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11-13 22:22:58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같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라일리'

라일리는 촉망받는 미식축구 선수이다.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인기남인 데다 운동선수로도 각광받고 있는 그의 삶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카웃해가겠다는 학교도 있으니 그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못한 그의 핸드폰 속 세계에는 남자들의 몸자랑으로 가득한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말 모호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불만이 없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할 생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암이라는 친구와 안면을 트게 되면서 그의 온전했던 삶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1. 잘 짜여진 운동선수의 삶 속 어울리지 않는 그의 정체성
흔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남자의 행동이 다분히 여성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기준보다 여성스럽다고 해서 전부 다 게이도 아니거니와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맞다고 해서 게이가 아닌 것도 아니다. 라일리는 학교에서도 인기 많은, 소위 주류 문화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성미가 뿜뿜하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더 의심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게이는 여성스러운 남자들의 모습으로 많이 어필되어 왔는데, 그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겉보기에 그는 착하고 인기많은 이성애자 남자 같아 보였다. 항상 아버지에 의해 운동 위주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 때문에 그는 커가면서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알아서 잘 연기한 착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적 이득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가족들에게도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이 포지션을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환경의 노예라서, 좋게 말하면 잘 짜여진 생활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놓아버리기엔 그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마주하기엔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두렵게 했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그의 정체성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이 참 보면 볼수롤 안타까웠다.
2. 리암이라는 존재
라일리의 온전한 삶에 돌을 던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리암으로, 학교에서 게이라는 사실이 꽤나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라일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한다. 라일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자신의 정체성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을 느꼈지만 리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니 긍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적인 삶을 살던 라일리에게 그의 존재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몸은 리암에게 끌리고 있으면서도 이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라일리의 위선적인 태도는 리암을 질리게 했지만 라일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는 그에게 한 번 정도는 해야할 일종의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뚫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3.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메시지
이 영화는 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라일리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언제나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을 숨기고 친구들과의 평가에 신경쓰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홀했던 사람이었다. 보다보니,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LGBTQ영화이지만 '자신을 가장 신경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뭐, LGBTQ라고 하면 대단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성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주류 문화에 치여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 정체성에 대해 깨달았지만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슬픔을 나같은 이성애자들이 어떻게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큼은 라일리의 여자친구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소수자들이 라일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있을 것이고, 온전히 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가장 먼저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이기적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 같고, 그들에게 공감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너무 재수없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라일리 같은 친구가 있다면 라일리의 여자친구와 같은 포지션에 있고 싶다. 그렇게 그들의 정체성을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이번 '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내가 봐왔던 영화들의 범주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좋았다. 물론 그전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LGBTQ를 봐오긴 했지만 더 다양한 성수수자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내 상식 선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이번 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나같은 이성애자들은 어떤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소수자들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길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너무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 같고, 너무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과해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발치 떨어져서 그들의 삶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선을 넘지 않는 무관심을 표시하는 것, 그것이 곧 답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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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범죄 영화 | 암수살인
오늘은 오랜만에 OCN을 보다가 암수살인이 나와서!
어?! 하면서 나도 모르게 빠지면서 봤던 그 작품을 가지고 왔어요
OCN 아무 작품이나 틀어주지 않는데 정말 암수살인은 정말 완성도 높은
범죄 영화 중 하나로 믿고 보는 김윤석과 주지훈의 환상의 호흡으로
몰입감 넘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영화 암수살인을 안본 사람이 있다면?!
영업하기 위해 가지고 왔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스릴러
감독 : 김태균
각본 : 곽경태
출연진 : 김윤석, 주지훈
개봉일 : 2018년 10월 03일
평점 : 8.58
스트리밍 : 티빙,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 왓챠
기획 의도
"일곱, 총 일곱 명입니다. 제가 죽인 사람들이예."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는 형사 김형민(김윤석)에게 추가 살인을 자백한다.
