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3-11-14 22:33:25
인간은 의심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곡성'을 통해 본 인간의 의심과 무력감
의심이라는 녀석은 인간에게 참으로 무서운 존재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굳건할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을 쉽사리 뒤흔들고 현혹하는 간사한 존재다. 이 의심이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종교 등에 의지해 신앙심을 키우고, 어떤 이들은 보이는 것만 믿겠다는 식으로 내재된 불안함을 다스린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의심을 말끔히 떨쳐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반면, 믿음이라는 장벽에 조금이라도 물 샐 틈이 보인다면 의심이 쥐도새도 모르게 새어 들어와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리고 낚아버린다. 나홍진 감독이 만든 '곡성'도 이러한 사람의 특성 중 하나인 의심이라는 요소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장르 소개란에는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라고 적혀 있다. 엑소시즘과 샤머니즘 소재가 나오기에 오컬트에도 포함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의견에 동의한다. 이 영화는 정확하게 스릴러와 오컬트 요소가 아주 진한 색깔을 내기 때문이다.
156분 동안 진한 스릴러와 오컬트 향을 내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 장면에 음산한 배경과 함께 나오는 성경 구절 루카 복음서 24장 37~39절로 함축했다. 이 문구가 요약본이라는 것을 다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과 살은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으니라. -루카 복음서 24:37~39-
전라남도 곡성군 한 시골마을에서 부부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살인 현장에 출동한 종구(곽도원)와 경찰들은 수색하던 중 창고 깊숙한 곳에서 새 둥지와 비슷한 나뭇가지 뭉치와 촛불이 놓인 수상한 제단을 발견했다. 살인사건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정체불명의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었고, 그와 관련된 소문들이 돌았다. "요렇게 소문이 파다하면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라는 대사는 종구의 의심은 외지인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뜻이었고, 그에게서 해답을 찾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공식수사에서 사건 발생 원인이 독버섯이 일으킨 환각작용이라고 밝혔음에도 종구와 마을 사람들은 이에 귀 기울이지 않고 외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의심에 현혹된 것이다.
여기서 종구는 사람들이 전하는 여러 가지 소문만 듣고 일본인 외지인을 만났다. 소문 덕분에 그 외지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 적용한다면, 외지인을 향한 종구의 생각이나 마음처럼 무언가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 혹은 일상서 벌어지는 현상 등을 이해할 수 없다. "쟤는 아마도 그럴 거야" 같은 사실에서 기반한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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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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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12월 다섯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 수요일까지 추위가 계속되고, 목요일부터 서서히
추위가 누그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알아봐볼까요?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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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아바타: 물의 길> (-)
▶ 13년만에 선보인<아바타: 물의 길>는 확장된 세계관과 몰입감 넘치는 수중 세계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을 하며 개봉 3주째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12월 30일 - 1월 1일) 관객 수 127만 4,35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74만 2,75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영웅> (-)
▶ 배우들의 생생한 라이브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영웅>은 모든 방면으로 관객에게
호평을 받으며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12월 30일 - 1월 1일) 관객 수 51만 9,00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67만 2,94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젠틀맨> (-)
▶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배우가 출연하는 범죄 오락 <젠틀맨>은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며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12월 30일 - 1월 1일) 관객 수 9만 9,15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7만 8,84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4.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1)
▶ 부산국제영화제 5천 여석을 매진시켰던 화제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감성 로맨스를 대표하는 제작진이 만나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주말 동안 (12월 30일 - 1월 1일) 관객 수 9만 1,48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9만 2,12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올빼미> (▼1)
▶ 배우 유해진, 류준열 주연의 영화 <올빼미>는 역사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관객들에게
극강의 몰입도를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말 동안 (12월 30일 - 1월 1일) 관객 수 7만 7,16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24만 6,15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TOP 5는 3주째 한국과 동일하게 <Avatar: The Way of Water>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다.
<Avatar: The Way of Water>는 주말 동안(12월 30일 - 1월 1일) 매출액은
63,444,000 (한화 약 806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은 421,561,914
(한화 약 5,243억)을 달성하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아바타: 물의 길> 6,300만 달러 (누적 4억 2,156만 달러)
2. <장화 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1,631만 달러 (누적 6,071만 달러)
3.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483만 달러 (누적 4억 3,797만 달러)
4. <Whitney Houston I wanna dance with Somebody> 425만 달러 (누적 1,487만 달러)
5. <바빌론> 273만 달러 (누적 1,013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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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12월 다섯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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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베르헤르의 <로봇 드림>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리듬감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라면 카메라가 놓일 공간과 조명의 위치로 인해 인물 동선과 장면화의 많은 제약들이 애니메이션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른데 픽사, 디즈니,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 모두 그들만의 독특한 리듬감이 전달하는 감흥은 꽤나 아름답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로봇 드림> 또한 그 특유의 리듬감이 꽤나 아름답다. 하지만 이 리듬감에는 독특한 무언가가 숨어있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감독이 영화를 사랑한다고 느껴지는 어떤 확신에서 오는 감흥일 것이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많은 오마주들을 확인시켜준다. <이터널 선샤인>, <오즈의 마법사>은 감독이 인정한 레퍼런스고 관객들은 <A.I> 같은 영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는 뮤지컬 영화인 <파리의 아메리카인>이다. <오즈의 마법사>와 동시에 떠오른 이 뮤지컬 영화가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외에도 <첨밀밀>이나 <라라랜드>, 자크 타티 영화의 면면들이 보이고, 핼러윈 날에는 <샤이닝>, <나이트메어>, <뱀파이어> 등이 보인다. 물론 <사이코> 같은 영화들은 분명하다. 이 레퍼런스들은 단지 씨네필들을 위한 숨은 그림 찾기는 아니다.
