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2023-10-08 16:46:37
[BIFF 데일리] 황홀한 탐욕과 종교의 만남
영화 <황홀경>
황홀경/Rapture
Hong Kong, China/2023/127min
도미닉 상마 감독/ '아시아 영화의 창' 세션'
영어로는 'rapture(랩처)'라고 하며, 이는 개신교에서는 휴거를 의미하는 어휘이기도 하다. 사람이 황홀의 경지에 이른 것을 황홀경(恍惚境)이라고 한다. <나무 위키 참고> '황홀경'이란 제목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어둠이란 단어와 실제 영상에서도 밤과 어두움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시선을 대비시키는 단어이다.
빛과 어둠, 황홀의 경지와 죽음의 순간을 대비 시키며 풀어가는 영화 <황홀경>은 홀연히 사라진 망쿤치를 찾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를 찾기 위해 카산의 아버지와 마을 남자들은 밤마다 찾으로 다니지만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상황. 이런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망쿤치가 장기 밀매 업자들이 납치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경계하며 밤마다 마을을 지킨다.
이런 마을 사람들이 완전 무장해제 되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게 있다. 바로 종교다. 외부인들은 그토록 경멸하며,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에게 종교는 외지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힘이요, 다른 마을 사람들과 다른 특별함을 지니게했다.
그것을 주도한 교구 목사는 기적의 성모마리아 행렬이 지난후, 40 밤과 40일 낮동안 종말의 어둠을 대비한다며 임박한 종말을 위한 '종말 구호 헌금'을 실시한다. 그러면서 마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 넣는다.
그러면서 이미 충분히 어둠이 찾아온 마을속에 서로의 욕망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결국 종교와 정치가 권력을 악용하는 장면속에서 주인공 소년 카신의 시선을 통해 감독은 신비로이 우리를 초대한다.
<황홀경>의 도미닉 상마 감독은 어릴적 주민 대다수가 크리스천 마을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 영화 <황홀경>은 우리에게 종교와 정치가 탐욕을 만났을때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영화 전반에 흐르는 어둠과 짙게 깔리는 음향의 효과는 영화를 몰입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끊임없이 사라진이들을 찾아다니는 장면과, 성모마리아 상이 마을에 있는 예배당에 들어오는 과정을 아주 느리고, 천천히 묘사하는 장면, 그러나 성모마리아 상이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어둠속에 있는 마을과 그안에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려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종교와 권력,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황홀경을 경험하고 싶은 탐욕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63072&c_idx=385&sp_idx=&QuerySt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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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주 씨네 뉴스는 국내외 다양한 소식으로 알차게 준비 해 보았는데요!
그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6’ 6월 6일 공개
ⓒnetflix
2019 공개 이후 4년 만에 ‘블랙미러 시즌 6’ 가 돌아옵니다.
넷플릭스 측은 앞으로 ‘블랙미러 6’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총괄 제작과 각본을 맡은
‘찰리 브루커’는 ‘어느 때보다 충격과 다양함이 있을 것’이라고 전해 팬들의 기대감을 끌여 올리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를 통해 시즌 6 예고편이 공개되었으며 공개 날짜는 6월 6일입니다.
익선동 ‘둘리 비디오 대여점’ 팝업 티켓 전석 매진
©워터홀컴퍼니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스크린 귀환을 기념하여 열린
팝업 스토어 ‘둘리 비디오 대여점’이 사전 예약 매진을 기록하며 SNS 속 화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워터홀컴퍼니와 메가박스가 공동 기획한 팝업 스토어로 지난 19일 오픈하여 25일까지 익선 스페이스에서 운영됩니다.
‘아기공룡 둘리’는 5월 24일 개봉입니다.
영화 <귀공자> 김강우 역대급 빌런 캐릭터 예고
©NEW
영화 <신세계>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가 6월 21일 개봉합니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배우 김강우가 역대급 빌런 캐릭터로 분해 더욱 기대를 더하고 있습니다.
한편 영화 <귀공자>는 김강우 뿐만 아니라 김선호, 고아라, 강태주까지 합류해 예측불허의 추격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디즈니·픽사 신작 '엘리멘탈' 6월 14일 개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신작 '엘리멘탈'이 6월 14일 개봉을 확정하며 팬들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디즈니·픽사 최초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며
피터 손 감독과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오는 30일 내한해 관객을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영화 <엘리멘탈>은 불, 물, 공기, 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시티’에서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가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입니다.
넷플릭스 미국 내 계정 공유 금지 시작
ⓒnetflix
넷플릭스가 미국에서 본격적인 계정 공유 금지에 나섰습니다.
넷플릭스 계정은 한 가정 내에서만 공유될 수 있고 그 외 1인당 월 7.99달러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계정 공유 금지 안내가 없는 상황이나 지난 2월 뉴질랜드, 스페인, 캐나다, 포르투갈 등
4개국에도 계정 단속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CGV 6월 7일부터 톰크루즈 특별전 진행
©CJ CGV
CGV가 배우 톰 크루즈의 작품 7편을 모아 아트하우스 전관에 6월 7일부터 7월 4일까지 특별전을 진행합니다.
특별전에는 <탑건> <레인 맨> <어 퓨 굿 맨>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아이즈 와이드 셧> <바닐라 스카이> 등
총 7편이 상영되며 자세한 내용은 CGV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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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5월 3주 개봉영화!
범죄도시2 the roundup , 2022
범죄영화의 레전드! 범죄도시의 컴백!
범죄 액션 영화의 레전드 흥행 신화의 주역인 범죄도시가 후속작으로 돌아옵니다.
