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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까2023-11-13 23:59:49

이 영화에 괴인은 없다

영화 <괴인>

영화 <괴인> 시사회장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미로 사는 산만 한 덩치의 분홍색 곰돌이 '벨리곰'이 깜짝 등장했습니다. '벨리곰'을 만든 제작자가 바로 영화 <괴인>을 만든 프로듀서라고 하는데요. 정현중 프로듀서는 <괴인>의 이정홍 감독이 '벨리곰'을 디자인한 장본인이고, '벨리곰'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투자한 작품이 바로 <괴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없이 귀여운 분홍색 곰돌이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의 조합이라,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동시에 묘한 기대감이 차올랐습니다. '이 영화'와 '저 곰'을 만든 사람이 같다는 것만으로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포스터 속 카피가 단번에 이해되어 버렸달까요? 무대인사에서부터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기운이 폴폴 풍겼던 영화 <괴인>을 관람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괴인>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괴인>은 2023년 11월 8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괴인

a Wild Roomer


 

 

<괴인>은 어느 날 자동차 지붕이 찌그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홍'과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블랙박스를 돌려 보다가 누군가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차가 망가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기홍'은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집주인 '정환'과 함께 범인 찾기에 나섭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괴인>이 사소한 일에서 촉발된 거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추리극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찌그러진 자동차 지붕에서 시작한 영화는 '기홍'의 하루하루를 천천히 뒤쫓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세 들어 사는 '정환'과 '현정' 부부의 집은 주된 배경이 되고, '정환'과 '현정' 역시 주요한 주변 인물이 되죠. 영화는 '기홍'을 멀찌감치에서 관찰하다가도 일순간 내밀한 심정을 들추어내기를 반복하며 '기홍'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 갑니다.

 

 ⊙ ⊙ ⊙

 

극의 주 무대인 '정환'과 '현정'의 집은 분리와 연결을 테마로 하는 디귿(ㄷ) 형태의 공간입니다. 현관문은 두 개로 나뉘어 있으나, 실은 하나로 연결된 집이죠. 그들의 집은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구조적 특징을 가졌습니다. 분리와 연결은 정반대의 단어입니다. 즉,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모순인 셈입니다. 하지만 '정환'과 '현정'의 집은 그렇게 지어졌고, 실은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정합되는 것 없이 늘 어긋나곤 하죠. 그리고 <괴인>은 이러한 삶의 모습을 '기홍'과 주변 캐릭터들을 통해 묘사합니다.

 

주인공 '기홍'은 가장 많은 모순이 드러나는 인물입니다. 그는 동료들에겐 무례하고, 집주인에겐 예의가 바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목수가 되었지만, 늘 누군가의 의뢰 없이는 돈을 벌지 못하는 의존적인 상황에 처합니다. 돈 많고 젊은 집주인 부부가 불편하면서도 술자리, 범인 찾기, 취미 생활 등 사사로운 일들을 자주 함께합니다. 남의 가게에서 잠을 청하다가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하나'가 이해되지 않지만, 결국 거처를 잃은 그녀가 마음에 쓰입니다. 한 번 꼬셔보려는 여자들은 죄다 싫은 티를 팍팍 내는데, 꼬실 여자 후보에도 없었던 '현정'과는 미묘한 사이가 됩니다. 이러한 어긋남은 다른 캐릭터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세상만사 관심 없다는 느긋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기홍'에게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정환', 남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현정', 차를 망가뜨리고 도망간 홈리스이면서 누구보다 빚지기를 싫어하는 '하나'까지. 모두 모순 투성이입니다.

 

정리해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괴상합니다. 그런데 괴상하다는 것은 '보통과 다르게 이상한 것'을 말하지요. 따라서 모든 인물이 괴상한 것은 모순입니다. 모든 인물이 괴상하다는 것은 그것이 곧 보통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괴상하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평범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 영화 속에는 단 한 명의 괴인도 없습니다. 오직 범인들 뿐이죠.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낯설게 느껴졌던 모든 괴인들이 낯설지 않아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모순적인 면면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고, 어긋남의 순간은 어느 삶에나 생깁니다. 모든 인간은 매 순간 조금씩 죽어가고 있음에도 이를 '살아간다'라고 표현한다는 면에서 인간의 삶 자체가 모순 덩어리입니다. 살아가는 중이기도, 죽어가는 중이기도 한 우리는 모순이라는 평범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상하게 살아갑니다. 인생이 따뜻하면서도 씁쓸하고,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것은 삶이 이런 어긋남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 ⊙

 

영화의 뼈대가 엉성하면 아무리 훌륭한 배우들이 출연해도 좋은 작품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중요한 철근 몇 개를 빼고 영화의 뼈대를 세웠는데도 배우의 인지도라는 콘크리트가 영화 전체를 지탱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무명 배우가 연기했더라도 이 영화는 이렇게 알려졌을까?' 이처럼 이름난 배우의 후광은 특별한 점 하나 없는 영화에 매력을 더해주곤 합니다. 그 말인즉슨 영화가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면 배우의 후광을 없애보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괴인>은 배우의 후광을 모조리 제거한 작품입니다. 먼 훗 날, 톱스타가 된 어느 배우의 과거 작품으로 <괴인>이 매체에 오르내릴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괴인>에서 열연한 배우들은 모두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이기 때문이죠. '기홍' 역의 박기홍 님은 이정홍 감독의 30년 지기 친구이자 실제 목수이고, '정환' 역의 안주민 님은 이탈리안 셰프입니다. 이렇듯 아는 배우가 전혀 나오지 않다 보니 영화 전반부에는 이 작품이 심지어 다큐멘터리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괴인>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흡인력과 매력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이 낯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완전히 극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연기를 이만큼 하는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제작진이 꽤나 고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흠씬 들었습니다만, 그보다도 영화의 매력인 '보여주기'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장면장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거친 흐름의 영화인데도 모든 장면의 색감, 구도, 심도 등을 섬세하게 연출하려는 열정이 느껴졌죠. 특히 프레임 인 프레임 구성으로 집중력을 확 끌어올렸던 인트로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영화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유명 배우라는 치트키를 쓰지 않은 것, 이마저도 어떠한 종류의 모순으로 보인다면 제가 영화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것일까요? 

 

 ⊙ ⊙ ⊙

 

양립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하나의 영화 안에서 선보인 <괴인>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해준... '벨리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삶의 복잡다단함을 담아낸 <괴인>의 탄생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단순한 재미로 사는 '벨리곰'에게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모순적이네요. 

 

Summary

운전을 하던 목수 ‘기홍’은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우연히 발견한다. 공사 중인 학원 앞에 세워 둔 차 위로 누군가 뛰어내린 사실을 알게 된 ‘기홍’은 범인을 찾자는 집주인 ‘정환’의 부추김에 늦은 밤 학원으로 향하고, 신원 미상의 인물이 창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이정홍

출연: 박기홍, 안주민, 전길, 이기쁨 외 


작성자 . 방자까

출처 . https://brunch.co.kr/@hreecor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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