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30 14:56:41
미모와 연기력 겸비한 2세대 여배우 특집
저번 뜨거운 조회수에 이어 여배우 특집 2탄! 여돌 여배우의 전성시대!
2세대는 미모와 더불어 연기력이 뛰어나서 진정한 '믿고 보는 배우'가 아닐까 싶은데요. 씨네픽러의 원픽은?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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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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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본 '기자 영화'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치 탐정처럼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반전을 맞이한다. 그래서 그는 펜으로 바로잡고 정의 구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만 보면 영화 '댓글부대'는 흔히 사회고발을 하는 기자 영화로 비치고, 원작소설을 집필한 장강명 작가 또한 기자 출신이었기에 더더욱 기자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를 드라마화한 JTBC '허쉬'와 같은 결을 따라갈까 영화를 관람하기 전 살짝 예상해 봤다.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댓글부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기자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특정 대기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만전 그룹 비리를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돼 한순간에 '기레기'로 전락한 임상진(손석구)이 절치부심해 비밀리에 운용 중인 만전 내 여론조작팀의 실체를 들춰내 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에 관심 없다.
안국진 감독이 '댓글부대'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자 임상진이 쓰는 '기사'다. 인터넷 문화가 태동한 1990년대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이 주류가 된 현시점까지 보여주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건 소수 미디어 매체가 아닌 불특정 대다수에게 넘어갔다는 걸 전한다. 그러면서 임상진의 피땀눈물로 완성된 기사의 영향력은 점점 잃어가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불분명한 인터넷 글이 막강한 힘을 얻는 오늘날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100% 팩트'라고 말하기 애매함의 연속이다. 임상진에게 만전의 여론 조작을 제보하는 찻탓캇(김동휘)의 주장이나 만전의 비리를 알린 중소기업 대표의 말, 만전이 진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니, 영화는 애초에 이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 건 정보의 사실 검증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지 여부다. 믿는다면 진짜로 받아들일 것이고, 의심하면 가짜로 보일 테니까.
그래서 '댓글부대'는 흥미롭다. 그동안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할애하는 반면 현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에는 조용했던 다른 한국영화들과 다르게 과감한 선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안국진 감독의 선택은 확실히 참신했고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다만 '댓글부대'의 화법과 연출 방식까지 참신하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장황한 내레이션과 대사들이 주류를 이루며 풍자하는 방식은 할리우드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아담 맥케이를 연상케 하나, 마치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플래시백이 잦다 보니 작품의 전개 속도도 빠르지 않아 지루함도 느껴진다. 반전이 등장했음에도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댓글부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쓰임새도 아쉽다. 주연인 손석구를 비롯해 김성철(찡뻤킹 역), 김동휘, 홍경(팹택)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들인데 유독 이 영화 내에선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아무래도 '기사'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캐릭터들이 희미해진 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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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곡을 깨는 얼굴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말이, 글이, 작품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세계를 산다. 어제의 유행가는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는다. 시대를 풍미하며 많은 공감을 사던 장르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했다는 말은 바람 속에서 이리저리 조각나고 찢겨 날아다니다 잊힌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모든 이야기들은, 특히나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의 내게까지 와 닿은 이야기들은, 여상해 보여도 사실 엄청난 질곡을 깨뜨리고 다가온 것이다. 한 이야기와의 만남을 기적으로까지 우러러볼 순 없더라도, 소중한 경험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 이야기가 내 마음에 깊이 와 박혔다면, 그렇다면 그건 기적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래서 내게 기적이었다. 질곡의 땅에서 태어나, 밤에서 낮으로 또 아침에서 저녁으로 전해지다가, 오래 전의 음악을 덧입고 찾아온. 오월의 전주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Film goes on’이라는 주제가 곳곳에 단단한 차돌처럼 박혀 있는 영화관에서. 사람들 틈에서 박수를 치고 눈물을 훔치고, 개봉하면 꼭 동종업계 사람들과 다시 봐야지 생각했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는 시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 정확히는 종교 극단주의자 그룹, 흔히 IS로 불리는 ‘다에시’가 시리아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한때는 평화롭고 풍요로웠을 도시는 딱딱한 공포의 압력으로 덮여 있다. 언제 총성으로 깨질 지 모르는 고요한 오후 햇살 아래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카림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트로이메라이. 환상, 꿈이라는 뜻의 단어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7번째 곡이다. 슈만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만들었다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을 총성이 찢는다. 사람들이 숨어 지내는 곳, 굳어 있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는 은신처 같은 곳도, 안전하지는 않다.
