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3-09-19 06:46:03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리뷰
솔루션 북 (2023) 리뷰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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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솔루션 북'을 어제 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대강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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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마크'는 에이전트에 자신의 새로운 필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해고하려하고,
마크는 이에 맞서, 자신의 클립과 자료들을 챙겨 작은 마을로 도피합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드리자면, 일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본인을 주인공 '마크'에 투영하여 만든 영화인만큼, 그의 기존 작품 스타일과 제작/연출 방식을 알고 보면 이 주인공 '마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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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코미디'입니다.
그런만큼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재미요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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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아닌,
(물론 겉으로는 맞습니다만, 미시적으로 보았을때는 그게 포인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기와 갈등들을 통해 그가 한단계 성장하고, 새로운 사랑도 찾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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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톡톡 튀는 영화입니다.
연출도 마음에 들었고, 피에르 니니의 연기도 완벽했네요.
한국에서는 언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개봉하면 보러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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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시간 42분,, 정말 마음에 듭니다.
까이예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가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지만...
저는 3.5로 하겠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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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RM이 주목한 사진작가 낸 골딘의 다큐 영화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사진작가이며 액티비스트인 낸 골딘(Nan Goldin)의 삶과 예술, 그리고 편견과 부조리를 향한 투쟁을 담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임에도 2022년 베니스영화제서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걸작이다.
연출은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Laura Poitras)가 맡았다. 그녀는 낸 골딘을 가리켜, “인생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낸과 같은 사람을 결코 만난 적이 없다.”라고 찬탄했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낸 골딘이 연대해 투쟁하는 단체 <P.A.I.N>은 골리앗 새클러 가문과 그들의 기부금을 받아 이미지 세탁을 도운 대형 미술관에 드러누워 행동으로 성토한다. 낸 골딘과 <P.A.I.N>은 마약성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판매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거대제약 회사와 그 회사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이 죽음의 대가로 얻은 돈으로 기부한 자선기금을 거부할 것을 미술관과 대학에 요구하였다. 그녀의 활동으로 제약회사는 파산하였고,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새클러 가문의 이름이 지워져 갔다.
영화는 그녀의 사진예술이 세상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절망에 처한 자신도 살렸음을 그려낸다. 낸 골딘은 50여 년 전 정치적 검열과 차별이 노골적이었던 시절에도 카메라에 세상의 터부를 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사회적 금기와 직면하고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러한 사진들은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로 전시가 금지되었다. 낸 골딘은 사진이 예술인지 정치적 행위인지는 정부와 의회권력이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이 결정한다고 소리 높였다.
낸 골딘에게 성정체성으로 집에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니가 있었다. 동성애자에게 가혹했던 시절 부모는 언니의 삶과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낸은 언니가 흔적 없이 죽은 후, 평생에 걸쳐 자신의 자취를 남기려고 몸부림쳤다. 낸에게 사진은 인생에 흔적을 남기는 수단이었고, 언어였다. 그녀는 가난과 차별, 생존을 위한 몸부림들, 남친에게 코뼈가 으스러지도록 폭행당한 얼굴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은 자신을 살리는 해방구였으며, 고통과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생존 행위였다.
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는 2023년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며 낸 골딘을 1위로 올렸다. BTS RM도 인스타그램에 낸 골딘의 사진집을 올려 그녀의 예술과 인생 여정에 관심을 드러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의 삶에서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드러내는 사진들이 그 자체로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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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꼼히 판 묫자리, 깔끔하지 않은 뒷정리
<파묘>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쓰자면 <파묘>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는 영화였다. 왜 아쉬웠을까? 설명하기 이전에 이 이야기의 줄거리부터. 박지용(김재철)이 화림(김고은)에게 의뢰할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집안에 관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림의 동료 봉길(이도현), 아는 아저씨였던 영근(유해진)과 상덕(최민식)이 출동한다. 영화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삼고 있는데, 이 도중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또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줄거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연히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상덕과 화림이고, 영근과 봉길이 상덕과 화림을 지원하는 사이드킥쯤 된다. 왜 <파묘>는 이렇게 줄거리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장재현 감독이 친일파라는 소재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들은 영화를 이끌어가며 여러 사건들을 마주한다. 그중 가장 대표격인 사건은 박지용의 집안이 친일행각에 가담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 하에 박지용의 끔찍한 죽음을 비롯해 상덕의 보국사 방문이나 봉길의 부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첩장'이다.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 세로로 관을 묻고 그 위에 가로로 덧댄 형태를 핵심 모티브로 활용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우선 글쓴이에게 이 파묘라는 것을 통해 첩장이라는 모티브를 제시하는 것 자체는 신선했다. 일단 '파묘'라는 단어, 여러분은 들어본 적 있는가? 들어본 적은 있어도 이걸 직접 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글쓴이는 평범한 벌초정도는 해봤어도(요즘은 그마저도 안 한다지만) 묘를 판다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단어 뜻은 유추할 수 있는 정도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기괴함을 느끼기 쉬운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 파묘라는 행위는 오컬트라는 장르와 매우 친해지기 쉽다. 사람이 죽어있는 묘를 들춘다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과 가까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곧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유령, 귀신같은 초자연적인 일들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 중 하나인 직업영화로서의 박력도 이 '파묘'라는 설정 덕에 힘을 얻는다. 묘는 본질적으로 조상님이 들어가 계신 곳이다. 그리고 무당은 이 들어가 계신 조상님 내지는 하늘의 신과 대화하는 직업군이다. 주인공 화림이 이야기에 개입하는 이유가 자연스레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상덕의 직업인 풍수지리사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풍수지리사는 '좋은 땅을 찾는' 직업이다. 그러려면 땅에 서려있는 기운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는 상덕과 화림의 협업이 필연적이라는 근거가 된다.
