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0-07 18:53:16
[BIFF 데일리] 천천히 찾아오는 것
영화 <깜빡이는 불빛> 리뷰
Director] 아누파마 스리니바산Anupama Srinivasan, 아니르반 두타Anirban Dutta
Program note]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의 외딴 마을 토라에는 도로가 없고 수도가 없고 학교나 병원도 없다. 인도 독립 70주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랜 반란의 역사 탓에 세상에서 밀려나 잊혀진 마을 토라에 어느 날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환한 불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들뜬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냉장고를 들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 생각에 마음이 들썩이고, 마을 남자들은 땅을 파고 전봇대를 세우느라 진땀을 흘린다. <깜빡이는 불빛>은 온 마을에 첫 전구가 켜지는 날까지 토라 사람들의 이상과 현실, 희망과 좌절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타고난 유머러스한 낙관과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열망이 깜빡이다가 환히 켜지는 불빛 마냥 눈부시다. (강소원)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예상했던 질문이 바로 나왔다. “영화 속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인도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과 가까워 보인다. 혹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이해를 위해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라고 표현된 지역은 마니푸르(Manipur) 주, 더 넓게 말하면 인도의 북동부 지역이다. 이쪽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인도 사람들의 얼굴, 터번과 멋진 수염과 큰 덩치로 흔히 표현되는 북인도 사람들이나, 상대적으로 더 진한 갈색 피부와 둥근 눈을 한 남부 인도의 얼굴과는 다르다. 외려 흔히 생각하는 동아시아 쪽의 얼굴에 가깝다. 실제로 인도 북동부의 토착 부족민들은 티베트 혹은 미얀마 쪽과 더 가까운 혈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담은 나가(Naga) 족의 경우에도 나갈랜드(Nagaland)와 마니푸르 주에 주로 거주하지만, 미얀마에도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외부 교류가 많지 않았다가 영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인도 타 지역에 비해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는 것 또한 독특한 특징이다.
1940년대 말 인도라는 국가가 세워진 이후로도 이들은 끊임없이 각자의 독립국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또 인도 국내에서의 차별로 이어졌고, 이 영화 <반짝이는 불빛>은 그 중에서도 아주 외딴 지역의 ‘토라’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전기도 수도도 학교도 일자리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달밤에 손전등에 의지해서도 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는 마을. 태양열 전지를 동원해 한밤중에도 농작물 정리하는 바지런한 손길을 멈추지 않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정직하게 담겨 있어, 영화는 얼핏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고된 농사 중 기숙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멀거니 차를 마시다 말고 남편에게 촬영 팀 바나나라도 갖다 드리라고 말하는 구멍가게 아주머니 ‘자스민’의 얼굴은, 그야말로 우리가 아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아주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15년 가량 주민들과 관계를 쌓았다는, 실제로 전기 공사를 진행하는 인부들의 옆 방에서 먹고 자고 발전기를 돌리면서 촬영하고 무려 7년을 녹여 영화 작업을 했다는 감독들의 접근이 이 거리감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이 사는 현실에 언제라도 서늘한 긴장감이 서릴 수 있는 곳임을 살짝살짝 표현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독립군 생활을 하고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는 노인 ‘캄랑’은 여전히 라디오로 평화 협정 진전 소식을 들으며 “끝이야…”하고 허탈하게 웃기도 하고, 지난 투쟁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따금 뉴스에서 전해지는 특정 지역 통행 금지령이나 심상치 않은 연기나 총 소리는 여전히 이들의 삶이 언제든 긴장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거기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는 자유와 주체성이 또렷하다. 없는 불빛에 의지해서 합창 연습을 하는 찬송가 가사 또한, “나가 지역 젊은이는 특출하고 공부도 잘한다”거나 “넓고 비옥한 땅을 모두가 부러워한다”면서 지역의 색깔과 자부심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자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이전에도 몇 번 불발되었던 전기 연결이 과연 이번에는 될까 의구심을 품은 시선으로 느리작느리작 진행되는 공사 과정을 지켜본다. 특히나 독립 운동을 오랜 기간 해온 캄랑 노인은 전기 공급도, 평화 협정 임박 소식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소식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진짜 올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랜 기간 피부로 체득한 감각일 것이다.
