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10-26 10:17:14
영화는 역사를 착취한다, 바로 이렇게
〈플라워 킬링 문〉
영화의 마지막, 한 남자가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로 무대 아래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1920년대에 있었던 아메리카 선주민과 그들의 재산을 노린 백인들의 범죄(〈플라워 킬링 문〉의 줄거리) 이야기다. 화자는 이 거대하고 체계적인 범죄의 색출이 FBI의 창립자 J. 에드거 후버 덕에 가능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FBI와 이 조직이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를 은근히 드높이는 용비어천가란 소리다. 무대 위에는 화자 말고도 이야기의 주요 대목마다 적절한 소리를 넣는 특수 효과 전문가들과 오케스트라가 있다. 그렇다. 이 무대는 영화를 닮았다. 그리고 이 무대와 영화의 닮음은 〈플라워 킬링 문〉의 서사와 결합해 하나의 메시지를 이룬다.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영화가 필연적으로 이를 스펙터클로 전시하고 소비할 수밖에 없다는, 즉 영화는 역사를 착취하기를 피할 수 없다는 자기 성찰적 메시지 말이다. 기막힐 정도로 시니컬한 통찰이다.
이제 영화의 시작으로 가 보자. 아메리카 선주민 오세이지족의 땅에서 기름이 난다. 마을의 부보안관이자 유력 인사인 킹(로버트 드 니로)의 말을 빌리자면, 오세이지족은 ‘똑똑하게’ 처신했다. 땅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대신 이윤의 지분을 얻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부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인다. 오세이지족이 머무는 곳도 마찬가지다.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참전 후 돈을 벌기 위해 먼 친척인 킹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어니스트의 말투와 행동, 생김새에서 드러나듯 그는 가난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 때로는 거칠지만 종종 얼뜨기 같은 하층 계급 남성성을 체현한 인물이다.
킹은 어니스트에게 솔깃한 제안을 건넨다. 네가 제법 번지르르한 외모를 가졌으니 부유한 오세이지족 여성을 대상으로 운전기사 일을 하며 그중 한 사람을 부인으로 맞이하라는 것. 오세이지족 가족의 일원이 되면 상속을 통해 정당한 재산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 윌프리드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윌프리드는 몰리에게 접근하고, 둘은 결혼한다.
한편 마을에서는 오세이지족 선주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중이다. 그러나 수사 기관은 그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오세이지족은 이들 사건이 자기 재산을 노린 백인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돈만 가졌을 뿐 수사권 등 공적 권력을 행사할 권한은 없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킹과 윌프리드의 주도로 몰리의 가족도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어머니, 언니, 동생……. 몰리는 윌프리드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윌프리드 역시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지만 킹의 범죄 제안을 완전히 거스르지는 못한다.
“집안의 주도권을 되찾아!” 킹과 몰리 사이의 긴장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사다. 이 대사는 백인 남성인 윌프리드가 오세이지족 선주민 여성 몰리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장악해가는 과정이 가부장적 권력을 재확립하는 일의 일환임을 보여준다. 부권 확립은 백인의 권력을 재강화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다. 가난한 백인과 부유한 선주민이라는 ‘뒤집어진’ 구도를 ‘바로잡는’ 일 말이다. 킹과 윌프리드가 몰리 가족을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는 백인 남성의 국가인 미국의 권위가 어떻게 확립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범죄를 응징하는 주체 역시 백인/국가 권력이라는 점이다. 몰리는 마을 안에서는 선주민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접 워싱턴으로 향해 대통령에게 수사를 촉구한다. 이후 후버가 창설한 FBI의 전신인 조직의 요원들이 파견되어 킹과 윌프리드를 수사하고 ‘정의’를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몰리는 윌프리드가 몰래 투약한 안정제에 취해 내내 시체와 같은 상태에 머문다. 즉 사건의 당사자인 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배제당한 채 수동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백인 남성이 주체(수사 기관)와 타자(범죄자) 역할을 독점하고, 착취당한 선주민은 역사의 무대에서 내쫓긴다.