두 번째로는 <로봇 드림>에서 대사는 들어오지 않는다. 무성 영화의 리듬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도그와 로봇의 움직임과 쇼트들의 결합은 꽤나 인상적이다. <Septepber>가 흘러나올 때의 몽타주 시퀀스는 흥미롭다. 특히 이 음악은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딸 생일이 9월이어서 사용한 음악이라고 밝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가사에서 명확하게 가리키는 날짜가 9월 21일이고, 감독의 딸 생일도 9월 21일이다. 영화에서 해수욕장이 폐장되는 건 9월이다.
우선 영화 제목부터 보자. 로봇 드림. 로봇의 꿈.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이 제목에 의아했다가 수긍했다가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도그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외로운 도그,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찾다가 로봇을 주문한다. 로봇은 친구가 되고, 특이한 사정으로 인해 헤어진다. 그 뒤로는 도그와 로봇의 시간을 각각 보여준다. 하지만 제목이 로봇 드림인 것은 로봇의 꿈은 세 번 나오고, 도그의 꿈은 한 번 나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로봇의 꿈은 세 번 나오고, 도그의 꿈은 한 번 나오는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의 질문이었다.
복기해 보면 로봇의 첫 번째 꿈은 도그를 찾아가지만 도그가 집에 없다. 두 번째 꿈은 도그를 찾아가서 그를 보게 되지만 그는 다른 로봇과 있다. 세 번째 꿈은 위에서 언급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처럼 뮤지컬 시퀀스로 진행되면서 하나의 화폭 안의 꽃들이 도그의 형상으로 끝맺음을 한다. 혹은 <오즈의 마법사>로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이 꿈들을 이어붙여보면 도그를 찾아갔지만 없었고, 배신당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도그를 기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그의 꿈은 어떠한가. 도그의 꿈은 로봇의 꿈보다는 훨씬 꿈처럼 느껴진다. 눈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볼링을 치러 간다. 볼링장에서 웃음거리가 된 도그는 꿈에서 깬다. 마치 악몽을 꿨다는 듯. 도그의 꿈엔 로봇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원하지만 미끄러진다. 이건 마치 도그가 로봇과 헤어진 뒤에 겪는 일들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도그는 로봇의 구조를 실패한 뒤 스키장에서 친구를 사귀어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덕이라는 멋진 오리를 만나 사랑하지만 이 역시 실패한다.
여기서 <로봇 드림>의 제목이 왜 도그 드림이 아니라 로봇 드림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도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랑을 갈구하지만 로봇은 도그를 사랑했다. 이 애니메이션의 잔인함 중 거의 대부분은 로봇이 당하는 폭력에 맞춰져 있다. 로봇은 다리가 잘리고 폐기처분된다. 인간으로 말하자면 살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인 것인데 그렇게 잔혹한 행위에서 자신을 살려낸 또 하나의 사랑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애인(?)이다. 로봇은 아직 도그를 그리워하지만 새로운 사랑이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로봇은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상상을 한다. 아니, 정확히는 가정을 한다. 자신이 도그와 재회를 하게 된다면 관계가 꼬일 것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그렇기에 로봇은 도그와의 재회를 포기한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플래시 포워드는 그들이 함께 했을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로봇의 가정은 그들이 함께 한다면의 미래를 그린다. 함께 한다면이라는 가정은 함께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가정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한 혹은 어쩌면 소설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나 이야기하고 싶다.
왜 배경이 1980년대 뉴욕인가. 감독은 왜 뉴욕에 보내는 러브 레터라고 이야기했을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곱씹어 보면 이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과 예쁘게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불길한 이미지들 몇 가지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히치콕의 <사이코>, 큐브릭의 <샤이닝>,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시리즈를 낳은 <나이트메어>의 이미지들과 함께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은 불길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우디 앨런의 <맨해튼>이 나왔던 것도 빼놓을 순 없겠으나 감독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여기에다가 하나 더. <Septepber>는 9월이다. 9월과 세계무역센터. 그리고 80년대는 중동의 전쟁이 미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그때가 아닌가.