그래도 거기서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한다. 카림은 피아노를 치고, 카림의 사촌은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났을 때를 기다리며 로스쿨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토플 공부를 한다. 삼백 년 전에도 같은 모양새였을 것 같은 얼굴로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체스를 두는 노인들도 있다.
물론 이곳이 진짜 무릉도원은 아니기에, 이 모든 건 잠시뿐이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압제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예술까지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사회에서, 싸움보다 예술이 하고 싶은 카림은 시리아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연주만으로도 눈엣가시가 되는, 어머니의 유품 피아노를 팔아 그 돈으로 유럽에 가겠다는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카림의 발을 따라 간다. 함께 숨어 지내는 사람들도 마뜩찮아 하는 피아노를, 다에시의 일원들이 마음에 들어 할 리 없다. 수시로 급습 나오는 다에시 대원들은 결국 피아노를 부수고, 카림은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가 모두 걸린 피아노를 수리하기 위해 똑 같은 피아노가 있다는 곳으로 무작정 길을 나선다. 피아노는 고사하고 그 집이 남아있을 지조차 보장이 없는,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폭격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도시로.
카림의 여정을 따라 수많은 인물들이 스쳐간다. 아버지가 다에시 대원들에게 끌려갔지만, 그래서 아마 돌아올 수 없겠지만, 어른들의 돌봄 아래서 자라나는 꼬마 지아드, 공개 처형 당하는 동성애자, 폭격으로 이미 텅 비어버린 도시에서 만난, IS에 맞서 싸우는 여성 부대원,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러나 친절을 베푸는 이웃… 10년도 훌쩍 넘어선 내전에서 수없이 비춰지던 얼굴들이, 그렇게 지나간다. 때로는 이름을 남기고, 가끔은 이야기를 남기고, 심지어 어떤 경우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한 명의 얼굴이라도 더 담고 싶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점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길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한 줄기라도 더 대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였다. 질곡의 땅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하나하나의 이야기들. “타인의 얼굴”들. 전쟁은, 분쟁은 각양각색 소극 같은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단선적인 비극으로 가린다. 생존 외의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극한으로 치달려도, 그래도 그 뒤에서 소극은 계속된다. 목숨을 걸고 피아노 부품을 구하러 폐허로 뛰어드는 카림을 손쉽게 비난할 수는 있지만, 생존 이외의 모든 것을 거세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삶을 이어가는 한 꿈도 이어진다.
삶이 이어지는 한 꿈을 이어간다. 광기 어린 상황에서 연필 사각이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 이. 내일이 있을 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가게 창틀을 푸른색으로 칠하는 이. 상대의 거친 믿음을 비틀어 무기로 삼는 이. 자기들의 방식으로 희망을 말하는 것. 그것이 각자의 방식대로 이어가는 싸움이다.
아마도 실화가 아닐, 환상에 가까운 결말 또한 그래서 희망으로 읽혔다. 귓병으로 유서까지 썼던 베토벤이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굳히고 시작한, 그의 제2 황금기를 상징하는 <발트슈타인>. 온 세상이 시리아를 잊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다른 무수한 전쟁들처럼 시리아 사람들의 고통도 소리 없이 잊히고 있지만, 보라, 여기서도 우리는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속해보겠다는 결연한 마음마저 읽힌다. 그건 카림의 싸움이자, 시리아의 싸움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데, 이 이야기에 묻어난 실화는 대체 몇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결국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투사는 죽거나 잡히거나 도망치지만, 투사가 아닌 자들도 그렇다. 죽지도 잡히지도 않고 전쟁의 손아귀에서 도망친 자들만이, 생존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다.
지극히 특정한 분쟁의, 특정한 이야기임에도, 보고 있노라면 이 땅을 지나간,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무수한 전쟁들이 보편적으로 떠오른다. <1917>도, <동주>도 생각난다. 동주와 몽규 같은 이들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같은 이들이, 어딘가에서 죽거나 잡히거나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하나하나의 얼굴들이.