마침내 전기는 아주 천천히 주민들을 찾아온다. 수풀을 헤치고 나무를 베고 전봇대를 하나씩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전봇대가 마을 한복판으로 다가오고, 지연 끝에 자재가 도착해서, 집집마다 두꺼비집 판과 전구 자리를 설치하고… 그러다 마침내 마을 첫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우리 나라 옛날 모습처럼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서 다 같이 영화를 보고, 냉장고를 들인 기념으로 구멍가게에서는 주스를 얼린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이 바란 바로 그 크리스마스에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몇 해 지연되어서나마 그들은 비로소 불 밝힐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그러나 평화 협정은 여전히 저 멀리 있다. 전기뿐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의 미래 또한 자연스럽게, 이내 도래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였다. 이들의 단단한 자의식이 무너지지 않고도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기를. 깜빡깜빡 서서히 들어오는 백열등처럼 찾아와 주기를.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캄랑 노인의 말대로 “어둠과 빛은 같지 않”으니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10.04-13) 상영시간표]
10월 05일 1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2관(상영코드 055)
10월 07일 16:30 CGV 센텀시티 2관 (상영코드 160)
10월 10일 14:00 CGV 센텀시티 1관 (상영코드 38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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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을 찾고 느낄 수 있다
친구하나 없이 엄마(레이첼 맥아담스)가 짜놓은 인생계획표대로만 살던 소녀(맥켄지 포이).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옆집의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제프 브리지스)를 만나면서 오래 전 조종사가 사막에 추락했을 때 만난,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소녀는 조종사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가면서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와 다른 세계로의 여행, 모두를 꿈꾸게 하는 가슴 벅찬 모험을 시작한다.
모모
영화를 보며 소설 책 <모모>가 불현듯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어른의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찾길 원하는 주인공의 소재와 둘다 판타지 형식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모모>를 읽어보지 못했다면 <어린 왕자>를 보고,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의 어린 모습을 떠오를 수 있고, 어른이 되버린 나에게 동심의 근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왕자
이 영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도 소설의 이야기에서 새로이 추가된 캐릭터들이 사이에 들어가 영화가 진행된다. 어린왕자만의 따뜻한 성격이나 종이 냄새가 날 거 같은 기분좋은 편안한 색채는 소설에서 느껴진 몽글몽글한 느낌을 잘 표현해준다.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하면 기존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문학 작품만의 표현방식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등장한 '바오밥나무' ,'장미' ,'별' 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소설에서 공감한 느낌을 영화에서도 이어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도 부각시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아성찰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준다. (다시 보면 원작의 뛰어남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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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일상이 스릴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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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었던 영화 <풀타임>. 지난주 전주에 내려와서 풀타임 포스터를 받고, 일상 스릴러라는 카피에 굉장히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폐막작으로 선정된만큼의 작품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전주돔을 찾아갔다.