미국의 1980년대는 60년대부터 이어진 불바다의 시대를 지나 안정된 시기로 일컬어지는 게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백래시 현상부터 시작하여 무수히 많은 내적 갈등을 지닌 시기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장하는 바는 <로봇 드림>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또 하나의 주인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로봇이 해수욕장에 있을 때 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태어난 아기 새들은 미운 오리 새끼를 연상한다. 이 희망찬 동화 아래에는 물질주의가 팽배하게 자리 잡는다. 이제 곧 고물상이 다가와 로봇을 수거해 만신창이를 만들고 분해할 것이다.
도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멋진 덕을 만난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멋있게 질주를 한다. 게다가 성격도 아주 쿨하다. 마치 그녀가 진정한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떠나버린다.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결국 도그는 생명체를 만나지 못하고 방수 로봇을 구입(!) 한다. 이 영화에는 인간이 나오지 않고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우리는 동물과 로봇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한다. 만약 로봇이 생명체라고 인지되었다면 그는 폐장된 해수욕장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혹은 다리가 잘리지 않을 것이다. 혹은 분해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가 끝나고 든 즉각적인 생각은 성별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 4인의 결합은 불가능 한가였다. 너무 보수적인 시각 아닌가. 인간 세상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인데 왜 그것이 불가능하냐는 불만에 툴툴거렸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제는 알겠다. 4인의 결합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도그가 로봇을 구해내지 못한 것이 도시의 규율 때문인 것처럼 로봇은 뉴욕의 규율 때문에 도그와 재회하지 못한다. 80년대 뉴욕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굉장히 엄격한 곳이다. 희망찬 곳이었지만 눈물이 들어찰 공간이다.
2024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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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굵었던 박지연 지일주 주연의 강남좀비
이수성 감독의 ‘강남좀비’가 지난 1월 5일 개봉했습니다.
티아라의 ‘박지연’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작품으로 부산행 이후로 오래간만에 보는 한국판 좀비영화입니다.
좀비 영화의 전형적인 주제 의식과 좀비화 되어 가는 과정을 포함한 좀비의 특성들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풀어낸 터라 기존 매니아 층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을 듯 합니다. 다만 하드고어적인 측면은 좀 덜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보다는 재난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수성 감독은 ‘미스터 좀비’ 이후로 12년 만에 만든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두 주연 배우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태권도 3단인 박지연 씨가 보여주는 의외의 통쾌한 액션과 연결 동작으로 보여주는 발차기 등은 몸으로 좀비에 맞서는 의외의 액션들로 재미를 더합니다.
뜻하지 않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오열하는 씬에서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의외의 반전에 피식 웃으며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으로 몸이 릴랙스 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멘사 회원 지일주 씨의 시나리오 해석력과 여린 듯 강인한 캐릭터를 보여준 박지연 씨, 다양한 조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짧은 시간 관객들을 흡입시키는 영화 ‘강남좀비’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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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어렸을 때 한국식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돌아가신 분들이 들어와 제삿밥을 먹는다는 것을. 영화에 나오는 서양 귀신은 투명한 데다 발이 없거나 벽을 통과해 다니는데, 한국 귀신은 참 예의가 바르다. 문을 열어주어야 집에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한 비물질화 된 서양 귀신과, 완전히 물질화된 일본 요괴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
묘를 파한다는 의미의 <파묘>는 이렇게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몸으로 체험하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 영화로 실체화된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마주하고 보니 정말 독특하다.
한국인의 재미있는 특징은 굉장히 여러 가지 종교가 비교적 탈없이 잘 어울려 산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처럼 서로 다른 여러 종교의 기념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다. 한국은 대종교의 개천절,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기독교의 성탄절이 다 법정공휴일이다. 양력의 새해 첫날도 휴일이고 음력 설도 휴일이다. 한국의 전통 달력은 태양태음력이라서 해는 음력으로 계산하지만 24 절기는 양력이다. 띠는 절기를 따지는 것이므로 1월 1일이나 음력설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춘에 바뀐다. 또, 국기에는 동양철학인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과 괘를 넣었다. 태극과 팔괘는 주역에서 온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의 민속신앙은 여러 종교를 혼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민족의 사상과 철학은 이처럼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민족의 민속학, 민속종교
무당과 음양오행과 풍수. 이 세 가지가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다.
무당은 한반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는 사람과 그 신앙을 말한다. 제례의 방식이나 섬기는 신, 교리등이 무당과 교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주변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흡수하는 성격을 가진다. 삼국시대부터 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아 불교에 등장하는 신들을 섬긴 지 오래되어서, 용어가 불교 도교와 많이 겹친다. 근래에는 예수를 섬기거나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곳도 있다. 무당 자체의 정해진 교리가 없다 보니 타 종교의 경전과 철학을 끌어다 혼합한다. 중세시대에 음양오행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주역 등은 당시엔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었지만, 무당들은 그것마저 신점을 보는 데에 이용한다.
오행은 말 그대로 화, 수, 목, 금, 토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상생과 상극을 이루며 우주를 이룬다고 하는,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오행은 4원소설과 다르게 실재하는 물 불 흙을 이야기한다기보다, 그런 방식의 기운을 말한다. 이것의 관계도를 보면 마치 다섯 개로 하는 가위바위보 같기도 하다. 누구는 누구를 이기고, 누구는 누구를 만들고, 누구는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는 누구를 약하게 한다는 식이다. 원래 주역은 오행이 만들어지기 이전 학문이라서 음양만 있고 오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후대에 주역과 오행이 합쳐져 음양오행이 되고 사주에도 오행 해석이 들어가게 되었다.
