소박한 현재의 안온한 삶을 잃지 않으려면 눈을 감고 그들에게서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펄롱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펄롱은 종종 그 길을 오르며 헉헉거린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석탄을 배달하는 펄롱은 거친 솔로 손가락과 손톱 구석구석에 낀 석탄 가루를 닦아낸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흔적도 없이 닦아내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펄롱은 헷갈린다. 수녀원에서 본 소녀들에게서 사랑하는 딸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펄롱은 그들에게서 고아인 그를 조건 없는 선의로 돌봐준 어른들 덕분에 번듯하게 성장한 그가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본다.
이제 펄롱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에 솔직할 것인가, 모두의 요청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일에 눈감을 것인가. 펄롱은 이 문제를 거창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가 수녀원에서 마주한 소녀 세라와 함께 걸으며, 수녀원이 아닌 자기 집으로 걸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펄롱은 수녀원에 갇힌 ‘사고 치는 여자’와 ‘사랑스러운 딸’ 사이에 놓인 임의의, 우연적인, 불분명한 구분선을 지워낸다. 자기 자신의 경험과 감각, 감정과 정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펄롱은 그저 세라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음으로써 이 일을 해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아일랜드 수녀원에서 대규모로 자행된 소녀들의 노동력 착취 및 감금, 학대 사건에서 출발한다. 원작 소설을 쓴 클레어 키건에 따르면, 1996년에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기 전까지 수녀원에 감금당한 채 강제 노역에 시달린 소녀의 숫자는 최소 만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달한다. 9천 명의 소녀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금의 명분은 ‘타락한 여성’의 수용이었다.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이 사건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가?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질문해보면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고 맞서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압도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펄롱처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변화와 저항을 모색할 수 있다. 자기 감각과 경험을 믿는 것이 출발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감각과 경험이 누군가의 삶과 생명, 개별 인간들의 관계성,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규칙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밟는 것으로 지향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내란범들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중요할 것이다. 불완전하고 문제투성이일지라도, 우리 일상의 토대를 이루는 연결망을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지가 기준이어야 한다.
담담한 소박함으로, 평범한 소시민들이 각자와 서로의 삶을 꾸려온 방식으로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하는 듯하다. 내면에 침잠해 세상을 짊어진 펄롱의 용기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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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미디어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영화 '소셜 딜레마'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낸다. 시간도 때울 겸 평소 즐겨 쓰는 소셜 미디어 앱으로 들어간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등 형식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화려한 문구와 이미지가 시선을 자극한다. 마음에 드는 영상이 없다면 화면을 당겨서 쉽고 간단하게 새로고침 한다. 새로운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등장한다. 끌리는 콘텐츠를 클릭한다. ‘이것까지만 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영화 ‘소셜 딜레마’는 누구나 해봤을 경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영화 ‘소셜 딜레마’
영화 ‘소셜 딜레마’는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일했던 실리콘벨리 전문가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담았다. 구글 디자이너였던 디자인 사상가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의 경험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가 ‘Gmail’에서 했던 업무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다고 느낀 상황을 설명한다. 이어서 광고로 대표되는 수익 창출 구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결과적으로 소셜미디어가 10대 청소년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룬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영리하게 계획된 다큐멘터리
줄거리만 보면 전문가들이 지루한 인터뷰를 늘어놓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제작진은 무서울 만큼 영리하게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시청자에게 설득한다. 앞서 언급한 ‘트리스탄 해리스’의 경험을 다룰 때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했고 그래프 하나를 표현해도 메시지가 극대화되도록 연출했다.
마지막 필살기로 미국의 한 가정을 묘사한 드라마 장르를 추가했다. 부모님과 삼 남매로 이루어진 가족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갈등을 겪는다. 엄마와 첫째 ‘카산드라(카라 헤이워드)’는 가족들의 잦은 스마트폰을 걱정하는 반면 둘째 '벤(스카일러 지손도)’과 셋째 ‘아일라(소피아 해몬소)’ 는 별일 아닌 걸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반발한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아일라’는 10대 여성을 대표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부터 소셜미디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 영화는 ‘벤'을 통해 소셜미디어가 사용자를 유혹하는 방식을 SF영화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과 음모론 같은 가짜 뉴스를 믿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소셜 딜레마’ 속 드라마는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동시에 드라마가 완벽한 허구는 아님을 증명하듯 ‘#pizzagate’, ‘미얀마 로힝야족 사태’의 실제 뉴스 보도와 각종 연구자료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처럼 인터뷰, 드라마, 실제 뉴스 보도를 넘나드는 구성은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소셜미디어는 정말 나쁘기만 할까?
대부분의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그러했듯 개발자들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소셜미디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의 기술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의 어두운 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발생할 악영향을 지적한다. 인터뷰의 한 가지 예시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이 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해당 기능을 만들었지만, 역으로 ‘좋아요’를 받지 못해서 좌절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술의 끝은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한 문장이 소셜미디어를 향한 비평과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뒤쳐져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 미디어나 통신망에서 이루어지는 규제가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의 막대한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비용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또한 기업이 광고 위주의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사용자가 권리를 강력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개인도 소셜미디어와 자신 간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알림 설정을 꺼두거나 콘텐츠를 알고리즘의 추천 대신 직접 선택하는 습관을 가질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추천 목록을 제어하는 크롬 프로그램을 설치하길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마주하는 정보를 의심해야 한다. 이 글은 ‘소셜 딜레마’를 거짓 없이 설명했을까? 당신을 편향된 시선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검증이 필요하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를 통해 확인해보자.
영화 ‘소셜 딜레마’와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다양한 의견을 첨부합니다.
(*아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조재길 특파원, 한국경제, ‘"삼성전자도 타깃"…美 이어 EU도 빅테크에 '칼' 꺼냈다’
김승현 기자, 조선일보, ‘“넷플릭스 적당히 해라” 페이스북 'SNS 중독’ 다큐에 발끈’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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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기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을 계속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포기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제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각자는 레벨업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자신 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실제로 활용해 가면서 자기가 자기고 있는 힘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위한 작은 계단들이다.
너무나 흔하지만 '실패'라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하면 대부분은 주저앉아 절망한다. 그렇게 포기를 택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않게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는 선택이 바로 포기다. 만약 그것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사람들은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많이 택한 실패 극복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의 이야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에는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이 나온다. 팀에 속한 에드긴(크리스 파인),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그리고 도릭(소피아 릴리스)는 네버윈터의 영주인 포지(휴 그랜트)에 맞서 보물과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에드긴을 중심으로 모인 이 팀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다. 리더인 에드긴은 과거에 성스러운 일을 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에드긴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된다.
