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3-02 20:59:55
완전한 욕망의 자리는 없다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SYNOPSIS.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POINT.
✔️ 청소년 관람불가 다양성 영화가 50만 관객을 동원한 사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최초라고.
✔️ 이 미친 흥행은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 이상의 무엇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고어한 장면이 있음에도 저는 이 영화를 자꾸 슬프게 되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 영화 바깥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끝나지 않네요.
✔️ <에.에.올>의 양자경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데미 무어 또한 배우로서의 능력을 빛내 보이는 동시에, 그걸 폄하해 온 사람들에게 멋진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 그러나 배우와 메시지만 주목 받아서는 안된다 싶을 만큼... 편집과 연출도 좋았어요.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한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는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갈수록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심리 구조와 사회구조가 얼마나 오래도록 멀쩡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소녀들에게 자기부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권장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40년에 걸친 법적·사회적 변화가 진정한 대안적 변화를 아직 일구어내지 못한 까닭에 우리가 행위 주체성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나, 자신의 욕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도 될 타당성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캐럴라인 냅 에세이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의 문장들이다. 2003년 출간된 책이지만, 마치 <서브스턴스>를 보고 쓴 감상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문장들이다. 즉 이 문제는 수십 년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으며, 엘리자베스의 에어로빅에서 수의 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것처럼 "갈수록 점점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동시에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고 있다. <서브스턴스>가 영화관을 나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이유다.

우리가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명제지만, 그 정도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가 드리워지는 이 세상에서, 여성 노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신체 기능 상실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이전에 사회적인 어떤 것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후자는 결코 전자에 비해 작지 않다.
이 영화의 초입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두 가지를 다 경험하는데, (1)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가는 상황 (2) 진행해 왔던 에어로빅 쇼를 "더이상 젊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된 상황 중 관객의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은 두 번째 상황 쪽이다. 물론 스토리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만일 엘리자베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그 부고 소식을 인터넷 뉴스 연예면에서 접했다고 해도 대중이 재생산하는 쪽은 두 번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위에 등장했기에 <서브스턴스>는 몸을 둘로 나누는 비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임에도 더없이 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영화가 되었다.

여성의 욕망: 내 욕망과 사회의 욕망 구분하기
영화 속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접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좀더 예쁘고 좀더 젊어 보이면 좋다는 정도의 생각은 절대 다수의 여성이 할 것이다. 남성들이 기초 청결에서 약간만 나아간 수준으로 외모를 챙겨도 그루밍족이니 뭐니 하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외모를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다 못해, 그 트랙 바깥에 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문장으로 쓰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사회에서 이 사실을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을 많지 않다. 이 메시지는 대놓고 트랙 바깥에 선 사람이 아니라면, 비난이 아니라 격려의 형태로 비틀어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더 예쁘고 좋잖아. 이렇게 하면 더 건강하기도 할걸? 착하기까지 할걸? 각종 미덕을 뒤섞어 쏟아놓는 말들 안에서, 여성은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엘리자베스는 "젊고 예쁘지 않다"는 (더 늙은) 하비의 입에서 나온 말로 후려치기 당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하비의 욕망과 판단은 곧 엘리자베스의 욕망과 판단으로 내려앉는다. 복도를 가득 메운 엘리자베스의 사진은 "젊고 예뻤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착실히 쌓아온 커리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하비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본인조차 자신을 내공이 어마어마한 진행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을 멸시하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사회에서 그에게 실어 올린 것이다.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오랜 기간 "자신을 잘 돌보라"며 여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서 시작된 사회적 욕망은 여성의 안에서 여성과 동일시되고, 남성이 말할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시작된 지점, 하비의 입에서 여성은 새우와 과연 얼마나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비가 쩝쩝거리며 뜯어 먹는 새우 장면이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위생적인 거부감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는 살덩어리의 자리가, 하비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자리라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구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정작 스스로의 욕망에는 둔감해지고, 사회적 욕망에 스스로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각종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신경이 몰려 있어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질 수 있는 턱을, 심장만큼 중요하다는 종아리 근육을... 미용이라는 정갈한 단어에 담은 사회적 욕망을 사유로 찢고 째고 주사를 놓으며 상처 낸다. 사람 몸이 레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어디 살을 파내서 어디 다른 데 갖다 붙이라는 그로테스크한 광고가 영화관 가득 쩌렁쩌렁 울린다. 몸이 이물질로 인식해 면역 반응이 일어날 보형물을 몸에 집어넣는다.
