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4-03-21 13:46:51
쏘는 족족 빗맞는 액션과 스토리
영화 <리볼버 릴리> 리뷰
아야세 하루카가 리볼버를 잡고 적을 처단한다. 이것만으로도 기대하게 하는 <리볼버 릴리>가 베일을 벗고 그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에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그 남자가 아내에게>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지며, 볼거리가 풍성하고 드라마적으로도 짜임새 있는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게 사실. 하지만 쏘는 족족 빗맞는 액션과 스토리는 이내 실망감을 안겨주고, 139분의 러닝타임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3년 동안 57명 살해! 최고의 킬러라 자부하는 스파이 오조네 유리(아야세 하루카)는 더 이상 총을 잡지 않고 조용히 산다. 하지만 그의 평안했던 삶을 깨뜨리는 일가족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과거 연이 있던 이와 연관된 일로 그녀는 곧장 사건의 장소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비밀 자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타(하무라 진세이)를 만난다. 신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유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녀는 신타를 돕기 위해 다시 총을 들게 된다.
<리볼버 릴리>는 여성 킬러를 내세우며 스파이 액션의 재미를 주려고 노력한다. 유리는 최고의 킬러로서 접근전은 물론, 총 하나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특히 리볼버가 주 무기인데, 극 중반 유리의 집에서 일본 육군에 대항해 벌이는 총격 장면은 그녀의 장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킬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습은 여성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더불어 과거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절대 악으로 규정짓고 이들을 향해 총격을 겨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대담하고 희열감을 준다.(한국인이라면 더 큰 쾌감을)
문제는 이런 값진 총알을 난사한다는 점이다. 일단 액션이 느리고 더디다. <존 윅> 시리즈는 아닐지언정 전설적인 킬러이자 스파이가 주인공인 이 영화의 액션은 스피디함이 떨어진다. 2~3개의 카메라로 원신 원컷 촬영을 하고, 이를 편집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주려 했다는 감독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긴박감은 떨어지고 액션 구성도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중반부 유리의 집에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이나 후반부 안개를 활용한 총격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그마저도 쉽게 잊힌다. 유리를 내세운 먼치킨 액션이라는 점에서 개연성을 따로 떼어놓고 봐도 전체적인 액션 구성이 루즈한 건 지울 수 없다.
스토리 전개도 더디다. 영화는 비밀문서를 가진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든 킬러 유리의 이야기인데, 감독은 이들을 통해 결과 반전(反戰)을 꾀한다. 유리와 함께 뜻을 함께하는 어른들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던진다. 특히 유리는 자기 손은 피로 더럽혀질지라도 아이들의 평화를 위해선 온전히 희생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초반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전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해 좀처럼 스토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스파이 액션 장르에 걸맞지 않게 유사 모자로 등장하는 유리와 신타, 그리고 이들의 연결고리인 킨야(토요카와 에츠시)의 관계를 풀어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게다가 후반부 부질없는 전쟁의 의미와 목적을 상기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의미 없는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윤리 선생님이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처럼. 후반부에는 유리의 조력자인 요시아키(하세가와 히로키)가 그 역할을 도맡아 전쟁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직간접으로 전한다.
가장 아쉬운 건 관동대지진 1년 후 화려함이 극에 달했던 다이쇼 말기의 시대상을 너무 표면적으로만 다뤄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은 점이다. 관동대지진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화려함으로 감추려 하고, 군대는 이런 유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도리어 전쟁에 목메고, 사적 욕심을 채우려는 그 의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술이나 의상에 신경은 썼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친 모양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그 선봉장에는 아야세 하루카가 있다. 액션에 최적화된 배우는 아니지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총으로 적을 처단하는 모습만 봐도 멋짐 폭발. 어떻게든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끌고 간다. 여기에 하세가와 히로키, 시시도 카프카, 후루카와 코토네, 시미즈 히로야, 토요카와 에츠시, 사토 지로, 아베 사다오 등 배우들도 제 역할을 다한다. (물론, 이 좋은 배우들을 적절히 활용했냐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만.) 특히 극 중 유리와 함께 뜻을 같이하며 멋진 총격 액션을 선보인 나카 역에 시시도 카프카, 코토코 역에 후루카와 코토네의 연기와 이미지는 매력적! 시시도 카프카의 장총 액션은 아야세 하루카의 리볼버 액션만큼 인상깊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리볼버 릴리> 무대인사를 통해 이 작품이 자신의 첫 액션영화였고, 그 자체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아야세 하루카도 이 작품 참여가 큰 도전이었을 터. 영화 완성도를 논하기 전 이들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에는 쏘는 족족 명중하는 작품으로 만나길 희망한다.
사진 제공: (주)도키엔터테인먼트
평점: 2.5 /5.0
한줄평: 화려한 총알이 아까울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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