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9 21:25:42
[SIWFF 데일리] 인간에서 인간까지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SYNOPSIS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커스틴 존슨이 25년간의 촬영 경력 동안 포착해 낸 푸티지 영상을 직조하듯 풀어 낸다. 영상 제작자와 대상들 사이의 관계, 카메라의 객관성과 개입 사이의 긴장, 그리고 날것의 현실과 가공된 이야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화.
PROGRAM NOTE
감독으로서 영화는 곧 ‘이야기’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야기 안에서 배제된 촬영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늘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고는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은 무엇보다 예외적이며 뛰어난 작품이다. 이는 25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 커스틴 존슨만이 가지는, 감독과는 다른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영화는 오랜 기간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만난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았던 순간을 엮어서 만든 커스틴 존슨만의 자서전이다. 마치 잘려진 천 조각들이 ‘퀼트’라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본 듯하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5년 만에 다시 찾은 보스니아의 한 가족과의 대화와 ‘작은 상영회’는 이야기에서 놓쳐버린 현장의 순간들이 어떻게 환생되고 의미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면 감독의 그릇만큼 세상이 보일 때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깊은 탐색과 교감이 쌓여 결국 자신의 아이들과 치매를 가진 어머니에게로 카메라가 향할 때, 어떻게 카메라가 한 개인에게 역사가 되어 성숙한 시선을 갖게 하는지, 또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지, 이번 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우정]
일전에 넷플릭스에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변에서 알음알음 추천을 받고, 왓챠피디아도 내가 4.1점을 줄 거라고 했으므로. 역시나 좋았다. 딕 존슨의 죽음을 다룬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딕 존슨의 딸이자,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25년을 살아온 감독 커스틴 존슨의 작품이 상영된다고 해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첫 영화로 냉큼 골랐다.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이 작품은 25년 동안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그가 촬영한 풋티지 영상을 모아모아 새로이 편집한 것이다. 커스틴 존슨 감독은 이것을 자신의 회고록처럼 여겨 달라고 했다. 타이틀이 떠오르기 직전 보이는 장면은 도로만이 펼쳐진 넓은 평원에 번개가 치는 순간과 우렁찬 천둥 소리가 포착되는 것, 그리고 관객인 나와 동시에 깜짝 놀란 숨을 들이켜는 촬영자의 소리. 기둥 뒤에 공간 있듯, 카메라 뒤에 인간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굉장히 다양한 영상이 조각조각 모여 있다. 스레브레니차 집단 살해의 기억이 남아 있는 보스니아처럼 역사의 어떤 순간도 들어 있고, 복싱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는 장면도 들어 있다. 복싱 코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가까이서 찍는 게 진리라고 말한다. 복싱도 촬영도 가까운 데서만 가할 수 있는 일격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가까운 촬영의 일격을 연타로 날리는 걸작이다.
얼핏 평이해 보이는 장소에서도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것이 카메라의 힘임을 느끼게 한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벽의 포탄 자국이, 93-94년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의 묘비가, 스레브레니차를 잊지 말라는 그라피티가, 카메라에 점점이 담기면 그곳은 더 이상 평이한 도시가 아니게 된다.
세계 곳곳, 각기 다른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성실히 따르며, 카메라는 다양한 것을 담는다. 삶의 ‘흥미로운’,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단면마다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가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조각조각들이 모인 곳, 소실점에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바로 인간을 담기 위해 그의 카메라는 그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 차창 너머로 찍을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있다. 알 자지라 주요 인물들이 수감된 예멘의 감옥 앞이나 카불처럼 위험한 곳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도 유리창을 닦는 손이 흥미롭게 담겼다고 말하는 ‘기술 전문가’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잊지 않는 ‘예술가’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익명성을 위해, 머뭇거리며 움직이는 손과 목소리만 담은 인터뷰 영상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진다. 인터뷰의 가장 앞 단어를 건네주면서, 공감하고 경청한다. 카메라의 역할은 결코 응시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동원하여, 담고 전달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의 모습도, 집단 살해의 기억 이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거둔 알알이 보석 같은 열매도, 눈을 다쳤지만 똑똑한 소년으로만 보였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도… 촬영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되는 이런 영상들은, 카메라의 역할이 응시에만 그쳤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가 흘렀던 역사의 기억들과, 그 자리들이 오늘날은 평화로워진 장면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도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편집한 손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의 보여주기는 사실 적극적인 말하기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흘렀던 초원에 오늘날 얼마나 햇살이 곱고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는지, 단지 고운 들판을 보여줄 뿐인데 왜 우리는 참담해지는지. 이 적극적인 말하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 기록의 행위가 없다면 우리 눈에 그저 예쁜 초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토록 거대한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하고 전달하는 한, 조각도 이야기가 된다.
