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9 21:25:42
[SIWFF 데일리] 인간에서 인간까지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SYNOPSIS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커스틴 존슨이 25년간의 촬영 경력 동안 포착해 낸 푸티지 영상을 직조하듯 풀어 낸다. 영상 제작자와 대상들 사이의 관계, 카메라의 객관성과 개입 사이의 긴장, 그리고 날것의 현실과 가공된 이야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화.
PROGRAM NOTE
감독으로서 영화는 곧 ‘이야기’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야기 안에서 배제된 촬영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늘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고는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은 무엇보다 예외적이며 뛰어난 작품이다. 이는 25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 커스틴 존슨만이 가지는, 감독과는 다른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영화는 오랜 기간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만난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았던 순간을 엮어서 만든 커스틴 존슨만의 자서전이다. 마치 잘려진 천 조각들이 ‘퀼트’라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본 듯하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5년 만에 다시 찾은 보스니아의 한 가족과의 대화와 ‘작은 상영회’는 이야기에서 놓쳐버린 현장의 순간들이 어떻게 환생되고 의미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면 감독의 그릇만큼 세상이 보일 때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깊은 탐색과 교감이 쌓여 결국 자신의 아이들과 치매를 가진 어머니에게로 카메라가 향할 때, 어떻게 카메라가 한 개인에게 역사가 되어 성숙한 시선을 갖게 하는지, 또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지, 이번 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우정]
일전에 넷플릭스에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변에서 알음알음 추천을 받고, 왓챠피디아도 내가 4.1점을 줄 거라고 했으므로. 역시나 좋았다. 딕 존슨의 죽음을 다룬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딕 존슨의 딸이자,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25년을 살아온 감독 커스틴 존슨의 작품이 상영된다고 해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첫 영화로 냉큼 골랐다.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이 작품은 25년 동안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그가 촬영한 풋티지 영상을 모아모아 새로이 편집한 것이다. 커스틴 존슨 감독은 이것을 자신의 회고록처럼 여겨 달라고 했다. 타이틀이 떠오르기 직전 보이는 장면은 도로만이 펼쳐진 넓은 평원에 번개가 치는 순간과 우렁찬 천둥 소리가 포착되는 것, 그리고 관객인 나와 동시에 깜짝 놀란 숨을 들이켜는 촬영자의 소리. 기둥 뒤에 공간 있듯, 카메라 뒤에 인간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굉장히 다양한 영상이 조각조각 모여 있다. 스레브레니차 집단 살해의 기억이 남아 있는 보스니아처럼 역사의 어떤 순간도 들어 있고, 복싱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는 장면도 들어 있다. 복싱 코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가까이서 찍는 게 진리라고 말한다. 복싱도 촬영도 가까운 데서만 가할 수 있는 일격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가까운 촬영의 일격을 연타로 날리는 걸작이다.
얼핏 평이해 보이는 장소에서도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것이 카메라의 힘임을 느끼게 한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벽의 포탄 자국이, 93-94년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의 묘비가, 스레브레니차를 잊지 말라는 그라피티가, 카메라에 점점이 담기면 그곳은 더 이상 평이한 도시가 아니게 된다.
세계 곳곳, 각기 다른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성실히 따르며, 카메라는 다양한 것을 담는다. 삶의 ‘흥미로운’,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단면마다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가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조각조각들이 모인 곳, 소실점에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바로 인간을 담기 위해 그의 카메라는 그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 차창 너머로 찍을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있다. 알 자지라 주요 인물들이 수감된 예멘의 감옥 앞이나 카불처럼 위험한 곳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도 유리창을 닦는 손이 흥미롭게 담겼다고 말하는 ‘기술 전문가’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잊지 않는 ‘예술가’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익명성을 위해, 머뭇거리며 움직이는 손과 목소리만 담은 인터뷰 영상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진다. 인터뷰의 가장 앞 단어를 건네주면서, 공감하고 경청한다. 카메라의 역할은 결코 응시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동원하여, 담고 전달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의 모습도, 집단 살해의 기억 이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거둔 알알이 보석 같은 열매도, 눈을 다쳤지만 똑똑한 소년으로만 보였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도… 촬영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되는 이런 영상들은, 카메라의 역할이 응시에만 그쳤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가 흘렀던 역사의 기억들과, 그 자리들이 오늘날은 평화로워진 장면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도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편집한 손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의 보여주기는 사실 적극적인 말하기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흘렀던 초원에 오늘날 얼마나 햇살이 곱고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는지, 단지 고운 들판을 보여줄 뿐인데 왜 우리는 참담해지는지. 이 적극적인 말하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 기록의 행위가 없다면 우리 눈에 그저 예쁜 초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토록 거대한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하고 전달하는 한, 조각도 이야기가 된다.
