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10-27 10:24:31
나의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 여성 영화 앵그리 애니
여성의 자기 결정권
앵그리 애니는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2023년 개봉작 '슬기로운 아내 수업'과 연결 선상에 있다. 비록 장르는 드라마와 코미디로 다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 남편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 여성의 가장 큰 미덕이요 삶의 목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남녀 관계에서 성적 결정권이 남성에게만 있는 것은 결혼 전이나 후나 동일하다.
원치 않는 임신과 원하는 임신이었을지라도 남편이 원치 않아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는 그리고 죄악이라 여겨지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죄책감과 고통 가운데 살지만, 합법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어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배 속 생명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영화는 성에 있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아야 하며, 피임에 의한 자유로움을 어필한다. 피임에 의한 무분별한 성생활이 영화의 주제라기 보다 남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관계를 맺어가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중 여성의 특성과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여성 잡지를 정작 남성이 아닌 여성이 읽는다는 아이러니함에 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성의 결정권은 여성이 바라는 영역이지만, 이러한 주제를 다룬 영화 관람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앵그리 애니 시사회 역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세 네명의 남성 관객이 있어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희망의 작은 불씨처럼 보였다.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고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해줘야 함을 어려서부터 알아가고 배워가길 바래 8사 아들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다.
남편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라는 등식을 가진 아내에게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에 참여하며 자신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을 주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간다.
가정을 내팽개친다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사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피력하며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자리로 간다.
안전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켰다고 안도할 즈음 자신과 동일한 상황 안에서 목숨의 힘이 점점 약해져 간 친한 친구의 일을 경험하며 애니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결정이 달라진다.
나 또한 애니와 비슷한 일을 겪은 뒤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결정을 내리는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즈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왜 유독 너만 이렇게 하냐?"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나는 더 이상 이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Relative contents
-
- [무비 알고리즘] ‘여행과 사랑’, 낯선 곳에서의 당신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온더플로어’만의 컨텐츠,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하지만 영화 하나하나를 조금씩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여행’과 ‘사랑’이다. 지금부터 여행과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인 네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자.여행 가기 전날 밤 잠에 들기전의 설렘, 여행지에 도착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떠나온 땅들을 바라볼 때의 아쉬움. 이처럼 여행이 만드는 설렘과 행복, 그리고 아쉬움은 사랑이 가진 그것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들. 우리가 여행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있겠지만, 이것들 중에 가장 특별한 감정은 단연 사랑일 것이다. 낯선 이가 느낄 차가운 공기, 그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그 둘만의 시간을 소개한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
- 영화: 비포 선라이즈 (1995)
-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진: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안드레아 에커트 外
‘단 하루를 위해’
달리는 기차 안, 싸우는 독일인 커플을 보며 똑같은 감정을 느낀 ‘제시 (에단 호크 分)’와 ‘셀린 (줄리 델피 分)’.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온 그들은 같은 기차를 타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는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대화를 나누게 된 그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한 기차, 원래라면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셀린은 함께 내리자는 제시의 제안에 그들은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게 된다. 비엔나에서 보내는 단 하루, 그들은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잊지 못할 감정을 갖게 된다.
‘떠나가기에 더 간절한’
여행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트릴로지>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모두 일관되게 제시와 셀린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다룬다. 기차 안 스치듯한 만남에서 시작해 평생의 연인이 되어가는 그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18년의 세월동안 그들 곁에서 살아갔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트릴로지> 중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해당 작품을 최고의 작품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감히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의 첫 시작이 여행이 가지는 풋풋함과 설렘, 그 로망을 가장 잘 드러내서는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제시와 셀린은 하루동안 비엔나의 다양한 장소들을 돌아다닌다. 허나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제시와 셀린의 대화에 빠져들게 되어서이다. 가벼운 농담에서 시작하여 죽음과 인간, 그리고 사랑까지. 능글맞고 현실적인 제시와 섬세하고 이상적인 셀린의 표현과 말은 극과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그들 모두 꾸밈 없이 솔직했다. 영화를 보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루만에 저렇게 사랑을 느끼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하는 형식을 빌려 서로에게 뜨거운 사랑을 말하는 이들을 보며 그 마음은 금방 바뀌게 되었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각자의 기차에 탄 제시와 셀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행복한 미소와 감은 눈. 아마 그 의미는 평생 다시 겪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그 하루를 꿈속에서나마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냉정과 열정 사이 Calmi Cuori Appassionati>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2001)
- 감독: 나카에 이사무
- 출연진: 타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外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에 살고 있는 두 이방인 '준세이 (다케노우치 유타카 分)'와 '아오이 (진혜림 分)'. 그들은 일본에서 만나 서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 기억을 묻어둔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해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진 이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재회한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 끌리게 되지만, 이미 각자의 삶에는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준세이는 그림 복원을 배우며 ‘메미 (시노하라 료코 分)’와 동거 중이고, 아오이는 마빈 (왕민덕 分)’과 안정적인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준세이와 아오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은 결국 10년 전 연인이었던 시절 아오이의 30번째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다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냉정을 이기는 것’
<냉정과 열정 사이>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을 이탈리아 피렌체으 ‘두오모 성당’으로 이끈 대표적인 일본의 로맨스 영화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원작 소설은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라는 남녀 작가 두 명이 신문에서 2년간 각각 ‘아오이’와 ‘준세이’의 입장이 되어 교대로 연재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만큼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형식임에도,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을뿐더러 깔끔하게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결국 관객들은 10년의 세월동안 일어난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애틋한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두 인물의 비극적인 상황과는 반대되게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의 풍경은 아름답게 묘사된다. 두오모 성당, 아르노 강변, 밀라노의 거리 등 낯선 이의 얼굴과 함께하는 이국적인 풍경은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엔야 (Enya)’의 특별한 음악과 ‘요시마타 료 (Yoshimata Ryo)’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영화의 깊이와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특히, <'The Whole Nine Yards'>와 같은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명곡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라는 캐릭터 모두 감정선이 요동치지 않아 표현하기가 어려움에도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 열정을 간직한 준세이를 잘 소화했고, 진혜림은 잔잔해보이지만 강인한 아오이의 매력을 충실히 표현했다.