커스틴 존슨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이것이 팩트와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는 과정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조각 모인 이야기들이 새로운 진실을 그려내고, 풋티지 영상이 모여 새로운 작품이 되는 과정이다.
영화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담았다. 현장 프로듀서 겸 통역으로 보스니아에서 내내 동행한 이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이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해소도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몰랐던 이야기 앞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을 회피하는 인터뷰이에게 다른 주제로—이를 테면 옷 같은 얘기로— 말을 돌리기도 하는 커스틴 존슨의 모습을 보며…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단순히 기존 하던 일에 노련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하는 일 안에서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직면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흔히 전문가가 된다고 하면, 마치 감정은 무디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을 잘 해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것 같다. 꼭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배우나 소위 ‘감정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일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대부분 감정을 사용하며 일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간의 시선에서, 시선 끝의 인간까지. 다큐멘터리는 결국 그런 작업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여지지 않는 그 너머까지, 그 소실점에 있는 인간에까지 시선이 미친다면 그 사람이 어느 직군에 있든 전문가 소리를 들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나의 조각 모음은 어떤 회고록의 모양이 되어 있을까. 커스틴 존슨의 인생 thanks t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엔딩 크레디트가 쭉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나의 크레디트에 남기고 싶은 이름과 마음들을. 이 영화에서 보고 배운 아름다운 시선이 거기에도 한 자락 묻어나 있다면 참 좋겠다.
2023.08.25. 14:00-15:4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2023.08.28. 19:30-21:1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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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장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여성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바다를 거닐던 소녀는 온전한 여성이 되어 바닷가를 떠난다. 급변하는 대만의 초상을 담아낸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은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당시 대만의 혼란스러운 사회와 여성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엄격한 가부장제 문화와 일본 문화가 잔재하던 당시의 대만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자리(실비아 창)의 아버지는 개인병원 의사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다. 완고한 아버지의 의견은 집의 법이자 질서였고 자리의 오빠 자썬은 연인이던 웨이칭(호인몽)과 헤어지고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자리의 미래 역시 아버지의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리는 아버지의 의지를 거역하고 집을 나와 사랑하는 연인 청더웨이(모학유)에게 간다. 자리의 선택은 오빠 자썬의 선택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자썬은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믿었고, 그 믿음은 편안함도 행복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생 시절부터 연인이었던 청더웨이를 선택한 자리의 삶은 행복했을까? 더웨이의 친구 아차이는 부유한 상속자와 결혼했고, 더웨이는 아차이의 회사 대표를 맡게 되었다. 사업은 접대의 연속이었고 자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적어졌다. 자리는 더웨이가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무리하게 묻어둔 불안감은 때때로 튀어나와 더웨이를 옥죄었다. 자리의 걱정은 더웨이에게 간섭으로 느껴졌고 그는 계속 멀어져 갔다. 더웨이가 익사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자리는 해변을 찾아간다. 경찰은 더웨이의 이름이 쓰인 약병과 칫솔 따위의 물건을 보여주며 남편의 것이 맞냐고 묻는다. 자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일부러 아내와 남편을 떼어놓는 것 같아. 남자는 남자의 활동 장소가 있고, 여자는 여자의 활동 범위가 있어. “ 자리의 활동 장소와 범위는 더웨이의 그것과 달랐다. 자리의 장소는 대부분 집이었다. 그 외에 꽃꽂이 교실, 친구의 집 혹은 마트가 전부였다. 자리가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머무르던 부모님의 집 처마에는 새장 안에 새들이 가득했다. 새장은 아버지의 질서였고, 집을 뛰쳐나와 더웨이에게 가면서 자리는 새장을 탈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웨이와 함께 사는 집 역시 또 다른 새장이었다. 