이 모든 신체 학대 행위는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 자기 관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수로 찢어진 두 개의 신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 관리라고, 미용, 노력이라고 불러온 것들의 상당수가 자기 학대였음을. 그리고 사회의 욕망을 이미 체득한 우리는,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괴롭히는 법을 이미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욕망: 그거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시나브로 체득하고 있는 사회의 욕망은 과연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갉아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새우를 씹는 하비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업무적인' 과정과 고민이 있었을까? 시청률, 독자 의견, 인터넷 반응... 숫자 하나라도 보았을까? 숫자 이면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무엇이 끝났느냐'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답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확신에 찬 사람처럼 움직인다.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존하는 그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먹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때도 먹혔고, 섹슈얼한 느낌을 전면에 내세운 수의 쇼에서도 시청률로 돌아왔다. 하비 같은 인간이 많으니 하비 같은 인간이 주먹구구 방식으로 먹고 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개저씨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에어로빅을 하는데 꼭 수영복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신 타이즈 아래로 쭉 뻗은 엘리자베스의 허벅지를 보며 여성들은 또 한번 사회적 욕망을 잘 체득한 결과물을 모범사례처럼 학습한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타이즈 아닌 옷을 입어 보자 했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타이즈를 비호했을 것이다. 자세가 잘 보여야 좋은 자세를 취할 수 있다든지 하고 타이즈의 효용성을 강조하면서. 비슷한 일은 오늘날의 운동과 레깅스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의 결과, 이제 신체를 더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하고 효과를 더 많이 넣은 수의 쇼가 등장한다. 뽀얗게 필터를 씌운 쇼 안에서 반짝거리는 수의 신체는 마치... 뽀샤시한 생닭에 스프링클을 뿌려 놓은 느낌이 든다. 최소한 인간의 신체다운 느낌마저 줄어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무수하게 쏟아졌던, 각종 연예인 이름 뒤에 '후덕'하다는 단어를 붙여 기사를 내던 시절의 연예면을 그냥 둔 결과, 이제 연예기사와 댓글들은 여자 연예인의 신체를 부위 별로 품평한다. 허리나 다리를 언급하던 옛날 기사들도 역겹기 그지없었으나, 승모근이 어쩌고 중안부가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 인간을 고깃덩이로 보고 있나 싶어 할 말이 없어진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시선이 내게 체화되고, 승모근과 중안부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점이다. 하비의 쇼는 계속되고 있다. 자기 자신은 화장실에서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주제에, 25세 이상 여성의 가임 능력을 따지고 있는 찌질하고 나약한 남성성이, 어린 여성의 반짝거리는 재능을 내세워 '성공'을 얻어가는 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이브 문건이 떠오른다.)

내 안에 체화된 사회적 욕망을, 그 욕망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여성으로서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당장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물이 뒤섞여 반죽이 된 것처럼, 나는 여성의 몸을 품평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없다. 살이 찌면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신체 부위가 있다. 여기서 온전히 초연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이 때로는 한심하고 답답해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슬플 뿐이었다.
혹자는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아름다움"을 들어 그를 한심해 한다. 그러나 이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사고 방식이다. 아름다움의 잣대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거울을 봤을 때 조금 더 주름이 없었거나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거나 새 립스틱을 발랐다면 엘리자베스가 당당하게 프레드와의 약속에 나갈 수 있었을까? 거울을 보지 않았어야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엘리자베스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나의 욕망: 완전한 자리는 없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요. 매일매일 소리도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별것도 아닌 지점에서 시작된 주제에 끔찍하게 증폭되다 못해 내 안에서도 울려퍼지는데. 엘리자베스가 능멸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밀쳐지고 끝내 터져 나갈 때, 하비 같은 인간들은 피를 좀 뒤집어쓴 외에는 무사했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분 단위로 품평 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수 같은 여자들이 부족한 면면을 이유 삼아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 뒤에서 새우나 씹고 이나 쑤시며 무사한 배를 두드리는 이들의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나의 욕망이 오롯이 홀로 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캐럴라인 냅의 문장들을 더 들어보자.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 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 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엘리자베스가 이런 문장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어서, "애정의 불씨"와 "이해" 안에서 이따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실에서 울려퍼지고 있고, <서브스턴스> 약물은 액티베이터 약병에 담겨 있지만 않을 뿐, 숱한 광고물과 방송과 알고리즘 곳곳에서 우리에게 내리꽂힌다. 좀처럼 필사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캐럴라인 냅의 문장을 종이에 사각사각 적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만족스러울 수는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아무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은 평생 배워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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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지피티로 내맘대로 지브리 이미지를… 그런데 저작권은?