이야기의 주제에 대한 관점에서, 파묘라는 것은 그 의미 자체만으로 친일파라는 소재를 소환하기에 적합하다. 왜? 파묘는 무덤의 근원을 파헤치는 일이다. 친일파는 근원이 어디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누가 보면 원래 일본인인 것처럼 조선과 대한제국을 팔아넘긴 자들을 친일파라고 하지 않나? 일제강점기 때 했던 창씨개명을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온다. <파묘>에서 보여줬던 첩장의 모티브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친일파는 진짜 근원지를 숨기고 다른 인간인 척하는, '그냥 미국 부자'나 '세로로 묻힌 관'같은 존재인 것이다. 또한 현재 2024년 일제강점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파묘가 필요하다. 이들이 언제부터 득세했는지 그 근원지를 좇는 것이다. 윗문단과 이 문단을 종합하자. 이 영화는 파묘와 첩장이라는 모티브를 메시지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원동력의 양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잘 가져왔다. 이 똑똑한 선택을 강조라도 하듯 <파묘>는 영화의 핵심 사건에 이 모티브를 끌고 온다. 이 영화에서 진짜 흑막이라고 볼 수 있는 세로로 묻힌 관을 빠르게 규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원인을 진작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현대사회에서 친일파들이 득세했던 그 근원지를 명확하게 찾을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첩장'처럼 곳곳에 둘러싸여 있는 장벽들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영화는 파묘라는 소재를 여기에서 활용하고 끝내지 않고 한 차원 더 깊게 들어간다. 파묘를 하는 이유. 알 수 없는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그 이면에 깔린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모른다'라는 일종의 무기력함이다. 사실 이 무기력함과 무지라는 감정은 오컬트의 클래식과도 같다. 알 수 없는 것에서 온갖 방해꾼이 몰려들어와 공포감이 조성되는 걸 활용하는 영화가 많았다. 비단 <악마의 씨> 같은 영화가 그랬으니까. 아, <악마의 씨> 개봉한 지 50년도 더 넘었다. 현대의 장재현 감독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 이 '알지 못한다'라는 또 하나의 모티브를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가령 박지용 일가의 묘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우리 조상들은 쇠말뚝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온 것으로 영화 안에서 묘사된다. 하지만 그 절을 오랫동안 지켜온 스님도 사진 속 안의 인물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제대로 몰랐다. 박지용의 조상이 들어간 관에 대한 부분도 이 무지에 관한 부분을 녹여낸 장면이다. 관을 화장하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아래에 묻힌 또 다른 관이 있던 것은 이 영화가 인간의 무지와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다른 근거다. 봉길이 부상을 입은 후에 의사가 내린 진료도 이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의사들이 아닌 화림과 친구 무당들이 봉길이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장면에서 무지와 무기력함을 활용한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박지용이 혼자 방 안에 있는데, 전화가 온다. 발신자는 상덕이다. 그런데 때마침 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덕이다. 공포에 질린 지용. 지용은 당연히 전화를 건 사람이 상덕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지용만 속이지 않는다. 상덕이 호텔 건물로 올라가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을 속이기 위해 전화부터 건다. 전화가 진짜 상덕일 거라고 속임수를 둔 것이다. "창문 열어!"라는 소리를 듣고 난 다음의 관객은 '전화가 가짜구나'라는 걸 깨닫고 이내 이 영화의 박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장면은 그냥 단적으로 '뭐가 근원인지(진짜 상덕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서스펜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가 이 모티브를 다룰 것이에요!'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의미는 '그 대상의 원인과 실체를 규명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모티브는 <파묘>의 카메라나 조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상덕은 유달리 혼자 움직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성실하게 이를 활용한다. 묘 근처에 혼자 있는 상덕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면 주인공이 겪는 무기력함을 깊게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밤을 활용한 장면도 일부 있다. 화면 구도도 고의적으로 이 고립감과 답답함을 강조하기 위해 촬영된 부분도 어느 정도 있고, 채도 대비나 사무라이 귀신의 형상을 처음 찍는 방식을 봐도 관객이 대상을 쉽게 파악할 수 없게, 그러니까 이것이 뭐가 원인인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게 설정했다.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 역시 이와 통하는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파묘>의 카메라는 굳이 담지 않아도 될 것도 담았다. 초반부 영근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만 보면 후에 관을 열 사람이 영근일 것 같지만 영근은 그 시간에 국밥 먹고 있었다. 이 관을 여는 연출도 외부에서 누군가가 문을 여는 듯한 연출이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원인을 쉽게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이렇게 '파헤침'과 '원인을 알 수 없음'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한 이유가 무엇일까? 글쓴이는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플롯을 각본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또 '파헤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지만 '파묘'하는 행위는 두 번으로 나뉜다. 허리를 끊은 플롯을 구사하는 것이다. 초반부. 박지용의 집안에서 일아난 일을 알지 못해서 묘를 파헤친다. 그 결과 박지용의 집안이 친일파 집안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후반부. 세로로 된 관을 뽑아 결국 오니를 타도하는 데 성공한다. 초반부와 후반부가 나뉜다는 것은 그 지점을 나눈다는 분기점이 있단 의미이다. 초반부와 후반부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은 박지용의 죽음과 조부상을 화장하는 일이다. 박지용은 죽으면서 상덕에게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는다'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은 당연히 그 구분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부분에서 이 영화가 플롯을 친일파로 치환하고 있다. 사실 이 치환과 비유를 굳이 설명해도 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도착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다. 이 신체와 유령으로 치환시킨 일제의 만행은 결국 '한반도의 흐름을 끊은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플롯의 결과만 따져봐도 이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상처를 내는 캐릭터는 모두가 알고 있듯 사무라이 귀신과 친일파들이다. 이 요소들이 어떤 인물에겐 치명상을 입혔다. 그 인물은 봉길과 상덕이다. 곧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다.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는 과거 조선과 대한제국을 이끌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이야(그리고 더 독려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과거에는 그런 영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거짓말이다. 이 둘은 사실 이야기의 흐름상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굳이 허리를 다치거나 생명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부상을 입는다. 왜?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로 암시한 조선/대한민국 사회의 허리를 친일파가 끊어버린 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상업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한반도를 인간의 생로병사로 치환한 부분이 더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글쓴이는 두 가지를 들고 싶다. 결혼과 아이, 그리고 죽음과 노인이다. 결혼이라는 사건만 빼면 나머지 두 캐릭터가 이야기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광심(김선영)이 굳이 임신할 필요 없고 첫째로 공격당하는 대상이 아이가 아니어도 된다. 마찬가지로 생사를 오가는 인물이 할아버지 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굳이 이 둘에게 이런 속성을 부여한 것은 이유가 무엇일까? 