빛 바랜 추억을 복원하는 준세이, 영롱한 사랑을 세공하는 아오이. 10년의 시간, 점점 더 멀어지는 그 간극을 뛰어넘은 그 사랑의 힘의 원천은 서로의 존재가 갖는 믿음과 이끌림인듯 하다.
<김종욱 찾기 Finding Mr. Destiny>
- 영화: 김종욱 찾기 (2010)
- 감독: 장유정
- 출연진: 임수정, 공유, 이청아 外
‘세상 모든 종욱들’
뮤지컬 무대 감독 ‘지우 (임수정 分)’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하고, 결국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준 (공유 分)’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기준은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지만, 이는 쉽지가 않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김종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이상형과 딱 맞는 그때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오히려 자신의 옆에서 티격태격하며 늘 함께 있는 기준에게 마음이 끌린다. 한편, 기준은 융통성 없고 답답한 지우를 구박하면서도, 그녀의 첫사랑 찾기를 진심으로 돕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기준은 '김종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지우에게 이 단서를 가져간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내 곁에 누군가’
영화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흐름을 따라간다. 앞서 본 <냉정과 열정 사이>가 시종일관 잔잔함을 바탕으로 여운을 준다면, 해당 작품은 발랄함과 유쾌함을 통해 즐거움을 선물한다. 해당 영화 역시 원작을 갖고 있는데 동명의 뮤지컬이 그 원작이다. 이를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음악으로 뮤지컬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영화적 연출도 놓치지 않았다. 첫사랑 찾기라는 소재에 더해 ‘공유’와 ‘임수정’이라는 로코 (로맨틱 코미디) 장인들의 연기도 볼만 하다. 공유는 그 특유의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한기준'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와 츤데레 매력을 선보이고, 임수정은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서지우'역을 맡아 로코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기와 얼굴합은 영화의 즐거운 요소이다.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첫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연애 감정에 집중한다. 뮤지컬은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일뿐, 실질적으로 영화가 관객에게 유도하는 방향은 첫사랑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한 고찰이었다. 호두과자를 하나 안 먹고 남겨두는 이유를 묻는 기준의 말에 ‘끝을 안내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는다’라고 답하는 모습. 사실 김종욱씨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끝일까, 실망할까 두려워 알면서도 모른 척 김종욱을 찾지 않은 지우.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며 영화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공유와 임수정이 나오는 인도 ‘조드프루’ 지역의 회상신과 같이 국내외 여행지에서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로케이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감미로운 OST나 대사 등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리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러나 ‘김동욱’, ‘신성록’, ‘김무열’, ‘정준하’ 등 익숙한 스타들을 카메오로 볼 수 있고 영화 내내 나오는 특유의 유머는 “나 이런 게 좋아하네”라는 말을 자동으로 나오게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난 두 사람. 그들의 원래의 목표였던 ‘김종욱 찾기’는 어느새 맥거핀이 되어버렸고 그들에게는 여행 속 항상 함께했던 서로가 너무나 큰 의미로 남게 되었다.
<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 영화: 해피 투게더 (1997)
- 감독: 왕가위
- 출연진: 양조위, 장국영, 장첸 外
‘나랑 같이 있어줘’
홍콩 반환을 앞둔 1997년,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하보영 (장국영 分)의 말 한마디에 이끌려 여요휘 (양조위 分)는 그와 함께 홍콩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까지 오게 된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하지만,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다른 피부색의 두 이방인에게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요휘는 탱고 바에서 일하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보영이 심하게 다친 채 아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보영을 간호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영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보영은 아휘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쉽게 떠났다 쉽게 돌아온다.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는 아휘는 그런 보영에게 지쳐가면서도, 그를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새롭게 일을 한 식당에서 ‘장 (장첸 分)’을 만나게 되는 등,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혼란에 빠진 아휘와 보영의 관계. 과연 그들의 끝에는 서로가 있을까.