대한민국 대표 범죄 액션 시리즈 "범죄도시2"는
괴물형사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이 베트남 일대를 장악한 최강 빌런 ‘강해상’을 잡기 위해 펼치는 통쾌한 범죄 소탕 작전을 그린 영화인데요
"범죄도시2"는 전편의 가리봉동 소탕작전 4년 뒤를 배경으로 베트남까지 세계관을 확장했습니다
화끈하고 살벌해진 금천서 강력반이 선보일 압도적 스케일의 범죄 소탕 작전은 전편과는 색다른 재미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특히 마석도 형사를 비롯한 금천서 강력반은 물론, 장첸을 이을 새로운 인물이자 최강의 빌런 ‘강해상’의 등장까지 예고해
전편을 뛰어넘는 강렬한 조합을 완성시켰습니다.
북미, 베트남, 대만, 싱가폴 등 전세계 132개국 극장 개봉확정한
첫번째 추천영화 "범죄도시2" 입니다.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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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바 2021
유쾌한 웃음과 찡한 눈물을 책임질 코미디영화가 온다!
영화 "어부바"는 가족과 어부바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부바호 선장 종범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어부바호 선장 종범 역에 코미디 연기의 대가 정준호, 철없는 동생 종훈 역에는 생활 연기의 달인 최대철,
종범의 늦둥이 아들 노마 역에는 천재 아역 배우 이엘빈이 맡아 관객들을 웃고 울릴 황금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최종학 감독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소소한 내용의 즐겁고 행복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젊은 세대만 보는 자극적이고 센 장르 영화가 아닌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며 "어바부"의 기획 의도를 밝혔는데요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등 코미디로 스크린을 점령한 대한민국 대표 믿고 보는 배우 정준호가 주연을 맡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찡하고 유쾌한혈육 코미디!
두번째 추천영화 "어부바" 입니다.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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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Le discours , THE SPEECH , 2020
유쾌한 웃음과 찡한 눈물을 책임질 코미디영화가 온다!
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은 낭만적인 연애를 원하지만 인간관계에는 서툴어 실수가 많은 INFP 소심남 '아드리앵'이
피곤한 연애에 지친 자유로운 영혼의 ESTP 여자친구부터
눈치 빠르고 관찰력이 좋은 ISFP, ISTP 부모님과 타인에게 무신경한 INTJ 친누나, 그리고 토론과 잘난 척을 좋아하는 ENTP 예비 매형까지
다양한 MBTI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꼬마 니콜라'부터, '업 포 러브'까지 사랑스러운 프랑스 수작을 탄생시킨 감독 로랑 티라르가 연출과 각본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부터 연출까지 모든 제작 과정에 자신의 내공을 쏟아부은 감독 로랑 티라르는
가족, 연인 사이에서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살았던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혈액형과 별자리에 이어 MBTI 성향으로 연애 궁합을 맞춰보는 트렌드에 아주 딱맞는
세번째 추천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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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MASS , 2021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메타스코어 MUST SEE! 베니티페어 올해의 TOP10!
영화 "매스"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두 부부의 슬픔, 분노, 절망, 후회가 폭발하는 111분의 명작인데요.
일찌감치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메타스코어 MUST SEE, 2021년 베니티 페어 선정 최고의 영화 TOP10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화제작입니다.
프란 크랜즈 감독은 2018년 17명의 사망자를 낳은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기 사건 뉴스를 보고 난 후 운명적으로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는데요
아이를 잃은 부모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로 마주한 2쌍의 부부가
그 날 이후로 6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오후, 1개의 테이블에 마주 앉습니다.
용기를 내어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마주한 이들이지만 결국 마음에 품고 살던 감정들이 터지며
슬픔, 분노, 절망, 후회 등 격렬한 감정들이 폭발하게 되죠
슬픔, 분노, 절망, 후회에서 나아가 용서, 화해까지! 인생을 꿰뚫는 영화
네번째 추천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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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Song of the Poet , 2021
한국 포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뮤지션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음악으로 한국적 포크의 전설이 된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음악 다큐멘터리입니다.
1978년 ‘시인의 마을’, ‘촛불’로 데뷔한 정태춘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시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음율로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받는 등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촉망받는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표현의 자유를 위해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에 앞장서며 불의에 저항하는 등,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길목마다 시대정신이 깃든 노래들로 시대와 호흡했죠
서정성과 토속성으로 대표되는 특성으로 한국적 포크음악을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디스코그래피와 독보적 음색의 보컬리스트 박은옥과의 음악적 하모니가 입체적으로 담겨 있어
음악 팬들과 영화 팬들 모두에게 필람영화로서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1978년 데뷔부터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대의 공기,
정태춘이 치열하게 통과했던 시대와 음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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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애니메이션 -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 어찌해야 할까?
필자는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시청각적 예술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초기 영화들은 청각적 요소가 없는 무성영화였으며, 그렇기에 초기 때부터 부각되어 온 것은 시각적 요소였기 때문에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 성향을 얘기하자면, 솔직히 필자는 영상미 중시 성향이 센 편이라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영상미가 좋다면 웬만해선 호평을 하는 편이다.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 데이즈"도 스토리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이러한 비판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영상미와 음악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단점이 있다. 장점 하나로 절대 커버할 수 없는.
