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6 21:19:41
[SIWFF 데일리] 서로의 손을 잡고 벗어나자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우천사)
SYNOPSIS
1999년, 폭력이 만연하던 종말론의 시대. 무엇 하나 쉽지 않던 그 시절, 어느 여름보다 뜨거웠던 소녀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PROGRAM NOTE
고교 태권도 선수 주영(박수연)에게 그해 여름은 서글프고 찬란하다. ‘정상’여고 태권도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 같이 비정상적이라 세상이 소문대로 멸망이라도 해버렸으면 싶은데, 우연히 만난 예지(이유미)와 사랑에 빠진 다음부터는 자꾸 영원을 꿈꾸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두 갈래로 간극을 넓혀 나간다. 한쪽은 폭력과 비리로 얼룩져 있고, 다른 한쪽은 설렘과 애틋함으로 물들어 간다. 영화는 삐삐와 공중전화 같은 소품, 향수를 자극하는 가요 등으로 시대를 다채롭게 재구성하면서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여성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나이와 성별, 신분을 이유로 위계를 나누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목격하는가 하면, 사랑과 우정이 북돋는 용기에 힘입어 이에 저항하고자 나선다. 영화는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을 조명하고 체육계 미투 운동을 상기시키는 에피소드를 전개하면서 어른의 역할에도 질문을 던진다. 다만 인물 곁에는 못되고 못난 어른뿐만 아니라, 제 한계를 확인하며 고민에 빠지거나 타인의 감정을 그 자체로 수용해 주는 어른 또한 자리한다. 덕분에 소녀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직된 시선에 압도당하지 않고 저마다 소망하는 방향으로 애써 나아간다. 그 길은 미래의 천국보다 현재의 사랑을 기꺼이 택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끝내 반짝이는 순간을 꺼내 보인다. [차한비]

유행은 돌고 돈다. 똑딱이 디카와 DSLR이 ‘보급형’이 된 세상에서 필름 카메라가 아성을 되찾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캠코더가 유행하더니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를 통해 캠코더를 위시한 2000년대 카메라들까지 유행이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1999년은 내가 아직 문화를 향유하기엔 너무 어렸던 나이임에도, 어쩐지 자꾸 대중문화 속에서 소환된 덕분에 기묘한 감각으로 흐릿하게 돌아보게 되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그리운 그 시절로 회고하니 자꾸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러는 동안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그건 ‘과연 그립기만 한 시절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비위가 약했던 어린 날의 나는 그 시절 웬만한 공중화장실이 괴로웠던 것도, 버스 뒷자석이나 페인트 칠해진 벽 위에 수정액 혹은 매직으로 적혀 있던 낙서들이 얼마나 날 서 있었는지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좀더 익숙하던 시대였다. 1999년은 분명 그랬다.
그 시절의 몽글몽글한 감성과, 그 시절의 폭력성을 동시에 재현하는 영화는 그래서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이하 우천사)가 필요했다. 물론 <오징어 게임>으로 이제 그의 연기력 모르는 사람 없게 된 배우 이유미, 담담해 보이는 표정으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는, 내겐 너무나 ‘믿고 보는’ 배우 박수연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했다. 그리고 <담쟁이>로 우리에게 찾아왔던 한제이 감독까지.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영화였다.

영화 미술팀이 얼마나 꼼꼼하게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껴진다. 델몬트 유리병, ‘사랑’ 액자, 야광 별, 옥색 가구… 90년대 집의 무드가 물씬 풍겨 나는 곳. 그 집에서 자란 주영(박수연)은 정상여고 태권도부에 속해 있다. 학교명은 올라야 할 ‘정상’을 지향하고자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비정상을 감내해야만 한다. 방관은 숱하게 일어나고, 심지어 교육을 빙자한 폭력조차 만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벽면에는 “방관도 폭력이다” 혹은 “제3자도 가해자다” 같은 ‘맞는 말’이 적힌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을 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학대 같은 조건도 “다 하는 건데”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정하고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어머니가 있음에도, 주영은 그 비정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구조화된 폭력의 세계니까.