풍수 역시 한반도에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민속학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 전체에 퍼져있는 학문이지만, 종교의 영역이라기보단 고대과학에 더 가깝다. 풍수는 원래 음양오행이 아니라 땅의 맥과 혈을 중요시하고 바람과 물과 땅의 흐름과 기운을 살펴 명당을 찾는 학문이고, 중간에 음양오행을 받아들였다. 음양오행은 형상이 아니라 기운을 말하는 것이지만, 풍수에서는 실제 사물과 대치시켜 거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풍수에도 여러 학파가 있고 거기에 따라 오행을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풍수는 음양오행을 받아들인 음택풍수가 주류였다. 한민족은 특히 풍수를 중요시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스님들이 국가적인 명당자리를 골라주곤 했다. 풍수를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 여겼기에 고려의 불교도, 무당과 불교를 미신이라 여기던 조선의 성리학도 풍수를 믿었다. 후대에 가서는 풍수가 너무 땅을 비싸게 사고파는데 악용되자 미신이라며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지만.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이런 민속학, 민속종교가 서로 공유하는 '음양오행'으로 연결시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흥미롭고 힘을 가진 영화적 소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파묘>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소재의 디테일함이나 완성도 있는 연출이 아니다. 바로 메시지가 다른 오컬트 영화와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계
심령, 귀신, 요괴, 악마 등 종교나 민간신앙, 신비주의를 다룬 오컬트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의 대부분은 그 종교를 겉핥기식으로 소재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의 이야기를 할 때, 내용 자체에 그 종교의 가르침이 깊이 스며들도록 만든다.
한국 고전문학 중에 <구운몽>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구운몽>을 짧게 줄이면 '팔선녀의 꿈을 꾸고 돌아와서 아 x발 꿈'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구운몽> 자체가 읽고 이해하면 불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야기 경전이다. 꿈을 꾼 성진에게 스승인 육관대사는 그럼 지금 현실은 꿈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지금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고, 그 꿈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그것이 윤회이며 공이다. 그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해탈하는 것이다. 성진은 팔선녀와 노닐던 것이 꿈이고, 꿈에서 깬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팔선녀 판타지를 섞어만든 불교 경전과도 같다.
장재현 감독은 이전부터 종교의 교리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중에서 신비주의 단체라고 여겨지던 장미십자회를 다룬다. 가톨릭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다. 거기에 주인공 최준호 아가토는 어릴 적 여동생이 개에게 물려 죽을 때,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 교리에는 인간이 가진 원죄를 중요시하고, 그래서 미사시간에도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의식을 한다. 최준호는 그 죄책감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악마는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린다. 악마와 싸우려면 온전히 자신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 <검은 사제들>은 내용 자체가 하나의 천주교 경전과 다를 바 없다.
<사바하>역시 마찬가지다. 불교를 다루지만 그중 주술과 신비주의 교리를 가진 밀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밀교는 오랜 시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비법을 통해 바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세 가지란 수인, 진언, 만다라다. 수인은 손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동작을 하는 걸 말하고, 진언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을 말하며 만다라는 수행을 위해 그려진 도형을 말한다. 작중에는 수인과 진언이 등장해 밀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쌍둥이이나 쌍둥이가 아니고, 쌍둥이가 아니지만 쌍둥이인 존재들이 서로 얽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드러낸다. 불이(不二)는 부처와 중생, 선과 악,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이 지점에서 기독교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무엇이 절대악인지 모호해진다. 선이라 믿었던 것이 악이고, 악이라 믿었던 것이 선이다. 혹은, 다시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파묘>는 민속학과 민속종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파묘>에서는 그 민족의 정신과 삶, 얼에 대해 다룬다.
조상의 한
LA에 사는 돈 많은 박지용(김재철)의 가족 남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환각과 환청을 듣고 정신착란에 시달린다. 무당 이화림(김고은)은 법사 윤봉길(이도현)과 함께 미국까지 건너가 그 진상을 파악해 본다. 그리고 조상의 묘의 터가 좋지 않아서 노하신 거라는 묫바람이라고 결론짓고 사람을 모은다. 김상덕(최민식)은 이화림과 종종 일을 같이하는 의열 장의사의 지관(풍수사)이다. 개신교 장로인 고영근(유해진)과 같이 장의사를 한다.
