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11-13 22:22:58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같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라일리'

라일리는 촉망받는 미식축구 선수이다.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인기남인 데다 운동선수로도 각광받고 있는 그의 삶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카웃해가겠다는 학교도 있으니 그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못한 그의 핸드폰 속 세계에는 남자들의 몸자랑으로 가득한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말 모호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불만이 없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할 생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암이라는 친구와 안면을 트게 되면서 그의 온전했던 삶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1. 잘 짜여진 운동선수의 삶 속 어울리지 않는 그의 정체성
흔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남자의 행동이 다분히 여성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기준보다 여성스럽다고 해서 전부 다 게이도 아니거니와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맞다고 해서 게이가 아닌 것도 아니다. 라일리는 학교에서도 인기 많은, 소위 주류 문화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성미가 뿜뿜하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더 의심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게이는 여성스러운 남자들의 모습으로 많이 어필되어 왔는데, 그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겉보기에 그는 착하고 인기많은 이성애자 남자 같아 보였다. 항상 아버지에 의해 운동 위주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 때문에 그는 커가면서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알아서 잘 연기한 착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적 이득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가족들에게도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이 포지션을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환경의 노예라서, 좋게 말하면 잘 짜여진 생활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놓아버리기엔 그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마주하기엔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두렵게 했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그의 정체성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이 참 보면 볼수롤 안타까웠다.
2. 리암이라는 존재
라일리의 온전한 삶에 돌을 던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리암으로, 학교에서 게이라는 사실이 꽤나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라일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한다. 라일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자신의 정체성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을 느꼈지만 리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니 긍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적인 삶을 살던 라일리에게 그의 존재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몸은 리암에게 끌리고 있으면서도 이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라일리의 위선적인 태도는 리암을 질리게 했지만 라일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는 그에게 한 번 정도는 해야할 일종의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뚫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3.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메시지
이 영화는 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라일리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언제나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을 숨기고 친구들과의 평가에 신경쓰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홀했던 사람이었다. 보다보니,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LGBTQ영화이지만 '자신을 가장 신경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뭐, LGBTQ라고 하면 대단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성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주류 문화에 치여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 정체성에 대해 깨달았지만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슬픔을 나같은 이성애자들이 어떻게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큼은 라일리의 여자친구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소수자들이 라일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있을 것이고, 온전히 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가장 먼저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이기적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 같고, 그들에게 공감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너무 재수없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라일리 같은 친구가 있다면 라일리의 여자친구와 같은 포지션에 있고 싶다. 그렇게 그들의 정체성을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이번 '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내가 봐왔던 영화들의 범주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좋았다. 물론 그전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LGBTQ를 봐오긴 했지만 더 다양한 성수수자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내 상식 선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이번 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나같은 이성애자들은 어떤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소수자들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길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너무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 같고, 너무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과해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발치 떨어져서 그들의 삶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선을 넘지 않는 무관심을 표시하는 것, 그것이 곧 답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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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영화 랭킹 Star Wars Film Ranked
조지 루카스가 구상한 [스타워즈 9부작] 혹은 [스카이워커 사가]은 한마디로 '다스 베이더의 비극'라는 거대한 서사시다. 그 비극을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파토스(Pathos, 연민을 자아내는 힘, 측은지심)'을 자아내기 때문에 전설의 위치에 올랐다.
마블과 DC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르물이 그렇듯이 [스타워즈] 역시 개연성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지난 42년간 [스타워즈]는 MCU처럼 독창적인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무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이전에 팬들에 의해 대중문화 최초로 ‘확장세계관(EU)’를 정립했다. 그런데 [시퀄 3부작]은 [스타워즈] 특유의 ‘설정 놀음’을 간과했다. 특히 캐슬린 케네디 루카스필름 대표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그랬다.
◆평가 기준
1순위 시리즈로써 의의
2순위 공유 세계관 기여도
3순위 단일 작품으로써 완성도
#11 :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Episode IX: The Rise Of Skywalker, 2019)
디즈니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종결’을 홍보했지만, 9편의 실제 임무는 ‘브랜드 관리’다. J.J. 에이브람스의 최우선 과제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팬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다. 거기다 자신이 던져놓은 7편의 떡밥을 회수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따지고 보면 라이언 존슨이 8편에서 7편의 떡밥을 싹 무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제작을 맡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팬 서비스’를 핑계 삼아 8편의 아이디어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린다. 속편이 나올 때마다 전편을 부정하는 [시퀄 3부작]은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팬들의 반응만 살피며 돌려 막기 하다 보니까 캐릭터, 설정, 세계관, 스토리 전부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거기다 캐슬린 케네디가 꺼내 든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 자신이 2014년 4월 25일에 폐기한 레전드에서 가져왔다. 캐슬린 케네디의 '빈곤한 상상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포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능키)' 되고, 레이는 '메리 수(천하무적)' 화 되어 시리즈 전통을 더더욱 망가뜨린다. 이게 다 라제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부 다 수습하려고 노력하면서, 9편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시퀄 3부작 내내 기존 시리즈에 대한 지나친 오마주를 하면서 전통 파괴를 일삼는 모순을 매번 일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통 [시퀄 3부작]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 편 모두 제각각 따라 놀며 [시퀄 3부작]의 정체성과 주제를 전부 잃어버렸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빈곤한 상상력과 방향성의 부재다. 이것이 디즈니가 '새로운 스타워즈'를 내세우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을 의존하는 [시퀄 3부작]의 한계다. 고로 창의적인 비전이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진이 [스타워즈] 시리즈 자체를 오독하고 있다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실로 안타깝다.