네모난 새장 대신 네모난 철창 같은 문에 갇힌 자리에게 그곳은 집으로 느껴진 적 없었다. 안방의 침대는 부부간의 친밀한 소통이 아닌 갈등과 불안함으로 가득 찬 무대가 되었다. 집뿐만이 아니라 더웨이와의 거리가 가깝게 밀착되는 공간일수록 갈등의 강도는 거세졌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공간인 자동차에서 갈등은 절정에 달한다. 자리의 질문은 더웨이에게 불신의 언어로 다가왔고 자신을 “믿으면 무서울 것 없”다고 말하며 난폭 운전을 하는 더웨이는 자리에게 두려움이었다.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있지만 어느 한 구석이 삐딱하게 잘못 놓인 전화기처럼 자리와 더웨이는 소통하지 못했고, 그런 틈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류샤오후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틈새를 파고든다. 물질적인 풍요만 충족된 더웨이와 자리의 집은 그 옛날 자리가 도망쳐 나온 아버지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자리는 그 문제를 어머니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보았다. 가부장제에 꼭 맞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리는 남자의 마음이 언제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성들의 역할과 공간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달라지고 있었다. 자리는 그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넓은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자리는 존재의 불안함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더웨이가 있을지 모를 공사 부지에서, 남편이 익사했는지 모를 바닷가에서, 넓은 침대에 홀로 우두커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겨져 있다. 더웨이를 향한 믿음은 흔들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자리는 바다에서 건진 시체가 더웨이인지 확인하지 않고 떠난다. 그 해변을 혼자 떠나며 자리는 성장했다. 해변의 시체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닌 자신을 믿기로 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한 30대 무렵의 자리는 단단한 여성이 되었다. 13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어 타이베이로 돌아온 웨이칭은 무대 위 피아노 앞이라는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웨이칭과 마주한 자리는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새장 같던 집과 혼란스러운 해변을 떠나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하여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두 여성 모두 성장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자신을 믿고 자신의 방식으로 선택”한 웨이칭과 자리는 더 이상 어떤 공간에도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그곳의 주인이 되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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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프는 왜 푸드트럭을 하게 됐는가. 영화 <아메리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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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 (Chef, 2014)
장르 : 코미디, 미국 │ 감독 : 존 파브로
출연 : 존 파브로(칼 캐스퍼), 엠제이 안소니(퍼시), 소피아 베르가라(이네즈)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4분"주방 뒤 셰프의 삶에 대하여"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방송을 좋아한다.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영상에서 요리만큼 다채로운 소재가 있을까. 재료를 썰고, 볶고, 데코레이팅 해서 완벽한 결과물을 플레이팅 하는 것까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볼거리이며 예술인 요리.
<아메리칸 셰프>는 그런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이면서도, 주방 뒤에서 펼쳐지는 셰프의 현실적인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손님의 상에 요리가 도착하기까지 주방 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셰프의 얼마나 많은 손길과 고민이 담겼을까. 더 나아가 그 요리에 담긴 셰프 본인의 철학은 얼만큼이며, 레스토랑 운영자의 자본주의적 개입은 또 얼만큼일까. 궁금했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리뷰에 민감한 것은 요리도 마찬가지"
‘칼 캐스퍼’는 LA의 유명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레스토랑 경영자가 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요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보다 얼마나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돈을 벌 것인가를 계산하는 경영자. 우리가 맛보는 요리들은 대개, 그 두 가치의 타협점일 것이다.하루는 요리 비평 블로거로 유명한 ‘램지 미첼’이 ‘칼’의 레스토랑에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자부심이 대단한 칼은 그를 만족시키고자 만전을 기하지만, 블로거의 리뷰는 참담하다. ‘칼의 요리는 더 이상 참신함이 없으며 심지어 디저트는 먹기도 힘든 수준’이라는 등 혹평 일색인 것.