요컨대 〈플라워 킬링 문〉은 불법적 폭력과 합법적 권리(상속)를 결합해 미국이 어떻게 소수자를 착취하며 부와 권위를 확립해왔는지를 고발해온 마틴 스코세이지의 문제의식이 다시 한번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코세이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무대 위에서 오세이지족의 비극을 그럴듯하게 가공해 들려주는 남자는 거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이야기마저 스펙터클로 소모될 수밖에 없음을 보인다. 무대 앞에는 부유한 백인 남녀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무대 위 화자를 보고 있다. FBI가 킹과 윌프리드를 처단하는 이야기는 백인/남성 국가의 설립 과정의 에피소드로 소비될 때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듯이. 이 장면은 역사적 비극을 소비 가능한 이야기의 형태로 유통하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자조와 냉소, 무기력감의 토로다. 영화란 무엇인지에 관한 시끌벅적한 논쟁의 중심에 선 마틴 스코세이지는 역사적 비극과 이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마주한 출구 없는 폐쇄적 회로를 그려내 미국, 그리고 영화를 고발한다. 그가 영화 거장이라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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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기다린 값을 하긴 했던 <아바타> 후속작
그 후
누군가가 "제이크! 잘 지내고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난 현재. 반인불수의 몸이었던 제이크 설리. 지금은 나비족의 몸을 얻어 살고 있다. 인류와의 전투가 있었다. 쉽지 않게 이긴 설리. 설리는 같은 전투 파트너였던 네이티리와 함께 가족을 이뤘다. 아이는 세 명이나 낳았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말고 부부에겐 두 자녀가 더 있다. 이 두 명의 아이들은 입양아들이다. 한 명은 '키리'다. 키리는 1편에서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의 딸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아이는 '스파이더'다. 이 아이는 나비족이 아니다. 엄연히 인간인 스파이더. 인류와 나비족 간의 전투가 끝나고 몇몇 과학자들은 판도라에 남았었다. 원래라면 판도라에서 지구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나비족과 함께 살았던 아이. 그 아이도 어느덧 커서 나비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두 명의 부모에 다섯 명의 자녀라.. 쉽지 않다. 만약 2022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애국자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난이도가 높은 육아 생활. 한 명만 낳아 길러도 어려운 걸 다섯 명 씩이나 감당하고 있으니 일상이 어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토루크 막토로서 외부 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설리. 이번에 설리와 군인들은 RDA의 보급 수송 열차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망을 봐야 하는 설리의 두 아들 로아크와 네테이얌은 아버지의 명을 안 듣고 군사작전에 참여한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두 아들.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혼낸다. 근데 이 두 아들에게 위축된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다. 어딘가로 향하는 설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 1편에서 인류와 나비족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온갖 시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울창한 숲, 출구는 물의 길처럼 안 보이는 것 같다. 서성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저 멀리에서 모르는 얼굴의 아바타들을 확인한다. 쟤들 뭐야? 처음 보는 얼굴들 같았다. 아니. 그 낯선 아바타들은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 너는 설리의 아이들이군."
현장 로케이션 힘들었을 듯
13년을 기다려온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13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2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3번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인간은 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내지 않았다. 만약 어떤 영화감독이 있다고 치자. 한 영화가 나오고 13년 후에 다음 작품이 나온다고 해보자. 그럼 그 사람을 영화감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투자받는 것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카메론 할아버지는 창작자의 이름값과 시리즈의 파워 하나 믿고 차기작을 발표했다. 이 긴 시간 동안 뭘 했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시간 동안 세계관을 구상하고 CG 이미지를 뽑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이 <아바타 : 물의 길>은 긴 시간을 희생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극의 각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그린 후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후자를 먼저 만든 다음 줄거리를 짠 느낌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화는 물 샐 틈이 없다. '이런 것도 짰어?' 싶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하는 제의식, 나비족이 타고 날아다니는 동물, 판도라에 사는 다른 이주민, 그 외에도 어떤 행사든 빼곡히 차있는 디테일까지.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계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관객을 설득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감독은 이해라도 한 듯이 긴 시간을 압축시킨 설득력을 구현한다. 영화의 자그마한 소재 하나하나가 다 판도라 행성, 내지는 나비족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어 작품의 리얼리티성을 부여한다. 어디서 본 것들인데 묘하게 변주한 느낌이 탁월했다.
