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9 21:25:42
[SIWFF 데일리] 인간에서 인간까지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SYNOPSIS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커스틴 존슨이 25년간의 촬영 경력 동안 포착해 낸 푸티지 영상을 직조하듯 풀어 낸다. 영상 제작자와 대상들 사이의 관계, 카메라의 객관성과 개입 사이의 긴장, 그리고 날것의 현실과 가공된 이야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화.
PROGRAM NOTE
감독으로서 영화는 곧 ‘이야기’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야기 안에서 배제된 촬영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늘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고는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은 무엇보다 예외적이며 뛰어난 작품이다. 이는 25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 커스틴 존슨만이 가지는, 감독과는 다른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영화는 오랜 기간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만난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았던 순간을 엮어서 만든 커스틴 존슨만의 자서전이다. 마치 잘려진 천 조각들이 ‘퀼트’라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본 듯하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5년 만에 다시 찾은 보스니아의 한 가족과의 대화와 ‘작은 상영회’는 이야기에서 놓쳐버린 현장의 순간들이 어떻게 환생되고 의미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면 감독의 그릇만큼 세상이 보일 때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깊은 탐색과 교감이 쌓여 결국 자신의 아이들과 치매를 가진 어머니에게로 카메라가 향할 때, 어떻게 카메라가 한 개인에게 역사가 되어 성숙한 시선을 갖게 하는지, 또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지, 이번 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우정]

일전에 넷플릭스에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변에서 알음알음 추천을 받고, 왓챠피디아도 내가 4.1점을 줄 거라고 했으므로. 역시나 좋았다. 딕 존슨의 죽음을 다룬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딕 존슨의 딸이자,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25년을 살아온 감독 커스틴 존슨의 작품이 상영된다고 해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첫 영화로 냉큼 골랐다.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이 작품은 25년 동안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그가 촬영한 풋티지 영상을 모아모아 새로이 편집한 것이다. 커스틴 존슨 감독은 이것을 자신의 회고록처럼 여겨 달라고 했다. 타이틀이 떠오르기 직전 보이는 장면은 도로만이 펼쳐진 넓은 평원에 번개가 치는 순간과 우렁찬 천둥 소리가 포착되는 것, 그리고 관객인 나와 동시에 깜짝 놀란 숨을 들이켜는 촬영자의 소리. 기둥 뒤에 공간 있듯, 카메라 뒤에 인간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굉장히 다양한 영상이 조각조각 모여 있다. 스레브레니차 집단 살해의 기억이 남아 있는 보스니아처럼 역사의 어떤 순간도 들어 있고, 복싱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는 장면도 들어 있다. 복싱 코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가까이서 찍는 게 진리라고 말한다. 복싱도 촬영도 가까운 데서만 가할 수 있는 일격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가까운 촬영의 일격을 연타로 날리는 걸작이다.

얼핏 평이해 보이는 장소에서도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것이 카메라의 힘임을 느끼게 한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벽의 포탄 자국이, 93-94년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의 묘비가, 스레브레니차를 잊지 말라는 그라피티가, 카메라에 점점이 담기면 그곳은 더 이상 평이한 도시가 아니게 된다.