열이 제대로 받은 ‘칼’은 블로거에게 다시 찾아올 것을 요구하고 신메뉴 개발에 힘쓰지만, 이를 돈으로 밖에 보지 않은 레스토랑 경영자는 이런 칼을 제재하고 나선다. 결국 재방문한 블로거 ‘램지’에게 다시 똑같은 메뉴를 선보이게 되는 칼. ‘램지’는 그럴 줄 알았다며 비아냥거리고 이 일로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칼’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만다. 그리고 찾아온 후폭풍은 실업 그리고 재기 불능.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입장이다 보니 칼의 마음을 이해해지 않을 수 없었다. 창작자에게 인플루언서의 리뷰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특히나 13만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 블로거가 내 작품에 혹평을 한다면 예민함을 넘어서 분통이 터질 수밖에. 하지만 칼이 정말로 억울했던 건, 고용주의 요구를 따르느라 자신의 요리를 제대로 선보일 수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모든 걸 잃어도 재능은 일으킬 수 있다"
블로거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더 이상 칼을 셰프로 써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망연자실하던 것도 잠시, 칼은 낡은 트럭을 개조해 푸드트럭을 하기로 결심한다. 메뉴는 언젠가 어린 아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던 쿠바식 샌드위치. 땡전 한 푼 남아있지 않는 그였으나,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 법. 그를 돕겠다는 직원 한 명과 아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전역을 돌며 샌드위치를 팔기로 한다. 믿을 것은 오로지 칼의 요리 실력뿐.
고기와 햄 치즈를 잔뜩 넣은 빵을 버터를 바른 플란차에 구워내는 일명 ‘쿠바노 샌드위치’는 칼의 요리 솜씨, 그리고 어린 아들의 SNS 마케팅 실력으로 금세 유명세를 얻는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풍부한 자본 아래에 고용되어 있을 때는 하지 못하던 ‘정말 만들고 싶은 것’을, 오히려 낡아 빠진 길거리 트럭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헤드 셰프로 일 할 때는 일에 치여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하던 칼이었지만, 어린 아들은 아빠와 함께할 수 있어 낡은 트럭에서 지내는 것조차 너무도 행복해한다.
"창작의 순수한 기쁨"
셰프로서 정점에 있던 한 남자가, 바닥으로 추락했다가 다시 오로지 실력 하나로 자리를 되찾는, 그리고 아들과의 우정을 쌓아나가는 훈훈한 영화로 마무리되나 싶었을 무렵. 칼을 역경으로 몰아넣었던 그 악평 블로거 ‘램지’가 트럭으로 찾아온다. 또 무슨 혹평을 늘어놓으려나 싶어 내쫓으려 했으나, 그가 하는 말은 의외의 것이다. 나는 원래 당신의 팬이었으며, 당신이 그 레스토랑에서 하기 싫은 요리를 만들 때보다 지금 이 트럭에서 만드는 샌드위치가 훨씬 더 맛있다고. 내 블로거를 팔아서 번 돈으로 땅을 샀는데, 거기서 당신이 원하는 메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맘껏 만들며 운영할 생각이 있겠느냐고.
창작자의 삶은 의외로 단순한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재료는 사실 필요치 않은 것이다. 자본이 붙으면 자본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글 쓰는 자는 출판사가 원하는 것을 쓰게 되고, 셰프는 고용주가 원하는 것을 요리하게 된다. 물론 자본이나 대중의 기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터다. 사랑을 받아야만 작품에 의미가 깃드는 것이니까.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그 사이에서 창작의 기쁨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창작을 할 것인가. 이 주제가 너무 심오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영화는 가볍고 재밌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쿠바식 샌드위치가 미친 듯이 먹고 싶다는 거다. 이처럼 창작의 기쁨은 그리 무거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면, 그것이 곧 창작의 기쁨이다.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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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챔피언처럼 임하는 자세
아주 오랜만에 늦은밤까지 열정적으로 올림픽을 보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남자양궁 단체전에서 김우진 선수와 엘리슨 선수의 경기는 그야 말로 심장을 뛰게 하는 경기였다. ‘ 어? 대한민국이 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슛오프에서 4.9mm차이로 금메달을 딴 순간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영화관계자인 지인이 ‘이게 현실인데,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욕먹을 것 같다.’ 고 말할 만큼 감동적이고 울컥한 순간이 많이 연출된 올림픽. 그래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올림픽의 스토리는 자주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은 국민적 무관심 속에 출전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최고의 핸드볼 선수 미숙, 그러나 온 몸을 바쳐 뛴 소속팀이 해체되자, 그녀는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생계를 위해 대형 마트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일본 프로팀의 잘나가는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혜경은 위기에 처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 귀국한다.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미숙을 비롯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모은다.