이 세계관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 중 하나는 때깔이다. 어마어마하다. 아마 내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이미 찜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두 곳의 공간 세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바로 숲과 바다라는 것이다. 첫 번째 '숲'이라는 공간은 이미 전작에서 볼 수 있다. 거기서 놀랍던 이미지가 그대로 보인다. 그대로 보인다고 해서 뭔가 신선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숲' 신은 아이들이랑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주에 살다 보면 곶자왈이라는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글쓴이는 제주 원주민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 곶자왈 같은 숲 묘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각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연하다. SF 영화니까. 초반부 스타트가 어색하면 극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극 한 시간을 할애하는 숲 세팅에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시각화의 힘이다. 후술 하겠지만 극 전개에서 이 숲에서의 사건 전개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집중력을 이끄는 건 이 덕이다. 나머지 두 시간을 할애하는 바다 묘사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와 육지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른 것이 필연적이다. 이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신선해야 한다. 그런데 아예 없는 걸 갖고 오기에는 사람의 뇌로 감당할 수 없다. 이 지점을 살짝씩 변주한 창작자적 재능이 어마어마하다. 빛이 들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어디에서는 그림자가 들고. 어디에선 빛이 굴절되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해서 실제로 카메라를 갖고 찍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후반부에 근 1시간을 할애하는 액션 시퀀스도 대단하다. 이 배에서 일어나는 액션을 잘 보다 보면 전작과 본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액션에 다 때려 박았다. 판도라의 동물들 나오고. 바다 생물로 빌런들 무찌르고. 화살, 총, 전투기 나오고. 여러 명이 구상해서 만들 상상력의 총합체를 이야기의 전개에 이질감 없이 잘 보여줬다. 이걸 구체적으로 다 구현했다고? 의 생각으로 영화를 봐도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진짜 카메라 들고 가서 해외 로케 안에서 찍은 것 같다.
해양 덕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다. <터미네이터 2>, <피라냐 2>, <에이리언 2>부터 시작해서 <타이타닉>까지 글쓴이 같은 90년대생에게 이 사람의 영화를 한 번도 안 들어보기는 불가능하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한 가지의 덕후 기질을 키워냈다. 바로 해양생물 덕후라는 것이다. <피라냐 2>는 제목만 봐도 바다라는 공간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은 배가 바다에 빠지는 이야기다. <어비스> 역시 바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심지어 <딥 씨 챌린지>라는 바다 다큐멘터리도 만든 적이 있다. 영화 잘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면서 해양 생태계에 대한 덕후력을 뽐내는 제임스 카메론. 그의 러닝타임에서 바다를 꾸준히 볼 수 있을 만큼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피라냐'를 연상케 하는 동물에게 쫓기는 부분이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 동물이 피라냐와 닮았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글쓴이는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쫓고 쫓기는 동물을 구현하는 방식은 그 시절 <죠스>와 <피라냐>를 위시로 한 호러 영화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또 극에서 배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배에서 극의 액션신이 이뤄진다. 이 배는 한 번 전복된다. 이불 덮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닌 이상 액션의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주변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그 바다에 빠지고 난 다음의 인물들의 모습은 <타이타닉>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액션도 묘하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또 나비족의 근본적인 세팅 자체가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형태랑 좀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다. 또 사실상 영화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쳐도 그가 해왔던 영화 <에일리언 2>의 기본 바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은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의 작가적 특성을 빼곡하게 삽입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만의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품이 넓은 이야기
영화의 강점으로 이야기를 뽑고 싶다. 일단 글쓴이는 1편의 이야기가 나름의 깊이를 갖고 있는 소재와 전개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 이야기 구상을 그전부터 했을 테니 10여 년 전에 구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 12월 이 영화를 다시 돌아보면 전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몇 개가 생각나게 한다. 일단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설리는 인간으로 우선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인간인 설리 / 아바타인 설리 두 차이점을 연출로 내내 조명한다. 당연히 '어떤 측면이 진정한 인간에 가까운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다룬 연출도 곳곳이 보인다. 우선 쿼리치 대령에게서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또 코로나19를 대응했던 어떤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또 얼마 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던 복제인간에 관한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역시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와 '원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다. 감독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이야기를 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소재들은 인간사에서 클래식한 소재긴 하다. 