영화 <풀타임> 시놉시스
영화 <풀타임>은 파리 교외에 살며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마켓리서처로 일하다 4년 전.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그녀는 설상가상 남편과 헤어지면서 지금은 파리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하며 겨우 생활비를 번다. 아이들은 옆집 아줌마에게 맡겨놓고 허덕이며 일을 해야 하는 쥘리. 마침 프랑스 전역을 휩쓴 노란조끼시위로 기차를 비롯한 대중교통 역시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그나마 쥘리가 잡고 있던 깨지기 쉬운 균형마저 위태로워진다. 다시 전공을 살려 전업 마켓 리서처가 되고자 하지만, 파업은 출퇴근은 물론 그녀가 면접에 가는 것조차 쉬 허락하지 않는다.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전남편,더 이상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겠다고 성을 내는 옆집아줌마, 놀다가 다치는 아들 등 쥘리의 삶은 도무지 숨 쉴여질 틈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쥘리는 성공적으로 정규직 직장을 구해 고통스러운 나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이 이후로는 영화 <풀타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연기
로르 칼라미의 연기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비정규직에 경력이 단절이 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낸 배우였다.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봐왔던 프랑스 영화들은 굉장히 지루한 부분이 많았어서 프랑스 영화와 나는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 <풀타임>을 보는 내내 그동안 내가 알던 프랑스 영화의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그 역할을 해준 것이 쥘리 역을 맡은 로르 칼라미의 연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경력이 이어가보고자 면접에서 초롱초롱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하며 아이들을 돌볼 곳을 찾기 어려워 난감해하는 엄마의 모습, 파업으로 인해 출퇴근이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집에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좌절하는 직장인의 모습까지 과장됨 없이 정말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극의 몰입도를 더 높여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파업으로 인해 직장에 지각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작년 한찰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때 맞닥뜨린 시위현장이라던지, 파업이 생각나면서 영화 속에서만큼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정말 크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안한 음악과 우울한 날씨
지난번 영화 <시계공자의 아나키스트>를 통해 영화음악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영화음악을 잘 쓰면 긴장감과 극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영화음악의 역할을 영화 <풀타임>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 <풀타임>은 초반부터 불안함을 끌어올리는 음악을 사용한다. 주인공 쥘리가 기차를 향해 달려가면서 가까스로 탑승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험난한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음악이 깔리는데 그 순간 그 큰 전주돔의 분위기 착 가라앉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음악과 함께 극중 배경 역시 우울함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화 속에서는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거나 우중충한 날씨를 보여준다. 심지어 주인공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우산을 쓰지도 않는다. 맑은 날의 장면은 아들의 생일파티와 마지막 장면에서의 합격전화를 받는 장면 밖에 없었는데 그만큼 쥘리의 일상 자체가 우울하고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날씨를 통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일상이 스릴러인 이유
어찌보면 그저 험난한 출근길과 계속되는 악재로 인해 계약직 호텔일도 잘리는 것이 어떻게 스릴러일까 싶기도 하지만 연출을 잘해서 그런지 보는 내내 심장이 조여오고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그 일상이 스릴러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자를 내지 못해 카드가 정지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집에 가지 못하자 내야하는 호텔비와 다음날 면접을 위해 구매해야할 옷까지, 정말 이 때 카드 결제가 안되면 어쩌나 싶을만큼 엄청난 긴장감을 주더니 다행이 결제가 되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찍으면서 주인공의 극대화되는 불안감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이 영화는 제작되었다. 험난한 출근길에서 시작한 일상의 무너짐은 퇴근길이 무너지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고, 와중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상황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호텔에서 대타를 구할 수 없게 되고, 그 사실을 호텔 담당자가 알게 되어 짤릴 위기에 처하다가, 와중 아들의 생일이어서 카드값이 밀려있지만 선물과 파티 준비를 해야하고, 대중교통 총파업이 이뤄지면서 결국 잦은 지각으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는 악재가 반복되는 이 구조가 정말 하루하루 숨쉬는 것이 공포 그 자체처럼 다가오도록 연출이 돼서 왜 이 작품이 일상 속 스릴러라는 카피를 썼는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 <풀타임>. 그 기대만큼 만족도 역시 컸던, 폐막작으로서 최고였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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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엘라> 여자 오이디푸스의 화려하고 안전한 탄생
태어난 순간부터 특별해서 좀처럼 일반적인 삶에 녹아들지 못한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과 함께 런던으로 가서 패션 디자이너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와 이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런던에 도착한 그녀는 새로 만난 친구 '재스퍼(조엘 프라이)',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와 함께 런던 길거리를 주름잡는 도둑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라는 어릴 적 꿈을 잊지 못해 무작정 리버티 백화점에 일자리를 구한 그녀는 운명처럼 런던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를 만나고, 즉시 재능을 인정받은 후 특채로 채용되며 그 꿈을 이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로네스의 끔찍한 과거와 진실을 알게 된 에스텔라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크루엘라를 바로네스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모두를 놀라게 할 패션쇼를 준비한다.