김상덕은 자리를 알아볼 때 흙 맛을 본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파묘를 한 곳에서 그는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향긋~하다"라는 말을 한다. 오행에서 흙은 사행을 화합하고 중화시키므로, 그 맛이 달고 냄새가 향긋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지용이 의뢰한 묘에 갔을 때, 그는 흙 맛을 보더니 쓴 것을 맛본 듯 퉤 뱉어버린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유교에서 나온 철학으로, 기본적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즉 불가지론의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를 포함한 모든 귀신이 나오는 종교와 믿음을 미신으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제사는 어떤 의미인가? 제사는 살아있는 자손들이, 죽은 조상에게 갖추는 효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에서도 그 특별한 개념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고,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것이 조상님을 섬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즉, 원래 유교의 제사는 귀신이 와서 밥을 먹고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에 도교와 민간신앙 등이 합쳐지고, 신분제도가 폐지된 후 너도 나도 좋은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제사가 화려해졌다. 유교의 제사가 자연스럽게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친다'로 흘러가게 된 것은 한민족 사회가 가족중심의 사회이고, 부모가 살아생전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대살굿과 파묘를 하고, 관을 꺼내고 나서 사고로 인해 관뚜껑이 열렸다. 거기서 무언가 험한 것, 한이 서린 조상의 영이 나오게 된다. 관에서 빠져나온 영은 LA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창문을 열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귀신이라니,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런데 그 영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것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박지용의 가족들은 그 묘의 주인, 박지용의 할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관을 열지도 말라고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에 대해 감추려고 했다면, 당연히 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할아버지는 백 년 가까이 제삿밥을 먹지 못했으니, 그 배고픔과 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한은 자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박지용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의문의 말을 남긴 채 죽는다.
끊어진 허리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기점으로, 영화는 허리가 끊긴 듯 완전히 앞뒤가 나눠진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생각하면, 앞 이야기는 그것을 여는 포문이었을 뿐이다. 앞부분의 분위기가 너무 괜찮았기에 뒤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이 그간 만들어왔던 영화들을 생각할 때, 민속종교와 민속학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내용은 그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우에 의해서 범의 허리가 끊긴 이야기.
여우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구미호'라는 간을 빼먹는 요괴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에서 최고로 무서운 요괴 중 하나가 하쿠멘콘모우큐비노 키츠네(白面金毛九尾の狐: 백면금모구미호)이고, 후지타 카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의 최종보스 요괴인 백면인도 그것을 모티브로 했다. 여우가 일본어로 키츠네인데, 키츠네 -> 기순애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층위로 해석할 수 있다. 범은 일본에는 살지 않았으나 조선에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범은 조선을 상징했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하자 각종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았는데, 그중 호랑이도 있었다. 호랑이는 결국 한반도에서 멸종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원래는 일본이 4 대국에 의해 분단될 처지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서방세력과 소련이 나눠 점령함으로써 독일이 당장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과 같은 운명에 놓여있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원래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분할통치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도 분할되어 버린 마당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만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거기엔 패망이 짙던 일본이 1945년에 원폭을 맞고도 항복을 미루고 미뤄 소련이 일주일 참전하게 해서, 콩고물을 얻어가게 한 일본의 책임이 있다. 일본은 소련을 중재자로 해 미국과 강화 협상을 하려 한 것이다. 소련과 미국이 땅을 나눠가지게 된다면 일본보다는 더 동북쪽으로 나아간 한반도를 분할하는 게 미국에도 유리했다. 결국 한반도가 분할통치를 받게 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셈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해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은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의 99.9%가 거짓이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쇠말뚝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실제로 그런 말뚝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일본이 풍수지리를 그렇게 잘 알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기순애라 불리는 일본의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실존인물인 무라야마 지쥰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라야마 지쥰은 일제 당시 조선의 민속학과 민속신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현재도 서점에서 팔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조선의 민속학에 대해서 잘 알았다.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은 풍수를 잘 믿는 조선인들의 기를 꺾으려는 통치방식이라 볼 수 있다. 쇠말뚝이 실재하느냐 아니냐 보다도, 그것이 박혀있다는 낭설이 퍼지면 그것 자체가 풍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간 해석을 하자면, 쇠말뚝은 진짜 쇠말뚝이 아니라 일제가 한국에 남기고 간 여러 사회적 문화적 잔재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해방 후 친일파의 득세, 사회에 전반적으로 심해진 가부장제와 군대문화 등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한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그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진 제국주의식 군대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영화 속에선 실제로 일어났다.
험한 것
가짜 이야기를 파냄으로써 진짜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친일을 했다는 박 씨 집안. 그는 기순애라는 스님이 점지해 준 곳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오로지 경도 위도의 방위만 쓰여있었다. 박지용의 고모는 기순애가 무라야마 준지라는 일본 음양사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왜 아버지가 그런 악지에 묻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일본에 충성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게 한 것이 아니라, 무라야마 준지는 그 충성심을 이용해 험한 것을 서둘러 가리는 뚜껑 정도로 그 무덤을 썼다.