커스틴 존슨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이것이 팩트와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는 과정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조각 모인 이야기들이 새로운 진실을 그려내고, 풋티지 영상이 모여 새로운 작품이 되는 과정이다.
영화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담았다. 현장 프로듀서 겸 통역으로 보스니아에서 내내 동행한 이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이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해소도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몰랐던 이야기 앞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을 회피하는 인터뷰이에게 다른 주제로—이를 테면 옷 같은 얘기로— 말을 돌리기도 하는 커스틴 존슨의 모습을 보며…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단순히 기존 하던 일에 노련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하는 일 안에서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직면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흔히 전문가가 된다고 하면, 마치 감정은 무디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을 잘 해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것 같다. 꼭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배우나 소위 ‘감정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일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대부분 감정을 사용하며 일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간의 시선에서, 시선 끝의 인간까지. 다큐멘터리는 결국 그런 작업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여지지 않는 그 너머까지, 그 소실점에 있는 인간에까지 시선이 미친다면 그 사람이 어느 직군에 있든 전문가 소리를 들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나의 조각 모음은 어떤 회고록의 모양이 되어 있을까. 커스틴 존슨의 인생 thanks t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엔딩 크레디트가 쭉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나의 크레디트에 남기고 싶은 이름과 마음들을. 이 영화에서 보고 배운 아름다운 시선이 거기에도 한 자락 묻어나 있다면 참 좋겠다.
2023.08.25. 14:00-15:4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2023.08.28. 19:30-21:1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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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애정의 물성, 물성의 애정
감독] 서원태
출연] 정윤철, 임필성, 임대형 등
프로그램 노트] 뉴욕에 5만 5천 점이 넘는 방대한 보유작을 자랑하는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가 있다면, 광주에는 비디오 5만여 점과 책 5만여 권을 평생 수집해온 ‘호모 시네마쿠스’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있다. 그는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1991년, ‘굿펠라스’라는 영화동아리를 결성한 이래 30년 넘도록 광주 지역 영화 운동에 몸담아왔다. 조대영의 방대한 VHS 비디오 수집품 중 약 2만5천 점을 2022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이른바 ‘시네필’ 문화가 싹텄던 1990년대, 남한에서 VHS 비디오는 서구 시네마테크의 셀룰로이드 필름을 대체하는 물리적 지지체였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를 계기로 제작된 〈일시정지〉는 함께 모여 필름 대신 비디오를 보았던 또 다른 ‘굿펠라스’들이 들려주는 ‘비디오 본색’에 대한 이야기다. (신은실)
이 영화는 비디오를 처음 틀었을 때의 컬러 화면으로 시작한다. 순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장면인지 얼떨떨한 동시에, 저 이미지 자체가 진작에 지난 세기의 것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비디오라... 유치원 시절을 떠올린다. 유치원이 마치면 차량 한 대가 아이들을 동네 별로 나누어 1호차, 2호차, 3호차 순서대로 태워 날랐고, 3호차를 탔던 나는 1호차와 2호차로 먼저 떠나는 아이들이 다음 장면을 궁금해할 때 느긋하게 앉아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주로 디즈니 영화나 <호호아줌마> 같은 걸 봤고, 매일 유치원의 일상을 마치는 순간은 어떤 비디오를 틀지 고르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흥미 없던 로봇 만화 같은 것을 무감하게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일시정지를 눌렀을 때 화면에 은색으로 실금처럼 그어져 올라가던 노이즈도. 되감기, 빨리감기, 같은 글자와 그때의 소리들도.