고의적으로 이 한반도를 둘러싼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에 영향을 주는 친일파들을 묘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사실 탄생과 죽음이 우리 인간사의 전부라는 점은 당연지사다). 여기에 덧붙여 <파묘>의 유령이 박지용 일가를 전부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글쓴이 입장에서 영화가 흑막을 악마화하기 쉽기 때문에 넣은 대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대상들이 가한 상처를 더 이상 과거와 현재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 향할 것'이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렇게 영화가 치밀하게 친일파와 그들의 악행들을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글쓴이는 상덕의 대사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자손들이 밟을 땅 아니냐!"라는 대사는 자연스러웠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벌어진 문제'에 대해 근원을 찾아 없애겠다는 대사가 흐름을 깬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영화에 유령의 실체가 등장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다고 본다. 원인을 찾아야 하고, 그에 응당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직접적으로 그 대상이 눈에 들어오는 게 합리적이다. 또 그 귀신이 엄청난 크기의 귀신인 것도 나름 그 역사의식에 대한 코멘트 같기도 했다. 그 당시의 일본 군국주의는 아시아에 그 정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끔찍한 상처를 낸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연출들은 당연히 상업적으로도 기승전결이 명확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른 선택지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내적 논리에도 걸맞은 흐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업영화로서 일반적으로 공감하기 쉽다. 보이지 않은 것이 사라졌다는 찜찜한 결론보다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다는 엔딩이 이해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니까. 다만 이런 연출들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연결들이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장점을 위에 길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불호평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것에서 온다. 영화가 스스로의 발목을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듯 끊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의 크게 나눈 1부와 2부는 두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이 등장하는 것과 등장하지 않는 것. 전자는 장재현 감독이 그동안 보여줬던 오컬트 외길인생으로 돌파하고, 후자는 크리쳐가 등장하는 크리쳐물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동기도 명확하다. 1부에서 인물들은 5억이라는 쉽지 않은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거나 / 불가해한 악을 규명하기 위해 힘쓴다. 하지만 2부에선 그 동기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갑자기 상덕이 직업윤리에 투철한 인물이 되거나 그냥 직장상사, 하사 관계인 줄 알았던 화림과 봉길의 과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1부와 2부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방식도 명확하게 꽂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비가 된다. 1부는 할아버지 관을 태울 것인가 / 혹은 아닌가로 갈등한다. 2부는 정보량이 갑자기 느닷없이 많아지는 바람에 글쓴이는 자세한 것들을 나무위키를 읽고 이해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가령 주인공 4인방이 보국사로 가는 과정과 '곰'이라는 동물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런 꼴을 굳이 하고 벌초를 하러 갈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그 관문에서 검문하던 인물들은 너무 쉽게 이들을 통행시켜 주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그 인물들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 산에 곰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면 보국사의 스님에게는 연락했을까. 산에서 사무라이 귀신의 한바탕이 열릴 때 곰은 과연 무얼 했는가. 상덕이 크게 부상당한 것치고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는 것 아닌가. 공권력이 아예 기능하지 않는 세계관인가. 이야기의 중심을 아주 꽉 쥐고 있다가 후반부에 최소한만 유지하고 풀어지는 플롯 때문에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이물질처럼 다가온다.
왜 이 이야기의 흐름이 최소한만 유지하고 풀어졌을까. 글쓴이는 인물들 간의 동기를 영화가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부는 오컬트. 2부는 판타지. 영화가 장르를 바꾸지 말란 법은 없다. 가령 <헤어질 결심> 같은 경우 기도수를 죽인 인물을 추적하다가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로 결론을 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다만 이 <파묘>는 <헤어질 결심>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의 동력으로 끌고 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력은 인물 간의 동기부여다. 가령 도입부에 잠깐만이라도 상덕이 무슨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애국심이 투철한 인물로 묘사됐다면, 풍수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평소 직업윤리를 잘 지키는 인물이었더라면 상덕의 대사에서 당위성이 생긴다. 또 상덕이 이 영화의 핵심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에 조금이라도 근거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화림과 봉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봉길이 다쳤다. 화림은 그걸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한다. 글쓴이는 당연히 화림이 저 때 저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이런 류의 관계는 보통 로맨스로 결론 내리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리고 <파묘>는 그 선택지를 고른 것으로 보인다. 봉길이 무당이 된 이유가 화림을 좋아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봉길이 화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무라이 귀신을 보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의협심이 강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후 화림의 행보까지 감안해 본다면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까지 담으면 이야기가 난잡해진다고 판단했는지 도입부에 이를 생략해 버린다. 아무 암시도 없다 봉길이 화림을 살리는 선택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급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캐릭터 영근 역시 마찬가지다. 영근은 상덕을 굉장히 신뢰한다. 이 '굉장히 신뢰한다'라는 대사가 직접적으로 '난 형님만 믿어요~'식의 대사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저 사람은 상덕을 친 형처럼 모시니까 저렇게 행동해!'라고 유추하기 때문이다. 근데 영화는 그 유추의 근거를 주지 않는다. 단지 상덕의 입에서 "여기까지 따라와 줘서 고맙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 이외에 이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유해진, 최민식 배우가 술 먹고 노는 장면을 쉽게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영화를 봐온 것에 기댔기 때문이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글쓴이는 상업영화로서의 노선과 하고 싶은 주제 사이에서 어느 정도는 갈팡질팡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뿐만아니라 원래 대놓고 등장하지 않는 귀신이 등장한 이유. 도입부에 인물관계를 드러낸 이유. 다 속도감 있고 시원한 전개를 위해 과하게 디테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빚어진 빈약한 인물서사 때문에 영근의 대사 "말뚝의 99%는 거짓"이라는 말도 뭔가 숙제처럼 들린다. 차에서 "야 김상덕 좀 일어나 봐!"라는 대사도 유해진 배우가 잘 살린 거지 감정선이 급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둘이 반말까지 하는 사이인가? 이는 영화에서 "우리 비즈니스 관계지만 부탁 하나 하자"는 대사 때문에 더 두드러지는 단점이다. 영화가 인물들의 인간관계성에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며,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왜 오컬트 맛 만 줘요'라는 비판을 듣기 아주 쉽다.