일본의 요괴들은 한국의 영과는 다르게 원념으로 가득 차있으며, 실체가 있는 요괴들이다. 영만 상대하던 무당과 지관은 당연히 그 실존의 공포를 마주하곤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아마 500년 전, 일본을 무시하다가 엄청난 일본 군대의 실체 마주한 조선인들이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거짓이 진짜가 된다. 환상이 실제가 된다. 영이 요괴가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극한의 절망과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실체는 세키가하라에서 죽고 불멸의 존재가 된 오니(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불이다. 오행에서 불은 쓴맛이 난다. 그러므로 그 무덤의 땅은 향긋하지 않았고, 일꾼을 동티나게 만든 일본요괴인 사람얼굴을 가진 뱀 - 누레온나가 살고 있던 것이다. 그 오니가 세키가하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장수였고, "북으로!"라는 외침으로 볼 때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박지용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냈을 때, 이순신이 그려진 100원을 김상덕이 그 안에 던져 넣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괴의 몸에 칼을 넣는 주술로 오니 자체를 쇠말뚝으로 만들어버린 그 기괴함은 거대한 오니의 실체만큼이나 섬뜩하다. 그 민속종교의 모습은 그 민족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조상귀는 박지용의 할아버지처럼 자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화림의 할머니처럼 자손을 지켜주기도 한다. 일본의 요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쟁하다 죽은 장수로 만들어진 오니는 다이묘에 대한 충성과 북쪽으로 진군하며 모두 죽이려는 원만 남아있다. 일본과 한국의 귀신은 물성도 다를 뿐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주술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나무와 쇠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음양오행이다. 한국과 일본만이 요일 이름으로 음양오행을 쓰고 있다. 김상덕과 이화림은 처음부터 겪어보지 못한 험한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풍수와 무속을 음양오행적으로 섞고 변형시켜 대응해 왔다.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음양사는 한국에 저주를 내리기 위해 풍수를 이용했다. 오행에 의하면 한국은 목의 기운을 가진다. 장의사 앞의 나무, LA의 박지용 집 앞의 나무, 박지용 할아버지가 있는 산의 나무, 보국사의 다듬지 않은 원목기둥이 중요하게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목과 상극인 것은 쇠다. 쇠는 목을 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땅에 쇠를 박아 넣는 것이 풍수적으로 상극의 행위다. 또한 목은 오장육부로 따지면 간에 해당한다. 오니가 여우에 의해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인간의 간을 빼먹는 것은 또 그렇게 딱 맞아떨어진다.
이화림의 할머니가 오니를 막아서지만 그것도 잠시, 오니는 도깨비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김상덕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도깨비불, 오니를 마주한다. 이때 이화림은 무엇이든 해보려고 준비해 온 말피를 쏟아붓는다. 사실 한국 도깨비가 말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은 것이었다. 오니는 도깨비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다.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니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김상덕은 일본의 요괴는 음양오행이 실체화된 것이라 판단하고, 원래는 기운을 뜻하는 음양오행을 말 그대로 실체로 해석해 대응한다.
말피가 물이기 때문에 상극인 불, 오니를 죽이고 있다. 물과 나무는 상생으로, 나무를 강하게 만든다. 또한 상모에 의하면 강해진 나무를 쇠는 자를 수 없다. 실제로 물을 먹어 단단해진 나무는 쇠도 자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행 상극 개념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건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화된 존재의 오행을 따져야 한다. 존재하는 요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풍수에서 오행을 이용할 때도, 풍수는 실제 물과 나무와 흙을 보는 것이므로 오행의 상극과 반대로 해석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나무는 한국을 상징한다. 불과 검에 대항하는 피에 젖은 나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일본은 500년 전 포와 검으로 조선을 쳐들어왔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피에 젖은 손으로 7년 동안 나라를 지켜냈다. 100년 전 일제가 쳐들어와서 결국 조선을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었을 때도, 독립운동가들은 자주독립을 외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결국 오니를 피에 젖은 나무로 때려잡는 김상덕의 모습은,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짓밟아도 절대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쇠로 나무를 자른다고 할지라도, 그 피는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쇠를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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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사 앞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김상덕은 "풍수 문양이 절 이름에 그려져 있어서 의아했다"라고 한다. 그 문양은 바로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문양이다. 그 태극 문양은 성리학에서 받아들여, 성리학의 이기론과 음양을 설명하는 도상으로 많이 쓰였다. 조선의 어기로 쓰인 태극팔괘도의 태극문양도 바로 이 주돈이의 태극문양이다. 딱히 상징하는 문양이 없던 풍수에서는 음양을 상징하는 이 태극문양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불교는 음양오행 사상이 아니라 다른 상징하는 문양들이 많기 때문에, 주돈이의 태극을 쓴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성리학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쓸 리가 없으므로. 사실 알고 보니 그곳은 절이긴 했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풍수 때문에 쓰기도 했겠지만, 보국사라는 이름과 역할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태극문양을 쓴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풍수, 음양오행을 소재로 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일본은 절대악이니 배척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 없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우주를 이루는 기운이다. 우리의 땅을 유린한 일본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운 것이다. 한국이 목이라고 했지만, 사실 일본도 목이다. 오행으로 생각하면 일본과 우리는 형제와도 같고 바로 옆에서 서로 상생하며 나아가야 할 존재이고, 그 오행을 깨트린 일본의 침략세력을 견제하고 조화롭게 되돌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상생을 깨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칼을 나무에 꽂아놨을까. 보이는 칼이라면 파내고 뽑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칼은 파낼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칼을 지키는 묘도 많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굿을 하다 자꾸 오니가 떠오르는 이화림처럼 순간순간 더 섬뜩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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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 : 누가 내 엉덩이 먹으래?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데에 회의감을 느끼는 주인공 노아 (데이지 에드거-존스) 는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단짝 친구 몰리가 신기하다. 이상한 남자들만 줄줄이 나오는 앱에 지쳐가던 때, 노아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 완벽한 남자, 스티브 (세바스찬 스탠) 를 만난다.