형사의 직감으로 자백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된 형민은,
태오가 적어준 7개의 살인 리스트를 믿고 수사에 들어간다.
"이거 못 믿으면 수사 못한다.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자."
태오의 추가 살인은 신고도, 수사도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범죄!
형민은 태오가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뒤섞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공소시효와 부족한 증거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되는데..
여담
암수살인 영화의 암수란?
인지되지 못한 것을 뜻한다. 즉, 피해자들이 단순 실종이나 스스로 행적을
감추었다고 판단되어서 살해 당했다는 사실도 알려지지 못한 살인사건.
한국범죄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사이코패스와 형사의 감성팔이 영화가 아닌,
서스펜서와 영화의 적적한 트릭 등으로 인하여 기존의 형사물과는
차별화된 담담하지만 실화 이야기를 잘 살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8~9점대의 높은 점수대를 받았고,
영화는 각종 상을 싹쓸이 했습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암수살인 결말을 살펴보자면...
범인 강태오(주지훈)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다른 교도소 이감되는
버스 안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바깥을 응시합니다.
아직 범죄를 다 밝히지 못한 김형민(김윤석)은 빼곡하게 기록한 노트를 열어
작은 마을에 방문하여, 휴대전화의 마지막 발신 위치를 보여주며
아직도 밝히지 못한 사건들을 추적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보통 수사범죄 영화는 피해자의 초점을 주로 포커스를 맞췄다면,
영화 암수살인의 경우 범죄자와 그걸 반드시 밝혀낸다는 포커스로
두 사람의 끝없는 심리싸움을 하면서 우리에게 밝히지 않은 범죄가 또 있을까?
라고 마지막에 묻는 것 같아 더욱더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다.
한줄평 : 이 작품 보면 솔직하게 국수 먹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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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국내 OTT 시장
8월 13일 진행된 글로벌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월트디즈니 컴퍼니가 디즈니+의 아시아 상륙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일본,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서비스중인 세계 2위의 OTT 플랫폼 디즈니+는 디즈니는 물론, 마블, 픽사 등의 우저작권까지 소유한 거대 엔터테이닝 기업으로,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다양한 디즈니+ 오리지널 작품들을 드디어 올 11월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특히, 마블 스튜디오의 완다비전(Wanda Vision), 로키(Loki), 팔콘과 윈터솔져(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스타워즈 시리즈 만달로리안 (The Mandalorian) 등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많은 국내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에 루크 강 월트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디즈니+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구독자 수 성장과 현지 파트너십 구축 등 지역 내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뛰어난 스토리텔링, 우수한 창의성, 혁신적인 콘텐츠 제공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의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맞서는 국내 OTT 플랫폼 또한 만만치 않은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지상파 3사와 SKT의 합작품인 웨이브 (wavve)는 드라마와 예능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내 OTT 플랫폼입니다.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등을 통해 시청률 보증 수표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한 김순옥 작가의 명작관이 있을뿐 아니라, 2021년 7월 20일부터 1년간 HBO와 콘텐츠 계약을 체결하면서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왔는데요. 웨이브에서도 첫 오리지널 영화 제작을 발표하여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2022년 개봉을 목표로 올 8월 크랭크인 예정인 영화 <젠틀맨>은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살인 누명을 벗으려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경쾌한 범죄 오락물로, 주지훈과 박성웅이 캐스팅을 확정지으며 기대를 끌어 올렸습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한소희의 하차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4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된 만큼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이에 맞서는 CJ의 '티빙' 역시 예능과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OTT 플랫폼인데요.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물론, 한지민, 임윤아 주연의 영화 <해피 뉴 이어> 등의 공개를 앞두며 승승장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하반기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을 통해 또 한번 웃음 폭탄을 떨어트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코믹 연기로 파격 변신을 예고편 이서진과 코믹 연기의 달인 라미란이 만난 드라마는 1도 슬기롭지 못한 초짜 개원의의 '웃픈' 의사 생활을 그린 현실 밀착형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아직 여타 플랫폼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어떤 플랫폼보다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쿠팡플레이 역시 첫 오리지널 코미디쇼 출시를 밝혔는데요. 거침없는 풍자와 패러디, 신선한 유머로 고품격 웃음을 선사할 쿠팡플레이의 첫 오리지널 코미디쇼 <SNL 코리아>는 9월 4일 첫 방송 확정과 함께, 역대급 호스트 이병헌의 출연 소식을 밝혀 화제를 모았습니다. <SNL 코리아>는 신동엽을 필두로 안영미, 정상훈, 김민교, 권혁수까지 오리지널 크루는 물론, 웬디, 김민수, 김상협 등 뉴페이스 크루의 합류로 더욱 업드레이드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디즈니+가 상륙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OTT 콘텐츠와 함께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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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여행. 나그네 려(旅), 다닐 행(行).