에드긴이 아내 없이 처음 맡은 임무인 육아에도 계속 실패하자, 우연히 그 광경을 본 홀가는 에드긴의 집에 같이 살며 남매 같은 사이가 되고 딸을 같이 키운다. 이후 에드긴과 홀가, 사이먼은 크고 작은 보물을 훔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부활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팀을 만들어 보물이 있는 장소에 가지만 그곳에서 에드긴과 홀가가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맞이한다. 몇 년 후 결국 감옥에서 다시 탈출하지만 이미 과거 동료였던 포지와 악의 위저드 소피나(데이지 헤드)가 에드긴의 딸을 볼모로 삼게 된다.
영화에는 에드긴의 팀이 포지의 보물과 에드긴의 딸을 구출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팀은 막강한 위저드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는데, 깊은 던전에 숨겨둔 투구를 찾거나 마법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등의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건, 그 목표를 향해 선택하는 방법들에 확신이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리더인 에드긴의 계획에 따라 가지만 멤버들은 늘 벽에 막힌다. 또한 각 인물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타고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홀가를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 찾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젊은 위저드 사이먼이다. 그는 자신의 마법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들도 모두 자신 없는 말들 뿐이다. 그래도 그를 좀 더 도전할 수 있게 이끄는 건 실패 전문가 에드긴이다. 에드긴 역시 최고의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딸을 빼앗기는 큰 실패를 계속 겪는 인물이다. 영화는 실패한 리더 에드긴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전달한다.
에드긴이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어쩌면 불가능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당연하게도 계속 실패한다. 영화가 다루는 에드긴의 실패는 절망적이지 않다. 이건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 톤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대하는 에드긴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준다. 영화 중반까지 관객의 입장에서 에드긴과 그의 팀이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 앞에 꽤 많은 실패가 먼저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갈 때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후반부 에드긴이 팀원들에게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맞이하는 모험의 끝이 나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팀원들은 실패의 순간에 목표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에드긴은 실패 이후 어떤 식으로 상황을 대할 것인지 알려준다. '포기'를 택하는 순간 실패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포기'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면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다시 처음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포기'를 선택하지 않는 삶, 그 태도가 리더인 에드긴이 살아온 삶이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사실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영화다. 오랜만에 제작된 판타지 영화이고, 과거 2000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 있는 영화는 롤플레잉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2000년에 개봉했던 <던전 드래곤>은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즈가 주연을 맡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그런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꽤 잘 만들어진 오락 판타지 영화다.
무척 흥미로운 판타지 오락영화
과거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는 팀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무엇보다 강력한 악의 위저드보다 부족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서사가 흥미롭다. 주인공 에드긴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분위기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실패 전문가들이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이 경쾌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에드긴 역을 맡은 크리스 파인은 과거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유쾌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하면서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다. 여전사 홀가 역을 맡은 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 역을 맡은 저스티스 스미스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도릭 역을 맡은 소피아 릴리스의 매력이 돋보인다. 사기꾼 포지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능글맞은 이기적인 배신자역에 무척 잘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뚱뚱한 드래곤이나 다양한 마법 위저드들이 등장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마치 마블 시리즈의 초창기 영화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경쾌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다양한 방향의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다양한 시리즈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에드긴과 그의 팀이 앞으로 어떤 실패를 겪고 또 극복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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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엘라> 여자 오이디푸스의 화려하고 안전한 탄생
태어난 순간부터 특별해서 좀처럼 일반적인 삶에 녹아들지 못한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과 함께 런던으로 가서 패션 디자이너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와 이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런던에 도착한 그녀는 새로 만난 친구 '재스퍼(조엘 프라이)',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와 함께 런던 길거리를 주름잡는 도둑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라는 어릴 적 꿈을 잊지 못해 무작정 리버티 백화점에 일자리를 구한 그녀는 운명처럼 런던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를 만나고, 즉시 재능을 인정받은 후 특채로 채용되며 그 꿈을 이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로네스의 끔찍한 과거와 진실을 알게 된 에스텔라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크루엘라를 바로네스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모두를 놀라게 할 패션쇼를 준비한다.
악역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난관을 마주한다. 어떻게 악역을 악인으로 남겨두면서도 관객들을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까 하는 문제다. 많은 영화들은 빌런에게 인간적인 뒷이야기를 선사한다. 어릴 적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경험들을 나열하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역으로 빌런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애매해진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전개에 좀처럼 흡인력이 붙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디즈니의 <말레피센트 2>나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작품이 대표 사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등장한 빌런 '크루엘라 드 빌'의 탄생을 그린 스핀오프 겸 프리퀄 <크루엘라>가 마주한 딜레마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겨서 코트를 만들려고 하는 잔혹한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을까. 이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크루엘라>는 누구나 접해 봤을 법한 한 영웅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바로 오이디푸스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인 그는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그의 미래를 두려워해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버렸고, 가까스로 한 신하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오이디푸스는 다른 양부모를 만나 평화로이 살아간다. 어느 날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내용의 신탁을 들은 그는 무작정 양부모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고, 우연히 만난 라이오스와 시비가 붙어 그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를 살해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인생사는 크루엘라의 그것과 유사점이 많다. 친엄마인 바로네스가 버린 딸, 크루엘라도 친모의 하인인 캐서린을 엄마로 안 채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엄마와 사별한 그녀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운명적으로 바로네스를 만난다.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한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길을 막은 라이오스를 죽였듯이 바로네스의 명성과 경력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만큼이나 기구하고, 크루엘라와 바로네스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부자의 관계에서 성별만 바뀐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크루엘라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공로로 공석이 된 테바이의 왕좌에 앉은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밝혀 나가던 중 자신이 그 범인이라는 것을, 친불르 죽인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테바이에서 추방시키며 “그것은 아폴론이었소, 아폴론이오, 친구여. 나의 불행을, 불행을, 나의 고통을 완성한 것은. 하지만 눈을 직접 찌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련한 나 자신이었소.”라고 외친다. 그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비극을 끝맺으면서 '친부를 죽인 파렴치한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웅 오이디푸스'로 거듭난다.