세계 곳곳, 각기 다른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성실히 따르며, 카메라는 다양한 것을 담는다. 삶의 ‘흥미로운’,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단면마다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가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조각조각들이 모인 곳, 소실점에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바로 인간을 담기 위해 그의 카메라는 그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 차창 너머로 찍을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있다. 알 자지라 주요 인물들이 수감된 예멘의 감옥 앞이나 카불처럼 위험한 곳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도 유리창을 닦는 손이 흥미롭게 담겼다고 말하는 ‘기술 전문가’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잊지 않는 ‘예술가’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익명성을 위해, 머뭇거리며 움직이는 손과 목소리만 담은 인터뷰 영상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진다. 인터뷰의 가장 앞 단어를 건네주면서, 공감하고 경청한다. 카메라의 역할은 결코 응시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동원하여, 담고 전달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의 모습도, 집단 살해의 기억 이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거둔 알알이 보석 같은 열매도, 눈을 다쳤지만 똑똑한 소년으로만 보였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도… 촬영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되는 이런 영상들은, 카메라의 역할이 응시에만 그쳤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가 흘렀던 역사의 기억들과, 그 자리들이 오늘날은 평화로워진 장면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도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편집한 손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의 보여주기는 사실 적극적인 말하기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흘렀던 초원에 오늘날 얼마나 햇살이 곱고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는지, 단지 고운 들판을 보여줄 뿐인데 왜 우리는 참담해지는지. 이 적극적인 말하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 기록의 행위가 없다면 우리 눈에 그저 예쁜 초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토록 거대한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하고 전달하는 한, 조각도 이야기가 된다.
커스틴 존슨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이것이 팩트와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는 과정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조각 모인 이야기들이 새로운 진실을 그려내고, 풋티지 영상이 모여 새로운 작품이 되는 과정이다.

영화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담았다. 현장 프로듀서 겸 통역으로 보스니아에서 내내 동행한 이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이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해소도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몰랐던 이야기 앞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을 회피하는 인터뷰이에게 다른 주제로—이를 테면 옷 같은 얘기로— 말을 돌리기도 하는 커스틴 존슨의 모습을 보며…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단순히 기존 하던 일에 노련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하는 일 안에서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직면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흔히 전문가가 된다고 하면, 마치 감정은 무디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을 잘 해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것 같다. 꼭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배우나 소위 ‘감정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일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대부분 감정을 사용하며 일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간의 시선에서, 시선 끝의 인간까지. 다큐멘터리는 결국 그런 작업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여지지 않는 그 너머까지, 그 소실점에 있는 인간에까지 시선이 미친다면 그 사람이 어느 직군에 있든 전문가 소리를 들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나의 조각 모음은 어떤 회고록의 모양이 되어 있을까. 커스틴 존슨의 인생 thanks t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엔딩 크레디트가 쭉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나의 크레디트에 남기고 싶은 이름과 마음들을. 이 영화에서 보고 배운 아름다운 시선이 거기에도 한 자락 묻어나 있다면 참 좋겠다.
2023.08.25. 14:00-15:4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2023.08.28. 19:30-21:1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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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쪽빛 설탕물
<팜 스프링스>
로맨스 영화 안 본 지 참 오래됐습니다. 단순히 한두 달도 아니고 한 1년 넘게 안 봤던 거 같네요. 정확한 이유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마치 '내년 크리스마스는 커플로 보내야지'하는 다짐처럼 막연히 그냥 거리를 두게 된 지 오래였습니다.
글쎄요, 왜일까요? 그동안 너무 혼자 외롭게 지내다 보니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인식이 잠시 사라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흑
▲ 로맨스 영화 참 오랜만입니다.
그러던 며칠 전 '씨네랩'에서 주최하는 <팜 스프링스> 시사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 오랫동안 멈춰있던 사랑의 톱니바퀴가 조금씩 움직임을 느꼈고, 망설임 없이 극장으로 발길을 향하게 되었네요.
▲ 뭔가 본능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게 됐네요.
<팜 스프링스>의 시놉시스
캘리포니아의 사막도시 '팜 스프링스'의 리조트에선 '탈라'(카밀라 멘데스)와 '에이브'(테일러 후츨린)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을 배경으로 하루가 반복되는 타임루프 세계관에 남자 '나일스'(앤디 샘버그)가 갇힌지 오래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한 사고로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가 나일스의 시간대에 개입하면서 수천/수만 일 동안 같은 날을 살았던 나일스의 하루는 변화하게 되는데...
▲ 타임루프에 먼저/나중에 들어온 남녀의 이야기 <팜 스프링스>
★주의★
'영화의 주제와 특징'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 당하기 싫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부분까지
쭉 넘어가 주시길...