<전장의 피아니스트>가 가까이에 비춰 준 “타인의 얼굴”들을 떠올린다. 시리아의 무운과 평화를 빈다. 이제는 이 문장을 그만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쓴다. 백여 년 전 독립만세를 외친 사람들은 더 이상 독립만세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얼마나 바랐을 것인가. 지금도 마음 다해 하는 일이 어서 소멸되길 바라며 일하고 움직이고 꿈꾸는 모든 이들의 무운을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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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하고 싶은 이들
삶에서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현재의 모습. 그 모습을 바꾸려고 이리저리 시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내 노력과 별개로 사회 시스템이나 제도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인 상황이나 가족 문제가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에서 더 나아갈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면,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시도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어 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진정한 탈출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적인 해방과 더 나은 삶을 향한 강한 의지와 결단을 포함한다.
영화 <탈주>의 배경과 주요 인물
영화 <탈주>의 규남(이제훈) 이야기는 북한의 병사 이야기다. 10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왜 그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가야 하는지가 먼저 제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규남의 서사가 드러나면서 그가 꼭 탈출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한이라는 사회의 벽, 그 안에서의 억압된 생활은 그에게 자유를 향한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규남에게는 남은 가족이 없다. 제대 후 무언가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자유롭게 무언가 도전해볼 수 있는 남한으로 가려고 한다. 영화는 규남의 탈출 과정을 통해 그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규남을 쫓는 현상(구교환)의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높은 사회 지도층의 가족으로 보이지만, 동성애자로 보이는 그의 삶은 북한에서 더욱 억압적이다. 그는 유학 후 북한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의 추격은 단순히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압된 삶을 반영하는 듯하다.
영화는 북한을 하나의 장애물로 다루지만, 그 장애물은 사실 남한에도 존재한다. 남한은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빈부 격차와 사회 제도의 벽이 꽤나 크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적 한계 때문이다. 결국 북한을 탈출하든, 남한을 탈출하든, 그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려는 모습은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보인다.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한계
규남의 탈출 이야기는 북한의 극단적인 억압을 상징하지만, 남한 사회에도 존재하는 여러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젊은이들이 겪는 취업난과 주거 문제 등은 모두 그들의 꿈을 제한하는 요소들이다. 탈출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저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이지만, 이는 가끔 절망적이기도 하다.
결국 개인의 선택은 주변 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더 자유롭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한국 안에서 가능하다면, 탈출하려 하지 않겠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런 가능성을 점점 줄이고 있는 듯하다. 나라를 탈출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 <탈주> 속 인물들의 갈등
규남의 처절한 탈주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본다. 그의 탈출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규남을 쫓는 현상 역시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추격은 단순히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도망칠 수 없는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이야기는 규남의 탈출과는 또 다른 형태의 투쟁을 보여준다.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
<탈주>는 단순히 북한에서의 탈출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갈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담고 있다. 규남과 현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억압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 <탈주>는 북한이라는 극단적인 억압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메시지는 남한을 포함한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 자유와 억압,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 영화는 한국에서 73만의 관객이 찾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추격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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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날 보면 좋은 영화.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내일이 '어린이날'인데요!
그래서 어린이날을 맞이해 아역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어린이날 보면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4등
4th Place, 201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재능있는 초등부 수영선수 준호가 대회에선 늘 4등만 하자,
엄마 정애는 새 코치 광수에게 준호를 맡긴다.
광수는 1등을 하게 해주겠다며 정애의 수영장 출입을 금한다.
cine pick!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12번째 인권 영화로
사회의 인권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아역 배우 '유재상'은 혹독한 수영 훈련을 실제로 해내야 했는데
감독과 스탭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악착같이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6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방학식 날 만난 외톨이 선과 전학생 지아는 비밀을 나누며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되어 반짝이는 여름을 보낸다.
그러나 개학 후, 지아는 어째선지 선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cine pick!
<우리들>은 베를린 영화제 2개 부문 노미네이트작이자,
8개 국제영화제 초청된 화제의 영화이다.
극을 주로 이끌어 가는 세 아역 배우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에 대해
외신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배우들의 열연'이라고 극찬을 보내기도 하였다.
보희와 녹양
A Boy and Sungreen,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소심한 중학생 보희,
두려운 것 하나 없는 씩씩하고 당찬 녹양.
한날한시에 태어나 둘도 없는 친구인 두 사람은 보희의
생물학적 아빠를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cine pick!