왕가위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해당 영화는 그의 독보적인 세계를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감독의 특징인 즉흥적인 연출과 미장센, 다양한 상징들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살아 숨쉰다. 먼저 작품의 구성은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는데 초기에는 장국영이 아닌 ‘유덕화’가 보영의 역할이었고, 이과수 폭포로 가는 로드 무비가 원래의 구성이었다. 또한 아휘의 이성 연인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작품은 제작 내내 변화를 거쳤다.
왕가위의 영혼의 파트너 ‘크리스토퍼 도일’이 담당한 촬영 역시도 정해진 대본 없이 촬영된 장면들이 많다. 일례로 보영과 아휘가 갈등하고 다투는 장면에서 활용된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인물들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클로즈업을 통해 아휘의 슬픔과 고독, 보영의 불안과 후회 등 복잡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흑백, 붉은색, 녹색, 노란색 등의 활용을 통한 강렬한 색채 대비 역시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상징한다. 특히, 흑백의 색은 현실의 고단함과 과거를, 컬러의 색은 현재를 상징하며 붉은색과 노란색은 열정과 불안, 녹색은 희망과 고독을 나타낸다..
‘구름 사이 봄햇살’
<해피 투게더>는 단순한 동성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이방인의 고독, 불안정한 관계와 엇갈린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상징과 장치들을 활용하여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내내 관통하는 상징적 이미지인 아래로 쏟아지는 이과수 폭포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휘의 방 안에 놓인 이과수 폭포 스탠드는 두 남자가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 이상향을 상징한다. 반면, 결말에 보영 없이 혼자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 아휘가 직접 맞이한 거대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는 아휘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극대화한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여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보영의 여권을 숨긴 아휘의 행동은 상대를 구속하고 옭아매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여권은 곧 자유와 이동의 가능성을 상징하는데, 이를 빼앗음으로써 강압적 수단을 사용해야만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의 후반, 아휘와 보영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보여준 인물은 첸이었다. 자신이 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아휘에게 다가가는, 그리고 "귀가 눈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첸. 이러한 첸의 행동과 대사는 아휘가 보영과의 관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첸은 아휘가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데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는 희망의 상징이자 방향이 되었다.
영화의 제목이자 가수 ‘터틀즈 (The Turtles)’의 목소리로 마지막을 장식한 그 말 "해피 투게더". 이는 역설적이게도 두 주인공의 불행하고 엇갈린 사랑을 의미한다. 함께 있지만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웠던 두 사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어느새 우리의 몫으로 넘겨졌다.
‘사랑하게 될거야’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나와 당신은 의지할 곳,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이방인이 된다. 너무나 낯선 그 곳, 그 다른 색의 눈들이 만든 시선들은 너무나 차가워 우리는 그 눈들을 피하려 애를 쓰곤 한다. 그렇게 경계하는 눈들을 피하고 한 숨을 돌리고 나면 보이는 어느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냉기를 식혀줄 가장 뜨거운 바로 그것, ‘사랑’을 느끼게 된다. 끝이 두렵다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여행의 끝이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닌 것처럼, 뜨거웠던 사랑의 끝이 아쉽고 또 아플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못 볼 지나간 풍경들을 놓쳤다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
- 행복하자 우리
이 글은 영화 [브로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 극장가의 상황이다.
판데믹 이후로 첫 천만 영화가 탄생했음은 물론. 기대작들이 줄줄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날이 드디어 왔다.
그 선봉장에는 칸 영화제에서 당당하게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를 앞세운 영화 [브로커]가 있다.
이미 송강호와 영화 [의형제]에서 합을 맞춘 경험이 있는 강동원과의 케미는 물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지은이 미혼모로 열연하는 이번 영화가 기다려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아 브로커들과 친모. 범죄 현장을 덮치려는 경찰들의 이상한 조합을 감독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잔잔하고 자세히 속을 까뒤집어 보여주지는 않지만. 충분히 생각할 만하고 그 여운은 결국 실낱같은 안정으로 마음속에 다가온다.
아이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온 마을;금쪽이들이 치유받는 법
사진출처:다음 영화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이 하나가 온전히 커 어른이 되기 까지는 많은 사람의 영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모든 어른이 다 “좋은” 사람이면 참 좋겠지만. 우성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어른 마을은 조금 독특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금쪽이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런데다 금쪽이 시절 버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어딘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성의 엄마인 소영(이지은)은 물론 브로커인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확실하게 비뚤어져있다. 게다가 자신의 상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만 보아도 못난 발톱을 한껏 세워 할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 인분의 사람 구실도 못하는 핏덩어리에 불과한 우성에 의해. 금쪽이들은 스스로의 존재와 쓸모를 인정받는 순간을 맞이한다.
금쪽이들에게 이 순간은 평생을 기다려 온 순간임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다가온 인정의 순간을 거부하는 금쪽이는 영화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금쪽이에서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진 세 생명체들은 어디서부터 이 "판매 극"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확신에 찬 채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보호받지 못했던 만큼의 시간을 우성이의 삶에서는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만 같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의 뜻은 어쩌면 어른들에게도 아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상현의 세탁소;해소와 진심의 순간들.