실제로 영화의 모티브였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소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여자 핸드볼 실업팀은 5개, 국가대표 선수 일당은 2만 원에 불과했는데, 선수가 모자라 은퇴한 선수까지 불러들여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핸드볼 감독으로 활약 중이던 임오경 선수 투입을 시작으로 오성옥, 오영란 선수 등이 합류해 훈련에 돌입했다고 한다.
혜경은 초반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력 강화에 힘쓰지만 그녀의 독선적인 스타일은 개성 강한 신진 선수들과 불화를 야기하고 급기야 노장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간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진다. 이에 협회위원장은 선수들과의 불화와 여자라는 점을 문제 삼아 혜경을 감독대행에서 경질시키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 안승필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중요했던 혜경이지만, 미숙의 만류와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감독이 아닌 선수로 팀에 복귀해 명예 회복에 나선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감독으로의 성공적인 전향을 꿈꾸는 승필. 그는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은 과학적인 프로그램과 유럽식 훈련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해 한국형 핸드볼이 몸에 익은 노장 선수들과 갈등을 유발하고 오히려 대표팀의 전력마저 저하시킨다. 심지어 혜경과의 갈등으로 미숙 마저 태릉을 떠나버리고 대표팀은 남자고등학생 선수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졸전을 펼친다. 미숙의 무단이탈을 문제 삼아 엔트리에서 제외하겠다고 공표하는 승필. 안타까운 혜경은 불암산 등반 훈련에서 자신이 먼저 완주하면 미숙의 엔트리 자격 박탈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한다. 혜경은 미숙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승필은 그런 그녀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는데… 결국 혜경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의 노력으로 미숙은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고, 승필과 신진 선수들도 그녀들의 핸드볼에 대한 근성과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려는 투지를 인정하게 된다. 마침내 최고의 팀웍으로 뭉친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재패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한다.
그렇게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 배구 선수들은,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여주며 마지막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는 19번의 동점과 2번의 연장전을 치르며 온 국민에게 투지를 보여줬고, 마지막 승부 던지기까지 숨 막히는 승부를 보여주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보기 대부분이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으로는 호기심을 주기가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문소리, 김정은 등의 여배우들이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로 완벽하게 변신, 경기 장면을 역동적으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 메달을 받던지 색에 상관없이 축하하고,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묵묵히 견디며 지나온 시간을
응원하지만 예전에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당시 여자핸드볼 선수단의 은메달은 그 과정자체가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색이 무슨 차이가 있나.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 파리 남자양궁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엘리슨 선수의 인터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슛오프에서 김우진이 간발의 차로 이겼다고 속상하지 않다. 오랫동안 꿈꾸던 경기였다. 김우진과 나는 챔피언처럼 쐈고 그게 중요하다.” 메달의 색으로 나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고,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지나온 경쟁자이나 동료인 상대선수의 최선 또한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 진짜 챔피언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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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6월 2주 개봉영화!
브로커 Broker , 2022
송강호, 대한민국 첫 남우주연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에큐메니컬상 수상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를 몰래 데려온 '상현'과 '동수' 하지만 아기를 두고 갔던 엄마 ‘소영’이 다시 돌아오고,
의도치 않게 세 사람이 함께 아기의 새로운 부모를 찾아 나서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베이비 박스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따스하면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담아냈는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 칸 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국 배우와의 작업을 고대해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사 집과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국내 배우, 국내 제작진과 함께 한층 리얼하고 따뜻한 감성을 그려냈습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의 특별한 시너지!