지금 SNS에선 지브리 이미지 열풍
지난 25일, OpenAI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ChatGPT에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ChatGPT-4o'를 새롭게 발표했습니다. 기본 다중 모델을 활용해 정확하고 사실적인 출력이 가능해져 '역대급 이미지 제작 능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출력한다는 소식이 퍼지며 SNS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반응은?
OpenAI의 CEO 샘 알트먼 또한 자신의 X 계정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로 변경하며 이 유행에 동참했는데요. ChatGPT로 생성한 수많은 지브리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이용되면서 자연스레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지브리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창립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2016년 방송 'NHK스페셜: 미야자키 하야오 - 끝을 모르는 남자'에서 AI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정말 역겹다. AI 기술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AI 기술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현재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저작권 관련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근데… 괜찮은 거 맞아?
인공지능의 태동 이래로, AI가 예술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AI 모델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는지, 그렇다면 지브리로부터 라이선스 동의를 받았는지가 주요 쟁점입니다. OpenAI는 특정 아티스트의 스타일 모방은 거부하나, 지브리와 같은 '스튜디오' 스타일은 폭넓게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요. 미술가 칼라 오티즈는 "예술가의 생계를 고려하지 않는 예"라고 밝히며 "이는 지브리의 브랜딩과 명성을 이용해 제품을 광고하는 착취"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AI 기술을 대하는 개발자와 이용자들의 비판적 인식 함양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진:X@sama, @_julianle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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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4월, 극장가를 찾은 3편의 영화들! <더 파더>, <노매드랜드>, <타인의 친절>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4월,
극장가를 찾은 3편의 영화들!
<더 파더>, <노매드랜드>, <타인의 친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웰메이드 영화들이 극장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 듦에 관한 진중한 통찰을 담은 <더 파더>, 대자연을 집으로 삼은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이는 <노매드랜드>, 뉴욕에서 만난 여섯 남녀가 서로를 채워가는 이야기 <타인의 친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등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 영화들로 4월 극장가를 각양각색의 매력으로 풍성하게 꾸며줄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4월 7일 개봉 예정인 <더 파더>는 안소니 홉킨스의 60년 연기 인생을 총망라하는 최고의 연기라 극찬 받고 있는 영화로, 완벽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믿은 노인 ‘안소니’가 기억에 혼란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여, 원작의 작가 플로리안 젤러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노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묘사하여 관객들에게 치매 노인과 동일한 혼란을 느끼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해 심리적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딸 ‘앤’ 역의 올리비아 콜맨은 <더 파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4월 15일 개봉 예정인 <노매드랜드>는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으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유력 후보로 떠오른 작품이다. 하나의 기업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한 후 그 곳에 살던 여성 ‘펀’이 평범한 보통의 삶을 뒤로하고 홀로 밴을 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광활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끝없이 펼쳐지는 길의 여정을 우아한 영상미로 담아내 놀라운 시네마틱 경험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4월 7일 개봉 예정인 <타인의 친절>은 낯선 뉴욕에서 저마다 길을 잃은 여섯 남녀가 오래된 러시아 식당에서 만나 각자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아름다운 미장센과 독보적인 감성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론 쉐르픽 감독의 신작이다. <언 애듀케이션>, <원 데이>로 국내 관객들에게 촉촉히 젖어드는 우아한 감성 드라마를 선사했던 론 쉐르픽이 6년만에 국내 극장가로 귀환한 작품이라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매력적인 배우들의 환상적인 앙상블로 더욱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관으로 나들이 가기에 좋은 4월,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와 어울리는 3편의 웰메이드 영화들의 개봉으로 앞으로의 극장가가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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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을 찾기 위한 네 친구의 모험
*개봉 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십 대 시절을 지나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부모과 가족의 영향을 받고, 더 크게 보면 국가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한국 부모 밑에 자란 한국 사람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정체성 인식과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간 경우나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경우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다른 나라인 미국으로 건너갔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일까. 아니면 미국 사람일까. 과거와 달리 다른 나라로 간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이민자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에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찾아가게 된다.
