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11-13 22:22:58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같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라일리'

라일리는 촉망받는 미식축구 선수이다.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인기남인 데다 운동선수로도 각광받고 있는 그의 삶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카웃해가겠다는 학교도 있으니 그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못한 그의 핸드폰 속 세계에는 남자들의 몸자랑으로 가득한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말 모호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불만이 없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할 생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암이라는 친구와 안면을 트게 되면서 그의 온전했던 삶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1. 잘 짜여진 운동선수의 삶 속 어울리지 않는 그의 정체성
흔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남자의 행동이 다분히 여성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기준보다 여성스럽다고 해서 전부 다 게이도 아니거니와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맞다고 해서 게이가 아닌 것도 아니다. 라일리는 학교에서도 인기 많은, 소위 주류 문화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성미가 뿜뿜하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더 의심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게이는 여성스러운 남자들의 모습으로 많이 어필되어 왔는데, 그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겉보기에 그는 착하고 인기많은 이성애자 남자 같아 보였다. 항상 아버지에 의해 운동 위주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 때문에 그는 커가면서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알아서 잘 연기한 착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적 이득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가족들에게도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이 포지션을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환경의 노예라서, 좋게 말하면 잘 짜여진 생활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놓아버리기엔 그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마주하기엔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두렵게 했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그의 정체성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이 참 보면 볼수롤 안타까웠다.
2. 리암이라는 존재
라일리의 온전한 삶에 돌을 던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리암으로, 학교에서 게이라는 사실이 꽤나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라일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한다. 라일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자신의 정체성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을 느꼈지만 리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니 긍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적인 삶을 살던 라일리에게 그의 존재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몸은 리암에게 끌리고 있으면서도 이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라일리의 위선적인 태도는 리암을 질리게 했지만 라일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는 그에게 한 번 정도는 해야할 일종의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뚫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3.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메시지
이 영화는 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라일리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언제나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을 숨기고 친구들과의 평가에 신경쓰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홀했던 사람이었다. 보다보니,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LGBTQ영화이지만 '자신을 가장 신경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뭐, LGBTQ라고 하면 대단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성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주류 문화에 치여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 정체성에 대해 깨달았지만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슬픔을 나같은 이성애자들이 어떻게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큼은 라일리의 여자친구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소수자들이 라일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있을 것이고, 온전히 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가장 먼저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이기적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 같고, 그들에게 공감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너무 재수없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라일리 같은 친구가 있다면 라일리의 여자친구와 같은 포지션에 있고 싶다. 그렇게 그들의 정체성을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이번 '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내가 봐왔던 영화들의 범주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좋았다. 물론 그전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LGBTQ를 봐오긴 했지만 더 다양한 성수수자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내 상식 선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이번 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나같은 이성애자들은 어떤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소수자들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길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너무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 같고, 너무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과해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발치 떨어져서 그들의 삶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선을 넘지 않는 무관심을 표시하는 것, 그것이 곧 답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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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의 아들 / Son Of Saul
/ 줄거리 /
시체처리반 일명 '존더코만도'인 사울은 주검이 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고
아들의 장례를 제대로 치뤄주기 위해 시체를 빼돌리고, 랍비를 찾아나선다.
/ 영화의 특징 /
이 영화는 1.37:1 비율의 화면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은 사울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러한 화면의 비율은 나치수용소의 폐쇄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켰으며
사울의 뒤를 쫓는 카메라워킹은 우리가 사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체들을 계속 '토막'이라고 칭하며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이 없는
나치수용소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다.
/ 간단한 고찰 /
1. 사울은 왜 그토록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는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나무토막다루듯이 처리하던 사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줌으로써 평소 갖고 있던 죄책감을 덜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들을 위한 기도와 장례지만 그 사이에 평소에 자신이 처리해 왔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다.
2. 그 아이는 진짜 사울의 아들일까?
