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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3-11-06 07:35:33

그는 10년 만에 마주한 자유가 막막하다

〈프리 철수 리〉

8★/10★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한 아시아 남성이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된다. 절도죄로 보호감찰 중이던 그는 집에서 친구에게 빌린 총을 실수로 발사해 벽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흔적이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총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 살인죄 기소의 결정적인 근거였다. 그의 이름은 이철수. 1952년 한국에서 태어난 이철수는 그를 가족에 맡기고 미국으로 간 어머니의 권유로 미국에 온 한국인 이민자였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철수는 수감된 지 10여 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의 수감이 미국 내 한국 이민자, 나아가 아시아 이민자의 열악한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부상한 결과였다. 이철수가 체포되던 때부터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백인으로 구성된 시 당국자와 경찰은 사건의 ‘빠른 해결’을 원했다. 이철수의 범죄 이력과 사건 당시의 행적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검찰이 남긴 기록에서 이철수는 내내 ‘중국인’으로 지칭되었다. 요컨대 이 사건은 아시아인 거주지에서, 아시아인들끼리 벌인 사건으로 성급히 마무리되었다.

 

 

  한국인 이민자이자 주류 언론에서 일하는 한 기자가 이철수 사건에 주목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본 기자는 이철수에게 죄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의 기사는 대서특필되었고, 이후 여러 활동가가 이 사건에 달려들었다. 이철수 사건은 곧 아시아인들이 미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철수는 10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철수는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프리 철수 리’, 즉 ‘이철수를 석방하라’는 영화의 요구는 그의 석방으로부터 다시 한번 시작된다. 이철수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이철수는 다시 현실에 발을 디뎌야 했다. 그러나 이철수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이 막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도운 사람들의 헌신적 노력을 배신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실망할까 걱정했고, 자신에게 쏠린 기대에 큰 압박을 느꼈다. 그렇게 이철수는 ‘두 번째 감옥’에 갇혔다.

 

 

  이철수는 한국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고, 미국에 와서는 종종 어머니에게 폭행당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었고, 언젠가부터 도둑질을 시작했다. 갱단에 소속된 적은 없었다. 그가 차이나타운의 한국인, 즉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종 별로 나뉜 수감자 무리 한복판에서 이철수는 홀로 생존해야만 했다. 감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건드리는 갱단 구성원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아시아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남들의 기대에 맞춰 뒤늦게나마 ‘좋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전화 안내원, 컴퓨터 세일즈맨, 건물 관리인 등의 일을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 마약에 손을 댔고,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찾아가 난폭하게 굴었다. 방화 사건에 휘말려 18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를 짓누르는 두 번째 감옥은 첫 번째 감옥과 달리 타인의 도움과 연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듯 보였다. 이철수는 결국 2014년 병환 치료를 거부하고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철수의 삶은 우리를 고양시켰다가 침잠케 한다. 그의 억울한 옥살이가 민권 운동의 결실로 마무리될 때, 우리는 진실과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삶’이라는 기대에 갇힌 이철수의 삶은 앞서 관객을 감동케 한 것들이 동시에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연대의 깊이와 내용을 상식적인 차원 이상으로 심화시켜야 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철수가 ‘두 번째 감옥’에서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사회에 요청할 일은 무엇이었을지 질문하는 일 말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하고, 그 삶을 가능케 하는 안전망의 내용을 현실에 밀착해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감옥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긴 노력과 여기에 담긴 가치마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시대에 두 번째 감옥의 비극을 막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질 즈음, 자신의 삶 궤적이 켜켜이 새겨진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깃든 그의 얼굴은 우리를 이 불가능한 질문에 붙들어 놓는다. 이철수의 얼굴은 그가 감당하지 못한 질문이 정말 본질적으로 답변 불가능한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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