<보희와 녹양>은 8개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두 아역 배우 '안지호'와 '김주아'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1994년 서울,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한 중학생 은희.
집과 학교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어느 날,
은희는 새로운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를 만나게 된다.
cine pick!
<벌새>는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주인공 '은희' 역을 맡은 '박지후' 배우는 제18회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넓은 폭과 복잡성을 내포한 미묘한 연기'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집
The House of Us, 201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매일 다투는 부모님이 고민인 12살 하나와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싫은 유미, 유진 자매.
여름방학,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터놓으며 단짝이 된 셋은
무엇보다 소중한 각자의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cine pick!
<우리들> 윤가은 감독의 새로운 영화 <우리집>
'가족'을 주제 삼아 능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역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고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남매의 여름밤
Moving On, 2020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옥주와 동주 남매는 여름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가 사는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 지내게 된다.
한동안 못 만났던 고모까지 집으로 들어오면서
가족은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 함께 여름을 보낸다.
cine pick!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는 <남매의 여름밤>을
'관계와 감정의 핵심으로 직진하는 사려 깊은 초상화'라고 평했다.
최정운 배우의 밀도 높고 섬세한 연기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은 즐겁다
Kids Are Fine,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파서 병원에 있는 엄마와 항상 바쁜 아빠로 인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9살 다이.
어느 날, 엄마와의 이별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다이는
친구들과 함께 엄마를 만나러 어른들 몰래 여행을 떠난다.
cine pick!
<아이들은 즐겁다>는 동명의 웹툰을 영화한 작품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만큼 특별히 5월 5일 '어린이날' 개봉을 했다.
아역 배우들의 꾸밈 없는 진짜 모습을 담기 위해 별도의 시나리오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개개인의 연기력이 뛰어난 아역 배우들이 만나 뛰어난 케미를 보여줬다.
언프레임드 - 반장선거
Unframed,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어른의 세계만큼 치열한 5학년 2반 교실의
반장선거 풍경을 담은 초등학생 누아르.
cine pick!
<반장선거>의 아역 배우 김담호, 강지석, 박효은, 박승준 배우는
모두 독립 영화, 단편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활약하며 연기력을 쌓아온 배우이다.
아이들의 시선, 그리고 분위기에 압도되는 영화였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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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에이트 쇼 | 메시지도 이야기도 놓쳐버린 불상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하게 살아가던 '진수'(류준열). 하지만 그는 지인을 따라서 주식에 손을 댔다가 투자한 돈을 다 잃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중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릴 결심을 한다. 그 순간 갑자기 도착한 입금 문자와 게임 참가를 종용하는 메시지. 계좌에 꽂힌 엄청난 액수의 돈에 놀란 진수는 그 자리에서 게임 참여를 결정한다.
3층 카드를 골라 방에 입주한 그는 1분에 3만 원씩 버는 규칙에 놀라고, 다른 참가자 7명, '8층'(천우희), '7층'(박정민), '4층'(이열음), '6층'(박해준), '2층'(이주영), '5층'(문정희), '1층'(배성우)과 안면을 튼 후 게임을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할 규칙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우연히 갈린 층수에서 비롯된 불평등이 가시화되자 참가자 8명은 서로를 짓밟고 더 많은 돈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감독이 작품보다 우선될 때
거울. 영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비유다. 거울을 보면 안 보이던 외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듯이, 영화도 관객이 미처 깨닫거나 생각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일깨워줄 수 있으니까. 봉준호의 <기생충>과 <설국열차>가 그랬듯이.