영화를 보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지지만, 이게 과연 부성애일까?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영화 중간중간에 사람들은 사울에게 '너는 아들이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에 사울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회파하거나, '아니, 지금 내 와이프의 아들은 아니고 중얼중얼' 하며 횡설수설한다.
또한, 수용소의 특성상 그리고 사울의 처지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여도, 아들이 다시 죽임을 당할 때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자신뿐만아니라 동료들 마저 희생시켰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그리고 '아들의 장례'라는 것이 사울에게 있어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삶의 목표의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3. 마지막장면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은 이유?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었다면
사울이 장례를 치루어 주고자 한 아이는 사울의 죄책감과 목표의식등이 투영된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꼭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투영가능하지 않을까.
따라서 내 생각에 그 아이는 강에서 감정투영의 대상이었던 아이를 잃고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사울에게 보여진 새로운 감정투영의 대상이었고,
사울의 의미 모를 환한 미소는
' 너라도 탈출할 수 있어서 (혹은 살아서) 다행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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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펄롱은 오늘도 석탄을 캔다. 그는 오늘도 열심히 석탄을 캐어 배달한다. 그는 건실한 석탄 운송 업체를 운영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그를 아버지로서 인정해주고 화목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수녀원에 강제로 끌려가는 어린 여자를 보고 그의 평온한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안온한 일상이 무너지며 마을에서 금기시되어온 일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1. 결핍이 그저 나쁘게만 흘러가진 않는다.
영화의 시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펄롱의 어린시절, 그리고 가장으로서 건실히 살고 있는 현재 시점.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여자들이 가족들의 수치로 여겨져 수녀원으로 보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빌은 자신의 어머니를 반추한다. 항상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수녀원에 끌려가듯 들어가는 소녀를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 같다. 현재의 펄롱의 자상함이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의심이 들 만큼 그의 어린시절은 몸은 안락했으나 마음은 가난했던 시절이었는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수녀원 속 소녀는 그의 안온한 삶에 돌을 던진다. 직감적으로 그는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소설을 읽진 않아서 그가 마을에서 수녀원이 일으키는 소동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지역 사회에서 수녀원이 행하는 권력이 막강한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수녀원의 소녀를 구출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는 계속 그 소녀를 구출하고 싶어서 고통에 휩싸인다.
그의 어린시절은 결핍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겠다. 결핍은 한 사람의 인생의 고통을 선사하지만 삶이란 참 간사해서 행복만 할 수 없고 고통이 지나고 그 고통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어야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에 가까워진다. 펄롱이 아버지가 없었지만 그를 보살펴준 삼촌의 존재가 있었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지만 윌슨 부인의 지원이 있었기에 온전히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줄 수 있는 애정이 부재했던 탓에 결정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분명 있었을 것인데,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결핍은 그의 인생의 고통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펄롱의 인간성에 박수를 쳐주게 된다. 이런 밑도 끝도 없이 착한 캐릭터, 참 좋다.
2. 그를 움직이게 한 건 그저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수녀원에 끌려가는 소녀를 보며 그는 그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가 착한 심성을 가졌다고만 하기엔 그의 과거가 그 소녀에게 감정이입을 안 할 수 없다. 홀로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 소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신도 그 소녀와 비단 다르지 않은 처지였는데, 자신은 운이 좋아 윌슨 부인에게 거두어졌기 때문에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스쳤던 생각이다. '당신은 가난함을 모른다'는 뉘앙스의 아내의 말은 그의 삶이 안온했기 때문에 현실을 잘 모른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의 말도 틀리진 않다. 힘든 것을 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선의를 베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것을 처절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녀를 볼 때, 그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기본 바탕인 선함이 발동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과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자신의 과거 속 무력했던 자신과는 달리, 지금은 행동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결의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일말의 그의 선한 성격에서 나오는 선의였을 것이다.