첫번째 추천영화 "브로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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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삼칠 2022
제2의 7번방의 선물
영화 ‘이공삼칠’은 열아홉 소녀에게 일어난 믿기 힘든 현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희망을 주고 싶은 감방 동기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입니다.
아껴둔 사제 음식을 나눠주거나 칫솔, 수건 등의 생필품을 따로 챙겨주고 모아뒀던 책을 빌려주는 등
살벌할 것만 같은 예상과 달리 따뜻하게 보듬어주는데요
‘프로듀스48’ 출신의 홍예지 배우가 데뷔와 동시에 주연을 맡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미화, 신은정, 황석정, 전소민, 윤미경까지 배우들의 열연도 관점포인트 입니다.
'7번방의 선물',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떠올리게 하며 여성 재소자들의 연대로 또 다른 웃음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두번째 추천영화 "이공삼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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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 Missing Yoon , 2021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선정X배우상 수상 최고 화제작!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열애', 'DJ에게', '공부합시다' 등
레전드 히트곡으로 조용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전설적인 가수 '윤시내'가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 직전 돌연 사라졌다는 유쾌하고 엉뚱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제 예매 오픈 이후 초고속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이주영, 오민애, 노재원, 김재화 등이 출연해 독립영화계 어벤져스가 뭉친 풍성한 라인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미테이션 가수 엄마와 관종 유튜버 딸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신선한 조합,
그리고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가짜들이 진짜에 한 걸음 다가가며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가게 된다는 따뜻한 메시지!
세번째 추천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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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La Fine Fleur , The Rose Maker , 2020
신작 프랑스 코미디 영화
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은 파산 위기에 처한 장미정원을 지키려는 베테랑 원예사 베르네 부인과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힐링 드라마 입니다.
망해가는 장미정원을 지키기위해 보호관찰 중인 사람들을 저비용으로 고용해 사고뭉치인 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장미 콩쿠르 우승을 노릴만한 장미 품종 개발에 힘쓰면서 펼쳐지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인데요
'프랑스 국민 배우' 카트린 프로가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장미정원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원예사 '에브 베르네' 역을 맡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신작 코미디 영화
네번째 추천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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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체르노빌 After Chernobyl , 2021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촬영한 공포영화
영화 "애프터 체르노빌"은 약혼을 압둔 스티브와 케이트, 스티브의 오빠 데이브, 남동생 톰
이렇게 네 사람이 동유럽의 여행을 하던중 길을 잃고 원전폭발로 폐허가 된 도시 '체르노빌'로 우연히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 입니다.
실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촬영을 했고 페이크 다큐형식인데요
체르노빌은 1986년 방사능 유출 폭발 사고로 아직도 방사능의 공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체르노빌의 공포가 다시 살아날
다섯번째 추천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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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홍수에 깃든 파괴적 창조의 에너지
워터|El Agua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Elena LÓPEZ RIERA
Spain|2022|105 min|DCP|Color|Fiction|15|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여름철의 스페인 남동부 작은 마을, 폭풍이 몰아치자 마을을 지나는 강이 또다시 범람하려 한다. 이번에도 해묵은 미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여자들은 물을 품고 태어나 홍수가 나면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녔다. 마을 십 대들은 여름의 따분함을 달래려 담배를 피우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폭풍 전의 흥분되는 분위기 속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나, 그리고 호세는 사랑에 빠진다.