#10 : 에피소드 8 : 라스트 제다이 (EPISODE VIII - THE LAST JEDI, 2017)
당연하게도 시리즈물은 단 한 편의 완성도로 평가할 수 없다. 라이언 존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스타워즈의 영웅 서사를 해체시킨다. 영화 전체에 걸쳐 낡은 스타워즈를 새롭게 갈아엎지만, 5편 [제국의 역습]처럼 하는 일마다 죄다 실패하는 통에 다 보고 나면 허무하다. 왜 [제국의 역습]을 레퍼런스한 [라스트 제다이]는 감흥이 적을까? 비극은 공포와 연민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완수한다. [제국의 역습]은 '부살(父殺·Patricide)' 모티브를 차용해 루크에게 감정 이입하게 되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성장 자체가 없는 레이에게 어떻게 연민과 공포를 가지겠는가?
라이언 존슨이 전통에만 기반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미래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르는 건 좋다. 해체하기에 앞서서 우선 시리즈의 본질을 제대로 통찰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예 과거와는 선을 긋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덧붙여서 차라리 [라스트 제다이]를 첫 번째 영화로 내세워 [시퀄 3부작]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면,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부터 저지르는 8편은 J.J. 에이브람스를 포함한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40년 동안 쌓아왔던 공유 세계관에 대한 '반달리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존슨은 제다이와 시스로 구분 짓지 말자고 계속 설득하지만, 정작 '저항군 VS 퍼스트 오더' 선악구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또, 영화 내내 탈영웅 서사를 부르짖지만, 결국 시련과 고초를 한 번도 겪지 않는 완전무결한 레이의 영웅 서사를 보면 자기모순처럼 읽힌다. 거기다 서스펜스에 약한 라이언 존슨의 약점이 겹치면서 저항군을 계속 위기로 몰아넣지만,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 긴박감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나이브스 아웃]을 보면 그는 미스터리에 강점이 있는 감독이다.) 전부 라이언 존슨이 별다른 설득 없이 시리즈의 요소들을 본인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변용한 결과였다. 왜 그랬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 자크 데리다는 흔히 '선과 악' 같은 이항대립 체계를 종언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 가르침대로 라이언 존슨 역시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을 종식시키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사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의 경계, 울타리를 이야기할 뿐 종언을 고하지 않았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을 해체하되 이항대립 그 자체가 종결될 수는 없다고 봤다. 왜냐하면 성경을 포함한 서구인의 사고체계 전부를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언 존슨도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의 맹점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에는 괜찮은 완성도임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그 즉시 기록 말살 형에 처해진다. 이제 루카스 필름 내부에서조차 ‘흑역사’로 공인된 셈이다. 그러나 조만간 재평가 받을지도 모른다. 현재 라이언 존슨이 집필하는 구 공화국 시점의 신규 3부작(10,11,12편)이 2022년 12월, 2024년 12월, 2026년 12월 개봉 예정으로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케빈 파이기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작품 역시 202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 동일한 프로젝트로 예상된다.
#9 :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EPISODE VII - THE FORCE AWAKENS, 2015)
첨 볼 때는 클래식 느낌이 나서 반가웠다. 다시 보니 [깨어난 포스]는 [에피소드 4·5]을 리뉴얼했을 뿐 아니라 개봉 당시 과대평가보다 실제 완성도가 떨어지고, 의미 없는 서사가 많았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한 구멍들이 차기작을 위한 떡밥으로 간주하고 넘어갔었는데, 라이언 존슨의 8편 [라스트 제다이]이 떡밥 자체를 무시하고, 세계관 자체를 붕괴시키는 바람에 에이브람스가 직접 연출한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망가진 세계관을 수습하고, 설정 구멍을 막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문득 왜 에이브람스가 ‘떡밥의 제왕’이 되었을까? 가 궁금해진다. ‘쌍제이 특유의 떡밥 투척’은 독창성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다, 맥거핀(떡밥)을 많이 설정해서 재빨리 흥미를 유발하고, 연속된 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며 돌려 막기일 뿐이다. 7편과 9편에서 쌍제이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새로운 맥거핀이 파생될 때마다 또 다른 플롯 포인트가 생긴다는 점이다. 무언가 흥미로운 떡밥을 던지긴 하는데 전체적인 흐름은 전진된 게 없다. 게다가 쌍제이가 캐릭터들조차 도구적으로 정보와 아이템을 주는 용도로 쓴다. 아마 데이지 리들리조차도 레이가 어떤 역할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3편 내내 자꾸 설정이 바뀌니까 말이다. 핀과 포 다메론도 마찬가지다.
디즈니가 안정된 돈벌이를 위해 ‘추억 팔이‘에 안주한 결과, 시리즈로의 신규 관객 유입에 실패한다. 진부한 [시퀄 3부작]으로 스타워즈를 처음 접한 세대들에게 "개연성도 부족하고 재미없는" 시리즈로 받아질 수밖에 없다. '영혼 없는' 팬 무비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시퀄과 프리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깨어난 포스]에서 레이가 모아 온 고물을 수거하는 배급소 주인 '운카 풀럿'은 뚱뚱한 구두쇠 정도로 단편적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부품가게 주인으로 나오는 '와토'는 어떤가? 이방인 '콰이곤 진'을 경계하지만 장사치답게 흥정을 건다. 자신의 노예인 아나킨의 포드 레이싱 재능을 인정해서 포드를 제공해준 적이 있으며, 경주 도박을 하기도 한다. 또, 자바 더 헛을 두려워하고, 세불바가 아나킨에게 해코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루카스는 '단역'이라고 해도 그 전후 배경와 상호작용을 미리 설정해둔다.