본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동명의 단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꾼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가 존재하고 있다. 필자가 원작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비교 리뷰는 어렵겠지만, 실사를 따로 놓고 봐도 이 애니메이션은 확실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장점부터 얘기하자면 영상미와 OST를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샤프트 제작인 만큼 영상미는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색감과 연출들은 따로 놓고보면 정말 스틸 하나하나가 화보라고 해도 될 정도. 그리고 OST도 정말 호평받을 만한데, DAOKO와 요네즈 켄시의 합작곡이자 본 영화의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打上花火)은 원작보다도 더 인지도가 높을 정도이며 유명 DJ인 Porter Robinson이 직접 호평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할 정도이다.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의 유리색의 지구(瑠璃色の地球) 또한 후술하겠지만 본 노래가 나오는 파트는 비판점이 있지만 음악만 따로 놓고 보면 좋은 음악에 속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영화관의 사운드와 스크린으로 음악과 영상미를 듣기위해 예매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의 가치는 이 두가지 뿐이다. 다만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작중에서는 단 한번도 안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니, 만약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고 나오길 강력히 추천한다.
장점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단점 뿐이다. 누가 뭐라해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이다. 위에서 필자가 영상미를 중시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스토리가 형식이 갖춰져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심각할 정도의 미달 수준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원더풀 데이즈에 호평을 한 것도 서사가 급전개에 난잡한 부분이 있지만 심각한 미달 수준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심각할 정도로 미달이다. 이러한 미달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너무 길게, 자주 반복되는 쉽게 말하자면 '만약에' 세계의 반복인데,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반복하는 만약에가 너무 길게, 여러번 나온다. 그렇기에 비록 이미 본 부분을 빠르게 보여준다고 해도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지는 모습은 원작에 비해 40분 가량 늘어난 러닝타임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실제로 반복되는 부분은 20~30분 가량을 잘라내도 이해에 영향이 없을 정도라고 느꼈다. 또한 열린 결말이라는 것도 좋게 말해 열린 결말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결론을 내지 않고 끝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후반부의 연출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엔딩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은 배가 되어간다. 그리고 위에서 색감과 연출들을 따로 놓고보면 좋다고 했는데, 일부 장면의 연출들은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유리색의 지구 파트에서는 뮤지컬 영화 색채를 보이는 파트인데, 갑작스럽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연출이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식 연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연출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연출과 영화의 서사가 조화롭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이다. 또한 일부 연출 또한 선정적 요소가 세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선생님의 가슴을 가지고 친구들 사이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섹드립을 날리는 거나, 선생님의 가슴을 선생님의 남자친구가 가슴이 작아진 것 같다며 만지려 하는 것도 전혀 유쾌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후자의 경우에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고는 하나, 영화를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든 요소이며 이러한 또 다른 세계임을 상기시키는 연출은 불꽃의 모양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실패작은 아니다. 영상미와 OST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주목해볼만 하다. 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는지라 본 작품의 평가에는 영향을 끼치기 어렵고, 영상미 또한 서사와의 조화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이 영화를 불꽃에 비유해보자면, 분명 하늘을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불꽃이었는데,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이고 만것이다. 아예 불량품이 아니었다보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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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전하고 싶었던 어두운 피노키오
먼저 떠난 아들
김삿갓이 뭐죠? 방랑시인이 뭐죠? 우리의 예술가이자 귀뚜라미 크리켓은 오늘도 여행하고 있다. 크리켓이 여행 숙소로 머무는 곳은 보통 나무(들)의 심장이다. ‘어디 적당한 나무 없을까?’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는 크리켓. 크리켓은 그렇게 숙소에 앉아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좋아. 이 자리가 좋겠어. 짐을 풀고 나무에 잠깐 누울 준비를 한다.
퍽. 퍽. 이게 무슨 소리야? 크리켓은 화들짝 놀란다. 나무에서 나오는 크리켓. 어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로 나무를 베려고 한다. 길가다가 벼락 맞는 것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불운이다. 할아버지는 뭔가에 단단히 씌인 것 같다. 무슨 일이지? 저 할아버지는 이 나무 근방에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제페토. 카메라는 제페토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제페토는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아들을 폭탄에 의해 잃었다. 회한과 후회가 제페토에게 남았다. 아버지가 되어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마음의 병으로 남는다. 미쳐가는 제페토. 제페토는 매일같이 아들의 묘지에 앉아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터무늬 없다. 망자가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제페토는 나무를 베서 또 다른 아들을 만들려고 한다. 직업적인 특성을 발휘하는 제페토. 오래 걸리지 않아 '피노키오'라는 나무 인형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피노키오에 갑자기 특별한 마법이 들어왔다. 피노키오는 신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 나타나자마자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피노키오. 과연 피노키오는 어떤 일상과 삶을 마주하게 될까?
아날로그 감성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하다. 7살 즈음에 봤던 <강아지똥>이 생각난다. 직접 만든 점토 같은 느낌으로 전개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애니메이션을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림처럼 그려 전개한다. 모형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 1 프레임 단위로 모형을 그려 이야기를 만들면 제작자의 눈알과 팔이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그려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노가다 중 노가다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 스톱모션 기법으로 제작한 영화다. 과거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던 동화를 예전에 제작하던 방식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도입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다. 영화는 피노키오의 형식만 따왔을 뿐이지 사실 아예 딴판인 이야기다. 영화에서 중요했다고 볼 수 있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로 전쟁의 참혹함과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어떤 것을 되살릴 수밖에 없는 영화의 형식과도 이어진다. 일단 아들이 죽었기에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과거의 사건에 대한 현재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은 예술가로서 두 감독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과거의 편린에 사로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주제적인 측면은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처절할 정도로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대표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를, 그리고 그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각자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인 세팅만 따온 이야기
영화 제목에 '피노키오'가 들어간다. 피노키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 아냐? 맞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다. 거짓말하면 코가 늘어나는 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를 활용한다.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는 영화가 품고 있는 다른 한 측면 '다양성'을 관통하는 키워드기도 하다. 나무로 되어있는 피노키오. 사회성이란 게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고 치기 일쑤다. 이런 캐릭터 세팅은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이질적으로 맞물리며 후자를 더 돋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또 피노키오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시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이 나무로 구성된 피노키오의 특성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끊임없이 제시된다. 늘어난 코를 활용한다던가, 불에 탄다던가, 부서지면 수리할 수 있다던가 하는 캐릭터의 특성을 코미디, 판타지로 소화한다.