악역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난관을 마주한다. 어떻게 악역을 악인으로 남겨두면서도 관객들을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까 하는 문제다. 많은 영화들은 빌런에게 인간적인 뒷이야기를 선사한다. 어릴 적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경험들을 나열하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역으로 빌런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애매해진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전개에 좀처럼 흡인력이 붙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디즈니의 <말레피센트 2>나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작품이 대표 사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등장한 빌런 '크루엘라 드 빌'의 탄생을 그린 스핀오프 겸 프리퀄 <크루엘라>가 마주한 딜레마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겨서 코트를 만들려고 하는 잔혹한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을까. 이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크루엘라>는 누구나 접해 봤을 법한 한 영웅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바로 오이디푸스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인 그는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그의 미래를 두려워해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버렸고, 가까스로 한 신하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오이디푸스는 다른 양부모를 만나 평화로이 살아간다. 어느 날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내용의 신탁을 들은 그는 무작정 양부모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고, 우연히 만난 라이오스와 시비가 붙어 그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를 살해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인생사는 크루엘라의 그것과 유사점이 많다. 친엄마인 바로네스가 버린 딸, 크루엘라도 친모의 하인인 캐서린을 엄마로 안 채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엄마와 사별한 그녀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운명적으로 바로네스를 만난다.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한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길을 막은 라이오스를 죽였듯이 바로네스의 명성과 경력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루엘라는 오이디푸스만큼이나 기구하고, 크루엘라와 바로네스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부자의 관계에서 성별만 바뀐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크루엘라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공로로 공석이 된 테바이의 왕좌에 앉은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밝혀 나가던 중 자신이 그 범인이라는 것을, 친불르 죽인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테바이에서 추방시키며 “그것은 아폴론이었소, 아폴론이오, 친구여. 나의 불행을, 불행을, 나의 고통을 완성한 것은. 하지만 눈을 직접 찌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련한 나 자신이었소.”라고 외친다. 그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비극을 끝맺으면서 '친부를 죽인 파렴치한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웅 오이디푸스'로 거듭난다.
크루엘라는 다르다. 그녀를 키운 양모 캐서린은 그녀가 본래 모습인 '크루엘라' 대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인 '에스텔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깨달은 것처럼 바로네스와 캐서린, 자신의 관계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이미 정해진 자신의 운명, 곧 크루엘라의 삶에 순응해버린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 자체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방해물이나 규범 등에 개의치 않는 저항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그 어떤 저항 의지나 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공유하는데도 크루엘라가 그와 달리 빌런이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도 트로이에서 용맹을 떨치다 죽은 아킬레우스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란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한 존재다. 즉, 운명에 저항하는지 순응하는지를 기준으로 볼 때 크루엘라는 정확히 영웅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이처럼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살짝 비튼 결과 <크루엘라>는 공감의 여지가 있는 설득력 있는 서사를 빌런에게 부여하면서도 빌런을 빌런답게 만드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크루엘라>의 메가폰을 잡은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자신의 광고 및 뮤직비디오 감독 경력을 살려 익숙한 듯 다른 이야기를 화려하고 강렬하며 매혹적으로 포장한다. 이는 단지 디즈니의 자본력으로 무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며, 패션과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선 크루엘라의 옷은 주어진 운명과 만들어 나갈 운명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녀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각각 '크루엘라'와 '에스텔라'를 의미하는 흑백의 조화가 두 정체성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가운데, 포인트가 되는 빨간색은 쓰레기로 옷을 만들거나 옷을 불태우는 등 반항기 넘치는 그녀의 성정을 강조한다. 반면에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일류 디자이너가 만드는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예술성에 치중한 오트쿠튀르 패션에 충실한 바로네스의 옷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전무하며 안하무인인 그녀의 성품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중 옷과 패션은 그 자체로 두 캐릭터의 상반된 정체성과 그들의 갈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또한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뽐내는 음악들, 특히 펑크 록 음악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당시 영국의 노동계급은 오일쇼크,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혁신 없는 기업과 자본가들로 인한 비효율적인 경제 구조 때문에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는 1970년대 런던이 반체제적인 가사와 강렬한 사운드, 허름한 듯 반항적인 패션 등으로 대변되는 펑크 록 음악의 열풍으로 가득한 도시였던 이유다. 따라서 영화 곳곳에 삽입된 펑크 록은 가진 것 없는 하층 계급으로서 살다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크루엘라를 단적으로 표현할 최적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크루엘라의 패션쇼가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녹아든 결과다.