나그네처럼 다닌다는 뜻의 이 짧은 한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엄청나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여행을 가기 전에는 앞으로 다가올 여행을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주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즐거운 추억을 돌아보며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나 포함 수많은 직장인들이 1년에 한 번 떠나는 해외여행을 위안삼아 또다시 출근해내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않다. 2020년 한 해가 참 힘들었기에 다들 더욱더 어디로든, 잠시일지라도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요즘엔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로 누구나 헤매지 않고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다. 어느 도시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포즈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어야 하며, 어느 식당에 가서 현지 음식을 맛봐야 하는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게 맞을까?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는지. 여행이 무조건 교육적이며 의미가 있어야 하고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곳을 가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 그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여행은 한 개인에게 어떤 일말의 영향도 미치기 어려워 보인다. 여행지에서 생긴 좋은 기억들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여행이 개인에게 그의 인생을 바꿀만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한 여행기를 따라가 보자.
아르헨티나의 평범한 의대생 청년 두 명은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일주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 낡은 오토바이는 고된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망가져 버리고 만다. 그들이 오토바이를 버리고 걸어서 여행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둘의 여행은 180도 바뀌어버린다.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피폐해진 남미인들의 애환을 듣는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빼앗겨 광산으로 일하러 가는 부부를 만나고, 나환자촌에서 진심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여느 여행과는 달랐던 그들의 여행은 23세 순수한 의대생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20대 초에 다녀왔던 80일간의 중남미 배낭여행은 나의 인생에도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에게 미친 영향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아 보인다. 바로 영원한 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의 인생을 바꾼 여행에 관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이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에르네스토(체 게바라의 본명)와 그의 친구 알베르토는 무슨 혁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서 이 여정을 떠난 게 아니다. 단지 알베르토의 30살을 기념하는 동시에, 중간에 의대생으로서 나환자촌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빈부격차와 각종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누군가가 되기에 이른다. 피폐한 남미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신념이 바뀌게 된 것이다. 여행이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출처: 넷플릭스, 여행이 끝날 때 친구에게 이전의 내가 아니라며 뭔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체
탄성을 자아내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의 사막, 페루의 마추픽추 등 남미 곳곳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숨겨진 부조리들을 깨닫고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체. 여행은 체의 인생을 바꾸었고 체는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출처: 넷플릭스, 쿠스코의 원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체와 알베르토
출처: 넷플릭스,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편지를 쓰는 체
체가 활동하기 약 150년 전 중남미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1830)와 같은 혁명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자신이 평생 천식을 앓은 환자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려던 순수한 청년 에르네스토는 본인이 마주한 현실을 빠르게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사회의 투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혁명에 뛰어든 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특정 한 국가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어느 한 국가 국민이 아니라 중남미 전체의 Latin American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어 살아남은 혁명 동지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그가 다른 혁명가들보다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체 게바라의 활동과 삶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끊기지 않고 있다. 그의 능력이 부족했다거나, 작전이 효과적이지 못했다거나 하는 비판점도 있겠지만 그가 남들을 모른 척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 엘리트의 삶을 버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자유를 위해 본인의 삶을 바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희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한 번의 여행의 한 개인의 인생을 바꾸고, 또 그 개인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면 이 여행이 가진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앞으로의 여행은 짜인 코스를 가거나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사진을 찍는 것 말고도 다른 의미를 가지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물론 나부터. 