생각해 보니 제목인 ‘일시정지’는 아직 존재하지만 영문 제목에 들어간 ‘rewind’, 되감기라는 단어도 이미 사라진 것 같다. “10초 앞으로” 혹은 “30초 뒤로”가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멀리 보낸다. 신기술은 옛 것이 되고, “첨단 사업 전람회장”을 담은 뉴스는 꼭 박물관에서 미디어 아트로 틀어줄 것만 같다. 비디오도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
이 영화는 비디오 세대를 기억하는, 통사적인 관점에서 비디오 시대를 말해줄 수 있는 여러 명의 감독 인터뷰를 꼼꼼하게 담았다. <말아톤>, <대립군> 등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옛날 이야기 맞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OTT 경쟁 시대인 지금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고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적인 상영 공간이란 부재하는 개념이었다. 80년대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하나둘 늘어나고, 90년대에는 급부상한 비디오 플레이어와 함께 비디오 렌탈점이 성행한다.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성장한다. 비디오가 영화 필름의 질감을 담으려 노력했던 시절이 있는데, 필름과 필름 사이 자신의 무언가를 밀어 넣던 사람들의 노이즈 자글자글한 예술 세계가 있었는데… 이제 어디서 필름 생산을 멈췄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다 못해 캠코더조차 ‘레트로 감성’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터뷰어들이 비디오에, 비디오 가게에 품은 그리움 또한 흥미로웠다. 유튜브만 뒤져도 전문가의 영화 추천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비디오 가게가 장르적 추천 기능을 했고, 좋은 영화를 많이 추천해 주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는 마치 ‘무림고수’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영화 모임 기록도 있고. 서로의 영화 리스트를 직접 볼 수 있고, 얼굴을 맞대며 알 수 있었으니 사실 요즘의 모임들보다 더 솔직하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키워내기 딱 알맞은 자리였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복제하고, 나눠 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관련 영상물이나, 아직 일본 문화가 개봉되기 전의 <러브레터>도 그렇게 번졌다.
과거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이 영화가 과거를 위무하는 데만 그쳤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과거를 위무하는 마음은 이후 세대에게 필연적으로 위화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들의 말에서도 나로서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90년대 ‘에로 영화’와 맞물렸던 비디오 문화의 성행을 말하면서, 에로 영화 사장 이유로 페미니즘과 성 인지 감수성만을 언급했지만, 매체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과 페미니즘이 이유였다면 포르노 시장,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가 없었을 테니까. 우리 사회 성 인지 감수성이 뭐 얼마나 높다고 이럴 때만 “아쉬움”의 사유 자리에 놓이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불어 인터뷰어들 말대로 에로 영화 소비층의 존재가 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점도 분명 있겠지만… 양으로만 기능할 수 있나? 음으로도 기능했다. 언급된 마틴 스콜세이지 같은 헐리우드 감독에 비해 과거 우리 나라 영화 감독을 디깅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은 이유는, 과거 한국 영화의 이미지 브랜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다양한 감수성이 낮은 영화들과 맞닥뜨리거나, 그걸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타령 듣는 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서.
그런 위화감도 잠시, 영화는 과거의 낭만과 풍요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낭만만을 그리지 않고 나아간다. 유해환경 정화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대통령의 “헌법적 능력”까지 써서 “불량 비디오”를 금지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청소년 보호구역에 성인 비디오 가게가 횡행하는 일은 지양해야 옳지만, 이외의 사적인 비디오에 관해서라면, 과연 관에 의해 이렇게 쓸어버리는 형태가 옳은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미풍양속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나, 관이 쓸어버리는 형태도 아름다운지.
그것도 다 옛 일이다. 이제는 물성으로 소유하는 것이 약해진 시대. 책도 영화도 모두 손에 잡히는 물성을 잃고 구독 경제의 사이클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든 스크린에 띄워 볼 수 있지만, 구독을 해지하는 순간 스크린에 띄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구독 경제에 저항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과 영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구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득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는 ‘찜’, ‘보고 싶어요’만 바삐 눌러 놓으면서도.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충격이었다. OTT에서 내려가면 그 영화를 더 볼 수 없고, OTT의 큐레이션은 대체로 작품성과 다양성보다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의 이득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 가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한 고민은 옅어져간다고 느꼈던 어떤 작품들을 떠올렸다.) 기술 발전만 보면 모든 것을 클라우드에 올려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은 오히려 물리 매체로 영화를 보던 시절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이나 폭이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그 사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렇지. 기술의 발전이 꼭 우리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 한복판에 살고 있으니, 자본의 논리를 완전히 제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영화 또한 자본 없이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가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세상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비록 마이너해도,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택을 받지 않아도,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슴슴하다 못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작품들의 자리를 작은 섬처럼 빼꼼 내어줄 필요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안온하게 쉬어 갈 사람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 인터뷰 중 나온 말처럼, 맥락 속에서 아카이브는 살아있을 것이다.