자연스레 다가오는 스티브에게 푹 빠지는 노아.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이야기하면서도 스티브가 내 운명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날 서프라이즈 여행을 가자는 스티브의 말에 노아는 행선지도 알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오르는데...
(스포일러)
알고보니 스티브는 성형외과 의사로의 실력을 이용해 여자를 집에 가두어 놓고 인육을 잘라 파는 극악무도한 인간이었다. 'Fresh' 한 고기를 위하여 최대한 오래 여성들을 살려두며 고기를 떼어가는 것.
노아는 옆 방 여성 '페니' 와 대화하며 겨우 정신을 붙잡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스티브와 잠을 잔 유일한 피해자 여성임을 안 노아는 스티브를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 Fresh meat]
<프레시> 는 영리한 영화다. 깔끔한 주제의식을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편집과 음악, 샷구성 또한 스타일리시하여 정보 전달과 극의 전개를 사족 없이 적당한 리듬으로 해낸다.
오프닝, 노아는 어플에서 만난 남자와 소개팅을 한다. 그들이 먹는 타이 음식에는 게가 들어간다. 재료인지, 장식인지 모를 게가 수조 안에 담겨 식당에 앉은 그들을 빤히 쳐다본다. 후에 노아가 스티브의 집에 갇혀 먹히기만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게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소개팅남은 진상이다. 첫 만남부터 과거의 여성들이 더 여성스럽다, 원피스를 입어보지 그러냐 운운한다. 그러더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노아에게 '거만한 년 (bitch)' 이라며 욕설을 쏟아붓고 사라진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소개팅남의 입과, 불편해하는 노아, 그리고 밤거리를 두려워하는 노아의 모습을 통하여 영화의 방향성을 알린다.
여성의 신체를 뜻하는 은어에는 유독 음식과 관련한 단어가 많다. 심지어 젊은 여성을 '싱싱하다'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프레시> 는 그런 썩어빠진 관습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실제로 살아있는 젊은 여성에게 떼어낸 '프레시' 한 육체를 먹고자 하는 사람의 커뮤니티를 안타고니스트로 삼는다. 그렇다면 이런 기구한 '프레시함'을 갈구하는가? 영화 속 소비자는 주로 1퍼센트의 1퍼센트만큼 돈이 많은 극상류층의 백인 남성이다. 그들은 자신이 먹는 여성의 물건을 소유함으로서 여성을 온전한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다. 이들에게 여성이란 그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파편, 혹은 섭취할 수 있는 '부위' 일 뿐이다. 영화 안에서 인물의 신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컷트로 분절되고, 거울에 비친 신체 일부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화면이 파편화한 신체는 여성을 전체가 아닌 신체 부분 부분으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사회 문화의 시선과 같다. 페니, 노아, 몰리 세 주인공 여성이 가슴, 엉덩이, 다리라는- 미디어에서 주로 성애화하는- 신체 부위를 잃게 만듦으로서 영화는 여성의 신체를 고기마냥 '부위'로 취급하지 말라 천명한다.
페미니즘 담론과 함께 인종 다양성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담아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왜 결국 로맨스는 두 백인 남녀의 것이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동아시아 출신 여성 감독의 초기작이니, 주인공만은 무난히 가야했던 걸까.