거기에 사이렌을 울리며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다 주고 싶은 첫사랑,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같이 있으면 다 아름다운 두 개의 거울 같은 사랑을 외면할 자신이 있는지. 그러나 아직 어린 소녀들의 주변은 부서지기 너무나 쉽다. 세기말의 흉흉한 세계에서는 더더욱.
폭발할 것 같은 세계였던 동시에, 그 폭발을 핑계로 폭력을 숨겨보려는 이들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세기말의 흉흉한 소문들과 권위 의식이 뒤섞이는 이상한 세계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손길들이 작은 삶들을 짓뭉개려 했지만,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햇볕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듯 말랑말랑한 첫사랑의 안온한 온도와, 그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장 차가운 세상에서 가장 뜨거워져야 했던 온도까지 하나에 모두 담았다. 그 극명한 온도 차를 오가다 보면 관객은 목도하게 된다.
소녀가 소녀를 구한다는 것을. 거칠고 폭력적이고 꼬여 있는 세상에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운동이든,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 모두에게 자유롭게 뛰는 체육관 하나가 필요했음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무관하게 지구 종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었을지도 모르다. 사랑이 없고, 깨어진, 그 모든 날들이 어쩌면.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수정액으로 여기저기 날 선 낙서가 적혀 있는 세상을 막연하게 거칠다 느꼈던 어린 시절에서, 수정액과 수정 테이프를 섞어 사용하던 학창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래 전 한 개 사둔 수정 테이프가 집 어딘가 굴러다니지만 좀처럼 쓸 일이 없는 그런 날들을 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준 마음들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자신을 태워서라도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첫사랑의 애틋함, 가볍고 즐겁지만 그 이상을 분명 간직하고 있는 우정, 같은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스크럼을 짜고 연대할 수 있는 마음. 부디 주영과 예지, 다른 아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서로 손을 잡고 벗어나자. 사랑 없음으로 종말에 이르는 세상을.

2023. 08. 26. 10:30-12:22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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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의 슬픔을 아이 같지 않게 이겨내는
제12회 스웨덴영화제 개막식 & 개막작 <코미디 퀸> & 관객과의 대화
이번 주 수요일에 스웨덴영화제 개막과 함께 개막작 <코미디 퀸>을 본 후 시네마 토크가 진행됐다. 이날 무료 포토 부스가 있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촉박했던 나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른 분들의 사진을 보니 개막식을 기념하기에 좋아 보였다.
영화제의 개막식은 처음이라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는데, 주한스웨덴대사 다니엘 볼벤과 한서문화예술협회장님, 영화사 백두대간 대표이사님의 축하 인사가 진행됐다. 이번 스웨덴영화제의 선정 영화를 다 본다면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퍼즐을 다 맞춰볼 수 있을 거라는 백두대간 대표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예전부터 퀴어문화를 다루던 스웨덴 영화의 역사와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생애, 워낙 유명한 즐라탄의 전기, 스웨덴의 가정사부터 정치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이 선정되어 있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칸영화제 수상작이 2개나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성은 말할 게 없을 것 같고.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는 처음이라 더욱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코미디 퀸>은 13살이지만 성숙하게 슬픔을 이겨내려는 소녀 사샤의 이야기이다. 스웨덴영화제 대표 포스터에서 워낙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는 소녀여서 이런 슬픔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영화 중후반부에는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만큼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 겪는 깊은 슬픔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고, 누구보다 성숙하게 슬픔을 이겨내려는 사샤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던 영화였다.