한재림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자기만의 거울이라 생각한 듯싶다.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비판, 풍자, 고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전작인 <관상>, <더 킹>, <비상선언>에서 선보인 연출력과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오징어게임>의 아류작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더 에이트 쇼>는 한재림의 <기생충>도, <오징어게임>도 되지 못했다. 우선 거울에 비춰 보여주려는 문제점을 영화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 자의식이 과하게 반영된 마무리는 시청자가 작품을 소화할 여지를 없앴다. 그 대가로 8부작 드라마의 화려한 볼거리는 단순한 기교에 불과해지고, 의도도 메시지도 가학성과 자극성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명확한 목적
<더 에이트 쇼>의 목적은 확실하다. 8개 층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한국 사회를 빗대어 그 모순점과 불평등함을 비판, 풍자하려 한다. 우연히 1층부터 8층까지 선택한 8명의 주인공. 그들의 운명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 가장 이상적인 비율의 피보나치 수열로 1층부터 8층까지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권력과 부의 격차는 벌어진다. 금수저론, 코인과 주식 열풍이 불었던 원인을 유비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만남이다. <기생충>이 계단을 활용해 계층 관계를 보여줬듯이, <더 에이트 쇼>도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선 속에 1층부터 8층까지의 위계를 녹여냈다. 바삐 움직이는 캐릭터들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모습을 집약한 듯하다. 위로 올라가려 발악하는 1, 2, 3층.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4, 6, 8층.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5층과 7층. 주변에서, 또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상이다.
이에 더해 윤리적인 선도 함께 건드린다. 8층을 장악한 이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래층을 잔인하게 찍어 누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을 통제하거나 자극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시험한다. 이때 <더 에이트 쇼>는 '모든 악행의 책임은 권력을 악용한 개개인의 몫인가? 아니면 그렇게 환경을 조성한 시스템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오징어게임>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재림이 한재림 한 전반전
한재림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더 에이트 쇼>가 목적에 다가서는 원동력이다. 특히 한재림 감독의 장점이 빛나는 전반부가 유도 인상적이다. 그는 다양한 코미디를 다룰 때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더 킹>에서는 검사 주인공을 내세워 한국 현대 정치사를 비꼬았다. 계유정난에 개입한 관상가의 비극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초대한 <관상>의 전반부도 인상적인 코미디였다.
<더 에이트 쇼>의 전반전도 마찬가지다. 블랙 코미디 느낌이 짙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부를 늘릴 수 없는 가운데, 주식과 코인 대박을 꿈꾸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2030의 모습을 진수에게 투영한다. 그 덕분에 <더 에이트 쇼>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극의 몰입도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치는 풍자의 화법으로서도, 블랙코미디라는 신호로서도 탁월하다. 과거 무성영화 스타일의 자막, 필름 화면, 영화 비율을 활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진수가 슬랩스틱을 여럿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던 타임즈>가 비인간적인 공장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의 피폐한 삶을 꼬집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약 1세기가 지나자 그 노동 자체가 무가치해졌다고 일깨우는 셈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후반전
문제는 후반부다. <더 에이트 쇼>는 앞서 던진 비판점을 강조하기에 충분한 전개를 보여주지 못한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끝은 냉소와 자조에 가깝다. 어떻게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려던 1층의 발버둥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계단 위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지워 버린다.
그런데 1층을 제외한 게임 참가자들의 삶은 정작 희망적이다. 비록 게임 속에서 겪은 충격적인 일 때문에 피폐해진 듯 보이지만, 거액의 상금을 챙겨 바라던 삶 또는 더 좋은 삶을 누린다. 즉, 현실에서 층수를 바꿀 수 있는 사다리를 제대로 챙긴 셈이다. 1층은 영원히 1층, 8층은 끝까지 8층이라는 게임의 끝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히 <더 에이트 쇼>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과는 거리가 먼 결말을 보여준다. 빈부격차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문제를 비판하려는 건지, 시스템에 순응한 채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건지,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상금을 타내는 참가자들의 노력과 인내심을 본받자는 건지 혼란스럽다.
이 단점은 감독의 전작인 <비상선언>과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화려한 스펙터클로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군상극을 펼치기 시작하자 메시지와 개연성, 캐릭터는 모두 흔들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주제 의식마저도 공감되지 않고,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은 실망감을 키운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겠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담아낼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패한 전철을 답습하고 말았다.
허망한 마지막
어떤 면에서는 <비상선언>보다도 더 큰 실패다. <비상선언>에서는 못 본 단점이 드러나기 때문. '7층'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7층은 자기가 경험한 게임을 토대로 '더 에이트 쇼' 시나리오를 쓴다. 한때 흥행 감독이었던 7층이 이제는 현실적이고 예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7층이 쓴 시나리오 제목을 비추는 엔딩은 인상적이지 않다. 허세에 가까워 보인다. <더 에이트 쇼>의 내용이나 문제의식은 결코 날카롭거나 새롭지 않기 때문.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활용해 하위 계층을 더 촘촘히 감시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이미 <설국열차>, <오징어게임>, <헝거게임> 등 숱한 작품이 다룬 바 있다.