또한 이야기 전개 자체가 아예 원작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 저었던 결말과는 달리 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이는 '남겨져 있는 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가 대비되는 전-후반부의 설정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전달하기 위해 전쟁의 참혹함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세팅했다. 또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에서 '피노키오'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라는 단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지점을 찌르는 작품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든 극장에서든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분은 뭘 먹고살길래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기예르모 델 토로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약간 매니아적인 감독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느낌?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위너도 됐고 <판의 미로>라는 걸작을 만들기도 했다. 이 뿐인가? 올해 초에 <나이트메어 앨리>를 개봉시키기도 했다. 일단 델 토로의 작품 특성이라고 하면 시각화 비주얼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를 제외하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괴물'이다. 델 토로는 영화에서 괴물을 잘 등장시킨다. 그런데 괴물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너무 특이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억에 선명하게 나온다. 또 폭력 수위도 쉽지 않다. 어쩔 땐 잔인하기도 한 델 토로. 이런 델 토로가 '피노키오'라는 고전소설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이 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일단 영화가 전체이용가 심의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글쓴이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런 기대를 한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델 토로의 인장을 쾅쾅 박아 넣었다. 일단 영화에서 틸다 스윈튼이 맡았던 신 캐릭터가 있다. 여기에서 이 여신 캐릭터의 비주얼이 곤충 개미와 '램프의 요정 지니'를 섞은 듯한 비주얼로 뽑혔다. 이 캐릭터가 잔인한 장면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뒤틀려있다는 점에서 델 토로 연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초반부에 제시되는 영혼의 묘사 방식, 귀뚜라미의 시각화, 피노키오의 모습, 후반부에 등장하는 괴수까지 델 토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대치를 충족하는 뛰어난 연출법이 돋보인다. 그래서 혹시 '아 이거 기예르모 델 토로 순한 맛 아닌가' 싶은 분들은 전~혀 그러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영화는 스톱모션이라는 촬영기법과 어딘가 기이한 캐릭터 시각화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며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어느덧 2022년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올해는 또 어디까지 왔을까. 연말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생각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글쓴이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혼자라는 것. 나만 이럴까?라는 것이다. 단순히 커플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런 목표들이 내 인생에서 언제까지 나를 지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진다. 점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서 나부터가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 듯하고, 사랑하는 애인은 아직까지 타이밍이 아닌 것 같거든.
영화는 혼자 남은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물들은 한 자리에서 맴돌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는 듯하다. 이 질문은 결국 관객에게 전달된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도 당연히 코멘트하고 있는 영화지만 이는 올해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되는 사실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남아있는 제페토와 피노키오의 행적을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당연히 있고, 그 과정이 끔찍할지라도 우리는 서로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니까. 다 아는 맛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을 찌르는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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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모성에 관해
- 케빈은 왜 그런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대도 관객이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케빈과 어머니인 에바와의 유대감이 부족했다는 점 하나로 이 영화를 부족한 유대감이 만들어낸 파멸을 묘사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뭉스럽다. 보통 부모와 유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멸적이거나 극도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만은 않기 때문이겠다.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그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케빈에 대하여>를 거꾸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초 영화는 이야기를 뒤집어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는 케빈의 어머니인 에바가 케빈을 낳기도 전, 즉 결혼 그 이전의 시간부터 현재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의 순간까지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구조를 보여준다. 영화 속 서사로 봤을 때는 이 영화의 종반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핵심적 사건이 가장 먼저 삽입되어야 한다는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보통은 큰 줄기에서 시작해 곁가지를 뻗어 내는 구조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재미있는 지점은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이지만 이 영화를 서술해 내는 주역이 케빈이 아니라 에바라는 점이다. 지극히 어머니의 시선에서 케빈과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전개한다. 이쯤에서 질문을 꺼내어볼 수 있다. 케빈의 시선에서 서사를 전개했다면 관객은 그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아마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케빈이 어렸을 때부터 보인, 어쩌면 이상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 그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은 에바의 시선으로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결국은 어머니의 시선으로 보는 케빈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머니의 시선으로 케빈을 생각하도록 한다. 에바는 이 영화 속에서 어떤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크게는 영화 속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구조를 보인다는 점과 영화가 강조하는 ‘색’의 의미를 파악해 보아야 한다.
에바는 행복해 보일 수 없다. 남들과 같은 평범하거나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대뜸 그녀의 뺨을 후려칠 수 있다. 또는 그녀가 사는 집 외관과 승용차에 빨간색 페인트를 흩뿌려 버린다. 장을 보기라도 하는 날이 되면, 그녀가 사려고 담은 달걀 한 판을 모두 박살 내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에바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낙인과도 같은 화살들을 담담히 지고 나아가려고 한다.