아시아계 미국 입양인 오드리의 이야기
영화 <조이 라이드>는 어린 시절 미국 부모에게 입양된 오드리(애슐리 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 중국에서 미국 부모님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된 중국계 이민자 가정의 롤로(셰리 콜라)는 오드리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주변의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같이 이겨내고 의지하면서 성공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학장시절의 주요 순간을 짧은 편집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아계 미국인이로서 겪게 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경험이 결국 그들을 어떤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인물은 오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알파걸이다. 그런 그는 상사로부터 중국에 있는 고객과의 계약을 따오라는 지시를 받고 친구 롤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롤로의 친척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와 오드리의 대학 친구인 캣(스테파니 수)도 동행한다. 오드리의 중국 고객은 가족의 존재를 강조하며 며칠 뒤에 있을 파티에 오드리의 엄마와 같이 참석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그 일이 실행되었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겠다는 답을 듣게 된다.
하지만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에 입양되어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때부터 오드리와 세 친구들은 오드리가 입양될 때 관여된 입양기관에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가 보여주는 네 친구의 여정은 무척 경쾌하다. 영화는 입양 기관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 미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믹한 설정과 약간의 성적인 코드를 이용한 웃음코드가 오드리의 무거운 상황을 희석시킨다. 또한 그들이 중국의 문화나 분위기를 관찰하고 본인들이 끌리는 이성과 어울리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도 다른 인종과 관계없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도 보여둔다.
네 아시아계 미국인의 로드무비
이들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다. 그중에서 오드리는 입양되어 진짜 부모를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그동안 무시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인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미국인 부모 밑에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오드리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가 중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끼는 모습에선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나게 된다.
오드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오드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확고하게 알고 있다. 중국에 친척이 있고 중국어도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드리는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낮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그의 부모가 어떤 모습일지, 그 부모를 만난 오드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는 미국에서, 중반부는 중국에서, 후반부는 한국에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데, 미국에서의 오드리는 그야말로 미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인의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가 느끼는 친근함 때문인지 중반부의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한없이 풀어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한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오드리의 생모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중국 친구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그렇게 나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후반부에서의 오드리는 한국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드리가 느끼는 정체성이 변화할 때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변하고, 그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은 이후에 그 모든 혼란은 정리된다. 영화 <조이 라이드>는 그런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오드리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편으로 영화 중반부에 포함된 성인 코미디 장면이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면서 여성인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고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당당함이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오드리의 정체성에 따라 변하는 친구들과의 관계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네 친구가 파리로 함께 여행을 가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 마지막 식사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중식과 한식 요리를 먹으며 한국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자신만의 정체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인종과 국가가 뒤섞여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알고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아델 림 감독은 과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각본을 썼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아시아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계속 작업해 온 것이다. 자신도 경험했을 정체성의 혼란을 영화 <조이 라이드>에 그대로 담았고, 그 혼란을 우울하게만 보여주지 않고 경쾌한 코믹 로드무비 형태로 설정하여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오드리 역을 맡은 애슐리 박은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으며, 캣 역의 스테파니 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주연을 맡았었다. 이 두 배우를 포함해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롤로 역의 셰리 콜라와 데드아이 역의 사브리나 우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시안계 미국인 네 명이 주연을 맡아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 속 오드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생모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만다. 영화에서 그가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과 발견 이후의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미국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조이 라이드>는 다양한 웃음코드를 보여주고 있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경쾌한 영화다.
*본 포스팅은 배급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틸컷은 [배급사]로부터 전달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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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머리카락에 녹아 있는 기억
SYNOPSIS.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PROGRAM NOTE.