그렇기에 루카스의 형편없는 연출력에도 불구에도 [스타워즈]가 확장세계관의 선구자로 매김 할 수 있었다. 간과하기 쉽지만, 조지 루카스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정할때 입체적 사고로 그린다. 거대한 세계관을 창조하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언뜻 별 관계가 없는 대상과 우리는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와 관습이 있지 않은가? 제임스 카메론도 조지 루카스처럼 인류학적·미학적 맥락을 철저히 따진다. 그는 [아바타]를 제작할 때 나비족 언어와 종교, 규범, 문화, 지리까지 미리 설정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6편 [제다이의 귀환]에서 은하 제국이 멸망하고, 들어선 신 은하 공화국이 어떤 과정으로 붕괴되었는지 7편 [깨어난 포스]가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즉, 정체불명의 퍼스트 오더가 왜 위협적인지를 관객 입장에서 와닿지 않기에 [시퀄 3부작] 내내 ‘긴장감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부실한 세계관 구현이 2020년 현재 [시퀄 3부작] 관련 작품보다 이전 [프리퀄 3부작] 혹은 [클래식 3부작]에 기반한 미디어 믹스 및 파생상품이 더 많은 이유다.
#8 :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 (SOLO: A STAR WARS STORY, 2018)
크리스 밀러 & 필 로드의 급작스러운 해고로 말미암아 캐슬린 케네디가 싹 다 갈아엎도록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간판을 떼고 보면 괜찮은 하이스트 무비다. 다만, 구원투수로 등판한 론 하워드가 산으로 갈 뻔한 작품을 겨우겨우 수습한 티가 난다. 예를 들면, 항공권이 없는 한은 제국군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지지만, 정작 제국군 입대 담당관은 그에게 성을 붙여준다. 이렇듯 얼렁뚱땅 넘어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베테랑 론 하워드가 촉박한 제작 기한 내에서 균열을 최소화했다.
해리슨 포드를 닮지 않은 엘든 이렌리치는 차분하게 연기를 잘했고, 까칠한 드로이드 L3-37과 도널드 글로버의 랜도 칼리시안은 씬 스틸러다. 그럭저럭 즐길만하지만,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어서 그런지 속 시원한 기원담을 들려주지 않는다. 꽁꽁 싸맨 채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다 보니 자꾸만 여타의 SF 영화들이 연상될 뿐 특별한 인상을 안겨주지 못한다. 문제작 [라스트 제다이]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프랜차이즈 최초로 적자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이 사단의 원흉인 캐슬린 케네디는 어쩔 수 없이 한 솔로의 속편 계획과 [오비완 케노비], [보바 펫]의 앤솔로지 시리즈를 취소한다.
그러나 [더 만달로리안]에 앞서 시리즈 최초로 '암시장의 밀수와 범죄'를 조명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자바 더 핫이 이끄는 핫 카르텔, 코렐리아 행성에서 제국 전함이 건조되는 장면, 우주 공항의 묘사, 코악시움 광산의 묘사, 츄바카와 우키 종족의 묘사 등 [시퀄 3부작]이 등한시했던 세계관 구현에 노력했다.
#7 :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
[프리퀄 3부작]의 밑바탕을 깔기 위한 거대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포드 레이스 장면과 다스 몰과의 검투신만 보거나 [보이지 않는 위험]을 통째로 건너뛰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위험]의 세계관 확장이 긍정적인 평가로 돌아섰다. 살다 살다 [프리퀄 3부작]을 응원하는 날이 오다니
무역협상, 분리주의 연합 등 진지한 정치적 담론, 자자 빙크스의 고통스러운 CG 슬랩스틱, 부재한 주인공, 처참한 대사, 느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3부작과는 확연히 차별화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바로 로마 공화정이 제국화되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결함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인이 파멸로 치닫는 셰익스피어리언 비극을 시리즈에 훌륭하게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또, [클래식 3부작] 과는 이질적이었던 디자인이 클래식의 변영에 지나지 않는 진부한 디자인을 선보인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지금에 와서는 과감한 도전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끝으로 미디클로리언을 통해 '기(氣)'에서 착안한 포스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이 개념으로 노예 신분인 아나킨을 '선택받은 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8편 이전부터 누구나 포스를 가질 수 있다는 '포스 에브리웨어' 설정은 이미 존재했었다.