그런 의미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볼 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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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좋아하는 가수로 주저 없이 스다 마사키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장발, 넥타이, 통기타를 들고 목소리를 긁어가며 부르는 ‘사요나라 엘러지’ 영상을 족히 50번은 본 듯하다. 그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해서 알기 싫었던 마음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감상이 그 가수의 사생활이나 성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배우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우연히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며 가까워진 무기(스다 마사키)의 집에서 돌아온 후 키누가 한 생각이다.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이미 그가 읽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그들은 서로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전철을 탄다’라는 말 대신 ‘전철 속에서 흔들린다’라는 말을 쓰는 무기를, 평생을 의문스러워 한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똑같은 이유로 이상하다 여기는 키누를 말이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 무기와 키누의 첫 만남이었다. 21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나이에 만난 그들은 싱그러운 사랑을 나눈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30분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강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빌라에서 같이 살게 된 그들은 20대 중반을 함께 마주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도, 울고 있는 나의 앞에 슬리퍼를 신고라도 달려와 줄 당신이 있기에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이어진다. 인생의 목표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였던 무기.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선 후, 그의 다짐은 어딘가 어긋나게 된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키누와, 인생은 책임이라는 무기. 서로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키누는 점점 메말라간다.
끝내 헤어짐을 택한 그들은 함께 골랐던 커튼을 정리하고 가구를 옮기며 차근차근 서로의 흔적을 덜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 순간 서로를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준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약속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결말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알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서로를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란 당연하게 어려운 일이고, 함께했던 일상에서 혼자로 돌아가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젊음을 함께 나눴던 이가 있다는 것,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궤적이 되는 것 역시 값진 일일 것이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 키누가 즐겨보던 블로그의 한 문장이다. 살아있는 꽃은 꺾는 순간 그 생명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들어간다. 메말라 버릴 미래를 그리며 안타까워하기에는 그 당장 눈앞에 놓인 싱싱함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언젠가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사랑이 있기를, 찾아오기를, 있었기를 바란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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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
프랑스 / 미스터리 외 / 105분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주인공 모린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저마다 뽐내기 좋은 취향과 유일무이한 개성조차 없는 인간이란 얘기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녀에겐 '단단하고 확실한 나만의 가치관'이 없다.
모린은 이란성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같은 영매지만 오빠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했다. 루이스는 자신이 영매란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바보 같은 행위라 여기지 않았다.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죽은 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생관은 모린보다 뚜렷했으며 무엇보다 미래를 꿈꿀 줄 알았다. 그는 내일을 생각하며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남들처럼', 또 '보통으로서의 개인'처럼.
내가 개인이고, 네가 개인이며, 동시에 우리까지도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리하여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남들. '사람들이 다 똑같지 뭐' 할 때의 그 사람들 같은.
루이스는 영매(남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진 개체)였으나,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단지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사고가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구분됐을 뿐이다. 누구든 그런 것처럼.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반면, 모린에게 영매는 삶에 혼란과 혼동만 불러올 뿐 특별한 힘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가치는 더더욱 아니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 루이스가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모린은 갖고 있던 이력(영매)을 내세우긴커녕 보통 사람인척 살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을 보냈지만, 그녀는 사실 홀로 다른 가면을 쓴 '진짜 타자'였다. 어렵지 않게 무리에 소속되고, 일하다가도, 혼자가 될 때면 홀린 듯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 한 척처럼, 숨 막히는 공허와 고독의 파도에 삶을 맡겼다. 그리곤 당연하게 삶에 관한 질문들을 모른 척 흘러 보냈다. 모린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떻게 되는 내버려 둔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모린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숨겨주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채로, 배에 구멍이 난 채로 그녀가 침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덕이었다.