이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든 오컬트 영화다. 이런 이유로 이 <파묘>를 기대하시는 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분들에게 오컬트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 오컬트로서의 장르적 특성을 후반부에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응당한 근거들을 갖춘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는 흐름에 맞게 전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슨한 밀도를 감당하지는 못했던 <파묘>. 난 재밌어도 이 영화의 불호평에 공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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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을 가용당하는 사회속에서 여성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여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라기에 작품성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던 영화 <로스트 도터>. 영화 속 장면들이 굉장히 타이트하고 흔들리는 장면들이 많아서 멀미를 선사했는데,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부디 멀리서 보길 바란다
영화 <로스트 도터> 시놉시스
“집을 나왔어요. 그렇게 딸들을 버렸죠”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 대학 교수 레다는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를 보고 단번에 시선을 빼앗긴다. 매일 같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 갑자기 니나의 딸이 사라지고 레다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로스트 도터>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흔들리는 컷들의 집합이랄까?
멀미를 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 작품은 고정되어 있는 컷이 하나도 없다. 앞자리에서 봐서 그 흔들림이 더 눈에 잘 띄었던 것일수도 있지만 야속할 정도로 흔들렸다. 과도한 클로즈업과 인물이 걷거나 움직일 때 함께 움직이는 화면들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앉아있는데 출렁이는 배에 탄 것처럼 아주 멀미가 장난 아니었다.
이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흔들리는 장면들을 넣은 이유는 휴가를 온 레다의 혼란한 심경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니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선택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혼란에 빠지는 레다는 장치적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이성적으로는 굉장히 이해가 잘 됐는데 흔들리는 장면을 볼수록 컨디션이 점점 안좋아져서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모성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까?
영화 <로스트 도터>는 모성에 대한 신화를 건드리는 작품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모성이 생기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모성이라는 것이 바로 생기는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엄마라는 이유로 전적인 희생과 자애를 요구당하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여성들은 이기적인 엄마라고 지적하는 사회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한 가정에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의 커리어를 각자 쌓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이 가정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여성은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핀잔을 받는다. 그에 반해 남성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사회는 모성을 강요하면서 부성을 강요하진 않는다. 모성은 보이는 행동은 당연한 것이고, 부성을 보이는 행동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점차 이러한 편견이 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모습들이 종종 눈에 보여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이 작품이 그런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간다. 어떠한 선태긍ㄹ 하던 그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영화 <로스트 도터>는 주인공이 그렇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레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교수로서 성공을 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여성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잠시 자신과 분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꿈에 그리던 교수직 제안을 받자 혼자 런던으로 향한다. 레다는 런던에서 다른 남성과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불륜은 끝냈지만 레다는 가족을 버리고 교수라는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딸과의 관계는 져버리지는 않은 듯 하다. 연락은 지속적으로 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비춰진다.
여자와 엄마, 아내라는 다양한 지위 속에서 과연 레다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일까? 이 영화는 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에게 이것이 만약 내 인생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해서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품이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그녀의 선택이 단순히 이기적이라고 말하기 힘들었지만, 그녀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도 확언할 수 없었기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로스트 도터>는 가부정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압박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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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닐라 스카이> - ‘쓴맛과 단맛이 뒤섞인 진짜 하늘로 뛰어들다’
바닐라 스카이 (Vanilla Sky)
개봉일 : 2001.12.21. (한국 기준)
감독 : 카메론 크로우
출연 : 톰 크루즈,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커트 러셀
‘쓴맛과 단맛이 뒤섞인 진짜 하늘로 뛰어들다’
완벽한 현실과 완벽한 꿈, 순식간에 뭉개져버린 현실과 여전히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는 꿈. 현실과 꿈의 경계가 조금씩 모호해지고, 눈을 뜬 순간 머물고 있는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순간. 내면 깊은 곳에 품어뒀던 그녀가 말을 건다. “눈을 떠!”
33살의 젊은 나이, 잘생긴 얼굴과 튼튼한 몸에 잘나가는 출판사 사장인 데이빗은 언제부턴가 자각몽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여윈것을 제외하면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말하는 달달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다. 데이빗도 인지하고 있는 자신의 유일한 단점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뿐인데, 그의 인생에 크게 문제가 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죽이 잘 맞는 친구 브라이언과 데이빗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친구 토미 아저씨. 그리고 가끔씩 같이 밤을 보내는 파트너 줄리. 데이빗의 인생엔 절망과 실패는 티끌만큼도 없어 보인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데이빗의 삶이 망가지게 된 건 데이빗에게 상처를 입은 줄리가 그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 순간부터였다. 소피아와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아침,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하루는 종잇장이 바람에 날리듯 순식간에 뒤집어져버린다. 데이빗의 얼굴은 무너져내렸고,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회사 위원회는 데이빗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이빗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의사들이 내민 가면을 쓰며 자신의 얼굴을 외면한다. 매일 아침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던 얼굴이 아닌, 수술 자국이 가득한 망가져버린 나의 얼굴. 그리고 운명이라 느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없을 거란 좌절감이 그를 휘감는다.