어느 곳을 가든 자신을 감시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집에 마구잡이로 뿌려진 붉은 페인트를 벗겨내려고 하는 것조차 감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는 케빈이 그녀의 아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들이 케빈을 증오할 수는 있어도, 그 부모와 가족까지 증오하고 그들의 삶마저 모두 이 세상으로부터 들어내려고 하는 전복적 시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케빈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재활하게 됐지만 우연히 에바를 만났을 때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한 소년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케빈에게 해를 당했음에도 에바를 증오할 마음 없는 그 당사자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결국은 모성만이 남는다. 모성의 형태가 어떻다고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어떤 일이 있든 그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 자체를 모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의도치 않았지만 찾아온 케빈이라는 존재를 결국 낳았고, 후회했지만 결국 길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난관이 찾아왔지만, 에바는 포기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를 저버리고 감옥에 수감된 케빈이지만 에바는 그를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대체 왜 그랬으며, 무슨 생각이었느냐고. 그렇지만 케빈은 여전히 에바에게 명백한 답을 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닐까.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아야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그렇게 흐릿한 마음과 시선을 안았지만, 모성을 숨기지 않으며 에바는 살아간다. 모험가로서 책을 출판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과거의 경험을 살려 여행사에 취직한다. 예전의 호화로운 저택은 더 이상 없지만 작은 주택에서 케빈을 다시 맞이하고자 한다. 이웃들이 자신에게 찍은 낙인을 지워내기 위해 조금씩 그 흔적들을 지워낸다. 영화는 에바를 주인공으로 선정함으로써 그렇게 ‘이해 불가능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시선으로 서사를 읽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모성에 관한 서사를 에워싸는 빨간색이 있다. 모험가이던 시절, 토마토 축제에 가서 자유를 만끽했던 순간의 빨강. 섣부른 판단으로 남편과 관계하고 아이를 가지게 됐던 순간 디지털시계가 시간을 알리던 그 빨강. 케빈이 에바의 개인 공간을 물감으로 더럽혔던 순간의 빨강. 그리고 케빈이 학교 친구들을 학살했던 그 순간을 목격한 에바를 감싼 빨강. 그 순간을 회상하고 모든 죄를 자신이 지고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빨간색이 있다.
빨간색은 후회와 불안정한 과거에 대한 에바가 ‘속죄해야 할 것’들이다. 에바는 케빈을 낳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후회는 계속해서 에바 자신을 칭칭 감아버린다. 후회에 둘러싸인 에바는 케빈이 일으킨 사건을 회상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 화살을 맞고 죽는 것처럼 붉은빛 속에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케빈에게는 그런 붉은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케빈은 후회하고 속죄하지 않기 때문일까. 모든 죄를 에바가 짊어지기로 선택했기 때문인 것일까.
결국 에바는 속죄하기를 택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쏟아낸 혐오와 증오를 받아내고, 집과 자동차에 뿌려진 낙인과도 같은 페인트를 긁어내고 이내 파란색으로 그 흔적을 덮어낸다. 그 과정에서 케빈을 만나 그때를 이야기하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종반부에서 그 대화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결정적인 것은 여전히 에바는 이해하지 못하고 케빈은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그 일말의 여지마저 제거해 버린다. 그렇다고 에바는 케빈을 포기하지 않는다. 집의 한편에 있는 방을 과거 케빈의 방과 똑같이 꾸미고, 케빈의 옷을 다려 가지런히 캐비닛에 넣는다. 케빈이 어떤 행동을 하고 모습을 갖던, 에바는 있는 그대로 케빈을 볼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에바는 모성애가 강한 인물이다. 케빈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에바가 그를 너무 사랑했기에 감싸지 못한 것이다. 사랑했기에 자신의 관심으로 그를 덮으려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집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너무나 쉽게 망쳐버린 케빈의 흔적을 쉽게 뜯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에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할 수 있다. 작 중에서 에바 자신마저도 그런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자기 자신을 ‘그 현장’으로 다시 소환시킨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한다. 케빈을 자식으로서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케빈이 영원히 에바가 납득하지 못할 행동을 이어간대도 에바는 그 자리에 서서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에바가 케빈을 ‘섣불리’ 낳았던 것에 대한 참회일 것이며 ‘서투르게’ 케빈을 교육했던 것에 대한 나름의 속죄다.
그러나 에바에게 그 속죄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사회에서 흔히 중범죄의 가족은 ‘연좌제’의 개념으로 낙인찍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고루한 개념이 돼 사라져 버린 그 연좌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은 정말 납득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에바가 짊어질 수 있는 그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아야 할까. <케빈에 대하여>는 미스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끝없이 반복되는 미스터리를 다시 한번 전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겠느냐고. 그렇다면 생각해 볼 때다. 우리는 에바와 케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케빈이 악한이 된 것에 대해 에바에게 그 짐을 모두 짊어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에바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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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운명이란 무엇인가. 이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성경에서부터 공상과학소설까지 운명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다. 그리고 이는 문학에서 영화까지 매체를 달리하면서도 이어진다. 드니 빌뇌브는 운명이란 주제를 거듭해서 표현했다. 〈그을린 사랑〉(2011)부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까지 오이디푸스 신화, 전쟁, SF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운명과 자아를 탐색해 왔다. 특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컨택트〉(2017), 《듄》 시리즈(2021-2024)는 운명에 대한 탐색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다. 특히, 〈컨택트〉, 《듄》 시리즈 모두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각 작품에서 운명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차이가 드니 빌뇌브의 운명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관점을 파악하는데 유의미하다. 그렇기에 이 두 작품을 바탕으로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을 탐색하고자 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을 통해 드니 빌뇌브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운명의 의미을 정의하고, 〈컨택트〉와 〈듄〉과 〈듄: 파트2〉에서 나타나는 운명 양상의 차이를 살펴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먼저, 〈컨택트〉, 《듄》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운명의 양상을 살펴 드니 빌뇌브의 운명을 정의하자. 그의 운명론은 ‘예지자의 등장’, ‘상대 문화의 습득’, ‘수행의 서사’라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 차저.’라고 정의한다. 즉,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운명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야 하고, 그것이 미래에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예지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두 영화에서의 예지자의 등장을 살펴보면, 〈컨택트〉에서는 헵타포드, 《듄》 시리즈에서는 베네 게세리트가 그 예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헵타포드는 외계 생명체로서, 인간과 다른 체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베네 게세리트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두 존재 모두 외부의 독자적 문화를 가진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방인이다.