루이스가 모린을 보호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린이 루이스의 존재를 자신의 편의대로 '등대'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린의 등대엔 불빛이 없었다. 암흑 속에서 꼭 죽은 것처럼 빛 없이 선 등대만 있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그 등대의 가치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그녀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안정'이라 여겼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란 근본적인 물음보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는 걸 택했다. 그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모린은 자신을 아는 일을 묻어두는 것으로 삶의 고통을 피해 가려했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정말 죽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나'를 아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내일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은 뒤로 미뤄두는 일, 모린은 가장 중요한 나를 확립하는 일을 딱 그 정도로 여겼다.
영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그녀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모린은 루이스와 달랐으니까.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루이스'는 그의 의사와 별개로 모린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문젠 '모린의 루이스'가 의사의 언어 그대로 '예외적인 사례'(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란 말은 모린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놓는다.
잔잔했던 수면 위로 떨어지는 돌 하나. '예외'적인 '사례'.
마치 신이 이미 결정한 일에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쉽다.
예외에 희망을 붙이는 거다. 이 작업이 편해질수록 마음의 안정은 빨리 찾아오게 되어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예외를 획득한 생'은 '사'를 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린 이 착각을 불안해하면서도 굳게 믿음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안정의 저울이니까.
물론 이미 깊은 자기 비관에 빠져있던 모린에겐 통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겠다는 선택지조차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심장기형'은 의사가 말한 '예외'에 꼭 맞는 결괏값이다. 루이스의 죽음이 예외적인 사례가 된 순간, 모린의 삶 역시 예외적인 죽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6개월 후에 보자는 의사의 말에 자조적인 눈빛으로 "글쎄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 대답한다. 내일 죽을 확률이 이미 나왔는데 어떻게 죽지 않을 희망을, 아니 아직은 죽지 않을 희망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쉽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도, 모린의 희망은 찬란한 빛이 제거된 흑백이었다. 모린은 자기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어른인 동시에 루이스의 죽음으로 분열되어버린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분열된 자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먼저 죽은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어요."
죽은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모린. 하루에 몇 번이고 기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키라의 취향에 꼭 맞는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구한다. 일이지만, 틈만 나면 반납해야 할 옷을 갖겠다 통보하고, 유명 연예인답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키라 때문에 모린은 견딜 수 없는 피곤과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에 허덕인다. 그나마 그녀를 숨 쉬게 하는 건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다.
모린은 오빠의 영혼을 느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직접 영혼의 신호를 포착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루이스에게 더 확실한, 더 강력한 신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유령에게 자신을 어필하란 기이하고도 이상한 모린의 요구. 그녀에게 오빠와의 약속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영매로서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오빠가 정말 옳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모린의 진심이 결정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침묵하는 영혼에 소리를 지르는 그때, 루이스의 집엔 불안해진 자신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모린, 자신의 울부짖음만 울려 퍼진다.
모린의 거짓말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분명 원하지 않았지만)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던 검은 장막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눈을 뜬 순간 모린은 자신이 봐왔던 등대가 빛을 내뿜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내 세계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확인한 모린은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그녀는 누구인가?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욕망을 해방하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그녀는 키라가 입을 옷을 자신이 먼저 입으며 금기를 깨트린다. 고용주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모린. 묘한 쾌락과 심리적 떨림을 느낀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진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키라의 옷과 신발을 탐한다. 익명이 보낸 문자가 모린의 고삐를 푼 결정적 계기로 이용된다. 마침내 그녀는 키라의 집에 들어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사적인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그러나 모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부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키라가 누리는 모든 것을 누려도 모린은 불안해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별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안정감 때문이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루이스와의 이상적인 이별을 원한다. 그러나 모린에겐 오로지 아무것도 드러낼 수 없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모린만 존재한다. 모린은 스스로를 '모린'이라 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런 와중에 삶의 목적이 확고했던 루이스와 같은 결말을 맞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었다.