#6 :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EPISODE II - ATTACK OF THE CLONES, 2002)
[클론의 습격]은 조지 루카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와 형편없는 연출,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발성 문제가 겹치면서 '역대 최악의 로맨스 영화'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100% 디지털 촬영으로 완성된 첫 블록버스터이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영화 산업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다와 두쿠 백작의 라이트세이버 결투, 제다이 기사단와 분리주의 연합의 드로이드 간 전투 등으로 액션을 강화했으며, 의회를 장악한 팰버틴 의장이 무역 연합에 대항하고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은하 공화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비상 권한을 부여받는다거나 보바 펫과 클론 트루퍼를 결부 짓는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이다. 루카스의 탁월한 기획력에 비해([시스의 복수]을 위해 아껴둔) 드라마의 부재를 막을 캐릭터 묘사에 실패하면서 시리즈 사상 가장 지루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조지 루카스가 프리퀄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인 '클론 전쟁'의 개전만을 알린다는 점이다. 추후 전쟁의 진행 상황은 [클론 전쟁(2003/2008)]로 대체됐다. 있으나 마나 한 ‘제다이의 결혼 금지 규율’ 따위보다 '클론 전쟁' 자체에 포커스를 뒀다면, [에피소드 1·2]가 이리 허무하게 낭비되지 않았을 터,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2편의 숨은 장점은 비극의 단초인 ‘하마르티아(Hamartia)’를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하마르티아’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다’ ‘길을 잃고 헤매다’이지만, 하마르티아는 주인공이 지닌 결함으로, 아나킨은 금혼 계율을 어기고 파드메와 결혼하고, 제다이답지 않게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이것이 아나킨의 하마르티아다. 그의 판단 실수는 '비극'이라는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킨다. 마치 브레이크 페달이 고장 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 자동차의 결함처럼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2편의 빌드업이 있었기에 3편에서 극적으로 반등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 1983)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처럼,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일은 어렵다. [제다이의 귀환]은 전편 [제국의 역습]이 근사하게 던져놓았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지금까지 끌어온 시리즈의 결말을 내야 하는 힘겨운 미션이 남아있었다. 그럼 [스타워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동일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어떻게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구원을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제다이의 귀환]라는 제목은 아나킨이 메피스토펠레스(팰 버틴)을 원자로에 던져버리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걸 의미한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들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부자간의 화해가 이뤄진다. 여기서 그리스 비극과 [스타워즈]의 차이점이 발견한다. 그리스 비극은 신이 정한 운명론에 의존하지만, 팰버틴에게 끌려다니던 다스 베이더가 자신의 의지로 다시금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타락한 영웅이 스스로 선택해서 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포스의 균형'이다.
더욱이 6편은 분명히 4편 [새로운 희망]의 아이디어를 재탕하고, 인물 간의 갈등구조가 할리우드 영화답게 안전하다.
그것이야말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게 [배트맨 비긴즈]을 참고하라는 교훈으로 받아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제다이의 귀환]는 클래식 3부작이 남긴 수많은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무용담을 장중하고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루크와 레아를 중심으로 레전드 확장 세계관(EU)이 진행되고, 팬들로 하여금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악당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뒤에 팬들의 소원은 마침내 이뤄진다.
#4 :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드디어 디즈니 스타워즈가 재탕을 멈추고, [스타워즈]의 감춰진 이면을 파헤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저항군 특공대들의 희생을 다룬다. 원래 [스타워즈] 자체가 제2차 대전 전쟁 영화들에게서 착안한 작품이었다. 은하제국 군복은 나치 독일과 매우 유사하며, 저항군은 연합 군을 연상시키지 않은가? [로그 원]은 한발 더 나아가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스타워즈 특유의 유치한 가족영화의 틀을 버리고, 본래 스타워즈 세계관에 지니고 있던 2차 대전 특공대를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과 연결성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가렛 에드워즈의 장단점이 다 발휘됐다. 무미건조한 캐릭터 구축과 초반부의 산만한 드라마가 아쉽지만, 스펙터클하게 규모를 살리는 연출이나 사실성을 강조한 서사구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요즘 미드 [만달로디안]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로그 원]과 동일하다. 기존 스타워즈 설정을 존중하면서도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참신한 시도가 병행되었다는 점이 성공 비결이다.
#3 :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2005)
조지 루카스의 여전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아나킨은 한 개인이 막을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닥치며 타락하게 되고, 공화국 역시 멸망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가지게 한다. [프리퀄 3부작]을 통해 ‘제다이 vs 시스’로 세계관이 확장하게 되면서 클래식 3부작의 ‘부자간의 골육상잔'은 수 천 년간 이어진 제다이와 시스의 대립 중 하나로 재정립한다.
시스 로드인 황제가 제다이 기사단의 '선택받은 자'를 회유하며 시스의 복수를 완성한다. 스타워즈 팬들은 아니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창시자가 새롭게 공개한 사실들에 놀람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승과 제자의 처절한 혈투는 물론이고, 요다가 황제 암살에 실패하면서 은거한다거나 오더 66에 의한 제다이 기사단이 몰락하고, C3P3와 R2D2가 기억을 잃는 과정, 오비완이 포스의 영이 되는 법을 요다에게 전수해준다거나 파드메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들쑥날쑥한 [프리퀄 3부작]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면서도 [클래식 3부작]에서 빠진 빈틈을 세심하게 메웠다.
또, 시리즈 최초의 배드 엔딩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세이버가 누군가에 전해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서사와 액션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유일한 스타워즈 작품이며, 밝고 유쾌한 [클래식 3부작]과는 180도 다른 어둡고 진지한 [프리퀄 3부작]을 성공적으로 완결 지었다.
만약 ‘현자 다스 플레이거스의 비극’이 없었다면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의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될 만큼 확장 세계관과 캐릭터 정립에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2 :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EPISODE IV - A NEW HOPE, 1977)
대중문화를 영원히 바꾼 영화다.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정의 내리고, '콘텐츠 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을 바꿔, 부가상품을 대중화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산업 역시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현실의 영역에서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내에서 [스타워즈]가 유치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원래 조지 루카스가 어릴 적 즐겨본 코믹스 [플래시 고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동양의 '기(氣)' 개념을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포스 등의 철학적 우화, 전쟁영화, 갱스터, 호러, 뮤지컬, 서부극의 요소를 섞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이자 밝고 경쾌한 어드벤처 SF 영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복합장르 전략은 이후 영화 제작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스타워즈]는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칼로 총알(빔)을 막거나 우주가 배경인데 18세기 라인 배틀을 펼치는 광경이 의아할 것이다. 이는 시대와 문화권에 구애받지 않는 원형 신화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편부터 '다스 베이더'를 그리스 비극처럼 그리면서 시리즈로써 환골탈태한다. 이때부터 할리우드 극작술에 '원형 신화'가 도입된다.