때는 1990년, 록밴드와 인형을 사랑하는 원주민 혈통 소년 베니는 어느 여름날 부모님에 의해 난생 처음 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원주민 보호구역 내 양떼 목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애로운 외할머니, 빵떡 소녀라는 별명의 사촌 돈과 자유로운 영혼 루시 이모, 마초맨 삼촌 마빈을 만나게 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도시 소년 베니의 시선 아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조조래빗>을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는 이제껏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록밴드와 TV의 시대였던 90년 미국의 멜랑콜리한 활기, 촌철살인의 유머가 넘치는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최은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적이 있다. 머리카락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는다고. 프로그램에서는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실험을 해 보였는데, 오랫동안 종사한 직업은 물론 최근 바다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맞출 수 있었다. 어딘가 오래 묻혀 있다 ‘미라’ 상태로 나온, 한때 살아있던 사람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비교적 오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몸이 발견될 때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상태 양호”하다고 했다. 이런 머리카락을 통해 DNA를 분석하면 또 그 몸이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머리카락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카락 하나는 평소라면 그냥 방바닥에서 증식을 하는지 의심될 만큼 치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감고 말리고 빗고 넘기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여길 무엇일 것이다.
<빵떡 소녀와 나>를 보고서는, 그게 그토록 애틋하고 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른 영화였다. Frybread를 빵떡이라고 번역할 귀여운 생각은 누가 했을까. 유난히 잘 붓곤 하는 얼굴을 스스로 빵떡이라고 종종 말하긴 해도 그게 표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엿하게 영화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기특한 우리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조합 같으니.
귀여운 제목에 귀여운 스틸컷을 보고 골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옥수수죽처럼 슴슴하고 든든한, 어쩐지 따스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는 영화였다.
1990년 미국.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서 베니가 열중하는 것은 헤드셋으로 쏟아지는 밴드 음악과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인형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액션 피규어') 두 개다. 인형 두 개로 베니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긴장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이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이 베니 안에서 왕왕 울릴 때, 부모님 손에 의해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댁 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된다. 베니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럴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베니의 손 끝 인형에까지 묻어나고 있으니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달한 할머니 댁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 가운데 있다. 지금은 다 집을 떠난 이모 삼촌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곳.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나바호족 말을 할 줄 모르는 베니, 그리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삼촌. 그 사이로 빵떡이가 등장한다. 모두가 빵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은 '새벽Dawn'인 소녀가.
영화는 실제로 방학 동안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들의 일상처럼, 슴슴한 모험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애들한테 물어보면 "심심해 죽겠어!"라고 대답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거기 다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그런 날들.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 마음을 풀어주는 이모가 있는가 하면,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박박 긁어 결국 갈등을 표면화하고 마는 삼촌도 있다.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쓸쓸해지는 풍경이, 그곳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은 스산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의 마지막 젊은이 같은 기분이 든달까. 내가 한국인이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저들에게는 잃어가는 원주민 문화의 흔적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한, 나바호족 문화를 꼿꼿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양탄자를 만들어서 기념품 가게에 팔지만, 양탄자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할머니 곁에 모조리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양탄자 무늬의 의미와 거기 담긴 상징들, 나바호족에게는 '진실보다 중요한' 상징들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처럼 떠 먹인다. 할머니의 자장 안에서 나바호족의 문화는 보드랍고 편안하게 풀어진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서술되지 않는) 여러 원주민으로서의 어려움 속에서 제각각의 길을 가는 이모삼촌 삶의 궤적은 쓸쓸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아기의 '첫 웃음'을 축하하며 첫 웃음 잔치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 영화 속 가족은 아주 애틋하거나 아주 냉담하지 않은, 그래서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임에도 어쩐지 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많은 순간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손주들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사랑. 머리카락은 기억이라는 말은 DNA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나바호족의 상징에서도 진실이다. 가끔은 사실보다 상징이 더 진실을 닮아 있는 세상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혜가 고요히 빛난다.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이고 '빵떡 소녀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라 해서 모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간직하듯, 가족 안에서 켜켜이 쌓이고 흐른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떠먹여준, 고요하게 빛나는 지혜와 상징이 촛불처럼 아이들의 삶을 밝혀주지 않을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듯한 마음이다. 어쩐지 창포 향이 날 것 같은 기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네 이야기 같아도 되나? 아마 그게 영화의 힘이겠지. 이 기억 또한 내 머리카락에 남을 것을 안다.