모린은 언제든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될 수 있는 현실에서 차라리 내가 아닌 '완벽한 타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매번 실패한다.
하지만 모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고된 일상에도 틈틈이 심령 주의와 영매에 관한 정보를 찾고 습득한다. 자신이 영매이면서, 영매를 공부하는 아이러니라니.. 이는 모린이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믿고 써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시 루이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모린은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가 아닌 다른 영혼을 마주하자 도주한다. 공포에 휩싸인 채 자신이 영매란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며 도망친다. 루이스의 신호를 정말 받고 싶으면서도, 그 메시지가 정말 루이스의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같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뭐 하나 확실한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모린에게 충분한 만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결국 모린은 영매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의심하며 금기를 또다시 어긴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문자에 더욱 주도권을 뺏긴 채 질질 끌려다닌다.(그러나 모린은 그것을 위험하다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매번 흑백 프레임에 들어가 죽음과 죽은 자가 보내는 신호에 몰두한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지."
그녀는 사실 첫 번째 금기를 깨기 전까지 무엇이 금기이고 욕망인지 소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침대에서 누운 순간, 그녀는 달라졌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불안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위한다. 모린에게 자위는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제일 효과적인 도구로서, 허덕이는 정신을 대신하는 신체의 유일한 방식이었고,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애도만 하는 거 싫어.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젠 내 삶을 찾고 싶어."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는 새로 생긴 남자 친구의 존재를 모린에게 밝히며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모린의 남자 친구 역시 전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모린을 응원하고 위로했던 그는 단호하게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모린을 현실로 데려올, 루이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찾고 싶다는 라라의 고백에 모린은 묘한 낯섦과 해결되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비난하자 않는다. 라라의 걱정과 달리 모린에게 중요한 건 루이스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모린은 애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루이스가 평안을 찾길 바란다는 그녀의 속삭임은 자신을 위한 반복된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라라의 남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 당부한다. 라라의 남자 친구는 모린이 자신과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다. 정작 모린은 루이스에게 느꼈던 역량의 차이를 고백하며 자신이 부단히 오빠를 따라가려 노력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끝내 오빠와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결말까지.
모린은 자신이 벅찰 정도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을 넘어 죽음에 돌진해버린, 나와 같은 심장기형을 갖고 있던 존재로 루이스를 기억한다. 따라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란 말속에, '벗어나야 하는 것'은 루이스를 향한 감정들이 아니라 모린, 자신이 망가트린 마음인 셈이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끝없던 모린의 고뇌와 방황은 키라의 죽음으로 멈춘다. 자신을 흔들어놓던 익명의 존재가 키라를 죽인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에 모린은 곧장 남자 친구가 있는 오만으로 떠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원했던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더는 어떠한 효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사실적으로 그 효력 또한 모린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존재였고, 확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건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은 키라의 시신과 키라를 죽인 내연남의 도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명백한 사실로 무장한 진짜였다.
오만에 도착한 모린. 현실로 복귀한 그녀에게도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걸까?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사라졌을까? 이젠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부 확신할 수 없다.
모린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었고, <퍼스널 쇼퍼>는 그녀의 언어를 분석해 진위를 가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질문의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루이스는 모린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루이스 너야?"
마침내 오만의 한 고택에서 루이스로 추정되는 영혼과 모린은 교감한다. 그녀는 루이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긍정을 의미하는 "쿵!" 소리에 힘입어 영혼의 주인이 루이스라고 확신하는 모린. 그러나 그녀는 또다시 질문하는 실수를 범한다.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심을 주입하는 걸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자동차처럼 그녀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듯 군다. 결국 영혼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침묵.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모린은 결국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아니면 그저 내 상상인 건가?"