#1 :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루소 형제의 말마따나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이 관객의 예상과 기대를 배반한 용기는 [제국의 역습]에서 배웠다.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도대체 뭘 본 거지?" 싶었다고 한다. 악에게 패배한 주인공, 어긋난 로맨스, 새드 엔딩은 상업영화의 오래된 금기들이었다.
전편 [새로운 희망]이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결성을 갖춘 반면에 [제국의 역습]은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선례로 여전히 남아있다. 스타워즈 9부작의 밑그림은 여기서 출발했다. 한편 팬들은 [새로운 희망]과 [제국의 역습] 사이의 설정 구멍을 메우며 [확장 세계관 (EU)]를 만들고 놀았다. 바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기원’인 것이다, 이것이 ‘스타워즈’를 신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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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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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웅>, 12월 21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현장 라이브 녹음 방식으로 배우들의
열연을 생생하게 담았다. 영화는 12월 21일 개봉을 확정하였다.
<아바타: 물의 길>, 한국 최초 개봉 기념 내한
ⓒ 네이버 영화
13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이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을 한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내한한다고 한다.
2003년 화제작, 극장 재개봉
ⓒ 네이버 영화
CGV에서 2003년에 개봉한 화제작 8편을 모아 '한국영화 리덕스' 상영회를 12월 2일부터
5일까지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올드보이>,
<장화,홍련>, <지구를 지켜라!> 등을 상영한다.
황정민·염정아 주연 <크로스>, 크랭크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배우 황정민, 염정아, 전혜진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크로스>가 약 4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11월 13일(일) 크랭크업했다.
<헤어질 결심>, 청룡영화상 6개 부문 수상
ⓒ 네이버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지난 25일에 열린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6관왕을 차지하였다.
해외
<유포리아>, 독일판 제작 진행 중
ⓒIMDB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HBO 드라마 <유포리아>가 독일에서 리메이크가 될 예정이다. 아직
캐스팅과 관련된 소식은 전해진 바가 없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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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애를 기댄 채 어긋나버린 디스토피아의 세계관
시대가 변할수록 더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토착민의 삶을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자신의 딸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애를 통해
풀어간 SF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실제 캐나다 토착민인 크리족 혼혈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토르 시리즈의 감독이자, 종종 배우로도 활동하는
뉴질랜드 출신의 타이카 와이티티가 제작으로 참여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모더니즘과 제국주의, 권위주의 등을 비판하는
여러 문화 콘텐츠 중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는
꽤 많이 접할 수 있는 서사이지만, 감독 출신부터 알 수 있듯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어두운 미래 사회에 빗대며
딸을 빼앗긴 엄마의 처절한 사투를 그립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나이트 레이더스 줄거리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
2043년 캐나다 북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을 지배하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은
미성년 자녀들을 강제로 입교시켜 세뇌시키고 인간 병기로 길러내려
18세 미만의 자녀를 데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법까지 만듭니다.
니스카와 딸 와시즈는 도시 외곽의 우거진 숲에서 수시로 보내는 AI 드론의 정찰을 피해 살아가죠.
하지만, 식량을 구하던 중 와시즈가 덫에 걸려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이들의 상황도 바뀌게 됩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딸을 위해 도시에 함께 잠입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니스카는 결국 자신의 딸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아카데미로 끌려가게 놔두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Night Raiders│감독·각본 : 다니스 고렛│출연진 : 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 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 알렉스 태런트 외 多
│장르 : SF,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상영 시간 : 101분│국가 : 캐나다, 뉴질랜드│등급 : 15세 관람가
│평점 : 로톤 토마토 신선도 84% 팝콘 47%, IMDB 5.1, 메타 스코어 63점│시청 가능 서비스 : 개봉일 2022년 3월 3일
# 나이트 레이더스 평점
모성애인가, 토착민의 비극인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땅을 점거하고 자신들의 법과 제도를 통해 원래 살아온 민족을 핍박하며
쫓아내는 제국주의의 모습이 에머슨이라는 국가를 통해 반영됩니다.
이는 인류가 반복해 온 하나의 역사로, 감독의 고향 캐나다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호주, 남아메리카 등
모두 유사한 사건들이 이어져왔다 할 수 있고,
어쩌면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이와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죠.
가상의 국가 에머슨은 미성년자들을 강제로 입교시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라는 애국 강령을 반복해 외우게 하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킨 채 이와 떨어진 사람들은 드론의 배급 식량 속 바이러스를 넣어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합니다. 이것은 토착민들은 물론, 가족 간의 연결고리마저
배제한 채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려는 독재국가의 모습을 띕니다.
다만 위에 언급한 주제의식을 끝까지 이어가기에는 인상적인 장르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크리족 출신이지만 그들과의 연결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예언을 기반해
별다른 갈등 없이 하나의 공동체를 생성하고
주 플롯은 딸을 찾기 위한 모성애를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극 중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연성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흐릿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감독이 과연 파괴된 공동체를 각기 다른 개인이 다시금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이 때문인지 마지막에 보여주는 와시즈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너무나 뜬금없게 다가왔죠.