다만 작품의 매력과는 별개로 <크루엘라>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 영화는 휘발성이 강하다. 전개는 매우 급하고 내실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크루엘라가 수많은 직업 중 왜 하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그녀의 타고난 핏줄, 재능, 운명 외에 별다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바로네스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녀가 자신의 선천적인 재능 외에 어떤 노력을 기울였지 그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화려한 옷들로 바로네스를 짓밟고 그녀에게 복수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화려하고 짜릿하지만 일면으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까지 떨쳐내지는 못한다. 성장 과정이 빈약하기에 그녀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진정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빌런의 기원을 다루는 동화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아이가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1970년대 영국의 현실을 동시에 풀어내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당시 시대상의 한계를 조명하고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일탈하게 되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대신 그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만을 취사선택해 동화를 뻔하지 않게 포장하는 데 몰두한다. 그 결과 마치 아웃사이더의 음악이자 문화였던 펑크 록이 주류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크루엘라>도 디즈니의 안정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동화가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 안에 담기는 순간 빚어지는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은 <크루엘라>에서 유독 배우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쁘게 보면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좋게 보면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연출 덕분에 영화의 본질적인 한계와 단점이 효과적으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당장 영화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크루엘라가 출생의 비밀을 모두 깨닫고 마음을 다잡는 분수에서의 독백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철저히 엠마 스톤만을 원 테이크로 잡아내면서 그녀의 카리스마와 연기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이에 <이지 A>나 <헬프>와 같은 작품에서 이미 기존 질서나 방식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던 엠마 스톤은 기대대로 배신감, 충격, 혼란, 분노, 복수심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선을 손에 잡힐 듯이 표현해낸다. 그 순간 크루엘라가 대변할 수 있는 여러 현실과 상황, 맥락은 시야에서 제외되고 단지 그녀의 다음 행보와 선택만이 눈에 들어온다.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조커>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았다. 흑백의 대비가 가득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주위를 압도하는 주인공의 카리스마, 반사회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장면 하나하나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모습을 드러낸 <크루엘라>는 결코 <조커>가 될 수 없는 영화였다. 빌런을 빌런답게 묘사하면서 관객들과 캐릭터 간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커>는 한 개인으로서 아서 플렉이 어떻게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조롱당했는지, 그의 분노가 얼마나 강렬했고 그의 공격적인 태도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를 관객들이 불편해할 정도로 깊숙이 들여다본 영화였다. 그러나 <크루엘라>는 그 불편함의 자리에 원작 애니메이션과 연결고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팬서비스를 집어넣으며 <조커>와 대비를 이루는, 너무나도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크루엘라>는 큰 기대에 비하면 디즈니가 빌런을 주인공으로 삼아 제작한 영화들 중 가장 위험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서 만족할 뿐, 그 이상의 성취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A(Acceptable, 무난함)
주인공도, 영화도 진짜 도전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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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난 이후 오랜 시간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
오랜만에 퀴어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영화 '미이라'와 '조지 오브 정글'에서 백치미를 선보였던 '브렌드 프레이저'가 기존의 연기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깊은 캐릭터로 출연한다.
현재 극장가에서 개봉 중인 영화로 박스 오피스 20위, 관람객 평점 8.29, 누적 관객수 5.3만 명이다. 사무엘 D. 헌터의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 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시놉시스는 온라인 작문 교수 찰리는 8년 전 게이 연인과 사랑에 빠지며 가정을 버렸고, 그의 남자 연인은 그 후에 생을달리했고, 찰리는 심리적인 이유로 272kg이라는 거구가 된다.