+ 개인적으로는 아기자기한 스웨덴의 가정집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사샤의 개그 영감 노트도 굿즈로 팔아줬음, 좋겠다는 생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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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어 혼자가 아닌 우리
어. 그래. 그럴 때 있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서 영원한게 있나. 생각은 다 바뀌는거 아냐? 당연하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그게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찌됐건 다 이뤄지더라. 다 잘될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수화기 반대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너 예전에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지금은 괜찮다고? 다행이네. 아무튼 생각 많이 하는게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라.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했던 전애인 이야기. 내 20대동안 바뀌었던 처지에 관한 이야기. 별의 별 소재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너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 과분한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봐. 전화를 끊었다. 발전한 사람이라.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끄고 책을 손에 잡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소설 안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제발. 선생이 저를 서울로 데려다 주세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부탁을 거절한다.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부탁을 거절하고 남주인공은 안개 가득한 도시 무진을 떠난다. 소설은 안개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끝마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만약에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자. 여자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남은 시간동안 남자주인공의 빈자리만 느끼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자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책 읽고 나면 늘상 하는 잡생각이었다. 사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이 짠하고 이뤄질리는 없어.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에 기댔을거야. 여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난 책이 던지는 질문에 안개같이 막연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어차피 남자주인공같은 사람은 이 소설책에서 한 사람밖에 없을테니까.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계속 생각나겠지? 그럼 남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계속 하거나 직접 서울로 올라가거나 둘중 하나를 택할거야. 어떤 존재가 있다 없어지는 건 상대를 내 일상속에서 지워버리는게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일이었다. 무진의 안개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토니 티키타니>는 부재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다. 1시간 30분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이정도 시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이를 반영하듯 영화라기 보다 책을 읽는것처럼 진행된다. 책을 읽다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전반에 걸쳐 들리는 나레이션은 이를 연상시키며 영상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촬영한 카메라의 시선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연출해서 얻는 이점은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토니의 일생을 표현하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일본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느곳에도 속해있지 못해 외로웠던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혼자인 것에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타인이 보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며 매사가 혼자였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온다. 완벽한 이상향의 여인 에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에이코와 함께라면 늘 행복했던 토니. 외로움덕에 쓸쓸하지 않았던 인생에 처음으로 고독이란걸 느끼게 된다. 에이코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잡다한 고민에 속이 썩던 그는 에이코에게 청혼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의류를 사들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소비를 줄이자고 했던 조언이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됐다. 토니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의 2/3쯤 된다. 난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남은 1/3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지점을 넘긴 영화는 아내 에이코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토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내와 옷핏이 비슷한(실제 배우가 1인 2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부인이 샀던 의류를 입게 한다. 부인과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을 통해 처음 느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주인공. 이걸로는 택도 없음을 느낀다. 늘 혼자였을 땐 외로움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야 고독을 느낀 것이다. 이 이후에도 주인공과 까운 사람이 간암으로 상을 떠난다. 이 덕에 토니는 세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됐다. 영화는 아내의 옷장에 멍하니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혼자인데, 아버지가 상하이의 어떤 감옥에서 누워있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내와 닮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하는 주인공 모습이 나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 그녀는 옆집 아줌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냥 그러고 끝난다. 완벽히 지운것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사람이 이 사건으로 성격이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서술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이런 화법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 사람같은 인연은 온 지구를 다 뒤져 찾아봐도 하나밖에 없다. 이 작품과 무슨 관련이냐? 부재로 인한 외로움에 해결책같은건 없단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빈자리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손을 내어준다. 우리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같이 쪼그려 앉아서 손을 잡아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난 이 이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나도 토니와 그렇게 별다를 바 없는 삶을 보냈구나. 몇년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세상이 유달리 혹독할때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거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지금 그걸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떠난다고 해서 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둘 다 아닌것 같다. 