그렇기에 제국주의나 독재에 의해 파괴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무너지는 토착민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딸을 지키려는 엄마의 사투인지
명확한 설정이 부족하다 느껴졌습니다.
현재에도 진행되는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리고 의미를 확장하고
공유시키는 행위는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이를 전달함에 있어 명확함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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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계 거장 vs 이미지 세탁한 재벌 가문
8★/10★
사진계의 거장과 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 가문이 맞붙었다. 전자는 낸 골딘이고 후자는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소유주인 새클러 일가다. 시작은 옥시콘틴이었다.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개발한 후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옥시콘틴의 중독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 약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만 말했다. 나아가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종국에는 불법으로 점철된 공격적으로 영업을 이어갔다(이 과정은 넷플릭스 영화 〈페인 허슬러〉 참고). 그 결과는? 수십만 명이 옥시콘틴에 중독됐다. 지금까지 60만 명 이상이 옥시콘틴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낸 골딘 역시 과거 수술 후 옥시콘틴을 처방받았고, 중독되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투쟁을 더욱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이 싸움을 담아냈다.
퍼듀 파마를 만나기 이전부터, 낸 골딘의 삶과 예술은 이미 투쟁이었다. 낸 골딘의 언니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부모의 판단 때문에 정신병원에 머물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언니의 진료 기록에는 그녀가 평범한 정도의 반항심을 가진 청소년이었고, 오히려 부모가 문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죽었고, 골딘은 언니에게서 유쾌한 반항심을 배웠다. 골딘은 집에 있으면 ‘언니처럼’ 될 거란 우려에 부모님 집을 떠나 위탁 가정을 전전했고, 한 히피 학교에서 마침내 구원받았다. 이후 골딘은 게이, 드래그퀸 등의 친구들을 사귀며 퀴어 공동체에서 생활했고 스냅사진으로 친구들이 뿜어내는 삶의 생동감을 포착했다. 섹스보다 사진이 좋았을 정도로, 골딘은 사진에 심취했다. 메리 올리버와 마이클 커닝햄이 각각 《긴 호흡》, 《그들 각자의 낙원》에서 아름다운 산문으로 예찬한 바 있는 ‘게이들의 천국’ 프로빈스 타운의 레즈비언 분리주의자 공동체 일원으로 지내기도 했다. 보수적 가족의 억압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동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예술/사회/문화 공동체로 이끈 셈이다. 이후에는 필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댄서, 성노동자 등으로 일했고 그녀의 사진이 품은 탈규범적 생명력의 예술적 가능성을 알아본 한 큐레이터에 의해 마침내 정식으로 예술계에 발을 디뎠다(골딘은 큐레이터에게 지금껏 작업한 사진을 모은 박스를 옮기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데뷔 이후에도 녹록지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섹스 장면 등 그녀가 살아가는 일상의 생기를 포착한 사진은 조롱받았고, 기성 예술계의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투쟁으로서의 삶/예술도 이어졌다. 영화는 골딘이 미국의 에이즈 위기 당시 급진적 에이즈 운동을 벌인 단체 액트업과 함께 작업한 장면을 특히 자세히 비춘다.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로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던 에이즈 감염인들과 당사자들이 벌이는 저항 운동은 퀴어 공동체에서 예술을 길어온 골딘이 옥시콘틴 중독자 당사자로서 퍼듀 파마와 싸우는 데 결정적 영감을 주었을 터다.
영화는 골딘의 삶/예술 여정과 퍼듀 파마를 상대로 한 현재의 싸움을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장면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미술관 내 새클러관에서 골딘과 동료들은 퍼듀 파마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새클러관은 새클러 일가가 엄청난 돈을 예술계에 후원한 대가로 설치된 곳으로, 메트로폴리탄뿐 아니라 구겐하임, 루브르, 대영박물관 서구의 유수한 미술관‧박물관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다. ‘예술에서 후원자의 존재는 필수적인가’라는 물음에는 여러 입장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껏 예술에 늘 ‘큰손’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돈이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과라면, 수많은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로 고통받은 결과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자 그대로 죽음을 대가로 한 돈으로 예술을 후원해 사회적 명성을 쌓는 일은 예술-후원의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 사회 정의의 문제다. 낸 골딘은 예술이 가장 더러운 돈을 위장하는 데 쓰이는 일을,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모욕한 제약회사의 전시관에 자기 작품이 전시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퍼듀 파마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것을, 무엇보다 예술계가 새클러 일가와 그의 영향력을 완전히 퇴출할 것을 요구하며 긴 싸움을 펼쳐나간다.
골딘이 속한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즉각적인 처방약 중독 개입)은 새클러관이 있는 여러 미술관을 두루 순회하며 행위 예술,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마침내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이름을 걷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명한 사진 예술가로서 쌓아온 명성과 추구해온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이 승리는 부분적이다. P.A.I.N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 활동가, 당사자의 싸움으로 퍼듀 파마는 파산했고, 새클러 일가는 60억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회사 파산으로 책임을 면피하고, 합의금으로 수천 건의 소송을 취하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부분적인 승리가 감동적인 이유는, 낸 골딘의 싸움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상적인 답변을 내놓아서다. 예술에는 후원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술은 늘 후원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낸 골딘이 그랬듯 예술과 정치를 도드라지게 결합할 수도 있고,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의 내면과 사회의 심연에 근본적인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예술은 종종 예기치 못한 변화의 씨앗이 되거나 그 변화의 징후를 표상한다. 예술의 정치성을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예술이 최소한 기업가의 이미지 세탁보다는 더 정치적이라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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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넷(Tenet/ 영국, 미국/ 2020)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악의 진부함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있는 기술, '인버전'을 발명한 미래의 한 과학자는 이것이 매우 위험하게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전 세계 특정 지역 9 곳에 인버전 기술을 실행시키는 도구인 '알고리즘'을 분산하여 숨겨두고 자살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중 하나가 러시아인 안드레이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다.