또한, 헵타포드는 우주에서 온 존재이고, 베네 게세리트는 우주를 떠돌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두 존재 모두 지금 있는 곳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혹자는 인간의 특성을 상상력으로 정의할 정도로, 상상은 인류 문명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없는 것을 떠올리도록 하여, 욕구를 만들고 목표를 갖게 하며 변화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규칙과 사회를 만들고 체계화된 제도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이러한 상상을 자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두 존재는 인간의 종적 성질 및 원초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
게다가 두 존재는 모두 주인공을 각성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헵타포드는 언어를 전달함으로써, 베네 게세리트는 고통을 줌으로써 각 영화의 주인공을 각성시킨다. 그리고 그 각성의 과정은 주인공이 이전에 겪어 본 적이 없는 무언가이며, 그것을 통해 극심한 감정을 겪는다. 딸의 죽음을 알게 된다거나, 죽을 듯한 고통을 겪는 것처럼. 그리고 이로 인해, 두 주인공은 새로운 선택의 문제를 부여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각성 또한, 이전에 두 주인공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성 이전의 선택과 이후의 선택은 차이가 있다. 이전의 선택은 누군가에 의해 제안된 것 사이의 선택이라면, 각성 이후의 선택은 목적 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자발성에는 정해진 미래라는 외부의 압력이 존재하나, 그 순간만은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하는 듯 보인다. 즉, 각성은 주인공의 선택의 결과이며, 그에 따른 대가를 만들고, 그 이후 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즉, 드니 빌뇌브의 운명에서 상상과 결부된 존재로서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이방인인 예지자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또한, 이 각성의 과정에서 드니 빌뇌브는 플래시 포워드를 사용한다. 드니 빌뇌브는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플래시 포워드를 독특하게 사용한다. 그의 플래시 포워드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 영화의 시작에서 플레시 포워드를 플래시 백처럼 시킨다. 그로 인해, 그것이 단순한 환상인지, 과거에 있었던 일인지, 미래에 있을 일인지 관객을 한번에 인지할 수 없다. 둘, 클로즈업 쇼트나 롱 쇼트로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제공한다. 그는 플래시 포워드로 각성의 순간을 표현하며, 운명을 보여주는데, 이는 시퀀스가 아닌 쇼트로 단편적으로 표현되며, 일상적인 스케일의 화면이 아닌, 극도로 확대되었거나 축소된, 그리고 극도로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화면으로 표현하여 이질성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내레이션의 존재다. 그의 플래시포워드는 예지자에 의한 각성으로 야기됙기에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른 음성이 삽입된다. 그리고 이는 주로 내레이션으로 삽입되며, 영상과 음성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특징은 각성 순간의 혼란을 표현하며, 예정된 미래로 인해 관객이 느낄 허무와 수동성을 옅게 하고, 모호함에 의한 긴장감과 주인공의 적극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다음으로, 상대 문화의 습득을 살펴보자. 이는 앞선 예언자에 의한 각성과 연결된다. 하지만 단순히 예언자에 의한 각성을 넘어 더 능동적인 문화 습득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다. 예언자에 의한 각성은 앞선 문단에서 살폈으니, 후자만 다뤄보자. 먼저, 〈컨택트〉를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문화 차이는 헵타포드의 문화와 인간의 문화다. 그리고 이들의 소통은 언어를 매개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외에 또다른 문화 차이의 축이 존재한다. 이는 물리학자와 언어학자의 차이다. 이는 물리학에서의 관점 차이와 언어학에서의 음성-문자 차이로 나타나며, 소설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먼저, 관점 차이를 살펴보면 언어학자와 물리학자는 페르마의 원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페르마의 원리는 빛의 굴절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이 또한 문화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의 차이가 나타난다. 소설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설명되며,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나, 영화에서는 그 과정까지 세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실현되지 못한 몇 가지의 문화 차이가 있으나, 어찌하였든 이 차이를 담은 원작을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드니 빌뇌브는 문화 수용이 운명을 수용하는 과정과 연관됨을 명백히 밝힌다.
역시나 《듄》 시리즈에서도 문화 수용이 드러난다. 오히려 상대의 문화 수용은 《듄》 시리즈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특히 눈에 띄는 문화의 수용은 프레멘과의 교감이다. 그 외형이나, 영화에서의 설정을 살펴보면 주인공은 과거 유럽 가문의 후계자를 상징하고, 프레멘은 그들이 침략한 곳의 원주민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가문이 멸하자, 프레멘의 터전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운다. 이처럼 두 영화에서 모두 다른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수행의 서사를 살펴보자. 드니 빌뇌브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운명을 받아들인 이후의 과정에서 수행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컨택트〉는 그 영화 전체가 수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헵타포드에게 가기 전, 언어학자는 외계 생명체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와 학생들이 강의에 나오지 않는데도 강의를 하러 대학에 나가는 사람이다.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헵타포드에 의해 비극적인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그 행위를 기꺼이 수행한다. ‘그럼에도 하는’ 사람인 것이다.