그러나 이를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작가 제임스 카메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의 통찰력을 새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편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일단 영화에서 두 공간적 세팅은 숲과 바다다. 이 두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손가락의 개수다. 원래 나비족이라 함은 손가락이 네 개여야 한다. 그런데 제이크의 아이들은 5개다. 5개라서 아이들은 다른 나비족들에게 놀림받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손가락이 5개다. 어? 손가락이 5개라서 놀림받는다고? 이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저 판도라에 가면 놀림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관점을 옮기는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우리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혐오는 우리와 다른 지점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극에서 주류가 비주류를 대하는 방식 역시 이 혐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내실이 있는 비유를 든 셈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를 만드는 것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가?를 물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숲의 종족과 바다 종족이 아주 살짝 다른 피부색으로 세팅했다는 것, 빌런 쪽인 쿼리치 대령이 어떻게 변했는가? 에 대한 것이 이에 대한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이 비유는 해양생물 '툴쿤'을 어떻게 캐릭터들이 바라보는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또 네이티리가 스파이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해서도 닿아있다. 이렇게 영화에서 끊임없이 소수자와 혐오, 차이와 배척이라는 소재를 곳곳이 새겨놓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사회드라마적인 소재를 잘 넣은 영화지만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가족영화'다. 이 가족의 구성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한 나비족이라고 볼 수 없다. 근원이 인간이니까. 어머니 네이티리는 나비족이다.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은 혼혈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다른 두 아이들의 친부모는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아니다. 아들 스파이더는 그냥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인데도 자기를 나비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딸 키리는 어머니가 그레이스 박사다. 어머니, 아버지의 피가 단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영화가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보면 영화의 핵심소재를 튼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족영화의 특징을 살렸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이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영화는 공간적 배경을 한 번 옮긴다.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는데, 여기서 이 인물들의 선택지에 대해서 근거가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 이 영화 자체의 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지만 딱히 1편에서도 인물의 선택이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스파이더와 키리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도 아쉽다. 스파이더는 후반부의 어떤 행보를 위해 거의 모든 인물의 행동이 기능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다. 단순히 그 인물과 그런 관계였다고 해서 그의 모든 일이 합리화가 된다면 좀 어색한 부분이 많다. 차라리 생사고락의 위기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리와 관련한 부분은 후반부에 시리즈를 펼치기 위해서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느껴지는 예수의 모티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절대자의 존재까지 시리즈라는 이유로 끝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의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시 이 키리도 물이 생명의 근원지라는 은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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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온다, 다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붕어빵같은 영화쯤은 있잖아?!
다코야끼 - 윤희에게.
파란색, 눈 특유의 시원한 향이 날 것 같고, 겨울 되면 아른아른하게 생각나던 첫사랑.
극장에 가서 못 본 게 한이 되어 지금까지 끙끙대고 있다. 겨우겨우 인디스페이스에서 12/18일에 상영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예매를 했다.(인디스페이스사랑한다 …) 윤희에게는 영화도 영화대로 정말 좋지만, 그 분위기자체를 사랑한다. 상상을 해보자, 코가 빨개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서 목도리를 하나 두르고, 그 향기를 맡으며 첫사랑을 보러가는 듯한 마음으로 윤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시나리오북 마저 완벽하다! 바깥부분이 천으로 되있는 듯한 느낌으로 부들부들해서 쓰다듬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내가 소장하고 있던 책은, 여름방학 때 바다에 가서 휴가를 즐기며 읽던 것이라 묘하게 바다향기가 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군고구마 - 트루먼쇼
-굿 모닝, 굿 에프터눈, 굿 이브닝, 앤 굿 나잇! 언제든 든든하고, 보면 힘이 난다! 힘이 나!
보면 힘이 난다. 어느 사람들은 보면 소름이 돋는다고도 하고, 그냥 슬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보다보면 힘이 난다. 그가 나를 보고 전하는 인사는 힘이 된다. 굿 모닝, 굿 에프터눈, 굿 이브닝, 앤 굿 나잇.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하루는 굿! 하면 좋겠다고 나에게 전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주인공이 결국에는 밖으로 나가게 된다.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은 세상에 대해 실망을 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탈출했던, 바로 그 순간을 기억하며 언제든 자신이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게 나를 힘낼 수 있게 만든다.
붕어빵 - 시네마 천국
-알프레도가 전하는 말들 속에 달콤한 영화의 추억들, 슈붕이든 팥붕이든 달달하다.