눈을 마주친 순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인생을 바꿀 운명이라 직감했던 그녀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사고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데이빗을 제자리로 돌려줄 수 있을까. 쓰디쓴 것이 현실이고 달콤한 것은 꿈인가. 처음으로 마주한 쓴맛 가득한 현실은 데이빗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바닐라 스카이 시놉시스
남다른 매력과 탄탄한 재력으로 수많은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데이빗 에임즈. 그는 유력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는 와중에 줄리라는 여자를 만나지만 그녀는 단지 섹스 파트너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빗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온 친구 브라이언의 애인 소피아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녀가 바로 자신이 꿈에 그리던 운명의 상대임을 직감하는 데이빗. 소피아 역시 그에게 이끌려 둘은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데이빗에게 버림받은 줄리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이들을 미행하고, 마침내 데이빗과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사고 이후 데이빗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자기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눈을 떠”
아침이면 얄짤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 데이빗은 그 소리에 눈을 뜬다.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살핀다. 오늘도 여전히 완벽하군-이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현실 같은 꿈을 한번 꾼 것을 제외하면 이상할 것 없는 완벽한 아침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33살의 나이에 오른 잘나가는 잡지사 사장 자리. 밤을 보내는 파트너 ‘줄리’. 그리고 자연스레 꼬이는 이성들. 데이빗의 절친 브라이언은 방탕한 데이빗의 생활을 보며 “어느 날 진짜 사랑을 알게 될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가온 데이빗의 생일날, 브라이언의 조언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데이빗은 브라이언이 데리고 온 친구 소피아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저 ‘밤을 함께 보내는 여자’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감정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자면 참 나쁘지만, 데이빗에게 줄리는 전자였고 소피아는 후자였다.
진정한 사랑이자 완전한 단맛. 데이빗은 완전한 단맛을 내는 사랑을 찾아 소피아의 뒤를 따른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던 줄리는 데이빗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고, 브라이언에게 자신을 ‘그냥 친구’라고 말했던 데이빗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데이빗은 줄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냥 친구’라도 좋으니 오랜 시간 데이빗의 곁에 머물며 사랑을 갈구했던 줄리는 오디션 탈락의 절망감과 데이빗이 남긴 상처에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충동적으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높은 곳이 아니라 떨어질 때 충격이 무서워요.”
항상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데이빗은 줄리가 일으킨 사고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다. 몸이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커다란 수술 자국이 남은 얼굴로 인해 회사에도 나가지 못한다. 높은 곳에 있을 때는 이 추락을 두려워했을 뿐 실제로 알 순 없었다. 떨어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떨어진 곳에 남겨진 내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데이빗은 자신이 이제 온전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누굴 믿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고, 매일같이 잔인한 장난으로 나를 조롱하는 꿈이 이어진다. 얼굴은 상처로 망가졌고, 걸음은 느릿하게밖에 걸을 수 없고, 멋진 옷을 입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의사들에게 되돌려놓으라며 분노를 터트려봐도 돌아오는 건 ‘전 같은 얼굴’이 아닌 기묘한 느낌이 드는 가면뿐이다.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정신 차려, 안 그러면 그 남자를 잃어버릴 거야.”
내일 당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나는 재수 없는 놈이라는 자기혐오에 지쳐버린 데이빗은 브라이언과 소피아를 만나 클럽에 간 날, 술을 진탕마신다. 데이빗은 가면을 뒤통수에 딱 붙인 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춤을 춘다. 어둡고 혼란한 클럽 안에서만큼은 그의 다른 점을 눈치챌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데이빗을 본 브라이언과 소피아는 이전의 데이빗이 그립다고 말한다. 데이빗은 여전히 꼬인 마음으로 브라이언을 등지고 서서 가면을 쓴 뒤통수로 말한다. “난 재수 없는 놈이야!”라고. 기이하고 부대끼는 느낌이 든다. 데이빗도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꿈보다 못한 현실에 지쳐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하다.
가면을 바닥에 던지고, 포기하듯 눈을 감은 밤이 지나고 다른 날보다 맑고 아름다운 하늘이 기다리고 있던 날,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 소피아는 길거리에서 잠든 데이빗에게 돌아왔고, 그의 삶엔 다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데이빗은 이제 실연의 아픔을 겪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수술을 통해 완벽히 얼굴을 되돌리는데 성공한다.
“쓴맛을 모르면 단맛도 모르는 법이야.”
데이빗의 품에 안긴 소피아가 묻는다 “이게 꿈일까?” 데이빗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 절대.” 이게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한, 이전과 같이 완벽히 달달한 삶이다. 아니, 인생의 쓴맛을 봤으니 전보다 더욱 달달하게 느껴지는 삶. 하지만 이 모든 건 데이빗이 선택한 죽음 후에 따라온 자각몽이었다.
식당에서 본듯한 남자의 존재, 사라진 소피아와 자기가 소피아라고 우기는 줄리. 살인 사건에 얽힌 나와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겠다는 박사. 가끔씩 찾아오는 악몽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면 그곳엔 ‘예전과 같은 내 모습’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찌 된 것인지 모든 순간이 의심스럽게 변하고 있다.
진짜 소피아와 함께 봤던 TV 속에 나온 생명연장의 꿈을 이뤄주겠다고 광고한 레이몬드 툴리의 회사 ‘LE’. 데이빗은 현실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LE와 계약을 진행한다. 그게 어느덧 150년 전 일이다. 사실을 알게 된 데이빗은 가면을 벗으며 “나 깰래!”라고 소리친다.