사진출처:다음 영화
금쪽이 패밀리(?)의 대장 격인(??) 상현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탁소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빨래가 얼마나 더 깨끗하게 될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상현에게 말을 걸고. 상현은 그런 염려와 우려마저도 말끔히 씻어내린 빨래를 그들에게 건넨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세상의 모든 티와 더러움은 고스란히 상현에게 쌓이고. 상현은 자신이 더러워질수록 타인의 빨래가 더 빛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의 훈장인 것처럼. 상현은 조용히 타인의 구겨진 삶의 일부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차장에서 온통 젖어 엉망이 되어버린 상현의 표정이 후련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사실 상현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자신도 한 번쯤은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두 번 다시 더러워지지 않는 빨래도 없고. 자신의 마음도 상처받은 채 상현에게서 다시 머물겠지만. 또 한 번 깨끗해지면 그만이라고 상현이 생각할 수 있기를 빈다.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아예 없지는 않은 거라고. 마음도 빨래도 뽀송뽀송하게 마를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행복하자 우리;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사진 출처:다음 영화
멸종 위기의 토종여우를 밀반입해 번식시킨 개 장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 자부하는 서울대에서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학위 하나 없는 한낱 개 장수가 성공 시킨 것이다. (참고 1)
그 비결을 물었을 때 개 장수가 내어 놓은 대답은 더 가관(?) 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돈이라 생각하고 무한한 관심을 쏟았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개 장수도, 영화에서의 브로커도. 결국은 자수를 한다.
그 목적이 어쨌건 자신들이 품고 베푼 애정과 관심은 결국 누군가를 최종적이면서도 올바른 행복으로 이끄는 힘이었던 셈이고.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던 죄도 내려놓고 평안함에 이르게 한 셈이다. 그래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잡히는 순간에도 동수의 표정이 홀가분하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들의 찬란한 행복을 보여주며 끝을 맺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기다릴 때처럼, 행복을 만나기 몇 시간 전부터 부푼 기대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모든 인물의 행복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엔딩의 여운 앞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면서
사진 왜 이래.
영화 브로커에 대한 홍보이건, 친분 때문이건 상관없이. 아이유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해달라는 말에 눈시울을 벌겋게 물들이는 송강호 배우를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업종에서 근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하면서. 어찌 고난이 없고 회의가 없었을 것인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하나하나 걷어가며 묵묵히 길을 걸을 때 그가 흩어 뿌린 확신과 물음의 결과물을 나는 보고 자랐고. 그의 영화는 내게 믿음이란 각인으로 다가왔기에. 배우 송강호가 보이는 그런 모습은 참으로 귀함과 동시에 마음이 찡해지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로 인해 상을 받았건 말건 상관없이.
그저 배우 송강호가 여태 얻었을 고단한 마음의 짐들도, 마치 세차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끔히 씻겨내려가고 뽀송뽀송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요새 구찌보다 구씨가 대세라고 하지만. 내게는 아직은(?) 구씨보다 호 씨가 최고야. 늘 짜릿해.
참고 1
사진 출처:구글 이슈야 놀자
실제로 개 장수가 자수(?) 한 이유도 얘들이 너무 예민하고 식비도 많이 드는데 버리자니 토종여우이고, 돌보다 보니 애정도 생겼기 때문이라 했음. 그래서 아예 양육 노하우를 연구용으로 넘기고 죗값이랑 퉁치기로 함. 사실 노하우라고 해서 엄청난 게 아니었음. 노란 박스에 애들을 키우니까 애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음. 원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노하우를 찾아내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보면, 역시 진심인 놈 이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돈에 대한 진심은.어우.
[이 글의 TMI]
1. 복숭아 비싸.
2. 그냥 조용히 망고를 사 본다.
3. 요새 왜 이렇게 리뷰 쓰기가 힘든지 생각해 보니
4. 인풋이 너무 없음.
5. 연차를 드디어 쓸 순간이 와따.
-
- 이혼 위기에 놓인 남자의 혼란스러운 감정
개봉 전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같이 그려가기 위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길을 택한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수많은 문제들이 두 사람 앞에 놓인다. 때론 의견 일치가 잘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논쟁이 이어진다. 그런 논쟁이 반복해서 일어나다 보면 목소리는 커지고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다가온 위기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가 앞으로 남은 결혼생활의 모습을 결정한다.
실제로 이 시기는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고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기 좋은 시기다. 자신만의 취미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다른 이성을 만나기도 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만의 시간 속에 몸을 담근다. 그런 시간 속에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는 단계까지 가게 되면 결혼 생활은 파탄 직전까지 가게 된다. 그 파탄의 길에 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또한 그들 앞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를 수없이 생각한다. 각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매 순간 감정이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한다.
이혼 직전 부부의 이야기,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이혼 직전의 부부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남편 데이빗(클레인 크로포드)의 모습과 감정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데이빗이 누군가에게 총을 겨눈 장면이다. 가만히 총구가 가리키는 침대를 비추지만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침대 위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총구를 겨누고 있는 데이빗의 얼굴로 그 시선을 옮긴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던 그는 한참을 총을 들고 서있다가 밖에 누군가의 소리에 몰래 서둘러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뛰어서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대사나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시작하는 강렬한 오프닝은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그가 머물던 집을 나와 뛰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형태의 시끄러운 소음을 같이 들려준다. 총소리나 무언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아주 우울하고 긴장되는 분위기의 음향효과가 영화가 따라가는 데이빗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건 데이빗이 분노에 가득 찬 상태라는 것이다. 그가 억누르고 있는 그 분노는 영화 내내 지속된다.