이젠 세상 눈치 안보고 산다지만 몇명은 솔직히 멀어진다는 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게 강박이 될때마다 나에게 되뇌인다. 감사하며 살아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갈 받는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을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을 잊어버리고 살다간 세상에 혼자만 남는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답에 가까운 솔루션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때는 지나간 날에 아쉬워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 이거 우리 모습인거 알아.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공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듯한 덤덤한 나레이션부터 앞서 언급한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까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라 우리 일생에서 친구처럼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도 우리 삶 속의 외로움을 돌이켜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외로움이라고 하는거 사실 별 것 아니다. 그 사람 사정은 그 혼자만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지나치게 어린 인생이지만 내가 느꼈던 일상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기준을 남에게 둘때도, 여유가 생겼을때도 나는 목적지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이건 특히 누가 나를 떠날때 심했다. 뭔가가 없다는 걸 느낄때마다 일을 벌였다. 바쁘게 살면 잊을 수 있을테지. 방구석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게 아니라면 난 이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강박증이 있는 머릿속은 지독하게 나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찌질한 모습 다 버렸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몇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매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있을때 잘할걸. 이 빈자리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울 수 없는거구나. 어른이 된다는건 이 회한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내 노력만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가끔은 나는 나를 혼냈다. 괜찮아.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첫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영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게 아닐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작품이 주는 쓸쓸한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괜찮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게 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25살의 내가 느낀 세상에 관한 모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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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해한대도 곱씹게 되는 프렌치 영화 첫 경험
난 그저 영화티켓이 생겨서 들어갔을 뿐이었다. 시놉을 보아하니, 로맨스인 것 같았다. 하지만 크레딧이 내려갈 때쯤 내머릿속은 혼돈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영화는 프랑스영화라는 것을. 프랑스 영화하면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뭘본건가 싶은 느낌. 하지만 곱씹어보니, 뭔가 영화 속에 담긴 은밀한 상징이 있었던 듯하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그저 헛소리일 수도 있다. 영화가 하도 난해했던 바람에 생각을 거듭하다 결론낸 내 주관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1. 우연을 의도한 만남의 의미
학교도 지루하고, 또래들이 그저 한심할 뿐인 수잔, 평소와 다를 바없이 별일없이 지나가던 하교길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남자를 보게 된다. 왜인지 모르게 계속 시선이 그에게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계속 그를 알게모르게 미행한다. 그의 공연장을 맴돌고, 그의 시선이 교묘하게 빗나가는 곳에서 항상 서있다. 그녀에게는 우연이 아니지만 그녀가 꽂힌 남자, 라파엘에게는 그녀가 우연히 마주친 사랑으로 보이게끔 말이다.
그녀의 당돌한 미행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운명이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중 하나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연출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항상 내 부모님께 농담조로 던지는 말이 있다.
"이 중에서 누군가는 연애할 때, 사기 수준으로 거짓말을 한 거야. 둘 중 누구야, 엄마야, 아빠야?"
사랑이 발전하는 양상과 그 결과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사랑의 첫 시작은 생각보다 우연보단 연출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호감을 연출한다는 것은 둘 중 한 명은 우연을 가장할만큼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는 방증이니까.
2. 빨간 레모네이드의 의미
영화의 첫 시작은 수잔이 친구들에 둘러싸여 음료나 마시며 딴짓하고 있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수잔은 친구들의 소소한 수다가 재미없다.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는지 자신이 마시고 있던 빨간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물고있다가 휴지에 뱉으며
하얀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며 놀고 있다.
계속 이 장면이 머리에 맴돌았는데, 이 장면을 곱씹다가 여자아이들의 초경이 생각이 났다. 수잔은 16세이기에 초경을 할 법한 나이이긴 하지 않은가. 초경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면, 이성에 눈을 뜰 나이라는 것이기에 이 첫 장면에서 감독은 수잔이 소녀에서 여자로 발돋움 중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라파엘이 수잔이 좋아하는 빨간 레모네이드를 먹어보는 장면은 그녀의 여성성을 받아들였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취향을 이해해보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여성성을 강조해 섹슈얼하게 생각해본다면, 라파엘의 몸에 그녀가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3. 영화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가 끝나기 직전, 수잔은 극장을 흘낏 보고 웃는다. 그걸 본 나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특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왜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면 울게 되고. 뒤이어 그 남자에 대한 관심이 식어보이는지에 대해서 그 과정의 인과관계가 매끄러워보이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시간을 두고 곱씹어보니, 이 영화는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또래들이 시시해 어른스러운 남자에 끌리는 수잔이 그려낸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템포 더 어른이 된 그녀를 마지막 장면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이 영화는 로맨스를 가장한 성장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시작은 소녀였지만 영화의 끝에서의 수잔은 여인으로 보였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던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한낮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녀의 아빠가 그녀에게 한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끝나면, 그녀의 한낮의 시간은 그저 아득한 꿈이었음을 깨닫고, 왈칵 울음이 터지는 것이다. 그와 함께한 춤, 합치의 순간들 모두 아득한 꿈이었음을 깨달았기에.