겨울의 초반에 보면 좋을 영화. 살바로테와 알프레도가 영화를 보는 그 눈빛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그 느낌이다. 달달하다, 달달해. 이 영화는 가끔 좋아하는 것이 식어도, 돌아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마치 붕어빵 가게가 겨울 그 날씨에 가면 환하게 불을 켜둔 듯이. 딱 이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다시 보면 뭔가 뭉클해지고 꿈틀대는 것들이 있다. 보다보면 눈물 젖은 달콤함이겠지만, 퍽퍽한 것도 가끔은 맛있다. 좋아하는 영화이니, 가끔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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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크리스마스 영화 추천 '폴링 포 크리스마스'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폴링 포 크리스마스
(2022.11.10, NETFLIX 공개)
감독: 자닌 데미언
출연: 린제이 로한, 코드 오버 스트리트 등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에 보기 딱인 영화가 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ㅡ^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폴링 포 크리스마스'인데요. 어디서 많이 본 포스터지 않나요??
저만 해도 넷플 들어가자마자 홈에 자주 뜨더라고요! 폴링 포 크리스마스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케이디, 린제이 로한이 주연이구요. 2022년 11월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예요
스키 여행 중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철없는 상속녀 시에라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인데요
정말정말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연말, 특히 크리스마스에 보기 좋은 영화로 강추해요!
크리스마스에 추천하는 이유 또 한 가지! 제목부터 '폴링 포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한 영화거든요 ㅎㅎ 빨강 초록 뿜뿜~ 선물 주고받고 뿜뿜~ 한 장면이 많고요.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12월 한 달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 같아요.
게다가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 징글벨 락 명장면 ㅋㅋㅋ 아시죠? 엔딩 크레딧에도 징글벨 락이 나오고, 영화 초반에도 린제이 로한이 징글벨 락을 부르는데 "나 이 노래 정말 좋아해" 하는데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연출이 굉장히 센스 있단 생각을 했어요
사실 줄거리 자체만 놓고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스토리긴 하잖아요
화려한 삶을 즐기던 재벌이 한순간에 기억을 잃고, 서민 체험을 하며 남주와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기억을 되찾게 되어도 회개(??)하고 착하게 산다는...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연출과 영상미가 미쳤기 때문이에요...이야기도 뻔하고 영상미도 그닥이고 재미도 없었다면 중간에 하차하고 싶었을 거 같지만... ㅎㅎ 앞서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크리스마스 영화로 최고거든요. 저는 무거운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센스 있는 말장난과 화려한 연출이라면 그냥 사랑합니다.
로코퀸 린제이 로한의 컴백! 연말에 보기 좋은 영화 추천 드렸는데요. 넷플릭스에 '폴링 포 크리스마스' 검색하면 시청하실 수 있으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엔딩 크레딧 나오면서 NG 모음 같이 나와요
전 엔지 모음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ㅎㅎ 행복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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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에요.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에게 전율을 느끼기는 몇 배로 어렵다. 말과 글은 다르기 때문에 그 갭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첫 장면부터 슬로운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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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짜릿한 영화는 처음이다. 그냥 전부 다 짜릿했다.
스릴러보다 스릴넘치고 액션보다 짜릿하며 수사극보다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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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선언을 할 때도, 위기에 처하고 선을 넘고 팀원들과 분열이 일어나고 궁지에 몰릴 때조차 나는 시종일관 '슬로운이니까!' 하며 조마조마하긴 커녕 절대적으로 그를 신봉하고있었다. (장담컨데 내가 보아왔던 작 중 그 어떠한 인물보다 슬로운에 대한 신뢰만큼은 절대적으로 높았을 거다. 아마 저기에 내가 있었더라면 뭐가 됐던 미스 슬로운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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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동안 슬로운은 내게 절대적인 리더였고 정신적 지주였다. 중간에 정말 '지진'이 일어 쓰나미가 덮쳤다 해도 나는 별 걱정없이 편안하게 슬로운의 행보를 관람했으리라.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대사 중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라는 슬로운의 대사가 있다.
이 대사가 영화 '미스 슬로운'의 구심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로비의 핵심이 통찰력이라면,
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다.
사실 영화를 구성하고 작품성을 이끌어내는 요소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작용하는 방법이 무수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연기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영화를 가장 몰입해서 보았을 때인 것 같다.