영화는 비만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와 동성애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 가지 코드 모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들이며, 특히나 200 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체중은 온라인 상에서도 자신의얼굴을 드러내기 곤란할 정도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역겨운지' 묻는 그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가정 안에서 여성 아내와의 관계 안에서 낳은 딸은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다. 이성과의 결혼 후 동성에게 끌리는 배우자를 보며 버려진 혹은 남겨진 아내의 심정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 그리고 그러한그들을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듬고 안아주는 이의 심정.
남우주연상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받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극 중 비중있는 자들의 삶 역시 고통과 우울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니 브렌든 프레이저는 그들을 대표해 받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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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마이 네임 (2021)
* 본 리뷰는 <마이 네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이 네임 (2021)
감독: 김진민 (<인간수업> 연출)
출연: 한소희, 박희순, 안보현, 이학주, 장률 등
장르: 범죄, 액션, 느와르
방영 횟수: 8부작
공개일: 2021.10.16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된 한 여자
약쟁이 깡패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지우(한소희)'.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 아빠 '동훈(윤경호)'를 원망하던 찰나 눈앞에서 의문의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아빠를 목격한다. 지우는 아빠가 몸담았던 마약 조직 동천파의 보스 '최무진(박희순)'을 찾아가고, 그에게서 조직을 위해 싸우는 냉혈한 킬러로 길러진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굳은 일념 하에 그는 '오혜진'이라는 이름을 갖고 경찰에 잠입하여 원수의 그림자를 좇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해치며 살아가는 인생 앞에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감을 느끼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인생의 목적을 다시 깨닫게 된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기대작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유독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빈번하게 공개되고 있다. <D.P.>, <오징어 게임>이 연일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어제 공개된 <마이 네임>도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다음 흥행작으로 미리 점찍어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마이 네임>은 최근 흥행한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들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데다가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과거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로맨틱코미디물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크하고 잔혹한 폭력의 온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무해하고 따뜻한 감성의 콘텐츠들이 힘을 못 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클리셰 범벅, 하지만 여성 서사
<마이 네임>은 시놉시스만 읽어도, 도입부터 결말까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충분히 예상이 가는 작품이다. 액션 느와르 영화는 한국에서 한때 질리도록 성행했던 장르이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어 독특한 소재로 신선함을 확보했던 <D.P.>, <오징어 게임>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예상했던 대로, <마이 네임>은 온갖 불행 서사를 입힌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각성하고, 조직의 스파이로 발탁되었다가 진정으로 복수를 해야할 대상을 찾게 된다는 식의 굉장히 뻔한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 네임>은 액션 느와르물에 등장할 법한 클리셰를 잔뜩 더했음에도 양산형 조폭 드라마로 치부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숱한 액션 느와르 영화들이 지금껏 남성 서사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본작은 철저하게 여성서사로만 이뤄진다. 물론 <아토믹 블론드>, <악녀>와 같은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느와르물도 있지만 한국 콘텐츠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범죄/액션물에서 여성서사를 메인 스토리로 택한 작품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여성서사를 내세운 느와르 영화의 스토리가 비록 뻔할지라도, 이러한 작품이 제작되는 게 이상하거나 튀어보이지 않도록 많은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소희, 한소희, 한소희
2시간 분량의 영화로 다룰 법한 내용을 8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내용을 질질 끌고, 전개도 느린 편이다. 굉장히 플롯이 단순한데도, 횟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장면들을 우겨 넣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영화라면 온전히 주인공의 서사에만 집중을 가했겠지만, 드라마인 터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도 제법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주인공 '한소희'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배우들에게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한소희'가 맡은 '윤지우' 캐릭터는 작중 고생과 역경을 수없이 겪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당한 괴롭힘부터 동천파 체육관에서의 강간 미수 사건 및 폭행, 그리고 경찰과 조직원 사이를 오가며 겪게 되는 온갖 폭력 사건들과 칼부림 현장. 거의 8회 내내 피칠갑을 하고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액션의 비중이 큰 작품인데, '한소희' 혼자 이끌고 나가는 액션 연기의 임팩트가 상당하다. 사실상 그의 액션 장면 빼고는 영화에서 건질 게 없을 정도로 액션 시퀀스들은 훌륭했다. 확실히 '한소희'란 배우는 악역이나 어두운 사연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때 매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특유의 연기 스타일이 있어 습관적으로 등장하는 어투나 표정들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알고있지만,> 같은 현실 로맨스물 같은 장면보다 연기력이 훨씬 자연스럽다.