총평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울었던 이유가 이별말고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건 나에게 사랑의 경험이 없어서일까. 사랑은 내가 관심이 없어 그렇지 참 심오한 세계인가보다. 여주인공이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엔딩곡은 꽤나 무디하다. 그 곡을 들어본다면, 영화가 좀 더 이해될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해석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두 팔 벌려 환영이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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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해진 벌크업
2019년 개봉한 영화 <샤잠!>은 북미 1억 4천만 달러를 포함해 전 세계 3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작품이다.
"마블"을 비롯해 자사의 "DCEU"를 생각하면, 흥행이 조촐하다만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에 곧장 속편 제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봉 일자가 미뤄졌고 겨우 잡은 일정은 <아바타: 물의 길>과 겹쳐 한 번 더 피하게 되었다.
근데, 이번에는 달라진 "DCEU"의 기조로 흥행을 한다 해도 3편 제작도 불투명하다. - <블랙 아담>의 흥행 실패로 전면적인 "리부트"를 선언했다!전작으로부터 여전히, "샤잠"으로 활동하는 "빌리"와 친구들의 앞에 "아틀라스의 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빌리"와 친구들에게 "샤잠"으로 변할 수 있는 슈퍼 파워를 빼앗으며, 도시와 가족들을 위험을 빠트리게 하는데...1. 점잖아진 성장
속편에 위치한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작의 마지막부터 "빌리 뱃슨"을 비롯하여 "샤잠"이 늘어나 "팀"이 되었고, 이번 속편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아틀라스의 딸들" 역시, 또 하나의 집단이다.
그러면서 "집단 vs 집단"으로 늘어난 캐릭터들로 커진 규모는 교통정리가 소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들의 분노>는 특별하진 않지만, 벌크업을 이루는 데에 성공한다.이번 속편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아틀라스의 딸들"부터 설명이 필요하나 명료한 동기와 "헬렌 미렌"과 "루시 리우"로 맡은 배우들의 매력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샤잠"은 설정에서 다양한 위인들의 재능을 하나씩 분배되어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분산된 캐릭터성으로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도 해보지만 이야기는 "빌리"의 성장담으로 "슈퍼 히어로의 고민과 성장"이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이어진다.결국, 이번 속편 <신들의 분노>는 너무나도 평범해진 영화가 되었다.
전작 역시, 크게 도드라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유치함"으로 관객들의 호불호를 만들어 편을 가르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속편은 더 극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도를 지향하며, 전작보다 더 대중적인 영화가 되었다. - 이런 부분은 전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인상을 남긴다!2. 그래서, 뭘까?
하지만, 그렇기에 마땅히 특별한 점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나마, 찾아본다면 중간에 불타버리는 "슈트"로 <블랙 아담>이 연상된다.
이외에도 <분노의 질주>와 같은 영화들을 말하는 "메타 발언", "애나벨 인형",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등이 떠오르나 <샤잠!: 신들의 분노>를 봐야 하는 차별화까지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메인 빌런 "헤스페라"의 심리 변화와 갑작스러운 "저스티스 리그"의 캐릭터의 등장은 이야기의 개연성까지 따져볼 부분도 있으니 무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tmi. 1 - 극 중. "캡틴 마블"이라고 불리는 장면이 있는데, "샤잠"으로 불리기 전에 해당 캐릭터의 이름이 "캡틴 마블"이었다.