<팜 스프링스>의 주제와 특징
주인공과 몇몇 인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물과 환경이 매일 반복되는 SF장르 '루프물'.
▲ 이제는 너무 익숙한 타임루프 로맨스 영화들
하루가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되풀이되다는 이 소재는 그동안 영화계에서 로맨스와 스릴러에 종종 섞이며 이제는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많이 들어봤겠지만
무한 타임루프예요대충 생각나는 로맨스 루프물만 봐도 <사랑의 블랙홀>(1993),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 <어바웃 타임>(2013) 등등 계속 생각나니까요.
▲ 영화는 우리의 상식을 한번 크게 꼬았습니다.
따라서 <팜 스프링스>는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 각본을 한번 크게 꼬았습니다. 이미 남자는 루프안에 갇힌 지 수천일이 지난 올드비, 여자는 갓 들어오게 된 뉴비라는 설정이죠.
이런 독특한 설정을 중심으로 영화는 기묘하게 돌아갑니다. 처음부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뭔가 조금씩 이상했던 장면도 앞뒤가 짝짝 맞거든요. 예를 들어 나일스가 '미스티'(메레디스 하그너)랑 사랑을 나눌 때 지루라는 설정이나, 다들 정장인데 하와이안 셔츠만 입고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는 이유 같은 거 말이죠.
▲ 처음엔 이 누나가 주인공인 줄...
이 와중에 영화는 정말 가벼워도 이보다 더 가벼울 순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19금(R 등급) 판정받았던 이유를 잘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야한 코미디도 생각 이상이죠.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코미디 영화는 가벼울수록 힘을 받습니다. 아예 무거운 생각은 다 내려놓고 즐기자는 마인드로 관객들에게 접근한 <팜 스프링스>의 전략은 대성공이네요.
▲ 가벼워도 너무나 가볍습니다.
물론 막판에 SF까지 끌어다 쓴 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설정이었을 겁니다. 세라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아마 영화는 이 한편으로 안 끝났을 테니까요..
추가적으로 꽤나 애니메이션 성우로 유명한 앤디 샘버그의 연기력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점고,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10초 앤 해서웨이 크리스틴 밀리오티의 발굴도 이 영화의 큰 수확이네요.
▲ 덕분에 영화는 합격점을 충분히 넘었습니다.
<팜 스프링스>를 보고..
40도 무더위와 땡볕 속 사막을 거닐고 있는 사람이 가장 원하는 음식은 뭘까요? 아마 그 남자/여자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은 수십만 원짜리 스테이크가 아니라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일 겁니다.
이처럼 <팜 스프링스>는 가볍지만 세련된 '쪽빛 설탕물' 같은 존재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뭐, 깊게 분석할 것도 별로 없는 단순한 영화인데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꽤나 큰 힘을 주거든요.
▲ 매우 얕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인 <팜 스프링스>
<팜 스프링스>를 반복되는 인생에 지친, 추가로 사랑이 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훗날 이런 영화가 또 나왔을 때는 연인이랑 같이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부디 제 인생의 반쪽이 저의 내민 손을 잡아주길...
떠나는 게 두려운 거죠?
<팜 스프링스>
★★★★
쪽빛 설탕물**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할리포레스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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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끝날 일들에 대한 작은 낙관, <해피엔드>
그래서 음악 연구 동아리 친구들은 졸업 이후에도 만났을까, 아니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아타(하야시 유타)와 밍(시나 펭)에게는 “우리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에게는 애써 그 문장을 내뱉지 않았던 이유는 무얼까.
우리는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알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친구 사이에서도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하는 미묘함을 우리는 분명히 느낀다. 그 감각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이제 이 관계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라는 어렴풋한 감각은 우리가 그 관계를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도 한다.
코우가 노란 보도블럭을 사이에 두고 유타에게 마지막 손길을 내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소모됐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그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는 상대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도 접어두게 된다. 친구가 언제든지 내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다시 잡을 것이라는 희망을 묻어두게 된다.