"쿵!"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의 인생은 온통 흑백이며, 그 안엔 대답 대신 물음이 가득하다.
우린 대답을 찾는 걸 더 선호한다. 대답을 갈구하는 일은 질문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의문과 의문이 만든 모호함과 괴이함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영화는 루이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모린의 물음표가 꼿꼿하게 세워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아무도 모르게 방향을 뒤집는다. 모린이 틈만 나면 찾아봤던 심령 주의 다큐나, 영매 작가의 전시회, 빅토르 위고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손수 조각난 이야기를 삽입해 관객이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우린 루이스가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지, 정말 모린의 신호에 응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모린의 착각일 수도 있다. 모린의 뒤로 둥둥 떠다니던 유리컵을 든 영혼이 루이스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확신할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있는다는 것이다. 답을 요구하지 않고, 먼저 질문하는 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이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퍼스널 쇼퍼>가 모린을 나무라지도 답답해하지도 않는 건, 물음을 가진 것 역시 그녀이고,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 역시 그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물음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방식이 또 물음표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은 '생'의 문제이기에 '사'가 관여할 수 없다.
<퍼스널 쇼퍼>는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모린의 마지막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게 불편했으나 고마웠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는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질문하는 것. 그의 말이 맞다. 영화는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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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통째로 연기한 여자, 연기를 삶처럼 사는 여자
전에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유부녀인 선생이 13살의 제자와 바람을 피웠고, 감옥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슥 읽고 지나칠 때는 쉽게 평가할 수 있다.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 가볍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메이 디셈버>는 그러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를 오래도록 깊게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과정의 호흡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조금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이렇게 디테일하고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는 조금 힘들긴 하다. 눈여겨둘 부분이 굉장히 많아져서.
제목이기도 한 <메이 디셈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제목의 주인공인 그레이시와 조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배우, 엘리자베스를 기꺼이 집에 초대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엘리자베스가 처음 그들에게서 본 모습은 가족과 이웃이 모여 뒷마당에서 즐겁게 어울리는 장면이다. 바비큐를 굽고, 핫도그를 만들어 먹고,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아마 이것이 부부가 사회에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우린 행복해요! 우린 서로 사랑한다고요!"
분명 그들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른 이웃들도 그들에 대해 칭찬 일색이며, 아픔을 건드리지 말라는 충고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두드린 문은 의외로 쉽게 열린다. 그녀는 문 앞에 놓인 택배를 들고 가서 전해준다. 아마 부부의 관계를 모욕하는 혐오의 메시지가 담겨있을 택배를, 그레이시는 별거 아니라는 듯 버려 버린다. 하지만 그날 밤, 조는 침대에서 홀로 숨죽여 울던 그레이시를 안아준다. 여전히 그들은 괜찮지 않고, 완전히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불편한 노크로 그들의 일상을 침범한 엘리자베스가 영역을 확장해나가자, 그레이시는 점차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단단해 보였던 그녀는 자신의 케이크를 매번 주문해 주던 이웃이 이사를 간다고 주문을 취소해버리자, 어린애처럼 엉엉 울부짖는다. 단순히 사랑 앞에서 아이가 되어 버리는 건지, 그녀가 불안정한 상황인 건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사이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이야기에 깊게 심취한다. 점차 그레이시와 비슷한 차림을 하고 비슷한 화장을 하며 말투, 손짓과 행동까지 비슷해진다. 게다가 놀라울 정도로 빼닮은 외모 탓인지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볼 때마다 '닮긴 닮았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시종일관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조는 엘리자베스와 만날 때면 제법 또렷한 눈을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젊었을 적을 보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 걸까? 속마음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없는 조는 엘리자베스에게 자기 직장을 보여주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랫동안 자신이 숨겨놓았던 그레이시의 편지를 건네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에 휩쓸린 두 사람은 관계를 맺지만, 이내 자기 인생을 '이야기'라고 부르는 엘리자베스에게 질려버린 조는 그녀를 떠난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결국 그레이시와 말싸움을 하게 된다.