9월 17일 20:00-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8일 19:30-20:59 롯데시네마 은평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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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들만 간다는 무주산골영화제
🏕 진짜 들만 간다는 무주산골영화제 🎬
6.6-6.8 3일간 진행되는 무주산골영화제!너무 좋아서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데요!
산 속에서 영화 보고, 밤엔 별빛 아래 음악 듣는 경험✨
진짜 영화 덕후들의 진정한 여름 피서지
오늘부터 단 이틀 남았으니 한번 떠나볼까요?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메인 스팟인
📍등나무운동장에서의 프로그램을 모아봤어요.무주 go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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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은 게 아닌 잠시 묻어두었을 뿐
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다. 스토리 부문이 아쉽기도 하지만, 신카이 감독이 만드는 작화 퀄리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너의 이름은>(2016)을 보고 앞으로 이런 아름답고 놀랄 만한 영화들이 무수히 나온다는 미래에 흥분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양한 영화들을 보고 내 생각을 적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어 영화 글을 적어야겠다고 다짐한 방아쇠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수많은 명작들을 뒤로하고 <너의 이름은>으로 영화 글을 적어야 하겠다고 다짐한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보면 서툴고 웃긴 계기다. <초속 5센티미터>는 <너의 이름은>이 떠오르는 영화이자, 그 시절의 내가 품었던 마음을 느끼게 해 준 영화다. 그리고 첫사랑도.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2016), <초속 5센티미터>(2007)
<초속 5센티미터> 네이버 스틸컷
작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하면 빠지지 않는 키워드다.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작화는 실제 사물과 매우 흡사한 퀄리티를 꾸민 작화로 유명하다. <초속 5센티미터> 역시 도시와 자연 풍경과 책, 옷 등과 같은 사물이 실제 공간과 사물을 연상케 하는 작화를 보여준다. 이 영화 과연 2007년 작품인가 감탄을 자아내는 퀄리티.
그러나 인물의 작화는 사물을 표현한 작화보다 떨어진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주변 작화에 더 큰 매료가 되기 때문이다.
황혼
잠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 <너의 이름은>(2016)과 이 영화 장면을 비교해보고 싶다. 두 영화 공통적으로 나오는 장면은 해가 지는 노을 풍경 즉, 황혼 시간대다. 황혼 시간대에 두 남녀가 같이 있는 장면을 통해 더 낭만적이고, 주황빛이 돋아나니 따뜻한 색감을 보여준다. 다만 이 황혼의 연출 목적이 두 영화가 다르다. <초속 5센티미터> 2부 '코스모 노트' 중 타카키와 카나에가 만난 황혼 장면은 타카키를 향한 카나에의 짝사랑이 노을빛을 통해 더 애틋하게 담기지만,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는 황혼 장면은 보고 싶었던 두 남녀의 만남이 노을빛을 통해 더 절실하고 소중한 시간처럼 다가온다.
여담으로, 또 하나 찾은 두 영화의 비교점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상승과 하강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가고시마 지역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장면과 우주선이 상승하며 나타난 거대하고 하얀 연기가 등장한다. 이 장면이 <너의 이름은>에서 하늘에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하강하는 운석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첫사랑
<초속 5센티미터>는 잊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감정을 보여준다. 타카키가 첫사랑 아키라와의 만남을 잊지 못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그 중간에 카나에가 타카키를 좋아하는 짝사랑 장면도 보여주지만 타카키가 추구하는 감정은 아키라와의 첫사랑이다. 그리고 그는 성인이 돼서도 다른 여자와의 만남은 고작 1센티미터 밖에 다가오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아키라를 그리워한다. <초속 5센티미터>는 첫사랑에 대한 설렘과 감정을 전해주고, 첫사랑이 지닌 미련 또한 전한다. 잊기 싫어 묻어 두었던 첫사랑의 흔적을 영화가 잠시 꺼내어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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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을 예고하는 듯한 조금은 충격적인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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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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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막내를 포함한 아이들과 함께 소리 없는 사투를 이어가던 엄마 ‘에블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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