현실의 데이빗은 나이트클럽에서 진탕 취했던 날 이후로 소피아와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어찌어찌하여 회사를 되찾긴 했으나 그는 쓴맛만 남은 인생에 지쳐간다. 그렇게 LE와 계약을 하고 수많은 알약을 털어 넣은, 처음으로 진정한 선택을 했던 순간부터 150년이 지나 이제 다시 선택을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고층 건물의 옥상. 소피아가 아름답다고 말했던 ‘바닐라 스카이(원작:아르장퇴유의 센 강)’속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데이빗에게 소피아는 생일파티날, 브라이언과 함께 나이트클럽에서 다시 만났던 날. 딱 이틀밖에 만나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무용수라는 것과 꿈을 품고 뉴욕에 왔다는 것, 그녀의 눈빛이 순수하게 느껴졌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데이빗의 자각몽 속에서 단 하나뿐인 구세주가 된다. 좋아하던 로맨스 영화의 장면처럼 흘러가는 소피아와의 순간들, 어린 시절 내가 바랐던 아버지상을 투영한 커티스 박사, 전처럼 완벽하게 돌아온 얼굴. 데이빗이 원하는 것들로 채워진 자각몽은 완벽한 단맛의 인생이었다.
150년이 지난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자각몽을 꾸며 인생을 마칠 것인가, 아니면 베니처럼 다시 깨어나 ‘진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데이빗은 망설이지 않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소피아는 이미 세상을 떠났겠지만, 이제라도 현실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데이빗은 자각몽을 꾸기 이전, 33년의 세월을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데이빗은 커티스 박사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박사에게 꿈 이야기를 꺼내놓기 전, “나더러 미쳤다고 할거잖아요.”라고 말하며 그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커티스 박사는 무조건 믿는다며 데이빗을 위로한다. 데이빗은 커티스처럼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고 위로해 주는 아버지를 바랐지만, 현실의 아버지는 그의 바람과 달랐던 것 같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린 나이로 회사를 떠안게 된 소년은 51%의 지분을 노리는 일곱 위원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며 자랐을 것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얽힌 수많은 사람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하면서도 ‘진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브라이언뿐이었던 데이빗의 인생은 달콤하고도 무거운 것이었다. 그 무게를 지고 높은 곳에 서있던 데이빗에게 가장 두려운 건 무거운 것을 안고 떨어질 때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데이빗이 자각몽을 끝내는 조건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걸 적어낸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 진정한 확신이 섰을 때 현실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만장자가 아닌 곧 사라질 돈만 남은 인생, 소피아가 사라진 인생. 가면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꿈 대신 많은 것이 사라진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선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자각몽이라는 가면을 쓰는 게 아닌,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진짜 데이빗’과 자신의 단점마저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상처받은 과거에 멈춘 채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빗은 과거의 자신이 가졌던 두려움을 극복하고 바닐라 스카이에 몸을 던진다. 유일한 친구인 브라이언은 꿈에서 깨겠다는 그를 말리지 않았고, 소피아는 건너편에 서서 데이빗의 선택을 지켜본다.
데이빗은 과거의 상처와 미련을 털어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완전한 단맛일 거라고 보장할 수 없는 현실로. 하지만 쓴맛을 봐야 단맛도 아는 법이라고, 어쩌면 그의 현실은 이전보다 더 달달하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바닐라 스카이>는 눈을 뜨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눈을 떠!” 이 영화는 자신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현실에, 당신의 진정한 인생에 눈을 뜨라고. 꿈처럼 완벽한 현실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겁내지 말고 눈을 뜨라고.
인생엔 수없이 많은 기회와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사소한 선택과 놓치거나, 꼭 붙잡은 기회가 섞여 새로운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만으로 가득 채운 자각몽 속에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 선택을 할 것도, 의외의 기회도 찾아올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인생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자각몽처럼 흘러간다면, 완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 됐든 꿈은 꿈일 뿐이요, 현실은 현실이니.. 꿈처럼 완벽한 현실을 살지 못한다고 절망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 살아가는 ‘진짜 나’의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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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의 질문에 지독하게 응수하는 아리 애스터
불안한 머릿속
이 영화의 주인공인 보 와서만은 미국 어딘가에 사는 평범한 백인 아저씨다. 심리 상담가와 상담 중인 보. 상담가는 보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솔직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란 적 있었나요?” 아연실색하는 보. 어머니가 무섭다고는 느꼈지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약에 대해 처방받는 보. 의사는 보에게 ‘반드시 약을 물과 함께 먹어라’라고 당부한다. 할 일이 있던 보. 잠깐 외출하는 길에 여려 광경을 목도한다. 누구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 아예 길바닥에 시체까지 있다. 더러운 길거리. 어수선한 분위기를 무시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는 보. 문신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남자가 갑자기 뛰어온다. 당황하는 보. 집 엘리베이터까지 미친 듯이 달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보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이 남자의 일상은 크게 뒤틀려있다.