· tmi. 1. 1 - 다만, 인수 과정에서 상표 등록을 "마블"에서 하면서 부득이하게 개명했다!
· tmi. 2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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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평등, 존경이 담긴 음식의 맛! <프렌치 수프>
영상으로 음식을 음미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그것도 길~~게! <프렌치 수프>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 음식을 시청각으로 맛보는 영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재료가 어떻게 맛있는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는지의 과정, 그리고 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까지 코스요리처럼 쫙 펼쳐진다. 이 만찬의 정수는 바로 사랑과 평등, 그리고 존경. 음식에 담긴 이 의미의 맛은 긴 여운을 남긴다.
미식 연구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함께 음식을 만드는 천재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아침부터 바쁘다. 도댕의 미식가 친구들이 방문을 하기 때문. 텃밭에서 공수한 채소는 물론, 에피타이저부터 본식, 디저트까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메뉴와 레시피를 음식으로 구현한다. 도댕 또한 외제니와 함께 독창적인 미식의 세계를 펼친다. 이 집에서 최상의 파트너로 지낸 지도 20년. 서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몇 번이고 오갔고, 도댕은 몇 번이고 청혼했지만, 외제니의 거절로 결혼이란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외제니는 몸이 아파 쓰러지고,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
| 음식을 통한 평등한 사랑과 관계의 의미
<프렌치 수프>는 음식을 통한 평등한 사랑과 그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끓이고 정성을 들여야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곰국(또는 프랑스 가정식 수프 ‘포토푀’) 것처럼, 영화 또한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이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 안에 자극적인 맛으로 만들어 내놓는 음식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풍미를 살려 내놓는 음식처럼, 사랑이란 복잡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감독은 말한다.
두 주인공을 통해 평등한 사랑이란 건 무엇인가를 재차 강조한다. 외제니는 도댕을 사랑하고 육체적인 관계도 맺는 사이이지만, 그의 청혼을 매번 거절한다.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아내로서가 아닌 동등한 요리사로서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그녀는 되도록 주방을 떠나지 않는다. 요리사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을 느낄 있는 주 공간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이란 시대적 배경인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의 계급과 역할 차이는 확연하다. 따지고 보면 도댕은 고용주고 외제니는 고용인이라는 갑을 관계다. 게다가 만약 결혼한다면 외제니는 더 이상 요리사로 살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요리사로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의 눈높이가 매번 같아지길 바란다.
| 이렇게 섹시한 음식 조리 과정이라니?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드러내지 않는 섹시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도댕과 외제니는 함께 음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건 이 자체가 섹시하게 느껴진다. 극 중 이들은 멋진 협업을 통해 음식을 만들면 그날 밤 잠자리를 같이한다. 여느 영화였다면 한 번쯤은 아름답고도 고혹적인 이들의 베드신을 보여줄 법한데, 트란 안 홍 감독은 그 생각을 갖기도 전에 컷을 외친다. 마치 아까 베드신 보다 더 야릇한 장면을 봤는데, 또 찍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음식을 만들며 맺는 관계는 유사 성적인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절묘한 이들의 합,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까지 한다. 조리 과정 이후의 장면이지만, 도댕이 요리를 연구하기 위해 설탕에 절인 배를 손으로 꺼내어 만진 후, 외제니의 방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때 나체로 누워 있는 외제니의 뒷모습은 마치 도댕이 끈적한 터치가 이뤄졌던 배 모양과 흡사하다. 에로틱함은 물론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장면 또한 도댕의 터치 이후 가차 없이 컷 한다.