사실 데이빗은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와 별거 중이다. 큰 딸과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들은 서로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별거를 선택했다. 데이빗이 집을 나와 근처의 아버지 댁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데이빗은 아내 니키와 다시 합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니키는 데릭(크리스 코이)이라는 인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영화 맨 처음 데이빗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침대 위의 두 인물이 바로 니키와 데릭이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로맨틱한 장면보다는 데이빗의 감정에 따른 긴장감이 영화 내내 표현된다. 영화가 사용하는 음향 효과는 데이빗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가진 분노가 커질 때는 여러 가지 폭력적인 소리를 통해 그 감정을 전달하면서 영화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사실 영화의 내용 자체에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직접적으로 그 긴장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데, 이는 주인공 데이빗이 감정을 억누르는 상황 자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데이빗은 실제로 니키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니키나 아이들에게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 모든 감정을 혼자 억누르고 제어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데이빗은 좋은 아빠로 보인다. 세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의 대화에서도 그가 좋은 아빠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잘 설득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과 멀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또한 데이빗을 괴롭힌다. 그래서 영화 내내 그는 아이들을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혼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실제 그것을 결정하는 건 아내인 니키에게 있기 때문이다.
데이빗의 억눌린 분노를 표현하는 영화의 독특한 음향
사실 영화 내내 데이빗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이 가진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는 총을 이용해 니키의 남자 친구인 데릭을 쏘려고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인형을 세우고 허공에 총을 발사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데이빗이 가진 분노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쏟아내어 지기보다는 허공에 무작위로 분출될 뿐이다. 그가 가진 폭력성을 잘 제어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데이빗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서 데이빗 이외에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큰 딸인 제스(에이버리 피주토) 일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의 부모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사춘기 소녀인 제스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아빠와 엄마의 이혼에 반대한다. 아빠의 이야기에 잠시 밝은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의 감정은 데이빗과 같은 분노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이혼을 목격하고 있는 아이의 두려움일 것이다. 부모의 전쟁 사이에 그 전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제스의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 후반 데이빗과 니키, 그리고 데릭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모든 인물의 감정은 격해지고 그들이 가진 진심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순간에도 데이빗은 완전히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는 내내 데이빗의 분노를 계속 관객에게 느끼게 해 주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이혼이라는 최악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맨 마지막, 데이빗의 가족들이 다 모여서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사실 평범한 모습이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결혼이라는 고리가 마지막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
영호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꽤 독특한 영화다. 일반적인 서사와 표현방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금은 스타일리시하고 특이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다른 체험을 하게 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혼이라는 주제는 이미 다양한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그 이혼이라는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한 사람이 겪고 있는 감정의 파고다. 주인공 데이빗의 감정이 다양한 음향과 영상에 담겨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다르게 말하면 그 감정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화면비가 4:3 비율로 촬영되어 답답한 데이빗의 감정이 더 극대화되어 담기기도 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로버트 메코이언 감독은 그렇게 잘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인디 영화 중심으로 세 편의 장편 영화 연출을 했으며, 201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단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연출한 <킬링 오브 투 러버스>를 연출하며 미국 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러 가지 음향이나 영상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등, 새로운 표현 방식은 다음 그의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이기도하다.
-
- 한국인입니다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하게 되는 부분인데 픽션을 볼 때에는 어느 정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미나리>를 보고서 '우리의 뿌리는 소박하지만 위대했다' 같은 결론을 내린다던가, 결국 제이콥과 모니카가 같이 잘 살았을까 같은 해피엔딩을 유추한다던가, 냉전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베이비부머들처럼 '부모님들이 저렇게 고생해서 우릴 키웠다'라고 눈물을 훔친다던가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들을 느낄 수야 있겠으나 어느 정도 영화를 꽤 많이 봐 온 일정 나이 이상의 성인이라면 그런 개인적 감상과 영화가 보편적으로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 분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요즘의 픽션들의 트렌드인 것 같기도 한데, <미나리> 또한 어떤 특정 페이소스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역사의 이야기를 사뭇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한다. 