우리는 그 일종의 ‘포기’와도 같은 감정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해피엔드>는 관계의 끝에서 생기는 감정에 관해 그다지 부정적인 평가를 시도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풀리기 시작한 관계의 실타래를 강제로 다시 엮으려는, 애써 추스르려는 마음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 ‘해피엔드’인 이유도 어쩌면 그 마음에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끝맺음이 ‘새드엔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해피엔드’일 것이라고.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이런 이유에서 ‘작별에 관한 낙관’을 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는 결국 헤어질 인연이기에, 다시 볼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에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고 대해도 문제 될 일 없다는 사고를 경계한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절 인연’이래도, 서로에게 연대를 남기고 좋은 추억을 남기자는 인식을 보인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삶에 활기를 주고, 미래를 긍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끝나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 만나게 될 우리를, 그 막연한 미래를 축복하는 일과 같을 테다. 그래서 후미(이노리 카라라)가 앞장서서 학교의 통제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후미가 선봉장이 돼 교장실 점거 농성을 벌일 때, 교장은 후미에게 묻는다. “어차피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희의 일이 아니’게 되는데 왜 힘들여 이런 일을 벌이느냐”고. 결국, 그 저항의 이유는 ‘해피엔드’에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부조리한 규율과 통제를 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찜찜한 마음은 현세대에 남고, 해결되지 않은 통제는 다음 세대가 해결할 몫이 된다. 이 마음은 앞서 말한 ‘포기와도 같은 감정’에 보이는 낙관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다음 세대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포기하는 것일 테니까.
‘해피엔드’는 두 가지 방식의 형태와 의미가 있다.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을 빌미로 한, 사실상 ‘비상계엄 조치’인 긴급사태 조항 발령과 교내의 ‘판옵티’ 시스템 도입에 대한 저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저항하는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저항할 의지는 어떤 마음에서 발현되는가. 나는 어쩌면 그 마음이 ‘저항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온다고 본다. 올곧은 저항은 언젠가 그 부조리한 규율을 성공적으로 밀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일종의 미래를 향한 낙관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 저항이 왜 효용을 가져야 하는가. 그 본질에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 다른 이들이 저항하지 않더라도, 나만이 그 저항과 운동에 참여한다더라도 그 행위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억압받을 이들의 훗날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끝으로부터 올 행복에 관한 낙관, 넘어서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투쟁하고 쟁취함으로써 찾아올 그 모두의 효용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연대한다. 그렇기에 코우, 후미와 함께 자습실로 이동하던 학급 친구들이, 학생 투표에서 교장의 차를 세운 사람이 자신임을 밝히는 유타가 해낸 일종의 연대의 행위들은 ‘나’를 넘어선 ‘모두’를 위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두 의미를 모두 갖는 이야기들이 결국 우정으로 수렴되며 마무리된다. 한때는 함께 음악을 향한 꿈을 꾸면서 우정을 쌓아왔던 코우와 유타가, 졸업 이후에도 계속 함께하자고 했던 음악 연구 동아리 멤버들이 서서히 우정보다 자신의 삶과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 나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들의 관계도 끝날 것이다. 연극의 한 챕터가 막을 내리듯, 학창시절에서의 우정은 한동안 휴지기를 보내게 된다. 당연히 이 우정이 끝을 향해 간다는 데에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늘 그래왔듯 지지한다. 어느 순간부터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 우리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과정이 우리를 위한 길이니까. 저항하고 투쟁하는 친구의 곁에 서서 항상 도울 수는 없어도, 중요한 순간에 손을 포개어주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니까.