한편 자연 현상을 거스르는 무기가 속속 발견되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미국 CIA는 추적 끝에 이 무기들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막기 위해 정예 요원 주도자(protagonist, 존 데이비드 워싱턴, 그의 역할에는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다.)를 작전에 투입하는데 그에게 임무를 부여한 상급자는 양 손가락을 겹치는 제스처와 '테넷'이라는 암호를 알려준다.
주도자는 미래에서 온 무기의 성분을 알아내어 이 금속을 다루는 전문가 산제이 싱을 만나기 위해 인도로 날아간다. 인도에서 철옹성 같은 은둔지에 거주하고 있는 산제이를 만나기 위해 지역의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의 도움을 받아 산제이를 만나지만 그는 허수아비였고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아내 프리야(딤플 카파디아)였다. 프리야는 사토르에 대해 알려주고 주도자를 영국 정보기관으로 연결해준다.
영국 첩보 기관의 도움으로 사토르에 이르는 길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임을 알게 된 '주도자'는 캣의 약점을 알고 있다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한편 사토르에게 약점이 잡혀 그의 조종을 받는 처지에 놓인 아내, 캣은 남편을 증오하지만 아들 맥스를 포기할 수 없어 사토르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 귀족 가문 출신으로 미술품감정사이다. 극도로 이기적이며 자기애가 강한 사토르에게는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 남편의 지위를 상징하는 아내)인 셈이다. 그녀가 매우 특별하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게 큰 키에서도 잘 드러난다.
캣으로부터 사토르가 오슬로 공항의 프리포트에 자주 출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담한 작을 펼쳐 잠입한 주도자와 닐은 사토르가 인버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를 프리포트에 설치하고 과거로 가서 미래의 무기를 가져옴으로써 거대한 부를 쌓았음을 알게 된다.
주도자는 의심 많은 사토르의 마음을 살 방법을 알기 위해 프리야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사토르가 플루토늄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운반 중인 플루토늄을 가져다주겠으니 도와달라며 사토르에게 접근하여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찾고 있던 플루토늄은 플루토늄이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킬 알고리즘이었고 사토르는 이미 8개의 알고리즘을 확보한 뒤였다.
사토르가 모든 인류의 생명을 단번에 끝내려는 순간, 주도자와 닐은 각각 시간을 순행하는 팀과 시간을 거스르는 인버전 팀에 배치되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시간의 협공'을 펼친다.
사실 <테넷>은 '인버전'을 젖혀두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영화도 아니고 주제도 매우 고전적이다. 세상에는 항상 악이 존재하고 이 악을 물리치기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힘은 '사랑(예를 들면 캣이 아들 맥스를 악한 남편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랑, 이를 두고 주도자는 영화에서 프리야에게 "세상을 바꿀 진짜 폭탄"이라고 가르쳐 준다.)'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종종 악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자기애에 가득 차 타인을 조종하는 자, 그리고 타인의 생명을 마음대로 파괴하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신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자로 설명되는데 <테넷>의 사토르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인류를 멸절시키려는 이유를 환경 파괴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그가 가질 수 없는 세상이라면 아무도 갖지 못하게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파괴력이 그에게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오만이 정확한 그 이유였다. 악에 대한 묘사가 진부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악에 대한 설명만 제외하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창의적인 상상력과 표현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천재적이다.
<테넷>이 관객을 사로잡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영화의 모호함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설명을 아낌으로써 모호함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 때문에 관객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되고 영화 관람 후 모호함에 대한 해석을 저마다 내어 놓다 보니 영화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안내가 없다.
주도자가 인버전된 총알을 소개 받는 연구실 B-2는 영국일까, 미국일까, 캐나다일까, 호주일까. 연구실의 인테리어는 매우 고풍스럽다. 전화도 아날로그 식이다. 연구원의 옷 무늬도 복고풍이다.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 감독의 불친절함 때문에 관객은 혼란스럽기까지 하여 다음, 또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는 것은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물리학적 가설에 입각하여 영화 안에서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고 한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일반 관객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앎과 모름 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놓인 채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이해하기보다 느낀다는 것은 글이나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더 알고 싶은 마음에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둘째, 스크린에 펼쳐지는 공간 구성이 낯설 정도로 새롭다.
일반인들이 흔히 접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러시아, 인도 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자연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산제이 싱을 만나기 위해 곡예사처럼 건물 벽을 타고 내리는 장면, 시간의 협공을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방식 등은 경이롭다. 이 새로움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셋째, 안정감이 결여된 상황 때문에 관객들은 불안하고 불안은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안정된 건물 안이 아니라 이동하는 배, 자동차이다. 실내도 실외도 아닌 애매한 곳이다. 안심하고 정착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발을 견고하게 내디딜 수 없는 바다 위, 혹은 빠르게 이동하는 도로 위이다. 이 지속적인 역동성은 관객을 영화에 붙들어 놓는다.
넷째, 현실적인 설정이 공감을 자아낸다.