물성 없는 시대, 여전히 애정은 물성에 어린다. 비디오가 없는 시대는 굿즈 포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굿즈를 꼬박꼬박 모으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굿즈들은 집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영화와 눈 맞춘 시간을, 영화가 내게 와 닿고 나를 바꿔준 지점을 기억하고 싶어서. 영화는 스크린 위를 흘러가고, 장면은 짧게 눈 맞춘 후 멀어지지만, 굿즈는 내 손에 남아 있으니까. 이 찐득한 애정을 물성으로 만져보곤 한다…고 얼마 전에 일기처럼 쓴 적이 있다. 언젠가 먼 훗날, 이들이 비디오를 추억하듯 나도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애정의 물성을 이야기하게 될까.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20:00-21:02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43)
7월 5일 17:00-18:02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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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로부터 '무민'을 그려내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쓴 글입니다.
*글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민’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책과 만화를 읽어 본 적은 없는 내게 무민 작가의 삶을 다룬 영화 〈토베 얀손 〉은 꽤 놀라웠다. 나는 캐릭터에 그를 창조한 작가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얗고 동그라며 귀여운 트롤인 무민을 그린 작가 역시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성품의 온화한 인물이었을 거라 막연히 짐작했다. 그러나 완벽한 편견이었다. 토베의 삶은 격정적이었고, 무민은 굴곡진 그녀 삶의 순간들을 오롯이 품은 넓고 깊은 캐릭터였다.
영화 〈토베 얀손〉은 토베가 삶의 가장 중요한 두 영역인 일(예술)과 사랑 모두에서 실패를 겪었다고 말한다. 먼저 예술이다. 누군가는 무민이 토베 사후에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닌데 왜 그녀가 예술 영역에서 실패했다고 말하는지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토베에게 예술적 성취는 유명세의 문제가 아니었다.
토베의 아버지는 핀란드의 유명한 조각가였다. 토베가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길 꿈꿨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만약 그랬다면 무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베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둘은 자주 갈등을 겪었다. 결국 토베는 집을 떠나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엉망이 된 허름한 집을 구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토베는 무민으로 성공을 거둘 때까지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무민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는다. 토베가 무민을 ‘본업(그림)’에 방해되는 시시한 낙서, 제대로 된 예술이 아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무민은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자신에게 사인을 받은 후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는 씁쓸한 토베의 표정은 그녀가 무민에 느끼는 거리감을 잘 보여준다.
그다음은 사랑이다. 영화 마지막에 토베가 평생을 함께할 레즈비언 파트너 투티키를 만났다는 언급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영화가 비추는 생애 기간에 토베는 늘 사랑의 실패자였다. 토베의 사랑이 향하는 첫 번째 대상은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유부남 국회의원 아토스다. 그는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토베를 이해해준다. 그런데 토베가 아토스를 사랑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토베의 두 번째 사랑은 헬싱키 시장의 딸, 연극 연출가, 레즈비언인 비비카다. 비비카는 저돌적으로 토베를 유혹하여 사로잡는다. 아토스는 비비카에게 마음을 빼앗긴 토베를 보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는 토베와 비비카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걸 견디기 어렵다. 한 명의 마음속에 두 명을 향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에게 생경하다. 아토스와 토베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진다.
문제는 비비카와의 관계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데 있다. 바람둥이인 비비카는 속박받는 관계를 싫어한다. 욕망이 이끄는 곳을 따라다니는 그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비비카에게 상처 받은 토베는 충동적으로 아토스에게 청혼하기도 한다. 동성애 사랑 실패의 보상으로써 이성애 결혼으로 도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토베의 양심은 이러한 도피가 오래도록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청혼에 행복해하는 아토스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아토스는 또 한 번 좌절한다. 둘이 한 때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아토스의 좌절은 토베의 좌절이기도 하다. 사랑의 실패는 쌓여만 간다.
비비카를 향한 토베의 마음은 그 이후로도 오래 이어진다. 토베가 최종적으로 비비카를 단념하는 건 그녀가 영원히 자기 손에 잡히지 않을 사람이란 걸 분명히 깨달은 후다. 토베는 비비카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여러 파트너 중 한 명으로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토베가 평생을 함께할 연인 투티키를 만나는 건 이 모든 혼란과 상처가 지나간 후다.