크루엘라는 다르다. 그녀를 키운 양모 캐서린은 그녀가 본래 모습인 '크루엘라' 대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인 '에스텔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깨달은 것처럼 바로네스와 캐서린, 자신의 관계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이미 정해진 자신의 운명, 곧 크루엘라의 삶에 순응해버린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 자체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방해물이나 규범 등에 개의치 않는 저항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그 어떤 저항 의지나 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공유하는데도 크루엘라가 그와 달리 빌런이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도 트로이에서 용맹을 떨치다 죽은 아킬레우스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란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한 존재다. 즉, 운명에 저항하는지 순응하는지를 기준으로 볼 때 크루엘라는 정확히 영웅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이처럼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살짝 비튼 결과 <크루엘라>는 공감의 여지가 있는 설득력 있는 서사를 빌런에게 부여하면서도 빌런을 빌런답게 만드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크루엘라>의 메가폰을 잡은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자신의 광고 및 뮤직비디오 감독 경력을 살려 익숙한 듯 다른 이야기를 화려하고 강렬하며 매혹적으로 포장한다. 이는 단지 디즈니의 자본력으로 무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며, 패션과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선 크루엘라의 옷은 주어진 운명과 만들어 나갈 운명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녀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각각 '크루엘라'와 '에스텔라'를 의미하는 흑백의 조화가 두 정체성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가운데, 포인트가 되는 빨간색은 쓰레기로 옷을 만들거나 옷을 불태우는 등 반항기 넘치는 그녀의 성정을 강조한다. 반면에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일류 디자이너가 만드는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예술성에 치중한 오트쿠튀르 패션에 충실한 바로네스의 옷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전무하며 안하무인인 그녀의 성품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중 옷과 패션은 그 자체로 두 캐릭터의 상반된 정체성과 그들의 갈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또한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뽐내는 음악들, 특히 펑크 록 음악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당시 영국의 노동계급은 오일쇼크,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혁신 없는 기업과 자본가들로 인한 비효율적인 경제 구조 때문에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는 1970년대 런던이 반체제적인 가사와 강렬한 사운드, 허름한 듯 반항적인 패션 등으로 대변되는 펑크 록 음악의 열풍으로 가득한 도시였던 이유다. 따라서 영화 곳곳에 삽입된 펑크 록은 가진 것 없는 하층 계급으로서 살다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크루엘라를 단적으로 표현할 최적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크루엘라의 패션쇼가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녹아든 결과다.
다만 작품의 매력과는 별개로 <크루엘라>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 영화는 휘발성이 강하다. 전개는 매우 급하고 내실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크루엘라가 수많은 직업 중 왜 하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그녀의 타고난 핏줄, 재능, 운명 외에 별다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바로네스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녀가 자신의 선천적인 재능 외에 어떤 노력을 기울였지 그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화려한 옷들로 바로네스를 짓밟고 그녀에게 복수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화려하고 짜릿하지만 일면으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까지 떨쳐내지는 못한다. 성장 과정이 빈약하기에 그녀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진정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빌런의 기원을 다루는 동화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아이가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1970년대 영국의 현실을 동시에 풀어내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당시 시대상의 한계를 조명하고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일탈하게 되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대신 그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만을 취사선택해 동화를 뻔하지 않게 포장하는 데 몰두한다. 그 결과 마치 아웃사이더의 음악이자 문화였던 펑크 록이 주류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크루엘라>도 디즈니의 안정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동화가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 안에 담기는 순간 빚어지는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은 <크루엘라>에서 유독 배우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쁘게 보면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좋게 보면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연출 덕분에 영화의 본질적인 한계와 단점이 효과적으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당장 영화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크루엘라가 출생의 비밀을 모두 깨닫고 마음을 다잡는 분수에서의 독백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철저히 엠마 스톤만을 원 테이크로 잡아내면서 그녀의 카리스마와 연기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이에 <이지 A>나 <헬프>와 같은 작품에서 이미 기존 질서나 방식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던 엠마 스톤은 기대대로 배신감, 충격, 혼란, 분노, 복수심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선을 손에 잡힐 듯이 표현해낸다. 그 순간 크루엘라가 대변할 수 있는 여러 현실과 상황, 맥락은 시야에서 제외되고 단지 그녀의 다음 행보와 선택만이 눈에 들어온다.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조커>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았다. 흑백의 대비가 가득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주위를 압도하는 주인공의 카리스마, 반사회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장면 하나하나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모습을 드러낸 <크루엘라>는 결코 <조커>가 될 수 없는 영화였다. 빌런을 빌런답게 묘사하면서 관객들과 캐릭터 간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커>는 한 개인으로서 아서 플렉이 어떻게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조롱당했는지, 그의 분노가 얼마나 강렬했고 그의 공격적인 태도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를 관객들이 불편해할 정도로 깊숙이 들여다본 영화였다. 그러나 <크루엘라>는 그 불편함의 자리에 원작 애니메이션과 연결고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팬서비스를 집어넣으며 <조커>와 대비를 이루는, 너무나도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크루엘라>는 큰 기대에 비하면 디즈니가 빌런을 주인공으로 삼아 제작한 영화들 중 가장 위험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서 만족할 뿐, 그 이상의 성취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A(Acceptable, 무난함)
주인공도, 영화도 진짜 도전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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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리오사 | 모래맛과 쇠맛은 덜고, 눈물맛은 더하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명 붕괴 45년 후. 풍요로운 ‘녹색의 땅’에서 지내던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는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의 바이커 군단에 납치돼 가족과 행복을 모두 잃어버린다. 인질이 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의 어깨너머로 황무지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힌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날만을 기다리며.
그러던 어느 날, 퓨리오사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황무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가스타운'을 점령한 디멘투스가 '시타델'의 지도자 '임모탄 조'(러치 험)와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그녀를 임모탄 조에게 넘겨 버린 것. 믿음직한 동료 ‘잭’(톰 버크)의 도움을 받으면서 퓨리오사는 시타델의 전사로 거듭나고, 그녀는 아껴두었던 복수의 칼날을 마침내 꺼내든다.
형 만한 아우 여기 있다
2015년 여름에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는 신드롬이었다. 강렬한 모래맛 영상미와 쇠맛 액션은 센세이셔널했다. 드라마를 최소화하고 액션에 집중하는 <매드맥스> 시리즈 중에서도 유달리 액션에 힘을 잔뜩 준 덕분이었다. 전작이 <해피 피트>와 <해피 피트 2>인, 70세 노감독 조지 밀러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관객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국내에서는 390만 관객, 월드와이드 3억 7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 평단도 다르지 않았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을 싹쓸이했고, BBC가 100대 21세기 영화에 선정하기도 했다.