3.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
우선 종교를 가지신 많은 분들이 욕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교가 선함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종교를 가지는 사람들이 모두 선한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 방식이 모두 공평하게 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정 신을 믿으며 자신의 선함을 어필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선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오히려 나에게 있어 선한 사람이란 개념은 유일신을 믿고 말고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어떤 꺼려지는 일을 군말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게 바로 펄롱이다. 그를 말리는 사람들도 이기적이라고 할 순 없다. 그의 인간성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온전히 좋은 사람으로서 평판을 지켜나갔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들도 그렇게 악한 존재로 비춰지진 않았다. 지역 사회에서 평판이 어떻게 보면 삶의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생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의 평판이 망가져 그를 오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참 마음이 아팠다.
영화에서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수녀들은 임신한 소녀들의 덜미를 잡아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했다. 종교의 세계에는 선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를 이용해 사람들을 간혹 이용하기도 하고 그들을 착취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순결에 대한 강요등 그로 인한 억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하기에 억압이 심해지면 가끔 돌연변이들이 나오는 법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동성애를 감추려는 사제들이나 여기 수녀들이나 종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투명한 순결함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일종의 돌연변이같은 괴물들인 것이다. 그건 종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정확한 규율이 요구되는 집단에서 으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가끔 펄롱과도 같은 내부고발자 포지션의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세상은 그렇게 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파멸하지 않았다면 계속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10번의 고난이 와도 한 번의 행복이 온다면 그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희망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라서 이 조용한 영화를 보면서 흐뭇하게 볼 수 있었다. 펄롱은 평범하게 살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살 권리를 선물한 것 같았다. 사소함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전해져 참 좋았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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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대무가' 한바탕.
믿고 보는 정경호 x 박성웅 조합이 '라이프 온 마스', '악마가 네 이름을 부를 때'에 이어 세번째로 '대무가'에도 성사되었다는 말에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두배우는 믿고 보는 연기과 미묘한 케미의 조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더불어 신박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힙합과 무속의 조합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해져 개봉날만 기다렸다. 이한종 감독의 작품으로 10월 12일 개봉한 영화 '대무가'는 스릴러에 가깝지만 코미디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이 영화, 대체 정체가 뭘까?
취업의 마지막 수단으로 무당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신남은 취업계의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믿고 수강료 1000만원을 내어 무당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단기 속성 무당 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허나 영 발전이 없는 모습에 모든 것이 허망한 가운데, 선생님으로 부터 전설의 대무가를 알게되고 그토록 기다리던 굿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라지게 되고 그 소식을 알게된 청담 도령은 신남을 쫓게 된다. 신남을 쫓으며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대무가를 둘러싼 무당들의 상상도 못할 굿판 대결이 영화 속에서 펼쳐진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궁금증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이 특이함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열정이 보인다. 대무가를 중심으로 한 이 열정은 노력없이는 어떠한 결실도 주지 않는 과정에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로 가득 채운다. 자신의 고백을 담아내어 대무가를 완성시켜 종교적인 부분이 생각보다 부각되지 않는다. 쇼미 더 머니를 가장한 쇼미 더 무당이 펼쳐지며 그들이 마음껏 자신을 위한 대무가를 완성한다.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의 중심은 재개발 사업이다. 과거의 이유로 인해 꼭 구역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화면에 보여주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는 모습에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코미디에 국한하지 않는 소재가 사회 비판의 메시지와 함께 뛰어노는 배우들의 모습이 그토록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특유의 한과 흥이 잘 버물러져 있는 '대무가'의 세계로 들어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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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이 밥 먹여 줘? 네!
케이팝 제너레이션
(TVING, (목) 16:00 공개)
크리에이터: 정형진, 임홍재, 차우진
지난 1월 26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예능 '케이팝 제너레이션'! 보셨나요? 1세대 아이돌 강타부터 4세대 아이돌 엔시티까지 다양한 보이그룹, 걸그룹이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요.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단순히 아이돌을 관찰하는 예능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이자, K-POP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소위 '머글'도 다가가기 쉬운 프로그램이었답니다!