어떤 일상을 살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할 일은 해야 한다. 내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잠을 청하는 보. 아무도 없는 한적한 집 덩그러니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누가 보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온다. 누군가는 보의 문 틈에 쪽지를 쓱 던졌다. “선생님! 우리 다 같이 잠들어야 하잖아요. 음악 소리 조금만 자제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이상했다. 보는 원래 조용히 잠을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점점 자주 날아오는 쪽지. 음악의 m자도 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경고는 더 심각해진다. 갑자기 음악소리가 커진다. 보가 늦잠을 잤다. 비행기 타야 하는데 시간을 놓쳐버렸다. 갑자기 꼬인 보의 귀로. 설상가상으로 악재가 겹치기 시작한다. 이런 보에게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던진다. “넌 x 됐어. xx아.” 놀랍게도 말이 정확히 이뤄진다. 보의 귀향길은 너무 어려웠다. 그에게 가늠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감독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이 남자의 데뷔작은 무려 <유전>이다. 그리고 그 차기작은 <미드소마>다. 파멸적인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 아리 애스터는 일반적인 호러 영화 문법을 온몸을 바쳐서 거부하던 사람이었다. 첫 번째. 데뷔작 <유전>이다. <유전>에서 기억에 남았던 점은 화면을 담는 방식이었다. 영화에서 절대자가 등장한다. 이 절대자가 짜놓은 판에 주인공 가족이 휘말리는 게 영화의 핵심이 되는 만큼 어떻게 신의 존재를 묘사할지가 작품의 핵심이었다. 이를 카메라 구도와 건물 구조로 묘사한다. 악마가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촬영 방식, 디오라마로 표상되는 시각적인 무력감 묘사 같은 것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저주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했다. 다른 영화 <미드소마>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만 봐도 다른 호러 장르물과는 다르다. 영화의 초반부-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입장을 바꿨는지가 그게 대한 근거다. 트라우마가 있던 주인공.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공감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미드소마>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부분이었다. 이 과정 중에 주인공에게 큰 상처를 남긴 그녀의 가족들, 가짜로 공감했던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같이 울어주는 대안 가족의 역할을 보여주던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퀀스로 뽑을 만하다. 보통 트라우마를 주던 쪽이었던 호러영화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플롯을 끌고 갔던 것이다. 물론 공포 분위기를 주던 방식 역시 신선했다. <살인 소설>이라는 영화가 있다. 에단 호크가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는 ‘점프 스케어’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연출법으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것 같은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미드소마>는 이 반대였다. 아예 대놓고 장면으로도 나온다. ‘설마! 헉!’같이 ‘실제로 이럴지도 모르겠다’라는 부분을 진짜로 구현하며 끔찍한 비주얼 호러를 묘사했다.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색다른 연출방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전작 두 편에 비해 호러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을 띄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기존의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호러영화의 색을 띠고 있긴 하지만 장르적으로 보면 모험/판타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 영화관을 계승한 지점도 있다. <유전>에서 딸을 떠나보내고 연대하는 두 인물, <미드소마>의 엔딩처럼 연대와 공감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으로 여러 번 삽입된다. 또 영화에서 호러 분위기를 나타내던 방식 중 하나는 분위기다.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끔찍하고 두려운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의 특성에 기반해서 만들었다는 부분은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전과 다른 화법이지만 ‘역시 아리 애스터’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는 몇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구체적으로 ‘몇 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 챕터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어떻게 전개하는지를 유념하고 본다면 이는 아리 애스터의 상상력이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반복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영화의 선명한 개성으로 작동하며 엔딩신이 들어갈 이유가 된다.
카프카의 농담
1880년대 후반, 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고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엄한 아버지는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폭언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아버지의 하대는 카프카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이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는 카프카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변신>이 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다. 외로운 그레고르.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상하게 생긴 벌레로 변한 것이다. 벌레가 됐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될 리가 없다. 그레고르는 그렇게 쓸쓸하게 혼자 죽어간다. 정작 위기에 직면할 때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실존주의라는 테마는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으로 작동했다. <변신>만 봐도 그렇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생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다. 가족들에게 헌신했지만 다시 버림받은 그레고르. 인생 내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를 어떻게 다른 구성원들이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분명 생존을 책임졌다면 가족들이 그레고르의 실존을 긍정해도 되는 것 아닐까? 영화는 이 생존에 대한 딜레마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단순히 이야기 구조만을 갖고 온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의 문제, 중반부부터 제시되는 몇 사건들, ‘벌레가 되었다’ 같은 극단적인 비유 같은 것들이 카프카의 색이 영화 안에 들어갔다는 느낌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1부 마지막에 벌어지는 일들은 불안장애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지만 세상과 나 사이, 그리고 가족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소재가 들어가 있다. 과연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세상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가 사실 대중적으로 엄청나게 호평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의 전작 <유전> <미드소마>가 대중적인 호러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야기 구조가 직선 형태라서 이해하기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솔직히 쉽지 않다. 분위기기에서 한발 더 들어가 거리 두기도 가까이 붙이며 반복함으로써 인간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플롯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느낄 수 있다면 영화를 정말 잘 보고 있다고 쓰고 싶다. 감독의 이상한 유머감각이 잘 들어간 지점이다.
탄생의 이미지
영화에서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극에서 반복되는 한 키워드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사실 영화의 핵심을 그대로 관통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물이다. 작품의 첫 장면이 보가 어딘가에 있다가 나오는데 그것이 물과 관련이 있다. 이 물은 1부에서 단수와 홍수로 보여주다 2,3,4부로 넘어가면 각기 템포를 변형하며 각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극초반부야 당연히 탄생의 이미지라는 걸 말할 수 있지만 이후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당연히 강력한 스포일러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제일 첫 장면이 탄생과 관련한 일이고, 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아리 애스터가 인간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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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을 바탕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인생의 오만 군데를 다 찌른다. 이 시선이 기괴하고 이상해서 관객 입장에선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의 정서가 어땠을까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저런 기분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보다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아리 애스터의 변태 같은 디테일이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불사조 폼 미쳤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호아킨 피닉스다. 사실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고 극장에 들어갈 사람이면 <조커>가 어떤 영화인지 알고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상이란 상을 싹 휩쓸었던 호아킨 피닉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조커’는 참고 있다 폭발하는 연기라면 반대로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내내 분출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핵심은 불안장애다. 이 불안장애의 특징이 뭘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으로 틈입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이러려면 자그마한 것에도 사람이 불안해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특히 1부에서 질주하는 몇 장면, 극후반부 시퀀스 전부는 이 사람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역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다시 체감하게 한다. 이 사람의 최근작은 <컴온, 컴온>이었다. 이 영화에서 임팩트 쾅 주고 내내 배경이 됐던 연기의 반대 측면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웠다.