또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문제의식을 제시할 뿐, 그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설국열차>에서는 기차가 전복됐다. 캣니스는 헝거게임 경기장을 부수고, 성기훈은 프론트맨을 잡으러 간다. 반면에 <더 에이트 쇼>는 게임을 끝낸 참가자들이 상금 덕분에 해피엔딩을 누리는 것 다음 이야기가 없다. 그저 영화감독인 7층의 입을 빌려 사회 모순을 통찰했고, 그 비판을 드라마(영화)에 담아냈다는 도돌이표에 그친다.
만약 <기생충>처럼 아예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줬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기생충>은 기득권은 악하고, 빈곤층은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관객의 시야를 넓혀 버렸으니까. 그런데 <더 에이트 쇼>는 그 정도의 통찰력까지는 못 보여줬다. 권력자는 악하고 타락하고, 빈자는 선하지만 고통받는다는 오래된 도그마를 답습하기 바쁘다. 자연히 메타적인 결말은 더욱 허망하고 실망스럽다.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게임>이 될 수 없는 이유
주제 의식과 의도에 공감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게임 자체를 보는 재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오징어게임>과 <더 에이트 쇼>의 결정적인 차이다. 두 게임의 참가자 모두 돈을 원한다. 하지만 전자는 예상치 못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동적인 플레이어였다. 반면에 후자는 능동적인 주체다. 자기 의지로 상대의 존엄성을 가능한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 결과 계속해서 연장되는 게임 시간은 쾌감 대신 거북함으로 가득해진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극단적인 참가자도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특정한 인물상을 대변하는 장기짝에 불과하다. 정신병자, 천재, 선인, 악인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속고 속이는 후반부에서는 속는 사람의 아둔함에 탄식이 나올 정도다. 캐릭터 간의 관계와 심리 변화를 쫓는 <오징어게임>의 재미는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 대신 드라마를 선택한 결정도 악수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전개가 느리다. 그러다 보니 <더 에이트 쇼>는 중간마다 가학적인 장면을 의도적으로 전시할 수밖에 없다. 왕게임이나 숨바꼭질처럼 특별하지 않은 게임이 등장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수면 고문 장면처럼.
결국 <더 에이트 쇼>는 거울이 아니라 빈 깡통이다. 감독과 출연자의 명성은 요란하고, 볼거리는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Poor 형편없음
<더 킹> 마냥 이륙해서 <비상선언>처럼 착륙한 한재림표 <오징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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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아닌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시사회 감상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 <메이 디셈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의 일부를 모아 만든 조악한 진실에 우리는 모두 상처받고 있다. 인간의 다면적이고 복잡한 내면과 세상의 진실을 타인이 포착할 수 있는지 묻는 영화들이 많아진 것은 그 때문일까. 오해와 어긋난 이해에 가려진 순수한 사랑을 그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과 부부의 몰락한 관계를 해부하는 <추락의 해부>에 이어 <메이 디셈버>도 관계와 내면의 진실을 묻는다. 자극적인 사건 사고에 대한 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멀리 많은 이들에게 퍼진다. 풍성한 사연을 가진 개인은 소비하기 쉬운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로 전락하고, 자극적인 정보만이 취사선택되어 이야기는 반복되고 잊히지 않는다.