끝난 우정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가끔 생각날 것이고, “언제 한번 보자”라는 연락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추억과 그리움, 그 저변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한때의 연대를 위해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를 그 자체로 위해준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의 유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우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관심을 끌었겠지만, 영화 종반부에서는 각자의 방향을 굳이 미련 가지지 않은 채로 간다. 그게 정녕 우리의 끝이더라도, 완전히 끝나 돌아오지 않을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해피엔드’이니까. 아타와 밍, 톰(아라지)에게도 애달픈 미련을 던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우리의 해피엔드와 다시 만나게 될 훗날의 순간이 있을 것을 믿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피엔드>는 일말의 낙관을 초점화하는 영화다. 미래를 바라보는 낙관과 우리를 바라보는 낙관이 합쳐진다. 우리 국가가 결국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학교가 학생을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관계가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 낙관 덕에 살아가고, 그 희망 덕에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형태는 작아도 그 의미는 국가적 규모를 넘어서 세계적 규모로까지 퍼질 희망의 메시지가 <해피엔드>에 있다.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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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간 청춘의 얼굴들
2010년 극장에서 원작을 봤던 기억을 더듬었다. 더운 여름날, 수영장, 수화, 풋풋한 청춘의 사랑.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은 대만 로맨스 영화 <청설>(2010)은 그 자체로 맑은 느낌의 러브 스토리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담백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국내 리메이크 작품 <청설>은 변화보단 원작의 장점을 오롯이 가져오는 걸 택했다.
대학 생활을 뒤로 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용준(홍경).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이 철없는 철학과 졸업생은 그냥 놀고 싶어 한다. 그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엄마는 용준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일을 시킨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던 그날, 용준은 자신의 이상형 여름(노윤서)을 만난다. 이후 농인 수영선수인 여름의 동생 가을(김민주)에게 다가가 언니의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당연히 실패!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오토바이가 고장이나 어쩔 줄 모르는 여름을 만난 용준은 도움을 주고 이후 더 가까워진다.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가 사랑받는 건 특유의 청량한 그 느낌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선호 감독이 리메이크한 <청설>에도 청량한 에너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치 청춘의 온도처럼 그 시절, 여름의 온도가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 오토바이, 정겨운 골목길, 살랑거리는 바람, 풋풋한 감정 등 어쩌면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청춘의 시간을 느끼게 하는 향수가 듬뿍 들어있다. 취업 고민 등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 아직도 남아있는 장애인 차별 등 원작과 다르게 좀 더 한국 상황을 반영하는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영화 내 스며든 청량한 느낌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청설>의 매력은 수어에 있다. 대사 보다 수어의 비중이 큰 이 작품은 손짓이나 눈빛, 다양한 제스처에 눈길이 간다. 대사가 아닌 앞서 소개한 동작이나 표정으로 대화하고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이를 기민하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 초반 여름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장면에서 가을이가 “지금 꼬시는 거예요”라는 뜻의 수어와 표정을 지을 때 피식 웃게 되고, 셋이 함께 클럽에 가서 스피커에 손을 대고 울림을 함께 느끼는 표정에 감동이 느껴지며, 서로 조금씩 다가가는 용준과 여름의 모습에 저절로 집중해서 보게 된다. 이런 수어의 쓰임새를 통해 잠시 농인들의 삶이 우리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엮어나가는 사랑의 과정과 꿈을 이루려는 노력은 다소 느리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점점 가까워진 용준과 여름의 사이가 벌어진 계기도 진부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동생의 국가대표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뒷바라지하는 언니가 심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역시 K 장녀 답다!) 가장 아쉬운 건 이 같은 원작의 단점도 오롯이 다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맑디 맑은 윤슬처럼 빛나는 세 배우에게 있다. 홍경, 노윤서, 김민주의 얼굴은 이 영화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춘의 빛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색함 없이 구현한 수어는 물론, 디테일한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도 능숙하게 보여준다. 세 배우의 모습은 곧 영화를 봐야 하는 목적이 될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만큼 최적의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용준과 여름 사이에 놓은 장애물은 언어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상황을 잘 몰라 생긴 오해였다. <청설>의 미덕은 결국 사랑은 말이 아닌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데에 있다. 제목인 청설(聽說)의 의미는 ‘듣고 말한다’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주의 깊게 보고 듣는 게 우선이라는 말. 잘 모르겠다고? 사랑하면 다 안다!