그럼에도 세바스찬 스탠과 데이지 에드거 존스의 연기와 미모는 빛이 난다. 특히 세바스찬 스탠의 미모 때문에 영화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케미, 미친다]
어느새 저 놈이 진심일까? 진심이면 좋겠..같은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여러번 고개를 내저었다. 단 한번도 여주가 그런 남주의 진심(?)에 좋은 감정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멍멍이XX는, 나한테 진심이었든, 잘생겼든, 멍멍이XX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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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부위, 특히 입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로맨스로 포장한 초반 30분에서도 일관적으로 클로즈업된, 무언가를 씹는 인물의 입을 강조함으로써 잊을 만 하면 불길함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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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쉬한 편집과 화면 구성, 음악. 진부할 듯 진부하지 않은 대사로 간결하게 극의 정보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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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샷, 매치컷과 보이스 오버, 오프스크린 사운드로 뮤직비디오처럼 간결하게 전개되는 초반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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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티드 앵글과 불길한 전자음악을 통하여 달콤한 순간에 더하는 끔찍한 내용의 암시/거울을 이용한 상을 자주 이용하여 불길함, 그리고 이중성을 드러내는 화면
[거울의 상을 이용한 로맨스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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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시퀀스 - 동적인 샷구성과 매치컷,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분절된 화면의 연속으로 위화감 없이 스타일리쉬한 전개를 이어나가지만, 멈추어 극을 진행시키는 장면들에서는 롱테이크에 가까운 적은 컷과 안정적인 구도, 비교적 넓은 화면 사이즈로 숨쉴 공간을 준다. 여러 몽타주 시퀀스와 대비를 주어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는 덤
[안정적 구도, 넓은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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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로맨스 장면의 노아의 클로즈업 샷에서는 주로 망원과 표준 렌즈를 사용하여 로맨틱하고 intimate 한 느낌을 주었으나, 노아가 스티브의 집에 입성한 후로는 대부분의 노아의 얼굴 클로즈업에 광각 계열의 렌즈가 쓰인다. 상황의 기괴함과 인물이 겪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효율적인 방법. 후반부 드레스를 입고 스티브와 데이트하는 장면에서는 잠시 초반부의 망원렌즈가 쓰인다. 관객들이 가까워지고 있는 둘의 심리적 거리를 함께 느끼게 함과 동시에, 정말 노아가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게 계략인지 헷갈리게 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 망원으로...]
[광각 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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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인지 자작인지 뭣이 중헌디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이름마저도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영국 출신!'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19세기 영국판 <가십걸>이라고 해서 시대극이나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루팡>을 보고 넷플릭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포함 모두들 시즌 2가 얼른 다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시즌 1의 여덟 편을 보는 내내, 나는 브리저튼 집안 8남매 중 다섯째인 엘로이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래와 같은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결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왜 남자들은 저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데 여자들은 못하지?'
언니인 다프네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참아내는 것을 보며 엘로이즈는 언니처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고, 결혼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대가 시대이고 고증을 착실히 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근데 그래 놓고 왜 굳이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함) 수많은 무도회에서 여자들은 춤을 신청하는 카드를 받아야지만 남자들과 춤을 출 수 있다. 남자들만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 물론 남자들에게 '어서 나에게 춤추자고 신청해!' 압박을 넣을 수는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남자들만 여자의 집에 방문할 뿐, 여자들이 먼저 발을 떼는 장면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장면들은 특정 문화나 관습, 풍습이 후대까지 굉장히 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줬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은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먼저 고백을 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서 위의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낼 만큼 매력이 없다거나, 혹은 멋지다거나라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그 기저에는 아무래도 호감의 표시나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생각들이 혹시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절대 빼낼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결국 우리의 1등 신붓감 다프네는 왕족 다음으로 높다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조건만 최고인 게 아니라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기까지 하니 일단 다프네의 결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계속 보다 보니 당시 귀족 여성들이 왜 그렇게 결혼에 목을 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공작부인 혹은 자작부인, 이렇게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릴 뿐이다. 쓰고 보니 '취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니 앞서 가졌던 의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실제 그 시대에 영국에서 살며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와 그녀의 자매들도 처음에 편견 때문에 남성 이름의 필명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녀들을 정상 참작해주자.
우리나라는 은장도가 있을 정도로 여성이 순결이나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게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국 귀족 사교계에서도 떠받들어지는 가치였다. 미혼 여성들은 정원에 남자와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에 휩싸여 혼사길 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아닌 첫째 아들인 점, 귀족 여성들의 생계와 삶의 질은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점, 혼전임신이 굉장한 흠으로 여겨지는 점 등 여러 가지들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관습이나 풍습이 19세기와 21세기, 영국과 한국이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듯하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비슷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다프네는 본인을 괴롭혔던 가면을 벗고, '척'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진실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쓴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프네는 물론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만, 나름 주먹도 날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 남편이 공작인지 자작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프네에게는 본인의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엘로이즈는 피아노와 자수를 배우는 대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프네와 엘로이즈처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내 해답도 찾아가고 있는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스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었다. 얼른 시즌2가 나오길!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윤캔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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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챌린저스 - 젠데이아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테니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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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코트 밖,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스타급의 인기를 누리던 테니스 천재 ‘타시’(젠데이아)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를 맡고 있다. 연패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트’를 챌린저급 대회에 참가시킨 ‘타시’는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자 자신의 전 남친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선 넘는 세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테니스 코트 밖에서 더욱 격렬하게 이어지는데… 결승전 D-DAY, 가장 매혹적인 랠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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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소희 한 사람의 죽음이 드러낸 현실
?Rabbitgumi 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어요.
과거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가슴아픈 현실을 볼 수 있는 영화에요.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콜센터 직원들의 노동 현실과 고등학교 현장 실습의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누가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에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저의 간단한 리뷰를 영상에서 말씀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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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몬스터: 어둠 속의 살인> 예고편
빅풋이 나타나는 화이트 홀 마을에서는 많은 여성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실비아와 제이미의 친구 데이나도 실종하고, 빅풋이 여성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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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놓치지 않을거에요! [7번방의 선물]을 잇는 웃음과 감동! [이공삼칠] 메인 예고편 대공개!