프로그램 노트
일련의 유명한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 감독의 대망의 장편 데뷔작. 이 영화는 고대만큼이나 신화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한 마을의 여성 세계에 주목한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한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새로운 홍수가 발생하면 ‘몸속에 물을 지닌’ 선택받은 여자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다음 폭풍이 다가올 징조가 보이고 소문이 대물림되는 한 가족(할머니, 어머니, 딸)은 다시 한번 과거의 명령과 조상의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리얼리즘과 신비주의 중간쯤에 있는 <워터>는 여성, 연대와 저항, 사랑의 이야기와 성장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성경)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강가에 모인 아나와 친구들. 철없는 장난을 치다가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대화를 나눈다. 작은 소도시를 떠나 마드리드 야경을 즐기고, 공부도 하고, 꿈을 이루자고. 그러나 강물에 떠밀려 온 염소 시체가 나타나자 화기애애한 대화는 뚝 끊긴다. 대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스크린을 장악한다. 홍수와 강, 그리고 몸에 물이 깃든 여자에 대한 불길한 전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워터>의 오프닝은 일견 아무 맥락이 없다. 일상적인 수다와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전설을 억지로 붙인 듯 보인다. 전설 때문에 불안해하던 아나와 호세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랑에 빠지고 키스하고 있으니 더 당황스럽다. 대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오프닝은 달리 보인다. 오히려 본본에 충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색하다고 생각한 오프닝 안에는 영화가 보여주려 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나 일행의 대화와 마을의 오래된 신화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을 억압하는 힘의 정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망갈 곳은 없다
아나와 친구들의 대화를 되짚어 보면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갈망. 그런데 이는 역으로 현재 상황에 종속되어 있는 그들의 현실을 강조한다. 아나의 남자친구, 호세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과수원집 아들인 그는 자기가 런던에서 유학하다가 돌아왔다고 떠들고 다닌다. 아나에게도 템즈 강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의 말은 현실과 다르다. 아버지의 강한 권유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가업을 배운다. 나무에게 물 주고 열매를 수확하는 법, 호우에 대비하는 법을 충실히 익힐수록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 그의 일상과 현실은 다양한 잠재력과 젊은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설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신화는 젊은 여성을 억누르는 힘이다. 홍수와 강에 대해 듣고 자란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 운명과 죽음이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면 내 딸이 강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니까. 물론 전설 따위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설이 마을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나의 할머니가 샤먼 마냥 주술로 갓난아이를 치료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워터>의 도입부는 젊은이들을 억누르는 현실적인 이유와 비현실적인 이유를 한 번에 암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물어 탈출구를 뚫다
이때 로페스 리에라 감독은 아나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탈출구 하나를 열어준다. 현실과 신화, 현재와 과거라는 경계 사이에서 좁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방법은 간단하다. 통상 엄격하게 구분되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 된다.
실제로 영화는 현실적인 기법을 활용하되, 신화적인 내용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달리 말해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다. 영화는 아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마을 여성들의 인터뷰를 삽입한다. 강과 홍수, 여성에 대해 묻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결과 신화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현실감이 더해진다. 한 명의 입이 아닌 여러 입을 거치다 보니 사실을 증언한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우와 홍수도 생동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목격자들이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제보 영상을 통해 불어난 강과 마을을 점령한 물을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역사적인 맥락을 더하기도 한다. 17세기 이후로 기록에 남을 만큼 컸던 홍수의 이름을 연이어 호명한다. 그렇게 하여 터무니없는 것과 이성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근거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현실도 아니고 신화의 세계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홍수의 파괴적 창조
그저 공간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그 공간을 도전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춘이다. 정해진 길을 따르라는 현실적인 압력과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활력을 보여준다. 아나와 호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순간. 둘이 함께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장면. 홍수를 알리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스크린을 가득 매운 클럼의 젊은이들. 그 순간 <워터>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오프닝에 등장한 아나와 호세의 키스는 단순한 키스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정해져 버린 삶의 방향을 바꿔보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힘은 여성들의 연대다. 홍수가 임박하자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는 여인들. 아나가 무슨 선택을 해도 막지 않고 기다려주는 엄마와 할머니. 홍수가 나면 강에 몸을 던졌던 여인들. 그들은 아나가 암울한 죽음을 걱정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강에 몸을 던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의 힘을 빌려 그녀를 괴롭힌 현실과 신화의 억압과 압력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노아도, 데우칼리온도, 우트나피쉬팀도 홍수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한 것처럼. 그래서 <워터>는 염소 시체를 비춘 도입부와는 달리 밝은 햇빛을 받으며 강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나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영화 <워터>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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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슬픔도, 분노도 가늠할 수 없는 방향 잃은 칼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전, 란>은 10월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였고, 김상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진선규, 장성일을 비롯한 배우들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례적인 OTT 영화 개막작 선정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이 작품이 논란을 잠재우고 이 영화가 과연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종려는 양반가 외아들이고, 천영은 종려의 몸종이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함께 했던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동무이기도 하다. 