《듄》 시리즈에서도 미래를 수행하는 행위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듄〉에서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전인 주인공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듄: 파트2〉에서는 이 모습이 더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듄: 파트2〉에 오며,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심화되고, 지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지 고민하는 것 사이의 갈등이 반복된다. 즉, 지금의 수행과 미래의 수행 사이의 갈동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써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이 나타난다. 바로, 이 운명을 거스르는 수행을 하려는 자의 등장이다. 변화한 주인공으로 인해 조력자가 반동 의지 가져 발생하는 변화는 운명에 의한 수행의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지껏 수용적 수행만이 강조되다, 소설에서 영화로 재창작하며 비중이 확대된 인물이 반동적 수행을 하려는 의지를 품는 것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또다른 차원의 운명론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확신의 수행이든 의심의 수행이든 간에, 그리고 수용의 수행이든 반동의 수행이든 간에, 어찌하였든 드니 빌뇌브는 운명에 의한 실천, 즉 수행을 강조한다. 행위로 이어짐으로써 운명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영화 모두 운명을 수행하는 서사를 갖추는 것이다.
즉,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은 운명을 예지하는 자에 의한 운명의 시작, 차이 수용으로 인한 운명의 과정, 수행으로 인한 운명의 완성으로서 정의될 수 있다. 특히 이 세 요소 중, 앞의 두 전제 예지자의 존재와 상대의 문화 수용은 모든 작품에서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는 운명의 ‘예정된 미래’의 가정인 내재적 의미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을 실현하는 ‘수행’의 측면에서 〈컨택트〉, 〈듄〉, 〈듄: 파트2〉는 서로 다른 태도를 견지한다. 그로 인해, 세 영화는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각자의 서사를 쌓아가는 다른 영화로서 존재한다. 먼저, 〈컨택트〉를 살펴보자. 〈컨택트〉에서의 수행은 ‘행위적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행위적 태도란 말 그대로 ‘하는 것’,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행하는 것 자체가 운명의 완성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후 언급될 다른 태도에 비해 다소 조작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컨택트〉에서 드러나는 행위적 태도는 실존주의와 연관이 있다. 드니 빌뇌브는 이 영화에서 인간 개인과 개인의 주체성과 존재성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행위는 ‘선택’이 되고, 영화의 끝에 다다라 자유의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이유가 설명되는데, 이는 “지구에 방문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다. 또한 ‘행동’이 원서에서 ‘연기’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 “performance”로 표현되며, 모든 것이 정해진 미래로의 착실한 수행이며, 이는 정해진 각본대로의 연기와 닮았음를 의미한다.
이는 실존적 측면에서 자유의지의 문제를 야기한다. 아무리 현재에서 바꾸고자 노력해도 어차피 올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로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정된 미래를 가정하는 운명의 개념은 실존적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수행을 자유의지의 결과로 해석한다. 이는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드러낸다. 이를 관찰하기 전에 영화에서 운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영화의 시작, 아이의 웃음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느 정보 없이 첫 장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연스레 이것이 플래시 백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거쳐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첫 장면이 플래시 백이 아닌 플래시 포워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순환하는 구조를 갖춘 영화의 형식은 운명의 ‘이미 예정됨’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순환하고 예정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의 구조 안에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우리가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체적이다. 그녀는 강의를 나가고, 정부의 요청에 응대하고, 매일같이 우주선에 올라가는 ‘그럼에도 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외계 생명체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지, 우주선에 어떤 사람을 보낼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할지를 선택한다. 이는 그들이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최선의 결과을 얻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끝내 운명을 맞닥뜨렸을 때, 다시 첫 장면의 내레이션을 떠올리며, 플래시 포워드로 묘사된 그 미래는 운명에 대한 막연한 수행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행임을 알게 된다. 비로소 관객은 이를 통해, 일종의 투쟁처럼 보이기도 하는 영화 속 인물의 적극성이, 운명에 대한 수행이 수동적 행위가 아닌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며, 기꺼이 운명을 행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드니 빌뇌브는 이를 통해 운명 수행의 행위적 태도를 드러내며, 운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 있음을 밝힌다.
《듄》 시리즈는 〈컨택트〉와 달리 보다 가치가 개입된 측면의 수행을 다룬다. 각자의 수행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의도성에 따라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판단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때의 양상이 〈듄〉과 〈듄: 파트2〉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이 두 편의 영화는 운명의 측면에서 따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듄〉을 살펴보자. 〈듄〉에서 묘사되는 운명의 수행은 메시아적 태도다. 메시아적 태도란 종교적 의도성을 갖춘 운명관으로, 구원을 목적한다.
〈듄〉은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받아들이는 과정을 주요 골자로 한다. 성경을 모티프로 가지고 와, 진행되는 서사는 점지된 운명과 그를 수행해야하는 인물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성경에서 묘사되는 운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주인공을 예지자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태어난 구원자로 설정하며, 운명이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즉, 운명은 거시적으로는 예지되는 반면, 미시적으로는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운명의 벗어남은 주인공의 부모, 즉 개인의 의지의 산물로서,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통해 바뀔 수 있는 운명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묘사되는 주인공은 예수적 인간으로,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진 인간이다. 또한 그의 운명은 구원을 목적으로 하며, 가장 성스럽고 완전에 가까운 존재로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통제에서 벗어나 의도와 다르게 태어난 존재란 점에서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괴리에 의해서 주인공은 혼란을 겪는다. 결국 운명에 대한 부정에서 인정으로 넘어가는 이 서사에서는 운명을 인식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이를 온전히 수용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운명의 존재를 인지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갖기 시작하는 데서 멈추는 이 영화의 운명관은 이후 〈듄: 파트2〉에서 발전된다.