요컨대, 토베 얀손은 예술가를 지향했으나 도달하지 못했고, 사랑을 갈구했으나 안착하지 못했다. 이중의 실패는 경제적 윤택과 그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게 만들었다.
무민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토베는 좌절과 고난의 순간에 틈틈이 무민을 그렸다. 스너프킨은 아토스, 토프슬란과 비프슬란은 각각 토베 자신과 비비카를 형상화한 캐릭터라고 한다. 항상 파이프를 물고 있는 스너프킨과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토프슬란·비프슬란은 모두 토베가 가장 깊게 사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착안한 캐릭터였다. 무민은 토베 삶의 모든 순간에 깃들어 있다.
무민이 끝내 토베와 세상을 화해시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늘 세상에 거부당했던 토베는 자기 내면의 분노, 좌절, 고집, 사랑, 행복의 감정을 쏟아 무민을 창조했다. 얄궂게도 그런 무민은 토베를 밀어낸 세계에서 환대받는다. 토베가 열렬히 갈망했던 대상은 토베를 외면했지만, 자신이 부정당했다는 마음을 담아 먹고살기 위해 만든 캐릭터는 토베에게 오래도록 지속될 명예를 선물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토베로부터 삶이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배운다. 이처럼, 때때로 ‘실패한 삶’은 예술이 된다. 생애사의 중요한 대목을 전부 담아내야 한다는 전기 영화의 의무감이 헐거운 감정선으로 이어진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옹호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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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주차, 최신 씨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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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야 공대생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각색한 <범죄도시4>
본작의 최종 보스인 백창기는 역대빌런 장첸, 강해상, 주성철,리키보다더 강력한 빌런인 '백창기'역을 김무열 배우가 맡으며 기대를모으고 있습니다.
<파묘> 660만명 돌파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 고지를 밟았습니다. 개봉 3일째에 100만, 4일째 200만, 10일째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며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보입니다. <파묘>가 천만 영화가 된다면,최민식은 <명량>에 이어 두번째 천만을 기록하게 됩니다.
송중기 주연 <로기완>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비영어 영화 3위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이 공개 3일만에 글로벌 TOP10 영화 비영어 부문 3위를 기록했습니다.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삶의 끝에 선 이방인에게 전하는 위로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따듯한 이야기 입니다.
<범죄도시4> 4월 24일 공개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4>가 다음 달 24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영화는 형사 마석도가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움직이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 백창기와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김무열이 백창기를, 이동휘가 장동철을 맡으며 새로운 빌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3월 27일 공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새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이달 국내 공개됩니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업이 마을 주변을 글램핑 장소로 개발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작품으로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방탄소년단 슈가 삼자대면 콘서트, 영화관에서 만난다.
슈가의 앙코르 콘서트 실황 영화가 4월 10일 국내 CGV에서 개봉합니다. 이번 실황 영화는 슈가의 월드투어 피날레를 장식한 앙코르 콘서트 현장을 담으며 IMAX 특별관에서 상영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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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이여~ 따봉! <스턴트맨>
라이언 고슬링, 에밀리 블런트, 애런 존슨, 해나 워딩엄, 테레사 팔머, 스테파니 수, 원스턴 듀크. <스턴트맨>의 주요 출연진은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과 함께 엔딩크레딧을 수놓은 이들 또한 주요 출연진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한 작품을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린 이들의 노고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을 위한 헌사! <스턴트맨>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플롯 부분에 덜컹거림은 있지만, 끝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그건 영화가 가진 그 진심이 와닿기 때문이다.
언제나 ‘따봉’을 추어올리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 하지만 할리우드 액션 톱스타 톰 라이더(애런 존슨)의 대역으로 고난도 추락 액션 장면을 촬영하다 큰 사고를 당한다. 이후 그는 잠적한다. 촬영 당시 연인이었던 촬영 감독 조니(에밀리 블런트)의 연락에도 잠수를 탄 그의 새 직장은 한 레스토랑. 어울리지도 않는 발렛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그에게 프로듀서 게일(한나 워딩업)이 연락한다. 조디의 감독 데뷔작 <메탈스톰>에 스턴트맨으로 도움을 달라는 것. 그 즉시 호주 시드니로 향한 콜트. 조니와 운명적인 재회는 했지만, 싸늘한 기운만 감돌기만 한다. 한편, 게일은 콜트에서 실종된 톰을 찾아달라 부탁하고, 콜트는 조디의 첫 장편에 도움을 주기 위해 톰을 찾아 나선다.