그 가운데에서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격동은 있지만 그것이 어떤 영향과 의미를 가졌는지 작품 속에서 굳이 풀어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거진 "심심하게 끝났다" 혹은 "결말이 의아했다" 같은 평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이민자들에게는 좀 더 감정적으로 건드려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 입장이 아니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영화에서 가장 거슬리는 것은 자뭇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서사가 아니라 스티븐 연의 연기다. 윤여정과 한예리가 정말로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의 연기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반면 스티븐 연의 한국어는 그냥 교포 말투 그 자체다. 정이삭 감독의 묘사와 연출이 얼마나 정확하냐면, 그렇게 어눌한 번역투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스티븐 연의 연기를 통해서도 땅과 자기 일(그니까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사업 그 자체)에 집착하며 개인적 만족과 자아실현을, 자신이 꾸려놓은 가정보다 우선시하는 답 없는 구시대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제이콥의 모습을 보며 사업 트라우마에 시달린 한국 가정 구성원들이 아마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나리>는 굉장히 한국 문화의 일종의 헤리티지를 예리하게 담아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노릇을 하는 제이콥의 모습 외에도 외할머니가 자기의 집으로 데려가거나 혹은 아예 딸의 집에 와서 손주들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보편화된 보육 형식인 나라도 아마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가부장적인 문화적 습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계 쪽 조부모들은 어떤 집안의 문화나 재산을 물려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모계 쪽 조부모들은 보육이나 가사 등 좀 더 노동에 가까운 자원을 제공해 주는 조력자로 인식되곤 한다. 흔히 '헤리티지'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그래서 어떤 가풍이나 그의 뼈대가 된 재산과 성씨를 물려받은 집안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외가댁은 이런 집이었다, 정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사실 따져 보면 외할머니가 어릴 때 키워준 사람들 손 들어 보라고 하면 최소 10명 중 4명은 손 들지 않을까 싶은 한국에서 정말로 가족의 헤리티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외할머니를 포함한 모계 조상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켄 리우의 소설집 <종이 호랑이>는 <미나리>에 비해 좀 더 '아시아적'인 서사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 효도하지 않던 아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후회막심에 눈물 흘린다는 전래 동화는 유치원 때부터 동양인들이 지겹게 들어오던 것이다. 어쩌면 그 전래동화의 21세기 형 리메이크려나. <종이 호랑이> 뒤로 이어지는 수 많은 단편들에서도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중화권 문화에 기반한, 완전한 당사자의 입장(authentic)보다는 이민자가 느끼는 몇 다리 건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묘사한다.
판데믹 시대에 아시안(이라는 단어로 하나로 묶이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에 대한 인종차별 정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원래부터도 꾸준히 이야기돼 왔던 것이지만 자극적 사건이 터져야만 주목하는 대중들의 성격 상 2020년~2021년이 기점으로 느껴진다. <기생충>과 <미나리> 같은 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 '아시안 헤리티지'를 대변하고, 그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아시안 헤리티지'란 것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데서부터 메타적으로 차별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1 세계에서 아시안이라는 단어에 코카서스인인 인도, 중동 사람들까지 포함해 부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백인들을 대상으로 아시안들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정답은 '아무것도'다. 꼭 아카데미를 타지 않아도(나도 <기생충> 재밌게 봤음, 쿨병 걸린 매국노 아님) 그래미를 수상하지 않아도(BTS 좋아함 다이너마이트 완창 가능), 그러니까 "꼭 K-문화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다. <벌새>가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페미니즘 서사였던 것처럼,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집단의 영혼을 대변할 수 있다. 아카데미와 그래미가 아니더라도, 논밭에 집착하는 한국 아버지와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한국 어머니도 문화의 일부고 집단의 속성을 대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변은 그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존재일 뿐 타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아시안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 및 다른 여타 소수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면 한국인 여성으로서 기분은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나리가 아카데미 무관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전혀 상관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애초에 백인 할아버지들이 만든 시상식이 영화계를 과잉 대표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도 정론이 된 지 오래인데, 한국인들의 귀염둥이이자 아시안 스피릿의 수호자가 된 봉준호 감독도 오스카는 로컬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수상 결과에 기뻐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에 맞거나 평생을 더 가난하게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몇 억 명인 세상에서 우리가 그들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세상을 바꾸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다.
-
- 결과를 보여주는 것보다 과정을 설명하는 게 어렵다.
감히, 예상이나 했을까?
'강아지를 죽였다'라는 이유로 조직을 쓸어버린 영화 <존 윅>은 어느새, 23년 4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본명보다 "존 윅"이 더 익숙한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이를 선보인 "채드 스타헬스키 - 데이빗 레이치" 두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스턴트맨들이었다. - 어찌 보면, 액션을 잘한다는 건 그만큼 일들을 잘했다는 이유일지도...?
하지만, "채드 스타헬스키 - 데이빗 레이치" 두 감독의 조합은 2014년 <존 윅>을 제외하고는 볼 수가 없다.17년에 나왔던 2편 <리로드>부터 <존 윅> 시리즈는 "채드 스타헬스키"만이 담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데이빗 레이치"는 "샤를리즈 테론"의 <아토믹 블론드, 2017>를 시작으로 <데드풀 2, 2018>와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2019>까지 상당히 다채로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결과물들이 나쁘지 않았기에 이번 <불릿 트레인>에 거는 기대치가 나쁘지 않았다.
먼저, 해당 영화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마리아 비틀>이 원작인 작품이다.1. 존 윅이 아니네?
일단, 이 영화 <불릿 트레인>을 왜 보러 왔을까?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배우들도 있겠지만, 포스터에 대문짝만 하게 박힌 '<데드풀 2>감독'에 이유가 있다.
그만큼 액션이 가장 주된 이유일 텐데, 이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큰 기대를 하진 말자.