천영은 노비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종려 또한 그를 돕는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데다가 일이 얽혀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기게 된다. 그로 인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게 되는데,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조선 시대는 신분제가 엄격히 구분되었고, 그 체제가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정여립은 '천하는 모두의 것', '임금과 노비가 대등하다',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을 주장하다 처형당했고,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그만큼 조선의 신분제도는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천영도 그러했다. 부모가 양민이었지만 어머니 빚으로 인해 노비가 되었고 노비종모법에 따라 노비가 됐다. 그 일로 인해 억울했던 천영은 늘 마음속으로 자유를 품고 있지만 쉽게 쟁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만큼 소중했던 자유를 향한 열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는 천영의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천영과 종려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둘 사이의 오해가 생기고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게 되는 그 부분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들은 주종 관계를 넘어서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었으나 사회적 제약과 개인적 갈등이 얽혀 그들 사이의 신뢰가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며, 과연 이들의 갈등이 무사히 회복될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왕은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을 갔다. 그것을 지켜본 백성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왜군을 맞이해야 했고, 전란 속에서 버림받은 백성들은 경복궁을 모조리 불태우고, 폭정에 시달리던 노비들은 반기를 들며 주인의 집을 불태웠다. 이는 자유를 향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일어나지 않았을 '난'이 조선을 더욱 혼란에 빠트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황폐화된 조선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자들이 생겨났으나 왕은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큰 기여를 한 이들을 의심하고, 왕은 경복궁 재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울분이 담긴 듯하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오해를 통해 그들이 처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각 인물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함께 전해진다. 영화는 이처럼 혁명의 길로 인도하지는 않지만 중요시해야 할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다루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바라본 조선의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보게 된다.
영화를 보자마자 이 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OTT 공개 예정작이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유가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물론 이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했어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러 찾아왔을 것이다. 압도적인 전개, 큰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웅장함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우선, 화려한 액션과 직관적인 전개,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영화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중심이지만 외부와 내부, 5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여러 등장인물의 서사가 뜬금없이 튀어나오지 않고 자연스레 연결되며 몰입감을 더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오해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며, 영화의 전개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영화는 그 지점에 명확히 점을 찍어 저마다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풀어나가는 과정이 시원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의식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인상 깊다. 다만, 영화의 주요 소재인 계급과 신분에 대한 이야기가 두 주인공의 서사보다 비중이 적어 아쉬움이 남는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올해의 개막작은 김상만 감독님의 <전, 란>으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 및 각본에 참여를 했고, 김상만 감독님을 비롯하여 출중한 실력의 한국 영화인들이 힘을 모아 완성해 낸 사극 대작이라고 소개했다. 박도신 대행 김상만 감독,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성규, 장성일 배우가 참석했다.
<전, 란>은 임진왜란이라는 시대 배경과 창조된 인물을 통해 구성된 영화이며, 왕조 실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만큼 여러 나라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넷플릭스 영화뿐만 아니라 극장의 걸리는 영화들도 더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평과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어떤 사회의 계급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 인물들 즉, 대표되는 인물들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상영일정
10/02 18:00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10/03 16:30 영화의전당 중극장
10/04 12:30 CGV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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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매드랜드 후기 / 제92회 아카데미 3관왕 /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 미국 중서부의 자연경관 / home이 아닌 house가 없는 노매드의 삶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노매드랜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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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19/20> 공식 예고편
어른이 되기까지 D-7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는 순간, 모든 규율이 사라지고 설렘 지수 급상승? ?새로운 청춘을 열어보시겠습니까?? 설렘중독 청춘 리얼리티 《열아홉, 스물》 두근거림이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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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미더고스트> 티저 예고편
영혼까지 끌어 모아 마련한 돈으로 드림 하우스에 입성한 20년 절친 예지와 호두.
완벽한 줄 알았던 집에 귀신이 들자, 돈도 갈 곳도 없는 둘은 귀신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 때문에 지쳐버린 두 사람은
값비싼 전문 퇴마사 대신 꽃도령 야매 퇴마사 기두와 함께 셀프 퇴마에 나서는데…
"귀신님, 아직... 안 나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