36세 여성과 13세 소년의 불륜. 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호기심이 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1990년에 펫샵에서 근무하던 그레이시(줄리안 무어)는 함께 일하게 된 소년 조(찰스 멜튼)와 사랑에 빠진다. 가정도, 도덕도, 관습 그리고 법도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레이시는 감옥에서 조의 아이를 낳았고, 이후 조와 함께 가정을 꾸려 세 아이의 부모가 된다. 타블로이드 신문을 연일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이 사연은 20년 후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 영화 속 그레이시 역할을 맡게 된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는 캐릭터 연구를 위해 부부의 집을 찾는다.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내면과 부부의 관계를 파고들수록 숨겨져 있던 균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레이시와 조의 사건에서 가해자는 명백히 그레이시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였고, 36세의 성인이었으며,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적 관습을 배반하고 그레이시가 선택한 것은 순수한 사랑이다. 그 원인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우울증, 양극성 장애 등으로 꼽는 것은 보는 이들의 자유지만 어찌 되었든 그레이시는 자신이 사랑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사건의 앞뒤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럴듯한 의견들이 들어갈 여지가 충분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어리고 불쌍한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을 앞둔 자식들을 보며 쓸쓸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레이시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튼튼한 자아’는 조와의 사랑을 확신하며 자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레이시의 화사하고 밝은 아름다움은 그 순진하리만치 당당한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레이시는 예민하고 통제적이지만 어려서부터 오빠들의 과보호 아래 자란 순진하고 당당한 여성이며 조는 천식을 앓는 동생을 돌보며 철이 일찍 든 조용하고 강인한 남성이다. 엘리자베스는 영화에 출연할 조 역할의 어린 배우를 찾는데 고심한다. 조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매력이 영화화에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비극적인 사랑에서 시작한 이 아름다운 커플에게 숨겨진 진실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도덕의 모호한 회색지대를 탐구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레이시와 조는 흥미를 자극하는 대상이다. 엘리자베스는 특유의 집요함으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질문하고, 그레이시의 전남편과 두 사람의 아들이자 조의 친구였던 조지를 만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흡수하려는 것처럼 엘리자베스는 극이 진행될수록 그레이시와 닮아간다. 그레이시가 직접 자신의 화장품을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발라주고 거울을 향해 나란히 겹쳐 섰을 때, ‘인식론적 상대주의’와 ‘블루베리 파이 레시피’만큼 다른 두 사람은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 있다.
<메이 디셈버>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으로 그레이시를 쫓다가 엘리자베스를 거쳐 조에 이르는 영화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그들을 한 사람씩 규정지으며 판단한다. 내내 당당하던 그레이시는 작은 일에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한 것처럼 부서질 듯 눈물을 흘린다.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편지를 읽은 후 드러내는 묘한 쾌감은 관객만이 볼 수 있다. 조가 혼자 TV를 보며 맥주를 마실 때 미지의 누군가(관객일 수도 있겠다)와 나누는 문자 메시지에서 우리는 그의 외로움을 엿본다. 그레이시의 오열을, 엘리자베스의 음흉함을, 조의 공허한 눈을 보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감독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마침내 영화 촬영 현장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는 소파 위에 농염한 모습으로 누워 원피스의 한쪽 어깨끈을 늘어뜨린 채 손에 뱀을 감으며 조 역할의 소년을 보고 있다. 같은 대사, 비슷한 연기를 몇 차례 이어갈수록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점차 은밀하고 유혹적으로 변한다. 한 번만 더 하면 “진실에 닿을 것 같다”며 이어간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흡사 마녀의 유혹처럼 외설스럽다. 엘리자베스가 만들어낸 그레이시는 조각난 단면에 배우의 자의적 해석이 덧입혀진 전형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도덕적인 모호함과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스캔들 속에서 엘리자베스가 찾아낸 진실은 타블로이드 표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까이서 보고, 겉모습을 베끼고, 질문을 던진다고 진실에 닿기는 힘들다. <메이 디셈버>의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색감은 아름다운 풍경 속 인물들을 한층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도덕적 진리를 묻기에는 가깝고, 내면의 진실을 파악하기에는 먼 카메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시선과 일치한다. 진실이 담기기에는 파편적인 화면들 속에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비극적 분위기에 지나지 않는다. <메이 디셈버>에서 ‘이야기’가 아닌 ‘인생’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이야기에 가둘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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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 낮은 남자의 진정한 매력 찾기! with 계약 여친
얼마전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러브하드는 공개된 이후 큰 반응없이 사라진 영화에요.
특히나 한국에서는 아주 빠르게 사라져갔죠.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족, 애인과 함께 보기에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아주 뻔한 이야기이지만 따뜻하고 꽤 유머러스하거든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제 리뷰를 보고 영화를 찾아봐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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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 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와 화려한휴가/5.18 영화이야기/ 5.18 40주년
#화려한휴가#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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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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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연수 아무나 함부로 해주는 거 아니랬는데 ?♀️ 거슬리는 이웃은 차라리 도와주고야 마는 츤데레 끝판왕 할아버지 OTTO가 온다! ? [오토라는 남자] 3월 29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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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위스터스> 2차 예고편
올 여름, 역대급 토네이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