사진 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평점: 3.0 / 5.0
한줄평: 말간 얼굴로 데려가는 청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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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미래에서 인간은... 사이버 펑크 영화 모음
현재, 씨네랩에서는 천하제일 SF 영화 대회가 펼쳐지고 있는데요!
SF 장르에는 다양한 하위 장르가 있죠.
오늘은 고도로 정보화된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사이버펑크 장르를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무한한 상상력에 더해 '인간'에 대해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이 장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명작이 넘쳐나는 오늘의 큐레이션,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저장해 두었다가 관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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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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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해일, AJA Award 2022 수상
ⓒ 네이버 영화
(사)아시아기자협회는 영화 <헤어질 결심>과 <한산>의 주연 배우 박해일을 AJA Award 2022
수상자로 선정했다. 협회 회장단은 "박해일은 20여년간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역량을 증명해온 배우"라며 "특히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의 주연 배우로
출연해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11일 서울 중구 명동 CGV에서 열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10분 확장판 메가박스 단독 개봉
ⓒ (주)더쿱디스트리뷰션/워터홀컴퍼니(주)
개봉 5주차 주말에도 박스오피스 TOP 3를 차지하며 3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10분 메이킹 확장판으로 11월 23일 메가박스 단독 개봉을
확정했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2, 12월 9일 공개 확정
ⓒ 넷플릭스
통일 직전의 한반도라는 흥미로운 배경과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스토리로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 파트2로 마지막 피날레를 선보일 예정이다.
교수와 강도단 그리고 새로운 인물까지 합류하여 파트 2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감독 확장판 <한산 리덕스>, 16일 개봉
ⓒ 롯데엔터테인먼트/㈜빅스톤픽쳐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21분 15초 추가된 버전인 영화 <한산 리덕스>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들과 함께 거북선의 활약과 학익진의 숨겨진 명장면까지 추가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데시벨>, AWFF 초청과 북미 개봉
ⓒ 네비어 영화
배우 김래원, 이종석 주연의 영화 <데시벨>이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AWFF) 상영작으로
초청되었으며, 12월 2일 북미 개봉까지 확정했다.
해외
스눕 독, 전기 영화 제작 확정
ⓒ IMDB
래퍼, 방송인, 배우 스눕 독의 전기 영화가 유니버셜 픽처스에서 제작될 예정이다. 영화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작가인 조 로버트 콜과 <일라이>의 감독 앨런 휴즈가 맡았다.
<7번방의 선물>, 글로벌 리메이크 506억 매출
ⓒ 네이버 영화
한국에서 1281만 명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기록한 <7번방의 선물>이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필리핀에서 리메이크 되며 총 506억 원 이상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달성하였다. 영화는 현재에도
스페인, 인도 등 다양한 나라와 리메이크를 논의하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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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영화 한줄평] <팜 스프링스>
여름의 끝을 장식할 판타스틱 썸머무비 <팜 스프링스>의 시사에서
2주나 빠르게 <팜 스프링스>를 보고 오신
'씨네랩' 연구원 분들의 한줄평, 한 번 확인해볼까요?
<팜 스프링스>
<기생충>을 넘어
선댄스 최고가 경신!
Hulu 스트리밍 최고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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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랜드 투어> 메인 예고편
2024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타부' 미겔 고메스 감독 작품 그랜드 투어 메인 예고편 "넋이 나간 것만 같은 연인의 황당무계한 사랑의 여행을 내내 홀린 듯이 보게 될 것이다”
- 정성일 평론가
영국 공무원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가 온다는 소식에 결혼을 피해 싱가폴로 도망친다. 몰리는 에드워드를 쫓아 싱가폴, 방콕, 사이공 등에 이르는 그랜드 투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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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티저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