자연히 속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를 향한 기대는 컸다.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에서 주인공 맥스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퓨리오사의 과거사를 다룬 프리퀄로, 제77회 칸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다. 9년 만에 돌아온 프리퀄은 그 기대에 부응한다. 비록 전편만큼의 모래맛과 쇠맛은 아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는 퓨리오사의 눈물이 그 빈자리를 훌륭히 채우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를 보고 한 번쯤 가졌을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 주력한다. 늪지대로 변하기 전 녹색의 땅의 모습. 그곳에서 보낸 퓨리오사의 유년 시절. 그녀가 납치당한 계기와 시타델에서의 성장기. 그가 임모탄 조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장군으로 거듭나는 서사시와 의수를 달게 된 사연. '버자드'와 '바위 라이더'의 정체. 심지어는 맥스와의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과거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전편과의 연계점을 명확히 보여주며 퓨리오사의 전체 서사를 곱씹게 만든다. 어머니를 죽인 빌런 디멘투스에게 복수하는 퓨리오사. 그녀는 복수를 통해 그에게 빼앗긴 어머니와 유년 시절을 되찾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 이는 본편에서 그녀가 유독 임모탄 조의 여자들, 곧 엄마가 될 여성을 구원하려고 애쓴 동기로 작용한다.
또 그녀가 디멘투스를 응징하는 방식은 그녀가 시타델을 점령한 후 새로운 녹색의 땅으로 만드는 전편의 결말을 더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와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처럼 <퓨리오사>의 결말이 전편의 시작으로 곧장 이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분노의 도로>의 하이라이트가 삽입된 엔딩 크레디트 덕분에 그 감흥은 배가 된다.
모래맛과 쇠맛이 덜한 이유
물론 전편과의 차이가 작지는 않다. 전편이 퓨리오사의 탈출 계획이라는 사건을 쫓은 반면, <퓨리오사>는 퓨리오사를 캐릭터에 주목하기 때문. 전자가 직선적이라면, 후자는 곁가지 더 많고 서정적이다. 정키 XL이 다시 참여한 음악만 봐도 접근법의 차이가 분명하다. 웅장하고 공격적이었던 <분노의 도로>의 음악과는 달리 <퓨리오사>의 음악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이는 빨간 기타리스트의 존재감이 전편 같지 않은 이유다.
액션도 마찬가지다. 물론 양과 질은 진일보했다. 4륜 이상 차량 35대와 바이크 110대가 동원된 액션 시퀀스의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연출도 더 입체적이다. 패러글라이딩과 차 아래 공간을 활용해 전편보다 더 입체적이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루는 분량이 늘어나다 보니 액션 시퀀스 사이 공백은 상대적으로 길다. 그 결과 전체적인 임팩트가 덜하고, 모래맛과 쇠맛이 약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
접근법의 변화는 캐릭터를 다룰 때도 일장일단이 있다. 퓨리오사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녀만의 특별함은 사라지는 듯하다. 퓨리오사는 기존 할리우드 여전사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캐릭터였다. 싸우는 목적이 달랐다. 퓨리오사는 현재의 삶 대신 더 나은 삶과 구원을 찾았다. 그래서 맥스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임모탄 조의 여자를 빼돌려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땅을 향해 달릴 생각만 했다.
하지만 <퓨리오사>를 보고 나면 전편에서 목격한 퓨리오사의 서사가 장대한 복수극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곧 그녀 역시 빼앗긴 삶에 대한 복수와 모성애 때문에 싸우는 일반적인 여전사 중 하나로 전락한다. <에일리언>의 리플리나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처럼. 퓨리오사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 나머지 그녀의 신비감, 아우라까지 약해지고 만다. 프리퀄의 근본적인 한계까지는 넘지 못한 셈이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하지만 퓨리오사의 복수극을 곱씹어 보면 약간의 아쉬움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 응축된 이야기를 뜯어보는 재미 덕분이다. 특히 새 빌런 디멘투스와 퓨리오사의 관계가 흥미롭다. 의외로 둘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가족을 잃었다. 디멘투스는 아이를, 퓨리오사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악만 남은 둘은 복수와 생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채 발악한다.
그런데 발악의 방향성은 정반대다. 디멘투스의 발악은 파괴적이다. 딸의 유품인 인형을 망토에 매단 채 사막과 황야를 헤집고 다니면서 약탈하고, 자기 같은 피해자를 다시 만들어낸다. 퓨리오사는 다르다. 그녀는 현재를 딛고 새 미래를 꿈꾼다. 고향에서 가져온 열매의 씨앗을 심어 새 나무를 키우려 한다. 즉, 디멘투스가 절망적인 현재에 갇힌 반면, 퓨리오사는 현재의 모래 폭풍을 뚫고 미래를 바라본다.
이 대목은 전편 못지않게 인상적인 여성 서사다. 디멘투스와 퓨리오사의 대립은 파괴적인 부성애와 재생산의 모성애의 대조나 다름없으니까. 그래서 퓨리오사는 아버지를 자처하는 디멘투스와의 관계를 끊어낸다. 그를 단순히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고 그의 몸 위에 나무를 심어 그를 살아있는 거름으로 삼는다. 그녀가 잭과 동료이자 연인이 되는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잭 역시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할 줄 알기 때문.