굳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했을까
여성 서사의 액션 느와르물이 탄생한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나 스토리와 연출 등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20년 전에 본 한국 조폭영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혼자서 수십 명의 조직원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장면들의 비현실성은 한국 느와르 작품의 고질적인 문제이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주인공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관계없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다.) 예상의 한치 앞을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의 전개는 끝까지 단 하나의 반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고난을 말도 안되게 헤쳐 나가는 주인공 버프가 큰 작품이라 그런지 총칼이 오가는 장면들에서도 긴장감이 덜하다. 다시 말해, '한소희' 배우 말고는 볼 만한 요소가 없는 작품. 시놉시스를 보고 떠오른 줄거리가 있다면, 절대 그 머릿 속 상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드라마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킬링 타임의 목적 달성도 실패했고, 감독의 전작인 <인간수업>만큼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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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서치
체첸을 침략한 러시아 군인의 만행과 체첸 사람들의 고통, EU 인권위원회 조사원의 이야기를 엮은 영화. 영화의 배경은 2차 체첸전쟁이지만, 이야기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1차 체첸전쟁에 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체첸공화국'은 아직 정식 국가가 아니어서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조지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러시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체첸공화국은 조지아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영토의 작은 부분이다. 인구도 적어서 불과 130만 명 정도이고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들의 종교로 알 수 있듯이, 체첸인은 과거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속했었는데, 1830년 이후 러시아군이 오스만트루크와의 분쟁을 이유로 체첸 지역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1859년, 러시아 제국에 강제 병합되었다.
체첸인은 비록 소수민족이지만,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고, 그 역사는 무려 6천년이 넘는다고 한다. 주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고, 소수민족이어서 이들이 독립국가를 만들 기회와 힘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고, 러시아연방공화국(쏘비에트)가 탄생하면서 체첸도 쏘련연방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쏘련 연방이 붕괴하면서 1993년, 새로운 연방법에 근거해 '체첸 공화국'이 되었다.
쏘련 연방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1년, 체첸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전 쏘련군 장군인 조하르 두다예프였다. 그는 체첸공화국 독립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내전에 휩싸인다. 체첸에는 독립 지지 세력과 친 러시아 세력이 갈등을 일으켰고, 이들이 내전을 일으킨 것이다. 이 내전을 계기로 러시아는 체첸에 병력을 보내게 되고, 이것이 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다.
1994년, 러시아는 체첸을 침공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체첸은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되는 작은 지역이고, 군대를 보내면 곧바로 싸우지도 않고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1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다. 이와 관련한 영화로 '연옥', '전쟁' 등을 참고할 수 있다.
1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약 9만5천여 명이 참전했고, 체첸군은 4만명 정도였다. 러시아가 체첸을 얕보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러시아군은 6천 명 가까운 전사자가 나왔고, 체첸군은 훨씬 많은 1만 5천명 정도가 전사했다. 하지만 이보다 체첸 민간인이 약 10만 여명 사망한 것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전쟁은 1996년까지 이어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러시아군이 철수한 것으로 미루어 체첸군의 승리라고 해도 좋은 전쟁이었다.
2차 체첸전쟁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로 촉발되었으며, 1999년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이 다게스탄 공화국 국경을 침범하고, 러시아 영토에서 테러를 저지르자 러시아군은 1999년 9월 23일, 체첸을 공격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시기, 1999년 가을, 러시아군이 체첸을 습격한 이후의 상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가는데, 아홉살 소년 하지, 러시아군인 니콜라이, EU 인권활동가 캬홀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린다.
러시아 군인들이 체첸인을 심문하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주민에게 테러범이라며 시비를 걸던 러시아 군인이 갑자기 총으로 두 사람을 살해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을 끌고 사라진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한 러시아 군인의 비디오 카메라에 담긴다.