<스턴트맨>의 원제는 <The Fall Guy>다. 1980년대 TV 시리즈 <The Fall Guy>(한국 방영 시 제목은 <스턴트맨>)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철저히 그 시대 만들어진 작품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오롯이 가져온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액션. <데드풀 2> <불릿 트레인>의 데이비드 리치 감독이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지만, 최대한 CG를 배제하고 몸으로 부딪치고, 뒹구는 리얼 액션을 보여준다.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와이어 추락 장면은 물론, 극중극인 <메탈스톰> 해변 차량 전복 장면, 도심 차량 액션, 후반부 <메탈스톰> 촬영지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스 장면 등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리얼 액션을 선사한다. 중요한 건 액션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와이어 추락 장면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면서 스턴트맨이 하나의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의 긴장감은 물론, 다양한 감정선을 다룬다. 이처럼 액션 전에 전사를 삽입하면서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로 인해 액션이 액션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리고 액션을 통해 다양한 감정선을 전하는 데도 성공하며 몰입감을 증대시킨다.
이는 콜트와 조디의 재회와 관계 봉합 과정에서 도드라진다. <메탈스톰> 첫 와이어 액션 장면에서 조디가 가진 그동안의 서운함을 콜트에게 퍼붓는데, 그 방식은 계속 ‘컷’을 외치며 바위에 부딪히는 장면을 찍게 하는 것. 분이 풀릴 때까지 컷을 외치는 조디와 이를 수긍하면서도 힘들어하는 콜트의 모습은 액션으로 감정선을 전달하는 좋은 예로 보인다. 더불어 가라오케에서 콜트를 기다리며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를 부르는 조디와 그녀에게 가기 벌이는 콜트의 카체이싱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보이는 장면도 영화가 추구하는 액션 기조를 잘 보여준다.액션만큼 중요하게 다룬 건 역시 멜로. 콜트와 조이의 관계를 보면 1980~90년대 <로맨싱 스톤> <전선위의 참새> 등 할리우드 액션 로맨스 영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사랑하지만 오해를 거듭하고, 싸우고 하는 가운데에서도 절명의 위기에 진심을 고백하고, 끝내 찐한 키스로 사랑에 골인하는 이 공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분할 컷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을 조성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와해된 관계가 다시 좁혀지는 그 과정을 그린다. 물론, 배를 몰며 조이에게 진심을 고백하는 콜트의 모습이 올드함을 주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이 이뤄지는 결말이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구현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스턴트맨>은 영화에 관련된 직업인들의 애환과 직업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콜트와 조이 등 주요 인물들은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 선 이들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라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다. 관객들의 박수를 받지는 못하지만, 자기 일에 자부심을 하나로 일을 하는 이들이다. 와이어 추락 사고 이후 콜트가 촬영장에 돌아가지 않는 건 일에 대한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이다. 부끄러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콜트가 다시 촬영장에 돌아간 건 저버릴 수 없는 영화를 향한 사랑,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해내며 얻는 그 기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이를 ‘영화’로 바꿔 본다면 콜트의 이같은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감독은 후반부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톰과 게일의 수난사를 통해 이를 부각한다. 이 장면은 조이의 전두지휘 아래 펼쳐지는 액션 장면처럼 보이는데, 카메라는 톰과 게일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기민하게 움직이는 스턴트맨 이하 스탭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들의 노력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즐기는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턴트맨>은 마지막까지 이 메시지를 전한다. 성룡 영화 엔딩크레딧에서 자주 봤던 액션 NG 장면이 등장, 손에 땀을 쥐게 한 놀라운 액션의 비하인드가 나온다. 어찌 보면 그 촬영 현장들이 더 영화 같은 생각이 들 정도. <스턴트맨>은 세련되거나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지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진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CG로 딥페이크로 구현할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이 만드는 액션과 영화의 진심. 그 진심이 더 그립고 빛이 나는 시기에 우리에게 당도한 연서와도 같다. 가능하다면 그 진심이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덧붙이는 말: 콜드 역은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지만, 고난도 액션은 총 4명의 스턴트맨이 담당했다. 드라이빙 대역은 로건 홀리데이, 격투 대역은 저스틴 이튼, 불에 타고 차에 치이는 장면 대역은 벤 젠킨, 낙하 연기 대역은 트로이 브라운이 그 주인공. 그들은 스크린 속 영웅이 아닌 스턴트맨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영웅이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있는 호쾌한 액션의 영웅들. 영화를 본다면 이들도 기억하길~~
사진출처: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3.5 / 5.0
한줄평: 몸 하나로 만드는 액션 서사만으로도 따봉(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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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시선이 안내하는 아이의 세계