그 몰입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물들의 연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몰입을 넘어 이입하게되면 사실상 이외의 요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200% 수행해주는 배우. 덕분에 캐릭터만큼은 정말 인상깊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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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 세대가 공감할 현실적인 스릴러'가 될 뻔했으나
이사 온 지 일주일
이 영화의 주인공은 건축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현이다. 현장에 출근하는 수현. 화장실 쪽에 작업이 이상하게 되어있다. 바로 노동자들을 호출하는 수현. 삼촌 뻘의 직원들이지만 수현이에겐 보이는 게 없다. 원래 윗사람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앞에 보이는 게 없는 건 수현의 직장상사 김 실장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눈빛으로 수현이를 쳐다보는 김 실장. 이런 눈빛이 부담스럽다. 이 눈빛은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할 때 더 부담스러워진다. 호칭이 변한다. ‘자기’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는 김 실장. 대충 눈치는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의 모습에 물러섬의 기색이란 없다. 애써 던지는 추파를 외면하는 수현. 아무튼 퇴근하면 집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서 발생한 큰 문제는 수현이가 퇴근한 이 집에서 일어난다. 세탁기가 고장 났다. 어디서 중고거래로 세탁기를 구하면 어떻겠냐는 직장동료의 말을 떠올린다. 무릎을 치는 수현. 어플을 켜서 세탁기를 검색한다. 적당한 매물을 찾은 수현. 뒤적뒤적 거려 더 나은 제품이 있을까 찾아본다. 없다. 횡재했다. 이 가격으로 물건을 데려온다는 것이 즐겁다. 며칠 지나 제품이 집에 도착한다. 세탁기를 구동해 보는 수현. 고장 났다. 화가 나는 수현. 판매자의 아이디를 추적해서 댓글에다 ‘이 사람 사기꾼이에요’라고 댓글을 단다. 여기서 수현이 직접 비극을 초래했다. 수현이가 타깃으로 설정됐다.
현실감의 공포
이 영화가 다루고자 했던 정서는 ‘공포’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공포가 산재해 있다. 첫째는 중고거래의 공포다. 중고거래를 어플을 통해 하려면 어플이 필요하다. 물건을 어플에 올리고 가격을 제시한 다음 전화번호를 기재한다. 이 과정에서 전화번호가 유출된다. 중고거래(내지는 인터넷거래)에서 개인정보를 올리는 건 양날의 검이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거래의 신빙성이 달려있다는 점이 구매자에게 중요하다. 반대로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역시 연락처가 유출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외에, 단지 중고거래 어플사이트만 구경하는 사람에겐 ‘개인정보 노다지’라는 의미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겪을 수 있는 공포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는 나름 꼼꼼하게 살렸다.
다른 공포는 ‘혼자 사는 여성이 느낄 수 있는 공포’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살아남는 데 있어 두려움을 느낄 만한 요소가 영화에서 큰 장치로 두 개가 삽입됐다. 하나는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에 약자의 입장에서 놓이는 경우가 몇 있다. 영화는 이 공포를 앞 문단에서 서술한 것과 병치시키며 중고거래 살인마만큼 무엇이 두려운지를 묘사한다. 또 영화 내적으로 묘사하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 역시 최근의 대한민국을 연상케 하는 몇 요소가 있다. 리얼리티가 중요한 영화에서 현실이 연상되는 다양한 공포를 통해 승부수를 둔다.
무의미한 공포
이 영화가 선택한 큰 패착 중 하나는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추격자> 같은 경우는 흑막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방식이 아닌 ‘이 사람의 악행을 막아라’였다. 실제로 <추격자>에서는 빌런이 누구인지 초반부에 다 보여준다. <곡성>은 양자택일을 통해 서스펜스를 만들었다. 이란 영화 동시에 이번주에 개봉했던 <한 남자>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서스펜스가 만들어졌다. 보통 영화를 보고 긴장감을 느끼는 건 관객이 이 ‘과정’에 감정적으로 동참하며 이뤄진다. <곡성>이 기존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뒤집어 신선한 장르 문법을 만들어 낸 것처럼 예술에서 감정이입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는 관객을 감정적으로 이입시키는데도 실패했지만 기본적으로 인물에 편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악역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 있다. 영화가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이 ‘악역이 얼마나 미친 사람인가’ 혹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이는가’다. 인물이 ‘이 정도로 돌아이니까 무섭지?’라고 질문하는 게 영화가 견지하는 긴장감이다. 이야기에서 분기점 찍기 전까지 명확한 사건전개가 없다. 그냥 범죄자가 수현 캐릭터를 괴롭히고 덜덜 떠는 게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적인 과장이 캐릭터의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가해지는 폭력이 불쾌하다. 이 설정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토대와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 중고거래 판매자/구매자라는 설정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포스터에 ‘나는 살인자와 중고거래를 했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들어간 것 말고도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이 이곳에 할당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이 디테일을 살릴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심지어 이 두 설정을 뒤바꾼다고 해도 이야기엔 큰 지장이 없다. 심지어 중고거래라는 세팅을 층간소음으로 바꾼다고 하더라고 이야기의 큰 틀은 유지된다.