계절로 따지면 영화는 가을에 가깝다. 설렘과 열정을 지나, 따뜻하고, 사려 깊고, 농익은 사랑의 감정이 곳곳에 묻어 있다. 안 먹어도 그 맛을 아는 것처럼, 영화 또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이들이 나눈 사랑과 그 관계의 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감독은 결은 다르지만, 관계 속에서 빗어지는 섹시한 사랑의 맛을 보라고 펼쳐놓는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걸 트란 안 홍도 아는 듯하다.
| 프랑스 주방에서 덕임이를 만나다?
<프렌치 수프>는 도댕과 외제니의 평등한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과 결혼이란 굴레에 저당 잡히지 않으려 하는 한 여성의 몸부림을 담는다. 도댕과 함께하고 싶지만, 자신의 일 또한 소중한 그녀에게 사랑, 그리고 결혼은 얻는 것 보다 잃을 게 많은 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외제니는 계속해서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동거인으로서 살아간다. 결국 도댕과의 결혼을 승낙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외제니를 보며 떠올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덕임(이세영)이다. 덕임이 또한 궁녀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었는데, 이산(이준호)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훗날 정조가 된 이산은 사랑하는 덕임에게 승은을 내리지만, 그녀는 무려 두 번이나 거절했다. 이유는 사랑보다 권력보다 자신의 삶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시대와 국가가 다른 이들이지만 사랑 뒤에 감춰진 불평등의 늪에 빠지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결은 다르지만, 이들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도댕, 정조 모두 뒤늦게 이들의 소중한 사랑을 깨닫는 부분도 오버랩된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평등한 사랑을 나눴던 주방에서 도댕과 외제니의 대화 회상 장면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이때 그 공간을 채운 이들의 질문과 대답을 찬찬히 음미하길 바란다. 이 세상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 세상 다양한 사랑은 존재하는 법. 급하지도, 빠르지도 않고 천천히 가을 녘에 물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p/s: 일단 뭘 먹고 영화를 보는 걸 권한다. 빈속에 보면 떨어지는 군침에 스스로 당황할지 모른다. 프랑스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요리를 감수할 정도로 음식 퀄리티가 너무 좋아, 영화가 끝난 후에 프랑스 전문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각이 아닌 청각에 의존해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4.0 / 5.0
한줄평: 사랑, 평등, 존경이 담긴 음식의 맛!
*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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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질문하는 심리 스릴러
6★/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청소년의 투표권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투표 제한 연령을 낮춰 청소년도 미래에 목소리를 내게 하자는 주장에는 호의적일 때가 많다. 청소년이 투표하기에 충분히 성숙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성적 보수주의, 엄숙주의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최근 급증한 청소년 대상 그루밍 범죄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 결과일 수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심리 스릴러 〈메이 디셈버〉는 이 문제를 고민하는 데 하나의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레이시와 조는 부부다. 그러나 부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시는 36살에 조를 처음 만났다. 조가 13살일 때였다. 그레이시는 조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조의 아이를 낳았다. 출소 후 이전 결혼 관계를 깨고 조와 결혼해 부부가 되었다. 그레이시가 첫 결혼에서 얻은 손자와 조와 결혼해서 얻은 아이는 같은 날, 같은 학교에서 졸업한다. 그레이시와 조가 사건 이후, 결혼 이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엄청난 비난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버텼고 마을에 정착했다.
그런 부부에게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레이시와 조 사건을 영화화하는 작품에서 그레이시 역을 맡은 배우다. 엘리자베스는 영리한 사람이다. 부부와 함께 머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을 뿐 아니라 그레이시의 전남편과 변호사, 그레이시가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자 조의 친구인 조지도 만나본다. 모든 극적인 사건이 그러하듯, 그레이시가 강조하는 ‘사랑’만으로 두 사람의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이면의 감정과 맥락을 알아야만 깊어질 수 있다. 그래서 타고난 영리함과 작품에 대한 집요함으로 두 사람 사이를 계속 파고든다.