- 누구나 거쳐왔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안경을 쓰지 않고 앞을 바라보는 것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온기와 촉감, 나긋나긋한 말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클레오의 세계>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여섯 살 소녀의 세계를 잠시 엿본다. 누구나 겪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하는 그 순간 등 84분 동안 유려하게 담긴 그 여름날의 추억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파리에 사는 여섯 살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이 소녀 곁엔 언제나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가 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나라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유사 모녀와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글로리아는 모친상을 당하고, 급히 고향인 아프리카로 간다. 클레오의 곁엔 유모 대신 바쁜 아빠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글로리아의 빈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아빠는 우울한 딸의 행복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글로리아에게 보낸다. 재회한 클레오와 글로리아. 하지만 그곳의 시간은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도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그것은 비밀스럽고 아주 은밀하며 무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클레오의 세계>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선 소녀 클레오와 유모 글로리아 간의 사랑을 그린다.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건 무언의 사랑. 극 중 이들의 관계는 소녀와 유모를 넘어 모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곁에서 있어 주며 씻기고, 밥 먹이고, 등하교를 도와주고, 놀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등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부모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별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갓난아이 시절과 달리,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황에서의 이별은 클레오에게 큰 슬픔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마치 엄마와의 이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유년 시절 느꼈던 그 소중한 감정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을 알면 이별도 알아야 하는 법. 클레오는 여름방학 동안 더 이상 글로리아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유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모이기 이전에 그녀는 한 남매의 엄마다. 어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클레오를 돌봐 준 글로리아는 늦게라도 진짜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큰 탈은 임신 중이라 보살핌이 필요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글로리아와 함께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클레오의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클레오의 세계>의 빛나는 순간은 여섯 살 소녀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여름방학 동안 일련의 일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글로리아와의 갈등을 빚고, 도망쳐 나오는 순간, 클레오는 엄마의 품과도 같은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영해 그곳을 빠져나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여섯 살 소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비로소 엄마(실제 엄마, 유모)와의 이별을 인지하고, 스스로 헤어짐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극 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는 클레오다. 감독은 1.37:1 비율의 화면비, 스토리보다 소녀의 감정선으로 이어지는 구성,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 두려움, 슬픔, 혼란 등 클레오의 감정선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장면은 눈에 띈다. 이는 클레오의 세계로 인도하는 징검다리인 동시에 유년 시절 느껴봤던 마음과 기억을 가닿게 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어 이 꼬마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성장하고 이별로 단단해진 여섯 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눈물 난다. 홀로서기에 따른 대견스러움일까, 아님 유모와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우리의 얼굴은 담담한 클레오일지, 아님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글로리아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덧붙이는 말: 영화는 ‘로린다 코레이아에게’라는 헌정 문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 인물은 극 중 글로리아처럼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줬던 포르투갈 이민자다. 로린다 코레이는 감독이 6살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클로이의 세계>의 또 다른 제목은 <마리의 세계>라고 해도 될 듯싶다.
평점: 3.5 / 5.0
한줄평: 이별의 성장통으로 우리는 자랐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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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의 모든 이들에게 비치는 이타적 별빛
온기가 차오른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어느덧 따뜻한 봄의 공기로 변할 때쯤 관객은 비로소 스크린을 투영해 전달되는 온기를 오롯이 받아들인다. 그것도 서서히, 그리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새벽의 모든>은 차갑지만 그래서 더 따뜻함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영화다. 그 계기는 멀리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서로에게 이타적 별빛을 비추는 두 주인공에게 기인한다.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와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의 선후배 사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지만, 절대 친하지 않다.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서로가 가진 병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후지사와는 PMS(월경전증후군)로 인해 한 달에 한 번은 억제할 수 없는 짜증을 표출하고,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로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킨다. 병은 다르지만, 그 아픔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일말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도울 방법을 찾는다.