저도 케이팝 음악을 사랑하고 다양한 아이돌을 찾아보며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찐팬(??) 같이 앨범을 사고... 이런 적은 없거든요. 저에게는 생소한 문화지만 저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이상적인 관계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그와 반대로 '탈덕'한 팬의 입장도 나와요
오세연 감독님의 '성덕'이란 영화 아시나요
10대 시절을 바쳤지만 스타에서 범죄자로 추락한 오빠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을찾아 나선 X성덕의
덕심 덕질기를 담은, 2022년 실패 없을 올해의 최애작!
영화 '성덕' 줄거리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던 나의 연예인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팬을 그만두어야 했던 현실 자각 타임(?!)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예로 모 보이그룹의 멤버의 불미스러운 사생활이 터지자 '좋아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영상을 찍은 유튜버 '유덕모' 님의 영상도 있죠 ㅎㅎ 유덕모 님들도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출연하셨어요 ㅋㅋ
또한 케이팝 산업의 다양한 전문가 분들은 물론 실제 일본의 앨범 가게에서도 인터뷰를 따 왔고, LA 에이티즈 생일 카페에도 다녀오셨더라구요! 제작진분들이 정말 케이팝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이 나라 저 나라 다녀오신 흔적이 차고 넘쳐 . . . !! 고로 단순히 즐기기 좋은 예능 프로그램임과 동시에 K-POP 업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보기 좋은 현장감 생생한 다큐 같기도 하다는 점!
시청은 TVING에서 하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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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NA 기대한 이 영화, 아쉬운 이유는…
6★/10★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이 돌아왔다. 장르는 마찬가지로 로맨틱 코미디. 〈킬링 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의 길을 계승한다. 남성과 여성이 불균등한 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평등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감독 특유의 B급 코미디로 유쾌하게 질문하는 그 길 말이다.
주인공은 톱스타 여래와 그녀의 남편 조나단 나(JOHNathan Na) 그리고 여래의 팬클럽 회원이자 4수생인 범우다. 여래는 CF 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큰 투자를 받은 SF 작품 〈낯선자들〉에서 발 연기를 선보인 후 조롱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상심한 채로 ‘콸라’ 섬으로 떠난 여행에서 환경 운동가이자 동물권 운동가, 부동산 개발업자인 조나단을 만나 결혼한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여래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다. 환경‧동물권 운동가인 동시에 부동산 개발업자는 존재할 수 없다. 이 공존은 둘 사이의 모순이 완벽히 감춰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조나단이 겉으로는 다정한 남편인 척 굴지만 실은 여래를 정서적‧신체적으로 완벽히 통제하는 남자이듯 말이다. 조나단은 여래가 환각, 조울증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약을 먹이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 여래의 몸무게를 유지시키기 위해 그녀가 먹는 것을 통제한다. 요컨대, 조나단은 미쳤다는 낙인에 여래를 가둔 후 그녀를 자신만을 위한 액세서리로 만드려고 한다. 남자들이 오랫동안 여자를 길들여온 방식이다.
부동산 개발을 위해 오랜만에 콸라 섬을 나와 한국으로 돌아온 조나단과 여래. 그 옆집에는 온 가족이 서울대에 갔는데 혼자만 그러지 못해 4수 중인 수험생 범우가 산다. 범우는 자기 옆집에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여래가 산다는 사실에 흥분하지만, 곧 그녀가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여래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조나단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 B급 ‘병맛’ 코미디는 조나단을 죽이기 위한 기상천외한 작전까지도 이어져 관객을 홀린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꼴 보기 싫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승재’를 연기했던 오정세 배우의 특별 출연도 반갑다.