일단, <데드풀 2, 2018>가 아닌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2019>와 <아토믹 블론드, 2017>, 하물며 <존 윅> 시리즈는 더더욱 아니다.영화 <불릿 트레인>은 "신칸센", 고속 열차에서만 이야기가 이뤄진다.
이는 액션 자체도 협소하게 이뤄진다는 이야기로 좌석을 비롯한 사물들을 활용한 액션이 주를 이룬다.
역시, 선보이는 액션들이 나쁘진 않다만 관객들의 기대치와는 살짝 어긋나지 않나? - 바로, "건 푸(Gun-Fu)"가 아니라 "성룡"이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이 액션은 멋지게 쓰윽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아프다"라는 어딘가 허술한 표정으로 캐릭터들의 리액션이 강조된다.2. 행동보다 어려운 설명들
1980년대 홍콩 영화 스타일이었다면, 관객들 눈에도 맞춰진 합이 보이겠으나 앞서 말했듯이 "데이빗 레이치"는 전문가이다.
하나의 장소에서 나올만한 액션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빠르게 카메라를 흔들어 (aka. 쉐이키 캠) 보다 리얼하게 보여준다든지 "청소년 관람불가"에 걸맞은 표현 수위, 그리고 예상치 못한 카메오들로 관객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 예고되었던 "산드라 블록"외의 출연자들이다!그렇기에 어찌 되었든 <불릿 트레인>은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야기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존 윅>만 하더라도, '강아지를 죽였다'라는 이유로 조직을 쓸어버린 단순한 플롯이라면 몰라도 <불릿 트레인>은 그 어느 때보다 이야기가 중요한 작품이다.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주인공 "레이디 버그"를 비롯해 쌍둥이 킬러 "레몬 - 탠저린", "왕자", 그리고 "말벌"까지 이 4명의 킬러는 저 마다의 이유로 이 고속 열차에 몸을 싣는다.3. 원작을 다 담아내기에는...
이들이 원하는 "은색 가방"에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러면서, 휙휙 바뀌는 경쟁 혹은 협력 관계야말로 원작 <마리아 비틀>이 가진 힘이다. - "왕자 - 기무리"의 조합에 "아들이 인질로 잡혔다"라는 것처럼 동등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고, 경쟁 관계에 있던 "레이디 버그 - 탠저린"이 잠시 힘을 합치는 등 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영화 역시, 이런 장면들을 보여주나 좀체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 이야기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인데...126분은 오락 영화치고 상당히, 많은 분량에 해당된다.
이런 이유에는 원작 소설 <마리아 비틀>이 600쪽에 달할 만큼 많은 설명을 해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앞서 "왕자 - 기무리"의 조합에 "아들이 인질로 잡혔다"라는 것으로 설명을 정리했으나 "기무라"의 가정사를 비롯한 결혼 생활까지 많고 많은 사연들이 녹여있다.
그만큼 애절한 관계를 단순하게, 혈연만으로 축약시켰으니 다른 캐릭터들의 설명 상태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겠습니다. ;(· tmi. 1 - 해당 작품에서 "산드라 블록"이 출연하는데, 이는 <로스트 시티2022>에서 "브래드 피트"가 "카메오 출연"의 보답이라고 한다. (aka. 품앗이)
-
- [JIFF 데일리] 침묵하지 않는 카메라는 마침내
SYNOPSIS.
어느 겨울밤, 주연은 아빠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아빠는 술에 취해 혀가 꼬인 목소리로 주연에게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그날 40년 전 자살한 고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주연은 가족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된 고모의 흔적을 추적한다. 주연은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져 온 여성들을 기억하며, 애니메이션을 통해 고모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간다.
PROGRAM NOTE.
양주연 감독의 <양양>은 가족사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양 씨 집 안의 첫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남동생이 가족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익숙한 만큼,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풍경’이다. 그런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누나가 있음을 고백했고, 그렇게 40년 전에 사라진 고모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5년, 대학교 4학년이었던 감독의 고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할머니가 남겨 놓은 고모의 사진을 발견한 뒤,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고모가 자살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사라진 고모의 자리‘뿐 아니라, 가족 안에서 늘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던 ‘양주연 감독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진수)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박형규 역, 문학동네 버전) 문학사 안팎에서 길이길이 회자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처음 들을 땐 그렇지 뭐,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이 문장이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과연 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세월을 머금은 색감의 홈 비디오에서 부드럽게, 고화질의 결혼식 영상으로 넘어가며 시작하는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내레이션 속 감독도 스스로 인정할 만큼 화목한 가정, 부족한 것 없이 딸과 아들을 길러낸 집. 90년대에 홈 비디오로 풍성한 일상을 담을 만큼, 그 영상 안에서 생일 파티를 즐기는 아이의 웃음만큼, 밝고 환해 보이는 집.
이런 집들만 보다 보니까 가정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왜 우리 집만 이렇지? 왜 나만 이렇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전,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남긴, 딱히 내게 던진 것도 아니었던 한 마디가 내겐 잊히지 않는다. "모든 가정에는 다 문제가 있어요. 문제 없는 집은 없고, 그러니까 상처 없는 가정도 없어요."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문장인데 우리는 그 말을 잊고 산다. 슬픈 일은 가슴에 묻고, 남부끄러운 일은 적당히 묻어 두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단란한 일상을 바지런히 꾸린다. 그러나 문제 없는 집도 없고 상처 없는 집도 없으니, 감독이 어느 날 알게 된 사실,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고모의 이야기도 그렇다.