액션을 넘어 정치극까지
더 나아가 퓨리오사의 복수극은 정치 드라마로 확장된다. 퓨리오사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임모탄 조와 디멘투스의 차이는 명확하고, 그 덕분에 그들의 합종연횡을 지켜보는 묘미도 커진다. 사실 퓨리오사는 디멘토스보다도 임모탄 조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단지 물과 같은 자원의 독점 여부를 두고 비전의 모습과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임모탄 조는 퓨리오사가 그러했듯이 디멘투스와 싸울 수밖에 없다. 미래를 걱정하는 자와 현재만 사는 자의 충돌은 필연적이니까. 실제로 임모탄 조가 물, 가스, 식량, 무기 공급을 유지하며 장기적인 생존을 추구하는 반면, 디멘투스는 지금 당장 먹고살고 자원을 소비하기에 급급하다. 문명 붕괴 45년 후라는 시간대를 고려하면 이 전쟁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극의 묘미는 <매드맥스> 세계관이 확장하는 데도 공헌한다. 두 빌런은 전편에서 짧게 언급된 공간을 오가며 전쟁을 펼치기 때문. 전작이 사막과 황무지라는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세 개의 도시가 전면에 등장해 권력의 삼각형을 묘사한다. 재등장한 시타델은 물론, 유전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스타운과 거대한 광산을 연상시키는 무기 농장의 이미지가 뇌리에 박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두 주연의 연기도 일품이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경우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약한 소녀부터 냉철한 여전사까지 더 폭넓은 이미지를 소화하며 미완의 퓨리오사를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 디멘투스는 잔인함과 유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낸 크리스 헴스워스 덕분에 임모탄 조에 비견될 만한 빌런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퓨리오사>는 전편 못지않은 걸작이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다루다 보니 덜 직선적이고,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더 풍성해진 <매드맥스> 세계관을 맛보고, 퓨리오사의 복수극을 두세 번 곱씹어 보는 경험은 거부하기 어려운 영화적 경험이다. 전편에 열광한 관객이라면 더더욱.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분노의 도로>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래와 쇠를 달구는 그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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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8마일' 리뷰
래빗은 디트로이트에서 자랐다. 낙후된 동네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떠났다. 여차저차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보니 친구들도 집도 그대로였다. 기댈 곳은 트레일러 한 칸짜리 엄마 집.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공장에서 푼돈을 벌면서 희망을 품는 건 랩배틀이다. 고된 출퇴근길 속에서도 노트와 연필을 놓지 못한다. 랩이 유일한 해방구이자 돌파구다. 가사를 적을 종이와 펜, 기억할 머리만 있으면 어디서나 뱉을 수 있다. 랩배틀이 좋은 건 배틀 상금도 있다는 거다. '언젠가는 이걸로 뜨겠지' 하는 기대는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랩을 하는 건 일상을 토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X같은 내 인생."이라고 어떻게든 뱉어내야 속이라도 풀린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함정이다. 성공을 위한 길에는 왕도가 없다. 방법보다 중요한 게 마음가짐이다. 디트로이트 길거리엔 사람들도 없다. 폐허가 된 건물들과 담벼락에 낙서들 뿐이다. 래빗은 버스를 타고 동네를 지나 공장으로 간다. 출퇴근길에서 보이는 건 이런 모습들 뿐이다. 낙후된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은 입안에서 거칠게 씹힌다. 씹어 삼키기에 무거워 토해내는 수밖에는 없다. 래빗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종이에 쓰고 또 쓴다. 글자는 겹쳐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써내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 풀릴지는 몰라도 래빗은 안주하려 들지 않는다. 트레일러 집조차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래빗은 안다.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란 걸. 그렇지만 버텨야 한다. 가진 재능을 믿고 깡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힙합은 소외된 자들의 것]
래빗이 일하는 뉴 디트로이트 공장은 전과자나 복지 받는 사람이나 일하는 곳이라고 엄마의 남자친구가 말한다. 불안정한 직장에 트레일러 집, 냉장고에 우유도 떨어진 이 삶은 하루하루가 사투다. 모두의 관심 밖에서 일상을 채우는 건 음악뿐. 후드를 뒤집어쓰고 비트로 세계를 채운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평론가는 한 영상에서 힙합을 기성세대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음악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 말처럼 그 당시의 힙합은 소외된 이들의 무기였다.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공고한 틀 바깥 어딘가를 떠도는 이들의 문화였다. 별다른 장비 없어도 할 수 있었기에 유행처럼 퍼져나갈 수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힙합은 소외된 이들의 무기였다.
[디트로이트 지역번호, 313]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313을 연호한다. 폐허 같은 이 동네의 지역번호. 떠나고 싶은 곳이지만 동시에 자란 터전이기도 하다. 이곳을 무력하게 밀려나서 떠나서는 안 된다. 이 지옥 같은 동네가 내가 자란 곳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그 동네를 부정해도 말이다. 부정당하는 건 출신뿐만이 아니다. '백인의 랩' 또한 부정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나눈다. 압박감 속에서 래빗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무대에서도 밀려난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잡게 되는 건 능력의 여부가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의지는 추진력이 되어준다. 래빗은 무대로 향하는 게 아니라 무대로 이끌린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건 수많은 관중이 바라보는 스테이지가 아닌 주차장이었고,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던 공터였다. 쌓아 올린 실력이 어디 도망가진 않는다. 실력을 믿고 마이크를 들어야 한다.
[일보 전진에서 일동 전진으로]
일대일로 붙는 랩배틀의 묘미는 결투라는 점에 있다. 나의 우위를 드러내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규칙에 맞춰서 가사를 써야 한다.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두 결투자의 위치는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결투는 일종의 게임이기도 하다. 랩 게임에서 의미 있는 원투 펀치는 무엇일까? 비트가 시작되면 온갖 인신공격 가사들이 쑤셔온다. 정신을 빼놓는 가사들은 그저 눈속임용이다. 증명해야 하는 실력은 상대를 까내리는 내용 자체보다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숨겨진 의미에 있다. 래빗의 랩 게임에서 그의 실력에 더해졌던 마지막 한 조각은 진정성이었다. 피부색으로 의심을 받던 진정성은 그가 겪은 삶의 곡절을 가사로 담아내어 인정받는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가짜들과 다르게 진짜의 삶을 살았노라 선언한다.
래빗의 랩이 궁상맞은 하소연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얻어맞고 쓰러져도, 눈에 멍이 들어도 끝내 무대 위로 올라와서 마이크를 붙잡기 때문이다. 눈에 독기를 품고 마이크를 붙잡고 무대 위에서 상대를 노려보는 모습은 더 때려보라는 식이다. 무너져도 일어날 테니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태도가 힙합이다.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다음 단계에서도 인정하고 한 걸음 더. 이 영화가 얼마나 독한 영화냐면 래빗의 각오가 엔딩 시퀀스까지 이어진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과는 별개로 래빗은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 해피엔딩과는 별개로 잔업이 남아있다. 스튜디오가 아닌 공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 랩 게임은 시궁창 같은 현실 속 소박한 승리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치열하게 일궈낸 소박한 승리는 무엇보다 값지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토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시시때때로 부닥친다. 한 순간의 변화로 인생의 궤도가 극적으로 틀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흔치 않다. 우리들 또한 래빗처럼 승리를 거두고도 다시금 공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생긴다. 실은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당장의 공과금, 밀린 월세, 할부를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소박한 승리로는 부족하다. 완주를 위해서는 게임 승리 너머의 생활까지 고려해야 한다. 진절머리 나는 삶이라도 말이다. 한스럽지 않게 뱉어낸다. Rap It. 래빗은 삶을 뱉어냈다.
사진 출처 : TMDB '8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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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 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와 화려한휴가/5.18 영화이야기/ 5.18 40주년
#화려한휴가#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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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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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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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이 비밀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엑스맨의 빌런 (feat. 소드, 완다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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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What is 소드?!
00:55 원작 속 S.W.O.R.D.
01:42 MCU 속 소드, 쉴드?