영화는 끝까지 B급 병맛 코미디를 고수하며 조나단에게는 몰락을, 여래와 범우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여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여래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범우가 여래를 돕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는 조나단을 죽일 수 있는 몇몇 결정적인 기회에서 머뭇거리다 일을 망친다. 하지만 끝내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는 그 선한 마음으로 여래를 돕는다. 그가 3수에 실패하고 4수에 들어가면서 동물과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에서 범우의 ‘실패’ 경험이 여래에게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이 또 다른 취약한 존재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다. 요컨대, 〈킬링 로맨스〉는 남자의 폭력으로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수험 생활에 실패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성공을 독식하는 남자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연대가 억압을 이긴다.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남자사용설명서〉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유쾌하게 풍자하여 평등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넓힌 이원석 감독이 비슷한 결의 영화로 돌아온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킬링 로맨스〉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영화로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자신이 애초에 마음먹었던 영화의 톤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의 코미디에 익숙하거나 그의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참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2시간 동안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황당해할 수도 있다. 내내 코미디에 힘을 주다 보니 드라마에 힘이 들어가야 할 순간에 힘이 빠진 듯한 느낌도 있다. 코미디 연출이 핵심이라도 〈킬링 로맨스〉 서사의 근간은 자유를 위해 남편을 죽이고자 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코미디 톤을 죽이고 서사의 힘을 키웠어야 했다는 소리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씨가 마른 시대에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감독이 10년 만에 같은 결의 영화로 돌아왔다는 데서 〈킬링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은 ‘JOHN NA’ 컸다. 그러나 결과물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적당히 재밌게 즐겼다. 하지만 다른 관객 역시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감독의 비타협적 실험이 뚝심이 아닌 자기만족에 그칠지도 모르겠단 불안이 들었기 때문이다(코미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자기감정보다 타인의 반응을 먼저 떠올린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원석 감독과 그의 지향을 ‘JOHN NA’ 응원하지만 말이다.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로맨틱 코미디'(https://brunch.co.kr/@cyomsc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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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성공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레오 카락스의 독창적 뮤지컬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2년 만에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등장해 심사위원들은 물론, 해외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에게서 “2021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감독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 〈아네트〉 리뷰입니다. 그 시작점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것에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미 다수의 마니아 층을 확보한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첫 음악 장르에 그것도 대사 없이 전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오로지 영어만 사용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르적 규칙과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자신의 틀 조차 바꾼 파격적 형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시사회라는 좋은 기회를 맞아 먼저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및 기본 정보
관객의 환호 속 사랑과 기쁨, 그 어두운 이면
신의 유인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인기 절정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안과 LA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며 귀여운 딸 Annette를 낳게 됩니다. 이후 점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안과 달리 육아에 전념하면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헨리, 그의 좌절은 두 사람 사이를 삐걱대게 만들죠. 그리고 관계 회복을 위해 떠난 보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기는데...
영제 : ANNETTE│감독 : 레오 카락스│각본 : 론 마엘, 러셀 마엘│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몬 헬버그 외 多│장르 : 뮤지컬,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 141분│개봉일 : 2021년 10월 27일│국가 : 프랑스, 벨기에, 독일, 미국, 일본, 멕시코, 스위스│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17, 왓챠피디아 예상 4.1, 로톤 토마토 신선도 71% 팝콘 76%, IMDB 6.4, 메타 스코어 67점
We love each other so much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두 주연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노래입니다. 특히, '모든 것은 현장에서!'라는 원칙을 내세운 감독의 고집에 따라 오페라 아리아 장면에서의 전문 가수 목소리를 얹거나 사전 녹음을 한 노래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브로 소화하며 연기를 펼쳐냅니다. 두 인물 모두 공연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에서 미디어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모양새는 또 다른 그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죠. 유명인이 만나, 파국을 맞고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불행은 그저 볼거리로 변질되며 밑바닥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불행의 이유, 매일 밤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한 여자의 행복,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내막은 뒤로 한 채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비춥니다. 그 얄팍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그저 돈의 가치에 움직이는 오락적인 소재로 치부되는 두 인물의 불안은 어쩌면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노래와 연기로 보여준 두 배우의 깊이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더불어 두 주연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두 인물의 딸을 일반 배우가 아닌 목각 인형 마리오네트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목각 인형의 등장은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인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인 쓸쓸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작품 특유의 기괴함을 배가 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나오는 마리오네트는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은 딸이 아빠의 강압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인 채 입을 벙긋거리며 아빠와 딸의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주죠. 초반 놀라움과 이질감을 주었던 요소에서 어느새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로 전환돼 동정과 연민을 자극시킴으로서 마지막 엔딩에 힘을 실어줍니다.