무고한-그러나 그의 인생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생명을 해치려 할 때 같은 목적을 지닌 동료일지라도 가차 없이 살해하는 주도자의 캐릭터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모른 채 임무에 뛰어들어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자신이 바로 작전의 주도자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 이는 마치 우리가 인생을 한참 산 후에 되돌아보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현실과 닮아있다.
결국 감독은 비현실적인 스크린 속 세상에 현실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짚었다고 하겠다.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된 고전적인 주제가 화면에 웅장하게 펼쳐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어떤 중요하고 큰 일에 동참하고 난 듯한 뿌듯함마저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원하는 특정 시간과 장소로 인버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물리학적으로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영화에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그만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져 버렸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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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총을 든 남자의 비밀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란 몹시 까다롭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나쁜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비극이 탄생한다.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에도 나쁜 감정에 고통받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그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데이빗(클레인 크레포드)'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을 담았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영화는 앞서 말했듯 '데이빗'이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에게 총을 겨누며 시작한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세월이 지나 결혼생활의 권태로 인해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다. 별거 중인 어느 날 '데이빗'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벌거벗은 채 자고 있는 아내와 남자 '데릭(크리스 코이)'을 보게 된다. 부부 사이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화가 난 '데이빗'은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숨이 멎을 듯 멈췄던 시간은 거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창문을 통해 집을 빠져나온 남자는 무작정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동시에 금속과 살이 부딪히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듣는 사람마저 불쾌한 감정을 전염시키는 특유의 효과음은 '데이빗'이 나쁜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들린다. 음향을 담당한 '피터 알브레히첸(Peter Albrechtsen)'은 '데이빗'의 삶과 연관된 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한 끝에 상영 시간 84분 동안 자동차 문이 84번 열고 닫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효과음을 만들었다.연출의 특징도 눈 여겨볼만하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화면 비율을 4:3 정도로 줄인다. 화면은 크면 클수록 좋고 IMAX가 대세인 요즘 영상과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좁은 화면은 인적 드문 공터나 도로처럼 영화 속 배경이 주는 여백과 대비되어 훨씬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단조로운 구도를 사용했다. 그중 인물의 전신이 보이도록 촬영된 장면이 많은데 관객은 그들의 동선과 대화만 확인할 수 있고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다. 영화의 감독 '로버트 매코이언(Robert Machoian)'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에 담긴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등장인물 누구나 공평한 가치를 지니길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주인공 '데이빗'을 담는 카메라조차 철저히 방관자에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관찰한다.
Q. 나쁜 감정을 숨기며 지내나요?
'데이빗'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숨긴다. 그는 '니키'가 다른 남자와 잔 걸 모르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거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저녁 데이트 코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정한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신중하게 장난감을 고른다.아무리 덤덤한 얼굴로 괜찮은 척 해도 '데이빗'은 어느 하나 숨길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 유타주 카노시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동네여서 동네 사람들은 그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트에서 아내의 남자 친구를 마주치고 이웃과 안부 인사를 건네며 가출한 딸을 잡는다. 심지어 딸에게 '니키'를 둘러싼 삼각관계를 들키며 딸은 방황하고 부녀 사이는 갈수록 나빠진다.
꾸역꾸역 감추던 감정은 폭력으로 표출된다. 그는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자 '니키'와 큰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비아냥거리며 거친 말을 내뱉는다. 급기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람 모양의 샌드백에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고 총을 쏜다.
글에서 설명한 장면을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예고편에서 만나보세요▼
그의 분노를 한 꺼풀 벗기면 나쁜 감정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빗'은 애쓸수록 망가지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혼란스럽다. 만약 '데릭'으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끝난다면 가족에게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감독은 영화 속 그의 처지를 노숙자에 비유하는데, 별거로 인해 가족과 한 집에서 지낼 수 없으며 아버지 댁에서도 임시로 머무는 손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자신의 낡은 트럭뿐이기에 좌절과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한다.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그러나 시작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를 알아내는 첫 단계로 감정을 숨기는 대신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의 절정은 아내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두려움을 인정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 '데이빗' 주변에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남은 듯 불안감이 감돌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화 속 '데이빗'의 슬픔이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길 바라는 주인공은 없으니까.
영화 리뷰를 꾸준히 쓰고 있지만, 장면마다 숨겨둔 감독의 의도가 이 정도로 궁금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감독의 인터뷰와 다른 리뷰는 아래 링크로 남깁니다.
https://www.abc.net.au/news/2021-09-16/the-killing-of-two-lovers-review/100463886
https://www.slashfilm.com/581177/the-killing-of-two-lovers-director-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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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드세요 연상호씨, 당신 아직 죄인 아닙니다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에 대한 비난이나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염력'을 개봉하자마자 관람했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였기에, 많은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염력의 장단점과 캐릭터 특징을, 2분 안에 주관적으로 압축하여 빠르게 정리해봤습니다. (이 때문에 영상 편집 퀄은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영상 속에 아기자기하게 많은 재미요소가 들어가있으니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왓챠에서 '진상명' 팔로우 하시면 빠른 평 업데이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염력 #연상호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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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척살소설가> 메인 예고편
6년 전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관닝.
어느 날 그의 앞에 묘령의 여인 투링이 나타나
소설의 작가인 루쿵원을 죽이면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이에 관닝은 그녀의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고 루쿵원을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한편 루쿵원은 자신의 팬이라 밝힌 관닝을 그의 소설에 등장시키고
관닝은 곧 소설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현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과 현실이 이어진 평행이론의 세계관!
펜 끝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지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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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티저 예고편
거침없이 달린다? [불도저에 탄 소녀] 현실폭주 티저 예고편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