03:43 슈퍼히어로를 무기로 보는 단체
05:35 노드VPN 사용하고 완다비전 보자! (광고스킵은 6:55)
06:55 미래가 창창한 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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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고결진> 예고편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나만 이 세상에 남겨둔 거야!” ⟨천고결진⟩ 9월 15일(수) 밤 9시, 10시 왓챠 독점공개! 월/화/수/목 같은 시간 각각 2개의 에피소드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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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법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늘 시사회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다룬 작품이니, 오셔서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쓰려면, 12월 4일 오전 9시 49분에 발송된 문자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초현실적인 내란 획책이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지금 ‘영화 따위’가 문제냐며 퇴근 후 곧바로 어느 집회 현장이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문자를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가 떠올랐다. 참사 후 가수들이 예정대로 콘서트를 진행하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때, 한 음악 평론가가 말했다. ‘그럴 거면 앞으로 음악으로 위로받았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우리는 지금 예술이 ‘하찮아지는’ 시국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실이 예술을 초월하는 기막힌 상황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술에서 이 시국을 헤쳐 나갈 용기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며, 나는 내란범과 그에게 동조하는 세력에 맞설 ‘사소한’ 방법 중 하나를 떠올렸고, 되새겼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펄롱의 걷는 장면이다. 그의 걷는 모습을 비추거나, 그가 걸으면서 마주했을 법한 풍경을 비추는 장면 말이다. 펄롱이 일상적으로 걸으며 마주하는 그 모든 사람과 풍경에서, 그는 정동 소외자다. 펄롱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지 못한다. 펄롱은 학대당한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동전을 건넨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그들이 학대당한다는 낌새를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펄롱을 나무란다. 퍽퍽하지만 그런대로 소박한 현재의 안온한 삶을 잃지 않으려면 눈을 감고 그들에게서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펄롱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펄롱은 종종 그 길을 오르며 헉헉거린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석탄을 배달하는 펄롱은 거친 솔로 손가락과 손톱 구석구석에 낀 석탄 가루를 닦아낸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흔적도 없이 닦아내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펄롱은 헷갈린다. 수녀원에서 본 소녀들에게서 사랑하는 딸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펄롱은 그들에게서 고아인 그를 조건 없는 선의로 돌봐준 어른들 덕분에 번듯하게 성장한 그가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본다.
이제 펄롱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에 솔직할 것인가, 모두의 요청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일에 눈감을 것인가. 펄롱은 이 문제를 거창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가 수녀원에서 마주한 소녀 세라와 함께 걸으며, 수녀원이 아닌 자기 집으로 걸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펄롱은 수녀원에 갇힌 ‘사고 치는 여자’와 ‘사랑스러운 딸’ 사이에 놓인 임의의, 우연적인, 불분명한 구분선을 지워낸다. 자기 자신의 경험과 감각, 감정과 정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펄롱은 그저 세라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음으로써 이 일을 해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아일랜드 수녀원에서 대규모로 자행된 소녀들의 노동력 착취 및 감금, 학대 사건에서 출발한다. 원작 소설을 쓴 클레어 키건에 따르면, 1996년에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기 전까지 수녀원에 감금당한 채 강제 노역에 시달린 소녀의 숫자는 최소 만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달한다. 9천 명의 소녀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금의 명분은 ‘타락한 여성’의 수용이었다.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이 사건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가?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질문해보면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고 맞서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압도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펄롱처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변화와 저항을 모색할 수 있다. 자기 감각과 경험을 믿는 것이 출발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감각과 경험이 누군가의 삶과 생명, 개별 인간들의 관계성,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규칙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밟는 것으로 지향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내란범들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중요할 것이다. 불완전하고 문제투성이일지라도, 우리 일상의 토대를 이루는 연결망을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지가 기준이어야 한다.
담담한 소박함으로, 평범한 소시민들이 각자와 서로의 삶을 꾸려온 방식으로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하는 듯하다. 내면에 침잠해 세상을 짊어진 펄롱의 용기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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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미디어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영화 '소셜 딜레마'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낸다. 시간도 때울 겸 평소 즐겨 쓰는 소셜 미디어 앱으로 들어간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등 형식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화려한 문구와 이미지가 시선을 자극한다. 마음에 드는 영상이 없다면 화면을 당겨서 쉽고 간단하게 새로고침 한다. 새로운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등장한다. 끌리는 콘텐츠를 클릭한다. ‘이것까지만 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영화 ‘소셜 딜레마’는 누구나 해봤을 경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영화 ‘소셜 딜레마’
영화 ‘소셜 딜레마’는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일했던 실리콘벨리 전문가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담았다. 구글 디자이너였던 디자인 사상가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의 경험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가 ‘Gmail’에서 했던 업무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다고 느낀 상황을 설명한다. 이어서 광고로 대표되는 수익 창출 구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결과적으로 소셜미디어가 10대 청소년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룬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영리하게 계획된 다큐멘터리
줄거리만 보면 전문가들이 지루한 인터뷰를 늘어놓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제작진은 무서울 만큼 영리하게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시청자에게 설득한다. 앞서 언급한 ‘트리스탄 해리스’의 경험을 다룰 때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했고 그래프 하나를 표현해도 메시지가 극대화되도록 연출했다.
마지막 필살기로 미국의 한 가정을 묘사한 드라마 장르를 추가했다. 부모님과 삼 남매로 이루어진 가족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갈등을 겪는다. 엄마와 첫째 ‘카산드라(카라 헤이워드)’는 가족들의 잦은 스마트폰을 걱정하는 반면 둘째 '벤(스카일러 지손도)’과 셋째 ‘아일라(소피아 해몬소)’ 는 별일 아닌 걸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반발한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아일라’는 10대 여성을 대표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부터 소셜미디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 영화는 ‘벤'을 통해 소셜미디어가 사용자를 유혹하는 방식을 SF영화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과 음모론 같은 가짜 뉴스를 믿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소셜 딜레마’ 속 드라마는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동시에 드라마가 완벽한 허구는 아님을 증명하듯 ‘#pizzagate’, ‘미얀마 로힝야족 사태’의 실제 뉴스 보도와 각종 연구자료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처럼 인터뷰, 드라마, 실제 뉴스 보도를 넘나드는 구성은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소셜미디어는 정말 나쁘기만 할까?