So, may we start?
관객들이 마주하는 첫 장면부터 사뭇 다르게 '노래하고 웃고 박수치고 우는 일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쇼가 벌어지는 동안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며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연주가 흘러나오고, 주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해 '그럼, 시작할까요?'(So, may we start?)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모든 이들이 모여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롱테이크로 마무리되고 두 주연이 자신의 역할로 떠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감독이 꿈꾸는 가상 세계에 대한 설정을 스팍스의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을 받게 해 극의 시작을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특이점들이 현재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극장가에서 그 기초가 되는 음향과 시각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에 더욱 집중해달라는 그의 부탁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전에 보여준 작품에서의 나쁜 남자의 모습,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극적 제스처, 무대 위의 화려함과 그 어두운 이면의 음울함을 오가는 색채, 전체적으로 흐르는 환희와 비극이 어우러지는 오페라 같은 느낌은 분명 호불호를 일으키기에 분명하지만, 그 기괴함이 묘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시작부터 기쁨, 결실, 그리고 적대감으로 변화해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 관객들은 141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스팍스의 몽환적 노래와 함께 그만의 기이하고 독특한 뮤지컬 판타지로 빠져들게 됩니다. 언뜻 사랑스럽고 따뜻한 스토리를 생각했겠지만, 전개는 성공의 격차로 점차 폭력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치닫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폭력적 충동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까지 파멸로 이끄는 비극, 그 상황 속 헨리의 어두운 심연을 이미지화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녹여 아리아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죠.
스크린을 통해 사랑이 주는 기쁨부터 그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까지 잔잔한 파도가 풍랑으로 변해 몰아치는 광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꼭두각시였던 마리오네트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인격화됨으로써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나쁜 아빠는 만감이 교차하며 한 남자로서 자신의 속죄를 하게 됩니다. 결국 감독이 인터뷰에도 밝혔듯 함께 출연한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사랑과 가족, 죄와 벌 등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기존에 생각한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스타일의 뮤지컬과는 다르고 상업적으로만 접근을 한다면 실망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 무성영화와 같은 고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측면에서 강렬한 배우의 연기나 감독에서 대한 애정으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s. We love each other so much 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겁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사랑과 예술이 빚어낸 성공의 이면, 파국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 속 레오 카락스의 기이한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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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밥 말리 : 원 러브> 메인 예고편
단 하나의 목소리! 시대의 전설이 되어 세상을 바꾸다 [밥 말리: 원 러브] 2024년 2월 극장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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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일> 1차 예고편
장르: 판타지 스파이 스릴러 출연: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샘 록웰, 헨리 카빌, 존 시나, 두아 리파, 브라이언 크랜스톤, 소피아 부텔라, 아리아나 데보스, 캐서린 오하라, 사무엘 L. 잭슨 각본: 제이슨 푸치스 감독: 매튜 본 위대한 스파이일수록 더 큰 거짓말을 한다. [킹스맨], [킥 애스] 매튜 본 감독의 신작 [아가일]은 다시 한 번 스파이 액션 영화를 정립할 것 입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베스트셀러 스파이 소설 작가 ‘엘리 콘웨이’ 역을 맡았습니다. 집에서 컴퓨터, 고양이 '앨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내향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소설 속 비밀 요원 ‘아가일’이 세계적인 스파이 조직의 비밀에 근접하게 되고, 그녀의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