〈듄: 파트2〉에서는 운명에 수용적 태도와 거부적 태도의 갈등으로서 수행에 대한 태도가 설명될 수 있다.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며 이를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갈등은 운명에 의해 연결된 두 여성 캐릭터로 표항된다, 수용적 태도는 어머니로서, 거부적 태도는 챠니로서 드러나며 운명에 대한 내적 갈등을 심화한다. 끝내 수용을 택하는 주인공의 자세는 햄릿적 인간을 닮았으며, 운명에 대한 고민은 말 그대로 “to be or not to be”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선택한 수용적 태도는, 퀴사츠 해더락을 낳는 계획된 운명을 바꾸려 했던 자인 어머니로서 상징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거부적 태도를 드러냈던 예지자로서, 예지의 각성제인 ‘진실을 밝혀주는 독약’을 마심으로서 수용적 인간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운명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흥미롭게 표현한다. 특히, ‘진실을 밝혀주는 독약’을 마시는 것이, 주인공 또한 운명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견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각성제로 인한 운명의 수용을 시각적,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다. 게다가 수용적 태도를 상징하는 그녀는 선택 주체인 주인공의 어머니로서, 애인보다 더 강력한 운명이라 할 수도 있을 혈연으로 연결된 자라는 점에서도 수용적 수행의 상징으로서의 흥미로운 점을 지닌다.
어머니의 운명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챠니와 겹쳐 보이며, 마치 챠니 또한 이러한 변화를 겪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야기한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는 챠니가 운명에 대한 거부적 수행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영화를 마침으로서, 새로운 태도의 가능성을 남기고, 운명에 대한 수용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님을 밝힌다. 소설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챠니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괄목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편의 영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드니 빌뇌브의 운명 수행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컨택트〉와 《듄》 시리즈 사이의 시간 간격이 있었따는 점과 〈듄〉과 〈듄: 파트2〉는 함께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운명에 대한 행위적 수행에서 의도적 수행으로의 변화는 그의 운명관의 변화로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메시아적 수행과 상반된 수행은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듄》 시리즈에서의 〈듄〉과 〈듄: 파트2〉 서사적, 주제적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듄〉은 〈듄: 파트2〉를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드니 빌뇌브의 운명관은 메시아적 태도를 통해 운명 수행에서의 의도 개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햄릿적 태도를 통해 상반된 수행의 포용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운명 그 자체도 ‘절대로 변화할 수 없는 것’에서, ‘변화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하지만 변화할 수도 있는 것’으로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에서 자유의지 개입의 여지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컨택트〉에서 《듄》 시리즈로 넘어오며, 백인 서사 비틀기가 강화되었음을 확인함으로서도 알 수 있다. 백인,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외부인, 여성 중심의 서사를 강화하는 것은 그의 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주로 소설보다 남성 인물의 비중이 줄고, 여성 인물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하고, 원주민의 문화를 습득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강탈의 서사와 백인에 의한 원주민 구원 서사를 해체하고 소통과 화합의 서사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택트〉에서는 외계의 언어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외계어와 인간어 사이의 약화된 우열관계가 묘사되고, 상호 간의 문화 공유이기보다는 선물주기식의 일방적인 공유에 그친다는 점에서 운명에 대한 단편적인 측면만을 보여준다는 한계가 발생한다. 반면 《듄》 시리즈에서는, 한편에서 프레멘과의 상호작용에서 단순히 언어 공유를 넘어 그들의 지역에서 생활하고 문화에 융화된다는 점에서 비튼 서사를 보여주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백인 남성 메시아와 그를 추종하는 원주민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그 신념 또한 백인에 의해 주입된 신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백인 중심의 서사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복합적인 운명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주인공과 거부하는 챠니를 통해 백인 남성 중심 서사와 운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렇기에 드니 빌뇌브는 〈컨택트〉에서는 자유의지를 수용의 측면에서만 다룬 것을 넘어, 《듄》 시리즈에서는 메시아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등 거부의 측면에서도 운명의 수행을 탐구한다.
이처럼 드니 빌뇌브는 두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통해, 자신의 운명론을 드러냈다. 그는 예지된 미래를 수행하는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살피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깊이 있게 이야기했다. 예정된 것 속에서, 예정된 것을 기꺼이 해내기도 하고, 예정되지 못한 것을 열렬히 해내기도 하며, 운명을 수용하든 그렇지 않든 기꺼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인물을 통해, 그는 운명 속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성립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기에 그의 운명론은 공허하지 않고 투쟁적이며 적극적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살아있는 운명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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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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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메인 예고편
일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전종서).
전 남친과의 격한 이별 후 호기롭게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한다.
일도 연애도 호구 잡히기 일쑤인 서른셋 ‘우리’(손석구).
뒤통수 제대로 맞은 연애의 아픔도 잠시
편집장으로부터 19금 칼럼을 떠맡게 되고 데이팅 어플에 반강제로 가입하게 된다.
그렇게 설 명절 아침!
이름, 이유, 마음 다 감추고 만난 ‘자영’과 ‘우리’.
1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1일 차부터 둘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게 되고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데...
이게 연애가 아니면 도대체 뭔데?
발 빼려다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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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1차 예고편
모든 것은 악마가 시켰다!
1981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잔혹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악마가 살해하도록 시켰다고 주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건의 배후에는 악마에게 빙의된 소년이 있었는데…
초자연 현상 연구가 워렌 부부의 사건 파일 중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실화!
진실 혹은 거짓? 살인사건의 범인, 인간인가 악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