조금만 더
영화 전체적으로 뒷심이 부족하다. 우선 사운드의 믹싱 상태는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대사가 안 들리는 건 차치하고 나서라도 소리가 먹힌 듯 깔끔하지 않다. 단적으로 영화에서 틈입하는 소리가 영화에서 중요하게 삽입되어 있다. 이 소리가 지나치게 크다. 이야기에서 새는 것들이 몇 보이기 때문에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의 기본 설정 상 전자기기와 인터넷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이 부분을 감독이 잘 이해하고 영화에서 묘사했는지 역시 영화에서 단점으로 작용한다.
캐릭터의 몇 설정에서 차마 빚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수현은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수현이의 직장 묘사도 마찬가지다. 수현의 동료 두 캐릭터는 영화의 메시지를 조성하기 위해 희생된 감이 있다. 굉장히 과하거나 소극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경찰 조직에 대한 묘사가 후반부에서 매가리가 없다. 초중반부에는 조직에 따라 행동하지만 후반부가 되고 나서는 경찰 구성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 빌런 캐릭터도 지나치다. 이 인물이 실질적으로 이런 일들이 가능할지가 리얼리티가 중요한 영화에서 용인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빌런 캐릭터의 열연이 오히려 이런 허점을 더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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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음을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그럼 어제는? 영화를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도 그냥 과거일까? 그렇다기엔 현재와 미래보다는 영향력이 큰 것 같다. 지금도 다음도 필연적으로 과거가 되니까 말이다.도쿄에서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은 굉장히 규칙적이고 단조롭다. 이웃의 빗자루질 소리는 그의 알람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전날 밤에 읽었던 책 페이지를 확인하고, 양치하고,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현관 앞 선반에 습관처럼 올려둔 짐들을 챙겨 출근을 한다. 문을 열자마자 매일 조금씩 다른 아침 하늘이 보인다. 그걸 보며 히라야마는 개운한 숨을 내뱉는다.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시고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정해진 화장실을 순회하며 깨끗하게 청소하고, 공원으로 가 사온 점심을 먹는다. 주머니에서 작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렌즈를 위로 향하게 꺾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찍는다. 뷰파인더는 볼 필요 없다. 그의 시야를 꽉 채우는 나무는 흑백의 과거로 남는다.퇴근하면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대중목욕탕에 가 깨끗하게 씻는다. 적적하지 않게 지하철 식당가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사진을 인화한 뒤 새 필름을 구매한다. 다 감긴 카스트테이프는 익숙하게 연필을 꽂아 다시 원래 대로 돌려놓고, 자주 가는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고른 후 단골 술집을 찾는다. 은근히 자신을 더 신경 쓰는 여사장에 옅은 고양감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몸에 익은 나른한 시간들이 흐른다.히라야마의 일상을 보면 그가 꽤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장실 청소는 단순 노동처럼 보이지만 제시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안에 손님이 이용 중이신지 확인도 해야 하고, 놓치지 쉬운 곳이 많아 거울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또한, 화장실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곳이니 청소를 한다고 이용객들에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다. 늘 기다리는 건 히라야마다. 홀대하는 시선마저도 익숙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자연스럽게 가늠할 수 있다. 일찍 퇴근해서 여유롭게 밥을 먹거나 목욕탕에 가는 것도 제시간에 일을 끝내야 가능하니 말이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정제된 규칙과 순서가 있다. 그것들을 지켜야 사랑하는 책과 올드팝을 계속 곁에 둘 수 있다.그러나 히라야마의 일상은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다. 같이 일하는 후배 다카시(에모토 토키오)는 말도 많고 제멋대로에 일도 대충 한다. 곁에서 징징거리는 탓에 남은 돈을 다 빌려줬더니 저녁을 사 먹을 돈이 부족해진 히라야마는 꽤 값이 나간다는 올드팝 카세트테이프를 들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집에서 대충 컵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자신과 합의를 본다. 이 소동에 의외의 즐거움도 있었다. 시니컬해 보이는 후배의 여자친구 아야(야마다 아오이)는 히라야마의 올드팝 카세트테이프를 꽤 좋아한다. 물론 말도 없이 가져가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아야의 부탁으로 둘은 차 안에서 함께 노래를 듣는다. 울적해 보이던 아야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히라야마의 볼에 짧게 키스하고 사라진다.