대부분의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그러했듯 개발자들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소셜미디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의 기술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의 어두운 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발생할 악영향을 지적한다. 인터뷰의 한 가지 예시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이 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해당 기능을 만들었지만, 역으로 ‘좋아요’를 받지 못해서 좌절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술의 끝은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한 문장이 소셜미디어를 향한 비평과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뒤쳐져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 미디어나 통신망에서 이루어지는 규제가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의 막대한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비용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또한 기업이 광고 위주의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사용자가 권리를 강력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개인도 소셜미디어와 자신 간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알림 설정을 꺼두거나 콘텐츠를 알고리즘의 추천 대신 직접 선택하는 습관을 가질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추천 목록을 제어하는 크롬 프로그램을 설치하길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마주하는 정보를 의심해야 한다. 이 글은 ‘소셜 딜레마’를 거짓 없이 설명했을까? 당신을 편향된 시선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검증이 필요하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를 통해 확인해보자.
영화 ‘소셜 딜레마’와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다양한 의견을 첨부합니다.
(*아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조재길 특파원, 한국경제, ‘"삼성전자도 타깃"…美 이어 EU도 빅테크에 '칼' 꺼냈다’
김승현 기자, 조선일보, ‘“넷플릭스 적당히 해라” 페이스북 'SNS 중독’ 다큐에 발끈’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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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기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을 계속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포기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제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각자는 레벨업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자신 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실제로 활용해 가면서 자기가 자기고 있는 힘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위한 작은 계단들이다.
너무나 흔하지만 '실패'라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하면 대부분은 주저앉아 절망한다. 그렇게 포기를 택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않게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는 선택이 바로 포기다. 만약 그것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사람들은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많이 택한 실패 극복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의 이야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에는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이 나온다. 팀에 속한 에드긴(크리스 파인),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그리고 도릭(소피아 릴리스)는 네버윈터의 영주인 포지(휴 그랜트)에 맞서 보물과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에드긴을 중심으로 모인 이 팀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다. 리더인 에드긴은 과거에 성스러운 일을 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에드긴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된다.
에드긴이 아내 없이 처음 맡은 임무인 육아에도 계속 실패하자, 우연히 그 광경을 본 홀가는 에드긴의 집에 같이 살며 남매 같은 사이가 되고 딸을 같이 키운다. 이후 에드긴과 홀가, 사이먼은 크고 작은 보물을 훔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부활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팀을 만들어 보물이 있는 장소에 가지만 그곳에서 에드긴과 홀가가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맞이한다. 몇 년 후 결국 감옥에서 다시 탈출하지만 이미 과거 동료였던 포지와 악의 위저드 소피나(데이지 헤드)가 에드긴의 딸을 볼모로 삼게 된다.
영화에는 에드긴의 팀이 포지의 보물과 에드긴의 딸을 구출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팀은 막강한 위저드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는데, 깊은 던전에 숨겨둔 투구를 찾거나 마법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등의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건, 그 목표를 향해 선택하는 방법들에 확신이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리더인 에드긴의 계획에 따라 가지만 멤버들은 늘 벽에 막힌다. 또한 각 인물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타고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홀가를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 찾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젊은 위저드 사이먼이다. 그는 자신의 마법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들도 모두 자신 없는 말들 뿐이다. 그래도 그를 좀 더 도전할 수 있게 이끄는 건 실패 전문가 에드긴이다. 에드긴 역시 최고의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딸을 빼앗기는 큰 실패를 계속 겪는 인물이다. 영화는 실패한 리더 에드긴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전달한다.
에드긴이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어쩌면 불가능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당연하게도 계속 실패한다. 영화가 다루는 에드긴의 실패는 절망적이지 않다. 이건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 톤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대하는 에드긴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준다. 영화 중반까지 관객의 입장에서 에드긴과 그의 팀이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 앞에 꽤 많은 실패가 먼저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갈 때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후반부 에드긴이 팀원들에게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맞이하는 모험의 끝이 나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팀원들은 실패의 순간에 목표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에드긴은 실패 이후 어떤 식으로 상황을 대할 것인지 알려준다. '포기'를 택하는 순간 실패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포기'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면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다시 처음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포기'를 선택하지 않는 삶, 그 태도가 리더인 에드긴이 살아온 삶이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사실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영화다. 오랜만에 제작된 판타지 영화이고, 과거 2000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 있는 영화는 롤플레잉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2000년에 개봉했던 <던전 드래곤>은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즈가 주연을 맡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그런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꽤 잘 만들어진 오락 판타지 영화다.
무척 흥미로운 판타지 오락영화
과거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는 팀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무엇보다 강력한 악의 위저드보다 부족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서사가 흥미롭다. 주인공 에드긴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분위기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실패 전문가들이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이 경쾌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에드긴 역을 맡은 크리스 파인은 과거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유쾌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하면서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다. 여전사 홀가 역을 맡은 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 역을 맡은 저스티스 스미스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도릭 역을 맡은 소피아 릴리스의 매력이 돋보인다. 사기꾼 포지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능글맞은 이기적인 배신자역에 무척 잘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뚱뚱한 드래곤이나 다양한 마법 위저드들이 등장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마치 마블 시리즈의 초창기 영화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경쾌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다양한 방향의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다양한 시리즈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에드긴과 그의 팀이 앞으로 어떤 실패를 겪고 또 극복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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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엘라> 여자 오이디푸스의 화려하고 안전한 탄생
태어난 순간부터 특별해서 좀처럼 일반적인 삶에 녹아들지 못한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과 함께 런던으로 가서 패션 디자이너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와 이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런던에 도착한 그녀는 새로 만난 친구 '재스퍼(조엘 프라이)',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와 함께 런던 길거리를 주름잡는 도둑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라는 어릴 적 꿈을 잊지 못해 무작정 리버티 백화점에 일자리를 구한 그녀는 운명처럼 런던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를 만나고, 즉시 재능을 인정받은 후 특채로 채용되며 그 꿈을 이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로네스의 끔찍한 과거와 진실을 알게 된 에스텔라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크루엘라를 바로네스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모두를 놀라게 할 패션쇼를 준비한다.