아홉살 하지는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다. 부모님이 러시아 군인의 총에 맞아 죽고, 누나는 어디론가 끌려갔다. 집에는 갓난 동생만 있을 뿐이다. '하지'의 상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도 내전을 겪었고, 하지와 같은 수만, 수십만 명의 어린이가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는 갓난 동생을 안고 집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길을 걷다가 러시아 군인이 보이면 몸을 숨긴다.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사로 잡고 있는 것이다. 동생을 돌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하지는 어느 집 앞에 동생을 내려 놓고 떠난다.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평범한 청년으로, 사소한 일로 경찰에 체포된 후 강제로 입대한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폭력조직이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니콜라이처럼 어리고 순진한 청년이 군대에서 당하는 폭력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자신도 폭력적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니콜라이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한 청년은 결국 자살한다. 부대장은 자살한 신병의 죽음도 '전투 중 사망'이라고 거짓 보고를 하는데, 이런 거짓과 기만, 폭력은 러시아 군대의 일상이다. 니콜라이는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을 옮기고, 사망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다 전투요원으로 전출되어 체첸으로 향한다.
그 사이 니콜라이는 선임병들에게 심하게 폭력과 모욕을 당하고, 이런 경험으로 니콜라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캬홀은 EU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난민대피소로 몰려드는 체첸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러시아군인에게 당한 폭력을 기록하고 있다. 전쟁범죄는 시대를 불문하고 군인보다 민간인에게 더 참혹하고 잔인한 피해를 안긴다. 전쟁은 인류가 가진 폭력성, 야만성, 악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현상이며,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쟁은 인간을 가장 참혹하게 만든다.
캬홀은 그런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EU 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지만, 정작 각 나라의 대표들은 캬홀이 말하는 심각한 전쟁범죄를 듣는둥 마는둥 하는 태도를 보인다. 전쟁은 결국 강자의 논리대로 흘러가고, 인권을 부르짖어도 그것은 형식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캬홀과 하지는 우연히 만나 함께 지낸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하지의 누나는 살아서 돌아와 하지가 어떤 집에 놓고 간 막내를 찾고, 하지를 찾아 나선다.
체첸은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전쟁에 휘말렸다. 그들의 명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소수민족이 겪는 슬픔과 고통이 독립한다고 사라질 것이며, 독립이 원하는대로 될 것인지, 현실적인 상황과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체첸 지도부는 분명 이 점에서 성급했다.
결국 수십만 명의 체첸인들이 죽거나 다치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으며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체첸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다 겪었던 역사였고, 지금도 분단된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체첸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남북한이 대치하고, 항상 전쟁의 위협 속에 살지만, 결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을 하는 순간, 남북한은 공멸하고 주변국들만 박수를 치며 좋아할 것이다. 체첸처럼 소수민족들이 세계에는 많고, 그들의 고통과 고난은 쉽게 끊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수민족은 아니지만, 약소국가에서 이제 조금씩 힘을 갖춰가고 있다.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는 그나마 희망을 말하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그들에게 미래는 희망보다는 슬픔과 아픔이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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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2분만에 끝내는 리뷰, 그래서 이선생이 누구야?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나 특정인물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독전'을 감상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이자, 故김주혁 배우의 유작이죠.
영화의 스타일은 독보적이지만 단점도 명백한 영화였습니다.영화 '독전'을 2분만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구성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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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류준열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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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프라인 영화 후기 / 기름훔치는 도유꾼 / 송유관 천공기술 / 2% 부족한 범죄 액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파이프라인”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코믹 엔지(?) 영상이 있는데, 왜 넣었을까 궁금하네요 ㅠㅠ#서인국, #범죄액션, #도유꾼, #기름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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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런칭 예고편
음식을 먹기 힘들어져가는 워킹맘, 그리고 그녀를 위한 남편의 마음이 담긴 한 그릇. 애틋한 마음이 담긴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레시피가 올겨울 찾아옵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 공식 초청작!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1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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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서울대작전> 티저 예고편
1988년, 초특급 미션이 시작된다? 더 빨리! 더 대담하게! 더 요란하게! 모두 안전벨트 메고 준비! 《서울대작전》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