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훌쩍 커버린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의 방문으로 히라야마의 고정된 일상은 미세한 변화를 맞이한다. 타카시와 함께 할 때와 달리 조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자신에겐 너무 익숙해진 풍경을 제삼자인 니코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어쩐지 10대인 니코는 히라야마의 조용한 일상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이나 카세트테이프에 관심을 갖는 조카에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작은 진동이 생긴다.‘테라핀’에 나오는 빅터라는 남자애 꼭 나 같아. 얘 기분 완전 알겠어.책이 마음에 든다며 조잘거리는 니코에 이미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히라야마의 표정은 약간 복잡해진다. 이후 니코의 어머니이자 그의 동생인 케이코(이누야마 이누코)와 몇 년 만에 재회한다. 딱 봐도 부유해 보이는 케이코의 모습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니코의 반응으로 우리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짐작한다.빅터처럼 될지도 몰라.안 돼. 그런 말 하지 마.니코가 말한 <11>이라는 단편집 속 <테라핀>에서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소년 빅터가 어머니가 사 온 식용 자라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결국 자라를 먹기 위해 끓이고, 그 모습을 본 빅터는 어머니를 살해한다. 케이코를 꼭 끌어안은 히라야마는 차가 떠나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인 신이다.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평소처럼 책도 읽지 못하고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는 규칙적이고 정제된 일상을 통해 멀어지고자 했던 과거와 고독을 생각한다.히라야마는 굉장히 신사적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어딘가 벽이 느껴진다. 근무태만에 자신에게 매달려 돈타령을 하는 다카시를 향해 쓴소리를 할 법도 하지만 말없이 지갑을 연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젊은이를 이해해 주는 참된 어른의 넓은 아량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히라야마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쩐지 방어적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찾긴 하지만 그들과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가게 문이 닫혀 있어도 굳이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다. 자기만의 단골집을 만드는 이유는 소박한 취향을 가진 탓도 있지만 동시에 삶의 변화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것들을 일상에 촘촘히 박음질 함으로써 그는 과거와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한다.그러나 히라야마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꿈’이다. 필름 카메라를 여러 장 겹친 듯 보이는 그의 꿈은 가까운 과거를 비추기도 하고, 아주 먼 기억을 꺼내 그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지금과 다음을 만든 과거.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처럼 과거가 되어버리는 지금. 히라야마는 언제나 ‘다음’과 ‘지금’을 말하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내일은 오지 않는다. 과거는 내일로 가기 위해 필연적인 것이다.아무리 담백하다 한들, 삶이라는 것은 그리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영원한 건 없다. 결국 다카시는 전화만 한 통 남기고 일을 그만둬 일을 독박으로 혼자 다 해야 했고, 평소보다 늦게 문을 연 술집에서는 여사장이 어떤 남자와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좌절한 그는 술과 담배를 사 강가로 간다. 히라야마에게 다가온 남자는 자신이 7년 전 여사장과 이혼하였으며, 암에 걸렸다고 설명한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데.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남자가 지나가듯 툭 던진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히라야마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제안한다. 그리고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환한 빛 아래에 선다.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꿈과 사진을 닮은 그림자. 히라야마는 남자와 천진난만하게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그림자를 피하겠다고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환한 빛을 더는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같지만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하며 비로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만끽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고요한 삶조차 살아냄이라고. 그러나 나의 선택이니 만큼, 이번에는 후회는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이 기분은,‘Feeling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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