감독은 고모 주변 사람들에게 고모의 이야기를 묻고, 고모의 죽음을 파헤친다. 그간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 왔던, 보고 듣고 이야기해 온 것들이 고모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다만 이번에는 그 '고모 주변 사람들'에 감독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포함될 뿐이다.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게, 하지만 자식의 작품 앞에 최선을 다해,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마찬가지로 조금 어색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감독의 목소리. 어쩐지 사랑스러워서 조금 웃음도 나왔다. 그러나 이내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감독의 목소리는 점차 진중해진다.
힘들다고 덮어둔 기억을 감독은 부감한다. 자기 가족의 일을, 극화하지도 않고 민낯 그대로 인터뷰를 하면서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카메라는 끝내 침묵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두라는 말에도 꿋꿋하게, 고모의 죽음을 따라간다. 그건 탐정의 자세나 경찰의 태도와도 다른 그 누군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자세와 태도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죽음. 타살인지 자살인지도 불확실한 정황. 오래 전의 아픈 일에 대해 바래고 조각난 기억들. 그 안에서 감독은 사회에 끊임없이 익숙하게 찍히는 사건들의 발자취를 본다. 그리고 그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자신이 가족 안에서 겪어왔던 일들이나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들도 길어 올린다. 아무 악의 없이 부드럽게 놓인 말들, 어쩌면 감독 스스로에게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런 말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일상의 작은 말 한 마디에서 누군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모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탐정이나 경찰이 아닌, 감독이 찍은 작품이니까. 고모의 죽음이 타살이었는지 자살이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알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각조각 드러난 진실 속에서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보면서 어쩌면 감독의 고모의 죽음과 아주 닮아 있었을 어떤 죽음들을 생각했다. 몇 시간에 하나 꼴로 새로운 기사가 뜨는 그런 사건들. 요즘 또 부쩍 많이 보이는 사건들. 피해자의 생명보다 가해자의 수능 점수 같은 것이나 주워섬기고 있는, 악의 없이도 충분히 악독해지는 얄팍한 담론들.
또 하나, 그저 사망한 존재로서만이 아닌, 삶을 영위하던 순간들의 고모를 감독은 그려낸다. 그렇게 단지 죽은 사람, 마음 아프니 덮어둘 사람만이 아닌, 살아 있었고 살아가고 있었던 존재로. 피해 대상으로서만 피해자를 묘사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예를 들어 피해자가 수능 만점의 의대생이었으니 그 죽음이 얼마나 아깝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피해자로서도 지워지는 경우가 허다해 더 끔찍한, 그래서 가끔 어떤 유가족들이 사진을 공개한다는 선택지를 끄집어 들게 만드는 이 사회의 서술 방식을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의 서술 방식 앞에 감독의 말하는 방식은 경종을 울리는 바가 크다. 나직나직한 감독의 내레이션이 더 많은 상영관에서 울려퍼지면 좋겠다. 침묵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되면 좋겠다. 이 감독의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침묵하지 않는 카메라는 마침내 부감에 성공하고 마니까. 더 많은 이야기가 그 부감의 시선에 밝히 드러나길.
어떤 죽음으로 떠나간 사람들, 어쩌면 나였을 수도 내 친구였을 수도 있는 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2024. 05. 03.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29)
2024. 05. 05.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411)
2024. 05. 07. 21: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652)
-
- 해적 도깨비 깃발 - 전체적으로 직무유기인 영화
“가자, 보물 찾으러!”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한효주).
한 배에서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권상우)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
-
- [헤레틱] 끝장리뷰 | 신앙에 대한 긍정 or 부정 해석 | 나비, 눈(snow) 상징 | 상승과 하강 | 두 자아
[헤레틱](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긍정 or 부정 (1)
Chapter 2 긍정 or 부정 (2), 두 자아, 상승과 하강
00:00 A24와 헤레틱
00:41 종교와 영화
02:02 신앙 부정
06:15 눈과 나비
07:24 신앙 부정
08:34 두개의 자아
09:11 상승과 하강
10:08 별점 및 한 줄 평
10:2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레틱해석 #헤레틱리뷰 #헤레틱영화 #헤레틱 #헤레틱후기 #영화헤레틱 #휴그랜트 #Hereticmovie #Hereticreview #HughGrant #a24
-
- 영화 <앵커> 티저 예고편
- 생방송 5분 전, 죽음을 예고한 의문의 제보전화? 사건 현장을 목격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완벽했던 앵커를 뒤흔든 충격적 진실은?
-
- 영화 <어시스턴트> 메인 예고편
꿈에 그리던 영화사에서
보조 직원으로 일하게 된 ‘제인’
어떤 일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녀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소한 사무실 정리부터 상사의 개인적인 스케줄 관리까지
하루 종일 몰아치는 잡다한 업무에 지쳐간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던 중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한 여성이 찾아오면서
회사 내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