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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ong2023-10-07 19:10:05

[BIFF 데일리] '전생'에서 깨진 인연을 지금 다시 붙이고 싶다고?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셀린 송

출연진 :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울보 나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나영이다. 외로운 삶. 어린 나영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영에게 기댈 수 있는 그늘이 있다. 같은 학교 친구 해성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해성과 함께했다. 사실 왜 둘이 집을 같이 갈까 3자가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쉽다. 다만 서로가 각자의 마음을 알기엔 너무 어릴 뿐이다. 시간은 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나영 가족. 이미 나영의 부모는 나영에게 ‘노라’라는 영어 이름을 붙여줬다. 이별이 다가오는 둘. 나영은 해성에게 ‘나 이민 가. 한국에선 노벨상 못 받으니까’라고 전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해성이다.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못했다. 분명히 노라는 날 좋아했었다는 미련을 가진 채로 살아간다. 떠나기 며칠 전에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페이스북으로 사람을 찾는다. 이름은 문나영.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실만 알았지 이름이 ‘노라’가 됐다는 건 아예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연락이 오겠지? 기다리고 있는 해성. 그날은 해성의 친구가 연인과 헤어진 날이었다. 펑펑 우는 친구 옆에서 해성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DM 알림이 온다. “안녕. 나 나영이야.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나영이, 아니 노라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과 한국, 뉴욕과 서울이라는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넘버 3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셀린 송이다.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이야기 곳곳에 이 셀린 송이라는 인물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셀린 송의 부친은 송능한 감독이다. 송능한 감독은 연출로 데뷔하기 이전에 임권택의 <태백산백>을 비롯한 몇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했다. 충무로에서 나름의 명성을 쌓은 송능한 감독. <넘버 3>를 발표하며 금세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올라선다(최근의 한국영화를 바탕으로 하면 아마 엄태화 감독쯤 됐을 것이다). 차기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기말>을 발표하는 송능한 감독. 하지만 영화 외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흥행에 실패한다. 이민을 결심한 송능한 감독. 미국으로 떠난다.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극 중에서 나영의 아버지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왜 아버지가 이민을 결심했는가’에 대해선 ‘설명하기 복잡하다’로 끝난다. 부친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가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영화가 주인공 나영이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직업을 ‘시나리오 작가’라고 설정했다. 실제로 셀린 송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극작가(Playwriter)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중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에게 여동생이 있다. 실제 셀린 송 감독에게도 여동생이 있다. 감독의 남편 역시 실제 배우의 외모와 닮았다. 작중에서 노라의 남편 역을 맡은 배우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다. 실제 셀린 송 감독의 남편 사진을 찾아보면 이와 유사하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어디에서 착안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백을 비추는 카메라

 

이 영화의 강점은 감정전달에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앞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자기가 잘 아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덕에 장면마다 정보를 더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안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노라와 해성이 성인이 되고 나서 대면하는 신이 그 예다. 두 사람은 거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그걸 온갖 대사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딱 한 문장으로 끝내되 대신 다른 장면에서 인물들과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대표적으로 나영이가 울보라는 설정이 그렇다. 나영이는 잘 울었다. 하지만 봐줄 사람이 없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감정을 표현해도 울보라는 것을 알아봐 줄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울 일도 줄어들었다. 받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라의 성격이 변한 것이다. 반대로 해성이의 경우는 인물의 성격이 10대/20대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까지 본다면 20대의 해성과 어린 시절의 해성이 둘 다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중간에 군 생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의 시간이 12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체감하기 어렵다. 특히 가족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그런데, 둘을 비추는 방식은 별 차이가 없다. 시각적으로 이들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연출해 실질적으로 변한 건 드물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또 영화에서 흥미롭게 리듬을 변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차다. 두 사람의 시차는 영화에서 첫 대면신에만 설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시차가 영화에서 내포하는 바는 의사소통의 균열이다. 이 균열이 일어나는 장면이 인물들의 관계마다 다 묘사되어 있다. 아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술집의 장면은 주인공 해성-노라 / 노라의 남편으로 대화 구조가 짜여있다. 둘/하나로 나뉘는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노라의 남편은 한국어를 못한다. 그래서 둘은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언어로 시차를 둔 것이다. 이 시차는 두 주인공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12개월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번 끊는다. 여기에서 해성과 노라가 연애를 시작한다. 해성이는 사랑을 끝내는데 반면 노라는 남편을 만나는 장면도 두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신에서는 노라가 직접('네가 원하는 나영이는 이제 없어')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해성이가 원하는 현재와 노라가 이해하는 과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해성이는 노라가 나영이의 모습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기 바라기 때문에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영화는 시차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드러내고 있고, 이를 두 인물이 가진 고유의 리듬을 비틀면서 전개한다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 영화를 만든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글쓴이에게 있어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의미는 시차와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시차를 두는 일과 유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쉽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래 가슴에 품는 이도 있다. 이 후회는 과거의 내가 보지 못했던 걸 현재의 자신이 알고 있다는, 일종에 시차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영화는 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내가 알지 못했던 걸 지금 고치기 위해 노라에게 간 해성.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알든 현재의 내가 알든 그건 노라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해성이 잘 알고 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깨닫는 해성의 내적 성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또 사실상 노라의 현재를 상징하는 남편 캐릭터를 진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당신에게 현재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다. ‘전생’에 있었던 그 모든 사건보다 현생의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태오 배우는 열연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중심 부분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회전목마 신에서는 이 인물이 그동안 품어왔던 그리움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네가 그리워라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 없이, 단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응축한다. 아마 유태오 배우가 이 감정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유태오 배우가 참석했다. 유태오 배우는 “이 시나리오를 받고 울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술집에서 대화하는 신이다. 여기서 해성을 보면 영어에 서투른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영어를 못해서 대충 눈치로 넘기는 장면을 보면 '정말 영어 못하나 보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인 유태오 배우는 영국과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기로 이 부분을 돌파한 셈인데, 유태오 배우가 연기에 얼마나 이 장면을 잘 이해하고 있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10월 9일 오후 12시 30분에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볼 수 있다.

작성자 . udong

출처 . https://brunch.co.kr/@ddria5978uufm/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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