"왜 얘기를 못하는 건데?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 맞는다면 말이야!"
"무슨 소리야? 네가 날 유혹했잖아!"
폭발한 조의 외침에 그레이시는 교묘하게 조에게 탓을 돌린다. 그동안 그레이시 앞에서 한 번도 어린애 인적 없었던 조는, 어린애이고 싶은 마지막 발악에 대응해 주지 않는 그레이시에게조차 질리는 듯하다.
그 사이, 편지를 읽고 그레이시와 완전히 동화된 엘리자베스는 홀로 독백 연기를 한다. 그레이시의 편지를 마치 조에게 말하는 것처럼 읽으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선을 넘었다고 해. 하지만 그 선은 대체 누가 그린 걸까?"
이 대사가 영화의 핵심인 듯 아닌듯한 중요한 맹점이다. 그레이시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남들을 가스라이팅 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이끌어가려는 것이다. 어린 학생이었을 조에게 '선'을 운운하며 '잘못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사회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조가 생각해 봐야 했을 문제에 대해 덮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 메시지를 엘리자베스에게 주어버린 조는 철장 밖으로 나온 나비가 되었다. 한 번 진실을 바라본 순간부터는 다시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불안정한 사람들은 정말 위험하죠. 나는 아주 단단해요."
하지만 그레이시는 여전히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을 믿는 듯하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영화 앞으로 되돌아가 엘리자베스의 대사 하나를 더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헷갈려.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싫어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배역을 맡아요?"
"회색 지대에 있는(도덕적으로 모호한) 게 훨씬 흥미로우니까."
성관계를 맺는 연기를 해봤냐는 짓궂은 질문에도 엘리자베스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나체로 부딪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리듬이 생기는데, 그 리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편이라고.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게 된다고. 그레이시와 조의 삶은 이러한 리듬에 맡겨진 연기는 아니었을까. 어떤 쪽이 진실인지는 생각하는 것보다는,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
더불어 엘리자베스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정의 내리거나 온전히 안정적이고 싶지 않아 하는 심리 때문에. 영화 초반에 엘리자베스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지만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등 관심이 없는 태도를 보인다. 반지는 끼고 다니지만, 아직 결혼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엘리자베스는 '연기'라는 매개를 통해 '도덕적으로 모호한' 사람 그 자체가 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게 되면 모호해진다. 누가 잘못을 했고, 누가 피해자인지. 사회가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정답이 되지만, 그들의 화학작용을 그대로 보았을 때 판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다만 나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그레이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치울 수 없었다. 그녀가 아동 성범죄자라서가 아니다. 조가 피해자라서도 아니다. 그녀가 조를 비롯한 다른 주변 인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 비밀을 지켜야 해."
정말 조를 사랑했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비밀 연애를 할 게 아니라, 조가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변치 않는지 스스로 확인할 기회를 주었어야 맞는 것이다. 물론 누구의 강요도 없이 조가 자발적으로 그레이시가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서 지내는 시간을 전부 기다려주긴 했다. 하지만 자녀가 생겼고, 자녀를 조가 한 지붕 아래서 키웠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교묘한 가스라이팅의 대가인 그레이시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엘리자베스였다. 정확하게는 엘리자베스의 욕망이랄까. 그녀는 진심으로 그레이시가 되고 싶어 한다. 그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아니다. 그저, 그 도덕적으로 모호하고 법이라는 잣대로는 판단 내리기 어려운 그 인물 자체가 되고 싶었을 뿐. 실제로는 자신이 저지르지 못할 일들을 하며 즐기는 듯한 모습이 소름 돋기도 했다.
하지만 삶을 통째로 연기한 사람과 연기를 삶처럼 사는 사람, 두 사람 다 무섭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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