미야케 쇼가 연출한 <새벽의 모든>을 보면 진부한 격언 하나가 떠오른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바로 그것. 극 중 대사에도 나오는 이 말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현 상황을 말하는 듯하다. 마음의 병으로 끝없이 짙은 어둠이 깔린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은 새벽이 오기 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행복보다 절망의 순간을 자주 맛보는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묵묵히 버텨나간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이런 이들의 다음 단계는 ‘사랑’이겠지만,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다. 미야케 쇼는 로맨스 장르의 관습에 전혀 기대지 않는다. 대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동질감 느끼고,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삶을 이해하는 시선을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나간 다. 사랑보단 연대를 내세우며,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두 주인공은 마음이 아닌 손을 맞잡는다.
영화만의 차별성은 연대 말고도 두 주인공의 ‘거리감’에 있다. 이들은 가까이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뭔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도와주는 게 아니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질병으로 삶이 무너질 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정도다.
극 중 야마조에는 PMS에 늪에 빠진 후지사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함께 사무실 밖에 나와 회사 자동차 세차를 함께 한다. 그녀가 짜증을 내도 받아주며, 안정될 때까지 지켜봐 준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한 달에 한 번은 꼭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후지사와도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야마조에게에게 집에서 노는 자전거를 주거나 직접 머리를 잘라주기도 한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도움과 관심을 전하는 그 거리의 길이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유지된다.
초반 이들이 숱하게 말하는 ‘미안합니다. (스미마셍, すみません。)’는 그 적정 거리를 찾는 시행착오처럼 보인다. 이 과정을 지나온 주인공들은 비로소 서로에게 미안한 대상이 아닌 이해와 공감, 위로를 전하는 대상이 된다. 감독은 이런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가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첫 단계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이 거리감을 ‘별’로 치환한다. 이름 없는 작은 별이라도 작지만 아름다운 빛을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별을 향해 비춘다는 극 중 대사는 마치 두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그 빛이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함에도 그 행위 자체로서 위안과 힘을 얻는다는 점은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이는 후반부 이동용 플라네타륨(천체 투영기) 행사장에서 별자리를 관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특별한 사건 없이 담백하게 진행되면서 차곡차곡 쌓인 관객의 감정이 이 부분에서 탁 터진다. 마치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듯 따뜻한 감동이 전해진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행사 참여자들에게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후지사와다. 이 역을 맡은 가미시라이시 모네는 의 미츠하 역의 목소리 연기를 맡을 정도로 특유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강점. 이 장점이 이 장면에서 잘 발휘된다.
두 주인공만큼 빛나는 건 작은 별과도 같은 회사 사람들이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물론,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단체 생활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것에 만족해한다.
이들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과학 키트를 사용할 학생들을 위해 부단히 상품을 조립하고 포장하며 각 학교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마치 30년 전 똑같은 행사를 준비했던 회사 사장 동생의 음성 기록 및 메모가 두 주인공에게 큰 힘이 된 것처럼, 회사 사람들도 30년 후 자신들이 만든 키트를 접한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일을 멋지게 할 수 있도록 작은 빛을 비추는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 빛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북극성 보다 더 찬란해 보인다.
<새벽의 모든>은 아름다운 영화다. 비록 두 주인공의 삶이 힘들고 비루할지언정, 전반적으로 깔린 사람의 온기가 숨겨진 아름다움을 빛낸다. 이는 감독의 전작 과 마찬가지로, 16mm 필름과 자연광을 활용한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냈기 때문. 연속해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영화가 주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길 바란다. 언젠가 어둠이 걷히고 새벽을 알리는 광명을 마주할 그날을 기다리며.
덧붙이는 말: 16mm 필름과 자연광을 활용한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담긴 의 메이킹 영상이다. 극장 가기 전 이 영상을 보며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해 보면 좋을 듯 싶다!
사진제공: 미디어캐슬
평점: 4.0 / 5.0
한줄평: 새벽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빛나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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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 후기 / 라트비아 감독의 1인제작 애니메이션 / 뛰어난 영상미 / 잔잔하고 평화로운 애니 / 소년의 성장영화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어웨이"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엔드크레딧도 1인 제작이라 그런지 엄청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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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부대 - 밝은 화면속에서 활동하는 음지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재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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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로드 된 영상입니다! :)
실력 있지만 허세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하지만 오보로 판명되며 정직당한다. “기자님 기사 오보 아니었어요. 다 저희들이 만든 수법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제보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댓글부대, 일명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불법은 아니에요. 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제보, 어디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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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30초 리뷰 예고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의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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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30초 예고편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