악역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난관을 마주한다. 어떻게 악역을 악인으로 남겨두면서도 관객들을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까 하는 문제다. 많은 영화들은 빌런에게 인간적인 뒷이야기를 선사한다. 어릴 적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경험들을 나열하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역으로 빌런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애매해진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전개에 좀처럼 흡인력이 붙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디즈니의 <말레피센트 2>나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작품이 대표 사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등장한 빌런 '크루엘라 드 빌'의 탄생을 그린 스핀오프 겸 프리퀄 <크루엘라>가 마주한 딜레마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겨서 코트를 만들려고 하는 잔혹한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을까. 이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크루엘라>는 누구나 접해 봤을 법한 한 영웅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바로 오이디푸스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인 그는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그의 미래를 두려워해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버렸고, 가까스로 한 신하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오이디푸스는 다른 양부모를 만나 평화로이 살아간다. 어느 날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내용의 신탁을 들은 그는 무작정 양부모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고, 우연히 만난 라이오스와 시비가 붙어 그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를 살해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인생사는 크루엘라의 그것과 유사점이 많다. 친엄마인 바로네스가 버린 딸, 크루엘라도 친모의 하인인 캐서린을 엄마로 안 채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엄마와 사별한 그녀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운명적으로 바로네스를 만난다.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한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길을 막은 라이오스를 죽였듯이 바로네스의 명성과 경력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만큼이나 기구하고, 크루엘라와 바로네스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부자의 관계에서 성별만 바뀐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크루엘라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공로로 공석이 된 테바이의 왕좌에 앉은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밝혀 나가던 중 자신이 그 범인이라는 것을, 친불르 죽인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테바이에서 추방시키며 “그것은 아폴론이었소, 아폴론이오, 친구여. 나의 불행을, 불행을, 나의 고통을 완성한 것은. 하지만 눈을 직접 찌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련한 나 자신이었소.”라고 외친다. 그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비극을 끝맺으면서 '친부를 죽인 파렴치한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웅 오이디푸스'로 거듭난다.
크루엘라는 다르다. 그녀를 키운 양모 캐서린은 그녀가 본래 모습인 '크루엘라' 대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인 '에스텔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깨달은 것처럼 바로네스와 캐서린, 자신의 관계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이미 정해진 자신의 운명, 곧 크루엘라의 삶에 순응해버린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 자체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방해물이나 규범 등에 개의치 않는 저항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그 어떤 저항 의지나 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공유하는데도 크루엘라가 그와 달리 빌런이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도 트로이에서 용맹을 떨치다 죽은 아킬레우스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란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한 존재다. 즉, 운명에 저항하는지 순응하는지를 기준으로 볼 때 크루엘라는 정확히 영웅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이처럼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살짝 비튼 결과 <크루엘라>는 공감의 여지가 있는 설득력 있는 서사를 빌런에게 부여하면서도 빌런을 빌런답게 만드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크루엘라>의 메가폰을 잡은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자신의 광고 및 뮤직비디오 감독 경력을 살려 익숙한 듯 다른 이야기를 화려하고 강렬하며 매혹적으로 포장한다. 이는 단지 디즈니의 자본력으로 무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며, 패션과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선 크루엘라의 옷은 주어진 운명과 만들어 나갈 운명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녀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각각 '크루엘라'와 '에스텔라'를 의미하는 흑백의 조화가 두 정체성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가운데, 포인트가 되는 빨간색은 쓰레기로 옷을 만들거나 옷을 불태우는 등 반항기 넘치는 그녀의 성정을 강조한다. 반면에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일류 디자이너가 만드는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예술성에 치중한 오트쿠튀르 패션에 충실한 바로네스의 옷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전무하며 안하무인인 그녀의 성품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중 옷과 패션은 그 자체로 두 캐릭터의 상반된 정체성과 그들의 갈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또한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뽐내는 음악들, 특히 펑크 록 음악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당시 영국의 노동계급은 오일쇼크,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혁신 없는 기업과 자본가들로 인한 비효율적인 경제 구조 때문에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는 1970년대 런던이 반체제적인 가사와 강렬한 사운드, 허름한 듯 반항적인 패션 등으로 대변되는 펑크 록 음악의 열풍으로 가득한 도시였던 이유다. 따라서 영화 곳곳에 삽입된 펑크 록은 가진 것 없는 하층 계급으로서 살다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크루엘라를 단적으로 표현할 최적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크루엘라의 패션쇼가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녹아든 결과다.
다만 작품의 매력과는 별개로 <크루엘라>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 영화는 휘발성이 강하다. 전개는 매우 급하고 내실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크루엘라가 수많은 직업 중 왜 하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그녀의 타고난 핏줄, 재능, 운명 외에 별다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바로네스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녀가 자신의 선천적인 재능 외에 어떤 노력을 기울였지 그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화려한 옷들로 바로네스를 짓밟고 그녀에게 복수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화려하고 짜릿하지만 일면으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까지 떨쳐내지는 못한다. 성장 과정이 빈약하기에 그녀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진정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빌런의 기원을 다루는 동화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아이가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1970년대 영국의 현실을 동시에 풀어내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당시 시대상의 한계를 조명하고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일탈하게 되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대신 그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만을 취사선택해 동화를 뻔하지 않게 포장하는 데 몰두한다. 그 결과 마치 아웃사이더의 음악이자 문화였던 펑크 록이 주류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크루엘라>도 디즈니의 안정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동화가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 안에 담기는 순간 빚어지는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은 <크루엘라>에서 유독 배우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쁘게 보면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좋게 보면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연출 덕분에 영화의 본질적인 한계와 단점이 효과적으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당장 영화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크루엘라가 출생의 비밀을 모두 깨닫고 마음을 다잡는 분수에서의 독백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철저히 엠마 스톤만을 원 테이크로 잡아내면서 그녀의 카리스마와 연기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이에 <이지 A>나 <헬프>와 같은 작품에서 이미 기존 질서나 방식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던 엠마 스톤은 기대대로 배신감, 충격, 혼란, 분노, 복수심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선을 손에 잡힐 듯이 표현해낸다. 그 순간 크루엘라가 대변할 수 있는 여러 현실과 상황, 맥락은 시야에서 제외되고 단지 그녀의 다음 행보와 선택만이 눈에 들어온다.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조커>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았다. 흑백의 대비가 가득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주위를 압도하는 주인공의 카리스마, 반사회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장면 하나하나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모습을 드러낸 <크루엘라>는 결코 <조커>가 될 수 없는 영화였다. 빌런을 빌런답게 묘사하면서 관객들과 캐릭터 간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커>는 한 개인으로서 아서 플렉이 어떻게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조롱당했는지, 그의 분노가 얼마나 강렬했고 그의 공격적인 태도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를 관객들이 불편해할 정도로 깊숙이 들여다본 영화였다. 그러나 <크루엘라>는 그 불편함의 자리에 원작 애니메이션과 연결고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팬서비스를 집어넣으며 <조커>와 대비를 이루는, 너무나도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크루엘라>는 큰 기대에 비하면 디즈니가 빌런을 주인공으로 삼아 제작한 영화들 중 가장 위험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서 만족할 뿐, 그 이상의 성취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A(Acceptable, 무난함)
주인공도, 영화도 진짜 도전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