그레이시는 내내 엘리자베스가 불편하다. 엘리자베스가 관계의 다른 가능성을 파헤쳐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는다는 건 그가 수십 년간 지켜온 관계와 평판이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시는 점차 예민해지고 조에게도 이 감정을 드러낸다. 조는 달래지지 않는 그레이시의 불안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와 조 두 사람만 함께 있는 자리가 생기고, 조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그에게 그레이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조가 그레이시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려서다. 조는 혼란스럽다. 엘리자베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자신이 떠나면 그레이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조는 그레이시와 가족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물꼬를 튼 조의 마음은 결국 그레이시에게도 흘러간다. 조가 그레이시에게 묻는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겪어내며 결정할 때 내가 너무 어렸다면? 그레이시는 무너져 내리는 듯한 목소리로 둘이 처음 관계를 가진 날 누가 리드했느냐고 반문한다.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을 한쪽은 가스라이팅으로, 다른 한쪽은 사랑으로 의미화하며 충돌한다. 영화는 그레이시를 절대 악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그레이시의 예민함이 트리거가 되어 조가 오랫동안 그레이시의 입장을 ‘자발적 강제’로 수용한 듯 보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일궈온 모든 것이 그레이시의 의지만으로 가능했을 수는 없다. 그레이시는 자신의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진심을 다했고, 조 역시 ‘진심’을 다해 짝을 맞췄다. 한편 조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질문한 엘리자베스는 맡은 배역을 ‘진실하게’ 연기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조는 잠시나마 엘리자베스에게 마음을 열었지만, 엘리자베스에게 조는 그저 적당히 호감 가는,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 결과로 조는 (어쩌면 성장의 근거가 될지도 모를) 혼란에 빠졌고, 그레이시는 조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평생의 믿음이 깨졌다. 그렇다고 엘리자베스에게 조를 책임지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관계 이면의 무언가를 들추어냈을 뿐이다. 영화는 조의 억눌린/뒤늦은 성장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생각과 감정에 남은 여운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돌아와보자. 청소년에게 성적 자유를 보장할 혹은 자유를 제한할 적정 연령은? 알 수 없다. 그저 한순간의 ‘자발성’이 어떤 맥락에서 구축되고 지속되는지를 면밀하게 읽어낼, 성적 자기결정권이 손쉽게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한 맥락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 둔감하지 않은 섬세한 해석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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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넷플릭스 제작비 1,000억원의 좀비영화ㅣ새벽의 저주 결말포함 영화리뷰ㅣ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컷ㅣ넷플릭스 오리지널ㅣ건데ㅣ
? "아미 오브 더 데드(2021, 넷플릭스Netflix)" 예고편 분석
"새벽의 저주(2004)"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 새벽의 저주 정보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조지 로메로
출연: 사라 폴리, 빙 레임스, 케빈 지거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액션- 조지 A. 로메로의 1978년작 동명 좀비 영화 리메이크작
- 시체들의 새벽
#아미오브더데드 #새벽의저주 #넷플릭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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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뛰어넘는 여우주연상 이 빛나는 우리의 엄마 [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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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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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9회 부산국제영화제 Special Feature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을지도 모릅니다. 𝘐 𝘩𝘢𝘷𝘦 𝘸𝘢𝘪𝘵𝘦𝘥, 𝘧𝘰𝘳 𝘵𝘩𝘪𝘴 𝘷𝘦𝘳𝘺 𝘮𝘰𝘮𝘦𝘯𝘵.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페셜 피쳐가 공개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어쩌면 우리는 어느새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Theater is not dead." ( ) is not dead. – 29th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October 2 -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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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메인 예고편
18세 ‘세진’, 덜컥 임산부가 되어버렸다.
무책임한 어른들에 지쳐 거리를 떠돌던 ‘세진’은
가출 경력 4년 차, 동갑내기 ‘주영’을 만난다.
처음 만났지만 절친이 된 ‘세진’과 ‘주영’,
위기의 순간 나타난 파랑머리 ‘재필’과 ‘신지’까지
왠지 닮은 듯한 네 명이 모여 ‘세진’의 유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우리도 살아야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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