주연의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훌륭하다. 우선 1부에서 보의 동선이 짜여 있는 방식을 본다면 인물 간의 동선을 세팅한 점이 꼼꼼하게 느껴진다. 이 동선을 촬영하는 구도도 어쩔 땐 시점 쇼트가 들어가고 인물의 표정이 제시되는지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공간적 배경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집부터 시작해서 가지각색으로 바뀌고 이 변한 공간이 영화에서 변곡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영화가 어떻게 차이점을 두고 묘사했는지를 본다면 영화가 인간사의 어느 부분을 꼬집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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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발한 설정을 진지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잊을 때가 있다.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의지와 집념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들지만 그 사이에 나라는 자아는 잠시 감춰진다. 어쩌면 그건 몰입이 선사하는 멋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그것에 심취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그래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렇게 강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고, 또 무언가가 되고 싶어 그것을 이루기 위한 무언가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그 의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의지와 집념, 그리고 자기 자신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원하는 곳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 <유체이탈자>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잊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한 남자가 망가진 차 옆에서 깨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누군지 왜 그렇게 부상을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한 곳으로 향하고 이름을 확인하지만 밤 12시가 되자 다른 사람의 몸에서 다시 깨어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맨 처음 깨어났을 때 옆에 있던 노숙자(박지환)가 그 첫 단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강이안(윤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문진아(임지연)라는 여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의 이야기, <유체이탈자>
강이안은 12시간마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영화는 그의 정신이 왜 이렇게 다른 사람 사이에서 옮겨 다니는지는 영화 후반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강이안이 어떤 인물인지,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정보를 제한적으로 제시하면서 관객들이 영화 속 주인공과 똑같은 시점으로 영화를 따라가게 만든다. 가장 처음 알게 되는 건, 주인공의 의지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좀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영화의 첫 목격자인 노숙자를 중심에 놓고 자신이 알아놓은 정보를 저장하고 반복해서 따라가는 등, 그 의지를 놓지 않는다. 그가 가진 의지는 이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자 동력이다.
영화 속에서 강이안의 얼굴은 사실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정신을 차린 그가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자신의 얼굴이다. 얼굴을 보며 자신이 어느 위치의 사람에게 들어왔는지를 확인하고 주변을 살핀다. 그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처럼 그 몸의 인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당황스러운 모습은 영화 초반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다. 그래서 꽤 세세하게 그가 몸과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은 강이안의 모습으로 영화가 진행되지만 거울 속의 모습이나 간간히 강이안이 들어간 몸의 모습도 비친다. 어찌 보면 자신의 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영화 속 강이안은 자신의 모습을 모르지만 관객은 그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강이안의 기억을 찾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문진아는 과거에 강이안과 가까운 사이로 보이는 인물이지만 실제로 기억을 찾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강이안이 끝까지 의지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찾게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노숙자는 사실 초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강이안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후반부에는 노숙자와 강이안의 버디 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노숙자는 영화 속에서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름이 없는 사람과 몸이 없는 사람이 같이 힘을 합쳐 자기 자신을 찾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윤계상은 혼란스러워하는 강이안의 모습을 잘 담아냈고, 그가 가진 액션 능력을 이 영화에서 한껏 보여주고 있다. 좁은 곳에서 벌어지는 근거리 격투나 권총 액션은 꽤 현란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다양한 인물들과 벌이는 근접 액션 장면이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지면서 끝까지 영화적 긴장을 유지한다. 또한 문진아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도 꽤 과격하고 빠른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총 7명의 인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과 표정을 연기에 반영했다. 실제로 촬영 시 다른 배우들과 한 달 넘게 사소한 행동까지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단점을 상쇄하는 흥미로운 설정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에서 빌런 박실장(박용우) 역을 맡은 배우 박용우도 인상적이다. 박 실장은 사실 초반에는 진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비치는 그의 모습은 누아르나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빌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너무 전형적으로 많이 보아왔던 악당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영화적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그가 웃음을 짓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은 그의 다음 행동이 어디까지 갈지 한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는 영화에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 속 강이안은 자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의지로 자신의 몸과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과거에 해왔던 모든 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었지만 과거에 가지고 있던 의지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결국 그것이 강이안을 끝까지 버티게 만들고 7명의 인물들의 몸속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게 만든다. 어쩌면 그 의지가 누군가에게는 그가 강이안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가진 의지는 영화 초반에 아무런 정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마리를 하나씩 찾게 만들고 조각조각 모은 퍼즐 같은 단서들을 조합하여 결국에는 그 일의 원인과 자신을 찾게 만든다.
영화 <유체이탈자>는 꽤 신선한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다. 유체를 이탈한 자가 다른 사람의 몸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는 설정은 그동안 보아왔던 기억상실증 서사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아주 단순하고 결말이 예상되는 영화지만 진행되는 영화적 공간과 인물을 한정적으로 제시하고 그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관객과 퍼즐을 맞춰 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흥미로운 액션 스릴러다. 영화에는 총기 액션, 격투액션, 카 체이싱 등 다양한 액션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나 강이안의 몸이 바뀔 때, 주변 환경이 바뀌는 모습은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되었는데 꽤 색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유체이탈자>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기반하고 있지만 인물들 간에 이동하며 벌어지는 상황들이 다소 작위적이고, 새로운 인물로 이동될 때마다 벌어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또한 주인공이 단서를 알게 되는 순간마다 운이 많이 따르기도 해 설득력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한국 액션 스릴러 영화 중에서 꽤 신선하고 긴장감의 밀도도 높다. 또한 신선한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주인공 강이안의 뒤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 영화는 다양한 액션과 함께 이야기의 반전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장에서 관람할 때 몰입감을 주게 된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극장에서 관람 시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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